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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by yesupraise, 2017-08-25 21:36:52

출애굽기 산책

출애굽기 산책
세상의 삶은 늘 눈에 보이는 도전이고 유혹이고 내 마음을 차지하기 위한 왕위 쟁탈전이다.
때로는 우리는 그 마음을 그 도전들에 내어주고, 그 유혹들에 던지며, 왕위 쟁탈전을 세상에게 내어주게 된다.
믿음이 아름답고 능력이 있는건...
눈에 안보여서가 아닐까.
눈엔 보이지 않지만...
절벽같은 상황에서도 한 걸음 내딛을 때...
발 밑에 다리가 만들어지고 있음을 신뢰하는 것이 믿음이다.
세상에서의 삶은 결국...
다리를 건설하는 삶이다.
결국 모두가 다리를 건설하고 있는 중이다. Exodus 의 다리이다.
일단 다리가 만들어지면...
다음엔 건너는 건 시간 문제다.
하나님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이고...
날마다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한 가지는 바로 성경의 핵심이다.
성경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네 주인이 누구야?
네 왕이 누구야?"
이다.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소유하시고 싶어하시는 하나님은 한치의 양보 도 없으셨던 신실하고 열심이셨던 모습들이 출애굽기 각 장마다 고스란히 베어있다.
출애굽기는 영어로는 Exodus 이다. 탈출이다.


세상의 도전과 유혹과 실패와 배설물에서 탈출하기 위한 지침서이기에 충 분한 말씀이기에 많은 분들과 나누려고 출판을 위해 기도해왔다. 세상에서 너무도 편하게 익숙해졌던 습관들...
그 습관들은 죄의 본성이고, 죄의 습성이고, 죄에 노예된 근성이다. 하나님의 그 죄의 노예된 근성을 뿌리뽑고 때 빼고 광내기 위한 '때광 프로 젝트'가 얼마나 섬세하게 진행되는지...
출애굽기를 함께 묵상하며 큐티하며 따라가다보면 실감하게 될 것임을 확 신한다.
Exodus... Exit to Deo 를 위한 참고서같다.
부족한 묵상이지만 이 출애굽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말씀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자신을 잡고 있는 세상의 욕심과 부러움과 죄와 열심으로부터 Exodus 하 기를 고대한다.
Exodus 는 다 버리고 떠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행복을 얻는 Exodus 이기에...
하나님께 항복하면...
행복해진다.
키에프에서... David Kim 선교사 'exodus 의 비밀'
"고난 중에 드러나는 하나님의 능력" 출애굽기 1:14
오늘은 3.1절이다. 나의 할아버지는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신 독립 군이셨고, 그분을 통해 복음이 들어왔고, 대전의 현충원에 묻히셔서 국가


유공자 가족이 되게 하셨기에 3.1절은 참으로 뜻깊은 날이다. 대한민국의 독립군이었던 할아버지를 따라 복음을 전하는 Venture 기업의 CEO(빌 4:15)로 세워주신 '하나님의 독립군'으로 복음의 전략지 이 땅으로 와서 처음 맞는 3.1 절이기도 하기에... 오늘 말씀부터는 시편이 아니라 출애굽 기가 시작이 됨을 보며 exodus 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메시 지를 받기를 소망해본다. 이 출애굽기를 통해 아직도 내 안에 남아 있는 나 의 상처와 나쁜 습관으로부터의 exodus 를 결단하기를...
구약 성경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은 '출애굽 사건' 이다. 왜냐하면 이 사 건이 '구원'하고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출애굽을 말하려고 보니 어떻게 애굽에 들어갔는가를 이야기해야 했고, 그 러다 보니 요셉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요셉의 이야기를 하면 야곱, 이삭, 아브라함을 거론할 수 밖에 없었다. 아브라함을 말하려면 하나님께 서 왜 아브라함을 부르시게 되었나 하는 배경을 알아야 하는데, 그것이 창 조부터 바벨탑 사건까지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바벨탑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왜 홍수가 있었는지, 왜 타락했는지, 왜 창조했는지 거슬러 올 라가며 그렇기에 창세기부터 구약이 시작된다는 얘기이다. 출애굽 사건을 쓰려다 보니 모세오경(창세기-신명기)이 써진 것이고 출애굽 사건 때문에 창세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출애굽 사건은 구약의 핵심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모델이 출애굽 사건, 유월절 사건이기 떄문이다. 이제 한ᄊ동안 묵상하게 될 출애굽기는 예배에 대해 가르치는 책이며, 이스라엘 조상들과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이스라엘을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해방시킨 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가면서 예배하는 공동체가 되도록 철저하게 훈련 시키시는 말씀이 시다. 우~~ 기대가 된다.
출애굽기 1:1 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야곱과 함께 각각 자기 가족을 데리고 애굽에 이른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 름은 이러하니'(출1:1)


아브라함의 유명한 아들인 이삭과 리브가 사이에서 난 쌍둥이 중 형이 에 서이고 동생이 야곱이다. 그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밤에 천사를 만나 씨름 하여 이기고 축복하여 주기를 간정하여 얻은 이름이 바로 '이스라엘' 이다. 왜 같은 사람인데 한 구절에 '야곱' 과 '이스라엘'을 같이 쓰고 있는 것일 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은, 애굽에 이르기 전까지는 하나님은 야곱에게 관 심이 있었지만 애굽에 이르면서부터는 하나님의 관심은 '이스라엘'에게 관 심이 있고 이미 하나님의 마음에는 '이스라엘' 백성을 꿈꾸셨음을 깨닫게 하신다. 그리고는 출1:2-4 까지 이스라엘 백성의 시작이 되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이 나오고 있다.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스불론, 베냐민, 단, 납달리, 갓,
아셀
이름이 나온 것을 세어보면 열 하나인데 어떻게 열 두 지파의 시작이 되는 것일까?
"하나님 이 정도는 알아요"라고 대답하며 왜 열 두 지파의 시작이 되는 지 를 말해본다.
"일단 요셉은 애굽에 있잖아요. 그럼 합이 열 둘이죠"
그런데 이 열 둘이 열 두 지파의 시작이 되는 것이 아니다. 르우벤 지파는 르우벤이 아버지의 소실을 건드려서 나중에 가나안 땅을 분배받지 못하고 암몬 족의 땅(습지)를 분배받고 열 두 지파에서는 제외되고, 요셉을 대신해 그의 아들 둘을 지파에 포함시켜 영원함을 의미하는 열 두 지파가 된다. 즉,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스불론, 베냐민,
단, 납달리, 갓,
아셀, 므낫세(요셉의 첫째 아들), 에브라임(요셉의 둘째 아들)
이렇게 열 두 지파에 대한 궁금증이 풀렸다.


'야곱의 허리에서 나온 사람이 모두 칠십이요 요셉은 애굽에 있었더라 '(출1:5)
출애굽기는 야곱에게서 시작되는데, 기근을 피해 70 명의 가족을 데리고 애굽으로 들어간 피난민이지만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 있기 때문에 애굽의 비옥한 고센 땅에 거주하며 많은 혜택을 누리며 생육하고 번성하게 된다. (창47:27) 이 70 명의 야곱 가족은 거의 430년(출12:40) 동안 장정만 60만명(창12:37)으로 여자와 어린아이까지 포함하면 적어도 200만 명 이상이 온 땅에 가득하게 되는데 그 시작이 바로 '야곱의 허리' 였음을 말씀 하신다. 이 허리가 바로 얍복강 가에서 천사와 씨름하며 상처를 입었던 곳 이고, 이 상처의 출발점이 바로 생명의 출발점이고 온 땅 가득한 풍성함의 출발점이다. 이 같은 백성의 규모는 하나의 독립국가를 형성하기에 충분한 숫자였다.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 게 되었더라'(출1:7)
왜 요셉은 애굽의 총리였는데 왜 이스라엘백성이 애굽의 노예로 전락했 나?
이 궁금증을 한번 알아보라는 마음을 주시기에 조사해 보았다. 이것을 푸 는 열쇠는 출1:8 이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출1:8)
왕에 버금가는 최고위층인 요셉의 가족이 애굽에 들어갔는데 왜 노예가 되 었을까...
BC 3세기 Maneto라는 학자가 이를 설명하는 힉소스 학설(일명 목동 왕 학설)을 내놓았고 꽤 일리가 있어 받아들여졌다.
이 '힉소스 학설'은
주전 1720년경부터 시작된 힉소스족의 애굽(이집트) 통치(15-16왕조) 는 주전 1550년경까지 계속되었다. 메소포타미아의 기마왕국이 애굽을 쳐들어가 다스리게 되면서 애굽 땅에 있는 유목민족 출신의 요셉을 총리로


세웠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기록이 없냐 하면 애굽역사는 패배는 역 사에 기록하지 않기 때문에 이 기마왕국이 애굽을 다스리던 150년은 애굽 의 아무 기록이 없는 애굽역사 암흑기 이다. 이를 뒷바침하는 말씀들이 군 데 군데 힌트로 나오고 있다.
창41:43 의 '버금수레' 는 기마민족이 사용하는 것이고,
창47:6 에서 '내 가축을 관리하게 하라'는 것은 목축을 하는 사람들이기에 왕조가 중요한 부분을 같이 하게 됨을 의미하며,
창47:19-20 에서 바로 왕이 땅을 사는 모습은 힉소소가 지방 지주계급의 땅을 가뭄을 이용해 사들여 재배치함을 뜻하고 있다.
이 시기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는 야곱 가족의 이집트 이주 및 이집트 생 활은 이집트의 제18왕조를 창건한 아모세(Ahmose, 1552-1527년)가 힉소스족을 몰아내고서 수도를 힉소스족의 수도인 아바리스(Avaris)에서 테베(Thebes)로 옮긴 이후로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이집트의 행정 체제 가 이민족의 지배 체제로부터 이집트 본토인들의 직접 통치 체제로 급격하 게 바뀌면서, 야곱의 후손들은 요셉의 때에 누리던 특권을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된 것이다. 남아있던 이스라엘 백성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 결국 가나안 땅의 극심한 흉년을 피하기 위해 애굽 땅으로 이주했는데 이 '도피의 땅' 은 '속박의 땅' 이 되었다.
출애굽기 1:8의 ‘요셉을 모르는 새 왕’은 아마도 이 아모세를 가리킬 것이 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위기 상황은 제 19왕조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제 19왕조의 첫 왕인 세티 1세(Seti I, 1305-1290년)는 힉소스족의 옛 수 도였던 아바리스를 재건축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 작업은 그의 아들 라암세스 2세(Rameses II, 1290-1224년)에 의해 계속 추진되었다. 특 히 라암세스 2세는 델타(나일 삼각주) 지역의 곡식 저장 도시인 비돔 (Pithom)과 라암셋(Rameses=아바리스)을 건설하였는데, 이 때에 이 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 국가의 노예로 전락하여 그러한 건설 현장에 강제 로 동원되었다(출 1:11). 히브리인들의 출애굽은 아마도 이 라암세스 2세 초기(1280년경)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라암세스 2세는 출애


굽 당시의 파라오(Pharaoh)였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렇게 해서 출1:8 의 궁금증이 해결되었다. 뿌듯~~~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출1:10)
하나님 께서는 출1:1 에서 이미 애굽에 이르기 전 야곱과 애굽에 이른 후 이스라엘로 달리 부르시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만드실 것을 계획하셨고 그 대로 이스라엘 백성은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애굽의 반응은 출1:10 과 같이 '지혜롭게 하자' 하면서도 결국은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로 만들고 탄압하는 것이 지혜라고 선택한다. 그러나 exodus 의 주 제인 출1:12 의 하나님의 지혜에는 정 반대의 선택을 하게 된다.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출1:12)
'QT로'를 산책하며 묵상을 하는데 exodus 에 대한 그림을 이렇게 주신 다.
어려움과 고난이 마구 밀려올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애굽의 지혜처럼 그 밀려오는 어려움과 고난을 못오게 막는 것이 방법일 까?
주신 그림은 이런 그림이다.
"지금 자동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차가 호수에 빠졌다. 어떻게 할래?" 라고 하시며 주시는 그림이다.
호수에 빠진 차 안에서 밖에는 물이 가득하고 자동차 문만 열리면 헤엄치 고 나오겠는데 그 자동차 문은 절대로 열리지 않는다.
밀려오는 어려움과 고난이 차 안으로 마구 들어오려고 할 때 그 어려움들 이 못 들어오게 막는 것으로는 절대로 문은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 차 문을 열고 그 호수에서 헤엄쳐 나오려면 그 어려움과 고난의 물이 차 안 으로 가득차야 한다. 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 자동차 문은 스르르 열리게 된다. 이렇게 어려움과 고난이 가득차고 나서야 스르르 열리며 밖 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 exodus 이고 이 어려움과 고난이 차 안 가득차도 록 밀려올 때 '하나님 의지해' 참고 기다리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이고


exodus 임을 깨닫게 하신다. '야곱의 허리'(출1:5)처럼, 상처의 출발점이 바로 생명의 출발점이고 온 땅 가득한 풍성함의 출발점이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처럼 주변의 상황으로 인해 어려움과 고난이 밀려온다 면 그 고난이 턱에 찰 때까지 '하나님 의지해'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이 애 굽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들어 내는 인큐베이터로 사용하신 것처럼, 그 어려움과 고난의 상황은 나를 더욱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는 믿음을 만 들어 내는 인큐베이터로 사용하심을 확신한다.
주님. 이스라엘을 인도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이 되기까지 '하나님의 지 혜'를 드러내신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그러기에 더욱 '하나님 의지해' 나아 가는 길이 세상이라는 애굽에서의 exodus 임을 믿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을 인큐베이터에 두시고 이끄신 것처럼 이 땅의 백성들도 '하나님의 지 혜'로운 계획 안에서 인도함을 받는 자들 되기를, '하나님 의지해' 기다리는 자들 되기를 소망합니다.
'흥왕의 비밀'
"하나님을 경외할 때 복이 임합니다"
출애굽기 1:15-22
오늘 말씀은 하나님을 경외할 때 축복을 받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특히 '집안을 흥왕하게'(출1:21) 하기를 원한다면 이 '흥왕의 비밀'을 오늘 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는 말씀인데, "어디 한번 찾아볼래? 보물찾기다 ~"라는 마음을 주신다.
우선 이 '흥왕의 비밀'을 얻은 사람들은 바로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 이 다. 애굽 왕은 이스라엘 백성의 많은 수가 두려웠던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 의 히브리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 했던 것이다. 애굽왕 바로가 두려워


했던 이스라엘 백성의 많은 수는 그들이 다른 나라와 내통하여 반란을 일 으킬 경우 애굽에 위협이 되고 또한 그들을 모두 놓쳐버리게 될것이기 때 문이었다. 왜냐하면 노예란 당시에 아주 큰 재산이었고, 노예가 많다는 것 은 그만큼 권세가 높고 재물이 많다는 의미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 로는 그들을 계속 붙잡아 두기 위해 적절한 숫자를 유지시키기 위한 계획 을 세워야만 했다.
이 계획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위배되는 행위였다. 하나님은 이스라 엘 민족을 큰 민족으로 만들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이들을 애굽이라는 인 큐베이터로 이끄셔서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고 하나님의 나라로 인 도하기로 하셨다. 이것은 노예를 확보하려는 바로와 하나님의 백성을 만들 고자 하는 하나님의 줄다리기이다. 바로 이제부터는 바로와 하나님간의 이 스라엘 백성에 대한 소유권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출애굽기 1장은 이 하나 님과 바로와의 싸움이 시작됨을 알리는 기록이다.
이 하나님과 바로와의 싸움에서 하나님을 선택하고 경외한 산파들은 하나 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는 축복을 얻는다.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신지라'(출1:21)
잠9:10 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했다. 여기서 권력자인 애굽 왕의 지혜와 미천한 산파들의 지혜를 비교해보게 된다. 누 가 더 지혜로운가?
당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더 지혜롭다!!
이 '흥왕의 비밀'을 깨닫기 위해서는 말씀을 거꾸로 읽으면 좀 더 쉽게 알 수 있다는 마음을 주신다.
바로는 큰 고역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힘으로 번식을 막아 보려고 했 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학대를 받을 수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출1:12)하 여 갔다. 이 한마디는 앞으로 있을 하나님과 바로와의 싸움에 벌써 승부가


난 것을 예시한 구절이다. 그러자 바로는 더 악랄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바로는 사내 아이가 태어나면 나일강에 던질것을 명령하였다.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은 여자만 남게되고 후에는 이스라엘은 모두 애굽에 동화 되어 버 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하나님 백성을 세상화로 만드기 위한 계획이었다.
'흥왕의 비밀'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출1:21)이었 고, 애굽이라는 세상의 권위 보다 하나님을 먼저 두는 것이며 더 큰 가치를 보는 것임을 깨닫게 하신다. 이는 그저 경외하는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 기들을 살린지라'(출1:17)
'흥왕의 비밀'은 세상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아니 세상에 대해 선 담대하고 오직 하나님만이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비록 그 선택 이 세상으로부터 불이익을 얻는 선택이라고 위협할지라도... 왜냐하면 이 위협보다 정작 두려워하여 할 대상은 하나님이심을(출1:17) 아는 것이 '흥 왕의 비밀'을 얻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 '흥왕의 비밀'을 깨닫게 하시고 '흥왕'을 주시고 싶어 하신다. 그래서 이런 '흥왕의 비밀'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 두시기를 원하신다. 이 선택의 상황은 결국 애굽 왕이라는 세상과 하나님 중 어디에 더 가치를 두 는 선택을 할 것인가 하는 상황이다.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사람과 부아라 하는 사람에게 말하 여 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 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출1:15-16)
지금 이 상황은 애굽 왕이 이스라엘 백성의 온 땅에 덮임을 두려워 한 나머 지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를 불러 그들로 하여금 '과실치사 빙자 살 인'을, 히브리 남자 아이들이 태어날 때 죽이라고 명령하는 애굽 왕이다. '흥왕의 비밀'을 누릴 산파들은 이런 상황에서 세상의 가치와 하나님의 가


치 중 어디에 가치를 둘 것인가를 선택한다.
내가 하나님에 더 가치를 두고 선택하는 상황은 어려운 상황이 아니라 오 히려 하나님이 나를 더 가치있게 만들고 같이 하시는 축복의 상황이기 때 문에 여기에 '흥왕의 비밀'이 있다. 셀라~~
주님. 저에게 '흥왕'을 주시고 싶어 '흥왕의 비밀'을 누리는 상황 속에 두심 을 감사드립니다. 세상보다 하나님이 더 가치있다고 고백할 때 하나님도 저를 가치있는 존재로,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는 존재로 세우심을 고백합니 다. 이 땅도 하나님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고 이를 선택하는 '흥왕의 비밀'을 누리는 땅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완벽한 구원 세팅' "모세를 준비하시는 하나님"
출애굽기 2:1-10
오늘 말씀은 태어나는 사내 아이는 다 나일강에 던져 버리라는 애굽 왕의 명령이 있은 다음에 레위 족속 아므람과 요게벳 사이에서 태어난 모세의 출생 스토리이다.
하나님의 선택은 반드시 편한 길, 쉬운 길만은 아니다. 모세의 형 아론이나 누이 미리암처럼 애굽 왕 바로의 탄압 이전에 태어나게 하셨으면 쉬운 길 이었지만, 그리고 그렇게도 하실 수 있었겠지만 이렇게 애굽 왕 바로의 탄 압 하에 출생하게 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람은 진정으로 하나님이 아니시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 가운데 태어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 의 영적인 출생도 이렇게 모세의 출생과 오버랩 해보며 출생의 메시지를 들어본다.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출2:3)
출애굽기의 비밀, exodus 의 비밀은 가득 차야 한다는 것이다. 고난의 물 이차안에가득차야문이스르르열리듯, 나의고통의때가아닌하나님의 때가 가득차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exodus 는 내가 아닌 하나님이 하시는 구원사역이기 때문이다. 출2:3 에서도 이 하나님의 때가 찼음을 나 타내고 있다. '더 숨길 수 없게 되매'(출2:3) 역시 사람이 어쩔 수 없는 하 나님의 때가 찬 것이다.
이제 모세는 나일강에 버려져야 하는 상황이다. 모세를 낳아 준 부모인 아 므람과 요게벳도 세상도 모세를 보호하고 구원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렇 게 아무도 없는 것 같은 두려움의 파도가 세상을 덮더라도 이런 상황에 보 잘 것 없는 '갈대 상자' 와 '역청' 과 '나무 진'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마 련하시는 구원 상자고, 일인용 노아의 방주이고, 일인용 구원의 방주 이다. '모세'의 이름 뜻에서 Mo(물) + Ses(건져낸 자) 즉 '물에서 건져낸 자' 이 다. 난 여기에 다른 뜻을 붙이고 싶다. '최초의 일인용 구원의 방주를 탄 자' 로...
출2:4 에 나온 모세의 누이는 나중에 이스라엘의 여선지자로 활동한(출 15:20) 미리암이다. 역시 똘똘하게 어렸을 때부터 선지자의 기질이 있었 나보다. 미리암도 사람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모세가 일인용 구원의 방 주를 타고 어떻게 구원이 되는지를, 하나님의 일하심을 본다는 것은 훗날 그의 믿음을 크게 좌우했으리라 생각이 들며 여선지자로 세우기 위한 하나 님의 미리 일하심을 보게 된다.
아이러니 하게도 히브리 남자 아이들을 다 죽이라는 애굽 왕 바로의 딸이 모세를 살리게 된다. 사람으로서는 계획할 수 없는 완전한 하나님의 세팅 이다.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나일 강 가를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출2:5)


하나님이 마치 영화 연출의 메가폰을 잡고 정확한 타이밍에 "큐~" 하시는 모습이시다.
하나님의 메가폰은 감정까지 넣도록 상황을 세팅하신다. '불쌍히 여겨'(출 2:6)
하나님은 바로의 딸 마음을 움직이셔서 감정과 생각과 보는 것을 바꾸신 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가지는 특권이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 나님이 상황을 바꾸시고, 생각을 바꾸시고, 관계를 바꾸시는 역사를 기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에이 그래도 우연일지도 모르지"라고 할 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세팅은 그럼 더 나아간다. 모세의 친 어머니 요게벳을 유모로 연 결하기에 이르고, 자기 아이에게 젖 주고 삯으로 돈까지 받도록 세팅하신 다. 아마도 세상의 모든 어머니의 꿈일지도 모르는, '자기 아이보며 돈도 받기'가 바로 왕의 탄압 속에서 가능하게 하신다. 이젠 우연을 운운하는 사 람들의 입이 막혔을 거 같다.
이 '하나님의 완벽한 구원 세팅'을 모세와 오버랩한 나의 영적 출생에서도 같은 모습으로 일하셨음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연출 메가폰에 집중하는 삶 이 바로 이 완벽한 구원 세팅의 역사를 가까이서 보는 삶임을 깨닫게 하신 다.
주님. 하나님의 완벽한 구원 세팅이 각자에게 임했음을 감사드립니다. 이 '하나님의 완벽한 구원 세팅'이 이 땅에도 이미 시작되었으며 각자에게 맞 는 '일인용 구원 방주'를 하나씩 나눠주기를 소망합니다.
'모세의 애굽 왕궁에서의 exodus' "히브리인인가, 애굽의 왕자인가?"


출애굽기 2:11-22
오늘 말씀에서 모세를 역청바른 갈대상자라는 '일인용 구원 방주'로 구하 셔서 기가막힌 연출로 바로의 딸의 아들, 그러니까 바로의 손자가 되게 하 신 하나님은 출애굽기의 비밀을 또 노출시키신다. 이 exodus 의 비밀은 가득 차야 하는 것이다. 고난의 물이 차 안에 가득차야 문이 스르르 열리 듯, 나의고통의때가아닌하나님의때가가득차야한다는것이다.왜냐 하면 exodus 는 내가 아닌 하나님이 하시는 구원사역이기 때문이다. "앞 으로 이 가득 차야 하는 exodus 의 비밀은 출애굽기를 통해 수없이 발견 하게 될거다~"라는 음성은 출애굽기를 더 기대를 가지고 보게 만드신다.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 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 을 본지라'(출2:11)
'모세가 장성한 후에'...
딩동~~ 이 대목은 나이가 가득 찼음을 알리는 신호이고, 또 하나의 exodus 의 비밀이다. 왕궁에서 받은 교육과 필요한 문물을 익힌 다음, 다 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발진을 하고 있는 중임을 알리는 신호이다. 이렇 게 exodus 의 비밀인 '가득 찼음'을 알리는 신호가 되면 어떤 사건이 일어 나고 그들 통해 강권적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신앙 의 여정이 아닐까...
어쩌면 '모세의 애굽 왕궁에서의 exodus' 는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을 먼저 홀로 경험하는 사건이고, 출애굽의 예행연습이고, 모세라는 한 개인 의 exodus 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말씀을 통해 주시는 마음은, 이렇게 각 자 마다의 exodus 가 있다는 것이고 나에게는 'David 의 exodus' 를 경 험했던 것은 하나님의 강권적인 개입이 시작되었다는 구원의 발진이었음 을 깨닫게 하신다. 이제 모세의 exodus 는 왕궁에서 다음 단계로 가기 위 한 발진의 방향이 필요했다. 그 방향은 바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었 고 그 방향은 '나는 누구인가'하는 정체성을 찾는 것이었다. 지금 모세에게


놓인 정체성을 위한 질문은 히브리인인가? 아니면 애굽 공주의 아들인가? 에 대한 질문이다.
개인의 exodus 는 바로 하나님 앞에 나는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을 찾는 방향으로의 exodus 가 먼저 일어남을 말씀하신다. 그동안 익숙했던 생각 들, 방법들, 습관들, 환경들로부터의 exodus 는 하나님 앞에 진정한 그리 스도인이 될 것인가 아니면 세상의 수많은 그리스도인 중의 한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정체성을 향한 exodus 임을...
'그가 이르되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출 2:14)
이 말씀은 모세가 바로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이 될 것을 암시하는 말씀이다. 여기에도 exodus 의 비밀이 있음을 말씀하 신다. 그동안 찾아왔던 exodus from 의 비밀이 아니라 exodus to 의 비밀임을... 하나님의 때가 가득차게 되어 모세가 장차 exodus to 이스라 엘 백성을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이 될 것을 알리는 신호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늘 나에게 미리 암시하시며 그분의 뜻을 알려주시는데 내 가 주의 깊게 보질 못해서 때론 그분의 뜻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 된다.
모세는 동족을 돌보다가 애굽 사람을 죽이게 되고, 바로를 피해 미디안 땅 으로 피하게 된다.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하나님의 인도를 이 뤄내시는 모습을 보며, 지금도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상황 가운데 있는 모두 에게 격려의 말씀이 되신다.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너를 인도할 exodus to 가 시작되었단 다."
세상의 눈으로 보기에는 피한 곳이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엔 그곳은 피한 곳 이 아니라 하나님이 모세로 하여금 정체성을 찾도록 하는 곳이 바로 미디 안 땅이다. 그 땅에서 모세는 가족을 그리고 동족 히브리인을 돌보는 것이


자신의 정체성임을 발견하는 시간을 갖는다. 미디안의 제사장 이드로의 딸 십보라를 아내로 맞이하는데, 왜 '십보라' 이름을 보면 '십자가를 보라'라는 말이 생각이 나는 걸까?^^...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은 그게 바로 정체성이라는 것이다. 내 안에 십자가 가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이 십자가를 통해 보이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라는 것이다.
지난 주엔 내가 좋아하는 미국 선생님들과 저녁식사를 같이 하면서 성경에 서의 '겨자씨 믿음의 비밀' 과 베드로가 잡은 물고기 '153 마리의 비밀'을 수학으로 푼 얘기를 해주며 그들도 그리고 설명해주는 나도 뭔가 성령님이 마음을 찌잇찌릿하게 하시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성경을 수학으로 접근할 수 있을까? 라고하며 억지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내 안에 가득 한 것을 통과하여 보는 것이 그 사람의 정체성이고, 내 안에 가득한 십자가 를 통해 말씀을 보고 단어를 보고 수학을 통해 말씀을 보는 것이 '나'라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임을 깨닫게 하신다. 이렇게 나에게 정체성을 갖도록 나의 부질없었던 삶으로부터의 'David 의 exodus' 를 강권적으로 개입 하셔서 구원을 이루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린다~~~
주님. '모세의 애굽 왕궁에서의 exodus'를 보며 하나님께서 저의 삶에 강 권적으로 개입하셔서 일하신 저의 exodus 를 깨닫게 하심을 감사드립니 다.이exodus는from 이중요한것이아니라to가중요하며그to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길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길로,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는 길로 가야함을 깨닫습니다. 이 세상의 삶으로부터의 exodus 가 이 땅 백성들에게도 일어나게 하시고, 각 개인의 삶에 exodus 가 있게 하 시고, 'exodus to 구원'의 역사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모세를 통한 QT 세미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출애굽기 2:23-3:6
어제는 오래 전에 이 땅에 선교사로 오셔서 수많은 교회들을 세우시고 카 작인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바꾼 김삼성 선교사가 세운 은혜교회에 가서 예 배를 봤다.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오천명이 되는 현지인들이 온 맘을 다해 찬양하며 예배를 드리는 모습은 이 땅에 새로운 소망이 있음을 보았고 성 령께서 하신 그 기적들 앞에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다. 예배시간이 길면 불 평이 많은 보통의 교인하고는 달리 이 소망 있는 현지인 그리스도인들은 예배시간을 재보니 2시간 15분이었다. 특이한 것은 아주 많은 사람들이 노트북 컴퓨터를 꺼내 현지인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을 가능한 다 담으려고 타이핑하는 모습이었다. 이를 보며 이들이 얼마나 말씀을 사모하고 있는지 를 보게 하시며 이 땅에서 이들을 섬기는 방향을 깨닫게 하시는 시간이었 다. 그리고 참 좋았던 것은, 현지인 목사님의 설교가 끝나고 모두들 앉은 자리에서 옆 사람들과 삼삼오오 그 설교말씀을 통해 은혜 받은 것을 나누 는 시간이었다. 그저 형식이 아니라 모두가 진지하게 나누는 모습이 거의 10-15분 계속되었다. 이때 들었던 생각이
"하나님. 이들에게도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는 QT 가 있게 해주세요."라고 기도를 올려드렸다
오늘 말씀은 미디안 땅으로부터 모세를 부르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모세에 게 직접 나타나시는 장면이다. 모세가 40세에 미디안 광야로 가서 거의 40년을 보낸 후에 일어나는 사건으로 오늘의 출애굽 힌트를 발견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출애굽기를 처음 시작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셨던 마음이 이 힌트들을 잘 찾아보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 께 상달된지라'(출2:23)
하나님은 출애굽기의 비밀을 오늘도 또 노출시키신다. 이 exodus 의 비 밀은 가득 차야 하는 것이다. 고난의 물이 차 안에 가득차야 문이 스르르 열


리듯, 나의 고통의 때가 아닌 하나님의 때가 가득차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 하면 exodus 는 내가 아닌 하나님이 하시는 구원사역이기 때문이다. 출 2:23 말씀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부르짖는 탄식소리가 가득 찼음을 나타내 고 있다. 하나님께 상달될 정도로 가득 찼다는 것이다. 이런 '가득 찼음'의 신호는 이제 또 다른 사건을 전개하기 위한 신호탄이 되고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출2:25)은 하나님께서 이제 때가 되었음을 감지하 시는 힌트같이 들린다.
이제 모세가 하나님을 처음으로 만나는 장면을 유심히 보며 나도 하나님과 의 대면할 준비를 이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내산이라고 불리던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아무리 타도 나무가 사라 지지 않음을 보는 것으로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는 사건은 시작이 된다. "포인트 1: 하나님과의 만남은 하나님이 시작하신다."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 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출3:3)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을 보며 그저 유심히 보지 않고 지나치는 것이 아 니라 '돌이켜 가서'(출3:3)의 시간이 필요함을 보게 하시며, 말씀이신 하 나님(요1:1)을 말씀 속에서 만날 때에 이 '돌이켜 가서'는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을 통해 무엇을 보이시려는가? 를 알아보고자 하는 '묵상' 임을 깨닫게 하신다. 이것이 바로 모세가 한 첫 번째 반응이다.
"하나님이 시작하신 사인을 돌이켜 가서 보며 묵상하는 것이 내가 할 첫 번 째 일이다."
그리고는 '어찌하여'(출3:3)의 질문을 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에 대한 관심을 전적으로 드러내는 모습이다. 이것은 말씀이신 하나님 (요1:1)을 말씀 속에서 만날 때에 '돌이켜 가서'는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을 통해 무엇을 보이시려는가? 를 알아보고자 하는 '묵상' 이라면, 이 '어찌하 여'(출3:3)은 말씀에서 내 마음에 만들어 주시는 질문들을 성령님께 묻는 '어찌하여' 이고, QT 에서의 가장 중요한 단계이고 축복인 '성령님 가정교 사'에게 묻는 Question Time 이다. 이것이 모세가 한 두 번째 반응이다.


"포인트 2: 하나님께서 보이시는 것에 질문하며 모든 관심을 집중하는 것 이 내가 할 두번 째 일이다."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출3:4) 하나님과의 만나는 사건은 하나님이 시작하시기에 처음부터 시작하신 곳 에서 모세의 반응을 다 보고 계신다. 하나님과의 일대일의 만남은 이런 신 뢰로부터 시작한다. 내가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것을 돌이켜 가서 묵상하며, '어찌하여'의 Question Time 을 가 질 때 하나님은 나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며 바라보고 계신다는 신뢰가 묵 상을 더욱 값지게 한다.
"포인트 3: 하나님께서 나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며 바라보고 계신다는 것 을 신뢰하는 것이 내가 할 세 번째 일이다."
그러고 나면 하나님이 모세를 만나 "모세야 모세야"(출3:4)하시는 음성 을, 그리고 "내가 여기 있나이다"(출3:4)의 반응을 하는 하나님과의 교제 가 시작이 된다.
모세와 하나님과의 첫 만남에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있음을 알려주 는 말씀이 바로 출3:5 말씀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하나님. 왜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하셨어요?" 하고 '어찌하여'(출3:3)의 질 문을 하는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은
"나는 괜찮은데... 나와 가까이 있으려면 네겐 죽음을 의미한단다. 그건 나 중에 천국에서 실컷 할 수 있거든. 그리고 지금은 내가 네게 이 세상에서 하 기를 원하는 일이 있기에 아직 죽으면 안돼. 그래서 가까이 오지 말라는 말 이란다."
"네. 그럼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말씀은요?"하고 '어찌하여'(출3:3)의 질 문을 하는데 성령님 가정교사는 너무도 자세히 설명해 주신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출3:5) 말씀은 바로 하나님과 모세가 처음으 로 만나는 장면이고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장면이다. 이를 보며 '코람데오 (Coram Deo, 하나님 앞에서)'의 말씀을 주신다. 하나님 앞에 선 땅이 거 룩한 땅이라는 의미보다는 하나님 앞에 있기에 거룩한 상태임을 말씀하신 다. 내 삶 속에서도 삶의 모습이 어찌하든지 하나님 앞에서의 '코람데오'의 삶은 거룩한 삶이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임을 깨닫게 하신다.
이렇게 '코람데오'의 삶은 바로 '발에서 신을 벗는'(출3:5) 삶임을 말씀하 신다. 신은 바로 그 사람의 발걸음을 나타내며 그 사람의 삶을 의미한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3:5)는 말씀은 모세를 애굽 왕궁으로부터 exodus 후에 다시 미디안 땅으로부터의 exodus 를 요청하시는 ‘하나님 의 요청’임을 의미한다. 또한 하나님을 만나기 전의 삶의 모양으로부터의 exodus 를 말씀하신다. 그게 바로 신을 벗는 의미이고, 하나님을 만나기 이전의 삶으로부터의 exodus from 이며, 하나님 앞에서의 '코람데오'의 삶으로의 exodus to 를 말씀하신다.
가만히 보니까 모세가 하나님을 처음으로 만나는 이 장면이 바로 QT를 통 한 하나님과의 만남과 교제이고, QT 책을 폈을 때가 바로 ‘영적 호렙산’ 앞 에 있는 때임을 깨닫게 하신다. 모세와 하나님과의 만남처럼 하나님과 나 와의 만남도 이렇게 QT를 통해서 매일마다 가능함을 말씀하신다. 셀라~~ "하나님. 이거 저 아테네 가서 QT 세미나 할 때 사용하라고 주시는 거 맞 죠?"
주님.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는 장면을 통해 다시 한번 QT 가 바로 하나님 을 만나는 '영적 호렙산'임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땅도 이 '영적 호 렙산'으로 가득 덮이도록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기 이전의 삶으로부터의 exodus from 과 하나님 앞에서의 '코람데오'의 삶으로의 exodus to 가 시작되기를 소망합니다.


'나는 너의 존재 이유이다'
"스스로 존재하는 분의 보냄을 받다"
출애굽기 3:7-14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exodus 의 비밀인 '가득찼음'을 감지하 시는지, 적용하면 내게는 언제가 하나님이 일하실 때인지를 묵상하게 하신 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 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출3:7) 하나님께서는 '내 백성의 고통'을 이미 알고 계셨다.
'분명히 보고(have seen)' 와 '부르짖음을 듣고(have heard)'는 모두 현재 완료형태이다. 다시말해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백성의 고통이 시작 한 때부터 지금까지 이미 보시고 듣고 계셨음을 말씀하신다. 하지만 '가득 찼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exodus 는 불발이기에 그 때를 기다리셨음을 알리는 단어가 '그 근심을 알고(I am concerned)' 이다. '분명히 보고 (have seen)' 와 '부르짖음을 듣고(have heard)' 처럼 현재 완료형이 아니라 현재형 수동태로 '가득찾음'의 때가 오기까지는 그 근심을 수동적 으로 외면하고 싶었던 하나님의 마음이 들어 있는 듯 하다. 이제 그 '가득찾 음'의 때가 왔기에 이제 드디어 "내가 안다"라고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마 음이 아닐까...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 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 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 라'(출3:8)
여기서도 '내가 내려가서(I have come down)'는 현재 완료형 시제로 그들의 고통 속에 그리고 부르짖음 속에 처음부터 같이 계셔왔음을 말씀하 신다.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의 소리에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같이 하신 것처럼, 이 땅의 고통과 나의 고통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오셨음


을 깨닫게 하신다.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출3:9)
이제 바로 '가득찼음'을 알리는 마지막 신호들이(내게 달하고, 내가 보았으 니) 하나님께 접수되며 드디어 exodus 의 때가 되었음을 하나님께서도 흥분하시며 알리시는 순간이다. "이제 가라!" 라는 말이 그 이유보다 앞서 말하시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 만큼이나 하나님도 이 때가 됨을 기다려 오 셨다는 마음을 주신다.
그런데 출3:8 에서 하나님이 이미 내려 가셨다고 했는데 모세에게 '이제 가라'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
하나님이 세상을 맘대로 움직여 가셨더라면 이 세상에 필요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고, 나에게 임한 구원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은 없 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번성하고 다스리라"는 축복을 창세기에서 선포하 신 이래 하나님이 직접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 들이 하도록 위임하셨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켜 가나안 땅으로 이끌 위임자를 모세로 택하신 것이다. 모세가 하는 것 같지만 모세는 도구 이고, 그 도구를 쥐고 계신 하나님을 봐야 함을 깨닫게 하신다. 나의 삶에 서도 소명을 받으며 "이제 가라!"의 음성을 받았음을 기억하며 내가 헌신 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고 나는 그저 도구임을 깨닫게 하신 다. "이제 가라!"는 말씀은 "너는 내 도구다."라는 말씀과 동일함을...
삶 가운데 진정한 exodus 의 비밀을 누리려면 "이제 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릴 때까지 '가득 찼음'의 신호들이 하나님께 접수될 때까지 기 다릴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기다릴 때 드디어 exodus 의 비밀이 드러나 게 된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 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3:10)


그런데 자신을 도구로 사용하시겠다는 하나님 앞에서 모세는 '내가 누구이 기에'(출3:11)하면서 자신을 정체성을 세상의 눈으로 보고 있다. 세상의 눈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보면 모세는 살인자이고, 양치기이고, 80세 노인 이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보면 세상 모두가 죄 가운데 있 는 살인자이고, 출애굽을 40년 동안 양무리로 예행연습을 한 모세이며, 80세 노인이기에 자신을 내세우지 않기에 진정한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출3:11)
정체성 훈련을 40년이나 한 모세도 이러는데 가끔은 하나님께 헌신한 나 도 이런 세상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며 위로를 받는다. 진정한 정체성은 내가 나를 보고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사용 하시는 그 분에 의해 결정됨을 깨닫게 하신다. 하나님의 일에는 모세가 중 요한 것이 아니고 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모세에게 지 시하는 또한 나에게 지시하는 분이 누구인지 이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출3:12)의 말씀을 신뢰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올바른 정체성이 다. 올바른 정체성은 나를 향한 '내가 누구이기에' 가 하나님과 함께 하기에 눈 앞의 상황과 고난과 사탄을 향해 '네가 누구이기에'로 바뀌는 것임을 깨 닫게 하신다.
그래도 자신이 없어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그들에게 보낸 하나님,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출3:13)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까요? 하고 질문 하기에 이른다. 나도 모세처럼 그렇게 질문할 것 같다. "그 사람들이 나를 뭘 믿고 따를까요?"라고 말이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 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출3:14)
'스스로 있는 자(I AM WHO I AM)'가 무슨 뜻일까?


이 뜻은 히브리 원어발음으로는 Ehyeh-Asher-Ehyeh(에희애 애썰 에 희애) 인데, 이 말을 통해 무었을 뜻하시고자 하시는 것일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마음은, 이 I AM WHO I AM 은 계속 영원히 반 복된다는 것이다.
I AM WHO I AM WHO I AM WHO I AM WHO I AM...
여기의 WHO 에 하나님의 성품을 넣어가도 끝이 없는 분이시라는 말씀이 시다.
I AM Creator I AM Sovereign I AM Eternal I AM Omniscient I AM Omnipresent I AM Omnipotent I AM Immutable I AM Merciful I AM Veracity I AM Righteous I AM Just I AM Love I AM Way I AM Truth I AM Life...
또한 내가 어떤 일을 하며 불가능하다고 할 때마다 "나는 너를 선택하는 것 도 가능하단다"라시는 I AM WHO I AM 이시고, 내가어떤사람은사랑하기가정말힘들다고 할때마다"나는너를사랑하 는 것도 가능하단다"라시는 I AM WHO I AM 이시고,
내가 내 안에 있는 상처로 인해 자존감이 낮아질 때마다 "나는 그런 너를 가지려 예수를 버렸단다"라시는 I AM WHO I AM 이시다.
이 모든 말씀을 한마디로 말하면 이렇게 됨을 고백한다.
"나는 너의 존재 이유이다. I AM WHO I AM."
주님. 주님이 저의 존재 이유가 되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늘 삶의 어떠한 상황도 처음부터 함께 하시는 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진 정한 정체성임을 깨닫습니다. 늘 삶 속에서 "너는 내 도구이다."라고 말씀 하시는 "이제 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까지 기다리는 자가 되기 원 합니다. 이 땅에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내 백성'을 인도할 모세가 곳곳 에 세워지기를 소망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번지 점프'


"하나님의 비전을 나누십시오" 출애굽기 3:15-22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비전을 어떻게 따르고 어떻게 나누는지를 알게하시 는 말씀이다.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출3:15)
하나님의 때 exodus 의 때에는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늘 함께 한다. 40년을 애굽의 왕자로 자라다가 40년을 미디안에서 양치는 목자로 지낸 모세에게 비전이 무엇이 있었을까? 모세가 새로운 비전을 찾고 그길을 나 아가는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시고, 모세에게 하나님 의 계획을 알리고, 그 계획을 수행하는 도구로 모세를 택하신 것이 바로 모 세가 말하는 비전이고, 이 비전은 사실 '하나님의 비전'이라고 해야 맞는 말 이다. 나를 도구로 사용하시겠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비전이고, '나를 너 희에게 보내셨다'(출3:15)고 선포함이 하나님의 비전을 나누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원한 이름이고 대대로 기억할 하나님의 칭호이며, 그냥 이름이 아니라 늘 함께 하시며 인도하시고 역사했던 살아계신 하나님을 뜻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 계획 (출3:17)인지를 알리고 나누는 것이 바로 비전을 나누는 것임을...
또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그들과 동행하 시며 언약을 주시고 기억하시고 지키시는 언약의 하나님임을 한 마디로 표 현하는 구절이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창 12:1-3
이삭의 하나님: 창 26:4 야곱의 하나님: 창 28:10-19
하나님이 모든 내용을 하나 하나 지시해 주시는 모습이 출3:16-20 에 나 오고 있다. 그냥 "내가 너를 도구로 삼았으니까 잠자코 내가 시키는대로 따 라해. 그저 눈 앞에 벌어지는 상황을 보며 나를 찾아."라고 하시는 것이 아


니라 뭘 말할지, 누굴 만날지, 이렇게 말하면 대답은 어떻게 나올지, 반응 이 어떨지를 하나 하나 자세하게 설명해주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과의 동행은 이래야 한다. 비전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계획하시는 하나님의 비전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말씀하신 일들이 성취되 는지를 컨펌받는 것임을 말씀하신다.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 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 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소서 하라'(출3:18)
말씀대로면 '출애굽'이 아니라 '출입애굽'인데, "하나님이 계획하시는 것은 바로에게 거짓말을 하라시는 것인가요?" 라고 묻는데 이런 마음을 주신다. 해적선 안에서 거짓말을 한들 참말을 한들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해 적선 안에서는 밖으로 나오는 것이 가장 착한 일을 하는 것이라는 말씀이 시다. 지금 바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안하고가 중요한게 아니라 출애굽이 중요함을 말씀하신다.
출3:19-22 은 하나님이 시키신 대로 말을 할 경우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인지를 미리 다 알려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출애굽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이고, 이 쉽지 않은 것들이 '가득차야' exodus 의 때이다. 반대가 가 득차고, 애굽으로부터 나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차고, 강제 노역의 고통이 가득차야 exodus 의 때이다. 이제 exodus 가 일어나면 모든 것이 끝이 날 뿐만 아니라 정반대로 변화한다. 반대는 찬성으로, 고통은 갑절의 기쁨 으로 바꾸는 것이 exodus 이다.
이렇게 하나님이 이미 다 일어날 일들을 알게하신 모세의 상황을 보며 '번 지 점프' 생각이 난다. 만약 바로가 바로 보내준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그저 하나님께 제사지낼 소 양 몇 마리로 만족해야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바로 의 탄압이 심하면 심할 수록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하는 은혜(출3:21-22) 가 크듯, 지금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번지 점프'를 타자


고 말씀하시는 듯 하다. 자세하게 설명하시면서 "이렇게 계단으로 힘들지 만 높이 올라갈 거거든. 중간에 교관이 준비 안되면 또 다시 체크하고 더 올 려 보내고... 중간에 또 체크하고... 맨 위에 올라가면 교관이 뭐라고 하는 지 아니? 가장 사랑하는 사람 이름 세번 반복해서 외치고 뛰어내리라고 하 지. 그리고는 죽을 것 같은 스릴과 재미를 느끼며 번지 줄에 몸을 전적으로 의지해서 뛰어 내리는거지."
그저 몇 미터 높이에서 떨어지는 재미도 소득도 없는 '번지 점프'가 아니라 바로의 탄압이 거셀수록 '번지 점프'의 높이는 재미와 짜릿함을 느낄 수 있 는 높이로 가고, 거기서 하나님이 이미 계획하시고 알게 하신 하나님의 비 전이라는 줄에 몸을 의지하여 가장 사랑하는 하나님을 부르짖으며 뛰어 내 리는 '번지 점프'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준비할 것은 이미 어떻게 일이 진행될 것인지를 다 알고 하는 게임이고, 이것을 더 높이 더 짜릿하게 즐기도록 계획된 '번지 점프'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고난과 고통은 곧 '번지점프' 이다. 죽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기에 줄에 의지하여 짜릿한 맛을 느끼려 '번지점프'를 하듯이, 내가 삶 속에서 고난과 고통을 겪더라도 그 후에 그것들을 극복하 게 하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번지점프'의 줄과 같은 하나님을 믿고 짜릿한 맛을 느끼며 고난과 고통에 몸을 던져야 한다는 마음이 든다.
지금까지 여러가지 고난과 고통을 겪으면서 걱정, 근심하고 노심초사하여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해보려고 애도 쓰다가 결국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와 간구하는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아오게 되고, 결국 어느 시간이 지나고 나 면 그 고난과 고통은 사라지고 어느덧 하나님께서 인도하여 주신 시간과 장소에 자신이 처해 있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곤 한다.
이러한 것은 평생을 두고 되풀이 되는 세상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렇게 항상 나를 인도하여 주시는 하나님을 번번히 느끼면서도 고난과 고통 이 올 때마다 또 먼저 걱정하고 근심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 자신이 참으로


어리석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 하나님이 마련해주신 '번지 점프'의 재미 를 몰라서이다.
그래서 exodus 의 역사는 바로 번지 점프장을 향하여 가는 이야기이고, 스릴을 느끼며 '번지 점프'를 하는 이야기 이다. 내 삶에 일어났던 exodus 의 역사는
사망이 생명으로,
죄인이 의인으로,
세상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exodus 하게 하신 역사였다. exodus 의 비밀은 바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일어날 일들을 확인하며 짜릿한 기대로 '번지 점프'를 타는 것임을 깨닫게 하시며, '하나님의 비전은 바로 번지 점프를 즐기라고 주시는 비전'임을 말씀하시며 날마다 그 스릴을 즐 기라고 하신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이제 번지 점프를 탈 것이거든^^ 기대해^^"
주님. 하나님의 비전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실 일들을 듣고 순종하며 따라가는 것임을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비전, 이사야58장11-12절의 말씀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 하는 샘 같을 것이라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 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 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을 붙 들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이 땅에서 스릴을 기대하며 번지 점프 타기를 소 망합니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믿음을 위한 표징들" 출애굽기 4:1-9


오늘 말씀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어야 함을 알게 하시 는 말씀이시다.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출 4:1)
세상의 반응은 이와 같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해도 믿지도, 듣지도, 옳게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래서 때론 하 나님의 표징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특히 이 땅에서 모슬림이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때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꿈에 나타나기도 해서 그들의 불가능할 것 같았던 마음을 만지시는 경우가 있 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출4:2)
이 말씀은 늘 지니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말씀이고, 네게 익숙한 것 이 무엇인지를 묻는 말씀이며, 그것부터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삶 가 운데서 작용하고 있는지를 말씀하시고 있다. 모세에게는 지팡이였고, 다윗 에게는 물맷돌이 그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출발이 나로부터 시작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됨을 원하시며 그 하나님을 믿고 내 가 할 것은 그저 '한발짝' 내 딛기를 원하신다는 마음을 주신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한발짝' 시작할 때 그 다음은 이미 하나님이 셋팅해 놓으신 도미노에 따라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의 거창한 도구나 자질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하셨음을 드러낼 수 있는 보잘 것 없는 지팡이를, 물맷돌을 나의 삶 가운데 서 원하신다. 이런 하나님이 원하시는 도구를 말씀하시는 것이 기드온 이 야기이다. 기드온이 이스라엘을 압제하는 무리들에 맞서기 위해 32,000 명의 군사를 모집하였을때, 하나님께서 "잘하였다."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주 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삿7:2).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의 병력을 감축하기 시작하셨다. 두려운 사람은 떠나라고 했을 때 22,000명 이 집으로 돌아갔고(삿7:3), 두 번째 감축으로 남아 있던 10,000명이 300명으로 줄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 대해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 하며 미디안 사람을 네 손에 넘겨주리라"(삿3:7)라고 말씀하셨고, 그리고 그대로 되었다(삿3:19-23).
믿음의 삶에 있어서도 내가 가진 것들이 믿음의 적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닫 게 하신다. 하나님은 내가 그분을 의지하기를 원하시며 내 자신의 힘을 의 지하기를 원하시지 않으신다. 그것이 육체적인 힘이든, 경제적인 힘이든, 또는 지적인 힘이든지 말이다. 하나님이 필요하신 것은 그저 보잘 것 없는 지팡이이고, 주위에 널려 있는 물맷돌이며, 힘들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도 하나님을 믿고 내딛는 '한발짝' 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삶 가운데 내가 가진 것들을 "32,000 에서 300으 로" 줄이실 때, 그것은 징벌처럼 보이지만 징벌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시 기 위한 상황으로 만드는 축복의 길이라고 말씀해 주신다. 그것은 바로 내 가 그분의 능력을 인정하고 신뢰하기 위한 축복의 상황이 되고 있다는 것 이며, 나의 삶을 통하여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준비가 되고 있다는 사인 임을 깨닫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삶 가운데 내가 가진 것들을 "32,000 에 서 300으로" 줄이실 때 기뻐하자. 하나님의 일하심이 임박했음을...
'만일 그들이 너를 믿지 아니하며'(출4:8)
'믿지 아니하며 네 말을 듣지 아니하거든'(출4:9)
이럴 경우를 대비하여 하나님은 정말 치밀하게도 계획을 이미 세워 놓으셨 다.
첫 번째 표징은 지팡이가 뱀이 되게도 하고, 다시 지팡이가 되게 하시는 것 이었고,
두 번째 표징은 손에 나병이 들게도, 다시 깨끗하게도 하시는 것이었고,
세 번째 표징은 나일강 물을 떠다 땅에 부으면 피로 변하는 것이었다.


그대로 따라하는 모세는 놀라지 않고 하나님의 표징을 보여 주시는 실습도 구의 역할에 순종하고 있다. 드디어 모세가 도구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하 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표징들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는 중요한 작용을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표징이 아니라 그 표징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과 함 께 하는 것임을 깨닫게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이 삶에서 역사하시는 표징 하나에도 삶을 던지는 선교를 결단하게도 된다.
나와 아내도 선교에 마음을 두고 몇년 전에 여러 나라를 비전트립을 다녀 왔었는데, 아내는 비전트립을 다녀온 후 선교지의 환경의 열악함을 보며 두려움을 가지기 시작했고, 선교는 미국에서 해도 되지 않냐며 다른 길을 찾자는 말에 나도 아내가 움직이기 전에는 선교를 가지 않겠다고 포기하고 모든것을내려놓는시간이있었다.그후나는 대상포진을앓으며아무것 도 못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개입이 있었다. 어느날 하나님께서 삶 가운데 내가 가진 것들을 “3만 2천에서 300으로” 줄이신 날에, 하나님께서 나에 게 아내에게 기도를 받으라는 마음을 주셔서 그대로 순종하며 “나 기도 좀 해줄래? 당신 안수집사잖아.” 라고 했다. 그런데 그 때 아내로 하여금 기도 하게 하신 하나님이 일하시고 만지시는 사건으로 인해 아내는 180도 변해 서 선교를 가겠다고 하게 된다.
선교에 대해 가고 싶은 마음은 들었지만 힘들어서 못 가겠다던 아내였고, 그 아내의 두려움을 하나님께서 만지시는 시간이 있었다. 아내가 포기하기 에 나도 선교를 포기하고 하나님께서 아내를 준비시켜주시면 가겠다고 한 다음부터 아내에게 영적인 능력을 세워주시고, 성령 체험을 하고 난 후부 터는 아내에게 있던 '두려움'을 하나님이 일하시는 '기대감'으로 완전히 바 꾸어 놓으셨다. 바로 하나님이 일하신 표징으로 인해...
그 때 세를 준 집을 페인트 하려고 멕시코 사람들을 두 사람을 썼는데, 그 날은 새벽같이 아내가 그 두 사람을 픽업해서 집으로 페인트 칠을 하러 가


야 하는 날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성령체험을 온전하게 하게 하시려고 나는 대상포진으로 가지 못할 상황에 놓으셨다. 늘 하던 대로 아내는 그들 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그 중 미국에 온지 10년 된 사람은 영어가 좀 되는데 자신은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을 믿지만 성령은 못 믿겠다고 했고, 다른 한 사람은 미국에 온지 며칠 되지 않아서 영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스페 니쉬만 알아듣는 사람이었는데 자신같이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에게도 하 나님이 찾아오냐고 물었다. 그 말에 마음이 아팠던 아내는 집으로 와서 기 도를 하고 전도지를 들고 가서, 아내가 영어로 하면 한 사람이 알아듣고 다 시 스페니쉬로 통역을 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그 전하는 중간에 영 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무어라고 친구에게 소리를 지르고, 영어를 아는 친구는 멍하니 말을 못하고 울먹이고 있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 영어를 전 혀 모르는 사람이 한 말은 이것이었다.
“지금 우리가 One language 로 말하고 있는데 네가 왜 자꾸 귀찮고 헷 갈리게 통역을 하냐고...”
아내를 포함한 세 사람은 성령이 방금 하신 것이라는 것을 알고 말을 잊고 있었고, 성령을 모르겠다는 사람에겐 성령의 역사를, 하나님이 만나주시겠 냐고 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역사가, 그리고 두려움을 갖던 아내에게는 성령의 일하심을 기대함으로 바꾸는 사건이었다. 바로 그곳에 세를 살았던 미국 목사님이 들러서 성령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고 갑자기 늘어난 15명의 사람들이 함께 예배를 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있었다.
그 성령체험 이후로 하나님은 아내를 완전히 세워주시고, 날마다 위로하시 고 격려하시고, “참 잘하였다. 내가 함께 한단다. 걱정 말아라.”라는 말씀 을 주신다. 내가 포기하니까 하나님이 일하시기 시작하셔서 한 사건으로 완전히 아내를 바꿔놓으신 것을 보며 참으로 감사하고 있다. 이렇게 하나 님이 일하시는 표징은 결정적인 순간에는 참으로 효과가 있다.
나에게도 하나님이 보여주신 표징이 있다. 나의 2초 간증은 DKDKDK 이 다. 세상에서의 유혹과 욕심을 따라 박사 학위를 받고 교수가 되기까지의 Dr. Kim 으로서의 삶, 그리고 미국에서 연구년을 12년째 지내면서 하나님


을 만나고 교제하게 하신 David Kim 으로서의 삶, 이젠 하나님의 비전을 나누며 카자흐스탄으로 인도하신 David in Kazakhstan.
하나님은 남자에게는 꿈도 잘 안주시는 모양이다. 그래서 어느 날 하나님 께 나도 아내에게처럼 그런 걸 보여 달라고 했다. 그런데 그 간구를 하고 바 로 그 주 주일에 교회 본당에서 예배보려고 들어가 앉자마자 그 때는 아무 도 몰랐던 나의 이 2초 짜리 간증을 컨펌해 주셨다. 예배보기 직전에 큰 목 소리로 DKDKDK. David in Kazakhstan! 이라고 하시는 음성을 귀에 쩌렁쩌렁하게 들려주셨다. 참 이렇게 신실하시다. 우리 하나님은!
주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으시는 질문 앞에 말씀을 잡게 하시고, 지팡이처럼 늘 세워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음을 고백하기 원합니다. 이 땅의 사람들이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었이냐"라고 묻는 질문 앞에 서서 하나님의 일하시는 손을 바라보게 하시고 그리스도 앞에 돌아오 도록 하나님의 표징들이 이 땅에 풍성하기를 소망합니다.
나의 '본래' 에서 하나님의 '본래'로 "필요한 능력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출애굽기 4:10-17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세의 모습을 통해 내가 본래 어떤 모습이었고,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서야 하며, 어떻게 회복하시기를 원하시는지 알게하 시는 말씀이다.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출4:10)
이 말씀에서 모세가 하나님께 말한 '본래' 라는 말을 계속 곰씹게 하시는 하 나님이시다. 그 뜻은 오늘 나에게 '본래' 주고 싶으신 메시지가 있다는 말씀


이시다. 그래서 계속
"이 '본래'라는 말을 통해 저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거지요?" 라고 계 속 묻는데 오랜 만에 문제 하나를 주신다.
문제: "지금네통장에4만불이있고앞으로20년동안써야한다면어떻 게 쓸거니? 한번 골라봐~" 하신다. 늘 그러시듯이, 신실하신 하나님은 "네 가 선택한 대로 일할거다~"라고 하신다.
A) 4만불을 20년으로 나누면 1년에 2천불이고 이것을 12달로 나누면 한 달에 166불67센트이므로, 하루에 5불55센트 씩 식료품을 사서 먹는다. B) 어차피 20년 쓰긴 틀렸으므로 한달에 5천불씩 대충 쓰고 8달 후엔 죽 어버린다.
C) 한달에 필요한 돈이 3000불이면 그렇게 계속 써 나간다.
어느 답을 쓸 것인가? 하며 묵상 속으로 들어가는데 역시 성령님은 하나 하
나를 '본래'의 예를 들어 설명해 주신다.
A) 4만불을 20년으로 나누면 1년에 2천불이고 이것을 12달로 나누면 한 달에 166불67센트이므로, 하루에 5불55센트 씩 식료품을 사서 먹는다. A 는 바로 모세의 '본래' 이다. 그저 내가 가진 것만 보인다. 내가 가진 현재 보이는 모습이 '본래'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고, 그렇게 계속 싸구려 빵만 사먹는 신세가 되는 선택이다. 그렇게 지내다가 도저히 못살겠다고 부르짖을 때까지 하나님은 팔짱 끼시고 기다리신다.
B) 어차피 20년 쓰긴 틀렸으므로 한달에 5천불씩 대충 쓰고 8달 후엔 죽 어버린다.
B 는 바로 사탄의 '본래' 이다. 내가 가진 본래의 악한 모습만 다 끄집어 내 어 그것들을 고소하고 희망없음을 깨닫게 하며, 대충 살다 죽을 모습이 '본 래'의 모습이라고 찔러대는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가서 고르게 되는 선택이 다. 하나님은 사탄의 음모를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까지 문을 열어


놓으신다.
C) 한달에 필요한 돈이 3000불이면 그렇게 계속 써 나간다.
이 답을 고르는 것은 하나님의 '본래'를 아는 자이다. "하나님. 제가 4만불 밖에 없는 것도 알고, 20년을 그것으로 살아야 하는 것도 아는데요... 빠진 게 하나 있네요. 하나님이 끊임없이 Deposit 해주시는 것은 안넣었잖아 요." 하며 하나님이 '본래' 누리라고 하셨던 그대로 20년 동안 누리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본래' 이다. "너는 이렇게 세상 속 에서 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 본래 내 자녀란다."라는 음성을 듣 고 누리는 삶이 하나님의 '본래' 이다.
이 질문을 통해서 깨닫게 하시는 것은, 나의 '본래'는 삶 속에서 처한 환경 때문에 상처로부터 생겨나는 할 수 없다는 Impossible 의 '본래'이고, 사 탄의 '본래'는 나의 상처로 인한 '본래'의 모습을 비판하고 고소하며 어딜봐 도 할 수 없다고 하는 Nowhere Impossible 의 '본래'이며, 하나님의 '본 래'는 나를 창조했던 '본래'의 모습을 기억하시고 그리워하시며 이제 그 '본 래'로 되돌아 갈 수 있다고 하시는 Now here I'm possible 의 '본래' 임 을 깨닫게 하신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그리고 나를 통해서 exodus from 과 exodus to 를 원하시는 것은 나의 '본래' 에서 하나님의 '본 래'로 회복되는 것임을...
'말을 잘 못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출4:10)
이것은 나도 하나님 앞에 서면 핑계거리로 잘 써먹는 것이고, 사실 말을 잘 못하고,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나의 모습하고 같다. 그러나 아까 하나 님이 나에게 질문하신 것처럼 이 모습은 내 balance 만 보고 있는 모습임 을 깨우쳐 주신다. 정작 중요한 것은 날마다 Deposit 하시는 하나님의 일 하심이 더 중요한 것을...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출4:12)
'이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백지 수표를 Deposit 하셨다고 말씀


하시는 모습이다. 하나님께서 필요한 준비는 다 하셨다고 알리시는 말씀이 고,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 할 말을 가르치시겠다고,
내가 네 발과 함께 있어 갈 길을 가르치시겠다고,
내가 네 손과 함께 있어 할 일을 가르치시겠다고,
내가 네 눈과 함께 있어 무엇을 바라봐야 하는지 가르치시겠다고,
내가 네 귀와 함께 있어 무엇을 들어야 하는지 가르치시겠다고 약속하시는 '백지수표'를 주며 '이제 가라'고 하시며 하나님 편에서의 '준비 완료'를 선 포하시는 모습이다.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출4:13)
하나님의 '준비 완료' 선포에 대해 나의 준비가 덜 되었음을 알리는 고백이 고, 겸손같이 보이지만 교만이고 불순종임을 드러내는 고백이다. 마치 하 나님의 '본래' 에서 나의 '본래'로 다시 돌아가려는 죄의 회귀본능이 아닐 까...
하나님의 거듭된 말씀에도 계속 거부하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교만이다. 나에게는 Nowhere Impossible 일지 모르지만 하나님께는 Now here I'm possible 이고, 나를 보고 하나님을 평가하는 것 자체가 교만이기 때 문이다. "난 네게 관심이 있다니깐~"이라고 말씀하시는 음성을 외면하는 것, 순종을 미루는 순간부터가 불순종이기 때문이다.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 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출4:16)
나에게 허락하신 나의 말을 충실히 전하는 아론과 같은 통로는 무엇일까를 생각해보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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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마티 거수다... 청소년부 QT 나눔... ᄏᄐᄏᄐ 카톡큐티... QT 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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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마음과 말들을 전하고 있기에 이것들 이 나에게는 '아론'이라는 마음을 주신다. 그리고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출4:16)는 말씀은 이 '아론'을 통한 창조의 말씀과 묵상들이 사람 들을 하나님과 만나게 하고, 회복시키고, 각자의 '본래'로부터 하나님의 '본래'로 가게 하는 창조의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하신다. 이 뿐만 아니라 창조의 도구도 허락하신다.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출4:17)
마치 "내가 너를 잡고 도구로 삼았듯이 너는 도미노의 도구인 네가 가진 지 팡이를 잡고 나아가면 기적은 나로부터 흘러나간다."라고 말씀하시는 하 나님이시다.
모세처럼 나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펼치는 도구는 바로 말씀이고, 묵상이 고, QT 이고, 양육이고, 선교임을 알게 하시며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들이 날마다 이 도구들 속에 Deposit 됨을 약속하신다.
주님. 제 상처 투성이인 저의 '본래'를 내려놓고, 죄인의 괴수였다고 고소 하는 사탄의 '본래'를 저버리고, 날마다 하나님의 능력을 펼치실 도구를 제 삶 속에서 발견케 하시는 하나님의 '본래' 속에 거할 것을 선포합니다. 이 땅도 각자의 나의 '본래' 에서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시고, 변화시키실, 하 나님의 '본래' 속에 거하기를 소망합니다.
'내게 네게 준 이적'
"순종으로 시작되는 하나님의 구원"
출애굽기 4:18-23
오늘 말씀은 대조되는 두 사람 모세와 바로를 보며 그들의 차이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묵상하게 하심으로, 모세에게처럼 하나님께서 나에게 행하신 '내가 네게 준 이적'(출4:21)을 돌아보게 하신다.
'모세가 그의 장인 이드로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내가 애굽에 있 는 내 형제들에게로 돌아가서 그들이 아직 살아 있는지 알아보려 하오니 나로 가게 하소서 이드로가 모세에게 평안히 가라 하니라'(출4:18)
'이제 가라'(출4:12) 는 하나님의 준비가 끝나면 말과 행동과 상황과 환경 까지도 네 가지의 '가라'(출4:18)로 만드시는 모습이다. 자신의 말과 행동 과 상황과 환경이 한 가지로 통일된 모습을 나타낼 때는 바로 하나님의 메 시지를 살펴 볼 때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복 가운데 있든 어려움 가운데 있 든 그 통일된 모습은 '이제 가라'(출4:12)는 하나님의 메시지이며, 순종으 로, 믿음으로, 결단으로, 소명으로 가야 할 때임을 말씀하시는 순간임을 깨 닫게 하신다.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출4:20)
모세에게 40년 미디안 생활의 모든 것인 아내 십보라와 두 아들 게르솜과 엘리에셀과 함께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는 모세는 더 이상 살인을 하고 도 망쳐 나온 40년 전의 40세 모세의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명을 붙잡 고 '출애굽' 하기 위해 애굽으로 들어가는 80세 모세의 모습이다.
'출애굽' 하기 위해 애굽으로 들어가는 모세의 모습을 보며, 어려움에서 진 정으로 벗어나는 길은 세상이라는 애굽에서 멀리 떨어진 광야라는 미디안 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그 어려움 속으로 들어가는 것임을 보이신다. '출애굽'은 애굽에 들어가야만 가능한 것이다. 광야는 연 습장소이지 실습장소가 아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출4:20)는 말씀은 마치 '모세 가 하나님의 끈을 잡았더라'로 들리며, 마치 '하나님이 모세를 잡았더라'로 들린다. 광야에서의 '출애굽' 연습이 끝나면 진짜 '출애굽'의 실습은 하나님


과 함께 하는, 하나님의 개입하심을 확인하는 '누리는 시간' 임을 말씀하신 다.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애굽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마지못해 순종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잡고 "이것 하나면 충분합니다" 라는 고백이 이전에 잡고 있던 삶이 더 이상 모세의 지팡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게 하신 다.
하나님께서 '내가 네 손에 준 이적'(출4:21)이라고 말씀하신 이적은 보이 지도 만져지지도 들리지도 않는 하나님이 보이게 되고, 만져지게 되고, 들 리게 되는 것이고 그 하나님과 매일 만나 교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이적 들 중 가장 큰 이적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려고 하늘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우리 품을 떠난 10년을 키우던 강아지 '아루'를 통해 예수 그리 스도를 묵상하던 기억이 난다. 아루는 골든 리트리버인데 너무 착하고 순 하고 사랑스러워서 마음같아서는 같이 서서 사람 안아주듯 실컷 안아주고 싶은데 문제는 한번 만지면 털이 너무 많이 뭍고, 개 냄새도 장난이 아니 고, 좋아서 질질 흘리는 침이 묻으면 옷이 다 더려워지기에 가까이 있지만 먼 사랑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집에서 트레이드밀을 열심히 하고 나니 옷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 즉시 바로 마당에 있는 아루에게 가서 그렇게도 하고 싶었던 대 로 사람을 안아주듯 꼬옥 안아주었다. 옷 상관 안하고 그렇게 실컷 아루를 안아주고 있으면서 들리는 음성이 있었다.
"그렇게 아루를 안아주니까 정말 좋지?
나도 너를 그렇게 안아주고 싶어서 너와 같은 모습으로 이 땅에 온거란다 ^^"
그날 난 아루를 실컷 안아봤고, 예수님을 그렇게 꼬옥 안아봤다.
이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꼬옥 안아주기 위해 이 세상에 나와 같은 모 습으로 오셨을 뿐만 아니라, 나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길을 여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셨고, 말씀에서 '내가 네 손에 준 이적'(출4:21) 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심을 깨닫게 하신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길만, 진리만, 생명만 있으면 '출애굽'은 문제가 없음을...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출4:21)
왜 하나님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신 것일까? 그렇게 못되신 하나님 은 내가 생각해도 아닌데...
주시는 마음은, 하나님이 강제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만든 게 아니라, 바로 스스로 완악한 마음을 품었고 다만 하나님은 그런 바로를 내버려 두 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완강하게 저항하는 바로를 스스로의 자유 의지에 맡겨 두었을 뿐이다(롬1: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 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롬1:28)
대조되는 두 사람 모세와 바로를 보며 그들의 차이가 어디에 있냐하면, 모 세는 순종함으로 하나님과 '함께하심'이 있었고, 바로는 완악함으로 하나 님의 '내버려 두심'이 있었다.
어려움은 하나님의 '내버려 두심'이 아니라 '함께 하심'을 간구하는 더 큰 축복의 전주곡이다. 더 높이서 번지 점프를 타는 것이고, 더 많은 전리품을 줍도록 하기 위함이다.
'네가 너를 위하여 큰 일을 찾느냐 그것을 찾지 말라 보라 내가 모든 육체에 재난을 내리리라 그러나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는 내가 너에게 네 생명을 노략물 주듯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45:5)
"모든 일을 네 계획대로 할래? 그러면 지쳐! 거기엔 생명이 없어. 그냥 나 와 함께 교제하자. 내가 너로 노략물을 줍듯이 할거다."라고 말씀하시는 하 나님께 순종함과 신뢰함을 배우는 시간이 어려움의 시간이다.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


라'(출4:22)
'내 아들 내 장자라'(출4:22)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 본 사람이라면 알듯이, 처음으로 하나님 께서 들려주시는 음성이 이것이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이제 나 하나면 족하지 않겠니?"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보내 주어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보 내 주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 라'(출4:23)
이 말씀을 듣는 세상과 환경과 사탄은 뜨끔하겠다.
"네가 내 아들을 잡고 있으니 나도 네 아들을 잡으리라."
하나님이 내 손에 준 이적(출4:21)은 바로 하나님이 나를 붙드신다는 모세 의 지팡이 이고, 이 땅에 나와 같은 모습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이제 나 하나면 족하지 않겠니?" 라고 하시 는 하나님의 음성이며, 세상과 환경과 사탄을 향해 "네가 내 아들을 잡고 있으면 나도 네 아들을 잡으리라."고 선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주님. 주님께서 제게 준 이적을 돌아보며 저를 붙잡고 계셨음을 고백합니 다. 이 땅을 위해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는 축복이 이 땅에 넘치 게 하시고,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이제 나 하나면 족하지 않겠니?" 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과, 세상과 환경과 사탄을 향해 "네가 내 아들을 잡고 있으면 나도 네 아들을 잡으리라."고 선포하시는 하나님을 누리는 이 땅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
"순종과 중재, 말씀의 성취" 출애굽기 4:24-31


오늘 말씀에서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 나온다.
'모세가 길을 가다가 숙소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사 그를 죽이 려 하신지라'(출4:24)
At a lodging place on the way, the LORD met Moses and was about to kill him.
왜 하나님은 길을 가다가 숙소에서 쉬고 있는 모세를 만나서 죽이려 하신 걸까?
말씀에서는 갑자기 나오는 상황이기에 이에 대한 해석은 사실 성령님께 물 어봐야 한다. 하지만 말씀에서 언급된 것으로부터 유추해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1) 하나님이 모세를 죽이려 하심.
2) 십보라가 아들 (아마도 둘째인 엘리에셀)에게 할례를 행함. 3) 이때야 비로소 모세가 화를 면함.
4) 이 일로 십보라가 모세를 '피 남편'이라고 부름.
드러난 이유로는 모세가 둘째 아들인 엘리에셀에게 언약 백성의 징표인 '할례'를 시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창17:9-14) 아마도 모세는 갓 태어 난 엘리에셀과 함께 여행하는 도중에 실수로 할례 시기인 '생후 8일째'를 넘긴 듯하다. 모세가 죽음에 직면했을 때 그의 아내 십보라는 그 이유가 아 들의 할례에 있음을 깨닫고는 즉시 아들에게 할례를 행했을 것이다. 그 결 과로 실제로 모세는 죽음을 면하게 된다.
본래 할례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명하셔서 그의 후손이 대대로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언약이었다.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 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창17:9-11). 이 명령은 '할례를 받지 아 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창17:14)는 준엄한 경고로 끝을 맺는다.
'피 남편'(출4:25)은 '피의 남편'이라는 뜻으로, 이 말은 모세를 향한 십보 라의 조롱섞인 독설인 듯하다. 미디안 여인인 십보라는 왜 어린 아들에게 피를 흘리게 하는 할례를 꼭 시행해야 하는 지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 다. 하나님은 이처럼 미디안의 40년으로 인한 문화를 버리게 하고 이스라 엘 백성의 할례 문화를 회복하기를 원하신 것이 아닐까...
그리고 아브라함의 아들들에게만 해당하는 할례 예식은 틀림없이 남자들 에 의하여 집행되었을 것인데 본문에서 모세가 아닌 십보라가 그의 아들에 게 할례를 행하였다는 사실로부터 모세에게 특별한 상황이 생긴 것임을 알 수 있다. 출4:24의 '모세가 길을 가다가 숙소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그 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신지라'라는 표현은 구약 성경에서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순전히 하나님과만 연관시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처럼 아마도 모세가 중병에 걸리게 되었다든가, 아니면 그가 무슨 특별한 위험에 빠져있는 상황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 모세는 아들 에게 할례를 베풀 수 없는 상황이었겠고, 자연히 그의 아내인 십보라가 이 일을 집행하여야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가라'(출4:12)라고 하시며 모세에게 힘을 실어 준 하나님께서 갑자기 할례를 문제 삼는 것은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다.
여기에서 성령님께 계속 물어보는데 하나님의 언약궤를 만지다가 죽임을 당한 웃사를 기억하게 하시며 주시는 마음이 있다. 내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죽음을 통하여 비로소 가능하게 되지만, 하나님이 나를 만나는 것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 하나님께서 모세 를 죽이려고 모세를 만난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누구나 죽을 수 밖에 없음을 뜻한다.


모세의 아내 십보라는 역시 '십자가를 보라' 답게 하나님과 모세의 만남 사 이에 무엇이 필요한가를 아는 사람이었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살아서도 가 능케 하는 것은 바로 할례이고, 피언약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 밖에 없음 을 깨닫게 하신다. 하나님은 이렇게 '오직 예수'를 강조하시고 싶으셨나보 다. 그래서 바로 앞에서 보일 이적도 피로 시작해서 피로 끝난다.
피, 개구리, 이, 파리, 온역, 독종, 우박, 메뚜기, 암흑, 장자, 그리고 문설주 에 피를 바르는 유월절 사건이 바로 피로 시작해서 피로 완성이 됨을 보게 하신다.
오늘 같은 말씀은 하나님이 내겐 더 높은 하나님되게 하신다. 내 차원으로 는 이해할 수 없는...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 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55:9)
주님. 오늘의 어려운 말씀을 접하면서 역시 나의 생각과 전혀 차원이 다른 하나님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이 높고 넓고 크신 하나님이 이 땅을 덮는 축복이 임하고 이 땅 백성이 하나님과의 만남을 살아서도 가능케 하는 것 은 바로 피언약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 밖에 없음을 깨닫게 되기를 소망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모세를 죽이시려 하셨을까 ? 더군다나 모세는 지금 하나님 의 말씀에 의지하여 노구의 몸을 이끌고 약속하신 징표 지팡이를 잡고 늙 은 아내와 함께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의 사명을 띄고 가는 중입니다 아무 리 읽어도 이해할수 없는 대목 입니다 본문을 읽고 또 읽고 하는중에 하나 님께서 지혜를 주십니다 바로 모세의 출생의 대목입니다.
애굽의 왕은 히브리인의 신생아중 남자는 모두 죽이라 명령 하였고 산파의 지혜와 하나님의 은혜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집니다.그러나 대놓고 히 브리인의 아기란걸 표내고 다닐수가 없습니다 대표적인 표식 태어난지 팔


일만에 받는 할례의식을 행할 겨를이 없었을것 입니다 아기가 고통중에 울 부짖을 것이고 할례의식이 소문나면 또 아기는 죽음을 당할 터이니 그 와 중에 할례를 행하기 어려웠을것으로 보입니다 그후 모세는 강물에띄워 바 로의 궁전에 보내지고 애굽의 양식과 왕궁의 법도를 보며 자랐을것 입니 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해가 됩니다. 모든것을 다 갖추어 보이나 가장 기본적 인 할례가 빠진것 입니다. 지도자로써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모세도 이 생 각을 분명 했을테지만 남앞에 드러나는 일이 아니기에 어영부영 넘겼을지 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죽이려 했을 때 번개처럼 그의 머리를 스치고 가는 생각이 있었을것 입니다 남편의 치 명적인 약점을 감당해 주는 아내 십보라의 기지와 중재의 모습이 뛰어나 보입니다.
아내의 기지와 지혜와 용기가 남편을 살렸습니다 아무리 휼륭한 지도자라 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을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해방자로 나서기 전에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드디어 번지 점프장으로...' "구원의 소망이 가로막힐 때"
출애굽기 5:1-14
오늘의 말씀은 이 세상을 살면서 너무도 많이 겪게 되는 "구원의 소망이 가 로막힐 때"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멈춰 생각하시게 하는 말씀이다.
지금 모세는 아론과 함께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바로에게 가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말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바로는 그렇게 완악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바로가 이르되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출 5:2)
'여호와가 누구이기에'에 대한 톡톡한 값을 치룰 바로(아멘호텝 2세, BC 1448-1424)를 생각하면 이렇게 하나님께서 미리 알려준 스토리를 가지 고 영화를 다시 보는 것 같아 재미를 느낀다. 그러나 스토리를 모르고 본다 면...
세상 속에서도 그리스도인이면서 가끔은 이런 실수를 하게 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되어야 한다는 생 각... 그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과 전혀 다른 착각임을 깨닫게 하신다. 하나 님의 목적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에서 밋밋한 평범한 삶을 살다가 부름 받아 천국으로 가는 삶이 아니라 이 땅에서도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통치하 시는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며 하나님 때문에 짜릿한 삶을 살기를 원하신 다.
어려움과 환난 속에서 세상은 아랑곳 하지 않고
'가서 너희의 노역이나 하라'(출5:4)
고 하고, 눈 앞의 상황은 더 악화되어감을 경험할 때 자칫 하나님과 지금 동 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때가 있다. 어려움과 환난이 시작되었다는 것 은 하나님이 나를 번지점프장으로 초대하셨다는 의미이다. 그것을 통해 하 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훈련을 다지고, 번지 점프 장에서 추운데 훌훌 불며 먹는 '하나님과 함께라면'의 맛을 경험하도록, 짜릿한 즐거움을 경험 할 수 있는 영적 점프장에 초대된 것이다.
이미 영적 점프장에 들어서면 눈 앞의 상황은 나의 기대와는 정 반대로 갈 지도 모른다. 바로 옆에 하나님과 동행할지라도 오히려 번지 점프의 쾌감 을 평생 잊지 않게 해주시려고 "더 높이 더 높이" 하시면서 부추기시는 하


나님이실 수 있다. 지금 바로가
'가서 너희의 노역이나 하라'(출5:4) 하고 노역을 더 힘들게 만드는 것처럼...
이렇게 눈 앞에 어려움과 고난이 보일 때 영적 캠프장에서 훈련된 영적인 눈을 떠야 함을 왕하6:14-18 의 엘리사의 이야기를 떠오르게 하신다.
열왕기하6장14-18절
14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그들이 밤에 가서 그 성읍을 에워쌌더라
15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 가 성읍을 에워쌌는지라 그의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 주여 우 리가 어찌하리이까 하니
16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17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18 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원하건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
아람 왕이 엘리사가 도단에 있다는 말을 듣고 엘리사를 잡으러 말과 병거 와 많은 군사를 보내어 엘리사가 있는 성을 에워 싸고 있다. 사환은 그 광경 을 보고 바로 엘리사에게 알린다.
어려움과 환난이 올 때, 문제 가운데 있을 때에는 문제가 크게 보이고 그의 공격이 무서웁고 거의 죽을 것 같이 힘들어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 이까'(왕하6:15) 하며 애통하게 된다.


하지만 같은 문제를 보고도 시각이 다른 엘리사를 발견한다. 그는 그를 죽 이고자 하는 어려움이나 환난을, 문제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미 번지 점 프를 하나님과 함께 겪으며 하나님의 "더 높이 더 높이" 의 재미를 알고 있 기 때문이다. 오히려 문제 가운데에서도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왕하6:16)라고 담대히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신뢰하 고 있다.
어려움과 환난 속에서는, 문제 가운데에서는, 금방 죽을 것 같은 상황과 환 경 속에서는, 그것을 바라보며 두려워하고 절망하여 애통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바라보지 말고 그것보다 훨씬 더 강한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를 바 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영적 시야를 회복해야 한다. '여호 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왕하6:16)하며 문제를 문 제로 바라보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고 신뢰해야 한다.
또한 어려움 가운데 있는, 그래서 그러한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미쳐 바라 보지 못하는 자들을 위하여, 이웃들을 위하여 엘리사가 그의 사환을 위해 중보기도한 것처럼 기도함으로 그들의 영적 시각이 바뀌도록 중보기도 해 야 한다. 그래서 비록 어려운 문제나 환경이 나에게 침범해 올지라도 불말 과 불병거를 준비하고 이를 멸할 준비가 되어 있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 해야 한다.
또한엘리사의기도와같이눈앞의 문제를향한선포와기도는,그문제의 공격을 무력하게 만든다. 어려움과 환난 가운데 있을수록 기도하자. 자신 이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성령이 예비시킨 불말과 불병거를 볼 수 있도록, 이러한 역사를 보지 못하고 힘들어 애통하고 포기하고 있는 이웃을 위해, 그리고 문제에 대해 그 힘이 무력하게 되도록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그 문제를 넘어가는 것이다.
하나님 눈 앞에 '구원의 소망이 가로막힐 때' 나의 차원보다 다른 차원으로


이미 보시고 계획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함을 알게 하시며 이렇게 말씀 하신다.
"왜 구원의 소망이 가로막힐 때 길이 없다고 생각하지? 난 한 차원 더 볼 수 있거든. 가로막힐 땐 세로는 뚫렸거든^^ 위를 보면 나와 즐기면서 이겨 낼 수 있단다~"
주님. 눈 앞에 구원의 소망이 가로막힐 때가 바로 위에 계신 하나님을 보며 하나님과 즐기는 번지 점프장에 와 있음을 알게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이 땅의 백성들도 어려움과 환난 가운데일지라도 불말과 불병거를 준비하시 고 동행하시는 하나님과 즐기는 구원의 자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번지점프 줄은 투명줄이기에...' "하나님을 기대하는 믿음"
출애굽기 5:15-6:1
오늘 말씀은 하나님을 '기대'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 주시는 말씀 이다. 이제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그대로 행하며 '번지 점 프장'에 와 있다. 이제 그 짜릿한 번지를 타기 위해선 어느 정도 높이 올라 가야 하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건 지식이었고, 마음으로 하나님과 일치되어 "그렇죠. 높이 올라가면 더 재미있겠네요^^"하며 흥미 진진하여 나오는 '기대'의 소리가 아니다. 오늘 말씀은 이 지식 뿐이던 마음 을 '기대'의 마음으로 바꿔주시는 하나님을 묵상하게 하신다.
어려움 앞에서 하나님이 주신 말씀대로 선포하는데 눈 앞의 상황들은 그리 녹녹하지가 않다. 모세와 아론도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킬 인도자로 여 겨지는 상황이 아니라 정반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더 힘들게 만드는, 원망 과 불평이 쏟아지는 문제아 취급을 하고 있는 상황이 펼쳐진다.


'이제 가서 일하라 짚은 너희에게 주지 않을지라도 벽돌은 너희가 수량대 로 바칠지니라'(출5:18)
이 말은 어쩌면 세상이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요구하는 모습이고 세상만 보 고 사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남들처럼 성공하려고 높이 세우려고 하는 사람들의 땀흘리는 '벽돌'이라는 노력을 끝임없이 하 게 하지만, 정작 사람들의 원하는 것을 단단하게 해 줄 행복이라는 '짚'은 절대로 주지 않는 것이 세상이기 때문이다.
이미 벌려진 경제로 인해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환경을 그대로 벽돌 찍어 내듯 계속 찍어내지 않으면 안되도록 다른 생각을 품지 못하도록 계속 페 이먼트를 하게하는 세상 경제의 모습이 연상이 된다. 세상은 하나님께 예 배드리는 것보다 돈버는게 중요하다고 '게으르다 게으르다'(출5:17) 라고 하는 정말 소망없는 곳임을...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아뢰되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 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출5:22)
드디어 호렙산에서 하나님과 떨기나무 앞에서 QT 세미나를 한 모세답게 '어찌하여 어찌하여' 하며 하나님께 질문하기 시작한다. 정작 하나님의 말 씀을 따르기로 결단하고 나아 간 눈 앞의 녹녹하지만 않은 상황에서 어떤 것도 도움이 될 수 없음을 아는 것이, 그리고 하나님 앞에 먼저 가서 토로함 이 필요함을 말씀하신다.
'내가 바로에게 들어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한 후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출5:23) '주의 이름으로 말한 후로부터'...
세상은 '더 학대하며'...
하나님도 구원하지 않는 것처럼...
이렇게 삶이, 환경이 더욱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치달을 때 정말 헷갈리 기 시작하는 것은 모세도 별 수 없나보다.
그렇다면 정말 번지 점프를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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