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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by treentea, 2017-01-19 21:36:44

문화분권

이게 평화라는 것인가 보다’라는 느낌이 저절로 든다.
나는 그렇다. 그곳을 걸을 때마다 그렇다.



3. 비님 오시는 날, 창(窓) 안에서 대릉원을 마주하다.


대릉원을 향해 창(窓)이 난 행복한옥마을 셔불에서 비님을 만났

다. 한옥으로 지어진 이 집 이층 난간에서는 대릉원의 높은 능이
손에 닿을 것 같다.

오랜 가뭄 뒤 비님 오시는 날,
나는 창을 통해 기와 골 따라 흐르는 빗물을 본다. 마치 작은
초록 언덕 같은 능들도 비에 젖고 있다.



오래된 영화 속 필름처럼 흐릿한 줄이 생겼다가 맑았다가 흔들
리는 네모난 화면, 창밖으로 보이는 능은 더 이상 죽은 자만의 공

간이 아니다. 아무 생각 없이 투명한 눈으로 창밖의 능을 바라보
면 세상은 나뿐인 나와 모두인 남으로, 구경꾼과 배우들로, 가상과
현실로 나누어진다.



창밖, 대릉원 담장보다 높이 솟은 능과 사람들은 시공간을 초월

해 함께 섞여 창틀 크기의 스크린을 만든다. 스크린에서 사랑, 갈
등, 시간, 공간, 우리의 사연은 현실이 된다.



창안, 내가 서 있는 여기는 창틀 스크린에 비친 영화를 바라볼
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가상의 객석일 뿐
이다. 손님인 나는 아무런 개입 없이 영화 속 주인공의 삶을 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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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바라본다. 대릉원에 누운 왕과 왕비, 귀족 부부, 그들과 함께
죽어야 했던 슬픈 이들도 여전히 등장인물이다.

비가 그치고 창을 떠나면서 영화는 끝나고 나는 다시 현실이 되
었다. 나의 현실을 멀찍이서 바라보고 싶을 때, 나에게서 나를 떼
어놓고 싶을 때, 나는 그곳으로 찾아가 창 너머 언덕만큼 커다란

능을 창틀에 담는다. 그리고 평소 좋아하던 시의 한 구절을 중얼
거린다. “창을 사랑하는 것은 태양을 사랑한다는 말보다 눈부시지
않아 좋다.”



4. 천년의 시간이 비켜간 기울기, 서악마을 능



경주고속버스터미널 바로 앞 서천교를 지나 왼쪽으로 가면 산을
닮은 능을 만난다. 저 멀리 있는 산과 바로 앞의 능이 기울기를

나란히 하고 겹쳐 있다. 산인 듯 능인 듯 능인 듯 산인 듯. 크기
만 다를 뿐 같은 기울기에 둘 다 초록이다.
세월이 만든 기울기라고 마을어른들이 일러주었다. 천 오백년 세

월이 비켜간 각도. 태종무열왕릉과 이름을 모르는 능들이 같은 기
울기로 산등성이에 줄지어 있다. 그 산의 이름은 선도산. 문희를
태종무열왕의 왕비로 만들어 준 언니 보희의 꿈에 잠긴 산이다.



그 능을 지나 마을로 난 샛문으로 나오면 서악마을이 있다. 경
주의 서쪽, 선도산 서악마을에는 유난히 능이 많다. 죽어서 가고

싶은 세계 서방정토는 서쪽에 있다고 한다. 여기가 신라의 서쪽
서방정토였나 보다. 그래서인지 경주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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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들이 산 자들을 굽어보는 서방정토에 살아 있는 사람들
이 산다. 마당에 꽃이 많고 창을 열면 능들이 환하게 펼쳐진다. 능

과 능 사이로 산책을 다니는 마을 사람들, 밤의 능 불빛은 아늑하
기까지 하다. 밤에 찾는 이들을 위해 태종무열왕릉 입구 화장실은
밤늦도록 불이 켜진다.

선도산 능의 길은 마을로 이어지고 그 길의 끝에 서악서원이 있
다.


5. 나를 보는 또 하나의 나, 서악서원 서까래


조선의 선비들은 서원에 모여 공부했다고 한다. 대청강당은 그

들의 버선발로 닳아있고 기와 끝은 글자들이 매달려있다. 여기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선비가 아니어도 서원에서 잘 수 있는 요

즘이다. 문화재를 활용한다면서 낯선 이들을 재워준다. 옛 선비들
에게 예를 갖추고 시간을 거슬러 동재에서 하루쯤 지낸들 어떠랴.



마루에 누워 천정을 보면 줄지어 선 서까래가 내 갈비뼈처럼 느
껴진다. 내 몸이 거기 엎드려 속을 내놓고 나를 본다. 나를 보는
나. 큰 대자로 편안히 누운 나를 보고 웃는다. 뼈를 드러내고. 나

도 웃는다. 편안하고 좋다.
밤이 되면 마당에서 뒷짐 지고 왔다 갔다, 바람에 들려오는 글
소리, 시간이 멈춘다, 거슬러간다, 그들을 만난다. 문풍지로 불빛

새는 방에 선비들이 글을 읽는다. 그 소리에 밤이 깊어간다.
그 환청에 마음 벅차 불 켜진 방문을 차마 열지 못하고 주저앉은

사람이 수년째 서악마을에 산다. 이제 그 방문을 열고 그들을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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났을까? 그들의 만남은 시간을 건넜을까?



나도 이제 경주에 산다. 능의 선이 고와서, 능 사이로 난 길이
아늑해서, 능과 능이 엄마의 젖무덤처럼 편안하고 따뜻해서, 죽음
과 삶을 구별 않는 침묵이 좋아서 그 천년 길을 거닐며 천년 삶에

동화되어 경주에 산다.



6. 힐링을 찾아 떠난 오붓한 자전거 여행 가족


저기 저 멀리에서 경주로 자전거 여행을 오신 자전거 가족은 맑
은 햇살아래 돌아가는 자전거 챗 바퀴처럼 마냥 좋아 입이 다물어

지실 줄 모른다.
행복 한옥마을 셔블에서는 언제나 천년의 인연으로 만난 것 같

은 풋풋한 사람냄새 나는 이야기가 모락모락 피어난다.


누구랄 것도 없이 능이 바라다 보이는 계곡에서 스스럼없이 서

로 인사를 나눈다. 인천에서 오신 부부와 이쁜 딸이십니다.
재미교포 멋쟁이 아빠 멋쟁이 엄마시랍니다.



경주 여행을 마치고 2일장 7일장 하는 아랫시장 경주 장날 가서
오디를 사고, 양파도 사고 한 아름 장보시고 인천으로 그렇게 그
리움만 남기고 가셨지요.

돌아가시는 길에 고즈넉한 뜰에 아름드리 수박을 떡하니 안겨주
시고 또 하나의 인연이 되시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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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동양철학 담은 노자의 향기 이곳에 머물다



천년의 시공간인 능 앞에는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인고의 시간
이 마냥 흐르고 있다. 그러기에 죽음은 곧 삶이다. 산 자와 죽은
자들의 소통의 공간인 이곳에는 삶과 죽음을 초월하는 왁자지껄한
자유로운 소통의 공간이 허용된다.



인문학 특강의 명 강의인 최진석 교수의 노자의 철학을 담은 이

야기는 어느새 시공간을 넘어 삶을 영위하는 자들의 마음속에 자
신을 돌아보게 하는 영험한 통찰력을 안겨준다.



어느덧 행복감이 가슴에 전달되는 통로가 되어 지치고 고달픈
이들에게 오로지 살아있음에 아름다운 감사를 드리는 자유를 마음
껏 누릴 수 있게 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조상의 지혜와 명철함이 천년의 역사에 고고히
흘러 후세들의 가슴에 면면이 흘러넘치는 것을 비로소 허락하고야
만다.



8. 아련한 조상 숨결 깃든 고향이어라



비가 개고 난 맑은 하늘에 비친 영롱한 빛이 아련한 천년의 숨
결을 느끼게 한다. 아무런 약속도 없었으나 어느새 지킬 언약에

대한 굳은 맹세가 허허로운 능의 계곡에서 서성이고 있다.


삶과 죽음이 영원한 저 능의 선상에서 저 멀리 삶을 헤쳐 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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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우리가 지켜내야 할 무언의 맹세는
비로소 이뤄지리라 하는 약속의 음성이 멀리서 들려오리라.



바닥에 누워 소스라치게 뒤척이는 풀벌레들이 가녀린 몸을 내어
준다. 불빛이 투영되어 비늘처럼 한 겹 한 겹 시간 속으로 떨어져

나간다. 새로운 놀라움의 역사가 봉긋 일어난다.



9. 안부를 묻는 사람들의 정겨운 담 터


행복 한옥마을 셔블을 다녀간 사람들의 인정이 하나하나 계절에
피어나는 꽃처럼 정겨운 인사로 아우성친다. 행복함을 담고서 여

기저기 고개를 삐죽이 내미는 꽃들이 너무 예뻐서 난리다.
오래전부터 시작된 끝나지 않은 이야기처럼 사람들의 마음속에

는 또 하나의 스토리로 이어져 오가는 인연을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안부를 묻는다.



아름다운 인정이 머무르는 곳, 시공간을 초월한 시간의 행진이
시작되며 잠자고 있는 마음을 일깨워 낸다. 그곳에는 오랜 습관처
럼 이어온 전통의 입맛이 있고 구수한 인정이 있고 편안함과 안락

함이 살아있다.


가리라, 찾아가리라. 그곳으로. 천년의 역사를 가슴에 안고 오늘

도 묵묵히 후세들의 발전과 안녕을 바라는 그곳으로 발길을 돌려
본다.

가는 것만으로도 행복이 피어나는 곳, 먹 거리 속에서 살아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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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근한 인정, 천년의 향기를 고스란히 머금고 현세의 아름다움을
피워내며 사라지지 않을 역사를 알려주며 새로운 희망을 꿈꾸게

하는 그 곳으로 마음을 돌려본다.


10. 파란 눈 외국인도 동화된 고즈넉한 능의 계곡



삶과 죽음이 내려다보이는 능의 계곡에는 역사가 훑고 지나간
삶의 애환의 자락이 훅훅 숨을 뿜어낸다. 바로 여기가 왕과 귀족

들이 살았던 인고의 삶의 터인가.


오랫동안 침묵만이 흐르는 이 곳에는 오히려 파란 눈의 외국인

들도 감사하게도 평화와 은유의 시인이 되어 우리의 역사를 되물
어 오곤 한다. 흥망성쇠도 무용지물인 허허로운 세월 앞에 조용히
무릎 꿇고 묵상 하다보면 어느새 차오르는 희망과 고요함 앞에 나

를 던져버린다.


뿜어내는 도시의 열기를 뒤로 한 채 망망한 능의 심심계곡에 와

있는 나를 돌아보고 역사의 가르침을 깨닫는 순간이다. 피어나는
욕망도 저만치 가고 살살 부는 실바람에 살며시 눈을 치뜨면 아

하, 어느새 현실 공간 속으로 살며시 회귀한다. 한낱 부귀영화도
헛되고 헛되어 봄인가 하면 여름이고, 여름인가하면 어느덧 가을
이고, 가을인가하면 겨울의 문턱에 와있는 인생의 법칙을 절로 알

게 하는 비밀의 공간이다.


11. 마음이 쉬는 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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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쫓기어 살아온 지친 마음… 느린 시간 여행 속에서 심신
을 다스리고 힐링을 하고 싶다면 천년고도. 천개의 길이 살아 숨

쉬는 경주로 오라.


삶이라는 터널을 지나가다가 잠시 숨 고르기가 필요할 때

내가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고 내가 가고자 하는 그 길이 맞는지
점검이 필요할 때,
살아온 길에 후회가 아니라 용서와 화해가 필요할 때

두려움과 불안이 아니라 희망과 용기를 찾고 싶을 때
모든 이여! 경주로 오라.



삶과 죽음의 만남.
사람과 자연의 만남.

마음을 비울 수 있는 곳.
걸어도 걸어도 푸르름을 느낄 수 있는 곳.



하늘..
능..
고분..

그리고 사람들...
오늘도 능 사이를 걷고 또 걷는다.






박수희
대구 출생. 영남대 심라학과 박사 수료. 현재 행복한옥마을 <셔블> 대표. 행복창조연구
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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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 - 「문화분권」 북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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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분권」 북토크


1회 - 이정우 경북대교수 불평등 한국, 복지국가를 꿈꾸다

























































360

2회 - 이하석 시인 연애 間

























































361

3회 - 하영식 국제분쟁전문기자 IS

























































362

4회 - 장미진 시인 볼펜 한 자루의 수명

























































363

5회 - 이대우 경북대교수 권력과 예술가들

























































364

초청강연 -전태삼, 맹문재 「전태일의 고향과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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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분권 3호


초판 1쇄 발행 / 2016년 12월 25일

발 행 인 / 김용락
편 집 인 / 김태용
발 행 처 / 한국문화분권연구소
주 소 /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504길 42
다음 까페 / http//cafe.daum.net/decenteringKorea

만 든 곳 / 문예미학사
주 소 / 대구광역시 중구 명륜로 21길 38
전 화 / (053)426-7829
팩 스 / (053)425-7829
이 메 일 / [email protected]
출판등록 / 1999년10월8일(제03-01-417호)

값 18,000원

©한국문화분권연구소 2016
ISBN 978-89-88489-62-8 03800

ㆍ이 출판물의 저작권은 한국문화분권연구소에 있습니다.
ㆍ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이용하려면 반드시 한국문화분권연구소의 서면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대표 이화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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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남 최월강 최종례 황환수 허태연 난설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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