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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by yesupraise, 2017-08-25 21:36:52

출애굽기 산책

그리고 그 따라감에는 추호도 흔들림이 없이 자신의 유익에 대한 굳센 믿 음으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 없이 따라가고 있다. 오죽하시면 출23:1-5까 지의 당연한 이야기를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일까?
하나님의 백성은 이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역행하는 삶이다. 세상이 모 두 따라가도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길이 정반대이면 반대로 가는 삶이다. 상황이나 다수의 의견이나 감정의 흐름이나 물질이 있는 곳보다 하나님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따라가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의로운 백성의 삶이 고 그 길을 걷는 발걸음이 바로 사역이다. 세상'따라' 가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을 사역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요즈음의 교회와 공동체를 보면 때로는 하나님의 마음이나 말씀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목회자 맘'따라'가 중요해짐을 보며 어느덧 하나님을 가리는 우상화가 교회 안에도 있음을 보게 된다. 이런 공동체는 세상의 '따라' 공동 체와 별다를 것이 없다는 마음이고, 이를 향해 오늘도 하나님의 경고가 출 23:7 을 통해 말씀하신다.
교회 무늬라고, 목회자 무늬라고, 성도 무늬라고...?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
그래서 하나님이 의롭다 하시는 의로운 백성의 삶은 자신의 유익을 좇아서 는 하나님의 일과 함께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내 유익이던지 하나님 유익이던지를 확실하게 결단해야 하며, 아무리 30%만 내 유익을 앞세운 다 하더라도 결국은 30% 불의 때문에 의롭지 못하다 여김을 받게 된다. 교회 안에 있다고?
사역자라고?
목회자라고?
찬만에 말씀! 그러기에 세상 '따라'의 삶은 더더욱 허용이 안되는 것이고, 세상 '따라'의 삶을 선택하는 순간 어쩌면 세상도 속이고 하나님도 속이는, 그래서 세상 '따라' 사는 삶보다 더 사기꾼 소리를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교회 안에서 추구하는 모든 것은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로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관계가 돈독한 성도가 결국은 하나님과 관계가 없고 세상 '따라' 사는 삭군 목자보다 더 낫기 때문이다.
여섯 해와 여섯 날 뒤에 오는 안식년과 안식일은 '따라'의 삶을 되돌아 보는 숨고르기 기간이다.
"혹시 내가 하나님을 믿는 다면서도 세상하고 똑같이 세상따라의 삶을 사 는 건 아닌지..."
"혹시 내가 교회라는, 사역자라는, 목회자라는 세상의 칭호에 안심이 되어 정작 하나님을 따르는데 소홀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이 안식년과 안식일은 한 두번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하나님 안에서 쉼을 얻으며 돌아보는 시간이다. 방향과 '따라'가 누구를 향하는지를 체크하 며...
그래서 얼마만치 간 게 중요한게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듯, 쉼도 사역만큼 중요하다.
그림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남들보다 뒤쳐졌다는 생각에 떨고 있는가?
두려워 말라. 당신은 묵묵히 가기만 하면 된다. 당신의 속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금 당신이 달리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당신은 포기하지 않고, 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세상 '따라' 가는 방향의 정반대가 옳은 방향이라면 당신은 제일 앞선 사람 이다.
주님. 이 땅에 넘치는 뇌물에 의한 비리를 보며 자신의 유익을 좇아 세상따 라 사는 삶에는 소망이, 하나님의 마음이 없음을 깨닫게 하시며 상황을 따 라, 다수를 따라, 감정을 따라, 물질을 따라가는 세상 따라의 삶으로부터 분별하는 시간이 안식임을 고백합니다. 이 땅도 그리스 땅도 누굴 향하는 지, 누굴 '따라' 가는지를 체크하는 하나님 안에서의 쉼인 '안식 훈련'을 하 게 함으로써 거짓 일을 가까이하고,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는 '세상


따라의 삶으로부터의 Exodus 훈련'을 잘 감당하기를 소망합니다. '때광 프로젝트 26: 하나님 중심, 세상 중심으로부터의 Exodus'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십시오" 출애굽기 23:14-33
오늘 말씀은 '시내 강의실'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직강이 계속되고 있으며, 오늘 강의는 하나님이 동행하시고 일하셔왔음을 늘 기억하는 '하나님 중심 훈련'을 하게 함으로써 장차 우상숭배로 올무가 될 '세상 중심의 삶으로부 터의 Exodus 훈련'을 시키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출애굽기 12장까 지가 하나님을 알리시는 '야다 프로젝트' 였다면 지금은 출애굽 백성이 하 나님의 선택백성으로서 자질을 갖추도록 때 빼고 광 내도록 하시는 '때광 프로젝트'를 하시고 계신 하나님이시다. 세상이라는 애굽에서는 나왔지만 아직도 몸 구석 구석에 붙어 있는 노예근성의 때들... 그 때를 벗기는 작업 은 이제부터 하나씩! 그리고 귀에 따갑도록 반복되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 때를 벗기는 스물 여섯 번째 프로젝트는 동행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 을 늘 기억하는 '하나님 중심 훈련'을 하게 함으로써 장차 우상숭배로 올무 가 될 세상 중심의 삶으로부터의 Exodus 훈련이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을 믿는 자가 꼭 지켜야 할 세 가지 절기를 말씀하시 는데 이 절기를 지켜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하나 님의 백성들 자신을 위해서임을 알게 하신다. 왜냐하면 이제 하나님이 허 락하실 가나안 땅에서의 관건은 하나님을 기억하느냐 못하느냐, 우상 숭배 에 빠지느냐 아니냐, 우상숭배가 올무가 될 것인가 아닌가 이기에 하나님 을 기억하고 우상숭배의 모습을 떨쳐버리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들이 네 땅에 머무르지 못할 것은 그들이 너를 내게 범죄하게 할까 두려 움이라 네가 그 신들을 섬기면 그것이 너의 올무가 되리라'(출23:3)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억하게 하는 세 가지 절기는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 이다.
유월절(무교절)은 1월 14일로 아내와 아들 Jimmy 의 생일이고, 오순절 (칠칠절, 맥추절)은 그로부터 7X7=49 일 다음이고, 초막절(수장절, 장막 절)은 7월 15일로 내 생일이기에 나에게는 이 절기를 저절로 지킬 수 있음 이 정말 축복인 것 같다. 이 절기들은 하나님이 삶 가운데 얼마나 놀라운 일 들을 행하셨는지를 돌아보고 감사하며 늘 함께 동행하는 하나님을 기억하 는 날이다. 안식일이 그때마다 제대로 하나님을 따라 가고 있는지를 돌아 보는 날이라면, 이 세 가지 절기는 동행하시고 일하신 하나님을 절절히 기 억하기 위한 시간이고, 이는 신앙 생활에 있어서 우상 숭배로 빠지느냐 아 니냐를 가늠케 하는 중요한 절기이다.
왜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라고 했을까?(출 23:19)
맛있는 음식을 위한 요리법이 아니라 가나안 토착민의 풍요제에서는 새끼 염소를 어미의 젖으로 삶는 의식이 있었는데, 가나안의 우상을 섬기는 사 람들은 그렇게 함으로 마술적인 능력이 있다고 믿었고 보다 많은 소출과 다산을 위해 농작물이나 포도원 등에 그렇게 삶은 물을 뿌리는 행위였고 결국은 우상 숭배의 제사같은 것이기에 금하도록 했다.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은, 어미의 젖은 생명을 키우고 살리는 곳에 쓰던 것인데, 이것을 죽은 염소 새끼를 삶는 곳에 쓰지 말라는 뜻으로, 생 명을 살리는 것은 죽이는 것에 쓰지 말고 살리는 것에 쓰라는 마음을 주신 다. 이미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에서 가치없다고 '죽은 자 문화'라고 결론 내린 것들에 연연해하지 말고 생명을 살리는 것에 연연해야 함을 말씀하신 다. 세상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살기 위해 먹어야 할 것은 이 죽은 자 문화가 아니라 생명이어야 함을 깨닫게 하신다.
Do not eat 성공.


Do not eat 명예. Do not eat 권력. Do not eat 돈.
Do not eat 욕망. Do not eat 분냄. Do not eat 상처. Do not eat 쓴뿌리. ...
Eat Jesus Christ!!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 니"(요6:56)
주님. 이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이 동행하시고 일하셔왔음을 늘 기억하는 '하나님 중심 훈련'을 하는 것은 바로 제 자신을 위한 길이며 장차 우상숭배 로 올무가 될 '세상 중심의 삶으로부터의 Exodus 훈련'임을 고백합니다. 이 땅도 그리스 땅도 우상숭배의 올무에 잡히는 세상 중심의 삶에서 채우 시고 동행하시고 공곱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변 화되기를 소망합니다.
'때광 프로젝트 27: 다짐, 태만으로부터의 Exodus' "하나님과 맺은 사랑의 언약"
출애굽기 24:1-8
오늘 말씀은 '시내 강의실'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직강 도중에 임원을 부르 시더니 반장하고만 독대를 하신다. 모세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미 시작하신 언약을 전해주시면서 '다짐 훈련'을 하게 함으로써 비록 철저히 지켜지지 는 않아도 아예 따르려고 하지도 않는 '태만으로부터의 Exodus 훈련'을 시키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출애굽기 12장까지가 하나님을 알리시는


'야다 프로젝트' 였다면 지금은 출애굽 백성이 하나님의 선택백성으로서 자질을 갖추도록 때 빼고 광 내도록 하시는 '때광 프로젝트'를 하시고 계신 하나님이시다. 세상이라는 애굽에서는 나왔지만 아직도 몸 구석 구석에 붙 어 있는 노예근성의 때들... 그 때를 벗기는 작업은 이제부터 하나씩! 그리 고 귀에 따갑도록 반복되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 때를 벗기는 스물 일곱 번째 프로젝트는 늘 지키지 못하고 포기해야 하 는 상황에서도 '다짐 훈련'을 하게 함으로써 아예 몸도 마음도 멀리 떠나는 태만으로부터의 Exodus 훈련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중 임원들인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명을 부르신다. 그것도 다들 멀찍이 있게 하고 반장인 모세만 부르신다. 왜 모세만 부르시는 것일까?
이 마음은 나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라 이해할 수 있다. 지금 하나 님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을 계획대로 진행중이시다. 그래서 모 세를 하나님이 먼저 부르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켰으며 이제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간의 끈끈한 모종의 언약을 맺으려고 한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 백성으로의 선택이고 그것을 하나님이 먼저 시작하시려 한다 는 것이다. 물론 언약의 결과가 어떨지 백성들이 잘 지켜낼 지는 미지수이 다.
하나님도 이걸 아시는 것 같다. 그래서 모든 백성과 함께 약속을 정했다가 백성이 지키지 못하면 그들을 징벌해야 될지도 모르기에 일단 반장을 부르 신다. 나도 학생들을 가르칠 때 가끔 쓰는 방법이기에... 이 말은 그들이 언 약을 지킬 것을 기대하신다기 보다는 이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언약을 주시고자 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역시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선 택하는 것도 그들이 잘 나고 잘 지킬 것 같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일방적 으로 하나님의 선택백성으로 삼을 것을 결단하고 그것을 반장을 통해 알리 시는 모습과도 같다. 그래서 이 하나님이 주시는 언약은 사랑의 언약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백성들이 언약을 지킬 수 있는 수준이 되기까지 하나님


은 반장인 모세를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알려주신다.
이스라엘 백성은 반장인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출24:3)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출24:7)
라며 하나님이 주신 사랑의 언약을 받들고 따르겠다고 다짐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이 다짐은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였다.
나도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주신 은혜와 구원을 받았을 때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내가 준행하겠습니다"
라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녀로서 다짐을 했음에도 그 후의 나의 행동 과 거룩하지 못한 마음과 순종치 않은 내 모습을 돌아보면 이스라엘 백성 처럼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이다.
하나님의 언약은 이제 생각해보니 나의 반응과는 상관없는 절대적인 사랑 이었다.
내가 아무리 착한 일을 많이 해도, 선한 마음을 가져도 "절대로 깨끗하게 할 수 없는 죄된 모습을 씻는 길을 십자가를 통해 만들어 놓았으니 그 길을 통해 내게 오거라" 하시며 일방적으로 시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주신 사 건이 십자가이고, 이 세상에서 더럽지 않은 거룩한 모습으로 살도록 날마 다 사랑의 편지를 보내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고, 그 날마다 보내시는 사랑 의 편지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비록 편지를 읽을 것을 기대하지 않아 도 읽은 대로 따를 것을 기대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날마다 보 내신다. 언젠가 그 편지를 읽고 지킬 날을 기대하면서...
이제 하나님의 마음이 조금 느껴진다. 비록 내가 늘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지는 못해도 그럴 때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내가 준행하겠습니다"
라고 다짐할 때마다 조금 씩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킬 수 있는 모습으로 변해감을 기대하시는 하나님은 필요할 때마다 자꾸 다짐하라고 하신다. 이


게 '다짐 훈련'이다. 이 다짐도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의 삶은 태만이고, 아 무런 소망도 기대도 없음을 깨달으며 포기하지않고 계속 다짐 훈련을 해 나가야 한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내가 준행하겠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주신 언약을 다짐하면서도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인 저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차차 나아질게다. 또 다짐한다면..." 하시며 기대하시 는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이 땅도 그리스 땅도 늘 지키지 못하고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다짐 훈련'을 하게 함으로써 아예 몸도 마음도 멀리 떠나 는 태만으로부터의 Exodus 훈련을 잘 감당하기를 소망합니다.
'때광 프로젝트 28: 40주야, 인스탄트로부터의 Exodus' "기다림 이후의 영광스런 만남"
출애굽기 24:9-18
오늘 말씀은 '시내 강의실'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중 임원들만 시내산으로 부르시더니 드디어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시고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시 는 것을 경험하게 하신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해 하나님과 함께하는 '40주야 훈련'을 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사역이, 교회가, 설교가, 말씀이 자꾸 자판기처럼 인스탄트 처럼 변하는 '인스탄트 로부터의 Exodus 훈련'을 시키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출애굽기 12 장까지가 하나님을 알리시는 '야다 프로젝트' 였다면 지금은 출애굽 백성 이 하나님의 선택백성으로서 자질을 갖추도록 때 빼고 광 내도록 하시는 '때광 프로젝트'를 하시고 계신 하나님이시다. 세상이라는 애굽에서는 나 왔지만 아직도 몸 구석 구석에 붙어 있는 노예근성의 때들... 그 때를 벗기 는 작업은 이제부터 하나씩! 그리고 귀에 따갑도록 반복되어야 한다는 말 씀이다.


그 때를 벗기는 스물 여덟 번째 프로젝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해 하 나님과 함께하는 '40주야 훈련'을 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사역이, 교회가, 설교가, 말씀이 자꾸 자판기처럼 인스탄트 처럼 변하는 인 스탄트로부터의 Exodus 훈련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의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출24:10)
드디어 모세를 비롯한 74명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보게 된다. 발 아래 이지 만... 마치 천국에서의 삶을 맛보는 그들... 부럽다...
나도 보구 싶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이들의 마음이 어땠을까...
어젠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이 세상에 있는 교회들에 대해 걱정을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왜냐하면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고 있는 현실이기에...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까...
지금 제대로 설교를 하고 있는 것일까...
지금 제대로 하나님이 바라시는 마음과 길에 들어 선 것일까...
회개를 너무 쉽게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치 인스탄트 자판기처럼 회개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용서함이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사역이, 교회가, 설교가, 말씀이 자꾸 자판기처럼 인스탄트 처럼 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느 것도 영적인 문제들이라 하나님의 마음이 없이는 깨끗하게 결론이 나 는 것이 아니라 답답하기는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늘 하나님과 함께 하 고자 하는 성도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하신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진정한 교회의 모습은 무엇일까? 분명한 것은 대부분 의 목회자들이 바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이 그렇게 손 가락질 하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그러기에 변화해야 하는데 교회가 하나 님 것이 아니라 내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들 때문에 쉬워야 할 일들이 영적 전쟁을 치루는 것보다 어렵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 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더라'(출24:11)
하나님은 지금도 교회에 대해 그리고 그곳의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해 손을 대시지 않는 듯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존귀한 자들이 다칠 지도 모른다는 마음에서 이시다. 그러나 그런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뵐 수 있는 것이 감사하다. 시내산에서 얼마나 하나님과 세상적인 음식을 먹고 마셨는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은 영적으로 하나님을 먹고 마시는 충만함 가운데 있음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을 뵈면, 하나님 말 씀을 들으면, 말씀과 함께 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체험하며 하나님이 채워 주시는 영적 양식을 먹고 마심을 경험하는 것임을 알게 하신다. 교회란 그런 곳이다.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시는 곳이다.
설교란 그런 것이다.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시는 이야기이다.
말씀이란 그런 길이다.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시는 길이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런 사람이다.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시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삶 안에서 하나님의 모습이 드러나도록...
그래서 절대로 인스탄트로는 얻을 수 없는 게 교회이고, 설교이고, 말씀이 고, 그리스도인이다. 인스탄트로 얻은 것이라면 무늬만 교회이고, 무늬만 설교이고, 무늬만 말씀이고, 무늬만 그리스도인이기에 그곳에 하나님을 뵙 고 먹고 마시는 일이 없다.
오늘도 모세는 하나님과 독대를 하기 위해 하나님의 산에 오르고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시내산 구름 속에서 '사십 일 사십 야'를 머문다. 돌판에 쓴 율법을 받기 위해서... 말씀을 받기 위해...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해주기 위 해... 교회가, 설교가, 말씀이 이런 준비가 있어야 함을 깨닫게 하신다.
모세의 '사십 일 사십 야'를 묵상하는데 이 긴 '사십 일 사십 야' 동안 모세 의 심정은 얼마나 익사이팅 했을지 생각해본다. 40년의 낮같은 왕궁에서 의 삶, 40년의 밤같은 미디안에서의 삶... 그리고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 이 지내야 할 광야 40년...
모세의 '사십 일 사십 야' 같은 시간이 나에게도 필요함을 말씀하시는 듯하


다. 오직 말씀을 받기 위해 준비된 '사십 일 사십 야'가 있어야 함을...
이 땅에서의 삶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모세처럼 '사 십 일 사십 야'를 하나님과 함께 말씀과 함께 젖어 사는 기간이다.
"이젠 됐다. 나랑 가자."
라고 말씀하실 하나님을 기다리며 그분의 임재와 동행을 경험하는 '사십 일 사십 야'는 나에게 허락된 세상에서의 삶이지 않을까...
주님. 이 세상에서 제게 허락된 '사십 일 사십 야' 동안 하나님을 향한 마음 이, 사역이, 교회가, 설교가, 말씀이 자꾸 자판기처럼 인스탄트 처럼 변하 는 것으로부터 보호해 주시고 세상의 40년 보다 하나님 앞에서의 4초가 더 값진 시간임을 고백합니다. 이 땅도 그리스 땅도 인스탄트 자판기처럼 여겨지는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사역이, 교회가, 설교가, 말씀이 삶을 통 해 절절이 경험되는 삶인 '사십일 사십 야'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때광 프로젝트 29: 거기서, 여기서로부터의 Exodus' "성소,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
출애굽기 25:1-22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만나실 증거궤와 속죄소를 만들 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이 늘 임재하시는 장소를 갈망하는 '거기서 훈련'을 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을 만나는 곳을 내가 편한 대로 나 위주로 정하는 곳 인 '여기서'가 아니며 내가 정한 '여기서'는 절대로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 없고 더욱 더 커져만 가는 나의 교만을 만나는 곳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심 으로 내가 만든 '여기서'로부터 Exodus 훈련을 시키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출애굽기 12장까지가 하나님을 알리시는 '야다 프로젝트' 였다면 지금은 출애굽 백성이 하나님의 선택백성으로서 자질을 갖추도록 때 빼고 광 내도록 하시는 '때광 프로젝트'를 하시고 계신 하나님이시다. 세상이라


는 애굽에서는 나왔지만 아직도 몸 구석 구석에 붙어 있는 노예근성의 때 들... 그 때를 벗기는 작업은 이제부터 하나씩! 그리고 귀에 따갑도록 반복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 때를 벗기는 스물 아홉 번째 프로젝트는 하나님이 늘 임재하시는 장소 를 갈망하는 '거기서 훈련'을 하게 함으로써 나의 욕심과 교만과 유익만 쌓 아 둔 '여기서'로부터 Exodus 훈련이다.
모세가 '사십 일 사십 야'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준비가 되었을 때 처음으로 이르시는 말씀이 "너희들 중 값진 것을 기쁜 마음으로 나에게 가져오라. 그것으로 내가 머물 증거궤를 만들려고 한다" 이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기쁜 마음으로 내는 자가 내게 바치는 모든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출25:2)
광야라는 허접한 환경에서 그나마 값진 것을 간직했다가 언젠가 쓰려고 했 던 귀중품을 하나님이 쓰시겠다고 다 가져오라니?
사람들은 하다못해 공중 목욕탕을 가도 '귀중품은 보관소에'라는 사인판도 무시할 정도로 자신이 귀중품을 가지고 싶어하는 생리가 있다. 그래서 귀 중한 것들을 '기쁜 마음'으로 드리고자 하는 사람은 이러한 사람의 기본적 생리 위에 하나님을 두는 사람이다. 내게 맡겨진 삶의 자리, 관계, 소유보 다 하나님을 생각하면 저절로 기쁜 마음이 드는 자라는 말씀이시다.
하나님은 이 귀한 것들 중 가장 귀한 금을 모아 증거궤를 만들라고 하신다. 언약궤라고도 불리는 이 증거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으로, 그 안에 하나님이 일하셨던 증거들인 십계명 두 돌판과 만나를 담은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넣게 된다.
이것들을 증거궤에 넣어 두라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은, 구원은 지식이나 이론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삶 가운데 오셔서 일하신 증거들을 체험하는 것이고, 그 체험이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증거 궤 안에는 십계명이라는 말씀과 만나라는 생명의 삶 QT 와 그저 늘 내가 가지고 다니던 지팡이 였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만 하면 홍해도 갈랐던 지팡이이고 삶임을 깨닫게 하신다. 오늘도 나의 삶 가운데 하나님이 임재 하실 곳은 말씀과 날마다 하나님과 만나는 QT 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 하는 지팡이의 삶임을...
이 증거궤는 The Ark 로 그 안에 들어가야만 살 수 있던 노아의 방주처럼 하나님의 유일한 구원의 방주이며, 각자의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 임재하시 고 개입하시고자 직접 찾아오시는 이동 성전이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 25:22)
속죄소에 있는 두 그룹천사를 두라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그냥 멋진 seat 의 모양을 만들라는 것이 아니라 두 그룹천사를 만들라시 는 의도를 묵상해본다. 하나님을 나의 주로 고백하고 내 마음의 주인의 자 리를 주님께 내어드리는 영접은 그저 "자리 여기 있어요"하고 의자 하나 놔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해서 늘 삶의 양편에서, 삶의 기쁜 상황이나 슬픈 상황에서도 두 팔을 벌리고 기다림으로 갈망할 때 하 나님은 그곳에 계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을 만나는 곳은 내가 정하는 곳이 아니고 내가 편하게 나 위주로 만 든 '여기서'가 아니다. 내가 정한 '여기서'는 절대로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 없고 더욱 더 커져만 가는 나의 교만을 만나는 곳이다. '여기서'가 아니라 '거기서' 이다. 하나님 만나는 곳은 '거기서'이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곳이 고,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곳이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곳이다.
하나님의 언약궤의 덮개인 속죄소 혹은 시은좌(mercy seat)에서 나에게 명령할 모든 일을 이르시는 증거궤인 The Ark 는 오늘날 성경 말씀이며,


내 눈 앞의 성경책을 펼치는 순간 바로 내 앞에 존재하는 이동 성전이다. 이 것이 바로 출25:22 에서 말씀하신 '거기서' 이고, 말씀을 폈을 때 하나님 과 내가 만나도록 하는 영적인 역사가 일어나는 곳이다. 이것이 가장 귀중 한 것이고 구원의 Ark 임을 깨닫는 자는 당연히 기쁜 마음으로 내가 가진 덜 귀중한 것들을 드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주님. 내게 맡겨진 삶의 자리, 관계, 소유보다 하나님을 생각하면 저절로 기쁜 마음이 드는 자, 세상에서 얻은 덜 중요한 것을 기쁜 마음으로 드려서 가장 중요한 하나님을 얻는 자 되기를 원하며 이 땅도 그리스 땅도 하나님 께 의자 하나만 달랑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해서 늘 삶 의 양편에서, 삶의 기쁜 상황이나 슬픈 상황에서도 두 팔을 벌리고 기다림 으로 갈망하며 하나님이 그곳에 계시기를 원하는 삶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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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주님의 커스텀 메이드 :출25:1~22
나의 마음을 원하시는 하나님은 오늘, 증거궤를,사이즈와 재료를 알려 주 시며 주문 제작 하신다.
언약궤를 그리 만드시셨듯이 ,하나님은 나도 커스텀메이드로 만드셨다. 겉도 하나님 주문대로,
속도 하나님 주문대로.
내 속엔 성령을 보내 주셨고,나라는 증거궤속엔 '당신의 증거'를 넣어,기억 에 남게 하시어 날 증인 삼으셨다.
나라는 증거궤속의 돌판(성경말씀,레마), 지팡이(간증들),만나의 항아리 (말씀과 기도,묵상과 예배와 교제)는 잘 보관되어 있는가?
난 어떤가?
오늘도 주신 '성령'의 도움으로 이 증거에 입각한 증인으로 살고 있나?
하나님이 손수 주문하고, 손수 제작한 '나'!


나는 하나님의 성소이고,하나님이 임재하는 곳이다.
"너희 몸은너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바,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냐?"고전6:19
주님은 성전에서 장사하는 이들에게 불같이 화를 내셨다.
성전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다.그러기에 그곳에는 회개와 용서가 있어야 하 고,거룩한 교제가 이뤄져야하며,기도와 예배가 늘 있어야 한다.
'나'라는 성전,'나'라는 증거궤에선 매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장사를 하고 있진 않은가?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진 않은가?
예배도 없이 찬양도 없이 감사도 없이 하루를 그렇게 보내버리고 있진 않 은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찍어낸 기성복처럼,그렇게 살고 있진 않은가?
오늘은 날 둘러보는 시간을 가져 본다.
나라는 성소,나라는 증거궤에 하나님이 담으신 그 진실을 붙잡으며,창조주 의 커스텀메이드란 자부심으로...
새마음을 가져 본다.
성전 청소에 돌입해본다^^
'때광 프로젝트 30: 파견 근무, 집착으로부터의 Exodus' "하나님 백성은 세상의 빛입니다"
출애굽기 25:23-40
오늘 말씀은 세상의 삶 가운데서도 늘 하나님의 얼굴 앞에 나아와 하나님 의 말씀을 따르는 '파견근무 훈련'을 하게 함으로써 세상에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데 발목을 잡는 '집착으로부터 Exodus 훈련'을 시키시는 하나님


이시다. 그래서 출애굽기 12장까지가 하나님을 알리시는 '야다 프로젝트' 였다면 지금은 출애굽 백성이 하나님의 선택백성으로서 자질을 갖추도록 때 빼고 광 내도록 하시는 '때광 프로젝트'를 하시고 계신 하나님이시다. 세 상이라는 애굽에서는 나왔지만 아직도 몸 구석 구석에 붙어 있는 노예근성 의 때들... 그 때를 벗기는 작업은 이제부터 하나씩! 그리고 귀에 따갑도록 반복되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 때를 벗기는 서른 번째 프로젝트는 비록 이 세상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소속은 언제나 하나님의 보좌 앞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각자의 삶 속에서 어떠한 일을 하던지 모든 일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파견 근무'이며, 모든 결 산은, 모든 결정은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배우는 '파견근무 훈 련'으로써 세상에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데 발목을 잡는 집착으로부터 Exodus 훈련이다.
오늘 말씀은 진설병과 등대를 만들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내 삶 속에 서도 진설병과 등대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 지를 생각하게 하신다.
진설병은 상 위에 진설 즉 벌여놓는 떡이라는 말로 히브리어 표현은 문자 적으로 '얼굴의 빵'이라는 말로 하나님의 얼굴 앞에 있는 이스라엘을 뜻한 다. 진설병은 각각 2.5 kg 의 밀가루로 구워 그 위에 유향을 뿌린 떡을 여 섯 덩이씩 두 줄로 쌓아놓아 안식일 마다 새 떡으로 갈고, 묵은 떡은 제사장 들이 성소에서 먹었다.
진설병을 제사장이 먹는 것처럼 나도 예배자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예배 중에 이 진설병을 먹어야 함을 말씀하신다. 이 진설병은 바로 Bread of Presence (NIV) 이다. 하나님의 임재의 떡이 없이 어떻게 예배를 드렸다 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수많은 교회에서 드리고 있는 예배에는 이 진설병 Bread of Presence 인 하나님의 임재의 떡이 없이 그저 순서와 시간만 때우는 Time of Presence 가 되진 않았나 돌아보게 된다.


이 하나님의 임재의 떡은 나의 눈높이로 내 눈에 보이는 임재로 이 땅에 오 신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요6:35 에서 말씀하신 '생명의 떡'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 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6:35) 예배는... 바로 예수님을 먹는 것임을 깨닫게 하신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
예수님을 잡는 것...
예수님을 먹는 것...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 그래서 Bread of Presence 이다.
언약궤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이라면 이 진설병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을 상징하며 하나님 앞에 놓인 열두 떡덩이처럼 늘 서로가 하나되는 공동체에서 서로에게 하나님이 주신 선한 연향력을 끼치고 있는 모습을 하 나님이 늘 지켜보고 계심을 나타내는 임재의 떡이다.
'상 위에 진설병을 두어 항상 내 앞에 있게 할지니라'(출25:30)
거룩한 떡인 12지파의 거룩하게 구별된 이스라엘 백성이 항상 하나님 앞 에 있다는 것은 그들이 비록 이 세상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그들의 소속은 언제나 하나님의 보좌 앞이라는 사실을 나타내며 각자의 삶 속에서 어떠한 일을 하던지 모든 일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파견 근무'이며, 모든 결산은, 모든 결정은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의미한다. '파견 근무' 나온 사 람에게 중요한 것은 파견 보낸 이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고 하나님의 얼굴 앞에 늘 서 있는 자세임을 깨닫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만들도록 하시는 등대는 하나님과 만나는 지성소를 밝히는 빛 이고 히브리어로는 '메노라'라고 부른다. 등대에 기름이 부어지면 모든 등 잔이 활활 타오르듯이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으면 빛은 저절로 밝히도록 되어 있다. 저절로 말씀보며, 저절로 기도하고, 저절로 QT 하고, 저절로 봉 사하고, 저절로 전도하고, 저절로 기뻐지며, 저절로 평안 가운데 있게 된


다. 말씀 보라고, 기도하라고, QT 하라고, 봉사하라고, 전도하라고, 기뻐 하라고, 평안하라고 통사정 할 것이 아니라 성령의 기름부음을 성령의 사 역을 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말씀보고, 기도하고, QT 하고, 봉사하고, 전 도하고, 기뻐하고, 평안하는 7 가지 촛대를 밝히는 기름의 통로는 오직 하 나인 성령의 기름부음이며(출25:31) 그 기름의 근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 도 이심을 알게 하신다.
그래서 이 7 개의 가지에 성령 충만의 기름부음이 가득하여 저절로 말씀보 며, 저절로 기도하고, 저절로 QT 하고, 저절로 봉사하고, 저절로 전도하 고, 저절로 기뻐지며, 저절로 평안 가운데 있게 되면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완전한 영광을 드러내는 등대가 된다. 또한 이 7개의 가지는 나의 찬양하 는 입술과 두 손과 두 발 그리고 보이진 않지만 꼭 드려져야 하는 마음과 삶 을 의미하지 않을까...
오늘 만들라시는 진설병과 등대는 '파견 근무' 나온 삶의 자리에서 늘 하나 님의 얼굴을 향하여 온 몸과 마음과 삶을 태워 올려드리는 성령의 기름부 음의 삶임을 기억하며 오늘도 다짐해 본다.
"주님. 파견 근무 충실히 하다가 만나뵙겠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허락하신 이 땅에서의 삶이 '파견 근무'된 삶임을 깨닫게 하 여 주심을 감사드리며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양만큼 모두 태우는 삶 되 기를 원합니다. 이 땅도 그리스 땅도 비록 이 세상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소속은 언제나 하나님의 보좌 앞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각자의 삶 속에서 어떠한 일을 하던지 모든 일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파견 근무'이며, 모든 결 산은, 모든 결정은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배우는 '파견근무 훈 련'을 통해 세상에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데 발목을 잡는 집착으로부터 Exodus 훈련을 잘 감당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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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앞에 나아가 분향하는 것으로 상징되는 예배행위. 그것을 위해 거 쳐야 할 마지막 관문이 성소 안의 진설병을 먹는 것이다.
구약시대에 제사장이 진설병을 먹고 하나님을 섬겼듯이, 신약시대는 왕같 은 제사장으로 부름받은 우리 역시 하나님 앞에 참 예배자로 서기 위해서 는 반드시 성소 안의 진설병을 먹어야 한다.
무심코 영어 성경을 읽다가 진설병이라는 단어가 'showbread'(ASV)라 고 번역되어 있는 것을 보고 깊이 묵상하게 되었다.
그대로 해석하면 '보이기 위한 떡', '자랑하기 위한 떡' 정도가 될 것 같다. 그렇다면 도데체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떡이며. 누구에게 자랑하기 위한 떡이란 말인가?
예배자로서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진설병을 먹으라고 명 하신다. 예수님과 더불어 먹는 떡인 진설병. 이 떡이야말로 우리 인생에서 자랑의 시작이요 끝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사도 바울이 깨달았던 자랑의 본질이다.
예수님 안에 있는 자랑,
예수님에 관한 자랑,
오직 예수님밖에 없는 자랑, 예수님과 함께 있는 자랑,
예수님과 더불어 먹고 마시는 자랑...
평생을 목 터져라 외쳐야 할 그 자랑거리였던 것이다.
공동묘지에는 자기 이름을 남기고 죽은 수많은 사람의 비석이 있다. 그러 나 비석을 남긴 이름으로 자랑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영원히 남을 자랑거리는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과 얼마나 많이 예수님과 더 불어 진설병을 나누었는가 하는 행위들이 쓰인 책에 기록된 이름이다.


'때광 프로젝트 31: 내유외강, 가림으로부터의 Exodus' "겉보다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
출애굽기 26:1-14
오늘 말씀은 하나님을 만나고자 열망하는 마음은 부드럽게 그러나 외부의 영적 전쟁에 대해서는 강하게 하는 '내유외강 훈련'을 하게 함으로써 세상 에서 삶의 모습들을 가리고, 교만을 가리고, 자랑을 가리고, 욕심을 가리는 '가림으로부터 Exodus 훈련'을 시키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출애굽기 12장까지가 하나님을 알리시는 '야다 프로젝트' 였다면 지금은 출애굽 백 성이 하나님의 선택백성으로서 자질을 갖추도록 때 빼고 광 내도록 하시는 '때광 프로젝트'를 하시고 계신 하나님이시다. 세상이라는 애굽에서는 나 왔지만 아직도 몸 구석 구석에 붙어 있는 노예근성의 때들... 그 때를 벗기 는 작업은 이제부터 하나씩! 그리고 귀에 따갑도록 반복되어야 한다는 말 씀이다.
그 때를 벗기는 서른 한 번째 프로젝트는 하나님과의 교제는 늘 부드럽고 섬세하게 '내유외강 훈련'을 함으로써 세상에서 삶을 가리고, 교만을 가리 고, 죄를 가리고자 하는 가림으로부터 Exodus 훈련이다.
오늘 말씀은 성막의 휘장을 만들라고 하신다. 이 휘장은 여러 폭의 천을 이 어만든 둘러치는 장막을 말한다. 성경에서는 지성소와 성소를 구분하고, 성소와 안뜰을 구분하는데 각각 휘장이 있었다(민 3:26).
'너는 성막을 만들되 가늘게 꼰 베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로 그룹을 정교하 게 수 놓은 열 폭의 휘장을 만들지니'(출26:1)
청색 자색 홍색실은 마치 이발관의 청색 홍색 처럼 피를 상징하며 하나님 께 제사 지낼 때 없어서는 안될 피이고 생명을 상징함을 말씀하신다. 바로 지성소 안에는 세상에서 죄가 없는 오직 한 곳이며 이 청색 자색 홍색실은 죄를 씻는 능력이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성징한다. 그러나 휘장 밖은 어떠한가...


온갖 죄로 물들어 있는 곳이고 휘장의 단단한 세 겹의 막은 절대로 죄는 들 어올 수 없다는 단호함을 상징한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된 인간 사이 에 뚜렷한 간격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대제사장도 1년에 단 한번 속죄제일에 속죄제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 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자세히도 성막의 색과 크기, 연결 방법까지 자세하고 정확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이 지시하시는 말씀을 묵상하며 그저 내가 이 해할 수 없는 선한 길로 인도하실 모호한 하나님이 아니라 언제나 정확하 게 말씀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세하 고 정확하게 알려주시는 분이심을...
하나님의 일엔 대충 없다. 자세하고 정확해야 함을... 하나님의 말씀엔 대충 없다. 자세하고 정확해야 함을... 하나님의 복음엔 대충 없다. 자세하고 정확해야 함을...
성막의 안쪽과 바깥은 전혀 다른 모습이다. 마치 내유외강의 모습이다. 안쪽은 청색 자색 홍색실로 그룹을 정교하게 수놓은 열 폭의 휘장으로, 여 기에도 그룹을 수놓은 것을 보면 늘 삶의 양편에서, 삶의 기쁜 상황이나 슬 픈 상황에서도 두 팔을 벌리고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림으로 갈망하는 부드 럽고 세밀한 마음의 모습이다. 그러나 겉모습은 삼중 덮게였다. 첫째는 염 소털로 만든 막이며, 둘째는 붉은 물들인 숫양의 가죽으로 만든 덮개이며, 셋째는 돌고래의 가죽으로 만든 윗덮개이었다.이는 내유외강의 모습으로 외부의 영적 전쟁에 잘 견디도록 강해야 함을 의미하고 있다.
나의 휘장은 어떠한가?
오히려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오시기 힘들게 교만으로, 자랑으로, 욕심으 로 세 겹의 단단한 외부 바리케이트를 두르고 하나님의 임재를 막고 있는 휘장은 없는지... 오히려 세상에서 삶을 가리고, 교만을 가리고, 죄를 가리 고자 하는 가림판으로 사용하고 있는 휘장은 없는지 돌아보게 된다.


휘장은 영어로는 curtain 이다. 내 삶 속에서의 커튼은 나의 교만을, 나의 자랑을, 나의 욕심을 가리기 위한 삼중 커튼인가... 아니면 세상의 부질없 는 것들로부터 분리하고 하나님과의 교제에만 집중하기 위해 구별된 커튼 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이 커튼은 더이상 하나님과 나를 분리시 키는 커튼이 아니라 세상과 분리하고 나를 하나님과 교제의 자리에 두게 하는 문이 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순간에 하나님도 더 이 상 죄로 인해 하나님과 나를 구별하는 휘장이 필요없음을 아시고 손수 위 로부터 아래로 가르셨다. 하나님과 나 사이의 죄의 강을 하나님이 다시 한 번 홍해처럼 가르신 사건이 휘장의 가르심이고 십자가 사건임을 깨닫게 하 신다. 이 휘장의 가르심으로, 십자가 사건으로 나의 교만도, 자랑도, 욕심 도 모두 갈라졌음을 선포한다.
주님. 주님께서 만들라시는 내유외강의 휘장을 제 삶 가운데 둘러서 세상 의 부질없는 것들로부터 분리하고 하나님과의 교제에만 집중하기 위해 구 별된 커튼으로 사용하도록 인도하여 주세요. 이 땅도 그리스 땅도 하나님 을 만나고자 열망하는 마음은 부드럽게 그러나 외부의 영적 전쟁에 대해서 는 강하게 하는 '내유외강 훈련'을 하게 함으로써 세상에서 삶의 모습들을 가리고, 교만을 가리고, 자랑을 가리고, 욕심을 가리는 '가림으로부터 Exodus 훈련'을 잘 감당하기를 소망합니다.
'때광 프로젝트 32: 널판, 분리로부터의 Exodus' "연합과 구별로 견고해집니다"
출애굽기 26:15-37
오늘 말씀은 성막을 위해, 예배를 위해 세워지는 널판이 어떠해야 하는지 를 알게 하시는 '널판 훈련'을 하게 함으로써 널판을 거꾸로 조립함으로써


널판지처럼 그저 예배를 분리하고 하나님을 분리하고 연합을 분리하는 '분 리로부터 Exodus 훈련'을 시키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출애굽기 12 장까지가 하나님을 알리시는 '야다 프로젝트' 였다면 지금은 출애굽 백성 이 하나님의 선택백성으로서 자질을 갖추도록 때 빼고 광 내도록 하시는 '때광 프로젝트'를 하시고 계신 하나님이시다. 세상이라는 애굽에서는 나 왔지만 아직도 몸 구석 구석에 붙어 있는 노예근성의 때들... 그 때를 벗기 는 작업은 이제부터 하나씩! 그리고 귀에 따갑도록 반복되어야 한다는 말 씀이다.
그 때를 벗기는 서른 두 번째 프로젝트는 그리스도인 각자가 예배를 조립 하기 위해 서 있는 널판임을 깨닫는 '널판 훈련'을 함으로써 세상에서 예배 를 분리하고 삶을 분리하고 연합을 분리하고자 하는 분리로부터 Exodus 훈련이다.
오늘 말씀은 성막의 널판을 동서남북으로 하나님이 모세에게 보이신 양식 대로 아카시아 나무의 일종인 조각목으로 만들게 자세히 일러주시며 성막 의 벽체 제조 및 조립법에 대해 말씀하신다.
'각 판에 두 촉씩 내어 서로 연결하게 하되 너는 성막 널판을 다 그와 같이 하라'(출26:17)
성막의 널판들이 두 촉을 내어 서로 연결되듯 공동체가 교회가 하나로 연 결되어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습이 되어야 함을 말씀하신다. 목회는, 사역 은. 봉사는, 섬김은 '서로 연결하게' 하는 것임을 깨닫게 하신다.
'각 판에 두 촉씩 내어'를 통해 주시는 마음이 있다.
아래 두촉에도 '은받침'으로 세상과 닿게 하라는 말씀은 바로 하나님을 믿 는 그리스도인이 살아야 할 연합의 모습과 성결의 모습이라고 하신다. 마 치 내 두 손이 널판의 두 촉이 되고 내 발이 은받침을 통해 세상과 맟닿는 두 촉임을 깨닫게 하신다.
이런 모습이 교회 안에 있어야...
목회자, 선교사, 사역자, 그리스도인이 이 널판의 모습이어야...
널판에도 얼굴이 있다. 바로 성막을 향하는 예배의 얼굴이다. 그런데 때론


이 앞뒤가 바뀌면 얼마나 추한지 IKEA 에서 가구를 사다 조립해보면 안다. 내 삶의 하나님을 향한 널판들 중 잘못 조립된 부분은 무엇인지, 내 두 손의 촉은 어디를 향해 연합하고 있는지, 내 두 발은 은받침의 성결한 신을 신은 발걸음인지 돌아보게 하시는 말씀이다.
심지어 사역자라도 예배에 널부러진 모습으로 말씀을 전한다면 하나님은 그 널판을 다시 조립하기를 원하시지 않을까...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3)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는 모두가 연합해야 함을 강조하고 하나님이 이동 하실 때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한 구별됨이 있어야 함을 말씀하고 계신다. 이를 또 거꾸로 조립해서 교회 안에서는 그룹을 만들어 구별하고 세상에서는 죄와 연합한 널판지 모 습에는 하나님의 엄중한 경고가 있다.
"처음부터 다시 조립해!"
'너는 산에서 보인 양식대로 성막을 세울지니라'(출26:30)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나의 삶을 세워가고 있는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나의 삶을 세워가고 있는가...
혹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는 모두가 연합해야 하는데 내 맘대로 구별하 고,
하나님이 이동하실 때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세상에서 하 나님의 임재가 가득한 구별됨이 있어야 함에도 내 생각대로 세상과 연합하 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하신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보이시는 '대로', 인도하시는 '대로', 말씀하시는 '대로' 삶을 세워가는 사람임을 깨닫 게 하신다^^
'그 휘장을 갈고리 아래에 늘어뜨린 후에 증거궤를 그 휘장 안에 들여놓으 라 그 휘장이 너희를 위하여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리라'(출26:33) 성막의 가장 안쪽에 썼던 청색 자색 홍색실로 짜서 그룹천사를 수놓은 천


을 위에 있는 기둥에 매달아 아래로 내린 휘장으로 지성소와 성소를 구분 하는 문과 성소와 성막을 구분하는 문으로 사용한다. 가장 통과하기 쉬운 문같이 만들지만 가장 통과하기 어려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가 아니면 절대로 통과할 수 없는 문이다.
성소와 지성소을 구분하여 내려뜨린 휘장이 '너희를 위하여' 구분하기 위 한 것이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지성소엔 예수의 피 없인 못들어가는 문이고, 죽어야만 들어가는 곳이기에 '너희를 위하여' 구분이 필요했다. 그러나 예수의 피로 성소와 지성소의 구 분이 없어진 휘장은 '너희를 위하여' 구분되었다가 '너희를 위하여' 열린 하 나님의 마음임을...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 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 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10:19-20)
하나님의 바램은 단 하나이시다.
"휘장은 더 간편하게 안보이지만 예수의 피가 있어야만 들어올 수 있다. 다 른 어떤 것으로도는 사망이다."
주님. 성막을 위해, 예배를 위해 세워지는 널판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게 하시는 '널판 훈련'을 통해 널판을 거꾸로 조립함으로써 널판지처럼 사는 삶이 안되도록 성령께서 인도해 주시고, 이 땅도 그리스 땅도 각자가 연합 하고 성결의 삶을 살도록 훈련시키시는 '널판 훈련'을 통해 예배가 선교가 사역이 섬김이 늘 연합하고 구별되는 널판의 역할을 감당하기를 소망합니 다.
'때광 프로젝트 33: 산책, 대화단절로부터의 Exodus'
"예배를 준비하는 성막 뜰" 출애굽기 27:1-21


오늘 말씀은 성전 뜰에서 예배로 나아가기 위해 나의 죄된 모습을 하나님 의 말씀으로 번제단에 태우고나면 비로소 시작되는 하나님과의 '산책 훈 련'을 통해 죄된 모습으로 나아가 대화하려 했던 '대화단절로부터의 Exodus 훈련'을 시키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출애굽기 12장까지가 하나님을 알리시는 '야다 프로젝트' 였다면 지금은 출애굽 백성이 하나님 의 선택백성으로서 자질을 갖추도록 때 빼고 광 내도록 하시는 '때광 프로 젝트'를 하시고 계신 하나님이시다. 세상이라는 애굽에서는 나왔지만 아직 도 몸 구석 구석에 붙어 있는 노예근성의 때들... 그 때를 벗기는 작업은 이 제부터 하나씩! 그리고 귀에 따갑도록 반복되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 때를 벗기는 서른 세 번째 프로젝트는 하나님과의 '산책 훈련'을 하며 죄 된 모습으로 나아가 대화하려 했던 '대화단절로부터의 Exodus 훈련이다.
오늘 말씀은 예배를 준비하는 성막 뜰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자세하게 말씀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번제단 혹은 놋단이라고 불리는 제단은 번제물을 태우는 곳이다. 이곳에 번제물을 태움으로써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시작이 된다. 성전 뜰의 모 든 기구는 번제에 필요한 기구들로서 번제를 드리는데 필요한 하나님의 말 씀들임을 깨닫게 하신다. 바로 번제단은 예배로 나아가기 위해 나의 죄된 모습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태우는 것이다.
번제단을 묵상하는데 이곳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에게 매일 매일 적용 시켜 나의 죄를 태우는 날마다의 QT 임을 깨닫게 하신다. 그저 번제단은 번제물을 태우는 곳이고 나는 그 번제단을 바라보는 청중이 아니라 내 자 신이 그곳에서 날마다 태워져야 바른 예배 가운데로 하나님께로 나아감을 깨닫게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 뜰은 나의 죄 때문에 단절되었던 하나님과의 대화가 시작되게 하는 뜰이다. 비로소 번제단에 내 죄된 습성을 하나님의 말씀으


로 태우고나면 하나님이 시작하시는 대화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 대화, 성전 뜰 대화는 시편 135편에 나오는 하나님과의 대화이고 '하나님의 뜰 에 서 있는'(시135:2) 내가 되게 하심이다. '하나님의 뜰'은 바로 성전 뜰 이고,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손 붙잡고 같이 거닐 수 있는 곳이고, 하나 님과 도란도란 대화를 하며 거닐 수 있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공간이다. 그 곳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다고 느끼던 엄마의 자궁만큼 편한한 하나님의 품임을 말씀하신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뜰'인 성전 뜰에 시편기자처럼 나도 들어가 본다. 그곳 에서 기다리신 하나님과 손잡고 거닐면서 하나님과의 대화가 이렇게 시작 된다.
"하나님 저 왔어요. 이곳 하나님에 뜰에까지 마중나와 계셨네요."(시 135:2)
"그럼. 내가 누구를 기다려왔는데. 언제부터 너를 택하고 기다려왔는지 모 를거다(시135:4). 왜냐하면 너는 내겐 아주 특별한 존재이거든.(시 135:4)"
"하나님. 제가 그렇게 하나님께 특별한 존재였어요?"
"너는 내가 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기까지 포기하지 못 한 나의 특별한 존재, 보배로운 내것(treasured possession, NIV Psalm 135:4)이지."
"하나님. 저같은 보잘것 없는 사람을 그렇게 여기셨다니 너무도 감사해요. 위대한 창조주 하나님께서 저를 특별한 존재로 여기신다는 것이 <오~~ 놀 라워라> 입니다. 염치는 없지만 하나님 참 감사해요. 참 잘하셨어요. 그래 서 이렇게 하나님과 손잡고 거닐 수 있잖아요~"
"나도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넘겨줄 때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 지만 네가 대신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 된 것이 너무도 기쁘단다. 이 기쁨을 위해서 나도 그런 일을 한 것이란다.(시135:6) 나도 기쁘단다."
"하나님 참 대단하세요. 아니 전 참 행운아네요. 이 세상에서 그저 일어나 는 줄로만 알았던 안개도, 번개도, 바람도 그 뒤엔 하나님이 계셨네요.(시 135:7) 그뿐아니라 세상이라는 애굽에서 저를 빼내기 위해 행하셨던 놀라


운 일들과 표적들은 저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손이셨군요.(시 135:8-9)"
"그게 왜냐하면 너를 구원하는 것이 내가 기쁘게 되는 길이거든. 너도 네가 기쁜 일을 하려고 하듯이 나도 내가 기쁜 일을 하고자 한 것이란다.(시 135:6) 너를 빼앗아 가고자 하는 세상의 왕들로부터 내가 빼내어오기 위 해 내가 죽인 네 안의 수많은 왕같은 죄와 악함들은 이제 너도 느끼겠지? (시135:10-11)"
"그럼요. 하나님. 그래서 저도 제가 이렇게 하나님의 성전 뜰에서 하나님과 손잡고 거닐면서 이런 대화가 있을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세상에서 기업을 세우고자 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기 업을 세우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다.(시135:12)
제가 빌립보서를 묵상할 때 그러셨잖아요.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 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은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빌4:15) 말씀을 묵상하는데 ‘복음 의 시초에’라는 구절에서 소명을 주실 때의 마음처럼 가슴이 뛰게 하셨잖 아요. 그래서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려나 하고 묵상하다가 메세지 성경 을 보는데 이렇게 나와있었던 것을 보여주셨잖아요. 기억하세요? ‘Venturing out with the Message’ 아하~~
이젠 세상에서 기업을 얻고자 하는 자가 아니라 마치 저를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벤쳐기업의 CEO로 임명해 주시는 마음 주신거요."
"그래. 내가 이곳 성전 뜰에서 너를 기다리기 시작했던 때부터 네게 품게 되었던 나의 기쁜 꿈이기도 하지."
"Wow 하나님. 이곳 성전 뜰에서 하나님과 동행하게 된 것이 모두 하나님 께서 시작하시고 열심히 일하시고 인도하신 결과네요. 대단하세요. 하나 님. 감사 찬송 영광 모두 더해서 하나님을 칭찬해드리는 것으로 하나님의 열심에 보답하고 싶네요.
Praise the LORD! Praise the LORD! Praise the LORD!


Praise the LORD! Praise the LORD!"
주님. 저를 불러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칭찬해드릴게 너무도 많게 일하셨음 을 감사드립니다. 내 삶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곳은 어디든 하나님의 성 전 뜰임을 기억하며 그곳에서 늘 하나님과 동행하며 오늘같은 대화 늘 나 누는 성전 뜰에 늘 서있는 자 되도록 인도해 주세요. 참 이 땅 아시죠? 그리 고 그리스 땅도 아시죠? 이 땅과 그리스 땅 사람들도 이 하나님의 성전 뜰 이 얼마나 좋은지 한번 맛보게 해주시기를 소망합니다.
'때광 프로젝트 34: 거룩, 가짜로부터의 Exodus' "복되지만 책임 있는 직책"
출애굽기 28:1-14
오늘 말씀은 생각이, 마음이, 행동이, 삶이 모두 거룩의 모습이 저절로 드 러나는 삶인 '거룩 훈련'을 통해 마치 하나님을 사칭하며 거룩한 견장을 달 려고 하는 '가짜로부터의 Exodus 훈련'을 시키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래 서 출애굽기 12장까지가 하나님을 알리시는 '야다 프로젝트' 였다면 지금 은 출애굽 백성이 하나님의 선택백성으로서 자질을 갖추도록 때 빼고 광 내도록 하시는 '때광 프로젝트'를 하시고 계신 하나님이시다. 세상이라는 애굽에서는 나왔지만 아직도 몸 구석 구석에 붙어 있는 노예근성의 때들... 그 때를 벗기는 작업은 이제부터 하나씩! 그리고 귀에 따갑도록 반복되어 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 때를 벗기는 서른 네 번째 프로젝트는 거룩한 옷을 삶 속에서 입는 '거룩 훈련'을 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을 빙자한 횡포와 거룩한 견장을 달려고 하 는 가짜로부터의 Exodus 훈련이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 네 형 아론과 그의 아들들 곧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그와 함께 네게로 나아오게 하여 나 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되'(출28:1)
드디어 성막과 지성소, 성소 그리고 번제를 드릴 성막의 뜰을 다 만든 다음 에 그곳에서 하나님을 위해 제사를 드릴 제사장을 세우는 장면이다. 모세 의 형인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인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제 사장으로 세우는데 본인들이 원하기보다는 하나님이 세우시는 모습이다. 제사장은 하나님이 세우신다.
오늘날 제사장이라고 하면 목회자라고 할 수 있는데 하나님을 위해서 오직 하나님을 제사 드리는 일에 예배 드리는 일에 전념하기 위해 헌신된 사람 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예배드리는 일보다 다른 것들에 관심이 많아 져서 점점 예배가 소홀해지고 말씀이 도덕시간보다도 못하면서도 정작 본 인들은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교회들이 솔직히 많다.
제사장은 하나님이 세우는 것인데 사실 세상에서 만든 제사장을 세우는 방 법은 하나님이 세우기보다 사람이 세우고 본인 자신이 세우기에 문제가 생 긴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제사장이 해야 할 의무보다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처럼 그 제사장이 누리게 될 고기가 탐나 제사장이 된다면 그야말 로 하나님을 사칭한 사기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제사장이 되기 위해서는 꼭 입어야 할 옷이 있다. 그것 은 바로 '거룩한 옷'(출28:2,4) 이다. 그저 옷만 입는다고 거룩해지는 것 이 아니라 그의 생각이(관), 마음이(흉패), 행동이(겉옷과 속옷), 삶이(띠) 모두 거룩의 모습이 저절로 드러나는 삶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 이 세우신 제사장인지 아니면 세상이 혹은 스스로 세운 제사장인지는 사실 본인 밖에는 알 수는 없지만 이 말씀을 가늠하여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생각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드러내고 있는지, 그의 마음이 거룩하신 하나님 을 드러내고 있는지, 그의 행동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드러내고 있는지, 그 의 삶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드러내고 있는지를 보면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있다.
만약 제사장이 가짜라면 어떻게 할까?
신앙이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한 것처럼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제사장이 가짜라면 영적인 손실은 이루 말할 수 없기에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한데 오늘 말씀의 '어깨받이'(출28:12)을 통해 알게 하신다.
'그 두 보석을 에봇의 두 어깨받이에 붙여 이스라엘 아들들의 기념 보석을 삼되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그 두 어깨에 메워서 기념이 되 게 할지며'(출28:12)
이 '어깨받이'라고 하면 어깨에 다는 견장과 같다. 군대를 갔다온 사람은 알 겠지만 견장은 계급장과도 같기 때문에 저절로 멋지게 보이고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게 만든다. 오늘 말씀에서 이같은 견장인 '어깨받이'에 금테두 른 호마노 보석을 달고 그 보석엔 6개 지파씩 양쪽에 열두 지파의 이름을 새겨 놓은 모습을 생각하면 두 가지 제사장의 모습으로 갈리게 된다. 열두 지파를 나이 순으로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단, 납달리 6지파와 갓, 아셀, 잇사갈, 스불론, 요셉, 베냐민 6지파를 위해서 중보하며 이들을 하나 님께로 가까이 가도록 예배에 말씀에 기도에 전념하는 거룩한 옷을 입은 제사장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을 열망하는 열두 지파를 하나님의 이름을 가장하여 호령하고 겁주며 이들로부터 가능한 좋은 것들을 다 뽑아내려고 하는 거룩한 견장을 단 제사장이 있다. 안타까운 것은 거룩한 견장을 단 제 사장이 많다는 현실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제사장에 대한 마음은, 그의 생각이(관), 마음이(흉패), 행동이(겉옷과 속옷), 삶이(띠) 모두 거룩의 모습이 저절로 드러나는 삶을 드러내는 제사장은 열두 지파를 연합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예배를 올려드리는 자가 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을 열망하는 열두 지파를 하나님 의 이름을 가장하여 호령하고 겁주며 이들로부터 가능한 좋은 것들을 다 뽑아내려고 하는 거룩한 견장을 단 제사장은 열두 지파 뿐만 아니라 하나 님까지도 제사를 지내고마는 제사장이 될 수 있다는 마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 모두가 지성소에 나아갈 수 있는 제사장이 되었기에 오늘 말씀은 하나님 앞에 예배하러 나아가는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씀이다. 내 어깨의 견장에 달려 있는 수많은 이름들이 중보해야 할 이름 들이어야 하며 하나님의 엄중한 경고의 말씀이 오늘도 거룩한 견장을 달려 고 하는 가짜에게 선포되고 있다.
"니들 홉니와 비느하스 알지!!!"
주님. 주님께서 저에게 요구하시는 거룩한 옷을 저의 생각에, 마음에, 행동 에, 삶에 입게 하여주시고 모두 거룩의 모습이 저절로 드러나는 삶을 살기 를 원합니다. 이 땅도 그리스 땅도 마치 하나님을 사칭하며 거룩한 견장을 달려고 하는 가짜로부터의 Exodus 하게 하시고 늘 생각이, 마음이, 행동 이, 삶이 모두 거룩의 모습이 저절로 드러나는 삶을 드러내는 예배의 모습 을 드러내는 제사장 되기를 소망합니다.
'때광 프로젝트 35: 100% or 98%, 재수로부터의 Exodus' "생명과 사랑의 중보자입니까?"
출애굽기 28:15-30
오늘 말씀은 복음 안에 있으면 하나님이 다 하시겠다는 은혜 안에서 제비 를 뽑는 '100% or 98% 훈련'을 통해 그저 세상에서 운과 재수에 맡겨 50% 확률을 갖는 '재수로부터의 Exodus 훈련'을 시키시는 하나님이시 다. 그래서 출애굽기 12장까지가 하나님을 알리시는 '야다 프로젝트' 였다 면 지금은 출애굽 백성이 하나님의 선택백성으로서 자질을 갖추도록 때 빼 고 광 내도록 하시는 '때광 프로젝트'를 하시고 계신 하나님이시다. 세상이 라는 애굽에서는 나왔지만 아직도 몸 구석 구석에 붙어 있는 노예근성의 때들... 그 때를 벗기는 작업은 이제부터 하나씩! 그리고 귀에 따갑도록 반 복되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 때를 벗기는 서른 다섯 번째 프로젝트는 복음 안에 있으면 하나님이 다 하시겠다는 은혜 안에서 제비를 뽑는 '100% or 98% 훈련'을 통해 그저 세상에서 운과 재수에 맡겨 50% 확률을 갖는 재수로부터의 Exodus 훈 련이다.
'너는 우림과 둠밈을 판결 흉패 안에 넣어 아론이 여호와 앞에 들어갈 때에 그의 가슴에 붙이게 하라 아론은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흉패를 항상 그의 가슴에 붙일지니라'(출28:30)
우림은 '빛'이란 뜻이고, 둠밈은 '완전함'이란 뜻으로 일종의 제비 도구로 우림과 둠밈 중 하나를 선택하여 'yes' 와 'no'로 하나님의 뜻을 판별했다. 우림과 둠밈은 그 이름의 뜻대로 이스라엘을 '빛'과 '완전함' 가운데로 이끄 시는 하나님의 신성한 도구였다.
우림과 둠밈이면 제비 뽑기와 같은 것인데 어떻게 제비뽑기에 결정을 맡길 수가 있을까?
구약 시대에는 제비 뽑기를 하여 가나안 땅을 분배하기도 하고, 아이성 패 배의 원인을 제비 뽑기로 아간을 찾아 낸 예도 있다. 그래도 확률이 50% 밖에 안되는 우림과 둠밈에 어떻게 중대한 결정을 맡길 수 있냐고 질문할 지도 모른다. 어떻게 이 결정이 맞다고 보장할 수 있을까?
세상의 삶은 그야말로 재수를 따라가는 삶이다. 늘 눈 앞의 선택해야 할 것 들은 50% 의 확률을 가지고 다가오며 그것을 선택하여 잘 된다는 보장은 역시 50% 밖에 안되는 재수를 뽑는 삶인 것이다.
그러나 복음 안에서의 삶은 다르다. 확률 50% 밖에 안되는 재수에 의존하 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 의존하는 삶이다. 왜냐하면 복음은 내가 할 수 있 는 것이 아무 것도 없고 하나님이 다 하시겠다는 은혜이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하나님께 나아옴이다. 우림과 둠밈을 가지고 하나님 앞 에 나아와 하나님이 정해 주시는 길을 가겠다고 순종할 때 그 때는 이미 하 나님은 98% 를 하시겠다고 정하신 때이고, 기껏해야 우림과 둠밈에 의한


확률은 2% 를 더하거나 빼는 것 밖에 안되기에, 우림과 둠밈을 가지고 하 나님 앞에 나와 묻는 삶은 이미 올바른 길을 가는 확률이 100% 아니면 98% 라는 말씀임을 깨닫게 하신다. 세상은 재수를 따라 가는 삶이지만 복 음 안에서는 제비를 뽑아도 늘 하나님이 이루시는 선한 결과를 보게 하시 는 삶임을...
나에게는 우림과 둠밈은 무엇인가?
우림과 둠밈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머리에 남은 말씀이 아니라 가슴에 붙 인 말씀이며, 내 마음 속에 진리로 자리잡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복음의 말씀이며, 이 진리에 비춰보는 것이 바로 우림과 둠밈을 이용한 제비 뽑기 임을 깨닫게 하신다.
삶 속에서 출28:30 처럼 나의 가슴에 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우림과 둠 밈을 붙이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응답을 붙잡고 나아가고 있는가?
주님. 세상에서의 삶에는 50% 의 재수를 선택하는 삶이지만 복음 안에 있 기에 하나님 앞에 나아와 선택하는 우림과 둠밈의 삶에는 100% 아니면 98% 중 하나를 선택하는 늘 승리하는 삶임을 고백합니다. 이 땅도 그리스 땅도 늘 하나님 안에서 늘 승리하는 100% or 98% 의 삶 되기를 소망합 니다.
'때광 프로젝트 36: dress code, 세상의 옷으로부터의 Exodus' "하나님 앞에서 늘 성결하십시오"
출애굽기 28:31-43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이 세상에 살면서 승리하는 삶을 원하시 는 하나님이 이미 주신 옷을 입는 'dress code 훈련'을 통해 그저 눈 앞의 욕심과 탐욕을 따라 입는 '세상의 옷으로부터의 Exodus 훈련'을 시키시


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출애굽기 12장까지가 하나님을 알리시는 '야다 프로젝트' 였다면 지금은 출애굽 백성이 하나님의 선택백성으로서 자질을 갖추도록 때 빼고 광 내도록 하시는 '때광 프로젝트'를 하시고 계신 하나님 이시다. 세상이라는 애굽에서는 나왔지만 아직도 몸 구석 구석에 붙어 있 는 노예근성의 때들... 그 때를 벗기는 작업은 이제부터 하나씩! 그리고 귀 에 따갑도록 반복되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 때를 벗기는 서른 여섯 번째 프로젝트는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이 세상 에 살면서 승리하는 삶을 원하시는 하나님이 이미 주신 옷을 입는 'dress code 훈련'을 통해 그저 눈 앞의 욕심과 탐욕을 따라 입는 세상의 옷으로 부터의 Exodus 훈련이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제사장의 옷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씀 하신다. 눈에 처음 보이는 겉 모습은 출28:31 처럼 '전부 청색'이어야 함 을 말씀하신다. 하늘의 색인 청색 처럼 사람들이 나를 보면 하나님을 생각 하게 하는지를 돌아보게 하신다. 혹시 세상의 욕심과 더러운 색들이 칠해 져 있지는 않은지...
'그 옷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한 금 방울, 한 석류, 한 금 방울, 한 석류가 있 게 하라'(출28:34)
오늘부터는 QT 를 조금 간단히 꽉 채워 주시는 말씀만 적으려고 하는데 예 감이 좋지(?) 않다. 이 구절을 통해 주시는 마음들이 많음이 느껴지기 때문 이다. '방울'은 소리를 내도록 하는 것인데 이 방울을 많이 단다는 것은 하 나님 앞에서 소리를 내는 삶이 있어야 하며 동시에 나도 그 방울 소리를 들 을 수 있듯이 삶을 통해 잘 가고 있는지 잘못 가고 있는지 말씀하시는 하나 님의 음성을 들어야 함을 말씀하신다.
'아론이 입고 여호와를 섬기러 성소에 들어갈 때와 성소에서 나올 때에 그 소리가 들릴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출28:35)
나의 삶의 방울 소리는 어떤 소리를 드러내고 있는가?


하나님 앞에서 나의 벨소리는 어떤 것인지? 혹시 내 삶에 개입하기를 원하 지 않아 무음이나 진동으로 해놓는 건 아닌지...
하나님과 교제하는 소리, 하나님과 교제하러 들어가고 나가는 소리가 없다 면 죽은 것임을...말씀하신다.
또한 출28:34 의 '석류'가 방울과 번갈아가며 달려야 하는 것은 열매가 있 어야 함을 말씀하시고 그 열매는 삶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며 그 음 성을 들으며 순종의 결과로 만들어진 삶의 열매가 매 방울마다 그 다음에 달려야 함을 깨닫게 하신다.
모두 방울만 달려 있어 열매가 없이 빈 소리만 큰 삶이 아니라, 모두 석류만 달려 있어 하나님 없이 선행만 가득한 불쌍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 에 순종하며 그 열매를 삶 가운데서 드러나는 삶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삶 임을 알게 하신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나 제단에 가까이 하여 거룩한 곳에서 섬길 때에 그것들을 입어야 죄를 짊어진 채 죽지 아니하리니 그와 그의 후손이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출28:35)
'그것들을 입어야'... 하나님이 원하시는 dress code 이며 '죄를 짊어진 채 죽지 아니하리니'라는 해답을 가지는 삶에 귀를 눈을 쫑끗 하게 하신다.
그러고보니 하나님 앞에 지성소에 들어가서 예배를 볼 수 있는 나는 제사 장이고 제사장이 입어야 할 dress code 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옷임을 깨닫게 하신다.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의 옷이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의 방울이 달린 옷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열매맺는 삶의 석류가 달린 옷이며, '여호와께 성결'(출28:36)을 달듯 십자가에 나 자신을 달아 나를 드리는 삶의 성결한 옷임을...
이 모든 것을 하나의 옷으로 만드신 그리스도로 덧입는 것임을...


주님. 제 눈 앞의 삶은 늘 하나님이 주신 그리스도의 옷을 입을 것인가 아니 면 눈 앞의 쾌락을 좇는 세상의 옷을 입을 것인가 하는 dress code 의 선 택 앞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저의 삶이 하나님께 무음이나 진동으로 되지 않고 방울과 석류가 연달아 열리듯 순종과 열매가 삶 속에 열리는 dress code 를 선택하기를 원합니다. 이 땅도 그리스 땅도 세상이 유혹하는 화 려한 옷보다 하나님이 이미 주신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 사람들로 덮이기를 소망합니다. 참. 주님 아시죠? 아내가 건강검진차 오늘 새벽에 한국에 갔 습니다. 건강과 일정을 주님께 맡깁니다.
'때광 프로젝트 37: 속죄제, 무의미로부터의 Exodus' "거룩함과 헌신은 사역의 힘입니다"
출애굽기 29:1-18
오늘 말씀은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서는 '속죄제 훈련'을 통해 속죄제 없이 번제만 드리려는 예배의 '무의미로부터의 Exodus 훈련'을 시키시는 하나 님이시다. 그래서 출애굽기 12장까지가 하나님을 알리시는 '야다 프로젝 트' 였다면 지금은 출애굽 백성이 하나님의 선택백성으로서 자질을 갖추도 록 때 빼고 광 내도록 하시는 '때광 프로젝트'를 하시고 계신 하나님이시다. 세상이라는 애굽에서는 나왔지만 아직도 몸 구석 구석에 붙어 있는 노예근 성의 때들... 그 때를 벗기는 작업은 이제부터 하나씩! 그리고 귀에 따갑도 록 반복되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 때를 벗기는 서른 일곱 번째 프로젝트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과 '솔 직'으로 자신을 태우는 '속죄제 훈련'을 통해 앙꼬없는 찐빵처럼 속죄제 없 이 예배만 드리려고 하는 예배의 무의미로부터의 Exodus 훈련이다.
출29:1의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것은 철저하게 하나님께 집중하는 행동 의 일관이다. 가져오고... 씻기고... 입히고... 이 모든 행동의 목적이 나를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생각함이며, '그들을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이런 집중의 길을 가게 하는 직분을 맡기는데 있음을 말씀하신다. 제사장이 된 다는 것은 거룩하게 되는 것임을... 단... 하나님께 모든 행동이 집중되어야 만...
제사장이 처음으로 제사를 드리는 것은 속죄제가 먼저이다. 그런데 자신의 속죄제는 절대로 드리지 않고 번제만 열심히 드린다면 그 제사장에게서 어 떻게 거룩을 기대할 수 있을까...
속죄제는 불사름이다.
내가 너무도 소중하다고 꼭꼭 보호막을 치며 간직했던 것들...
그래서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방해가 되었던 영적 기름들을 하나님께 드러 내고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다 태우기를 불사르는 것이 어떤 제사보다 어 떤 예배보다 먼저이다.
'내장에 덮인 모든 기름과 간 위에 있는 꺼풀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을 가져다가 제단 위에 불사르고'(출29:13)
그리고 속죄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나의 생각대로 습관대로 세상을 살며 이미 굳어버린 근육들...
그리고 하나님의 터치를 무감각하게 만드는 나를 감싸고 있는 생각의 가 죽...
그리고 정말 아무 쓸데없는 것들에 시간과 재물과 목숨을 거는 배설물같은 행동들...
이것들을 태워버리는데는 하나님의 임재도 제단 위도 아니고 생길 때마다 진 밖으로... 내 삶 밖으로 내던지고 다시는 생겨나지 않도록 불살라야 함 을 깨닫게 하신다.
'그 수소의 고기와 가죽과 똥을 진 밖에서 불사르라 이는 속죄제니라'(출 29:14)
이 속죄제가 있어야 하나님의 임재를 막고 있던 기름들이, 삶을 부패하게


만드는 똥이 불살라져야 비로소 거룩한 직분을 감당할 수 있음을...
늘 삶 속에서 불사르는 속죄제가 없다면 거룩도 기대할 수 없음을...
삶의 질서가 필요하다면 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속죄제를 점검해야 함을...
삶의 질서를 속죄제를 통해 세우고 나면 하나님께 나아감이 가능하다. 그 리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번제를 드리는 의미가 있 지 않을까...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고 하나님께 드리고 있다고 여기는 번제 는 자신을 위한 번제이기에...
'그 숫양 전부를 제단 위에 불사르라 이는 여호와께 드리는 번제요 이는 향 기로운 냄새니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출29:18)
하나님을 만나려면 말씀이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면... 바로 성경을 펴들 면 만날 수 있다. 그럼 그 만난 하나님과 같이 점심도 먹으며 교제를 나눌 수가 있을까? 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나의 예물, 나의 식물되는 화제, 나의 향기로운 것은 너희가 그 정 한 시기에 삼가 내게 드릴지니라'(민28:1-2)
여기서 '나의 식물'은 바로 Food (NIV) 를 음식을 말한다. 하나님의 즐겨 드시는 음식은 바로 제사, 예배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만나서 식사하며 교 제하고 싶은 사람들은 성경말씀을 묵상하고 예배를 드리면 그것이 하나님 이 기뻐하시는 향기나는 화제가 되어 하늘에서 큰 입을 벌리시며 어아~ 하 며 즐거워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됨을...
어제 어느 목자와 대화를 나누면서 사역의 덕목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사 역에 있어서 사역자에게 있어서 어쩌면 가장 필요한 덕목은 다른 것이 아 니라 '겸손'과 '솔직' 이다. 전하는 자가 갖추어야 할 속죄제가 바로 이 '겸 손'과 '솔직' 이다. 하나님 앞에 내가 하나님보다 더 우상시했던 것들을 가 지고 나아와 불사르는 '겸손' 이며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만이 사람들 앞에 겸손할 수 있다. 내 삶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가로 막았던 습관과 생각 들... 똥을 진 밖으로 버리고 불사르는 '솔직'이며 하나님 앞에 솔직한 자만


이 사람들에게 솔직할 수 있다.
이 '겸손'과 '솔직'만 있더라도 목회는 저절로 성장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는 세상도 이 '겸손'과 '솔직'을 가진 목자를 너무도 원하고 있기에...
오늘 말씀은 목자가 갖춰야할 사역으로 나아가게 하는 추진력이 바로 '거 룩함'과 '헌신' 임을 말씀하신다.
내가 너무도 소중하다고 꼭꼭 보호막을 치며 간직했던 것들... 그래서 하나 님께 나아가는데 방해가 되었던 영적 기름들을 하나님께 드러내고 하나님 의 임재 안에서 다 태우기를 불사르는 속죄제가 '거룩함'이고 하나님 앞에 이런 속죄제를 통한 거룩함이 있어야 사람들 앞에서 저절로 그 향기가 드 러남을 말씀하신다.
또한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을 만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음식을 드리는 것이 번제이며 "내 힘으로는 절대 할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자신을 태워 드리는 '헌신'이고 하나님 앞에 이 '헌신'이 없고서는 영혼을 살리는 '헌신'은 불가능하다.
오늘날 목자의 마음으로 사역하는 자들에게 또한 나에게 도전하시는 하나 님의 음성은...
"속죄제 없이는 번제는 무의미하다.
하나님 앞에 사람들 앞에 겸손과 솔직 없는 사역은 무의미하다.
하나님 앞에 영혼 앞에 거룩함과 헌신 없는 사역은 무의미하다."
주님. 늘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기 전에 내 삶의 태워야할 기름과 똥은 무엇 인지 돌아보고 불사르는 속죄제가 우선해야 함을 고백합니다. 이 땅도 그 리스 땅도 '겸손'과 '솔직'의 속죄제가, '거룩함'과 '헌신'의 속죄제가 우선 되는 예배가 자리잡기를 소망합니다.


'때광 프로젝트 38: 돌려받음, 형식으로부터의 Exodus' "헌신한 자에게는 상급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29:19-34
오늘 말씀은 세 가지 제사인 번제, 요제, 거제를 말씀하시며 제사를 통해 예배를 통해 또한 삶을 통해 얻게 되는 '돌려받음 훈련'을 하게 함으로써 그 저 제사가 형식이고 예배가 형식이어서 아무런 삶의 열매가 없는 '형식으 로부터의 Exodus 훈련'을 시키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출애굽기 12 장까지가 하나님을 알리시는 '야다 프로젝트' 였다면 지금은 출애굽 백성 이 하나님의 선택백성으로서 자질을 갖추도록 때 빼고 광 내도록 하시는 '때광 프로젝트'를 하시고 계신 하나님이시다. 세상이라는 애굽에서는 나 왔지만 아직도 몸 구석 구석에 붙어 있는 노예근성의 때들... 그 때를 벗기 는 작업은 이제부터 하나씩! 그리고 귀에 따갑도록 반복되어야 한다는 말 씀이다.
그 때를 벗기는 서른 여덟 번째 프로젝트는 제사를 통해 예배를 통해 삶을 통해 얻게 되는 '돌려받음 훈련'으로 그저 제사가 형식이고 예배가 형식이 어서 아무런 삶의 열매가 없는 형식으로부터의 Exodus 훈련이다.
오늘 말씀에 번제와 요제와 거제에 대해 나온다. 번제(Burnt offering)가 불사르는 것이면, 요제(Wave offering)는 높이 들어 앞 뒤로 흔드는 화 목제이고, 거제(Heave Offering)는 희생제물의 가슴과 넓적다리 부위를 높이 치켜드는 화목제이다.
'너는 그 숫양을 잡고 그것의 피를 가져다가 아론의 오른쪽 귓부리와 그의 아들들의 오른쪽 귓부리에 바르고 그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에 바르고 그 피를 제단 주위에 뿌리고'(출29:20)
전부를 제단 위에 불살라야 할 화제... 그것의 피를 가져다가 몸의 여러 부


분에 바르는 것은 나도 그렇게 태워드림의 결단이다.
이제까지 세상의 소리만 듣고 생각하며 살았던 귀를 완전히 태우고 이제부 터는 하나님의 말씀과 음성을 듣고 생각하는 귀로 거듭나겠다는 결단이며, 이제까지 세상의 욕심과 욕망을 따라 행동해 왔던 손을 완전히 태우고 이 제부터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행하는 손으로 거듭나겠다는 결단 이며, 이제까지 세상에서의 목적지만 찾으며 방황하며 살았던 발을 완전히 태우고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말씀과 음성을 따라 걷는 발로 거듭나겠다는 결단이다.
그래서 내 몸에 발라진 그리스도의 피로 거룩함을 드러내는 삶이 되기를 다짐하며 이제는 삶이 그리스도가 인도하시는 귀와 손과 발로 쓰임받겠다 는 고백이기도 하다.
나의 몸에 그리스도의 피를 바르며 결단했던 것들이 지금은 어떠한 모습인 지를 돌아보며 아직도 여전히 세상의 소리를 듣고 있는 귀와 아직도 여전 히 내 생각과 마음대로 행하고 있는 손과 아직도 여전히 내 유익을 위해 나 아간 발걸음을 다시 번제로 드리며 다 태워지길 간구한다.
요제와 거제는 태워드림이 아니라 하나님께 들어올리고 흔드는 결단이고 때론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 힘든 유혹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 께 올려드리는 상황이고 환경이다. 그저 "상황이 이래요"하며 보여드리고 "어떻게요?"하며 흔드는 것이 아니라 요제와 거제는 하나님께로부터 '돌 려받음' 이다.
하나님께서 삶의 수 많은 상황 가운데 어떻게 역사하실지 어떻게 개입하실 지를 걱정과 염려가 아니라 기대와 응답으로 '돌려받음'이 요제와 거제임 을 깨닫게 하신다. 바로 '요거다'라는 응답이다^^
아내가 팔이 너무 아파 급작스럽게 한국에 나가 병원에서 검사를 해보니


어깨 인대가 끊어지고 찢어지고 물이차고... 심각한 상황이라 수술을 하나 그냥 치료를 해도 되는지 기도 중이다. 이 상황을 요제와 거제로 하나님께 올려드린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와 개입하심을 기대하며 오늘 제목처럼 "헌신한 자에게는 상급이 있다"고 하시는 오늘 말씀을 돌려주시는 응답으 로 받는다. 아내와 내가 이 상황을 통해 '돌려받음'이 무엇일까를 기대하 며...
QT를 마치려는데 자꾸 내 마음을 잡는 구절이 있다.
'위임식 고기나 떡이 아침까지 남아 있으면 그것을 불에 사를지니 이는 거 룩한즉 먹지 못할지니라'(출29:34)
왜 거룩한데 먹지 못하게 하시는 것일까?
이 말씀을 묵상하는데 "그게 QT 잖아"라는 마음을 주신다. 그날 그날 내가 먹어야 할 고기와 떡인 그날의 말씀이 QT 인데 그 다음 날이 되면 나를 인 도하고 개입하실 거룩한 말씀은 내가 먹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이다. 먹지 못하게 하시는 게 아니라 먹으려 해도 먹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오늘 허락된 말씀 QT 말씀이지 않을까...
주님. 주님 앞에 온전히 태워져야 할 제게 아직도 타지않고 남아있는 귀와 손과 발을, 습관과 생각과 욕심을 다시 번제로 드립니다. 아내의 아픔 또한 요제와 거제로 올려 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돌려받음'의 응답 주심을 감사드리며, 이 땅도 그리스 땅도 또 코소보 땅도 늘 삶 가운데 하나님께 온 전한 번제와 요제와 거제를 통해 예배를 통해 얻게 되는 '돌려받음 훈련'을 하게 함으로써 그저 제사가 형식이고 예배가 형식이어서 아무런 삶의 열매 가 없는 '형식으로부터의 Exodus 훈련'을 감당하는 땅이기를 소망합니 다.
'때광 프로젝트 39: 거기서, 여기서로부터의 Exodus' "주님께 의지와 시간을 드리십시오"


출애굽기 29:35-46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만나고 말하시는 하나님 나라를 기대하는 '거기서 훈련'을 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그저 세상에서 내 생각 과 내 유익을 따라 살던 '여기서로부터의 Exodus 훈련'을 시키시는 하나 님이시다. 그래서 출애굽기 12장까지가 하나님을 알리시는 '야다 프로젝 트' 였다면 지금은 출애굽 백성이 하나님의 선택백성으로서 자질을 갖추도 록 때 빼고 광 내도록 하시는 '때광 프로젝트'를 하시고 계신 하나님이시다. 세상이라는 애굽에서는 나왔지만 아직도 몸 구석 구석에 붙어 있는 노예근 성의 때들... 그 때를 벗기는 작업은 이제부터 하나씩! 그리고 귀에 따갑도 록 반복되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 때를 벗기는 서른 아홉번째 프로젝트는 하나님께서 만나고 말하시는 삶 의 영역을 늘리는 '거기서 훈련'을 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 고 그저 세상에서 내 생각과 내 유익을 따라 살던 삶의 영역으로부터 '여기 서'로부터의 Exodus 훈련이다.
각자에게 '내가 네게 한 모든 명령대로'(출29:35)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이 있다. 어쩌면 세상 모든 사람이 이미 이 말씀을 받았지만 그것보다 내 삶이 더 커보이고, 그것보다 내 욕망이 커보이고, 그것보다 내 생각이 더 커보이기에 외면하고 있다는 마음이 든다. 모든 사람에게 하시는 하나 님의 말씀은 "구원을 받으라" 이다.
'땅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 가 없느니라'(사45:22)
또한 말씀으로 날마다 '내가 네게 한 모든 명령대로' 행할 것을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다. 말씀을 어디를 펼치건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자 명령은 "나와 교제하자" 이다. 일개 인간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엄청 난 러브레터가 날마다 마음을 두드리는데도 정작 그 두드리는 소리를 외면 하여 왔던 것은 나 자신의 자잘한 삶이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거룩한 삶


보다 더 귀하게 여겼기 때문임을 돌아보며 회개하게 하신다.
오늘 말씀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속죄'와 '거룩'이다. 하나님 앞에 지성소에 나아가 제사와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모두를 제사장 삼으신 하 나님은 7일간 매일 아침 저녁으로 속죄제를 드리듯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속제물로 받으시며 삶 가운데 온전한 속죄가 있기를 원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제 아주 깨끗하고 아름다운 '거룩'의 옷을 입혀 주시길 원하시 는데 온갖 죄의 더러움이 덕지 덕지 붙은 옷 위에 입혀 줄 수는 없기 때문이 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모든 명령대로 보다 내 생각이 앞서는 삶, 내 의지가 앞 서는 삶, 내 욕심이 앞서는 삶, 내 방법이 앞서는 삶의 옷을 벗는 것이 '속 죄'이며 7일간의 제사처럼 날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대로 따르고자 하 는 의지와 동반된 결단을 실행하는 기간이고 하나님과의 교제 준비기간임 을 말씀하신다.
'이는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 회막 문에서 늘 드릴 번제라 내가 거기서 너 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출29:42)
하나님과 만나고 교제할 수 있는 '거기서'는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말씀대 로 순종하고 따르겠다는 의지와 결단의 '속죄' 기간 다음에 허락하시는 바 로 '거룩'을 나타낸다.
내 삶 속에 하나님이 만나실 만한 거룩한 곳이 있는가? 그곳이 '거기서' 임 을...
내 삶 속에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만한 거룩한 곳이 있는가? 그곳 이 '거기서' 임을...
내 삶 속에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분의 인도를 느낄만한 거룩한 곳이 있는 가? 그곳이 '거기서' 임을...
내 삶 속에 하나님의 명령대로 나아가는 발걸음이 있는 거룩한 곳이 있는 가? 그곳이 '거기서' 임을...


삶에서 이 '거기서'의 영역을 넓혀 가는 것이 신앙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 하면 이 '거기서'는 하나님이 만나시고 말하시는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이 다. 어떤 삶의 어려움 속이건 어떤 환경이건 하나님이 그곳에 계시고 만나 시고 말하시면 그 어려움과 환경은 하나님 나라의 예배의 재료가 되기 때 문이다. 아내의 팔에 생긴 어려움도 하나님이 만나고 말씀하실 '거기서'이 기에 이 또한 하나님 나라의 예배의 재료로 올려 드리며 감사하게 하신다.
삶 속에서 내 즐거움과 내 유익을 위해 '여기가 좋사오니'의 마음이 들 때마 다 하나님 나라인 '거기서'로부터는 멀어지며 하나님이 예비하신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삶을 보지 못하고 '여기서' 끝나버리는 삶이 되기에 날 마다 하나님과 만나고 교제하는 '거기서'의 삶을 꿈꾸는 그리스도인이 되 라는 마음을 주신다.
비록 요셉이 감옥 안에 있으나(창39:20) 하나님과 만나고 하나님이 말씀 하시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거기서'(출29:42)가 바로 하나님 나라이다. 왕의 죄수를 가두던 King's prison 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King's prison 으로...
'거기서'(출29:42)는 나를 둘러 싼 환경이나 상황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께 나아감으로 '거기서'의 하나님 나라를 내가 선택하는 것임 을...
내 삶 가운데 여전히 '여기서'의 삶의 영역을 돌아보며 하나님께 온전히 태 워 하나님 나라가 임하시는 '거기서'의 삶의 영역으로 확장하도록 또 결단 해본다.
주님.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의 삶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하며 속죄의 제사를 올려 드립니다. 제 삶에서 아직도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한 채 세상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삶의 영역들을 보도록 하시고 그 영역


들이 이제 하나님이 만나주시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영역으로 바뀌 어 가게 하는 '거기서'로 바뀌도록 인도함을 구합니다. 이 땅도 그리스 땅도 또한 코소보 땅도 이젠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그저 세상에서 내 생각 과 내 유익을 따라 살던 '여기서'로부터 Exodus 하여 하나님께서 만나고 말하시는 하나님 나라를 갈망하며 '거기서 훈련'을 잘 감당하기를 소망합 니다.
'때광 프로젝트 40: 대화, 다른 향으로부터의 Exodus' "향기로운 기도로, 생명의 속전으로"
출애굽기 30:1-16
오늘 말씀은 하나님을 아빠라 부르는 친밀한 교제로 가는 '대화 훈련'을 하 게 함으로써 하나님과의 대화인 기도에 넣어서는 안될 '다른 향으로부터의 Exodus 훈련'을 시키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출애굽기 12장까지가 하나님을 알리시는 '야다 프로젝트' 였다면 지금은 출애굽 백성이 하나님 의 선택백성으로서 자질을 갖추도록 때 빼고 광 내도록 하시는 '때광 프로 젝트'를 하시고 계신 하나님이시다. 세상이라는 애굽에서는 나왔지만 아직 도 몸 구석 구석에 붙어 있는 노예근성의 때들... 그 때를 벗기는 작업은 이 제부터 하나씩! 그리고 귀에 따갑도록 반복되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 때를 벗기는 마흔 번째 프로젝트는 하나님을 아빠라 부르는 친밀한 교 제로 가는 '대화 훈련'을 하게 함으로써 하나님과의 대화인 기도에 넣어서 는 안될 다른 향으로부터의 Exodus 훈련이다.
'그 제단을 증거궤 위 속죄소 맞은편 곧 증거궤 앞에 있는 휘장 밖에 두라 그 속죄소는 내가 너와 만날 곳이며'(출30:6)
분향할 제단인 분향단은 하나님께 향을 태워 올리는 기도의 제단이다.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시141:2)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계 8:3)
이 하나님의 보좌 앞 금 제단이 바로 분향단이며 기도이다.
바로 하나님과의 대화를 가능케 하는 것이 기도이고,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가 이 기도를 통해 일어난다. 내 안에 하나님이 창조 때부터 불어넣으 신 영을 통해 하나님과의 교제인 기도가 가능하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교제를 가능케하는 기도의 제단인 분향단을 지성소가 아닌 성소에 두셨다. 하나님과의 대화라면 지성소가 더 좋은 장소가 아닐 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은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당사자인 내가 바로 이 세 상에 발을 딛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이 세상의 나 사이에 교제의 도구인 기도 제단은 지성소가 아니라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이며 세상이며 삶 이며 성소임을 깨닫게 하신다. 삶에서 올려드리는 기도를 지성소에서 받으 시던 하나님은 아예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로 오셔서 지성 소와 성소를 가리고 있던 휘장도 갈라 놓으셨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 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 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10:19-20)
이 분향단의 위치를 묵상하며 이제 내가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으로 기도를 올려드릴 때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지성소는 바로 그 기도 하는 곳이 됨을 깨닫게 하신다. 삶의 어느 곳에서건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 리가 바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거기서'(출29:42) 이고 하나님 나라가 된다. 기도하는 순간 내 앞에 속죄소가 있고 하나님의 임재 가 있음을...
이렇게 세상에 살면서 가장 큰 선물과 도구를 주셨는데 나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바쁘다고 귀찮다고 무음으로 혹은 진동으로 벨소리를 바꾸며 하나 님과의 대화인 기도에 소홀했음을 회개하게 하신다.
'아론이 아침마다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되 등불을 손질할 때에 사를 지며'(출30:7)
하나님과 더 친밀한 대화의 기도를 하고 싶어하며 그 방법을 성령께 물어 본다. 출30:7 말씀대로 기도는 그냥 내가 원하는 말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통로가 되는 등불인 내 자신을 손질하며 기도해야 함을 말 씀하신다. 어떻게 손질을 할까?
마치 대통령을 아버지로 둔 자녀가 대통령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아빠에 게 나아가듯 기도는 그야말로 전능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기 보다는 아빠 아버지께 나아가는 기도여야 함을 알게 하신다. 아빠를 향한 친밀한 부름과 관계가 기도이다. 그냥 아빠 앞에 내 자신을 꾸밈없이 내 놓는 것이 고, 아빠의 표정과 마음을 느끼면서 내 자신이 어떤 아빠를 원하고 있는지 를 드러내는 것이다. 필요한 물건만 던져주는 자동판매기같은 아빠를 원하 는지 친근한 아빠를 원하는지를 사실은 내가 기도로 아빠에게 다가가는 모 습을 보며 깨닫는 것이다. 때로는 그렇게 친근한 아빠에게로 가고자 함에 도 이를 가로막는 것들이 있다. 아빠와 대화하는데 그 관계를 가로막는 것 이 있다면 모두 쓸어버리고 오로지 아빠와 대화하는데 집중하는 것을 우선 순위에 두는 것임을 깨닫게 하신다.
'또 저녁 때 등불을 켤 때에 사를지니 이 향은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에 끊지 못할지며'(출30:8)
이 말씀을 통해 기도는 내가 필요할 때마다 할 수 있는 옵션이 아니라 하나 님의 명령임을 깨닫는다. 왜 대화하자시는 하나님은 이 기도를 통한 대화 를 명령하실까?
왜냐하면 아빠는 아이가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이 중요한지를 안다. 하나님 도 이 분향단의 기도가 나의 삶에서 그만큼 중요하고 결국은 자식을 잘 키


운 아빠처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기 때문에 명령하시며, 그저 세상 에서 하나님이 주신 전화기를 무음이나 진동모드로 하고 있으면서 세상에 서 당할 재난을 허락하지 않으신다. 이 땅에서 아침과 저녁으로 기도를 하 기위해 등불을 켤 때마다 그 만큼 나의 삶이 밝아지는 것을 아시기에 우기 시듯이 강요하는 것이 바로 기도이다.
'너희는 그 위에 다른 향을 사르지 말며 번제나 소제를 드리지 말며 전제의 술을 붓지 말며'(출30:9)
그런데 기도라고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님을 경고하시는 경고문이 '다른 향 을 사르지 말며'에 나온다.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내 뜻대로 내 욕심대로 기도하지 말것을 말씀하시며 이 말씀은 기도의 분향을 하나님 께 올려드릴 때 정해진 향이 있다는 메시지이다. 사실 이 메시지는 출 30:34-38 에 걸쳐 설명되고 있는 소합향, 나감향, 풍자향, 소금이다. 기 도할 때 넣어야 할 이것들이 무엇을 의미할까?
'소합향'은 중심에서부터 베어나오는 인격의 기도를 의미하며,
'나감향'은 홍해바다 조개껍질로 부숴지면 나는 향으로 하나님 앞에서 부 숴질 것은 부숴져야 하며 기도는 내 뜻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변화되는 것임을 의미하며,
'풍자향'은 나무뿌리의 진액에서 나는 기름진 향으로 믿고 여유 있는 평안 이 있는 인격으로 드리는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기도를 의미하며 주위 사 람에게도 하나님께도 향기로운 기도가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유향'이 기본이 되어야 하며 이는 기도는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또 하나의 제사이고 예배이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향에 치는 '소금'은 기도하는 향들이 변치 않고 있는 그대로 하나 님께 올려지는 기도이어야 함을 의미하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네가 내 게 부르짖으면 내가 응답하겠고"의 언약의 불변함을 잡는 기도를 의미한 다.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레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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