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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by Brunch Magazine LLC, 2021-01-04 09:02:09

Brunch Magazine Vol.16 2021

vol.16 - 2021
2nd Anniversary

B RU NC H

magazine

vol.16
2021

2nd anniversary



www.en.airfish.co

Stella Park Noah Kim Zoe Lee

Seungho Yang Gahyeong Kim I An Kim

www.bmentertainment.group

뉴욕 새로운 개념의 엔터테이너 양성 교육기관

비르투 아카데미

endless WE DESIGN:
possibilities.
Logo
HJ Design Studio Website
Business Card
email: [email protected] Brochure
instagram: @hj_studio_19871990
Poster
Flyer

Other Collaterals



p.15 p.25 p.61

Contents

P.9 - Fashion Story P.54 - Art Story P.70 - Cafe Story
Thomas Burberry Jean Michel Basquiat 레이지 데이지의 카페탐방

P.15 - Brunch Magazine Kids Models P.61 - People Story P.74 - Cooking Story
BM Kids Lookbook Marilyn Strickland Cecilia’s Kitchen

P.25 - Special Interview P.64 - Life Story P.76 - Special Event by BRUNCH
꿈을 담는 아티스트 '전용덕' Dyson BRUNCH Events

P.41 - 대한민국 여배우 Story P.66 - Ballet Story P.96 - Special Event by BRUNCH
배우 '신영진' 발레 놀이 시간 BRUNCH Exhibition

P.48 - BRUNCH Exhibition 첫번째 작가 P.68 - Fun illust Story P.108 - Wellness Story
아티스트 '전효진' 숨은 그림찾기 by 기코 수족냉증과 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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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NCH MAGAZINE KIDS MODELS

BM Kids Lookbook

Photographer: Haseok Chung @haseokchungstudio
Hair & Makeup: @jane_everwell

Hairpiece Design: @darlingmoon.flower
Brands: Frou Frou, birinit petit, WOLF&RITA

Sponsorship: @tinyappleny @thefrontshop
Organized by BM Entertainment LLC.

Models: Stella Park, Zoe Lee, & Noah Kim

The Front Shop
Brand : Frou Frou, Germany
Top Ben Black Striped $78
The Volant Dress Black Check $111
The Day Dress Black Striped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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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nyapple
Brand : Wolf & Rita, Portugal

Shirt Roberto, Sojourne $75
Trousers Amadeu, Black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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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nyapple $79
Brand : Birinit Petit, Spain
Birinit Petit Very cool Burgundy Flower shirt $74
Birinit Petit Gingham Shirt with embroidered co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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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nyapple $79
Brand : Birinit Petit, Spain
Birinit Petit Very cool Burgundy Flower shirt $74
Birinit Petit Gingham Shirt with embroidered color

Tinyapple
Brand : Wolf & Rita, Portugal
Skirt Silvina, Denim Black $92
Blouse Tatiana, Sojourne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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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nyapple
Brand : Wolf & Rita, Portugal
Blouse Tatiana, Sojourne $112

Tinyapple
Brand : Wolf & Rita, Portugal
Skirt Silvina, Denim Black $92
Blouse Tatiana, Sojourne $112

Tinyapple $79
Brand : Birinit Petit, Spain
Birinit Petit Very cool Burgundy Flower shirt $74
Birinit Petit Gingham Shirt with embroidered co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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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INTERVIEW

꿈을 담는 아티스트‘전용덕’

Artist, Yong Duk Jhun

Brunch/ 안녕하세요, 전용덕 팀장님. ‘Head of Layout’이라는 직함을 너무 투명하게 보이더라구요. 그때 결심했어요. 눈에 보이는 미래를 향해
독자 분들이 쉽게 다가오실 수 있도록 저희가 한국말로 ‘팀장님’이라고 달리기보다는 불확실하더라도 도전하는 삶을 살아보자구요. 물론 친구와
지칭 해도 되나 모르겠습니다. (이하 전용덕님) 함께 유학생활을 하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도 있었구요. 그래서 잘
On demand에서 다큐 인터뷰를 보고 정말 찐한 감동과 공감은 물론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친구와 함께 미국대사관에 비자를 신청했는데
귀감이 될 만한 분을 발견하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친구는 그만 인터뷰에서 떨어지고 저만 붙어서 결국엔 미국에 혼자 오게
이렇게 또 브런치 매거진 하고 만나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되었답니다. 그 친구는 약 2년 뒤에 미국에 올 수 있었고, 디자인 공부
영광입니다. 미국에서 그것도 꿈에 그리는 직장에서 이렇게 멋지게 자리 대신 신학공부를 해서 목사님이 되었어요. 지금 뉴욕 베이사이드에서
잡고 활동하고 계시는 모습 같은 한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낍니다. 궁금한 목회활동을 하고 계신 김창인 목사님이 그 친구입니다. 20여년 전에 저의
것이 참 많은데 추려내고 또 추려내느라 고생 많이 했습니다. 꼭 직접 미래를 디자인 해준 정말 고마운 친구예요.
강연도 들어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하게 되더라구요. 그럼 그나마  
간추린 질문 드려 볼게요. B/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오셨을 때는 비전도 남달랐을 것
같은데요. 인생에 대한 책임감도 그렇구요.
전용덕님께서는 한국에서 산업 디자인을 전공하시고 광고회사에서
일하셨는데 갑자기 미국으로 오셨잖아요. 미국으로 오신 계기가 J/ 조기유학도 좋지만 철들어서 오는 유학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27
있으셨나요? 살에 언어부터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어려움도 있지만 그 절박함이 제겐
큰 힘이 되어줬어요. 일분 일초가 아까웠고, 조금이라도 더 빨리 배워야
Yong Duk Jhun/ 1997년 당시, 유학이나 이민 등은 사실 생각도 안하고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라는 각오로 유학생활을 했어요. 어쩌면 제게
있었어요. 광고회사 일도 너무 재미있었고, 사회 초년생으로서 배울 것들이 주어진 마지막 기회였기에 소중하게 다루고 싶었구요. 제가 미국유학을
많았거든요. 그때 저와 가장 친했던 친구가 어느 날 할 이야기가 있다면서 왔던 첫 해에 아버지께서 한국에서 큰 수술을 받으셨어요. 저에게 미리
회사에 찾아왔었죠. 그 친구는 저보다 디자인 실력도 월등했고, 예술에 알리지 않으셨었기에 소식을 듣자마자 JFK공항에서 급하게 비행기를
탁월한 재능이 있는 친구였는데 유학을 가기로 결정했다면서, 더 타고 한국에 도착했을 땐 아버지께서 이미 수술을 마치신 뒤에 중환자실에
배우고 좋은 곳에서 성장하고 일하고 싶다면서 같이 갈 생각 없느냐고 산소호흡기를 쓰고 누워계셨고, 제가 도착한 걸 아신 뒤에는 제 손을
하더라구요. 그때까지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그 이후로 많은 생각이 잡으시고 ‘성공해라.’라는 말씀을 제 손바닥에 적으셨었습니다. 다행히
들더라구요.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직급에 따라 수술이 잘 끝나서 아버지는 아직도 건강하게 잘 계세요. 그 이후부터
연봉도 다르고, 진급하는 것도 일정 시간이 지나야 가능하잖아요? 위로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꼭 성공해서 돌아간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매사에
계신 대리님, 차장님, 부장님, 국장님 등을 뵈면서 저의 앞으로의 20년이 임했던 게 오늘의 저를 만들어준 원동력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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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전용덕님은 미국 뉴욕 SVA에서 컴퓨터 아트 대학원 과정을 마치셨는데 J/ 글쎄요. 제가 졸업을 한지가 20년이 넘어서 제 경험이 얼마나 도움이
그럼 뉴욕에서 공부하신 거네요. 대학과 대학원이라는 기본적 차이가 될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공통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두는
있겠지만 전용덕님께서 경험한 한국의 대학교와 미국 대학교 교육의 차이점은 건 포트폴리오에 얼마나 많은 양의 작품을 만들었냐를 따지기 보다는 수가
무엇이었을까요? 적더라도 작품 안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느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아름다운 무지개를 그린 사람보다 무지개 밑에서
J/ 네, 제가 미국에서 첫 발을 내디딘 곳은 JFK공항이었고, White Plain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그린 사람에게 더 눈길이 간다는 이야기죠. 궁금증을
있는 Manhattanville College에서 1년간 어학연수, 맨하탄에 위치한  School 유발하잖아요. ‘왜일까?’ 하구요. 실기를 잘 하는 건 기본입니다. 대부분의
of Visual Arts에서 2년 대학원 생활, 그리고 약 1년간 맨하탄에서 직장을 아티스트들이 잘하죠. 미술대학이나 애니메이션 회사가 스토리가 있는 작품에
구하면서 지냈어요. 그래서 제겐 뉴욕이 제2의 고향같이 느껴져요. 그리고 더 열광하는 이유가 그런데 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 할 줄 아는
솔직히 그때 당시 School of Visual Arts에서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좋았던 아티스트가 다른 이의 이야기도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점 보다는 실망했던 점이 더 많았어요. 선생님들께서 저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게 거의 없었고 모든걸 제가 알아서 해야 했었거든요. 배우는 게 없다고 B/ 미국에서 영어를 모국어로 구사하지 않는 한 언어의 어려움은 언제나
생각하니  학기당 수만 불씩 들어가던 등록금이 아까울 정도였으니까요. 지금 따라다니는 문제일 수 있는데요, 한국에서 공부하시다가 성인이 되셔서
생각해보면 그게 교육방식의 차이였어요.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진 제가 미국으로 오신 경우 인 것 같아 미국에서 영어에 대한 부담감은 없으셨는지
자율화된 교육방식 안에서 정체성을 잃은 거였죠. 선생님들은 제가 알아서 질문 드려요.
작업한 중간결과물이나 결과물들 통해 올바른 방향을 잡아주셨는데
전 답을 원했던 거였으니까 제 입장에서는 답답했던 거구요. 그래서 더 J/ 영어는 사실 아직도 조금은 부담이긴 해요. 물론 적응이 많이 되어서
열심히 했어요. 제가 미국에서 교육받은 친구들 보다 뒤쳐진다는 느낌을 이제는 두려움 보다는 답답함이 더하긴 합니다만. 유학 초기에는 의사소통이
받았거든요. 지금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더 잘 할 자신 있는데 좀 늦었죠?  힘들어서 주로 비 영어권 친구들하고만 지냈어요. 그 친구들도 영어를 못해서
  불편했지만 서로의 고충을 잘 알다 보니 통하는 점도 많았구요. 어느 날은
B/ 한국에서 산업 디자인을 공부하셨는데 미국에서 ‘컴퓨터 아트’ 석사를 캠퍼스에서 뛰어오는 사슴 떼를 보고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요. 한국에서는
하시게 된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거든요. 동물원이나 농장에서만 볼 수 있는 야생
사슴을 대학캠퍼스에서 마주친다는 사실이 믿기 힘들었죠. 처음에는 거대한
J/ 전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 했었는데, 애니메이션과 야생동물로만 보였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버렸는데, 그 친구들도 저를
관련된 수업은 4년 동안 1과목밖에 없었어요. 그 지식으로는 당연히 미국에서 보고 얼어붙더라구요. 서로 쳐다만 보다가 그 친구들이 먼저 자리를 떴고
애니메이션 관련 직장을 구할 수도 없었구요. 당시 미국에서 애니메이션을 사슴이라는걸 알아챈 순간 얼마나 흥분했던지 다음날 영어선생님에게 어제 ‘
가르치는 대학원 프로그램들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고, 다행히 SVA에서 밤비’를 봤다고 이야기해버렸죠.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선생님에게
대학원과정, 컴퓨터 애니메이션 전공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목이 길고 뿔이 달린 짐승이라는 설명을 해줬더니 “Deer!”이라고 하면서
지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SVA 대학원의 Computer Arts학과는 포괄적인 탁자를 탁 치시는 모습을 보고 지난 27년간 공부했던 영어가 다 무용지물처럼
개념이구요. 그 안에 멀티미디어 학과, 컴퓨터 애니메이션학과 등 여러 개의 느껴졌답니다. 그 쉬운 Deer라는 단어조차 생각이 안 나다니 앞으로 갈
작은 학과들로 나뉘어져 있어서 본인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길이 멀다라고 스스로 자책했죠. 그 이후로는 영어를 따로 배웠다기 보다는
되어있었습니다. 생활하면서 습득한 게 더 많아요. 누가 먼저 제게 말 걸어주길 기다리기보다는
  제가 먼저 말을 걸었고, 당당하게 질문은 했지만 대답을 못 알아듣는 경우가
B/ 미국의 아트 스쿨에서 공부 하시면서 포트폴리오는 어떤 식으로 허다했구요. 그래서 가급적 말 수를 많이 늘리고, 미국인과 접촉을 많이 하다
준비하셨는지 말씀해주시면 현재 미대를 가고 싶어하는 학생이나 지원자들께 보니 자연스럽게 영어를 습득하게 되더라구요. 또 아무래도 저의 직업이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저희도 궁금하구요. 전문직이다 보니 항상 사용하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그런 단어들을 자주
사용하면 소통도 훨씬 쉽고, 업무에 불편함이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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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 디자인에 대한 관심과 더 큰 범주로서 미술에 대한 관심은 J/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은 보수나 대우, 복지혜택 등 직장생활을
언제부터였나요? 어려서부터 미술에 타고 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셨을 하면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제가 태어나서 경험해본 회사 중
것 같아서요. 아니면 언제부터 좋아했다? 빠져들었다? 어떤 계기가 있었다 최고였습니다. 무료 발레파킹에, 매일 아침과 점심을 무료 뷔페로 제공해 줄
등등이요? 정도였으니까요. 그곳에서 총 14년을 지냈지만 시간은 4~5년 정도 밖에
안 지나간 것처럼 느껴졌어요. 저에겐 고마운 회사이고, 또 마음의 고향과
J/ 전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어요. 남들보다 특별히 잘 그린다기 같은 곳이기도 해요. 2003년에 드림웍스에 입사했는데, 초반에는 많이
보다는 그림 그리는 자체를 좋아했고, 그러다 보니 초등학교 때 받은 상장은 어색했어요. 제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은 느낌도 많이 들었구요. 동료들이나
모조리 미술실기대회에서 입상한 상들 뿐이더라구요. 대상은 항상 실력이 좋은 선배들을 보면 나이가 지긋이 든 분들이 많았고, 그분들의 경력을 들어보면
다른 친구들이 가져갔고, 전 항상 입선 정도 했었죠.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제가 어릴 때 좋아했던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만드신 분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미술을 전공하리라곤 생각도 안 했어요. 미술을 전공으로 해볼까 하고 생각했던 저 같은 초보에게는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힘든 광경이었어요. 그렇게 2
게 단국중학교 3학년 때였으니까 좀 늦은 감은 있었죠. 선화예술고등학교에 년이 흐르고 어느 정도 분위기에 익숙해질 무렵 제가 쿵푸팬더의 촬영감독을
지원했었는데 보기 좋게 떨어졌어요. 처음으로 하고 싶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맡게 되었습니다. 제 인생에 다시 한번 기적이 일어난 거였죠. 그 해가 2005
걸 배운 것도 그때예요. 그 이후엔 중동고등학교에 입학해서 문과에서 나름 관심 년이었으니까 미국에 온지 8년만이었어요. 아직 서툰 것들이 많은 시기였는데
있는 과목을 찾아봤지만 저와는 적성이 안 맞았고, 결국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동료들의 도움으로 작품을 잘 끝낼 수 있었고, 쿵푸팬더가 극장에서 성공한
부모님과 상의 끝에 미술대학에 가기로 결정했어요. 일단 공부만으로 대학에 이후로 많은 것들이 바뀌었어요. 주위에서 저를 대하는 시선이나 대우가
진학하기에는 부족함이 너무 많았어요. 제가 공부했던 모든 과목 중에 유일하게 달라졌고, <Shrek>, <The Croods>, <Trolls>등의 작품에서 촬영감독을
항상 ‘수’를 받는 과목이 미술이었으니까 자연스럽게 그쪽을 선택하게 된 맡으면서 어느덧 회사에서도 리더라는 자리에 자연스럽게 오르게
거구요. 그때 당시 전 순수미술을 하고 싶었는데 부모님은 반대하셨고, 그래서 되었어요. 모든 일들이 쉬워 보이기 시작했고 뭔가 새롭게 도전하지 않으면
결국은 서울시립대학교 시각디자인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고인 물처럼 썩어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하면서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어요. 과연 내가 잘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시스템에 물려서 저절로 잘
B/ 이렇게 미국에 오시고 애니메이션계의 꿈의 직장인 드림웍스에 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지더라구요. 그래서 드림웍스를 나왔습니다. 만약 내가
입사하셨어요. 다큐 인터뷰에서 보았던 그 감동적인 스토리가 이렇게 잘하고 있는 것이라면 어느 곳에서도 성공 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두려움이
찾아 뵙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개인적으로도 잊지 앞섰지만 그건 당연한 것이고, 두려움 때문에 벗어나지 않는다면 새로운
못하시겠죠. 인터뷰에서는 들어가시게 된 계기를 중심으로 말씀 해 주셨는데 세상에서 나를 시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지는 것이니 크리에이터로서
그렇다면 드림웍스에 입사 후에 퇴사까지 여정을 회고해 보시면 어떠신가요? 꼭 굴복하는 것과 같다고 보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좋은 결정이었어요. 지금의 제
들어가보라고 하셨지만 꼭 들어가고 싶어도 아무나 갈 수 없는 곳이잖아요? 모습에 만족하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후회 없이 최선을 다했으니까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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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 꿈의 직장에서 전용덕님께서 작업하셨던 <쿵푸팬더>, <슈렉>, < B/ 그래도 아무리 드림웍스라 해도 작품을 만드는 과정 중 어렵고 힘든 부분은
트롤> 등을 포함한 여러 작품 중 특히 애착이 가는 작품과 그 이유가 수없이 많겠죠. 어떤 부분이 제일 힘들까요?
있을까요? 말씀해 주시면 그게 그대로 비하인드 스토리가 되는 거네요~ 멋져요!
J/ 애니메이션 제작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의사소통입니다. 언어의 문제가
J/ 제가 14년간 드림웍스에서 촬영을 총 책임졌던 작품은 Kung Fu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얼마나 잘 전달해서 전체 팀이 한 사람의 마음처럼
Panda(2008), Shrek(2010), The Croods(2013), Trolls(2016) 이렇게 움직이느냐가 중요한데 그런 문제가 적은 프로덕션은 일하기도 편하고, 불만도
총 4 작품입니다. 그 중에서 제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작품은 적습니다. 쉽게 말씀 드리면 저의 팀원은 보통 한 작품당 15~20명 정도
쿵푸팬더입니다. 왜냐하면 그 작품을 하는 동안 경험한 모든 것이 제게는 됩니다. 저는 하루의 대부분을 미팅을 하면서 보내고, 아티스트는 맡겨진 작업을
처음이었거든요. 아침에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모든 순간들이 제가 경험해 하면서 보내게 되는데, 결과물의 책임은 당연히 제가 져야 하니까 하루에 한 두
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접해보는 수많은 미팅들로부터 시간씩 개개인의 아티스트와 작업물에 관해서 의견을 교환합니다. 영화제작이
시작해서 제가 내린 결정들이 영화에 반영되고, 팀원들의 작업에 대한 모든 수학공식처럼 답이 맞아 떨어진다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문제를
책임을 제가 100퍼센트 져야 했으며 감독, 프로듀서들과 함께 400여명이 같은 방식으로 해결 할 수 없는 작업이다 보니 의견충돌부터 시작해서 같은
넘는 제작인원들 앞에서 자신감 있는 리더로서의 모습을 항상 보여주어야 이야기를 들어도 서로 다르게 이해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참 많습니다. 그럴 때
하는 부담감이 상당했죠. 그래도 다행이었던 건 제가 그 영화를 만들면서도 그 오차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 가급적 시각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예를
그 캐릭터들을 너무 좋아했다는 거예요. 포가 시푸 사부와 젓가락싸움을 하는 드는 경우가 많은데 각 아티스트마다 성격, 경력, 의사소통방식이 다르기에 20
장면을 만들면서 참 많이 웃었습니다. 어릴 적 성룡의 영화를 보던 기억이 명의 아티스트가 있으면 20개의  맞춤형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자꾸 나기도 하고, 형, 동생과 젓가락으로 싸우다가 어머니께 혼나던 기억도 그게 참 어렵습니다. 최종적으로는 그 분들의 작업이 한 사람이 만든 것처럼
나고, 그 영화에는 저의 추억을 자극할 수 있는 스토리가 참 많았어요. 그리고 보여야 하기 때문이죠. 이건 저와 저의 팀을 예로 들었지만, 부서와 부서와의
개인적으로도 쿵푸팬더의 스토리가 참 좋았습니다. 스스로를 믿으면 어떤 의견교환도 마찬가지 입니다. 가끔씩 서로 의견을 던져놓곤 일주일 뒤에
일이든지 할 수 있다는 메시지잖아요. 결과물을 보러 만난 뒤엔 아무도 일처리를 하지 않았다는 걸 알아챌 때가
있습니다. 서로 상대방이 할 줄 알았던 거죠. 이런 경우를 최소화 하기 위해서
  매일 수십 번씩 부서와 부서간의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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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 애니메이션 영화의 러닝타임은 대략 1~2시간 정도입니다. 하지만 작품을 J/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제작하면서 제가 정말 좋아했던 장면들은 제작
만드는 데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들었습니다. 특히 한 작품당 최소 3년 도중에 사라져버려요. 참 신기하게도 특별한 장면도 아닌데 볼 때마다
걸린다고 말씀 해 주셨는데 결과물이 단 시간 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마음에 드는 샷들이 있거든요. 그런데 스토리에 변화가 있다거나 내용자체가
지칠 것도 같은데요.또 기대심도 커져서 나중에 개봉 되고 나서 정말로 후회 없어지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마음에 들었던 샷들이 불필요한 장면이
되는 부분은 없는지 아쉬운 부분은 없는지 첫 개봉 하는 날은 어떤 느낌이신지 되어버리고 다른 장면으로 대체되는 상황이 많아요. 관객들이 좋아해주시는
문득 궁금해지네요. 어느 정도 얼마나 감동적일지 짐작은 가지만요. 장면들도 좋지만 만들면서 애착이 가는 장면들이 따로 있거든요. 그러고
보니 멋지다기보다는 각 작품마다 신경을 특별히 더 많이 쓴 장면들이
J/ 영화가 개봉하는 주말은 관객들 리뷰며 평론가들의 리뷰 등에 예민하게 생각나네요, 쿵푸팬더에서 Tailung과 Tigress가 다리 위에서 싸우는
반응하게 되고, 토요일 오후에 발표되는 주말 박스오피스 집계에 따라 장면, 슈렉에서 오우거들이 군무를 추던 장면, Croods에서 Eep과 Guy가
월요일 회사 분위기가 결정된답니다. 3~4년간 수백 명의 애니메이터들이 처음으로 만나는 장면, Trolls에서 Poppy가 혼자서 노래하며 여행을 떠나는
한 작품에 매달려 온 정성을 쏟아 부어 만들어낸 애니메이션이 대중에게 장면 등은 기억에 많이 남아요.
사랑받기를 원하는 건 당연하구요, 보통 첫 주말 개봉 성적에 따라서  
영화의 흥패가 좌우되기 때문에 그 순간의 기쁨이나 실망감은 이루 말로 B/ 조금 진지 하겠습니다. 전용덕님께서 생각하시기에 한국의 애니메니션의
표현할 수가 없죠. 예를 들어, 3년 동안 애지중지 키워온 자식을 남들 앞에 현위치는 어느 정도 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처음으로 선보이는 순간같은 거예요. 첫 주말 성적이 좋으면 회사 분위기가
들떠서 오랫동안 잔칫날 같은 나날들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사내 J/ 기술력은 세계의 어느 나라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세련되고
분위기가 말도 못할 정도로 침체되고 어둡습니다. 직접 작업에 참여했던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할리우드나 해외 영화 제작자들이 한국의
애니메이터들의 마음은 더 하답니다. 지난 3년간의 시간이 남들 앞에서 스튜디오와 손을 잡고 작업을 하고 싶어하구요. 작년에 한국에서
자랑스러운 시간이 될지, 남들에게 이야기하는 것 조차 부끄러운 시간이 될지 개봉했던 ‘레드슈즈’라는 작품에서도 볼 수 있듯이 표현력과 기술력은
결정되는 영화의 흥패는 작업에 참여하는 애니메이터로서는 결과를 알 수 할리우드 제작사의 작품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하다고
없는 하나의 도박과도 같아요. 저의 경우에는 너무나 운이 좋게도 지금까지 봅니다. 애니메이션의 제작은 프리 프로덕션, 프로덕션, 포스트 프로덕션
참여했던 작품들이 모두 대중에게 사랑을 받았어요. 쿵푸팬더가 개봉했던 첫 이렇게 3단계로 나뉘어지는데 쉽게 말씀 드리면 기획단계, 제작단계, 후반
주말 아침에 드림웍스의 제프리 카젠버그 사장님께서 제게 전화를 했어요. “ 편집 및 음향작업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한국의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가장
용덕이 축하한다. 그리고 고맙다. 쿵푸팬더가 큰 성공을 거둔 건 너의 노력이 잘 하는 것이 제작단계로 보여지는데, 사실 실제 영화의 흥패를 좌우하는 건
컸다.” 라고요. 물론 저 말고도 리더쉽에게는 다 전화를 하셨겠지만 저에게는 최초 기획단계입니다. 스토리의 방향을 잡고, 제작을 할 수 있는 기본 틀을
꿈만 같은 일이었죠. 그래서 저와 인연이 닿았던 모든 작품들과 동료들에게 준비해 놓는 시기인데, 제가 접했던 한국의 애니메이션은 이 기획단계가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은 혼자서 만들 수 있는 아직까지는 제작의 수준까지 못 따라왔다고 보여집니다. 해외 제작사들과
작업이 아니니까요. 공동작업을 하면서 많은 기술력을 쌓았지만 프리 프로덕션 단계는 이미
  해외에서 결정되어오기 때문이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딱 두 가지
B/ 전용덕님께서 만들고 나서 ‘이건 정말 내가 봐도 멋지다.’ 하는 컷은? 입니다. 실패하더라도 계속 자신만의 컨텐츠를 만들면서 배워나가거나 아니면
‘정말 잘 만들었다, 용덕아~.’ 하실 수 있는? 우수한 해외의 탤런트들을 영입해서 그들만의 노하우를 전수받아 부족한 점을
보완해 나가는 것 이렇게 두 가지 방법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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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현재 소니 픽쳐스 애니메이션에서 직함이 레이아웃 그분들이 리더로서의 자질이 있다고만은 할 수 없죠. 그렇게 되면 실력은
팀장이십니다. 애니메이션에서 레이아웃을 한다는 것은 어떤 작업인가요. 동료들이 인정 할 정도의 수준이면 되고, 그 이외에 팀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지도력이 필요한데, 일단 팀원들과 동료 부서장들, 또는 윗사람과의
J/ 과거의 애니메이션은 개개인의 애니매이터가 일일이 수만 장의 종이나 Cell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지를 가늠합니다. 저는 아마도 이 부분에서
에 그림을 그리는 2D 애니메이션 제작 방식이었지만 지금은 컴퓨터를 이용한 가산점을 받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제가 처음으로 촬영팀장을 맡았던 작품이
가상의 3D 공간에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컴퓨터 그래픽 제작방식으로 쿵푸팬더(2008)인데, 2005년 당시 저는 드림웍스에 입사한지 2년 정도 된
애니메이션이 제작됩니다. 제작부서도 다양해서 약 15개 이상의 서로 신입사원이었습니다. 비영어권에다가 회사에 들어온 지 2년밖에 되지 않은
다른 부서에서가 제작 순서에 따라서 자신들이 맡은 부분만을 작업하게 사원에게 100밀리언 달러가 넘는 작품의 촬영의 총지휘를 맡겼다는 자체가
되는데, 제가 책임지고 있는 부서는 레이아웃팀이라고 불리며, 하는 일은 파격적인 인사였는데요,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아무 일도 없었던 건 아닙니다. 제가
실사영화의 카메라맨과 거의 같은 일을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컴퓨터 회사에 들어간 지 6개월 정도 지난  2003년 말에 팀장이 다른 프로젝트로 자리를
그래픽 프로그램의 3D 공간 안에는, 캐릭터도 있고, 세트도 있고, 소품도 옮기게 되면서 갑자기 저희 팀의 팀장자리가 공석이 된 일이 있었습니다. 누가
있는데, 레이아웃팀 아티스트들은  마치 게임을 하듯이 컴퓨터 그래픽 오게 될까 궁금해하고 있던 중, 저와 함께 작업을 하던 베테랑 아티스트가 저에게
공간을 돌아다니며 각 샷에 필요한 장면들을 촬영하는 역할을 합니다. 어떤 이렇게 묻더군요. “너 나중에 감독되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한번에 감독이
경우에는 Virtual Reality와 같은 세트를 실제 돌아다니면서 촬영할 때도 되는 건 힘드니까 팀장도 해보고 그렇게 경험을 쌓아가면 언젠간 감독이 되지
있고, 보통의 경우에는 게임을 하듯 모니터를 보며 마우스와 키보드를 이용해 않을까? 마침 우리팀 팀장석이 비었으니 회사에 니가 한번 해보겠다고 건의
카메라를 움직입니다. 실제 작업환경을 보여드릴 수 있다면 쉽게 이해가 되실 텐데 해보는 게 어때?” 그 이야기를 들은 저는 허허 웃으면서 입사한지 6개월밖에 안된
글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습니다. 나에게 회사에서 팀장자리를 주겠냐고 반문을 하자 베테랑 아티스트가 이렇게
  대답을 하더군요 “회사가 좋다고 하면 넌 팀장이 되는 거고, 싫다고 하면 넌 잃는 게
B/ 드림웍스나 소니 픽쳐스 애니메이션에는 팀장은 몇 없는 것으로 없으니까 밑져야 본전 아니겠어? 너에게 그런 의지가 있다는 걸 회사에 알려주는
알고 있습니다. 외국에서 이방인이 리더의 위치에 오르기 쉽지 않은데 것도 중요해. 너의 목표를 이야기해야 혹시나 기회가 있을 때 회사에서 너를
대단하십니다. 실력은 당연할 것이고 본인의 또 다른 저력은 무엇이라 한번이라도 더 생각해보게 될 테니까.” 그 베테랑 아티스트의 이야기는 현실이
보시나요. 미국 그 분야 최고 대형회사에서 살아남기? 그런 책을 쓰셔도 나쁘지 되었습니다. 물론 그때 팀장자리를 맡지는 못했어요. 저보다 더 훌륭한 분이
않을 위치와 삶을 걸어 오신 듯 해요 ^^ 팀장으로 오셨고, 그 당시 저와 회사와의 미팅은 기록이 되어서, 2년 후에 쿵푸팬더
촬영팀장을 섭외하고 있을 때 저에게까지 면접의 기회가 오게 되었으니까요. 그
J/ 솔직히 말씀 드리면 대형회사에 일하는 분들의 실력은 거의 비슷하다고 면접을 잘 통과해서 팀장이 되기까지 했으니 저에게 충고를 해준 그 아티스트 분께
생각하시면 됩니다. 물론 그 중 특별하게 잘 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꼭 아직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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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혹시 언제나 작품에서 추구하시는 기본적인 방향(캐릭터, 스토리 등) 설정 같은 J/ 멋진 장면, 멋진 영화라기 보다는 영화의 스토리를 잘 이해하고 정확하게
것을 해 놓으신 게 있나요? 특별히 나만의 무엇이 있다? 표현하려면 각 장면들마다 나오는 모든 감정이 전체적인 구성이나 카메라의
움직임 속에 자연스럽게 이입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려면 촬영을 책임지는
J/ 작품의 스토리나 전체적인 틀을 결정하는 사람은 총감독입니다. 저는 제가 그 감정을 정확하게 읽어야 합니다.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려면 책을 읽거나
촬영감독으로써 전체적인 스토리의 구성에 맞는 비쥬얼을 결정하는데, 작품 제작 공부를 해서 배우는 게 아니라 실제 경험을 통해서 몸으로 느끼는 게 가장 정확하기
이전에 감독과 상의하여 스토리에 맞는 시네마틱 스타일을 정하고, 그 스타일에 때문에 전 그냥 생활 속에서 많은 것들을 관찰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맞춰서 20여명 정도되는 촬영팀과 함께 제작과 동시에 영화에 나오는 모든 영화를 많이 보거나 책을 읽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그것보다는 살면서 보고 느끼고
장면을 계획하고 촬영하는 일을 책임집니다. 모든 영화마다 스토리와 색채도 배우는 게 더 중요하게 생각되죠. 전 가끔 답답하면 바다를 갑니다. 물론 바다를
다르고 캐릭터마저도 다르기 때문에 각 영화에 걸맞은 촬영기법을 사용해야 통해서 배우는 건 별로 없는 것 같지만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는 느낌은 있더라구요.
하는데, 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어떠한 캐릭터와 함께 작업을 하느냐입니다. 슈렉을  
작업할 땐 코미디와 드라마에 초점을 맞추어서 카메라 테크닉을 덜 사용하면서 B/ 사람은 누구나 슬럼프가 있잖아요? 살다 보면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도
캐릭터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신경을 썼었고, 트롤을 촬영할 땐  작고 있고, 그럴 때 개인적으로 극복방법은 특별히 있으신지?
귀여운 트롤의 모습과 뮤지컬에 걸맞은 리드미컬하면서도 동화책을 보는듯한
느낌이 들도록 촬영했습니다. 모든 영화마다 촬영기법이 다르지만 캐릭터의 J/ 네, 생각했던 일들이 잘 안되면 답답하죠. 슬럼프라고 느끼기도 하고, 포기하고
모습이 가장 자연스럽게 보이고, 관객들에겐 카메라가 존재하고 있지 않다고 싶기도 하구요. 그럴 때마다 전 제 자신에게 말합니다. 너를 믿는다고, 잘 될
느껴지게끔 작업하는 게 게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입니다. 저의 일 자체가 관객들의 거라고, 그러니까 죽기 전까진 아무것도 포기하지 말라고 말이죠. 전 남들보다
눈에 보이지 않을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관객들이 스토리에 많이 긍정적입니다. 살면서 후회를 별로 해본 적도 없고 즐거웠던 기억이 힘들었던
몰입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 말이죠. 기억보다 훨씬 많아요. 물론 저도 남들과 비슷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중요한
  건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순간 순간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면 후회가
B/ 멋진 장면 더 나아가 멋진 영화를 위해 미적인 감각을 유지하는 개인적인 안 남더라구요. 후회라는 감정은 만약에라는 가정하에 나오는 거잖아요? 내가 할
방법과 전용덕님 개인적으로 영감을 얻는 장소 같은 것이 있으신가요?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고, 그 순간은 죽을 만큼 열정적으로 뭔가를 한다면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것이 더 많습니다. 그런 것들에 행복하고 만족해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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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앞선 길을 뚫고 나아가다 보면 뒤에 전용덕님처럼 애니메이션 쪽 공부 원하는 Director, R&D. 이렇듯 각 부서마다 하는 일이 다르고 요구하는 기술이 다르기
학생과 학부모님을 만날 수 있잖아요? 보면 어떤 조언을 해 주고 싶으신가요? 때문에 본인의 적성에 가장 잘 맞는 부서를 택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J/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과 만드는 일은 많은 차이가 있어요. 두 시간 가량의 B/ 광고분야에서 일하시다가 영화 쪽 애니메이터로서 직업을 바꾸면서 삶의
애니메이션을 보고 즐기는 것과, 3~4년간 매일 8~9시간씩 그 작품을 만드는 방향도 완전히 바뀌었을 거라고 생각해도 무리는 아닐 것 같아요. 도전하라고
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하지만 현실적인 벽에 부딪혀 도전이란 것이 쉽사리 되지 않기는 예나 지금이나
제작하는 제작팀은 약 15개정도의 부서로 나뉘어져 있는데 모두 아티스틱한 마찬가지이지요. 도전이 무모함이 되지 않기 위해, 도전이 기쁨이 되고 성공이
사람을 뽑는 건 아닙니다. 컴퓨터 엔지니어에서부터 칼라 싸이언티스트 등 되고 보람이 되기 위해 갖춰야 할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다큐를 못 보신 독자
테크놀로지와 관련된 일을 하시는 분들도 있고, 업무의 성격이 다양해서 꼭 분들을 위해 한번 더 이야기 해 주세요. ^^
그림을 잘 그려야 애니메이션 회사에 입사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J/ 저에겐 총감독이라는 목표가 있어요. 그것만 보고 23년간
그리고 애니메이션 회사에 입사하고 싶다고 어린 시절부터 꼭 애니메이션에 달려왔는데, 촬영감독이라는 자리까지 와 있더라구요. 남들이 보기엔
맞춰서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세상을 보는 눈이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한국인이라고 생각 하실 수 도 있는데 전 아직까지 제
생기고, 그때 본인이 가진 적성과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을 비교해보고 목표의 반 밖에 못 왔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들은 완벽한 준비과정을 통해서
그 길이 내가 앞으로 오랫동안 걸어가야 할 길인지 확인해보고 결정하기를 성공하신 분들도 있고, 어떤 분들은 운 좋게 성공하신 분들도 있어요. 그런데 전
권해드립니다. 애니메이션업종에는 늦는다는 건 없어요. 저처럼 나이가 들어서 운도 노력이라고 생각해요. 쉬지 않고 기회를 보고 있지 않으면 자기에게 찾아온
시작하는 분들도 있고, 고등학교 졸업 후에 취업하시는 분들도 있거든요. 어떤 운도 놓쳐버리기 쉽거든요. 만약 자신이 무언가가 너무 하고 싶다면, 그 일을
분은 드림웍스 씨큐리티 가드로 시작해서 수퍼바이져까지 오르시기도 하는 것이 내가 태어난 이유라고 생각한다면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될 때까지
했고, 우편물관리실에서 시작해서 수퍼바이져까지 오르신 분도 있고 하니, 너무 기다리기보다는 비슷한 일이라도 뛰어들어서 배우면서 준비하라고 말씀 드리고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정말로 내가 좋아하는 부서가 어떤 부서인지 미리 싶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교육은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현실감각도
알아보고, 준비하시는 걸 권해드립니다. 배우고, 정말 그 일이 내 적성에 맞는 일인지도 알게 되니까요. 그리고 만약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그 일을 그만두기 전에 그 분야에서
B/ 사실 한국에 있는 학생들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회사에서 만든 애니메이션 최고가 되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내가 현재 하고 분야에서 최고가 된다면
영화를 접하고 꿈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직업에 대한 내가 목표하는 다른 분야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습니다. 항상
다양성 이해 교육이 미흡한 면이 있고, 구체적으로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지 스스로를 믿고, 다독여주며, 나에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지식이 부족한 경우도 상당하거든요. 한국 혹은 미국의 무슨 분야의 학교 무슨  
학과 뭐 물론 입시전문 정보지나 상담을 받으면 알 수 있는 일이지만 현장에서 B/ 혹시 지금도 전용덕님께서 더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실까요?
성공하신 대선배님으로서 망망대해를 헤쳐 가야 하는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J/ 배운다기 보다는 제가 경험해 보지 못했던 것들을 더 경험해보고
싶습니다.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고 싶고, 듣지 못했던 것들을 듣고
J/ 장편 애니메이션은 오랜 기간 동안 조금씩 만들어나가는 작업의 특성상 빠른 싶어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느껴보고 저의 솔직한 감정에서 우러나는 그런
결과물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회사에서 채용할 때 포트폴리오의 질도 이야기를 만들고 싶습니다. 여행을 좀 다니면서 세상구경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보지만 인성도 많이 봅니다. 대부분의 작업이 공동작업이다 보니, 팀워크를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터뷰할 때 꼭 물어보는 질문중의 하나가 그 동안  
작업했던 작품의 작업프로세스 방식을 물어보죠. 혼자서 작업하는 방식이었는지 B/ 전용덕님의 앞으로의 계획이라기 보다 꿈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십니다. 혹시
아니면 팀과 함께 작업하는 방식이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질문이기도 하면서 아직도 꾸고 계시는 꿈이 있다면?
팀워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볼 수 있으니까요. 먼저 질문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애니메이션 회사에는 약 15개 이상의 부서가 있습니다. 회사마다 J/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무한한 상상력을 심어주며 마음의 놀이터가 될 수
조금씩 명칭이 다르긴 하지만 아래와 같습니다. Editorial, Storyboard, Layout, 있는, 현실과 부딪히면 살아가는 성인들에게 마음의 휴식처가 될 수 있는 그런
Visual Development, Modeling, Animation, Surfacing, Matte Painting, 애니메이션 작품을 많이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물론 그 작품으로 오스카까지 탈
Character Rigging, Effect, Character Effect, Lighting, Crowd, Technical 수 있다면 더더욱 좋겠지요. 그래서 전 그걸 제 꿈이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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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여배우 Story

배우 ‘신영진’

Actress, Young Jin Sin

Brunch/ 안녕하세요? 브런치 매거진입니다. 이렇게 인사드리게 되어서 삼삼오오 모여서 노래도 부르고 연기도 하고... 늘 자유로움과 활기가
영광입니다. 신영진님의 작품을 찾아보니 서울예술대학을 입학하신 가득찬 곳이였습니다.
이후부터 작품활동을 하셨더라구요. 그렇다면 오래 전부터 연기를 하기
위해 대학을 준비하시고 배우에 대한 꿈을 가지고 계셨는지요. B/ 연기를 하기로 결심하게 된 시발점은 무엇이었나요.

Young Jin Sin/ 안녕하세요. 배우 신영진입니다. 아직도 좋은 배우가 되기 S/ 대학 졸업하고 처음 연극무대에 데뷔할 때는 지도교수님의 권유로
위해 노력하는 저에게 이렇게 좋은 자리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게 되었고, 그 후로 방송국 공채 탤런트로 연기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제가 처음부터 배우를 해야겠다거나 서울예대를 가야겠다는 목적 연기를 하려면 개인적인 고민이나 여러가지들은 잠시 미뤄두고 역할의
의식을 가졌던건 아닙니다. 영화를 좋아해서 친구들과 주말에 극장가서 감정에만 집중하게 되니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해요. 어떤 의미에서
영화를 보면서 수다 떨고 맛있는거 먹고 하는게 학생으로서 가장 큰 운동선수가 운동에 집중하고 나면 몸에 땀이 확 나면서 몸은 피곤하지만
호사였습니다. 다른분들도 그러셨 듯이 저 또한 그 생활을 좋아했고, 기분은 너무 개운하고 상쾌한 그런 느낌이라 할까요.
그렇게 영화를 많이 보다보니 배우들의 연기에 빠져들어 때론 같이 그 후 연기자가 아닌 다른 일을 하게 되었고, 어느날 문득 ‘나는 언제가
훌쩍거리며 눈물을 보이기도 하고 때론 웃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 문득 제일 행복했을까.’ 하고 내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며 알게 되었죠. ‘
이렇게 사람을 울리고 웃기는 저 마법 같은 힘은 무얼까 하는 궁금증이 나는 연기할 때가 가장 행복했구나!‘ 라고요. 답을 얻고 나서 당시 다니던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호기심과 궁금증이, 나중에는 마성의 힘으로 회사를 정리하게 되었고, 인생에서 큰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아 제가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연기란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제일 행복해했던 일을 찾아 연기자 생활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매력적인 일이구나...’ 하는 생각과 일단 잘 모르니 하나씩 배우면서
채워나가자는 생각에 서울예대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주위에 B/ 신영진님께서는 SBS 공채 탤런트 1기 출신이신데 그때가
연기를 하시는 분이나 조언을 받을 분이 없었기에 제가 생각하는 본격적인 연기 활동의 시작이라 보여집니다. 어떤 준비과정을 거치고
정석대로 학교에 가게 되었습니다. 합격하셨는지 여쭤봅니다.

B/ 사실 서울예술대학이라면 아역부터 연기를 해온 분들 뿐 아니라 이미 S/ 대학 졸업 후 연극배우 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다른 매체에 대한
브라운관에서 유명한 연예인들도 많이 다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궁금증과 갈망이 생겨날 즈음 SBS에서 공채탤런트를 뽑는다는 걸 알게
대학 시절 학교의 분위기는 어땠는지요. 되었습니다. 어쩌면 내게 또 다른 기회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공채
시험에 응시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연극공연을 하고 있었지만,
S/ 자유스럽고 활발하고 늘 생기 넘치는 분위기였습니다. 입학 전부터 나머지 시간에는 연기를 잘 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서 연출자가
연기를 시작한 공채 탤런트 언니도 있었고, 유명 가수의 백댄서도 있고, 어떤 채색을 해도 잘 묻어나올수 있는 연기자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이태원 DJ하는 친구도 있었고, 밤무대 가수도 있었고, 현역 연극배우들도 에너지를 쏟아부었던 것 같습니다. 그 덕분에 감사하게도 좋은 기회가
있고, 개그맨도 있었구요. 연극과에는 다양한 재능을 가진 친구들이 왔던 것 같습니다.
많았습니다. 개성 강하고 자기표현에 주저함이 없고, 열심히 하는
동기들이 많았습니다. 수업 공강 시간에나 쉬는 시간에는 학교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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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신영진님의 필모그라피를 보면 1994년도 <만무방> 이후로 작품 활동을 10 질문을 던져보다가 알게 되었죠. ‘나는 연기 할 때가 가장 행복했구나!‘ 라고.
여년 정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실 여배우로서 그 시기가 중요한 시기였을 답을 얻고 나서 당시 다니던 회사를 정리하고, 연기자의 생활로 돌아왔죠.
것도 같은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그 같은 결정을 하신 이유를 여쭙고
싶습니다. 또한 그 기간동안 해외에 거주하셨는데 해외로 가기로 결정한 B/ 신영진님은 뮤지컬 배우로서도 작품 활동을 하셨는데 뮤지컬 분야에도
이유나 사건이 있으신가요. 관심이 많으신가요?

S/ 제가 <만무방> 작품으로 몬트리올 영화제에 가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S/ 저는 뮤지컬 작품을 한적이 없습니다. 해보려고는 했지만, 노래를 못해요.
해외는 처음이었고 짧은 기간이었지만 캐나다에 대해 너무나 좋은 인상을 요즘 노래를 못하더라도 가능하다고는 하는데... 인터뷰를 보시고 저에게
받았고 이곳에 살면 어떨까했던 단순한 궁금증이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기회를 주시려나요?^^
변했습니다. 계속 촬영장에 있던 시간들이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촬영장과
집이 반복되는 생활에서 벗어나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제 인생을 B/ 방송과 연극, 뮤지컬은 공연예술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차이점 또한 큰
위해 중요한 결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맨처음에는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예술의 장르입니다. 배우로서 느끼는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어려운 점들이 있었지만, 인생에서 정말 황금 같은 시기에 시행착오를 거치며
현지에서 여러가지를 배울 수 있었기에 후회는 없습니다. 어쩌면 제 인생을 S/ 어떤 매체에서 연기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깊은
풍성하게 만들어준 계기가 되었기 때문에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같은 의미에서 연기의 기본은 같습니다. 그렇지만 카메라에 대한 이해와 무대에
선택을 했을 것 같습니다. 제 인생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대한 이해가 각각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겠지요. 연극은 연극만이 줄
계획한 훌륭한 시간이였던거죠. 수 있는 상상력과 영감을 생각해야 하고, 방송 드라마나 영화는 카메라가
주는 영감과 상상력을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무대와 카메라 프레임은
B/ 그렇다면 외국에서 어떤 생활을 하셨나요? 완전히 다른 매체니까요. 그러나 연기의 진정성 면에서는 두 분야 모두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S/ 평범하게 살았어요. 랭귀지스쿨에서 영어를 배우고, 파트타임 일을 하고,
그 이후로는 캐나다 회사에 입사해서 지극히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았습니다. B/ 신영진님께서 작품을 선택하시는 기준은?
틈틈이 학교도 다니고 바쁘지만 가끔 집앞에 있는 공원에 산책도 나가면서
생활을 이어갔어요. S/ 아직은 뽑혀 쓰는 입장입니다만, 스토리가 탄탄하고 인간적인 냄새가 많이
나는 작품을 좋아합니다. 물론 다양한 연기 변화를 줄수 있는 역할을 할 수
B/ 10여년은 짧은 시간이 아니라 생각되는데요. 신영진님께서 외국 생활을 있다면 더 좋구요. 같은 역할로 계속 나오면 잘할 수는 있지만 관객들에게
통해 얻게 된 큰 가치, 생각의 변화 등은? 식상하게 느껴질 수 있으니까요.

S/ 제 인생의 가치에 대해, 또 진정한 ‘Life’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B/ 맡은 역할에 대한 캐릭터 해석은 어느 부분에서부터 시작하시나요.
기본적인 살림살이, 생존을 위한 돈벌이부터 캐네디언들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생활방식, 인간관계 등을 몸으로 익히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그때의 S/ 저는 상황 분석을 가장 먼저 합니다. 어떤 상황인지를 파악하고 계속해서
경험들이 제 인생에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어요.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상황 파악이 끝나야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이해할 수 있고, 또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죠.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고
B/ 다시 활동을 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하는지 파악하는 것이 먼저이고요. 그러다 보면 캐릭터도 눈에 들어오죠.
그리고 나선 역할 속의 그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촬영을 하지 않는날에도
S/ 다른 어떤 것보다 연기할때가 가장 행복했었어요. 그 후 다시 컴백했을 때는 그 사람으로서 밥을 먹고 대화를 하고요. 일상을 같이 살아가다보면 막상
다양한 일을 하다가 문득 ‘나는 언제가 제일 행복했을까’하고 제 자신에게 촬영장에서는 생각지 못하는 디테일한 연기가 나오게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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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맡으셨던 역할 중에 어떤 역할이 기억에 남으신지요. 그리고 그 직접 굽기도 하고... 나중에 다양한 역할을 위해 틈틈이 시간의 여유가
이유는 무엇인가요. 있을 때마다 이것저것 배워놓으려 합니다. 저 나름대로 연기자 신영진의
경쟁력을 만들어가고 있는거죠.^^
S/ 정경환 선생님의 작품 ‘달궁멘션’인데요. 3일 공연하고 끝난 작품인데,
처음으로 할머니역을 했어요. 할머니역은 해본 적이 없어서 고민을 B/ 연기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요.
많이 했는데, 긴 독백신도 많았지만 나름 선방했던 작품입니다.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를 오랫동안 돌보다 결국 할머니 손으로 할아버지의 생을 S/ 마음으로 인물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마감하는 내용이었는데, 할아버지도 알고 할머니도 알고 서로 알면서 한 생각합니다. 아무리 악역이라도 제 스스로 그 인물을 사랑하지 않으면
사람은 죽어가고 한 사람은 죽여주는… 참 애틋하고 마음이 아픈 내용을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가 없거든요.
연기하면서 삶의 여러 부분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짧은 공연이었지만
임팩트가 큰 공연이었습니다. B/ 신영진님께서는 대중에게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B/ 배우로서의 삶에 도움을 주신 선후배 분 소개부탁드립니다. S/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배우로 남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
연기를 볼 때만큼은 관객들이 옆에 누가 있는지 잠시 잊고 몰입해서
S/ 서로 나이 들어가면서 마음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같은 빠져들 수 있게 만드는, 그런 연기자이고 싶습니다. 얘길 하다보니
연기자 직업을 가진 동료이며 같은 대학 같은 과를 졸업한 한 친구가 그러려면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네요...
있습니다. 촬영을 어떻게 했는데 연기가 어땠으며, 시시콜콜 일상의
이야기부터 연기 이야기까지 서로에게 용기를 주고 위로를 해주는 B/ 신영진님의 앞으로의 계획은?
친구입니다. 이젠 인생을 같이 가는 친구죠.
S/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저 또한 행복하게 사는 것이 인생의
B/ 해외에 계셨던 기간을 제외하고도 20년을 넘게 배우로 사셨잖아요. 목표입니다. 잠시 빗겨갔지만 다시 행복해지려고 돌아온 연기자의
연기를 처음 시작하셨을 때와 지금은 연기의 환경뿐만 아니라 관객, 길이니 더 최선을 다해 행복감을 즐겨야죠.
대중과의 소통 방법도 많이 달라졌잖아요.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B/ 브런치 매거진 독자님들께 남기고 싶은 말씀.

S/ 시시각각 변해가는 환경에 적응해야겠죠. 대학 졸업 후 연기를 처음 S/ 앞으로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수 있는 연기자가 되도록 노력할테니
시작했을 때와 지금은 많이 다르죠. 앞으로 더 많은 변화들이 이어질텐데 지켜봐주세요. 그리고 요즘 코로나가 장기화가 되면서 예전같지 않은
적응해야죠. 변화를 두려워 하거나 그 변화에 실패하고 무서워서 일상에 많이 힘들고 지치시지만 그래도 조금만 더 같이 힘내서 잘
좋아하는 일을 못하지는 않습니다. ^^ 여러 가지 다양하게 변해도 본질은 견뎌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먼저 건강하셔야 하니 항상 몸부터
늘 같습니다. 관객은 좋은 작품을 보고 싶어하고 연기자와 제작자들, 챙기시고 멀리서나마 여러분들께 감사한 마음과 힘내시라는 응원을 같이
작품을 만드는 모든 사람들은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어한다는 것이죠. 보내드립니다. 감사합니다.

B/ 신영진님의 개인적인 취미는? B/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다시
만나뵙고 싶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한 나날이시길 멀리서
S/ 제가 손으로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클라리넷도 하고 있고 빵, 쿠키를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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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NCH Exhibition 첫번째작가

아티스트 ‘전효진’

Artist, Hyo Jin Jeon

지난 11월 13-14일,
뉴욕 소호 Dalbit Jewelry Studio에서 열린 Brunch Exhibition.
우리는 세 작가님을 만났습니다. 그 중에 유독 선인장 앞에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했던 작가,

전효진!

그는 어떤 사람인지 그림도 사람도 궁금해집니다.
전시장에서 인상 좋고 해맑게 웃었던 그녀와 이야기를 나눠 봅니다.

Brunch/ 안녕하세요, 작가님. 전시회 이후에 오랜만에 인사하네요. 잘 Brunch/ 전시회 이후에 어떻게 지내고 계셨나요? 요즘 사회적 분위기도
지내셨어요? 우리 독자분들께도 인사 나눠 주세요. 너무 궁금해 하실 것 참 심각하죠. 같은 뉴저지 주부로서 요즘 근황 공유해 주시겠어요? ^^
같아요. 전시회 이후에도 선인장 그림에 대한 문의가 많았답니다. 그런
독자들을 위해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려 볼까요? Hyo Jin Jeon/ 네.. 코로나로 인해 모두가 힘들고 활동이 뜸한
상황이지만,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모든 부모님들께서
Hyo Jin Jeon/ 안녕하세요. 뉴저지에 사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동양화가 공감하시겠지만, 아이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전효진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으로 건너와 낯선 길어지다 보니 엄마로써 신경써서 챙겨야 할 일이 늘어났어요.  
미국 생활 적응과 두 아이를 키우느라 뒤늦게 붓을 들게 된, 하루하루가 그만큼 제 일에 집중하는게 더 어려워졌고요. 시간을 내서 그림을
도전인 꿈나무 작가예요. 그려야겠다고 다짐하지 않으면 가장 뒤로 미루어지는게 붓을  
` 잡고 그림을 그리는 일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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