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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by treentea, 2017-01-19 21:36:44

문화분권

4월에는 외 1편



김사람






퇴폐적인 노을이 진다
쉐도우 복싱은 단조롭고
우리는 광기를 억누르느라
젊음을 소비한다

여전히 시가 두려워
나의 표정들을 구분지어 본다

얼굴이 하늘에 진다
새떼가 구겨진 지폐처럼 진다
관념적 사랑밖에 모르던 나는

당신에게 미안하다
더러운 노을이 진다
바다 속에서 벚꽃이 진다

당신은 그림자가 착한 사람
우리들 기억은 가짜
사랑이 진다









김사람
경북 의성 출생. 2008년 「리토피아」 등단. 시집 『나는 이미 한 생을 잘못 살았다』




201

조작된 하늘











하늘에서 구두가 내려왔다
구두의 뒤태를 좋아했다
불에 타는 지폐 더미에서
값싼 웃음소리가 들렸다

웃음은 타지 않고 활활 웃었다
구두는 발등 위에서

은밀히 춤을 췄다
사람들이 질투심에 무덤을 팔수록
웃음을 닮은 춤은 전염되어

지구를 휘청이게 했다
구두는 일어날 수 없었다
유모차를 미는 사람들이

배를 내밀며 구호를 외쳤다
사람들을 둘러싼 돌들은
썩어 가며 양수에 스몄다

조작된 태아들이 손을 뻗어
구두의 하얀 발목을 경쟁하듯

잡으려 했다 손이 미끄러졌다
구두는 얼굴을 붉혔다
그림자를 벗어버린 구두는




202

물소리를 떠올렸다
물이 구두를 꼭 채우며

구두가 되던 그날
구두는 소리 없이 또각또각 내려갔다






















































203

마을 외 1편



이필호



물 아지랑이 햇볕에 튕겨져

생의 실핏줄이 훤히 내려 보이는 여기
섬이 낳은 따개비 집들이 소복하다


이곳은 눈물 냄새가 난다

멀리 바다가 유혹하는 아코디언 소리
홀로된 여인들의 우멍한 눈

빼데기죽* 얼굴빛
배를 가지고 싶을까봐
애써 바다를 외면한다



생을 떠나야할 이유도 많았지만
저 너른 바다품이 있어

서로가 못 놓고 있다


찾았다

눈물이 흘려 들어간 바다의 참맛을
짜디 짠 생의 문양을



이곳은 내 편인 것 같다
마음껏 울 수 있어




204

동피랑 골목길에 서있다




*통영지방의 고구마로 만든 죽















































이필호
경북 군위 출생. 2010년 「사람의 문학」으로 등단. <옻골문화제> 대상. 삶과 문학 회원.
대구경북작가회의 회원



205

어떤 모자











그녀는 말보다 늘 웃음이 가득이다
53세 된 아들의 나이를 안타까워 한다
“꽁꽁 묶어 놔라
니 나이는 안 올라가게”

어머니는 지구 자전 속도에 제동을 건다



여태 전
아내와 사별하고
106세의 치매 어머니에게로 돌아온 아들

엄마는 아들을 붙들고
아들은 엄마를 키운다
서로에게 햇빛이고 바람이고 하늘이다

이들에게 시간은 둥글다
둘은 서로를 낳은 것이다



세상에 모든 아들은
어머니의 빚을 갚는 중이다

성스러운 생의 순환


내가 가진 종교는 아무리 흘러도




206

이들 근처에도 가지 못해
아직 바깥에서 머물고 있다



























































207

흔적痕迹 외 1편



박은주






그가 이사를 갔다
그의 가족이 이삿밥을 낸다기에
마른 이파리 같이 측은한 자리에 곡소리처럼 앉았다



열정 또는 절망 혹은 바리꽃 같은 生이 살다가 간
쉽게는 식지 않을 온기가 버티는 자리에

벗어놓고 간 옷처럼 우두커니 남아있을


붉고 뜨거운 그의 흔적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남은 사람들은
그걸 붙잡고 다시 남들처럼 살아갈 테지



사람이 이사 갈 때는 떠들썩하다
새 옷 한 벌 벌어 입고 가는 턱을 내느라

사람이 이사 갈 때는 밥 한 그릇 내고 간다







박은주
대구 출생. 2007년 「아람문학」 등단. 대구경북작가회의 회원



208

씨앗에 대하여











언젠가
모 정치인과 모 작가가
나라가 들썩거리게 유전자 확인에 나섰던 적이 있었다
그 얼마 후에

양파 가격이 폭락하고
그 후에는 또

연예인 문자 사건의 진실여부가 심판대에 오르더니
뉴스에서는 한 폭력조직을 일체 검거했다고 한다



씨앗은 함부로 뿌릴 일이 아니다


흙에 뿌리는 것도 씨앗이고

말도 행동도 던지고 나면 씨앗이고
지금 이 순간도 내일의 씨앗이다



풍작을 거두고 싶으면 좋은 씨앗을 뿌려야 할 일이다













209

갈증 외 1편



허태연






시골집 마당이
서서히 눈을 뜨면 이른 새벽
외박한 멧돼지 한 마리가
산 밑 길쪽으로 걸어간다

거대한 몸집 여기저기
온통 지푸라기 투성이다

지난밤 어느 곳 덥불 속에서
누구와 진하게 딩굴었는지
의문을 낳게 하면서

내쪽으로 곁눈질까지 날린다


찬물 한 동이가

내 위로 시원하게 쏟아지고
갈증은
한층 고개를 든다.










허태연
대구 출생. 2006년 「사람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문팔공산분


210

태풍영향권











먼 곳에 태풍 소식에
팔공산 골짜기들이 꿈틀한다.
낮은 구름들은
외딴 女주인집 마당으로

성급하게 내달린다
인생의 파란만장한 풍파 속을

남들에게 비굴하지 않고
정면대결로 승부사를 날리는지
때때로의 울적함은

생막걸리 한 잔으로 땜질하는제
집안을 다정스럽게 들여다 본다



비내리는 여름밤 개구리들도
자기들만의 은민한 사연으로
어느 곳으로 뛰어 나갈 지는

이 세상도 모르는 일이다.













211

죽음에 대처하는 방식 외 1편



정은희






하루 서너 명씩 죽음을 맞는 호스피스 병동
품격 있는 죽음을 맞이할 시간이 최소한 그들에겐 주어진다
그들의 육체와 의식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죽음을 받아들인다



칸칸이 철창 틈으로 목만 길게 빼고 있는 거위들의 병동
인간들의 비정함에 사육장의 거위들은 오히려 병들어간다

금속관을 통해 마구 쑤셔 넣은 먹이에
목울대가 찢겨지고 풀무처럼 위는 부풀어간다
어린 거위들의 덜 자란 뼈 속에 간만 비대해져간다



칠성급 호텔 레스토랑, 디럭스한 메뉴
푸아그라*의 품격은 거위의 고통에서 완성된다

숨조차 편히 쉴 수 없는 고통은
탐욕스런 인간의 오랜 관습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거위들의 탓일
것이다

그러므로 잠시 머물렀던 거위의 기억 속에
울음은 쉽게 세상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러므로 광장에서 피켓만은 들지 않을 것이다


죽음은 저마다 다른 시간을 가지고 있다




212

죽음은 저마다 다른 공간에 머물러있다
죽음을 맞이하는 것들은 제각기 다른 방식을 갖고 있다





*거위의 간으로 만든 요리













































정은희
대구 출생. 계명대 화학과 졸업. 2014년 「문화분권」 등단. 대구경북작가회의 회원



213

행로行路











지방도 67
대구에서 왜관으로 가는 길
길은 때 이른 코스모스를 피우고
나는 막바지 무더위를 안고 달린다



바로 앞 윤기 잃은 다이너스티가 견인차와 한 몸이 되어 달린다

한때 그도 온몸에 광택을 두르고 기운차게 달렸으리라
졸음을 깨우듯 소리 내어 달리는 화물칸의 짐들은
하루하루 우리네 가장의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만큼이나 무겁고

과적검문소 바닥을 디디는 바퀴는 살얼음판을 걷는 듯 조심스럽다
바퀴의 수가 많다고 그만큼 생계가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방금 세차하고 달리는 운전석 앞창에 새똥이 추락할 확률은 얼
마나 될까
날아다니는 것들의 방뇨는 누군가의 불운이다

목청이 높은 자들의 득세는 누군가의 불행이다



도로 곳곳에 세워진 무언의 감시자들
초행길이라도 겁낼 건 없다
내비게이션이 친절하게도 그들의 속내를 귀띔해준다




214

그렇다고 다 믿을 필요는 없다
내 인생의 내비게이션은 누구였을까



아무 일없이 평온하게 보이는 길
길 위의 삶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선택과 함께 평생 달려야하는 길
길은 살아서 오늘도 함께 달린다















































215

해운대 이안류가 되다 외 2편




박언휘






어느 여름날
아무런 준비도 못한 채로

갑자기 바다로 떠밀렸다.

원래, 해운대 앞바다가 거처인 나는

마음만은 늘 뭍을 그리워하는

한 마리의 작은 거북이었다.



치타의 속도보다 더 빨리

내동댕이쳐진 혼절한 나의 육신은,

몸을 추스를 틈도 없이
거꾸로 흐르는 조류가 되어

잽싸게 바다로 실려 나갔다.

급류에 휩쓸린 사람들의

비명소리도 듣지 못하고

정신없이 흘러온 난, 한참 후에서야

거처인 앞바다에 다시 왔음을 알게 되었다.



216

세상의 수많은 파도들이 밀고 밀리며

해안에서 일생을 마감하건만

운 좋게 나는
저승사자를 따라 갔다가

좀 더 베풀고, 착한 일 더 하고 오라고

세상으로 되살려진

<환생의 파도>라고 부르는

‘해운대 이안류離岸流)가 되었다.



언젠가 다시

해안에 부딪혀 부서지며

생을 마감하는 날이 오겠지만


이제부터 나는

알을 낳기 위해 해변을 기어오르며

사력을 다하는 동해의 거북이처럼,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며,

세상의 더러운 모든 것들을

조건 없이 포용하여 용해溶解하는,
달빛에 더 아름다운




217

청징하고 진솔한 가슴의

쪽빛 바다가 되어 살아가리라.



*이안류: 매우 빠른 속도로 한 두 시간 정도의 짧은 기간에 해안에서 바다 쪽으로 흐
르는 좁은 표면 해류. 파도가 해안으로 밀려와 해변 한곳에 잠깐 머물다가 바다 쪽으
로 되돌아가면서 발생하는 흐름이다.








































박언휘
경북대 의대 졸업. 2012년 「한국문학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의사시인협회 부회
장, 국제PEN클럽 이사. 저서 문박언휘 원장의 건강이야기분, 문내마음의 숲분외




218

엄마냄새












세상 근심 눈발로 흩날려도
넉넉한 치마폭 벌려주시던,

이젠 거칠고 뭉퉁해진 어머니의 손

내 유년 아직도
그 손금 골골마다
숨어 놀텐데

바다내음 향기롭던

그손, 너무 멀어
행여 하여
내 손 펴고 맡아보는

엄마 냄새




















219

꽃잎의 시간 외 1편



송정화






열매마을 15층
베란다에는


저녁이면 문을 닫는

풀꽃 한 분


제 그림자의 적막을 깔고
앉아 있습니다.



열매라는 말에 기대어
플라스틱통 속인 줄도 모르고



아슬아슬한 높이 끌어내리며
평수를 넓혀온 한 시절이



깜박깜박
자주, 빛 바래져갑니다.



기다린다는 말은
하지 않고




220

환한 창밖 내다보다가

거실 들여다보다가


지금은 스르르

꽃잎이 문을 닫을 시간입니다.


가쁜 숨길이

열렸다 닫혔다 할 때마다


캄캄한

꽃잎 속에는



얼굴 없는 말들이 피었다가
지곤 합니다.


















송정화
경남 합천 출생. 2002년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좌판」으로 등단. 시집 문거미의 우물분.
현재 통영여자고등학교 국어 교사




221

꽃무릇











마주보지 않으려고 등 돌린
벽이 벽을 만나 세우는 모서리 같다.


모서리는 완강하고 날카로워

부딪치면
멍들지 않는 무릎이 없다.



지금
그 사람의 무릎 검붉다.



꽃 진 후에야 잎 돋고
잎 무너진 뒷자리라야 꽃대

밀어 올리는


꽃무릇처럼
















222

공장지대 외 1편



정연홍






세상은 누가 만들었나
자본주의는 누가 만들었나
누군가는 몸에 신나를 붓고 살을 태우고
누군가의 손가락은 선반에 말려 기계가 말아먹고

누군가는 철탑에서 몸을 던지고



노동자는 이 땅에서 왜 불행한가
왜 저토록 붉은 머리띠를 매고 몸으로 외쳐야 하나
왜 공장지대 굴뚝은 밤새 불을 뿜어 올리나

누가 충혈된 눈으로 야근을 하며 밤새 불을 지피나
천 년 전 바람은 도시에도 불고 공장에도 부는데



백 년 동안 뿌린 빗방울이 바위를 뚫어 버리고
모래알 같은 미친 세월은 또 흘러간다










정연홍
198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 2005년 「시와 시학」 시 당선. 시집 문세상을
박음질하다분



223

겨울 공단











삼십년만의 폭설이었다
도시를 집어삼킨 눈발은 버스도
먹어버렸다 버스 안의 사람도 먹어버렸다
새벽공단 대로에는 작업복을 걸친 공돌이들만 바쁘게 뛰어갔다

싸게 싸게 출근해야제 눈은 눈이고 출근은 출근잉께
반장의 전화는 어김없이 울렸다

공장은 돌아갔다
하청공장의 지붕이 내려앉았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드문드문 공돌이들이 빠진 자리에 관리직이 볼트를 박았다

컨베어는 잘 돌아갔다
눈이 오든지 세상이 내려앉든지 기계는 알 턱이 없다
컨베어가 돌아가자 사람도 돌아갔다

그까짓 품질쯤 내 한방으로 잡을 수 있지
반장은 허풍을 치고



잔업시간이었다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둔 하청공장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지붕이 내려앉았다는 입소문과 함께 사람들이 깔렸다는 이야기
가 들렸다
조립식 건물의 뼈대가 기어코 눈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다




224

인간의 구조물이 어떻게 하늘의 무게를 이겨낼 수 있을까



현장은 순식간에 지워졌다
119가 왔고, 경찰이 왔다
죽음은 그렇게 제대로 죽어보지도 못하고 지워졌다

세상을 하직한 곳도 물로 깨끗이 지워졌다
눈도 지워졌다
햇빛이 찬란했다

검은 비닐봉지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225

이즈스난데모 외 1편



윤덕점






밤새 바람 불고 비 오던 아침 갑자기 생각난 말
구름아래 하늘의 살갗인 듯
매끄럽게 내 입속으로 찾아온 말
가식이란 말이 다 떠난 후에 남은 마지막 정거장

조팝나무 몽글한 가지 사이에 핀
꽃 알갱이 인 듯

내 혀 안에서 자꾸 궁굴려지는 말
詩하늘에 가득 차있는 연어 알 같은
투명한 이게 뭐지

슬픔을 다 잊고 난 후에 자란 콩나물 대가리거나
산책길에서 만난 똬리 튼 뱀의 납작한 대가리
아니면 그 뱀 약올리던 개의 둥근 발,

그 발톱에 낀 풀씨나 똥 묻은 찔레꽃잎
비린내가 살짝 피어오르는 물보라로
시야에서 맑게 퍼지는 구름

기도하라 기도하라 울리는 교회첨탑의 스승이거나
기도할 것이 넘치는 세상을

청소하러 온 청소부의 맨얼굴인가
입속으로 자꾸 굴러다니는
이즈스난데모




226

오늘 하루는 모두 이즈스난데모





















































윤덕점
경남 사천 출생. 마루문학회장. 「일신세상」 편집장. 「경남문학」 편집위원, 박재삼문학
상운영위원 역임. 시집 문마로비벤을 꿈꾸다분



227

가곡 저수지











물푸레나무 쉬지 않고 흔들리는 소곡진료소 지나
농약 값 비료 값 갖고 오라 목청 돋워 외치는
전봇대 끝에 달린 소곡마을 스피커 밑을 지나
흰 삽살개 한 쌍

서로 핥아주는 소산댁 나무대문도 지나
예수 믿고 천국 가자 조르는 기도원 십자가 아래 지나

못골댁 무덤가 우람한 솔밭도 지나
가시 센 응개나무 줄지어 선 밭둑 지나
쇠실 금굴 불당골도 스쳐 지나서

윙윙 고무줄 잘 돌리는 키다리 철탑도 다 지나서
건달처럼 불쑥 나타나는
움푹 파인 푸른 눈의 못둑에 서면

흥무산 소나무 늘씬한 종아리에 홀린 눈길 거두며
덧니로 웃듯 붕어 한 마리 훌쩍 던져 올려주고
어서 오라 팔 벌려 웃는 가곡저수지
















228

혓바늘이 돋아난 물가자미 외 1편



정훈교






밤마다 혓바늘이 돋아납니다
그의 잎 속엔 물가자미의 등가시가 자라고 있습니다


월요일엔 붉은 가시가,

수요일엔 좀 더 붉은 가시가,
금요일엔 다 자란 흰 가시가 입 안을 파고듭니다



대서양 어디쯤에서 왔다는데
자꾸만 미워집니다



뭍을 떠나 왔다는 그의 이야기는 진실이 아닙니다
입을 떠나 왔다는 그의 이야기는 진실이 아닙니다



촉수처럼 돋아난 말이



바다를 찌르고
달을 찌르고

심장을 찌릅니다


아프지도 않은데




229

눈동자는 물빛으로 더욱 빛납니다
물가자미의 등가시도 더욱 빛납니다



달이 뜨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잎 속으로 그간의 속내를 밀어 넣으며,







































정훈교
경북 영주 출생, 2010년 계간 「사람의 문학」 등단, 시집 문또 하나의 입술분. <시인보호
구역> 대표 시인



230

순대국밥을 팔고 싶다











여름에도 뜨거운 심장이며
겨울에도 뜨거운 심장인 당신을,


흙먼지 탈탈 털어내며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당신을



나사를 조이며
툴툴 거리는 당신을, 조이며 그 이마를



짚어주고 싶다


모락모락 김은 나고

대파처럼 듬성듬성 푸른 청춘 떠있는, 당신을


소금을 치며

후추를 치며, 당신을



밤늦도록
모락모락 뜨거운, 당신을






231

한 그릇 다 비우고 싶다





























































232

305호 그 여자 외 1편



박승민






녹이 번진 배관을 타고
아침마다 여자는 변기통에 하혈을 한다.
자주 부정맥을 앓는 형광등이
이십 년째 뿌리를 못 뻗는 벽지의 장미를 느리게 쳐다보는 오후



오늘은 아파트 도색을 하는 날



기초화장 색조화장을 거쳐 붉은 볼터치로 화색을 살린다.
눈 밑의 어둠은 아이섀도로 살구 빛을 그려 넣고

분홍색 립글로스로 입술에 마지막 동 호수를 칠한다.


영구임대아파트 한 채가 국립암센터를 향해 오랜만에 외출을 한다.















박승민
경북 영주 출생. 2007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작품 활동. 시집으로 문지붕의 등뼈분, 문
슬픔을 말리다분가 있음




233

천년의 미소











앙코르와트의 관음보살이 야자나무 상공에서 입술을 다복이 물
고 구름웃음 삼매경이다.

크메르인 소녀가 마른 뼈를 흔들며 원 달러! 원 달러! 먹지 같

은 손바닥을 펴 보인다. 바닥이 생활밑천인 그 애의 흑단 눈망울
이 내 주머니 속의 원 달러를 佛經인양 간절하게 읊고 있다. 두

손을 모은 저 애절함이 佛에서 弗로 개종을 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가이드에게 물어보지 못했다. 고무나무에서 생고무타는 냄새가 익
어가는 저녁 구부러진 뒷발 하나가 건기의 붉은 흙먼지 속을 파리

처럼 날아서 또 다른 弗에 옮겨 붙는다.



























234

안녕하십니까, 갑오년 외 1편



남효선






갑오년 닷새 앞둔 이른 새벽 눈발이 나린다
마당 반쯤을 제 영역으로 호사를 누리고 있는
백구가 미동없이
담장 위를 가로지른 전선줄 위

까마귀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그대는 안녕하신가



까마귀는 제 목소리로 끄윽끄윽 두어번 내지르고
앞산으로 날아간다

백구 앞산으로 날아든 까마귀를 그윽한
눈빛으로 쫒는다.
그대는 안녕하신가



눈발이 풀풀 흩날리며 쌓인다
날쌘 길고양이 세 마리 새끼 데불고

백구 밥통을 넘 본다
백구는 여전히 앞산 향해 미동도 않는다

눈빛이 그윽하다
날고 싶은 게다
길고양이 가족 오랜만에 포식한다




235

백구 길고양이 가족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대는 안녕하신가



눈발이 굵어진다
백열아홉 해 전 성긴 눈발 따라

떠돌던
가보세가보세
농투산이 울음, 눈발을 두들긴다

힘살굵은 팔뚝 죽창들고
우금치 겨울 보리밭 내닫던
가보세가보세

농투산이 핏줄 불거진
장단지, 눈발로 나린다

그대는 안녕하신가, 갑오년.





















남효선
경북 울진 출생. 1989년 「문학사상」 시부문 신인상 등단. 시집 문둘게삼분, 시화집 문눈
도 무게가 있다분외 다수. 민속지로 공저 문도리깨질 끝나면 점심은 없다분, 문남자는 그
물치고 여자는 모를 심고분외 다수. 현재 아시아뉴스통신 기자



236

임진년 섣달 열아흐레











아흔세살 난 배롱나무 밑둥을
뭉턱 자르고 싶었다.


할애비가 열여덟 살림나던 해

본가에서 옮겨 심었다는
일곱 살 모자라는 백년 살이 배롱나무

도끼질로 뭉턱
자르고 싶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게
나이 들어 한 해 두 해
늙어간다는 게

이토록 가질게 많은 것인지
이토록 지킬게 많은 것인지



쉰 몇 해를 살아오며
그저 아흔 세 살 난 배롱나무처럼

어김없이 제 때를 기다려
붉은 다홍빛 꽃을 피우고
나이만큼 퍼트린 가지




237

땅으로 늘어뜨리며
봄날 연록의 새순을 내밀고

무성한 잎사귀를 다는 것 인줄
알았다.



임진년 섣달 열아흐렛 날
날 선 도끼 움켜쥐고
처연하게 서 있는

배롱나무 밑둥
뭉턱 잘라내고 싶었다.



내 꿈속으로 들어와
내 가슴을 키우던

배롱나무, 저 처연한 내숭덩이
뭉턱 쳐내고 싶었다.




























238

지독 외 1편



표성배






버려진 것들이 모여 이룬 쓰레기 더미


썩는 냄새가 코를 베어 물고 놓아주지 않는다



이 지독한 냄새 앞에서 나는 왜 지독舐犢을 생각 하는가



강물이 별을 품고 바다를 생각하듯


이미 팔순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아직도 나를 향해



지독舐犢이시다



사실 지독舐犢과 지독至毒은 마음이다


그 마음이 고개를 끄덕이게도 하고 절래절래 흔들게도 한다



이런 대비는 어떤 마음을 불러올까



고철 장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239

늙은 기계가 내는 숨소리가 지독하게 평화롭다
-

페인트로 정장을 한 채 출하를 기다리는 제품들이


모델처럼 폼을 잡고 있는 것은 더 지독스럽다










































표성배
경남 의령 출생. 1995년 제6회 <마창노련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문아
침 햇살이 그립다분, 문저 겨울산 너머에는분, 문공장은 안녕하다분,문기계라도 따뜻하게분, 문
은근히 즐거운분등. 201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받음




240

絶命詩











땅의 심장을 찌르고는 절명絶命해 있는 돌 하나


저렇듯 한 곳에 집중하기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칼날 같은 시간 위를 달려 왔는가



스스로를 채찍질 한 자존自尊이 남긴 조각들


은하처럼 작은 돌멩이가 되어 빛나고 있다



팔 다리 다 잘리고도 남은 것은 멈추지 않는 심장



대나무처럼 지조志操를 지키는 일이 갈수록 쉽지 않다


절명시를 외우며 절명을 생각한다



수많은 아해兒孩들이여!



첫 발을 내 딛고부터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더라도






241

함부로 돌부리를 원망하지 마라



돌은 절명해도 단단한 정신은 살아있다


어둠이 강산을 뒤덮어도 빛나는 아침을 그리며



한 시절 우린 절명시를 외우며 건너왔다



하루를 버티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꿈쩍도 하지 않는 저 돌에게서 배운다






































242

마지막 상담사 외 1편



장진명






동그라미 살인을 생각하기도 했다
모든 살인이 뾰족하게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그가 말했다
바늘귀에 실을 끼우다 구멍의 소극적인 방어에도

화가 치미는 것처럼
동글동글한 웃음 뒤의 찝찝한 눈 빛 같은 것

그런 것이 치민다고 그가 공벌레 모양 몸을 닫았다
그날은 추웠다 12월
얼음 깨지는 소리 혹은 타이어가 찢어졌거나

밖은 소란스러웠다
이 틈에 우리는 살인을 결행했다
동그란 것의 입을 틀어막기로 했다

우리는 성공률이 높은 전문가였기에
하이파이브 끝에 완전범죄의 비밀은 지키기로 했다
처음으로 몸을 펴고 그가 작별했다

12월은 낯선 손님처럼 그를 데려갔다
그는 가여울정도로 키가 껑충했다



펄럭 그림이 움직였다
통속에 갇힌 개미가 기이한 그림 속에서 죽었다




243

상담사를 닮았다























































장진명
경북 칠곡 출생. 「사람의 문학」 등단. 시집 문흑두르미 주점분



244

무명천 해설











쌀풀로 결을 세우고 손으로 만지고 발로 밟고
다듬이질해서 무명옷 지어 입혔다더라
팔순의 누이 유학산 골짜기에 들어섰다
어디쯤이고 묻는다

하늘을 이고 겨울산이 험한데
대충 높은 봉우리로 손이 간다

떠낸 자리 표시는 해 두었나 묻는다
나뭇가지에 무명천 묶어 놓았다고
무명천으로 노인네 눈 흔들린다

몇십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더나 누워 있었더나
앉은 채로 찾았노라 대답한다
그럴끼다 그 오빠 밖에선 잠 못잔다더라

무명천 묶어 둔 자리 찾으면 되냐고 묻는다
저 높은 산 우째 가실라꼬요
대답없다 잘못 물었다

그냥 그 자리 놔둘 것이지
육십년이나 앉아 있었는데

또 옮기마 낯 설겠다
우리 어매 아들 기다리다 오래 살았다
뼈에 구멍이 숭숭 뚫려 돌아가셨다




245

...
조지훈시인은

이 황폐한 풍경이 무엇 때문의 희생이냐고
물었다
대답은 너무 많았다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발굴 자리에 표시된 무명천을 보고...













































246

금성산 외 1편



박영미






유목 키운다고 깔아놓은 비닐을
호미 들고 땅 파서 걷어내다가
밭 흙이 코에 눈에 튀어서
속상해 짜증내며 바라본 하늘

저 멀리 구름 한 점 없는 늦겨울 하늘 아래
말없이 서 있는 금성산

범접할 수 없는,
우리 증조할아버지도
아득한 고조할아버지도

스물다섯 살 신혼 시절
아무 것도 모르는 철부지 나를
유독 친근히 대해 주셨던 할아버지도

바라보았을 산
오늘은 묵밭을 매며
과수원을 일구느라

온 생애 맨발로 고생하셨던
어른들을 떠 올린다





박영미
경북 청도 출생. 2007년 「사람의 문학」 등단. 시집 문거룩한 식사


247

동강-어름치 부부











어름치 암컷이 입에다
돌맹이 자갈 굵은 모래 등을 물어다 알 낳을 자리를 만든다
그 부드러운 주둥이로 자잘한 자갈을 계속 물어다 놓는 모습이
애처롭다

때론 제법 굵은 것도 물어다 놓는다
알 낳을 공간 확보가 어느 정도 되자, 재빨리 알을 낳고,

곧 수컷이 뒤따라와 방정한다.
그런 다음 그 위에다 다시 자갈 돌맹이를 물어다놓아
알을 감쪽같이 숨긴 다음,

또다시 알을 낳고, 방정하고, 숨기고...
이렇게 어름치 부부는 밤낮을 쉬지 않고 사흘 동안
아홉 번 보금자리를 만들고 아홉 번 알을 낳고 방정한다.

그 부분에는 계단 같은 작은 돌무더기가 생겨났다.
강물은 예대로 그냥 그렇게 흐르고



밤이 가고 또다시 낮이 찾아와
동강에는 어름치 치어가 물 한가득 떠다녔다.



고요히 잠들어 가는 동강을
어름치가 깨우며 밝히듯이




248

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



























































249

태식 씨 외 1편



김성숙






설렁설렁 여기저기 끼어들고
온 동네를 배회하다 마주치면 씨익 웃고
가끔은 십 리길을 걸어 인동장터까지 소일 삼아 다닌다


골프야 테니스야 면바지를 즐겨들 입으시던 여름
백 바지를 좍 빼 입고 길 걷다 아는 차를 만난다

그런 날엔 하늘을 나는 듯하여

새벽예배엔 언제나 1등 뒤에서 셋째 줄 그 자리

문소리 날 때마다 마주치는 눈길 드물고
그런 날엔 어머니가 보고도 싶고


어머니는 치매 앓다 가셨다
동생은 안채에 순이 씨는 아래채에
쉰셋 태식 씨와 쉰다섯 누나가 한 집에 산다


백옥같이 하얀 빨래들이 나부꼈고

땅콩처럼 작은 방은 윤기가 흘렀고
별 탈 없겠거니 태무심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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