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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by Brunch Magazine LLC, 2022-10-22 17:42:32

Brunch Magazine Vol.20 2022

vol.20 - 2022
Warm Embrace

B RU NC H

magazine

vol.20
2022

Fashion & K-Drama People & Interior BRUNCH Special BRUNCH Story Food Story

패션은 돌고 돈다, 톰보이 마사 스튜어트 작가 ‘조성모’ 인터뷰 뿌리 깊은 나무, 한복 Spaghetti alle Vongole
2022 패션위크 도나 윌슨 배우 ‘허 진’ 인터뷰 아스달 연대기 2 오디션 : 봉골레 파스타
오징어 게임 쉐프 ‘Amy Kim’ 인터뷰 브런치 아카데미의 매력 마번포 뉴욕/뉴저지 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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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6 p.26 p.40

Contents

P.18 - People Story P.85 - 기획기사 P.126 - BRUNCH Market
Martha Stewart New York Fashion Week Market Photo Stories
P.142 - Special Event by BRUNCH
P.26 - Special Interview P.90 - Fashion Story BRUNCH Exhibition
작가 '조성모' 패션은 돌고 돈다, 톰보이 P.148 - BMC Class
브런치 클래스
P.40 - BRUNCH 화보 P.92 - Special Interview P.158 - BRUNCH Musical Class
뿌리 깊은 나무 “한복” 쉐프 'Amy Kim' 브런치 아카데미의 매력
P.162 - BM Entertainment
P.70 - Special Interview P.106 - 마번포의 뉴욕이야기 아스달 연대기 2 오디션
배우 '허 진' 뉴욕 / 뉴저지 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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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6 - Interior Story P.118 - Cecilia Recipes
Donna Wilson Spaghetti alle Vongole

P.82 - 기획기사 P.122 - Health Story
Squid Game '오징어 게임' 공진단 / 경옥고

PEOPLE Story

얼마 전 업스테이트 뉴욕 Katonah에서 오픈 된
마사 스튜어트의 Great American Tag Sale에
방문 했다. 단순 그라지 세일로 보이는 이 행사의
속을 들여다보니, $250에 달하는 입장료와 이틀
동안 한 시간 단위로 접수가 가능한 시스템에서
전시간 매진되는 참여 규모, 서너 시간을 운전해서
달려와 근처 호텔에서 숙박하며 눈뜨자마자 달려
왔다는 참석자들의 열의까지 연거푸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왕이 없는 미국에서 마사 스튜어트
는 여왕이다. 『가사를 예술적인 차원으로 끌어
올렸다』는 찬사를 듣는 그의 별명은「살림의 여왕」.
미국이 아직도 그녀에게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
일까? 그녀는 누구인가?
우선 그녀의 레시피들을 들어보면 참 편안하다.
그녀가 미국은 물론 세계 여성의 우상이 된 매력은
놀라운 재능과 흡인력 있는 목소리에 있다. 들뜨
거나 날카로워 조금만 들으면 짜증나는 목소리가
아니라,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조곤조곤 설명
하면 자연스럽게 귀담아 듣게 된다. 그녀의 책이나
인터넷 사이트 역시 보기에만 화려한 것이 아니라
마치 그녀가 직접 곁에서 자상하고 친절하게 설명
을 해 주는 식으로 편집한다. 또 부잣집 딸이 아니라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전업주부였다는
점도 주부들의 호감을 샀다는 평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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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tertaining 첫 발행본 > < Living 첫 발행본 >

미국 동부 뉴저지주의 아름다운 마을 뉴틀리(Nutley)에서 자란 마사 스튜어트 그녀는 각종 방송에 출연했고 아예 자신의 프로그램을 따로 만들었고 신문
는 일찍부터 선생님이었던 어머니로부터 요리와 바느질을 배웠고, 약품 칼럼도 기고했다. 미국 전역을 돌며 강의를 하기 시작했고 1999년 10월에는
세일즈맨이며 정원 가꾸기가 취미인 아버지로부터 정원 가꾸는 방법을 드디어 그녀의 이름을 딴 인터넷 사이트 「마사스튜어트닷컴(marthastew-
배웠다. 여대인 버나드 칼리지(Barnard College)를 졸업하고 뉴욕 월스트리트 art.com)」을 오픈했다. <마사 스튜어트 리빙(Martha Stewart Living)>
증권회사에서 일하다, 돌연 증권회사를 그만두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육아 이라는 잡지도 발행했다. 마사 스튜어트는 `살림을 잘하는 여자'의 대명사
때문이었다고 한다. "딸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월 스트리트를 떠났다. 가 되었고 「마사 스타일」이란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살림살이'를 뜻했다.
지금 생각하면 무척 잘한 선택 이었다."고 그녀는 말한다. 변호사인 남편과 그녀는 사업감각도 뛰어났다. K마트와 계약해 자신의 브랜드로 된 상품을
함께 부촌 낡은 집을 구입한 그녀는 그 집을 완벽하게 개조하며 살림솜씨를 파는 대신, 자신의 회사에 수천만 달러를 투자하게 했고 잡지, 인터넷, 프로덕션
발휘했다. 그녀의 집에 초대된 이들은 모두 감탄했고 '왜 이런 솜씨를 썩히냐?' 등 모든 사업체를 완벽하게 관리했다. 그녀가 방송에 나와 "이 제품을 사용
고 그녀를 부추겼다. 주변 사람들의 요청 으로 출장 요리업을 시작한 후 해 보니 정말 편리해요."라고 한 마디만 하면 그 제품은 불티나게 팔렸고
자신의 재능을 살려 <엔터테이닝 Entertaining >이란 제목의 책을 출판 인터넷엔 그녀가 소개하는 각종 요리와 인테리어 기사와 함께 관련 상품을
했는데 출판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녀의 인생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구매하도록 쇼핑몰이 만들어져 있어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했다. 여기에
"요리든 바느질이든 정원 가꾸기든 조금만 애정과 관심을 가지면 우리 주부 '마사 스튜어트 쇼'로 큰 인기를 끌며 에미상을 6번이나 수상하며 다시 한번
들의 살림도 멋진 예술이 될 수 있답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그녀는, 지저분 저력을 보여줬다. 그저 살림 솜씨만으로 포춘지가 선정한 「50인의 영향력
한 집, 쏟아지는 빨래, 매일 메뉴를 궁리하느라 지친 주부들에게 '신데렐라 있는 여성(50 Most Powerful Women)」, 타임지가 선정한 「미국에서 최고
의 초라하고 남루한 옷을 멋진 드레스로 꾸며 준 마법사'같은 존재였다. 마치 로 영향력 있는 인물들(America’s Most Influential People)」의 명단에 해마다
백화점 쇼윈도를 구경하며 '언젠가 저런 옷을 입고 저런 목걸이를 해야지.' 올랐다. 2005년 당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하고 꿈꾸는 이들처럼 주부들 역시 마사 스튜어트가 직접 꾸민 그녀의 근사한 회장, 이건희 삼성 회장 등과 함께 선정됐다.
집을 보면 질투심보다는 동경심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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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분명히 성공했다. 하지만 좌절도 있었다. 사업에 성공하자 남편은
나이 어린 그녀의 여비서와 바람을 피워 재혼했고, 그는 딸의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한다는 소문도 돌았다. 불치병에 걸렸다, 마사의 진짜 성격은 거만
하고 포악하다는 등의 각종 루머와 음해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녀의 이름과
노하우를 담은 책, 잡지, TV쇼까지 승승장구하며 잘 나갔으나 2002년에
주가조작, 내부자거래에 휘말리고 위증죄까지 걸려 5개월 동안 감옥에 수감
되었다. 출소 이후 각종 노력을 통해 재기에는 성공했으나 사세는 기울었고,
2015년에 자신의 직위는 유지한 채 회사를 다른 곳에 팔았다. 자신이 운영
하는 가사용품 및 프로그램 제작사인 마사 스튜어트 옴니미디어 등 10억 달러
이상의 자산으로 포춘지의 최고 부자 명단에도 올랐던 그녀가 고작 23만
달러 의 이익을 보려다가 엄청난 망신을 당한 셈이다.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여전히 마사 스튜어트의 편인 것 같다. 복역 기간에도 동료 수감자들에게
요가와 꽃꽂이를 가르쳐 이미지도 개선했으며 면회하러 온 방송 제작자
들을 만나 NBC 방송의 히트 프로그램인 「견습생(The Apprentice)」과 토크쇼
등 두 개의 프로그램에 출연 계약도 했다. 또 교도소 안에서의 체험담을 책
으로 펴낸다는 소문이 있었고 베스트셀러는 따 놓은 당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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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사 스튜어트의 Maine house > 63세의 할머니. 이혼도 했고 자기 딸 또래의 남자친구와 스캔들도 있었고 치사한 주식 내부자 거래
문제로 옥살이까지 한 그녀에게 세상은 왜 이리 관대한가, 팬들이 교주처럼 떠받드는 이유가 뭘까.
물론 마사 스튜어트 역시 다른 인기인들처럼 추종자들만큼이나 안티 팬도 많다. '가증스럽다.', '역겹다.'
등의 비난도 받고 그녀를 모함한 각종 기사와 출판물도 쏟아진다. 그럼에도 마사는 언제나 의연하고
당당하다. 마사 스튜어트는 여전히 미국 중산층 주부들은 물론 세계 여성들의 우상이며 보잘것없는
살림살이를 주부들의 보람 있고 멋진 일로 끌어올린 공헌자이다. 숱한 시련에도 오뚝이처럼 일어난
마사 스튜어트는 다른 여성들에게 '열정과 노력을 갖고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동기 부여도 해 준다.
1941년 생의 그녀는 여전히 아름답고 당당하지만 그녀의 손은 거칠고 상처투성이다. 항상 직접 요리
를 하다 베이거나 데기도 하고 정원을 가꾸거나 소품을 만들다 가시에 찔리거나 다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무리 열심히 외모를 가꾸어도 손은 살아온 인생을 말한다고 하지 않는가. 같은 주부로서 같은
입장에서 사회적으로 승화시킨 그녀의 삶을 표상화하여 대리만족하면서 미국 사람들은 열광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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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NCH MEETS - Special Interview

작가 ‘조성모’

Artist, Sungmo Cho

미국 산골짜기에 한국인의 숨소리와 정기가 느껴지는‘사랑 Mountain’

1. 조성모 화백님이 처음 그림에 대한 마음을 품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면 자신이 하와이와 LA에서 여행사를 하고 있는데 하와이에서 한달 동안 그림
어떤 단상이 떠오르시나요? 그리고 가라는 거예요. 모든 것을 제공하겠다고...역 제안으로 하와이, LA,
- 어렸을 적부터 아버님께서 붓글씨를 쓰시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어요. 물론 NY을 방문 한 후 ‘더 늦기 전에 가자!’하고 결단을 내렸죠. 한 4년 전쯤
써 보라고 크게 권유는 하지 않으셨지만 벼루 위에 놓인 붓을 들곤 했던 게 ROTC 공수부대 출신 단톡방이 개설되어 사느라 서로 잊고 있었던 그 친구와
아마 ‘예’의 세계에 자연스레 스며들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다시 대화를 갖는 기쁨을 갖게 되었는데, 친구 왈 개인전 방문 때 저의 작품을
초등학교 3학년 2학기 쯤, ‘리’에서 ‘읍’으로 전학을 갔는데 붓글씨 특활반이 갖고는 싶었는데 친구도 한참 일 할 때라 경제적 형편으로 구매는 할 수 없고
있어서 들어갔습니다. 4학년 때 부여에서 소년 한국일보 주최 전국어린이 해서...ㅎㅎ. 그 친구의 제안으로 지금 제가 미국에 살게 되었으니 친구 따라
미술대회가 있었는데 모교에 미술반이 없어 붓글씨반 학생들이 모두 강남 간 게 아니라 친구가 저를 강남에 보낸 격이 되었죠.
참가하게 됐고, 나중에 동으로 주물 뜬 최고상 트로피를 받았지 뭐예요.
얼마나 제가 어렸던지, 지금 생각하면 융으로 감싼 박스 안의 트로피를 3. 이민생활의 처음은 누구나 낯설고 녹록치 않잖아요. 첫 미국 생활은
들고 집에 오는데 너무 무거워 혼났던 기억이 납니다. 그 트로피가 저에게 어땠는지요.
이 길로 걷게된 많은 동기를 부여했지만 한편으론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땐 - ㅎㅎㅎ 네...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며 살았죠. 후에 들은 얘기인데,
악마의 선물로 생각 할 때도 있었죠. 그것은 제 삶의 큰 이정표를 만든 개인 공항에 누가 마중 나오느냐에 따라 미국에서의 직업이 결정된다는 말이
사건이었습니다. 있더군요. 인쇄 사업을 하고 계신 고등학교 선배를 도와 몇 달 아르바이트로
허드렛일을 했는데, 그 때 친구분의 소개로 일본 콜택시를 하게 되었어요.
2. 한국에서 학교를 졸업하시고 미국에 오게 된 특별한 이유나 혹은 상황이 근데 그게 유학 생활에 딱 맞았어요. 낮에는 학교 다니고 저녁엔 일 마치고
있으셨나요? 돌아온 아내에게 아이들 인계하고 맨하튼 월드트레이드 센터 앞에서 손님을
- 아마 누구나가 형편이 허락된다면 유학에 대한 꿈을 가질 거라 생각되네요. 태우고 다니면서 미국의 깊은 곳까지 보게 되었죠. 점점 동화되는 과정에
저는 대학 졸업 후 ROTC로 군복무를 마치고 바로 대학원에 진학했다가 만족했지만 생활에 치어 전업으로 작품 활동만 할 수 없었던 것이 많은
졸업 후 대학 시간 강사까지 정신 없이 사회생활을 이어가다 보니, 시간과 아쉬움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접을 수 없는 나의 미국
경제적 여력이 없어 넓은 곳에서 작가 생활하고 싶었던 꿈이 자연스레 점점 이주의 목표를 잊지 않고 2~3년에 한번씩이라도 개인전을 가졌는데, 그것이
잊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즈음 공수부대 복무 친구가 우연히 저의 힘든 미국 정착 생활을 견디게 해주지 않았나 합니다.
개인전을 방문하면서 잊고 있었던 유학의 꿈이 살아났습니다. 그 친구가





4. 작가님은 15년 전 쯤부터 마라톤에 종종 출전하시더라고요. 마라톤을 무엇입니까? 도로 정보를 미리 운전자에게 상징적 로고로, 또는 글로 정보를
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줍니다. 정보를 얻는 대상인 인간간의 대면 대화를 통한 정보 교환이 아닌
- 2000년대 초반 경제적 상황으로 일주일 내내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선택의 표지판이 대신하는 것이죠. 우린 길 위에서 시간을 꽤나 소비하게 됩니다.
여지가 없이 꽉 막힌 일상을 보낼 때였어요. 아침에 일할 사람을 태우고 생활에서 일어났던 사건, 일들을 차를 운전하는 동안 되생각하고 반성과
퀸즈의 Bayside Bay를 지나가고 있는데 해변에서 낚시하는 사람, 연인이나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되어 어찌 보면 도를 닦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족과 대화를 나누며 산책하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 달리는 사람이 눈에 길은 곧 인생이고, 인생 또한 길이라는 등식의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들어 오면서, 갑자기 달리고 싶은 충동이 확 들었습니다. 아마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마음이 표출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한 없이 뛰고 싶다는 6. 특별히 힘들었지만 아끼는 애증의 작품이 있으신가요. 작품에 대한 뒷
생각.... 나도 언젠간 꼭 뛰고 말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후에 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먹었던 그 장소와 센트럴 파크에서 동호인과 꾸준히 연습한 후, 드디어 2009 - 서브프라임 사태로 모든 것을 뒤로하고(잃고)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는(
년 처음으로 Albany에서 풀마라톤(Full Marathon)에 참가 나와의 싸움에서 오로지 작품만 하겠다며) 결정에 직면하면서, 가족과도 기한 없는 이별을
완주를 했습니다(그 때 제 자신 스스로에 욕을 해대는 색다른 경험을 하고 앞을 볼 수 없는 깜깜한 터널을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후에 저는 그
해봤습니다). 마라톤은 뛰는 과정에서 어느 지점에 이르면 자신과의 싸움을 결정을 내 인생에서 최상의 훌륭한 결정이었고 스스로 ‘너 멋있는 놈이었어.’
시작하고 거기에서 자신을 포기하느냐, 무너지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에 생각하며 스스로 엄지 척을 하곤 합니다.
서기도 합니다. 그 순간에 자학을 하기도 하지만, 그 자학은 자신에게 경제적인 모든 것을 잃고 실업수당과, 15여 년간 넣었던 생명보험을 해지하고
최대한의 용기를 불어넣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순간순간들이 그 돈으로 L.I.C.에 작업실을 냈어요. 20여 년을 구상해 온 것을 숙과 식의
점철되어 완주의 성취라는 희열의 맛을 보게 되는데 그 매력으로 마라톤을 시간을 제외한 밤 낮으로 6개월 반의 시간을 통해 완성했고요. 20년간
즐기게 되지 않았나 합니다. 통산 풀마라톤 12회, 하프마라톤 4회를 참가했고 구상해왔던 것을 시간과 공간의 미비, 그리고 재료들을 모으느라 미뤄 오던
지금도 자주 즐기며 달리고 있습니다. 것을 말이죠. 이 작품은 그 어느 개인전에 올랐던 작품보다 남다른 의미가
있었죠. 사실 제 작품의 메인 컨셉이 ‘자연과 문명의 대화’였는데, 높이가 12
5. 사람들은 작가님을 ‘길의 작가’라 합니다. 길에 대한 특별한 철학을 품게 된 피트, 가로 16″ 세로 16″인 이 작품이 그 컨셉을 정리해 주는 중요한 의미가
계기는? 있었죠. ‘자연과 문명의 대화’에 대한 컨셉으로 누군가 이렇게 만들면 어쩌나
- 길은 인간 문명의 궤적과 함께 편리함과 시간 절약을 위해 만들어 놓은 노심초사 20여 년을 견뎌오며 계획했었는데 그 당시 천장 높은 작업실을
문명의 산물이기도 하죠. 차의 등장으로 우리는 좀 더 빠름을 얻은 대신 갖게 되니 제일 먼저 머리를 스치는 건 시간과 공간이 준비되었으니 자연히
대화와 인간으로 갖게 되는 스킨십을 더 많이 잃게 되었습니다. 즉, 우린 반사적으로 긴 시간 구상해왔던 작품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서로의 대면 대화나 소통보다는 일방적 정보 수취자로, 또는 기계를 통한 해서 완성하니 20년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았습니다.
디지털 정보 획득으로, 옆에 인간이 없이도 24시간을 정신적, 시각적, 완성한 후 그 당시 처음 접했던 페이스북을 오픈하고 올리니, 1&9갤러리
정서적 동반자로서 지금의 기기가 함께 있음으로 해서 살아 가는데 크게 관장님이 보시고 직접 작업실까지 찾아와 개관 기념으로 초대 작가를 찾고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삶의 패턴이 만들어져 가고 있죠. 그러나 인간과 인간 있었는데 제 작품으로 하고 싶으시다고... 그 후로 이 작품은 3군데서 초대를
간의 스킨십의 결여는 또 하나의 우리가 겪는 고독과 외로움의 시간입니다. 받는 호사를 누리게 됩니다(https://www.sungmocho.com/?p=500). 이
자연스레 우린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외톨이화 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입체 작품을 만들기 전에도 컴퓨터 부품을 이용하여 평면 작품을 만들었지만
그 문명의 상징성으로 제 그림 중 <Along the LOVE Road...>라는 제목이 좀 더 깊이 있게 할 계획이었으나 아주 공교롭게도 (제 작품에서 아이디어를
붙은 작품에는 늘 낙관과 같이 교통 표지판이 그려집니다. 교통 표지판이 얻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어도 하필이면 제 작품이 페이스북에 나간 이

후로... 그 다음 부턴 아이디어 헌팅자들이 분명 존재하고 있구나...해서 사실 바깥에서의 반응은 그리 큰 영향으로 다가오진 않아요. 이유는 어차피
페이스북에 새 작품을 완성하고 바로 올리는 것은 하지 않게 됐습니다.) 대중을 의식해 탄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같이 정신적 공감을 갖는 것에
누군가 컴퓨터 부품을 가지고 시작하는 작가가 있어 그만 접어야 했고 그 만족합니다.
점은 참으로 불편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습니다.
8. 작가들은 상황, 경험 등 다양한 요소로 인해 작품의 변화가 일기도 합니다.
7. 많은 개인전과 그룹전을 하시면서 전시회를 여는 것이 익숙하면서도 매번 작가님의 작품세계가 변화되었다 느낀 시점은 언제언제인가요.
새롭지 않을까 싶어요. 매 전시회에서 느껴지는 소회는? - 아.. 이 질문에 딱 떨어지는 상황이 정말 있었어요. 첫 번째는 시골 부여
- 매번 개인전을 할 때마다 새로운 기분을 갖게 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죠. 출신으로 대학 때문에 서울에 거주해야만 했던 상황에서 도시 문명을 접하고
새로운 작품을 보이는 자리인 만큼 설렙니다. 저의 세계를 보이는 것으로 거기에서 파생되는 저의 부적응으로 평생작품의 주제가 되는 ‘문명의 대두’

였고요. 둘째는 미국으로 이주 후 도시 개발이 끝난 후 접했던 ‘자연’, 셋째는 새로운 세계를 찾는데 도움을 주려고 격려하거나 각자의 작품을 놓고 토론,
사랑 마운틴, 자연 속으로 이주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을 발표하는 장을 거쳐 서로의 세계가 어떻게 전개되며, 전달하려는 내용이
탄 ‘인간’, 이 세 번의 변화는 저의 작품세계에 늘 함께했죠. 그런데 문명, 무엇인지 서로 교환하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서로 풍부한
자연, 인간, 이 모든 것이 사실 함께 하고 있었어요. 문명을 만나고, 그 속에 넓은 세계를 형성해나갈 수 있는 기회가 많을 거라는 바램의 이야기를 나누곤
있었던 이가 인간이었고, 문명이 발달해 가는 과정에는 자연과의 충돌이 했습니다.
있었으니까요.
10.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재능이 보이는 학생과 재능은 좀 부족하지만
9. 후학 양성도 하셨는데 중요하게 여기며 지도한 부분은? 노력하는 학생이 있을 것 같아요. 작가님은 재능과 노력의 관계를 무엇이라
- 지도하는 학생들이나 가끔 교환 교수로 오는 교수분들 만나면, 최대한 이야기 하고 싶으신가요.



- 일단 예능 분야에는 최소한 어느 정도 재능은 있어야 한다는 전제 하에, - 뭐니 뭐니 해도 다양성과 변화의 속도, 그리고 새로운 것에 대한
재능은 있으나 갈고 닦지 않으면 광을 내기 어렵고, 재능이 부족하나 오픈마인드죠. 그 점이 젤 좋습니다. 그리고 도움을 청했을 때 서로 격려
연마하기를 멈추지 않으면 분명 자기의 세계는 드러난다고 전 생각합니다. 차원에서라도 기꺼이 도와주는 풍토(?) 그런 거 같아요.
재능과 노력이 겸비하면 최상, 재능은 부족하지만 노력하면 둘째, 재능
있으나 노력이 부족한 것이 셋째라 봅니다. 14. 작가님 작품 중 연필 조형물 작품은 사회적 메시지를 담으셨는데 어떤
계기로 연필 조형물 시리즈가 탄생하게 되었나요.
11. 타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한국에 대한 그리움도 있을 것 같습니다. - 가을 어느 날 밖에서 목공 일을 하게 되어 연필이 필요해 작업실로
어떠신지요? 갔습니다. 여러 개의 ‘투 고(To Go)’ 통에 꽂혀있는 그 많은 필기구 중에
- 그럼요. 형제들과 친구들... 그리고 밖에 나와보니 고국의 산하가 아름다운 우리가 흔히 쓰는 HB2 연필이 보이지 않았어요. ‘연필이 왜 없지... 왜 없는
금수강산 맞아요. 모두 보고 싶고 그립죠. 그 그리움으로 탄생한 작품이 거야?’ 하며 있을 만한 곳을 다 뒤져도 없었습니다. 순간 ‘아 그랬구나...
있어요. ‘...with Full Moon’ series 작품들이요. 사실 한국에서 작품 생활 전문가용 연필이 아닌 단순 필기용의 연필이 이미 필요치 않은 시대에 와
할 때는 해는 그렸어도 달이 그려진 작품은 없더라고요. 아마 그리운 고향, 있구나...’를 감지했어요. 동시에 연필이 갖는 여러 의미 중에 ‘연필=문(언론)’
고국을 그리는 마음이 작용하지 않았나 합니다. 달과 해 만큼은 지구 어느 이 연상되었고 작금의 세상사에 대한 많은 의미를 갖겠다 싶어 늦가을 바로
지역에서나 한결같이 보여지는 대상이니까요. 게다가 정착 과정에 밤에 일 연필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하는 시간이 많아, 자연히 달을 많이 보게 되다 보니 그 마음을 표현하지 문명의 발달로 아날로그 시대를 뒤로 하고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급속한
않았나 합니다. 또한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사랑 마운틴도 한국적 정서가 문명의 변화로 기존에 친근히 여기던 물품에서부터 일의 터전에까지 전자화,
묻어날 수 밖에 없는... 정자도, 장독도 있고, 산엔 어렸을 적 할머님 따라 AI 로봇화로 많은 것이 대체되고 있는데, 그러한 극적인 상황의 상징으로
밤 따러 갔던 추억을 가지려 밤나무도 심었으니, 한국적 정서가 자연스레 연필을 선택, 조형물화 하게 된 것이죠.
보여진다고 방문자 분들이 말씀들 하십니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 미래사회를 불안한 시각으로 예견한 것이 어쩌면
작금의 사태와 너무나 흡사함을 느꼈습니다. 엄청난 정보의 날조, 왜곡, 음모
12. 작품 활동을 하다 보면 작품이 잘 풀리지 않을 때도 있을 것 같은데요. 등이 판을 치는 세상이 바로 현 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하시는지요. 더욱이 뉴미디어를 통한 가짜 뉴스의 횡행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이나
- 정말 그럴 때 있어요. 이젤 앞에 놓인 요 녀석 참 안 풀리네... 싶어서 집단의 창궐은, 국가와 사회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은 개인을 더욱 복잡하게
지나가다 보기도, 앞에 앉아 기 싸움이라도 하듯이 뚫어지게 쳐다보기도, 만들고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더욱 불편한 스트레스를 갖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안되면 옆으로 재껴 놓습니다. 다른 작품을 하다가 풀리기도 하는 휴식 없는 인간의 순수한 호기심의 탐구와 끝없는 욕망, 욕심에 양념된
행운도 있었지만, 정말 정말 안 풀리는 경우도 있었는데 어느 날 취한 상태로 탐욕의 결과물로 이루어진 그 미래의 오늘, 늘 옆에 있던 친근한 물건이나
과감히 지워버릴 맘으로 하다 ‘하~ 그 과정에 풀리기도 하는데...’ 하는 소중한 관계의 사람들 - 늘 가깝게 여겼고, 소중하게 생각했고, 가까이 두고
마음에 그 동안 많은 시간을 투자해 그린 시간이 아까워 용기를 내지 못했던 만졌고, 보았던 그것이 물건이었고 사람이었던 간에 - 의식 또는 무의식 중에
것이 아닌가 하고 쓴 웃음과 회심의 미소가 한 얼굴에 내 보이기도 했습니다. 잊기도, 잃기도 한 것들을 상기하고자 했습니다.
나의 작품 ‘The Last Pencil on Earth’를 통해, 우린 늘 그런 주변에 마음과
13. 뉴욕을 무대로 활동하시는데 뉴욕의 매력은 어떤 것이라고 작가님은 두 눈을 줄 여유가 없는 부지불식의 현상에 대한 불안정한 위치를 자각하며,
생각하시는지요? 현재의 모든 우리 주변의 것에 최대의 사랑을 느끼고 주고 받는 그런 삶을

구가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그래서 부제로 ‘있을 때 잘 해라(Do it 외롭거나 고독하거나 하는 것에는 체질상, 직업상 느껴질 틈이 없었지만,
well when it is being).’를 달게 됐죠. 많이 마음이 불편한 상태로 지냈습니다. 그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입체
또한 인간의 잊혀져 간 다양한 삶의 도구와 직업 등, IT와 AI가 발전함에 작품인 연필 작품을 열심히 탄생시켰습니다. 인간으로 너무 날뛰는 것에
따라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거나 역행 할 수 없는 중에, 선택지 없이 슬그머니 대한 자숙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슬프게도 이 기간 동안 제 어머니를 비롯
우리의 일상에 들어와 온 무엇들이 있습니다. 그 무엇들의 출현이 적응과 주위의 많은 분들이 유명을 달리 했습니다.
부적응의 시간에 묻어가고 있죠. 그것의 상징으로 ‘The First Electronic Pen
on Earth’를 만들었습니다. 16. 기억에 남는 감상자가 있으실까요?
‘연필’ 하면 당연히 길게 직선으로 뻗은 모양을 연상합니다. 지구의 마지막 - 개인전을 할 때마다 작품을 콜렉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제 작품에 많은
연필을 기획하고 작업하면서 자연스레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되었고, 공감을 주시는 분인데, 저의 녹록치 않았던 이민 생활에 많은 힘이 되었고,
연필이 마땅히 ‘직필’이 되야 하는 것처럼 언론은 사실만을 전해야 하고 지금도 되는 분입니다. 전시장에 들어와 그저 한 번 휙 둘러보는 자세가
언론인도 양심에 어긋나지 않은 취재보도를 해야 하는 게 맞죠. 하지만 아니라, 그림 하나하나 앞에서 시간을 갖고 정독하듯 보시고 난 후 이런 저런
오늘날 많은 언론이 직필보다는 ‘곡필’이 되어 권력과 금력에 타협하고 감상 후기를 말씀해주십니다. 그럼 저는 “그렇습니까?” 합니다.
진실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부정과 부조리에 둘러싸여 부패한 언론이 있는가
하면 천연덕스럽게 가짜 뉴스를 생산하는 언론도 있고요. 특히 1인 미디어 17. 교류하는 작가분이나 영감을 주고 받으며 서로 영향을 주는 분이
시대를 맞아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전파되는 가짜 뉴스의 폐해는 이루 있으실까요?
말할 수 없습니다. 비단 이 같은 현실은 한국만이 아니라 내가 사는 미국도 - 없는데... 아... 그러나 어떠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그림을 그리는
마찬가지이고 전 세계적인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연필의 재료를 구하면서 것에 게을리 하지 않고 혼을 불사른, 누구나 아는 그 작가의 정신을 높게
나무 고유의 다양한 모양들이 눈에 들어왔고 이 같은 현실을 통렬하게 풍자할 삽니다. 아시죠? ^^
수 있어 작가로 새로운 사회 현상을 작품으로 보일 수 있어 좋았습니다.
18. 조성모 작가가 아닌 작품 감상자로서 잊을 수 없었던 전시회나 작품은
15. 몇 년 전 코로나로 전 세계가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들 두문불출 무엇인가요.
지내는 동안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관, 생활방식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 제가 학창시절 자주 미국 문화원을 자주 들리곤 했는데, 그때 문화원
작가님은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전시공간에서 미국의 추상 표현주의 화가인 헬렌 프랑켄탈러(Helen
- 완전 고립무원의 시간이었지만 한편으로 팬데믹에 대처하는 미숙한 대처와 Frankenthaler, 1928 ~ 2011)의 작품전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작품 중 한
지도자의 가벼움 등 미국 정세에 많은 실망감으로 여러 편의 칼럼을 쓰기도 소품을 감상하던 중, 아주 작은 소품 한 작품에 빨려 들어가는 착각을 하게
했죠. 저야 산속의 생활에 익숙해 있고 하루 종일 혼자 있어도 할 일이 많아, 되었는데, 사람의 감동을 주는 데는 작품의 크기에 관계가 없다는 경험을

사진출처: Google



하게 되었습니다. 우린 때로 공간에 부끄러운, 빈 깡통 소리 내는 작품을 볼
때도 있곤 합니다. 크기로 뭔가를 노리는, 내용 없는 캔버스가 걸려 있는 거죠.

19. 앞으로 작업하실 작품에서 이야기 하고 싶은 테마가 있으세요?
- 제 주요 작품테마는 Along the LOVE Road, ...with Full Moon, The Last
Pencil on Earth로 아마 제가 힘이 남아 있을 때까지 지속되리라 생각됩니다.
평면 작품에 있어선 앞으로 Sarang Mountain과 제가 사는 지역의 풍경이
좀더 자주 드러나게 될 거 같아요.

20. 작가님의 작품세계를 구축하는 기본적인 헤게모니는 무엇인가요.
작품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과 연관 지어 말씀해 주셔도
감사하겠습니다.
- 자신과 바깥 세상과의 타협이 아닌, 진정 자신의 내면 속에 끝없이
분출되는 세계를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라 생각하죠. 여기서 타협이란 그
작품으로 어떤 물질적 댓가와 외적인 요인의 이득을 계산해 넣는 의도를 말
한 것이지요. 순수 예술 작가라 함은 적어도 작업에 임할 때, 출발점 자체에
그 어떤 계산이 배제된 순수한 창작 욕구가 있는 작가를 의미하겠죠. 이 점은
사실 작가 간에도 많은 논쟁 거리이기도 합니다. 답이 없지만 어디까지나
작가 자신의 선택으로 예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관점이 그 작가의
작품세계에 고스란히 투영된다 봅니다. ‘이렇게 그리면 사람들이 좋아하겠지,
잘 팔리겠지, 떠오르는, 주목 받는 작가가 되겠지...’ 하는 것이 아니라요. 물론
순수 예술분야의 모든 작가가 그렇게 생각하며 작품에 임한다 생각합니다.
착각이죠. 참 아이러니하게도 그 착각이 작가를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니
자신이 걷는 길이 어떤 나르시시즘의 늪에 빠진 거 같다는 것을 알고,
모르고를 떠나 각 작가는 자신의 세계에 최고의 천재적 능력을 발휘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 착각이 위대한 예술가를 만들기도, 이름 모를 작가로 생을
마감하게도 합니다. 근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제일 중요한 것이 바로 ‘
혼’입니다. 여기서 혼은 작가가 인생에서 나의 세계를 찾아가는, 절대적으로
외부의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은 순수 열정의 결정체로서의 개성 있는
작품 세계를 일구어 내는 과정에서의, 그 열정과 고독이 응집되고 정제된
정신 에너지를 말합니다. 그 혼의 에너지가 작품에서 자체 발광될 때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어들이는 강한 흡입력을 갖게 되죠. 저 같은 경우엔 시대를
살며, 저와 세상사의 현상들과의 정신적 스킨십에서 어떻게 느끼고, 보고,
생각하는가를, 제가 가진 재능으로 시각적 요소를 통해 평면, 입체, 설치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표현하려 합니다.

21. 마지막으로 그림을 사랑하고 하고, 또 하고 싶어하는 분들께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실까요?
- 작가는 그 시대의 현상을, 자신만의 통찰력 필터를 통해 시각화 하는 능력으로, 그들만의 세계를 드러냅니다. 바깥 세상의
이해를 요구하지도 보채는 일도 없어요. 시대를 동반한 정신적이고 감성을 아우르는 독특한 철학을 내세우며 자신의 세계를
표출할 수 밖에 없어서 나온 결과물입니다. 많은 사람이 공감을 하고 일약 유명 작가가 되기도 하고, 반면 비즈니스 하는 거래의
그물망에 올려져 갖은 포장과 해석, 그리고 거기에 경제의 논리도 가세해 올바른 감상을 저해하기도 하죠. 그래서 감상자는
자기만의 시각으로 감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님과의 뜻밖에 만남에 소중한 인연임을 느끼고 브런치 매거진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하고 소중한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드리고 사랑마운틴의 정기가 미국 전역으로 뻗쳐 나가길 기원하겠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브런치 매거진 편집부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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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나무“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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