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GESOUNDENGINEERASSOCIATIONOFSOUTHKOREA
STAGESOUND
MAGAZINE
VOL .
08
2023 - Quarter IV
NEWS & PEOPLE
SSM COLUMN
SOUND STUDY
TECHNICAL REPORT
ARCHITECTURAL ACOUSTICS
PERFORMANCE REVIEW
(사)무대음향협회 소식
만남, 그리고 이야기
제주아트센터 | 김성연 감독
서귀포예술의전당 | 오종학 감독
LG아트센터 | 이범훈 감독
SSM은 대한민국 무대음향의 아카이브 | 성재훈 제작국장
조율 | 문성욱 예술의전당 영상사업부장
(사)무대음향협회 소식지(계간) | STAGE SOUND MAGAZINE | 통권 제 8 호 | 2023년 4/4호 | 발행 (사)무대음향협회 소식지 제작국
감각의 인터랙션을 응용한
공간음향 연출 방법 | 양성원 감독
양성원의 카드뉴스 컴프레서 감지기
음향수학 임피던스란 IV | 강성훈 교수
건축음향 측정분석
서귀포예술의전당
서브우퍼 어레이 | 김종식 대표
AV over IP 기술을 활용한 무중단
AV System 구성에 관하여 | 이석주 교수
Immersive Sound 암전뮤지컬
귀를 기울이면 | 김종현, 김태협
특별 인터뷰
전) LG아트센터 총괄국장 | 박영철 고문
VOL .
08
2023 - Quarter IV
(사)무대음향협회 소식지 Stage Sound Magazine
CONTENTS
NEWS & PEOPLE
108협회소식 (사)무대음향협회 소식
34 특별인터뷰 대한민국 무대음향의 살아있는 신화
전) LG아트센터 총괄국장 박영철 고문
10 만남,
그리고 이야기
제주아트센터 | 김성연 감독
서귀포예술의전당 | 오종학 감독
LG아트센터 | 이범훈 감독
SSM COLUMN
6 제작국 칼럼 SSM은 대한민국 무대음향의 아카이브 |
성재훈 제작국장
8 회원 칼럼 조율 | 문성욱 예술의 전당 영상사업부장
TECHNICAL REPORT
54 음향기술 감각의 인터랙션을 응용한 공간음향 연출 방법 |
양성원 감독
66 음향기술 서브우퍼 어레이 | 김종식 대표
74 음향기술 AV over IP 기술을 활용한 무중단
AV System 구성에 관하여 | 이석주 교수
ARCHITECTURAL ACOUSTICS
102건축음향
측정분석
서귀포예술의전당
PERFORMANCE REVIEW
46 공연리뷰 Immersive Sound 암전뮤지컬
귀를 기울이면 | 김종현 감독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
김태협 과장 (드림스케이프, 전)사운드솔루션)
SOUND STUDY
90 음향수학 임피던스란 IV | 강성훈 교수
96 카드뉴스 컴프레서 감지기 | 양성원 감독
34
12
46
124
102
20 26
STAGESOUNDENGINEERASSOCIATIONOFSOUTHKOREA
STAGESOUND
MAGAZINE
STAGE SOUND MAGAZINE은 사단법인 무대음향협회의
소식지로, 무대음향협회 회원들이 직접 기획하고 제작하는
디지털 매거진입니다. 무대음향 관련 기술 자료, 협회 및 회원
소식, 그리고 협회 소속 공연장 건축음향 측정 데이터 등의
정보를 제공합니다.
SSM은 제작 과정 전반에 걸쳐 회원들의 소통과 협력을 바탕
으로 만들어지며, 무대음향 협회의 설립 목적인 단합과 친목
도모 및 기술 교류에 이바지하고 나아가 대한민국 공연음향
및 음향 산업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SSM은 1993년 10
월에 처음 발간된 무대음향협회의 전신인 '한국음향협회(소리
회)' 소식지와 대경지부, 충청지부 소식지의 역사를 이어가기
위해 2022년 재창간되었습니다.
표지이미지 | 서귀포예술의전당
사진 | 서귀포예술의전당 홈페이지, 편집 | 우성민
도움주신 분들 (가나다 순)
(주)고일 | (주)마노엔지니어링
(주)브라운앤컴퍼니 | (주)사운드솔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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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강오디오(주) | (주)S3글로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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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욱 | (사)무대음향협회 이사장
성재훈 | 대전예술의전당
우성민 | 구미문화예술회관
김수정 | 평송청소년문화센터
최아름 | 충청지부
김지연 | 김해문화의전당
정주현 | 경기아트센터
양성원 | 부천문화재단
안상룡 | 대전예술의전당
윤보라 | 천안예술의전당
권기홍 | 경주예술의전당
김홍연 | 대구어린이세상
윤성태 | 이천아트홀
조의형 | 수원청소년문화센터
(사)무대음향협회 소식지 SSM 제작국
2023년 10월 01일
http:/soundkorea.or.kr
발행인
제작국장
편집부
콘텐츠부
기술부
취재부
광고마케팅부
총무부
제작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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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을 보존하는 것을 매우 중요시하고 있다. 이러한 유물
이 없다면, 문명은 성공과 실패에 대해서 배울 방법이
없고, 그것에 대해 기억이 남아있지 않게 된다. 우리
문화는 점점 더 디지털 형태로 유산을 만들고 있다.
바로 아카이브의 임무는 이러한 유산을 보존하고 연
구자, 사학자, 학생을 위한 인터넷 도서관을 만드는
것이다.”라고 아카이브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인터넷 아카이브(Internet Archive)는 수백억 개의
웹 페이지, 수천만 권의 책과 텍스트, 수백만 개의 오
디오 녹음, 이미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등 다양한
미디어 유형의 자료를 보관하는 비영리 도서관이다.
아카이브 웹사이트에서는 다양한 컬렉션을 검색하고,
디지털 콘텐츠를 캡처하고, 관리할 수 있는 기능도 제
공한다. 아카이브는 온라인 저장 창고로서, 전 세계
디지털 자료를 모아 저장하고 있고 선두주자로서 모
범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지금은 주요 국가 기관
이나 비영리 재단에서도 앞다투어 체계를 만들고 발
전해 나가고 있다.
영국의 대학 평가 기관인 THE(Times Higher
Education)는 2004년부터 매년 세계 104개국
2,325개 대학의 경쟁력을 평가해 발표하고 있다. 평
가 항목은 교육 학습 여건, 연구 생산성, 연구 영향력,
국제화 수준 등이다. 즉, 학교 도서관이나 온라인 아
카이브에 잘 보관된 오랜 세월 축적된 우수한 연구 논
문과 관련 자료 및 도서 규모가 그 학교의 큰 경쟁 지
6
SSM COLUMN
제작국 칼럼 - SSM은 대한민국 무대음향의 아카이브
며칠 전 아내가 급하게 등본과 초본이 필요했다. 넘
어지면 코 닿을 거리가 주민센터인데, 난 신세대라 온
라인으로 손쉽게 발급해주려 했다. 아내 앞에서 폼 나
게, 그것도 공짜로. 세상 참 좋아졌다. 그런데 등본은
한 장인데 초본은 무려 3장이나 된다. 하필 집안에
A4용지가 세 장뿐이다. 샅샅이 아이들 방까지 압수
수색을 해도 흰 종이짝 하나 발견되질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주민센터보다 먼 학교 앞 문방구까지 부리나
케 다녀왔다. 이 무슨 밑지는 장사인가? 아내 앞에서
폼이나 잡지 말 걸.
나는 초본이 3장이나 된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서른
두 번이나 집을 옮겼다. 이사 기록이 모두 기록되어
있다. 2000년에 결혼하고 지금까지 무려 열일곱 번
이나 이사했다. 반 이사 전문가다. 징글징글하다. 그
러다 보니 어릴 적 일기장이나 사진, 심지어 결혼식
비디오테이프까지 모조리 잃어버렸다. 애틋한 소년의
모습도 행복했던 결혼식 영상도 내겐 그저 기억 속에
만 까마득히 남아있다. 매우 안타깝다. 내 기억을 기
록할 수만 있다면 모두 담아내고 싶다. 그리고 가끔
꺼내어 아이들과 추억에 잠기고 싶다. 이럴 줄 알았으
면 이사할 때마다 잘 보관할 걸 후회가 막심하다.
1996년 인터넷 아카이브를 설립한 브루스터 카일
은 그의 웹사이트에 이런 문구를 남겼다.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그들의 문화나 대대로 전해져 오는 유산
SSM은 대한민국 무대음향의
아카이브
제작국 칼럼 성 재 훈 | SSM 제작국장, 대전예술의전당 음향감독
수 있었다. 그야말로 협회 유물이다. 그러나 상당 부
분 소실되고 얼마 안 되는 분량뿐이다. 안타깝게도 대
부분 사라지고 없다 하셨다. 매우 안타깝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협회원 모두가 우리의 역사와 기록을
모으고, 세미나로 공유한 자료는 아카이브로 잘 보존
될 수 있게 힘써보자. 또 다시 우리 기록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나 둘씩 소중한 자료를 체계적이고 계획적
으로 아카이빙하여 우리 후배들에게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와 문화를 이어 주자. 우리 유산을 보존하고 성공
과 실패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게, 그리고 그것에 대
해 기억할 수 있도록 회원 모두가 힘써보자.
SSM은 대한민국 무대음향의 아카이브다!
7
SSM STAGE SOUND MAGAZINE VOL.08
SOUND
STAGE
표라 할 수 있다. 이제 우리 분야를 살펴보자. 가까운
일본 무대음향가협회는 일본연극음향효과가협회와
일본PA기술자협의회가 연합하여 2000년 1월 1일에
무대음향가협회를 창립하였고, 2013년 4월 1일에는
사단법인을 설립했다. 우리보다 무려 7년이나 늦게
창립하였다. 그러나 홈페이지와 SNS를 방문해 보면
어느새 수많은 기술 자료와 미디어 자료가 놀라우리
만큼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만큼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일본보다 7년이나 빠른 우리 협회는 그에 못지않게
이미 30년 전부터 SSM과 같은 '소리회지'가 매우 다
양한 콘텐츠를 담아 발행되었다. 얼마 전 회지를 직접
제작한 박영철 고문님으로부터 원본을 전해 받아 볼
▲ 1993년 창간된 무대음향협회 전신인 '소리회'의 소식지 (자료제공 : 박영철 고문 | 사진 : 김홍연 감독)
✽우리 협회 최초 소리회 소식지 내용은 디지털 아카이브화하여 사)무대음향협회 홈페이지
(http:/www.soundkorea.or.kr)에서 일반에 공개할 예정입니다.
8
SSM COLUMN
회원 칼럼 - 조율
한편으로, 예술가가 만들어내는 새로움과 창조가
440Hz라는 구속 혹은 틀을 바탕으로 한다는 사실은 참
으로 역설적입니다. 개인의 삶과 조직의 일상도 조율의
과정이 필요한 것은 참 당연한 것이겠습니다만, 높은 성
취를 얻기 위해 조율이나 정비는 뒷전으로 밀려나기 쉬
운 것이 현실입니다. 몸 어딘가 불편해져 병원에 가서야
내 삶을 돌아보고, 조직에서 많은 이들이 아픔을 겪고 나
서야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되짚어보게 되기도 하지요.
어쩌면 돌아볼 여유는 스스로 만들어야 할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환경과 여건이 돕지 않는다면, 또 함께
하는 우리가 서로 이해하지 않는다면 쉽지 않은 일일 겁
니다.
이제 우리의 공연장들도 꽤 오랜 역사를 쌓아 왔고, 또
공연장을 구성하는 우리들도 충분히 훌륭히 역할을 지
켜내고 있지 않은가 합니다. 이제는 내가 몸담은 곳, 이
거대한 악기가 본래 어떤 소리를 내도록 설계되었는지,
또 내 일상을 이루는 부속품들이 어긋나고 삐걱대고 있
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적당한 시간이, 마치 공
연 전의 조율처럼 당연하게, 주어질 수 있기를 바래봅니
다.
문 성 욱
예술의전당 영상사업부장
전)예술의전당 음향감독
SOUND
STAGE
피아노의 건반이 어떤 소리를 내야 할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혹 어떤 현대 음악가가 달리
조율하여 사용했더라도 A4 건반의 현은 결국 다시
440Hz 혹은 442Hz로 조정되리라는 것을 압니다. 누군
가는 이것이 틀에 박힌 고정관념이라고 부르고 반대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만약 본래 전혀 다른 음 높이나 음
색을 가진 악기였다면 지금의 모양, 재료, 크기가 아니
었을 거라 생각해봅니다. 지금 우리가 아는 소리를 내기
위해 오랜 시간 발전을 거쳐 온 악기가 피아노이니까요.
검고, 무겁고 큰 덩치의 피아노는 참 안정적인 인상을
주지만 사실 불안정하고 연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조금
만 환경이 맞지 않으면 어느새 쪼개지고 뒤틀립니다.
88개의 건반에 할당된 소리가 끊임 없이 제자리를 벗어
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요. 그래서 피아노를 소유한다
는 것은 예상보다 훨씬 큰 비용과 수고를 의미합니다.
조율은 본래 목적했던 바를 향한 끊임없는 성찰처럼
보입니다. 공연장의 조율은 매번 연주 때마다, 심지어
연주 도중에도 이루어져야하는 번거롭고 불편한 과정입
니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비로소 처음 만들어진 목적의
완성을 향한 첫 준비가 이루어집니다. 어쩌면 조율되지
않은 피아노는 결코 존재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매번 올바르지 않은 소리만 낼테니까요.
조 율
회원 칼럼문 성 욱 | 예술의전당 영상사업부장
調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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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즉각적인\작업에\대한\명확한\초점,\그리고\극도의\견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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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714.\2754
10
만남, 그리고 이야기
공연장의 모든 소리를 책임지고 있는 음향감독.
공연장을 찾는 출연자들과 관객들에게
최적의 사운드를 제공하기 위해
오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무대음향협회 소속 감독을 만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취재, 사진⎢SSM 취재부
편집 | 김지연, 김수정, 최아름
만남, 그리고 이야기
제주아트센터 김성연 음향감독
서귀포예술의전당 오종학 음향감독
LG아트센터 이범훈 음향감독
NEWS &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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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M STAGE SOUND MAGAZINE VOL.08
제주아트센터 김성연 음향감독
서귀포예술의전당 오종학 음향감독
LG아트센터 이범훈 음향감독
TALKING
AND
MEETING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제주아트센터의 음향감독 김성연입니다.
음향감독이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어
떻게 되나요?
제가 중학교 때 TV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연예가중계였던 것 같아요. 누군지
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한 연예인의 인터뷰 장면을
보게 되었는데 인터뷰하는 장소가 녹음실이었어요. 녹
음실에 앉아서 인터뷰하는 연예인 등 뒤로 보이는 커
다란 장비가 굉장히 멋있어 보였어요. 콘솔이었겠죠.
어린 마음에 이름도 모르는 저 기계를 다루는 사람은
정말 멋있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냥 동경만 하고 있다
가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연극반 활동을 했어요. 그
당시 우리 고등학교 연극반이 지역 극단과 연계되어
있어서 고등학교 다니는 3년 동안 교내 활동과 극단
생활을 같이 하게 된 거죠. 그때 다양한 연극 작품들에
참여했는데 저는 연기를 하고 싶은 학생은 아니었어
요. 극단에서는 어쨌든 고등학생들과 함께 작품을 만
들어야 하니 계속 연기를 시키려고 하는데 저는 연기
말고 음향 하고 싶다고 이야기해서 그때 처음 시작하
게 되었는데 연극에서 음향은 작품에 맞는 음악을 선
택하고 플레이 백 하는 정도밖에 안 되잖아요. 그래도
저는 좋았어요. 대본을 보면서 적당한 효과음도 찾아
보고 작품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되게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그 당시 제가 속해있던 극단이 도내에서는 손
가락 안에 드는 극단이라 고등학교 시절에 전국연극
제도 같이 나가서 제가 음향 플레이도 하고 그랬거든
요. 그러면서 제가 권성길 선배님도 처음 알게 된 거예
요. 당시 제주 도내에 전문 공연장은 제주문예회관이
처음이었으니 거기서 공연한다고 음향실 가서 빨리
준비하라고 해서 들어갔는데 그때 제가 교복 입고 처
음 권 선배님을 뵌 거죠. 음향실에 들어갔더니 예전에,
TV에서 봤던 거랑 비슷한 기계들이 있는 거예요. 그러
니까 그때 이 일을 하면 정말 재밌겠다고 생각하고 그
때부터 마음을 음향으로 정했던 거 같아요.
만남, 그리고 이야기 - 제주아트센터 김성연
MEMBER'S INTERVIEW
제주아트센터
대한민국 최초의 공공극장
여성 음향감독 김성연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여성감독들이 많아지는 것에
뿌듯함을 느껴요
“
”
12
13
SSM STAGE SOUND MAGAZINE VOL.08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도 자연스럽게 관련 학과
로 진학하신 건가요?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동아방송대학교에 음향제작
과가 있다는 것을 알았거든요? 사실 거기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섬에서 뭍으로 나가려고 하면 집안에 지원이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여자 혼자 밖으로 보낼 수 없다
하시면서 어른들이 허락을 안 해주셨어요. 어쩔 수 없
이 가고 싶었던 음향제작과에는 진학 못 했고 음향은
계속하고 싶은데 도움이 되는 공부가 뭘까 고민하다가
음향이 아날로그에서 계속 디지털화가 된다고 하니 컴
퓨터 관련 학과를 나오면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대학교
전공은 그쪽으로 했습니다. 대학교 졸업하자마자 서울
에 올라가게 되었고요.
무대예술전문인 자격증은 언제 취득하셨나요?
2000년도에 무대예술전문인 자격증 시험이 처음 있
었어요. 첫 1회 시험을 보고 무대음향 3급 시험에 합격
했습니다. 시험 보기 전에 아르코 교육도 한 번 갔었어
요.
처음 음향감독으로서 일을 어떻게 시작하셨는지가
궁금합니다.
제가 서울에 올라가서 2001년도쯤에 홈페이지 관리
하는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홈페이지 취업 정보란에
의정부시 시설관리공단에서 음향감독을 뽑는 공고가
난 걸 본 거예요. 무대음향 3급 자격증을 소지한 사람
중에 뽑는다고 하니까 '이 시험을 한 번 쳐봐야겠다'가
된 거죠. 의정부시 시설관리공단 홈페이지를 검색해 보
니 청소년 수련관이 나오길래 여기서 사람을 뽑나 보다
하고 일단 지원하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그 당시 고향
에서는 왜 안 내려오고 계속 서울에 있는지, 취직할 거
아니면 얼른 내려오라고 압박을 주시던 때라 그냥 내려
가기는 너무 싫어서 아르바이트 자리든 뭐든 좋다 하고
부랴부랴 시험을 봤어요. 시험을 청소년 수련관에서 봤
는데 그때는 1차 필기시험, 2차 면접시험이 하루 안에
다 끝나는 상황이라 1차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2차 면
접시험을 기다리고 있는데 청소년수련관 바로 옆에 의
정부예술의전당이 공사 중이었던 거예요. 공사 중인 의
정부예술의전당을 바라보면서 나도 저런 데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제가 응시한 시험
이 의정부예술의전당이었어요. 시험에 응시할 땐 전혀
몰랐어요. 왜냐하면 취업 정보란에 의정부시 시설관리
공단이라는 이름으로 공고가 떠서 시설관리공단을 검
색해 보니 청소년 수련관이 나왔고 저는 당연히 거기서
사람을 뽑는 줄 알았지, 의정부예술의전당에서 일할 직
원을 뽑는 건지는 아예 생각 못 했던 거죠. 2차 면접시
험을 다 보고 난 뒤에서야 그 사실을 알았어요.
너무 좋으셨겠습니다. 그때 당시 천 석 이상 되는
규모의 전문 공연장이 개관할 때 전국적으로도 큰
이슈였는데 개관 멤버로 합격하신 것 아닙니까.
제가 필기시험 1등이었대요. 학교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20대 초반 때니까 머리가 얼마나 잘 돌아갔겠어요.
시험 비율이 필기시험이 60%, 면접시험이 40%였으
니까 최종 점수가 높았죠.
제주아트센터 김성연 음향감독
14
그때는 여성 감독이 드물었으니 어떻게 보면 무대
음향 업계의 1세대 여성 음향 감독이었네요.
그렇겠네요. 그런데 합격하고 공연장에 들어가니
무대팀 선배님들은 걱정이 많으셨나 봐요. 개관 때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일을 어떻게 시킬 거냐고요.
그땐 공연장에 여성 감독들이 거의 없었으니까요. 사
회 경험도 공연장 경험도 없었던 20대 초반이었으니
까 마냥 해맑고 밝게 '뭐든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랬
죠. 그 당시 무대 스태프 중에 행정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제가 컴퓨터 전공이다 보니 무
대 팀 안에서 서무 같은 일을 했어요. 기안문 올리는
일이며 행정 관련 업무를 제가 거의 맡아 하면서 팀
에 도움이 되고 나니까 그때부터는 공연 진행하는 거
랑 콘솔 잡는 법을 처음부터 가르쳐 주셨어요. 선배
님들로부터 조금씩 인정을 받기 시작하니 좋았어요.
그래서 의정부 선배님들은 다시 만나면 친정 식구들
보는 기분이 들어요. 제가 의정부 막내로 오래 있어
서 각별하게 생각해 주시고 결혼하고 독립하는 것까
지 다 지켜봐 온 분들이라 오랜만에 뵈면 여동생 온
것처럼 다들 너무 잘 해주세요.
힘들 땐 의지할 만한 곳이 좀 있으셨는지요. 객지
생활 하시면서 눈물도 많이 흘리셨을 것 같은데요.
저 혼자서 다 이겨냈다고 볼 순 없고요. 선배님들이
계셔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힘들 땐 부모님이 너무
보고 싶기도 했지만,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아서 참았죠.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이 없었으면 솔직히 지금도
힘들었을 것 같아요. 그때 참고 견디는 게 사회생활 하
는데 베이스가 많이 됐기 때문에 지금 일하는 이 조직
에 와서도 그래 이 정도쯤이야 라고 할 수 있는 여유가
많이 생긴 것 같아요.
협회의 맏언니로서, 여성 감독으로서 20년 넘게
활동해오시면서 어떠셨습니까?
제가 처음 일을 시작할 땐 여성 감독들이 일하는 것
에 대해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가 좀 있었는데 시간
이 점점 지나면서 여성 감독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에
대해 뿌듯함을 느껴요. 협회 모임에 같은 방을 쓸 수
있는 동료가 생겨서 아주 좋아요. 지금도 약간 차별 아
닌 차별을 느끼긴 합니다만 예전보다는 아주 좋아진
것 같아요.
관련해서 기억나는 일화가 있을까요?
방송국 쪽에서 들어오거나 했을 때 저한테 감독님 어
디 계시냐고 해서 '저예요' 라고 했더니 아니 당신 말고
감독님 불러오라고 했던 경우도 있네요. 공연하러
들어오셔서 다짜고짜 몇 년 차에요? 몇 년이나 있었어?
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그런 경우에는 그냥 방송
국과 공연장 간 서로의 기 싸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1세대 여성 음향감독으로서 후배 여성
음향감독님들께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주변에 혹시나 차별이라고 느껴지는 어떤 것들이 있
다면 그냥 개의치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건 그들의 생
각인 거고 그들도 어딘가에서 받은 차별을 우리에게
푸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이 일
자체를 즐기면서 쭉 오래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
의정부예술의전당 근무 당시 음향감독 좌측부터 김성연, 우종희, 한송헌
만남, 그리고 이야기 - 제주아트센터 김성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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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M STAGE SOUND MAGAZINE VOL.08
는 그냥 견뎠거든요. 근데 견디고 버티고 참고 하는 게
그렇게 좋은 방법만은 아니지만 시간이 흘러서 지금 생
각해 보니까 그것도 방법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요. 저는 견디고 참아내는 것에 대한 계기가 여자로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다시 이 일을 지속하는 것이었어
요. 아주 힘들었어요. 배우자를 같은 분야에 일하던 사
람을 만났다면 서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
이 있었을 텐데 전혀 다른 분야의 배우자를 만나다 보
니 처음에는 단순히 음향감독이라는 멋있는 직업을 가
진 아내였는데 점점 가정 생활이 쉽지 않아지는 거죠.
저녁 시간이나 주말에 남편 혼자 아이들을 보거나 식사
를 챙겨야 하는 일이 많아지니까 남편이 많이 힘들어했
어요. 저도 공연장 일을 계속 신경 써야 하는데 아이들
은 어리다 보니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아주 힘들었죠.
그러다 보니 협회 모임에 갈 여유도 없어졌죠.
아이들은 지금 몇 살인가요?
아들은 중학교 3학년, 딸은 초등학교 5학년입니다.
이럴 때 보면 저희 직업이라는 것이 참 가정 생활을
힘들게 하는 직업이네요.
대신 아이들이 엄마 직업을 자랑스러워할 때 뿌듯
한 건 있어요. 길거리 표지판에도 제주아트센터라고
크게 적혀있고 비교적 알려진 공간에서 근무하다 보
니까 아이들이 봤을 때 엄마 회사라고 하면 엄청나게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버티길 잘했
다고 생각해요. 안 그랬으면 그만뒀을 텐데.(웃음) 제
가 공연팀 오퍼레이터나 RF 하시는 분 중에 여성 감독
님들이 오시면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는 중에 문득 느
끼게 된 건데, 우리는 공연을 진행할 때 실수 안 하려
고 순간의 완벽함을 요구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제가
어느 순간 집에 가서 아이들한테 공연 대하듯이 하고
있더라고요. 10살도 안 된 아이들에게 완벽을 요구하
고 있는 저 자신을 깨닫고 엄청 미안했어요. 그 이후에
저희 공연장에 공연하러 오신 여성 감독님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시기에 지금 나의 상황과 모습들이 이
러해서 내 아이에게 어떤 요구를 하는 건 아닌지 한
번 돌아보시라고 하니 크게 공감하시더라고요.
의정부예술의전당에 계시다가 제주아트센터로
오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결혼이었어요.
제주아트센터는 언제 개관했나요?
개관은 2010년 5월 19일에 했습니다. 개관 기획단이
2009년 7월에 생겨서 그때 입사를 하게 되었네요.
입사를 개관 기획단 때 하셨으면 개관할 때까지
참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이것저것 조사해야 하는 부분도 많고 개관할 때 소송
이 걸려있는 부분도 있어서 복잡한 일이 많았는데 협회
선배님들 도움도 참 많이 받았어요.
법적인 문제를 잠시 언급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지난 일을 끄집어내는 거 같아서 자세한 이야기는 곤
란하지만, 메인 장비가 들어오는 과정에서 민원과 소송
문제가 생겼었어요. 그 일로 인해 입사 6개월 만에 시장
실, 감사위원회, 경찰서, 법원 등을 오가며 다양한 일을
겪었죠. 약 3년간의 소송 끝에 마무리되었는데 그동안
조직 내에 담당 팀장, 과장은 계속 바뀌니까 바뀔 때마
다 소송 관련 보고를 새로 해야 하고 이런 문제가 길어
진 것에 대한 오해의 소지들이 있을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 스트레스가 많았고 상당히 심적으로 힘들었어요.
어린 자녀도 키워야 하고 그땐 얼마나 힘드셨을
까요.
그게 아이가 어릴 때 약 3년 동안 회사의 이런저런
복잡한 상황과 남편과의 가정 생활을 조율하는 과정이
시기가 모두 겹쳤어요. 이 시기가 지나고 나서는 소송
건도 상황이 많이 정리가 돼서 조금씩 나아졌죠.
못 견디고 그만뒀으면 너무 후회되었을 것 같습니다.
이때는 정말 그만둘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음향 감독이라는 직업의 좋은 점과 어려운 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좋은 점은요, 내가 창의적으로 계속 무언가를 생각하
고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인 거 같아요. 어려
운 점은 계속해서 공부해야 한다는 것.(웃음) 어떤 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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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분은 어떻게 처음 만나셨는지 그 스토리도
궁금합니다.
동향분인데 친구 오빠였어요.(웃음) 한두 번 정도 본
적이 있어서 그냥 친구 오빠 정도로만 알고 있다가 친
구가 '우리 오빠 좀 만나볼래?' 하고 소개팅을 제안한
거예요. 의정부에 있을 때니까 여름 휴가 때 제주도에
내려가서 소개팅을 했는데 그게 연애로 이어지게 된
거죠. 사실 제가 예전에 친구 집안 행사 때 가서 도와준
적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눈여겨보고 있었다고 하더라
고요. 그렇게 장거리 연애를 시작했고, 그때가 의정부
에서 8년 차쯤 되었을 때인데 저한테도 무언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친정엄마께서 이젠
내려와서 곁에 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니 제주도로
돌아가서 결혼해야겠다 생각해서 짧은 연애 기간을 거
치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어요. 정말 빠른 시간 안에 결
혼하다 보니 남편은 아내의 직업이 음향감독인 게 단
순히 멋있다고만 생각하고 있다가 현실은 저녁 시간과
주말에는 일을 나가야 하니 처음엔 아주 혼란스러웠을
거예요.
결혼을 기점으로 의정부에서 제주도로 돌아오시고
나서 바로 제주아트센터로 들어가게 된 건가요?
제주아트센터 공고가 바로 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결
혼 후 민간 공연장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그때쯤 임신 사
실을 알게 돼서 못 들어가는 상황이 되어 아이 낳고 1년
정도 쉬었어요. 육아하고 있다 보니 제주아트센터 공고
가 나더라고요. 재미있는 사실은 의정부에 있을 때 제
주아트센터(공사명: 한라문화예술회관)가 지어지고 있
었는데 그때 제주 공무원들이 의정부에 와서 공연장
현장 견학을 하고 가고 그랬어요. 그래서 미리 제주아
트센터가 지어진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계속 의정부에 있을 거로 생각했으니까, 제
가 그 공연장에 들어가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
요. 저는 참 뜻하지 않은 행운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
이라고 생각했죠. 적절한 시기에 원하는 직장에 갈 기
회가 주어진다는 건 감사한 일이죠.
만남, 그리고 이야기 - 제주아트센터 김성연
제주아트센터 객석 <사진제공:제주아트센터> 제주아트센터가 처음부터 전문 공연장으로 공사를
시작한 게 아니라 제주시민회관의 대용으로 계획한 공
연장이에요. 그래서 800석 규모로 극장을 설계했다가
제주문예회관도 800석 규모인데 더 크게 짓는 것이
좋지 않겠나 해서 중간에 건축 변경이 되다 보니 객석
경사각이 좀 높아요. 발코니가 길어진 이유도 되고요.
나중에 1,200석 가까이 되는 객석의 전문 공연장으로
설계 변경을 하고 전문적으로 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
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공연은 도립예술단 클래식
공연이 좀 많은 편이고 오페라는 제작 공연까지 하고
있어요. 최근에 기획자분이 새로 오셔서 좀 더 다양한
공연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제주도에는 어떤 도립예술단이 있나요?
제주 합창단, 제주 교향악단, 도립무용단, 서귀포 합
창단, 서귀포 관악단이 있습니다. 제주아트센터에 제주
교향악단이 상주 중이라 한 달에 한 번 정기연주회는
항상 우리 공연장에서 하고 있어요.
제주아트센터 이외 다른 전문 공연장이 몇 군데
더 있나요?
제주시민회관은 1964년에 개관해서 이제 역사 속으
로 사라지게 되었고요. 공공 공연장은 제주문예회관,
제주아트센터, 서귀포예술의전당 세 군데입니다. 이외
한라대학교의 한라아트홀, 제주대학교의 아라뮤즈홀
이 학교 소속의 전문 공연장이라고 볼 수 있고요. 사설
에서 운영하는 소극장도 몇 군데 더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주아트센터 조직 구성은 어떻게 되나요?
제주아트센터는 제주시청 본청의 1개 과로 되어있습
니다. 5급 과장님이 제주아트센터 소장님으로 계시고
크게 공연운영팀, 시설관리팀으로 나뉘어서 무대는 시
설관리팀에 들어가 있어요. 무대는 무대 기계, 조명, 음
향 파트 당 2~3명의 직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의 일이든 삶을 살아가면서 평생 공부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겠지만 음향감독은 트렌드를 계속 쫓아가야
하는 것이 조금 어려운 점인 것 같아요. 그게 취미처럼
즐겁게 쫓아갈 수 있는 능력이 되는 사람이면 좋겠지
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가끔 버거울 때도 있는
것 같아요.
어려운 점이 있음에도 후배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직업입니까?
100%요. 요즘 들어 한 해 한 해 더 느끼는 건데, 무대
에 서는 사람들의 노력과 시간을 내가 빼앗는 상황이
생기지 않게 나의 일에 대한 책임과 무게만 충분히 알
고 있다면 저는 누구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직업입니다.
2010년에 개관한 제주아트센터는 제주 최대
규모의 1,184석의 전문 공연장인데 주로 어떤
공연을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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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M STAGE SOUND MAGAZINE VOL.08
기여한 부분이 없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큽니다. 죄
송한 마음이 너무 크지만 한 가지만 이야기하자면 공연
장 여성 감독님들을 위한 소모임 같은 걸 만들어 주시
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저한테 진행해 보라고 하시면
저는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저는 계획을 세우면 잘 안되더라고요. 그냥 순간을 열
심히 살려고요. 순간과 순간이 켜켜이 쌓여 좀 더 성장
하는 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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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준비와 진행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을까요?
저희 공연장은 와 보시면 아시겠지만, 굉장히 자연
친화적인 공연장이라 반입구를 오래 열어놓으면 새가
들어오는데, 언제 들어온 줄도 모르게 새 한 마 리가 들
어와서 리허설하는데 갤러리에서 짹짹대고 부딪히며
소리를 내는 통에 새 잡으려고 엄청나게 고생했던 기억
이 나네요.
이제 마무리입니다. (사)무대음향협회에 가입
하신 지 20년이 넘으셨는데 협회가 앞으로 우리
회원들에게 어떤 노력을 해줬으면 좋을지 한 마
디 부탁드립니다.
제가 의정부에 있을 때는 경인지부 활동에 자주 참석
하고 홈페이지 관리 일도 하면서 선배님들을 많이 알게
되어 여러 방면으로 도움을 받았었는데 지금은 협회 활
동에 참여한 지 오래되어 제가 도움 받은 만큼 협회에
SOUND
STAGE
만남, 그리고 이야기 - 제주아트센터 김성연
지난 75년 동안 AKG는 라우드스피커부터 축음기 카트리지까지
수천 가지 제품을 개발했지만, 프랭크 시나트라부터 데이비드 보위,
카니예 웨스트에 이르기까지 음악계의 가장 상징적인 목소리를
담아낸 마이크로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AKG K361 및 K371 프로페셔널 스튜디오 헤드폰은 스튜디오
품질의 사운드, 푹신한 편안함, 모바일 라이프스타일에 어울리는
세련되고 견고한 디자인이 완벽한 균형을 이룹니다.
K361-BT/K371-BT
MEMBER'S INTERVIEW
서귀포예술의전당
오종학 음향감독
20 만남, 그리고 이야기 - 서귀포예술의전당 오종학
팔 걷어붙이고 혼자 하루종일
왔다갔다하면서 소리가 사라
지는 이유를 알아냈어요
“
”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90년대에 렌탈로 음향을 처음 시작했습니다. 제
주도에서 계속 렌탈을 해왔는데 2001년도쯤 한라
대학교에서 한라아트홀을 만들었어요. 세상사에
관심이 없던 때였는데 후배한테 연락이 와서 신문
에 공고가 났는데 한 번 내보라고 하더라고요. 그
런데 그 당시 제가 머리를 막 길게 하고 다니고, 굉
장히 자유롭게 살았어요. 대학이면 이미지가 좀 깔
끔해야 할텐데 그땐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긴 머리로 면접을 보러 갔기 때문에 저는 될 거라
는 생각을 안 했었어요. 그런데 덜컥 돼버리더라고
요. ‘왜 나같은 사람을 뽑지?’ 하고 깜짝 놀랐었어
요. 그렇게 13년 정도를 한라아트홀에서 근무하다
가 서귀포예술의전당이 개관하면서 자리를 옮기게
됐습니다.
처음에 음향을 어떻게 접하고 시작하게 되셨
는지 궁금합니다.
96년 11월에 시작해 27년 정도 됐네요. 지워버리
고 싶은 시절인데, 고등학교 땐 방황을 많이 해서
공부를 안 했었어요. 대학을 3수 하고도 다 떨어져
서 군대를 가려고 했는데, 친구가 일단은 전문대라
도 가고 나서 군대 가는 게 좋지 않겠냐 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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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M STAGE SOUND MAGAZINE VOL.08
요. 그 말을 듣고 과를 고민하다 보니 제가 음악을 좋
아하는 게 생각이 났고, 그러면 오디오 장비나 한 번
실컷 만져보자 해서 전자과를 들어갔어요. 그때 전자
과 갔던 게 신의 한 수가 됐죠.
졸업쯤엔 교수님이 SK텔레콤, 당시 한국이동통신
에 추천을 해주셔서 면접을 보러 갔는데 가보니까 적
성 검사를 하는 거예요. 문제가 몇 백 개나 되는 시험
이잖아요. 준비 없이 갔으니 당연히 떨어지고 그때야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몸소 깨달았어요. 조
금 좌절하던 중에 마침 또 음향 렌탈 회사에서 교수님
께 학생 추천 요청이 와서 제가 하겠다고 했죠. 그대
로 교수님 추천을 받아 입사해 렌탈을 시작했어요. 그
렇게 시작한 게 오늘날까지 와버렸네요. 지금 와서 생
각해 보면 인생의 8할은 우연이다 싶어요.
한라아트홀에서 긴 시간 근무를 하셨는데 서귀
포예술의전당으로 이직하신 계기가 있나요?
원래는 한라아트홀에서 정년 퇴임을 할 생각이었어
요. 그곳이 일은 힘들었지만 생활하기는 편한 곳이라
별 문제 없으면 정년까지 다녀야겠다 생각했었죠. 그
런데 개인적인 일이라 자세히는 말씀 못 드리지만, 회
사에 노조가 생기고 사람들 사이 권력 다툼이 심화되
면서 크게 회의감을 느꼈었어요. 그 중 때마침 이곳의
공고가 나와서 고민 끝에 서귀포예술의전당으로 옮
겨오게 됐습니다.
2001년 한라아트홀 근무 당시의 오종학 감독
전화위복으로 이곳에 오시게 됐군요. 서귀포예
술의전당은 언제 개관했습니까?
제가 2014년 2월에 들어오고 정식 개관은 6월에
했어요. 입사해보니 스피커 설치는 됐지만 연결은 안
되어있는 등 아직 공사가 다 안 끝나서 필요한 장비들
을 확인해 구입하는 일들을 진행했었죠.
당시 극장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좋았습니다. 진짜 좋았어요. 처음 만들어진 부서다
보니까 뭐든지 원하는 대로 해주더라고요. 그래서 모
든 게 다 좋았지만 제가 한 가지 느낀 점이 있다면, 이
런 전문 공연장은 전문인들이 운영해야 한다는 거예
요. 우리 같은 무대팀 빼면 모두 공무원이신데 공연
분야를 하나도 모르기 때문에 안 보이는 벽이 있는 느
낌이죠. 일 처리는 확실히 그분들이 법적인 걸 근거로
1999년 권인하 공연 진행 중인 오종학 감독
1998년 제주문예회관에서 제주대 아라가요제 진행팀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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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시스템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요?
메인 FOH 콘솔은 MIDAS PRO3이고, 컨트롤 룸은
YAMAHA M7CL입니다. 이제 콘솔을 바꿀 때가 오고
있어 준비를 하려고 하는데, 이제는 입찰 방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곳 얘기를 들어보니까
적격 업체가 없어서 계속 재고되고 있다는데 그러다
적합하지 않은 장비가 들어올 수도 있는 게 아닌가 하
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면 저희도 콘솔 교체할 때
비슷한 상황을 겪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이런 상황을
어떻게 대비하고 해결해야 할까 하는 고민이 있습니
다. 스피커는 EAW KF730P가 양쪽으로 6통씩 있고,
그 뒤 위쪽으로 SB730P 서브 우퍼가, 그리고 스택으
로 18인치 서브 우퍼 SB1002가 양쪽 2통씩 있습니다.
스피커 튜닝도 직접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극장 스피커는 직접 튜닝하는데 아직도 완성이 안
된 것 같아 9년 동안 계속 소리를 잡아가는 중이에요.
튜닝이라는 게 할수록 어려운 것 같아요. 정석대로 저
음에서 10dB 부스트시키고 평탄화하다가 다시 고음
에서 롤 오프 시키는 식으로 해도 그 소리가 결코 좋
은 소리는 아니더라고요. 계속 조금씩 만져보긴 하지
만 내가 원하는 소리를 내는 게 쉽지가 않아요.
여러 프로페셔널한 감독님들이 공연으로 오시면서
튜닝을 하시면 저도 같이 소리를 들어보는데, 그런 소
리들도 저에게는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어요. 아무래
해서 전문적으로 잘하시는데 무대에 대해서는 전문
성이 부족하시니 그 부분이 조금 아쉬웠어요.
처음에, 저한테 대관료 책정을 하라는 거예요. 그 부
분은 저도 잘 모르니 제주아트센터와 제주특별자치
도문예회관의 대관료를 찾아보고 그걸 토대로 책정
했어요. 일단 제가 결재를 올리면 위에서 검토하고 수
정하겠지 생각했었는데 그대로 의회를 통과하더라고
요. 깜짝 놀랐고,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많은 자료를 참
고해 결정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죠.
조직 구성은 어떻게 되어 있나요?
일단 서귀포시 직영 부서의 과 소속이고, 행정계・시
설계・공연계 이렇게 3개의 팀이 있습니다. 모든 파트
는 감독과 조감독으로 두 명씩 있는데 조감독은 공무
직이라 전문인이 아니에요. 많이 도와주시긴 하지만
일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이 없으니 전문적인 것들은
저 혼자 하는 부분도 많아요. 극장은 대극장 802석,
소극장 198석으로 2개인데, 처음에는 혼자서 대극장
과 소극장 모두 왔다 갔다 했어요. 지금도 소극장에
안 되는 게 있으면 직접 가기는 하지만 조감독에게 온
오프 하는 것 정도는 가르쳐줘서 전보다는 나아진 상
황 같습니다.
서귀포예술의전당 FOH 전경 서귀포예술의전당 컨트롤 룸 전경
만남, 그리고 이야기 - 서귀포예술의전당 오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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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M STAGE SOUND MAGAZINE VOL.08 23
도 각자의 취향이 들어가니 어쩔 수 없는데 그게 굉장
히 미묘하더라고요. 시스템 설비 업체 관계자분과도
가끔 오실 때마다 이렇게 저렇게 해보자고 의논을 하
는데 항상 결론은 ‘다음에 다시 한 번 해봅시다’ 예요.
튜닝에는 정답이 없는 것 같아요.
시스템을 운영하며 아쉬운 점은 없으신가요?
아쉬운 점은 있죠. 저 위의 730P가 6통인데 2통씩
더해서 8통으로 하고 플라잉된 서브는 없는 게 더 낫
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저음이 엄청
나게 울리거든요. 저는 콘솔에서 EQ 만지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스피커에서 최대한 평탄하게 만들어놓
는데, 가장 최근에 튜닝할 때 130Hz에서 계속 사라지
지 않는 신호가 있어 그걸 훅 깎아버리니 조금 나아지
더라고요. 그렇지만 이제는 저음에서 킥의 팍 차는 느
낌이 안 산다는 아쉬움이 생기긴 했어요.(웃음)
그리고 또 한 가지가, 객석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소리가 좀 멀어지는 느낌이 나는 거예요. 처음엔 이게
라인 어레이의 특성인가 생각했었는데 그래도 소리
가 너무 어색해서 점검을 해보려고 마음을 먹었죠. 이
일은 저만 할 수 있으니까 혼자서 점검을 해야 하는데
사실 앰프실이 저 위에 있어서 혼자 왔다갔다 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제대로 일을 하려면 굳게 마음을 먹어
야 해서 ‘해야 돼. 해야만 해. 하자!’ 팔 걷어붙이고 혼
자 하루 종일 왔다 갔다 하면서 소리가 사라진 이유를
알아냈어요.
앰프가 맨 위에 두 방은 0dB로 돼있고 가운데 두
방은 -3dB, 맨 밑에는 -6dB로 돼있던 거예요. 그래서
내려갈수록 소리가 멀어졌던 거죠. 모두 0dB로 맞추
니까 소리가 팍 살아나고 훨씬 나아졌어요. 조정하고
서 다시 들어보니까 확실히 맨 밑의 두 방은 바로 머
리 위에 있어서 소리가 굉장히 쏘더라고요. 그래서 그
것만 -1dB로 해서 들어보고, -2dB로 해서 들어보고
하면서 다시 조정을 했어요. 그리고 나서 이후에 뮤지
컬 하는 후배가 와서는 들어보더니 객석 정가운데 열
이 안 들린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일이 있었다 설
명을 다 해주니 그럼 -1dB로 해보자고 해서 또 값을
바꿨어요. 그랬더니 됐다면서 이제 소리가 들린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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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 극장에서 음악은 -2dB가, 뮤지컬은 -
1dB가 적절했던 거예요. 지금은 대부분 -1dB로 셋팅
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공연은 주로 어떤 장르를 하나요?
다목적 공연장답게 정말 복합적으로 이루어집니다.
특정한 장르에 치우치지 않아요. 제주도에는 자체 민
간 단체, 아마추어 단체가 워낙에 많아요. 그래서 이
단체들의 공연이 압도적으로 많고, 기획 공연도 있는
데 기획은 클래식이 주를 이루는 것 같습니다.
감독님의 결혼 스토리도 궁금합니다.
여기 오고 나서 느즈막하게 결혼해 딸이 하나 있습
니다. 와이프가 극장에 일 때문에 왔다가 만나서 1년
좀 넘게 연애했어요. 전 사실 결혼 생각도 없었는데
와이프가 저랑 정반대 스타일의 여자라 무슨 남자가
결단력도 없고, 판단력도 없다면서 절 쪼더라고요. 그
래서 하게 됐죠.
우연히 시작했던 일을 약 27년 동안 하고 계시
는데, 만족하시나요?
음향 아니었으면 제 인생이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
어요. 지금은 아주 행복해요.
그렇다면 다시 태어나도 음향을 하시겠어요?
그건 모르죠.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게 쉽지 않잖아요.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딸이 이제 6살인데 가만히 딸을 보니까 나중에 얘
하고 밴드를 해도 재밌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얘가 노래를 하고 나머지는 객원으로 해서 하는 거죠.
그리고 저는 아직도 뭣도 모르던 때 가서 여쭤보면 친
절하게 알려주셨던 감독님들을 잊지 못하는데, 저도
후배들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사)무대음향협회 또는 SSM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SSM을 처음 봤을 때 깜짝 놀랐었어요. 너무 유용한
글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제가 알아가는
게 너무 많아서 너무 훌륭한 잡지라는 생각이 들었죠.
앞으로 멈추지 말고 계속해서 SSM을 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SOUND
STAGE
서귀포예술의전당 전경
만남, 그리고 이야기 - 서귀포예술의전당 오종학
INTRODUCING
GT X
LINE ARRAY SYSTEM
THE POWER
TO CHANGE
EVERYTHING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경인로 775, 4-201 T. 02-2168-4531 H. www.sscom.com / www.사운드솔루션몰.com
@soundsolution_no1
/soundsolutionkorea
MEMBER'S INTERVIEW
LG아트센터
이범훈 음향감독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LG아트센터 무대기술팀 음향감독 이범훈입니다.
음향감독이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계기와 처음 시작은
어떤 분야였는지 궁금합니다.
학창 시절 악기 연주(기타)의 꿈을 가지고 즐기다 보니 어느덧
사람들에게 악기가 아닌 음향 장비로 좋은 소리를 전달하고자 하
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20대 때 처음 렌탈 회사에서의 경험과 외국에서의 전문 교육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SAE(School of Audio Engineering))을 통
해 2000년 아리랑TV를 거쳐 2002년 강남 역삼동 LG아트센터에
입사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만남, 그리고 이야기 - LG아트센터 이범훈
음향감독, 꿈 꿀만큼 어려운 직
업은 아닙니다. 실천하시면 됩
니다. 저도 하고 있습니다
“
”
26
27
SSM STAGE SOUND MAGAZINE VOL.08 27
LG아트센터 서울 음
향 시스템에 대해 설명
해주세요.
LG SIGNATURE 홀은
오케스트라부터 오페라,
뮤지컬, 연극, 발레, 콘서
트까지 공연할 수 있는
1,335석 규모의 다목적
공연장입니다. FOH 메인
콘솔은 DIGICO Quantum
7 이고, 메인 스피커 시스
템은 d&b Y8, Y12로 L/R
각 12통, 서브우퍼 V-
SUB 각 3통, 센터 스피커
T10 13통, 스택 서브우퍼
SL-GSUB 각 1통으로 되
어 있고 상부가 노출로 되
어 있어 무대 규모에 맞게
스피커를 좌우, 앞뒤로 움
직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모든 벽면과 천장에
어쿠스틱 배너가 다양한
길이로 약 80개 정도 설
치되어 있어 잔향 시간을
1.2초에서 1.85초까지 조
정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
다. 그리고 마곡으로 이전
하게 되면서 메인 패치 위
치를 음향실에서 무대 하
수로 옮겨서 외부 팀 공연
시 더욱 편리한 셋업이 되
게 하며, 또한 장기 뮤지
컬 같은 외부 대관 팀 셋
업을 위해 케이블 패스를
역삼 LG의 4배 정도 더
넣었습니다.
LG SIGNATURE 홀 전경 (사진제공: LG아트센터 ⓒ 배지훈)
LG SIGNATURE 홀 메인 스피커 시스템
(좌측부터 (L/R) d&b Y8, Y12 12통, (SUB) V-SUB 3통, (C) d&b T10 13통, (SUB) SL-GSUB 1통)
반사음을 줄이기 위해 매쉬 소재로 FOH를 구축한 LG SIGNATURE 홀
U˖ 스테이지는 2개 층 최대
365석 규모의 블랙박스 형 공연
장입니다. 주로 연극 공연이 주를
이룹니다. 이곳은 국내 최초 d&b
사의 이머시브 시스템인 Sound-
scape를 설치하여 음향적으로 표
현하고 경험할 수 있는 어떠한 소
리의 여행이라도 가능하게 만들
어진 공간이고, 현재 FOH 메인
콘솔로 DIGICO SD12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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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SIGNATURE 홀 케이블 패스
LG SIGNATURE 홀 메인 패치 판넬
U˖ 스테이지 전경 (사진제공: LG아트센터 ⓒ 배지훈)
U˖ 스테이지에 적용된 Soundscape
만남, 그리고 이야기 - LG아트센터 이범훈
LG아트센터 서울의 소음 차단 설계가
독특한데, 이것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
니다.
LG아트센터 서울은 LG아트센터(역삼)에
최초로 도입했던 BIB(Box in Box)라는 건
축구조분리공법을 LG SIGNATURE 홀 전
체에 반영했습니다. 홀의 사방 벽과 천장까
지 모두 띄워 지하철과 헬리콥터, 항공기
등 외부의 소음과 진동을 차단합니다.
또 내부의 공조 소음 방지를 위해 플레넘
이라는 에어 체임버가 있습니다. 플레넘 체
임버에서 냉난방을 가동하면 홀의 각 객석
아래의 구멍을 통해 들어와 내부에서도 공
조 소음이 발생되지 않고 조용히 공연을 진
행할 수 있습니다.
LG아트센터 서울의 설계 및 시공 참
여 당시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LG아트센터 서울 설계를 시작할 때, 컨
설턴트가 처음 제안해 준 설계를 70% 정
도 바꿨어요. 왜냐하면 설계 컨설턴트는 극
장 운영 방식이나 간단한 컨셉만을 주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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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M STAGE SOUND MAGAZINE VOL.08
음향 시스템이 정확하게 설계된 도면이 아
니었는데 시공사에서는 진짜 도면인 줄 알
고 그대로 진행할 뻔 했거든요. 저는 설계
변경이 간단할 줄 알았는데 시공사에서는
도면에 나와있지 않은 걸 변경하는 것은 추
후 책임 소재도 많고 비용 차이가 날 수도
있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렇지만 제가 모든 걸 책임지겠다, 도면과
다르지만 이게 훨씬 좋은 것 같으니 어떻게
든지 같은 금액 내에 맞춰서 할 수 있도록
해보겠다 하고 목숨 걸고 바꾸게 되었습니
다.
LG아트센터 서울의 준공, 개관을 하
고 아쉬웠던 부분이 있다면?
인프라 쪽을 조금 더 세밀하고 디테일하
게 잡았으면 했어요. 음향 패널들에 커넥터
들을 좀 더 넣을걸, 저희는 다 단테로 구성
되어있기 때문에 특히 랜 쪽이 많이 필요하
더라고요. 그래도 많이 넣는다고 넣었는데
이렇게 많이 쓸 줄은 몰랐어요. 꽂을 게 거
의 아날로그만큼 많더라고요.(웃음)
LG아트센터의 PIT2 (BIB) 실
각 객석마다 설치되어 있는 덕트
LG아트센터의 플레넘 체임버
LG아트센터 서울만의 색다른 기획 공연이나 추천하고 싶은 공연이 있다면 소
개해주세요.
LG아트센터 서울은 모든 창작자들에게 그들이 원하고 표현하고 싶은 모든 가능성
을 열어주면서 물리적으로 가능한 모든 음향 장비의 설치 및 적용을 할 수 있는 공연
장 입니다. 특히 블랙박스(U˖ 스테이지)는 국내 최초 d&b사의 이머시브 시스템인
Soundscape를 설치하여 다양한 실험적 공간 소리를 표현할 수 있으니 언제든 활용하
시길 바랍니다. 아직까지 이머시브를 이용한 공연은 없었으나 추후 음향 디자인과 준
비를 위한 시간을 제공하는 프로덕션이 있다면 더욱 활용 가치가 올라가길 기대합니
다.
2022년 10월 개관하여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보여주고 있어서 남은 2023년과
2024년 이후의 모든 공연을 추천드립니다. 각각의 공연마다 새로운 음향적 경험을
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현재 LG아트센터 인력 구성은 어떻게 되
어 있나요?
LG아트센터장을 중심으로 무대기술팀, 공연
기획팀, 홍보마케팅팀, 운영팀 4개의 팀이 있습
니다. 무대기술팀에는 팀장, 무대팀 6명, 조명팀
5명, 음향팀 4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저희 음향
팀은 두 개의 극장을 네 명의 감독이 자유롭게
돌아가며 운영하고 있습니다.
LG아트센터 서울 전경 (사진제공: LG아트센터 ⓒ 배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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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아트센터 서울 전경 (사진제공: LG아트센터 ⓒ 배지훈)
만남, 그리고 이야기 - LG아트센터 이범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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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M STAGE SOUND MAGAZINE VOL.08 31
음향감독이라는 직업의 좋은 점과 어
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후배들
에게 추천할만한 직업인지 감독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음향을 업으로 하는 좋은 점이란 좋은
소리가 어떠한 것인지 배워갈 수 있고, 어
려운 점은 좋은 소리를 찾기 전에 나쁜 소
리를 먼저 찾아 관객들에게 전달되지 않게
해야 하는 업무가 있어서 항상 소리를 들
을 때 좋은 소리보다 나쁜 소리를 먼저 들
어야 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직업으로써 추천이라기보다는 정말 좋
아하는 일인가를 먼저 생각하고 도전하시길
바랍니다.
음향 관련 직업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꿈꿀만큼 어려운 직업은 아닙니다. 실천하시면 됩니다.
저도 하고 있습니다.
(사)무대음향협회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성장하
면 좋겠는지 말씀해 주세요.
협회 차원에서 회원들에게 더 신경 쓰며 실질적으로 회
원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협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
다.
LG아트센터 이범훈 감독
화목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던 LG아트센터 음향감독들 (좌측부터 김경민 감독, 엄준석 감독, 김현주 감독)
SOUND
STAGE
마지막으로 앞으로 감독님의 계획이 궁금
합니다.
이쪽 일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해보고 싶어요.
예전부터 기타 연주하는 것을 좋아했었고 기타
레슨 하며 업으로 삼고 있는 친구들도 있어서
저도 그쪽으로 해보려고 기타 연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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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INTERVIEW
스페셜 인터뷰 - 前)LG아트센터 총괄국장 박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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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M STAGE SOUND MAGAZINE VOL.08
박영철 전)LG아트센터 총괄국장
대한민국 무대음향의 살아있는 신화
세종문화회관, 워커힐호텔, 예술의전당, LG아트센터, GS여수예울마루.
국내 유수의 공연장 무대음향감독과 총괄 기술감독을 두루 역임하며
43년간 대한민국 무대음향의 역사를 함께 해온 (사)무대음향협회 박영
철 고문. 특히 초기 설계부터 완공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을 거쳐 완성
된 LG아트센터(역삼)는 국내 공연장의 무대음향 기술 수준을 한껏
끌어올린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여겨진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현장
에서 쌓인 방대한 자료와 노하우를 집대성하여 출간한 음향 전문서
적은 현재까지도 후배 음향인들의 필독서로 추천되고 있다. 이처럼
내딛는 발걸음 마다 국내 음향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며 여전히 현
재 진행형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그야말로 대한민국 무대음향
의 살아있는 신화, 박영철 고문을 2023 KOSOUND 현장에서 만나보
았다.
취재, 사진 | 성재훈
편집 | 김수정
당시 극장의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직원이 7명인데 그 중 음향 실장님과 날 소개해줬던 친구 단 둘만이 믹싱 콘솔을 만질
수가 있었어요. 콘솔을 만져보고 싶은데 못하고 저는 무대 가서 마이크랑 케이블이나 깔
고 잔심부름만 했어요. 콘솔은 독일 지멘스Siemens에서 오더메이드한 거였는데 무슨
비행기 조종간 같이도 생겼고 스위치가 엄청 많은 게, 처음에 보니까 겁나면서도 되게
궁금하더라고요. 그런데 못 만지게 하니 공연 때 퇴근하라고 해도 안 하고 뒤에 서서 지
켜만 봤죠.
하루는 저한테는 음향실에서 전화 받으라 하고 그분들은 다른 데 작업을 하러 갔어요.
아무도 없으니까 전원을 켜고 노브 하나를 동작시켜 봤는데 소리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뭔지 모르겠더라고요. 다시 원위치시키고 전원을 꺼놨는데 조금 이따가 무대에서 쫓아
오고 막 난리가 났어요. 윈치 마이크가 무대 바닥으로 떨어진 거예요. 공연이 없어 무대
불이 꺼져 있으니까 안 보이는 통에 사고를 친 거죠. 그래서 실장님한테 호되게 혼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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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PEOPLE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름은 박영철이고요. 세종문화회관, 워커힐 호텔,
예술의전당, LG아트센터(역삼), GS칼텍스 예울마루
에서 근무를 했고, 1980년부터 시작해 약 43년간 음
향을 해왔습니다.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극장을 두루 다니시면서
오랜 시간 무대음향을 하셨네요.
그런 셈이죠. 한 20년 동안은 무대음향 업무를 했
고 한 20년은 관리직으로 일을 했어요. 관리직으로
일할 때는 주로 음향 컨설팅, 자문과 같은 외부 활동
을 많이 한 편이에요.
첫 극장인 세종문화회관에는 어떻게 입사하시게
되었나요?
예전에 청계천에서 앰프 만드는 회사를 같이 다녔
던 친구가 소개해서 가게 됐는데 당시 구술 시험 면
접관이 돌아가신 박래선 선배셨어요. 사실 처음엔 이
런 일인지도 모르고 시작했어요. 군대 막 제대해 부
모님한테 계속 신세 질 수는 없고 일단 아무 데나 들
어가보자 해서 호구지책으로 들어간 게 세종문화회
관이었죠.
스페셜 인터뷰 - 前)LG아트센터 총괄국장 박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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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M STAGE SOUND MAGAZINE VOL.08
출근하면 아무것도 안 시키고 창고에 가둬놨는데 일
주일 만에 제가 열고 뛰쳐나왔어요. 무대에서 선배들
이 마이크 설치하고 있는 걸 뺏어서 ‘제가 하겠습니
다!’ 하고 제가 했죠. 그랬더니 실장님이 너같은 놈은
처음 봤다면서 제일 막내였던 제게 믹싱 콘솔을 만져
보게 해주셨어요. 막내가 그걸 만지기 시작하니까 제
위로 선배들도 다같이 만질 수 있게 됐어요. 저 때문
에 전통이 깨진 거죠.
모든 게 새로우셨을 것 같은데 첫 극장에서의 근
무는 어떠셨나요?
사실 입사할 때만 해도 음향 일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을 못했어요. 그런데 일해 보니까 나한테 딱 맞
는 거예요. 나한테 딱 맞는다는 게, 공고를 다녀서 고
3 땐 작은아버지 회사에 취업한 걸로 해 고등학교를
2년만 다녔어요. 그러고는 1년 동안 제가 직접 만든
앰프하고, 청계천에서 유니트만 사다가 합판으로 통
을 짜 만든 스피커를 짊어지고 다니면서 악기 잘하는
선배 밴드들이 지방으로 콩쿨 나가는 걸 따라다녔어
요. 1년을 그렇게 다니면서도 그게 음향 스탭이 하는
일인지는 모르고 했어요. 그냥 좋아서 따라다닌 건데
세종문화회관 입사를 하고 나서야 ‘이게 직업이 될
수 있구나’ 했죠. 또 제가 소설을 쓰고 싶어서 그 당
시에 소설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공연장의 예술적인
분위기들이 제가 원했던 세상인 거예요. 전자과를 나
와 여러모로 유리하기도 하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건 나에게 최적화된 직업이다 싶었죠.
그래서 제대로 공부를 해보고 싶었는데 상황이 여
의치가 않았어요. 당시 국내에는 관련 서적이 없어 일
본 책으로 음향 공부를 해봐야겠다 싶어 학원 다니면
서 일어 공부를 했지만 그때는 해외 서적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라 책 구하기가 생각보다도 더 어려웠
어요. 나중에 워커힐에서 일할 때 일본 스태프들하고
작업을 많이 했는데 내가 책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 하
니 친구가 일본으로 돌아가고 나서 책을 열 몇 권을
사서 택배로 보낸 거예요. 그래서 그 책으로 공부하고
그랬어요. 고마운 친구죠.
세종문화회관에서는 주로 어떤 공연을 했나요?
공연이야 그 당시에도 다양하게 했어요. 상주 단체
가 꽤 많이 있었는데 국내에서 유일하게 뮤지컬을 했
던 가무단이라는 단체랑 무용단, 시향도 공연을 했고,
당시 서울 시내 공연장에 연극이 대세라 예술적 성향
이 높고 철학적인 연극도 굉장히 많이 했어요. 또 특
이했던 건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해마다 거기서 했
던 거고, 기억에 남는 공연 중 하나는 폴 모리아 악단
의 모든 내한 공연을 거기서 다 했던 거예요.
세종문화회관에서 워커힐
호텔로 옮기시게 된 계기도
궁금합니다.
복잡한 개인 사정이 있었
어요.(웃음) 사실 세종문화회
관에 다니면서 사람들한테
예쁨을 받아서 다른 데 소개
를 많이 받았어요. 워커힐도
그렇고, 우리나라 최초 사내
방송국인 대우 방송국이 생
겼을 때에도 그렇고. 그런데
월급을 배를 준다 해도 몇 번
을 사양했었어요. 실장님이
이상한 놈이라며 이유를 물
어보셨을 때 ‘거기는 무대가
없잖아요’ 대답했죠. 말했던 것처럼 저는 소설을 쓰
고 싶었으니까 관련 분위기 속에서 생활을 하고 싶
은 거예요. 거기서 만나는 예술가들이 좋고 공연과
상관없이 나누는 대화들도 좋아서 공부하는 마음으
로 세종문화회관 근무를 했었어요.
그런데 동생이 대학 갈 시기가 됐는데 집에서 형편
이 넉넉지 않아 대학을 안 보내겠다는 거예요. 그래
서 제가 벌어서 제가 보내겠다고 선언을 했어요. 마
침 이때 지방에 있는 유명 회사의 콘도를 소개 받았
는데 그때 제 월급이 14만 원이었는데 거긴 월급을
50만 원을 준다는 거예요. 그 돈이면 나랑 내 동생
둘 다 학교를 다닐 수 있겠다 싶어 가겠다 하고 세종
문화회관에 사표를 냈죠. 근데 출근 3일 정도를 앞
두고 그 회사에 어떤 큰 경제 사건이 터져서 회사가
시끄러우니 없던 일로 하자며 입사가 무산돼버렸어
요. 중간에 붕 떠버려서 곤란했던 중에 마침 워커힐
에서 세 번째로 프로포즈가 와서 무조건 가야겠다
싶어 워커힐로 가게 된 거예요. 그때가 84년도였어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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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PEOPLE
스페셜 인터뷰 - 前)LG아트센터 총괄국장 박영철
갑작스런 이직 후 워커힐에서의 일은 어떠셨나요?
워커힐에서 하는 공연은 재밌었지만 처음엔 아쉽
기도 했어요. 순수 예술인들과의 교류와 작업이 저에
게는 정말 중요하고 재밌는 공부였는데 위치도 서울
외곽 쪽이고 우선 회사에 충실해야 하니 그 사람들과
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게 처음에는 아쉬웠어요.
대신 일하면서 믹싱에 대해 정말 많이 배웠어요. 선
임이 윤원준씨라고 녹음 엔지니어 출신의 굉장히 유
명한 분이었어요. 당시 우리나라 음반의 절반은 그분
작품이었죠. 그분께 믹싱을 많이 배웠어요.
워커힐에서는 주로 어떤 공연을 했나요?
물랑루즈 쇼나 라스베가스 쇼 같은 쇼 제작을 주로
했어요. 당시 국내엔 그런 쇼 제작 전문 단체가 드물
었기 때문에 일본의 전문 단체가 주로 왔는데 종종
오던 음향 책임자가 항상 저를 옆에 두고 일을 시키
면서 많은 걸 알려줬어요. 그 사람에게도 편집하는
걸 많이 배웠죠.
근무하시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들도 궁금합니다.
일본 미쓰비시에서 만든 어떤 기계가 고장이 났는
39
SSM STAGE SOUND MAGAZINE VOL.08
데 호기심에 뜯어봤다가 아주 혼난 적이 있어요. 워커
힐은 출근이 오후 2시쯤이었어요. 오전에는 아무도
없으니 아침 일찍 나가서 기계를 뜯었죠. 그런데 아무
리 뒤져봐도 이상이 없고 원인을 모르겠는 거예요. 그
러다 출근 시간이 다 돼서 얼른 덮고 조립을 하다가
퍼뜩 생각이 난 게, 기계를 점검할 때 지켜야 할 순서
가 있는데 마음이 급하니까 처음에 그 순서를 안 지킨
거예요. 보니까 퓨즈가 나가서 땀 흘릴 정도로 혼난
적이 있어요.
워커힐에서 약 3년 간의 근무를 마치고 예술의전
당으로 이직을 하십니다. 이때의 이야기도 궁금한
데요.
87년 12월 초에 예술의전당으로 갔는데 그때 운이
좀 좋았어요. 사실 전부터 예술의전당에 가고 싶었는
데 여기는 당시 전부 공채였기 때문에 기회가 드물었
고 제가 대학을 못 갔으니 응시 자격도 안 됐어요. 그
래서 고민하면서 기회만 보고 있었는데 마침 워커힐
내 타 부서의 한 분이 예술의전당 무대기술팀장으로
가신 거예요. 그러면서 조명 한 분과 음향의 저를 뽑
아서 데리고 가셨어요. 정말 운이 좋게 거기에 끼게
된 거죠. 그렇게 제가 원했던 그 세계로 다시 돌아가
게 됐습니다.
극장 분위기는 어땠나요?
솔직히 많은 어려움이 있었어요. 일보다는 사람 때
문에 힘들었던 기억이 나요. 기존에 공채 1기가 있고,
타 부서에서 무대팀으로 전과돼서 온 분들이 있고, 제
가 첫 특채로 입사를 했는데 이렇게 세 집단 사이에
화합이 잘 되지 않았어요. 또 음향 경력 있는 사람도,
음향 공부를 하는 사람도 저밖에 없어서 다 가르치며
해야 하는데 잘 따라주지도 않아서 힘들었죠.
생각나는 일화가 두 가지 정도 있는데, 공연장이 여
러 개 있으면 저기 공연장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가 부
족한 장비를 여기 공연장에서 몰래 가져가 설치를 해
버리는 거예요. 저는 셋업을 해놓고 공연 전에 테스트
를 하는데 어디 소리가 비어서 가보면 스피커가 없
어져 있고. 지나고 보니까 재밌는데 상상도 할 수 없
는 일이 많았어요.
또 다른 건, 독일 공연장을 견학 가는 자리에 제가
가기로 돼있었는데, 누가 경영진한테 가서는 이 사
람 보내면 안 된다고 한 거예요. 그래서 회사에 서류
까지 다 제출했는데 출발 이틀 전쯤 갑자기 다른 사
람으로 바뀌었어요. 처음엔 많이 낙심했지만 오히려
독일을 못 간 게 더 큰 공부가 되기도 했어요. 떠나
고 남은 사람 중 직급이 제일 높은 사람이 저라서 콘
서트홀 운영도 제가 직접 하며 갑자기 팀장 노릇을
하게 된 거죠. 어린 나이에 부장님들 사이에 앉아 긴
장하며 부장 회의에 참석도 했고, 어려웠지만 새로
운 경험이었고 배운 게 많아요. 살면서 항상 느끼는
게, 나쁜 일이 꼭 나쁘지만은 않더라고요.
마음 고생 많이 하셨겠습니다. 워커힐과 예술의
전당에서 하는 공연의 성격이 서로 달라서 이 또
한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그간 쌓아온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지만 공연 장
르가 다르다 보니 어려운 점이 있긴 했어요. 콘서트
홀은 주 업무가 레코딩이었는데 클래식 녹음에서의
마이킹이나 믹싱 방식이 워커힐에서 배웠던 재즈 등
과는 많이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클래식은 예술의전
당에서 처음 해보느라 해외 원서와 인터넷으로 자료
를 찾아보며 어떻게 하는지 공부했어요.
힘들었지만 그만큼 또 좋은 경험이 되었던 시간
이군요. LG아트센터로의 이직은 어떻게 하시게
되었나요?
LG아트센터의 초대 대표인 김의준 대표님이 원래
예술의전당 공연 부장님이셨는데, 그 분이 LG아트
센터로 가시며 음향 파트의 도움을 필요로 하시는
걸 제가 예술의전당 근무하면서 틈틈이 도와드렸어
요. 저를 포함해 여러 사람들을 놓고 약 1년간 이런
저런 미션을 주면서 테스트를 하셨는데 그 중에 제
40
가 뽑힌 거예요. 그렇게 1년 정도 도와드리다가 자리를 옮기면 어떻겠
느냐 제안을 주셔서 망설임 끝에 1997년도에 LG아트센터로 가게 됐습
니다. 차장으로 갔는데 그 월급이 예술의전당에서 받던 과장 월급보다
10만 원이 적었어요. 가족 모두가 반대했는데 당시 사람 때문에 지쳐
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또 새로 공연장을 짓는 것에 대한
욕심도 났고요. 예술의전당에서 공사하는 과정을 지켜보기는 했지만
적극적으로 개입을 하진 못하고 운영만 했거든요. 그래서 새로운 경험
을 해보고 싶기도 해서 집에서 반대하는 걸 무릅쓰고 갔습니다.
공사는 어떻게 진행이 되었나요?
원래 미국 업체에서 하도록 계약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우리는 일 처
리가 좀 빠른 편이잖아요. 그 회사는 우리나라 사람들과 일하기엔 속
도가 너무 느린 거예요. 발주 주고 3달 동안 받은 도면이 하나도 없어
서 이건 문제가 있다 싶어 미국으로 쫓아갔어요. 이제까지 그린 도면
을 요청하니 딱 두 장을 줘요. 여태까지는 스터디를 했고 이제부터 그
리기 시작한다는 거예요. 여기는 우리하고 일하는 방식이 너무 맞지
않다 싶어 그 자리에서 대표님께 전화드려 ‘이 업체하고 거래 중단하겠
습니다’ 했더니 대표님이 제 판단을 믿고 오케이 하셨어요. 그리고 국
내 업체를 새로 선발해서 설계팀만 우리 사무실에 상주를 시켰어요.
도면 한 장 그릴 때마다 저에게 바로 컨펌 받고, 수정할 건 바로 하도록
해서 설계 진행에 속도를 높였어요. 그냥 일에 파묻혀서 살았죠. 처음
으로 무대에서 과로로 쓰러지기도 했어요.
모든 부분을 관장하시면서 정말 고생 많으셨겠습니다. 말씀하셨
듯이 공연장 설계 공사는 처음이라 모든 게 생소하셨을 것 같은데
요.
그렇죠. 이때 음향뿐만 아니라 무역에 관한 것도 많이 공부했어요. 처
음 무역 공부를 시작하게 된 건, 어느 날 대표님이 갑자기 제목을 하나
불러주시면서 이에 대해 기획안을 내라는 거예요. LG는 모든 걸 우리가
직수입해서 수출입 업무도 봐야 했거든요. 어떻게 하나 아무리 궁리해봐도 모르겠어서 기안서에다 제목만 적어
내밀었더니 대표님이 보시고는 저를 쳐다보시더라고요. ‘죄송합니다. 초안만 한 번 잡아주시면 그 다음부터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해서 초안 주신 걸 토대로 다시 기획안 결재를 받았어요. 그리고 일주일 후쯤 대표님께 『무역
실무』라는 책을 받았는데 무역 용어를 모르니 책을 봐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예술의전당에서부터 안면 있
던 당시 태영교역의 윤호철 부장이 무역에 대해 많이 아는 것 같아서 두 달 동안 매일 저녁 그 친구한테 무역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아직도 만나면 제가 은인이라고 늘 말해요.
그리고 공사 과정에서 제일 어려웠던 게 접지였는데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데도 불구하고 적절한 서적을 찾기
스페셜 인터뷰 - 前)LG아트센터 총괄국장 박영철
1 LG아트센터를 방문한 싱가폴 연수단에게
극장을 소개하는 박영철 고문
2 LG아트센터 사내 시상식에서의
박영철 고문
2
1
가 힘들었어요. 음향 시스템은 접지가 두 개가 필요한
것과 같이 공연장에 특화된 자료가 필요한데 없는 거
예요. 어렵게 캐나다 책을 구했는데 설비에 대해서 자
세히 나와있길래 사전 찾아보고 영어 잘하는 친구에
게 물어가며 공부를 했어요. 그러다 마침 또 오사카에
서 접지 관련 세미나를 하는 걸 우연히 알게 됐어요.
예술의전당 조명 직원 중 일본 살다 온 사람이 있었
는데 집이 또 오사카래서 그 친구를 데리고 제 사비
를 들여 가서 세미나를 들었죠. 이런 식으로 공부를
해서 우리나라에서 유일무이하게 스타 그라운드 시
스템을 LG아트센터에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당시엔 생소했던 음장 가변 장치도 LG아트센터
에는 있었죠. 이것도 고문님께서 설계하신 건가요?
음장 가변 장치는 개관 후에 대외비로 진행했어
요. 처음 미국 업체에서 설계한 것 중 약점이 하나 있
었는데, 프로시니엄 아치가 반사가 아닌 흡입면으로
돼서 거기서 소리가 감쇄되어 객석 앞쪽 잔향이 부족
한 거예요. 이걸 해결하기 위해 음장 가변 장치 시장
조사를 해보니 네덜란드에 있는 SIAP이라는 곳의 제
품이 가장 적합하더라고요. 현지로 출장을 가 확인했
을 때도 제일 마음에 들어서 그 당시에 한 5억 정도
됐었는데 대표님께 보고를 드려서 진행을 했어요. 그
리고 옛날에는 희귀했는데, DSP로 지향 각도를 마음
대로 조절할 수 있는 이탈리아제 컬럼 스피커가 있었
어요. 이 스피커도 활용해서 객석 앞쪽 잔향 문제를
보완했죠.
이런 노력들이 있어 좋은 평가 속에 LG아트센터
준공이 완료됐네요. 그 이후의 업무들은 어떠셨습
니까?
개관 후에는 주로 관리직으로 있으면서 전반적인
업무를 했는데, 이제 관리직에 있다 보니 주로 직원
들 감시하는 일을 하게 되잖아요. 맨날 노는 것 같이
보이는 거예요. 그리고 돌아다니면 직원들이 눈치를
보니까 반대로 저도 직원들 눈치가 보이고. 이제 사
무실에 앉아있는 이 시간을 내가 유용하게 써야겠다
싶어서 이때 책 출간 작업을 했어요.
그동안의 공부와 현장 경험을 토대로 책을 집필
하게 되셨군요.
맞아요. 『무대음향설비』가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무
대음향개론』, 『공연장 건축 설계』가 나왔어요. 『무대
음향설비』는 공연장 설계 공사를 하면서 여러 방면으
로 공부하며 모은 자료가 많았는데 이걸 그냥 썩혀두
기가 아까운 마음에 정리를 해서 책으로 낸 거예요.
『무대음향개론』은 자격증 제도가 생기고 처음 나온
교재가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웠던 마음에 음향 공부
하는 친구들에게 조금 더 좋은 책이 있으면 좋겠다
싶어 교재로 생각하고 쓴 책이죠. 마지막으로, 여기
저기 자문을 다닐 때 건축 회사 측과 대화할 기회가
많았는데 이 분들이 생각보다 공연장을 잘 모르시는
거예요. 그래서 공연장을 건축·설계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싶어서 가이드북으로 『공연장
SSM STAGE SOUND MAGAZINE VOL.08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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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PEOPLE
건축 설계』를 썼습니다. 그동안 모은 저만의 자료들
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도움을 주고 싶은 마
음에 책을 쓰게 된 것 같아요.
이제 LG아트센터를 떠나서 GS칼텍스 예울마루
로 이직을 하십니다. 그 계기도 궁금한데요.
LG 정년 한 달 남겨놓고 퇴사해서 여수로 내려갔
어요. 예울마루의 전임자가 이직을 하면서 당장 자리
가 비니까 내가 얼른 가서 이 자리를 충원해야 하는
데 한 달이든 두 달이든 그걸 미룰 필요가 있나요. 10
년 함께 일해온 친구들이 충분히 일을 맡아 할 수 있
는 수준까지 다 성장을 했으니까 더 망설이지 않고
사표를 내서 예울마루로 새로 들어갔죠.
예울마루에서의 근무는 어떠셨나요?
아무래도 서울보다는 덜 바빠서 시간 여유가 많았
어요. 여수가 먹거리도 많고 놀러 다니기도 좋아서
쉬는 날 되면 무조건 여기저기 다니고 산에 가며 운
동하던 기억이 제일 많이 나요. 몇 년 그렇게 살다 보
니 계속 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굉장히 좋은 도
시예요. 공연장 운영도 아주 잘 되었어요. 광주를 제
외한 호남 지역에서는 예울마루가 대표적인 극장이
됐죠.
여수에서 시집도 하나 발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별 연습』이라는 시집이에요. 한풀이죠 한풀이.
내가 50 초반일 때 우리 처가 암에 걸려서 8년 동안
앓다 갔는데 그 기간이 엄청 힘들었어요. 우리 처가
아픈데 우리 어머니는 뇌출혈이 와서 와상 상태에 계
셨고, 또 1년 후 아버지의 치매로 집에 중환자가 3명
이나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렇게 처를 먼저 보내고
더 좋은 시간들을 함께 보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적
은 시집이에요. 사실은 내가 책을 내려고 쓴 게 아니
라 잠 안 오고 그럴 때 틈틈이 썼던 건데 그걸 지금
스페셜 인터뷰 - 前)LG아트센터 총괄국장 박영철
새벽 별 바라기
- 박영철
차가운 별 빛 사이로 새벽이 지나갑니다.
머리위로 쏟아지는 별 빛이
당신이 거기에 있습니다.
어둡고 을씨년스런 새벽하늘에
왜 당신을 사랑했을까요?
당신의 슬픈 눈을 보았을 때
외면할 수 없는 운명이 목줄을 쥐었을 때
나를 보는 내가 거기 있었습니다.
사랑은 겨우 새끼손가락 하나로
완전한 것처럼 굴지만
마음은 늘 서로 조금씩 어긋납니다.
별 빛이 찬 것은 당신과 나의 거리 만큼인가요?
좁혀도 좁혀도 좁혀지지 않는
늘 그만큼의 거리에 있는
당신이 안타까워
때론 차라리 별똥별이고 싶습니다.
머리위로 별빛이
외로움이 우박처럼 쏟아집니다.
외로움의 크기만큼 사랑은 깊어가고
새벽이 저만큼 별 무리사이에서 가물가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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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M STAGE SOUND MAGAZINE VOL.08
자녀분들은 어떻게 되시나요?
아들만 둘인데 지금 하나는 장가 가고 하나는 아직
안 가고 따로 살아요. 원래는 애들 군대 제대하고 학
교 졸업하면 무조건 다 내보냈어요. 너네들끼리 알아
서 살라 하고 원룸 하나씩 얻어서 다 독립 시켰죠. 그
래서 와이프 먼저 보내고는 한 6개월을 혼자 살았어
요. 큰 애는 직장이 멀어 분당에서 따로 살고 있었고
작은 애는 이태리에서 공부 중이었기 때문에 큰 집에
나 혼자 썰렁하게 6개월 지냈는데, 이러다가 내가 병
걸릴 것 같더라고요. 도저히 안되겠어서 안양에 조그
만 집을 얻어 두어 달 더 혼자 살았는데 아버지 외롭
겠다며 분당 사는 놈은 안양이면 회사 다닐 수 있다
하고 다른 놈은 공부 마치고 졸업해서 들어와서 결국
남자 셋이서 살기도 했어요.
같이 살고 계시는 분이 보더니 이거 그냥 묻어놓지
말고 책으로 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게 됐어요.
예울마루에서의 4년을 마치시고 지금은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계신가요.
지금은 강동문화재단하고, 아직 설립 전이지만 GS
재단 TF팀의 리노베이션 작업에 자문을 하고 있습니
다. 그래도 시간이 많이 남아서 유유자적하고 있는데
이제 무릎이나 허리가 예전 같지 않아서 산에는 안
다니고, 당구 치는 것과 그림 그리는 걸 배우러 다니
고 있어요.
정말 바쁘게 살아오셨는데 그 속에서 결혼은 어
떻게 하게 되셨습니까?
결혼은 86년도에 워커힐에 있을 때 했어요. 우리
이모하고 우리 처 이모가 서로 동서지간인데 이모들
끼리 ‘우리 조카 있어’ ‘우리도 조카 있어’ 해서 소개
를 받아 연애 없이 결혼하게 됐어요. 처음에 만났을
땐 결혼 생각이 없었어요. 그 당시 제 머릿속에는 돈
모아서 일본 유학 갈 생각밖에 없었으니까요. 한
700만 원 있으면 일본 가서 한 2~3년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3년짜리 700만 원 적금을 들었는데 적금 겨
우 세 번 들어갔을 때 갑자기 결혼하게 됐어요. 그래
서 나중에 와이프한테 ‘일본 가서 공부를 하고 올 테
니 당신이 애를 3년만 키워주면 안 될까’ 했더니 심
각한 상황이 벌어져서 포기했습니다. 대신 부천대학
교 야간대학에 입학했는데 수업 들어가보니 생각했
던 수업 분위기가 아닌 거예요. 뒤에 앉아있는데 강
의실 뒷문 열어놓고 정신 사납게 다들 들락날락하고.
교수도 나보다 어린데 내가 앞에 앉을 수는 없잖아
요. 학교에서 공부는 안 하고 교수들하고 술만 먹고
있으니까 이건 아니다 싶어서 한 학기 다니고 말았어
요. 교수가 계속 전화해서 등록만 하면 졸업장 내준
다고 했는데도 거절했어요. 공부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기로 하고 이후로 학교에 대한 미련은 다 버
렸죠.
(사)무대음향협회의 기원이 되는 소리회를 93년
도에 창립하셨는데 어떻게 만들게 되셨는지 궁금
합니다.
주석길 선배랑 둘이서 점심 먹다가 선배가 먼저 말
씀을 하신 게 동기가 됐어요. 기존에 협회가 있었는
데 그건 방송계와 업체까지 모두 포함된 곳이라 각자
의 주장이 다르다 보
니 지지부진하다가 1
년 정도 후에 흐지부
지돼버렸어요. 그래서
주석길 선배가 협회를
만들고자 하는데 ‘네가
진행을 해보면 좋겠다’
하시더라고요. 하늘 같
은 선배님이 시키시니
할 수 없이 ‘예 알겠습
니다’ 하고 일단은 서
울 유명 공연장의 음
향실을 대표하는 분들
께 모여주십사 연락을
드렸어요. 그렇게 모인
자리에서 여기 모이신
분들과 제대로 된 협
회를 만들어보고자 한
다 말씀드렸고, 그 모
임명을 ‘헤드 테이블’
이라고 지어 수차례
회의를 거친 후에 ‘소
리회’라는 이름으로 협
회를 만든 거예요.
헤드 테이블이라는 준비 과정을 거쳐서 소리회가
탄생했군요.
그렇죠. 사실 협회를 어떻게 조직하고 운영하는지
를 모르니 일단 공부를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미국
유니온의 조직 사례 같은 걸 스터디하고 제 나름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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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PEOPLE
스페셜 인터뷰 - 前)LG아트센터 총괄국장 박영철
의 기준을 만들어서 선배들한테 확인 받고 협의를 했
어요. 제일 강력하게 주장했던 게 뭐냐면 업체는 절
대 개입되면 안 된다는 것. 어떤 형식으로든지 누군
가의 이익이 걸리면 이 협회는 언젠가는 깨지게 돼있
으니 그런 개입을 막으려면 업체를 가입시키면 안 된
다는 걸 중요시했어요. 만약 업체 소속 사람이 개인
자격으로 가입하고자
한다면 그건 생각해
볼 문제지만 일단은
공연장에 근무하는
사람, 자격증 소지자,
그 외에는 안 된다는
규칙을 세웠었죠. 이
렇게 약 6개월의 준
비 후에 리틀엔젤스
예술회관에서 소리회
를 창단했습니다. 창
단할 때 회원은 약
30명 정도 됐어요.
서울 큰 공연장의 감
독님들은 거의 다 들
어오신 거라고 봐야
죠. 그래서 서로 교류
할 수 있도록 소리회
소식지같은 것도 열
심히 만들었었어요.
초기에는 A4지로 프
린트 해서 마치 ‘호외
요’ 하듯이 돌리고(웃
음). 제가 공부하던 것,
번역한 것 등을 기술 자료라고 해서 나눠주고 그랬
죠.
협회가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하기까지 많은 발
전이 있었습니다. 협회를 만드신 분의 입장에서 지
금의 협회를 바라보시기에 어떠십니까?
▲ 소리회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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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M STAGE SOUND MAGAZINE VOL.08
우리가 처음 구상했던 대로 잘 운영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후배들한테 참 고마워요.
하나 말하고 싶은 건, 사라지는 회원들에 대해서 임원진들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거예요. 왜 회원들이 빠져
나가고 협회에 관심을 안 갖게 되느냐에 대해 고민하고 개선 방안을 만들어야 해요. 개개인으로 봤을 때 내가 얻
는 게 없다면 굳이 회비까지 내가면서 가입해 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에 회원들한테 무엇을 제공할지는 임원진이
항상 고민해야 될 문제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협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원래 제가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게 전기음향학회를 만드는 거였는데, 협회에서 꼭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일단 학회는 논문이 필요한데 논문을 꼭 텍스트로만 만들어야 되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고 봐요. 예를 들어 예술
작품도 논문으로 인정을 해주듯이 우리가 믹싱 디자인한 것도 논문으로 볼 수 있거든요. 스타급 엔지니어들이 믹
싱 설계한 자료라면 우리 후배들한테 굉장히 큰 도움이 되지 않겠어요. 그래서 이런 것들을 기록으로 계속 남기기
위해서 학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고문님의 뒤를 이어 음향을 하고 있는 후배들에게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가 학교에서 강의할 때 항상 종강하면서 했던 말이 있는데, 음향에 목숨 걸지 말라는 거예요. 음향은 ‘내 삶을
어떻게 영유할 것인가’에서 ‘어떻게’에 해당돼요. 그게 결국은 내 삶의 질을 만들어내는 거니까 소홀히 하지는 않
되, 거기에 너무 매몰되지 않아야 된다는 말이죠. 가끔 보면 이게 뒤집히는 경우가 있어요. 예를 들어 가수가 있고
가수 마이크 스탠드를 설치하는데 영상 촬영도 있어요. 이때 마이크를 입에 정확하게 대야 한다며 스탠드를 바짝
올리는 친구들이 있어요. 전체를 못 보고 음향만 생각하는 거죠. 음향적으로 어느 정도의 퀄리티를 찾을 수는 있
어도 전체적으로 봤을 땐 누가 이 사람의 능력을 인정해줄까 생각해요. 조화로워야 음향도 사는 거예요. 이런 것
과 같이 음향에만 목숨 걸지 말고 전체를 보며 살아갈 수 있었음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없습니다. 그냥 막 살자가 저의 플랜입니다. SOUND
STAGE
지난 4월 22일 이천아트홀에서 암전뮤지컬 <귀를
기울이면>이 이머시브 시스템을 도입해 선보이며 성
공적으로 끝마쳤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로부터 일
주일간인 장애인의 날 주간에 막을 올린 이 공연은 시
각 장애인 배우가 장애에 대한 차별이 없어져야 한다
는 주제를 연기로 직접 전달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
공연은 60여 분 가까이 암전 상태로 진행되었다. 익
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인해 어린이를 비롯한 관객들의 어수선함이 있었지만, 첫 장면에 객석 뒤에서 들려
오는 배우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관객들의 집중도와 흥미가 자극되었다. 이번 공연을 위해 이천문화재단,
라이프에디트, ㈜사운드솔루션이 협업하였다. 이머시브 시스템은 ㈜사운드솔루션의 Adam 프로세서를
통해 FLUX社의 Spat Revolution으로 구동되었으며, Qlab을 통해 데이터를 OSC로 전송하는 방식이다.
이머시브 시스템은 작품의 주제와 걸맞게 기존 공연과 같이 프로시니엄이라는 액자 속 작품을 관람하는
것이 아닌 24개의 스피커 속으로 관객들이 들어와 시각적 요소를 제한된 가운데 청각에 집중하여 몰입감
있는 음향 경험을 선사하였다.
이머시브
암전 뮤지컬
귀를 기울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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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FORMANCE REVIEW
PERFORMANCE REVIEW - 이머시브 암전 뮤지컬 '귀를 기울이면'
글 | 김 종 현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김 태 협 (드림스케이프, 전)(주)사운드솔루션)
취재 | 김 홍 연
편집 | 김 수 정
모두에게 장벽 없는
청각에만 집중해 몰입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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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M STAGE SOUND MAGAZINE VOL.08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귀를 기울이면> 이천 공연 기술 부분 총괄 진행을 맡은 김종현입니
다. 현재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주)사운드솔루션에서 이머시브 오디오 시스템 기술 지원을 하고 있
는 김태협 대리입니다. 저희 (주)사운드솔루션은 이머시브 사운드가 적용되는 콘텐
츠, 공간 등 여러 요소에 맞춰 ADAMSON의 Fletcher Machine, ASTRO Spatial
Audio, SPAT Revolution 등 여러 이머시브 오디오 시스템을 최적의 구성으로 제안·
공급하고 있습니다.
이머시브 사운드 공연이란 어떠한 공연인가요?
이머시브 사운드 공연이란 음향이란 요소를 통해 관객들에게 몰입감 있는 음향을
전달하는 공연을 이야기합니다. 이번 공연에서는 관객을 기준으로 전면 스피커와 서
라운드 스피커를 통해 몰입감 있는 사운드를 전달하고자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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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은 없이, 기회는 같이, 행복은 높이’ 슬로건에 걸맞는 장애인의 날 특별 기획
으로써 디지털 시대에 맞는 셋팅과 음향인·예술인의 협업으로 주제를 정확하게 표
현한 완성도 높은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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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FORMANCE REVIEW
[그림 1] 공연 시스템 블록도
[그림 2] SPAT Revolution 레이아웃 디자인
PERFORMANCE REVIEW - 이머시브 암전 뮤지컬 '귀를 기울이면'
공연에 활용하신 SPAT Revolution 시스템 디자인에 관하여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번 공연에서는 이천아트홀의 음향 시스템을 일부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기존 시스
템과 호환이 가능한 Dante Network를 기반으로 모든 오디오 시그널을 처리하도록 구
성하였습니다. SPAT Revolution의 프로세싱을 위해서 (주)사운드솔루션의 ADAM
Server를 사용하였고 이를 통해 시스템을 보다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
습니다. 시스템의 시그널 플로우는 아래 [그림 1]과 같이 구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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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M STAGE SOUND MAGAZINE VOL.08 49
‘보는’ 공연이 아닌 ‘듣는’ 공연이라 아무래도 음향적 요소가 중요했습니다. 대표님이
처음 공연을 만드실 때부터 소리를 통한 극적 요소의 전달을 원하셨고, 이머시브 시스템
을 적용하여 청각적 정보에 시각적 정보를 더해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청각 정보보다 자
극·감각량이 큰 시각 정보가 배제된 채 관객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가능하면 소리로 많
은 정보를 담고자 했고 자연스럽게 전달되는 데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프론탈 스피커 ADAMSON IS10P 5통, 서브우퍼 ADAMSON Spektrix Sub 2통, 서라
운드 스피커 RCF AyraPro5 17통, 프런트필 NEXO PS-12 5통으로 스피커 시스템을 구
성하였습니다. 이번 공연은 전면에서 드라마 대부분을 표현하였기 때문에 전면에 설치
된 5개의 프론탈 스피커 시스템의 확성이 객석 전체에 고르게 전달되어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스피커의 높이가 많이 높아져야 했고, 그로 인해 무대
에 가까운 관객석의 경우 전면에 표현되는 음상이 너무 높게 나타
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SPAT
Revolution에서 프런트필 프로세스를 위한 전용 Room을 구성하
고 별도의 스피커를 추가로 배치하여 음상을 효과적으로 낮출 수
있었습니다.
이머시브 사운드 렌더링 알고리즘은 WFS와 VBAP, 그리고 오퍼
레이팅 모니터링을 위한 바이노럴 렌더링 알고리즘을 사용하였습
니다. 음원의 성격에 따라 렌더링 알고리즘을 달리 사용하였는데,
앰비언스 또는 장면의 분위기를 나타내고 객석 전체에 정밀한 음
상을 전달해야 하는 음원의 경우 주로 WFS를 사용하였고, 사이
렌, 자전거 소리와 같이 빠르게 움직이는 음원에서는 VBAP을 사
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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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체의 단순한 움직임뿐 아니라 캐릭터별로 다른
느낌을 주기 위해 많이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각 캐
릭터의 특징에 따라 걷는 속도와 발걸음 소리를 다
르게 표현하고 시간과 감정에 따른 캐릭터의 변화를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효과음이나 배경음
같은 요소들을 넣고, 시각장애인인 주인공의 움직임
이 가지는 특성을 고민해서 적용하는 등의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관객이 듣게 되는 이머시브 사운드를
엔지니어가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없다는 문제
가 있었습니다. 리허설은 객석 한가운데에서 오퍼레
이팅을 할 수 있었으나,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객석 중앙이 아닌 컨트롤룸에서 오퍼레이팅을 진행
해야 하기 때문에 정확한 모니터링을 하기 어려웠습
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SPAT Revolution에서 모
니터링을 위한 바이노럴 모듈을 추가하여 운영했고,
리허설 중 디자인했던 요소들을 정확하게 청취할 수
있었습니다. 모니터링에 관한 이슈는 이머시브 사운
드 공연을 진행할 때 항상 아쉬운 부분이었는데 바
이노럴 모듈을 이용한 모니터링 기능을 이용함으로
써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부분도 SPAT
Revolution의 장점인 것 같습니다.
[그림 3] SPAT Revolution의 랜더링 Room
[그림 4] 바이노럴 랜더링 모듈
PERFORMANCE REVIEW - 이머시브 암전 뮤지컬 '귀를 기울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