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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by treentea, 2017-01-19 21:36:44

문화분권

를 가지는 중대사였다. 이런 나의 진정성이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
직였는지는 몰라도 수성(갑)에서 김부겸 후보가 당선되었고, 나는

김 후보에 이어 대구에서는 두 번째로 높은 36%라는 득표율을 기
록하면서 낙선했다.(독자들은 혹여 오해 마시길 바란다. 사실을 팩
트 그대로 진술한 것이지 나의 선거운동 때문에 김부겸 후보가 당

선 됐다는 것을 주장하려는 게 결코 아니다. 추호도 그런 공치사
를 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어려운 여건에서도 선거에서 여당 후보의 무투표 당선은

‘민주주의의 죽음’이라는 생각으로 출마한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내 나름의 신념 때문이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민주주의의 기원
은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시작한 것으로 돼 있

다. 아테네서 시작된 민주주의가 오랜 세월 발전과 후퇴, 혁명과
반동과 같은 치열한 갈등의 과정 속에서 점차 발전해 왔다. 그래

서 혹자는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와 같은 무시무시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지금 우리사회가 겪고 있는 촛불정국, 탄핵정국의 소용돌이도

크게 보면 민주주의의 성장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사태에 대해 낙관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다.
아테네 민주주의의 이상을 설파한 당대의 정치가이자 장군인 페

리클레스(Pericres)는 다음과 같은 민주주의에 대한 중요한 연설을
남겼다.



우리의 정체는 민주주의라고 불립니다. 왜냐하면 권력이 소수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 인민의 손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적인 문제를 수습하는 문
제가 있을 때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합니다. 누군가를 다른 사람에 앞서
공적 책임을 갖는 자리에 앉히고자 할 때 고려하는 것은 그가 특정 계급에



301

속하는 가의 여부가 아니라 그가 가진 실질적인 능력입니다. 국가에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한 어느 누구도 빈곤하다는 이유로 정치적으로 무시되
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정치생활이 자유롭고 개방적이듯이, 상호관계 속
의 일상생활 역시 그러합니다....
아테네에서 각 개인은 자신의 일뿐 아니라 국가의 일에도 관심을 가집니다.
우리는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을 자기 일에만 신경 쓰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아테네에서 전혀 하는 일이 없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데이비드 헬드
지음, 박찬표 옮김. 『민주주의의 모델들』 후마니타스, 2010. 36~7쪽 )


지금부터 2500년 전 사람이 한 말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현실감이 있는 문장이자 정치철학이다. 민주주의는 “권력
이 소수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 인민의 손에 있기 때문”이
라는 표현은 오늘 소위 최순실과 몇몇 소수자가 전횡한 국정농단

이 민주주의의 파괴와 정치의 퇴행을 명확하게 보여는 실례라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또 “공적 책임을 갖는 자리에 앉히고자 할 때 고려하는 것은 그
가 특정 계급에 속하는 가의 여부가 아니라 그가 가진 실질적인 능
력입니다.”라는 이 구절은 박근혜 대통령이 공주이자, 전직 대통령

의 딸이라는 프리미엄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후 보여주는 파탄과 비
극을 우리 국민들이 목도하고 있는 것을 그대로 가리키는 말이다.
내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내가 총선출마를 결심하자 되지도 않

는 일을 돈과 시간을 써가면서 뭐하려고 하느냐고 염려했다. 그러
나 페리클레스의 “우리는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을 자기 일에만
신경 쓰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아테네에서 전혀 하는 일이 없

는 사람이라고”하는 말처럼, 선거와 같은 현실정치에 직접 참여하
거나, 아니면 정치적인 관심을 갖고 투표장에 나가는 정도의 정치





302

행위를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회적 실체가 없는 ‘유령’에 불과하
다는 평소 내 믿음과 같기 때문이다.

겨울 아스팔트 바닥에 18세 아들과 함께 앉아 찬 겨울바람을 정
면으로 맞으며 촛불을 켜는 까닭은 바로 파괴되고 훼손되고 있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것이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은 바로 내

가 하나의 존엄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까닭이기 때문이기도 한 것
이다.







































김태용
경북 의성 출생. 경북대와 성균관대 대학원을 수료하고 헤럴드경제(내외경제) 기자를
역임했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대구시 달서구(을) 지역위원장이다.



303

▪유아동화


햇님과 짜장면 외 1편










최영자




몇 일째

구름 속을 걸은 햇님은 몹시 지쳤습니다.


"아, 쉬고 싶어 그리고 짜장면을 곱배기로 먹고 싶어
그래 마을 입구에 있는 정자나무에 가면 짜장면을 먹을 수 있지"
영차, 영차, 영차, .. .. ..


햇님은 구름 언덕을 넘어서 정자나무까지 왔어요.
정자나무는 농부들이 점심으로

짜장면을 시켜먹기도 하는 곳입니다.
오늘도 짜장면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햇님 오랜만입니다 아, 따뜻해"
"농부님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저도 짜장면이 먹고 싶습니다. 곱배기로 먹고 싶습니다."




304

“그래요. 햇님 것도 시켜드릴게요.”


30분 정도 지났어요.
부릉 부릉 부릉 노란 헬맷을 쓴 아저씨가
노란색철통에다가 짜장면을 가득 넣어서

오토바이에다 싣고 왔어요.

“흐음 맞있는 냄새”


모두가 둥그렇게 앉았습니다.
농부들은 젖가락으로 짜장면을 비빕니다.

햇님은
햇살로 짜장면을 비빕니다.


햇살에 감긴 짜장면 한 가락이 높이 올라갑니다.
작은 바람에도 반짝반짝거리는 정자나무의 잎잎을 지납니다.


“앗, 짜장면이다.”


새 한 마리가 짜장면을 향해 힘차게 날개짓을 해보지만
짜장면은 전선줄을 지났습니다.
높은 산도 지났습니다.

구름도 지났습니다.
버스보다 큰 비행기도 아슬아슬하게 지났습니다






305

드디어 짜장면이 햇님 입까지 왔습니다. 쭈욱 빨아드립니다.
후 르 륵 .... ... .

“아 맛있어.”

농부들도 기뻐합니다.

“햇님과 먹는 짜장면은 정말 맛이 좋아.”

입가에

짜장을 묻힌 햇님이
방긋 웃습니다.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배가 부른 햇님이 방긋 웃으니

농부들이
일하던 밭에서 새싹이 돋더니 키가 스윽 자랍니다.


꽃도 핍니다.
열매도 주렁.주렁 달립니다.


이 광경을 본 햇님의 기분이 더욱 좋아졌습니다.
햇님이
방긋방긋 웃을 때마다.


소도 송아지를 스윽 낳았습니다.

삽살개도 새끼를 스윽 낳았습니다.




306

월남에서 시집온 새댁이도 애기를 낳았습니다.
응애, 응애, 응애, ... ... .. .

농부들은 햇님이 방긋방긋 웃어주어
좋은 일이 일어난다며
기뻐합니다.


“우리 잔치를 하세 한바탕 신나게 놀아보세.”


꽹가리를 칩니다.
징를 칩니다.
장구도 칩니다.

모두가 춤을 덩실 덩실추며 노래를 부릅니다.


햇님도 노래하 듯
방긋방긋, 방긋 웃습니다.





















최영자
전북 무주 출생. 「신라문화제백일장」 대상으로 등단. 대구경북작가회의 회원



307

나무가 화가 났어요















어느 날

아침

눈을 비비면서

창밖을 바라보던 교림이는
깜짝
놀랐어요


구름 하나가 나무 위에서 서성이는데

마치 나무가
화난 거처럼 보였거든요


“왜? 화가 났을까?”

“엄마나무가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안 사줬나?”

“이불에 오줌 쌌다고 엄마나무가 때렸나?”
“테레비전 더 보고 싶은데 엄마 나무가 꺼버렸나?”




308

“나무야, 내가 좋아하는 분홍색 크레파스를 줄게”
“나무야, 예쁜 머리띠도 줄게”

“나무야, 아빠가 선물해준 빨간색 구두도 줄게”
으아앙....


엄마가 달려왔어요
“교림아 왜 울어?”
“나무가 화가 났어, 내가 달래도 화를 안풀어”


엄마는 나무를 이리저리 살펴봤어요.
지난밤에 어른들이 나무 밑에서 놀았는지 쓰레기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습니다.


“저런 나무가 화낼 만도 하네, 교림아 우리 나무 밑을 깨끗하게
청소해주자.”


엄마와 교림이는
장갑을 끼고
집게와 까만 봉지 몇 장을 들고 밖으로 나왔어요.


빈병을
봉지에 담았습니다.

꼭꼭 씹다가 버린
통닭의 뼈들은 집게로 집어

또 다른




309

봉지에 담았습니다.
휴지와 담배꽁초도

또 하나의
봉지에 담았습니다.

화가

풀렸는지
나무가 환하게 웃습니다.


햇살이 나무에게 놀러왔습니다.
나비도 훨훨
새도 친구들을 부르는듯 지지배배거립니다.


무당벌레가
부지런히 오고 있습니다.


영차 영차 영차
지렁이도
땀을
뻘뻘

흘리며 왔습니다.

분리수거함 통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는
엄마와 교림이의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310

불교적 문학관의 가능성










장영우





1.

‘언어도단(言語道斷)’, ‘불립문자(不立文字)’라는 성어가 말해주듯, 불
교에서는 언어를 부정한다. 물론 언어를 부정하는 듯한 태도를 취
하는 것은 불교뿐만이 아니다. 노자(老子)도 “도를 도라 설명하면 이

미 도가 아니다[道可道 非常道]”라 하여 언어를 불신한 것은 널리 알
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불교의 교리가 팔만대장경으로 결집되었고,
문도덕경분또한 5천여 자로 구성되었다는 것은 의사소통을 위해 언

어가 필요불가결한 조건이라는 점을 강력히 암시한다. 석가나 노
자는 언어가 사상(事象)의 본질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도

달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라는 점을 일깨운 것이다. “강을
건너 언덕에 오르면 뗏목을 버려라[捨筏登岸]”거나, “고기를 잡은 뒤
에는 그물을 잊어라[得魚忘筌]”는 구절은 ‘언어도단·불립문자’와 함께

불교의 언어관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성구다. 우리는 언어를 통
해 서로 소통하지만, 그 언어는 매우 불안정하고 자의적(恣意的)이어
서 일쑤 혼란을 야기한다. 현대 언어학자 소쉬르는 이를 ‘언어의 자

의성’이란 개념으로 설명하거니와, 불교에서는 올바른 깨달음을 얻
기 위해서는 언어를 버리고 오직 직관을 통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311

혜능(慧能)은 중국 남해 신주에서 태어나 글자를 배우지 못했음에
도 홍인(弘忍)으로부터 전법가사(傳法袈裟)를 받고 중국 선종 6조가

된다. 원래 홍인에게는 신수(神秀)라는 성실한 제자가 있었는데, 홍
인의 지시에 따라 신수와 혜능이 지은 시는 깨달음에 대한 두 사
람의 방법론적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身是菩提樹 몸은 깨달음의 나무요
心如明鏡臺 마음은 밝은 경대와 같으니
時時勤拂拭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勿使惹塵埃 티끌과 먼지가 묻지 않게 하리라.



신수는 아마도 시인 기질이 강했던 것같다. 그는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각각 ‘보리수’와 ‘명경대’로 비유하여 욕망에 물들지 않으려
용맹정진하는 자신의 노력을 스승에게 알리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
다. 그런데 그 시 구절을 전해들은 혜능은 “보리는 본래 없는 나

무며(나무가 아니며) 밝은 거울 또한 받침대가 아니다[菩提本無樹 明
鏡亦非臺]”고 신수의 게송을 비판한 뒤, “마음이 보리수며 육체가 밝

은 거울대”라는 정반대의 논리를 제기한다.


心是菩提樹 마음이 보리수요
身爲明鏡臺 몸은 명경대라
明鏡本淸淨 거울은 본래 맑고 깨끗하니
何處染塵埃 티끌과 먼지에 물들 데가 어디 있겠나.



신수는 육체는 보리수와 같이 튼튼하지만 마음이 거울처럼 흐려
질 것을 염려한 데 반해, 혜능은 마음이야말로 보리수처럼 굳건하





312

여 흔들리지 않으며, 육체는 밝은 거울을 받쳐주는 틀에 지나지
않으므로 거울이 먼지에 오염될 일은 없다고 말한다. 마음이 더러

워질 수 있다고 읊은 신수는 마음의 실체[自性]를 인정하고 그것이
몸’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에 반해 혜능은 마음과 몸이 본래 없
는 것[本來無一物]이므로 무엇에 물들 까닭이 없다고 갈파한 것이다.

신수는 ‘보리(깨달음)’과 ‘보리수’를 같은 것으로 착각했으며, ‘거
울’과 ‘받침[臺]’을 일체(一體)로 오해한 것인데, 이는 언어의 본질을
직관하지 못하고 외양에 집착하는 관습에 얽매여 있음을 뜻한다.

하지만 혜능은 ‘밝은 거울’이 오염되면 ‘명경’이라 불릴 수 없으므
로 먼지에 더럽혀질 까닭도 없다고 하여 신수의 고식적 사고를 비
판한 것이다. 신수와 혜능의 게송은 불교가 비록 언어를 부정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지만, 진리와 깨달음을 전달하는 데 언어가 얼마
나 중요한 수단인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불교에서는 우주 삼라만상의 구성 원리를 연기론(緣起論)으로 이
해한다. 불교의 연기론은 엄밀한 의미에서 서구의 인과론(因果論 ,
casual theory)과 다르다. 서구의 인과론이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기

계적이고 선조적(線條的)으로 이해한다면, 불교에서는 모든 사물이
실체성을 띤 것[常住]이 아니라 요소들의 결합[緣起]을 통해서만 존
5)
재하는 것으로 본다 . 그러나 용수(龍樹, Nagarjuna)는 자성(自性)을 인
6)
정하는 초기불교의 연기법을 비판하고 ‘팔불게(八不偈)’ 를 제시하
여 원인과 결과 사이의 상호의존성에 주목할 것을 주장한다.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솓작새는


5) 테오도르 체르바츠키 저, 권오민 역, 문소승불교개론분, 경서원, 1986, 152쪽.
6) “不生不滅 不常不斷 不一不異 不來不去.”


313

그렇게 울었나보다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서정주, 「국화옆에서」 부분


서정주의 잘 알려진 시 「국화옆에서」는 과학적 사고로는 설명이

안 되는 진술로 일관된다. 시적 화자에 따르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에 소쩍새가 울고 여름에 천둥이 쳤다는 것인데, 소쩍새
울음과 천둥이 국화의 개화와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지 과학적으로

전혀 설명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이 시의 논리대로라면 국화의 개
화의 직접적 원인이 소쩍새 울음과 천둥이어야 하지만, 이를 과학

적으로 입증할 방법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한국인은
이 시에 대해 별다른 거부감이나 의아심을 갖지 않는다. 그것은
소쩍새와 천둥의 울음이 국화꽃이 피기 위한 유일하고 절대적인

조건(원인)은 아니더라도 수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일 수 있으며,
한 송이의 꽃을 피우는데도 여러 가지 시련과 고난이 뒤따르고 오
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라는 점을 잘 이

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원인은 고정된 하나의
‘이것’이 아니라 ‘이것’이 다른 ‘저것’과 만나 무엇인가를 만들어내
는 결합들, 즉 원인은 기원이라는 고정된 시점이 아니라 결과와의

관계에서 변용(affection)되는 과정이며, 결과와의 관계에서 만들어지
7)
는 차이의 공간 이라는 논리가 성립한다. 그러므로 동일한 원인이


7) 오현숙, 「들뢰즈와 불교의 관계론 : 비/관계의 접속」, 문동서비교문학저널분제14호,
2006, 봄여름, 81쪽.


314

주어지더라도 그 과정과 결과가 같을 수 없고, 그 역도 마찬가지
다. 실제로 엄밀하게 계산된 조건과 특정한 환경에 따라 이루어지

는 실험이나 기계적 결합을 제외하고는 현실세계에서 동일한 원인
과 결과가 발생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국화 한 송이가 개화하는
데도 씨앗을 뿌려 물을 주는 것에서 시작하여 여러 보살핌과 조건

이 뒤따라야 하지만 시적 화자에겐 어느 봄날 밤을 꼬박 새우며
들었던 소쩍새 울음소리와 여름 장마철 천지를 뒤흔들었던 요란한
천둥소리가 유난히 기억에 남았던 모양이다. 소쩍새 울음소리와

천둥은 국화를 피우기 위한 외적 원인(遠因), 즉 연(緣)에 해당하므로
이 시의 발상은 불교의 연기론에 입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국화
가 피기 위해서는 봄여름이란 시간 속에서 소쩍새와 천둥이 우는

것 같은 수많은 조건이 맞아야 하지만, 그것만으로 국화꽃이 피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사건은 수많은 원인과 결과의 긴밀한 상호작

용에 의해 발생하지만, 그 원인과 결과는 불변하는 실체가 아니다.
이런 점에서 불교 연기론의 핵심은 상호의존성에 있으며, 그것도
선행하는 시간이 후행하는 사건의 영향을 받는 이시적(異時的) 상호

8)
의존성에서 찾을 수 있다 . 이는 원인이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기계론적 결정론에서 벗어나 결과를 통해 원인을 밝히고 원인과
결과의 의미를 재구성한다는 것을 뜻한다. 원인은 자성이 없으므

로 고정될 수 없고 결과와의 관계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이다.
화엄에서 ‘상즉상입(相卽相入)’의 상입은 두 개의 거울이 마주 비추

는 것과 같고, 상즉은 파도가 서로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相入則如二
鏡互照 相卽則波水相收)]고 비유적으로 설명된다. 두 개의 거울을 마주
세운 뒤 가운데 촛불 하나를 켜놓으면 하나의 상이 무한 반복[一卽

8) 한자경, 문유식무경 : 유식불교에서의 인식과 존재분, 예문서원, 2000, 152쪽.
진은영, 「나가르주나와 니체」, 문시와 세계분18, 2007. 6. 183쪽.


315

多]하여 전체가 환해지고, 파도는 시간의 차이에 따라 계속 생겨나
밀려들지만 각각의 파도가 물[多卽一]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처럼 어떤 결과에 대한 원인이 하나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여럿
일 수 있고, 여러 원인에 의해 어떤 결과가 비롯되지만 내게 가장
생생하고 감동적인 원인은 하나밖에 기억되지 않는다.



2.
한국문학에서 가장 빈번하게 차용된 불교적 세계관은 연기론과

윤회설이다. 이것은 삼국시대 이후 한국문학의 가장 중요한 모티
프 또는 주제로 활용되어왔고, 현대문학에서도 다소 세속화되고
변형된 양태로 문학적 상상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가운데

연기론은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기 때문
에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

기 때문에 저것이 멸한다[此有故彼有 此起故彼起 此無故彼無 此滅故彼滅 문雜
阿含분)고 하여, 우주 삼라만상의 존재와 소멸의 원리를 설명하는 논
리다. 이것과 저것은 서로 완전한 독립체가 아니라 상호의존적 관

계에 의해 생겨난 존재다. 그러므로 이 세상 모든 것은 영원불멸
한 고정적 실체나 독립적 실체가 있을 수 없다. 자아가 고정적이
고 독립적인 실체가 아니라는 생각은 주객의 절대적 평등 관계를

전제로 한다. 연기론은 서구 근대의 기계론적 인과론과 달리 사물
9)
들의 인과관계가 순환적이고 비선형적인 관계 를 이루며, 모든 존
재가 대등하다고 보는 동체대비적 윤리관으로 이 세계를 분리된

부분들의 집합체가 아니라 하나의 통합된 전체로 보는 ‘전일적 세
계관(holistic worldview)’을 지향한다.

9) 최종석, 「생태불교의 필요성과 가능성」, 문불교생태학 그 오늘과 내일분, 동국대 불교
문화연구원, 2003, 57쪽.


316

자연과 인간을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전체로 파악하는 ‘전일적
세계관’은 외부 세계를 주체의 고정된 시각으로 바라보는 관습에

서 벗어나 주체와 객체가 서로 위치를 바꾸는 복수적, 상호적 관
점에서 사물의 본질을 추구하는 태도를 지향한다. 그것은 고정된
관점에서 사물을 밖에서 바라보는 서구의 원근법(perspective)과 달

리 ‘다원적 시점’·‘움직이는 시점’ 또는 ‘복판에 내재하는 시점’ 10)
으로 사물의 내부에서 바라보는 방법론을 뜻한다. 이처럼 사물의
내부에서 바라보는 시점은 사물의 ‘깊이’, 다시 말해서 “사물과 나

11)
사이에 있는 끊을 수 없는 연결” 을 파악하여 사물을 입체적이고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우리가 사물을 응시하고 그
본질을 파악하려 할 때 사물의 내면과 깊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

것은 다만 사물의 형태와 색깔을 관습적으로 지각하는 행동에 지
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사물을 거울에 비추거나 화면에 정확히

모사(模寫)한 것과 같아 특별한 느낌이나 정조를 유발하지 못하며,
사물의 본질이나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물의 본질이나 사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근

본적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외양에 현혹되거나 그것과
자아를 분별하지 않는 태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불교에서
는 ‘회광반조(回光返照)’ 또는 ‘벽관(壁觀)’이라 칭한다. ‘회광반조’를 축

자적으로 풀이하면 “빛을 되돌려 거꾸로 비춘다”란 뜻이 되는데,
이는 사물의 외관을 볼 것이 아니라 자아의 내면에 침잠하여 반성
하면 자아의 본성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벽관’은

실체적 사물로서의 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내면을 반영


10) , 「풍경과 선험적 구성」, 문풍경과 마음분, 생각의나무, 2003, 78쪽.
11) 메를로 퐁티, 문지각의 현상학 Phenomenologie de la Perception분, 김우창, 위의
책, 101쪽에서 재인용.


317

하고 있는 벽을 통해 나를 들여다보는 행위를 가리킨다. 거울을
바라보는 사람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본래의 자기라고 생

각하지 않는다. 거울을 바라보는 자아와 거울에 비친 영상은 주체
와 대상으로 분리되어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벽관을 통해 자
신의 내부를 응시하게 되면 주체와 대상의 구별이 없어지며 그 관

12)
계가 역전되고, 주체와 대상이 결국 하나가 되는 ‘회광반조’를
체험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연기론’과 ‘벽관·회광반조’는 주체와 객체를

상호의존적이고 분리불가능한 존재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각각의 사물이 개별적이고 상호 대립하거나
배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로 유기적으로 어울려 조화

와 통일을 이루는 미학적 이론으로 전유될 수 있다. 다시 말하여
불교의 ‘연기론’과 ‘벽관’은 세계와 자아를 인식하는 틀로 기능할

뿐만 아니라, 문학 작품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방법론으로 기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비근한 예로, 한편의 문학 작품에 재현되는
세계는 오로지 세부의 구체적 묘사와 서술에 의존하기보다 작품의

전체적 구성이나 구조와의 관련에 따라 이루어진다. 따라서 작품
속의 세부적 사건이나 사물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품 전체의 내용, 더 나아가 그 작가의 작품 전체와의 상호연관

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수다한 문학이론은
저마다의 장점과 개성을 가지고 작품의 숨겨진 의미를 드러내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한다. 그러나 시대와 환경에 따라 인간의 사고

가 변하고, 그들이 읽고 해석하는 작품(텍스트)의 의미도 새로워져
어떤 점에서 문학(비평)은 “단절, 소외, 심지어 반(反) 의사소통의



12) 장영우, 「불교와 현대소설의 관련양상」, 문거울과 벽분, 천년의시작, 2007, 392쪽.


318

13)
양상” 을 띠기도 한다. 문학을 읽고 해석하는 행위는 그것과의
대화를 통해 인간과 삶의 진실을 발견하고자 하는 노력과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작품을 단순한 객관적 텍스트로만 볼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작가와 작품, 독자와 작가(작품)의 체험과 사유를
매개하고 연결하면서 작품의 의미와 독자의 판단이 화합할 수 있

는 지점을 찾아야 한다. 이때 아무 것도 반영하지 않는 벽(壁)을 보
고 자아성찰을 시도한 달마의 ‘벽관’이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
습을 그대로 볼 것이 아니라 거울 속의 나로 하여금 거울 밖의 나

를 성찰하게 하는 ‘회광반조’는 작품을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유효한 방법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정찬의 소설 「숨겨진 존재」는 달마의 ‘벽관’에 가탁하여 자신의

소설관을 드러낸 작품으로 지금까지 살핀 시론(試論)에 대한 적절한
사례가 될 만하다. 이 소설의 화자는 우연한 기회에 설악산에서

기이한 정신적 체험을 한 뒤 달마의 벽관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
그는 가을 설악산의 깊은 골짜기에서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이제까
지 자신을 가두고 있던 욕망의 고통이 사라지면서 문득 자신을 내

려다보고 있는 어떤 존재를 느낀다. 논리적 설명이 불가능한 그 짧
고도 황홀한 순간적 경험을 화자는 “초월적 존재에 대한 어렴풋한
느낌”으로만 이해하던 중 달마의 벽관을 알게 되면서 그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기에 이른다. 달마의 벽관은 그가 평생 추구해 온
소설과 깊은 연관성이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
14)


신은 피조물을 내려다본다. 나는 신으로서 나의 피조물인 작품을 내
려다본다. 달마는 벽을 보고 있다. 그에게 벽은 궁극의 존재다. 소설가

13) 정명환, 「철학과 문학적 진실」, 문문학과 철학의 만남분, 민음사, 2000, 67쪽.
14) 장영우, 앞의 책, 391쪽.


319

에게 궁극의 존재는 무엇일까? 소설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누구에
의해서도 씌어진 적이 없는 완전한 소설이다. 달마가 벽을 응시하듯 나
는 완전한 소설을 응시한다. 달마가 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벽이 달마를
보듯, 내가 소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소설이 나를 보고 있다. 달마의 벽
관에 대응하는 소설가는 더 이상 신이 아니다. 오히려 소설이 신이 되어
소설가를 내려다본다. 15)


작가가 작품을 쓰는 행위를 신의 창조와 동일한 것으로 여기는

관습은 서구 문학의 오랜 전통이다. 그런데 이 소설의 화자는 그
러한 관습에서 벗어나 자신이 창작한 작품을 신의 위치에 놓고 작
가의 태도를 성찰한다. 그것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거꾸로 자신을

되비춰보는 행위, 다시 말해 자아비평 혹은 자기성찰의 행위에 다
름 아니다. 창작자의 권위를 버리고 작품을 순객관적으로 응시하

는 태도는 그 작품에 대한 절대적 확신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
러한 행위에는 작품을 통해 무언가를 얻으려거나 누리려는 일체의
욕망이 배제되어 있다. 이 소설의 화자가 달마 그리는 사내를 만나

‘무소구행(無所求行)’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은 작품과 관련된 온갖
집착과 욕망을 버리고 오로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진력하
자는 각오로 예술의 무상성(無償性)을 강조하는 예술지상주의자의

태도를 연상시킨다. 작가에게 작품은 자신을 비춰주는 ‘거울’이지
만, 정찬은 그것을 ‘벽(壁)’으로 인식하고 엄정한 독자의 관점에서
자신의 창작행위에 세속적 욕망과 거짓이 개입되지 않았는지 반성

한다. 이처럼 ‘작가-작품-독자’의 관계를 대등한 입장에서 바라보
고 작품에 반영된 작가의 의도와 의도하지 않았지만 작품에 내재

된 의미 등을 통해 작품의 본질에 다가가고 작가를 보다 깊이 이


15) 정 찬, 「숨겨진 존재」, 문베니스에서 죽다분, 문학과지성사, 2003, p.267.


320

해하려는 것이 ‘벽관의 소설학’이다.



3.
「환각의 나비」 16) 는 치매기가 있어 실종된 노모를 찾는 대학여
교수와 사춘기 무렵 성폭행을 당한 뒤 신기(神氣)가 있어 무녀노릇

을 하다 승려가 된 비구니 등 두 여성의 시점으로 서술된 작품이
다. 이 소설은 전지적 서술자에 의해 서서가 진행되지만, 부분적으
로는 몇몇 초점화자의 시선과 심리 묘사로 서술된다. 그 가운데

‘영주’는 이 소설의 핵심서사를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초점화자로
실종된 노모와 관련된 가족사는 전적으로 그녀의 기억과 분석으로
재구성된다. 그러므로 이 소설을 해독하는 일반적이고 관습적인 방

법은 ‘영주’의 진술에 따라 작중인물의 행동과 심리를 분석하고,
전후 사건의 인과관계와 함축적 의미를 해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반적 독법에 따르면, 이 소설은 “겉멋과 정욕의 대비라는 테마
17)
의 변주” , 또는 “가족이 이끌리는 대로 살아온 ‘어머니’ 또는 여
성의 삶” 을 그린 작품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이 소설을 치매환
18)
자로 치부되는 ‘영주’의 노모 또는 천덕꾸러기 ‘자연스님’의 시각에
서 보면 얘기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이 소설은 “그 집에는 느낌이 있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어

어머니가 실종된 지 반년이 가까운 어느 날 ‘영주’가 우연히 서울 근
교의 외딴집에 갔다가 어머니를 발견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 집
은 육이오 때 집주인이 부역한 일로 가족이 거의 몰살당한 뒤 ‘흉


16) 박완서, 「환각의 나비」, 문그 여자네 집분, 문학동네, 2006. 본문에서의 작품 인용은
괄호 안에 쪽수만 밝힘.
17) 박혜경, 「겉멋과 정욕」, 문그 여자네 집분해설, 324쪽.
18) 전흥남, 「박완서 노년소설의 시학과 문학적 함의(Ⅱ)」, 문국어문학분제49집, 국어문
학회, 2010. 8, 120쪽.


321

가’ 취급을 받다가 용케 살아남은 집주인의 동생이 이십 년 만에
돌아와 선원(禪院) 간판을 달고 거주하면서 집의 소유주와 용도가

바뀐다. 도사로 불리던 집주인 동생은 열네살 마금이를 겁탈한 댓
가로 집을 넘기고, 예전부터 신기가 있던 마금이는 엄마의 조종에
의해 처녀점쟁이로 성장한다. 그에 따라 집 주변 상황도 급변하는

데, 땅 임자와 집장수가 지은 슬래브집 때문에 ‘양옥집 동네’라 불
리다 위성도시가 들어서자 ‘원주민 동네’로 이름이 바뀐다. “양옥
집 동네가 원주민 동네가 되는 데는 삼십 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는 전지적 서술자의 진술은 신속한 우리나라의 산업화‧도시화 과
정을 요약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육이오 이후 ‘흉가’로 버려졌던
집이 ‘천개사 포교원’으로 변화하는 과정과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

들의 삶의 굴곡은 한국 현대사의 궤적에 대한 은유로 읽을 수 있
다. 그리고 그것은 두 딸과 유복자를 데리고 하숙을 치면서 험난

한 세월을 살아온 한 여성이 방안에 갇힌 채 거울 속의 자신도 알
아보지 못하는 치매환자로 전락하는 과정과 겹쳐진다. 노모가 거
울 속의 제 모습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치매환자의 전형적 증상

가운데 하나이면서 라깡이 말한 ‘거울단계’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다시 말해 그녀는 세월의 속도와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퇴행
(regression)하는 노년 세대를 상징한다. 또한 ‘영탁’의 아내가 시어

머니를 방안에 가두고 자물쇠를 채우는 장면이나 그를 나무라는
‘영주’를 “유리알처럼 정 없이 빠안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대목에
서 어쩔 수 없이 ‘판옵티콘(panopticon)’의 간수(看守)를 떠올리게 된

다. 그곳에서 노인이 ‘섬’처럼 고립되고 할 일 없는 무기력한 존재
로 소외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자식들에게 ‘엄마’

였던 시절의 그녀는 자식과 사회를 매개하는 ‘길목’이거나 ‘지름




322

길’이었지만, 며느리의 철저한 감시를 받는 현재는 귀찮은 치매 환
자일 뿐이다.

자식들의 애물단지로 전락한 노모가 입버릇처럼 되뇌는 ‘과천’
은 종암동 하숙집 시대를 정리한 뒤 처음 살았던 아파트 동네다.
그곳에서 노모는 집 앞 마당에서 청계산, 관악산으로 활동영역을

넓히며 활기차게 돌아다녀 “도시물만 먹은 이웃 노인들이 줄줄이
어머니를 추종”했다. 요컨대, 그녀는 자식은 물론 주변사람마저 자
신의 품에 넣어야 만족하는 ‘어미닭’ 같은 존재다. 그녀가 건망증

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나이탓이라기 보다 둔촌동으로 이사한
뒤 더 이상 ‘어미닭’처럼 당당할 수 없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것
은 노모가 첫 가출에서 돌아온 뒤 외손녀가 그녀의 품에 뛰어들어

울음을 터뜨리자 평상심을 찾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영주는 낳기만 했지 아이들은 순전히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노인에
겐 그 어렵고도 장한 일을 한 이의 특권이랄까, 침범할 수 없는 당당함
이 있었고, 아이들하고의 자연스러움은 거의 동물적이었다. 여북해야 셋
이서 그렇게 정답게 굴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영주는 어머니의 붉고도
부드러운 혀가 아이들을 핥고 있는 것처럼, 세 몸뚱이 사이를 따습고 몽
실몽실한 털이 감싸고 있는 것처럼 느끼곤 했을까(58쪽).


‘품안의 자식’이란 말처럼 장성하고 사회적으로 출세한 자식에
게 어머니는 다만 보호해야 할 귀찮은 ‘노인’일 뿐이다. 평생 어머

니의 동지로 집안을 보살펴 온 ‘영주’는 노모를 누구보다 잘 이해
한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노모가 빨래를 다림질해놓은 것처럼 반

듯하게 개는 것을 보고 기뻐하지만, 그녀의 효성은 다만 관념일
뿐이다. 그것은 그녀가 허난설헌의 시작품과 생애에 감동하여 연




323

구를 시작했지만, 정작 얻은 것은 “난설헌을 그럴듯하게 본뜬 수
많은 제웅을 무자비하게 난도질한 무더기의 검부러기와 학위”라는

대목에 상징적으로 내재되어 있다. 노모의 유복자이자 집안의 유
일한 장남인 ‘영탁’은 노모를 모시라는 ‘영주’의 부탁에 노인네를 모
시는 것은 여자이므로 아내와의 의논이 필요하다고 냉정하게 말한

다. 그의 말은 전적으로 타당한 듯하지만, “붉고도 부드러운 혀”나
“몽실몽실한 털”로 서로 핥고 감싸는 부모 자식 간의 뜨겁고 끈적
한 정은 찾을 수 없다. “그들이 모시고자 한 것은 어머니가 아니

라, 아들이 있는데도 딸네에 의탁하거나 거기서 죽는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치욕이라는, 관념”이란 서술자의 진술이 이 작품
의 핵심을 관통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영주’ 남매의 어머니가 ‘어미닭’과 같은 전통적 어머니상의 전
형이라면, ‘자연스님(마금이)’의 생모 ‘마금네’는 자식을 낳기만 했

을 뿐 엄마로서의 보호자 역할은 전혀 하지 않고 자식의 상처와
희생을 통해 제 욕망만 채우는 이기적인 어미상(像)을 대표한다. 어
려서 예지적 능력을 보여주었던 ‘마금이’는 열네살에 성폭행을 당

한 뒤 타인의 생각을 감지하는 힘이 더욱 강해져 처녀 무당으로
성장하는데,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이 모두 욕망의 화신인 것에
절망한다. 그녀는 자신의 생모를 대하면서 “아이를 낳아본 적은

없지만 어머니를 보면 어머니는 저런 것은 아닐 것 같은 생각”이
들 때 가장 괴롭고, 그것을 부처님도 동의한다고 느끼면서 출가한
다. 대부분의 출가가 그렇듯이 그녀 또한 이제까지 인연을 맺어온

모든 사람들과의 결별을 뜻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사월 초파일
행사를 마치고 찾아든 한 노파와 새로운 인연을 맺는다. 시끌벅적

한 사월 초파일 행사를 치른 뒤의 절은 말 그대로 절간답게 고요




324

하고, 먹을 게 없어 뒤란에 아무렇게 자란 푸성귀로 요기를 하려
는 ‘자연스님’ 앞에 나타난 노파는 천연덕스럽게 아욱을 다듬고 쌀

을 씻어 밥과 국을 짓는다. 남의 생각을 잘 짚어내 용한 무당으로
인정받았던 ‘자연스님’은 노파의 정체를 알아내려 애쓰지만 아무
것도 알아내지 못한다. 그녀가 노파에게서 생전 처음 즐거움을 느

끼는 것은, 그녀에게서 배고픈 자식에게 맛있는 밥을 지어 먹이려
는 무욕(無慾)한 ‘어미’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부모는
물론 타인에게서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자연스님’에게 구미 당

길 음식을 해먹여야 한다고 시장에서 반찬거리를 사는 어머니일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노파는 바람난 과부 얘기를 통해들려주며,
세상에는 이런 어미도 저런 어미도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준다. ‘자

연스님’을 그 얘기를 슬프지만 현실로 받아들여 몸과 마음이 푹
놓이는 숙면에 빠져든다. ‘영주’의 노모는 평생 자식 뒷바라지를

하다 할 일을 잃었으나 어미로부터 어떤 보호나 따뜻한 배려도 받
지 못하고 성장한 ‘마금이’를 만나 자연스럽게 어미의 본능을 되찾
는다. 그녀는 의학적으로 치매환자로 분류되고 일상적 차원에서도

약간의 노망기가 있는 노인으로 치부되지만, 생득적이면서 평생의
삶을 통해 체화된 그녀의 모성은 여전히 젊고 싱싱하다. ‘자연스
님’과 그녀가 그토록 손쉽게 화합할 수 있었던 것은 모성에 굶주

린 ‘자연스님’과 어머니 역할 상실에 존재감을 잃고 방황했던 노모
의 욕망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노모를 찾기 위해 서울 근교를 헤매던 ‘영주’가 옛날 하숙 치던

종암동 집 분위기가 나는 곳에서 어머니의 스웨터를 발견하는 장
면은 다소 작위적인 느낌이 강하지만 소설의 결말로서는 필연적인

구성이다. 승복 입은 두 여인이 연등 밑에서 도란도란 더덕 껍질




325

을 벗기고 있는 광경 묘사 또한 노모가 실종된 지 반년이 가깝다
는 서술자의 진술과 잘 맞지 않는다. ‘영주’가 천개사 포교원에 발

길이 닿은 시기가 “어머니가 집 나간 지 반년을 바라보”는 “초여
름”이란 진술은 음력 사월초파일을 지난 현재의 시점과 크게 어긋
나지 않는다. 앞서 보았듯, 노모가 천개사 포교원을 찾아 ‘자연스

님’과 함께 살기 시작한 날은 사월초파일이다. 그렇다면 ‘영주’의
노모는 적어도 4, 5개월 동안 이곳저곳을 헤매다 사월초파일에 천
개사 포교원에 닿은 셈인데, 그간의 행적에 대해 서술자는 일체

언급이 없다. 하지만 이 소설의 마지막 대목은 이런 사소한 불일
치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감동적이다.



더할 나위 없이 화해로운 분위기가 아지랑이처럼 두 여인 둘레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몸집에 비해 큰 승복 때문에 그런지 어머니의 조그
만 몸은 날개를 접고 쉬고 있는 큰 나비처럼 보였다. 아니아니 헐렁한
승복 때문만이 아니었다. 살아온 무게나 잔재를 완전히 털어버린 그 가
벼움, 그 자유로움 때문이었다. 여지껏 누가 어머니를 그렇게 자유롭고
행복하게 해드린 적이 있었을까. 칠십을 훨씬 넘긴 노인이 저렇게 삶의
때가 안 낀 천진덩어리일 수가 있다니!
암만해도 저건 현실이 아니야. 환상을 보고 있는 거야. 영주는 그래서
어머니를 지척에 두고도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그녀가 딛고
서 있는 곳은 현실이었으니까. 현실과 환상 사이는 아무리 지척이라도 아
무리 서로 투명해도 절대로 넘을 수 없는 별개의 세계니까.(94∼5쪽)


‘영주’에게 현실의 어머니는 치매기 있는 노인일 뿐이므로 낯선

장소에서 발견한 “삶의 때가 안 낀 천진덩어리”의 노모가 환상으
로 여겨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영주’가 발딛고 서 있는
곳이 현실이라면, ‘자연스님’과 조손(祖孫) 혹은 모녀처럼 다정스럽




326

게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도 그녀들에겐 엄연한 현실이다. 누군가
에게 현실이 타자에겐 환상이 될 수 있고 그 역도 성립하는 게 바

로 인간사다. 이를테면 걸인에게 왕자의 삶은 환상일 수밖에 없고,
그 역 또한 마찬가지다. 다만 아름다운 환상과 끔찍한 환상의 차
이가 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완강하게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구

획짓는 ‘영주’에게 어머니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녀
는 누구보다 어머니를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해왔지만 실제로 어머
니를 이해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늙고 병들어도 모성을 포기하지

않는, 돌보아야 할 어린 자식이 있으면 없던 힘도 나는 그런 존재
다. ‘영주’ 남매는 효성이란 관념에 갇혀 어머니를 안전히 보호하
려고 하지만, 그것이 어머니에게 감옥과 같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

는다. 어머니는 늙고 병들었어도 가정과 자식을 원망하거나 버리
지 않는다. 자식이 자신을 귀찮아하면 그들을 떠나 부모에게 버림

받아 외로운 아이를 사랑으로 키운다. 어머니의 자연스럽고 당연
한 역할을 ‘현실’이 아닌 ‘환상’으로 여기는 것은 자식들의 이기심
이다. 어머니가 강하고 아름다운 것은 자식을 돌볼 때이고, 자식을

품에 안고 있는 어머니는 어떤 세속적 욕망도 깃들지 않는 순진무
구 그 자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엄마는 엄마다”라는 자명
한 진실을 전하려는 노인세대의 사자후다.

(*편집자 주-이 글은 「유심」에 발표한 것을 필자의 동의를 얻어 재수록한 것입니다.)










장영우
문학평론가, 동국대학교 국문문창과 교수



327

해방공간 대구지역 신문에 난 연극비평ㆍ영화비평 사례










박창원





1. 활발한 연극‧영화 비평



1945년 8월 15일, 일제강점기로부터의 해방은 조선반도 전체가
자주적 민족국가를 향한 희망의 출발점이 되었다. 희망의 핵심 키

워드는 민족정기 수립과 일제잔재 청산으로 모아졌다. 대구를 포
함한 조선의 문화인들도 이 명제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이들은 조
선의 역사성을 회복하기 위한 매개체로 연극이나 영화에 주목 하

였다.
당시의 높은 문맹률로 인해 인쇄매체의 혜택은 문자를 읽고 이

해할 수 있는 일부계층만이 누렸다. 말하자면 영화와 연극 같은
시청각 매체에 대한 관심이 높을 수 밖에 없는 요인을 안고 있었
다. 하지만 해방 후에도 연극‧영화의 상연이나 상영을 통해 민족의

정체성을 세우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연극‧영화
에 대한 격려와 문제제기, 방향성 등이 공론의 장에서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신문을 통한 비평이다.

해방공간 대구에서는 민성일보를 시작으로 여러 신문들이 잇따
라 창간했다. 지역 신문에는 연극․영화운동을 지켜본 적지 않은 인




328

사들이 극평이나 ․영화비평 등을 남겼다. 그러나 신문이 제대로 보
관, 관리되지 못한 관계로 해방공간에 생산된 극평ㆍ영화비평을 온

전히 수습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서는 영남일보와 대구시보, 부녀일보에 게재된 극평․영화비
평 몇 편을 살펴본다. 19) 이 글들은 연극ㆍ영화에 대해 비평을 하

고 있다는 비평자 인식을 비교적 분명히 드러낸 글들이다. 해방직
후부터 햇수별로 다른 비평을 선택한 것은 시대적 상황의 단초를
파악할 수도 있겠다는 의미 때문이다.

비록 몇 편에 불과하지만 연극ㆍ영화의 비평 분위가 한결같다는
것은 건국 도상에 있는 당시의 시대적인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다.
이를테면 연극․영화에 거는 기대나 어려운 환경을 헤쳐 나가야 할

연극․영화인의 사명, 그리고 학생극운동에 거는 기대 등이다.
해방공간 대구지역신문에 난 연극․영화비평을 살펴보는 것은 대

구경북문화운동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는 대구경북
연극‧영화의 뿌리를 찾아가는 작업이기도 하다. 게다가 해방공간
연극‧영화 같은 문화 활동에 대한 지역신문의 관심과 시각도 덤으

로 확인할 수 있다.

















19) 표기는 가능한 읽기 쉽도록 고쳤으며 용어인용 등 일부는 원문을 그대로 따랐다.
판독곤란은 〇로 표시했다.


329

2. 연극 및 영화비평 사례



<해방공간 대구지역 신문에 게재된 연극비평․영화비평 사례>

제목 비평자 주제 신문게재

영남일보
극연을 보고 K기자 연극의 대중성
1945년 12월 14일
영남일보
연극계의 전망 안영일 국가건설과 연극
1946년 1월 5일
영화연극소고 일직업여성 미국영화의 독점 부녀일보
학생예술발흥찬① 1947년 5월 25일

영화연극소고 일직업여성 대구의 학생극 부녀일보
학생예술발흥찬③ 1947년 5월 28일


대구시보
영화비평에 관한 문제① 최성각 언론의 영화비평
1948년 2월 17일
대구시보
영화비평에 관한 문제③ 최성각 영화 비평태도
1948년 2월 19일



(1) ‘극연(劇硏)을 보고’ 20)



연극을 통하여 향토문화를 건설코자 창립한 대구연극동
호인회가 오래 동안 학리적으로 혹은 실제 연기로서 그 기

능을 발휘하여 오든 바 지난 육일 부인동지회 주최인 전재
민구제금 모집공연에 찬조 출연하여 일반에 공개하였는데
그 각본은 독일의 각본인 만큼 「스토-리」가 일반에는 이해



20) K기자 (영남일보 1945년 12월 14일자)


330

못 할 점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연기자들이 열성에 넘치는
남 어지 그 「재스추아」가 굳어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

였는 것은 실로 유감이다 그르나 회 전원이 연극에는 문외
한 이었고 더구나 대구지방으로 보아서는 중류이상의 가정
에서 훈육 받은 자제들이 영리를 목적 삼지 않고, 극히 양

심적으로 극의 연구에 노력하는 그 성의를 보아서는 종래
의 극평과는 어느 정도 각도를 가려서 보아야 할 것이다.
즉 연기에 있어서 아직 초보이며 무대장치와 조명에 있어

서도 차후의 O배 연구가 필요하고 문외한이라는 「핸듸캽」
을 관중에 요청치 말고 스스로 경역을 능가할 만치 노력
분투하여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 차후에는 그 공연기회를

많이 만들어서 될 수 있는 대로 일반의 참된 비평을 자영
제로 굳게굳게 생장하여야 할 것 이는 각본에 있어서도 처

음부터 고항한 극만을 할 것이 아니라 평범한 연제 아래
그의 연기를 연마하여야 대중을 시야 넘지 않는 문화운동
이란 단연코 없다는 것도 자각하여 언제까지나 오늘의 열

성을 잊지 말고 노력하기 원하여 마지않는다.


(2) ‘연극계의 전망’ 21)


우리의 자주독립과 진보적 민주주의 국가 건설을 위한
민족통일전선기본노선인 문화운동도 감격과 흥분과 혼돈

속에서 해방 제1년을 보냈다 새해에는 현재 전 연극인의
단일 지도처인 조선연극동맹이 건설된 오늘 당면 임무는 첫



21) 안영일 (영남일보 1946년 1월 5일)


331

째 일본제국주의의 잔재를 소탕하는 데 있다 그것은 국민
연극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연극인의 황민화라는 일본제국주

의의 문화정책이 우리말에 대한 억압 일본연극 강제상연
그러한 야만적 방법으로 우리의 연극을 말살 파괴하려고
노력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전 문화영역에 있어서 가장 많

이 굴욕적인 탄압을 받은 것도 연극운동이었고 가장 많이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연극운동은 일본제국주의적 색
채로 가장 많이 물들여졌고 침윤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

러므로 우리는 진보적 연극을 건설하는 마당에서 일본 제
국주의적 잔재 청소라는 과제가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가
장 큰 투쟁 대상의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우리 문화연극에 해방
이라는 것이 곧 민족주의적 국수적 소세계로 일탈할 위험

성이 있고 그것은 또한 봉건주의 잔재와 야합할 경향이 있
음으로 우리는 또 하나 국수주의적 경향과 싸울 것을 용의
(‘준비’의 뜻)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진실로 착종한 조선

적인 현실 다시 말하면 조선과 전 인민이 요망하고 있는
진보적인 조선연극의 건설을 위한 진지한 창작희곡의 생산
을 꾀하여야 할 것이다 그것은 비단 기성작가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진실로 노동자 농민 속에서 일어나는 「프로레
타리아」 작가의 배출을 기대하여야 할 것이고 그것을 위하
여 우리들은 성실한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중략)



(3) ‘영화연극소고’

22)
=학생예술발흥찬①



332

황혼의 거리는 분주하다! 찰나적인 희열과 안가한 흥미를
얻고자 극장으로 몰려드는 신사숙녀! 특히 젊은이들! 이것

은 과도기에 해메이는 장차 이 땅의 기둥이 될 청년들이라
면 모름지기 냉철한 자기비판으로 이 심각한 조선의 현도
정의 사명을 안전에 두어 맹성하여 보라-

▽미국 9대 영화의 배급처인 서울 중앙영화사(미국인 경
영)와의 그 최초 외국상품독점기도(도?)의 계약과 조건이
현 조선 경제로 보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음을 깨달아 한

마디로 물리치고 싸워오던 남조선 각 극장에서는 어이된
일인지? 재협정으로 다시 미국영화를 내놓게 되리라함은
신문 등으로 세인이 다 주지하는 바이거니와 우리는 결코

미국영화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열한 현 조선
영화의 발전을 위하여서는 환영하여 마지않는다. 그러나 우

리는 어디까지나 자주적 견지에서 민족문화의 향상을 위하
여 싸워야 할 것이지 본말을 전도하여서는 아니 될 것이
아닐까? 저열하고 OOO인 외국영화의 독점으로 인하여 우

리 민족 연극과 영화의 발전이 저지된다면 더구나 민주과
업을 수행코자 실로 피투성이 노력을 아껴서는 안 될 일
때 이러한 예술모독의 모리적 현실은 절대로 용납 못할 바

이며 또 논의조차 유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된다(계속)


(4) ‘영화연극소고’

= 학생예술발흥찬③ 23)


22) 일직업여성 (부녀일보 1947년 5월 25일)
23) 일직업여성 (부녀일보 1947년 5월 28일)


333

결국 이러한 일어 자막을 좋아하는 문화수준이 낮은 일
부 대중의 불만이 어떠한 결과를 준다는 것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탁상의 일용편람격의 제공에게도 일고를 권하와 먼
저 중배 등 사계의 당사자들은 지금까지의 과오를 숙청하
여 진실로 근로인민이 희구하는 건설적인 민주영화와 민족

연극으로 보잘 것 없는 무대나마 조선 각지 극장에 내어놓
기를 초급히 앙망하는 바이다.
▽…그리고 극장 내의 관중의 태도란 극히 한심하다 피

우지 말라는 담배도 위생과 상영을 방해하고 특히 여성의
기분을 불쾌히 하여 또는 엽기배들이 이 마당을 좋은 노름
터로 알고 대 여성의 희롱과 야비한 놀엄! 어린 아해의 울

음소리 규율 없는 장내의 소요 등…둥 아무리 못 배웠기로
서니 이러한 도배들의 반성은 어떠한 방법으로 고쳐갈 것

인가.
▽…양심 없는 상인들이 독점하고 있는 현 사회의 영화
연극의 오물을 깨끗이 청소하여 예술은 예술인에게 돌려보

내기를 바라는 바 적지 아니하다.(중략)
▽…문화를 애호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우리들 대중은 영
업당사자 본위에게 원하는 바이다 우리 청년여성문화인은

모름지기 이러한 퇴폐한 무대 위에 참다운 장치로서 진정
한 예술을 내걸고 나선 「학생연극」의 장래를 촉망하며 백
해무익한 방탕적 영화의 소탕과 유치한 현 조선영화의 혁

신을 기하며 아울러 민족연극과 인민예술의 건설로써 진정
한 민주과업에 이바지하기를 굳게 맹세하여야 할 것이다

▽…경중 의대 사대 3학생연극부의 진실한 노력과 찬란




334

한 성과가 우리 민족문화의 큰 여명을 고하는 새벽소리로
만강의 축복을 액기지 않은 동시에 특히 경중의 건투에 경

의를 표하는 바이다(끝…일직업여성투고)


(5) ‘영화비평에 관한 문제’①
24)

영화는 다른 여러 가지 표현형식과 같이 물질적 생산관
계에 규정된 사회적 산물이다 따라서 영화의 내용은 당연

히 자연과 사회에 관한 대인간 관계이다 그러므로 영화비
평의 척도는 생산관계를 기초로 한 사회관계에 의하여 조
건지어 지지 않으면 안된다.

더욱이(?) 영화에 있어서는 그렇다 이러한 시점에 있어서
특히 외국영화에 대한 비평을 할 때에는 첫째로 그 영화

생산국의 사회기구와 결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며 둘째로
는 그것을 조선의 사회기구 속에 정확하게 받아들이지 않
으면 안된다. 즉 그 나라의 생산관계가 당연 문제되는 것은

물론이오 그 나라의 객관적 상태가 영화내용에 어떻게 방
영되는가가 문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조선 사회에 여하한 형태로 반영되고 또

한 그것이 끼치는 영향이 직접간접으로 여하한 작용을 줄
것인가 여기에 영화 비평의 초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
는 부시짓 대신 라이타가 편리할 줄 알며 개떡 대신 조크

레트가 고급인 것쯤은 안다. 단지 라이타와 조크레트를 사
용할 만큼 우리 자신이 되어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인 것이



24) 최성각 (대구시보 1948년 2월 17일)


335

다. 필자는 최근 모처에서 영화좌담회가 있었다는 것을 지
면을 통하여 본 기억이 있다.

나는 위스키가 좋다. 나는 삐우터키가 좋다. 나는 설렁탕
이 좋다. 그야 구미대로 무엇이든지 다 좋을 수 있다. 그러
나 그것이 외국영화평(?) 대회가 아니고 좌담회인 이상 조

금이라도 비위에 거슬리는 것이 있어야 할 텐데 그런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을 보면 그 좌담회는 아마 외국영화선전대
회 이였든 모양이다.(중략)



(6) ‘영화비평에 관한 문제’③ 25)


그러므로 모-든 영화가 아무리 우수한 기술과 형식을 가
지고 우리의 감정을 짜낸다 하드라도 그것이 소수 인간의

부분적 역할에서 그치는 것이라면 그것은 벌써 사회적 의
의와 예술적 가치를 상실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술작품은
예술가 자신을 위해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요 또한 특정

한 계급을 위해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실로 광
범한 인민 대중에 속하는 것이며 또한 그렇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예술은 먼저 말한 바와 같이 사회의 물질생산관계를 떠
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최근 조선에 수입되는 영화는 99%
가 미국영화이다. 우리는 영화비평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미

국영화가 자본주의 생산기구 밑에서 제작된다는 것을 잊어
서는 안 된다. 즉 그들의 제작요인은 개인의 이윤생산에 있



25) 최성각 (대구시보 1948년 2월 19일)


336

다는 점이다.영화 좌담회에서 우수성이 강조된 소년의 거리
의 고아사업도 마음의 행로의 낭만성도 육체와 환상의 꿈

등이 모-도가 현실을 주약하려는 인간운명의 불가사의적
사랑(愛)과 죽음(死) 등으로 하여금 신비와 회〇의 세계로 대
중을 밀어 넣으려는 것이다. 그 영화들이 조선현실과 공통

되는 점이 어디에 있던가? 조선 현실은 오-직 이러한 하나
님의 기적에 의해서 해결할 수 있는 수수께끼 속에 존재하
고 있지 않다.(중략)



3. 보태는 말



해방공간에서 비평가들은 신문에 다양한 비평문들을 쓰고 있다.
이 글에서 소개한 비평도 마찬가지다. 민주영화, 민족연극, 저속한

대중극의 폐해, 인민의 영화 연극, 민주적 민족국가 건설과 연극,
미국영화의 독점, 이에 맞서야 할 연극ㆍ영화의 역할 등을 핵심주
제로 삼고 있다.

K기자가 쓴 ‘극연을 보고’는 ‘대구연극동호인회’의 공연을 통해
본 연극의 대중성에 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대중의 눈에서
멀어진 문화운동이란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다. 대구연극동

호인회는 이보다 앞서 ‘부인동지회’의 전재민구제 기금모집 공연에
찬조 출연하여 화젯거리가 됐다.
극작가인 안영일이 쓴 ‘연극계의 전망’에서는 진보적 민주주의

국가건설과 연극에 관하여 논하고 있다. 진보적 민주주의 건설을
위한 연극운동을 주창하며 일본제국주의의 잔재를 소탕하는 문제

의 중요성이다. 나아가 진보적인 조선연극의 건설을 위해서는 진




337

지한 창작희곡의 생산을 꾀하여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직업여성은 ‘학생예술발흥찬’이라는 투고 글을 연속적으로 쓰

고 있다. 미국영화 독점 아래 조선 영화와 연극의 발전을 위한 분
발을 촉구한다. 특히 민주영화․민족연극을 꽃피울 대구의 학생극에
거는 기대를 여과 없이 나타내고 있다. 당시에는 ‘일직업여성’이나

‘일독자’처럼 신원을 드러내지 않고 수준 높은 기고를 투고하는 경
우도 적지 않았다.
최성각은 ‘영화비평에 관한 문제’에서 언론의 영화비평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외국영화비평의 경우 비판이 없는 외국
영화선전대회라고 풍자적으로 꼬집는다. 미국영화의 속성과 조선
적 비평 태도를 논하며 미국서 수입되는 대부분의 영화가 자본주

의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대목은 지금 봐도 낯설지
않다.

해방공간에서 이처럼 연극‧영화에 대한 비평이 비교적 활발했던
것은 자주적 민족문화국가 건설에 대한 열망이 컸음을 반영하고
있다. 더구나 비평의 수준 높은 안목을 볼 때 대구경북의 문화역

량을 가늠하게 한다. 따라서 해방공간 연극과 영화비평 등을 통해
대구경북의 문화역량을 확인하고 계승하는 작업은 그 자체로서 의
미가 적지 않다고 할 것이다.











박창원
경남 하동 출생. 계명대 언론학 박사. <톡톡지역문화연구소> 소장. 저서 문내가 내게 묻
다분



338

아우라지와 몰운대에서 만난 문학의 흔적










강기희





얼떨결에 우리나라도 어우러지는 아우라지



긴 가뭄 끝에 비가 내린다. 먼데서 태풍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이
있은 지 닷새만의 일이다. 산자락에 걸린 안개를 보는 일도 오랜

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개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동안 비도 긋다
붓다 할 것이다. 보름 전 이웃집에서 얻어온 들깨 모종도 비를 맞
고서야 숙인 고개를 들었다. 비를 맞으며 숲길을 뛰는 고라니의

걸음 또한 활기차게 보이는 비 오는 날의 풍경은 한 편의 드라마
처럼 이야기가 많다.
비는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간밤의 숙취도 비 냄새를 이겨내지

는 못했다. 비 때문이었던가. 정신은 철없이 맑아지고 또 다시 꿈
틀거리는 술 한 잔의 욕망이 밉지 않은 시간, 내 머릿속에서는 날
궂이라는 단어가 슬그머니 고개를 쳐들었다. 이어 온갖 양념으로

막 버무린 갓김치와 메밀국죽과 아우라지 막걸리가 연 이어 입 속
을 맴돌았다.

-불현듯 아우라지로 가고 싶을 때가 있어. 비가 올 땐 그런 생
각이 더 들곤 하지.




339

오래 전 어느 글에다 쓴 내용을 되새김질 하며 나는 그야말로
‘불현 듯’ 부음소식이라도 들은 사람처럼 산중 서식지를 떠나 아우

라지가 있고 메밀국죽이 있고 뱃사공이 있고 아우라지 막걸리가
있는 여량 땅으로 내달렸다.
한 시간 여를 달려 도착한 여량 땅 아우라지 강변은 비에 젖어

있었고, 빨치산들의 주검이 있는 반론산 중턱에도 안개 띠가 걸렸
다. 평일이라 강변은 한산했으나 우산을 받쳐 든 여행객 몇이 징
검다리를 오가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우라지 뱃사공은 조금씩

불어가는 강을 바라보며 담배만 빨고 있고, 그러는 사이 골지천에
서 벌건 흙물이 흘러들고 있었다. 정선 여량 땅 아우라지의 여름
장마는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곧 징검다리는 물에 잠길 것이고

나룻배도 뭍에 정박당한 채 며칠을 보낼 것이다.
아우라지는 두 물이 하나로 어우러지면서 만들어낸 순 우리말이

다. 합수머리 혹은 두물머리 또는 양수리라는 지명도 있지만 아우
라지라는 지명은 정선 땅 밖에 없다. 태백의 검룡소에서 시작한
골지천과 백두대간인 황병산에서 시작한 송천이 여량 땅에서 만나

면서 비로소 ‘아우라지’라는 이름을 얻었고, 제법 큰 강인 아우라
지강을 만들어냈다. 두 물줄기 중 하나인 골지천은 태백의 검룡소
에서 발원하여 임계를 적시며 여량 땅으로 흘러들고, 황병산에서 발

원한 송천은 횡계 시내를 가로지르며 흐르다 대기천과 만나면서
송천이라는 이름을 얻어 구절리 마을을 지나 여량까지 이른다.


1백 년 전쯤이라고 했다. 어느 해 가을 여량 시내에 살고 있는
처녀가 강 건너 갈금마을에 살고 있는 총각과 만나기로 했다. 가

을장마가 져 물은 불어 있었고 배는 뜨지 않았다. 강변에서 발을




340

동동 구르던 처녀는 뱃사공을 향해 구성지게 노래를 불렀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가을은 깊어가고 동박 열매는 검게 익어가고 있었다. 동박 열매
를 따러 싸리골로 가야 한다는 처녀의 노래에도 뱃사공은 고개를

저었고, 마음이 다급해진 총각이 처녀의 노래를 받았다.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장철 님 그리워 나는 못 살겠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처녀와 총각이 강을 사이에 두고 이처럼 눈물을 뿌렸지만 결국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동박 열매를 따러 가야한다는 것은

그저 뱃사공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은 구실일 뿐 처녀와 총각의 연
애는 이미 깊어 보인다.
동박 열매는 생강나무 열매로 이 지역에선 생강나무를 동박나무

혹은 동백나무라고 부른다. 춘천을 무대로 쓴 김유정의 소설 「동
백꽃」에서 등장하는 동백꽃 역시 남쪽에서 피는 붉은 동백꽃이 아
니라 노랗게 피는 생강나무 꽃을 말한다. 개화기 때 멋쟁이 신사

들이 머릿기름으로 바르곤 했다는 동박기름 역시 생강나무 열매로
짠 기름이다. 동박나무에도 개동박나무와 쪽동박나무가 있을 정도

로 강원도 지역에서 많이 자생한다.
가을 장마가 진 그해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들이




341

주고받은 노래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아우라지는 정선아라
리 ‘애정편’의 발상지가 되었다. 이후 여량마을 사람들은 아우라지

강 언덕에 여송정이라는 정자를 만들었고, 사연의 주인공을 기리
는 뜻에서 아우라지 처녀상도 세웠다. 여름 장마가 시작되는 날,
아우라지 처녀상의 눈에선 빗물인 듯 눈물인 듯 물기가 촉촉하여

보는 사람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정선아라리는 메나리조로 길게 이어지는 뒷소리의 꺾임이 독특

하여 배우기 힘든 민요 중의 하나이다. 지게를 지고 산자락을 오
르거나 길쌈을 하며 불렀던 소리라 뱃심에서 우러나오는 소리가
아니라 입안에서 웅얼거리는 소리에 가깝다. 팔순이 넘은 어머니

도 정선아라리 한 자락 불러 달라고 청하면 입안에서 웅얼웅얼 하
여 가사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정선아라리는 힘껏 내지르는

소리가 아닌 고된 시집살이나 힘겨운 노동을 이겨내야 하는 한풀
이 성격의 소리이기 때문이다.
노동요로 시작된 정선아라리는 전해지는 가사만도 5천수가 넘는

다. 가사문학으로서 이처럼 많은 내용을 담은 문학도 드물다. 하여
정선아라리는 소리의 보고이자 문학의 보고라고 할만하다. 우리네
선조들이 만들어낸 유산인 정선아라리를 주제로 혹은 소재로 한

현대문학도 가사문학에 버금간다. 대한민국의 시인이라면 적어도
정선을 무대로 혹은 정선아라리를 소재로 시 한 편 써보지 않은
이가 드물 정도이고, 소설가들 역시 정선을 무대로 단편 하나 정

도는 썼다.
정선은 그만큼 문학적 콘텐츠와 예술적 이미지가 많은 마을이고

쓸 이야기가 많았는데, 팔도 사나이들이 모인 광부의 삶에 정선아




342

라리가 녹아 들어가고 그들의 막장 인생에도 정선아라리가 스며들
었다. 정선선의 마지막 역인 구절리 마을은 인생의 종착역이자 인

생 막장에 비유되어 시인들의 시편에 자주 등장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시편을 탄생케 한 곳이 있으니 그곳이 바로 여량에 있
는 아우라지이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몇 십 년 전만 해도 아우라

지 강변에 가면 시인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시인들은 강변에
앉아 아우라지 막걸리나 경월소주를 마시며 강물이 흘러가는 소리
를 들었고, 목숨을 걸고 한양으로 향하는 뗏꾼들의 생애를 되짚어

냈다.

그 해 여름 아우라지 술집 토방에서
우리는 경월소주를 마셨다 구운 피라미를
씹으며 내다보는 창밖에 종일 장마 비는 내리고
깜깜한 어둠에 잠긴 조양강에서
남북 물줄기들이 서로 어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염이 생성가시같이 억센
뱃사공 영감의 구성진 정선아라리를 들으며
우리는 물길 따라 무수히 흘러간
그의 고단한 생애를 되질해내고 있었다


-사발그릇 깨어지면 두세 쪽이 나지만
-삼팔선 깨어지면 한 덩어리로 뭉치지요


한 순간 노랫소리가 아주 고요히
강나루 쪽으로 반짝이며 떠가는 것을 우리는 보았다
흐릿한 십 촉 전등 아래 깊어가는 밤
쓴 소주에 취한 눈을 반쯤 감으면
물 아우라지고



343

사람 아우라지고
우리나라도 얼떨결에 아우라져 버리는
강원도 여량 땅 아우라지 술집
-이동순 시인의 시 「아우라지 술집」 전문


아우라지를 다룬 시편들은 많지만 유독 내 마음을 흔든 작품이

있다면 이동순 시인의 시 「아우라지 술집」이다. 30년 전쯤 아우라
지 강변에 있던 구멍가게는 술도 팔고 피라미 구이와 매운탕도 팔
고 새우깡도 팔고 담배도 팔았는데, 당시 아우라지를 찾는 사람이

면 너나 할 것 없이 한 번씩은 들렀던 집이다. 이동순 시인에겐
아우라지 술집으로 표현되었지만 우린 그 집을 그저 ‘가겟방’이라

고 불렀던 기억이 있다. 아무튼 우리 또한 그 집에 들러 4홉들이
경월소주에다 아우라지강에서 막 잡아 올린 피라미 구이를 안주로
하여 술을 꽤나 많이 마셨다.
그렇게 술에 취한 밤이면 아우라지 하늘엔 별이 가득했고, 아우

라지 강에선 자갈 굴러가는 소리가 밤새 자갈자갈 들려왔다. 이동
순 시인에게 아우라지는 송천과 골지천 물이 아니라 남과 북의 물

줄기였고, 그 두 물줄기는 어떤 일이 있다 하여도 저들 스스로 하
나로 어우라져 버리는 생명의 강이자 통일의 강이었다. 하여 시인
에게 있어 아우라지는 이념도 한순간에 아우라지고 퍼랭이다 빨갱

이다 싸우던 사람도 한순간에 아우라지고 갈라진 한반도까지 얼떨
결에 하나로 아우라져 버리는 신묘의 강인 것이다.



아우라지를 다룬 소설 중에는 김주영의 「아라리난장」과 김원일
의 「아우라지로 가는 길」이 대표적이다. 김주영의 「아라리난장」은
장터를 옮겨다니는 장돌뱅이들의 삶을 질펀하게 풀어 놓은 작품이




344

고, 김원일의 「아우라지로 가는 길」은 아우라지를 고향으로 둔 주
인공 시우가 혼탁한 도시를 떠나 아우라지로 돌아오는 과정을 담

은 작품이다.
두 작품 다 아우라지에 대한 문학적 장치가 그윽하다. 정선아라
리만 들어도 고향을 떠올리고 아우라지만 말만 들어도 눈시울이

적셔지는 여량 땅 ‘아우라지’는 문학의 고향으로 삼기에 충분하니
예전에 그러했듯 앞으로도 시인 작가들의 걸음이 분주할 듯싶다.



몰운대에서 만난 나무 성자


아우라지역 앞에 있는 청원식당에서 아우라지 막걸리로 목을 축

인 후 몰운대로 향한다. 아우라지 강을 따라 정선읍내를 지나 20km
를 달리면 화암면이 나타나고 화암팔경 중에서 7경인 몰운대로 간
다. ‘그림바위’라는 마을 지명이 말해주듯 화암면은 곳곳이 그림처

럼 아름답다. 소금강이라 이름 붙여진 협곡을 지나면 구름도 쉬어
간다는 몰운대가 있다. 도로에서 5분 정도 걸으면 몰운대에 당도
하는데, 비로 인해 주변은 안개에 쌓여 있었다. 가는 도중 곳곳에

세워진 시비들이 몰운대가 문학의 텃밭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길
이 끝나는 지점엔 수십 길 뼝때가 있는데, 그 아래는 안개로 인해

보이지 않고 그저 안개 속에서 오롯이 모습을 드러낸 죽은 소나무
한 그루만이 비에 젖은 객을 반길 뿐이다.



몰운대는 꽃가루 하나가 강물 위에 떨어지는 소리가 엿보이는 그런 고요
한 절벽이었습니다. 그 끝에서 저녁이 깊어가는 것도 잊고 앉아 있었습니
다. (……) 도무지 혼자 있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황동규 시 「몰운대행」 중에서



345

몰운대를 문학판에 본격적으로 등장 시킨 이는 황동규 시인이
다. 시 내용으로 보아 그는 꽃이 피었다 지고 있는 무렵인 봄철에

몰운대를 다녀갔었나 보다. 그에게 몰운대는 ‘꽃가루 하나가 강물
위에 떨어지는 소리가 엿보이는 그런 고요한 절벽’이었다.



세상의 끝을 보려고 몰운대에 갔었네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사랑보다 더 깊은
눈이 내리고, 눈이 내리고 있었네
강물에 투신하는 건 차마 아득한 눈발뿐
몰운대는 세상의 끝이 아니었네
눈을 들어 바라보면 다시 시작되는 세상
몰운리 마을을 지나 광대골로 이어지고
언제나 우리가 말하던 절망은 하나의 허위였음을
눈 내리는 날 몰운대에 와서 알았네
꿩 꿩 꿩 눈이 내리고 있었네
산꿩들 강물 위로 날고 있었네
불현듯 가슴속으로 밀려드는 그리운 이름들
바람이 달려가며 호명하고 있었네
세상의 끝을 보려고 몰운대에 갔었네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사랑보다 더 깊은
눈이 내리고, 눈이 내리고 있었네
강물은 부드러운 손길로 몰운대를 껴안고
그곳에서 나의 그리움은 새롭게 시작되었네
세상의 끝은 또 다른 사랑의 시작이었네
-박정대 시 「몰운대에 눈 내릴 때」 전문



하지만 정선 출신인 박정대 시인에게 몰운대는 ‘세상의 끝이자
또 다른 사랑의 시작인’ 곳이었다. 박정대 시인이 몰운대를 찾은




346

시기는 눈발이 펄펄 날리는 겨울이었다. 세상의 끝에서 또 다른
사랑을 발견한 시인에게 몰운대의 수십 길 뼝때는 절망의 절벽이

아닌 희망의 절벽이었던 것이다.


몰운대에 다녀왔습니다
선 채로 벼랑 끝에 입적한
나무 성자를 만나고 왔습니다


사랑을 등진 죄
도리를 다하지 못한 죄
고해하고 왔습니다
이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에 대하여도
통회하오니 사해달라는
간청 또한 잊지 않았습니다


죽은 나무와 나 사이에

비밀이 많습니다
-손세실리아 시 「고해성사」 전문


시인 손세실리아는 몰운대를 성지 순례 하듯 다녀왔다. 황동규
시인에게 몰운대는 ‘꽃가루 하나가 떨어지는 고요한 절벽이었’고,

박정대 시인에게 몰운대는 ‘세상의 끝이자 또 다른 사랑의 시작’이
었다. 하지만 손세실리아 시인에게 몰운대는 ‘선 채로 벼랑 끝에
입적한 나무 성자를 만나’는 성스러운 공간이었다. 그는 나무 성자

에게 사랑을 등진 죄와 도리를 다하지 못한 죄를 고해하고 세상
속으로 돌아왔다. 그가 마지막으로 ‘죽은 나무와 나 사이에 비밀이

많다’라고 밝힌 기록하지 못한 ‘고해’에 관해서는 독자들 각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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몫이 되겠다.
이깔나무 잎이 노랗게 덮인 늦가을에 몰운대를 찾았던 손세실리

아 시인에게 몰운대는 나무 성자를 만나 고해성사를 하는 곳일 뿐
세상의 끝도 꽃가루 떨어지는 고요한 절벽도 아니었다.


비는 어둠이 내릴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수십 길 뼝때 아래로
는 물 흘러가는 소리가 세차게 들려왔다. 절벽은 고요하지 않았으
며 눈 대신 비가 끊임없이 쏟아졌다. 산중 서식지로 돌아가는 길

또한 비에 젖어 있을 것이었다. 이젠 서식지로 돌아가야 할 시간.
돌아가자. 나의 고요하고도 성스러운 국토, 붉은 숲으로. <끝>
































강기희
소설가. 강원도 정선 출생. 강원대학교 졸업. 장편소설 문동강에는 쉬리가 있다분, 문은옥
이1.2분, 문아담과아담 이브와이브분, 문도둑고양이분, 문개 같은 인생들분, 문연산분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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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천년의 시간이 내어준 길에서 천년의 삶을 산다










박수희





1. 산 자와 죽은 자의 삶이 이어진 곳, 경주



언제부턴가 죽은 자는 우리를 떠났다. 그들의 몸을 뉜 무덤은
뚝 떨어진 저 곳에 있고 그들이 사는 하늘나라도 저 멀리 있고 그

들의 세상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야 간다. 우리와 그들을 잇
는 으슥한 곳 무덤은 무섭다.
경주는 그렇지 않다. 경주에서의 무덤은 풍경이고 놀라움이다.

무덤은 집 보다 높고 크고 집 보다 아름답고 집 보다 놀기 좋고
집 옆에 같이 살고 더불어 잠을 잔다. 하나도 안 무서운, 오히려

익숙해서 편안한 경주의 무덤. 죽은 자는 죽지 않았고 멀리 가지
않았으며 우리와 가까이 연결되어 있다.
그들은 무덤을 죽은 자의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것은 삶의

현장이고 소품이다. 천년을 그렇게 지냈기에 그 죽음은 곧 삶이다.
산 자와 죽은 자는 무덤을 통해 무언으로 소통한다. 산 자의 옹알
이에 죽은 자는 둥근 선으로 응답한다. 죽음이 삶에 이어지고, 시

공을 넘어 이어진 천년 길에 낯선 이들이 놀라 눈을 반짝이는 곳,
경주에는 그 새로운 발견에 복받친 경이로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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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나 귀족, 때로는 그들을 모셨던 아랫사람들이 함께 들어가
기도 했다는 이 무덤들은 능(陵), 총(塚)이라고 불린다. 누가 누웠든

무슨 상관이랴. 그것을 둘러싸 집을 짓고 길을 만들고 아이를 낳
으며 천년의 세월을 이어왔다.
능과 총이라 불리는 이 아름다운 무덤들 사이로 천년의 시간이

내어 준 그 길을 걷는다. 천년을 이어온 삶을 나도 잇는다. 그리고
내 뒤에 이어질 천년을 마주한다.
침묵하는 나를 동그라니 고운 선이 바라본다.



2.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느낌, 노동·노서리 고분군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느낌을 주는 곳을 꼽으라면 망
설이지 않고 노동·노서리 고분군을 든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능이 있지만 진짜 능이 아니라는 이야기

가 있는, 하늘에서 보면 봉황을 닮았다는, 능 꼭대기에 그림 같은
고목이 자라 어린왕자의 별이 떠오르는, 세월에 닳아 둥근 무대처
럼 낮고 평평해진 능위를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눈이 오면 고운

선 따라 썰매 타고 싶은, 가을이 오면 능의 풀들이 선율처럼 흔들
리는, 무엇보다 밤 가로등이 능 높이를 넘지 않는 절제에 절로 고

개 숙여지는 곳. 찾아온 사람은 누구나 그 능에 싸이고 안겨 세상
을 잊은 채 가만가만 위로받는다.



눈 오는 날 두 그루 나무를 배경으로 높은 쌍봉의 능이 정물화처
럼 찍힌 사진을 보라. 숨 막히는 심연의 고요가 가슴을 텅 비운다.
이 곳의 밤은 사랑보다 평화롭다. 능 사이를 걸으면, 그냥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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