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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by yesupraise, 2017-08-25 21:36:52

출애굽기 산책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기대'를 가득차게 만들고 싶어하시는 것임을 깨 닫게 하신다. 또 하나의 exodus 의 비밀인 '기대'가 가득 차야 하는 것이 다.고난의물이차안에가득차야문이스르르열리듯, 나의고통의때가 아닌 하나님의 때가 가득차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exodus 는 내가 아닌 하나님이 하시는 구원사역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 '기대'를 갖도록 하기 위해 번지점프 줄을 보이지 않는 투명줄 로 마련하신다. 눈에 보이지 않기에 오직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이 하실 것을 '기대'하고, 하나님께 기대야만 생명을 맡길 수 있는 투명한 번지점프 줄이다. 이 투명한 번지점프 줄을 마련하신 하나님의 '기대'도 있다. 하나 님께서 자녀로 삼으신 각각이 이 세상에 살면서 세상 사람들처럼 모이 한 번 쪼아먹고 하늘 한번 쳐다보는 병아리가 아니라 독수리처럼 살기를 원하 신다는 것이다. 독수리가 병아리처럼 사는 꼴이 너무도 우스운 모습이기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병아리로 알고 있는 독수리를 높이 높이 올라가게 그 리고 분명히 하나님이 옆에 계시는데도 절벽으로 인도한다. 이런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하나님께 의지하는 '기대'는 마치 생명과도 같다. 그리고 이 '기대'는 결국 절벽을 뛰어내려 날라가는 독수리로 회복시킨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 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40:31)
이 '앙망' 이 'hope in the LORD' 이고 '기대' 이다.
삶이 어려울 때 일수록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고, 감당 하기 힘든 문제일수록 하나님의 도우심이 더 가깝게 되기에 고난은 축복이 다. 세상의 눈에 보이는 썩은 줄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생명과도 맞바꿀 '기대'를 가지고 잡으라는 투명한 번지점프 줄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대 기만 하면 비로소 보이는 줄이고, 이렇게 영적인 '기대'의 눈을 뜨고 보면 수 많은 줄들을 이미 하나님께선 내려주고 있었음을 비로소 보며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이젠 번지 점프가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며 내려주신 줄을 원하는 대로 바꿔잡고 어디든 갈 수 있는 '타잔 줄'이다. 아마도 천국에서도 이렇게 타잔 줄을 타고 즐기는 삶이기에 연습시키시나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 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그의 땅에서 쫓아내리라'(출6:1)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출6:1)
이 강한 손은 내 앞에 수 없이 많은 투명줄을 내리시고 잡고 계신 강한 손이 다. 고난같아 보이지만 하나님의 강한 손 안에 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우스운 질문을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너 타잔이 왜 줄 바꿔타면서 아~ ~~ 라고 하는지 아니? 끝까지 들어본적 있어?" 하신다. 그리고 나도 이젠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투명줄을 잡고 옮 겨 가면서 그렇게 부르기로 다짐한다.
"아~ ~~~~ ~~~~ ~~~~~~ ~~~~~멘"
주님. 삶 가운데서 주님이 내려주시는 투명줄을 '기대'함으로 잡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비록 눈 앞의 상황이 어렵고 힘들지라도 하나님이 마련해주 시는 '기대'의 줄을 놓치 않는 이 땅 백성들 되기를 소망합니다.
'Paradigm Shift'
"전능자의 열정과 사랑으로 행하십시오"
출애굽기 6:2-13
오늘 말씀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과연 어떠해야 하는지, 그리고 '나는 여호와이니라'(출6:2)라고 오늘 말씀(출6:2-13)에 5번이나 나오고 있는 이 의미는 무엇인지를 묵상하게 하신다.


'나는 여호와이니라'(출6:2)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의미인데, 히브 리어 ‘하야’(HUHY) 라는 '존재한다'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 '존재한 다'는 것은 그저 가만히 존재한다는 뜻을 넘어서 '모든 것을 감당하면서 존 재한다'라는 동사이며 역동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나타낸다.
'여호와'라는 말은 본래 모음 없이 네 개의 자음(YHWH)만으로 이루어졌 다. 오늘날 개역성경에서 사용되고 있는 ‘여호와’(Jehovah)라는 발음 표 기는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정확한 것은 아니고 일종의 혼합된 이름인데 '야훼(YHWH)'가 더 정확한 발음이라고 한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겨 성경에 이 네 글자의 하 나님 이름(YHWH)이 나올 때마다 발음하지 않고 손을 씻고 와서 단지 그 냥 ‘나의 주님’ 이라는 뜻의 모음 부호인 ‘아도나이’(adonai)를 발음했을 뿐이다. 이것이 ‘야훼’ 또는 ‘야웨’로 불리게 된 것은 ‘여호와’라는 이름 본 래의 네 자음 YHWH 에 adonai 모음을 붙이게 되면서 야훼(Jehovah) 라고 부르게 된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 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출6: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과 '여호와 하나님'의 차이는 무엇이기 에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일까?
이 말씀을 묵상하는데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하시며 나의 믿음의 Paradigm Shift 가 있었던 때를 기억하게 하신다. 하나님을 온전히 다시 만난 후로 열심히 교회에 다니고 여러가지 프로그램도 하고 구역장 같은 것도 하는데 언젠가부터 뭔가 영적으로 허전한 느낌이 계속 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뭔 가 하고 그 원인을 보니 나에겐 예배 때마다 여럿이 함께 만나는 '우리 하나 님'은 계셨지만 날마다 만나고 교제하고 동행하는 '나의 하나님'과의 교제 가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QT 를 시작하게 되고 '나의 하나


님'을 만나게 되었다.
지금 말씀에서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은 비록 하나님의 말 씀을 따르고 예배드리는 삶이었지만 '우리 하나님'으로 만났던 것이고, 이 제부터 하나님께서 알리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동행하며 출애굽 시키고 언약대로 가나안 땅으로 가기까지 함께 하시는 '나의 하나 님'이 되어주시겠다는 말씀이시다. 그저 크게만 보이시던 전능의 하나님 (El Shaddai, 엘 샤다이)에서, 나를 위해 가만히 존재하는 여호와 하나님 이 아니라, 모든 것을 감당하면서 역동적으로 함께하시며 존재하시는 '나 의 하나님'이 되어 주신다는 말씀이고, 언약을 주시고 말씀만 하시던 '아브 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섬겼던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이 아니라 이젠 나와 동행하며 주신 언약을 실행하시겠다는 '나의 하나님'으로 Paradigm Shift 가 일어나는 중요한 순간임을 출6:7 로 컨펌하신다.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 라'(출6:7)
하나님을 그저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전능하 신 분이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하시며 나 를 향한 열정과 사랑을 보이시는 '나의 하나님'으로 만나는 것이 시작되었 음을 선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마치 대통령이 아는 친구의 아버지에서 나 의 아버지가 되는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에서 여호 와로 바뀐 것은 '우리 하나님'에서 '나의 하나님'으로의 Paradigm Shift 이다.
이것을, '나의 하나님'을 가능케 하는 것은 날마다의 묵상이고 QT 이다. QT 속에서는 하나님께서 날마다 갓 구운 빵을 주시는데 그 갓 구운 빵의 향기는 마치 고문과도 같을 정도로 잊을 수 없을 정도이다. 날마다 그 갓 구 워낸 빵 향기를 맡을 수 있다는 것이 그 빵 맛을 아는 사람의 행복이다. 하 나님은 이 갓 구워 낸 빵을 날마다 주고 싶어 하신다. 주기도문의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는 바로 이 갓 구워 낸 빵을 날마다 주시는 하나님 에 대한 기대이다. 그리고 갓 구워 낸 빵이 나오는 문간에 바짝 붙어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 QT 하는 기쁨이고, 말씀에서 나오는 고소한 빵 향기를 잊지 못하는 기대이다. 이게 QT 이고 묵상이다.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 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잠8:34)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마련하신 갓 구워 낸 빵을 그리워 함 이 바로 QT 의 생활화이고, 날마다의 말씀은 삶의 거울이 되고, 나침판이 되고, GPS 가 된다. 날마다의 말씀을 통해 내가 당당해지면 세상은 흔들 리기 시작하고, 말씀에 서지 못해 내가 흔들리면 세상은 당당해진다. 날마 다의 말씀에 서면 시련과 고난을 보는 눈도 하나님이 바꾸신다. 다윗의 가 장 큰 행운은 골리앗을 만난 이후에 시작되었음을 보게 하시고, 다윗의 가 장 큰 시련은 골리앗을 이긴 뒤에 시작되었음을 보게 하신다.
행운이 오히려 시련이 되고 고난도 도리어 축복이 되는 세상을 살아가면 서, 행운에도 교만하지 않고 불운에도 낙심하지 않고 날마다 하나님께서 갓 구워주시는 빵을 즐긴다면 이미 하나님과 동행하는 번지 점프를 즐기는 사람이다. 비록 세상에서 살면서 어려움이 있겠지만 인내하며 내가 그 어 려움을 끌어안고 참아내는 것이 아니라 "인내~" 라고 늘 말씀하시는 하나 님께 내어드리고 하나님이 일하실 것을 가만히 서서 기대하는 모습을 가진 사람임을 깨닫게 하신다. 그래서 자신있게 사람들에게, 특히 청소년들에게 말한다.
"날마다 QT 하는 사람은 성공할 사람이다. 실패는 불가능하다!"
주님. 날마다 말씀을 통해 '우리 하나님'에서 '나의 하나님'으로 Paradigm Shift 의 은혜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 땅도 날마다 말씀을 사모하는 자들에게 동일한 Paradigm Shift 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위성사진'
"사명을 위해 선택된 사람들"
출애굽기 6:14-30
오늘 말씀을 통해 갑자기 모세와 아론의 계보가 왜 소개되는 지를 묵상하 며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그리고 나의 앞날에 얼마나 관심이 많으신지를,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신다.
갑자기 모세와 아론의 계보가 소개되는 이유는 출애굽을 이끈 두 지도자의 혈통을 추적하여 그들이 이스라엘 12지파 내에서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를 보여주려고 했기 때문이고, 하나님께서 GPS 탐지기를 설치하시는 모 습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이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한 약속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현되고 있는 지를 확인시 켜 주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출6:14-16까지엔 야곱의 열 두아들 모 두가 출애굽기 1장처럼 소개되지 않고 세 아들 르우벤, 시므온, 레위 까지 만 소개되고 있다. 왜일까?
출6:14-25 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은, 지금 하나님은 레위와 그의 자손 들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말씀에는 야곱인 이스라엘의 아들 르우벤, 시므온, 레위의 족보가 소개되고 있고 그 중 중요한 사람들이 나오고 있는 데, 중요한 사람들의 힌트는 그들의 나이가 표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뼈대 만 보니 이 하나님의 의도가 더 잘 보인다.
레위(137세)의 아들들 중 고핫으로(출6:16), 고핫(133세)의 아들들중 아므람으로(출6:18), 아므람(137세)의 아들들 아론과 모세로(출6:20).


여기까지는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 시작해서 레위-고핫-아므람-아론과 모세로 마치 하나님이 줌인해서 들어가시는 모습이고, 하나님의 강력한 위 성사진을 보는 듯하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의 관심인 모세와 아론에게까지 줌인하여 들어가시기 뿐만 아니라, 지금 보이지도 않는 앞으로의 예배를 받으실 대제사장의 후손까지도 줌인하는 더 강력한 줌인기능으로 계획까 지 세우시는 하나님이시다. 그 계획은 아론으로부터 시작되는 대제사장 가 문에 대한 계획으로, 아론-엘르아살-비느하스 까지 줌인하신다.
이 하나님의 강력한 위성사진 줌인기능을 보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 성의 예배를 받으시기 위해 요셉의 때부터 레위가 시작되도록 오래 전부터 계획하고 준비하셨고, 앞으로의 예배까지 받으실 계획을 하신 것을 보며 나의 현재 뿐만 아니라 미래까지도 줌인하여 바라보시는 하나님을 묵상하 며 더욱 신뢰하게 하신다. 이 하나님의 줌인 기능은 이스라엘 백성으로부 터 줌인하여 모세와 아론에게 이른 것처럼 '우리 하나님'에서 '나의 하나 님'을 찾도록 하시는 줌인 기능임을 깨닫게 하신다. 이 하나님의 강력한 줌 인기능은 오직 예배자만을 줌인하신다^^
갑자기 삽입된 것같은 계보를 소개하는 '어른은(출6:15) ~ 어른들이라(출 6:25)'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배를 받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마 음에 얼마나 가득 찼는지를 드러내시는 계보이며, 마치 "내 눈에 어른어른 ~거린단다.^^"라고 말씀하시는 듯 하다.
'모세가 여호와 앞에서 아뢰되 나는 입이 둔한 자이오니 바로가 어찌 나의 말을 들으리이까'(출6:30)
이 말씀을 묵상하는데 오래 전에 주신 말씀을 다시 주신다. 그 말씀은 어렵 고 힘든 상황에서 늘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기 때문이다.
"네 삶에는 계란과 바위 밖에 없거든. 계란으로 바위를 깰래? 아니면 바위 로 계란을 깰래?"


'계란으로 바위를 깬다'는 것은 나의 판단과 행위를 의지함으로 내가 세운 '하나님 프로젝트'에 너무도 빠져 부딪칠 돌에 부딪친 것처럼(롬9:32) 연 약한 나의 생각을 가지고, 나의 열심을 가지고, 나의 방법을 가지고 눈 앞 의 현실이 회복되고 구원을 얻을 때까지 바위에 부딪치는 것이다. 절대로 계란만 깨지고 바위가 깨질 수 없다는 것도 모르고, 유대인들이 걸려 넘어 진 바위가 예수 그리스도인 줄도 모르고 계속 이런 '계란으로 바위 깨기'를 하고 있는 삶이라는 것이다.
'바위로 계란을 깬다’는 것은 믿음을 의지함으로(롬9:32) 하나님의 '나를 향한 프로젝트'에 빠지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라는 바위로 눈 앞의 현실 이 회복되고 구원을 얻기까지 계란을 치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식은 죽 먹기이다.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받은 자로 이 땅을 살아간다는 것은 연약한 나의 계 란으로 눈 앞의 현실이라는 바위를 깨려고 몸부림 치면서 결국 나의 계란 만 깨지며 사는 삶이 아니라, 이렇게 식은 죽 먹기처럼 하나님의 자녀를 삼 으시고 구원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으로 눈 앞의 현실이라는 계란을 깨는 삶임을 가르쳐 주신다. 이렇게 '바위로 계란 깨기'의 삶을 살 때만이 눈 앞의 현실은 회복되고 구원을 얻는 자로 바뀌는 소망을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다는 것임을 깨닫게 하시며, 내가 내 삶 속에서 할 고백은 하나님 을 의지할 때 이렇게 쉬움을 알게 하시며 모세형님에게도 알려주라신다.
"전 바위로 계란 깰래요^^ 모세 형님도 바위로 계란 깹시다!"
주님. 오늘도 하나님의 강력한 위성사진은 저와 저의 앞길까지도 줌인하여 예배받으시도록 예비하셨음을 신뢰합니다. 줌인하여 바라보시는 하나님 이 가르쳐주신 방법인 '바위로 계란 깨기'의 삶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를 의지하기에 가능함을 감사 드리며 이 땅의 사람들도 '계란으로 바위 깨 기'의 고달프고 소득이 없는 삶에서 '바위로 계란 깨기'의 소망이 있는 삶이 전해지기를 소원합니다.


'야다, 하나님을 아는 것'
"매사에 순종과 믿음으로 반응하십시오"
출애굽기 7:1-13
오늘 말씀은 계속되는 출애굽 예고편과 그에 따른 첫 방영이 드디어 시작 되는 장면이다. 하나님께서는 계속 귀에 따갑도록 출애굽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예고편을 계속 보여주신다. 이 예고편을 통해 제대로 하는 습관을 들이도록 하기 위함이시다. 하나님께서 계속 여러 번에 걸쳐 말씀하실 때 마다 "하나님께서 내게 습관화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를 묵 상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신다. 지금 습관이 되고 있는 말씀 묵상도 천 국의 삶의 예고편이라신다. "하나님. 이 땅의 삶이 '예고편'이면 천국의 삶 은 전문 용어로 '본방'이라고 하겠네요^^"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출7:4)
하나님은 늘 이렇게 하나님 백성의 identity 를 확실하게 가르치시는 하나 님이시다. 나를 처음에 부르실 때도 "사랑하는 내 아들아"라시며 나의 identity 부터 먼저 세워주신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로의 눈으로 보기에는 힘없고 소망없는 한낱 노예에 불과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가나안 땅을 차 지할 주님의 강한 군대로, 그리고 열방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갈 하 나님의 백성이라는 identity 를 심어주신다. 지금 어떠한 상황 속에 있다 고 할지라도, 여전히 삶 가운데 풀 수 없는 매듭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리스 도 안에 있는 나를 하나님은 주님의 강한 군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기 시며 세상에서의 출애굽이라는 매듭을 풀기 위해 지금도 일하고 계심을 신 뢰하게 하신다.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출7:5)
여기서 '알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야자 타임의 야자'가 아니라^^ '야다'


인데 '직접 보아서 확인하다' 라는 '체험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을 의미한 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그저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체험과 경험을 통 해 아는 것이다. 이렇게 직접 경험함으로 하나님을 아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오늘도 역시 하나님은 나를 향해 그리고 세상을 향해 질문을 던지 신다.
질문: 하나님을 어떻게 '야다', 알 것인가?
선택: 바로처럼 심판을 통해 or 이스라엘 백성처럼 고난을 통해
하나는 세상이라는 바로처럼 교만을 통해 심판을 경험하게 됨으로 하나님 을 '야다' 알게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비록 고난 가 운데 있지만 그 가운데서 함께 하시며 위로하고 일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 고 '야다' 알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야다'는 내가 아는 하나님을 환경과 문 제와 사탄을 향해 선포하는 것이다. "야~ 다~ 알아!"
"그럼 이것 말고 다른 선택은 없나요?" 하고 묻는데 나를 돌아보게 하시고 세상의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게 하신다.
"그래. 하나님을 찾고 만나는 때는 내가 세상 속에서 바로처럼 잘나갈 때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처럼 고난 가운데 광야 가운데 있을 때였어...그곳이 하나님을 찾고 만나려고 부르짖는 때였어..."
'그들이 바로에게 말할 때에 모세는 팔십 세였고 아론은 팔십삼 세였더 라'(출7:7)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민증 까!"하며 나이 많음을 내세우는 모습을 보 여주는 것도 아니고... 왜 나이를 하나님의 이적 앞에 언급하시는 것일까...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마음이 느껴진다. 뭐죠? 하 는데 주시는 마음은, 하나님의 이적은 내가 할 수 없는 상황에서만 가능하 다는 것이다. 비록 세상에서는 나이가 꼬부랑이라고 '희망없음'의 판결을 내릴 지라도 그 이후에 하나님의 일하심이 시작되는 '희망시작'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나이가 많고 적고나 서열의 높고 낮음으로 하는 것 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기름부음으로 하는 것이라고 하신다. 앞으로 나이가 80 전까지는 나이가 많아 못하겠다는 변명은 하지 말아야겠다.
드디어 바로 앞에서 지팡이가 뱀이 되게하는 이적을 보이는 사건의 '본 방'이 시작되었다. 애굽왕 바로의 왕관 중앙에는 금으로 만든 코브라상이 있는데 이는 왕권을 상징한다. 지팡이를 뱀이 되게 하시는 것은 바로의 눈 높이에 맞춰 대화하시는 하나님으로, 모세와 아론이 말하는 하나님이 진짜 왕이심을 알리기를 원하시기에 지팡이가 뱀이 되게 하신다. 그런데 애굽 술객도 동일한 이적을 하는게 아닌가...(실은 이들은 지팡이를 뱀으로 만든 게 아니라 뱀에 최면을 걸어 뻣뻣하게 지팡이처럼 만들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 눈에 보이는 이적보다 중요한 것은 이적을 행하는 능력의 출처가 어 디인가? 하는 것이다.
내 삶에서 능력을 행하는 왕처럼 수 많은 능력의 출처들... 재물... 성공... 자녀... 명예... 신념... 지식... 방법... 이들 중에서 가장 강한 출처는 바로 하나님이심을 고백한다. 출7:12 은 이 삶의 수 많은 능력의 출처들, 어떤 왕, 어떤 신보다 강한 분이 하나님이심을 보이기 위해 아론의 지팡이가 다 른 지팡이를 삼키는 이적을 보이신다.
'각 사람이 지팡이를 던지매 뱀이 되었으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 이를 삼키니라'(출7:12)
지금 뱀으로 변하는 지팡이는 모세의 지팡이가 아니라 아론의 지팡이이다. 그러면 모세의 지팡이는?
출7:9-10 에서보면 모세는 아론에게 하나님처럼 선포만 하고 있다. 이 장 면을 보며 지금 바로 앞에는 하나님의 계획과 말씀을 선포하는 모세와 아 론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아론과 바로가 등장하는 무대임을 보게 하신다.
말씀을 가지고 선포하는 자의 자리는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자리이기 때문 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주님. 주님께서 게속 삶 가운데 말씀하시는 '예고편'을 놓치지 않고 연습하 고 습관들인 것처럼 천국의 '본방'을 예비하는 자 되기를 원합니다. 이 땅 가운데 넘쳐나는 수 많은 능력의 출처들 중에서 가장 강한 출처는 바로 하 나님이시라는 고백들이 이 땅을 덮기를, 수 많은 견고한 진들과 이 땅의 단 단한 지팡이들이 삼켜지기를 소망합니다.
'야다 프로젝트 1: 피 재앙' "풍요의 근원을 앗아간 재앙"
출애굽기 7:14-25
오늘 말씀은 완악하여서 하나님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바로에게 하나님 알 게하시는 프로젝트(출7:17), '야다 프로젝트'의 첫 번째 피 재앙을 말씀하 신다.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출7:17)
애굽에 있어서 나일강은 애굽의 생존과 풍요로운 번영의 근원을 의미했다. 나일의 의미는 '검다'라는 뜻으로 아프리카에서 제일 큰 강이고, 세계에서 는 두 번째로 큰 강이며, 애굽의 사할이 달린 강이기에 애굽강이라고 부른 다.(창15:18) 이 나일강은 애굽 사람들이 우상으로 숭배하기에 충분했고, 그런 번영과 풍요를 주시는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를 가로막고 나일강을 우 상숭배하는 것을 치는 것이 '야다 프로젝트' 첫 번째 이다.
이 '야다 프로젝트' 첫 번째는 '피 재앙' 이다. 지팡이로 나일강을 치니 강이 피로 변하고 고기가 죽고 악취가 나는 피 재앙은, 애굽의 생존과 번영의 근


원이고 숭배대상인 나일강을 썩은 핏물로 바꾸어 우상 숭배하는 애굽의 미 래가 마치 악취나는 고기와 같다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 메시지를 깨닫기는 커녕 요술사도 똑같이 하자 바로의 마음은 완악해져 버린다(출7:22). 세상은 이렇게 끊임없이 하나님을 알려주는 '야다 프로젝트'가 온 세상에 충만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술수에 더 욱 귀기울이고 '야다 프로젝트'엔 관심도 두지 않으며 더욱 악한 상황으로 빠져드는 모습을 보인다.
'바로가 돌이켜 궁으로 들어가고 그 일에 관심을 가지지도 아니하였고'(출 7:23)
이 땅에서도 사람들이 똑같은 악한 모습으로 사는 것을 보며 하나님을 모 르는 사람은 바로처럼 살 수 밖에 없는 영적 감옥에 갇힌 자들을 보게 하신 다.
사실 이들 요술사들의 똑같은 흉내를 내는 술수는 하나님의 이적을 비슷하 게 만들어 냈다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요를 자신의 힘으로도 세상의 방 법으로도 이루었다고 뽐내며 세상의 쾌락에 빠지지만 결국은 이 같은 행위 는 재앙의 상황을 더욱 악하게만 만드는 결과를 낳고 있다. 나일강의 '피 재 앙'은 하나님이 주신 '피 재앙' 과 요술사가 만든 '피 재앙'이 곱배기로 되어 버린 결과이다. 세상도 '야다 프로젝트' 없이 내가 하나님처럼 할 수 있다고 하지만 결국은 재앙을 더욱 크게 불러들일 뿐임을 깨닫게 하신다.
'여호와께서 나일 강을 치신 후 이레가 지나니라'(출7:25)
'이레'를 묵상하는데 하나님께서 이런 마음을 주신다.
"이레는 완전한 수이고, 야다 프로젝트 첫 번째 피 재앙을 주고 7일간의 기 회를 준 것이다. 완전한 기회를...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나의 세상에서의 모습을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 지금 말씀하시는 '돌아올 수 있는 완전한 기회, 이레가 지나니라'(출7:25)가 분명히 있었음을 깨닫 게 하신다. 그리고 이 기회는 늘 세상을 향한 '야다 프로젝트'가 주는 완전 한 기회이다. 돌아올 수 있는 기회이다...


주님. 저에게 보이셨던 '야다 프로젝트'의 완전한 기회를 바로처럼 세상에 젖어있어 외면했었던 저의 옛 모습을 회개합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풍요 가 아니면 그것은 '야다 프로젝트'가 아니라 '외면 프로젝트'임을 깨달으며, 이 땅도 결국은 악취가 나고 썩어질 것을 풍요의 끈이라고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체를 붙잡는 삶이기를, '야다'의 삶이기를 소망합니다.
'야다 프로젝트 2: 개구리 재앙' "바로의 자존심을 짓밟은 재앙"
출애굽기 8:1-15
오늘 말씀은 완악하여서 하나님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바로에게 하나님 알 게하시는 프로젝트(출7:17), '야다 프로젝트'의 두 번째 개구리 재앙을 말 씀하신다.
'그가 이르되 내일이니라 모세가 이르되 왕의 말씀대로 하여 왕에게 우리 하나님 여호와와 같은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니'(출8:10)
이집트어로 개구리신은 헤켓(HEKET)으로 여신이다. 이집트 신화에서는 파라오의 곡간을 지키고 그 재앙을 막기 위해 개구리로 형상을 만들어 개 구리 여신에게 그 역할을 담당하게 하였다. 헤켓이라고 불리우는 개구리 신은 곡식이 떨어지거나 부패하는 것을 방지해주는 여신으로 이집트의 3 대 신화의 하나인 헤르모폴리스의 주요 여신이다. 모세가 이런 개구리를 나일 강에서 불러 들여 이적을 행하는 것은 애굽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수 확물의 떨어짐을 예고하는 것이고 바로의 왕궁 곡간을 비게 만드는 것이기 에 무서운 재앙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곡간을 지키고 재앙을 막아 주는 역할을 하는 개구리 신이 오히려 바로에게 재앙을 가져다 주는 존재 로 사용하심으로서 그들의 잘못된 신관을 비웃으시는 하나님이시다.


개구리 재앙은 나일강의 물을 피로 만드는 재앙 다음에 이루어진 것으로 애굽의 술사들도 행할 수 있는 이적이었다. 그러나 이 개구리 재앙은 바로 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야겠다고 마음먹게 만든 첫 번째 재앙이었 다. 물론 개구리 재앙이 지나가고 난 뒤 바로의 마음이 변해 완악한 교만으 로 인해 약속을 지키지 않아 더 큰 재앙을 불러일으키지만..
스스로 교만해지는 것은 성공이라 부르는 것으로부터 미끄러운 내리막길 로 치닫는 첫걸음이 된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승리를 나의 공로로 주장 하고, 주님의 명령을 나의 욕망에 맞게 수정할 때 시작된다. 하나님께서 축 복으로 주신 '내일'도 교만의 사람들에겐 더욱 교만하지는 내일이 되고, 핑 계와 탐욕을 하루 더 누리는 여유가 되고 저주가 된다. 그래서 하나님을 모 르는 사람들의 버릇은 '내일이면...'(출8:10) 을 되풀이 한다. 그러나 하나 님의 백성은 당장 어떻게 할 것을 하나님께 구한다.(출8:9)
진정한 성공이란 내가 갈망하는 것을 얻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좇 고 주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길 안에 머무는 것이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8:1)
'개구리가 너와 네 백성과 네 모든 신하에게 기어오르리라 하셨다 하라'(출 8:4)
세상에서 나를 풍요롭게 할 것이라고 여겼던 수 많은 개구리들을 묵상하게 하신다. 그것은 내가 섬겼었던 세상의 생각들이고, 심지어는 직장이고, 아 내이고, 자녀이며, 내가 쫒았던 세상의 행복임을... 그것들이 우상이 될 때 결국 내 삶에 기어오르는 추한 것들이었음을 돌아보며 오직 하나님을 섬기 고 예배하는 것 외엔 쫒는 모든 것이 수 많은 개구리였음을 알게 하신다.
지금 터키의 이스탄불에서도 이런 수 많은 개구리들이 도처에 있음을 이들 의 모습에서 보게 되면서 영적으로 수 많은 개구리들의 악취를 느끼게 된 다. 그저 세상에서 얻고자 하는 것들이 이대로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 음에서 개구리를 섬기고 있는 수 많은 모스크를 보며 자신이 세상에서 풍


성하게만 사는 것이 삶의 목표인양 구원과 상관없이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 님을 움직이고 싶어하는 저들의 삶을...
사실 바로의 요술사들도 똑같은 흉내를 내고 있는 술수는 하나님의 이적을 비슷하게 만들어 냈다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요를 자신의 힘으로도 세상 의 방법으로도 이루었다고 뽐내며 세상의 쾌락에 빠지지만 결국은 이 같은 행위는 재앙의 상황을 더욱 악하게만 만드는 결과를 낳고 있다. '개구리 재 앙'은 하나님이 주신 '개구리 재앙' 과 요술사가 만든 '개구리 재앙'이 곱배 기로 되어버린 결과이다. 세상도 '야다 프로젝트' 없이 내가 하나님처럼 할 수 있다고 하지만 결국은 재앙을 더욱 크게 불러들일 뿐임을 깨닫게 하신 다. 하나님 알기 '야다 프로젝트'의 결론은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 힘으로' 임을...
주님.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내일'을 내 것을 채우고, 내 생각을 채우고, 내 욕심을 채우는 데, 썩어질 개구리들을 삶 속에서 늘리는데 사용하지 않게 하시고 늘 하나님께 예배드릴 '내일'을 예비하게 하소서. 이 터키의 이스탄 불을 덮고 있는 수 많은 개구리 우상들을 멸절시키는 말씀의 지팡이를 가 지고 다니는 하루 되기를 소망합니다.
'야다 프로젝트 3,4: 이, 파리 재앙' "예고 없이 주어진 재앙"
출애굽기 8:16-24
오늘 말씀은 완악하여서 하나님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바로에게 하나님 알 게하시는 프로젝트(출7:17), '야다 프로젝트'의 세 번째와 네 번째인 '이와 파리 재앙'을 말씀하신다.
"그 날에 나는 내 백성이 거주하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그 곳에는 파리가 없게 하리니 이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네가 알게 될 것


이라"(출8:22)
예고없이 주어진 세 번째 재앙인 땅의 티끌이 이(lice)로 변한 재앙은 애굽 이 섬기던 땅의 모든 신(Akhor)들이 결국은 그들을 lice 처럼 괴롭게 만 들 것이라는, 우상 숭배의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고, 네 번째 재앙인 파리 (flies) 재앙은 케프리(Khepri) 라고 하는 그들이 좋아했던 쇠똥구리 우상 신을 깨어버리는 재앙이었다. 애굽 사람들은 쇠똥구리가 쇠똥을 굴리는 것 처럼, 이 신은 또한 하늘을 가로 질러 태양을 굴리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믿 고있었다. 쇠똥을땅에묻는쇠똥구리의작업은파리들이쇠똥속에서자 라나는 것을 막기 때문에 치유의 신으로 믿었으며, 파리 재앙은 쇠똥구리 신들의 실패를 보여주며 진정한 치유를 누가 하고 있는지를 알게 하시는 것이다.
또한 나중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성경에 나타나는 파리와 관련된 우상은 ‘파리의 왕’이라는 뜻의 바알세붑(히브리어로는 바알즈붑)으로 발전되는 것 같다. 이것은 가나안 땅에서 질병을 치료하는 신으로 알려진 파리(즈붑) 신앙과 바알신앙이 결합된 형태이다(왕하1:2-18). 학자들은 바리새인들 이,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며 병자를 고쳐 주실 때 바알세불을 힘입었다 고 모욕하는 표현에서 나오는 귀신의 왕 바알세불이 파리의 왕 바알세붑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두 재앙인 이(lice) 와 파리(flies) 재앙은 그들의 삶 가운데 하나님 대 신에 자신의 우상으로 섬기며 그를 통해 자신들 마음대로 조종하려 했던 그들 마음속의 거짓(lie)을 향한 재앙임을 말씀하시며, 나의 삶 가운데도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이러한 무수한 거짓들이 삶을 덮고 있었음을 깨닫게 하신다. 그래서 '희망없음'의 삶에서 '희망있음'의 삶으로 변화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내 마음속에 섬기던 우상들을 헐으신 하나님의 일하심 때문이 다.
하나님께서는 '그 날에 나는 내 백성이 거주하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출


8:22) 이런 우상들을 심판하시는 재앙들과 구별된 백성을 세우신다. 고 센 땅도 애굽의 일부임을 묵상하며 내가 이 땅 가운데서 살더라도 하나님 께 구별된 삶을 드린다면 그곳이 바로 고센땅이 됨을 깨닫게 하신다. 이 땅 가운데서 내 마음 속의 거짓(lie)를 섬기며 하나님의 재앙을 받는 '고생 땅'이 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구별된 삶을 사는 '고센 땅'이 될 것인가...
주님. 세상의 거짓(lie)을 향해 결국은 그것으로 인해 재앙의 결과가 옴을 보이심을 보며 애굽이라는 이 세상 가운데 살지만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고센 땅'에 사는 삶 되기를 원합니다. 이 터키의 이스탄불도 세상의 욕심과 욕망을 좇는 '고생 땅'이 아니라 오래 전 복음을 꽃피웠던 '고센 땅'으로 회 복되기를 소망합니다.
'당당함'
"교활한 바로, 신실한 모세"
출애굽기 8:25-32
오늘 말씀은 드디어 '야다 프로젝트' 1-4 까지 겪은 바로가 모세에게 하나 님께 제사 드릴 것을 허락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교활한 바로는 제사는 드 리되 '이 땅에서'(출8:25), 보낼테니 '너무 멀리 가지 말라'(출8:28)라면 서 이스라엘 백성을 계속 붙잡아 두고자 하는 교활한 마음을 드러내고 있 다.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출8:25)
'바로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광 야에서 제사를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 그런즉 너희는 나를 위 하여 간구하라'(출8:28)


이러한 바로의 교활한 모습은 삶 속에서 꽤 익숙하게 다가오는 유혹의 모 습이고, 죄의 모습이고, 사탄의 모습이다.
"하나님을 믿어도 좋은데 지금 모습 그대로 믿어. 지금 이 유혹과 죄악의 장소에서 그냥 하나님만 믿는 건 어때? 하나님 믿고 예배 드리는 건 좋은데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너무 멀리는 가지 마."
이렇게 교활하게 속이는 모습이 바로 바로의 모습이고 세상의 모습이며 죄 의 모습이다. 이 교활한 술수에 놀아났다간 영원히 그곳에서 발을 뺄 수 없 는 지경으로 만드는 것이 그 술수의 결과이다.
'그러나 바로가 이 때에도 그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그 백성을 보내지 아 니하였더라'(출8:32)
바로에게 계속 반복해서 주어지는 기회의 '이 때에도'(출8:32)는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인 세상의 모습이며, 세상을 의지하고서는 절대 기대할 수 없는 기대의 '이때에도' 이며, 하나님께서 돌아오기를 원하시며 말씀하시 는 기다림의 '이때에도'인 "지금이라도 괜찮단다. 이때에도 돌아오면 돼."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메시지임을 깨닫게 하신다.
'그리하면 부당하니이다'(출8:26)
'다시 거짓을 행하지 마소서'(출8:29)
바로 왕 앞에서 당당한 바로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세상이라는 바로의 교 활한 모습은 삶 속에서 꽤 익숙하게 다가오는 유혹의 모습이고, 죄의 모습 이고, 사탄의 모습이다. 이 교활에 대해 모세는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있 다. 왕 앞에서, 세상 앞에서 이렇게 당당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한가지 이유 에서 이다. 바로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그럴 때 비로소 그분이 함께하며 보여주시는 신실함은 내 삶 속에서 당당함으로 표현됨을 깨닫게 하신다.
참. 오늘 새벽에는 터키 이스탄불에 와서 맞는 나흘 째로 사도 요한과 사도 바울의 사역지였던 에베소를 향한다. 에베소는 동쪽과 서쪽 사이의, 바다


길과 간선도로 사이의 수송로를 잇는 연결지점이었다. 주전 6세기의 리디 아의 크로에수스와, 페르시아의 키로스 2세와, 4세기의 알렉산더 대왕은, 원래 그 지역의 주민을 구성하고 있는 아시아 민족들과 이오니아 헬라인들 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러다가 주전190년경에 시작된 관대한 로마의 통치 하에서 에베소는 국제적인 상업의 중심지였으며, 종교의 싸움터였다. 크로 이소스의 시대로부터 페니키아의 아스타르테(고대 셈족의 풍요와 생식의 여신)와 비슷하며 헬라인들에 의해 아르테미스(Artemis)로, 로마인들에 의해 다이아나(Diana)로 불리우는 리디아의(Lydian) 다산의 여신이 합 법화된 매춘, 상품화된 부속물들과 경이로운 신전들과 함께 그 도시의 생 활을 지배하였다. 한마디로 에베소는 신의 이름으로 성적인 도시였다.
에베소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이 중에 하나인 아데미 신전이 있는 곳이다. 이 신전은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보다 4배나 큰 것으로 거대하고 웅장하 고 아름다웠다. 그리스인의 구전에 의하면, “지금까지 태양이 운행하는 중 에 아데미 신전보다 더 훌륭한 것을 보지 못했노라”고 하는 격찬의 말이 있 다.
이 신전에서의 여신을 숭배하는 모습은 기묘하고 황홀하고 광적이다. 고함 소리와 울음소리를 동반한다. 나팔이 울리면서 분향을 시작하게 되면, 군 중들은 흥분과 발광으로 날뛴다. 게다가 음탕하고 수치스러운 일들을 서슴 치 않고 행하였다. 에베소는 도덕적으로 타락한 도시였다.
에베소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숭배했던 아데미 여신은 가슴에 유방이 24개 가 달린 풍요의 여신이다. 아데미 여신의 머리에는 바벨론을 상징하는 성 이 있고, 몸에는 특이한 사냥꾼 니므롯을 상징하는 사자, 호랑이, 사슴 등 의 다양한 짐승들의 부조로 새겨져 있다.
매년 5월 아데미 여신의 축제날이 되면 유방과 같은 수의 24명의 흰 옷을 입은 여자 사제들이 앞에 서고, 뒤에는 자신의 고환을 아데미 여신에게 바 친 남자 사제들이 여신의 호위병처럼 뒤 따른다.


터키의 작은 도시 셀추크(Selcuk)는 터키에서 가장 유명한 고대 유적지 에베소(에페스,Efes) 관광의 기점이 되는 마을이다. 이곳에는 거대한 에 베소 도시 유적지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을 뿐 아니라 과거에는 127개의 기둥이 있어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로 알려졌던 아르테미스 신전이 있고 성모 마리아가 요한과 함께 말년을 보내었던 성모 마리아의 집, 사도 요한을 기념하는 사도 요한 기념 교회 등 기독교 유적들도 남아 있는 곳이 다.
그는 성모 마리아와 함께 에베소에 와서 복음을 전하다가 로마 군인에게 체포되었는데 도미티아누스황제의 독약과 뜨거운 기름통에 던져지는 심한 박해 속에서 살아났으며 밧모섬의 극한 박해 속에서도 살아남아 요한계시 록을 기록하였고 에베소에서 말년을 보내며 요한 복음과 요한 1, 2, 3서를 기록하고 하늘로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의 향년 95세였다.
에베소는 아시아 지역에 있는 로마 제국의 커다란 항구도시로서 상업과 종 교의 중심지였다. 에베소는 이오니아의 수도이며, 카이스터(cayster)강 의 평원에 위치해 있었다. 에베소는 시리아의 안디옥과 이집트의 알렉산드 리아와 함께 지중해 동쪽의 세 개의 큰 도시 중 하나로 아시아의 로마 식민 지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바울은 선교 절정기를 에베소에서 보냈다. 에베소는 예루살렘, 안디옥을 이어 제3의 그리스도교의 중심지였다. 고린도에서 1년 6개월간 전도사역 을 한 후(행18:1-11), 겐그레아를 거쳐(행18:18) 에베소에 왔다. 그러나 1차 에베소 방문은 잠깐이었으며(행18:19), 그 후 3차 전도여행 때에 다 시 와서 집중적인 사역을 하였다(행19:1). 이때 일어난 사건들로는 세례를 주었고, 3달 동안 회당에서 강론했다. 2년간 두란노서원에서 강론하고 스 게와의 일곱아들 사건이 있었고 은 5만에 해당하는 마술책을 불태웠으며 데메드리오의 책동으로 일어난 커다란 소동이 있었다.


이 에베소를 향하는 발길이 사도 요한의 발자취와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영적으로 그대로 느껴보는 것이길 바램한다.
'야다 프로젝트 5,6: 온역과 독종 재앙' "생존과 생명을 위협하는 재앙"
출애굽기 9:1-12
오늘 말씀은 완악하여서 하나님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바로에게 하나님 알 게하시는 프로젝트(출7:17), '야다 프로젝트'의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인 '온역과 독종 재앙'을 말씀하신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9:1)
이 하나님의 명령이 바로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담보로 잡고 있는 것이 더 이상 허용할 수 없음을 말씀하고 있다.
"내 백성이고, 나를 섬길 것인데 잡고 있으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라고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보호이다.
삶 가운데서도 비록 세상의 유혹에 빠져 바로라는 세상의 굴레에 얽메이게 될 지라도 하나님은 그 세상을 향해, 세상의 굴레를 향해, 잡고 있는 바로 를 향해, 그것을 조종하고 있는 사탄을 향해 선포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 게 하신다.
"내 백성이다. 나를 섬길 것이다!"
다섯 번째 재앙인 가축에 대한 온역 재앙은, 신성한 황소신 아피스(Apis), 암소 모양의 어머니 여신으로 다산의 상징인 하토르(Hathor), 다산의 상 징인 황소신 므네비스(Mnevis), 암소 임에도 머리에 뿔을 가지고 있는 신 들의 여왕 이시스(Isis) 등을 직접적으로 공격한 재앙이고, 그 신들은 모두 무능한 사기꾼들임이 드러낸, 우상들에 대한 심판이다.
여섯 번째 독종 재앙은 비로소 환경에만 오던 재앙이 몸으로 오기 시작한


재앙으로, 이런 독종 재앙 앞에 술객들도 예외가 아닌 것을 보이시며 하이 크(Hike)나 토쓰(Thoth) 등과 같은 마술과 치료의 신들의 무기력함을 드 러낸, 우상들에 대한 심판이다.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가축과 애굽의 가축을 구별하리니 이스라엘 자손에 게 속한 것은 하나도 죽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고'(출9:4)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가축과 애굽의 가축을 구별'(출9:4)하신다. 가 축까지도 누구의 소유인지 아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을 보며 내가 이 땅 가 운데서 살더라도 내가 가진 소유는 세상의 소유와는 구별된 것들이어야 함 을 말씀하신다.
어제는 이스탄불에서 새벽 3:45 에 출발하여 Izmir 라고 하는 곳에 비행 기로 한 시간 갔다. 중간에 차로 오가면서 보는 것은, 이 땅이 오래 전부터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위치하여 교역이 활발하며, 기후는 California 처 럼 좋은 날씨에다 땅은 옥토라 온갖 좋은 농업 산물들이 나서 나라를 부유 하게 만드는 원천이 되는 것 같다. 모슬림이 95% 라 못사는 나라로 알았 더니 이 땅 만큼은 축복받은 땅임을 느낄 수 있었는데 정작 터키 사람들은 이 하나님의 축복을 모르고 있는 것이 아쉽기만 했다.
이 Izmir 라는 도시 안에 에베소가 있었다.
먼저 사도 요한 교회를 방문했는데, 그 곳은 요한이 머물다 죽은 곳에 교회 를 세운 곳인데 그저 자그마한 교회거니 하고 갔는데 아주 웅장하게 건축 된 아름다운 교회임을 잔존하는 터와 기둥들을 보며 알 수 있었다.
그리고는 에베소라는 기원 전 7세기 타운의 20% 가 복원된 에베소를 보 면서 마치 내가 그 당시의 에베소에 서 있는 것처럼 그 웅장함과 흔적들에 의해 매료되었다. 그 당시 30만명이 살던 대도시 에베소는 그 웅장함과 스 케일이 대단하였다. 특히 13,000 명정도가 참여하는 원형극장인 The Grand Theater 는 얼마나 설계가 잘 되었는지 아내와 서로 반대 편에 앉 아 옆에 있는 것처럼 말해보니 들리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엘튼 존과 같은


수 많은 유명 음악가가 공연하였다는 소리에 다음에 그런 공연이 있으면 참석하고 싶은 예술적 욕구가 생겨났다.
바다를 눈 앞에 두고 세운 아름다운 도시 에베소의 해양도로를 걸어가면서 멀리 보이는 산 꼭데기에 세운 등대에는 감옥도 같이 있다 들었다. 그리고 그 감옥에는 사도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어 목이 잘려 죽기 전에 잠시 있던 감옥이라고 하니 더욱 사도바울이 멀리서 우상과 환락의 도시 에베소를 향 해 기도했던 그 가슴의 찌릿함이 느껴지는 듯 했다.
그리고는 요19:26-27 대로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 던 House of Virgin Mary 를 찾았다. 드러나면 죽일 지도 모르는 상황 에서 요한은 에베소에서 멀리 떨어진, 그러나 에베소에서 보이는 산 꼭데 기에 마리아가 죽을 때까지 기거할 집을 은밀히 만들고 요한이 모시게 된 다. 그 후 지진으로 에베소와 마리아의 집은 흙 속에 파묻히게 되지만 다른 나라에 있는 어느 캐톨릭 신자의 꿈에 자세하게 보여주게 되며 다시 마리 아의 집을 찾고 복원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예수님의 제자와 달리 당시 수명의 거의 두 배를 누리고 예수님의 어머니를 모시고 95살 까지 살았던 요한은 정말 예수님이 사랑하시던 제자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에베소는 정말 당시의 시끌뻑적한 삶과 복음의 갈망을 가진 사도 요한과 예수의 제자들과 사도 바울의 마음들이 마치 포토샵의 레이어처럼 각각이 지만 하나로 섞여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매력적인 도시라 다음에 온 가족 이 함께 오고 싶은 장소로 찍어놓고 달걸음을 돌렸다.
이제 내일부터는 사도 바울의 2차 전도여행지의 흔적을 느끼기 위해 그리 스의 아테네로 향하게 된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있는 분 들에게 QT 세미나를 하며 "내 백성이다. 나를 섬길 것이다"라고 외치시는 하나님의 음성과 사도 바울의 심장이 다시 한번 박동하는 시간이기를 기도 한다.


주님. 에베소와 아테네로 이끄시는 주님의 인도하심에 감사드리며 이 땅 가운데서 살더라도 내가 가진 소유는 세상의 소유와는 구별된 것들임을 늘 기억하는 삶 되게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이 땅 이스탄불에도 세상의 소유가 다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소유를 발견하는 이들되기를 소망 합니다.
'야다 프로젝트 7: 우박 재앙" "하나님의 권능을 알게 한 재앙"
출애굽기 9:13-26
오늘 말씀은 완악하여서 하나님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바로에게 하나님 알 게하시는 프로젝트(출7:17), '야다 프로젝트'의 일곱 번째인 '우박 재앙'을 말씀하신다
'내가 이번에는 모든 재앙을 너와 네 신하와 네 백성에게 내려 온 천하에 나 와 같은 자가 없음을 네가 알게 하리라'(출9:14)
하나님께서 애굽을 향해, 바로를 향해, 세상을 향해 선포하는 메시지는 동 일하다. "내 백성이고, 나를 섬길 그들을 절대로 양보하지 못한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9:13)
일곱 번째 재앙인 우박 재앙은 사람과 가축들과 곡물들을 파괴하는 강도 높은 재앙으로, 이를 보이시는 이유와 세우시는 이유를 설명하시고 있다. 세우시는 것도 두 가지이네^^ 바로의 세우심과 모세의 세우심이다.
'내가 이번에는 모든 재앙을 너와 네 신하와 네 백성에게 내려 온 천하에 나 와 같은 자가 없음을 네가 알게 하리라'(출9:14)
'내가 손을 펴서 돌림병으로 너와 네 백성을 쳤더라면 네가 세상에서 끊어 졌을 것이나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 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출9:15-16)


하나님의 말씀대로 애굽 전역에 우박이 내리기 시작한다. 반면, 모세의 말 을 듣고 두려워하여 아직 살아남은 가축들을 집으로 돌아오게 한 사람들은 한 마리의 가축도 죽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고 들에 그대로 둔 가축들은 다 죽고 말았다. 이 '우박 재앙'은 이제 애굽의 차 원을 넘어, 세상을 향한 재앙의 차원을 넘어,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 을 믿고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재앙이 예외가 될 수 있음을 알리시고자 하 시는 메시지이다. 이 메시지는 삶 속에서 말씀을 신뢰하지 않고 자신의 힘 으로만 살고 있는 '고생 땅'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구별된 삶으로 '고센 땅'으로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계속 반복해 서 주시고 계신 메시지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있는 그 곳 고센 땅에는 우박이 없었더라'(출9:26)
이 '우박 재앙'은 애굽 사람들이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며 섬기고 있는 날씨 를 주관하는 우상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기도 하다. 날씨를 주관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여러 하늘 신들, 예를 들면 공기의 신인 슈(Shu), 습기의 신인 테프눗(Tefnut), 하늘의 신인 누트(Nut) 등과 같은 신들을 공격하여 그들 우상들의 무력함을 드러내도록 하였고, 곡물들의 손실은 초목, 농사, 수확의 신들인 겝(Geb), 셋(Seth) 등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재앙이었다.
이 세상의 삶 가운데서 성공하여 더 많은 부를 누리고자 각자가 세운 수 많 은 우상들... 비록 성공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계획하 시면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음을 알게 하시는 이 재앙은 다시 한번 내 삶이 '바로의 삶'인지 '모세의 삶'인지를 돌아보게 하신다. '바로의 삶'은 사람과 의 관계도, 많은 가축을 소유하는 부도, 풍성함을 나타내는 수확도 언제 걷 어가실지 모르는 시한 부의 삶이고 '고생 땅' 이며, '모세의 삶'은 사람도, 가축도, 수확도 여전히 하나님이 주신 축복으로 남아있는 하나님 나라의 삶이고 '고센 땅' 임을 깨닫게 하신다.
이제 오늘 아침에는 그리스의 아테네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사도 바울의 뜨거운 심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먹는 QT 의 삶이 다 시 그 땅을 뜨겁게 하기를 기도한다.
주님. 온 천하에 하나님과 같은 분이 없음을 고백하며 삶 가운데 세상이 주 는 것들을 우상으로 삼고 살았던 '바로의 삶'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예배 와 찬송의 기쁨으로 사는 '모세의 삶'으로 옮겨주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 배합니다. 이 터키의 이스탄불 땅에도 세상의 헛되고 무력한 우상들을 섬 기는 땅이 아니라 늘 사람과 소유와 수확을 풍성케 하는 복음의 비밀이 덮 는 땅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제 그리스의 아테네로 발길을 옮기면서 사도 바울의 뜨거운 심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먹는 QT 의 삶이 다시 그 땅을 뜨겁게 하기를 소망합니다.
"부족한 인간에게 베푸신 큰 은혜" 출애굽기 9:27-35
오늘 말씀은 '이번 만은'(출9:27) 이라며 잘못했다고 하는 바로의 요청도 또 들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말씀으로, 늘 범죄하여 '이번 만은'이 라며 회개하였다가 '다시 범죄하여'(출9:34)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는 인 간의 모습을 다시 보게 하신다.
말씀 중간에 뜬데 없이 들어 간 출9:31-32 말씀은 무슨 뜻일까를 묵상하 게 하신다.
'그 때에 보리는 이삭이 나왔고 삼은 꽃이 피었으므로 삼과 보리가 상하였 으나 그러나 밀과 쌀보리는 자라지 아니한 고로 상하지 아니하였더라'(출 9:31-32)
삼과 보리가 나와서 하나님의 우박 재앙으로 상한 상태이고, 바로의 '이번 만은'이라며 회개의 이삭이 나온 것 같은 상태를 나타내며, 이스라엘 백성 이 출애굽 하는 시기가 언제 쯤인지 가늠케 하는 말씀이다. 아직 삼과 보리 는 싹이 나고 밀과 쌀보리가 자라지 않은 시즌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구절들은 바로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말씀이라는 마음이 든 다. 삼과 보리를 가졌다고 그 풍요함에 빠져 하나님을 멀리하던 삶은 '야다 프로젝트'를 만나면서 어설픈 회개인 '이번 만은'에 이르게 되지만, 밀과 쌀 보리가 아직 자라고 있는 상태로 하나님의 은혜가 예비되고 준비됨을 알게 하신다. 그런데 바로는, 세상의 사람들은 이 은혜의 재료가 불신앙의 재료 로 변형된다. 아직도 믿을 만한 게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보며 '이번 만은' 이 라고 했던 마음은 '이번 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기에 하나님께 향하지 않는 또 하나의 불신앙을 만든다.
어제 드디어 사도 바울의 발자취가 짙게 묻은 그리스의 아테네에 와서 두 가지의 영성이 여전히 그 시대부터 존재함을 느끼게 하신다. 온갖 음행과 우상이 난무하는 삶을 정리하지 못해 그저 그 모습대로 살아가고 있는 삶 의 모습과 사도 바울의 마음을 어떻게든 함께 느끼며 이 땅에서 더욱 하나 님과 가까이 하고픈 삶의 모습이 뒤 섞여 혼미하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그야 말로 날마다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QT 가 이곳에 사는 분들에 게, 이 지역에 정말로 필요했음을 보게 된다.
단 하나 밖에 없는 한인교회이기에 정말 은혜가운데 사도 바울의 가슴으로 이 땅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임에도 아무 것도 관심이 없이 어쩌면 양들을 그저 방치하는 게으른 목자가 이끌고 있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이 주시는 분노가 일어나며 그런 상황 속에서도 성도를 대신 섬기고 말씀으로 양육하 려고 애쓰는 두 분을 보며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방치하고 계신 의미를 생 각하게 하신다. 이 땅의 혼미함은 교회마저도 혼미해서 내가 하나님과 일 대일로 만나고 서야 할 필요가 있는 땅임을 말씀하신다. 이제 오늘 방문할 고린도 교회 때부터 계속된 음행과 우상들이 난무했던 상황은 여전히 계속 되고 있으며, 교회가 그런 것으로부터 안전지대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 앞 이. '코람데오'의 삶 만이 안전지대임을 보게 하신다.
주님. 이 땅에서 정말 말씀이 필요하고 하나님과의 매일의 만남이 필요했


던 아테네에서 정말 필요했던 분들에게 QT 를 통해 위로와 격려와 하나님 의 말씀의 달콤함을 전달해 주는 기회되심을 감사드립니다. 이 땅 아테네 에서 영적 혼미함 속에서도 날마다 QT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교제하는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 고린도여... 아 아테네여'
'야다 프로젝트 8: 메뚜기 재앙의 경고"
"완강한 태도, 계속되는 재앙" 출애굽기 10:1-11
오늘 말씀은 완악하여서 하나님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바로에게 하나님 알 게하시는 프로젝트(출7:17), '야다 프로젝트'의 여덟 번째인 '메뚜기 재 앙'을 경고하신다.
'네게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들 곧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행한 표징을 네 아 들과 네 자손의 귀에 전하기 위함이라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 라'(출10: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로 들어가라 내가 그의 마음과 그 의 신하들의 마음을 완강하게 함은 나의 표징을 그들 중에 보이기 위함이 며'(출10:1)
이 말씀은 어려움과 고난을 겪을 때마다 기억해야 할 말씀이다. 비록 눈 앞 의 상황은 힘들게만 돌아가고 점점 더 어려움은 고난으로 바뀔지라도 그럴 수록 하나님께서는 더 일하시기 쉬운 상황임을... 하나님 뿐이시라는 고백 이 흘러나오도록 하시는 상황임을 깨닫고 그 어려움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으로 담대히 들어가라고 거기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체험하라고 하시 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애굽을 향해, 바로를 향해, 세상을 향해 선포하는 메시지는 동 일하다. "내 백성이고, 나를 섬길 그들을 절대로 양보하지 못한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10:3)
바로는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보내야 하긴 하는데 미련이 남아 또 다른 꽁 수를 쓴다.
'바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와 너희의 어린 아이들을 보내면 여호 와가 너희와 함께 함과 같으니라 보라 그것이 너희에게는 나쁜 것이니 라'(출10:10)
이런 말도 안되는 이유를 들어 장정만 가서 하나님을 섬기라고 한다. 말하 자면 여자와 어린 아이들을 볼모로 잡아두겠다는 꽁수이다. 출10:10은 바 로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함께하기에 남녀노소 모두를 모두 보내야 하는 것이 맞음을 스스로 고백하면서도 '그것이 너희에게는 나쁜 것이니 라'라고 하고 있다. 도저히 앞뒤가 맞지 않는 바로의 말을 생각하는데 하나 님께서 주시는 마음이 있다. 그 마음은 "악을 어떻게 이해하겠니... 그저 그 악을 향해 선포하는 것이 최선이다."라는 마음이다.
어제는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 고린도와 그 고린도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웅장한 산 꼭데기에 세운 신전은 고린도가 얼마나 우상을 숭배하기 위해 음행이 난무했는지를 상상케 하였다. 고린도에서 사도행전18:12-17 의 현장 앞을 보면서 총독 갈리오와 사도 바울과 회당장 소스데네의 음성 이 들리는 듯 했고 소스데네가 맞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고린도의 사도들의 교회는 참으로 아름다운 교회였고 그 안에 앉아 있으면 그림 만으로도 성경을 읽는 것과 같았다. 바울-아볼로-실라-... 로 이어지 는 사도들의 리스트와 베드로의 모습과 바울의 모습이 입구에서 사도행전 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했다. 그곳에서 다시 사도 바울이 머리를 깍으며 서 원했던 겐그리아로 향했다. 지금은 터만 남아있는 겐그리아 해변을 바라보 며 나의 하나님께 대한 서원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신다.


아테네로 오는 길에 들른 아담한 교회에는 사도 바울이 말씀을 전하다가 핍박을 받아 힘들어 할 때 꿈 속에서 "담대하라"는 예수님을 만나고 담대 하여 말씀을 전하는 모습을 담은 교회가 인상적이었다.
주님. 오늘도 아테네 시내를 돌며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고 보기를 원하는 장소를 보게 하여 주소서. 여전히 음행과 우상이 난 무하는 이 땅이 정결하게 되도록 다시 말씀 앞에 서는 이 땅이 되기를 소망 합니다.
'야다 프로젝트 8: 메뚜기 재앙' "하나님의 권능과 지혜를 보여 준 재앙"
출애굽기 10:12-20
오늘 말씀은 완악하여서 하나님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바로에게 하나님 알 게하시는 프로젝트(출7:17), '야다 프로젝트'의 여덟 번째인 '메뚜기 재 앙'을 보여 주신다.
메뚜기 재앙은 우박 재앙 후 그나마 남아 있는 나무나 밭의 채소나 푸른 것 들의 완전 말소를 보이는 재앙이다.
'애굽 온 땅에서 나무나 밭의 채소나 푸른 것은 남지 아니하였더라'(출 10:15)
이러한 남아있는 곡물들의 완전한 손실은 초목, 농사, 수확의 신들인 겝 (Geb), 셋(Seth) 등의 우상들이 하나님의 재앙 앞에 무기력함을 드러내 게 하신다. 또한 그 당시 수확물을 보호하는 것을 기원하는 풍뎅이 신에 대 한 심판으로 메뚜기를 동원하여 그 수확물이 전혀 보호받지 못함을 선포하 시는 재앙이다.
이런 '메뚜기 재앙'앞에 '이번만'(출8:17) 용서해 달라는 바로이다. 그리고


는 이내 완악해지는 바로이다. 어려움과 고난 앞에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나의 기도도 이러지 않았나 돌아보게 하신다. 그 어려움과 고난을 함께 동 행하며 즐기자는 하나님의 제안 앞에서 '이번 만은' 어려움과 고난을 피해 가게 해달라고 바로처럼 기도하진 않았는지...
어려움과 고난 앞에 서면 참으로 온 몸이 저리고 힘이 듦을 느끼게 된다. 그 러나 이젠 그 어려움과 고난이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것이라면 기쁨으로 소 망을 가지고 신뢰하며 나아갈 수 있는데, 문제는 하나님의 방향이 아니라 점점 악이 난무하는 상황 가운데 처할 때가 문제이다. 과연 그 어려움을 참 고 견디기을 원하시는 하나님이신지 아니면 그 어려움을 향해 '예수 그리 스도의 이름'을 선포하며 성전을 청결케 하신 예수님의 모습으로 거룩한 분노를 표출해야 하는지가 혼동이 될 때가 있다.
그리스 아테네의 교회들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어려움 앞에 사도 바울도 중보하고 있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마음이 저리고 힘이 든다. 정말 마음같 아서는 나라도 그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 안에서 온갖 말 도 안되는 상황을 감수하고 참아내며 신앙을 지키기 위해 그야말로 몸부림 치는 분들이 있음을 보며 아직도 암울한 상황이지만 소망이 있음을 신뢰하 게 된다. 출애굽기의 exodus 는 이 땅 그리스에서는 어느 곳에 가든지 exit 사인으로 사용되는 글자이다. 교회를 사랑하지만 교회로부터 핍박을 당하면서도 몸부림치며 교회를 끌어안고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 하나 이끌 고 있는 진정한 목자 둘이 있기에 어려운 교회의 상황도, 그릇된 목자의 길 도 이젠 exit 으로 나가야 할 것밖에 남아있지 않음을 말씀하신다.
"이제 거의 가득 찼단다. Exodus 할 때란다. 조금만 기다리라."
어제는 평신도이지만 사명을 가지고 목자처럼 성도들을 사랑으로 신앙을 돌보고 있는 집사님 내외분과 함께 아테네 시내를 다녔다. 사도 바울이 항 구에 도착하여 걸었던 저작거리 아고라와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스토 아 학파 사람들과 논쟁하던 장소, 그리고 언덕 아레오바고를 보며 사도행 전 17장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바울이 아덴에서 실라와 디모데를 부


르며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아테네가 우상이 가득함을 보고 격분하는 모습 도 느껴지는 듯 했다. 바울이 복음을 설파했던 아레오바고는 언덕의 뜻만 있는 줄 알았더니 그곳이 바로 그 당시 대법원 처럼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 을 때 비로소 들고 오는 곳이 바로 아레오바고임을 알게 되었다.
16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17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18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19 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 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20 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 노라 하니
21 모든아덴사람과거기서나그네된외국인들이가장새로운것을말하 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 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 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 희에게 알게 하리라
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 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27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 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 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29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 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사도 바울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수 많은 흔적들을 보며 그리스 속에서의 삶 자체가 사도행전의 삶임을 말씀하시는데 정작 이곳의 목자들은 "악하 고 게으른 종아"라는 심판받아 마땅한 목자인 것이 너무도 가슴이 아프고, 이제 절대 가만두면 되지 않으며 모두가 중보해야 할 때임을 말씀하신다. 그래서 사고행전의 삶을 그리스 아테네에서 시작될 수 있음을, 사도 바울 의 원조 메시지를 가슴으로 느끼는 아테네로 회복되어야 함을 선포하게 하 신다. 말씀이 정말 필요한 곳인 아테네에서 하나님의 인도로 QT 세미나를 해드린 것이 너무도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고, 이젠 이곳 아테네로부터 다 시 말씀이 회복되고 다시 원조 바울의 메시지를 전하는 성도들이 가득한 교회로 변하는 모습을 기대하며 하나님께 기도로 올려드린다. "아테네여 회복될 지어다!"
주님. 늘 발 앞에 있는 재앙의 상황을 보면서도 '이번 만은' 하며 피할 것을 구하는 기복신앙이 아니라 그 가운데서 손잡고 일하시며 인도하시는 하나 님과 동행하심에 집중하게 하소서. 이 땅 그리스 아테네와 터키 이스탄불 과 카자흐스탄 알마티가 복음위에 서도록, 말씀 위에 서기를 소망합니다.


'야다 프로젝트 9: 암흑 재앙' "애굽의 태양신을 무력화 시킨 재앙"
출애굽기 10:21-29
오늘 말씀은 완악하여서 하나님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바로에게 하나님 알 게하시는 프로젝트(출7:17), '야다 프로젝트'의 아홉 번째인 '암흑 재앙'을 보여 주신다.
이 암흑 재앙은 바로가 자신의 아버지라며 섬김을 강요했던 우상 태양신인 라에 대한 무력함을 보이시며 심판하시는 모습이다. 그러나 태양이 우상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혜택임을 보이시는 재앙이다. '그 동안은 사람들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 되 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더라'(출10:23)
이를 통해 말씀하시는 것은, 내게 재앙이 될 것인가 아니면 혜택이 될 것인 가는 우상숭배의 길을 택할 것인가 하나님을 섬기는 길을 택할 것인가에 달렸음이다. 이것은 이 땅에 사는 모든 이들의 삶을 통해 적용되는 하나님 의 원리이고, '야다 프로젝트'의 비밀임을 보게 하신다.
바로는 참으로 불쌍한 존재인 것 같다. 처음부터 모세의 원하는 대로 했으 면 당하지 않아도 될 재앙들을 계속 당하고 급기야 '장자 재앙'을 불러오는 수를 놓게 된다. 바로 '양과 소'를 아끼려다 장자의 생명을 버리는 그릇된 수를 두게 된다. 아마도 하나님께 제사지낼 속제물인 양과 소는 바로 죄인 의 죽음을 대신한다는 진리를 바로에게도 한 수 가르치시려나 보다. 처음 재앙들은 하나님을 모르고 있던 바로가 당하면서 점점 하나님을 알아가는 '야다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지만, 나중의 암흑 재앙부 터는 이스라엘 백성의 여자와 어린아이들을 볼모로 잡으려는 꽁수를 쓰려 다 암흑 재앙도 당하고, 이제 오늘은 소와 양을 아끼려다가(출10:24) 애 굽의 장자들을 죽이는 '장자 재앙'을 예측하게 된다.


이 바로의 모습을 보며 나의 옛 모습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의 허랑 방탕한 삶 속에서 계속 거듭된 하나님의 경고의 사인을 무시한 채 달리던 삶은 그 삶에서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는 '장자'가 죽어야 끝이 나게 됨을... 그리고 그 어그러진 삶을 회복시키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쓰신 방법도, 하 나님의 가장 소중한 '장자'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시 기로 선택하셨다는 것이다.
이런 하나님이 동행하심을 체험하며 신뢰할 때 모세는 점점 당당해진다. 나는 말도 잘 못하는 사람이라며 소명을 거둬달라고 했던 모세의 옛 모습 이 아니라 바로 왕이 "여기서 꺼지고 다음에 또 보면 네 제삿날이다(출 20:28)"라고 위협하는 왕의 말에도 아랑곳없이 "내 다시는 왕의 얼굴을 안볼 것이다(출20:29)"라고 선포하는 지금의 모세의 모습은 왕보다 위에 서 있는 '당당함'이 느껴진다. 이 당당함은 모세의 변한 모습 때문이 아니라 모세가 이렇게 선포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하나님의 동행하심이다. 하나님이 동행하신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누구나 '연약함'에서 '당당함'으 로 변화되는 '하나님 야다(하나님 알기)' 가운데 있게 된다.
그리스의 아테네로부터 터키의 이스탄불을 거쳐 카자흐스탄의 알마티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3:44 AM 에 올려드리는 큐티 예배는 사뭇 새롭다. 늘 성령님과 손잡고 거닐며 묵상하던 'QT로' 대신에 마치 하나님이 내어주신 '전세 QT 비행기'라는 생각이 든다^^
주님. '야다 프로젝트'의 막바지를 달리면서 바로가 사소한 욕심 때문에 더 큰 재앙을 경험하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을 보며 저 또한 바로 같은 부류였었음을 고백합니다. 이제 '흑암 재앙'부터는 하나님깨 드리는 속제 제사와 세상의 '장자'를 쫒던 허망한 삶을 하나님의 장자 예수 그리스 도를 통해 회복된 삶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 다.이 땅에도 이런 속제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완전한 회복을 목말라하 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가득찼음의 신호등'
"장자 죽음 재앙을 예고하심"
출애굽기 11:1-10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출7:5)
여기서 '알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야자 타임의 야자'가 아니라^^ '야다' 인데 '직접 보아서 확인하다' 라는 '체험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을 의미한 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그저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체험과 경험을 통 해 아는 것이라는 것이다. 오늘 말씀은 결국 하나님을 알리는 '야다 프로젝 트'의 마지막 단계가 바로에게 임할 것을 경고하시는 말씀이시다. 세상은 하나님의 백성을 쫒아내는 것처럼(출11:1)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하 나님의 백성을 위대하게 보이도록 세우신다.(출11:3) 말을 안해서 그렇지 세상은 마음 속으로 그리스도인을 그렇게 여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잘못을 할 때는 더 따끔하게 비난하고 손가락질 하는 이유이다. 세상의 나 하나는 약하고 쫒겨다니는 모양세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하나님이 함께하 시면 세상은 내 뒤에 있는 하나님 때문에 나를 위대하게 여김을 깨닫게 하 시며 하나님은 능력있는 자를 세우시기 보다는 하나님을 자랑하는 자를 세 우신다는 마음을 주신다.
하나님을 자랑하는 자는 하나님도 그를 자랑하신다^^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고 영광돌려 드리는 것이다. 하나 님을 칭찬해 드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고 영광돌려 드리는 것이다. 어려움과 고난의 상황 앞에서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상황에 서 한번 하루 종일 손뼉치면서 하나님을 칭찬해 드려본 적이 있는가... "짝 짝짝. 하나님 참 잘하셨어요. 짝짝짝. 하나님 지금도 너무도 잘하고 계시네 요. 짝짝짝. 하나님 이제 일하실 것도 너무도 잘하실 것을 믿어요. 짝짝짝. 하나님 참 잘하셨어요." 이렇게 하는 동안 어느 새 그 어려움은 더 이상 어 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도록 하나님께 영광돌리도록 마련된 시


험이었다는 고백으로 바뀌게 됨을 경험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가진 특권이고 비밀이다.
'밤중에'(출11:4)는 유월절 밤 즉 1월14일(니산월이고 아내의 생일이자 아들 지미의 생일이다, 태양력으로는 3-4월) 밤이다. 그 유월절 밤에 '내 가 애굽 가운데로 들어가리니(출11:4)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개입'이시 다. 출애굽기의 비밀, exodus 의 비밀은 가득 차야 하는 것이며. 자동차 가 고난의 호수로 곤두박질 쳤을 때는 고난의 물이 차 안에 가득차야 문이 스르르열리듯, 나의고통의때가아닌하나님의때가가득차야한다는것 이다. 왜냐하면 exodus 는 내가 아닌 하나님이 하시는 구원사역이기 때 문이다. 이 가득 찼음의 신호는 결국 '야다 프로젝트'의 열 번째 재앙에 이 르러서 울리기 시작하고 하나님이 개입하시겠다는 상황에 이르게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개 한 마리도 그 혀 를 움직이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를 구별하 는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셨나니'(출11:7)
이 마지막 '장자 재앙'은 비록 애굽 사람들에게는 재앙일지 모르지만 이스 라엘 백성에게는 그저 '밤중에'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단잠과 구원을 동시에 받는 축복의 사건이 된다.
특히 하나님께 예배드리기를 방해하는 바로와 같은 핍박이 '가득찼음'을 알리는 신호등 앞에 섰다면 이제 숨고르기만 하면 된다. 그 '가득찼음'의 신 호등에 오기까지 부지런히 인내하며 달려 왔지만 일단 '가득찼음'의 신호 등 앞에 서는 순간 '내가 들어가리라' 하시는 하나님의 개입을 경험할 수 있 게 된다. 일단 여기까지가 힘들지만 여기서부터는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시 간이다. 그저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디렉션 대로 따르기만 하면 도저히 그 럴 수 없는 상황에서도 환경마저도 오히려 '은금패물'을 채워주는 환경으 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일방적 구원역사를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이 '가득찼음'의 신호등이 보이기까지는 인내하고 자제하며 하나님


께 간구함이 필요하지만 일단 '가득찼음'의 신호등이 보이는 순간부터는 선포하며 누리는 시간이다. 모세가 '심히 노하여 바로에게서 나오니라'(출 11:8) 한 것처럼 세상의 왕같은 바로 앞에서도, 세상의 거대한 환경과 문 제 앞에서도 하나님의 개입은 이렇게 모세처럼 믿는 자를 당당하게 만든 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터키 이스탄불로 오는 비행기에서 비상출구를 보니 지 금 말씀을 묵상하고 있는 출애굽기의 Exodus 가 그리스어(헬라어)로 쓰 여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는 Exit 이라고 써 있었다. 아무 때나 그 문을 열 면 정말 큰일을 만나게 되지만 절대절명의 어려운 순간에 도저히 내 힘으 로는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찌할 수 없음이 '가득찼음'의 상황에서만이 그 Exodus 는 Exit 출구로 바뀌게 됨을, Exodus 는 어려움과 고난의 상황 에서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는 Exit 사인을 보며 나아가는 것임을 깨닫게 하신다. 세상의 수 많은 Exit 사인들 중에서 오직 하나님과 함께하는 Exit 사인만이 그 '가득찼음'의 상황으로 전리품을 줏어들고 나가는 Exodus 임을...
주님. 지금도 여러 가지 상황 가운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을 올려드리 며 그들이 '가득찼음'의 신호등을 보기까지 인내하고 참아낼 힘과 말씀을 주시고 "이제 다 되었다. 내가 개입하마."라고 응답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상황들로 바꿔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땅도 곳곳마다 하나님의 개입 을 나타내는 '가득찼음'의 신호등이 켜지기를 소망합니다.
'어린 양 찬양하리 내 평생 그 하나로 충분해요' "구원과 심판의 분기점, 어린 양의 피"
출애굽기 12:1-13
오늘 말씀은 유월절의 기원과 그 방법에 대해 설명해 주시며, 가장 필요한


어린 양의 피가 바로 구원과 심판을 가르는 분깃점임을 말씀하고 계신다.
'이 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출12:2) 하나님의 말씀대로 종교력 1월을 '아빕월'이라고 부르며 나중에 바벨론식 표기로 '니산월'이 되는데, 오늘날 태양력으로는 3-4월에 해당한다. 이 '달의 시작'이 곧 삶의 시작이어야 하며 삶의 진정한 시작은 구원으로부터 이어야 하며, 하나님의 유월절 구원으로부터 시작됨을 말씀하신다.
'너희는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각자가 어 린 양을 잡을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출 12:3)
출애굽 전날 밤, 곧 유월절 잠에 사용할 어린 양은 '가족 단위로' 준비해야 했다. 이곳 KZ에서는 정기적으로 양을 잡곤 하는데 심지어는 아이들 놀이 터에서도 잡는 것을 봤다. 그 때에는 일 년된 어린 양 한 마리를 소비하는데 최소한 10명은 필요함을 보며, 유월절 밤의 공동식사는 10인 단위의 가족 중심으로 구성되어야 했음을 가늠하게 된다.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출12:7)
왜 어린 양의 피를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발랐을까?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구별됨의 표시이며, 대속의 피를 집 입구에 분명히 나타내 보임으로써, 애굽 땅의 초태생을 치는 죽음의 사자로 하여 금 그 집에는 들어오지 말고 그냥 '넘어가도록'(pass over) 하기 위함이 었다.(출12:13) 그래서 유월절을 Passover 라고 하며 출애굽하던 날 밤 의 구속사건을 나타낸다. 구원과 심판의 분깃점은 바로 이 문설주의 피 바 름이며 어린 양의 피이다. 나의 삶에도 이렇게 구별됨의 표시로 분명하게 피 바름의 고백이 있음을 돌아보게 하신다. 이런 나의 삶의 문설주에 바른 피는 나를 구원하고 나를 천국까지 가게하는 이정표로 쓰이게 됨을 고백하 며 오늘도 그 어린 양의 피 때문에 소망이 있음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 내가 할 일임을 깨닫게 하신다.


"주 임재 안에서"(http://www.youtube.com/watch? v=CXnym6SHD1g)라는 찬양이 내 귀를 맴돈다. 어린 양 찬양하리~~ 내 평생 그 하나로 충분해요~~ 이런 공식을 마음에 주신다.
나 = impossible
나 + 하나님 = possible!!
내 모든 것 나의 생명까지
다 주님 앞에 드립니다
주 임재 안에서 이제 내 영혼 자유해
내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높이며 예배 하리 어린양 찬양하리 내 평생 그 하나로 충분해요 어린양 찬양하리 내가 주의 임재 안에서 어린양 찬양하리 내 평생 그 하나로 충분해요 어린양 찬양하리 내가 주의 임재 안에서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 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출12:11) 유월절 대속의 어린 양을 먹을 때의 지시사항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허리의 띠, 발의 신, 손의 지팡이, 급히 먹음'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 고 성령님께 'QT로'를 걸으면서 묻는데 주시는 마음이 이렇다.
허리는 몸의 중심을 잡아주듯이 '허리에 띠를 띠고'는 나의 삶의 중심을 띠 로 묶어야 하며 이 띠는 바로 말씀의 띠이어야만 영적 상태의 중심을 잡을 수 있음을 말씀하신다.
발의 신은 내 삶의 걸음을 의미하며 내 삶의 여정을 의미하는데, '발에 신을 신고'는 삶 속에서의 여정이 비록 세상 가운데 살지만 하나님 나라를 향하 는 여정이어야 하며, 늘 그곳을 향해 떠날 차비를 하는 여정이어야 함을 깨 닫게 하신다. 이러한 '발에 신을 신고' 하나님 나라를 향해 사는 삶은 복잡 한 삶의 선택을 단순하게 만든다. 내가 삶 가운데 해야 할 선택은, '발에 신


을 신고' 가는 여정에 필요한 것인가 아닌가의 선택만이 있을 뿐이기에 삶 은 단순해지고 하나님을 향하기가 쉬워진다.
모세가 가졌던 것은 지팡이 뿐이었으며, 이것으로 급기야는 200만 가까 이 되는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기에 이른다. '손에 지팡이를 잡고'는 이제 지팡이를 손에 쥔 모두가 그렇게 세상이 위대하게 생각하는 '작은 모 세'가 됨을 말씀하신다. 모세의 '당당함'이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이 하나님 이 원하시는 것임을 깨닫게 하신다. 이 '당당함'이 주어지는 지팡이는 오늘 날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말씀이고 QT 이고 '생명의 삶' 임을 알게 하신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말씀으로 도전하고 싶다.
"손에 지팡이를 쥐고 있나요?"
'급히 먹으라'는 것은 언제 출애굽의 명령이 갑자기 떨어질지 모르는 긴박 한 상황임을 나타내며, 애굽을 떠날 만만의 준비를 갖춘 채 모든 행동을 신 속히 처리하라는 말씀이다. 군대에 있을 때는 식사를 급히 먹도록 훈련하 는데 어떤 때는 30초 정도만 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급히 먹으라'는 말 씀을 통해 주시는 마음은, 세상은 결국 먹기 위해 살고 있지만 그리스도인 들은 세상의 먹을 것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 하기 위해 급히 먹으라는 것이다.
애굽의 '모든 처음 난 것을 다 치는'(출12:12)것은 애굽의 장자가 다 죽어 야 함을 의미한다. 가장 소중하게 자신처럼 여기던 장자가 죽는다는 것은 그들의 모든 것이 끝남을 의미한다. 세상의 허랑방탕한 삶 속에서 계속 거 듭된 하나님의 경고의 사인을 무시한 채 달리던 삶은 그 삶에서 가장 소중 하다고 여기는 '장자'가 죽어야 끝이 나게 됨을... 그리고 그 어그러진 삶을 회복시키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쓰신 방법도, 하나님의 가장 소중한 '장자'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시기로 선택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출애굽의 열 가지 재앙보다도 더 신기한 이적을 내게 행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신 음성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군 줄 아니? 바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의 외동아들


이란다. 근데 그 아들을 죽이면서까지 너를 살리고 싶었단다. 너를 사랑하 니까..."
주님. 제 삶 속에서 어린 양 예수를 찬양하게 하심을 감사드리며 제 평생 그 하나로 충분함을 고백합니다. 늘 제 삶 가운데 동행하시며 "이젠 나 하나면 안되겠니?" 하시는 음성을 들려주시기에 늘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쥐고 어린 양 예수의 피 바름의 능력을 전하는 것이 기 쁨이 됩니다. 이 땅도 그 하나로 충분한 어린 양을 찬양하는 땅이 되기를, 그리고 복음의 원조로 회복되는 아테네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누룩의 영향력과 우슬초의 영향력' "구원, 그 이후의 거룩한 삶"
출애굽기 12:14-28
오늘 말씀은 구원의 유월절 이후 1월 14일 저녁부터 21일 저녁까지(출 12:18) 누룩이 들어가지 않는 무교병을 먹고 첫날과 일곱째 날은 성회로 지켜 일을 하지 않는 무교절에 대해 알려주신다. 이 무교절 7일 동안은 누 룩이 없는 '마짜'라고 불리는 무교명을 먹는데, 이유인즉 유월절 밤의 긴박 한 상황에서 누룩으로 인한 빵이 부푸는 시간조차도 줄여야 했음을 기억하 라는 것이다.
'너희는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그 첫날에 누룩을 너희 집에서 제하 라 무릇 첫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어지 리라'(출12:15)
성경에서 누룩은 거의 대부분 부정적으로 사용되었다. 사단의 영향력, 거 짓 선지자들의 잘못된 교훈... 거의 대부분이 멀리하고 제하여야 할것으로, 그래서 '누룩의 영향력'은 곧 세상의 영향력을 의미하고 있다. 유월절 구원 이후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거룩함과 순결을 유지하는 새로운 삶과 출발을


위해서는 절대로 세상의 영향력에 흔들리지 않는 삶이어야 함을 말씀하시 며,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세상의 영향력과 죄와 부패를 뜻하는 누룩은 반 드시 제거되어야 함을 말씀하신다.
무교절의 7일은 완전한 수를 나타내는 기간으로, 유월절의 구원이 전적으 로 하나님의 일하심이고, 내가 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완전히 기억하는 기간이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렇게 완전하도록 기억하지 않으면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기에 잊기도 쉽기 때문이다. 그 래서 오늘 말씀에서도 '지키라' 라는 말이 5 번이나 나온다. 이를 숫자로 보 면
1, 7, 14, 21
1 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유월절의 구원을 시작하신다.
7 은 완전 수로 하나님이 계획하신 1월 14일의 유월절은 완전하셨다는 것 이다.
14 는 유월절이고 무교절 첫 날이며, 모두가 모여 성회로 지키는 날이다. 21 은 무교절 끝 날이며, 모두가 모여 성회로 지키는 날이다.
이 14 에서 21 의 기간은 7 일로 완전한 기간을 의미하고, 유월절의 구원 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이고, 내가 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완전히 기억하는 기간이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을 알게 하신다.
말씀에서 두 번이나 강조되는 '끊어지리니'(출12:15,19)는 하나님의 은혜 로 구원받은 유월절을 완전하게 기억하지 않으면 결국 '누룩의 영향력'에 반드시 빠지게 될 것임을, 그래서 하나님과 한멤버십으로 동참하는 것에서 제외됨을 말씀하신다.
'우슬초 묶음을 가져다가 그릇에 담은 피에 적셔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출 12:22)
우슬초는 박하과에 속하는 작은 식물로 이스라엘 땅에서 흔히 잘견되는 식 물이다. 줄기가 빳빳하여 막대기로 사용할 수 있었는데, 입사귀에는 잔털


이 많아 액체가 쉽게 들러 붙는다. 그래서 희생 제물의 피를 찍어 바르거나 뿌리는 정결의식을 집행할 때 종종 사용되었다.(레14:7;민19:6) 그런데 영적으로 이 우슬초를 바라보면, 우슬초는 그야말로 별 볼일 없는 풀로 그 것이 정결의식에 사용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별 볼일 없는' 이유이다. 왜 냐하면 우슬초의 어원에는 "my humblings"라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우슬초를 묵상하는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음성은, "네가 그 humble 한 우 슬초다."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나아가며 우슬초에 어 린 양의 피를 흠뻑 적시듯이 내가 먼저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적셔져야 함을 말씀하신다. 그제서야 비로소 '우슬초의 영향력'은 세상의 구원을 위 해 문설주와 인방에 그 영향력을 바르고 뿌리는 구원의 도구가 됨을 깨닫 게 하신다. 그리고 나 하나의 '우슬초'가 이런 '우슬초의 영향력'을 내는 것 이 아니라 '우슬초 묶음'(출12:22)이어야 함을, 서로가 덕을 세우고 권면 하고 위로하는 공동체가 진정한 '우슬초의 영향력'을 발휘함을 보게 하신 다. 이런 '우슬초의 영향력'을 가진 공동체를 미국에, 한국에, 카자흐스탄 에, 그리스에 허락하신 손, 우슬초 묶음을 붙잡고 계신 하나님께 감사드린 다.
그리스에서 QT 모임을 갖는 분들께 기대와 도전을 날마다 받는다. 분명히 그 분들을 통해 그 땅에
십자가의 '도'가,
말씀의 '도'가,
복음의 '도'가,
하나님을 만나는 길인 '도'가 붙여질 것을 신뢰하고 기대한다.
하나님의 공식은,
'그리스 + X = 그리스도' 이다.
X 는 Christ 이며, '도'이고, 십자가의 '도'이고, 말씀의 '도'이고, 복음의 '도'이고, 하나님을 만나는 길인 '도' 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회복 공식은, '그리스 + 도 = 그리스도' 이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려고 지나가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문설주의 피를 보시면 여호와께서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에게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출12:23)
이제 유월절 날에는 하나님의 눈에는 두 가지의 영향력만을 가려내신다. '누룩의 영향력'을 드러내고 있는가 아니면 '우슬초의 영향력'을 드러내고 있는가가 심판과 구원을 결정하신다. 이런 과거 출애굽의 하나님은 여전히 나의 삶의 구석구석마다 온전하지 못한 모습 앞에서 오늘도 출애굽하라시 는 하나님으로 만나주신다. 이렇게 온전한 '우슬초의 영향력'을 회복하는 유월절의 구원은 늘 필요한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지키라'(출12:17)고 다 섯 번이나 반복하시는 것이다. 삶에서 늘 '우슬초의 영향력'으로 사는 유월 절을 경험하는 것이 예배이고 말씀이고 QT 임을 깨닫게 하신다. 이 Passover 는 이제는 이 세상의 담을 넘어 성령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는 Passover 가 되어야 함을...
'이 후에 너희의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너희는 이르 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 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 느니라 하라 하매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출12:26-27)
자녀 교육의 기본을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부모는 자녀에게 세상에서 성공하라고, 좋은 대학에 가라고, 좋은 직업을 가지라고, 돈을 많이 벌라 고, 좋은 집을 사라고, 좋은 차를 사라고 헛된 것들을 말하고 끌어주는 것 이 교육이 아니라, 부모가 하나님의 온전한 follower 의 모습을 보여 줌으 로 자녀 또한 하나님의 온전한 follower 가 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교 육임을... 우슬초의 humble 함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영향력을 세우는 '우슬초의 영향력'을 갖도록 하는 것이 자녀에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교육 임을...
주님. 늘 삶 가운데 '누룩의 영향력'과 '우슬초의 영향력'을 분별하여 '우슬 초의 영향력'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스에서 QT 모임을 갖는 분들을 보며 기대와 도전을 날마다 받게 하심을 감사드리며, 분명히


그 분들을 통해 그 땅에 십자가의 '도'가, 말씀의 '도'가, 복음의 '도'가, 하 나님을 만나는 길인 '도'가 붙여질 것을 신뢰하고 기대합니다. 그래서 결국 은 '그리스 + 도 = 그리스도'의 하나님 공식이 성취될 것을 신뢰합니다. 이 땅도 세상의 헛된 '누룩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우슬초의 영향력'을 소유하 기를 소망합니다.
우슬초묶음,죄 그리고 유월
우슬초는 향기나는 박하과 식물이다.
죄..향기롭고 시작에 즐거움이-pleasure of sin-이 있다.
우슬초, 입사귀에 털이 나 있어 액체가 잘 들러 붙는다.
죄, 작은 터럭 하나 잡은 걸로, 다른 죄들이 하나씩 들러 붙는다( 죄의 점진 성).
내겐 우슬초 묶음이 있었다.그냥 우슬초가 아니라 우슬초 묶음이다. 한두 가지의 죄가 아닌 다발의 죄로 난 엉켜 있었던 것이다.
날 사랑하시는 '의' 이신 하나님은 나의 우슬초 묶음을 어린양의 피에 담그 셨다.
그 피는 문 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뿌려졌고, 죄의 삯인 '사망'은 나를 지나 갔다(passover).
이것이 나의 유월절 사건이다.
오늘 출애굽의 유월절 이야기를 묵상하며,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그리고 나 와 주님의 만남에 대해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다시 "이 예식에 대해 물어 보며, 이렇게 그 출애굽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며, 구원의 하나님께 다시 머리 숙여 경배해 본다.
그리고 이 출애굽 시대 때 시작된 이 일이 그 때만의 사건이 아님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주님을 만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이 유월절사건은 그래서 지금도 여 전히 진행중이다.
그 문설주의 우슬초 피바름은, 그 어둠의 유월(passover)은 지금까지 계 속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 하나님은 그날을 영원히 규례대로 지키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의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구원의 감격을 잊어선 않 된다는 것이다.
늘 깨인 맘으로 내 삶 속의 누룩을 제거하고, 세상과 나를 구별시켜주신 하 나님을 잊지 말며, 무교병을, 즉 순전한 하나님이 먹으라 하신 무교병을, 즉 말씀을 먹으며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이 예식이 무어냐 묻거든, 즉 너희 왜 그렇게 사냐고 묻거 든, 죄가 사망이 나의 집을 지나가게 하신 여호와의 유월절 사건이라고 말 할수 있어야 한다.
아니, 묻기 전에 말씀하신대로 행하고 살고 있어야 하며, 이 사건을 증거하 고 선포해야 한다. 어디까지? 사마리아 땅끝까지.
언제까지? 주 다시 오실때까지.
'야다 프로젝트 10: 장자 재앙, 그리고 하나님의 개입'' "생명의 주관자를 알게 한 재앙"
출애굽기 12:29-36
오늘 말씀은 완악하여서 하나님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바로에게 하나님 알 게하시는 프로젝트(출7:17), '야다 프로젝트'의 열 번째인 '장자 재앙'을 보 여 주신다.


열 번째 재앙인 '장자 재앙'은 바로(Pharaoh)의 신성을 공격하는 것이었 다. 애굽인들은 바로를 생명을 주는 오시리스(Osiris) 신과 태양신의 화신 (incarnation)인 프타(Path)로 믿고 있었다. 바로의 임무는 신들의 은총 을 유지하고, 질서의 여신 마아트(Ma'at)의 법을 집행하는 것이었다. 그의 아들은 ‘신성한 통치자’의 자리를 계승할 자였고, 애굽 땅의 어떤 아들과도 다른 아들이었다. 그러나 '장자 재앙'을 통해 그는 자기 아들의 죽음도 막지 못하는 무능한 자였음이 드러낸다. 따라서 여호와만이 홀로 죽음과 삶과 생명을 주관하시는 절대적인 분이시라는 것을 알게 하시는 '야다 프로젝 트'의 종지부를 찍는 재앙이다.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 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출 12:29)
왜 하나님은 애굽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는 것일까?
바로가 하나님께 대항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 주기를 끝까지 거절했기 때문에 애굽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는 죽음의 심판을 행하신다. 10 가지 재앙, 특히 '장자 재앙'을 통해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선포하시는 것은 "내 백성을 건드리지 말라. 그러나 나의 백성인 너희도 범죄하면 이런 재앙을 받는다" 라는 메시지이다.
구속사적인 관점으로 보면, 하나님은 자신의 장자인 이스라엘을 얻기 위해 그 대가로 애굽의 장자를 대속 제물로 삼은 것으로, 이처럼 값을 주고 이스 라엘을 샀기 때문에 이때로부터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는 하나님 의 것이라고 선언하셨다.(민3:13)
'처음 태어난 자는 다 내 것임은 내가 애굽 땅에서 그 처음 태어난 자를 다 죽이던 날에 이스라엘의 처음 태어난 자는 사람이나 짐승을 다 거룩하게 구별하였음이니 그들은 내 것이 될 것임이니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민 3:13)


'밤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이르되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 나 내 백성 가운데에서 떠나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출 12:11)
정말 바로가 급했나보다. 장자 재앙을 당한 그 '밤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빨리 떠나가기를 원하고 있다. 그렇게도 하나님의 백성을 보내기 를 거절하더니 하나님의 개입이 있으시니까 바로 시행하는 바로이다. 아마 도 그 즉시로 이스라엘 백성이 떠나야 했음을 의미하는 구절이 출12:34 에 나온다.
'그 백성이 발교되지 못한 반죽 담은 그릇을 옷에 싸서 어깨에 메니라'(출 12:34)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어려운 상황 앞에 있더라도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 으시면 세상은 이렇게 밤이라도 가능한 상황으로 돌려 놓는다.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불가능은 가능이 된다.
이 하나님의 개입은 삶 속에서 두 가지의 개입이 있음을 깨닫게 하신다. 열 가지 재앙에서 말하듯이 10 은 하나님의 숫자로, 심판의 개입은 하나님이 하신 열 가지 재앙을 뜻한다. 반면에 구원의 개입은 하나님이 주시는 십계 명이다. 열 가지 재앙이 심판이고 재앙이듯이, 십계명은 하나님이 개입하 시는 축복이고 구원임을 깨닫게 하신다.
이제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출애굽시키고 바로에게는 하나님을 알리 는 '야다 프로젝트'의 열 가지 재앙은 이렇게 외우며 정리하게 하신다. 피개이파온독우메암장
(피, 개구리, 이, 파리, 온역, 독종, 우박, 메뚜기, 흑암, 장자)
이 열 가지 재앙은 애굽이 섬기던 우상들을 치시며 하나님을 알리시며 "내 백성을 건드리지 말라. 그러나 나의 백성인 너희도 범죄하면 이런 재앙을 받는다" 는 메시지를 보이신다.
피- 나일강 신=하피(Hapy) 신
개- 개구리 모양의 머리를 가진 헤카(Heka) 신 이- 땅의 신=겝(Geb)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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