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Jesus Said,
It is finished
이 름:
한일철 목사
그린스보로한인장로교회
머리말
신약 주제별 성경공부
Bible Story of NT
❮구약 주제별 성경공부❯에 이어 ❮신약 주제별 성경공부❯를 함께 배우게 되어 하나님께 영
광을 돌립니다. ❮신약 주제별 성경공부❯에서는 구약의 사건들을 조명하며 예언된 메시야가
오심으로 성취 된 사건을 주제 별로 배우게 됩니다. 아직도 신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못
하고 여전히 메시야를 기다리는 유대인들과 달리 우리들은 신약을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
으로 믿으며 성취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더 확실히 배우게 될 것입니다.
오신 메시야/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영원한 나라, 천국으로 인도
할 그 날까지 신약에서는 또 다른 많은 약속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약속의 성취를 바라
보며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게 됩니다.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도 주제로 다루게 될 것입니다. 저의 바램이
있다면 성경공부를 통하여 깨닫고 변화받는 능력의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지식적인 성
경공부는 원치 않습니다. 제자의 삶으로 나아가는 그런 성경공부를 원합니다.
❮구약 주제별 성경공부❯와 마찬가지로 ❮신약 주제별 성경공부❯도 Unlocking the Bible Story
(저자: Colin S. Smith)의 신약편 주제와 내용을 거의 따라 배웁니다. 단지 제가 가르치고자 하는
내용을 더 했을 뿐입니다. ❮구약 주제별 성경공부❯를 배운 분들이 이번 ❮신약주제별성경공부❯
까지 마친다면 신구약 성경의 중요한 내용을 거의 배우게 되는 것으로서 신앙의 한 단계 업그레
이드가 될 것입니다. “내게 와서 배우라”고 하셨던 주님의 음성을 듣고 배우고 실천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2006년 9월 한일철 목사
❝가사사대 내가
다 이루었다❞
Jesus said,
"It is finished"
(요한복음 19:30)
제 1 과 성 취(Fulfillment)
마태복음 1:1,17-23
❏하나님의 계획서/God's To do List
당 신은 하루의 일과를 어떻게 보내는가? 많은 사람들이 닥쳐온 하루를 적당히 살지만 어떤 이들은
조용한 이른 새벽에 하루에 대해 생각하며 “To do List"를 만들어 하루 동안 실천해야 할 것을
행한다. 그리고 하루를 보내는 밤에 이루어졌다면 ”Done"이라고 쓴다. 하루 동안 계획했던 일이 이루어
졌음을 뜻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에게도 “To do List"가 있으시다. 구약 성경은 수많은 약속, 언약, 혹은 이루어질 예
언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To do List"였다. 이제 때가 되어 신약시대가 되었다. 하나님
의 “To do List"에 ”Done"이라는 글자가 새겨진다. 신약은 구약의 성취이기에 모든 것이 이루어진 것
이다.
사람들이 계획한 “To do List"에는 하루가 아니라 몇 년이 지나고 심지어 죽는 순간에도 못 이룰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To do List"는 반드시 “Done"(끝났다)이라는 도장이 찍힌다. 왜냐하면 그 약속
하신 분, 계획하신 분이 신실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약속이기에 그 약속은 반드시 이
루어지며 성취하게 된다. 구약에 보면 때론 쌍방 간의 약속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약속이
많으셨다. 인간은 번번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약속하셨다. 때
가 되면 메시야를 보내 주시겠노라고......
주제별 성경공부에서 배웠다시피 구약은 장차 오실 메시야(예수님)에 대한 예언들로 가득 차 있다.
왜냐하면 성경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계시한 내용이기에 구원자이신 메시야에 대해 기
록함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에 성경은 그리스도(메시야) 중심적인 책이다.
☞ 성취하다/Fulfill,
‘완성하다’, ‘이루다’. 사람의 생애나 예언, 약속, 계획이 시, 공간적으로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구약과 신약에서 성취에 대한 거의 모든 언급은 이러한 기초 위에서 이해될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앞날을 예언하였다. 대표적인 사람이 프랑스의 예언자 노스트라다무스(nostradamus
원래이름: 미첼 디 노스트라담)이다. 1554년 이후에 그는 수많은 예언을 했는데 많이 적중하였다.
1555년에 노스트라다무스는 그 당시부터 세계의 종말까지를 담은 그의 예언서 중 첫 번째 파트를 마
무리 지었다. 그가 예언한 지구의 마지막 종말이 1999년 7월에 예언되어 세기의 이목을 샀으나 끝내
는 잘못된 것임이 되고 말았다.
-1-
❏하나님의 계획서 이루어지다/Getting God's To do List Done
성경에 기록된 언약, 약속의 예언은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이루어졌고, 또 이루어질 것이다(재림에
관하여). 구약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예언했던 것이 성취되었는데, 그것은 메시야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초림하신 것이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 4:4,5)
‘때가 찼다’(when the time had fully come)란 논밭에 곡식이 익어 벼에 낫을 댄 것과 같이 하나님께
서 약속하셨던 것이 비로써 성취되었음을 의미한다. 신약성경의 첫 번째 책인 마태복음은 하나님의
약속인 메시야가 오신 것을 확실하게 증거하고 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마 1:1)
❝A record of the genealogy of Jesus Christ the son of David, the son of Abraham❞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약속하셨다(갈 3:16절 참조)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 12:3)
이때, 아브라함에게는 아들도 없었다.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이 있었지만, 그 이삭과 후손을 본 후,
아브라함은 죽었다. 즉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복은 만민에게 미칠 복이 된다는 것으로,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요 약속이였다. 그것이 예수님이 오심으로 성취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도 약속하셨다.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삼하 7:13)
이 말씀의 약속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에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솔로몬의 죄로 인해 이스라엘은 북조
와 남조로 나누어지게 되었고, 몇 백년이 흘러 두 민족 모두 다른 나라에 멸망당하고 만다. 그 후로
이스라엘에게는 왕이란 제도가 없었다. 결국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해 다윗에게 주신 약속은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었다. 결국 메시야이신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시어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새 언약을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주셨는데, 예수님
이 바로 새 언약을 주실 자로 오셨다(렘 31장) .
➲약속(구약) 성취(신약)
예언됨 나타남
-2-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마 1:21-22)
❝All this took place to fulfill what the Lord had said through the prophet❞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So was fulfilled what was said through the prophets❞(마 2:23)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
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Today this scripture is fulfilled
in your hearing❞(눅 4:16-21)
예수님은 과연 하나님이 보내신 약속의 메시야로서 백성들에게 자신이 약속된 메시야이심을 끊임없이
가르쳐 주셨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I have not come to abolish them but to fulfill them❞(마 5:17)
예수님은 오셔서 자신이 하나님이 약속하셨던 메시야임을 증명하셨고, 오신 목적, 즉 십자가에서 인
간을 대신하여 대속의 죽음을 당하시고 오신 목적을 이루셨음을 만천하에 알리셨다.
❝이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사 가라사대...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Later, knowing that all was now completed, and so that the scripture would
be fulfilled,............It is finished❞(요 19:28,30)
만약 예수님이 일반적인 선지자에 불과하다면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했다고 말할 수 없고, 다만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알리는 사람에 불과했을 것이다. 만약 예수님이 성취할 메시야가 아니셨다면
사람들 앞에서 ‘완전케 하려 한다’, ‘다 이루었다’란 말을 사용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신약성경을 기록한 저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을 약속된 메시야로 보지 않았다면 ‘선
지자의 말을 이루려 하심이라’는 말을 기록해서는 안될 것이다. 만약 일반적인 선지자, 위대한 스승으
로만 여겼다면 성경은 한결같이 그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룬 분이 아니라 올 약속을 상기시킬 분으로
여겼어야 했다. 그러나 그 분은 약속된 분이셨기에 저자들은 그 분이 모든 예언을 이루신 분으로 기
록하였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약속이셨다.
-3-
예수님은 인간의 구원을 위해 오실 하나님의 은혜 중에 은혜요(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하나님의 의(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롬 1:17)로 이 땅에 오셨
다. 구약에는 메시야가 오실 것을 여러 방면에서 기록해 놓았는데,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직분 선지자 신 18:15 이스라엘의 인도자 모세가 가지고 있었던 선지자
창 14:18-20 직분처럼 장차 그와 같은 선지자가 올 것이다.
기름
부음을 제사장 멜기세덱의 제사장적 사역(신비로운 사역)
받은 자 시 110:4 그는 중보자였다.
왕 삼하 7:1-17 영원한 위(보좌), 영원한 왕이 되리라 한 약속처럼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 되셨다.
요셉 창세기 요셉의 고난(미움, 팔리움)과 높아짐
모세 출-신명기 모세가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며 인도했듯이 예수 “내가 너희와
님도 백성들의 죄에서부터 탈출시키며 인도하심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
인물 사사기 사사 12명은 다른 나라에 억압받는 이스라엘을 게 말한 바
사사 건져 낸 구원자들로서 예수님을 예표한다. 곧 모세의
율법과
욥 욥기서 욥의 고난은 의인의 고난이였으며, 선지자의 글
의로우신 예수님의 고난을 예표한다. 과 시편에
방주 창 6-9장 구원의 방주는 예수님을 예표한다.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성막기구 레위기 모든 성막의 기구들은 예수님의 성품, 사역 예표 것이 이루
기구 어져야 하리
죽어가는 백성을 살리시려 장대 위에 놋 뱀을 달아 라 한 말이
놋 뱀 민 21:9 보는 자는 살게 하셨는데, 예수님은 그 사건을
자신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으로 말씀하셨다.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저희 마음을
유월절 출 12장 애굽에서 구출된 사건은 유월절로 이어졌고 그 풍습 열어 성경
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한 구속사건의 예표였다. (구약)을
깨닫게
성막제사 레위기 모든 성막의 제사(5가지)는 그리스도와 관련되어 있다. 하시고”
(누가복음
6 곳에 있는 도피성은 우발적으로 살인한 사람을 끌 24:44-45)
도피성 수 20장 어들여 그들에 피난처를 제공토록 되어 있는 성읍이며
제도 하나님의 은혜로운 배려이다. 예수님은 피난처이시다.
희년 레 25장 안식년이 7번 지난 그 다음해 즉 제 50년째를 희년
이라 부르는데, 이 해에는 채무자의 빛을 탕감하고
노예는 해방시켜 자유를 얻는 감격스런 해이다.
고엘제도 룻기 기업 무를 자란 뜻으로 자기 형제나 근족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것을 해결해 두어야 하는 가까운 친족.
-4-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 하나님의 약속
Fulfilled His Promises Through Jesus Christ
메시야(다른 말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모든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셨다. 모든 민족에게 복의 근원
이 되신다는 약속처럼 오늘날 예수님은 모든 민족들에게 유일한 소망과 축복의 근원이 되신다. 그를
통해 영생을 얻고 그를 통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누린다.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이 이루어 진 것이다.
다윗에게 약속하신 위(보좌)가 영원히 끊이지 않고 계속 되리라 하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
다. 그 분은 만왕의 왕(마태는 그의 책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그를 왕으로 묘사하며 기록하였다)으로
오시어 그 약속을 성취시키셨다. 그 분은 영원한 왕이시다.
또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백성에게 주셨던 약속, 새 언약(New Covenant)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
어졌다. 새로운 포도주를 새로운 부대에 넣어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은혜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 22:20)
❮새 언약❯이란 ❮구원 언약❯을 가리킨다. 십자가로 구속을 이루시고 성령을 보내시어 우리의 마음
을 새 마음으로 바꾸어 놓으셨다. 그래서 구속함을 받은 백성은 새로운 피조물 즉 중생한 자들이 되
었고, 새로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예레미야가 예언되었던 새 일(Create a New Thing)이며
새 언약(New Covenant)이었다.
모세 언약과는 반대로 새 언약은 불변이고 무조건적이며 영원하다. 옛 언약은 율법의 준수에 근거를
둔 율법적 언약이었지만 새로운 언약(히 8:8-12)은 사람의 내적 거듭남과 하나님의 은총의 회복에
대한 토대가 될 은혜와 그리스도의 희생적 피에 온전히 근거한다. 예수님이 오셔서 성취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 외에 다른 사람으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다. 하나님의 약속은 다른 사람을 통
해 성취된 바가 없고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이루셨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 있는 자가 영생을 얻고,
예수님 안에 있는 자가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성경은 ❮오직 예수❯만 강조
한다. 그 외에 다른 길은 없다.
-5-
다시는 구약처럼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단번에 모든 자들을 위한
희생제사(Once for all)를 다 드렸기 때문이다. 구약의 모든 사건, 인물, 기구, 제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기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왕으로 믿고 섬기면 된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게 된다. 이것이 새 언약이다.
이것을 믿지 못하고 또 다시 구약으로 돌아간다면 그것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헛되이 만드는
일이 된다. 구약성경대로 예수님은 오셨고, 성경대로 죽으시어 구속을 이루어 놓으셨다.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 15:3,4)
❏그 분의 마지막 약속/His Last Promise
이제 성경대로 약속하셨던 그리스도가 오시어 모든 구속을 이루어 놓으시고 그의 백성들에게 성령님
을 보내시어 내주, 인도하시게 하신 예수님은 다시 재림하시어 모든 인류를 심판하시고 악인은 지옥
으로 보내고, 의인(그리스도의 신부)은 천국으로 인도되어 영원토록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이것
이 유일하게 남은 그 분의 마지막 약속이시다.
성경(구약)대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성경(신약)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신 예수
님께서 마지막 약속이신 재림의 약속을 성취시키실 것이다. 초림시에는 약속대로 낮은 자의 모습으로
말구유에서 태어나셨다. 그러나 다시 오심을 약속한 재림시에는 심판자로, 권능자의 모습으로 오실
것을 약속하셨다.
초림 때에 오셔서 한 일은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구원하는 일이셨다. 그 구원은 전인격적인 구원이었
다(영혼, 몸).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는 영혼
만 천국으로 인도되었지, 몸은 흙으로 왔기에 흙으로
돌아가게 된다. 지금 천국에 있는 성도들은 영혼뿐이다.
그러나 주님 다시 오시는 재림 때에는 죽어 없어진 몸이 God's to do list
천국에 있던 영혼과 합하여져 새로운 부활체의 모습으로 Jesus Christ(Savior)
변화되어 영원한 천국으로 가서 살게 된다. 그 날이 되
서야 전인격적인 구원의 완성이 된다.
주님 다시 오시는 날 하나님의 ‘To do List'에서 나의 이 John
름 있는 곳에 ’Done'이란 도장이 찍히게 될 것이다. 구 Joe
원시키기로(전인격적인 구원/영혼과 몸) 약속하신 하나 Eunice
님의 뜻대로 내가 그리스도를 통해 부활체가 되어 영원
한 하늘나라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렇게 성취될 것이다. 마지막 날
에...................
-6-
✍ 답을 써본 후 서로 질문해 봅시다.
1.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이었는가?(Pgae 1)
2. 만약 예수님이 일반적인 선지자에 불과하다면 어떤 말들을 해서는 안되는지 말해보라.(Page 3)
3.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신 분은 오직 한 분 이셨다. 그 분은 누구인가? 마태복음 5:17절을 같이
써 보라(Page 3).
4. 구약은 메시야에 대해 여러 방면으로 제시하고 있다. 크게 어떤 것들인가?(Page 4)
❶❷ ❸ ❹
5. 약속된 새 언약(New Covenant, New Heart)은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다. 예수님의 새 언약이란
어떤 것인가?(Page 5)
6. 예수님의 유일한 마지막 남은 약속은 무엇인가? 당신은 그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는가?
요한복음 14:2-3절을 써 보라(Page 6).
7. 오늘 배운 내용 중에 깨달은 교훈 한 가지를 말해 보자.
-7-
제 2 과 회 개(Repentance)
마태복음 3:1-12
❏구원의 진정한 뜻/The true meaning of Salvation
미 국 아모코 석유회사(Amoco) 소유의 22만 톤급 유조선 ‘아모코 카디즈호’(Amoco Cadiz)가 160만
중동산 원유를 만재하고 1978년 3월 16일 프랑스 브리태니 포트샬(the coast of Brittany,
France) 연안을 항해하는 중 선장의 실수로 암초와 충돌하였고, 이 유조선에서 160만 배럴의 원유가 유
출되었다.
이 원유유출로 인한 피해는 엄청났다. 이 사고로 200킬로미터의 프랑스 해안(120 beaches)이 짙은 원
유 띠로 뒤덮였고, 굴 수확량의 80퍼센트가 줄고 해조류 70퍼센트가 파괴되었다. 또한 3,200마리 이
상의 갈매기와 바다오리, 물새가 죽었으며 조개, 가재, 성게 등 해안의 모든 생물들이 전멸하였다. 물
론 아름다운 프랑스 해안관광지도 황폐화되어 버렸다.
이렇게 엄청난 재난이 오게 되면 문제는 더 커진다. 왜냐하면 원유로 인한 피해액만 나오는 것이 아
니라 이젠 그것을 정화하는 비용도 천문학 숫자이기 때문이다. 암초로부터 선박을 구조하기 위한 예
인선을 빌리는 계약조건을 협상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냄으로서 결국 구조에 실패하고 기름이 많이 유
출되게 되었다. 프랑스 해안을 구하기 위해 군인과 젊은이들이 동원되어 짙게 덮인 원유를 수거하였
으나 원래대로 회복되는데 너무나 많은 기간이 흘렀다. 조사에 의하면 총 피해액은 정화비용 1억
4,200만불, 어업손실 4,600만불, 관광수입손실 1억 9,200만불 등 총 3억 9,000만 불에 달한다.
‘아모코 카디즈호’(Amoco Cadiz)의 이야기는 성경에서 말하는 죄가 얼마나 엄청난 재앙과 많은 문제
를 일으켰는지는 잘 보여주는 사건이며 인간이 저지른 죄 때문에 예수님이 그 죄를 없애기(God's
clean-up operation) 위해 일하셨는데 그것을 가리켜 구원(Salvation)이라고 말한다.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죄의 값을 치루어야 하는 것(하나님께)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께
서 우리의 죄 값을 십자가에서 치루신 것(Paid our penalty)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구원(Salvation)이
라 함은 정결케 하는 작업(clean-up operation)으로 인한 변화가 있음을 또한 알아야 한다.
죄는 무엇이든지 빠르게 오염시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마치 유출된 원유가
바닷가를 순식간에 오염시킨 것처럼 말이다. 다시 말하면, 구원이라 함은 예
수님이 우리의 죄(저주)에서부터 우리를 건지시기(save) 위해 죄 값만 지불하신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예전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의 삶으로 우리를 인도
하시기 위해 오신 것이다.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마치 ‘아모코 카디즈호’의 원
유 비용은 갚아 주되 해변에 유출된 원유는 엉망인 채로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
과 같은 이치이다(나중에 영생이란 주제로 구원에 대해 자세히 다룸).
-8-
용서함을 주는 구원이 아무런 변화도 불러일으키지 않은 것이라 함은 구원(Salvation)에 대해 잘못 이
해하고 있는 것이다. 구원이란 것은 용서로 공짜로 천국 티켓을 얻는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예수
님은 이 땅에 오셔서 당신을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꾸어 놓으시기(회개) 위함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죄에서부터 건져주시고(to deliver His people from sins) 우리를 거
룩한 삶을 살도록 인도하신다(lead his people into a holy life). 이것이 요단강에서 용서함 받기 위해
죄를 회개하라고 촉구했던 세례요한의 중심 메시지(central message)였으며 예수님의 메시지였다.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Godly sorrow brings repentance that leads
to salvation❞(고후 7:10)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 5:32)
❏세례요한/John the Baptist
광야에 이상하게 옷 입은 사람(약대 털 옷)이 나타나 메시지를 전한다는 소문이 이스라엘 전 지역에
퍼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 사람의 말을 듣기 위해 몰려들었다. 두 가지 이유인 것 같다. 첫째는 말
라기 선지자 이후로 약 400년 동안 선지자가 없었기 때문에 세례요한을 선지자로 보고 몰려왔다(마
11:7-9). 두 번째는 그의 메시지에 분명 영적각성(spiritual awakening)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기
에 들어보려고 모였다.
세례요한의 메시지는 매우 단순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Repent, for the kingdom of
heaven is near"(마 3:2) 한마디로 요약하면, ”천국이 가까웠기 때문에 너희는 바뀌어야 한다/So you
need to change"이다.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셨을 때, 하셨던 말씀이 세례요한과 같았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
라”(마 4:17). 오순절날 베드로도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베드로가 가로되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
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행 2:38).
사도바울도 같은 진리를 전한다.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
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행 20:21).
회개(Repentance)는 복음에 있어 근본적이라 말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회개에 대해 모른다면
복음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회개를 모른다면 하나님 나라와 관련이 없다. 세례요한, 예수님 그리고
베드로의 증거에서 알 수 있듯이 회개와 천국은 깊은 연관이 되어 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한 회개 없
이 천국으로 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동안 하늘 문은 사람들에게 굳게 닫혀 있었다. 하나님의 축복을 잃어버렸고, 하나님의 교제가 죄로
인해 단절되었다. 이제 그 하늘 문을 열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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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올라오실 때, 하늘의 문이 열리고 음성이 들여왔다. 이런 것을 알고 있
기에 세례요한은 지금 변화될 것을 촉구하며 회개를 요구하고 있다. 닫혔던 하늘 문이 이제 그리스도
를 통해 열려짐을 세례요한은 알고 있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필수적으로 죄를 회개해야
했다. 세례요한은 하늘나라(Kingdom of Heaven)에 대해 말하였다.
나라(kingdom)란 왕의 지배아래 사는 어떤 나라를 뜻한다. 즉 세례요한의 마음에는 그리스도가 그 나
라의 왕으로서 그 나라의 백성이 되려면 회개하여 그 나라를 맞이하라는 것이었다.
나라마다 차를 운전할 때, 도로 표지판이나, 제한 속도(Speed Limit), 등이 다르다. 특히 섬나라인 영
국, 일본에서의 운전은 훨씬 더 어렵다. 만약 다른 나라에 와서 운전하다 경찰에 걸렸을 경우, 변명을
하면서 자신의 나라에서는 이렇게 해도 된다고 한다면 아마도 경찰은 말하길, “당신의 나라로 가서
그렇게 하시오”라고 할 것이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시작되었다(나중에 하나님의 나라란 주제로 자세히 배우게 될 것
이다). 그 나라는 그 나라의 방식이 있고, Life style이 있다. 예전의 살던 나의 습관과 나의 삶의 방식
을 가지고 살 수 없는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것만으로 되지 않는다. 예수
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은 귀신들도 알고 떨었다. 하지만 이것이 믿음과 구원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야고보는 말했다(약 2:19).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진정한 회개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이들을 막론하고 열려(open)져 있다. 누구든지 와도 된다. 단 하나님의 나라에
서는 그 나라의 왕이신 예수님의 다스림(reigns)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며 섬기며 살아야 한다. 그렇기
에 반드시 회개하여 변화되어야 한다.
❏방향을 바꾸는 것/A Change of Direction
회개란 무엇일까? 회개의 정의를 말하면 다음과 같다.
☞ 회개하다/Repent
회개하다란 말은 ‘변화된다’란 뜻이다. 즉 회개는 가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근본적으로 마음이
변한 결과 죄 된 삶의 방식을 돌이키는 것을 뜻한다./The word repent means "change".
Repentance is a mind that results in a change of behavior.
예수님께서 세례요한 당시의 사건을 설명하면서 주신 ‘두 아들의 비유’(The Parable of the Two Sons)
에 보면 진정한 회개란 진정한 변화임을 잘 말씀해 주신다(마 21:28-32).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애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아버지여 가겠소이나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이같
이 말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싫소이나 하더니 그 후에 뉘우치고(changed his mind) 갔으니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가로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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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요한(세례)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저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
와 창기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종시 뉘우쳐(repent) 믿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요단강에서 회개를 전파하며 물 세례를 주는 요한에게 찾아
왔었다. 그 곳에서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죄인의 대명사 격인 세리들, 창기들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물 세례를 받았고 후에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늘나라의 백성이 되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의 백성이며 선민이라고 생각했던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도 요단강에 왔었지만
회개치 않았다(마 3:5-9).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
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그들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요, 신앙생활 열심히 하고 있다고 여겼기에 세례요한의
회개의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자기 자신들 스스로를 죄를 고백하며 회개하는 사람
들과 구분시킨 것이다. 결국 그들은 회개치 못하고 변화되지 않은 모습으로 요단강을 떠나게 된다
(They never discovered repentance, and they went home unchanged).
어떤 사람이 변화될 수 있는가? “나는 용서가 필요한 죄인입니다. 나 같은 사람도 용서받을 수 있나
요?” 하는 사람이 변화 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 회개란 이렇게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브라
함의 후손이야, 나는 회개할 필요가 없어!” 라고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와는 무관한 사람이다.
아무리 자신들 생각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것처럼 여겨도 소용없
다. 예수님도 뉘우치고 믿음을 가진 세리와 창기들이 저들과는 달리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갔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들은 방향을 완
전히 바꾼 것이다.
회개란 방향(Direction)을 바꾸는 것이다. 방향을 바꾼 자는 거기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살던 곳을 향
하여 돌아갔다. 하늘나라와는 정반대 방향인 죄의 길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서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They should repent and turn
to God and prove their repentance by their deeds❞(행 2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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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 그리고 믿음/Repentance and Faith
죄에 대한 회개는 항상 믿음을 동반한다. 그래서 성경에 많은 부분이 회개와 믿음을 함께 말한다.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행 20:21).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행 19:4)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믿음)과❞(히 6:1)
세례요한의 경우를 살펴보자. 세례요한은 자기에게 나아오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신앙의 대상으로 나아가가 함)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
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마 3:11)
세례요한은 회개케 하는 물 세례을 백성들에게 준 후, 믿음의 대상인 예수님에게로 연결시켰다. 그
분이 오셔서 그들에게 성령과 불 세례를 주실 능력의 주로 묘사했다(He will baptize you with the
Holy Spirit).
세례요한은 물로 주지만, 예수님은 불과 성령으로 하실 것이다. 요한은 백성들로 하여금 단지 새로운
삶에 대한 갈망을 갖도록 준비시킨 것 뿐이고 예수님이 오셔서 그들에게 새로운 삶을 살도록 성령으
로 부어주신다. 요한은 하지 못한다. 오직 예수님만이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신다. 즉 성령을 부으시고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은 요한의 일이 아니었다. 단지 백성들로 하여금 주님께 갈 수 있도록 회개를 촉
구하고 준비시킨 사람에 불과했다. 오늘 이런 사람이 절실히 필요하다.
오늘 이 시대는 회개를 촉구하지도 않는다. 마치 죄와는 전혀 상관없는 유토피아에서 사는 사람들 같
다. 죄에 대해 모르고, 죄를 전혀 짓지 않는 사람들 같다. 교회 다니는 성도들도 죄와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살고 있을까? 그들의 개인적인 은밀한 삶, 그들의 가정, 직장, 그리고 비즈니스에 죄의 심각한
오염은 없을까?
왜 믿음이 없는 세대라고 주님이 한탄하셨을까? 진정한 회개가 없기 때문이다. 죄에 대한 경각심과
죄에 대한 회개가 없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믿음은 적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미 강단에서 회개
에 대한 메시지는 자취를 감추었다(회개하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신 예수님을 기억하라 계 2-3장)
진정한 회개가 있을 때, 우리 위해 보혈을 흘려주신 예수님에게로 나아갈 수 있다. 그 분은 우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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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해 주신다. 그리고 회개한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신다. 성령으로 충만해 진다.
회개란 자신의 죄를 인식하고 고백하고 눈물을 흘리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죄를 용서해 주며
자신을 죄의 저주 가운데서 건져내실 수 있는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는 자리로 나아가 그에게로부터
성령의 세례를 받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와 믿음은 동전의 앞뒤와 같다.
다음은 어는 교회에서든지 흔히 볼 수 있는 간증문(Testimony)이다. 읽고 생각해 보라.
나는 어려서부터 예수님을 믿는 부모님을 따라 교회를 다녔습니다.
I was brought up in a Christian family and attended church since I was very young.
16세 즈음에 친구들이 가는 수양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When I was about sixteen years old, some of my friends were going to a Christian camp and I decided to go along and
see what was happening.
설교하시는 강사의 훌륭한 설교를 듣고 나의 삶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As I listened to the speaker-he was great-I began to realize that there was a lot wrong with my life.
나는 정말로 변하기를 원했기에 헌신을 작정하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I really wanted to change, so I prayed a prayer of commitment to God.
변화된 모습으로 산다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드디어 오늘 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대로 살 것을
보여드리기 위해 세례를 받았습니다.
It hasn't always been easy, but today I am being baptized to show that I want to live a life that is pleasing to God.
우리는 이 간증문에서 참된 회개(True Repentance)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을까?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난 종교적인 배경(religious background), 수양회에서 훌륭한 설교가에게 들은 감
동적인 메시지(Sounds rather like hearing John in the desert), 자신의 죄를 깨달았다는 고백(Just like
John's audience),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대로 살 것을 보여드리기 위해 세례를 오늘 받았다는 것
(That's what the people who were baptized by John would have said).
이 사람은 아직도 세례요한의 곁에 머물러 있는 사람과 같다. 그에게 아직 예수님은 없다. 아직도 구
약적이다. 세례요한에게 서 있는 사람은 아직도 구약적 사람이다. 왜? 세례요한은 엄격히 말해 구약
을 종결하는 마지막 선지자였기 때문이다. 세례요한은 메시야의 길을 준비하러 온 사람이다.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사람은 예수님에게로 가야 한다. 그에게 가서 불과 성령의 세례를 받고 구
원에 이르러야 한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에게로 가라 했다. 그의 제자들도 예수님에게로 갔다. 세례받
은 자들은 예수님에게로 갔다. 그것이 세례요한이 원했던 바이다(요 3: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He must become greater, I must become less❞
자기가 아니라 그 분이 능력이 있고, 그가 성령세례를 베푸실 구원자라고 한다(Go to Christ, and He
will baptize you with the Holy Spirit). 진정한 회개란 방향을 그리스도께로 바꾸고 그를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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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을 써본 후 서로 질문해 봅시다.
1. ‘아모코 카디즈호’(Amoco Cadiz)의 예를 통해서 구원(Salvation)이라 함은 어떤 것인가?(Page 8)
2. 세례요한, 예수님, 그리고 베드로가 동일하게 말했던 말은 어떤 것이었는가?(Page 9)
3. ‘회개하다’란 어떤 뜻인가?(Page 10)
4. 왜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였는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자처함에도 불구하
고....(Page 11)
5. 세례요한은 백성들로 죄를 회개케 하고 준비시켜 누구에게도 인도하는 것이었는가? 그 분이 무엇
을 한다고 가르쳤는가?(Page 12)
6. 간증문에서 별 문제가 보이지 않아 보이지만, 실상은 큰 문제가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Page 13)
7. 오늘 배운 내용 중에 깨달은 교훈 한 가지를 말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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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과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
마태복음 13:18-30
❏한번 진실하게 물어 봅시다/Ask Some Honest Questions.
당 신은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에 대해 얼마큼 알고 있는가?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하나
님의 나라와 이미 다가온 그 나라(Present and Reality Kingdom)는 다르지 않는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위대하다는(예수님에 의하여) 선지자 세례요한도 자신이 전했던 하나님의 나라가 기대에
어긋난 듯한 느낌이 들어 갈등하고 있었다.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Are you the one who was to come, or
should we expect someone else?❞(마 11:2-3)
세례요한은 백성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자신에게 다가온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푼 후 감옥에 갇히게 되
었다. 그 이유는 헤롯의 죄(동생의 아내를 취한 죄)를 지적했기 때문이다. 뜻밖에 감옥에 간 세례요한
은 예수님이 오심으로 인해 그 나라가 시작되었고, 심판으로 인해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놓으실 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은 지나가고 좀처럼 자신이 기대하는 것처럼 그 나라가 되어 지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요한은 제자들을 불러 예수님에게 가서 확인하고 오라고 하였다.
세례요한이 기대하는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는 어떤 것인가? 예수님이 하신 일들을 그가 감
옥에서 들었다. 하지만 그가 기대하던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가 세례를 베풀면서
주변에 있던 바리새인들에게 했던 말을 들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
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 3:12)
물론 주님 다시 오시는 마지막 날 그런 심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들에게 도래한 하나님의
나라는 세례요한의 생각처럼 그런 심판이 당장 임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에게 구원과 자비가
베풀어졌다. 세례요한은 이것을 알지 못했다.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했다면 왜 아직도 수많은 악이 이 세상에 넘쳐나는가?
If Christ's kingdom has come, why is there so much evil in the world?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이런 질문을 오늘도 해 본다. 좀처럼 문제가 풀리는 것 같지 않다. 마치 세례요
한이 가지고 있었던 갈등처럼 말이다. 분명한 것은 ‘나의 Kingdom’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나라(Kingdom)을 생각해야 한다. 이제부터 성경을 통해 ‘그 분의 Kingdom’이 어떤 것인지 배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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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가 복 되도다
Blessed is the man who does not fall away on account of me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오늘날 세례요한처럼 예수님에게 묻고 싶을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과연
이런 겁니까? 왜 악은 계속 존재하고 주님을 따르는 저희들에게는 고난(세례요한은 감옥에 갇혔고 순
교했다)이 떠나질 않는 것입니까? 왜 심판하지 않고 그대로 두고만 보시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요한의 제자들에게 보고 들은 대로 가서 전하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는 이와 같은 것이
니 실족하지 않는 자가 복되다고 하셨다. 예수님의 Kingdom은 어떤 것인가?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
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마 11:5-6)
예수님으로 인해 도래한 '현재 그리고 실재적인 하나님의 나라'(Present and Reality Kingdom)는 당장
임하는 불심판이 아니라 자비와 구원이 선포되고 은혜가 충만하게 임한 나라이다. 사회적으로 꺼려하
는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 죄인들에게 긍휼과 자비가 임하고 복음이 선포된 열려진 하늘나라였다.
이스라엘 역사상, 아니 전 세계적으로 이런 일들이 창세 이후로 일어난 적이 없었다. 소경이 눈을 뜨
고,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고 뛰며, 문둥이가 어린아이 살처럼 되고, 죽은 자가 다시 살아
나는 일들은 없었다.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
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요 9:32-33)
그 나라는 분명 비밀스런 나라였다(There is a mystery to this kingdom).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말
씀 속에 그 나라가 신비롭고 비밀스런 나라이면서 동시에 우리에게 나타난 ‘나라’임을 말씀해 주신다.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the mysteries of the kingdom of Heaven)을 아는 것이 너희
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마 13:11)
우리에게 밝혀진 비밀스런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것인지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가르쳐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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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의 비유들/The Parables of the Kingdom
마태복음 13장에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8 개의 천국 비유(The parables of the Kingdom)가 나온다.
그 중에서 핵심적인 천국 비유 3가지를 통해 각각 천국(Kingdom)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 첫 번째 비유: 씨 뿌리는 자의 비유(The Parable of the Sower/ 13:3-9)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천국 비유 중에 으뜸이다. 8가지의 천국 비유 중에 두 가지 비유만 예수님께
서 친히 해석해 주실 정도로 중요한 비유이다. 이 비유에서의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오심으로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는 파괴로 인해 눈에 현격하게 보이게 시작하는 나라가 아니라 씨를 뿌림으로
조용하게 시작하며 인내하여 결실을 보는 나라이다.
오늘 읽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폭탄 설치하는 자의 비유(the parable of the bomber)로 패러디하
여 이렇게 읽어보라.
❝폭탄을 가진 자가 폭탄을 설치하러 나가서 네 종류의 빌딩에 폭탄을 설치하였다. 폭탄을 설
치한 첫 번째는 나무(Wooden construction)로 된 건축된 곳이며, 두 번째는 콘크리트(Concrete)
로 된 건축물이며, 세 번째는 벽돌(Brick)이며, 네 번째는 철조(Steel)건물인데, 네 건축물이 폭
탄으로 인해 모두 무너졌으니 폭탄을 가진 자(bomber)의 사명을 완수하였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것이 귀 있는 자는 들을찌어다❞
아마 세례요한은 예수님에게로부터 천국에 대한 비유로 ‘폭탄 설치하는 자의 비유’를 듣고 싶어 했는
지 모르겠다. 당장에 심판이 임하고 믿지 않는 자들을 지옥으로 보내는 그런 나라이길 기대했을 것이
다. 이것은 세례요한뿐 아니라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당하는 고통 받는 자들이 원하는 Kingdom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예수님은 복음의 씨를 뿌리는 사역을 하셨지 폭탄을 떨어 뜨려 파괴하러 오지 않으
셨다(He gave the parable of the sower, because God works by sowing seeds, not by dropping
bombs).
선교사들을 생각해 보라. 오지에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어떻게 하는가?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들을 사랑하고 도와주고 복음을 전한다. 원주민들에게 오해도 받고 심지어는 죽기도 한다. 하지만 선
교사들은 인내하며 죽으면 또 다른 선교사들이 들어온다. 하나님의 나라는 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
씨를 뿌렸을 때 뿌린 자는 인내해야 한다. 뿌리면 하나님이 자라나게 하시며 때가 되면 추수(Harvest)
하게 된다. 이 원리로 더디더라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그 지역이 복음화 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처음부터 눈에 뚜렷하게 보이는 것은 없지만 추수할 때 확연히 보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것이다.
여기서 ❮씨/Seeds❯란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The Word of God is living
seed❯을 의미한다. 사랑을 전하고 말씀이 전파된 곳에 어떤 곳은 반드시 열매
를 거두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디든지 가서 하나님의 말씀(복음)을 전파
해야 한다. 파괴가 아닌 기다리며 씨를 뿌린다. 그러면 반드시 때가 이르러 하
나님께서 추수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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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비유: 가라지 비유(The Parable of the Weeds/ 13:24-30)
'가라지 비유‘ 역시 예수님께서 해석해 주신 비유이다. 그런데 천국 비유를 보면 항상 좋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님을 암시하셨다. 이미 첫 번째 비유에서 새(bird)를 마귀의 존재로 비유하여 가르쳐 주심으로
천국이 확장되는데, 방해하는 악의 세력이 있음을 가르쳐 주셨다.
두 번째 비유인 ‘가라지 비유’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인해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는 좋은
씨를 자기의 밭에 뿌린 것이라 묘사했다.
좋은 씨만 뿌렸으니 결실 할 때에 좋은 곡식만 있어야 하는데, 가라지가 많은 것이다. 주인에게 가라
지가 많다고 보고하자 주인은 말하길, “원수가 가라지를 곡식 가운데 뿌렸다”고 했다. 그러자 종들은
‘우리가 가서 가라지를 몽땅 뽑겠습니다’라고 하자 주인은 추수 때까지 내버려 두라고 한다. 그 이유
는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가 된다는 것이다. 가라지는 밀밭에 흔히 있는 독보리를 가
리킨다. 밀보다 강한 뿌리를 가졌기 때문에 이것을 뽑아낼 때 자주 어린 밀이 함께 뽑혔다. 그렇기에
추수 때가 되면 추숫군에게 말해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하고 곡식은 모아 주인의 곡간에 넣
게 될 것이니 지금은 그냥 두라는 천국 비유이다.
예수님은 해석해 주면서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라 하였다.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라 하
였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그를 믿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가는 곳마다 복음화 되었고,
교회들은 세워졌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점점 좋은 세상이 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은 더 악해지고 있
다. 복음화 되는 곳은 더 많아지는데도 불구하고....
그 이유는 좋은 씨(천국의 아들들)만 뿌려져 곡식이 익어가는 것이 아니라 곡식 옆에서 가라지도 자
라나고 있기 때문이다. 잠 잘 때에 원수 마귀가 나쁜 씨(악한 자의 아들들)를 뿌려 곡식 옆에서 괴롭
히고 잘 자라나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
당장 뽑아내어 불사르게 하면 좋겠는데, 예수님은 그냥 두라고 하신다. 이것이 ‘현재의 하나님 나라’
의 모습이다. 시작되었고, 하나님의 나라는 성장해 가는데, 그 옆에 가라지가 있어 여러 가지 면에서
방해한다. 하지만 그냥 두라는 것이다. 추수 때까지 말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 나라에는 들어갔지만 여전히 팽팽한 긴장감(tension)이 있다.
주님이 다시 오심으로 이루어질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Final Kingdom of God)에서는 그런 긴장감이
없다. 죄도 없고, 마귀도 없고, 가라지도 없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의 나라에는 여
전히 그런 긴장감(tension)을 준다. 긴장감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유익을 준다. 원수라도 품는 법
을 배우고, 고난 가운데서 이기는 방법을 배우고, 주님을 더욱 의지하여 성숙한 자로 만든다.
예수님은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여셨지만 여전히 마귀는 가라지를 뿌리며 방해하고 곡식들에게 괴
로움을 주어 긴장감을 준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세례요한과 같이 당장에 가라지들을 불태우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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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곡식 옆에서 괴로움을 주고 함께 자라나는 가라지 역시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두셨다는 점이다(Jesus' parable reminds us that even the weeds play their part in God's
purpose).
❝여호와께서 모든 것을 자기 목적에 맞도록 만드셨으므로 악인들도 재앙의 날을 위해
존재한다(현대인의 성경)/The Lord works out everything for his own ends even the
wicked for a day of disaster❞(잠 16:4)
그러므로 우리는 ‘신비로운 현세적 하나님의 나라’(The mystery of the reality Kingdom of God)에 대
해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 세 번째 비유: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The Parables of the Hidden Treasure/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in his
joy)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13:44)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신비로움을 계속해서 가르치신다. 하나님의
나라는 마치 진열장에 진열된 값비싼 보석류와 같아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게 하지 않는다. 하나
님의 나라란 마치 밭에 숨겨놓은 값으로 매길 수 없는 비싼 보화와 같다.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냥
모르고 지나치게 만드는 것과 같다(His kingdom is like treasure that is hidden in a field, and that
means that many people pas it by without ever knowing they are missing something of infinite
value).
발견한 보화로 인해 그 사람은 기뻐하였다고 했다. 그리고 숨겼고 그 숨긴 밭을 통째로 자신의 전 재
산을 들여 샀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라고 한다. 그럼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인가?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보화를 보고 너무 기뻐하여 다시 숨겨두었고 전 재산을 팔아 그 밭을 샀다. 그
보화가 도대체 얼마정도인지 그는 확인도 안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자신의 것을 다 팔아 사도 아
깝지 않음을 알았다. 너무 값비싼 보화(priceless treasure)의 그리스도의 나라는 우리 것이다. 마지막
때가 오면 그 보화가 과연 얼마짜리인지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지 확실하게 알 게 될 것이다(its
true value fully known). 지금은 그리스도의 영광이 감추어진 것과 같다. 하지만 다시 오실 때, 보배
합이 열려지며 그 보화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이지 나타나게 될 것이다. 숨겼다는 것은 복음을 전하
지 않고 간직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자기의 소유로 샀다는 것은 복음을 자신의 어떤 의로 믿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 나라의 백성이 되어야
함을 뜻한다.
즉 이 비유는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왔으나(already come), 또 다른 면에서 앞으로 나타날(it is
still future) 영광스런 하나님의 나라가 있음을 가르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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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와 다시 올 나라/It Has Come, But It Will Come
예수님이 오심으로 어두운 세력인 귀신을 내 쫓으시면서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If I drive out demons by th Spirit of God, then the kingdom of God has
come upon you❞(마 12:28)
그들에게 임한 ‘현세적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했음을 가르쳐 주셨다. 그런가 하면 십자가를 앞두고 마
지막 다락방에서 제자들에게는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I will not drink of this fruit of the vine from
now on until that day when I drink it anew with you in my Father's kingdom❞(마 26:29)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이 오심으로 도래하였지만 그 분이 떠나시므로 다시 오실 때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이야기 한다. 그 긴 기간(a long interval time)동안 하나님 나라에 들어온 백성들은 종으로서
달란트를 남기며 다시 오실 주인을 기다린다. 다른 말로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려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긴 기간(a long interval time)동안 악한 자와의 계속된
영적 전쟁을 아는 것이다. 죄와 전쟁이며, 악한 세력과의 싸움이다. 이것이 현세적 천국의 신비로움이
다. 겨자씨의 비유에 의하면 작아진 것이 커져서 공중의 새들이 와서 깃들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확산 된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나무에 공중의 새들이 와서 깃드는 즉, 사
단의 역사도 만만치 않음을 의미한다(참고: 예수님의 첫 번째 비유에서 새는 ‘마귀’를 상징했다).
그러므로 ‘현세적 하나님의 나라’(다가올 나라와는 분명 다름)는 이렇다고 볼 수 있다.
거룩함이 생겨나지만 동시에 죄와 부단히 싸워야 한다.
병든 자를 위해 기도하여 고치는 역사가 일어나지만 동시에 삶에 큰 고통이 있다.
교회의 부흥으로 인해 기쁨이 있지만 동시에 아픔과 상처가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기뻐하며 살지만 동시에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긴 인내가 있다.
왜 하나님은 우리 친구의 중한 병을 고쳐주시지 않는 것일까? 하나님을 이렇게 잘 섬기려고 몸부림
치는데, 어려움은 더 가중되는가? 하나님의 나라는 도래했는데, 세례요한은 왜 감옥에 갇혔는가?
오늘 예수님은 현세적 천국에 대해 여러 가지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귀 있는 자는 들을찌로다” 하신
다. 세례요한의 제자에게 보고 들은 것을 가서 고하라 하셨다. 그리고 “나로 인해 실족지 않는 자가
복 되도다” 하셨다. 이제부터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버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신비로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바로 이해하여 실족하지 않기를 바란다. “가라지가 있습니다. 주님! 왜 그런
것이지요? 어떻게 할까요?”,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버려 두어라, 추수 때까지........”
- 20 -
✍ 답을 써본 후 서로 질문해 봅시다.
1. 세례요한이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도래한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를 어떻게 이해했는가?
당신도 오늘 말씀을 배우기 전에 세례요한과 같이 이해하고 있지 않았는가?(Page 15)
2. ‘현재적이며 실재적인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Page 16)
3. ‘현제적이며 실재적인 하나님의 나라’는 한마디로 어떻다고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는가?(Page 16)
천국의 ( )
4.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말하는가?(Page 17)
5. 가라지 비유에서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교훈은 무엇인가? 현세적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왔지만 여
전히 우리에게 있는 고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Page 18)
6. 감추인 보화 비유에서 가르치고자 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인가?(Page 19)
7. 현세적 하나님의 나라와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를 구분해 보자. 그리고 그 긴 기간동안 우리는 어
떤 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말해보라(Page 20)
8. 오늘 배운 내용 중에 깨달은 교훈 한 가지를 말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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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과 제 자(Disciples)
마태복음 28:16-20
❏예수님을 믿는다/Believe in Jesus
지 나온 교회 역사를 돌이켜 보면 제자도(discipleship)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교회마다 ‘제자
운동’이 한참이었다.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물론 예수님
을 믿는 것이 처음이요 가장 기초적인 것이다. 하지만 그 뒤에 계속 ‘믿는 자리’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분명 교회의 큰 문제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교회마다 제자도(discipleship)를 깨우치게 하셔서 제자운
동의 붐이 일어나도록 성령님께서 역사하셨다.
‘예수님을 믿는다/Believe in Jesus'에서 ’제자를 만들어라/To make disciples'의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교회는 예수님을 믿게 된 무리들을 이제 제자로 만들어야 한다. 제자가 되어 그 제자들이 또 다른 제
자들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우리에게 명령하신 내용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교인을 삼아가 아님/go and make disciples
of all nations)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 28:19)
예수님의 복음을 잘 귀담아 들어보면 우리에게 완전히 다른 삶(different kind of life)을 살라고 하시는
것을 알게 된다. 단지 구원만 받기 위해 예수님 믿는 것으로, 영생을 얻은 자로서 이 땅에 아무렇게
나 대충 살아가라고 주님은 말씀하신 적이 없다.
구원을 얻는 다는 것, 영생을 얻어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은 이제 이 땅에서 완전히 다른 삶을 살
도록 디자인 되어 있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께서 따라오는 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믿으라”라고 먼저 하기 보다는 “너
희는 나를 따르라”(To follow me)고 하셨음을 알 수 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 분
을 따르는 제자가 되어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야 함을 가르쳐 주고 있다.
☞ 제자/Disciple,
제자란 말은 예수님 당시 흔히 들을 수 있는 단어였다. 문자적 의미는 누군가와 함께 어디를
가는 자(to go somewhere with someone)란 의미이다. 제자란 헬라어로 ‘마데테스’이다. 즉 이
말의 뜻은 추종자란 뜻이며 어느 한 스승의 학생을 뜻한다. 학생은 끊임없이 그 스승으로부
터 인격을 배우고 지혜를 배워 그 스승의 뜻을 이루는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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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따라 오라/Come, follow me
“누군가와 함께 어디를 가는 자”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 가장 좋은 예를 병원에서 전문 의사와 함께
병실을 다니는 레지던트(junior doctors)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스승 의사와 함께 병실에 다니면서 환
자들을 돌보며, 그 분이 하는 말, 하는 행동들을 모두 기록하고 배워 나중에 의사가 되어 스승과 같
이 환자를 돌본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또 다른 레지던트들과 함께 다니며 실습할 수 있는 기회를 준
다. 병원은 몇 백년이 흐르도록 이 관계가 계속되어 왔다. 처음부터 닥터가 되겠는가? 모두 스승을
모시고 다니는 레지던트로 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닥터가 된다.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실 때 하시는 말씀이 무엇이었는가? “나를 따라 오라/Come, follow me"(마
4:19). 예수님은 제자의 중요한 요건으로 자신과 함께 다니는 것을 요구하셨다. 함께 다니려면 부름을
받은 사람은 자신의 것을 포기하여야 했다. 마태는 세리로서 그 직업을 관두어야 했고 베드로 및 요
한은 어부의 일을 포기해야 했다.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를 부르셨을 때, 예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신 것은 “자기와 함께 있게 하
시고/they might be with Him"(막 3:14)였다. 그러므로 제자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승과 함께 하는
것이다. 그 스승을 통해 말씀과 교훈, 가르침을 받아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다.
제자란 단지 믿는 것 이상을 뜻한다. 주일마다 교회에 나오는 회중 전부를 가리켜 예수님의 제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를 믿었지만 소수만이 그를 따랐다. 소수만이 추종자들이 되려
고 자신들의 모든 것을 포기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란 그리스도께 순종하려고 자신들의 생활양식을
조정하는 희생을 치렀던 특수한 무리들을 가리켜 ‘마데테스’ 제자로 부른 것이다. 마데테스는 자기의
것을 포기하고 함께 따라가는 자들이다.
만약에 당신이 어느 빌딩에서 비서로 바쁘게 일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어떤 사람이 사무실까지 와
서 갑자기 나를 보더니 “나를 따르라”고 했다면 당신은 따르겠는가? 아마도 이상한 사람이 사무실까
지 들어왔다고 아래층에 있는 경비원에게 전화를 걸어 끌어내라고 했을 것이다.
또 하나를 가정해 보자. 어떤 이상한 사람이 사무실에 찾아왔다. 그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 사람이
다른 직원에게 무엇을 이야기 하더니 그 직원이 나에게 작은 쪽지를 보냈다. 쪽지를 보니 이렇게 쓰
여 있다. “사장이야/It's the CEO!" 그는 단 한번도 2층에 들린 적이 없었기에 그가 사장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사장이 내 앞에 오더니 ”나를 따라 오게“라고 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생각할 필
요도 없이 벌떡 일어나 사장을 따라 사무실을 나갔을 것이다.
따라가는 것이란 그런 것이다. 내 사무실, 내 컴퓨터 앞에서 할 일이 있지만 사장이 가자 하기에 벌
떡 일어나 그 곳을 떠나 함께 가는 것이다. 그 사장이란 권세 앞에 따라가는
것이다. 세상에 처음 보는 이상한 사람이라면 권세를 느끼지 못해 따라가기는
커녕 경비원을 불러 끌어냈을 것이다. 이토록 제자란 권세 있는 예수님께서
무조건 따라오라고 하기에 따라 나서서 함께 거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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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가 되는 4가지 단계/4 steps of being Disciples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가깝게는 12명의 제자들을 부르셨다. 그리고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을 앞
두고 마지막으로 함께 모이셨던 다락방에서의 가르침은 그 절정을 이루셨다.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과
의 관계는 네 단계로 이루어졌는데, 그 네 번째 단계의 관계를 비로서 십자가에 붙잡히시기 전 다락
방에서 말씀하신 것이다.
첫 번째 단계는 “Come and See me/와서 나를 보라”였다.
두 번째 단계는 “Follow me/나를 따르라”였다.
세 번째 단계는 “Stay with me/나와 함께 있으라”였다. 이 단계는 약 20개월이란 기간이 걸렸다.
이제 십자가를 앞두고 다락방에서 그들에게 마지막 네 번째 단계로 하신 말씀이 있으신데, 그것은 저
유명한 ‘포도나무의 비유’로 설명하면서 하신 말씀, “Remain in me/내 안에 거하라”였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셨던 관계의 변화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다. 또한 이것은 참 제자로
서 되어가는 과정이며 반드시 네 번째 단계에 이르러야 한다. 무엇보다 네 번째가 가장 중요한 것은
네 번째 단계에 불행히도 12 제자 중 한 명이 포함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예수
님을 팔기 위해 다락방을 떠났던 가롯유다였다.
첫 번째부터 세 번째 단계까지는 가롯유다도 있었다. “가서 예수님을 보았고, ”예수님을 따라 다녔으
며“,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며 지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그 분 안에 거하지는 못했다.
그 분 안에 거하는 삶이 참 제자의 삶이며, 진정한 제자로 살 때, 열매가 자연적으로 나타나는데, 가
롯 유다에게는 참 열매가 없었다. 열매를 보아 그 나무가 좋은 나무인지 알 수 있다고 했는데, 가롯
유다는 좋은 열매는 하나도 없기에 그는 결국 나쁜 나무였다. 좋은 열매는 좋은 나무에 달려있기만
하면 저절로 결실하게 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예수님의 강조는 열매 맺는 것을 이야기 하시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 분 안에 거하는 참 제자가 될
것을 역설하신 것이다. 포도나무에 의존하는 가지로서,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서 믿는 자는 자연적
으로 열매를 맺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제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서 예수님
은 결론 부분으로 요 15:8절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that you bear much fruit, showing yourselves to be my discip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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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있는 대상은 모여든 군중이 아니었다. 다락방에 모인 11명에게 하신 말
씀이다. 이미 가롯유다는 예수님을 팔기 위해 다락방의 문을 박차고 나갔다. 제자가 되기 위해 예수
님의 부르심을 받고 따가 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함께 거하여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안에
거하며 그 분과 함께 교통하며 사는 삶이야말로 예수님과 진정으로 연합한 자요 그가 곧 주님의 제자
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가롯유다는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도 예수님을 계속 저울질했다. 그가 과연 메시야인가? 그를 따라
다녀도 될 것인가? 이런 생각을 계속하면서도 예수님과 함께 지냈다. 결정적으로 그가 메시야임이 아
님을 확신하고 그를 버리고 떠나 자신의 유익을 위해 스승을 팔았던 것이다. 겉으로 보아서는 예수님
과 함께 있었던 제자인 것 같으나 실상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었다. 그의 열두 제자의 자리는 훗날
맛디아가 대신 하게 된다.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저가 열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행 1:25-26)
❏값을 치루어야 하는 제자도/The Cost of Discipleship
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군중으로 남아 있으려고 하는가? 제자가 되는 것은 큰 희생의 값(말씀대로
사는 것, 자신의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 다른 사람이 나를 미워함, 핍박을 감당해야 하는 것, 자기
자신을 절제해야 하는 것 등등) 치루어야 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제자로 부름을 받은 자들도
처음부터 주님의 뜻을 온전히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자꾸만 자기들이 편리한데로 생각하고 주님을 따
르려고 했다. 예수님께서 지도자들에게 버림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것을 훗날 비로써 제자
들에게 알리자 제자들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오히려 주님에게 꾸짖었다(rebuke)하였다. 그 때 주님이
무엇이라 하셨는가?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you do not have in
mind the things of God, but the things of men.❞(마 16:23)
이 말씀을 하시고 예수님은 제자가 치루어야 할 희생이 있음을 곧바로 강조하셨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
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If anyone would come after me, he
must deny himself and take up his cross and follow me❞(마 16: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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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다 알만하고 사람들로부터 존경하는 사람의 제자라면 어디를 가든 환영을 받고 대접을 받
게 될 것이다. 그런 제자의 자리는 영광이요 가는 곳마다 인기를 끌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는
그런 대 환영의 대접을 받지 못한다. 아니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사고 핍박을 받게 된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마 10:16)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 알라...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That is why the world hates you❞(요 15:18-19)
찬양 곡 중에 “영광의 길 너 걷기 전에”라는 찬양이 있다. 가사에 보면,
♬ 영광의 길 너 걷기 전에 갈보리 길 너 걸어라
네 모든 것 주께 맡긴 후 하늘 문을 바라보라
하늘가는 다른 길 없네 오직 예수 오직 한길
갈보리 길 걸어가신 주 그길 따라 너 걸으라
제자란 이 세상의 영광스럽고 화려한 길을 걷는 자들이 아니다. 주님의 뒤를 따라 고난의 길을 걷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제자가 될 수 없다. 당신은 주님을 위해 무엇을 희생하며 따르는가?
❏끝까지 따라 가면/If you Follow All the Way
예수님에게 있어서 마지막은 십자가가 아니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로 따라오라는 말씀은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예수님은 십자가 뒤에 있는 영광과 존귀를 보았다. 그 기쁨이 있었기에 십자가를 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제자에게는 값비싼 희생만 따르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
어 주님과 동행하므로 그 분의 영광(glory)을 보며 산다. 세상 영광을 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
을 보며 그것을 만족하며 산다. 이것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영광스러움이라 말할 수 있다. 또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며 그 안에 거하는 참된 제자에게 실족지 않도록 힘과 능력을 주시고 하
나님은 영생, 수많은 상급과 빛나는 면류관으로 채워주실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의 희생적 순종에 대해 말씀하신 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제자에 대한 말씀)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내
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눅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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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를 삼으라/To Make Disciples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Go and make disciples of all nations❞(마 28:19)
제자를 삼으라고 하면 연상되는 것이 소그룹 성경공부(Small Group Bible Study)이다. 물론 성경에 대
해 배우는 것은 필수이다. 그러나 제자 삼는 것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제자 공부라 하여
많은 코스의 공부를 배웠지만 여전히 예수님의 제자로서 십자가를 지는 삶(희생)을 살지 못하고 이기
적이고 문제만 만드는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한마디로 주님의 영광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님의 권세와 주님의 영광을 보지 않고는 제자가 되
어 그 분의 뒤를 따를 수 없다. 아니 따른다 해도 가롯유다 처럼 그분이 누구인지 조차 모르고 자기
의 유익을 위해 다닐 뿐이다. 그 사람은 제자가 아니다.
주님께서 교회에게 맡기신 사명은 그 교회를 통해 그 지역에 있는 사람, 혹은 선교를 통해 멀리 있는
사람들을 교인으로 만들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제자로 만들라는 것이다. 우리교회의 온 회중들을
제자로 만드는 것이 우리교회의 사명이다.
교회마다 본질적인 사명이 다를 수 없다. 목회자마다 추구하고 강조하는 것이 조금씩은 다를 수 있겠
지만 교회에 다니는 모든 교인을 제자로 만드는 것은 주님의 명령이기게 교회가 반드시 감당해야 하
는 문제이다. 오늘 말씀을 배우는 나는 예수님의 제자인가 생각해보라.
다음 10가지 중에서 5가지만 자신이 해당 되도 나는 아직 제자가 아니라고 말 할 수 있다.( )
➊은혜가 없어 교회 집회 가기가 싫다. ➋전도와 선교적인 마인드가 없다.
➌기도 생활을 잘 하지 않는다. ➍맡은 일이 하기 싫다.
➎성경을 잘 읽지 않는다. ➏교회를 위해 시간 내는데 인색하다.
➐다른 사람들을 잘 용서하지 않는다. ➑물질을 바치는데 아까워한다.
➒적당하게 편안하게 신앙생활하고 싶다. ➓예배 시간에 졸거나 늦게 오는 적이 많다.
제자란 모여서 소그룹으로 성경공부 한 시간 배운 것으로 끝나는 자들이 아니다. 배우는 대로 감격하
고 감동받고 주님과 교제 나누고 사람들에게 예수님에 대해 알리고 싶고, 그 분의 영광을 보며 이 땅
에서 성령에 충만하게 사는 자들이 바로 제자들이다. 아무리 어려움이 와도 주님을 떠나지 않고 갈보
리 가시밭 길이라도 따라가는 자들이 제자이다. 바로 이런 제자들을 만들라는 것이 주님의 명령이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들마다 편히 쉬는, 희생은 할 줄 모르고 복만 추구할 줄 아는 이기적인 그리스도
인들을 만들어 내고 있지 않는가? 다른 이를 제자 삼기 전에 내 자신부터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하겠
다. 내가 제자가 된 후, 또 다른 사람들을 제자로 만들어야 한다.
희생을 각오한 사람들, 주님을 따르려고 자신의 것을 버릴 줄 아는 사람들, 주님과 함께 어느 곳이라
도 갈 수 있는 사람들, 주님은 오늘 당신을 부르신다. 그런 제자로...........
- 27 -
✍ 답을 써본 후 서로 질문해 봅시다.
1. 예수님을 믿는 자리에서 어느 자리에 이르도록 만들어야 하는가?(Page 22)
2. 제자란 무슨 뜻인가?(Page 22)
3. 제자가 되는 네 가지 단계는 무엇인가?
➊
➋
➌
➍
4. 제자가 값을 치루며 희생적으로 따랐을 때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이라 하는가?(Page 26)
5. 가롯유다는 겉으로는 예수님의 12 제자 안에 포함되었지만 결국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었다. 그
에게 있었던 문제는 무엇인지 말해보라(Page 25, 27)
6.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은 똑같다. 그것이 무엇이라 배웠는가? 우리교회는 지금 그 사명을 감당하
고 있는가? 당신은 본교회의 멤버인 성도로서 지금 제자로 살아가고 있는지 말해보라.
7. 오늘 배운 내용 중에 깨달은 교훈 한 가지를 말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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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과 주님(Lord)
마가복음 4장-5장
❏두 종류의 신앙인/Two kinds of Believer
당 신의 신앙을 오늘 점검해 보기 위해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다른 점을 생각해 봐야 한다. 그것
은 마켓과 결혼(The difference between a super market and marriage)이다. 내가 마켓에 다니
는 것과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결혼과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는지 다음의 글을 읽어보라.
수퍼 마켓은 ‘선택/고르기’(choice)이라 말할 수 있다. 샤핑 카트를 끌고 마켓 안 진열대를 돌아보면서
필요한 것은 카트에 넣고, 필요 없는 것은 그대로 둔 채 다음 복도로 이동한다. 마켓 안에서는 어떤
의무도 나에겐 없다(You are under no obligation).
하지만 결혼생활이란 다르다. 결혼한 젊은이들을 생각해 보자. 어떤 신랑이 신부의 눈은 좋아하는데,
그 머리 스타일은 싫다고 할 수 없다. 신부가 좋아하는 스포츠는 좋아하면서 신부가 좋아하는 음악에
대해서는 싫다고 할 수 없다. 화요일과 목요일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지만 월요일과 금요일은 절
대로 함께 보낼 수 없다고 한다면 그 가정은 문제가 있는 가정이 될 것이다.
결혼이란 내가 좋은 것만 좋아할 수 없고, 상대방에 대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픈 것도 건강한 것도 말이다(Marriage is all about taking a person as he or
she is, for better, for worse, in sickness and in health). 결혼이란 어떠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서로
사랑을 실행하며 헌신적인 관계가 되어야 한다(It is a commitment to love whatever happens). 그러
므로 결혼은 약속으로 인한 ‘헌신적인 실행’(commitment)이라 말 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오늘날 신앙생활을 마치 수퍼 마켓에 가는 정도로 하고 있다. 성경을 열
어 자신이 좋아하는 복도(aisles)만 다니며 필요한 것만 주워 담는다. 예를 들면, 축복, 은혜, 용서받
음, 평강, 천국 등등......... 그러나 성경 안에 있는 다른 복도들, 예를 들면 크게 사인 판이 붙어 있
는 곳 “하나님이 너를 용서하신 것처럼 너희도 용서하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은 관심도 없고, 이런 사인이 붙어있는 복도에는 아예 들
어 갈 생각조차 하지 않고 지나쳐 버린다.
Choice Commitment
VS
하지만 성경은 우리의 신앙생활이 내가 좋아하는 것만 취하고, 다른 것은 관심도 없이 순종해 보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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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도 없는 그런 자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고 가르친다.
오히려 쌍방 간에 의무가 있고 서로 사랑하며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함을 가르친다(it
does describe the Christian life as a "marriage" in which two parties commit to each other just as
they are).
생각해 보라. 예수님은 당신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셨다. 죄인인 모습, 이기심과 욕심, 죄악으로
얼룩진 부족한 나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시려고 십자가를 지셨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하신 말씀(마 9:13)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분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것만 받아들인다. 당신은 그렇지 않은가?
❏구원자와 주/Savior and Lord
성경은 분명히 말하길,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Savior)이시며 동시에 우리의 주(Lord/King/Master)가
되심을 받아들여야 함을 강조한다. 그리고 구원자와 주를 서로 나눌 수 없다(Jesus Christ is Savior
and Lord, and that is how you must receive Him. You cannot divide Him in two).
‘주/Lord'란 명칭은 무엇인가? 구약(히브리어)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아도나이‘라고 불렀고, 신약(헬
라어)에서는 하나님/예수님을 ’퀴리오스‘라 불렀다. 모두 ’주/Lord'란 말이다. ‘주’란 ‘주인/Master', 또
는 ’왕/King'이란 뜻으로 권력과 권세를 가지어 나를 다스리는 즉, 나에게 있어서 절대자를 뜻한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자신에게 구원만 베푸시는 구원자(Savior)로만 받아들인다. 그리고
계속하여 자신이 원하는 것,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간다. 구원을 주신 분으로 감사하지만 나의 삶
에 개입하여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싫다는 이기적인 신앙이다.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올바른 신
앙생활이 아니다.
예수님의 주(Lord)되시는 주권(Lordship of Christ)을 받아들일 때, 비로써 참다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
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분은 우리의 구세주뿐만 아니라 우리의 주가 되신다. 이것이 복음이다(The
good news is not just that Jesus is Savior; it is also Jesus is Lord).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 ❝도마가 대답하되
라 이는 그가 자기 나의 주(Lord)시며
백성을 저희 죄에서 나의 하나님(God)
구원할 자(Savior)
이시니이다❞
이심이라 하니라❞ (요한복음 20:28)
(마태복음 1:21)
아무나 우리의 구원자가 되지는 못한다. 하고 싶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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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이기 때문에 죄인이 죄인을 구원할 수 없다. 오직 거룩하신 하나님만이 죄인을 구원하실 수 있다.
그 하나님(주/Lord)을 바라보고 불러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
구약의 예언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
And everyone who calls on the name of the Lord will be saved(요엘 2:32)
신약의 성취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Jesus is Lord)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성경에 이르
되...누구든지 주의 이름(calls on the name of the Lord)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로마서 10:9-13)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시고 강림하셨다. 그 분은 여호와/주(Lord)이시다. 그 분이 이 땅
에 오시었는데, 이름이 예수님이시며 그 분이 바로 주(Lord)가 되신다. 유대인들은 아직도 예수님을
그 여호와(주/Lord)로 보지 않고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만을 주(Lord)로 여기며 섬기지만, 성경은 그
여호와께서 강림하셨다고 가르친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여호와/주(Lord)로서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실
수 있는 구원자(Savior)의 자격을 갖추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주(Lord)가 아니라면 구원자
(Savoir)가 될 수 없으시다(Jesus could not be Savior if He were not Lord). 예수님이 구원자로 오신
주(Lord)로서 하셨던 일들을 마가복음 4,5장에서 살펴보아 그 분의 주(Lord)되심에 절대 복종하고 감
사하며 신앙생활을 해야 하겠다.
❏주는 4D를 다스리신다/Lord over 4 D
마가복음 4장 끝부분부터 5장 전체에 예수님이 행하셨던 기적 4가지가 나온다. 이 4가지 기적은 일반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이적(Miraculous signs)이었다. 외우기 쉽게 4D로 설명해 본다.
Disasters 마가복음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재난, 즉 바다의 폭풍
(재난들) 4:35-41 을 꾸짖으시니 곧 큰 풍랑이 잠잠해 졌다.
Demons 마가복음 (재난을 다스리시는 주)
(귀신들) 5:1-20
군대 귀신이 들려 괴로워하는 귀신 들린
Disease 마가복음 사람에게 귀신을 내쫓으시어 온전한
(질병들) 5:21-34 사람으로 만드셨다.
(귀신을 다스리시는 주)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어떤 의사들도
손 되지 못하여 사형선고를 받은
여인의 질병을 고쳐주셨다.
(불치의 질병을 다스리시는 주)
Death 마가복음 죽음 앞에 속수무책인 어린
(죽음) 5:35-43 소녀를 말씀하시고 손을 잡아
일으키어 살려주셨다.
(가장 두려운 죽음을 다스리시는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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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과학의 기술을 만들어내는 인간들이지만 인간들이 두려워하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이 무엇인가?
이미 살펴본 4 D, 재난(Disasters), 귀신(Demons), 질병(Disease) 그리고 죽음(Death)이다. 인간들이
두려워하는 모든 것이 바로 4 D에 속해 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네 가지 모두를 권세와 능력으로 다스리셨다. 그
것은 그 분이 주님(Lord)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인간들에게는 해결 못할 두려운 일들이지만 주님께
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이제 하나씩 살펴봄으로 주님(Lord) 되시는 예수님의 권세와 능력 앞에 당신
자신을 맡기고 살아보기 바란다.
➊재난/Lord over Natural Disasters(막 4:35-41)
이 세상에는 수많은 재난이 끊임없이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다. 재난에는 홍수(Flood), 지진
(Earthquake), 기근(Famine), 화산(Volcano), 태풍(Hurricane), 풍랑(Waves), 산사태(Landslide), 우박
(Hailstone), 천둥번개(Thunderbolt), 회오리바람(Tornado), 폭설(heavy Snowfall), 한파(cold Wave)해저
화산 폭발(Seabed Volcano), 지진해일(쓰나미/津波ㆍTsunami, ‘포구로 밀려드는 파도’란 뜻으로 해안(津)을 뜻하는 일
본어 쓰(tsu)와 파도(波)의 나미(nami)가 합쳐진 용어로 ‘지진해일’로 번역된다. 일본이 지진으로 인한 해일의 피해를 많이 겪어
와 일본말이 국제어가 됐다) 등 수많은 재난들이 인간의 문명사회를 뒤흔들고 있으며 심지어 막대한 피해
와 죽음으로 몰고 가고 있다.
이제는 이런 재난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곳은 없다. 아무리 높은 빌딩을 짓고 견고한 성읍을 쌓아
막아보려고 해도 인간은 자연 재난으로부터 항상 어려움을 당해 왔다. 이것은 앞으로도 마찬가지이
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바다 한 가운데서 심한 풍랑으로 인하여 고통 받는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풍랑을 꾸짖으시며 잠잠케 하셨다. 제자들은 서로 말하길, "이가 누구인가?"(Who is this?) 하
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바다 위를 걸으시고, 풍랑을 잠잠케 하신 분이야말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
실 수 있는 능력의 주님이 아니신가? 그 분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기에 풍랑을 잠
잠케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 세상의 재난으로 인해 쉴 곳이 없는가? 주님(Lord) 안에 들어
오라. 그 분만이 나의 영원한 반석이시며 요새가 되신다.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 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영토록 왕으로 좌정 하시도다❞
(시편 29:10)
➋어두움의 세력 귀신들/Lord over Demons(막 5:1-20)
예수님은 배를 타시고 건너편 거라사 인의 지방에 들어가셨다가 무덤에서 거하며 사는 귀신들린 자를
만나게 되었다. 귀신들린 자는 단번에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아보고는 달려와 절하며 이렇게 큰 소리
로 외쳤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컨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하니❞(막 5:7)
귀신도 예수님을 한 번에 알아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포로로 잡아놓은 사람에게 간섭하지 말고 떠나
달라고 간청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귀신들조차 복종할 수밖에 없는 주님(Lord)이시기에 귀신을 호통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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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내어 쫓으셨다. 그 사람에게는 하나의 귀신이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군대(헬라어/레기온) 귀신
이 들어가 있었다. 로마 당시 6,000-10,000명 단위의 로마군 군대를 가리키는 용어로서 이것은 그가
수많은 악령에게 사로잡혀 있음을 뜻한다.
이 세상은 어두움의 주관자들이 다스리고 있다. 그런데 그 어두움의 주관자 마귀(사단)는 졸개들인
귀신/악령들을 시켜 이 세상을 비참하게 만들고 파괴(destroy)시키고 있다. 무덤 사이에 거했던 귀신
들린 자를 보라(5:2-5). 얼마나 비참하게 만들었는가? 악령은 가정을 파괴하고, 국가를 파괴하고, 한
개인을 파괴한다. 악령이 하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파괴하는 일이다. 우리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
씀하셨다.
❝도적(거짓 선지자/악령)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요 10:10)
그 당시 왜 그렇게도 귀신에 사로잡힌 자가 많았던지? 하지만 더 강하신 주님(Lord)께서 오셔서 귀신
들을 내어 쫓으시며 어두움의 세력을 물리치셨다. 그 능력의 주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구원
자가 되신다.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더 강한
자가 와서 저를 이길 때에는 저의 믿던 무장을 빼앗고 저의 재물을 나누느니라❞(눅 11:20-22)
➌질병/Lord over Disease(막 5:21-34)
인간이 무서워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면 그것은 질병일 것이다. 그것도 불치의 병...... 의사들도 손을
더 이상 될 수 없는 불치의 병...... 또 나면서부터 핸디캡으로 태어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예수
님 당시만 해도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들, 나면서부터 소경된 자들이 많았다. 또한 도중에 중풍병자나
문둥병이 된 사람들, 질병은 괴로움을 주고, 인간사회로부터 격리시키게 하고 그리고 마지막엔 죽음
으로 몰아간다. 요즈음엔 각종 암, 백혈병, AIDS, 사스(SARSㆍ중증급성 호흡기 증후군), 광우병(소에 발
생하는 치명적인 전염성 뇌질환인 광우병의 의학적인 공식 명칭은 우해면양뇌증(牛海綿樣腦症, BSE)이다. 소의 광우병과 비슷
한 사람의 증세는 크로이츠펠트-야콥병(CJD, Creutzfeldt-Jakob Disease)이라고 한다), 일본뇌염(Japanese Encephalitis 사람과
동물의 중추신경계 영향을 주고, 모기에 의해 전염되는 바이러스 질병으로 일본, 한국 및 인도 아시아 등지에서 사람에 심한
유행을 보였다),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모기), 알츠하이머병(Alzheimer치매, 현재 한국에는 60만의 알츠하이머 병자가
있고 전 세계적으로 1,800만명 있음. 현대의 3대 질병 중 하나(암, AIDS, 알츠하이머)/2006년), 파킨슨병(Parkinson, 파킨슨
병은 진전(떨림), 경직, 서동증(행동이 느려짐), 불안정한 자세 유지 등을 주 증상으로 하는 병으로 뇌에서 도파민이라는 신경
전달물질이 부족하게 되어 생기는 만성질환입니다. 현재 미국에서는 수 백 만명, 한국에는 10만의 파킨슨 병자가 있음/2006년)
처럼 난치성 뇌 질환 환자의 증가가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질병은 인간을 위협하는 무섭고 두려운
존재로 누구에게나 다가온다.
그런데 예수님은 성경에 나온 불치의 병들을 말씀 한마디로 깨끗하게 고쳐주셨다. 예수님이 고쳐주신
질병들을 보면 중풍병자, 문둥이, 나면서 소경된 자, 38년 된 병자, 간질 하는 자, 열병, 각색 병든 자
들(마 4:24), 나면서 앉은뱅이, 귀먹은 자(마 11:5),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열 두해를 혈루증
(subject to bleeding for twelve years)으로 앓고 있는 여인을 고쳐주셨다. 예수님은 주님(Lord)이시기
에 모든 질병을 다 고칠 수 있으셨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불치의 병을 고침 받고 있는가? 권능의 주
님(Lord)이었기에 우리의 죄를 담당하실 수 있는 구원자(Savior)가 되실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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➍죽음/Lord over Death(막 5:35-43)
죽음은 인간에게 있어서 최대의 두려움이요, 가장 큰 원수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롬 6:23)고 한
것처럼 죽기를 싫어하지만 모든 인간은 두려워하며 죽음을 이기지 못했다. 결국 한번은 반드시 죽게
된다(히 9:27). 어떤 이들에겐 죽음이 비켜간다면, 자신에게 죽음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겠
지만 모든 사람에게 있어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었다.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라❞(히 2:15)
죄로 인해 사망이 인간 위에서 왕 노릇하게 되었다(롬 5:17). 나이 많은 사람에게만 아니라 오늘 본
문에 나타난 12살 된 여자소녀에게도 사망은 왕 노릇하였다. 죽음은 모든 이들에게 두려운 것이며 모
든 이들을 슬프게 만든다. 그런데 주님(Lord)이 오셔서 그 죽음을 다스리셨다. 성경에 죽었던 자를 살
리신 세 번의 내용을 복음기자들은 증거한다(❶회당장 야이로의 딸 ❷나인성 과부의 아들 ❸친구 나
사로).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나타난 많은 기이한 현상 중에 죽었던 자들이 부활한 사건을
마태는 기록해 놓았다.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many holy people who had died were
raised to life)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
게 보이니라❞(마 27:52,53)
예수님은 주(Lord)로서 죽은 사람을 살리셨다. 그 자신이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시어 죽음을 정복
하셨다. 이제 사망이 왕 노릇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인해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한다(롬 5:17).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사망아 너희 쏘는 것이 어디 있
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5:54-57)
주님(Lord)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구원자(Savior)로 오시어 대속의 십자가를 지셨다.
그것은 주님(Lord)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더 이상 죽음을 두려
워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바울의 고백처럼,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
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
1:20,21). 이제 죽음은 영생으로 들어가는 관문이 되었다. 예수님을 주(Lord)와 구원자(Savior)로 믿으
면 죽더라도 지옥(영사/영원한 죽음, 영원한 고통)으로 가는 것이 아니기에 죽음이 더 이상 우리 위에
왕 노릇 하지 못한다. 이제 생명 안에 있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질 것이기에 죽음조차 성도들 위에
군림하지 못한다. 이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되어 진 사건이다.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아직도 예수님을 구원자(Savior)로만 안다. 구원은 받은 놓은 것이니
신앙생활하면서도 아직도 자기 멋대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자기 가고 싶은 데로 행동하며 산다. 우
리를 구원하신 분이 주(Lord, Master)가 되신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진정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제부터라도 내 삶에 있어서 구원을 주신 구원자(Savior)로서 또한 모든 것
을 다스리시는 주님(Lord)으로 믿고 따라야 할 것이다. 당신은 예수님을 누구로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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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을 써본 후 서로 질문해 봅시다.
1.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을 두 가지로 비교해 보고 각각 키 워드(중요한 단어)를 말해보라(Page 29).
❶ (키 워드: )
❷ (키 워드: )
2. 예수님은 당신의 어떤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셨는가? 이 말은 반대로 당신이 주님을 어떤 분으로
받아들여함을 뜻하는지 말해보라?(Page 30).
3. 예수님은 구원자(Savior)인 동시에 우리의 무엇이 되는가? 뜻을 말해보라(Page 30).
4. 왜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구원자(Savior)로는 믿으면서 주(Lord)로는 받아들이지
못하는지 말해보라(Page 30).
5. 주님(Lord)으로서 그 권세와 권능으로 다스린 4D는 무엇인가?(Page 31).
❶
❷
❸
❹
6. 사망이 왕 노릇했었는데, 이제는 무엇이 왕 노릇하며 우리는 죽음 앞에서 어떤 각오로 신앙 생활
해야 하는지 말해보라(Page 34).
7. 오늘 배운 내용 중에 깨달은 교훈 한 가지를 말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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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과 지옥(Hell)
마가복음 9:41-50
❏지옥은 어떤 곳인가?/What is hell?
성 경은 천국과 지옥에 대해 말하고 있다. 천국이 있다면 지옥도 있음이 분명하다. 천국이 좋은 곳
이라면 지옥은 분명 나쁜 곳일 것이다. 천국의 반대어가 바로 지옥이기 때문에 천국과 전혀 반
대되는 곳이 지옥이다. 그렇다면 지옥이 있음을 우리는 어떻게 아는가? 지옥은 어떤 곳인가? 요즈음
지성인으로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지옥’이란 말이 어울리는가? 강단에서 지옥에 대해 외쳐대는 설
교자를 회중들은 어떻게 볼까? 지옥에 대해 설교하는 설교자가 오늘날 있을까?
☞ 지옥/Hell
성경에는 지옥에 해당되는 단어가 네 가지로 나타난다. 히브리어 스올(Sheol/음부), 헬라어로 하
데스(Hades), 게엔나, 타르타로오(Tartanus)라 부른다. 지옥은 저주받은 자들이 가서 영원토록
살 곳으로서 어두움 속에서 꺼지지 않는 불에 의해 고통 받는 장소이다. 풀무불, 혹은 불못이라
고도 부르는 이 곳에 예수님을 믿지 않던 죄인들, 악의 세력인 마귀와 귀신들도 함께 들어가 가
두어질 영원한 형벌의 장소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지옥’이란 단어가 좀처럼 들어보기 힘든 단어가 되었다. ❰긍정적 사고/Positive
Thinking❱와 요즈음 유행하는 ❰번영신학/축복, 성공, 부요 강조❱, 아니면 ❰기복신앙/만사형통❱에
서는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죄, 회개, 심판, 지옥 같은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고 대신, 긍정적인 힘,
긍정적인 마인드, 축복, 은혜, 소망, 위로, 성공 만사형통 등 잘 되어 가는 것만을 항상 설교한다.
VS
긍정적 사고, 번영신학 성경에서 말하는 지옥
(성공, 축복, 위로, 치유, 형통, 소망, 자신감) (괴로움, 고통스런 장소, 형벌의 장소, 영사)
성경을 펼쳐보면 긍정적인 생각, 축복, 위로, 번영, 치유, 소망, 은혜에 대해서 많이 언급한다. 이것
역시 중요한 주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성경에 보면 죄에 대한 지적과 아울러 회개에 대해
많이 나온다. 왜냐하면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지은 죄인들에게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시어
죄를 지적하시고 돌이키지 않을 때에는 무서운 심판과 재앙이 임하게 될 것을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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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천국과 아울러 지옥에 대해 상세히 말씀하심으로 끝내 예수님을 거부하는 자들은 지옥에
악의 세력들과 함께 떨어져 고통 가운데 있게 될 것을 거듭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어떤 것들은 무시
하고 한 가지에만 치우쳐 강조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무시되는 지옥/Ignoring hell
분명 천국과 지옥은 현세가 아닌 내세에 관한 일이기에 우리 인간들에게는 신비로움에는 틀림없다.
왜냐하면 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천국과 지옥에 대해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결말은 지옥에 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
다.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그런즉 가라지(악한 자의 아들들/불신자)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
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the fiery furnace/지옥)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그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천국)에서 해
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마 13:39-43)
분명 성경에는 지옥에 관한 말씀이 많이 언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은 지옥에 대해 무시하거
나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서로 다른 주장을 하거나 믿고 있다.
여호와의 영혼 수면설 신체를 떠난 영혼의 의식적 존재를 부인하는 주장이다.
증인 (Psychopannychy) 사람이 죽으면 부활 때까지 그의 영혼은 잠을 잘 뿐이다.
및 절멸설 하나님이 범죄 한 영혼들의 영생 능력을 박탈하시므로 필경
멸절되리라는 설이다. 즉 최종심판 후에 모든 회개하지 않
은 사람들은 절멸(extermination)되리라고 단언한다.
안식교 조건적 영생설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영혼은 필경 스스로
죽거나 의식을 전부 상실한다고 본다.
로마 연옥 완전히 성화되지 못하고 부분적으로 성화된 그리스도인들의
카톨릭 중 (Purgatory) 영혼이 가 거처하는 곳이다.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하도록
간 정화의 과정을 거치는 곳인데, 심한 고통을 받는다. 지상 성도의
기
기도와 선행과 미사로 기간은 단축될 수 있다.
선조림보
구약의 성도들의 영혼이 유치되어 있는 곳으로
상 혹 ‘아브라함의 품’, 낙원‘이라고 한다.
태
이교도의 자손이나 교인의 자손들을 막론하고 모든 세례 받지 못한
유아림보 아이들의 영혼들이 거주하는 처소. 이들에게는 적극적인 형벌은 없으
나 천국의 축복에는 제외되므로 아무런 소망이 없다고 주장한다.
지옥 세례 받지 못한 장년과 세례를 받았으나 죽음에 이르는
죄로 인해 세례의 은혜를 잃어 버리고 교회에 화목 되지
못한 체 죽은 장년들이 즉각적으로 가는 곳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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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이미 배운 대로 이 시대 강단에서 지옥(hell)이란 단어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긍정적 사
고'(Positive Thinking)와 ’번영신학‘, 기복적 신앙을 주장하는 목회자들과 교회에서 지옥은 어느새 자취
를 감추고 있으니 자연적으로 성도들은 지옥이 어떤 곳이라는 것을 잘 모르고 있다. 지옥에 대해 왜
말하지 않는 것일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축복과 번영을 말하려면 딱딱한 교리인 지옥에 대해 말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상하게도 현재 죄, 회개, 심판, 지옥에 대해 말하지 않는 교회가 성장한다.
❏정말 예수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는가?/Did really Jesus say that?
신약에서 지옥에 관한 말씀 중 가장 많이 언급한 분은 누구일까? 그것은 사도바울도, 베드로도 아니
다.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서 분명하게 지옥에 관한 내용이 많이 있다(We believe
in hell primarily because it was taught clearly by Jesus Christ). 당신은 이 사실이 믿어지는가?
예수님이 복음서에서 언급하셨던 지옥에 대한 내용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다(복음서에서 같은 내용
이 중복되어 언급된 것은 제외 시켰음).
1 마 5:22 지옥 불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 마 5:29 지옥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3 마 5:30 지옥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4 마 8:12 바깥 어두운데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5 마 10:28 지옥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6 마 12:32 오는 세상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지옥)에도 사하심을 얻지못함”
7 마 13:42 풀무 불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8 마 13:49-50 풀무 불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9 마 16:18 음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지옥)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0 마 22:13 바깥 어두움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11 마 23:15 지옥 자식 “외식하는 서기관들과....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12 마 23:33 지옥의 판결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13 마 24:51 거기서(지옥) “생각지 않은 날.....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14 마 25:30 바깥 어두운데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15 마 25:41 영영한 불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16 마 25:46 영벌 "저희는 영벌(eternal punishment)에, 의인들은 영생(eternal Life)에 들어“
17 막 9:45 지옥 “네 발이 범죄 하였거든 찍어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18 막 9:48 꺼지지 않는 불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 하느니라”
19 눅 12:5 지옥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20 눅 13:28 밖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21 눅 16:23 음부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있는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22 요 5:29 심판의 부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지옥에서 살게 됨)로 나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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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말씀하신 22 가지 지옥에 대해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❶지옥은 불이 있는 곳이다. 그 불은 영원하고 꺼지지 않는다.
❷지옥은 어둡고 깜깜하다.
❸지옥은 밖이다. 쫓겨난다는 말이 반복된다.
❹지옥은 슬피 우는 곳이며 이를 갈며 고통 하는 곳이다.
❺지옥은 하나님의 심판의 장소이다.
❻지옥에서는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다. 구더기조차 죽지 못하는 영원히 형벌 가운데 사는 곳이다.
❼지옥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다.
❽지옥은 흑암의 권세 잡은 자, 마귀도 영원토록 결박되어 살게 될 장소이다.
❾훗날 부활체가 되면 악인도 부활체를 입어 영과 육이 지옥에서 영원토록 고통 받으며 살게 된다.
❿지옥으로 보내는 자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이시다. 죄의 결과로 인한 심판의 마지막 장소이다.
❏심판의 장소/The place of Punishment
예수님은 지옥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그 곳은 심판의 장소임을 강조하셨다. 심판으로 인해 지옥은 극
에 달하는 고통이 있다.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마 25:41)
❝저(부자)가 음부(Hell)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눅 16:23)
계시록에서 요한은 지옥에 대한 환상을 보면서 더 상세히 말하고 있다.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 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계 14:11)
하나님의 심판에 피할 자는 없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았던 모든 자들은 심판의 형벌 장소인 지
옥에 가서 영원토록 고통을 받으며 살게 된다. 임산부가 아기를 낳으려고 진통하는 것이 영원토록 지
속된다면 어떻게 될까? 암 말기 환자가 심한 고통 가운데 죽고 싶을 정도의 아픔과 고통이 영원토록
지속된다면 어떻게 될까? 전쟁터에서 옆구리에 총을 맞아 신음하며 괴로운 상태로 영원히 지낸다면
어떻게 될까? 마실 물이 없어 열흘 동안 갈증으로 인해 탈진한 상태로 영원히 산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런 상황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곳이 바로 지옥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분명 지옥이 있음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천국과 지옥으로 나눔)이 있으리니❞
(히 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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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의 등급/Degrees of Punishment
하나님의 심판은 정확하고 완전하시다. 그러므로 누군가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실수로 지옥으로 보
내는 일은 없다. 지옥에 가는 자는 단 한 종류의 사람,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는 모
두 지옥으로 가게 된다. 선한 자는 천국가고 악한 자들만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겉 모습이
선하든, 악하든, 그 누구든지 예수님을 영접치 못한 자는 지옥에 가게 된다.
성경에 보면 천국에서도 상급의 등급(degrees of reward in heaven)이 있듯이, 지옥에서도 심판의 등
급(degrees of punishment in hell)이 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예수님의 복음을 받
아들이지 않는 사람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마 10:15)
❝화가 있을찐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찐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
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
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마 11:21,22)
다음의 구절을 읽어보면 심판의 등급이 있음을 더욱 알게 된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
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 12:47,48)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히 10:29)
❏강조되어져야 할 지옥/Must emphasis on Hell
이미 살펴 본대로 예수님께서 지옥에 대해 아주 자세히 강조하시고 말씀하심은 지옥은 하나님의 저주
받은 자들이 가서 살 영원한 형벌의 장소요 고통스런 장소이기에 지옥의 자식에서 천국의 자식으로
우리를 건져 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 지옥이 없다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 필요조차 없으셨
다. 바울은 우리가 전에 지옥의 자식이었음을 강조하였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마귀의 자녀, 지옥의 자녀)이었더니❞(엡 2:3)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는 지옥의 처절함을 자각하고 설교 중에 지옥을 이렇게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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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손가락을 뜨거운 불에 한 번 대보십시오. 몇 초도 견디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보
다 더 큰 고통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옥의 고통입니다. 온 몸이 불 속에 들어가 영원히 있게 될
지옥의 고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윌리엄 부스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기도 중에 지옥의 환상을 봤다. 윌리엄 부스가 지옥의 환상을
확실히 보고 나서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 자기 친척 가운데서도 지옥에 있는 사람이 있었다. 깜짝
놀랐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저렇게 지옥에 가고 있는데, 내가 이렇게 미지근하게
믿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생겨서 ‘영혼을 구원하는 군대’라는 구세군을 창설했다. “이제부터는 영
혼 살리는 것에만 힘쓰고, 군대같이 복음만 증거 하는 그러한 종파를 만들겠다”는 것이 구세군의 출
발점이다.
인간의 죄를 다루지 않고는 회개와 심판을 다룰 수 없고, 인간의 심판을 다루지 않고는 지옥에 대해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지옥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은 강단에서 죄, 회개, 심판을 다루지 않는 것이
된다.
하나님의 진노를 아무도 피할 수 없다. 저주받고 정죄 받은 자들이 갈 곳은 오직 한 장소, 지옥 밖에
는 없다. 오직 피할 수 있는 길은 십자가에서 우리 위해 대신 죽으신 예수님뿐이다(Jesus opened the
way of escape for us by entering hell Himself on the cross).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자비, 하나님의 은총을 설명하려면 십자가가 나와야 한다. 십자가가 무엇인
가? 십자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한다. 물론 하나님의 사랑을 십자가에서 발견한다. 하
지만 동시에 십자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Justice)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셨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은
끔찍한 죄인으로 보셨다. 우리의 죄를 짊어지신 분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
할지라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신 것이다. 지옥의 자식들을 천국의 자녀들로 삼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한 면인 사랑만 강조하고, 사랑만 전한다면, 자연적으로 내가 어디서부터 구원함
을 받았고, 왜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에서 이루어졌는지 알지를 못한다. 지옥의 영원한 불구덩이를
모른다면 구원의 감격도 크지 않을 것이고, 감사도 크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나를 사랑해서 예수님
이 죽으신 것으로만 안다. 왜 사랑하셨는가? 어떻게 사랑하셨는가? 어떤 곳에서부터 나를 건지셨는
가를 알아야 하나님의 참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비로써 깨닫게 된다.
바로 예수님은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하기 위해 지옥에 대해 그토록 많은 말씀을 하신 것이었
다. 나는 당연히 선민으로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고 믿었던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들을 향
하여 예수님은 지옥의 실체에 대해 말씀하셨고, 회개치 아니하는 바로 그런 자들이 들어가게 될 곳이
지옥이라고 단호히 선포하셨다.
예수님이 선포하신 지옥, 지금은 들어보기 힘들어졌다. 예수님이 오늘 우리 시대에 오셔서 길을 걸어
가신다면 무슨 말씀을 단호히 선포하실까? 만사형통만을 외치셨을까? 아니면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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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을 써본 후 서로 질문해 봅시다.
1. 지옥이란 어떤 곳인가?(Page 36).
2. 오늘날 교회 강단에서 유행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그들이 주장하는 것들은 어떤 것이기에 지옥에
대해 듣기 힘든지 말해보라(Page 36).
❶❷
❸
이들이 강조하는 것들:
3. 현대 교회에서 이 두 가지 중 어떤 것만을 전해야 하는가, 아니면 둘다 전해야 하는가?(Page 36).
4. 왜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구원자(Savior)로는 믿으면서 주(Lord)로는 받아들이지
못하는지 말해보라(Page 30).
5. 오늘날 지옥에 대해 무시되거나 잘못 가르치는 것들이 있다. 어떤 것들인가?(Page 37).
여호와의 증인/안식교 ❶ ❷❸
로마 카톨릭(중간기 ) ❶ ❷❸
로마 카톨릭에서 말하는 지옥:
6. 신약에서 지옥에 대해 가장 많이 언급하며 가르친 분은 누구이며 그 내용을 종합하여 그 곳이 어
떤 곳인지 말해보라(Page 38). ( )
❶
❷
❸
❹
❺
7. 지옥은 어떤 장소이며, 그 곳에서도 무엇으로 나누어진다고 배웠는가?(Page 39, 40)
❶어떤 장소:
❷어떻게 나누어지는가?:
8. 오늘 배운 내용 중에 깨달은 교훈 한 가지를 말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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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과 기적(Miracles)
마가복음 12:18-27
❏당신의 세계관은 어떤 것인가?/What is your worldview?
정 말 이 세상에 기적(miracles)이란 있는 것일까? 정말 기적이 있다면 왜 어떤 사람들은 그 기적을
믿지 않을까? 그리고 기적이 있다면 어떤 것이 정말 기적일까? 세상 사람들에게는 ‘세계
관’(worldview)이라는 것이 있다. 신앙의 세계에서도 같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견해가 바뀌어 진다는 것
은 매우 힘든 일이다. 세계관이란 어떤 정보를 통해 갖게 된 신념을 뜻한다(A worlldview is a set of
beliefs through which we filter information). 바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면 좋겠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 자신들의 눈이 감긴 줄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가지고 있는 세계관에서
바뀐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It's not easy to change your worldview).
오래전 사람들은 지구가 둥그렇지 않고 수평으로 되어 있고, 해가 지구 주변을 도는 줄 알았다(At
one time, people believe that the earth is flat and that the sun moves around the earth). 하지만
17세기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지구가 둥글며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을 믿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했다.
종교재판에 회부됐을 때 그는 이미 70세 고령이었다. 그 당시 천동설(Ptolemaic theory)과 지동설
(Heliocentric theory)은 아무것이나 믿으면 어떠냐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생명이 걸린 문제였다. 그래
서 결국 목숨을 건지는 쪽으로 타협하여 종신 금고형을 선고받고 피렌체 자택에서 쓸쓸한 여생을 보
내게 된다. 그리고 400년이 흘렀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가 들으면 지하에서 벌떡 일어설 만큼
놀라운 단체가 지금도 활동하고 있다. 미국에는 ‘FES’라는 조직이 있는데, ‘아직도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의 국제적 모임’(The Flat Earth Society)이다. 그냥 조직한 단체가 아니다. 이들은 왜 자신
들이 지구를 평평하다고 생각하는지 ‘과학적인’ 근거까지 제시하고 있다.
이 단체는 19세기 영국에서 시작해 미국에 터전을 잡았고, 현 회장은 찰스 존스로, 회원이 무려 3000
명이나 된다. 이들은 지구가 북극을 중심으로 디스크 위에 있으며, 가장자리는 높이 50m의 빙벽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믿고’ 있다. 이들은 태양과 달의 지름을 대략 52㎞쯤으로 계산하고 있다. 그것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FES 관련 사이트들이다. 그곳에 들어가 보면 맨 먼저 나오는 글이 ‘제발 반론을 보
내지 마시오’라는 주의사항이다. 반론은 필요 없으니 괜한 헛수고 하지 말고, 당신은 FES에 가입할 것
인지 말 것인지만 결정하라는 것이다.
이것을 ‘챔피언 판타지’ 같은 현상이라고 부르는 학자도 있다. 언젠가는 자신의 옳음이 이길 수 있다
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다. 거꾸로 말하면, 명백한 실패를 직접 목격하고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다. 모
든 것을 놓쳐도 자기네가 대통령 선거 같은 챔피언만 먹으면 한번에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챔피언 환상주의자들인 것이다(김광일 문
화부장/조선일보 6월 29일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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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는 세 가지가 있다. ❶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것의 존재를 확신하는 경우다. 예수님이 말씀하
신 “산을 옮길 수 있는” 믿음 있는 자들이다. ❷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태도다. 철저한 합리적 실용주
의자들이다. ❸보이는 것도 안 믿는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다. ‘FES’라는 조직과 같은 사람들이다.
예수님 당시 지도층 부류에는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 사두개인(Sadducee)들이 있었다. 그런데 특
히 오늘 배울 내용에서 등장하는 부류는 사두개인들이다. 이들은 두 번째 종류의 사람들로서 눈에 보
이는 것만 믿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어떤 자들인지 살펴보자.
❏불쌍한 세계관/A Sad Worldview
사두개인들의 시작은 주전 2세기 즈음이었다. 아마도 대제사장이었던 사독으로부터
유래되었다고 본다. 사두개인은 제사장을 편애했으며, 부유층에 속한 귀족들이었다.
그들은 철저하게 보이는 것만 믿는 자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세계관은 오직 보이
는 것 외의 것들은 절대로 믿지 않음을 주장하고 가르쳤다. 그들이 믿지 않는 것은
천사, 영의 세계, 부활 등이었다.
사도바울이 예루살렘에 붙잡혔을 때 공회에서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는 시간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
곳에 두 종류의 집단(바리새인파, 사두개인파)이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은 부활을 믿는다고 전파하였다
가 이렇게 어려움을 당했노라고 말하므로 갑자기 시끄럽게 된 적이 있었다.
❝바울이 그 한 부분은 사두개인이요 한 부분은 바리새인 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을
인하여 내가 심문을 받노라 그 말을 한즉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
리가 나누이니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행 23:6-8)
우리가 이미 살펴 본대로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자들이 바로 사두개인들이었다. 초자연적인 현상을
모두 부인하였다. 그들은 구약성경 중에서도 오로지 모세 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
명기)만 정경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들은 모세 오경 안에 나타난 천사들도 믿지 못했다.
하지만 사두개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만 믿지 않을 뿐 아니라 눈에 보이는(성경에 기록된 말씀)
것도 믿지 못했던 불쌍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니까 사두개인들은 실제로 믿음에 있어 ❷와 ❸에 해당
되는 사람들이었다. 부활을 믿지 못하는 자는 불행하고 슬픈 삶을 살게 된다.
그런데 오늘날 이 시대에도 사두개인들은 존재한다. 사두개인들이 입었던 옷 대신에 양복을 입고, 그
들이 갖고 있었던 모세오경의 두루마리 대신에 핸드폰을 갖고 있고, 템플에 가는 대신 도시에 있는
일터 직장으로 간다. 이 모습이 오늘날 21세기의 사두개인들이다.
오늘날 수많은 현대인들이 보이는 것만 믿고 산다. 내세와 같은 것은 없다고 한다. 그들은 이렇게 말
한다. “죽음 이후를 생각지 말라 왜냐하면 죽음 후에 일을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도와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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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라고 생각지 말라 왜냐하면 모든 것이 너의 행하기에 달렸기 때문이다”(Don't look beyond the
grave, because that cannot be known, and don't look to heaven for help, because it's all up to
you). 21세기 현대의 사두개인들도 교회를 찾는다. 마치 그들이 회당에 찾아 갔듯이 말이다. 때론 선
을 행하고 정직하게 사는 것 같다. 그리고 성공한 위치에 서 있기도 하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그들은
보이는 것만 믿고 사는, 그리고 때로는 보이는 것도 믿지 못하며 자신만 믿고 사는 영적 눈이 감긴
사람들일 뿐이다. 당신은 오늘 현대의 사두개인(Modern Sadducee)은 아닌가?
❏가정은 이 땅에서 주신 선물/Happy marriage and the gift of children are
among the greatest joy that God has given in this life.
성경 오늘 본문에 보면 어떤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에게 찾아와 자신의 세계관(내세의 부활을 믿지 않
음)과 정반대의 가르침을 하고 있는 그 분에게 한 가지 예를 들어 곤경에 빠뜨리려고 한다.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와서 물어 가로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
기를 사람이 형이 자식이 없이 아내를 두고 죽거든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울찌니라 하였나이다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아내를 취하였다가 후사가 없이 죽고
둘째도 그 여자를 취하였다가 후사가 없이 죽고 셋째도 그렇게 하여 일곱이 다 후사가 없었고
최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 일곱 사람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을 당하여 저희가 살
아 날 때에 그 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막 12:18-23)
모세 오경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 사두개인들이 모세의 법 중에 ‘계대 결혼(levirate marriage)'을 제
시하여 질문을 하였다.
❝형제가 동거하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가지 말 것이요 그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 그의 남
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그 여인의 낳은 첫 아들로 그 죽은 형제의 후
사를 잇게 하여 그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신 25:5,6)
셋째까지 죽어 후사가 없는 경우도 거의 있을 수 없겠지만, 사두개인들은 말도 안되는 스토리를 만들
어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려고 했다. 당신의 말대로 부활이 혹 있다면 그 여자는 일곱 명의 남편 중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이냐는 질문이었다.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을 들으시고 이렇게 답변하셨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죽의 자의 살아난다는 것을 의논할찐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출애굽기/모세오경) 가
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
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너희가 크게 오해 하였도다 하시니라❞(막 12: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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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두개인들의 오해는 무엇이었는가? 부활의 세계가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현세의 연장으로 생각한 것
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어리석은 질문을 한 것이다.
결혼을 통한 가정은 이 세상에서만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영원한 천국
에 들어가면 천사들처럼(여기서의 비교는 결혼하지 않는 천사에 비교했을 뿐이다) 결혼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결혼하지 않은 분들은 서둘러 결혼하기 바란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가 아니라, 결혼은
하나님이 이 땅에 주신 인간에 대한 최대의 선물이다. 그렇기에 결혼은 이 땅에서만 할 수 있는 유일
한 선물이요, 행복이다. 당신은 당신의 가정에 대해 소중히 여기며 행복하게 살고 있는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는 사람들
People don not know the Scriptures or the power of God.
예수님의 말씀처럼, 사두개인들은 성경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했다. 사두개인들이
믿었던 하나님(God이 아니라 god)은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they believed in is not the God of the
Bible)이 아니었다. 그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god)은 그런 기적을 베풀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성
경에서 말하는 부활을 믿지 못했던 것이다.
유명한 학자 C. S. Lewis는 오늘날의 사람들에 대해 말하길, “오늘날 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God)은
그 어떤 기적(Miracle)도 행하지 않는다고 믿고 대신 아름다움(beauty), 진실(truth), 그리고 선
(goodness)을 말한다”.고 했다.
수많은 현대인이 신(god)을 믿는다고 하지만 그들은 그 신이 자신의 삶에서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못
한다고 믿고 있다(They would say that they believe in god, but they would never expect the god
they believe in to do anything in their lives).
마치 어린 아이들이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며 편지를 쓰듯 하나님께 기도는 하지만 그것은 엄격히
말해 하나의 자기 소원을 표현한 것뿐이다(Praying to such a god would be like a child writing to
Santa; it would merely be a way of expressing a wish). 그러므로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내세나
부활에 대해 믿지 못하는 것은 성경을 알지 못한 것이고,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
경을 알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안다면 부활과 내세를 못 믿을리 없다. 그들은 단지 다른 것을
그들의 하나님(god)으로 알아 종교적인 삶을 살 뿐이다. 마치 사두개인처럼 말이다.
성경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가르친다. 그 분은 기적을 베푸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께는 못 하
실 것이 없으시다(for nothing is impossible with God).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 사람을 죽은 자 가운데
서 살리시어 부활(resurrection)시키시는 것은 일도 아니시다. 성경은 분명 사람의 부활을 말하고 있
다.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의 부활이 그것을 설명해 주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이 죽은 자의 하
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고 했다. 그러시면서 세 사람의 족장,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
곱의 하나님이라 하셨다. 왜 하나님은 세 족장의 하나님이라 하셨는가? 그 세 족장과 연결된 하나님
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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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삶을 보라. 아브라함은 우상을 섬기는 집에서 자라났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런 아브라
함을 불러내셨다. 하나님께서는 영광 가운데 그에게 나타나시어 고향과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지시한 땅으로 가라 하셨다. 그러므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란 말은 오늘날 우리를 우상 가운데
서 부르시어 따라 오게 만드는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받아들여만 한다.
이삭의 삶을 보라.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과 함께 모리아 산으로 제사지내기 위해 올라갔다. 당신은
이삭의 마음이 어떨지 짐작하는가? 제사 드리는 아버지가 제물인 양도 없이 자신을 데리고 올라가는
것을..... 이삭이 순순히 아버지에게 묶여 제단 위에 올려지고 이제 아버지가 칼을 빼내어 자신을 찌르
려고 했을 때,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렸다.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말라” 이삭은 살아나고 대신 여호와께
서 준비하신 산양을 바치게 되었다. 이삭이 살아난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삭의 하나님’이란 말은
그의 백성들을 오늘도 구원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받아들여만 한다.
야곱의 하나님을 보라. 야곱은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속임수와 인간적인 꾀로 살았다. 하나
님은 그런 그에게 연단시키시고 끝내 얍복 강가에서 씨름을 하신다. 그 곳에서 하나님은 야곱의 환도
뼈를 치심으로 야곱을 깨닫게 하신다. 야곱은 변화된다. 그리고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다. 브
니엘이란 ‘하나님의 얼굴’이란 뜻이다. 죄 많은 야곱이 하나님을 대면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야곱
의 하나님’이란 말은 그의 백성들을 오늘도 대면하시며 하루 하루를 인도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받아들여만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시다. 그들 족장 역시 천국에서 있으며 부활의 영광을 기
다리고 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아브라함처럼, 이삭처럼, 그리고 야곱처럼 대하시며 사신
다.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가 그 영광의 주님을 대면하며 그 분의 인도하심을 받으
며 살아간다. 부활의 그 날 때까지 말이다.
사두개인들의 무지는 첫째 성경(구약)을 알지 못했다. 신약에만 부활에 대해 가르친 것이 아니다. 구
약에서도 부활에 대한 기사는 있다(창 22:5,8; 욥 19:25; 사 26:19; 단 12:2). 이러한 성경에 대한 무
지는 모세오경만을 그것도 문자적인 것만을 고집하는 사두개인들의 성경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되었
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의 무지함을 깨우치기 위해 모세의 책 중에서(출애굽기 3장을 말씀하신 것)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세오경만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성경에 대해 실제로 알지 못하였다.
둘째, 사두개인들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사망을 물리치시고 생명을 선물로 주시는 능력의 하
나님임을 알지 못했다.
예수님은 그들이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고 오해(error)하였다고 하셨다. 여기서 ‘오해함’
(헬라어/플라나스데)은 마치 목자를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뛰쳐나가 버린 양’과 같이 정도를 벗어나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헤매이는 것을 뜻한다(마 18:12; 벧전 2:25). 이는 또한 유성(planet), 곧 떠돌이
별을 가리키는 말로 유 1:13절에는 ‘유리하는 별’로 나와 있다. 사두개인들으로 대변하는바 당시의 유
대 종교는 이렇듯 제멋대로 나돌다 길을 잃고 방황하는 양이나 방향 없이 유리하는 별과 같은 비극적
인 상태에 놓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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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시대에서부터 마지막 지구의 종말사이에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일이 세 가지가 있다.
첫째,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신 사건이다(The first will be the great intervention in which the Son of
God took human flesh and became a man). 인류 역사상 이것보다 더 큰 사건은 없다. 성경을 통하
여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된다.
둘째, 하나님께서 인간들로 하여금 회심케 하시는 사건이다(God's second great intervention is often
called conversion). 죄악 된 인간이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가? 어떻게 저주 아래 있
는 인간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가? 오직 회심(conversion)할 때 가능하다. 회심이란 그리스도
를 향한 회개(repentance)와 믿음(faith)이다. 회심은 인생에게 있어서 엄청난 사건이다.
셋째, 예수님께서 권능과 영광중에 다시 오시는 사건이다(God's final great intervention will come
when Jesus Christ returns in power and glory). 그 때 죽은 자들이 살아나고, 살아있던 자들이 변화
받게 된다. 악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타나 영원한 지옥에 들어가게 되고, 그 때 의인들은 영원한
안식처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서 살게 된다.
이 모든 일들은 놀라운 기적이며 살아계신 하나님만이 행하실 수 있는 일이다. 기적을 믿으려면 두
가지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You need to know two things if you are to believe in miracles). 첫째는
성경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두 번째 하나님의 능력을 알아야 한다.
성경을 잘 알지 못하고는 어설픈 사두개인처럼 되고 만다. 성경에서 오경만 성경으로 받아들이는 잘
못을 범했고, 그 오경에서도 문자적으로만 해석하였기에 그들은 성경을 보기는 했으나 성경을 믿지
못하는 자들이 되고 말았다.
또한 사두개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했다. 자신들의 지식에 하나님을 제한적인 분으로 알고
섬겼으니 기적을 믿을 수가 없었다. 부활을 믿지 못하니 내세도 믿지 못했던 것이다. 사람의 힘으로
는 불가능하나 하나님으로서는 가능하다.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은 혹시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두개인들은 아닌가? 회당은 다니나 성경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능력도 믿지 못했던 사두개인처럼, 교회는 다니나 성경도 알지 못하고 어떤 기적도
행하실 수 없는 하나님으로 알고 있지는 않는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막 9:23)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보이는 것만 믿지 않는가? 보이는 것도 믿지 못한 자는 아닌가? 우린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믿음
을 가져야 한다. 나의 신앙의 현 주소는 오늘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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