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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 뗀 새 사람 마지막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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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by Design_appletree, 2026-01-08 20:23:09

<새사람>no.05

쉼표 뗀 새 사람 마지막호

101행진 중에 만나는 생명들은 또 얼마나 반가운가? 수라갯벌 위를 우아하게 날던 황새, 기세등등 행진단 위를 날던 황조롱이, 길 잃고 헤매던 어린 유혈목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우리를 보던 축사의 소들, 길을 가로질러 뛰어가던 고라니, 동물뿐만 아니라 길가상의 나무들, 멀리 보이는 우거진 숲과 들판에 자라는 벼들까지도 모두 우리 행진단을 응원하는 듯했다. 우리는 그래서 더욱 열심히 더욱 신나게 걸었다. 나는 자전거에 올려져 가던 큰뒷부리도요도 진짜 우리랑 함께 호흡한다 느꼈다. 쉴 때마다 깃털을 어루만져 주었으며 가끔은 눈을 마주치며 말도 걸었었다. 그 순간 나와 큰뒷부리도요는 분명히 교감하고 있었다.언젠가 참여자 한분이 우리의 소식을 들으며 집에서 울면서 혼자 걸었다는 고백을 할때 감동이 일었으며 우리가 걷는 길이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때문에 걸을수록 점차 지쳐가기는커녕 걸을수록 힘이 나고 신이 났다. 그렇게 우리는 동학의 최후결전지 우금티를 넘었고 계엄격전지 남태령을 넘었다. 우금티에서 척양척왜 보국안민 동학의 정신을 새겼고 남태령을 넘으며 새로운 사회를 열자는 결기를 다졌다. 고개 넘어 서울로 진입하던 우리 행진단의 위력은 지금 생각해 봐도 가슴이 벌렁벌렁한다. 서울행정법원 앞 신부님의 서각이 유아동지의 솜씨로 멋드러지게 전시되고 신공항을 막자는 우리의 간절한 기도가 시작됐다. 삼일동안 이어진 일만삼천배, 하늘에 드리는 미사, 법원 청사 청소노동자들이 가져온 음료수 연대에 우리는 이미 이겼음을 확인했다. 9월 11일 방청권이 나눠지고 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방청권을 양보했기에 선고내용을 들을 수 없었다. 선고가 끝났을 시각 웬일인지 재판정안이 조용하다. 들어가봤더니 다들 울고 있었다. 졌어요? 아니 이겼단다. 냅다 건물 밖으로 뛰어나왔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밖의 사람들에게 승전보를 전해줘야지 \"이겼다! 이겼다!\" 진짜 목이 터져라 외쳤다. 이겼는데 왜 울지? 우리는 다들 울었다.우리가 결국 옳았다는 판결을 받은 것이다.더운 날 농성이, 매일의 선전전이, 급기야 서울까지 걸으며 외쳐댔던 우리의 요구가 정당했음이 뉴스를 타고 퍼졌다.내 생에 이런 행진은 없었다. 지금 내 뇌리에는 한달여의 다큐멘터리 영화 한편이 들어와있다. 나는 지금 다짐한다.사람들에게 더 잘해줘야지.생명들을 좀 더 사랑하며 살아야지.\"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는데,시작과 과정과 결과를 보면 이말을 증명한 게 새.사람행진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고 자랑스럽기까지 한다.새.사람행진단 여러분, 연대해주신 여기저기 시민단체 개인 연대자분들 정말 고맙고 사랑합니다.열심히 더 뜨겁게 살아 가겠습니다.고맙습니다.새.사람행진을 함께했던 해초님의 팔레스타인 연대 여정을 응원하며 무사귀환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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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이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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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오동필


106김회인항소는 악수요, 외통수일 뿐- 기품 있되 고결한 기사棋士이자 기장棋將이기를 바라며Ⓒ김현수


107사람 사는 세상 어디에나 법도가 있듯, 세상 원리를 함축한 바둑판과 장기판에도 예외는 없다. 악수를 두면 패배를 감수해야 하고, 외통수에 몰리면 승복할 줄 알아야 한다. 그 순간 기품과 고결함을 지키는 이가 참된 기사이자 기장이다. ‘새만금’은 달랐다.20여 년 전, 정부는 난데없이 만경강과 동진강을 막아 ‘새만금’이라는 생존 게임의 장을 펼치고, 기사이자 기장으로 나섰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승부가 기울었다는 자기 판단에 따라 제멋대로 수를 펼치며 판을 이끌었고, 그럴 때마다 새로운 대국이 변주를 거듭하며 드러났다.가장 최근의 대국이 바로 ‘새만금 신공항 건설’이다. 이번 대국의 경우 지난 9월 11일, 법정의 ‘새만금 국제공항 기본계획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이 내려지며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국토부와 정치권은 여전히 항소라는 이름으로 억지 수를 두려 한다. 이는 법도와 승복을 저버린 악수(惡手)요, 벗어날 길 없는 외통수일 뿐이다.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법도의 무게를 외면한 이들이 과연 기사라 할 수 있으며, 기장이라 부를 수 있는가? 바둑판의 돌을 놓는 이가 기사요, 장기판의 말을 움직이는 이가 기장이다. 표현은 달라도 돌 한 수를 두고, 말 하나 움직이는 것은 ‘기사와 기장’, 본인의 뜻에 따르며, 패배의 책임 또한 그에게 돌아가는 법이다.기사가 무모하게 패를 걸다 대마를 잃거나, 기장이 장기판에서 졸 하나를 미끼로 삼다가 도리어 제 왕이 외통수에 몰리면 장고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묘수를 찾지 못한다면 결국 기권이 답이다. 이어서 손을 먼저 내밀어 악수(握手)를 청하는 게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요, 이야말로 참 기사와 기장의 품격이다.수라 갯벌 위에 바둑판을 깔고 장기판을 펼친 자 누구인가. 국토부란 이름으로 정부를 대변하는 이들 아니었던가, 이들이 소위 ‘새만금 국제공항’이라는 말을 옮기는 순간, 만천하에 악수였음이 드러났으며, 행정법원의 판결이 이를 명확히 증명하였다.제 잘못을 복기하기는커녕 다시 알을 놓고 말을 놀리려는 것은 기만이요, 무도함일 뿐이다. 이미 대마의 숨통은 끊겼고, 왕은 외통수에 갇혀 있다. 그런데도 ‘새만금 신공항 건설’ 판을 접지 않은 채 항소라는 억지 수를 두려는 국토부, 더하여 이를 등 떠밀며 훈수 두는 전라북도와 정당, 국회의원들은 끝내 악수(握手)를 거부한 기사에 불과하다.프로들의 장이라면 어찌하겠는가. 그 자리에서 곧장 퇴출이요, 제명이다. 그리하여 다시는 판 위에 발을 딛지 못하고, 손 한번 놀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시민의 뜻에 따라 선출된 전라북도 도정 책임자와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이러한 운명을 맞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오히려 시민의 뜻을 오래도록 반영하는 수읽기로, 바둑과 장기의 대국이 누군가를 패자로 만드는 다툼의 장이 아니라 서로의 이익을 도모하는 장이 되기를 바란다.그러니 이제는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는 아량을 되찾고, 신사의 품격을 다시 세워야 한다. 지금은 항소의 때가 아니다. 아니, 이후로도 항소는 아니다. 항소는 곧 승복을 거부함이요, 타협과 상생의 테이블을 걷어차는 행위이며, 이성과 정상의 상태를 무시하는 폭거일 뿐이다.내년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이어 국회의원 선거 또한 예정되어 있다. 만약 항소라는 억지이자 무리수를 두며 새만금 갯벌을 외면하는 데 앞장서는 지자체장과 정치인이라면, 시민의 이름으로 그 책임을 묻고 퇴진과 심판의 표심이 모일 것임을 깊이 새겨야 한다.부디 기품을 지닌 기사, 고결한 기장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간곡히 바라건대, 그렇지 않다면 시민의 준엄한 심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108질문1_김정미_드라이포인트_2025 instagram @jungguuuu


109(to)질문2_김정미_드라이포인트_2025the end of the road새


110 질문3_김정미_드라이포인트_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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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딸기함께 끝까지 투쟁!Ⓒ오동필


113행진을 하자!고 했다. 전북지방환경청 앞 농성장을 출퇴근하며 밤이면 넋이 나간 채 들어오던 완두가 7월 중순 휴가를 다녀오고선 내놓은 구상이었다. 환경청에서는 정부의 입장을 대변할테고 이렇게 앉아서 결과를 기다릴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흔쾌히 함께 하자는 마음이 들었다. 새만금신공항 백지화를 위한 투쟁에 드디어 나도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기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성장에 자주 오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가지가지, 알알이, 칠성, 니키, 다운, 청명, 인디, 쌤, 연태, 토니가 함께 하겠다고 했다. 13명의 행진단원이 꾸려졌지만 준비하는데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법이 큰뒷부리도요를 구할 수 있을까? 아니, 구해야 한다고 선언하는 길에 큰뒷부리도요가 빠질 순 없지. 신유아활동가가 좁은 아파트에서 몸을 이리저리 굴려가며 만든 큰뒷부리도요가 군산에 도착하고 사람들이 쓰기 쉽게 가볍게 만든 새모자가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꿰매서 만든 몸자보가 하나둘 완성되고 있었다. 매일 잠을 잘 숙소를 마련하고 집회신고를 하고 각 지역마다 연대를 요청하고 홍보물을 만들고 수 많은 일들이 짧은 순간에 해결되고 있었다. 각자의 역할에 따라 불평하나 없이 일을 해준 행진단원들 덕분이다. 행진팀장 역할을 맡은 나는 행진대열을 잘 이끌어가면 될 일이었다. 너무 빨라도 안되고 너무 느려도 안되고 사고가 나서도 안되니까 맨 앞에서 속도를 조절하며 신나는 음악은 덤으로 해 길을 떠났다.전주와 군산은 아는 길이지만 서천부터는 전혀 모르는 새로운 길이었다. 오후에 행진이 끝나면 다음날 코스를 더덕과 함께 되짚어갔다. 가는 동안에도 더덕의 전화는 북새통이었다. 숙소를 내어준 성당에서 오는 전화, 경찰들에게서 오는 행진코스 확인전화, 연대하려는 사람들의 전화로 더덕은 쉴틈이 없었다. 그렇게 저녁이 되어서야 숙소에 도착하면 밥을 먹고 빨리 샤워를 하고나면 컴퓨터를 켜고 수라의 외침을 썼다. 큰뒷부리도요에서 상괭이까지 수라에 살고 있는 수많은 생명들을 모두 알리기에는 충분치 않았으나 22종의 조류, 염생식물, 포유류, 양서류, 저서생물들을 소개했다. 흔히 알고 있는 바지락부터 처음 들어보는 새들까지 수라의 생명과 사람이 연결되길, 이 모든 것들을 살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매일의 길에는 새로운 사람들이 찾아 왔다. 공동행동의 활동을 텔레그램을 통해 보고 있다가 행진단이 동네를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수라갯벌을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고 싶은 마음들이 우리뿐 아니라 수라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이었다. 세종 농성부터 함께 해 온 형석님은 맨 앞에서 깃발을 힘차게 흔들며 든든하게 걸어 주었다. 지역 민주노총 활동가들은 하루씩 이틀씩 빠지지 않게 참여해 주셨다. 점심이면 각자 준비한 도시락을 먹거나 김밥을 먹고 세종에서 농성을 시작할 때부터 함께 해온 은실님, 명이님, 순옥님의 정성스러운 점심이 미리 도착해 있는 날도 있었다. 금강이 흐르는 물길을 따라 온 여정을 통해 강과 갯벌의 연결 그리고 그 강을 지키려는 사람들과의 연결을 느낄 수 있었다. 경기도에 다다랐을 때 오랜시간 함께 알고 싸워온 대추리평화마을 신종원 이장님과 평택평화센터활동가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수원지역 활동가들, 민주노총 활동가들, 화물연대 활동가들이 하루를 비우지 않고 매일매일 함께 해 주셨다. 20년전 새만금 반대운동에서 만난 오랜 동지들의 모습이 하나둘 보일 때 마다 반가웠다. 그 옛날의 마음이 여전히 한켠에 등


114불처럼 살아 있었다. 닿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던 마음들이 행진에 나선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로 다시 맞닿았다. 그렇게 남태령을 향했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자는 요구가 다시한번 모였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가 지키려는 것들을 정성스럽게 만들어온 사람들이 모여 함께 연대했다. 그렇게 행정법원앞에 섰다. 삼일간 큰뒷부리도요의 여정을 따라 1만3천배를 올리자고 했지만 어느새 1만3천배를 훌쩍 넘어 3만배가 되고, 삼일간의 미사에 많은 사람들이 연대하며 자리를 지켰다. 정의로운 판결이 이뤄지길 바라는 초조한 마음이 취소판결로 환희로 바뀌고 알던 모르던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며 기쁨을 나눴다. 새,사람행진은 삼보일배가 없었다면,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의 꾸준한 활동이 없었다면, 영화 <수라>가 없었다면, 끈질기게 투쟁해 온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함께 해준 행진단원들 모두의 마음이 모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꺄르르 웃으며 깃발을 흔들며 행진에 흥을 더해준 흥진단 청명, 해당화, 제이. 행진단의 안전을 지켜줬던 가지가지, 토니, 니키, 식초, 회인. 매일의 행진을 기록해준 칠성, 오이, 설해, 토니, 인디, 재각. 매일매일 홍보물을 만들어 하루를 갈무리 하고 또 내일을 알릴 수 Ⓒ일곱째별


115있게 해 준 인디, 혜진, 희진. 유라시아를 자전거로 횡단하는 여행을 한 일은 큰뒷부리도요 집사가 되기 위해서 였다던 집사 알알이와 부집사 가지가지. 매일매일 시원한 물과 옥수수, 수박과 간식을 챙겨와 준 영길. 행진의 재미를 느낄 수도 없이 외로운 운전을 했던 다운. 고된 일과를 마치자 마자 행진에 합류했던 의료지원 선생님들. 전세계에 수라갯벌을 지키기위한 투쟁을 알리고 연대의 메시지를 받아 감동을 준 나희, 고사리, 세현. 며칠만 있으려다 행진의 늪에 빠진 망기와 전우물, 민주. 행진단 가장 앞에 서서 길잡이를 하고 온갖 경찰들의 참견을 견딘 더덕. 두 단장님 연태와 완두. 끝까지 서각기도로 든든히 기다려준 문정현신부님. 그리고 건강이 허락했다면 매일 달려왔을 문규현신부님. 흔쾌히 잠자리를 만들어주신 대전교구와 수원교구 신부님들. 길고 힘들었던 세종, 충남일정에 매일매일 함께 해준 대전충남세종 지역 민주노총 활동가들. 자신들이 받았던 국민들의 지지와 연대를 갚는다던 화물연대 경기본부동지들. 남태령을 넘을 때까지는 걱정말라던 민주노총 경기도본부와 수원, 경기, 화성지역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 서울에 있는 동안 매일 행정법원을 함께 지키고 잠자리와 먹을 것을 챙겨준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식구들. 미사와 기도로 함께 해 준 신부님들과 수녀님들 그리고 천주교신자분들. 그리고 행진에 달려와준 전국 곳곳의 생명을 지키고 사랑을 포기 하지 않는 수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 이 모든 실천이 행진을 가능하게 했다. 정부는 법원의 전격적인 사업취소 판결에 어리둥절하며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개발이익과 맞바꾸겠다며 초라한 주장을 계속 하고 있다. 아 직 싸 움 은 끝나지 않았다.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유가족들이 말하는 것처럼 참사는 반복되어선 안된다. 안타까운 희생으로 증명된 조류충동 위험과 그로 인한 새만금신공항 취소판결이 새만금 신공항 백지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함께 해 나가면 좋겠다. 수라갯벌은 여전히 뭇 생명에게 온전한 삶의 기회가 닿기를 기다리고 있다. Ⓒ오동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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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오동필


118목서윤


119<새,사람행진>이 시작된다는 건, 그 전 주 주말에 알게 되었다. 매일 30도를 우습게 넘기는 폭염 속에서, 새만금신공항 기본계획 취소 판결을 바라는 마음으로 260여 km를 오직 인간의 의지 하나로, 완결시키고 마는 행진. 소식을 접한 순간 머리에 스친 생각은, '이건 기록해야 하는데?'였다. 그렇게 부랴부랴 간단한 기획서를 작성해 행진이 시작하기 하루 전, 회사에 라디오 다큐멘터리 제작을 제안했다. 여담이지만, 나는 회사에서 주로 ‘라디오’ 업무를 맡고 있고, 기본적으로 여러 명이 팀을 이루는 ‘TV’와는 달리 ‘라디오’ 매체로 제작해야 승인 과정이 훨씬 순조롭다. “일단 맡겨 주면 예산도, 스탭도 없이 혼자 알아서 잘해보겠다”는 전략이 통했는지, 어렵지 않게 제작 결재를 받았다. 물론, 저예산에, “균형 있게” 다루라는 단서는 있었지만. 그리하여 <새,사람행진단>이 전주지방환경청에서 출발해, 새만금 수라갯벌을 거쳐, ‘시민 연대’의 상징이 된 남태령을 넘어, 최종 목적지인 서울행정법원까지 걷는 과정에 함께 했다. 모든 일정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기자회견이 열리거나 상징적인 장소를 건널 때는 녹음 장비와 여벌의 옷이 담긴 배낭을 메고, <새,사람행진>과 함께 했다. 행진단의 과정을 기록하겠다는 ‘취재’ 목적으로 참여했지만, 나는 행진 대열에 합류하자마자 그 일부가 되었다. 생명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선 사람들이 아닌가. 같은 곳을 향하며 손을 잡은 사람들 속에서 마음이 편해졌다. 뜨거운 태양 아래 아스팔트 길을 걸으며 행진의 얼굴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바라만 보아도 아름다운 이 현장에서 나의 역할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기록하고, 그 기록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 시민운동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수많은 투쟁의 현장은 내게도 ‘뉴스‘의 한 장면일 뿐이었다. ‘남의 일’이었다. 뒤늦게 조금씩, 연대의 손을 내밀어보았고, 나의 손을 잡아준 현장에 함께하면서 비로소 ‘나의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느꼈다. ‘남의 일’에서 ‘나의 일’. 모든 투쟁은 개별적인 것처럼 보이나, 근원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깨달음. 어쩌면 나의 역할은, 바로 이 돌이킬 수 없는 인식의 전환에 다리를 놓는 일 아닐까. 스스로 경험했기에, 높기만 한 마음의 벽을 허무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안다. ‘동질감’. 나와 너는 다르지 않으며, 우리는 ‘같은’ 바라고 있다는 걸 ‘알리면’ 누군가는 느끼고, 깨달을 것이다. 무관심과 편견의 벽을 부수고 작은 싹이 트게 하는 것, 그것을 나의 역할로 했다.<새,사람행진단>은 멀리서 볼 땐, 그저 ‘공항 신설’에 ‘반대’하는 환경단체로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는 알지 않나. 행진에 참여한 사람들은 쉽게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했다. 제주도민, 외국인, 고등학생, 부모 따라온 초등학생, 봉사하는 의료진, 책방지기, 종교인, 예술인... 한 달의 여정에 약 1,500여 명이 함께했다고 하니, 이 목록은 1,500개나 될 것이다. 이렇듯, 가까이서 보니 다 제각각의 사연과 이유로 이 자리에 모인 것이다. 그래서 각 참여자의 개생명의 편에서 고민과 고민


120인적인 사정에 집중했다. 이 투쟁은, ‘특정’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니고 이렇게나 다양한, 어디에도 있는 너, 나 우리의 일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각각의 사연, 개인의 서사가 모이며 만들어내는 숭고한 정신과 가치까지. 그 점을 기록하고자 했다.행진을 마치고 돌아오면 그야말로 기진맥진의 상태였다. 험한(?) 몰골로 회사에 복귀하자 누군가는 “잠깐 가서 인터뷰만 받아오면 되지” 왜 힘들게 함께 걷느냐고 했다. ‘취재’가 우선이지 않냐며. 그건 아니라고 했다. 언론사 입사 후 늘 마음이 쓰이던 점이 있다. 해를 넘기도록 해결이 안 돼, 어느덧 일상이 되어버린 지난한 투쟁의 현장이 아주 잠깐 ‘기타 뉴스거리’로 소비되고 마는 점. 많은 사안을 주어진 시간 안에 다뤄야 하는 언론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이번만큼은 ‘핵심’만 찍고 쑥 빠지는, ‘틀’ 안의 형식적인 취재를 하고 싶지 않았다. 행진의 과정 속,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모른다. 나는 행진의 일부가 되었고, 내가 보고 듣는 모든 과정을 기록했다.하루 일정이 끝나갈 무렵에는 '이만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다. 그럴 때마다 '한 번만 더'라며 녹음기를 켰을 땐, 담지 않았으면 끝내 기록되지 못했을 소중한 마음들이 터져 나왔다. 그래서 더욱, 손에 쥔 녹음기를 놓지 못했다. 막상 300여 개의 음성파일, 100여 페이지가 넘는 인터뷰 로그를 바라보고 있자니, 너무 주제넘은 일을 저질렀다는 부담감이 나를 눌렀다. 그때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생각했다. 다른 건 없다,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달하면 될 뿐이다. 마음을 달랬다. 편집을 시작하자 “균형 있게” 다루라던 상사의 말이 생각났다. 새만금 공항 사안을 ‘중립적’으로 다루라는 말이었다. 나는 이미 공공연한 신공항 반대론자이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객관화해 보았다. ‘중립적’으로 다룰 수 있는 사안인가. 답은 같았다. “생명을 지키는 일에 중립은 없다.” 길 위에서 만난 마음들을 토대로, 처음부터 내가 전하고 싶던 이야기에 집중했다.그렇게 고민과 고민, 편집과 퇴고를 거쳐 내놓은 것이 오디오 다큐멘터리, <생명의 편에서>.


121서울에서 새만금 국제공항 취소판결이 있던 날, 부끄럽게도 지역 언론은 단 한 곳도 현장에 없었다. 이번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과거 새만금 운동에 대한 자료를 찾아봐도, 그간 시민운동에 대한 지역 언론의 기록은 너무나 빈약했다. 그래서 더욱, '기록'의 힘에 대해 생각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잘 기록되어 오지 않은, ‘생명의 편에 선’ 사람들의 투쟁에 관한 기록이다. 그 기록 속에는, 역사에 남을 판결, 그것에 닿기까지 흘린 시민들의 땀과 눈물. 사라져 가는 가치를 끝까지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담겨 있다. 누군가는 해야 했기에, 마땅히 기록한 것뿐이지만 그래도 바라는 점이 있다면 우리 곁의 사람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들, 어쩌면 생계를 위한 시간 외 모든 순간을 온전히 쏟아붓는 그 간절함에는 어떤 정치적 목적, 개인의 이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평화, 사랑과 연대의 가치들을 지키기 위한 것이란 것. 적어도 누군가는 우연히 접한 이 기록을 통해 무지했거나 외면했던, 혹은 오해하고 왜곡했던 시선에 작은 균열이 생기기를 바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꺼이 모든 것을 내던지는 이 투쟁의 당사자들이 작품을 통해 잠시나마 위로를 받는 것이다.지역 라디오라는 매체 특성상, 대단한 반향과 영향력, 혹은 공들인 만큼의 관심조차 없을 것이란 건 안다. 다 알고 시작한 작업이지만, 막상 우리의 뜨거운 기록을 세상에 내놓고 나니, 조금만 더, 많은 이들이 시민운동의 의미와 이유를 접했으면 하는 욕심이 생긴다. 기록은 남겨 놓았다. 언젠가는 누군가에, 기꺼이 닿을 것이다. 행진이 끝나고 어느덧 계절이 바뀌었다. 함께 하는 순간마다 웃음과 희망이 솟았던 현장. 포기할 수 없는 가치들을 지켜내는 사람들과 함께한, 나에게는 더없이 값진 성장의 시간이었다. 다큐멘터리에 인터뷰를 해주신 모든 분의 음성을 담을 순 없었다. 그러나 한 분, 한 분의 소중한 마음과 발언들이 모여, 한편의 기록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모든 인터뷰를 몇 번이고 다시 듣고, 읽고, 생각했다. 전해주신 모든 마음은 지금도 내 노트 속에, 내 가슴 속에 남아있다. 혹시나 이 글이 닿을까, 인터뷰이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새,사람행진단>에 고마움을 전한다. 여러분의 환한 미소와 협조, 배려 덕분에, 하늘을 나는 새의 마음으로 행진에 함께 할 수 있었다. 한편으론, <새,사람행진>은 막을 내렸지만, 우리가 외치던 구호들은 여전히 울려 퍼지는 중이다. 앞으로 더욱 결속과 단결의 시간이 요구되고 있다. 그 길에도 함께 할 것이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계속 고민할 것이다. 그렇게 이번 여름, 길에서 만난 따뜻한 인연들과 또다시 닿을 것이다.


122the end of the road(to)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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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새,사람행진>의 포스터와 일정표를 받아보고 두근 두근 가슴이 울렸다. 곧 새만금 신공항 기본계획 취소소송 판결이 나온다. 1308명의 국민소송인단이 몇 년을 붙들고 있던 소송이다. 나는 원고로 참여하지 않았지만 몇십 분의 재판을 방청하기 위해 군산에서 서울로 대여섯 시간을 오가기도 했다. ‘취소하라’ 라는 승소판결이 속시원하게 나올 것을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유튜브로 보았던 이십여 년 전의 판결, 새만금 사업을 계속하라는 대법원 판결의 냉혹함이 생생하다. 그때처럼 다시 패소 당하더라도 가만히 앉아서 있을 수만은 없다. 세종시 환경부 앞에서 시작한 천막농성은 전주시 전북지방환경청 앞으로 옮겨와 1300일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환경영향평가에 부동의하라’ 선전전에 일주일에 한두번 참여하고 있지만, 말뚝에 메인 것 같은 답답증이 있었다. 이제 막힌 가슴을 뚫어줄 바람이 불어온다. 서울을 향해 걷자고 한다. 새만금 신공항 취소 판결을 바라는 뜻을, 우리의 염원을 알리며 서울로 향하자고 한다. 그래, 가자. 기꺼이 간다, 나도 바람이 되어 간다. 전 일정에 참여하지 못하고 몇 날만 가더라도 가기는 간다. 가겠다고 마음먹기는 어렵지 않았지만, 걱정 많은 겁쟁이는 부딪혀보기 전에 갖가지 고민거리부터 챙겨든다. 내가 걸을 수 있을까? 친구를 만들 수 있을까? 패소를 견딜 수 있을까? 행진이 끝나고 한 달이 지난 지금, 그때의 나에게 속삭여주고 싶다. 그렇다, 라고. 모두 가능했다고. 걸을 수 있을까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아이템은 런닝이다. 건강한 생활을 위해 중장년층에게 인기를 끌었던 걷기보다 핫하다. 런닝은 철저한 자기 관리의 표상으로 청년층으로 확산되어 대세 중의 대세가 되었다. 전국의 공원과 운동장이 런닝크루들로 붐벼도 나는 뛰지 않았다. 걷기도 런닝도 즐기지 않으니 일정표가 나오자마자 거리와 시간을 확인해도 1km 걷기도 10km 걷기도 가늠이 되지 않는다. 내가 걸을 수 있을까? 장년의 속도에 맞춰 진행할 것이고, 무리가 되지 않도록 쉬는 시간도 충분히 가질 것이라는 안내문이 있었다. 체력조건이 나쁘지 않아도 나처럼 투정부리는 사람들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영 힘들면 뒤따라오는 차량에 잠시 몸을 의탁할 수 있다고 하니 일단은 도전이다. 집중 행동이 필요한 날짜를 중심으로 네개의 날짜에 표시했다. 그중에 둘은 출발지에서 행진팀을 배웅할 계획이었다. 계획은 계획일 뿐이었다. 총 9번의 일정에 참여했고 얼굴을 까맣게 태워버렸다. 일김규영나는 새 사람이 될 수 있을까


125상을 조정하여 전일정에 참여했어야 한다고 후회했다. 걷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내가 터득한 걷기 요령은 코어와 골반에 있었다. 가능한 골반을 실룩실룩 흔들지 않고 허벅지가 움직이도록 했다. 뱃심을 단단히 하고 허벅지를 옮기면 때로 발이 땅에 닿지 않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골반은 춤을 출 때 사용한다. 행진을 앞장서는 큰뒷부리도요는 자전거에 미니 스피커를 싣고 간다. 행진팀장 딸기가 외치는 구호와 연설을 비장하고 때로 재치넘치게 널리 전달하는 중요한 기계장치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노래들은 잠시나마 딸기 팀장의 목이 쉴 수 있도록 했고, 걷기 요령에 집중하던 골반을 위아래로 들썩이게 했다. 전북지방환경청 앞에서도 여러 번 들었던 <난 바다야>, <나는 수라(나는 문어)> 노래에 허벅지까지 힘이 솟아 껑충이며 갖가지 스텝을 저절로 수행하게 된다. 이때도 잊지말아야 할 것은 코어다. 뱃심을 단단히 챙겨야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 타령풍의 <새만금 신공항 함께해요 백지화>가 흘러나오면 상체 운동까지 가능하다. 18절에 이르도록 두 팔을 높이 뻗어 좌우로 흔든다. 어깨 힘을 풀고 옆구리 스트레칭도 하면서 가사를 따라부르면 새만금 신공항의 실태를 익힐 수도 있다. 딸기 팀장은 행진 반려곡의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가요를 포함시켰다. 처음 듣는 노래여도 가사와 곡조가 행진에 맞춤하여 골반의 움직임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이상은의 노래(제목 알려주십시오. 또 듣고 싶어요.)처럼 움직임을 진정시키는 선곡도 적절히 섞여 있다.집에서 챙겨간 나의 타악기는 흥을 돋우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 악기가 뭐냐고 묻기에 다음과 같은 고정 답변을 준비했을 정도였다. “이것은 동남아시아에서 자라는 어느 커다랗고 독성 때문에 못 먹는, 발효시켜야 먹을 수 있는 열매의 씨앗의 껍질로 만든 악기입니다. 제가 직접 만든 것 아니고요, 언니가 사는 캐나다를 방문했을 때 들렸던 세계음악악기가게에서 구입한 것으로 이름은 몰라요.” 인사동 같은 밴쿠버 그랜빌의 가게에서 산 악기의 이름은 팡지씨드쉘(pangi seed shell)이다. 자갈자갈자갈거리는 타악기는 시원한 파도소리 같아서 단순한 박자로 흔들기만 해도 걸음에 기운을 넣어주었다. 너무 흔들어대서 도로록 도로록 바닥으로 여러 개가 떨어졌다. 너덜너덜해진 껍질들을 노끈으로 엮는 수선작업이 필요하다. 탬버린과 북, 그리고 자갈 넣은 빈 페트병까지, 내 손으로 내는 소리는 특히 오르막 오를 때 유용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손 안에 쏙 들어오는 에그쉐이커도 좋았겠다.새,사람행진의 흥을 도맡은 흥진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체력과 에너지가 유난히 뛰어나서가 아니라, 흥이 없으면 걷기를 힘들어했기에 자연발생한 고육지책이었다. 경쾌하게 탬버린을 흔드는 완두에게 물었다. 그는 새,사람행진을 처음 제안한 평화바람의 일원이다. 제주 강정에서 10년을 넘게 살며 구럼비 바위를 깨부수는 해군기지에 반대하던 평화바람, 주민들의 손으로 직접 일궈온 평택 대추리의 옥토를 미군기지에 내주라는 국가의 결정에 반대하며 버텼던 평화바람. 언론은 그들을 ‘전문시위꾼’이라고 불렀고, 국가 발전을 가로막는 ‘발목잡기’라고 불렀다. 세상일에 무관심한 나도 그런 줄 알았다. 그들은 바람이었다. 소수의 결정권자가 세운 공고한 벽을 흔드는 바람이었다.


126ⒸSANGFUN


127어린 완두의 별명이 까불이였단다. 오래 몸담았던 노동운동을 떠나오면서 경직된 몸이 풀어지고 흥바람이 살아났다. 문정현 신부님이 군산의 공항 활주로 사용료 인상에 저항하며 시작한 우리땅찾기시민운동이 SOFA개정 요구로 확대되며 상경투쟁을 시작했을 때, 완두는 유랑단을 제안했다. 평화를 염원하는 뜻을 알리기 위해서 연설 보다 이야기와 대화로, 대자보와 구호 보다 그림과 노래로 다가서길 제안했다. 탁월한 까불이 감각은 자유로움과 섬세함을 키워냈고, 다양한 삶의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점차 바람에 안겼다. 완두는 원조 흥진단이었다. 평화바람유랑단의 시작은 손수레였다.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는 구호는 전쟁처럼 차갑지 않았다. ‘이라크에 총이 아닌 꽃을!’ 꽃마차 유랑단은 전국을 돌며 제 땅을 잃고 제 일터와 삶터를 잃은 이야기를 들었다. <평화가 무엇이냐> 노래는 소박한 염원을 바라는 마음을 읽은 신부님의 귀기울임에서 나왔다. 길을 걸을 수 있었다. 2003년에도 새만금 갯벌 살리기를 위한 행진이 있었다. 문규현 신부, 수경 스님, 김경일 교무, 이희운 목사. 네 분의 성직자는 해창갯벌에서 청와대까지 65일간 엎드려 절하며 걷는 삼보일배의 길을 걸었다. 지켜보는 사람들이 모두 눈물을 훔치며 안쓰러워하고 죄스러워했다. 참회였고 수행이었다. 삼보일배는 개발과 성장밖에 모르던 대한민국에 경종을 울렸다. 개발 패러다임을 생명 패러다임으로 바꾸는 역사적 계기가 되었다. 이후 새만금과 같은 대규모 간척사업은 허용되지 않았다. 22년 전과 달리, 새만금에 아직 남아 있는 수라 갯벌을 지키기 위한 2025년의 걸음은 경쾌하다. 갯벌을 살리고, 갯벌을 서식처 삼아 살아가는 생물들을 살리고, 필요 없는 공항을 짓지 않는 것은 이제 상식이기 때문이다. 주먹을 쥐고, 구호를 외치고, 구호 끝에 투쟁!을 외치는 '전문시위꾼'은 자랑이 되었다. ‘데모’는 당연하고 상식적인 행동이기에 우리의 행진은 즐겁지 않을 수가 없다.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해 구호물자를 전달하는 배에 탑승한 해초는 이렇게 말했다. 바다의 물길은 어디로든 연결되어 있고, 배에서 내리지 않는 이상 팔레스타인 연안까지 가는 것도 전혀 불법이 아니라고 했다. 길이 있음에도 길을 걷지 않은 나를 깨우는 말이었다. 어렵지도 않고 지극히 당연한 말이었기에 진정한 죽비였다. 우리는 수라갯벌에서 서천 갯벌로, 부여와 공주, 세종으로 이어지는 금강을 따라 걸었다. 강은 머뭇거리지 않고 물길을 흐른다. 나는 자동차의 것, 기차의 것, 비행기의 것이라고 여기며 길 앞에서 몸의 걸음을 멈추었다. 1km를 걷고 100km를 걷는 길이의 문제가 아니었다. 새,사람행진의 걸음은 단 한 발자국이어도 내 자신의 뜻으로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걷는 행위였다. 우리는 생명의 방향으로, 사랑의 방향으로 길을 걷기로 했다. 나는 길을 걸을 수 있었다. 나는 바람이 되었다. 패배를 견딜 수 있을까문정현 신부님은 몇 번을 말씀하셨다. 한 번도 이기는 싸움을 해보지 못했다고. 또 몇 번을 중얼거리셨다. 이제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팽팽문화제에서, 전북지방환경청에서, 그리고 군산의 한길문고 선전전에서 담배 연기 잦아들 듯 뱉는 말씀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랐다. 이번에는 이길 거예요! 섣부르게 확언하지도 못했고, 만수무강하실 겁


128니다! 철없게 웃지도 못했다. 투쟁하는 사람들 근처에 막 닿은 나는 체념과 냉소가 두려웠다. ‘새만금 신공항 취소 판결을 바라는 새,사람행진’에 신나게 뛰어들었지만, 승소를 기대하는 설렘보다 패소를 각오하는 긴장감이 컸다. 9월. 새,사람행진이 서울에 도착했다. 나도 서울 가는 일정을 남편에게 통보하자, 그가 말했다. “그걸 뭘 또 가? 그런다고 뭐가 바뀌나. 그냥 할만큼만 해.” 그에게 나는 “무슨 소리야! 당연히 바뀌지!” 라고 일갈했어야 했다. 그러나 아무 말 하지 못했다. 속내를 들킨 것 같아 움찔했다. 화를 내기는커녕 서둘러 서울 일정이 꼭 필요하다며 해명을 늘어놓았다. “법원에 도착하는 날 기자회견에 머릿수를 보태야지. 법원에서 30,000배 하기로 했으니 한 번이라도 동참해야지. 내가 절은 잘하잖아. 게다가 11일 목요일은 선고가 있는 날인데 어떻게 안 가. 그럴수록 같이 있어야지.” 말로는 이길 거라 호언장담했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패소를 예상했고, 그 결과가 두려웠다. 패소라는 결과 앞에서 내가 돌변할 것 같아 두려웠다. 새만금 신공항 반대해야 한다며 냄비 끓듯이 갑자기 뜨거워져서, 선전전에, 기자회견에 뛰어들었던 내가 패소라는 현실 앞에 금세 식어버릴 것 같았다. 칼같이 뒤돌아서는 이기적인 내 뒷모습이 얼마나 초라하고 뻔뻔할까. 그러니 판결은 반드시 승소였어야 했다. 현실 가능성 낮은 소망을 입 밖으로 외칠 수록 패배에 대한 내 두려움이 커졌다.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패배의 절망에 대비하려고 했다. 싸워도 싸워도 이기지 못하는 싸움을 해서 뭐하나 싶은 무기력에 빠져드는 것이 두려웠다. 패배를 새롭게 바라보게 된 것은 남태령을 넘어가는 날이었다. 중요한 날이라고 완두가 행진 시작부터 강조하던 날이었다. 어설퍼도 좋으니 눈에 띄게 수라의 생물을 표현하는 모형을 만들어 보라고 다그치기도 하고, 맨몸으로 와도 좋으니 꼭 오라고 구슬리기도 하던 날이었다. 몇 달 전에 기획한 이문재 시인 북토크를 진행하는 일정 때문에 군산에 있어야 했다. 어려웠다. 못 간다고 몇 번씩 고개를 저었지만, 뜨거운 행진에 참여하면 할수록 내 고개짓은 어느새 끄덕임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결국 빠듯하게 오가는 일정으로 9월 5일 아침, 안양의 인덕원역에 도착하기에 이른다. 새벽 기차를 타고 도착한 인덕원역부터 흥진단원들이 깃발과 탬버린으로 환영해 주었다. 그들을 보는 순간 눈물이 솟구쳤다. 열흘 만이었다. 그동안 행진이 몹시 그리웠다. 고작 할 수 있는 것은 단톡방에 올라온 사진에 ’좋아요‘와 ’엄지 척‘을 누르는 것 뿐이었다. 행진단의 더 끈끈해진 모습이 부러웠고, 긴 여정에도 씩씩한 모습이 고마웠다. 각기 다른 길의 삶을 살던 사람들이 큰뒷부리도요를 지키고, 수라갯벌을 지키고, 사랑의 연대를 지키기 위해 이 곳에 모였다. 같은 뜻을 위해 한 자리에 모인 사람들, 동지同志였다. 우리는 트랙터 농민단이 매번 좌절했던 그 남태령에 섰다. 한번도 서울 진입에 성공하지 못했던 트랙터는 지난 겨울, 탄핵 찬성을 외치는 응원봉 군단에 힘입어 마침내 서울 입성의 감격을 누렸던 그 남태령에 섰다. 응원봉만큼 다채로운 목소리의 깃발이 여름의 남태령에 함께 했다. 우리는 각국의 언어로 ’동지‘라고 쓰인 노란 피켓을 들었다. 이미 지구에서 멸종한 생물의 모습을 그린 피켓이다. 지


129Ⓒ오동필


130난 2023년 광주 비엔날레 <세대간 기후범죄 재판소: 멸종전쟁>의 재판정을 지켰던 피켓이다. 남태령은 수많은 싸움에 지고 지고 또 지고 말았던 패배의 동지들로 가득했다. 새,사람행진은 열흘 전, 우금티 전적비를 지나왔다. 백여 년 전, 이 땅의 주인으로서 사람답게 살고자 일어선 농민들이 관군에 의해 사살된 우금티였다. 그러나 녹두장군 전봉준의 생애를 중심으로 동학 혁명의 대서사시를 집필한 시인 신동엽은 동학의 패배를 절망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이제 오리라.갈고 다듬은 우리들의푸담한 슬기와 자비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우리 세상 쟁취해서 반도 하늘 높이 나부낄 평화, 낙지발에 빼앗김 없이. 우리 사랑밭에 우리 두레마을 심을, 아 찬란한 혁명의 날은 오리라 겨울 속에서 봄이 싹트듯우리의 마음속에서 연정이 잉태되듯조국의 가슴마다에서,혁명, 분수 뿜을 날은 오리라.신동엽 <금강> 중에서 뜨거운 남태령의 햇살을 받으며 처음으로 패배를 감당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우리의 싸움에서 패배는 처음이 아니었다. 나만 패배를 겪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곧 승리만 취득하겠다는 오만이자 어리석음이었다. 어찌 승리만 있을 수 있는가. 나는 패배할 수 있다. 심지어 죽을 수 있고, 멸종할 수 있음이다. 앞선 동지들은 숱한 패배를 겪었다. 농민의 트랙터는 남태령을 넘지 못했고, 동학농민의 피울음을 열흘 전 새사람행진이 지나왔던 공주 우금티 전적비에서 듣지 않았던가. 지난 겨울, 무안공항 제주항공의 버드스트라이크로 유명을 달리한 새와 사람 역시 우리의 동지였으며, 이미 서식처를 잃어 노란 피켓의 멸종 생물들이 우리의 동지가 아니었던가. 내게는 패배의 동지가 있다. 그러니 패배가 두렵지 않다. 패배의 선구자들이 내게 용기를 준다. 패배가 쌓이는 동안 동지들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패배를 감당하는 평범한 사람들, 넓은 스펙트럼의 다양한 사람들로 확장하고 있다. 다음 세대를 위해, 자녀와 자녀의 자녀를 위해 건강한 지구를 물려줘야 한다고 한다. 나 역시 출산 이후에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 달라졌다. 그럼에도, 빙하기의 지구는 점점 뜨거워지고 결국 해수면은 높아지고 지진과 폭우와 태풍과 산불과 같은 재난이 잦아진다. 결국 모든 생물의 서식처는 사라지는 결말은 정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나 한 사람의 힘으로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삶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를 바꿀 수 있다. 나는 내 삶의 패배가 두려웠다. 제대로 이룬 것이


131없이 한심하고, 뭘 해도 끝까지 가지 못하고 도중하차하는 내가 하찮았다. 가진 것 없어 배가 고프고, 몸이 아파 불편하고, 누군가에게 의탁해야 하는 무능력이 부끄러웠다. 그러나 ‘고작’ 새 한 마리가 알려준다. 생존의 투쟁은 패배가 아니라고. 서식처를 잃고, 휴식처를 잃어 목숨을 잃었던 수많은 멸종 생명체들은 무기력하게 자신의 삶을 방치하지 않았다. 그들은 죽음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날개짓을 멈추지 않았다. 막힌 방조제에 갇혀 바닷물을 기다리던 조개는 짧게 유통된 빗물 한 방울을 향해 모래를 뚫고 나와 전몰했다. 비록 죽음에 이르렀으나 생을 위해 치열한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니 내 삶의 여정은 더 이상 부끄럽지 않다. 나는 매순간 호흡의 기적을 일으키는 귀한 생명이니, 나를 보존하기 위해 분투하는 나의 삶을 사랑한다. 나는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지는 싸움이 두렵지 않다. 내게는 생명의 동지가 있다. ⒸTONY


132Ⓒ Ihaya Tomoyo


133오랜 기억들의 소환 1999년 겨울은 이른바 “뉴 밀레니엄”의 새아침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났다. 김제에서 살고 있던 나는 망해사(望海寺)로 해돋이를 보러 갔는데, 바다가 보이는 절이라고는 하지만 서해안이었기 때문에 해는 바다가 아니라 육지 쪽에서 떠올랐다. 어린 마음에 그게 살짝 실망스럽기는 했지만 소소한 추억으로 남았던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곳에서 보이는 것은 바다가 아니다. 새만금 간척 사업 이후 김제의 해안선이라는 것은 군산과 부안을 연결한 33.9km의 방조제의 어느 한 구간으로 결정되었다. 한 도시에서 바다라는 것이 통째로 없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어려웠다. 고등학교 때 처음 영상 제작을 배우고 친구들과 뮤직비디오를 찍으러 갔던 심포항도 달라졌다. 백합이 활발하게 나오던 바닷가 항구는 이제 민물에서 사는 재첩으로 명맥을 유지한다. 타지에서 대학 생활을 하던 20대 때 카메라를 들고 다시 찾아온 새만금 갯벌은 충격적이었다. 보드랍게 발가락 사이로 스미는 갯벌이 아니라 마른 땅이 단단하게 느껴졌고 그 표면은 갈라지고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갯벌이라면 자기 집 앞마당처럼 다니며 맨손어업을 하던 어민 한 분이 물막이 공사가 끝나고 달라진 바닷길의 속성 때문에 그만 사고를 당하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많은 연대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그분이 끓여주신 백합탕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었다. 지금은 어렴풋이 섬의 경계선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곳을 지나 계화도 안으로 들어가자 이 모든 기억이 소환됐다. 주민들과 함께 백합탕을 끓여 먹던 교육공간 ‘그레’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건물 외벽에는 새만금 물막이 공사를 막던 당시의 모습이 담긴 벽화와 함께 “도요 도요 도요새 도와달라 외치네”라고 하는 노랫말이 적혀 있었다. 2004년 삼보일배 당시에도 많이 불렸고 요즘 새,사람 행진을 하면서도 자주 부르는 노래다. 계화도에 함께 촬영을 하러 갔던 노희정 감독은 마을회관에 삼삼오오 모여 계신 어르신들께 이야기를 청하며 이렇게 말했다. “저희 세대가 나중에는 여기가 바다였다는 것도 모르게 되잖아요.” 어차피 세상은 계속 변하고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이거나 최근의 것들뿐이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려고 하는 것은 이런 것들을 기억하기 위해서다.사실은 한번도 멈춘 적 없는 삶. 수많은 사람들이 절박하게 싸웠지만 막지 못했던 새만금 물막이 공사가 끝나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떠난 후에도 고향을 지키며 잘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 아직도 바다를 기다리는 이야기. 새만금 신공항 반대를 이야기 할 때 우리가 함께 기억했으면 하는 것들이었다. 김설해<미디어로 행동하라 in 새만금>을 함께 하며


134새,사람행진과 함께 미디어로 행동하기새,사람행진을 떠난다는 이야기를 출발 한 달 전 쯤 들었다. 잘 된 결정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촉박한 시간동안 무엇을 준비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됐다. <미디어로 행동하라>는 미디어 활동가들이 함께 모여서 현장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알리며 연대하는 공동제작 프로젝트인데, 그동안은 현장과 호흡하기 위해 최소 3개월의 준비 기간을 가져 왔었다. 남은 시간은 한 달. 새만금 신공항이 초래할 생태 기후 위기, 전쟁 위협, 조류 충돌의 위험성을 알리면서, 동시에 행진의 과정을 기록하는 활동을 해볼 수 있을까? 하겠다는 사람이 딱 다섯 명만 있으면 해보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다섯 명의 사람들이 너무도 흔쾌히 함께 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미디어로 행동하라 in 새만금>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새,사람행진 기간 동안 주제별 영상을 제작하는 팀과 행진을 기록하는 팀으로 나누어 움직이고, 영상 작업과 더불어 잡지팀도 꾸려져 <주간 새사람>을 발행했다. 혼자라면 엄두도 못 냈을 일이지만 여럿이 모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그다지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온몸으로 보고 듣고 느낄 때 비로소 무언가를 깨닫게 되는 편이다. 어쩌면 그래서 카메라를 들고 자꾸 현장을 찾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보고 듣고 느낀 현장의 풍경들을 새,사람행진을 통해 새만금 신공항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33.9km라는 새만금 방조제라는 게 도대체 얼마나 긴지, 그 일대가 얼만큼 난잡하게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미군기지와 새만금 신공항 예정부지인 수라갯벌은 도대체 얼마나 가까운지, 거기에 새는 또 얼마나 많은지. 이런 것들을 눈으로 보고 나면 도저히 신공항 건설이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 명백해진다. 그래서 행진단이 점점 서울을 향해 갈 때도 제작팀은 새만금 일대와 이곳저곳을 다니며 촬영을 진행했다. 때로는 행진단과 함께 걷고 다시 군산으로 와서 인터뷰나 현장 촬영을 한 다음 새벽에 다시 행진이 시작되는 충청도 어디께로 왔다 갔다 하기를 반복하는 날들도 있었다. 조금 고생스럽더라도 모두가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 이때, 각자의 미디어를 가지고 뭔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기뻐하며 프로젝트 참여자들은 피곤한 줄도 모르고 현장을 오가며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참여자들 중에는 팽팽문화제를 비롯해 수라갯벌이나 전북지방환경청 앞 농성장에 종종 찾아오는 분들도 계셨지만, 새만금 신공항의 문제를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현장에 찾아온 것은 처음인 분들도 계셨다. 그분들과 함께 수라갯벌의 새들과 그 너머에 보이는 군산 미군기지를 찍고, 미군기지 탄약고 때문에 살던 곳을 떠난 주민의 이야기를 들었다. 기지 앞에서 주민을 인터뷰 할 때는 미군과 경찰이 잔뜩 출동해 촬영자의 신분과 촬영본을 확인하는 웃지 못할 헤프닝도 있었다. 새만금 간척 사업으로 바다가 없어진 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상시 해수유통을 바라는 어민들, 잘못된 곳에 지어진 공항으로 인한 참사가 더 이상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유가족을 만났다. 그분들이 어렵게 입을 떼고 건네준 이야기들은 너무나 소중했고 우리에게 힘을 주는 이야기들이었다. 행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걷고 있는지도 들었다. 온 힘을 다해 웃으며 즐겁게 끝까지 걸어온 사람들이 속으로는 무너질 것 같은 마음을 애써 다잡고 왔다는 것, 작


135은 것에 감동하고 의지하며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9월 11일 새만금 신공항 취소 소송의 선고 전날 밤,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 지하 강당에 모여 마침내 완성한 영상들을 함께 보고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선고를 앞두고 분위기가 무거워지진 않을까 걱정도 됐지만, 그보다는 함께 걸어온 사람들이 그동안 걸어온 길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시간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다음날엔 승소의 기쁨이 넘치는 현장까지 기록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새,사람행진은 끝났지만 <미디어로 행동하라 in 새만금>은 이제 상영 활동을 시작한다. 총 6편의 단편과 행진 과정을 기록한 영상들을 하나로 묶어 86분 길이의 옴니버스 다큐멘터리로 만든 결과물을 부산, 안동, 순천, 전주 등지에서 상영했다. 행진단에 함께 해주신 분들이나 인터뷰에 응해주신 주민 분들을 모시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아 만들어낸 소중한 기록이 좀 더 널리 퍼질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의 싸움은 아직 진행 중이고 이 이야기들은 언제나 우리를 다시 묶어줄 것이기에. ⒸTONY


136알알이흐름에 얹혀 이어가기 Ⓒ이재각


137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느낌이었다. 9월 11일의 판결에. 법원에서 판결을 들으면서, 올해 초 탄핵 인용 때처럼 판사님이 내 말을 해주는 것 같은 느낌에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더니, 무안공항 사고가 언급되었을 때, 민물가마우지, 기러기, 오리..가 하나하나 불릴 때, 걷잡을 수 없어지더니, \"이 사업을 통해 달성하려는 공익이 침해될 공익을 상쇄할 만큼 중요하다고 평가할 수 없다\"는 대목에서는 흑흑대는 울음이 터졌다. 2006년의 새만금 사업 취소소송의 판결문이 생각나면서, 명확하지 않고 증거도 없는 환경 피해와 비용을 근거로, 공익을 위한 국책 사업을 중단할 수 없다고 했던 그때와, 지금이 다르다는게 실감이 나서, 세상이 과연 달라질까, 했는데 달라지는구나 싶어서. 그 끝이 이렇게 맺어질 줄은 대부분은 전혀 몰랐던 이들이 준비하고 걸어온 행진의 과정도 승리였다. 이렇게 긴 여행을 이렇게 많은 이들과 해본 것은 평생 처음이다. 이렇게 재밌을 줄 몰랐다. 내가 살지 못한, 보지 못한 길을 걸어온 하나하나 독특한 이들과 이 새,사람행진이라는 교차점에서 만나, 안해봤던 것을 해보았다. 지나치는 무심한 사람들에 웃으며 인사를 해보고, 탬버린 소리, 환호소리와 몸짓에 몸을 더 흔들어보고, 고공농성장에 동행해보고, 마음으로만 안타까워했던 팔레스타인을 위한 구호를 외쳐보고, 사람들의 걸음에 맞춰 천천히 자전거를 타면서 앞만이 아니라 옆과 뒤를 돌아보는 리듬을 익혀보고, 큰뒷부리도요와 함께 그간 길을 가면서는 큰 관심 두지 않았던 새를, 거미를, 매미를, 뱀을, 지렁이와 게를, 짱뚱어 등등을 보면서 오면서, 나는 변화했다. 참 많이 배웠다. 행진이 끝나고 돌아온 도시에서도, 이따금 새를 보고 풀벌레 소리를 듣는다. 이전보다는 좀더 가만히 보고 들을 수 있는 눈과 귀를 얻은 것 같다. 내 영역은 아니라 생각했던 노동과 평화 운동에 연결감을 느끼게 되었다. 환경도 노동도 평화도, 인권과 동물권 운동도, 자신이 발딛고 설 수 있는 땅, 자기 삶의 자리를 지키려는, 살고자 하는 움직임이 아닐까 느끼며...이렇게 더 연결된 것들로 인해, 나의 자유로웠던 일상이 좀 변하게 되지 않을까, 느끼게 되었다. 약간 부담스럽기도 하고, 약간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살아볼만 하겠다 싶기도 하다. 무리를 지어 함께 걷는 것이 행진이라면, 행진을 함께 했던 이들과 어떤 형태로든 이후의 삶에서 행진을 계속해나가고 싶다. 내가 즐겁게 행진할 수 있었던 것은, 새,사람행진을 기획하고 준비했던 이들이 판을 깔아준 덕분이고, 이 판이 형성되기까지 농성장 지킴이, 선전전, 갯벌 조사, 갯벌 방문, 기자회견과 보도자료 배포 등 각종 방식으로 운동해온 이들이 - 거슬러올라가면 5년 전으로, 또 더 거슬러 가면 20여 년 이상을 가는 -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운동의 구심점이 된 갯벌이, 또 척박하게 바뀐 터전에서도 삶을 이어왔던 큰뒷부리도요와 흰발농게가, 무수한 생명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나는 그들이 만들고 이어내온 흐름에 얹혀왔다. 그들에 부끄럽지 않게, 판결 이후로도 이어질 그 흐름에서의 나의 역할을 고민하며 행진하고 싶다. 큰뒷부리도요를 포함한 새사람행진단과, 행진단을 가능케한 모두들께 사랑을 전하며.


138이재각불탄 숲과 뜨거운 아스팔트


139지난 봄, 경북 의성에서 일어난 산불은 내가 살고 있는 안동을 거쳐 영덕 앞 바다에 떠 있는 배를 태우고 나서야 꺼졌다. 꺼졌다기 보단 바다를 만나 더 이상 태울 것이 없어 멈췄다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불이 휩쓸고 간 자리는 처참했다. 마을의 집들은 검게 타고 폭격을 맞은 듯 무너져 내렸다. 봄에 꽃피어야 할 사과나무도 검게 말라버렸다. 숲은 가지만 앙상히 남은 새까만 나무들과 허옇게 드러낸 경사면으로 인해 벌거숭이가 되었다. 생명을 잃은 숲을 보는 것이 얼마나 상실감이 큰지를, 또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게된 시간이었다. 그런데, 사람과 새들마저 떠난 적막한 공간에 시간이 지나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숲이 연두빛으로 물드는 것이 아닌가. 산불에 비교적 강했던 참나무류의 나무들은 어린 잎을 내밀기 시작했다. 큰 나무들에 가려지고, 낙엽에 덮여 십년이고 이 십년이고 볕을 기다렸을 땅속의 씨앗들이 싹을 틔웠다. 산불피해를 입은 의성 고운사 사찰림에 설치된 영상카메라에도 놀라운 장면들이 담겼다. 삵과 족제비, 멧돼지, 너구리부부와 오소리가 나타났다. 노루와 고라니는 계곡물에 목을 축이고, 새들은 물에 몸을 담궈 씻는다. 짝을 지은 담비가 똥을 싸놓으며 영역을 표시하는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자연복원 중인 고운사 사찰림에 야생동물들이 돌아오고 있다. 여름이 오고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불에 탄 숲을 관찰하는 동안, 마을 주민들도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봄에 파종한 농작물을 가꾸고, 마을을 재건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며, 피해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제대로 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그 무렵 ‘새,사람행진’ 소식을 들었다. 문정현 신부님이 전북 전주에서 서울행정법원까지 걷는다고 했다. 전주에 있는 전북지방환경청 앞 농성장에 가만히 앉아 새만금신공항 기본계획 취소 소송의 결과를 들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새만금의 갯벌은 바다와 단절되어 죽어간다. 엎친데 겹친 격으로 국토부는 수라갯벌 위로 신공항 건설을 계획했다. 온갖 새들과 물살이들의 삶터. 갯벌에 들고, 숲길을 걷다보면 다양한 얼굴의 발자국들을 만나게 된다. 밥을 먹으러 왔거나, 새끼를 나아 기르기 위해 왔거나, 잠시 쉬어가기 위해 왔을 발자국들. ‘새,사람행진’은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남긴 사람들의 발자국 같은 것 아니었을까. 숲과 갯벌 안의 삶이 우리와 무관한 것이 아님을 깨달은 사람들이 새의 마음으로, 삵의 마음으로, 백합의 마음으로 한걸음 한걸음 내딛은, 그들과 동지가 되고자 한 인간들의 반성과 책임감. 함께 살겠다는 다짐. 그래서였나, 한 낮의 열기보다 뜨거운 구호와 함성이 나에겐 처절한 울부짖음으로 다가왔다. 9월 11일, 서울행정법원 앞에서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새만금신공항 기본계획 취소 소송에서 우리가 승소한 것이다. 그러나 국토부와 전라북도 행정은 법원의 결정에 즉각 항소하며 신공항 건설을 밀어붙이고 있다. 오늘 우리의 발걸음이 막막하고 가야할 길은 요원해 보이지만, 8천 년의 시간을 거쳐 제 모습을 갖춘 갯벌과 그 시간 동안 1만 3천km의 거리를 쉬지 않고 매년 날아왔을 도요새를 생각하면 또 한걸음씩 내딛지 않을 수가 없다. 불탄 숲과 말라버린 갯벌이 살아 움직이며 우리에게 손짓한다.


140the end of the road(to) 새


141


142ⒸTONY


143Ⓒ노순택


144이렇게 이상한 사람들이 어디에서 왔을까너무 더워 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모른다. 매일 저녁식사 후 기절 잠을 자고 꼭두새벽 기상. 하지만 정말 즐겁다. 배려하는 마음과 돌보는 마음들이 가득가득. 행진하면서 가장 큰 수확은 이상한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는 것.꾸준한 마음들이 모이면 큰뒷부리도요를 구할 수 있겠다.서로를 위해서 먹을 것을 준비하고, 잠자리를 마련하고, 정리정돈 하고, 글을 쓰고, 사진 찍고, 운전 하고, 개다리춤을 추고, 자전거를 굴리고, 안전봉을 흔들고, 소식을 공유하고, 함께 걷고, 노래 부르고, 구호를 외치고.친구 따라 행진가면 걷다가도 떡이 생긴다.역시 친구를 잘 사귀면 이벤트가 무궁무진하다. 행진을 한다고요? 이 날씨에? 이렇게 갑자기? 근데 어디서 자요? 숙소를 내주신다고요? 그럼 어디서 먹어요? 누가 와서 준비해 주신다고요? 사람들이 모일까요? 이 사람들은 다 어디서 오신 분들이예요?왜? 한달동안 전국 행진하고 승소하는 꿈이라도 꾸었어?승소 판결 다음날 전북지방환경청 앞으로 선전전을 하러 갔다가 차 안에서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보니 어리둥절하다. 왜? 한달동안 전국 행진하고 승소하는 꿈이라도 꾸었어? 일어나 선전전 가야지. 며칠이 지나도 현실감이 없고 내일 걷는 일정이 없다는 게 어색하다.작두이상한 사람과 꾸는 승소의 꿈


145누구나 즐겁게 사는 세상을 향해 어떻게 하면 집을 나서볼까 궁리하고 있는데, 친구로부터 새,사람행진 소식을 듣고 재빠르게 연대길에 올랐습니다. 생명을 살린다고 하는데 참여하지 않을 수가 없었죠.그리고 흥분까지 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생각하는 연대는 각자의 역량과 방법으로 서로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예요. 저로서는 잘웃고, 잘걷고, 개다리 춤을 잘추는 건데, 딱이었습니다.동지여러분!지난 수십년간 우리는 정부와 자본이 저지른 생태와 지역 공동체 파괴에 맞서 싸워왔습니다. 때로는 무력했고, 때로는 법적 한계에 부딪혔으며, 때로는 대중의 관심으로부터도 멀어져 있었죠.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당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생명을 지키기 위한 일이었기 때문이에요.새만금은 수천 년의 시간이 빚은 생태계이며, 공동체의 삶터입니다. 신공항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되는 이 계획은 전략적 가치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 본질은 기후위기 시대에 역행하는 시대착오적 개발이며, 수많은 생명과 땅을 희생시키는 폭력입니다.동지 여러분! 우리는 이러한 생각과 염원으로 한 달 간의 행진을 이어 왔습니다. 그동안 많은 시민과 이웃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만큼 그분들의 마음속에 자리잡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9월 11일 오늘 승소하였어요. 기쁩니다. 무엇보다도 이 행진의 여정을 함께한 동지들이 자꾸 눈에 밟힙니다. 고생하셨어요.생태와 탈성장 사회! 우리는 항상 원합니다. 하지만 한순간에 이뤄지는 목표는 아닙니다. 아직도 우리는 갈 길이 멀어요. 좀 더 시민과 이웃을 만나야 합니다. 연대해야 합니다. 누구나 즐겁게 사는 세상, 서로가 웃는 그날을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운동을 이어나가야겠어요.고맙습니다! ^^청명갈 길이 멀어도 즐겁에 웃으며


146해당화그래도 우린 좋지 아니한가<새,사람행진>에서 멋진 동지들과 함께 뜻밖에 흥진단으로 활약(?!)했으니, 행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네요. 사실 사회운동에 참여해본 사람들에게 행진은 매우 익숙한 집합행동입니다. 세계여성의날, 노동절, 빈곤철폐의 날, 홈리스추모제 등등 그간 (제 경험상 서울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던 집회들은 사람들이 모여서 발언하고 문화선전전 또는 공연을 하고, 이어서 행진을 하며 마무리하는 것이 일종의 포맷이었습니다. 이때 행진은 그저 걷는 것이 아니라, 발언과 구호를 통해 같은 뜻을 확인한 사람들이 그 의지를 거듭 확인하는 절차라고 생각됩니다. 대부분 시민사회단체의 집회는 잘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가시화하려는 엄중한 행사이고, 비장한 발언과 강력한 규탄 이후 이어지는 행진 과정 역시 분노한 노동자 민중의 뜻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진중했습니다.그런데 2024년 12월부터 시작된 윤석열 탄핵집회는 그런 행진의 성격을 다르게 만들었지요. 청년여성 활동가들이 주도하여 시작한 K-pop과 운동권 노래가 섞인 집회음악 플레이 리스트가 등장하여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면서, 이제 행진은 집회의 무게에 압도당하지 않고, 그 자체로 즐겁고 힘차게 우리의 뜻을 전달하는 새로운 수단이 되었습니다.<새,사람행진>에 참여한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지켜냈던 그 뜨거웠던 행진의 경험을 기억하면서, 무더위 속에서 우리가 지치지 않으면서 우리 목소리를 널리 알리기 위해 누구나 신나는 행진에 동참했습니다. 기꺼이 목청 높여 노래를 부르며 고개와 다리를 넘고, 구호를 외치고 덩실거리며 뙤약볕을 피할 데 없던 외길을 걸었습니다. 낙오하는 사람도 없었고, 행진이 이어질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행진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또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행진하는 사람들이 모두 새만금신공항이 철회되어야 한다는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행진이 비교적 짧은 시간 준비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행진 취지에 대해서는 이미 오랫동안의 사회적 학습과 성찰의 토대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처럼 같은 뜻을 가진 동료들과 함께 잘못된 새만금개발을 바로잡자는 결의를 확인하는 행진이 어찌 즐겁지 않을 수 있을까요? ⒸTONY


147운영 디테일1) 상세하게 공유된 한 달간의 일정표: 참가자들의 사전계획에 도움이 되었습니다.2) 매일 아침 행진 전에 발표된 ‘수라의 외침’ : 글쓰는 담당자(딸기)의 고충은 컸을테지만, 행진 참가자들의 마음과 태도를 일체화하고 나날의 행진이 갖는 의미를 고양시켰습니다.3) 통일된 스타일로 매일 저녁 발간된 일지 + 주간 <새,사람> : 매일 저녁과 금요일에 나오는 잘 정리된 일지와 주간지는 참가자들에게 행진의 의미를 되새기고, 행진에 계속 참여할 수 있도록 자부심을 더해주었습니다. 물론 여기에도 행진을 마치고 돌아가서 밤늦도록 작업을 해야했던 여러 동지들의 열정과 수고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4) 오마이뉴스 연재 기사 : 현장감 넘치는 생생한 행진 소식은 ‘눈팅’만 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잠재적 우리편으로 만드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5) 새 깃봉, 천 깃발과 대나무 깃대 : 자연을 재현하며 왠지 모를 정서적인 공감과 연대의 기운을 주었습니다.6) 큰뒷부리도요 + 집사의 라이딩 : 행진의 마스코트이자 새만금신공항백지화 메시지의 상징물로 압도적 효과를 만들어냈습니다. 행진 쉬는 시간에 큰뒷부리도요를 한 번씩 모셔보고나면(!), 그제서야 집사의 노고가 얼마나 컸던가 깨닫곤 했습니다.7) 9월 8일에서 10일까지 마지막 3일 동안의 13,000절 : 그 무더위에 260km를 걸어와서 마지막에는 법원 앞에서 간절하게 절을 올리는 것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사회적 권력관계의 힘의 불균형이 실감되어 약간 기운이 빠졌습니다. 하지만 그건 제가 ‘사회운동의 일부로서 절하기’를 참여해보지 않아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었고, 막상 절하기를 시작하니까 제 스스로 이 운동을 다시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무런 힘이 없다고 생각했던 그 단순한 행위가 나중에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니 매우 경건하고 힘이 있는 행위가 되는 것이 놀랍기도 했고요. 8) 행진 기획팀의 노련함과 스탭들의 역할 분담: 예상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을 모으는 것이 목표이기도 했지만, 행진 초반 열 댓명이 걸을 때나 나중에 수 백명의 사람들이 걸을 때나 실수나 사고없이 하루하루 잘 마칠 수 있던 것은 기획팀의 철저한 준비 덕분입니다. 아마 평화바람의 노하우가 빛을 발한 것이겠지요. 이번 행진을 잘 마치게 한 모든 공로는 전적으로 평화바람 때문입니다. 기획과 실행의 구심점이 되었기 때문에 다른 스탭들의 역할 분담이 어렵지 않았다고 생각됩니다.9) 즐거운 행진단 사람들 : 흥진단은 서로 잘 알지 못했던 참가자들의 역동으로 우연하게 생겨났지만, 행진의 목적에 대한 확고한 공감과 우리가 이길 수 밖에 없는 재판이라는 같은 기대를 가진 동지라는 신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즐겁게 걸었고, 서로를 믿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부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진심이 자신을 움직이게 하고, 또 타인들에게도 미쳤기 때문에 함께 즐거워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10) 더 많이 모이고 더 넓게 연대하자 : 같은 일을 하며 같은 곳을 바라보는 동지들이 많을 수록 우리의 힘은 더 커진다는 것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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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해초


150Thousand Madleens일러스트 Ⓒ정지원 @stopped.cir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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