The words you are searching are inside this book. To get more targeted content, please make full-text search by clicking here.
Discover the best professional documents and content resources in AnyFlip Document Base.
Search
Published by treentea, 2017-01-19 21:36:44

문화분권

문화분권


3






















































문예미학사



문화분권

3







차례

▪머리글
006 김용락 | 문화분권 3집을 내면서

▪특집
011 김충환 | 성주투쟁은 진화하고 있다
028 구자숙 | 평화의 성지로 거듭나는 김천 촛불 이야기
049 김두현 | 지도부 없는 거리의 혁명, 시민의 촛불은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056 이정찬 | 시민과 함께 세우는 대구 평화의 소녀상 이야기
067 하영식 | 세계의 변화는 이미 중동에서 시작됐다

▪인물대담
079 김사열 | 학문의 이상을 피교육자의 현실과 결합해야
104 배창환 | 헌신과 순결,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
160 김동소 | 최초의 희곡집 소암 전집 펴낸 국어학자 김동소


▪시
169 문병란 | 눈을 비비고 본다 외 1편
173 도광의 | 다시 무학산을 보며 외 1편
175 이하석 | 그래, 난 죽었으니 외 1편
178 이태수 | 그 사람의 말 외 1편
181 박노정 | 시 한 편 외 1편
183 도종환 | 사이오아 아란도 외 1편
187 이은봉 | 심장들 외 1편
189 김창규 | 살구쟁이 학살 외 2편
194 오승건 | 대변항 멸치 외 1편
197 신동호 | 성천막국수 외 1편
201 김사람 | 4월에는 외 1편
204 이필호 | 마을 외 1편
208 박은주 | 흔적(痕迹) 외 1편
210 허태연 | 갈증 외 1편




4

발행인 김용락 편집인 김태용 편집자문위원 염무웅 정지창 김명인 이하석 김준태 배창환
운영위원 권진희 오규찬 이화숙 허태연 발행일 2016년 12월 25일 발행처 한국문화분권연구소
제작처 문예미학사 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어동 94번지 ISBN 978-89-88489-62-8 03800 값 18,000원




212 정은희 | 죽음에 대처하는 방식 외 1편
216 박언휘 | 해운대 이안류가 되다 외 1편
220 송정화 | 꽃잎의 시간 외 1편
223 정연홍 | 공장지대 외 1편
226 윤덕점 | 이즈스난데모 외 1편
229 정훈교 | 혓바늘이 돋아난 물가자미 외 1편
233 박승민 | 305호 그 여자 외 1편
235 남효선 | 안녕하십니까, 갑오년 외 1편
239 표성배 | 지독 외 1편
243 장진명 | 마지막 상담사 외 1편
247 박영미 | 금성산 외 1편
250 김성숙 | 태식 씨 외 1편
254 이해리 | 부시(罘罳) 외 1편
256 박경조 | 청춘 외 1편
258 박선주 | 봄 외 1편
260 박일아 | 봄비 외 1편
263 구옥남 | 향기의 毒 외 1편
266 김경희 | 빵과 시 외 1편
269 최월강 | 개망초꽃 외 1편
271 권화빈 | 똥과 詩 외 1편
273 김봉석 | 비 내리는 풍경 외 1편
276 권진희 | 꽃그늘 외 1편
280 황정혜 | 또는 목련이나 붉은 동백처럼 외 4편 (신인)

▪산문
289 정지창 | 영남 유림의 보수성과 진보성
294 김형기 | ‘대구발 정치혁명’과 대한민국의 장래
299 김태용 |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은 존엄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일
304 최영자 | 햇님과 짜장면 외 1편
311 장영우 | 불교적 문학관의 가능성
328 박창원 | 해방공간 대구지역 신문에 난 연극비평ㆍ영화비평 사례
339 강기희 | 아우라지와 몰운대에서 만난 문학의 흔적
349 박수희 | 경주, 천년의 시간이 내어준 길에서 천년의 삶을 산다
359 화 보 | 문화분권 북토크



5

◼머리말


「문화분권」 3집을 내면서








온 나라가 용광로처럼 들끓고 있다. 소위 박근혜 정부의 비선실세
라는 최순실 일파의 국정농단 때문이다. 지금의 이 혼돈의 직접적인
원인은 우리나라의 허약한 민주주의의 룰에서 이탈한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이 도화선이 된 것이지만, 좀 더 크게 보면 우리사회의 오랜
비합리적인 관행, 적폐 등에 대한 국민들의 인내심이 폭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나는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원인이 양극화, 빈부격차라고 생각한다.
경제적 불평등을 기본적인 바탕으로, 각 분야에서 우리 사회의 힘 있
는 기득권층의 무소불위의 전횡과 독점은 이미 오래 전부터 파열음을
불러 왔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이런 현상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애

써 외면해왔다. 재벌 중심의 독점적 경제 시스템에서부터, 사회 전반
에 퍼져있는 강고한 학벌주의, 비정규직의 양산과 실업, 20:80, 1:99
의 사회라든가, 헬조선, 흙수저와 같은 용어들은 우리사회의 고통스런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OECD 국가 중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 최고의 자살률, 최고의 노인
빈곤 등 헤아리기도 이미 식상할 정도로 우리에게는 상식이 된 게 우
리 사회의 모습이다. 뭔가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지 않고는 이제 우
리 사회가 더 이상 지탱하기 힘든 지경에 와 있던 차에 박근혜 정부
의 탈선과 무능이 민심에 불을 지른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어떻게 보




6

면 박근혜 정부야 말로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역사 발전에 최고의 수
훈갑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회 각 분야에 온존하는 낡은 관행과 적
폐에 핵폭탄 급 충격을 터뜨려 이 모든 오물들과 함께 역사의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 갈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 민중들은 정심을 바짝 차려야 한다.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거나, 사드배치를 반대하거나, 친일잔재를 청산하는 평화
의 소녀상을 세우거나 하는 행동들은 다 낡은 가치, 낡은 이데올로기,
낡은 세상을 보내고 새로운 사회를 맞이하기 위한 국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인 것이다. 이번 기회에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뜯어 고쳐야
한다. 민중이 주인이 되고 특권과 반칙이 없고, 차별이 없으며, 사회
가 합리적이고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 새로운 체제를 만
들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이 사태의 한 원인으로 우리는 사회 각 분야마다의 권력집
중을 지목할 수 있다. 모든 권력은 고이면 썩는다는 것은 자명한 진
리이다. 분권, 견제, 감시, 균형이라는 단어들의 덕목이 새삼 필요할
때이다.

수고와 보수라는 한국사회의 여러 병폐가 집중적으로 집적돼 있는

대구지역이라는 변방에서 출간하는 「문화분권 3」이 어떤 의미가 있을
지 새삼 고민스럽다. 아주 미약한 목소리지만 문화분권이라는 아젠다
를 통해 문화뿐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민주주의의 발전과 인권,
지방차별 문제 등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산업뿐
아니라 재정, 인물, 교육, 문화까지 다 수도권을 향해 질주하면서 각

지역을 한갓 변방으로 전락시키는 이 광란의 시대를 끝장내거나 그
흐름의 속도를 완화시키지 않고 국민들의 보편적인 삶이 정상적으로




7

유지되기는 어렵다.

인간의 정신영역과 영혼을 주로 다루는 문화에서부터 분권이 이루

어져야한다. 그러니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정책적인 발상의 전환도 필
요하지만 지역민들의 각성도 필요하다. 불교 임제록에 ‘수처작주 입처
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는 말이 있다. 어디서든 스스로가 주인
의식을 갖고 행동할 때 진리가 완성된다는 의미이다. 말은 쉬우나 주
인의식을 갖기 쉬운 것은 아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고 환경의 지
배를 받는다. 우리나라의 잘못된 교육, 불균등한 경제 등의 틈바구니

속에서 비주류, 변두리의 삶이 체화된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당당하
게 자기 삶의 주인의식을 갖기는 매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래서
제도가 중요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언제까지 제도만 탓할 수 는
없는 법이다. 지역민들 스스로가 주체로 서겠다는 각성이 필요한 것
이다. 그래서 「문화분권」이 그 역할의 작은 부분을 자임하는 것이다.


바쁜 상황에서도 성주와 김천의 사드문제, 대구 도심의 촛불시위,
대구의 평화의 소녀상 세우기 운동, 해외의 중동문제 등에 대한 원고
를 주신 필자께 감사드린다. 이 글을 통해 지역의 정체성과 저력을
가늠해보고 우리 지역이 바람직하게 나아갈 수 있는 작은 기틀이라도
마련했으면 좋겠다.


배창환 시인과 김사열 경북대 총장 당선자 대담은 대담시기에 비해
책이 늦어졌다. 그러나 올바른 문학과 교육에 대한 매우 중요한 자료
로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일독을 권한다. 논문과 시론, 시 작품을 보
내놓고 오래 기다려주신 필자들께 감사드린다.



2016.12.20. 발행인 김용락




8

특집


변혁의 공간 - 지방, 그리고 진화하는 민주주의










































성주투쟁은 진화하고 있다 | 김충환
평화의 성지로 거듭 나는 김천 촛불 이야기 | 구자숙

지도부 없는 거리의 혁명, 시민의 촛불은 무엇을 이야기 하는가? | 김두현
시민이 함께 세우는 대구 평화의 소녀상 이야기 | 이정찬
세계의 변화는 이미 중동에서 시작됐다 | 하영식




9

10

성주투쟁은 진화하고 있다










김충환(사드배치 철회 성주투쟁위원회 공동위원장)





1. 성주촛불, 들불이 되다



사드는 이 시대의 핵심고리이다. 사드는 남한과 북한의 문제이
자, 중국과 미국의 문제이며, 러시아와 일본의 문제이다. 사드는

성주 군민의 생존권문제이자, 대한민국 국민의 생존권문제이다. 사
드는 한반도 평화의 문제이자, 동북아 평화의 문제이며, 세계 평화
의 문제이다. 그래서 사드배치 철회를 위한 싸움은 이 모든 것과

연관되어 있다. 사드가 핵심고리였다.
사드배치 철회를 위한 투쟁은 한반도 변방의 작은 고을에서 시

작됐다. 성주가 사드배치 지역으로 발표된 2016년 7월 13일부터
성주 주민들은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촛불을 밝히며 “사드배치
결사반대”를 외쳤다. 50일, 70일, 100일. 촛불을 밝힌 날이 쌓여

가면서 촛불은 50개 도시, 70개 도시, 100개 도시로 들불처럼 번
져나갔다.
성주촛불은 전 국민과 세계인의 관심을 성주로 집중시켰다. 성

주 군민들이 든 촛불로 성주는 대한민국의 생존과 세계평화를 위
한 싸움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성주는 더 이상 한반도의 변방,




11

무시당하는 인구 4만 5천의 작은 고을이 아니었다. 성주가 중심이
되었다.

세계가 놀라고 있었다. 성밖숲 총궐기대회, 서울역 상경투쟁, 새
누리당 장례식, 유림단체 상소문, 참외밭 갈아엎기, 평화미사, 평
화기원대법회, 백악관 청원 서명 10만, 908명 삭발 투쟁, 1151명

새누리당 탈당, 평화염원 인간띠잇기, 미대사관 항의집회, 성주촛
불노래자랑 등 성주 군민은 기나긴 싸움을 성공적으로 이어갔다.
마침내 성주촛불은 들불이 되어 박근혜 퇴진의 촛불로 타올랐

다. 대한민국 국민의 가슴에 민주주의와 평화의 불을 지핀 것은
성주촛불이었다. 100만의 촛불, 200만의 촛불로 마침내 박근혜 대

통령 탄핵을 쟁취했다. 그날은 성주촛불 150일째 되는 날이었다.
참여와 민주주의는 밤을 밝히는 수많은 촛불에서 시작되고 있었
다. 성주 군민들은 열정적으로 참여했으며, 자발적으로 민주주의

문화를 정착시켜 나가고 있다. 전략이 있었고 전술이 있었다. 물러
서기도 했고 나아가기도 했다. 성주 군민들도 스스로의 변화에 놀
랄 정도였다. 전 국민들이 감탄했고 세계가 놀랬다. 아직도 성주투



12

쟁은 진행 중이다. 아직도 대한민국의 촛불은 타오르고 있다.



2. 우리는 왜 사드배치를 반대하는가?


1)사드는 무용지물이다

사드가 무엇인가? 사드(THAAD, 종말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는
레이더(AN/TPY-2)와 요격미사일, 사격통제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
는 미국 미사일방어(MD)의 핵심체계이다. 사드는 적의 탄도미사일

이 발사된 후, 상승단계-중간단계-종말단계(하강단계)를 거치며 날
아올 때, 종말단계(상승고도 40-150km)에서 요격을 하는 무기체
계이다.

그동안 정부는 사드배치가 우리나라에는 부적합하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2013년, 국방부는 “사드가 남한방어에 부적합하

다”는 보고서를 냈었고(진성준 국회의원 2015. 5. 21.), 미 의회보
고서(2015. 4.)에서도 “한국에선 미사일 방어가 효용성이 낮다”라
고 밝혔었다. 2015년 7월에는 필립 코일 전 미국 국방부 운용시험

평가국장이 “사드로 북한 미사일 요격은 어렵다”고 인정한 것이
언론에 보도됐다.
그런데 느닷없이 국방부가 북한 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하여 사드

배치가 필요하다고 입장을 바꾸었다. 한반도 사드배치를 결정하고
바로 발표한 것이다(2016. 7. 8.). 이날 한민구 국방부장관은 “어
디에 배치할 것인지는 결정된 상태이며, 이에 대한 최종보고서 작

성과 승인절차 등만 남겨뒀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5일 후인 7월 13일, 류제승 국방부 정책실장은 “한미

공동실무단이 사드체계의 군사적 효용성을 극대화하고 지역주민의




13

안전을 보장하면서 건강과 환경에 영향이 없는 최적의 사드배치
부지로 경북 성주지역을 건의했고 이를 한미 양국의 국방부장관이

승인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길이가 매우 짧아 북한 단거리탄도미사일
이 발사되면 5분 이내에 도달할 뿐만 아니라, 산악지형이 많아 탐

지하기도 쉽지 않다. 즉 요격한다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상 한반도에서 사드는 무용지물이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불구
하고 국방부는 기존 입장을 바꾸어 급작스레 사드 배치를 결정했

다.
2)북한이 아니라 중국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북한 탐지용으로 슈퍼 그린파인레이더(600-900

km 탐지)와 이지스 레이더(1,000km 탐지)를 갖고 있다. 미국도
일본에 배치된 2대의 사드 레이더만으로도 북한미사일을 충분히

탐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미국과 한국 국방부가 북한 미사일방어
를 핑계로 사드배치를 강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드 레이더는 종말모드 탐지거리가 1,000km가 넘는다. 그래서

상하이, 베이징, 다렌, 퉁화 등 중국 동북부의 기지에서 발사되는
미사일을 탐지할 수 있다. 그리고 종말모드에서 전방배치모드(2,000
km-5,000km 탐지)로 전환도 8시간이면 가능하다. 중국이 사드배

치를 강력히 반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 MD 전문가 포스톨 교수는 “한국에 배치하는 사드 레이더
를 북쪽 방향으로 하면 미국을 향해 날아가는 중국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3,000km까지 탐지할 수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미국은 이를 감추며 사드를 북핵 방어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이유는 중국의 반발을 무마하고, 비용부담을 한국에 떠넘기려




14

는데 있다. 시설과 부지제공 뿐만 아니라, 앞으로 인력자원이나 운
영유지비(연간 1,000억원)도 방위비분담금 등으로 한국이 부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미 상호방위조약과 한미 SOFA는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남한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에 한해서만 한국이 미군에게 시설과 부지를 무

상으로 제공하도록 되어 있다. 중국을 겨냥한 사드배치를 위해 우
리가 시설과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할 법적 의무는 없는 것이다.



3)경제 위기가 문제다
중국은 우리나라 무역의 25%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미국과 일
본을 합친 것보다 많은 것이다. 사드배치로 중국과 적대적 관계가

형성되면, 중국의 보복으로 한국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것
이다.

이미 한류, 동대문시장, 롯데, 제주 관광객, 중소기업 등에서 천
문학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 삼
성, LG, SK 등 대기업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뿐

만 아니라 북방 경제협력의 대상인 러시아도 사드배치에 반대하고
있어 러시아와의 경제협력도 앞으로 어려워질 수 있다. 결국 우리
나라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사드배치로 인하여 앞으로 한국

경제의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4)한반도가 위험하다

사드배치로 한국은 미국 미사일 방어체계에 가담하게 된다. 이
로서 한미일 삼각 미사일 방어체계가 구축되고 동북아가 한미일

대 북ㆍ중ㆍ러, 양 진영으로 갈려 대결이 격화될 것이다. 국가안보




15

가 지금보다 더 위태로워질 수 있다.
사드는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이다.

사드가 배치되면 한국은 미국 미사일방어체계의 전초기지가 되어
중국과 러시아의 공격대상이 될 것이 뻔하다. 중국은 이미 군사적
조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고, 러시아도 극동지역에 한국에 배치되

는 사드를 타격할 수 있는 전력을 배치하겠다고 공언했다.
미국 MD전문가 포스톨 교수도 한국이 중국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고, 중국 전문가들은 한국이 미국과 일본을 위한 총

알받이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드는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를 핵으로 공격한 후에 보복 공격
을 막기 위한 것이다. 즉 미사일 방어체계의 구축은 상대국의 핵

을 무력화시키는 전략이다. 이것이 중국이 사드배치를 강력하게
반대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핵전쟁이 실제로 일어나기 어렵다는 점과 미사일을 미사
일로 요격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점 때문에, 사드는
핵 군비전쟁만 촉발시키게 될 것이고 결국 미국 군산복합체들의

배만 채워주게 될 것이다.


3. 치열하게, 그러나 평화적으로



2016년 7월 11일, 언론들은 “현재 거론되는 후보지가 아닌 영
남권 제3지역이 유력”하다고 보도하며, 경북 성주, 예천, 포항과

경남 양산이 공식 후보지라고 거론했다. 일부 언론에서 사드 배치
지역으로 성주 성산포대가 거명됐다.

성주군과 성주군의회는 “사드 성주군 배치 반대” 성명서를 발표




16

하고, “사드 성주배치 반대 범군민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성주군청 앞에서는 김항곤 성주군수, 배재만 성주군의회 의장 등

이 단식농성을 시작했고, 성주 군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촛불을
들었다. 사드 배치 반대 현수막이 걸리기 시작했다.
7월 13일, 사드배치 최적지가 성주로 발표됐다. 성주군민 5,000

여명은 성밖숲에 모여 사드 성주배치 반대 범군민궐기대회를 개최
하고, 300여명이 상경하여 국방부 앞에서 “사드배치 반대, 결정
철회” 기자회견을 가진 후, 국방부 장관에게 7시간동안 배치결정

철회와 전면재검토를 요구했다.
성주 주민들은 정부의 행정절차를 무시한 일방적인 발표를 ‘마
른하늘에 날벼락’이라며 분노했고, 성주군과 성주군의회, 성주 군

민, 모두가 하나 되어 사드배치 철회 투쟁의 촛불을 밝혔다.
황교안 국무총리와 한민구 국방부장관이 사드배치 설명회 개최

를 위하여 부랴부랴 성주를 방문했다. 설명회 도중 사드가 안전하
다는 말에 흥분한 성주주민들이 계란과 물병 던지고 트랙터로 길
을 막았다. 주민들의 거센 항의에 국무총리와 국방부 장관은 대화

는커녕 도망가기에 급급했다.
비상대책위원회는 “성주 사드배치 철회 투쟁위원회(공동위원장
이재복 정영길 백철현 김안수)” 를 확대개편 했고, 성주 군민들은

백악관 청원 누리집 위더피플(we thepeople)에 사드배치 철회 청
원 서명을 시작했다.
7월 21일에는 성주 주민 2,300여명이 상경하여 서울역에서 “평

화를 위한 사드배치 철회 성주군민결의대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
서 김항곤 성주군수와 배재만 성주군의회 의장은 삭발을 했으며,

성주 주민대표들이 국회를 항의 방문하여 간담회를 개최했다.




17

7월 26일,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총무를 비롯한 김광림 정책위의
장, 김영우 국회 국방위원장, 이완영 국회의원, 오윤 국무조정실1

차장, 황인무 국방부차관, 이철우(김천) 국회의원, 백승주(구미 갑)
국회의원, 황희종 국방부 기조실장 등이 방문하여 공식대화 창구
로 “성주군민, 경북도, 성주군, 미군, 새누리당”이 참여하는 “성주

안전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성주 군민들은 이 제안을 거부했고,
성주군청 앞마당에서 새누리당 장례식을 가졌다.
7월 27일, 성주 8개 유림단체 회원 128명이 갓을 쓰고 도포를

입고 상경하여 청와대 인근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
고 두루마리에 쓴 상소문을 청와대에 전달했다. 사흘 후, (사)한국
농업경영인성주군연합회 소속 농민 300여명이 성주 성산리에서 트

랙터 30대를 동원하여 참외비닐하우스 2동과 참외밭을 갈아엎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성주에서는 민관 할 것 없이 사드배치 투쟁에

함께 했다. 야당들은 성주를 방문하여 연대와 지원을 약속했다. 뜨
거운 여름, 투쟁의 열기는 더 뜨겁게 타올랐다.
이 와중에 정부의 분열공작은 시작되고 있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대구 육군 제2작전사령부에서 지역언론 편집국장, 취재본
부장 20여명과 간담회를 개최하여 국방부의 일방적인 입장을 전달
하며 성주 군민들의 투쟁을 고립시키고자 했으나 별 효과가 없었

다. 이때까지만 해도 여론은 성주 군민의 편이었다.
이완영 국회의원과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사드배치와 관련하여
성주를 방문하더니, “성주 사드배치는 수용하되 사람이 안 사는데

와야 맞지 않느냐”며, 제3부지론을 불 지피기 시작했다. 7월 20일,
언론이 “김관용 도지사가 상경하여 청와대 관계자들을 만나 제3지

역으로 금수면 염속산과 수륜면 까치산을 대안으로 놓고 협의했




18

다”고 보도하여 사드 철회 투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성주지역내 제3부지에 대한 첫 발언은 이완영 국회의원에게서

나왔다. 이후 김관용 도지사가 청와대에 건의했고, 8월 4일, 박근
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이완영 국회의원과 초선의원 10명을 만난
자리에서 “성주 내 다른 지역을 주민들이 추천하면 면밀히 검토해

보겠다.”고 발언했다.
이에 국방부가 “해당 지방자치단체에서 성주 내 다른 부지의 가
용성 검토를 요청한다면 자체적으로 사드 배치 부지의 평가기준에

따라 검토하겠다.”고 입장을 밝히자, 사드배치 철회 성주투쟁위원
회는 명문으로 알려진 한반도 사드배치 철회를 주장한 “사드배치
예정지 이전 논의에 관한 우리의 입장” 발표했다.

이런 와중에도 투쟁은 계속되었다. 특히 종교계의 평화미사. 평
화법회, 평화기도회가 계속되고 있었다. 8월 5일, 성주불교사원연

합회 및 신도회 주최로 스님과 불자 500여명이 모여 성주군청 앞
에서 “한반도 평화기원대법회”개최했다. 이날 촛불집회에는 방송
인 김제동이 참석하여 40분간 열정적으로 헌법에 대한 연설을 하

여 성주투쟁이 전국적으로 알려지는데 크게 기여했다.
8월 6일에는 성주지역 4개 본당 주최로 계속되고 있는 평화미
사가 초전성당에서 열렸고, 8월 7일에는 재구성주향우회(회장 김

호윤) 회원 500여명이 성밖숲에서 성주시장을 거쳐 성주군청까지
사드배치 반대 평화행진을 하고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8월 11일에
는 평화나비광장에서 “사드 말고 평화” 원불교 기도회가 개최됐다.

2016년 8월 10일 오전 7시 41분, 백악관 청원 누리집 위더피플
(we the people)에서 한국 사드배치 철회를 요구하는 청원에 서

명한 사람이 지난 7월 15일 서명을 시작한지 26일 만에 10만 명




19

을 돌파했다. 30일 내에 10만명 서명이라는 조건을 앞당겨 달성했
다. 한국 최초의 일이었다. 이로서 백악관은 60일 이내에 이에 대

한 공식입장을 내 놓아야 한다. 8월 12일, 백악관은 “사드배치 철
회 청원에 대한 답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성주
촛불집회는 31일째 계속되고 있었다.

8월 13일, 미주한인연대 주최로 미국반전평화단체 등 40여명이
백악관 앞에서 “사드 가고 평화 오라”며 한반도 사드반대 시위를
했다. 백악관 청원 서명이 시작되고 백악관 앞에서는 8월 26일까

지 총 5차례 사드배치 반대 시위가 있었다.
8월 15일, 성밖숲 광장에서 성주 군민 5천명이 참가한 가운데
“사드철회 평화촉구 결의대회 <사드 가고 평화 오라>”를 개최하

고, 그 자리에서 성주 군민 908명(여성 11명)이 사드배치 철회를
요구하며 삭발투쟁을 감행했다. 세계 최초의 일이었다.

성주 투쟁은 성주 사드배치 반대투쟁에서 한반도 사드배치 반대
투쟁으로 나아갔고, 성주 군민들의 평화와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
은 더욱더 성숙해가고 있었다. 성주 투쟁을 지켜 본 국민들은 “성

주 군민들이 위대하다”고 말했다.
8월 9일, 성주지역 안보 및 보훈단체들이 국방부에 제3부지 검
토를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후, 국방부와 경북도지사, 국

회의원, 성주 군수의 제3부지 띄우기가 본격화됐다. 8월 15일 삭
발투쟁 후, 성주 군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성주 군민들이 제3부지
를 찬성한다는 여론 조성에 나섰다.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8월 16일 오전에 제3부지 검토를 촉구하
는 “사드배치 문제와 관련해 국민에게 드리는 호소문”을 발표하여

제3후보지 검토문제 공론화했다. 그날 오후, 성주군청마당에서는




20

성주군재향군인협의회 등 27개 단체 23명 참석하여 “경북도지사
성명서에 따른 우리의 입장”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8월 17일, 성주투쟁위원회는 국방부와의 간담회를 가졌다. 간담
회에서 투쟁위원 중 한 명이 투쟁위 결의를 어기고 제3부지 검토
발언을 했다. 이완영 국회의원이 이 발언을 받아 국방부에 제3부

지 검토를 요청한다고 발언했다. 한민구 국방부장관은 성주군민
의 뜻을 모아주면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 간담회가 끝난 후, 투쟁
위는 성주 성산포대 사드배치 철회 후 전면재검토를 요구했다.

8월 22일, 김항곤 성주군수는 이완영 국회의원, 배재만 군의회
의장 등과 동원된 성주지역 사회단체 대표들이 배석한 가운데 군
청 대강당에서 국방부에 제3부지 검토를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했

다. 강력히 항의하는 성주 군민들을 대강당에서 끌어내고, 경찰과
공무원들이 출입을 막은 채 진행된 기자회견이었다.

그날 저녁, 성주군청은 촛불집회의 전기 공급을 중단하고, 군청
문을 폐쇄하여 촛불집회에 참가한 주민들의 화장실 출입을 막았
다. 성주 군민의 편이던 성주군청이 정부와 국방부의 분열공작에

말려들어 촛불 끄기에 앞장서게 된 것이다.
공무원들의 집요한 제3부지 검토지지 활동은 점점 노골화 되고
있었다. 성주사드 제3부지 추진위원회 명의의 90개의 현수막이 걸

렸고, 대한노인회 성주군지회(회장 이재복)의 제3부지 지지 기자회
견이 있었다. 공무원들이 마을마다 다니며 주민들에게 제3부지 지
지를 요청했으며, 이제 촛불집회를 하지 않는다며 선전하고 다녔

다. 제3부지 지지를 호소하는 성주 군수의 호소문을 공무원과 이
장들이 군민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국방부와 성주군의 분열 공작이 계속되는 가운데에도 성주 군민




21

들의 사드배치 철회 투쟁은 계속됐다. 8월 26일, 투쟁위에서 활동
하던 새누리당 소속 김명석, 백철현, 곽길영, 배명호 군의원이 사

드배치를 찬성하는 새누리당에 분노하여 새누리당 경북도당 앞에
서 탈당기자회견하고 투쟁기간 동안 탈당한 1151명의 탈당계를
제출했다.

8월 27일에는 성주 군민 4,000여명이 참여하여 성주군청에서
성산포대까지 2.7Km 평화염원 인간 띠잇기 행사를 했다. 모든 행
사의 과정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진행했으며, 주민 안전을 위하

여 안전요원 200여명도 주민들이 조직하여 운영했다. 군민들의 사
드배치 철회의 의지는 드높았다.
성주 촛불집회 52일째 되는 9월 2일, 촛불집회에서는 성주지역

4개 종단대표(불교, 원불교, 개신교, 가톨릭)의 “김항곤 성주군수에
대한 주민소환 나설 수도 있다”는 성명서 발표가 있었다.

9월 7일, 성주 투쟁위와 김천 투쟁위의 대표 4명(이명재, 김성
대, 백철현, 김충환)이 상경하여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를 만나
사드배치 반대 당론 결정을 요구했으며, 원불교에서는 국방부 앞

에서 사드배치반대 집회를 개최했다. 이어 성주와 김천투쟁위 80
여명이 상경하여 미대사관 앞에서 항의집회를 하고 항의서한 전달
했다.

9월 10일, 소나기가 내렸다. 성주 군민들은 준비한 “성주촛불노
래자랑”을 개최했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기획하고 준비하고 참
여하는 축제의 마당이었다. 이 즐거운 축제를 끝으로 성주군청 평

화나비광장에서 쫓겨나 길거리에서 촛불을 밝히게 될 것이라고는
성주 군민들은 생각하지 못했다.

이날 이후, 집회 신고를 한 성주경찰서에서는 집회금지 통보를




22

하지 않았는데도 성주군청은 건조물 침입 및 퇴거불응으로 조치하
겠다고 통보해왔다. 김세환 부군수의 진두지휘 아래 전기를 차단

하고 화장실을 폐쇄했으며, 평화나비광장에 노골적으로 군청 차량
을 주차하여 촛불집회를 방해했다. 성주군청 평화나비광장에서 촛
불을 밝힌 지 61일째 되는 날, 성주 군민들은 거리로 쫓겨나 촛불

을 들었다.
9월 12일, 제3부지를 지지하는 다수파 투쟁위원들은 노골적으로
투쟁위 해체를 시도했다. 사드배치 철회를 주장하는 투쟁위원들이

투쟁위 해체 안건 상정 자체를 거부한 가운데, 투쟁위 해체를 기
도했다. 성주 군민 330명은 바로 평화나비광장에 모여 “촛불지킴이
단”을 발족하고, 단장에 노성화씨를 선출했다. 이날 촛불집회에서

는 투쟁위를 확대 강화하기 위하여 성주성당 이강태 신부와 김충환
(수륜면)씨, 배윤호(가천면)씨를 투쟁위 공동위원장에 추대했다.

다음날, 성주 군민들은 “투쟁위 해체 무효 선언 및 촛불지킴이
단 발족” 기자회견을 하고, 백철현 투쟁위 공동위원장이 투쟁위
회의 소집하여 촛불집회에서 추대된 이강태 신부, 배윤호씨, 김충

환씨를 공동위원장으로 선출하고 투쟁위 조직운영 및 강화방안을
논의했다.
9월 13일, 성주군수가 지난 7일 성주지역 사회단체 대표 10여

명과 만난 자리에서 여성비하, 직업비하 막말을 군민들에게 한 사
실이 언론에 보도됐다. 전국 여성단체들이 사과를 요구하며 성주
군청을 항의 방문하여 기자회견을 했고, 촛불집회에서는 분노한

성주 주민들이 성주군수의 사퇴를 주장했다.
9월 25일, 투쟁위는 성주군수와 협상을 통하여 국방부 발표가

있기 전까지는 성주군청 평화나비광장에서 촛불집회를 하고 그 이




23

후 집회 장소를 협의하여 옮기기로 합의했다. 다음날, 촛불집회에
서 투쟁위의 이러한 합의에 대한 주민들의 비판이 쏟아졌고, 9월

27일 촛불집회에서 투쟁위는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촛불집회는
다시 평화나비광장에서 진행되었다.
9월 30일, 성주 촛불집회가 80일째 되는 날이다. 국방부는 오후

2시 제3부지 평가 결과를 발표하려고 했다. 국방부 관계자가 내려
와 경북도지사와 김천시장과 성주군수에게 설명하려고 했으나, 김
천시장은 만나지도 못했고 성주군수와 성주군의회 의장만 만나고

떠났다. 지역 주민들과의 대화는 일체 없었다.
국방부는 오후 2시로 예정된 언론 설명회를 취소했고, 뒤늦게
보도 자료를 내면서 발표를 대신했다. 국방부의 이러한 행태에 대

하여 김천 시민들과 성주 군민들은 더욱 분노했다. 원불교가 성주
투쟁에 적극 참여하게 됐고, 성주투쟁은 김천투쟁으로 확대됐다.

사드배치 철회 성주투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국방부가 사드배치 최적지를 성주 성산포대에서 성주 초전 롯데




























24

골프장으로 발표하자, 성주군은 성주군청 평화나비광장에서 개최되
는 촛불집회를 방해했다. 사드배치 철회 투쟁위원회에서는 성주군

청입구에서 농성을 시작했고 성주군수와의 협상은 다시 재개됐다.
합의된 협상안을 촛불집회에서 추인을 받고 10월 7일, 성주촛불
87일째 (구)성주경찰서 주차장으로 촛불집회 장소를 이전했다. 이

로서 성주 주민들은 장기적인 투쟁을 대비한 안정된 집회장소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10월 17일부터는 성주군 대가면, 벽진면, 선남면, 가천면 단위

소규모 집회 및 선전전을 했다. 이후, 성주 군민들은 성주군민 플
리마켓, 성주투쟁 사진전, 성주촛불 100일째 기념 공연, 성주군민
벼룩시장, 전국 풍물잽이 한판 굿 공연, 성주촛불 방문 평화버스

운영, 평화도보순례, 주민총회, 초전면 소성리마을집회(매주 수요
일)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금까지(12월 14일) 155일째

촛불을 밝히고 있다. 날씨가 추워지자 성주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바람막이를 설치했고, 성주 청년들은 나무난로 12개를 직접 제작
하여 매일 저녁 불을 피우며 촛불을 들고 있다.

그 사이 민중총궐기대회가 열리는 광화문 촛불집회에 매주 참여
하여 성주 촛불의 깃발을 높이 들고 사드배치결사반대를 외쳤으
며, 사드배치 철회 투쟁에 동참을 호소했다. 청와대 앞, 대구, 김

천, 창원, 광주, 구미 등 어느 지역이든 찾아가 사드배치 철회를
외쳤고 또 외쳤다.
2017년 1월 28일, 설날은 성주촛불 200일째 되는 날이다. 100

일, 200일이 아니라 300일이라도, 사드배치가 철회되는 그날까지
성주군청 앞 평화나비광장에서는 매일 저녁 촛불이 밝혀질 것이다.







25

4. 성주의 평화나비, 세상을 날다



성주투쟁은 이미 승리했다. 외부세력, 불순세력, 님비로 이어지
는 정부의 성주 고립화 작전은 실패했다. 미국과 청와대와 국방부
는 당황했고, 최적지를 성주 성산포대가 아니라 성주 초전골프장

이라고 번복했다. 정부의 분열공작은 치밀했으나, 성주 군민은 노
련했다. 촛불을 끄기 위한 공작은 끈질기게 계속되었으나, 성주 군
민들은 더 끈질기게 싸웠다.

성주 군민들은 정부가 원하는 방식으로 싸우지 않았다. 피하기
도 하고 물러나기도 하면서 나아가야할 때 나아갔다. 성주 군민들
은 이기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평화적인 집회를 150일 동안 이어

갔고, 성주 사드배치 철회에서 벗어나 이 땅 어디에도 사드배치는
안된다며 “사드 가고 평화 오라”를 소리 높여 외쳤다.

성주 주민들은 북한 핵미사일 문제가 사드배치로 해결될 수 있
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지 못하는 근본원
인이 북미대화와 남북대화의 단절로 상호 불신과 적대적 관계가

계속되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성주 주민들은 6자회담, 북미
대화, 남북대화를 통하여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을 동시
에 추진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평화를 이루어낼 수 있다

고 믿고 있다.
사드배치 최적지를 성주 성산포대에서 성주 초전 롯데cc로 변경
하자, 14만 김천 시민과 120만 원불교 교도들이 가세했다. 김천촛

불을 밝힌 지도 110일이 넘었고, 원불교 평화기도회도 100일을
넘겼다.

뿐만 아니라 성주와 김천 주민들은 사드배치 철회 투쟁의 촛불




26

이 밑불이 되어 100만, 200만 촛불로 타올랐다고 생각하며 큰 자
부심을 가지고 있다. 150일 동안 이루어진 평화적인 촛불집회가

100만, 200만의 평회적인 촛불집회가 될 수 있었다고 믿고 있다.
변방의 작은 도시, 성주의 주민들은 사드배치의 날벼락을 맞았
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지난한 싸움을 해왔다. 성주를 고립시키기

위한 정부와 언론의 왜곡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고, 주민들
을 분열시키고 이간질 시키려는 국방부의 공작도 감내해냈다. 성
주 주민들은 사드배치 철회 촛불투쟁을 통하여 새롭게 거듭나고

있다.
“국민이 주인이다. 사드배치 철회하라!”
“국민이 명령한다. 박근혜는 퇴진하라!”

“그네 가고 민주오라! 사드가고 평화오라!”



성주 촛불집회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사드배치가 철회되는
그날까지 촛불을 들 것이다. 아무리 권력이 강해도 국민을 이길
수는 없고, 아무리 공격을 해도 즐기며 싸우는 성주 군민을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성주투쟁은 오늘도 진화하고 있다.























27

평화의 성지로 거듭 나는 김천 촛불 이야기










구자숙(김천담쟁이 기자)





김천에 처음 촛불이 켜지기까지



경북에서 어느 지역이 제일 먼저 성주의 사드배치 투쟁에 응원
의 촛불을 들어주었을까? 의성이었다. 의성민주단체협의회에서 8

월 12일 의성군민대회를 열었다. 여기서 나온 구호는 ‘백남기농민
청문회 실시!’ ‘사드배치철회 평화협정체결!’ ‘고추값 보장!’이었다.
전국적으로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가장 먼저 사드배치반대




























28

성명서를 발표했고, 이어 7월 18일에는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이하 왜관수도원)에서 성직자, 수도자, 신도들이 모여 사드반대

미사 후 거리행진을 하기도 했다.
대구는 7월 22일 처음으로 촛불집회를 가진 이래 매주 금요일
저녁 7시 동성로에서 꾸준히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김천도 성주에 힘을 보태기 위해 8월 11일 김천민주시민ㆍ단체
협의회(의장 김대성, 이하 민단협) 회의에서 성명서 발표와 8월 20
일 촛불집회를 하기로 결정했다. 이때만 해도 김대성 의장은 50여

명 정도 참석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그동안에도 성주에서는 밤마다 촛불집회가 열렸고, 처음엔 외부
세력이라 배척당하지 않을까 주춤하던 사람들도 연대하기 시작했

다. 성주 내 4개 성당이 연대해서 사드배치 반대 미사를 매주 토
요일 했다. 나는 13일 이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처음 성주로 갔

다. 초전 성당에 도착하니 입구에 탁자가 놓여 미국대사관에 보낼
청원서 제출을 도와주고 있었다. 우리 부부도 잠시 휴대폰으로 청
원서 작성을 하고 성당에 들어갔다. 4개 성당 신부님과 왜관 베네

딕트 수도원 신부로 추정되는 분들도 보였다. 꽤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여기 사람들은 이 미사에 왔다가 저녁에 다시 집회에 나
온단다.

“우리가 이런 일을 겪으니 전에 무관심했던 일들이 미안해진다.
개콘 중 보이스 피싱 이야기가 있는데, ‘많이 놀라셨죠?’하는 말이
유행어가 된 적도 있다. 그때는 재미있게 웃었는데, 이제 생각해보

면 보이스 피싱 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 말에 웃을 수가 없었
을 것 같다.”라는 신부님의 강론이 잔잔하게 마음속에 들어왔다.

그 무렵 사드배치 제 3후보지 이야기가 나왔다. 염속산, 까치산




29

과 더불어 롯데 스카이힐 성주골프장(이하 롯데 CC) 이야기가 흘
러 나왔다. 15일에는 시장이 긴급확대간부회의를 소집했다. 이날

박보생 시장은 “지역주민들 특히 농소면, 남면, 조마면민들이 불안
에 떨지 않도록 사드에 대한 올바른 설명과 함께 단체행동을 자제
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경북일보 8월 15일자)

저녁에 민단협 의장 및 회원과 율곡동 주민이 법률구조공단 앞
조그마한 공원에서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금 늦게 도착해보
니 알음알음으로 모인 사람들이 40여 명 정도 되었다. 우선 박보

생 시장을 만나러 가자는 의견이 나왔는데, 내일 박시장이 출장이
라는 정보를 듣고 그럼 시의회를 방문하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그래서 임시 의장으로 박우도씨를 뽑고, 율곡동 주민과 민단협 회

원들 몇이 가기로 했다. 박우도 임시의장은 지난번 장례식장 이전
문제로 안면이 있는 관계로 나더러 같이 가서 취재해 달라고 요청

했다.
다음날 오전 10시 김천시의회 의장 면담이 이루어졌다. 배낙호
의장과 김세운 부의장, 백성철 농소면 시의원등이 배석했다.

이 자리에서 주민들은 전날 있었던 시장의 ‘단체행동을 자제하
라’는 발언에 불만을 토로하고, 시의회에서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를 요구했다. 새누리당 의원 일색인 시의회의원

들로서는 참으로 곤혹스러웠던 모양이다. 새누리당 당론이 사드배
치 찬성인데, 당장 김천 시민들의 안전과 건강 문제가 달려 있으
니 정부의 제3후보지 고려가 당황스럽기도 했으리라. 상당히 오랫

동안 토론한 끝에 오후에 시의원들을 소집하고 회의해서 알려주겠
다는 답변을 듣고 나왔다. 이날 오후에 시의회 성명서가 발표되고

18일에는 김천시와 함께 공동성명서가 발표되었는데, 이후에도 김




30

천시가 줄기차게 내세운 것은 김천 시민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김
천 인근 사드 배치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규탄대상도 국방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에 대해서였다.
16일 저녁에 율곡동에서는 2차 토론회가 열렸다. 동사무소 앞
주차장에서였다. 여기서도 80여 명이 참석했다. 농소주민들 100여

명도 성주 접경지역에서 집회를 가졌다. 농소는 롯데CC와 가장
가깝게 위치한 곳이다.
다음날 한민구 국방장관이 성주군청을 찾는다는 소식에 농소주

민 80여명은 김천시의회 이우청 의원과 백성철 의원, 이상배 농소
면장과 위현복 임시대책위원장과 함께 성주군청을 찾았다. 그러나
김천시민을 태운 버스는 경찰에 가로막혀 더 이상 진입하지 못하

고 결국 김천시로 발길을 돌려야했다.
오후 4시 10분쯤 김천시청으로 돌아온 농소주민들은 김천시청 회

의실에서 박보생 시장과 사드배치 반대와 관련한 간담회를 가졌다.
한편 율곡동 주민들은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이전 개청식에 이
철우 의원(국회정보위원장, 김천)과 김관용 경북도지사가 참석한다

는 소식을 뒤늦게 듣고 모여 두 시간 동안 무더위와 쏟아지는 뙤
약볕에서 기다렸다. 끝날 무렵에는 50여 명으로 불어났으나 김 지
사가 불참하자 사드배치 제3후보지를 거론한 데 대해 항의하려던

계획이 무산되었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나 행사 후 나온 이철우 의원과 김응규 경북도의회의장, 박
보생 김천시장 등에게 주민들은 사드배치반대를 위한 적극적인 행

동을 요구했다.
이날 율곡동과 농소면 주민들은 다 같이 연대해야 함을 깨닫고

20일 있을 촛불집회에 적극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31

민단협 회원들이 모여 촛불집회를 준비하던 18일, 회원들은 김
천시장이 다음날 시의원과 기관단체장을 소집했다는 소식을 들었

다. 오직 농민회만이 등록단체로 되어있어 민단협 회원 중 박경범
농민회장외 초대받은 사람은 없었다. 김대성 민단협의장과 이명재
민단협고문, 박우도 율곡동 임시의장 등은 당연히 초대받지 못했으

나, 일단 가서 의견을 제시해보기로 하고 다음날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에서는 투쟁위원회를 구성하되 명단 작성은 시장에게 위임
하는 걸로 끝났다.

이렇게 뜻밖에도 성주를 응원하려던 사드배치반대 촛불집회는
이제 김천의 문제로 바뀌게 되고, 결과적으로 예상치 못했던 1000
여 명의 시민이 강변공원에 모여 성황리(?)에 치르게 된 것이다.

이것을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보내었는데 그 글을 인용해 본다.



성주와 김천은 하나다. 성주와 김천은 대한민국이다.
-20일 김천 강변공원에서 사드배치 반대 촛불집회가 열려



20일 오후 7시 30분부터 2시간 여에 걸쳐 김천 강변공원에서
‘한반도 사드배치 반대 촛불문화제’가 김천민주시민ㆍ단체협의회
(의장 김대성, 이하 민단협)주최로 1,000여 명 시민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이날 가장 피해를 입는 농소면과 율곡동 주민들과 더불어 김천
시민들이 대거 참여하여 준비한 600여 개 초가 동이 나 반 이상의

시민들이 초 없이 문화제를 치를 정도였다. 어린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참여하여 100여 개의 어린이용 초가 동나기도 했다. 중고등학

생들도 많았으며 한 학생은 자유발언에서 ‘당보다는 사람을 잘 살




32

펴서 뽑으면 사회가 나아질 것이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행사를 주최한 민단협 측은 ‘대한민국 어디에도 사드가 배치되어

서는 안된다.’ ‘김천과 성주는 하나다.’ ‘(성주가 대한민국이듯) 김
천이 대한민국이다.’는 점을 강조했다.
모인 사람들 사이에 약간의 입장 차이는 있었다. 김대성 민단협

의장은 “이 정부는 국민을 개돼지, 졸로 보고 있다. 우리가 힘을
모아 반드시 사드배치를 저지해야 한다.”고 했으며, 배윤호 성주사
드배치반대투쟁위원은 제3후보지를 거론한 김관용 경북지사를 성

토하고 “우리가 투표를 잘못하였다. 지금 우리 뜻을 거스른 사람
을 잘 봐 두었다가 선거 때 제대로 하자.”고 말했다.
박보생 김천시장은 “최선을 다해 하겠다. 시민들이 함께 많이

모여 힘을 보여야 할 때 많이 모여 달라. 촛불을 조만간 다시 켜
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한반도에 사드가 필요하다’는 기존의

새누리당 입장을 비추기도 했다.
제3후보지로 거론되는 롯데스카이힐성주컨트리클럽과 가장 가까
운 곳에 위치한 농소면과 조금 떨어진 율곡동(세칭 혁신도시)에 가

장 먼저 사드반대대책위가 꾸려져서 무대에 올랐다. 위현복 농소
면 대표는 지난 17일 성주에 한민구 국방장관을 만나러 가던 상황
을 설명하면서 “내일부터 농소는 사드반대 촛불집회를 계속하겠

다.”고 했으며, 박우도 율곡동 대표 또한 “사드배치 철회 투쟁을
끝까지 할 것”을 다짐했다. 특히 “혁신도시는 참여정부 시절 지방
분권정책으로 만들어졌는데 이곳을 망치려 한다.”고 개탄했다.

그러나 “성주 성산포대에 사드가 그대로 배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이모씨의 자유발언 때는 야유가 나오기도 했다. 시민들은

“성주와 김천은 하나다.” “성주가 대한민국이듯 김천도 대한민국




33

이다.”고 함께 외치기도 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불구경을 했다.
반성해야 한다.”는 박희주 시의원의 발언 때는 잠시 조용해지기도

했다. 민단협 고문인 이명재 목사는 사드에 대한 설명을 통해 “사
드배치는 보수 진보를 떠나 모두 함께 힘을 모아 철회해야 한다.”
고 호소하기도 했다.

집회 후 시민들이 만든 사드배치반대 온라인 공간에서는 집회에
대한 다양한 평가와 의견이 나왔다.
“김천에서 열린 첫 촛불집회임에도 많은 시민들이 참가해 성주

와 더불어 싸워나갈 것이며, 나아가 다른 지역과도 연대할 것을
다짐했음에 의의가 있다 할 것이다.”하고 한편 “민관이 연대하여
사드반대대책위를 꾸리자는 시민들의 바람과 달리 ‘사드를 배치하

되 시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 곳’으로 한다는 박시장의 발언에
시장이 끝까지 시민들과 함께 반대싸움을 해나갈 것인가?” 의구심

을 가진 목소리가 오가기도 했다.
더구나 비슷한 시간에 열린 소리바람예술단 정기공연 ‘한여름
밤 음악회’에 참석한 이철우 의원(새누리당, 김천, 국회정보위원장)

이 촛불문화제에 참석하지 않은 데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나왔다.
제3후보지 선정을 성주시민들에게 떠넘겨 국민들을 이간질시키려
는 모습을 보이는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 한 시민

은 “성주 김천이 남이가? 했다가 이제는 남이다 한다.”면서 “점점
갈수록 한반도에 사드가 배치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고 주장했다. 또 “사드배치 철회에 박보생 시장과 이철우 의원, 시

도의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촉구하고 이들이 협조하지 않을
경우 우리끼리 촛불을 이어가자.”며 ‘1인 1현수막달기 운동’, ‘시

에 항의전화하기’등을 제안하기도 했다.




34

이날의 열기는 시에서 꾸린 김천사드배치반대투쟁위원회(이하
투쟁위) 공동위원장에 박우도 혁신도시 사드반대투쟁위 대표와 김

대성 민단협 의장과 같은 두 명의 시민이 들어갈 수 있는 동기가
되었고, 이후 22일, 23일 농소면사무소에서 연 1000여 명의 시민
이 모여 촛불문화제를 이어갔다.



11일 사드의병의 날 촛불을 살리기까지



24일에는 김천종합운동장에서 1만여 명이 참가한 대규모 궐기대
회가 열렸다. 이날의 압권은 박보생 시장과 5명의 공동위원장(수
석위원장 김세운)의 삭발식과 이철우 의원에게 가해졌던 야유였다.

박시장은 그동안의 미온적인 태도에서 한 발 나아가 사드 배치 반
대 의지를 확실히 보여주는 의미에서 즉석에서 삭발을 했고, 이에

다른 공동위원장도 함께 했다.
반면 ‘안보를 위해 사드는 배치되어야 한다.’ ‘사드 배치를 하는
데 주민 합의는 필요 없다.’ ‘사드같은 비밀무기는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이의원에 대한 주민들의 분노는 대단했다.
“꺼져! 꺼져!”
“삭발해! 삭발해!”를 연호하여 이의원은 주어진 연설을 겨우 마

치고 황급히 도망치다시피 대회장을 빠져나갔다.
이날 집회는 대부분 투쟁위원이 시의원과 관변단체 대표로 구성
되어있어 거의 시가 주도하다시피 했는데도 김천 교육청은 각 학

교에 ‘학생들이 참가할 수 없도록 하라’는 공문을 보내 학부모와
교사들의 반발을 샀다. 교사들에게도 참가를 금지하는 학교가 있

었다고 한다. 한 초등학교 교사 부부는 공무원법을 들먹이며 참가




35

하지 마라는 학교장의 말에 참가를 포기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행사 장소가 잔디밭이라 초를 켤 수 없다는 사정은 그렇

다하더라도 공교롭게도 대형 스크린이 고장 나 수리에 들어갔다
하여 소형 방송 영상 장비를 사용하여 제대로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아 진행이 매끄럽지 못했으며, 시의원들의 말들이 지루하게 반

복되기도 해서 시민들은 박시장의 삭발에도 불구하고 그 진정성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24일 이후 농소면에서 율곡동으로 장소를 옮겨 1천여 명의 시

민들이 4일간 촛불집회를 가졌다.
한편 김천사드배치반대투쟁위원회는 ‘우리나라에 사드가 배치되
는 것을 최우선으로 반대함’에 합의하여 명칭을 사드배치반대김천

투쟁위원회(이하 투쟁위)로 바꾸고 공동위원장을 시민단체에서 더
영입하려 모색했으며, 29일부터는 시청에서 촛불집회를 갖기로 하

는 한편 나영민 공동위원장의 국회 앞 일인시위 등과 같은 여러
적극적인 행동을 모색했다.
그럼에도 사드 반대운동에 적극 나서는 시민들과 투쟁위 집행부

와 생각 차이가 컸다.
성주군수가 제3후보지를 건의한 순간 사드반대는 지역 간 다툼
문제로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언론에서 일제히 ‘폭탄 돌리기’ 게임

이라 말하듯 사드를 한반도의 안보와 평화, 한국의 주권문제보다
어디다 배치하느냐의 싸움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따라서
주민들 사이에 갈등을 조장시켜 저열한 지역이기주의(님비현상)로

몰아가려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새누리당 일색인 김천 시, 도의원이나 시장은 우리 지역은 안

된다는 입장에서 엉거주춤하게 투쟁하고 있었고, 시의원이나 관변




36

단체장이 주를 이룬 투쟁위 공동위원장이하 집행부도 이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이에 대해 시민들은 ‘삭발’과 ‘탈당’을 요구하여

집행부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사드 배치 찬성 당론을 갖고 있는
새누리당에 있으면서 끝까지 반대행동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불안감이 불신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율곡동으로 이전한 한국전력기술이나 한국도로공사 직원을 상대
로 국방부는 ‘사드는 안전하다’는 교육을 했고, 같은 날 곳곳에
‘사드 배치를 찬성한다.’는 현수막이 나붙었다.

이틀간의 시청 집회 이후인 8월 31일, 장소는 김천역 광장으로
바뀌었다.
9월 1일 투쟁위는 국방부 앞 항의집회를 가졌다. 박보생 김천

시장과 차 20대로 나눠 탄 김천 주민들의 행렬을 맞이한 것은 시
민 수보다 더 많은 경찰차벽과 의경들이었다. 국방부 앞에서 일인

시위하던 나영민 공동위원장과 박희주 시의원의 모습이 사람들의
마음을 찡하게 했다. 사전 집회하기 전 공동위원장들은 국방장관
과 면담을 가졌으나 별다른 대답을 듣지는 못했다.

9월 7일 투쟁위는 사람이 적은 곳으로 배치되면 사드를 받아들
일 수 있다는 투의 성명서를 발표했고, 언론에서는 국방부가 난함
산도 후보지로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이 성명서에 대한 불만이 다음날 소성리에서 가진 집회에서 그
대로 폭발하였다. 투쟁위 집행부가 ‘롯데 CC 사드배치 반대’ 펼침
막을 걸어놓자 이 문구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측과 집행부 사이

에 실랑이가 벌어졌고, 급기야 펼침막이 떼어지기도 해서 한동안
집회가 지연되었다. 시민들은 이 논란의 근원인 성명서를 철회하

라고 요구하기도 했으나, 결국 한반도 어디에도 사드는 배치되어




37

서는 안 된다는 데 합의하고 펄침막 없이 집회를 진행했다.
소성리 집회 이후 이틀간 사회를 맡은 박경범 농민회장과 김덕

기 YMCA 사무총장에게 마이크가 주어지지 않았으나, 시민들이
불러내어 집회를 진행하게 했다. 이러한 불만에 재정보고를 하지
않는 데 대한 불만도 더해져 점차 후원금 액수가 줄어 급기야 한

푼도 모금되지 않는 사태에 이르게 되었다.
8일 김대성 공동위원장이 성명서에 반발하여, 10일 김세운 수석
공동위원장은 건강문제로, 박우도 공동위원장은 내부 사정으로 투

쟁위 공동위원장직을 사임했다. 그리고 비가 내리는 속에서 백성
철 투쟁위 공동위원장은 돈이 없다, 조속한 시일 내 범시민투쟁위
조직을 구성하기 위해 당분간 촛불을 끄겠다고 선언하였다.

11일 분노한 시민들은 사드배치반대김천시민대책위원회(이하 대
책위) 중심으로 뭉쳐 22차 촛불 집회를 성사시켰다. 이를 두고 팩

트 TV 김태일은 '9·11 사드의병의 날'이라 이름 하였다. 시민대책
위는 집회가 성사되도록 하기 위해 박보생 시장과 투쟁위 공동위
원장을 면담하여, 역광장을 쓸 수 있도록 협조를 얻고, 조속한 시

일내 범시민을 아우르는 범시민투쟁위를 발족할 수 있도록 힘을
써 달라 요구하였다.
이날을 계기로 관변단체와 시의원을 중심으로 한 투쟁은 시민대

책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농소와 율곡동이 합쳐져서 박우도, 이순식 공동위원장, 김서업
사무국장으로 하여 사드반대김천시민대책위원회가 발대식을 가진

것은 9월 9일. 다음날 박우도씨가 투쟁위 공동위원장을 사임하면
서 대책위 공동위원장직도 사임하였는데 김대성 민단협 의장이 공

동위원장으로 영입되었다.




38

시민대책위 새 집행부가 꾸려지기까지



김천에서 적극적으로 사드배치 반대 운동을 편 종교단체로는 피
해당사자이기도 한 원불교를 먼저 들지 않을 수 없다.
5일 원불교 김천평화교당이 천막을 치고 성지 수호 및 평화기도

회를 가진 것을 처음으로 하여 원불교는 역 광장에 홍보물을 게시
하고 집회에 적극 참여하였다. 28일에는 전국에서 원불교 교무
500여분이 모여 집회에 참가하였고, 이후 최용정 교무가 공동위원

장을 맡으면서 원불교는 성주와 함께 사드반대 투쟁의 한 축을 담
당하게 되었다.
또 하나의 단체는 김천 YMCA. 김덕기 사무총장이 사회를 담당

하고, 어린이 놀이방 천막을 차리고 놀이방 봉사, 현수막 게시 등
을 후원하였다. 한편 ‘김천 사드현장에서 함께하는 한반도 전쟁위

기 극복과 평화여건 조성을 위한 YMCA 정책워크샵’을 가지기도
하여 김천의 투쟁을 적극 지원했다.
직지사도 든든한 우군이 되었다. 김천불교사암연합회 명의로 사드

배치 반대 현수막을 직지사 주변을 비롯한 시내 곳곳에 부착하고,
여러 스님과 신도들이 집회에 참여하고 후원금을 내는 등 적극적
인 지원을 하고 있다.

시민들이 가장 섭섭해 하는 종교는 천주교이다. 천주교 대구대
교구 재단인 ‘월명 성모의 집’이 소성리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음에도 침묵하고 있기 때문이다. 율곡동에서 집회를 할 때는 율

곡 성당이, 평화광장에서는 평화동 성당이 미사중 집회 소리를 들
으면서도 그에 대해 한 마디 말도 없어서 신자들조차 실망을 할

정도였다.




39

김천에 앞서서 투쟁의 촛불을 들었던 성주는 김천의 모범인 동
시에 함께 연대해야 할 동지였다. 김천과 성주의 첫 연대 집회는

9월 7일에 있었다.
이날 김천과 성주 시민 60여 명은 각각 차 두 대를 나눠 타고
미국대사관 앞 항의집회를 가졌다. 이날 성주사드배치반대투쟁위

(공동위원장 김안수 정영길 백철현, 이하 성주투쟁위)가 항의서한
을 전달하는 데 맞춰 함께 하자고 민단협이 제안하여 이에 호응한
김천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이다.

성주투쟁위 항의서한은 8월 13일 백악관 홈페이지 위더피플에
한국사드배치결정철회를 청원하는 107,000명의 서명을 제출하여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점과 57일째 이어지는 성주의 촛불 시위와

뒤이은 김천의 촛불 시위를 비롯한 전국적인 항의 행동이 이어지
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또 성주 성산포대뿐만 아니라 초전 골프시설, 나아가 한국 어디
에도 사드를 배치함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전하는 내용이었다.
이명재 투쟁위 자문위원, 김대성 투쟁위 공동위원장이 성주 대

표와 함께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당대표 면담을 가지고 집회에 합
류하고, 대사관에 항의 서한을 전달하고자 했으나 경비실에서 무
산되었다.

이 집회 이후 김천은 꾸준히 성주, 원불교와 연대하는 활동을
펴나가게 되었다.
한편 투쟁위는 ‘성주롯데CC사드배치반대김천투쟁위원회’로 이름

을 바꾸고 24일 오후 3시 종합운동장에서 범국민궐기대회를 가지
고, 나영민의원과 박우도씨 두 사람이 청와대 항의서한 전달을 위

한 걷기를 시작했으며, 박보생 시장과 배낙호 시의회의장이 단식




40

에 돌입하였다.
30일엔 국방부 기조실장이 박보생 시장을 만나러 온다는 소식을

SNS를 통해 알게 된 시민 50여 명이 달려가 저지하자, 국방부는
황급히 뒷문으로 도망가고, 롯데 골프장 결정 보도 자료로 부지
발표를 대신한다고 했다. 시민들이 단식하는 시장을 지키고 있는

동안 대책위 집행부가 달려와 규탄 성명서를 발표했고, 마침 국방
부가 모아놓은 기자들이 이를 취재했다. 이어 투쟁위도 성명서를
발표했고, 시장은 기자회견을 한 후 시민들의 권고를 받아들여 단

식을 중단하였다.
10월 5일 투쟁위는 국방부와 보신각에서 집회하고 서울에 도착한
나영민 의원, 박우도씨가 도보로 청와대 항의서한을 전달하고 돌아

오는 걸로 마무리 지었다. 이후 투쟁위는 거의 활동을 중단하다시피
하여 시민들은 대책위 중심으로 뭉쳐 반대투쟁을 이어나갔다.

11일엔 성주와 김천이 미 대사관 앞에서 연대집회를 가진 후 보
신각으로 이동하여 김천 성주 원불교 삼주체 결의대회를 가졌다.
전국적으로 홍보하려면 서울에 오는 게 효과적임을 깨달아 22일에

는 청계천에서 사드한국배치저지 전국행동에서 주최하는 ‘사드저
지 범국민평화행동’에 40여 명이 참석했다.
11월 12일 서울의 100만 민중총궐기대회에는 200여 명이 참석

하여 서울 한 복판에서 사드배치 반대와 더불어 박근혜 퇴진을 함
께 외쳤다. 부문집회에서 김덕기 자문위원이 사회를 함께 하고, 율
동맘들이 율동을 선보였으며, 김종경 공동위원장이 발언을 했다.

연대하러 오는 단체들도 많아졌다. 서울과 부산에서 각각 평화
버스를 타고 학생들이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정욱식 평화네

트워크 연구원, 김종대 정의당 의원, 이재명 성남 시장, 김광진 전




41

국회의원도 달려왔다. 전교조 경북지부 교사들과 트랙터 시위로
서울을 향하는 농민회 회원이 참여하기도 했다. 10월부터는 사드

농활대가 조직적으로 꾸려져 김천 지역을 다니며 홍보 활동을 펴
는 한편 그 활동상을 글로 남기거나 집회에 참석하여 발언하기도
했다.

김천의 촛불을 지키는 가장 든든한 힘은 맘카페의 엄마들, 이들
은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만나 다양한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실
천한다. 어느 날 각자가 있는 곳, 가능한 시간에 일인시위를 하기

도 했고, 이철우 의원 사무실 앞 시위가 있던 날 오전에 미리 모
여 브라우닝에게 돌을 던지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고, 시청에
서 국방부가 시장과 만나 롯데 CC사드배치 발표를 하려고 하던

날도 달려가 발표를 무산시킨 것도 엄마들이 주축이었다.
그 중 일부는 시간을 내어 율동을 연습하여 세 개 율동팀이 꾸

려져 집회를 이끌어나가기도 했다.
이 엄마들이 또 하나 생각해낸 것이 플래시몹이었다. 촬영해서 유
튜브에 올리자는 데 의견일치를 보고 일주일 간 시간 내어 춤 연

습을 하여 11월 6일 김천역 평화광장에서 촬영하였다.
또 하나의 힘은 농소의 나이 드신 어머니들. 이분들은 바쁜 농
사일을 끝내고 후닥닥 저녁을 드시고 집회에 나오신다. 때로는 발

언자들의 말에 적극적으로 추임새를 넣어 힘을 주기도 했다.
가장 든든한 힘은 농소의 젊은이들. 이들은 남들보다 일찍 나와
무대를 꾸미고 음향기기를 내오며 천막을 치고 준비를 하는 한편

집회 내내 질서 유지를 위해 애쓰다가 끝나면 정리까지 책임지고
한다. 그 와중에도 후원금을 모아 내기도 해서 감격하게 만들었다.

한편 박희주 의원은 출퇴근길에 도로에 서서 일인시위를 하거나




42

시에서 주최하는 행사장을 찾아다니며 피켓 시위를 펴기도 했는
데, 김천맘들도 함께 하거나 따로 하기도 했다.

집회 방식도 다양하게 하려 애썼다. 매주 토요일은 문화제 형식
으로 하여 많은 가수나 시인, 춤꾼의 재능 기부로 꾸렸고, 사드가
요제, 즉석 노래방, 투쟁상을 담은 영상물 시청하기를 프로그램에

넣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김천역 광장은 평화광장으로 불렸고, 평화나비 합창
단이 꾸려져 꾸준히 합창을 선보여 율동맘과 더불어 대책위가 자

랑하는 보물 2호가 되었다.
9월 26일에는 새누리당 경북도당 앞에서 새누리당 탈당 기회회
견을 열고 278명 탈당계 제출했으며, 이날 농민회 주관으로 고 백

남기 농민 분향소가 설치되어 조문을 받았다.
10월 7일에는 이철우 의원 사무실 앞에 저녁 7시에 모여 개 사

료 뿌리기, 계란 투척, 새누리당기 찢기 퍼포먼스 후 김천역까지
가두행진을 하고. 바가지를 밟아 깨는 퍼포먼스와 마무리 집회를
가졌다. 이때 시민들의 호응도가 높았음에 고무되어 21일에는 김

천고에서 역까지 가두행진을 전개했다.
29일에는 70회 기념으로 박근혜ㆍ김관용ㆍ이철우에게서 받은
표창장, 임명장, 혹은 그들의 책을 태우거나 찢는 퍼포먼스를 가지

기도 했다.
그 외에 톡투유, OX 퀴즈 형식으로 하기도 했다.
10월 25일 상황의 반전이 일어났다. 전날 박근혜가 꺼내든 개헌

카드로 하루 종일 시끄러울 것 같던 TV가 JTBC의 최순실 태블릿
PC에 담긴 내용 보도로 하루 종일 난리가 났다. 박근혜의 개헌카

드는 온데간데없어지고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드러난 것이다. 게다




43

가 대통령 사과까지! 지금까지 대통령을 옹호하던 극우보수 언론
들조차 핏대를 올리며 박근혜를 씹어대고, 여기저기 마구마구 최

순실 관련 보도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날부터 촛불집회에서도 ‘탄핵, 하야’와 같은 단어들이 등장하
기 시작했다. 시민 발언에서도 “혹시 사드도 순실이 작품?”하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날이 많이 추워지고, 통장이 폐쇄되고, 시민 중에 조사 받는 사
람이 생기고 하는 가운데서도 재정을 걱정하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성금이 모아졌다. 적금타고 백만 원을 기부한 시민을 비롯, 매일
천 원씩 기부하자는 제안에 이어 물품지원도 이어졌다. 대구의 윤
병철님과 김천 시민이 기부한 무릎담요, 최용정 교무와 아이를 키

우는 어머니들이 기부한 의자, 목도리, 손난로, 펼침막, 북, 종이컵
등등......

11월 7일부터 이틀간은 집행부 내부 문제로 밴드와 촛불집회가
약간 어수선했다. 밴드에서 집행부 내부 문제가 제기되어 시끄러
웠다. 어쩌면 갈라치기 하려는 세력의 의도였을 수도 있으나 그동

안 물밑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 것이었
다. 투쟁위나 율곡동 대책위에서도 문제되었던 투명한 재정 공개
가 대책위에서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시민들이 문제 제기를

해오던 차였다. 게다가 촛불집회에 거의 활동하지 않는 사람들이
계속하여 집행부에 영입되어 의아해 하던 사람들도 있었다. 결국
공동위원장과 자문위원을 제외한 집행부가 전원 해임되었다. 이날

이명재 공동위원장은 여러 사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공동위원장직을 스스로 물러났다.

14일 더불어민주당 의원 3명이 지역현안 파악을 위하여 김천을




44

방문하였다. 함께 한 김종경 공동위원장의 발표는 다음과 같았다.
1) 박보생 김천시장과 가진 면담에서 시장의 사드반대 입장을

끝까지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하고 여러 가지 지원을 약속
받았다.
2) 김천경찰서를 방문, 형사과장에게 안전하고 평화적인 집회에

대한 지원을 당부하였다.
3) 성주롯데CC를 방문하여 소성리 이장단, 주민들과 함께 사드
포대배치예정지를 시찰, 주민들이 사드반대의 당위성을 넘어 박근

혜 정권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는 민심을 전했다.
방문한 의원 중 김현권 의원은 저녁 촛불집회에 참석하여 힘을
주었다.

롯데 CC와 국방부의 남양주 땅 교환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16일
보도, 22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국무회의 통과와 대통령 재가라

는 어처구니없는 시국 속에서도, 추운 날씨와 비까지 뿌리는 속에
서도 촛불은 계속되었다.
19일엔 드디어 새 집행부가 인선되어 어느 정도 체제가 정비되

었다.


100회를 넘어서 새롭게 나아가는 김천 촛불



이제 김천 촛불은 구미로 대구로 서울로 부산으로 사드반대 깃
발을 들고 달려갔다. 19일엔 대구 ‘박근혜 퇴진 3차 시국대회‘에

김종경, 박희주 공동위원장과 율돔맘들을 비롯, 몇몇 시민들이 개
인적으로 참여하였다.

24일 김천, 성주, 원불교를 비롯한 사드배치를 반대하는 단체들




45

이 모여 소성리에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규탄 및 사드배치
반대 공동기자회견’을 가졌다. 마친 후 삼 주체는 사드저지전국행

동, 대구경북대책위와 부산울산경남(아직 대책위가 꾸려지지 않았
지만)와 함께 정기적인 회의를 하고 연대하기로 합의했다.
26일은 전국적으로 박근혜 퇴진 촛불시위가 있는 날이다. 김천

시민 50여 명은 ‘평화를 위한 파란 발걸음’, 성주 초전면에서 소성
리 마을회관까지 있는 도보순례에 참여했다. 첫눈이 내리는 가운
데 도보 행진을 마치고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대구 촛불집회에 참

석했다. 여기서 가장 큰 성과는 유선철 자문위원이 사람들을 뚫고
김제동에게 김천에 오겠다는 약속을 받았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미군기지 반대운동을 하고 있는 일본인(교토) 5명 성

주행사에 참가했다가 김천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것이다. 이들은
미국의 약속을 믿지 말라고 하고 사드뿐만 아니라 레이다 기지가

필요가 없고 설치되지 말아야 함을 강조하여 환호를 받았다.
28일 김천에 촛불이 켜진 지 100일 되는 날이 왔다. 사전 행사
로는 사드반대 소원 등 달기, 100일 사진 전시, 뜨끈한 순두부 나

누기 등이 있었으며, 1부 농소 농악대 풍물과 살풀이 춤 등이 펼
쳐졌고, 성주투쟁위, 대경대책위에서 연대발언이 있었으며, 특히
정청래 전의원은 15분 남짓 발언으로 힘을 돋우어주었다. 동영상

으로 된 축하 인증샷을 보기도 했다.
2부는 성주 ‘평화를 여는 예술단’, 부산 ‘곱창카레’, 원불교 우쿨
렐레 팀 ‘원’ 등의 공연으로 시간은 두 시간을 훌쩍 넘기기도 했

다. 이제 김천 촛불은 다시 100회를 향해 다시 달려가려 한다.
12월 3일엔 6차 박근혜 퇴진 범국민 촛불집회에 40여 명이 참

여, KT앞에서 사드배치 반대단체와 함께 부문집회를 가지고 미국




46

대사관을 거쳐 일본 대사관, 청와대 앞 행진을 하면서 박근혜 퇴
진과 사드배치 철회를 외쳐 서울 시민의 호응을 받기도 했다. 항

상 ‘사드반대’ 대형 깃발을 휘날리는 박희주 공동위원장은 청와대
앞에서 자유발언을 했고, 같은 날 김종경 공동위원장은 부산 집회
에 가서 20만 군중 앞에서 사드반대 발언을 했다.

우울한 소식도 있었다. 남면은 전면적으로 농소는 조합원은 제
외하고 땅 담보대출이 되지 않는다 하였다. 게다가 농소에서 따로
촛불을 켜려는 시도가 있어 사람들이 많이 걱정을 하였다. 그것이

촛불을 확산시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끄려는 시도에서 나온 것
이 아닌가 하는...
생각해보면 투쟁을 농소 율곡동 만의 것으로 축소하려는 움직임

은 처음부터 있었다. 그러나 평화광장에 나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 싸움은 결코 혐오 시설을 어디에 들이느냐와 같은 차원의 싸움

이 아니고 한반도의 생존권과 안전을 지키는 싸움이라는 데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고 본다.
국방부와 협상한다는 것은 보상밖에 없고 그것은 사드가 들어온다

는 전제를 하는 것이니 지켜보는 사람들은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5일날 사람들이 많이 나와서 광장을 지키기도 했다.
6일은 국방부에서 감정평가를 하러 나온다 해서 이를 저지하기

위해 김천 성주 원불교가 모였고 이날 저녁엔 성주 김충환 공동위
원장과 원불교 김원명 교무가 집회에 참가하여 발언을 하였다. 다
음날은 첫 소성리 수요 연대 집회가 있었다. 전날에 이어 이날도

김천에서 많은 사람들이 소성리에 달려가 함께 했다.
9일 드디어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었다!

다음날인 10일 박희주 공동위원장과 원불교는 서울에서, 장재호




47

사무국장과 율동맘은 구미에서 활약을 하였다. 광주 5.18 민주화
운동 역사기행을 간 일행은 금남로집회에 참가하여 성주 유동인,

김천 박병주님이 사드반대 발언을 하여 광주 시민들의 열광적인
응원을 받았다.
이렇게 김천 시민들은 평화광장에서 꿋꿋이 촛불을 지키는 한편

서울, 부산, 대구, 울산, 광주 등을 쫓아다니면서 우리의 투쟁을
널리 알리려 노력하고 있다.















































48

지도부 없는 거리의 혁명, 시민의 촛불은 무엇을

이야기 하는가?










김두현(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사무처장)





1. 사상 최대 인원이 참여한 시민혁명



이제 시작이다.
지난 12월 9일, 국회가 압도적인 찬성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탄

핵하고 난 다음 날인 10일, 시국대회에서 이구동성으로 외쳤던 말
이다. 그렇다. 시민들은 2달 가까이 이어져 온 거리의 촛불이 단



























49

순히 박근혜 대통령을 대통령직에서 몰아내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헌정을 유린한 박근혜와

최순실을 비롯한 국정농단 세력에 대한 명확한 처벌은 물론이고
그들이 저질러 놓은 온갖 적폐를 청산하는 것에서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나가는 데까지 촛불의 역할이 남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로 시작된 11월의 혁명은 10월 29일 서울의 1차
시국대회에서 시작되었다. 20만으로 시작된 서울의 촛불은 12월 3

일 6차 시국대회에는 190만 명의 시민이 운집해 역대 최대 인파
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10월부터 2달여 진행된 시국대회에 전국적
으로는 연인원 750만 여명이 참여해 6월 항쟁의 2배가 넘는 인원

이 참여하는 유례없는 시민혁명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이 과정
에 대구도 함께 했음은 물론이다. 대구의 시국대회는 지난 11월 5

일 2․28 옆 도로에서 시작되었다. 4,000여명의 참여로 시작된 대
구 시국대회는 11월 11일의 2차 시국대회 5,000여명, 11월 19일
의 3차 시국대회 25,000여명을 넘어 11월 26일의 4차 시국대회에

서 사상 최대인 50,000여명의 시민들이 참여했으며 12월 3일의 5
차 시국대회 역시 50,000여명의 시민들이 참여해 새누리당으로 행
진하는 보기 드문 풍경을 보여주었다. 탄핵이 가결된 다음날인 12

월 10일의 6차 시국대회에는 7,000여명의 시민이 참여해 열기가
한풀 꺾인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전국적으로는 여전히 100만이
넘는 시민이 참여해 헌재의 판결과 향후 특검, 국정조사에서 새로

운 국정농단 사실이 드러날 경우 언제든지 촛불이 다시 타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대구의 이번 촛불은 시민의 참여 인원이 많았다는 것으로만 의




50


Click to View FlipBook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