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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by kapc.org, 2021-09-24 21:02:31

신약 주제별 성경공부 전체

신약 주제별 성경공부 전체

✍ 답을 써본 후 서로 질문해 봅시다.

1. 세계관(Worldview)이란 무엇인가?(page 43).

2. 믿음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배웠다. 그것들은 무엇인가?(page 44)




3. 사두개인들은 무엇만 믿으며 또한 어떤 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인가?(Page 44)

4. 사두개인들은 예수님 곤경에 빠뜨리려고 모세의 법 중에 어떤 것을 가지고 나왔는가?(page 46)

5. 사두개인들에게 예수님은 무엇 무엇을 모른다고 책망하셨는가?(Page 46)
❶❷

6. 성경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라 하시면서 세 족장에 대해 언급하셨다. 각
각 하나님이 그들에게 어떻게 나타나셨는지 써보라(page 47)




7.신약시대에서부터 마지막 지구의 종말사이에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일이 세 가지가 있다. 그
것은 어떤 것인가?(page 48)




8. 오늘 배운 내용 중에 깨달은 교훈 한 가지를 말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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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과 탄생(Born)
누가복음 1:26-38

❏도울 자가 올 것이다/Help is coming.

만 약 여러분이 한 섬에 살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섬은 매우 크고 아름다운 곳이다. 그 섬 안에
서의 삶은 행복이 있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수많은 족속들이 살게 되었다. 그들의 조상은 난파
된 사람들(castaways)이었을 것이다. 연구를 한 사람들에 의하면 조상들이 섬이 아닌 다른
곳(Mainland)에서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따금씩 생각하는 것은 섬 저 건너편에 무엇이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곳에 사는 사람들 중에 아무도 그 섬을 떠난 사람이 없었기
에 그 섬 밖에 어떤 것이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그 섬 안에서
삶이 바빴기 때문에 더 이상 그런 것조차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어느덧 행복했던 섬 안에 큰 문제들이 생겨났다. 여기 저기서 범죄가 일어났다. 하지만 그것은 대수
롭지 않은 것들로 사람들은 여겼다. 다만 염려가 되는 것은 화산(volcano)이 폭파하려는 움직임이 여
러 번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염려스럽게 여기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신이 바닷가를 거닐다 물 위에서 떠내려 온 물병을 보게 되었다. 주워서 안에 있는
종이를 펴보았더니 이렇게 쓰여 있었다. “도와 줄 자가 올 것이다/Help is coming". 매우 이상한 일이
었다. “도움?/Help?" 어떤 도움인가 이 평화스런 섬 안에서...... 몇 주 후에 당신은 또 다른 병을 발
견하게 된다. 펴 보았더니 ”도울 자가 곧 이르게 된다/Help will arrive soon", 또 며칠 후 다른 병들을
계속해서 바다 위에서 발견하게 된다. “도울 자가 당신에게 곧 이른다/Help will be with you soon",
"내가 도울 자를 보낸다/I am sending help"

물병을 여러 차례 발견한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섬이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은데, 자
꾸만 섬 안에 있는 자들을 위해 도울 자가 온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랬더니 듣고 있는 친구가 말하길, “이 사람아, 걱정하기는 뭘 걱정하는가. 아마
도 아이들이 다른 쪽에서 병에 종이를 넣고 떠 보낸 것이 그만 밀물이 일어날 때 밀려 들어온 것 일
거야. 분명히 장난으로 그렇게 한 것이니 신경 쓰지 말게” 그러나 당신은 물병에 담겨진 메시지를
생각 속에서 지을 수가 없었다.

❏섬 주민의 문제점/The Islanders' Problem

섬 주민의 이야기는 성경의 내용을 잘 보여주고 있는 하나의 큰 그림과 같다. 원래는 하나님과 낙원
(mainland)에서 교제하며 살게 되었던 최초의 사람이 믿음의 파선으로 인해 난파한 자(castaway)가
되어 어떤 섬에 떠 내려가 사는데, 그 후로 그 섬 밖에는 무엇이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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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거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분명 다른 세상이 있는데도 그들은 섬 안에 갇혀 밖의 세상에 대해서는
알려고도 하지 않고, 다른 세상은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마치 타락한 세상(fallen world)
에서 살면서 하나님과 다른 세계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는 자들과 같다.

죄가 세상에 들어온 후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진정한 교제를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하나
님께서는 그 관계를 회복하시기 위해 그리고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도울 자를 보내시겠다고 처음부
터 약속하셨다(But right from the beginning, God promised that help would come). 구약에 보면 하
나님께서는 똑같은 메시지를 선지자들을 통해 계속해서 반복하신 것을 알 수 있다. “너희를 구원할
자를 내가 보내리라” 이것이 구약 성경의 핵심이다. 섬으로 메시지가 담긴 물병이 계속 발견된 것이
그것과 같다.

섬은 완전한 곳이 아니다. 죄악이 난무하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Volcano)이 있다. 그곳은 영원한
처소가 아니다. 잃어버린 본토(Mainland)가 우리의 고향이다. 그 곳으로 가야한다. 그 곳으로 가기 위
해 도울 자가 그 본토에서 온 것이다(Someone comes from the mainland to rescue you). 그 분이 예
수 그리스도이시다. 그가 오셔서 장차 이 땅에 있을 마지막 종말(하나님의 심판)에서부터 당신을 구
원하시고 영원한 처소로 인도하실 것이다(He has come to save you from the destruction that will
one day come on this world and bring you into an eternal life on the mainland).

❏하나님이 주도권을 잡다/God takes the Initiative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보내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 분이 천사를 통해 처녀 마리아에게 하신
말씀을 보면 다음과 같다.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눅 1:26-27)

때가 되매 하나님께서 일을 시작하셨다. 이 계획은 오래전, 아니 창세전부터 계획된 일
이었다. 이제 그 때가 되매, 하나님께서 그 주도권을 잡으시고 일을 하셨다. 즉 예수님
의 탄생 사건은 철저히 하나님께서 주도하신 일이었다(the birth of Jesus was entirely
at the initiative of God).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님의 탄생 사건의 주도권이 마리아와 요셉이 절대 아니라는 사
실이다. 그들은 지켜만 봐야 하는 입장이었다. 특히 마리아는 젊은 여자였다. 그리고 처녀였다. 요셉
과 정혼만 하였지만 남자를 전혀 모르는 처녀(Virgin)였다. 이스라엘에서 정혼이란 법적인 부부의 관
계이나 결혼 전까지는 성적 결합을 가져서는 안 되는 기간이었다. 우리나라 약혼과 비슷하나 약혼은
법적 효력은 없으니, 이스라엘의 정혼이라 함은 결혼과 우리나라 약혼, 그 중간 즈음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하나님은 한 사람을 택했으니 그 여자가 마리아였고, 그 여자는 남자를 몰라야만 하는
처녀여만 했다. 물론 하나님께 대한 신앙심이 있었던 여자 중 한 사람을 택한 것이다. 그 여자를 통
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오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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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
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
이라 일컬을 것이요❞(눅 1:31-33)

마리아는 천사의 말에 놀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처녀(Virgin)가 아이를 갖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
이기 때문이다. 이 때 마리아의 제한적인 생각이 깨어지는 말씀이 임했고, 결국 마리아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수긍하며 자신이 사용되기를 간구했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가뢰되 성령(Holy Spirit)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
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 가니라❞(눅 1:34-35,38)

성경에 보면 기적적으로 아이가 생긴 경우(stories of miraculous births)가 세 차례 나온다. 첫째가 아
브라함과 사라 사이에서 낳은 아들, 이삭이다. 두 번째는 스가랴와 엘리사벳 사이에 낳은 세례요한의
경우이다. 이 둘의 공통점은 인간적으로 나이 들어 더 이상 자녀를 가질 수 없다는데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그들에게 아이를 갖게 하였다. 또 하나 있다면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였다. 남
편 엘가나의 또 다른 부인 브닌나는 자녀가 많은데, 한나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계속하여 오랜 세
월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아들 사무엘을 허락하신다. 아브라함이나 사가랴처럼 그런 기적은 아
니었지만, 그래도 전혀 잉태치 못한 여인이 끈질긴 기도 가운데 얻은 귀한 아들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기적적인 자녀의 출생(stories of miraculous births) 역시 하나님이 주도권을 갖고 역
사하신 사건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출생의 기적을 행하실 때, 그 부모들의 연합을 통해 역사하셨
다(God worked through the union of a father and a mother). 그러나 마리아의 경우는 달랐다. 마리
아가 아기를 갖게 된 것은 요셉과 마리아의 연합을 배제한 순전히 주도권을 가지시고 행사하신 하나
님께로부터 되어 진 놀라운 사건이었다.

그의 정혼자 요셉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이 일에 전혀 간섭할 수 없는 자(outsider)였다. 천
사의 말을 그대로 믿어 자신의 정혼녀에게 이루어지는 놀라운 기적을 보며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였
다. 그의 정혼자 요셉은 아이의 탄생에 아무것도 개입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요셉은 마리아
가 잉태된 후에도 그녀와 어떤 육체적 관계를 갖지 않았다(마 1:25).

마리아는 어떠한가? 마리아 역시 아무 것도 할 것이 없긴 마차가지였다. 예수님
의 탄생은 부모들의 연합을 통한 기적적인 탄생이 아니라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처녀의 몸만 빌려 잉태된 전무후무한 기적적인 출생이었다. 즉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다. 성령님께서 마리아로 하여금 생명이 잉태하게 하셨다. 그 잉태된 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셨다. 하나님이 이 모든 일에 역사하셨고, 마리아는 순
전히 가만히 있었을 뿐이다(All she was told was that God would do
something, God acts; Mary is entirely pass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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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전체의 내용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도권을 가지시고 일을 하신 모습이 담겨져 있다(God takes
the initiative throughout the Bible story). 역사를 보면 수많은 좋은 리더들이 나타났었다. 구약성경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수많은 좋은 리더들로 하여금 인간들의 진정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셨
다. 왜냐하면 그들로는 그 문제(죄, 저주)를 해결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아들
을 인간들에게 보내셨다(God sent His Son to the human race). 하나님이 친히 동정녀의 몸을 빌려
육신을 입으시어 인류를 구원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경이로운 여행/God's Incredible Journey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세 가지(three foundational truths)를 분명하게 가르친다.
첫째,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He is God).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
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God with us) 함이라❞(마태 1:23)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한 20:28)

둘째, 예수님은 사람이시다(He is man).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누가 1:31)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인간)을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빌 2:6)

셋째, 예수님은 거룩한 분이시다(He is holy).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
이라 일컬으리라❞(누가 1:35)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히 7:26)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Son of God'이라고 했으며(요
8:36,38), 또한 ’사람의 아들/Son of man'이라고 표현하셨다. 그리고 자신은 죄가 없다고 말씀하심으
로 자신은 거룩한 분임을 가르치셨다(요 8:46).

이 세 가지가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첫째, 하나님만이 원수 된 인간과의 관계를 화목케 하실 수 있다(Only God can reconcile man to
God). 인간이 먼저 할 수 없다. 이 일은 하나님만이 먼저 하실 수 있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
님이 육신을 입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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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인간의 죄 값은 오직 인간이 그 형벌을 받음으로만 해결 할 수 있다(Only man can bear the
punishment for man's sin). 하나님이 아무 조건 없이 죄를 용서해 줄 수는 없었다. 그것이 하나님과
의 계약을 파괴한 죄에 대한 형벌이었다. 그 형벌을 대신 받기 위하여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셨다. 피
를 흘리기 위해서는 육신을 입으셔야 했다. 그래서 어린 아기로 태어나신 것이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위기 17:11).



구약 신약

셋째, 죄 된 인간들을 거룩한 자만이 구하실 수 있는 자격을 갖춘다. 예수님은 우리의 몸과 똑같되
하나만 다른 것이 있으니 죄가 없는 거룩하신 분이었다(Jesus Christ is like us in every respect
except one. He is holy). 그에는 죄의 성향이나, 죄의 본능, 죄를 생각하는 마음조차도 없으신 분이
다. 그 분 본성이 거룩하신 분이시다.

사도바울을 생각해보라. 사울(바울 이전의 이름)은 자신의 말처럼 율법의 흠이 없는 자였다(물론 다른
사람에 비교하여 볼 때 자신 있게 했던 말일 뿐임). 하지만 그의 부모는 사울에게 거룩(Holiness)을
남겨주지 못했다. 그래서 바울이 훗날 예수님을 믿고 한 고백이 있다.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
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
로다❞(로마서 7:21-25)

율법의 흠이 없는 자의 대표로 사울을 꼽을 수 있지만, 그도 거룩하지 못하고 죄인임을 고백하였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죄와 무관한 분으로 이 땅에 오셨다. 거룩하신 분이시다. 그 분만이 죄인들을
구원하실 수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새로운 사람의 선구자이셨다(Jesus is the pioneer of a new
kind of humanity). 예수님은 거룩한 삶의 길을 새롭게 열어놓으신 분이시다. 생각해 보라. 우리가 훗
날 부활체가 되어 죄와 무관한 거룩한 몸으로 살게 될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새로운 인생을 살
도록 활짝 열어 놓으신 분이시다.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Bring many sons to glory❞(히 2:10)

예수님이 오시어 취하신 육신은 거룩하셨고(be holy), 죄가 없으셨고(free from sin), 그리고 사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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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삼키지 못했다(no longer subject to death).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으신 경이로운 여
행이었다(God's Incredible Journey).

우리가 구약 주제별 공부 때 배웠다시피 구약에서는 성자께서 종종 육신을 입으시고 잠깐씩 나타나신
적이 있었다. 그것을 가리켜 ‘현현’(these appearances are called theophanies)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때가 차매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탄생하신 육체는 잠시 잠깐(temporary) 있는 ‘현현’(theophanies)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이다. 그 육신은 죄가 없는 거룩한 몸이요, 그 몸은 부활하시어 새로
운 부활체의 몸으로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 그리고 우리와 더불어 영원히 함께 사
실 때에도 우리와 같은 부활체로서 사시게 될 것이다.

하나님으로서 그 분은 아버지와 사람들 사이를 화평케 했으며, 사람으로서 그 분은 인간이 받아야 할
아버지의 진노의 형벌을 대신 받으셨다(As God, He was reconciling man to God. As man, He was
bearing God's punishment for man).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된 거처럼, 이제 그 분으로 인해
우리들은 사람의 아들과 딸들로서 하나님이 아들들과 딸들이 되었다.

기억하자. 하나님의 육신을 입으신 성육신(Incarnation) 사건은 우리에게 새로운 형태의 인간의 삶을
살게 하시는 새로운 길이였다. 그 분은 거룩하였다. 우리도 거룩해졌고, 그리고 그 분처럼 언젠가 온
전히 거룩해 질 것이다. 그 분은 죄가 없었다. 우리의 죄도 사해졌고 또한 훗날 죄가 무관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 분은 부활체가 되셨다. 우리도 훗날 부활체가 되어 새로운 육신을 입은 채 영원
토록 살게 될 것이다. 주님 다시 오시는 날에 구속받은 우리들은........

그러므로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신 탄생의 사건은 순전히 우리 인간들을 위하신 하나님의 배려요, 은
혜요, 사랑의 결과이므로 특별한 선물(a special gift)인 것이다. 하나님의 경이로운 여행(God's
incredible journey)의 시작은 바로 우리 구속받은 백성들의 경이로운 여행의 시작이라 말 할 수 있다
(Redeemed people's incredible journey).

이 땅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sons of God(요 1:12), 인간들의 아들들이요/sons of men, 그리고
거룩하다는 성도/holy saints의 명칭을 받았다. 물론 이 땅에서는 온전치 못하다. 그러나 예수님의 거
룩하신 탄생으로 인해 우리도 그 분처럼 천국에서 완전한 몸/body을 갖게 될 것이다.

섬 안에 아직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가?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오늘날 아무 문제가 없
다고 생각하며 살지 않는가? 정말 그런가? 도움이 필요 없을까? 지구의 종말(마지막 심판)이 있을 터
인데, 여기서 구원받을 길은 없는가? 예수님의 탄생은 바로 당신을 구원하기 위해 일어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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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을 써본 후 서로 질문해 봅시다.

1. 섬에서 사는 사람과 성경에서 말하는 죄인들과 비교하였다. 어떤 것들을 비교하였는가?(page
50,51).

2. 모든 것이 그렇지만 특히 예수님의 탄생은 누가 주도권을 잡고 계시는 사건인가? 요셉과 마리아와
의 관계를 설명해 보라(page 52)

3. 예수님의 탄생은 왜 하나님의 경이로운 여행(God's incredible journey)인가? 세 가지로 말해보라.
(Page 53)




4. 이 세 가지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page 53-54)




5. 하나님의 경이로운 여행(God's incredible journey)의 시작으로 어떤 이들의 경이로운 여행도 시작
되었는가? 그 뜻은 무엇인가?(page 55)

6. 오늘 배운 내용 중에 깨달은 교훈 한 가지를 말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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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과 유혹(Tempted)
누가복음 4:1-13

❏시험은 누가 받는가?

시 험(다른 말로 유혹)은 누가 받는가? 우리 인간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유혹을 받는다. 성경은 인간
의 마음이 절망적일 만큼 사악하다고 말한다(렘 17:9). 그렇기에 유혹에 쉽게 노출된다. 그 이유
는 이 세상에 유혹자(Tempter) 마귀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죄가 없었던 유일한 두 사람, 마음이 죄

정악이 없었던 첫 번째 아담과 두번째 아담인 예수님도 유혹을 받았는가? 두 사람도 역시 유혹을 받았다.

❏직접적인 공격을 감행하다(Launching a Direct Assault)

성경은 마귀가 직접적인 공격을 감행했던 두 경우를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다. 한번은 에덴동산에서 아
담과 하와에게, 다른 한번은 광야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였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로부터 창조함을 받고 아직 죄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순결한 상태에 있었다.
즉 남자와 여자에게 거룩함과 함께, 자유롭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었던 때였다. 이런 모습을 마귀는
배가 아파했었다. 기억하라 우리가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며 사는 것을 마귀는 무처 배가 아파한다
는 사실을...... 마귀는 천국에서 쫓겨난 이후로 하나님에 대하여 증오심으로 힘을 얻었으며 그가 사랑
하는 것들, 그가 거룩하게 여기는 것들은 전부 파괴하려고 했다. 거룩하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
은 사람을 그의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단절시키고 마귀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과 어둠 속에서 교제
케 하려고 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에게 유혹하러 나타난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결론적으로 아담이 범죄한 것으로 성경을 계속 말함, 인류의 대표자 아담) 결국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이 금지하신 실과를 먹고 죄를 범하고 말았다. 죄란 하나님의 명하신 것을 범한
상태를 뜻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단 하나의 계명에 불순종하였으며 그리하여 거룩하기를 그쳤다.

❏바이러스가 퍼지다(The Spread of the Virus)

만일 이것이 그저 옛날이야기에 불과하다면, 우리의 관심거리가 될 가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에덴동
산에서 일어났던 일은 오늘 당신과 나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담의 후
손들로서 죄와 저주 아래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한 사람(아담)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나
포함) 죄인 된 것 같이....”(롬 5:19). 아담이 죄를 범했을 때, 그는 인류의 머리로서 죄를 지은 것이다.
그래서 그의 죄는 모든 사람에게 죽음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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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가 세상에 들어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사탄에게 두 가지 선언을 하셨다(창 3:15). 첫째, 끊임없는 싸움
이 있을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싸움에서 이기지 못한다. 오직 여자의 후손으로 보내
질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서만 이길 수 있다. 그래서 두 번째로 여인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마
귀의 권세를 이기게 하시겠다고 선언하신 것이다(구약에서는 짐승의 피 제사, 신약에서는 아들의 피, 십
자가의 죽음과 부활).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고, 인류는 하나님의 정죄 아래 있었다. 기나긴 싸움이 계속 진행된다. 이
제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 창세기 3:15절의 예언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아들을 보내시어 그가 이 세상
에 나타나셨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
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일 3:8)

❏마귀의 방해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을 때, 그 아들을 죽이려는 시도를 마귀는 헤롯 대왕을 통하여 하였다. 하나님의
아들이 오면 자신이 전쟁에서 패할 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 싹을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동방
박사들에게 속은줄 안 헤롯대왕은 군대를 동원해 베들레헴에서 두 살부터 그 미만의 남자아이라면 다
죽이라고 명령을 내린다. 결국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남자아기가 다 죽으므로 마귀는 승리한 줄 알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전에 요셉의 꿈에 천사를 보내어 아기를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가 숨게 하셨다.

마귀의 방해는 집요했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마귀는 이길 수가 없었다. 하나님은 천지를 지으신 전능자가
아니였던가? 하나님의 아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동정녀 몸에서 태어나 죄가 없게 되었고, 태어나자마자
마귀의 방해가 있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애굽에서 잠시 피하여 살 수 있었다.

❏또 찾아온 마귀(Stalking the Enemy)

이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공생애(3년)를 시작하셨다. 세례를 받으시고 이제 성령에 의해 40일동안
금식하시기 위해 광야로 내몰리셨다. 가장 힘든 시기였다. 기억하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신성을 가
지고 계셨지만 금식 기간에 전적으로 인간으로서 금식하셨지, 그 어떤 신성의 능력으로 금식을 수월히
넘어가도록 하지 않으셨다는 것을(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흘리셔서 목마르다고 하셨던 것을 기억하
라)......

이제 결전의 시간이다. 에덴동산에서 죄가 없는 유일한 사람, 그것도 인류의 대표자(아담)를 유혹하여
쓰러뜨린 마귀는 또 다시 죄가 없는 유일한 사람, 그것도 인류의 대표자인 하나님의 아들 앞으로 유혹하
기 위하여 찾아왔다. 이제는 피할 수 없는 세 번의 승부이다. 여기서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 패한다면 인
류를 향한 구속의 길은 막히고 만다.

그렇기에 마귀는 집요하게 유혹한다. 한번 유혹하고 떠나지 않고 무려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유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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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눅 4:3-4)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
어내리라”((눅 4:9)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보이며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
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
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눅 4:5-7)

사실은 두 번째 아담이신 예수님은 첫 번째 아담보다 훨씬 더 악조건 속에서 유혹을 받으셨다. 아담은
에덴동산에 먹을 것이 풍부했다. 선악과만 제외하고 무엇이든지 임의대로 다 먹을 수 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배가 부를 수 있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광야에 계셨고, 그것도 40일동안 금식하는 중이셨다.
아담은 쓸쓸하지 않도록 아내 하와를 동반하고 있었으나 예수님은 홀로 광야에 계셨다.

마귀는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이 그들에게 ‘너무 하신다’는 부정적인 의미를 강하게 심어주었다. 너가
이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먹으면 너희가 하나님처럼 될 줄을 아시고 하나님이 그것을 막으려고 먹지
못하게 했다는 일종의 하나님을 의심하게 만든 유혹이었다. 그래서 ‘너희가 하나님처럼 되리라’고 유혹했
다.

예수님에게 찾아온 마귀는 ‘너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이라고 유혹했다. 무슨 뜻일까? ‘너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서 이 꼴이 무엇이냐, 너의 하나님이 너를 이렇게 만들었는데, 무엇을 순종하겠다고 하느냐?
너가 배가 곪은채로 있느냐?’ 하면서 돌들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유혹이었다. 하나님에 대해 불신의
마음을 가지고 너 마음대로 하라고 하며 마귀가 천하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겠다고 한다.

만약에 예수님이 첫 번째 아담처럼 하나님에 대해 의심을 갖고 마귀의 말대로 따랐다면 우리의 구속은
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온 인류의 머리로 삼으신 예수님이 마귀의 세 가지 유혹에 전부 승
리하시어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므로 메시아로서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실 수 있게 된 것이다.

예수님은 허기지고 배가 고프고 지친 40일간의 상태에서 어떻게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실 수 있었는가?
그것은 기도와 말씀으로 물리치셨다. 40일 기간은 예수님이 기도하며 하나님과 소통하는 시간이었다. 성
령께서 함께 하셨다. 결정적으로 마귀를 물리친 것은 구약성경의 말씀으로 물리치셨다. 예수님께서 세
번 다 응수하신 말씀은 구약 신명기서에 기록된 말씀이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눅 4:4; 신 8: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눅
4:8; 신 6: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눅 4:12; 신 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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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유혹을 이기신 사건은 우리에게 있는 기록된 말씀이 곧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이 말씀
으로 우린 얼마든지 찾아오는 마귀의 유혹을 이길 수 있음을 절실히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오늘날 얼마나 가볍게 여기는가? 오래전에 기록된 말씀보다는
새로운 계시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당신 자신의 거룩한 말씀으로 얼마든지 물리칠
수 있으셨을텐데, 왜 그 때로부터 약 1500년 전에 기록되었던 신명기의 말씀으로 물리치셨을까?

왜냐하면 그 기록된 말씀이 예수님 당신 자신의 말씀이며 언제 기록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말
씀이 오늘도 유효하며 살아있는 말씀임이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이
것을 놓쳐서는 안된다.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 마귀도 예수님처럼 따라하여 뛰어내리라고 했을 때는 자기도 성경을 인
용하면서 ‘기록되었되..... 이렇게 되어 있으니 너가 뛰어내리라’고 했다는 점이다.

마귀는 무서운 놈이다. 예수님처럼 ‘기록되었으되....’까지 따라했다. 성경을 안다는 것이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눅 4:9,10; 신 시 91:11,12)

하지만 마귀는 잘못 인용한 것이다. 이단의 특성이다. 마귀는 그 의미를 바꾸어 예수님이 만약 사람들이
보이는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면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받들어 다치지 않게 하실 것이고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고 예수님이 진짜 메시아인줄 알고 따라 다닐 것이라는 것이라고 하지만 시
편 91편의 그 말씀은 그런 뜻이 전혀 아니다.

시편에서는 그의 백성들의 모든 길에서 하나님이 지키게 하시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해 주신
다는 것, 즉 삶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을 것이란 의미이지, 높은 꼭대기 위에서 이 말씀을 믿고 뛰
어내리라는 의도가 전혀 아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성경의 말씀을 거짓되게 인용한 것이다. 유혹의 달인이다. 이단이 꼭 그렇게 성경을 인
용하는데 마귀의 자녀들이라 마귀의 수법과 같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든지 넘어뜨리려고 하는 자가 마귀
임을 알 수 있다.

유혹은 누구나 받을 수 있다. 심지어 죄가 없었던 첫 번째 아담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육신을
입은 이상 마귀로부터 유혹을 받았다. 그러나 유혹을 받았다는 것이 그 유혹에 곧 넘어감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마귀가 던전 유혹에서 승리하셨다.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치 새가 사람의 머리 위로 날아다닐 수는 있어도 새가 내 머리 위에 둥지를 틀게는 못하게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유혹을 이기셨고 또한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 유혹도 뿌리치시며 승리하셨다. ‘너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 위에서 내려와 봐라 그러면 믿겠다’는 군중의 소리는 마귀의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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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마른 예수님에게 마귀는 군인을 시켜 고통을 줄여주는 효과의 몰약을 주었으나 예수님은 받지 않
으셨다(막 15:23). 왜냐하면 메시아로서 죄인들을 위해 온전한 정신 속에서 모든 고통과 희생 속에 죽으
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님이 상황에서 모든 유혹을 이기시고 승리하신 것은 전부 우리의 구속과 연관이 있기
에 우리는 예수님께 철저히 감사해야 한다. 모든 인류의 머리가 되신 예수님 안에 있는 자는 이제 누구
든지 구원을 얻게 되었다. 그 분 안에 있는 자는 더 이상 아담 안에 있는 자가 아님을 기억하자.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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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과 변화(Transfigured)
누가복음 9:18-36

❏알 때가 되었다(Time to Know)

자 녀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 부모는 그 전에 말하지 못했던 어떤 이야기들을 들려주곤 한다. 예
전에는 그 비밀스런 말을 왜 하지 못했을까? 자녀들이 그 말을 받기에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
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자녀들이 들려주는 말을 어느정도 받을 수 있

시다고 생각했으며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서였을 것이다.
정예수님의 제자들은 거의 3년을 예수님과 더불어 지냈다. 그들은 예수님의 기적들을 보았고, 예수님의 가

르침을 들었다. 이제 예수님은 그들을 떠날 시간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알고 계셨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는 이제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 것인지 제자들에게 이야기해줄 때가 이르렀음을 아셨다.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의 만신전 앞에서 예수님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고백한 제자들에게 이제 예수님은
이렇게 자신의 앞날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
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 일에 살아나야 하리라”(눅 9:22).

예수님에게로부터 처음 듣는 이 말에 그들은 분명 놀랐을 것이다. 이해도 안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은 예수님의 그 말을 들을 때가 된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얼마 안되어 그대로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수난,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해서 말씀하신 후 이렇게 결론을 맺으셨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
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눅 9:27)

❏8일 동안의 침묵(Eight Days of Silence)

누가복음에는 나오지 않지만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하여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
하리다’라고 했다. 이것은 모든 제자들의 동일한 마음이었다.

의견의 격차가 좁혀지지 않는 관계에서는 서로에 대한 긴장감이 맴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해 가기로
결심하셨으나 제자들은 그렇게 되어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나서 8일 동안 침묵이 있
었다. 성경은 그 8일간에 대해 기록하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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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일견(A Glimpse of the Future)

8일 쯤 되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그 침묵을 깨셨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을 데리고
기도하러 한적한 곳으로 가셨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산에 올랐다. 그들이 산꼭대기에 올랐을 때, 예
수님은 겁에 질려 낙심하고 있던 세 제자들에게 미래의 한 면을 보여주셨다.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
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눅 9:29)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에, 외모가 변하여 옆에 있던 제자들은 예수님이 장차 나타나시게 될 때의 그 모
습을 보게 되었다. 그 분의 얼굴은 빛났으며, 옷은 눈부셨다. 우리는 이 사건을 ‘변화산 사건’이라고 부
른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죽음과 부활 이후에 그분이 들어가게 될 영광을 미리 보여주고 계신 것이다.
예수님에게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찬란한 광채가 발산된 것이다. 원래 예수님은 하나님이신지라 독생자의
영광이 있으셨지만 그것이 사람의 눈에 띄도록 빛을 발하신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변화산 사건을 통해
장차 들어갈 그 영광을 보여주신 것이다.

마가는 베드로의 믿음의 아들로서 베드로에게 들은 이야기로 마가복음을 기록할 때 이 부분에서 이렇게
기록을 하였다.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막 9:3). 예수님께서 변용하셨을 때 제자들이 보았던 광채와 영광은, 사도요한이 계시록에서 환상 속에
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았을 때의 묘사와 너무나 흡사하다. 사도요한은 그리스도의 얼굴이 마
치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계 1:16)고 했다.

세 제자는 이 영광을 반드시 보아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 이유는 며칠 안에, 그들은 예수님께서 얼굴
을 맞아 상처 나고 채찍질 당하는 광경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부어 일그러지게 될 것이다.

가시 면류관은 그분의 머릿속을 파고들 것이며, 여섯 시간 동안 십자가에 달린 후에 얼굴빛은 사라지게
될 것이고 눈은 죽음을 맞아 컴컴해질 것이다. 제자들은 이것이 끝이 아님을 알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들에게 미래의 한 모습을 보여주셨던 것이다.

변화산 사건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베드로(다른 제자들 역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대해 하시
는 말씀은 이해했지만, 부활에 대해 하시는 말씀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죽음이 목
적 없이 고난을 당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여 만류했던 것이다.

변화산 사건은 십자가 너머에 놓인 영광을 보여주었다. 예루살렘에서는 고통과 수난이 있을 것이다. 그
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 이야기가 어디에서 끝나게 될지를 보여주고자 하셨다. 십자가의 고난 너머
에 놓인 영광을 볼 필요가 있었다.

미래의 이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고통의 길 위에서 인도해 나가실 때 매우 중요하다. 당신은
이 이야기가 어디에서 끝나는지 알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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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는 실패로 끝나버리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결코 망하지 않을 나라의 한 부분이다.
예수님이 당신을 이끌어 가시는 그 길은 고통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그 길은 결국에는 당신을 영광으로
이끌어주실 것이다.

지금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중에 나타나시게 될 그 날(재림)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고난과 암흑을 통해 아들이 세상에 임하고, 모든 사람이 그 아들의 영광을
보게 될 그 순간을 향해 움직여나가고 계신다.

❏당신 역시 변용될 것이다(You Can Be Transfigured Too!)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
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 새”(눅 9:30-31).

여기에 진짜 갑작스럽고 특별한 장면이 있다. 두 사람이 영광스런 광채를 입고 나타난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발산되고 있던 그 영광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것은 우리에게 놀라운 의미를 지니는 아주
중요한 사실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장차 있을 일의 한 모습을 보여주셨을 때, 그들은 영광중에
높임 받으실 예수님을 보았으며, 다른 사람들도 그 영광에 동참하게 될 것임을 보았던 것이다.

이 사실은 제자들에게 대단히 중요했을 것이다. 예수님은 그렇다쳐도 자신들과 같은 보통 사람들도 영광
스럽게 변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이나 해보았겠는가? 모세와 엘리야는 둘 다 위대한 사람이었다. 그
러나 두 사람 모두 실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이 두 사람이 죽은 수백 년 후,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동
참하면서 나타났다. 이 사건은 우리의 장래에 대해서도 중요한 사실은 전해준다.

하나님께서는 영원을 위해 당신을 창조하셨다. 당신의 존재는 결코 이 세상에서의 삶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믿음을 통해 천국에 임하게 된다. 천국의 가장 큰 기쁨 가운데 하나는 서로에게 반영되어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일일 것이다.

❏십자가에 대한 대화(Talking About the Cross)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눅 9:31)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를 나눌 때, 대화의 주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 예수님의 영광에 영원히 동참하게 될 것임을 알
고 있었다. 실로 모든 믿는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동참하게 되는, 믿기 어려운 특권을 부여받
게 되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이다.

하지만 베드로는 이 진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목숨
을 내놓는 십자가의 계획에 반대했다. 그러나 모세와 엘리야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길이었음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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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그리스도의 영광에 그들이 동참하게 되는 일이,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십자가에 달
려 죽으심에 좌우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들이 그 일(별세)에 대해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
었던 것이다.

그의 제자 아무도 예수님의 죽음(십자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았다.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만 반복하였다. 하지만 예수님 옆에 나타난 모세와 엘리야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해서 대화
를 나누었다. 모세와 엘리야는 예수님께서 행하시려는 일을 긍정하면서 예수님께 힘을 북돋아주었다.

그들이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그들은 그 죽음 이후에 놓여 있는 그리고 그 죽음
을 통해 오게 될 영광에 대해 예수님과 함께 즐거워했음에 틀림없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미래
이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복음을 통해 자기 백성으로 하여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고(살 후 2:14) 그들을 어떻게 불러내셨는지를 말하고 있다.

변화산에서 목격한 사람 중 한 사람인 요한은 훗날 요한일서를 기록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랑하는 자
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례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
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 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요일 3:2).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서기(Cringing and Standing in the Presence of God)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눅 9:35)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기를 거부했다. 즉 인자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은 뒤 사흘 후에 부활하신다는 말씀을 이해 못하고 절대로 그런 일이 이루어져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구름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임재, 그 분은 세 명의 제자들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셨는가?

“너희는 그(예수님)의 말을 들으라”(눅 9:35)

제자들은 십자가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청종하기를 거절했는데, 이제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임재의 구름에 에워싸여 ‘이는 내 아들이니 그의 말을 들으라“는 음성을 들은 것이다. 아마 우리들도 예
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가로막고 자신의 뜻을 주장할 때가 많을 것이다.

아마도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일들이 좀처럼 이해되지 않아 하나님의 목적하시는 바에
여러번 저항했을 것이다. 우리 가운데 임재하신 하나님이 당신을 향해 하시는 말씀은 무엇이겠는가? ”그
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는 그의 말을 들으라“ 고 하지 않으시겠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
하고 날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서야 할 것이다.

미래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그리고 다음의 세 가지는 절대적으로 확실하다. 그리스도께서 영화롭
게 되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과 그분의 영광을 나누실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는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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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내려오다(Coming Down the Mountain)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눅 9:36)
구름이 걷히고 모세와 엘리야도 사라졌다. 그리고 그들은 이전 모습 그대로 예수님을 보게 되었다. 이제
미래를 알게 되었으니 삶의 현장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과 세 제자들은 산에서 내려갔다. 삶
의 현장으로 내려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살아야 한다. 십자가 너머에 영광이 있음을 그들은 보았다.
우리 또한 성경을 통해 십자가 너머에 영광이 있음을 안다. 그렇기에 오늘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우리
는 삶의 현장에서 주님의 뒤를 따르는 것이다. 이제는 알 때가 되었다.
십자가 너머에 영광이 있다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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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 과 십자가(Crucified)
누가복음 23:33-49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The Story of the Cross)

성 경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못 박힌 십자가 사건이 갖는 영향력은 얼마나 될까? 구약 성경이 하나
님의 아들이 오신다는 예언을 담고 있고, 신약은 그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예언의 성취로 오
셔서 십자가에서 구속을 이루셨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성경 전체가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

자겠다.
시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

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 15:3,4).

정바울이 거기서 말한 성경은 ‘구약성경’을 의미한다. 구약성경대로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고

구약성경대로 죽으신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가르친다. 우리는 흔히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신약성경에
만 기록되어 있는 줄 알지만 실제로는 구약에서 십자가 사건을 증거하고 있다.

❏에덴동산과 갈보리(Calvary is Eden in Reverse)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눅 23:33)

갈보리는 에덴동산의 반대이다. 그 동산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유죄를 선고하셨다. 십자가에서는
사람이 하나님(성자)께 유죄를 선고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에덴동산에서 내쫓으셨으며, 여기
서는 사람이 하나님을 하나님의 성읍 예루살렘에서 내쫓고 있다.

십자가는 극에 달한 인간의 죄악을 보여준다. 죄는 에덴동산에서 시작되었으나,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
다. 우리 인간의 본성 가운데서는 하나님을 향한 뿌리 깊은 저항이 자리 잡고 있다.

하나님을 증오하는 것이 우리의 본성이다. 십자가 사건에서 이 증오는 최고조로 표출되고 있다. 예수님
은 대략 여섯 시간 동안 십자가에 달려 계셨다. 이 여섯 시간은 처절하게 고문하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특히 세 시간 가량은 암흑이 그 땅을 뒤덮었다.

네 명의 복음서 저자들은 그 여섯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우리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누가는 그 이야기의 핵심으로 세 가지 사건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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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해 주다(Forgiveness Released)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
더라....”(눅 23:34)

죄가 있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떨어져야 한다. 그것이 구약에서 있었던 현상이었다. 그런데 사람
에게 곧장 떨어진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 떨어졌다. 아담이 죄를 범했지만 하나님은 곧장 아담을 죽이지
않으시고 땅을 저주하셨다. 또 송아지형상으로 우상숭배 했던 이스라엘을 위해 모세는 자신의 이름을 기
록하신 책에서 지워버려주시고 그들을 용서해달라고 하였다(출 32:32).

하지만 하나님은 그 제의를 거절하시고 그들 대신에 어린양 한 마리를 희생제물로 삼도록 하셨다. 저주
와 심판이 그 어린양에게 임한 것이다. 엘리야의 경우에도 하늘에서 심판의 불이 내려와 원래는 이스라
엘 백성들에게 떨어져야 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제단 위에 떨어지게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이 자비로우셔서 심판이 다른 곳- 땅, 희생제물, 제단-에 떨어지게 하셨다. 그렇게 해서 심
판의 불에 타버렸을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십자가는 무엇인가? 왜 예수님은 자신
을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을 위해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는가?

만일 인간의 역사상 하나님의 진노가 떨어져야 했을 때가 있었다면, 바로 이 때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고, 그 기도의 응답대로 죄인들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에게로 하나님의 저
주와 심판이 임하게 된다.

예수님이 하신 기도의 내용은 이런 것이다. “아버지, 그 심판이 저들에게 떨어지게 하지 마시고, 오직
저에게만 떨어지게 하여주옵소서. 제가 저들의 죄에 대한 심판의 피뢰침이 되게 하옵소서. 저를 희생제
물로 태워 주옵시고, 아버지의 심판이 그들에게 떨어지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는 저주가 땅에 떨어지게 하심으로 아담을 보호해 주셨고, 저주가 어린양에게 떨어지게 하심
으로 우상숭배한 이스라엘을 보호해 주셨고, 저주가 제단위에 떨어지게 하심으로 우상숭배한 백성들을
보호해 주셨듯이 사람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예수님께 떨어지게 하심으로써 십자가 주변에 서
있었던 사람들의 목숨을 건져 주셨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다. 인간이 지은 죄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이 예수님께 퍼부어졌다. 예수님은 십자
가 위에서 어린양으로 죽으심으로 그 저주와 심판을 감당하신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그 저주와 형벌의
심판을 나누신 것이 아니라 홀로 단번에 감당하신 것이다.

❏열린 낙원(Paradise Opened)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 24: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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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우리 인간의 첫 조상이 낙원에서 쫓겨나도록 만들었다. 그들이 죄악을 선택했을 때, 그들은 더 이
상 낙원에 있을 수 없었다.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으며, 다시 돌아갈 수가 없었다. 그 입구는 그룹
들과 화염검이 지키고 있었다. 구약성경은 이 추방을 강조하고 있다.

장막과 성전 한 가운데 지성소가 세워졌을 때, 무거운 휘장이 지성소 전면에 드리워졌다. 못들어가게 하
고 그 안을 못보게 하는 역할을 했다. 그 휘장에서 천사(그룹)들이 새겨져 있었다.
무슨 뜻인가? 구약 성경 전체가 낙원에서의 추방으로 인한 낙원이 막혔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막혔
음을 보여준다. 물론 하나님께 나아가는 제사제도의 길을 가르쳐 주셨지만 일년에 하루, 그것도 대제사
장만이 지성소 휘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구약 성경 이야기는 한 가지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한다. 어떻게 사람이 아담이 잃어버린 그 낙원에 다시
돌아갈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께서 낙원을 회복하실 한 가지 길을 내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그것이 구약성경이다. 그러던 중에 약속하신 이가 오셨다. 이것이 좋은 소식이다. 잃어버린 낙원을 바로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허락해주신 것이다.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
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
라”(눅 24:42,43)

예수님께서는 그 범죄자(강도)를 죽음으로부터 영생으로 즉시 옮겨주실 것을 약속하셨다(기억하라 ‘오늘’
이란 단어를). 낙원을 그동안 가로막았던 상징물, 지성소의 휘장(그룹들이 지키고 있는 모습을 수놓았음)
이 예수님께서 죽으실 때, 위에서부터 아래로 두 조각으로 찢어졌다.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눅 23:45). 마태는 그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다고 덧
붙이고 있다. 그리고 그 휘장은 인간이 하나님의 임재로부터의 추방된 사실에 대한 큰 상징이었다. 그룹
들이 그 휘장에 수놓아져 있었다. 그것은 아담과 하와가 내쫓긴 후에 낙원에 다시 돌아갈 길을 막았던
그 그룹들을 상기시켜주는 것이었다. 이제 그 휘장이 너풀거리면서 찢겨져 바닥에 떨어졌다. 예수님께서
죽으셨을 때, 천국은 모든 사람에게 열렸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외치셨다. “다 이루었도다”.

❏죽음이 정복되다(Death Subdued)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눅 23:46)

십자가 위에서 여섯 시간 달리셨는데, 그 중에 정오에서 오후 3시까지 큰 어두움이 온 땅을 뒤덮었다.
세시간 동안 온갖 저주와 심판이 그 위에 쏟아졌고, 숨을 거두셨다. 세 시간이 지난 후에(오후 3시) 어
두움이 걷혔다.

죄는 모두 처리되었다. 하나님의 정의는 성취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모든 백성을 위해
죽음의 골짜기에서 원수들을 결박하셨다. 마침내 전쟁은 끝났다.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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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기진맥진한 목소리로 최후의 말씀을 하지 않으시고 터져 나오는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그
말씀에는 승리의 어조가 담겨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께서 하라고 맡겨주신 모든 일을 완수하셨
다. 그리고 다 이루어졌다.
사흘 째 되던 날,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 몇 주 후, 오순절에 베드로는 예수 그
리스도의 메시지를 전파하기 시작한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 2:36).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죽음을 정복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죽음의 골짜기에서 대적들을
모두 결박시켜 버리셨다. 그 분은 낙원을 활짝 열어놓으셨다. 그 분은 우리의 죄악들을 위해 죽음의 선
고를 감당하셨으며, 회개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올 모든 사람에게 용서를 베푸셨다.
그렇기에 그 분을 거부하지 말라. 그 분께 나아와서 그분이 당신을 위해 주시는 것들을 모두 받아들이
라. 믿음으로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서 그것을 당신 자신의 것으로 삼으라. 이 성경 말씀의 힘과 약속을
깨달으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이것이 십자가의 사건이다. 우리가 받을 형벌이 예수님께 옮겨진 사건이다. 그 분은 우리의 자리에서 우
리가 받을 심판을 홀로 감당하셨다. 그것이 십자가 사건이다.
그동안 닫혀졌던 낙원이 열려진 사건이 십자가 사건이다. 막혔던 하나님에게 가는 길이 열려져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길이 된 것이다. 그것이 십자가의 사건이다. 그리고 십자가가 바로 성경 전체
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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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 과 부활(Risen)
누가복음 24:1-12

❏믿음이 없는 사랑(Love Without Faith)

성 경에 보면 안식후 첫날에 무덤을 향해 가는 세 여인이 있었다(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 사실 그 여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삼일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말씀하시
는 것을 들었었다. 천사가 나타나 그들에게 이미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을 생각나게 하는 것을 들어보

자자.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

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시기억하고”(눅 24:5,6)

여인들도 이미 들었던 말씀이었다. 그러나 그 주간의 첫 번째 날에 이르러, 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정일이 일어날 것(부활)이라고 전혀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그들이 무덤을 향해 갔던 것은 예수님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지, 믿음 때문이 아니었다. 이전에 그들이 그리스도에 대해 어떤 믿음을 갖고 있었든지,
그 믿음은 갈보리의 암흑에 압도당해버렸다. 믿음은 사라져버렸고, 남은 것은 사랑뿐이었다. 그래서 예
수 그리스도의 죽으신 몸에 기름을 붓기 위해 향유를 가직 무덤으로 갔던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은 지극하면서도 믿음은 전혀 없을 수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예수님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일이 어렵
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들은 그 흑암 어디에선가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중단했을 것이다. 이런 삶이 바
로 첫 번째 부활절 아침을 맞이한 그 여인들의 처지였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많은 사람이 처한 입장
이기도 하다. 당신도 여러 가지 당면한 흑암 가운데서 가졌던 믿음은 소진되고, 사랑만 남을 것이다. 당
신의 영혼 가운데 예수님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에 여전히 교회에 출석하지만, 당신 안에는 슬픔과 의
심이 가득할 것이다.

❏설명하지 못한 사건 (Lost For An Explanation)

여인들이 도착했을 때, 그들은 무덤 앞에 놓여진 돌이 옮겨진 것을 발견했다. 그들이 무덤 안으로 들어
갔을 때, 무덤이 비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여인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발만 동동 구르며 빈 무덤 앞에
서 근심할 뿐이었다. 그들이 빈 무덤을 보고 곧바로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셨다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시체가 없어졌음을 발견했을 때, 마리아는 “그리스도께서는 분명히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을 거예
요”라고 말하지 않았다. 요안나 역시 “그래, 나도 그런 느낌이 들어요. 당신 말이 틀림없을 거예요”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은 그들에게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
떻게 알게 되었는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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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설명해주시다(God Gives The Explanation)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
에 대니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
라...”(눅 24:4-6)

여인들 곁에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찾아왔다. 다른 복음서 기자들은 그 두 사람이 천사임을 말해
주고, 누가는 우리에게 그 모습을 그려준다. 그들은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나는 광채를
볼 때, 그들은 분명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이 말했다. “그가 살아나셨느니라!”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이
행동에 대한 하나님의 설명을 믿는 사람이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전해 주시는 대로 파악하고 믿는 일에 전적으로 달려있다. 우리는 성경 이야기 전체를 통해 이 패턴을
확인해 왔다.

아담이 처음 호흡을 하게 되고 자신이 살아있는 존재라고 의식하게 되었을 때(여섯째 날), 그는 하나님
께서 말씀해주실 때까지 자기가 누구인지 알 길이 전혀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
그에게 설명해 주셨다.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음 받았던 것이다. 동정녀
마리아가 한 아기를 잉태하게 되었을 때에도 그녀는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인지 설명해주도록 하셨다. 들판
에 있었던 목자들과 동방박사들의 경우도 그와 같았다.

예수님의 죽으심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이 죽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십자가의 의
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희생제물이 되시고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하나님의 정의가
성취되고 우리가 죄 사함을 얻을 수 있도록 우리의 죄를 감당하셨으며, 우리가 당할 형벌을 대신 견디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다.

그 주간의 첫날에 무덤에 있었던 그 여인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스스로는 어떤 일이 일어났었
는지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해주셨다.

기독교 신앙은 감정이나, 충동이나, 개인적인 통찰들에 의존하지 않는다. 기독교 신앙은 오직 성경을 통
해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대로, 사건들에 대한 설명을 믿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셨다!”

❏‘살아나셨다’는 것은 죽음이 패배했다는 뜻이다(Risen Means That Death is Defeated)

‘살아나셨다’는 말은 예수님의 부활을 의미하는 말로서 죽음이 패배했음을 전해준다. 에덴동산에서 지은
첫 번째 죄부터 죽음은 가차 없이 임했다. 사도바울은 사망이 왕 노릇 한다(롬 5:14,17)고 했다. 사망은
마치 인류에 대해 공포정치를 실행하고 있는 독재자와 같다. 아무도 그것을 피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이
그 죄의 잔학성에 굴복하고 있다. 이제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죽는 그 죽음으로 친히 들어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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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망의 권세는 그동안 모든 사람들을 붙들고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을 가두어 둘 수가 없었다. 예
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통과해 세상으로 나오셨다.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것이다. 곧 죽음의 권세를
파괴시키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란 소식은 인류가 두려워하는 죽음이 패배했다는
뜻이다. 부활의 첫 열매......

❏‘부활하셨다’는 말은 사람을 죄로부터 구하셨음을 의미한다 (Risen Means The Whole Person Will Be
Redeemed)

부활절의 메시지는 예수님께서 그냥 살아계신다는 것이 아니다. 물론 예수님은 실제로 살아계신다. 그러
나 부활절은 우리에게 그 이상의 것을 말하고 있다. 부활절의 메시지는 예수님께서 썩지 않으시는 몸으
로 살아나셨고,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도 부활체로 살아갈 것이란 메시지이다. 죄로 물든 우리의 영혼만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죄로 물든 우리의 몸도 구속하셨다는 의미가 그분의 부활의 의미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놀랍게 창조하셨다. 천사들을 육체가 없는 영혼들로 창조하셨고, 동물들은 영혼이
없는 육체로 만드셨다. 그러나 인간만이 몸과 영혼이 특별하게 연합하도록 창조하셨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죽음은 하나님께서 함께 붙여놓으신 영혼과 육체를 분리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존재 자체를 파멸하는 것이다. 육체가 없는 영혼의 존속은 우리의 일부분만 구원받는다는 것을 의미한
다.

그리고 그것은 죽음에 대한 승리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지금 예수님을 믿어 낙원에 가 있는 영혼들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 때 썩은 육신들이 모아지고 영혼이 합하여져 선한 부
활체가 됨으로 죽음이 완전히 조롱당하게 된다. 그 때 죽음은 아무도 붙들지 못하고 전부 다 내어주어야
한다.

예수님은 당신의 영혼만이 아니라 당신의 전체를 죄에서부터 구속하기로 정하셨다. 그러므로 당신 전체
가 천국에 가서 하나님의 임재를 즐거워하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육체의 부활을 좀 더 명확하게 믿
는다면, 우리는 천국에서의 삶을 훨씬 더 갈망하게 될 것이다.

❏‘부활하셨다는’는 말은 우리 모두가 변화 받을 것이란 뜻이다(Risen Means We Will All Be Changed)

예수님의 육체가 부활하셨을 때, 그 분의 육체는 영생에 적합하게 바뀌었다. 죽었던 사람에게 생명이 되
돌아오는 다른 예들이 성경에 있었다(회당장 야이로의 딸, 나인성 과부의 아들, 나사로). 하지만 그들은
예전과 같은 모습이었고, 그들은 단지 죽음이 지연되었을 뿐 또 다시 죽게 되었다.

이 말은 죽음이 패배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을 때, 그 분의 육체는 더 이상
노화나 질병이나 죽음에 종속되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몸은 영원에 맞게 변화되고 영원에 적응되었다.
이것이 바로 모든 그리스도인이 기다리고 있는 영광스런 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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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모든 사람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라(Wait Till Everybody’s Ready)
‘부활하는 육체’라는 선물은 대단히 경이로운 것으로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모든 자녀를 모으실 그날
까지 그 선물을 보류하고 계신다. 그 선물은 아마도 어렸을 때 성탄절 아침에 받았던 선물과 같을 것이
다. 성탄절 아침 일찍 깨어났을 때, 자녀들에게 이미 선물이 주어져있었다. 아침이면 모두 거실로 뛰어
가서 성탄트리 아래에 놓여진 선물들을 열어보았다. 그러나 가족 모두가 거실 문 앞에 설 때까지는 거실
에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모든 가족이 모여 준비가 되면, 함께 거실로 들어가 각자에게 주어
진 선물들을 열어볼 수 있었다.
이미 낙원에 가 있는 자들도 기다리고 있다. 부활의 선물을 기다리고 있다. 언제까지일까? 하나님의 모
든 자녀들을 모으실 그 날까지 이미 낙원에 가 있는 영혼들도 부활의 선물을 기다리고 있다.
하나님의 생각에 다 불러 모아졌다고 판단될 때, 아들을 다시 보내실 것이고, 그 아들 앞에서 모두 부활
체가 될 것이다. 선한 부활의 선물을 그 날 받는 것이다. 예수님이 오실 때, 살아있는 자도 부활의 모습
으로 변하고 죽어 있던 자들도 부활의 모습으로 변하여 주님을 맞이하게 된다. 낙원에 있던 영혼들이 영
원한 생명에 맞게 변화된 부활의 육체들과 재결합하게 될 것이다.
당연히 믿지 않는 자는 그 낙원에 합류할 수 없다. 예수님이 아직 오지 않으셨고, 그래서 부활의 선물을
아직 받지 않았다는 것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일 때까지 기다리시는 과정에 불과하다. 반드시 이
루어진다. 그러나 지금은 기다리시는 중이시다. 속속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 모여들면(구원받게 되면) 영
생의 부활의 선물은 믿는 자들에게 주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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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 과 승천(Ascended)
누가복음 24:44-53

❏작별 인사

사 람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작별 인사를 한다. 영국식 이별은 손을 뻗어 악수를 한 후에 ‘잘 가’
라고 말하곤 주로 군대에서 하듯이 뒤돌아선 다음, 자기 차에 올라 그길로 곧장 달려간다. 한마
디로 그 뒤로 보지 않고 떠난다. 여하튼 작별 인사는 마음먹은 것처럼 쉽지 않다. 헤어지기 때문에 마음

성이 썩 좋지 않다.
자그런데 예수님이 승천하신 사건에 대한 기록을 읽으면서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

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
시니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눅 24:50-52)



예수님께서 떠나셨는데 제자들이 기뻐했다니, 도대체 그 기쁨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그 이

정유를 우리가 알아봐야 한다.

비록 요한복음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끼어있기는 하지만,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한 권을 둘로 나누
어놓은 것과 같다. 그래서 누가복음의 끝부분과 사도행전의 시작 부분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 사
도행전은 누가복음이 끝나는 곳, 즉 예수님의 승천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러므로 이 두 기록을
함께 붙여놓음으로써, 우리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좀 더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작별하기 전 40일

이 두 책을 쓴 누가는 부활 후에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고 전해주고 있다. 예수
님께서 제자들 앞에 출현하셨던 첫 번째 이유는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기”
(행 1:3) 위한 것이었다. 예수님의 부활이 상식적인 의심을 넘어서 기정사실로 확립되어야 한다는 사실
이 중요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한 두 번이 아니라 거듭해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복음서들과 고린도전서에 나타나 있는 기록들을 모두 합쳐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모두가 있는 자리,
혹은 그들 가운데 한두 사람에게) 최소한 아홉 차례 나타나셨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500명 이상의 무리
가운데 나타나셨는데, 그들 중 대부분은 바울이 그 사실에 대해 기록하였을 때까지도 살아있어서, 그 기
록의 진실성을 증명해 줄 수 있었다(고전 15:6). 그러나 승천 이후에 예수님의 출현은 멈추었다. 그렇
게 사람들 앞에 나타나시는 일을 갑자기 끝내셨다는 것은 그 사건이 실제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명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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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 가운데 하나이다. 그 사건들은 제자들이 환상 중에 본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나라의 일

부활 이후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사건들은 예수님께서 살아계신다는 확실한 증거를 제공해 주고자 하
는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앞에 놓인 하나님 나라의 일에 대해 제자들을 준비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앞에 놓인 ‘하나님의 나라’의 일에 대해 제자들을 준비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
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행 1:3).

40일 동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가르치셔서, 그들의 이해력을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려주셨다. 이 전
에 그들은 십자가 사건을 순전히 하나의 재난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그들은 이 모든 일이 정확히 하나님
께서 계획해놓으신 대로 일어났음을 본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 40일 동안을 그들과 매일같이 항상 같이 계신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
그들을 가르치시고 다시 사라지셨다. 그런 식으로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신체적 현존에 의존하는
것을 점차적으로 막으셨다. 3년동안 그들은 예수님과 직접 얼굴을 맞대로 대화를 나누는데 익숙해 있었
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을 목격했으며, 그분이 하시는 말씀을 들었고, 그분께 자신들이 품
고 있는 의문을 질문하기도 했다.

그들의 믿음은 그 앞에서 보는 것에 근거해 세워져 있었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들은 눈
으로 보지 않아도 믿음으로(고전 5:7) 나아가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점차 예수님을 두
눈으로 보지 않아도 그분을 믿게 되었다. 이때부터 하나님의 일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졌다.

❏더 이상 나타나지 않으시다

40일이 지난 후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예루살렘 밖으로 데리고 가셔서, 예루살렘 성읍을 굽어볼 수
있는 감람산 위로 올라가셨다. 그들은 종려주일에 예수님께서 군중의 환호를 받으며 예루살렘으로 들어
가시기 몇 주 전에 올라갔던 그 길을 다시 그대로 따로 올라갔다. 과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형을 당하시
기 위해 그 성읍으로 들어오셨다. 그러나 이제 그 모든 일은 지난 일이 되었다.

예수님은 그 곳에서 해야 했던 모든 일을 성취하시고 예루살렘에서 걸어 나오셨다. 그런 다음에 예수님
은 승천하셨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는 것을 보았다(행 1:9). 부활 후 예수님께서는 나
타나신 그대로 사라져버리셨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는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는 광경을 똑똑히
보았다. 이것으로 부활하신 이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는 일은 끝이 난 것이었다. 부활하셨다는 증거가
그동안 나타났고 훈련은 완료되었다. 그래서 이제 예수님께서는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가셨다.

❏예수님의 승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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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행 1:9).
비록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분이시지만 하나님은 자신을 자기 백성에게 알리고자 하신다.
그래서 구약에서 주로 구름과 관련되어 상징적으로 임재하고 있음을 보여주셨다. 의미심장하게도 예수님
은 변용하시고 제자들이 그분의 영광을 보았을 때에도 빛나는 구름이 그곳으로 내려왔다(마 17:5). 제자
들은 땅바닥에 얼굴을 대고 엎드렸다. 자신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직접적인 현존 가운데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마 17:6).

이제 예수님께서 승천하여 올라가시고, 또한 제자들이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 그들이 무엇을 보고 있
는가? 바로 그 구름이다! “예수님이... 하늘로 올리워가시자 구름에 가려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행 1:9).
예수님이 구름 가운데로 들어가셨다.

이보다 더 분명한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아버지로부터 오셨던 예수님께서 자신의 일을 모두 마치시고
구름으로 나타나신 아버지께로 돌아가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제자들을 기쁨으로 충만하게 만들었다. 예
수님은 단순히 하늘 가운데로 사라지신 것이 아니라 빛나는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진 것이다.

성경은 특출한 지성을 모두 뛰어넘을 정도로 매우 심오한 책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어린아이조차도 이해
할 수 있을만큼 간단한 책이다. 당신은 이 광경 속에서 그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표현하고 있다. 구름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신다. 예수님께서 그 구름 가운데로 ‘끌려’ 올라가
셨다는 점에 주의하라.

❏천국에 있는 한 사람

예수님께서 천국에 들어가신 의의에 대해 생각해 보자.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래 처음으로, 하
나님의 현존 안에 한 사람이 있게 되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우리의 사람됨을 취하셨을 뿐 아니라, 하
늘에서도 우리의 인성을 취하고 계신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는가?

천사들은 연약한 육체를 지닌 아담이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쫓겨나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이제 처음으로
하늘이 열리면서 영생의 몸을 입은 한 사람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걸어 들어간다! 아담이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쫓겨났을 때, 그 결과 그의 후손들이 하나님을 떠났다. 반면에 예수님은 아버지의 임재 가운
데로 들어가시면서 열렬한 환영을 받으셨다. 그 결과 그 분을 믿는 모든 이들도 아버지께 뜨거운 환영을
받게 될 것이다. 첫 아담은 우리 모두를 동산 밖으로 인도했으나 마지막 아담은 우리 모두를 낙원 동산
안으로 이끌어주신다. 그렇기에 제자들이 기뻐하면서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훌륭한 변호사를 구하라

만일 당신이 고소를 당해서 사형선고를 받게 되었다고 가정해보라.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당신을 구할
수 있는 훌륭한 변호사이다. 변호사는 당신편이다. 당신의 모든 것을 들어주고 어떻게하든지 법정에서
무죄를 만들려고 할 것이다. 예수님은 하늘로 올리워가셨을 때, 제자들은 그들이 예수님을 꼭 필요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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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자리에 반드시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계속 계시는
것보다 하늘에서 우리를 대변하시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
예수님은 이 땅이 더 이상 아닌 천국에서 변호를 해 주신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신 것은,
바로 내가 가장 필요로 하는 자리로 가신 것이다. 요한은 말하길,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
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사도들은 자신이 천국에 들어갔을 때,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대신해 아버지께 대변해주실 수 있
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기뻐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8:34절에서 이 점에 대해 말하고 있다. “누가 정죄
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다함없는 축복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그들
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눅 24:50-51)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 인상은 마음에 강하게 남는다. 예수님에 대해 제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마지막
인상은 매우 의미심장했다. 누가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두 손을 들어서 그 제자들을 축복하셨다고 기록했
다. 당신은 이 모습이 어떠했을지 상상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께서 두 손을 들고 당신의 삶에 하나님의
복을 내려주시라고 말씀하실 때, 그 아래 당신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구약성경에서 축복의 개념은 매우 중요했다. 축복은 장래에 잘 되기를 바라며 표현하는 덕담 그 이상의
것이었다. 야곱은 자기 아버지의 축복을 얻기 위해 아버지를 속일 준비까지 했었다. 그 축복은 하나님께
서 한 개인의 삶을 통해 무엇을 하실 것인지에 대한 예언적 선언이었기 때문이다.

이삭이 야곱을 축복했을 때, 그것은 돌이킬 수 없었다. 하나님의 축복은 야곱과 그의 자손들에게로 갔
다. 이제 우리는 훨씬 더 큰 축복을 보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 위에 자신의 두 손을 올려서
그들에게 자신의 축복을 나누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기름 부음이 그들에게 있을 것이며, 그리하여 그
들이 하나님의 목적들을 성취하기 위해 쓰임을 받게 될 것이었다. 축복하심은 그 때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여전히 그 일을 하고 계신다.

그 분은 여전히 하늘에서 자기의 백성들을 축복하고 계신다. 승천 사건은 예수님의 완성된 사역과 계속
되고 있는 사역 모두를 우리가 깨닫게 해준다. “그가 항상 살아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히
7:25).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에 대한 약속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
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행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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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하늘로 그 부활체가 올라가신 후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제자들과 더불어 계셨다. 예수님은 더
이상 제자들에게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분의 임재는 제자들이 그 분을 볼 수 있었을 때처럼 아주 생생했을 것이다. 이 새로운 상황으
로 인해 놀라운 일이 생겼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모든 곳에서 모든 제자와 동시에 함께 하실 수 있게 되
신 것이다. 이런 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땅 위에 계셨을 때에는 불가능한 일이다.
지상명령을 주셔서 세상 끝까지 흩어져 증인이 되라고 하셨는데, 그들과 함께 하신다고 하신 말이 무엇
인가? 이 세상에 계셨던 예수님의 육체라면 힘들다. 하지만 성령을 부으셨고, 그 성령으로 함께 하시기
에 가능해졌다. 예수님은 분명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 보내리니”(요 16:7).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그의 영으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 이제 눈
으로 다시금 그 부활하신 몸을 볼 때까지 성령을 보내시어 함께 하시고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
게 하셨다. 영광중에 다시 오실 것이다. 그렇기에 제자들은 기쁨으로 남은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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