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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 뗀 새 사람 마지막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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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by Design_appletree, 2026-01-08 20:23:09

<새사람>no.05

쉼표 뗀 새 사람 마지막호

51 생각해요. 그래서 ‘이걸 내 문제로 생각하는 사람들만 모이세요’ 했을 때보다 ‘이거 내 문제는 아니지만, 우리 모두가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도 아무 것도 안 할 겁니까?’ 이런 얘기를 건네고 싶었어요. 새만금은 오래된 이슈이고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잖아요. 정부나 법원에 하고픈 말도 같아요. 이미 다 알고 있잖아요. 잘못된 사업이라는 걸. 그런데 왜 아무 것도 안하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으려고 하는건가요? 내 문제가 아니어서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다들 내 문제라고 생각해서 오는 건 아니에요. 내가 이런 상황을 알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너무 답답해서, 뭐라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이런 마음으로 오시는거라고 생각해요. ‘아 이 사람들이 뭐라도 해보겠다고, 이렇게 전북땅에서 서울까지 걸어가고 있는데 가서 물이라도 한 잔 줘야하지 않을까’ 다들 이렇게 생각하세요. 저는 그 마음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이런 마음을 우리가 소중하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아야죠. 미군기지 하지만 새만금은 우리의 삶과 깊이 연결되어있는 문제는 맞아요. 새만금 개발이 어느 지역에 건물 하나가 들어서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환경 문제도 있지만 미군 기지와 관련된 문제도 있어요. 새만금 신공항은 군산 공항 바로 옆에 생기는 공항이에요. 기존에 군산공항은 군산 미군기지 활주로를 빌려서 사용하는 공항이고요. 군산 지역은 1940년에 일본군 기지가 들어선 이후로 일본군이 떠난 다음 계속 미군 기지로 활용되고 있고 점점 더 확장하고 있죠. 군산의 거의 모든 해안선을 기지가 점령하고 있어요. 지금 군산 공항은 제주로 가는 항공편 3개만 뜨고 있어요. 비수기에는 그마저도 운행을 줄일 정도로 수요가 별로 없는 공항이에요. 연간 50억 정도의 적자를 내고 있어요. 그런데 이 공항 바로 옆에 1.3km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국제공항을 짓겠다고 말하고 있는 거예요. 이들이 개발을 주장하는 이유 중 하나는 기존 군산 공항을 미군기지와 함께 쓰고 있으니 독립적인 운영을 할 수 없다는 것인데요. 어차피 기존 활주로와 연결하는 계획을 갖고 있고 활주로를


52 공유하는 것은 마찬가지에요. 관제권이 결국 미군들에게 있으니 독립적인 운영은 핑계에 불과하죠. 수라 갯벌은 아이러니한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수라의 개발이 미뤄진 이유는 미군 기지 때문이에요. 미군 기지가 바로 옆에 있어 개발 계획이 세워지지 않은 유보 용지라는 이름으로 남아있어요. 나중에 미군들이 가져갈 수 있겠다는 예상도 하고 있어요. 생명력, 존경2007년도 즈음 개발이 진행되는 와중에 계속 문제가 생기니까 해수 유통이 부분적으로 확대되는 시기가 있었어요. 이 시기에 남수라부터 안 쪽으로 걸어들어가면 제 시야로 다 담을 수 없는 넓은 땅이 온통 조개 무덤이었어요. 죽은 조개가 하얗고 빼곡하게 가득 찬. 눈이 부셔서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새하얀 조개 무덤을 목격했어요. 이후 시민생태조사단이나 많은 분들이 수라를 찾으며 포기하지 않고 계속 관찰하고 기록해왔지만 그당시 저는 회복될 거라고 믿지 못했어요. 하얀 조개 무덤을 잊을 수가 없었죠. 그런데 그 수라에 다시 생명이 찾아오고, 스스로 회복력을 갖게 되는 걸 보았을 때 경외심을 느꼈어요. ‘놀랍다’를 넘어서 압도적인 존경을 바치고 싶은 정도였어요. 그 마음을 첫날 출발 선언문에 적었던 것 같아요. 우리 인간들도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는 어떻게든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애쓰면서 살아가잖아요. 수라에 가도 그런 걸 느끼게 되는거죠. 그리고 어떻게 보면 인간보다 훨씬 더 강인하다고 느껴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게 200평 아파트에 살다가, 1평 공간에 들어가서 살아 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이 제대로 살 수 있을까요? 얼마나 억울하고 힘들겠어요. 지금 새만금에 살아남은 생명들은 다 그런 상태라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 갯벌이었어요. 그런데 인간들이 함부로 부순거잖아요. 갑자기 쫓겨나 말도 안되게 좁은 공간에서 살게 된거잖아요.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거기에서 살고 있는거죠. 이런 생명력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대체 뭐가 소중한걸까요. 우리가 무엇을 소중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요? 우리가 수라 갯벌에 있는 수많은 존재를 소중하게 볼 수 있는 사회라면, 인간도 그만큼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는 사회가


53 될 거라고 생각해요.결국 원점으로결과가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진다면 항소를 하고 돌아오겠지만 화가 많이 나겠죠.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안되면 이 다음은 어떻게 해야할까. 그래도 길을 떠나오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걸어오면서 엄청 많은 사람들을 만났잖아요. 20년 전에 새만금 활동하며 만났던 사람들도 다시 만나고, 새롭게 새만금에 관심 갖게 된 사람들도 만나고…. 여전히 기억하고 있어서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에요. 결과가 어떻든 저희는 다시 새만금으로 돌아가고 이렇게 갱신되고 이어진 인연들과 또 무언가를 하겠죠. 그게 힘이 될거라고 생각해요. 잘 모르겠어요. 마음으로는 벌써 다 이긴 것 같은데. 이기면? 기쁘겠죠. 물론 정부 쪽에서 바로 항소를 할테고 그럼 또 바빠지겠지만. 신나게 바쁘겠죠. 행진을 떠나오기 전에 수라에 들러서 이 풍경을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지 생각했어요. 머리 위로 황새가 큰 날개를 펼치며 쫙 날아주는데 출발선에서 응원을 받는 기분이었어요. 아마 수라에 신공항이 지어진다고 해도 이들은 새만금 어디선가 살아가긴 하겠죠. 새들도 이렇게 애써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가 포기하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이 문제를 직면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어떤 모습으로든 살아갈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결과가 어떻든 개의치 말자고 저에게 계속 주문을 하고 있어요. 우리는 포기 하지 않고 계속 직면하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고. 그게 이 길을 함께 걷고, 환대해 준 사람들에게 약속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거 말고는 이 많은 은혜를 갚을 길이 없겠죠. 어렸을 때 봤던 것들이 여전히 마음 속에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반 포기 상태였어요. 너무 다쳤으니까. 새만금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고 해야할까요. 너무 참혹했으니까. 그래서 2002년에 처음 새만금 반대 운동을 접하고 20년을 돌아서 다시 이 자리로 오게 된 것 같아요. 결국 원점으로. 인터뷰 : 설해정리 : 소산


54 Ⓒ이재각


55 Ⓒ이재각


56 Ⓒ노순택


57 Ⓒ오동필


58 Ⓒ노순택Ⓒ오동필


59 ⒸTONY


60 Ⓒ 오동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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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일러스트 Ⓒ오방오리


63 the end of the road새


Ⓒ 고사리INTERNEW


새 사람zealandview


66새,사람행진의 상징이자 깃대종은 큰뒷부리도요. 전북지역에서는 쫑쨍이라고도 부르고, 마오리들은 쿠아카 (Kūaka), 알래스카 유픽(Yup’ik) 사람들은 츄헤르팍(Cugerpak)이라고 한다. 긴 부리로 바람을 가르며 13000km를 쉬지 않고 나는 새. 유픽의 터전 툰드라에서 번식하고, 마오리어로 ‘긴 흰 구름의 나라’ 라는 뜻의 아오테아로아 (뉴질랜드)에서 지내다가 한국을 비롯한 황해 연안에서 배를 채우고 다시 알래스카로 떠난다. 따라서 큰뒷부리도요의 안녕은 여러 지역의 관심사이다. 특히 마오리에게 쿠아카는 조상새라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타키리랑기 스미스를 비롯한 마오리 조각가들은 20년전 새만금 방조제 건설에 반대하며 한국을 찾고 최병수 작가와 예술적 교류를 했다. 수라갯벌의 큰뒷부리도요이자 황아누이 강의 쿠아카인 이 새는 두 문화를 연결한다 . 갯벌이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듯, 황아누이 강은 그 공동체의 정체성을 품고 흐른다. “Ko au te awa, ko te awa ko au (나는 강이고, 강은 나다)” 라는 표현은 이 관계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는 황아누이 강을 법적 인격체로 인정한 아오테아로아 뉴질랜드의 법률 속에도 반영되어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인연으로 “황아누이1 쿠아카 공동체”와 연락이 닿았다. 20여년전 방조제 건설때 한국을 찾았던 마오리분들과 같은 지역 출신이었다. 처음에는 큰뒷부리도요에 대한 호기심으로, 나중에는 쿠아카의 서식지를 지켜달라는 서한을 부탁드리면서 수라에서 황아누이까지 화카화나웅아탕가: 친밀함 쌓기에 대한 고사리와 빌리의 대화국제연대메시지 _ 고사리


67From Sura to Whanganui: A Conversation between Billy and Yoonha on whakawhanaungatanga and building intimacyThe symbol and flagship species of the Birds and People’s March is “Keundwitburidoyo”, the bar-tailed godwit. In the Jeonbuk region, it's also called \"jjong-jjaeng-i,\" in Māori it's \"Kūaka,\" and in Yup'ik it's \"Cugerpak.\" A bird that cuts through the wind with its long bill, flying 13,000 km non-stop. It breeds in the Alaskan Yup'ik homeland tundra, spends time in Aotearoa (New Zealand) - meaning \"land of the long white cloud\" in Māori - then stops to refuel along the Yellow Sea coast including Korea before departing again for Alaska. Therefore, the wellbeing of the bar-tailed godwit is a concern for multiple regions. Especially for Māori, Kūaka holds special meaning as an ancestral bird. About 20 years ago, several Māori carvers including Takirirangi Smith came to Korea to oppose the Saemangeum seawall construction and collaborated with artist Choi Byung-soo. This bird – Keundwitburidoyo of Sura tidal flat and the Kūaka of the Whanganui River estuary - connects two cultures. Through a chain of connections, I got in touch with the \"Whanganui Kūaka Collective.\" They were from the same region as the Māori people who visited Korea 20 years ago during the seawall construction. Just as tidal flats hold significance for us, the Whanganui River lies at the heart of their community’s identity. The prover “Ko au tew a, ko te awa ko au” (I am the river, and the river is me) expresses this relationship and is embodied in Aotearoa New Zealand legislation that recognises the Whanganui River as a legal person. Initially, I contacted the Kūaka collective out of curiosity about the bar-tailed godwit, then later asking


68이들과 소통했다. 10월에는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의 정희정 박사님과 함께 황아누이에 가서 이들이 주관한 10일간의 쿠아카 와낭아(Wānanga 워크샵) “Pae Kuaka”에 참여하기도 했다. 날개 달린 생명과 그들의 서식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통하고, 억압당한 역사를 공유하는 우리. 하지만 인사법부터 시작해서 서로 알아가야할 것 또한 많았다. 설레는 자리었지만 수라를 위해, 새만금 신공항 백지화를 위해 애쓴 더많은 분들과 함께 가지 못해 이상한 죄책감과 죄송함이 매일 올라왔다.하지만 앞으로 우리의 관계는 이어질 것이고 계속해서 서로 만날 일도 생겨날 것이다. 그렇기에 앞으로 한국의 새,사람들과 마오리 쿠아카 공동체를 비롯하여 큰뒷부리도요를 사랑하는 여러 사람들의 관계를 끈끈하게 하는데 쓰일만한 점들을 적어 나눈다. 아래는 황아누이에서 쿠아카 공동체 일원인 빌리 박사님과 나눈 이야기를 각색해 대화 형식으로 썼다.고사리: 안녕하세요 빌리. 이번 새,사람행진에 마오리의 연대가 큰 힘을 주었어요. 특히 빌리가 속한 황아누이 쿠아카 공동체의 서한은 많은 분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황아누이 쿠아카 공동체는 어떤 분들이라고 소개하면 좋을까요?빌리: 황아누이 쿠아카 공동체는 쿠아카의 고유한 습성과 서식지를 보호하기 위한 풀뿌리 운동을 지역과 전세계로 확산하기 위해 노력하는 황아누이 지역의 비공식 모임입니다. 핵심멤버 중 일부는 황아누이 마오리 세 명이에요. 갤러리 큐레이터인 세실리아(Cecilia Kumeroa)와 최근 동화작가로 데뷔한 우리들의 이모, 타냐(Tania Te Huna), 대학에서 원주민 공동체가 이끄는 환경 정책을 가르치는 저 빌리(Billy van Uitregt)입니다. 하지만 이 모임은 구성원들이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공동체의 활동에 기여하는 느슨한 네트워크에 1 Whanganui는 한글로 다양하게 표기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최대한 지역 마오리 발음에 가깝게, 그리고 잃어버렸던 ‘H’ 를 되찾은 역사를 기념하는 의미로 ‘황아누이’라고 표기했다. Whanganui는 과거에 ‘H’ 없이Wanganui로 쓰였지만 마오리의 언어적 권리를 되찾는 과정에서 ‘H’를 회복하였다. 일반적으로 ‘Wh’는 다른 지역에서 ‘F’ 발음에 가깝게 소리 나기도 해 “F팡아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황아누이 마오리들은‘Wh’를 숨을 불어내듯 부드럽게 발음하여 “왕아누이” 혹은 “황아누이”라고 한다. 황아누이 공항 표지판에는 한글로 “왕가누이”라고 되어 있다. 이렇게 발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표기법에 대해 함께 고민해주신 김나희님께 감사드린다.


69them for letters to help protect Kūaka habitat. In October, I went to Whanganui with CHUNG Hee-Jung from the Saemangeum Citizen Ecological Investigation Group and participated in the 10-day Kūaka wānanga (workshop) \"Pae Kuaka\" that the collective organized. We connected through our shared love for the winged beings – whether we call them Keundwitburidoyo, Cugerpak, or Kūaka - and through our shared histories of oppression. It was exciting, yet a strange guilt weighed on me daily – having joined the movement just a year ago, I wished the many people who had dedicated decades to protecting Sura could have been here with us. However,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regions will continue and we'll keep meeting each other. So, I’m sharing some reflections that might be useful as we continue building the relationship between Korea's bird-people and the Māori Kūaka Collective. Below is a conversation I had with Dr. Billy van Uitregt, a member of the Kūaka collective in Whanganui, adapted into dialogue form. – Yoonha Yoonha: Hello Billy. The solidarity from Māori gave tremendous strength to this Birds and People’s March. Especially the letter from the Whanganui Kūaka Collective you belong to, asking us to protect kūaka habitat, moved many people. Thank you once again. How would you introduce the Whanganui Kūaka Collective? Billy: The Whanganui Kūaka Collective is an informal group of us from Whanganui working to grow local action toward protection of Kūaka habits and habitat locally and around the world. Some of the core people are three Whanganui Māori2: Cecelia Kumeroa, a gallery curator; Tania Te Huna, also known as \"aunty Taans\" who recently became a book author; and myself, Billy van Uitregt, who teaches Indigenous community led environmental policy at university. But, the group is more of a network 2. There are several Māori tribes and sub-tribes that associated with the Whanganui River often referred to broadly as Whanganui iwi.


70더 가깝습니다. 황아누이강을 찾는 쿠아카는 30명 정도 밖에 안되는데 저희는 “AJD”라고 불리는 수컷 한 명에 집중하고 있어요. 연구자들이 그 새에 AJD라고 적힌 가락지를 달아줘서 그렇게 불려요. 황아누이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진작가 폴(Paul Gibson)은 2008년부터 매년 AJD를 찍고 있어요. 같은 날, 같은 시각에 AJD가 알래스카와 황해로 떠나는게 신기해서요! 폴은 AJD에 관한 책을 펴냈고, 이를 공유하며 공동체의 쿠아카 사랑도 커졌어요. 타냐는 AJD에 관한 마오리어/영어 이중언어 동화책을 쓰기도 했죠. 떠나는 AJD를 보기위해 매년 3월 25일이 되면 많은 이들이 황아누이 강 하구를 찾아요. 또 AJD와 친구들이 지내는 월동지, 번식지와 중간기착지의 큰뒷부리도요 커뮤니티와도 매년 워크샵을 만들며 교류하고 있죠. 알래스카 파이뮤트 유픽(The Paimiut Yup'ik of Alaska), 태즈메이니아 퍼스트 네이션 대표단 (First Nations Tasmanian representatives), 중국 베이징 산림대학, 그리고 한국 새,사람행진단까지 세계적으로 큰뒷부리도요 공동체가 커지고 있어요.고사리: 황아누이에서 일주일 남짓 보내면서 내내 셰이 로건(Shea Rogan)과 타냐이모가 만든 쿠아카 노래를 부르며 춤 춘 것이 기억에 남네요. 정희정 선생님과 한국어로 개사도 했지요 “큰뒷부리도요들이-쿠- 쿠아카”. 노래를 구성지게 잘 부르는 빌리가 한국어로 따라 불러줘서 너무 고마웠어요. 큰뒷부리도요가 멀리 떨어진 곳을 이어주다보니 한국에서도 마오리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요. 우리 행진단에서 한국 문양과 마오리 문양을 섞어 디자인한 멋진 포스터도 있었지요. 마오리 문양을 넣어도 되는지 허락을 구했더니 조심스럽게 곤란하다는 답변을 주셨지요. 아래는 보내주셨던 답장의 일부입니다:“(…) 저는 이 분야의 전문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조심스럽게 접근하여 마오리 디자인 요소가 사용된 부분은 제거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작업은 저희의 카우파파(kaupapa 원칙)에 의해서, 적합한 사람들과의 협력적인 디자인 과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예를 들어, 세실리아는 유픽(Yup’ik) 사람들과 직접 협력하여 유픽 디자인 요소를 공동 디자인 과정에 반영한 바 있습니다. 저희의 접근 방식은 먼저 화카화나웅아탕가 (whakawhanaungatanga), 즉 긍정적인 관계 형성을 중요시하며, 그 이후에 이러한 협업 작업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 10월에 열리는 여러 행사와 워크샵을 통해


71of people who make their own contributions to the work of the collective. Only about 30 kūaka visit the Whanganui River but our work is focussed on one individual male AJD, called so because of the leg tag he was given in 2008 by researchers. Whanganui based photographer Paul Gibson has been following AJD every year since 2008 as AJD has returned to the the Whanganui estuary departing for the Yellow Sea and Alaska on the same day, at the same time every year! Paul published a book with about AJD, and sharing this grew the community's love for kūaka. Aunty Taans even wrote a bilingual Māori/English book about AJD. Every March 25th, many people now attend the Whanganui River estuary to see AJD depart. We also create annual workshops to connect with bar-tailed godwit communities in the wintering grounds, breeding sites, and stopover sites where AJD and his friends spend time. The Paimiut Yup'ik of Alaska, First Nations Tasmanian representatives, Beijing Forestry University in China, and now Korea's Birds and People’s March - the kūaka community is growing globally. Yoonha: I remember spending just over a week in Whanganui, constantly singing and dancing to the kūaka song that Shea Rogan created with aunty Taans. Hee-Jung and I even adapted it into Korean: \"keundwitburidoyodeuli - Kū- Kūaka.\" I was so grateful when you, Billy, who sings so well, sang along in Korean and also encouraged all participants to use the unique names for kūaka in their own languages. Because the keundwitburidoyo connects distant places, there was great interest in Māori in Korea too. Indie from our group created beautiful posters mixing Korean patterns with Māori patterns. When we asked permission to include Māori patterns, you cautiously said it would be difficult. Could you explain that situation a bit more? Here's part of the email you sent back then: (…) I am definitely not the expert on this but would simply act cautiously and remove any adapted Māori design elements. I think this is the kind of work we are growing in our kaupapa to be done through collaborative design processes by the right people. For example, Cecelia incorporated Yup’ik elements into collaborative design processes with Yup’ik people. Our approach is to engage in whakawhanaungatanga (building positive relationships) first and then to engage in this kind of collaborative work. We appreciate the sense of urgency and


72화카화나웅아탕가와 공동디자인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입니다.”빌리: 저에게 화카화나웅아탕가란 서로에 대한 상호 이해와 도덕적 책임으로 이어지는 친밀함을 쌓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관계 맺음의 과정은 식민 정착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마오리가 연구자들을 경험해 온 아오테아로아 (뉴질랜드)에서 특히 중요합니다. 역사적으로 마오리 연구는 연구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식민주의적 억압의 도구로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그 맥락을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날에도 연구는 여전히 마오리를 착취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관계 속에서 친밀함과 돌봄의 윤리를 형성하는 것은 그 역사를 이해할 뿐만 아니라 비착취적이고 윤리적인 책임감을 세우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다만, 이것은 제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며 마오리 전체의 관점을 대표하는 것은 아닙니다.고사리: 최근에 생긴 황아누이 쿠아카 공동체는 수라가 어디인지도, 20년전 마오리 조각가 타키리랑기 스미스씨가 한국을 찾았었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을텐데 친밀한 관계를 우선시하는 배경을 듣고나니 왜 거절하셨는지 이해가 가네요. 개개인은 섞인 문양을 보고 멋지다고 생각했을 수 있지만, 규모가 작아도 마오리의 이름을 건 단체라서 조심스럽게 접근하신거 같아요. 또한 제가 연구자라고 밝힌 뒤 허락을 구했기 때문에 더 경계하셨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열린 마음으로 친절히 답변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10월에 저희가 더 긴밀한 교류를 하고 나서 달라진 점들이 있나요?빌리: 함께한 시간의 가장 중요한 성과 중 하나는,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작업을 더 잘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이전에는 아마 언어의 장벽 때문에 장승이 한국의 전통 목각 예술이라는 사실을 놓친 것 같아요.수라 영화 속 장승을 보면서 타키리랑기 작가가 조각한 포우(Pou 마오리 장승)을 모방하려는 시도일지도 모른다고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장승이 오랜 전통을 가진 한국의 조각문화라고 설명해주셨을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장승이 마오리의 조각 전통인 화카이로(whakairo)와 문화적 대화를 나누는 독자적인 전통이라는 것을 느꼈고요. 그 덕분에 우리 문화간의 협업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성숙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게 되었고, 각자의 문화와 지식 전통을 되살리려는 노력 속에서 공통된 서사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문화와 저항 방식이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는 점이 정말 중요하게 다가왔습니다.


73think these importance of people across the global flyway can be represented well without pre-empting the outcomes of collaborative design processes. In October, the week is purely there for whakawhanaungatanga and collaborative design throughout a series of events and workshops. (…) Billy: For me, whakawhanaungatanga is about building intimacy that leads to reciprocal understanding of and moral responsibility toward each other. This work is particularly important in Aotearoa because of the settler colonial context through which Māori experience research and researchers. Historically, research has been used as a colonial tool of oppression, whether intentional by researchers or not, so it’s incredibly important to be aware of that historical context. Even today, research is often extractive of Māori. Building intimacy and an ethic of care in the relationship helps to not only understand that history, but build the ethical accountability to not be extractive. This is just my view though, and should not be understood as the Māori perspective. Yoonha: Right. After hearing your explanation, I can better understand why the collective needed to decline our request. The Whanganui Kūaka Collective is quite new, and they had only recently learned about Sura and that Māori carver Takirirangi Smith visited Korea 20 years ago. Given that history and context, it makes sense that you approached the proposal with care. While individual members might have simply appreciated the hybrid design, as a Māori collective, even as a small organisation, it was important to consider the deeper implications. I also realise that my role as a researcher making this request may have added another layer of caution. I appreciate your openness in helping me understand this better. Did things change after we spent time together in October? Billy: That was an incredibly important outcome of our time together, for us to gain a better understanding of the work that was being done in Korea. I think it was the language barrier that we missed the fact that jangseung is a Korean carving tradition that was collaborating with whakairo - the Māori carving tradition. From our viewing of the Sura film, we were worried that the jangseung were an attempt to copy the pou that Matua Tākirirangi had carved. We were so relieved when you clarified in your response that jangseung is a Korean carving tradition of its own. That made


74삼보일배에 대해 배우면서 한국의 공동체가 환경 보호와 지역차원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정의하는데 얼마나 깊은 열정과 헌신을 가지고 있는지 깊이 이해할 수 있었어요. 이러한 정신은 마오리의 시위와 저항방식 특히 히코이(hīkoi 평화행진)에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고사리: 비슷한 점이 많은 것은, 아마도 고유한 문화를 억압당한 경험을 공유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마오리 할머니들께서 어렸을때 마오리어를 배우고 싶은데 부모님이 못배우게 하셔서 나중에 아이를 낳고 따로 배웠다고 하신걸 들었어요. 한국 일제강점기 때를 말씀드리니, 한국 의병들의 항일 투쟁을 소재로 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재밌게 보셨다고 몇 분이 말씀해주셨어요. 황아누이에서 케이팝과 한국 드라마가 인기있는 것도 끈기있게 부조리에 저항하고 성장하는 서사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빌리와 릴리가 요리 중에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골든을 부르기도 하고, 황아누이 강 권리를 찾기 위한 운동을 평생 해오신 방탄소년단 민윤기 팬, 마리아나는 쿠아카가 거센 바람이 불어도 다시 자기 행로를 찾듯이 방탄소년단도 어려움을 이겨내고 겸손하게 늘 노력하며 자기 길을 간다고 언제나 방탄을 응원할 것이라 하셨던 게 기억에 남아요.빌리: <수라> 영화를 보고, 같이 시간을 보내며 한국도 식민의 아픔을 겪었다는 얘기를 듣고, 또 정희정님의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에 관한 강의를 경청하고 나니 한국 상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어요. 저는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화카화나웅아탕가를 쌓는데 필수라고 생각해요. 우리 마을회관과 같은 머라이(Marae)는 이에 알맞은 공간이죠. 먹고 잘 수 있는 시설이 완비된 넓찍한 곳이에요. 이곳엔 숨통이 트이는 여유가 있어요. 서두르지 않고 관계를 쌓을 수 있죠. 다른 언어를 쓰고 다른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끼리 같이 지내면 오해가 쌓이기도 하고, 통역이 놓치는 말들이 생기기 마련이죠. 하지만 좋은 의도를 가지고 함께 생활하다보면 윤리적인 틀이 생기고 화카화나웅아탕가가 형성되는거라고 봐요. 처음 워크샵을 위해 머라이에 도착하셨을때 포휘리(powhiri 손님을 맞이하는 마오리 의식)를 했던 것 기억나시나요?이는 하우카잉가(haukainga 지역 사람들)와 마누히리(manuhiri 손님) 각자가 맡은 역할과 책임을 분명히 하는 화카화나웅아탕가의 한 과정이에요.고사리: 엄숙하게 시작하여 친밀하게 코를 비비는 인사인 홍이로 마무리 된 포휘리 의식은


75it clear that the collaboration across our cultures is more mature than we thought and we could see the similarities in our narratives of working to revitalise our cultural practices and knowledge traditions. The incredible similarities between our cultures and approaches to protest were really critical. Learning about samboilbae (three steps one bow) really allowed us to see the passion that your community have for the protection of the environment and local community leadership in defining the human nature relationships at the local level. These sentiments are reflected in Māori modes of protest and resistance, particularly hīkoi. Yoonha: I think it's probably because we share a history of colonization. I heard Māori elders say that when they were young, they wanted to learn te reo Māori (Māori language) but their parents wouldn't let them, so they learned it later in their life. It's different, but when I told them about Korea's Japanese colonial period, several people said they enjoyed watching Mr. Sunshine, a drama about Korean independence fighters' anti- Japanese struggles. I think K-pop and Korean dramas are popular here partly because of those narratives of resistance and perserverance. You sang \"Golden\" by KPop Demon Hunters with Lilly while cooking, and I remember Mariana, who has been fighting for the Whanganui River's rights for decades, saying that just as kūaka finds its way back even in fierce winds, Korean boyband BTS overcomes difficulties and humbly keeps working hard on their path, so she'll always support BTS. Billy: After watching the Sura film, spending time together, hearing that Korea also experienced colonial pain, and listening carefully to Hee-Jung's lecture about the Saemangeum Citizen Ecological Investigation Group, I understood the Korean situation better. I think spending time together is essential for building whakawhanaungatanga. Our marae - like a community hall - is the perfect space for this. It's a spacious place with complete facilities for cooking, eating and sleeping. Here we can build relationships without rushing to do something, leaving space to breathe. When people with different languages and worldviews live together, misunderstandings happen, and things get lost in translation. But by spending time together with good intentions, an ethical framework forms and whakawhanaungatanga develops. Do you remember when you first arrived at the marae for this kūaka gathering, we performed pōwhiri, the Māori welcoming ceremony? That's also part of whakawhanaungatanga, clarifying the


76특별했어요. 예를 갖춰 대접해주신만큼 좋은 손님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일 식사 전, 그리고 하루를 마무리할 때도 의식을 행했는데 이게 느슨하게 짜여진 일정 속에서 어떤 틀을 제공해준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관광숙박집이 아니라 머라이에서 지낸 덕분에 마을의 다양한 모습을 엿본 것 같아요. 단순히 문자로 “너의 문화를 존중해” 라고 하는 것보다 서로 공유하는 아픔을 확인하고, 먹을거리와 이야깃거리를 나누고, 같이 노래하며 춤추고, 서로 살리는 미래를 이야기한 이번 와낭아(워크샵)가 관계를 단단히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고사리: 저희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돈과 시간을 써야 만날 수 있는데, 직접 만나지 못하면 화카화나웅아탕가는 어떻게 해야할까요?빌리: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해요?각 머라이에는 이름이 있는데, 우리가 지낸 황아누이의 머라이는 “Te Ao Hou - 새로운 세상”이다. 커다란 마루와 이어지는 넓은 공간에는 20-30명 취침할 수 있는 공간과 침구가 있다. 건너편 건물에는 넓찍한 부엌과 넓은 접이식 탁자와 의자들이 있고, 상주하는 사람들도 몇 명있다. 마당에는 나무를 조각하는 작업장도 있다. 황아누이 강이 머라이 앞으로 흐르고, 바로 옆에 위치한 “먹거리숲food forest”라고 불리는 텃밭에는 싱싱한 채소들이 자란다.Ⓒ고사리


77roles and responsibilities of both haukainga (home people) and guests (manuhiri). Yoonha: The pōwhiri ceremony that began solemnly and ended with the intimate hongi (nose-pressing greeting) was special. I felt a responsibility to be a respectful guest in response to such formal welcome. There were rituals before every meal and at the end of each day, which felt like they provided structure within the loosely organized schedule. Thanks to staying at the marae rather than a tourist accommodation, we could glimpse various aspects of the community by participating in tukutuku (Māori weaving), kōrero (dialogue/lecture), book launch, and the monthly potluck where anyone in the community, Māori or not, brings food to share. Rather than just saying \"I respect your culture,\" this wānanga (workshop) where we confirmed shared pain, shared food and stories, sang and danced together, and talked about a future that sustains us all, really helped solidify our relationship. But since long-distance meetings require spending money and time to actually meet, how should we build whakawhanaungatanga when we can't meet in person? Billy: Do you use Facebook or Instagram? Yoonha: Angutekaraq Estelle Thomson, president of the Native Village of Paimiut Traditional Council asked me the same thing! She told me that on social media we can continuously see each other's news and movements, so we can stand in solidarity from the heart even before it's requested. Billy: Exactly. That's the key - staying connected between visits and finding creative ways to remain connected at a distance. The pou and jangseung have been a great tool to keep the relationship alive even if there was no verbal communication happening for years. This time around, I think translating the waiata into Korean and making it relevant to Sura is a profound way that we can maintain our intimate connection. Even writing this piece together is an excellent way that we can maintain our connection and make it visible for our own local advocacy work. But yes, meeting in person – kanohi ki te kanohi was fundamental to all of these means of intimacy. Yoonha: Spending days together, I realized how much Kūaka conservationists


78고사리: 파이뮤트 전통위원회 원주민 마을 의장인 앙구테카락 에스텔 톰슨(Angutekaraq Estelle Thomson)도 같은 질문을 했어요. SNS로 서로의 소식과 운동을 지속적으로 보게되면 연대를 요청하기도 전에 먼저 마음에서 우러나와 연대할 수 있다면서요.빌리: 맞아요 그게 핵심입니다. 서로 연결된 상태를 유지하고 멀리 떨어져 있어도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창의적인 방법을 찾는 것이죠. 포우(pou)와 장승은 여러 해 동안 말로 주고받는 소통이 없었더라도 우리의 관계를 유지시켜 준 훌륭한 매개체였습니다. 이번에는 와이아타(노래)를 한국어로 번역하고 그것을 수라와 연결시키는 일이 우리의 깊은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매우 의미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 글을 함께 쓰는 것 자체도 우리가 관계를 유지하고 그 관계를 각 지역사회에서 펼치는 활동 속에 가시화하는 훌륭한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직접 얼굴을 맞대는 만남 - 카노히 키 테 카노히(kanohi ki te kanohi)- 야말로 이런 모든 친밀한 연결의 근본적인 토대였습니다.고사리: 하루 종일 같이 있으니 쿠아카 보존 운동을 하는 분들은 각자 지역 운동, 밥벌이, 돌봄으로 하루가 꽉차는 바쁜 사람들이라는 걸 느꼈어요. 종종 다른 지역과 화상회의를 하기 위해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던 에스텔은 하루에도 연대 요청 메일이 여러건 오고, 자기 부족을 지키기 위해 100장이 넘는 pdf를 읽어야 할 때도 많다고 하셨죠. 제가 국제연대요청 팁을 여쭤보니 완전 솔직하게 대답하셨어요.빌리: 뭐라고 하던가요?고사리: 직접 못 만나본 사람이 사연을 길게 써보내면 잘 안읽게 된다고 귀뜸해주셨어요. 가장 좋은 것은 굵고 짧게 상황을 영상으로 만들어 공유하는 것이라고 해요. 부족 차원에서 연대를 바라면 개인적으로 서명하지 못하고 회의를 거치게 되는데, 먼 곳의 사연을 많은 이들에게 생생히 전달하려면 본인이 없는 시간을 투자해서 긴 글을 읽고 정리해서 설명하는 것보다 보내온 영상을 트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하시더라고요.빌리: 일리있네요. 짧은 영상은 효과적인 도구지요.고사리: 투쿠투쿠 직조 패널도 비슷하게 이야기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느껴졌어요.


79juggle - local activism, making a living, and caregiving. Everyone's days are packed with commitments in their own communities. Estelle often woke at 5 AM for video conferences with other regions. She told me she receives multiple solidarity requests daily and sometimes has to read through 100-page PDFs to protect her tribe. When I asked her for tips on international solidarity requests, she was really frank with me. Billy: What did she say? Yoonha: She said long emails from people she's never met in person are hard to get through. The best thing is to make a short, powerful video of the situation to share. She explained that tribal-level solidarity requires collective decision-making, not individual signatures. So, to effectively share distant struggles with the whole group, a short video works far better than having her read through long emails and try to summarize them in meetings. Billy: That makes sense. Short videos are an effective tool. Yoonha: The tukutuku panels felt similar— stories woven to share. It was meaningful to hear Tapiri and you share the stories behind each tukutuku piece on the marae. I also enjoyed the time we spent designing the patterns for the mural together. We drew the designs of artist Choi Byung-soo and Indie, in honor of their contributions, as they were unable to be present in person. Billy: Indeed. You remember aunty Taans saying that for Māori, stories are conveyed through waiata(song), weaving, and art? I feel intimacy can be conveyed through waiata and we ask ourselves how we do that more. Yoonha: Telling stories through art seems to be a common point between Māori and Korean culture. I felt you all understood the lively Sura pultaryeong (folk song) in the video message from Korea to Māori without knowing the lyrics. Everyone taking selfies wearing the bird hats made by Peacewind, looking so happy - that also felt like conveying a story. When we left Whanganui, I asked permission to respectfully leave the bird hats that marched with us there. Geoffrey and Estelle - the couple connected


80타이피리와 빌리가 머라이 벽에 걸린 각 투쿠투쿠 패턴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신 것이 뜻깊었지요. 함께 벽화에 그릴 문양들을 고안하는 시간도 좋았어요. 현장에 함께하지 못하신 최병수님과 인디님의 디자인을 저희가 대신 그리며, 소중한 기여에 마음으로 경의를 표했습니다.빌리: 그럼요. 타냐이모가 마오리에서는 이야기를 와이아타(노래), 직조, 그림으로 전한다는 이야기 기억나시죠? 저는 친밀함이 와이아타로 전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 공동체 내에서 이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어요.고사리: 예술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은 마오리와 한국 문화의 공통점 같기도 해요. 한국에서 마오리에게 보내는 영상편지 속 수라풀타령에 자막이 없어도 마음으로 이해하시는 것 같았어요. 평화바람에서 만든 새모자를 쓰고 다들 셀카를 찍고 즐거워 하시던 모습도 꼭 이야기를 전달한 것처럼 느껴졌고요. 황아누이를 떠날때 허락을 받아 행진을 함께한 도요물떼새 모자를 이곳에 잘 모셔달라고 청했어요. 큰뒷부리도요가 이어준 커플, 머라이 리더인 제프리와 알래스카 유픽족 대표인 에스텔이 모자들을 타웅아(Taunga 보물)처럼 모시겠다고 약속하셨죠. 이에 현장에서 피켓처럼 쓰였으면 좋겠다는 평화바람의 활동가 오이님의 보석같은 말 또한 전해드렸어요.빌리: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자리에서 새 모자를 쓰는 것은 효과적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방법일거에요. 더 좋은 것은 새 모자가 사람들로 하여금 이야기를 끌어내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는 거죠.고사리: 새 모자 말고도 입을 거리로 전해진 이야기도 풍성했어요. 홀씨의 도요물떼새 손수건, 최병수 작가님의 큰뒷부리도요 그림이 새겨진 뱃지를 한국에서 선물로 나눠드렸는데, 곳곳에서 달고 20년 전 형성된 관계의 흐름을 이어갔죠. 정희정님께서 20년전 해창갯벌에 장승을 세우고 황아누이를 찾아 나무조각을 하신 최병수 작가님께 마오리 소식을 전하셨고, 세계를 누비는 큰뒷부리도요 그림을 받아 널리 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주셨습니다. 이에 보답하듯 저희가 떠나기 전날 에스텔은 새벽까지 재봉틀을 돌리며 희정님께 유픽 전통의상 카스팍(Qaspek)을 만들어주셨어요. 한땀 한땀 큰뒷부리도요와 한국 사람들을 생각하며 작업했다고, 우리가 함께한 이야기를 옷으로 나눠달라고 하셨어요.


81by the kūaka, the marae leader and president of the Native Village of Paimiut Traditional Council - promised to keep it like a Taonga (treasure). I also passed on a gem of a comment from Peacewind activist Oi, who said she hoped it would be actively used like a placard at gatherings. Billy: Wearing the bird hats at gatherings where people come together would be a really effective way to tell the story, but better yet, to get people to ask questions that provoke the story telling! Yoonha: Besides the bird hats, stories were conveyed richly through things to wear. We gave out handkerchiefs with shorebirds from Holssi and badges with kūaka drawings by artist Choi Byung-soo as gifts from Korea, and people wore them everywhere, continuing the flow of relationships formed 20 years ago. Hee-Jung shared news from the Māori community with Choi Byung-soo. She also played an important role in sharing his drawing of the kūaka that travels across the world. In what felt like a gesture of gratitude, on the night before our departure, Estelle worked her sewing machine until dawn making a qaspek, a traditional Yup'ik garment, as a gift 새모자는 대인기였다. 너도나도 쓰고 사진찍고 머리 위로 새를 모셨다.Ⓒ고사리


82마리아나는 초봄에 새롭게 피어나는 고사리 ‘코루(Koru)’ 문양 니트를 주시며 문양에 담긴 의미가 새로운 시작과 성장이라고 하셨죠. 한국에서의 노력 덕분에 우리 쿠아카가 지켜졌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해달라는 말, 쿠아카가 우리를 만나게 해줘서 참 좋다는 말이 옷과 노래로도 전해진 것 같았어요.빌리: 코하(koha 선물)를 주고받는 일은 우리가 투쿠투쿠 패널을 함께 엮어나간 것처럼 서로를 하나로 엮어 가는 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우리 머라이의 나무조각가 테 우루랑이가 해창갯벌에 세우기 위해 선물한 조각품은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희정님이 카스팍을 입고 시민생태조사단과 문규현 신부님과 함께 그 조각을 해창 갯벌 장승에 설치한 사진을 보았을때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장면은 우리의 지역을, 우리를 이어주는 새들을 돌보겠다는 다짐이 한층 깊어지고 넓어졌음을 상징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서식지와 이동경로를 보호함으로써 이 연결을 계속 살아 있게 유지하기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확장된 화나우 (whanau 대가족, 공동체)가 형성된 것을 보니 정말 기쁩니다. 한국에서 쿠아카의 서식지를 보호하기 위해 해온 모든 노력에 진심어린 감사와 인사를 전해주세요.고사리: 희정님이 보내주신 사진들을 보며 저도 정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테 우루랑이는 조각의 물결무늬가 물에 돌을 던졌을 때 퍼지는 잔물결을 표현한 것이라고 했어요. 겹겹이 새겨진 물결이 마오리의 파동과 한국의 파동이 만나 서로 굴절하고 교차하며 새로운 무늬를 만들어가는 모습처럼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그 물결이 계속 퍼져 나가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쿠피예를 쓴 마오리 조각가 짐(Matua Jim)이 밝게 반짝이는 별이 있다며 하늘로 시선을 끌어 올렸던 밤.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며 각 문화의 별자리 신화를 나누고, 오래된 미래를 이야기했습니다. 20년 전 쿠아카의 서식지를 지키기 위해 모였을때도 함께 별을 봤을까요. 오랫동안 잊혀졌던 그 길을 되짚어 관계를 새로 이어가는 과정은 정말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소개해 드리고 싶은 새,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큰뒷부리도요가 우리 땅 사이를 오가는 여정을 계속하듯, 우리의 연대와 우정 또한 계속 자라날 것입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83for Hee-Jung. Estelle said she worked thinking of Cugerpak and Korean people with every stitch, asking to share our story together through the clothing. Mariana gave us a hat with the koru (unfurling fern frond) pattern, saying the meaning in the design is new beginnings and growth. The gratitude for efforts protecting the birds, and the joy that the kūaka brought us together – all of it seemed to live in the clothing and song. Billy: Giving koha or gifts was a really integral part of weaving ourselves together, just as we wove the tukutuku panels together. The carving that Te Ururangi gifted to erect at Haechang tidal flat. It was amazing to see the photo of Hee-Jung wearing the qaspek, going back to Korea and immediately placing that carving on the Haechang tidal flat jangseung with the Citizen Ecological Investigation Group and Catholic priest Moon Kyuhyun. It represented a deepening and broadening of our commitment to care for our local territories for the sake of these birds that connect us. We are dedicated to keeping that connection alive by saving their habitat and migratory habits. So good to see that wider whānau (extended family) that has been created. Please pass on our heart felt greetings and thanks for all their work they do to protect Kūaka habitats. Yoonha: It was so touching to see the photos. Te Ururangi said the wave pattern expresses ripples spreading when you throw a stone in water. The waves carved in layers felt like they embodied Māori ripples meeting Korean ripples, diffracting and creating new patterns as they intersect. We are finding ways to keep the ripples spreading. On the night when Matua Jim drew our gaze upward to a brightly shining star, we looked at countless stars and shared each culture's constellation myths, talking about ancient futures. I wondered if, twenty years ago, when our communities first gathered to protect Kūaka habitat, they also lifted their eyes to the same stars. Walking once more along that long-forgotten path to rekindle our bonds felt truly precious. There are so many Bird People in Korea I would love to introduce to you. As keundwitburidoyo continue their journeys between our lands, so too will our solidarity and friendship continue to grow. Thank you from the bottom of my heart.


84


85Ⓒ고사리


Ⓒ오동필


길 위 의 글


88나 역시 패소를 예상했던 많은 이들 중 하나였다. 물론 승소 버전 상상도 하긴 했다. ‘내 월급만큼 승소 떡을 돌리면 양이 얼마나 될까’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승소는 마냥 기쁠 것이므로 딱히 대비할 것이 없어서, 패소에 대한 마음의 준비로 바로 넘어갔다. 법원 앞에서 울분을 토할 친구들을 위로하고 다시 힘을 모아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하기 위해 나름의 시나리오를 짰다. 커다란 패널도 준비했다. 결과적으로는 쓸 일이 없었지만!패널은 박스 골판지에 ‘서남해안 간척자원도’를 커다랗게 인쇄해 붙인 것이었다. 1990년대에는 한국의 서해, 남해의 섬을 싸그리 이어 그 안쪽을 죄다 매립하겠다는 무식하고 무시무시한 국토개발계획이 수립된 바 있다. 이 계획에 따른 ‘간척자원도’를 보면, 초록색은 매립 진행 중, 노란색이 매립예정지이다. 전북 쪽에 초록색 해파리가 옆으로 누워 있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바로 새만금이다. 극한의 희생인 삼보일배로도 막지 못했다. 무려 409제곱킬로미터. 서울의 70%에 달하는 소중한 김나희파장이 파장을 만나다


89연안 습지가 죽어가고 있다. 그런데 그 엄청나게 넓은 새만금마저도 그 아래 전북~전남 섬을 전부 자 대고 그어 그 안쪽을 다 매립하겠다는 광기어린 계획(노란색)에 비하면 작아 보일 지경이다. 저 넓이에 흙을 부으려면 대체 산을 얼마나 깎아야 할까? 백두대간을 다 깎아야 할 지경이다. 실제로 새만금 매립이 아직 30%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전북의 산과 구릉이 어마무시하게 깎여나갔고 내부준설로 해저도 초토화되었다.그럼, 저 1990년대의 계획에서 노란색인 매립 예정지들은 지금 어떤 상태일까? 저 매립 계획들은 얼마나 진행되었을까?아, 저 거대한 노란색 간척 계획은 모두 물건너갔다. 새만금을 마지막 제물로, 대규모 매립 계획은 일단 중단되었다. 이제는 저렇게 매립을 할래야 할 수가 없다. 새만금 위 아래의 갯벌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되었기 때문이다. 새만금사업을 막기 위한 전방위적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것 같았지만, 그 이후에 강행되었을 미래의 간척을 미리 다 막은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또다시 밀어부쳤을 대규모 간척을 아예 기획조차 되지 못하게 최초 단계에서 좌초시켰다. 그뿐이 아니다. 2003년에는 갯벌의 가치에 대해 설득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큰뒷부리도요가 한 번도 안 쉬고 날아온다는 것도 몰랐다. 이제는 갯벌의 엄청난 가치에 대해 아무도 토를 달지 못한다. 심지어 국토교통부도 재판에서 ‘신공항 예정지는 갯벌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갯벌이 소중하며 파괴하면 안 된다는 것은 이미 모두에게 설명이 필요없는 명제이니, 수라가 갯벌이 아니라고 우겨 보는 것이다.‘보호효과 발자국’(protection footprint)라는 개념이 있다. 어떤 보호구역이 낳는 직간접적인 효과를 발자국 크기로 표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서천갯벌만 보호구역이고 수라갯벌은 보호구역이 아니지만, 보호종들이 두 갯벌을 유기적으로 오간다는 사실로 이번 재판부를 설득해서, 수라갯벌까지 보호효과가 확장되었다. 서천갯벌의 보호효과 발자국이 서천갯벌 넓이보다 더 커진 것이다. (반대로 파괴효과 발자국(impact footprint)도 있다. 새만금신공항이 딱 수라갯벌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서천갯벌도 파괴한다. 파괴 발자국이 수라갯벌 넓이보다 더 큰 것이다. 더 나아가 애초에 서천갯벌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함으로써 보호하고자 했던 그 철새들의 남북반구 서식지들까지 파괴효과가 확장된다.)이 발자국 개념을 내 맘대로 좀 확장시켜서 어떤 활동이 낳는 파장과 궤적도 보호효과 발자국이라고 써보겠다. 원래의 목표만 놓고 보면 삼보일배 행진은 실패했다. 새만금 방조제 건설을 막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삼보일배의 보호효과 발자국은 새만금 지역을 훨씬 뛰어넘어 남한의 모든 갯벌로 확장되었다. 그리고 그때 방조제 건설로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꼈던 사람들이 지금 새만금신공항 싸움으로 다시 모였다. 지금 우리가 진다고 해서, 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지는 법이 없다.여기까지! 패소 후 장광설을 늘어놓으려 했다. 꺼이꺼이..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만세!!! 하지만 보호효과 발자국의 개념으로 보다 보니, 점점 더 많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이 글도 쓰고


90Ⓒ이재각


91있다.) 국토부의 뻔뻔한 항소로 가게 될 2심에서, 아마 국토부는 기를 쓰고 원고적격을 문제삼을 것이다. 그에 맞서 우리는 더 많은 원고, 특히 오동필과 문규현 신부님의 적격을 주장하려 하고 있다.주소지가 직접적 피해 범위 안에 없더라도, 오랜 기간 설악산 생태를 지키기 위해 싸워온 경력으로 박그림 선생이 원고로 인정된 바 있다. 이 판례를 근거로 우리도 주장해보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박그림의 보호효과 발자국도 설악산을 뛰어넘는다!)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이자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장인 오동필은 그저 묵묵히 폐허가 되어가는 갯벌을 지켜왔다. 그 활동이 어떻게 쓰일지는 몰랐을 것이다. 문규현 신부님도 20여년 뒤 삼보일배 행진이 또다른 싸움의 원고적격 근거가 될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전북지방환경청의 새만금신공항 동의가 임박했을 때, 우리는 그저 동의를 한 주 미루고 한 주 미루기 위해 삭발을 하고 집중 집회를 하고 전국적인 연대를 요청했다. 새,사람행진도 대대적으로 진행했다. 올해 안에 강행될 텐데, 한 주 한 주 미루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한 주씩 미루다 보니 재판일이 되었고, 결국 승소하여 환경청의 절차는 무기한 중단되게 되었다. 한 주 한 주가 모여 무기한을 만들어낸 것이다.새,사람행진도 1심 판결을 앞두고 진행되었지만, 사실 판결 자체에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는 없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판결의 방향은 오래 전에, 최소한 제주항공-무안공항 참사 때 이미 결정되어 있었던 것 같다. 판사가 변론 때 국토부 변호인에게 “13km 반경을 5km 반경으로 줄여서 평가한 건 국토부 재량인 거죠?”라고 한 질문이, 돌이켜보면 낚시였다. 국토부 측이 재량 맞다고 말해서 낚시에 걸린 순간, 재량 일탈 남용을 더욱 확정한 것이었다. (판사님, 그때 국토부 편 들어준다고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행정법원 앞에 도착해서 13000배를 할 때 우리를 본 재판장이 좋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지나갔다. 재판장 얼굴을 혼자 알아본 나는 며칠 내내 끌탕을 했다. 그런데 판결 때 우리보고 합리적, 합법적인 수준에서 하시라고 말한 걸 듣고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법적으로만 다퉈도 승소할 내용을 왜 이렇게 시끄럽게 법원 앞을 점거하고 판사 셋 이름을 부르고 난리를 치느냐? 그런다고 판결이 바뀌는 것도 아닌데’라는 뉘앙스인 것이다. 재판장의 말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새,사람행진은 판결문의 내용에 영향을 직접 주지는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여론이 집중되고 기사화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주고 도움을 자청했다. 활동을 통해 새만금신공항 사안을 알게 된 불특정 다수 중 누군가는 결정적인 도움을 주러 나설 수 있다. 그리고 한 달간 고생고생하며 끈끈하게 엮인 사람들이 재판 결과를 기다렸다가 엄청난 감동과 환희를 공유했던 공동경험은 다른 것으로는 도무지 얻을 수 없는 귀한 것이다. 이 공동경험이 엄청난 자산이 될 것이고, 이미 행진단 후속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냥 없어지는 건 없다. 이 희망이 없으면 우리는 패색이 짙은 싸움을 시작할 수 없다. 당장의 효과가 크지 않은 행동이 결국 다른 방향에서 되돌아온다. 파장이 파장을 낳고 더 큰 파장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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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김연태길 위에서 배우다Ⓒ이재각


9522년전 2003년 3월28일부터 문규현 신부, 수경스님, 이희운 목사, 김경일 교무는 부안 해창갯벌을 출발하여 청와대까지 65일동안 305km를 묵언수행과 불편한 무릎치료조차 거부한 채 극단적인 고행길을 5,000여명 동조자와 함께 새만금사업을 막겠다는 일념의 지난한 투쟁을 벌였는데, 종교지도자들의 생명을 내건 긴 여정은 서해와 남해안에 펼쳐진 수 많은 섬과 섬을 막아 국토확장을 넓히겠다는 정부의 야심찬 계획을 막아내는데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2025년 3월부터 전북지방환경청에서는 구순이 다 되신 평화바람 문정현신부님의 서각기도와 함께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은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부동의’를 촉구하며 5개월동안 뜨거운 여름의 한가운데를 천막속에서 고통스럽게 보냈습니다. 요지부동인 전북지방환경청에 대한 기대를 접고 9월11일 서울행정법원에 집중하기로 하였습니다.8월12일 서울을 향해 떠나던 날, “섭씨 40도를 웃도는 전북지방환경청을 떠나 들녘과 산천을 바라보며 걷는 이 길이 훨씬 편하다”고 웃으시던 문정현신부님을 모시고 서울 행정법원까지 31일간 260여km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8월의 한 가운데를 걸어가는 길 좌우로 펼쳐진 논밭에는 봄부터 농부들이 땀흘려 가꿔놓은 벼와 과일나무들이 뜨거운 햇살아래 자연을 닮아가며 제 역할을 다하고 있었습니다.“땀의 값은 결코 헛되지 않는다”던 옛 어른들의 말씀을 떠올리며 우리는 뜨거운 아스팔트길을 걷고 또 걸었습니다.오늘 우리가 걷는 이 길이 과연 우리가 염원하는 새만금신공항 건설을 막아줄 수 있을까? 우리가 걷는 이 행렬의 끝은 있는데, 그 결과는 어떤 것일까? 길을 걷는 내내 저의 다짐과 각오는 승리보다는 우리사회의 현실사이를 오고가며 바람처럼 흔들리곤 하였습니다. 서울 행정법원까지 걷는 행진단의 발걸음에는 참 많은분들의 현신적이고 고마운 도움과 연대가 있었습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각 지역교구 신부님과 신도님들은 행진단이 이슬을 피할 수 있도록 숙식을 제공해 주셨고, 민주노총 대전.세종 충남지역본부, 경기지역본부, 각 지역의 시민단체, 의료지원단체, 진보정당 등 많은 분들의 참여와 연대는 큰 버팀목이었습니다. 복잡한 서울에서도 자유롭게 숙식을 해결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비정규노동자들의 삶터 ‘꿀잠’과 그리고 많은 도움과 지지를 아끼지 않으셨던 분들께 늦었지만 고마움의 인사를 전합니다.새,사람행진단원들은 직장에서 장기휴가를 내거나, 생업을 접고 달려온 사람들도 있었고, 행진단과 함께 걷는 일이 즐겁고 신이나서, 또는 그동안 함께하지 못한 일이 미안하고 죄송해서 참여한 분들도 있었습니다.어디쯤 이었을까? 연신 흐르는 땀을 닦고 거친숨을 몰아쉬며 걸어가던 그때, 대열 중간쯤에서 여성행진단원들이 음악소리에 맞춰 흥청거리며 춤을 추기 시작했고 지쳐가던 행진단원의 얼굴에는 미


96소가 번지기 시작했습니다.무더위속에서 흥진단이 내뿜는 노래와 춤은 전염성이 매우 강했습니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과 공사장의 노동자들, 사무실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금세 밖으로 불러냈고 손을 흔들며 함박웃음을 터뜨리도록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흥진단의 활동은 수 십년간 한국사회의 집회시위 문화를 바꿔놓을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 모범사례가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처음으로 집단적인 행진단에 참여하게된 저는 행진단원들로부터 많은 것을 보고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행진단원들은 바쁜 일정속에서도 단원들간에 배려와 양보의 마음을 솔선수범하는 실천을 보여주셨습니다,그리고 행진단의 안전을 책임진 ‘안전팀’은 바쁘게 지나가는 차량을 향해 허리굽혀 인사를 하며 우리 행진단이 안전하게 먼저 지나갈 수 있도록 양해를 구하던 겸손한 태도는, 이를 지켜보던 운전자들이 짜증을내며 경적을 누르려던 손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했고 아름다운 동의를 얻어내곤 했습니다. 차도를 따라 서울까지 가는 동안 아무 사고없이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도록 종횡으로 뛰어다니며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한 안전팀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특히, 진행팀은 하루의 시작부터 마무리 시간까지 시민을 향해서 우리 행진단의 요구사항을 설명했고, 각 지역의 경찰과 도로이용에 관한 협조를 이끌어냈으며, 행진이 끝나면 다음날 걸어갈 행진코스의 사전답사와 쉴곳 식사할 장소까지 꼼꼼하게 확인하고 준비했습니다. 매일매일 시민들께 전달할 내용을 준비하느라 밤잠도 줄이며 새벽까지 준비하는 모습은 참으로 헌신적이었습니다. 영상팀 또한 다르지 않았습니다.누가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 하지 않아도 미리미리 일거리를 찾아 처리하는 행진단은 마치 수십명 연주자들이 서로의 역할을 시의적절하게 연주하는 훌륭한 정상급 오케스트라였습니다.수 십년간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통해서 얻어진 경험과 헌신성이 결합된 이번 새,사람행진단과 전국의 수많은 시민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와 참여가 결국 보수적인 법원까지 감동시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이끌었고, 사법기관 본래의 기능까지도 함께 살려내는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 냈다고 생각합니다.주역 64괘 중 마지막 괘인 화수미제괘를 본적이 있습니다. 화수미제괘를 반대편에서 보면 기제괘라고 배웠습니다. 기제괘는 일이 이미 완성되었음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공하는 것보다 유지하는 것이 더욱 어렵고 자만에 빠지기 쉬우니 편안할 때 닥쳐올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화수미제괘의 해석은 여우가 강을 건너가다가 강물에 꼬리를 적셔 불리한 상황으로 풀이한다고 합니다. 지금 당장은 완벽하지 않지만 과정속에서 배움을 얻고, 꾸준히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완성되지 않았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낙담하지 말고, 이겼다고 잠시라도 승리의 기분으로 방심하지도 말며 끊임없이 완성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는 가르침이 제게는 좋은 교훈으로 다가왔습니다.행진단 활동기간 중 아쉬운 일이 있었는데요, 행진단 톡방에 올린 전북지역의 어느 진보단체 성원의


97메시지가 우리를 당혹스럽게 했습니다. “새만금비행장을 통해서 예속과 자주에 대해서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면 좋으련만 단순히 생명중시니 어쩌니에만 매몰될까 적이 걱정”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우리나라를 외세가 분단시키고 나누어 지배·관리하는 신식민주의 사회라는 것, 이 땅의 지배자들은 우리 민중들을 서로 경쟁과 다툼을 장려하는 체제로 만들어 놓고 우리를 손쉽게 요리하는 전쟁터임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으며, 이 억압과 신식민지 역사청산을 위한 실천투쟁에서 문정현신부님이 지으신 ‘평화가 무엇이냐’라는 노래를 부르며 실천활동을 다짐해가고 있습니다.직장에서 쫓겨난 노동자가 원직복직하는 것, 두꺼비 맹꽁이 도롱뇽이 서식지를 잃지 않는 것, 가고 싶은 곳을 장애인도 갈 수 있게 하는 것, 이 땅을 일궈온 농민들이 더 이상 땅을 빼앗기지 않는 것,군대와 전쟁이 없고 배고품이 없는 세상, 서러움과 쫓겨나지 않는 세상과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서 우리는 지난 3년 6개월동안 투쟁해 왔습니다. 쫓겨난 노동자가 투쟁하는 옵티칼노동조합, 전투기가 종횡으로 주택가를 날아다니는 수원공항 철수투쟁, 동학농민항쟁이 치열했던 우금티고개에 올라 외세지배자들과 그들의 앞잡이들, 토건자본과 한판 승부를 결의하며 싸워왔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싸워나갈 것입니다. 외세 내보내기와 사회변화 투쟁에 앞장서서 노력하는 활동가들에게 공력을 보태지는 못할지언정, 입만 진보인 채 지난 세기의 평론가적 시각은 시민단체내에서 하루 빨리 벗겨내야 할 허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대중이라는 큰 용광로속에 녹아들어 하나의 쇳물이 되고 투쟁의 담금질로 대동단결 연대투쟁에 힘쓸 때라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부족하고 서툴지만 겸허한 자세로 더 많은 대중이 서로 손 맞잡고 우리가 가야할 새로운 길에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갈 수 있도록 품도 키우고 가무도 즐기면서 즐겁게 가면 좋겠습니다.나뭇가지에 연초록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던 봄부터 시작된 새만금신공항백지화 투쟁이 어느덧 누런잎으로 변해서 길 위에 하나 둘 떨어지는 가을입니다. 봄 여름동안 왕성했던 나무가 겨울을 대비하며 잎을 떨구고, 결실을 담은 알곡들은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고개를 숙여갑니다. 자연은 우주안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에게 때에 따라서 햇빛과 비와 바람과 사계절을 주고 생명을 이어가도록 풍요와 사랑을 아낌없이 주면서도 한마디 공치사나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는 어느 선생님의 말씀을 들은 적 있습니다. 우리도 그런 자연을 닮아가면 좋겠습니다.한사람 한사람의 능력은 한계가 있으니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모여 집단지성의 지혜와 힘을 모아 새만금신공항 저지투쟁과 해수유통의 승리를 끝끝내 이끌어내면 좋겠습니다. 저 또한 새만금신공항 저지와 해수유통이 될 때까지 끝까지 싸워나가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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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이재각


100올해 내 오랜 공장생활이 끝났다. 홀가분하게 당분간은 쉬려고 했는데 떡 하니 새만금신공항 문제가 내앞에 놓였다. 애초에 내가 신공항 문제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공장 다닐때에 군산의 하제마을 팽팽문화제를 알게되고 몇몇이 팽수라는 풍물패를 만들었는데 거기에 내가 낀 것이다. 그러다 전북도청에서 신공항 반대 집회가 있었고 집회후 행진을 하여 전북지방환경청에서 마무리를 했는데 그때 문정현 신부님이 연설중 \"내가 있어야할 자리는 여기다.\"라고 선언을 하셨다. 뒤에서 듣고 있던 나는 직감적으로 아, 나도 이제 신부님이랑 함께 해야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천막이 한 동 더 설치되고 신부님이 매일 서각기도를 전북지방환경청 앞에서 하셨다. 나도 매일 환경청으로 나가 신부님과 함께했고 그러다 자연스럽게 새,사람행진에 행진단원이 된 것이다. 처음에 완두님이 나에게 새.사람행진에 같이 하지않겠냐? 고 조심스럽게 제의를 하셨는데 나는 일초의 망설임없이 우리는 한 배를 탄 운명이 아니냐며 같이 하겠다고 대답했다. 여기서 신부님과 나의 인연을 잠깐 소개한다. 그러니까 25년전 내가 해고자가 되어서 노동부 앞에 천막을 치고 단식농성을 할때 문신부님과 평화바람 식구들이 적극 연대를 해주셨었다. 비록 그싸움은 졌지만 그싸움으로 인해 나는 노동운동을 알게됐고 이후 비정규직으로 들어간 공장에서 노동조합을 만들고 지회장이 되었고 십여년을 싸워 정규직이 되는 승리를 맛보기도 했다. 아마 전북지역에서 나 말고도 신부님께 빚을 진 사람들은 꽤나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인연으로 지금껏 같이하는 동지들도 있으나 얼굴 한번 안비치는 사람들도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아무튼 그렇게 시작된 새.사람행진은 나에게 엄청난 감동을 안겨줬다. 결과도 승소를 했으니 좋았지만 한달여 걷는 동안의 매일매일 감동이란 정말 엄청났다. 나는 걷는 내내 매일매일 배웠고 매일매일 성장했다. 홍익생명의 마음이 생겨났고 모든 뭇생명들의 무게를 생각했다. 때론 울고 때론 웃으며 어떤 날은 사악한 인간들에 대한 분노를 하며 걸었다. 행진 출발 전에 읽던 수라의 외침은 생명에 대한 공부이자 내 자신에 대한 성찰의 시간이었다. 지나온 삶에서 생명에 대해 어떻게 대했는가? 몸체가 작다고 아무렇게나 대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던 일에 대한 반성이 일었고 생명을 존중하고 평화를 위해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계속 함께 걷는 사람들은 물론 처음 결합하는 사람들과도 마치 예전부터 알고 지낸듯 허물없이 어울리며 걷고 또 걸었다. 가지가지 모든 뭇생명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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