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 사 니 다 이근욱 2022년 6월 8일 50만원 이석동 부이사장 2022년 8월 11일 1,000만원 덕천군 영동공종 2022년 8월 11일 100만원 이오주 2022년 8월 11일 100만원 이연 여성이사 2022년 8월 11일 100만원 이영일 2022년 8월 25일 300만원 승경원 건립기금 성자 방문
감 사 니 다 이강주 대전시지원장 2022년 8월 31일 100만원 임영대군종 2022년 9월 5일 1,500만원 이영주 2022년 9월 8일 100만원 이규복 고문 2022년 9월 21일 400만원 경녕군 익군종 2022년 9월 21일 300만원 금천구분원 2022년 9월 21일 100만원 승경원 건립기금 성자 방문
2022.9.15. 재 늘에서 본 부지전경 1 늘에서 본 부지전경 2 기념관1 지붕 시공 기념관1 지붕 방수시 시공 기념관1 외벽 라임스 시공 기념관2 내부 및 기념관3 가설비계 체 승경원 공사 장
2022 / 9 · 10월 (권 295) 숭 조 돈 종 조고제가 주석던 양주 암사지 관련기사 21면 사진 · 이상 문위원 4. 본원 소식 · 지원 · 분원 · 종 · 봉 소식 10. 천성의 기부사업가, 이중근 부영그룹 장 12. 제8 전국 동시 지방선거(22.6.1.) 당선자 추가 12. 종친 동정 및 영광의 얼굴 18. <지원방> 대구광역시지원 21. 조고제와 암사 …………………………………………………………………… 본원 문부위원 이상(李尙勳) 22. 서울시 25개 구 분원장, 이귀남 이사장 초청 고(高會) 25. 인군 묘역 및 신도비 26. 건지산 봉의 내력 ………………………………………………………………… 건지산봉 장 이병(李丙勳) 30. 전주 건지산에 건립될 승경원 …………………………………… 전주 덕진구분원장 · 전주이씨수 총무 이정길(李廷吉) 32. <李花광장> 역사는 ……………………………………………………………… 본원 이사 · 문박사 이범직(李範稷) 34. 조선왕릉실록(11) / 단종대왕 장릉 ……………………………………………………………… 본원 문이사 · 시인 이규원(李揆元) 38. 창경궁~종묘 연결 개에 즈음여 ………………………………………………………… 서울 노원구 명예분원장 · 건축사 이종 40. 만로 보는 역사이야기 109 ……………………………………………………………………… 본원 문위원 이전경(李田景) 42. <세계의 왕실 이야기>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덴마 왕실 …………………………………………………………… 본원 문위원 · 소설가 이기윤(李起潤) 47. 날지 못는 천사 …………………………………………………………………… 서울 양진초등교 4년 정민 48. 드라마「太宗 이방원」을 보고 ……………………………………………………… 양대 명예교수 · 문박사 이완재(李完宰) 50. 우리 문 ‘가’의 아름다움 …………………………………………………………………… 본원 문부차장 이병(李丙赫) 52. 제주가족 오름동 창설 ……………………………………… 제주도지원장 · 계성군 제주도종친장 이철(李哲憲) 54. 남이 장군 아내와 귀신 …………………………………………………………… 본원 상임고문 · 수가 이승창(李承昌) 56. 조선의 삼인결의와 단경왕 신씨 ………………………………………… 본원 문위원 · 세종대왕신문 발인 이상주(李相周) 59. 생사(生死)가 고(苦)인 것을 …………………………………………………………… 본원 문부 수석차장 이병준(李炳俊) 60. 배움을 갈망과 열정 사이 ………………………………………………………………… 前 봉군 공무원 이문(李文學) 63. 시(漢詩) 수 / 지족(知足) ………………………………………………………………………………… 을지문덕(乙支文德) 64. 진경 박사의 치과계의 최신 동 ………………………………………………………………… 서울뉴욕치과 원장 진경(陳京熙) 66. 나의 제언 ……………………………………………………… 서울 은구분원 상임고문 이남식(李南植) 67. 영시( 英 詩 ) 수 / THE ARROW AND THE SONG (살과 노래) ……………………………………………………………… H.W. Longfellow (리 롱로우) 68. 아버지께 무공장을 드립니다 ………………………………………………………………………………………… 이재유(李在囿) 70. 그립다는 말조차 …………………………………………………………………………………………… 白思 이진우 71. 가슴으로 쓰고, 눈물로 읽는 어머니 봉양일기 ………………………………………………………………… 세종대왕신문 문전문기자 주정자 72. <방착(方下着) ⑧> 마음을 내려놓고 76. 승경원 건립기금 모금 성자 82. 별원원 가입을 영니다 발인/이귀남 집인 겸 주/이규원 발처/사단법인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주 소/서울 종로구 돈문로 89 우번/03131 전 /(02)765-2124 스/(02)742-1676 인쇄인/이재복 인쇄처/(주)경인인쇄 전 /(02)2272-8063 발 /2022년 9월 1일 등 록/1973년 12월 31일 이지(http://rfo.co.kr) 이메일([email protected]) 값 2,000원 (1년 6, 정기구독 10,000원)
4 李花 295 제707 상임이사(2022.7.4.(월) 10:00) ◎ 참석 : 재적 상임이사 13명중 상임이사 11명 참석 ◎ 의안 심의 결과 · 2022년도 사직대제 봉위원 구성의 건 - 기구를 원안대로 승인 . · 인원 석물 설치에 관 건 - 묘역조성 시공업체로 중앙석재조경(주)를 선정 . · 인대군종에 관 건 - 보류기로 . ◎ 기사 · 유브 시에 대여 - 1인 방송체제를 사직대제 봉 전에 검기로 . · 인원 기신제 봉의 건 - 7월 16일() 도래는 제17주기 제을 본원에서 주관기로 . 본원 소식 ◇ 별원원 가입 안내 ◇ - 가입자격 : 종친 개인이나 종 단체 - 가 입 비 : 200,000원 이상 - 연 비 : 연 30,000원 이상 (종 단체:100,000 이상/ 가입 당 연도는 연비 면제)
李花 295 5 임시 상임이사(2022.8.11.(목) 15:00) ◎ 참석 : 재적 상임이사 13명중 상임이사 12명 참석 ◎ 의안 심의 결과 · 승경원 건립에 관 건 ①위(位版) ➪ 2세조부 17세조까지 32위로서 양위분을 1에, 1제상에 8위씩(4)면 4실에 4제상, 글씨는 公·府君은 되 諱·名은 삭제 ②진설도(陳設圖)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와 대예전의(大韓禮典儀) [大夫士庶人時享 陳設圖]를 보완 여 잔(盞)의 기(器) 수를 3잔에서 1잔으로 축소고 촉대(燭臺) 2기와 조과(造果) 3기를 증설 ③승경원 간비는 자연석으로 제작여 승경원 외부에 설치 ④승경원 건립비와 성비는 승경묘 내부에 조경과 어울리게 자연석으로 제작여 설치 ⑤승경원 준공식을 11월 24일(목) 개최(상에 따라 변경 가능) 기로 . 제708 상임이사(2022.9.5.(월) 14:00) ◎ 참석 : 재적 상임이사 13명중 상임이사 11명 참석 ◎ 의안 심의 결과 · 2022년도 사직대제 봉의 건 - 9월 24일() 정오에 사직단에서 봉기로 . · 2022년도 칠궁제 봉일자 변경의 건 - 5월 10일 청와대 완전 개방으로 인 칠궁 무일이 요일로 변경됨에 따라 10월 18일()로 변경고, 매년 10월 셋째주 요일에 봉기로 . ◎ 기사 · 승경원 성비 관련여 개인은 500만원 이상 납자까지 기로 . 본원, 懷仁園 친례 봉 본원은 인원 제 주관단체였던 선성군종가 봉를 반납(22.4.4.접수)에 따라, 섭 단체가 지정되지 않아 7월 16일 제17주기 인원 제을 본원에서 주관, 100여 명이 참석 가운데 친례로 봉다.
6 李花 295 인원(懷仁園)은 은 세손의 원(園)으로, 남양주시 금곡동 유릉 부속림 영원 내에 위치다. 제관명단 : 초관 사손, 아관 관주 재정이사, 종관 부용 제1조직이사, 집례 용 이사, 찬례 규돈, 감찰 주, 대축 도재, 근시축사 종국, 근시재랑 춘묵, 집준관 준우, 집사자 , 전사관 석, 원사 병근, 알자찬인 남정, 설 범민 전례위원. (성자 명단 84면 참조) 본원 미술위원, 제5 이미술 개최 본원 미술위원(위원장 男兒)는 8월 6일부 8월 20일까지 강원도 삼척시 송종관미술관에 서 제5 이미술를 개최다. 이번 전시에는 이남아 장(서예)을 비롯 석구(동양), 성영(동양), 순(서양), 용(서 예), 일구(서예), 재옥(조각), 연(동양) 종친 작가 8인이 참여다.
李花 295 7 덕양군종, 시조고 441주기 기신제 봉 덕양군종(이사장 有燮)은 7월 20일 새벽 4시에 경기도 성남 시 궁내동 재실(정사)에서 중종 제5왕자 덕양군 시조고 441주기 기신제를 30여 명의 종친이 참반 가운데 엄숙 봉다. 초관 성근 종손, 아관 정주 정릉봉 전례이사, 종관 용섭 대의원, 집례 종림 전례이사, 대축 동섭 봉산군이사, 좌집사 종, 우집사 찬 전례위원이 봉무다. <덕양군종> 진안대군 5세손 대군 석 건립 진안대군 괴산지종중(장 종철)은 8월 27일 요일 11시, 충북 괴산군 괴산읍 신기리 도락동 마을 입구에서 진안대군 세거지와 진안대군의 5세손 대군(諱 瑀)의 석 건립 제막식을 거다. 석은 대군의 24세손 세영과 수영 등 종제들이 사비로 건립됐다. 이날 제막식에는 괴산종장, 방 종장, 충북도의 의원, 괴산 종손, 신기리 이장, 대군 처가인 성주이씨 등 종친들과 마을 주민 등 100여 명이 참석다. 진안대군 5세손 대군은 단종이 세조에 양위는 것을 보고 도락동 북지곡에 은거 여 두문불출였다. 증손인 윤(輪) 목도, 복(輻) 설, 원(轅) 지장, 진(軫) 괴산, 식 (軾) 방죽안 5제가 중시조가 되어 각 지역에서 집성촌을 이루어 많은 손을 두었다. 도락동은 진안대군 손들의 성지이자 정신적 고이라고 수 있다. <제공 : 진안대군 괴산지종중>
8 李花 295 지원 ․ 분원명 (지원 ․ 분원장) 수 일시 장소 참석 인원 중요의제 사진 부산광역시(龍欽) 48 22.6.27(수) 11:30 지원 의실 28 △예산 결산 승인 ① 대전 중구(勉宰) 32 22.7.12() 11:00 남촌관 25 △예산 결산 승인 ② 강원 원주시 71 22.7.23() 11:00 민생관 39 △예산 결산 승인 △신임 분원장 : 德宰 ③ 천군(奉根) 41 22.8.6() 11:00 정 총무 자 30 △예산 결산 승인 창군(康國) 2022 22.8.18() 18:30 일순이 천장어 15 △예산 결산 승인 충북 청주 청원구(秀哲) 64 22.7.18(월) 11:00 지원 의실 16 △예산 결산 승인 경남 거창군(淙演) 37 22.7.23() 11:00 분원 사무실 59 △예산 결산 승인 ④ ①부산광역시지원 ②대전 중구분원 ③강원 원주시분원 ④경남 거창군분원 정기총 결과보고 ◇ 정기총 개최 및 결과보고에 대 안내 ◇ 정기총 개최보고는 총개최 7일전, 정기총결과보고는 총개최 15일 이내에 의록, 의서류, 임원명단, 총사진을 첨부여 본원 조직부에 제출 주시기 바랍니다.
李花 295 9 단체명 전임 신임 비고 세종‧충청남도지원 석주(奭周) 찬구(燦九, 의군 15대) 22.7.22 월산대군종 주영(柱英) 근(漌鎬, 월산대군 18대) 22.4.29.정기총 敬陵봉장 창‧공릉봉 계(啓珩) 원섭(元燮, 덕양군 14대) 22.5.31.정기총 오릉왕자돈종장 廟壇陵 園號墓 尊 號 日 時 場 所 在位者 主 管 祭 官 名 初獻官 監 察 亞獻官 贊 者 終獻官 大 祝 典祀官 陵 司 祝 史 齋 郞 執尊者 執事者 謁者 解說 長陵 仁祖大王 仁烈王后 韓氏 6.17 11:30 경기도 주시 장릉로 60 장릉봉 璿柱 錫杓 車文誠 鍾國 賢柱 範春 喆宰 吉中 根洙 載興 承鎔 泰喜 道宰 秀奉 隆陵 莊祖懿皇帝 獻敬懿皇后 洪氏 7.12 11:30 경기도 성시 로 135 융건릉봉 (장 鎬洛) 俊在 承榮 洪敬熹 振儀 炳吉 正在 鎬奭 承在 光在 愚昆 龍在 京九 南政 鎬憲 明陵 肅宗大王 仁顯王后 閔氏 仁元王后 金氏 7.13 11:30 경기도 고양시 서오릉로 58 명릉봉 (장 玄昌) 光源 炳根 閔根弘 泰喜 金峻經 道宰 吉中 喆宰 成柄 鍾國 範玟 浩燦 秀奉 振勳 思陵 定順王后 宋氏 (斷種大王妃) 7.17 11:30 경기도 남양주시 사릉로 95 장사릉봉 (장 東宰) 東宰 達浩 宋燾錫 東成 鄭琪升 錫雨 起澤 点植 政柱 鍾大 週日 廷基 炅根 起秀 健陵 正祖宣皇帝 孝懿宣皇后 金氏 7.26 11:30 경기도 성시 로 150 융건릉봉 (장 鎬洛) 鎬洛 起星 金長五 正在 鎬憲 振儀 揆鎬 浚圭 承在 鍾明 光在 京九 華永 在鎬 孝陵 仁宗大王 仁聖王后 朴氏 8.18 11:00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길 100 릉봉 (장 忠九) 金龍圭 光九 朴勝章 顯揆 鼎洙 東成 浩燦 殷燦 起鍾 殷雨 鍾國 秀奉 錫雨 南懋 獻陵 元敬王后 閔氏 (太宗大王妃) 8.27 11:00 서울시 서초구 인릉길 300 릉봉 (장 鍾) 廷日 延燮 閔承基 筍宰 奕根 起洙 喆宰 炳根 哲秀 龍宰 在春 炅根 道宰 起秀 ■ 대자 변경 ■ 제봉 이보 정기구독 기간이 금번 (권 제295)로 만료되는 종친에게는 별도로 지로 용지를 첨부여 보내드립니다. 지로 용지에 정 주소와 성을 기재고, 1년 구독료 1만원을 가까운 은이나 우체국으로 납부여 주시기 바랍니다. 문의 (사)전주이씨대동종약원 문부 (02)765-2124
10 李花 295 승경원 건립기금 3억원 쾌척 ” 천성의 기부사업가, 이중근 부영그룹 장 우리나라 아 대 브랜드 중 부영(富 榮)그룹의 ‘사랑으로’는 목 가정을 의 미는 원앙 쌍으로 되어, ‘사랑’ 을 상징다. 50년 간 기업가로, 건축가로 살아오며 30년 가까이 국민 주거문를 선도온 부영그룹의 수장 자리를 지켜 온 이중근(李重根, 宇庭, 완창대군 18대손 ‧ 시조39세) 장은 소 ‘사 랑’을 실천는 천성의 기부사업가이다. 1941년 전남 순천에서 나고 자라 건국대 교 정치외교과에 입였으나 어려운 가 정으로 중, 이 독사로 사 과정을 이수고 고려대교 정책대원 정 석 사 및 박사과정을 졸업였다. 1997년에는 37년 만에 건국대교에서 명예졸업장을 받 아 배움의 을 었다. 자수성가 부자 1위, 교육기부로 사에 원 이중근 장은 어린 시절 가난을 이겨내고 부를 쌓아 올린 자수성가 부자1위로 꼽 다. 때문에 사에 원고자 는 의지는 남달랐다. 교육기부에 매우 적극적인데, 소 ‘교육재는 번 쓰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 재생산되기 때문에 미래에 대 자’라는 지론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다. 교육기부 동은 1991년 순천의 부영초등 교 신축 기증을 시작으로 전국 초중고 · 대 의 기숙사, 도서관, 체육관, 복지시설 등을
李花 295 11 신축 기부다. 이중근 장이 그동안 전국의 교에 기부 기숙사 ‘우정사’가 100여 곳이 넘고, 교육복지 시설에 대 기부도 60여 곳이 넘는다. 또 2003년부는 국내 뿐 아 니라 아지역 및 아리카 각국에도 교시 설을 기증고 아노와 칠 기증, 졸업식 노래 보급 동 등을 벌여왔다. 교육에 대 애착은 사동으로 이어져, 건국대 이사장(1999~2001), 우정원 이사 장, 우정교육문재단 이사장, 세계권도 봉사재단 총재를 역임며 각급 교 지원 사업과 교육동을 이어간다. 이러 다방면 의 공로를 인정받아 국내외에서 많은 장을 받았지만, 제21 인간상록수 상 수상을 이중근 장의 ‘애심 ‧ 애국심 ‧ 교육 심’을 인정게 된다. , 우정문고를 설립여 역사서를 발간, 교와 정기관은 물론 각종 단체에 기부를 였다. “우리 역사를 손들에게 있는 그대 로 알게 는 것이 나이든 사람들의 의무”라고 강조는 이중근 장은 ‘올바른 역사 교육은 의무’라는 생각으로 『6 ‧ 25전쟁 1129일』 과 요약본 약 1,000만부를 발간여 배부 고, 광복 70주년을 앞두고 『광복 1775일』 도 냈다. 이 책들은 각각 6 ‧ 25전쟁 발발부 정전정까지, 1945년 8월 15일부 1950 년 6 ‧ 25가 발발기의 격동기를 년체로 정리 역사서다. 또 1392년 조선 개국부 1945년 8월 14일까지의 역사를 『조선개국 385년』 『여 명 135년 48,701일』 『미명 36년 12,768일』 에 담아 우정체로 냈다. 이 책들은 이중근 장의 단이나 의견은 배제고 사실을 있 는 그대로 잘 정리다는 가를 받았다. 기부는 요 곳에 는 것 이중근 장의 기부는 ‘요 곳에 시설을 기부는 것’이라고 다. 전국 6만 4,460개 경로당, 시·군·구 지 244 개, 시도연 16개 조직으로 구성된 대노 인의 부장으로 7년간 재임시에는 경로당 200여 곳을 지어 기부고 전북 무주에 대노 인 ‘우정연수원’을 신축 기부였고 독거노 인 지원, 노인사 지원 등을 꾸준 왔다. 금년 6월에는 전남 여수시 노인들의 복지 증진을 위 노인관 ‘우정원’을 신축여 대노인 여수시지에 기부다. 2017년 제17대 대노인 장에 당선되어 3년간 노인건강, 복지상, 노인 일자리 창출 등 노 인권익 옹를 위 앞장섰다. 이러 이중근 장의 보는 교육 및 문시 설 기증, 장사업, 역사 알리기 등 다양 분야에 서 발 사공 동을 치고 있으며 재 까지 기부 금액만 약 1조원 이상에 이른다. 이중근 장은 조왕자 완창대군 손으 로서 종약원과의 인연도 40년이 넘는다. 양성을 위 설립된 ‘이장’의 운영위원 장을 역임며 4억원 이상을 수습 · 기고, 종약원 부이사장으로 재임면서 대외적으 로 건설적인 도움을 많이 주었다. , 최근에는 승경원 건립기금으로 3억 원을 쾌척여, 승경원 건립의 재정적인 어려 움을 소여 완공에 박차를 기다. 이중근 장은 80여 년의 세월을 쉼 없이 최선을 다 열심 달려왔고, 그 적은 곳곳 에 ‘우정(宇庭)’, 그리고 ‘사랑으로’ 남고 있 다. 대민국의 주건설 시장의 성장과 께 치열게 살아왔지만 아름다운 기부는 이중 근 장의 인자 미소로도 감출 수 없다. <집부>
12 李花 295 ■ 전라남도(구례) ■ 경남 창원례시 광역의원 기초의원 창(絃昌) 천수(千洙) 도군 19대 前전라남도의원 덕천군 21대 前창원시의원 제8 전국 동시 지방선거(22.6.1.) 당선자 = 당선을 축드립니다!!! = 珍福 종친, 대령비서실 정무수석 독립운동가 故 이정, 대령창 수상 는 격문을 산다 체되어 서대문무소에서 7개월 복역 면소처분을 받았다. <자료제공 : 故 정 종친의 장손자 문> 일제 강점기 때 국내 일 운동을 던 故 이 정(正夏 : 1901~1950, 덕천군 16대) 독립유 공자가 8월 15일 대령 창을 받았다. 故 정 종친은 1901년 충남 예산군 응봉면에서 어나 예산과 서울을 오가며 지에서 독립운 동을 던 1929년 12월, 광주생운동을 옹 진복(珍福, 무림군 20대) 국의원은 지난 5월 대령비서실 정무 수석 비서관에 취임다. 1957년 부산 출생으로 부산대 정책과 대원을 졸업고 동래구청장을 거쳐, 18대~20대 국의원을 역 임다. ● 종친 동정 및 영광의 얼굴 ●
李花 295 13 병준(炳俊, 온녕군 17대) 종친이 최근 에세이집 ‘어머니 봉양일기 (문세계 천우)’를 출간다. 저자가 72세이던 2020년부 96세 어머니를 만 2년간 봉양며 158일의 일상을 기록 논션 일기 다. 2022년 재 노모는 98세다. 책은 루 24시간을 께 는 90대 노모와 칠순 아들의 일거수일 족이 적나라게 숨 쉬는 실천 장서다. 로 노모를 모시 炳俊 종친, 어머니 봉양일기 출간 는 아들의 서이고, 고성사이고, 어머니에게 올리는 사(獻辭)라고 수 있다. 병 준 종친은 수가이자 서예가이며 본원 문부 수석차장이다. 愛熙 종친, 청춘마루 신진작가 아캠인 전시 애(愛熙, 수춘군 17대) 종친은 9월 1일부 30일까지 대거리 삼각지대에서 아캠인 Dream Project를 주제로 전시를 , 설치, 영상 등 다양 소재를 사용여 3인의 예술가가 동으로 개최다. 애 종친의 작은 원경왕가 세종대왕 잉 시 몽을 컴 그래미술로 영상였다. 독일에서 순수 미 술을 전공고 지에서 다수의 전시를 진 온 청년예술가로 2016년Zonta 미술상을 수상기도 다. 부친은 영종(榮鍾) 종친 으로 종 이사와 돈종 부장을 겸임고 있으며 35년째 종 종사동을 신적으로 봉사고 있다. <수춘군종> 승창 본원 상임고문의 외손자 김재무(金載武) 씨는 지난 8월 과 기술연대원대교(국생명공연구원 캠스) 석사 박사 과정을 졸업고 ‘노령 마우스의 인루엔자 백신에 대 면역 보 강제 연구’ 논문으로 공박사 위를 받았다. 承昌 상임고문 외손자, 김재무 공박사 취득 ◾294 12면 6줄 서울중지법 → 서울중앙지방법원 13면 5줄 감사 → 검사 19면 당선자 중 용권(容權) → 용권(鎔權)으로 바로잡습니다. 바로잡습니다 ● 종친 동정 및 영광의 얼굴 ●
14 李花 295 제114 이사(2022.8.26.(금) 14:00) ◎ 참석 : 재적 이사 15명중 7명 참석(위임 8명) ◎ 의안 ‧ 2022년도 2기 장생 선발의 건 - 신청자 21명중 19명 선발 .(코로나19로 인 장금은 온라인 송금) ‧ 재산 자처에 관 건 - 원금 보장되고 정금리가 높은 금융상을 이부용 상임이사가 검여 이사장님께 보고 가입기로 . ‧ 임원(이사 ‧ 감사) 선임의 건 - 임기가 만료되는 이사 8인중 5인은 유임고 3인은 새로 선임며, 감사 2인은 유 임기로 . 장금 기 종친 (2022.7.1. ~ 8.31.) 기일자 기자 금액 비고 8.1-8.2 종배(鍾培, 익녕군 18대) 60,000 본원 재정부위원, 2 8.9 익근(益根, 익녕군 15대) 50,000 8.9 은갑(殷甲, 덕천군 17대) 1,000,000 장 이사 2022.08.26. 이사 이은갑 이사(100만원) 성 명 씨족 성별 교 명 년 이민주(李民柱) 밀성18 남 서울대교 약대 제약과 5 이종세(李鍾世) 익녕18 남 서울시립대교 공과대 목공과 3 재단법인 이장 소식 ■ 2022년도 2기 이장생 명단
李花 295 15 성 명 씨족 성별 교 명 년 이동(李東炫) 안24 남 동의대교 공과대 컴공과 2 이경민(李京玟) 안20 여 전주교육대교 과교육과 3 이예나(李汭娜) 령18 여 전주대교 생체육과 3 이은(李孝恩) 령19 여 동국대교 문과대 사과 3 이재(李涍在) 진안21 남 강릉원주대교 예술체육대 체육과 1 이정재(李政宰) 령19 남 청주대교 사과대 정과 4 이영우(李暎雨) 선성18 남 서울체육고등교 1 이원주(李苑奏) 령23 여 전남대교 생과대 생복지과 3 이가은(李嘉銀) 영양17 여 광주대교 문산업대 공서비스과 1 이은진(李銀珍) 영19 여 조선대교 공과대 생명고분자공과 4 이정(李柾縣) 의안22 여 위덕대교 인문사계열 경찰정보보안과 4 이수(李守賢) 령23 여 경상대교 농업생명과대 식물과과 3 이승철(李昇哲) 계성19 남 세대교 체육부 스츠건강관리과 3 이진규(李振圭) 덕양15 남 여주대교 공과대 안경광과 3 이동규(李東奎) 광20 남 아주대교 경영대 경영과 2 이예규(李禮圭) 덕양15 남 뉴욕대교 경영대 2 이남이(李男而) 벽진이씨 여 우송대교 보건복지대 사복지과 3 전 사기매 방지를 위 안내 종친의 산기관(예 : 문중뿌리보존, 숭조연구원, 전주이씨유적연구, 이씨족보 찬위원, 이씨가제작사 등) 또는 종친의 임직원인 것처럼 가장여, 전국의 종친들께 영상물 및 책자(예 : 전주이씨 대관2, 전주이씨 보감, 전주이씨의 뿌리 등), 가 등을 매는 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주로 전로 구입의사를 물어오거나 먼저 안내장과 책자를 보내고 추 일방적으로 대금을 요청는 등 다양 수법으로 매위를 고 있습니다. 이러 위는 도시민은 물론 농어촌의 종친들께 무작위로 지고 있으며, 농어촌의 종친들이 그 사례를 소고 있으므로 지방에 거주고 계시는 종친들의 각별 주의가 요망됩니다. 본원에서는 모든 간물과 제작물은 반드시 이보에 공지고 있고, 각 지원과 분원, 종, 봉 등을 여 보고, 또 보급고 있으며, 절대로 전를 이용여 매위를 지 않습니다. 영상물이나 책자 구입에 대여 전 안내를 받은 종친은 반드시 종약원에 인시기 바라며 시 그것들을 받으신 분은 발처나 발송처로 반송시어서 더 이상의 를 입는 종친들이 없도록 당부드립니다. 문 의 : 전 주 이 씨 대 동 종 약 원 문 부 ☎ (0 2 )7 6 5 - 2 1 2 4 / FA X (0 2 )7 4 2 - 1 6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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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李花 295 대구광역시지원 원 배가보 별위원 구성 “수십 년 전에는 대구광역시 8개 분원 모두 인원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매년 원이 줄어들어 총 때에나 지원에서 치 러지는 돈종사에서도 참여 인원이 많지 않습니다. 매우 안까운 실입니다.” 지난 5월 제37 총에서 제9대 대구시 지원장으로 취임 돈모(敦模, 완창대군 18대) 지원장의 걱정이다. 대구시지원의 역사는 1989년으로 올라간 다. 그 8월 10일 달성공원에서 150여 명의 종친이 참석 가운데 창립총를 열고 초대 지원장으로 故용(龍八, 선성군 15대, 前본 원 자문위원) 종친을 선출다. 대구시지원은 뛰어난 결속력을 자랑며 일취월장, 눈부신 발전을 거듭여 1990년 대명동에 2층 건물 인 이관을 마련며 산 8개 분원도 가 일층 발전게 되었다. 2010년 제5대 지원장인 균(孝均, 완창 대군 20대, 본원 자문위원) 종친을 중심으로 종친관 이전을 위 기금 모금을 전개, 재 의 위치에 3층 건물을 갖게 되었다. 그 잘되는 듯 다가 매년 나이 많으신 종친은 고인이 되고 새로운 원 가입이 되지 않은 채, 3년째 코로나19의 대유이 이어지고 있 지원방
李花 295 19 는 가운데 이번 여름은 유난 잦은 우와 의 영으로 종친원들의 동이 어려 운 상이다. 그러나 요즘 대구시지원 사무실 은 분주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다름 아닌 금년 7월부 내년 6월 말까지 1년 동안 “원 배가보를 위 대대적인 동으로 별위 원”를 구성여 운영 중이기 때문이다. 별위원는 위원장 1인(기(起弼) 달서구분 원장), 간사 1인(상원(相元) 지원 총무이사), 연구위원 3인(성(羲成) 동구분원장, 중 (重和) 북구분원장, 균(海均) 서구분원장) 으로 구성여 동다. 저출산 초고령의 사적 름 속에서 종 친의 동은 위축되기 마련이다. 신규 인원 의 유입은 적고, 기존 원은 고령 되면서 어쩌면 당연 결과이기도 다. 이에 대구시 지원은 등록된 인원의 보존을 위서라도 우 물 발송과 전 연결을 시도 안부를 묻고 참석을 권유고 있다. 그러나 60세 이 젊은 사람들은 직장 근무를 이유로, 60세 이상 종친 들은 줄어든 수입과 건강을 이유로 종 참석 이 부진다고 다. 대구시지원은 자구책으로 원 배가 보 를 보자는 구를 내걸고 단의 조치로 우선 각 분원에 3개씩 수막을 게시록 였다. “종친 원을 찾는 것도 중요지만, 분원 의 경우 운영자금이 빈약 뿐더러 기존 원 이 내주시는 비에 의존고 있는 실정입니 다. 유지 종친들께서 찬조금을 지원시면 좋은데 여러 가지 여건상 찬조금도 넉넉지 않아 분원장님들께서 분원 운영을 때 고 작은 금액을 사비로 사용는 경우가 많습니 다. 시지원에서는 각 분원에 수막 1개의 제작비를 지원게 되었습니다.” 대구시지원의 이러 노력은 조금 더 구체 적인 계으로 분원에 전달되었다. 그 예로는 수막에는 전주이씨 원 등록을 요는 내 용과 분원장의 연락처를 기재여 친숙을 더였고, 게시장소의 선정에는 좋은 곳과 나쁜 곳의 예를 들어 알려줬다. 그리고 일가 사람이라도 더 볼 수 있도록 기 위, 게시됐던 수막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장소를 이동여 다시 게시 수 있는 방안도 전달 다. 대구시지원과 분원의 노력 으로 그동안 수막을 보고 종친 원 참여를 망겠다는 일가 는 9월말 재 63명에 이른다.
20 李花 295 대구시지원은 각 분원에서 배가운동을 는 과정에 대여 매월 월례에서 1인씩 보여 명단을 제출록 고 있다. 매월 1 가 1년 최종가를 여 최우수 분원 에는 금 50만원 지급과 께 창 계이 라고 다. 이 사업을 중점적으로 실무에서 추진고 있는 상원 총무이사는 “지원장님과 뜻을 같이 는 분원장님들께 진심으로 깊은 감사를 드 린다. 지원장님을 보여 앞으로 1년간 최 선을 다서 종친 찾기에 주력 것이다.”라 고 의지를 밝다. 대구시지원이 종친 찾기에 동참는 분원 의 가는 어떤 방식으로 치러질까? 돈모 지원장은 “종친 배가 운동에 대 분 원별 가에는 우선 여러분의 고문님을 가 자로 모시고 진을 는데, 분원이 얼마나 많은 인원을 보였는지를 점수를 줍니 다. 그리고 수막을 이동면서 얼마나 많은 장소에서 보를 는지 등에 대여 살는 데 사진자료를 참고여 가를 니다. 인구 고령 사에 종친 일을 지속 나가는 일은 쉽지 않지만 그 의미는 굉장 니다. 대구시지원의 작은 노력과 관심이 지역 내 종친들에게 많이 알려져 젊은 세대에게 잊 져가는 조상과 전문 사상을 전달는 기 가 되기를 바랍니다.”라며 망을 전다. 대구시지원에서 ‘원 배가보를 위 대 대적인 동’이 도선이 되어 종친의 성 가 되기를 기대 본다. <집부>
李花 295 21 조고제와 암사 이상(李尙勳) 본원 문부위원 암사는 경기도 양주시 암동 천보산에 있는 사찰로 1328년(고려 충숙왕15) 지공(指 空) 선사가 인도의 나란사(羅爛陀寺)를 본 떠 266칸의 대규모 사찰로 중창다. 1378년 (고려 우왕4) 나옹(懶翁) 상이 중건였다. 조고제는 고려말부 암사를 내왕 며 불가와 인연을 맺었 다. 이러 사실은 나옹 상의 부도에 완산부 원군으로 기록된 시주자 명단을 인 수 있 다. 암사는 경내가 1만 에 이르는 조선시대 최 대 규모의 사찰이었다. 출 된 유물로는 용, 봉 문양의 백자(왕실 도자 기), 악귀를 물리치는 잡 상(경복궁 잡상과 동일), 궁궐에서만 사용되 는 청기와, 종 모양의 금(경) 등이 있다. 조선시대 가장 정교 70개 온돌의 가 있고 천보산의 물줄기를 이용 수의 원리 가 창건 당시 적용되었다. 전사찰의 가람 배치와 다르게 암사는 8단지 정청 건물로 관청의 건물 배치 식으 로 지어졌다. 창덕궁 낙선재 원에 있는 의 계가 있고 왕비 침전으로 볼 수 있는 정청, 남북 일직선상의 배열, 어도가 있는 삼 도, 신가 위치는 월대 등은 경복궁의 배치와 유사다. 나옹의 법맥을 이은 무대사가 암사에 주석면서 조의 암사와의 관계는 더욱 밀접졌다. 상왕 시에는 여말선초의 전란 으로 생된 영령을 추모다. 조선 추존왕들 의 제사를 모신 조의 정신적 의지처였다. 암사는 왕실의 지원으로 지어진 사찰로 왕궁의 기능을 수 있는 규모와 조경이 빼어 나다. 종묘와 더불어 당대 최고의 건축기술로 지어진 조의 제2왕궁이라 수 있다. <종/령대군 20대 ‧ 始44세> 암사 일주문
22 李花 295 서울시 25개 구 분원장, 이귀남 이사장 초청 고(高會) 서울시지원 간담 숭조돈종 양는 발 삼기로 축사는 이귀남 이사장 진작 있어야 간담 서울별시 25개 구 분원 분원장과 전주이 씨대동종약원 이귀남 이사장과의 간담가 2 022년 9월 1일 오 5시 서울 국도 2층 두 메라룸에서 개최됐다. 서울별시 지원 구 분원장들이 종약원 이 사장을 초청 간담를 개최 건 처음이다. 이를 주최 이재 서울시 지원장은 간담 를 고(高會)라 칭다. 고는 추사 김정 가 만년에 남긴 대고(大烹高會)에서 인 용 말이다. 대(大烹)은 세상 돌아다니며 온갖 산진미 다 먹어보았으나 소박 두부, 오이, 생강, 나물 등 집 음식이 최고의 반찬이라 는 의미이다. 고 역시 살면서 많은 모임 가져 보았으나 돌이켜 본즉, 가족이나 종친 만남이 최고의 모임이라는 뜻이다. 고가 전는 뜻 그대로 이날 상차림은 소박지만, 종친 간의 돈종 열기는 어느 자리보다 뜨거웠다. 이사장, 분원장 조로 이뤄진 자리 재 서울시 지원장은 인사말에서 “이사장 님과 분원장님들을 자리에 모시는 일이 처 음이기에 쉽지는 않았다”면서 “분원장님들의 적극 조로 90% 참석율을 보여주어 나름 보 람을 느낀다”면서 “모처럼 이사장님을 가운데 모셨으니만 대승적 차원에서 시지원과 분 원 발전, 나아가 대동종약원 발 전에 도움 되는 기없는 담론 을 개진 주시 기 바란다”고 말 다. 답사에 나선 귀남 이사장은 “지난 1월 이사 장에 재선임 된 바로 각 시 ‧ 도 지원 및 분원장과의 만남을 갖고자 였으나 코로나 데믹으로 차일 일 미루지 않을 수 없었다” 며 “뒤늦게나마 재 서울시 지원장의 주선으로 서울지역 분원 장님들과 자리를 갖게 되어 매우 기쁘다.”고 소감을 력다. 이어 “그동안 주력 온 승경 원 건립사업에 오늘 서울시 지원도 500만원의 성금을 출연, 모두 14억 원 가까운 성금이 모 아짐으로써 공사비를 충당고도 여유가 생겨 부수적인 준비까지 걱정없이 수 있게 되었다 며, 이 자리를 빌어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종 모두에게 감사를 다.” 고 강조다. 종약원 차원에서 추진 사업 언급 이어 귀남 이사장은 금년 1월 재선임 된 이
李花 295 23 이귀남 이사장과 이재 서울시지원장(왼쪽) 서울시지원에서 승경원 건립기금으로 500만원을 납다. 2022 고 기념사진 ▲ 뒷줄 좌로부 규(중구)/규대(강남구)/익재(영등구)/기성(강동구)/ 성관(용산구)/세우(성북구)/동재(구로구)/동우(서초구)/재복(금천구)/경식(송구)/범수(성동 구)/순(관악구)/관우(양천구)/운상(동대문구)/광래(도봉구)/철섭(중랑구)/기윤(문이사) ▲ 앞줄 좌로부 성대((부지원장)/석무(서대문구)/철의(노원구)/재(시지원장)/귀남(종약원이사 장)/광재(강북구)/재(동작구) 종약원 조직의 내실를 위 인사 추천위원 및 심사위원를 만들어 실무 능력 중심으 로 조직을 시스고, 아울러 ▲장재단 설립 구상 ▲노령 되는 종을 위 복지시 스 구축 ▲나아가 대 감각에 맞는 보를 위 유브를 개설 부까지를 넓게 밝 고, ▲또 우리 모두는 세종대왕을 역사 이래 최고의 성군으로 추앙지만, 막상 세종대왕 기념관 나 변변치 않은 것이 실이라면서, 종약원이 구상는 사업에 전국 분원장님들 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 입장이라고 다. 당장은 승경원 건립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 지만 금년 말쯤 사업이 마무리 되면, 고려 중인 사업들을 나나 추진 의임을 밝다. 이날 고에는 서울시 지원 25개 구 분원장 중 20개 구 분원장이 참석였다. 시지원에서 는 재 시지원장, 성대 시부지원장, 인중 시부 지원장, 기윤 문이사가 참석고, 종약원에 서는 귀남 이사장, 석무 총무이사(서대문구분 원장), 범성 총무부장 등 총 25명이 동참 다. 사의 주인공이 각 구 분원장이었던만, 분원장 분 분이 모두 이사장을 마 디씩 덕담 내지 건의는 시간을 가졌다. 다양 질문에 빠짐없이 이사장이 답변는 자리가 되었다. 15년째 종약원 청년 이사로 봉사 중인 재복 이사가 금천구 분원장이라는 걸 오늘 처음 알 았다는 사실과, 종약원 석무 총무이사가 서대 문구 분원장인 것도 새삼스러웠다는 이사장 의 정이었다. 규대 강남구 분원장 겸 서울시 지원 총무이사는 서울시지원에 인재가 많 은 것은 당연 일 아니겠 습니까? 가급적이면 서울 시지원은 물론 전국 각 분 원에 소속된 인재를 많이 용 종약원 발전을 도 모기를 청원자, 이사 장은 분원이 종약원 조직 의 심임을 잘 알고 있다 면서 “나 역시 용산에 살며 용산구분원 소속임을 긍 지로 여기고 있다” 고
24 李花 295 책소개 개 정 증 보 H o w t o N a m e 이 동 우 성 명 전 서 - 전국 유명서점과 인넷 절찬리 매중 초 절으로 개정증보 발 - s령대군 15대손 東宇 s사)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서울별시 지원 감사 *사)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서울시 서초구분원장 *인릉(순조숙제)봉 장 *성균관대교 총동창 부장 ◦수상:녹조근정장,청백봉사상등 다수 *서초구민신문,매일리스뉴스(논설위원) 이름설가, s서초구청 OK민원센장,종민원실장,서초2동장,적계장 *KBS TV등에 160 출연채널A.TV.명랑결단에 박근,노우,김대중 이승만대령과 이병철 이건 구본무 정몽구장 등 이름이 출연 *작명경력45년,서초구청에서 만 16년간 6,000여 명 작명 *서울시 작명의 달인 선발(2010년) *서초구 서운로13중앙로얄 빌딩 1404 양재역1번 출구 서초구청 외교센 건너 *명 신생아 작명, 개명, 아,상 문의 H.P 010-2804-6438, 02)565-6438 정가15,000원(우리은1002-115-265927이동우) 저자 이동우 낸곳: 솜미디어 다. 금년에는 용산구분원에서 사에 꼭 참석달라는 요청이 있어 참석기로 는데 코로나 인지 보가 없다고 자, 성관 용산 구 분원장이 곧바로 일어나 10월 20일 겠다 고 밝자 즉석에서 일정에 메모는 열의도 보였다. 규 중구분원장 겸 시지원 사무국장은 “오 늘 이사장님 모시고 간담 다는 게 너무 영 광스러워 즐거운 마음으로 사를 준비다. 코로나 상에도 열정적으로 종약원 이끌어 가시느라 바쁘신 가운데도, 시지원 분원장들 을 위서 이 자리 참석주신 것에 감사드린 다. 앞으로도 계속 참석 주실 것인가”를 묻자 귀남 이사장은 즉석에서 일 년에 번씩 이 만 남을 정례자고 시원게 답변다. 첫 간담였던 인지 덕담이 주류를 이루 었는데 공적인 것은 ▲이사장님을 멀리서 만 보다가 이렇게 오붓게 간담에서 마주 니 별 반갑다는 인사와 께 ▲과거에 없던 이런 자리 만들어 준 재 시지원장에 대 감사 인사도 잊지 않았고 ▲오늘과 같은 자 리가 연례사나 정기사로 이어졌으면 좋 겠다는 의견에 많았다. 이날 사장에서 서울시 지원은 승경원 건 립기금으로 500만원을 전달는데 300만 원 은 시지원 자금, 200만원은 재 시지원장이 개인으로 출연다. <이기윤 서울시지원 문이사>
李花 295 25 인군 묘역 및 신도비 경기도기념물 지정기념 술심지엄 개최 선조왕자 인군종(장 京柱)는 경 기도 천시가 7월 8일 국립중앙박물관 소강 당에서 개최 ‘인군 묘역 및 신도비 경기도 기념물 지정기념 술심지엄’에 참석다. 이날 술 심지엄은 천시가 주최 가 운데 이경주 장 외 종친을 비롯 백영 천시장, 박경식 백문재연구원 이사장, 신권 서울시립대 교수 및 관련 분야 전문가 등 200여 명이 참석다. 심지엄은 ‘인군과 낭선군의 생애와 예 술’ 등 총 다섯 가지의 주제를 중심으로 17세 기 서예가·금석자로만 알려져 왔던 낭선군 이 아버지 인군의 묘역과 신도비를 조성 다는 사실과 께 그의 술적·예술적 세계관 을 새롭게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낭선군은 아버지에 대 심으로 인군 묘역과 주변의 석물 등을 설치으며, 생전에 자신의 묘소에 쓸 묘, 망주석, 로석, 고석 등을 건립다. 자신이 생 작업 내용을 ‘백년록(百年錄)’, ‘잡저록(雜著錄)’에 저술 는 등 이번 술 심지엄을 그의 뛰어 난 능력을 재조명다. 또 심지엄을 글비석의 명칭과 자음독 오류를 정정다. 묘산비에 새겨진 글은 17세기 유일 글 금석문으로 글 및 서예사적 가치가 뛰어나다. 시 관계자는 “이번 술 심지엄을 인군·낭선군 묘역의 석조문재들과 17세 기 유일 글 금석문이 새겨진 인군 묘산 비의 역사적 가치가 널리 알려지길 바라며, 문유산의 보존과 용을 위 역사적·술 적 기반이 조성되는 계기가 되길 기대다.” 고 밝다. <집부>
26 李花 295 건지산 봉의 내력 - 승경원 준공과 관련여 - 이병(李丙勳) 건지산봉 장 전주는 예로부 선원대(璿源大鄕) 또 는 지(豊沛之鄕)이란 이름으로 불리 기도 다. 전주이씨의 관이고, 조선왕조를 창건 조대왕의 선조들이 살았던 땅이라 는 뜻이다. 란 중국의 나라를 창건 유방의 고이라고 다. 전주 건지산 아래에는 전주이씨 시조 신라 사공공 (翰)과 시조비의 묘소가 자리 조경단(肇慶壇)이 있다. 지금의 시내 복 에는 종 10년(1410년)에 창건, 조대왕 의 수용(晬容)과 신주를 봉안 경기전(慶基 殿)이 있다. 그 북쪽에 시조 사공공 양위의 신주를 봉안 사당 조경묘(肇慶廟)가 있다. 이 묘당은 영조 47년(1771년)에 지어졌다. 경기전 남쪽의 산비에는 조대왕의 고 조인 목조께서 사셨다는 목조대왕구거유지 (穆祖大王舊居遺址)와 조대왕이 운봉 산에서 왜적을 물리치고 개선는 길에 선조 의 고에 들려 종족들과 잔치를 벌였다는 조고제주유지(太祖高皇帝駐驆遺址) 라는 고종제 어의 비가 세워져 있는 오목 대(五木臺)가 있다. 조선왕조가 계속되는 동안에는 이러 묘역과 시설들이 국가에 의여 원만 관리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왜국의 식민 지가 되어버린 36년간은 말 것도 없고, 조국이 광복 된 이에도 극심 정치적 란과 남북의 분단 그리고 새로운 정부 의 생, 곧 이어지는 6 ‧ 25라는 미증유 의 동족상잔의 대전란 등 우리 민족에게 닥친 불운과 고은 이 없었다. 이런 와중에 조경단의 주봉 아래의 석산(石山) 과 그 인근 지가 정부에 의여 사인에 게 불가 된다는 문이 돌기도 다. 조경단과 경기전의 관리와 제사가 끊어진 지가 오래 되었다.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전주이씨들의 마음에 쌓인 감과 상실 감이 컸다. ‘건지산 조경단봉 창립취
李花 295 27 지와 경과개요’라는 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방 이 나라의 최고집권층이 우리의 종원 이었음에도 건지산의 대부분을 인에게 불 다는 엄연 사실이 입증될 때 우리는 어찌 일각 인들 안연(晏然) 수 있겠습니까? 이러 찰라 아무런 대책도 없이 닥쳐 올 운명만을 좌시고 있는 것이 전왕족(前王族)이면서 국중유일(國中唯 一)의 오백만(五百萬) 거족의 체일까요? 실로 앙괴천부괴지(仰愧天俯愧地)로서 눈물을 금치 못는 바입니다.” 이대로 방치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 었다. 그리여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전라 북도지원 이사(도지원 이사장 同宰, 수장 宗燮, 동고문 承鎬)의 발의로 도 내 유지종친들과 각 지역분원들의 찬과 성금을 모아 1965년 2월 건지산(乾止山) 조경단봉(肇慶壇奉享會)를 설립여, 끊어진 제사를 잇고 손으로서 보본추원 (報本追遠)의 도리를 계승 수 있었다. 그 때 모아진 성금이 백미 270여 석이었 다. 당시로서는 재산이다. 건지산 조경단봉 칙(장)에는 ‘본는 건지 시조산 조경단 춘대제(春 享大祭)와 조경묘 경기전의 봉과 그 수 에 요 경비일체를 담당 지속다’ (제19조)라고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대 동종약원 전북도지원의 유지발전을 도모 는 경비일체와 수(덕진 수각 소 속)의 조직 강와 유지를 도모는 경비 일체를 담당 지속다(제20조, 제21조)라 고도 되어 있다. 당시 건지산 봉의 역이 어떠는가를 알 수 있다. 때는 임원의 관리부실로 봉가 위 기에 처 때도 있었으나, 1968년 고 연(泰淵) 종께서 장을 맡아 종인들의 출연을 독려고 재(會財)의 출납을 분 명 고, 정부 문재관리국으로부 수각(花樹閣) 대지와 그 주변 대지 516 을 매입였다. 많은 종인들의 성금으 로 이루어진 봉의 재산이 오늘날까지 인멸되지 않고 전지게 된 것은 오로지 이 분 덕이다. 나는 생을 일개 서생(書生)으로 살아 온 사람으로서 종사에는 아는 것이 없다. 조부님과 선고께서 봉와 인연을 맺은 관계로 칙상 영구이사로 참여게 되었 다. 연 장 밑에서 부장으로 있다가 장이 고령으로 건강상 도저 동을 실 수 없게 되자 부득이 외람되이 장 직을 수게 되었다. 건지산봉는 광 복 의 남북분단과 정치적 란, 비극적 인 전쟁과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그 숭조 돈종의 정신을 실천 왔다. 1979년부 대동종약원 본원에서 조경단 사를 맞게 됨으로써 그 임무를 다게 되었다. 이제 남은 일은 건지산봉를 설립 분들의 유지를 받들고 그 정신을 대에 전는 일이다. 돌이켜 보면 그분들의 생각과 뜻 이 너무나 륭고 고귀게 보인다. 이 러 정신은 우리 손들에게 반드시 계 승되어야 것이다. 나는 봉 장으로서, 연 전 장 이 물려준 봉 소유 지 500여 을 어떻게 사용는 것이 봉를 창립 선대 원들의 유지를 받드는 것일까를 고심고 있었다. 마침 종약원 본원의
李花 295 29 어느 소년병의 6 ‧ 25 참전일기 저자 : 반석 이범경 2022년 8월 20일 발 367면 / 22,000원 / 글마당 앤 아이디얼북스 사관(史官)은 우리 역사에서 그 위상이 임금도 두려워 신분으로 전근대 사에서 명예로운 상위직급이었다. 발전 우리 역사의 증로써 광대군 손 반석 이범경 님께서 90세 생신을 자축면서 ‘대민국의 역사’를 발간다. 우리 시대의 사관으로 대민국의 고난과 발전의 시대상의 단면을 고위 신분이 아닌 자유시민의 사관 자격으로 서술다. 다양 대민국의 역사상을 역사의 객관성 ‧ 공정성을 유지고 애국 정신을 영다. 대민국 역사를 부제목으로 ‘국민 방위병에서 조국 근대 의 산업 CEO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감동적이다. 대민국 국가사와 자유 개인의 정력적 약상을 읽게 다. 많은 분들의 일독을 권다. 섭(台燮) 전 이사장으로부 승경원(承慶 院)을 짓는데, 그 땅을 제공 줄 수 있 겠느냐는 요청이 있었다. 승경원은 시조 사공공 아래 2세부 17세까지 궐사된 선조들의 사당이라고 니 종사를 위여 쓰여지는 것이다. 전북 지원과 수각을 위서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곧 봉 총를 소집여 원들의 의사를 물으니 모두 동의 주 었다. 그래서 종약원에 봉 총의 의록과 승경원 건립부지를 제공겠다는 공문을 보냈다. 종약원 본원에 건물을 설계고 건축 는데 실질적으로 그것을 관리게 될 전 북지원과 수각 임원들과 긴밀 상의 줄 것을 당부다. 그 때가 2017년 2월이 니 벌써 5년이 지났다. 본원에서도 어려 운 여건 에서 역사를 완성느라고 노고가 많았을 것이다. 섭 전 이사장과 귀남(貴男) 이사장께 위로와 축를 드리며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다. 끝으로 전국의 전주이씨 종친분들이 건 지산봉를 창립 선대 원들의 고결 뜻과 그 뜻을 받들고자 는 우리들의 조그만 의지를 이 주시고 기억 준 다면 고맙겠다. <종/양녕대군 18대‧始4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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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李花 295 전주 건지산에 건립될 승경원 이정길(李廷吉) 전주 덕진구분원장 전주이씨수 총무 전주 건지산 조경단은 전주이씨 신라 사공 공과 시조비 경주김씨를 모시는 500만 전주 이씨의 성지이다. 우리는 시조 이래 1300여 년의 유구 역사와 519년의 왕업을 계승 온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조선 왕조의 예 다. 선대의 유업을 계승 보존고자 시조 제 을 비롯여 왕릉제과 종묘, 사직단과 경기 전, 구단에서 대제를 봉 오고 있다. 종약원에서는 선조의 위업을 보존고 계 승는 손으로서 단 분의 선조 제도 궐사서는 안 된다는 종친들의 오랜 숙원 사업이었다. 실묘된 선조 15분과 배위의 위 를 모실 사당을 전주 조경단 근처에 건축기 로 2013년 12월 20일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이사에서 의결고 가칭 조경재 건립추진 기금 20억원 보 등 세부 추진 방안을 계 였다. 당초 종약원이 계던 조경단 부근은 문 재로 보받고 있는 사적지 지역이었다. 당국의 가를 얻기가 어려워 여러 부지를 검던 중, 조경단에서 500여 미 떨어진 곳에 건지산봉에서 소유고 있던 수 각 부지 516(덕진지 옆 전북대교 생관 부근)을 무상으로 기증 받았다. 그 자산관 리공사 소유 233을 매입, 모두 749 부지 에 건축기로 고 사당의 명칭을 가칭 조경 재에서 승경원으로 정였다. 승경원에는 승경묘(사당), 삼문, 수각(위 치 변경여 신축), 관리실, 창고, 장실 등이 들어서게 된다. 이곳 수각은 1899년 5월 건지산에 조경 단을 설단신 대제국 고종제의 넋을 기 리고 기념고자 1900년에 전주이씨수 가 발족되었다. 전주이씨수(대동종약원 소속 아닌 자생단체임)에서는 수각에서 매 년 음력 7월 25일 고종제 신일에 기념 사와 께 제을 올리고 있다. 금년은 고종 제 신 170주년을 기념는 이다. 수각 건물은 전주이씨수 원이 십시일반 뜻을 모은 성금으로 1914년 승금정
李花 295 31 을 개축였고 1974년 6월 다시 낡은 정자를 고 재의 건물로 새로 중건였으며 종무 소도 이때 개설되었다. 전주이씨수는 시조의 자손 선원선계 와 선원세계를 모두 아울러 사가(私家) 의 문중 종친으로 과 친목을 다지고 조경 단을 설단신 고종제의 넋을 기념고 유 지는데 의미가 있다. 대동종약원은 승경원을 건립고자 2017 년 9월 26일 이섭 이사장을 비롯 200여 명의 종친이 참석여 철거된 종무소에서 승 경원 건립 개기고유제를 올렸다. 그리고 2019 년 4월 10일 수각에서 섭 이사장을 비롯 전국 각지에서 온 조경단 참배객과 께 승경원 착공을 위 ‘영건 고유제’를 봉 조경단에서 조경단 대제를 봉다. 승경원 건축 시 재건축될 수각은 이름이 시대에 맞지 않으니 예전 이름 승금정으로 야 다는 일부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전주 이씨수가 발족되어 100년 이상 유지온 수각을 승금정으로 변경면 안된다는 수의 반대로 그대로 존치기로 다. 그 인가 과정의 문제가 원만 결되어 승 경원 건립을 위 착공을 2019년에 고, 완공 은 2021년 말 준공 예정으로 추진였으나 코로나19로 공사를 착공 지 못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어려 운 여건에서 대동종약원 귀 남 이사장을 비롯 임원이 참석여 2021년 10월 14일 착공식을 고 2022년 내 완 공을 목로 공사를 시작 였다. 그동안 예를 다지 못 손들의 아쉬움이 담긴 숙원 사업을 더는 미룰 수 없기 때문이었다.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은 매년 4월 10일 조 경단에서 조경단대제, 음력 9월 9일 경기전 중양대제때는 조경묘 제과 조고제의 수용을 모신 어진전에 제을 올린다. 전라북도지원에서는 매월 음력 초루에 많은 종친이 참석여 조경묘와 경기전에 조고제 수용 어진전에 초삭(初朔) 분례 를 올리고 있다. 전주 경기전은 우리 전주이씨 시조의 위 를 봉안 조경묘와 조고제 어진(국보 제317)이 모셔진 곳이다. 옆에 조선왕조의 실록이 보관되었던 전주사고가 있으며 예종 대왕 실 및 비(전라북도 민속문재 제26 )를 비롯, 역대왕들을 모신 박물관도 있다. 전주이씨의 성지인 건지산 조경단과 시조 의 위가 모셔진 조경묘, 조고제 어진이 봉안된 경기전은 민족의 문유산이자 귀중 자산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종/령대군 20대 ‧ 始44세>
32 李花 295 역사는? 이범직(李範稷) 본원 이사 · 문박사 상고 역사부 군자와 소인, 대과 소, 대인과 소인, 부자와 빈자의 차별과 분별이 있었다. 우리 인류는 이러 차별과 분별이 없는 이상적 세계를 만들고자 지와 방법을 역사의 발전 지로 설정다. 더불어 사, 경제, 철, 문, 정치 분야에서 다양 연구 와 노력는 모습을 역사에서 읽을 수 있었다. 군자는 바로 역사의 지에 접근 인간상 으로 설정고 성인으로 고 있다. 순자 의 군자론의 일부를 인용면 다음과 같다. ‘성인을 존중는 사람은 왕자가 되고, 명 사람을 존귀게 여기는 사람은 자가 된다. 명 사람을 공경는 나라는 존속 고, 명 이를 가벼이 대는 나라는 망 다. 그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다. 그러므로 명 이를 존중고, 능력있는 사 람을 등용고, 귀고 천 사람의 차등을 분명 고, 친고 소원 사람의 분별을 정 고, 나이 많은 사람과 어린 사람의 서열을 올바로 정는 것, 이것이 왕자의 도이다. 그러므로 명 이를 존중고 능력 있는 사람을 부리면 임금은 존귀지고 아래 백성 들은 안진다. 귀고 천 신분에 등급이 있게 되면 정령이 져 멈춰지는 일이 없게 된다. 친고 소원 사람들의 분별이 있게 되면 두루 베어져 인정에 어긋나는 일이 없게된다. 나이 많은 사람과 어린 사람의 서열 이 정지면 는 모든 일이 계속 이어지고 이룩되어 식을 취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인(仁)이라는 것은 이 같은 일들을 사랑는 것이고 의(義)라는 것은 이 같은 일들을 올바로 분별는 것이고, 절(節)이라 는 것은 이 같은 일들을 위 죽을 수도 살 수도 있는 것이고, 충(忠)이라는 것은 이같은 일들을 독실게 쓰는 것이다. 이같은 일들 을 다 아울러 잘 수 있다면 덕을 완전 갖춘 것이다. 덕을 갖추었으면서도 뽐내지 않고 자기의 선을 결같이 추구다면, 그를 성인이라 李花광장
李花 295 33 치마바위 전설 치마바위는 사직단 서쪽 인왕산 자락에 있는 넓고 게 생긴 바위로, 중종의 첫 번째 왕비인 단경왕와 관련된 전설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즉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진성대군이 중종이 되자 그 부인 신씨는 친정아버지 신수근이 반정 때 살되었는데 반정을 주도온 박원종 등이 죄인의 딸은 왕비가 될 수 없다며 반대자 인왕산 아래 사직골 옛 거처로 쫓겨나 살게 되었다. 중종은 부인을 잊을 수 없어 경루에 올라 인왕산 기슭을 바라보곤 였으며, 신씨는 이 말을 전 듣고 종을 시켜 자기가 입던 붉은 치마를 경루가 보이는 이 바위에 걸쳐 놓음으로써 간절 뜻을 보였다. 이 일로 인 사람들은 이 바위를 치마바위라 불렀다. 수 있다. 뽐내지 않게 때문에 천에는 그와 능력을 다려는 이가 없고 륭 것을 받아들여 그가 는 일에 응용게 될 것이다. 모두 다 지니고 있으면서도 지니지 않은 듯 동기 때문에 천의 존귀 존재가 되는 것이다. 시경(詩經)에 ‘륭 군자는 그의 동이 그릇되지 않네, 그의 동이 그릇되지 않으니, 온 세상 바로 잡은 것이라 것도 이것을 뜻는 말이다.’ 군자론은 륭 군자와 천자 를 같은 자리에 놓고 있음을 주목 수 있다. 오늘의 역사는 대중으로부 대령을 선출 려는 민주제도가 갖는 철은 순자의 군자 론이 시사는 내용이라고 겠다. 재 세계가 추구는 민주제도에서 선출 는 최고 치자의 덕목으로 우리는 군자를 설정다면 아직 부족 면이 있으나 군자 소인의 차별로 신분제라는 고 · 중세 시대의 병를 극복다고 이 수 있다. 이는 성실 자들에 실의 역사를 개선려는 노력의 결과라고 이된다. 주자의 대 장구서문이다. 송나라(960~1279)시대 유자 주자(朱子 · 주)가 설 대(大學)은 “옛날 대에 서 사람을 가르치던 법이다. 이어 위정자로부 서민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근본을 명덕(明 德), 신민(新民), 지선(至善)의 세계(世界)로 설정고, 본말(本末), 지식을 극진는 데는 사물의 근원에 도달야 다. 의지를 성실성 있게 다. 몸을 딱으려면 먼저 마음을 바로 잡으라. 집안을 질서있게 려면 먼저 몸을 닦으라. 나라를 다스리려면 먼저 집안을 질서 있게 라. 천를 케 려면 먼저 그 나라 를 다스려야 다.”(修身齊家治國平天下) 공자의 철을 안내는 교육으로 사대부 계층을 군자로 육성야 내용으로 만들고 있다. 소위 사례(四禮)로 알려진 관상제(冠 婚喪祭)는 대부분의 백성 국민을 군자의 덕목 으로 련는 과의례로 만들어 모든 국민 을 과의례로 인 성인(成人)이 되게 이끈 다. 바로 모든 성인은 이상적인 군자(君子)로 서 국가 최고 지도자의 위상을 얻을 수 있는 단계에 도달 다는 이상이다. 그 속에서 민주 선거 정치시대에 도달 수 있었던 것이다. <세종/광대군 17대 ‧ 始42세>
34 李花 295 ▲ 단종대왕이 예장된 영월 장릉. 추운 겨울 노루가 앉아 녹았던 자리로 늘이 내린 명당이다. 단종대왕 장릉 사고무친(四顧無親) 어린 임금의 애달 곡절 영월 청령 강물에 녹아 르다. 천지신명도 무력 때가 있다. 경북 순 땅에 유배 중이던 세종대왕 여섯째 왕자 금성 대군(李瑜 ‧ 1426∼1457)이 이보과 께 단종대왕(재위 1452∼1455) 복위를 도모 다. 조정에서는 을 없애겠다며 의금부도 사 왕방연(생몰년 미상)에게 사약을 내려 보 냈다. 조선 6대 단종대왕(이 대왕)이 많 은 생을 마감니 보령 17세였다. 조선 왕릉에 가면 제을 봉는 정자각 에 이르기 전 박석을 깔아 놓은 참도(參道)가 있다. 좁은 로지만 유심 살보면 3단계 (2단계 왕릉도 있음)로 구분돼 있다. 중앙이 가장 높고 왼쪽이 약간 낮으 며 오른쪽은 가장 낮다. 중앙 은 신도(神道)로 산릉제 시 대축관(大祝官)만 오를 수 있 고 왼쪽은 임금이 걷던 왕도 (王道)다. 오른쪽은 왕보다 발짝 물러선 세자가 걷던 로다. 축문을 읽는 걸 독축(讀祝) 이라 다. 왕릉은 물론 일반 사가에서도 독축 때 법도가 있다. △음성을 너무 높지 않 고 낮지도 않게 △가성이나 조선왕릉실록(11) 이규원(李揆元) 본원 문이사 · 시인 삼국왕릉실록 작가
李花 295 35 ▲ 장릉 앞의 정령송. 경기도 남양주시 사릉(단종왕) 에서 옮겨 심은 소나무다. 괴성을 삼가고 △왜 일찍 돌아가셨느냐고 원 망며 그리워는 목소리로 독축다. 부복 친인척들의 억장이 녹아난다. 단종의 능 제은 매년 11월 19일이다. 예부 부모는 자라 다. 어떤 부모의 몸을 어나느냐에 따라 절반의 성공 여부가 가름 난다는 의미다. 어느 누군들 돈 많고 권세 누리며 출세 부모를 만나고 싶지 않겠는가. 지만 천륜으로 맺어지는 부모 자식 간 인연은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선권이 없다. 다만 숙명일 따름이다. ˂단종 대왕 출생 및 덕왕 생애는 李花보 제294 ‘문종대왕 릉’ 기사 참조˃ 대왕은 박복다. 대왕의 생모 덕왕 권씨(1418∼1441)는 세종 23년(1441) 7월 23일 대왕을 출산 뒤 3일 만에 승다. 산고였다. 문종대왕(이 부왕)은 29년 동안 세자로 있다가 등극 지 2년 3개월 만에 서다. 일국을 치에는 옥체 보전이 우선이거늘 부왕은 철야 독서와 과도 정무 로 대사를 그르쳤다. 부모가 자식을 낳았다 서 의무를 다 건 아니다. 양육고 교육 며 성인이 될 때까지 보살야 는 것이 부모 의 책무다. 대왕은 사고무친이었다. 서조모 빈 양씨 (세종대왕 궁)의 젖을 먹고 자랐다. 친 육 이라곤 누이 경공주 밖에 없었다. 빈 양씨 는 대왕을 불쌍 여겨 자신의 육보다 더 정성을 기울였다. 당시 조정의 권력 구조는 수양대군(1417∼ 1468 ‧ 세종대왕 둘째 왕자)과 안대군 (1418∼1453‧ 세종대왕 셋째 왕자)의 추종 세력으로 양분돼 있었다. 명‧ 권람 등 권 모와 지략에 출 책사와 달손, 양정, 류 수 같은 센 무사들이 수양대군의 수였다. 조정 권력의 주축이었던 영의정 보인, 우의 정 김종서 등은 안대군을 암묵적으로 지지 다. 치 앞도 가늠 수 없는 절박 상에서 부왕이 예척다. 12세의 어린 대왕이 왕위를 승계(1452)다. 초등교 5년 어린이 가 보위에 오른 것이다. 대왕은 부왕이 아꼈던 대신들을 중용고 의지다. 조정이 무주공 산(無主空山)이었다. 왕권이 요동치며 신권 (臣權) 치로 기울었다. 이 국에서 명 를 비롯 수양대군 심복들이 계유정난 (1453)을 일으켰다. 이 조정에는 바람이 몰아쳤다. 안대 군은 사사되고 아까운 국가 동량들이 모진 고문 끝에 세상을 떠났거나 유배지로 다. 임금 자리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권력 배를
36 李花 295 ▲ 단종 유배지 강원도 영월의 청령. 3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첩첩산중 오지다. 알 길 없던 어린 대왕은 숙부 수양대군만 의지 다. 숙부에게 매달려 “그저 목숨만 살려 달라”고 애원다. 조정을 장악 정인지, 명, 권람 등이 어린 대왕에게 선위를 주청 자 대왕은 “경들이 알아서 라”고 옥음을 내렸다. 대왕은 왕위에 오른 지 3년 2개월 만에 상왕이 되었다. 사육신(성삼문 ‧ 박년 ‧ 이 개 ‧ 위지 ‧ 유성원 ‧ 유응부)의 복위 계이 정창손과 그의 사위 김질의 고자질로 로 났다.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된 대왕은 배 소지(配所地) 영월 땅 청령(淸泠浦)에 유 되고 말았다. 조정의 강권으로 가례를 올린 정순왕 (1440∼1521 ‧ 여산 송씨)와도 생이별 대 왕의 외로움은 극에 달다. 대왕은 청령 산 바위에 올라 양 쪽 늘을 바라보며 구슬 울었다. 고립무원의 기막 처지를 비관며 자시를 읊곤 다. 소쩍새 울다 지 친 새벽 봉우리엔 조각달만 밝고 를 린 듯 봄 골짜기에는 떨어 진 꽃들이 붉은데 귀머거리 늘 은 아직도 이 애달 소 듣지 못 고 어찌여 근심 많은 이내 사람의 귀만 로 밝단 말 인가. 조정에서는 의금부도사 왕방연에게 사약 을 내려 보냈다. 왕방연은 기가 막다. 계유 정난 이 대왕의 유배 길에도 자신이 송관 이었는데 대왕의 목숨 끊는 저승길에도 또다 시 송관이 된 것이다. 왕방연은 대왕의 사 을 집고 돌아오며 각 것 같은 비 에 잠겼다. 자신이 가져간 사약으로 어린 대왕 이 생목숨을 끊은 것 아닌가. 강물에 신 작정으로 영월 동강 가에 앉았다. 불듯 시 수가 응어리진 으로 솟구쳤다. 천만 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곳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녜놋다. (‘녜놋다’는 ‘바삐 르다’의 古語) 동강 물에 가족 얼굴이 비쳤다. 왕방연은 양으로 돌아와 벼슬을 내던졌다. 고 경기 도 구리에 가 배 농사를 지으며 여생을 마쳤다. 대왕이 승 10월 24일이면 배를 바구니 씩 제사상에 올리고 남몰래 제사 지냈다. 대왕
李花 295 37 ◆ 찾아가는 길 장릉(사적 제196)은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단종로 190(영리 산133-1번지)에 있다. 대중교 이용 시 영월읍에서 영월~장릉 시내버스를 다. 버스는 오전 7시부 오 8시까지 20분 간격으로 운다. 승용차는 충북 제천 IC에서 영월 나들목을 지나 이정를 따라 우전(59번 국도) 면 장릉에 이른다. 문의 : (033)374-4215. 을 유배지로 송며 “물 모금 주지 말라” 는 군령이 무서워 대왕의 간절 요청을 못 들어 준 게 철천지이었다. 어린 대왕은 머나 먼 유배 길에 목이 때마다 애원다. “의금부도사, 내가 심 목이 오르니 물 모금만 줄 수 없겠는가?” 어린 왕은 간절 애원며 읍소다. 왕방연은 부복 채 곡 며 눈물만 렸다. 왕방연이 농사 지어 올린 배는 유난도 달고 물이 많았다. 이 부 구리 지역에서 수 배를 ‘먹골 배’라 부르 게 되었다. 조정에서는 대왕을 사사시켜 동강에 내던 지고 시신을 거두는 자 누구든 삼족을 멸 버리겠다는 엄명을 내렸다. 이록 서슬 런 시국에도 의인 나가 있었으니 영월 장(戶 長 ‧ 리직 우두머리) 엄도(생몰년 미상) 였다. 엄도는 “옳은 일을 다 를 입게 되면 달게 받겠다”며 동강 물위에 떠 있는 대왕 시신을 수습다. 영월 동을지산에 몰래 암장 고 시 놓았다. 세월이 른 어느 겨울. 눈 덮인 동을지산에 노루가 앉아 있던 자리만 녹아 있었다. 엄도가 그 자리를 고 장사지낸 뒤 억장이 미어지도록 울었다. 수상(殊常) 세월은 무심다. 천신만고 의 우여곡절 끝에 19대 숙종대왕 24년(1698) 노산군이 단종(端宗)으로 복위됐다. 망각됐 던 대왕 묘가 왕릉으로 새로 조영되니 오늘날 의 장릉(莊陵)이다. 장릉은 건입수(乾入首) 임득수(壬得水) 진수(辰破水)에 신좌(辛 坐 ‧ 서에서 북으로 15도) 을(乙向 ‧ 동에서 남으로 15도)의 동이다. 조선 왕릉 중 7대 명당으로 손꼽는 명당이다. 대왕은 승 지 240여 년 만에 시를 추존 받고 신주는 종묘 영녕전(보물 제821) 에 부묘(祔廟)됐다. 11대 중종대왕과 17대 종대왕 당시 뜻있는 조정 대신들이 대왕 복위 상소를 올렸다가 목숨을 잃을 뻔다. 숙종대왕 재위 시 대제 서종(1652∼ 1719)가 장릉을 복원며 정자각 상량문에 다음과 같이 썼다. ‘구불거리는 장엄 산세는 멀리서부 그 줄기가 갈라졌다. 기운 찬 봉이 나르며 용이 오르는 기상을 머금었다. 뭇 산이 둘러쳐 옹위 이 마치 임금께 절는 듯다.’ 근자에 와 대왕의 정비 정순왕 사릉(思陵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릉로 180번지) 과 자는 의견이 분분다. 역사계에 서는 6백 년 전 왕릉을 세인들 단으로 이장다는 건 가당치 않은 발상이라고 일축 다. 장릉 앞에는 사릉에서 옮겨 심은 소나무 정령송(精靈松) 그루가 대왕 능침을 마주 보며 쓸쓸 지고 서 있다. <세종/광대군 19대 ‧ 始44세>
38 李花 295 창경궁~종묘 연결 개에 즈음여 종묘도 5대 궁궐처럼 전면 개방을 야 나? 이종 서울 노원구 명예분원장 건축사 ▲ 창경궁과 종묘 사이로 연결된 녹지공간 지난 7월 22일 창경궁과 종묘를 연결는 길이 90년 만에 복원되었다. 종묘를 서 창경궁으로, 창경궁을 서 종묘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언론에서는 “조선 시대 왕이 걷던 길 가 보자” 며 창경궁 ~ 종묘 옛길이 전면 개방된 것처럼 보도지만, 1932년 일제 때 종묘 관 도로( 율곡로)를 내며 갈라놓았던 창덕궁 · 창경궁과 종묘가 90년 만에 다 시 만나게 된 것만으로도 의미가 고 감가 깊다. 수지리상 북산의 주맥 이 창덕궁과 창경궁을 거쳐 종묘로 다시 이어지게 된 사실도 반갑다. 서울시에서 2011년 5월부 율곡로 를 지고 그 위에 을 덮으면서 두 궁궐과 종묘를 나의 숲으로 연결 는 녹지(8,124㎡)로 조성 것이다. 그 위로 옛 종묘 담장도 복원여 두 궁궐과 종묘는 담 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이었 던 일제 강점기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돈문 앞에서부 창경궁 경내를 지나 원 남동 사거리까지 이어지는 새로 조성된 담장 과 산책로(340m)를 걸어보았다. 3m인 산 책로는 원료의 시멘 길이라 걷기에 다. 길이 503m 궁궐담장은 거의 원대 로 쌓았는데 담장의 돌(사괴석)이 저마다 다
李花 295 39 ▲ 새로 조성된 산책로와 북신문 른 색을 나내고 있었다. 공사 중 발굴 종묘 담장의 석재와 기초석 을 30% 이상 재사용다고 다. 산책로 옆에 는 실제 담장이 있던 에서 발굴 기초석을 그대로 보전 관람 수 있었다. 그리고 산책로 담장 중간에는 북신문(北神 門)을 조선 시대 모습 그대로 복원였다. 창경궁과 종묘를 넘나들 수 있는 문이다. 동궐 과 종묘가 도로에 의 갈라지기 전엔 조선의 왕들이 이 문을 이용다고 다. 일제 때 총독부에서 도로를 만들며 조선 왕실의 반발 과 여론을 무마기 위 설치던 연결 육교 가 있던 자리다. 재 북신문 앞에는 매소가 설치됐지만 자유 관람인 창경궁과 예약을 시간제 관람인 종묘의 매 시스이 아직 되지 않아 아직은 북신문을 과 창경궁과 종묘 를 오가는 것은 불가능다. 창경궁과 창덕궁은 이미 양문으로 연결 돼 있으니 북신문만 개방되면 동궐과 종묘의 연계 관람이 가능진다. 서울시와 문재청 은 복원 취지에 맞게, 북신문 개방에 요 조치를 의기로 다고 다. 서울 시는 전면개방을 원지만 문재청은 난색 을 고 있는 것 같다. 종묘는 일반 궁궐과 달리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 고 제사를 지내는 신성 국가 사당이기 때문 이다. 종묘는 1995년 국내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 문유산에 등재되었다. 영건 당시 조선 시대 의 원을 그대로 유지면서 오늘날까지도 제례가 지고 있는 곳이다. 조선 시대 임금이 소에 거주고 정치 위를 친 5대 궁궐(경복궁 · 창덕궁 · 창경 궁 · 경궁 · 경운궁(덕수궁))과는 개념 자체 가 다른 것이다. (참고로 서울의 조선 5대 궁궐 면적은 140만㎡에 달며 도쿄 에도성 과 비슷고 베이징 자금성보다 씬 넓다.) 왕궁은 우리나라 근대의 긍정적 유산으로 국민 공간가 요다. 그러나 종묘는 경우 가 다르다. 문재는 민족의 얼이요, 나라 정신문의 결정체이다. 종묘의 존재가 바로 그러다. <중종/덕양군 16대 · 始4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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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李花 295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왕실 이기윤(李起潤) 본원 문위원 소설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덴마 왕실의 여왕 은 재 마르그레 2세이다. 아버지 레데 리 9세와 스웨덴의 잉리드 공주 사이에서 어난 세 딸 중 장녀로,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2세와는 8촌 자매이다. 레데리 9세는 아 들을 망지만 계속 딸이었고, 나이 들어 더 기다릴 수 없게 되자, 마음을 바꿔 친척 가문에 왕위가 돌아가는 것을 막고 장녀 마르 그레가 즉위 수 있도록 썼다. 다 네덜란드나 영국에서 여왕이 즉위 는데 영을 받아 1953년 성별 상관없는 장자승계 원칙을 세울 수 있었고, 계승 범위를 왕가의 손으로 정는 법 개정에 이어 왕위 계승법까지 개정으로써 1972년 마르 그레 2세가 여왕으로 즉위다. (1940년생 으로 올 82세) 936년으로 추정되는 ―기록으로 실재가 인되는 가장 오래전 덴마 국왕인― 고름 가믈리(왕)부 마르그레 2세 여왕까지 1000년이 넘게 왕위를 계승 온 덴마 왕가 이다. 재까지 남아있는 유럽 군주국 중 가장 역사가 긴 계보를 가지고 있다, 고름부 천 년 넘게 계보 이어온 군주국 덴마 왕국에 대 기록은 바이 시대, 랑 왕국 카를 대제(재위 768∼814) 때 처음 나난다. 덴마에 고드레드 왕이 있어 랑의 북방진출을 저지고, 그를 이은 아들 밍 왕과는 811년 조약을 맺어 아 이더강(江)을 랑 왕국과의 경계로 설정 다고 전다. 그러나 이것은 구전이고 밍 왕 이의 연결도 없다. 실체가 인되는 덴마의 첫 번째 국왕은 고름 가믈리이다. ‘가믈리(gamli)’는 나이가 많다는 뜻이니 우리 식으로 석면 ‘노왕 (老王)’ 고름이거나 부족의 지도자였을 것이 다. 덴마의 역사자 삭소 그라마쿠스에 의면, 고름이 덴마 왕국의 가장 정 자손 세계의 왕실 이야기 ③ 덴마
李花 295 43 이고, 동시대 인근의 군주들보다 나이가 많았 다고 다. 재 덴마의 왕실은 이 을 물려받았다. 그는 덴마의 전설적 임금 누 1세( 르다누)의 아들로 어났다. 기록에 따르 면 누 1세는 10세기 초 북(北) 유란 예링에서 새 왕조를 일으 서쪽 지방을 다스리던 올라 왕조의 시그리그 그누 손을 몰아내고 영를 장다. 누 1세 가 죽자 고름이 뒤를 이었다. 예링에 있는 암석각문(岩石刻文)에 덴마 왕국이란 명 칭이 처음 등장다. 독일 사자 옐링 스에 의면 959년 고름이 죽자 차남 랄 드가 왕위를 이어 덴마 전역을 정다 니, 고름 왕의 영력은 그 정도까지 미치지 못을 것이다. 다만 아버 지 누 1세가 정복던 땅을 기반으로 윌 란반도 일대를 다스렸을 것이다. 랄 왕은 960년경 국민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고, 그의 아들 스벤(스웨인) 1세는 1013년 잉글랜드를 정복였다. 스벤의 아 들 누드(카누) 대왕(재위 1014∼1035) 은 덴마와 잉글랜드 및 노르웨이의 왕위를 겸는 대왕국을 창건였다. 누드가 죽자 대왕국은 분열되고, 덴마 는 다시 스칸디나비아의 세력으로 전락 였으나, 누드의 조카 스벤 2세에 의 로마 교와 밀접 관계를 가지는 신(新) 덴마 왕국이 건설되었다. 스벤 2세가 죽은 뒤 1074~1134년까지 스 벤 2세의 다섯 아들이 차례로 왕이 되어 다스 렸는데, 그 무렵 덴마교는 앵글로색슨 세력에 좌우되다 다시 부르 세력 아래에 놓였었다. 1104년경 룬드를 대주교구(大主 敎區)로 독자적인 국교를 가지게 되었다. 1134년 이 다시 교와 국가가 분열되면서 분쟁을 지속다가, 1157년 발데마르 1세(재 위 1157∼1182)가 일어나 내분을 깔끔게 가라앉고 발데마르 왕조를 일으켰다. 발데 마르 1세는 군사력을 재성여 독일에 대 고 발의 슬라브 세력과 싸웠는데 그때 슬라브인의 침입에 대비여 셸란섬에 구축 성새(城塞)가 오늘날 코겐의 기원이 되었다. 기록상 덴마 최초의 왕은 고름 가믈리 발데마르 2세(재위 1202∼41) 때 정치와 경제의 발전이 촉진되었으나 그가 죽자 다시 왕, 교, 귀족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 왕권이 약됐다. 같은 시대에 발지배 및 슐레스 비 영유를 둘러싸고 스웨덴·노르웨이·자 동맹 세력과의 쟁이 지속되어 왕국의 약체 를 가져왔다. 발데마르 4세가 죽은 뒤, 발데 마르의 딸 마르그레는 아들 올라 2세(재 위 1375∼87)를 왕좌에 앉고 섭정(攝政)을 는데, 아들이 젊은 나이에 요절자 1387년 자신이 직접 덴마 및 노르웨이의 군주로 승인받았다. 남이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왕 위 계승자였기에, 마르그레는 1389년 스웨 덴 왕도 겸다. 동군연(同君聯合) 의 3왕국 도 1397년, 이른바 칼마르동맹에 의 정식 승인되었다. 영국의 번영이 16세기 더왕조의 마지막 군주 엘리자베스 1세 때 구축된 과 와 성장에 기반을 두고 있다. 수백 년이 지난 재 엘리자베스 2세가 등장 오늘의 영국을 이끌었 듯, 덴마 왕실 역사는 14~15세기 마르그레 1세 여왕이 의 빛나는 업적을
44 李花 295 쌓았다. 수백 년 시차를 둔 뒤 세의 마르그레 2세가 즉위 안정을 구가고 있는 셈이 니 유럽에서 여왕의 존재를 빛낸 이름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 국가를 강성게 만든 여왕들이었지만 ― 더왕조가 엘리자 베스 1세를 끝으로 스어로 바뀌었듯, 덴 마 왕조도 1448년 올덴부르가(家)로 바 뀌었다. 그러나 칼마르동맹은 그대로 유지되 는 등 여왕 시절 만들어놓은 기조는 들리지 않았다는 공점도 있다. 16세기 종교개 … 루의 신교 받아들여 1520년 리스안 2세(1513∼1523) 때 에 스웨덴의 독립 열기는 전쟁으로 대됐다. 역사적으로 규모가 컸던 보게순 전에서 독 립을 망 스웨덴의 스레 일는 덴마 에 격당다. 그러나 스웨덴은 다시 봉기 여 독립을 이룩였고 3년 인 1523년 칼마 르동맹은 체되었다. 덴마 종교개은 리스안 3세(1534 ∼1559) 때 추진되어 루의 신교가 받아 들여졌다. 칼마르동맹은 깨졌으나 노르웨이 의 입지는 스웨덴 독립 이 자치운동이 완전 봉쇄당 전보다 못 속국이었다. 리스 안 3세는 원로원 등 귀족세력 강를 바 으로 경제발전을 도모고 인재육성 정책으 로 자를 많이 배출는 등 국가번영의 기운 을 보였다. 성과를 보지 못 상에서 덴마 · 스웨덴 · 란드 · 뤼벡 사이에 북방 7년 전 쟁이 일어났다. 리스안 4세(재위 1588∼ 1648) 때 2차에 걸친 스웨덴과의 싸움으로 국의 손실과 국력의 쇠를 가져왔다. 1660년 레데릭 3세(재위 1648∼70)는 귀족세력과 대립는 도시 부르주아 및 루 성직자와 결여 왕위의 세습제를 승인 받고, 1665년에는 국왕의 절대주권을 승인받 아 절대군주제를 립였다. 1788년 농노제 가 지되고, 1797년 자유무역 원칙에 입각 관세법이 성립되어 덴마의 경제가 력 을 얻기 시작다. 애석게도 나레옹 전쟁에서 영국대 의 공격을 받고 나레옹 에 서게 된 덴마 는 영국 · 러시아 · 스웨덴 등 동맹국과 싸운 끝에 1814년 조약에 의 노르웨이를 스웨 덴에 양고 4세기에 걸친 노르웨이 지배도 종지부를 찍었다. 레데릭의 절대 왕정이 비의 대상이 되 면서 1842년 입적 대의정치를 주장는 국민 자유당이 결성되었다. 1849년 레데릭 7세(재위 1848∼1863)는 자유주의자들의 요 구에 따라 전제정치를 기고 자유 법을 성립시켜 입군주제를 수립였다.1864년 에는 15세기부 동군연(同君聯合) 로 덴마에 속 있던 유란 남부의 슐레 스비 · 슈인 두 공국(公國)의 영유를 요 구는 로이센 · 오스리아와 싸워서 뒤 그곳도 양였다. 사(後嗣)가 없는 레데릭 7세의 뒤를 이어 글뤽스부르가(家)의 리스안 9세 (재위 1863∼1906)가 왕위에 올라 왕조를 열 었고 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내정이 안정되어 국민의 역량을 농목업 및 운업을 주축으로 는 경제발전에 집중시켰고 20세 기 초부 사복지제도를 정비였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중립을 지는 데 성공 여, 전 주민에 의 북(北)슐레스비 를 되찾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중립선언에도 불구고 독일군의 침입을 받
李花 295 45 유럽 최고의 관광상인 근위병 교대식 았으나 전쟁 는 비교적 적었다. 노르웨이가 덴마 지배를 받을 때 일괄적 으로 덴마에 속게 된 아이슬란드는 전쟁 중인 1944년 6월 동군연을 소고 독립 였다. 세계대전 이 덴마는 중립 전을 깨고 1949년 NATO에 가입였고 자국령인 그린 란드를 미국에 기지로 제공고 있다. 덴마 왕가는 이렇게 긴 역사의 계보를 가지고 있다. 왕조가 바뀌긴 으나 덴마의 왕조 교체는 방계 계승이나 모계 계승으로 성씨만 바뀐 것이기에 왕가의 은 1000년 넘게 유지되었다고 볼 수 있다. 북유럽 징 보여주는 덴마 건국 신 북유럽 신에는 오딘과 르, 로 등 유명 고 재밌는 일가 많다. 덴마 건국 신도 재미있다. 지롭지만 더 많은 지를 갈구 고 욕심냈던 스웨덴 왕이 민 차림으로 새로 운 지를 찾는 모에 나섰다. 가 저물자 밤을 보내기 위 동굴에 들어갔는데 절세 미녀가 단 아게 앉아 있었다. 왕은 그 녀에게 자신의 지를 뽐내 는 이야기를 지만, 미녀는 웃기는커녕 시둥다. 기 분이 상 왕은 더 이야기 도 없어 고민고 있는데 미 녀가 입을 열었다. “저도 재미 난 이야기를 드리죠.” 그런데 웬일, 그녀의 이야 기는 엄청나게 재미있었다. 이야기로 밤을 새운 왕은 자신의 정체를 밝다. “너의 이야기가 륭니 상을 주마. 루 동안 소로 쟁기질서 나아간 만을 너의 땅으로 주마.” 그런데 이건 왕의 엄청난 실수였다. 미녀는 계온의 여신이었다. 그녀는 얼른 자기 아들 들을 소로 만들어 루 동안 엄청난 양의 땅을 떼어가 왕국을 만들었다. 그게 코겐 이 있는 셀린 섬이라는 설도 있다. 민주주의 물결 가운데 군주국이 존재는 이유? 재 유엔에 가입된 지구촌 195개국 중 아직 군주제인 나라는 무려 44개 국가에 이른 다. 21세기 대명천지에 23%의 나라가 여전 왕이 지배거나 국가를 상징고 있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모범적인 민주 국가들이 즐비 유럽에도 영국 스인 네덜 란드 벨기에 룩셈부르 노르웨이 덴마 스 웨덴 모나코 리슈인 등 대를 이어 왕위 를 세습는 왕국이 10개국이나 된다.
46 李花 295 물론 유럽의 군주제는 대부분 “군림은 되 치는 지 않는” 입군주제이다. 지만 그래도 국민이 주인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에 근본적으로 어긋나는 제도이고, 따라서 군주 지론자들이 내세우는 주장도 출생 신분에 따른 차별과 는 민주주의에서 용납될 수 없다. 그런데도 유럽 국가에서 왕실 지지는 다. 왕실 유지에 막대 비용을 국민 세금에서 지불는 것에도 관대 이유는 과 연 무엇일까? 여론은 대체로 다섯 가지를 꼽 는다. ▲첫째, 왕실의 존재가 비용보다 이익이 기 때문이다. 영국은 물론 덴마도 (단순 경제적 득실만 따져도) 왕실로 인 지출보 다 소득이 고, 왕실로 인 보 과를 더면 그 이익은 비 바 없이 커진다. 왕실 가족은 유명 연예인을 뛰어넘는 관심의 대상 이다. 최근만 도 덴마의 왕세자 레드릭과 왕세자비 메리의 세기적 신데렐라 러브스 리에 전 세계의 관심과 사랑이 쏟아져 (?) 을 올렸다. 근위병 교대식을 보러오는 관광객 덕에 생 기는 소득은 또 얼마나 많은가. ▲둘째는 입 군주국들이 국민에게서 충분 존중받을만 역사적 정당성을 가졌다는 것 ▲셋째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입군주는 명예직 이기에 정치와 무관다. ▲넷째는 정치와 거리를 두고 사는 군주나 왕실 가족이 정부의 손이 닿지 않는 소외지역 약자를 대상으로 자선사업이나 복지 관련 동에 적극적이어서 국민적 단의 상징으로 자리매김 덕이고 ▲다섯째는 입군주제 가 국민에게 정서적인 안정감을 준다는 것. 다시 말 의원내각제는 정권교체가 많을 수 밖에 없는 데 반 왕실은 영속성이 있어, 실 정치에 만족지 못 때, 결같은 위 를 가진 왕실의 존재에서 위안을 받는다는 게 입군주제를 지지는 이유들이다. <종/령대군 17대 · 始41세> 사(孝獻祠) (구례문유산 제1) 사는 조선조 2대 정종대왕의 12번째 왕자 도군 (1402.8.9.~1466.8.15.)과 배위 두 분의 위를 봉안 부조 묘(不祧廟)이다. 도군은 가 말생(末生)이며, 정종대왕 과 성빈 충주지씨 사이에 12번째 아들로 어났다. 1872년 3월 고종제는 도군 겸 영종정경 부사로 추봉고 공소공 (共昭公) 시를 내렸다. 1901년 9월에는 공(孝獻公) 시를 추증였다. 1874년 3월에 도군의 손이 살고 있는 구례군 마산면 사도리에 위를 봉안도록 여 매년 봄, 가을에 제례를 봉록 였다. <글 : 도군종 총무이사 용>
李花 295 47 날지 못는 천사 정민 서울 양진초등교 4년 우리 윗집에는 5살 쌍둥이 천사가 산다. 지만 불도 이 날 수 없는 천사들은 상 날기 연습을 며 닥거린다. 아침에 다닥 소리는 나의 모닝콜이 되고, 저녁에 다닥 소리는 나의 이른 잠을 깨운다. 엄마에게 윗집이 너무 시끄러우니 인 번만 눌러 달라고 면 우리 집도 윗집 못지않게 시끄러우니 아랫집 생각서 참자 고 셨다. ‘이 날지 못는 천사들은 언제쯤 커서 날개 가 돋아날까?’ 빨리 날개가 돋아날 수 있으면 좋겠다. 엘리베이에서 번씩 마주칠 때 윗집 아줌마는 미안서 어쩔 줄 몰라 지만 아이 들은 미안 기색이 전 없다. “뛰지 말자~!” 라는 아이들 엄마 말씀에도 청개구리처럼 오려 더 뛰어야겠다고 결심 을 지 뭐람. ‘천사의 을 쓴 이 꼬마 악동들 같으니라 고. 날 수 있게 되면 더 이상 닥거리지 않겠 지?’ 장난감 가게에서 는 천사 날개라도 사서 걸어주고 싶다. 윗집에서는 우리에게 수시로 맛있는 음식 을 갖다 주며 고마움과 미안을 시고, 엄마도 아랫집에 계절마다 블루베리, 찐 옥수 수, 군고구마 등을 갖다 드린다. 가끔 나의 유치원적 친구들이 늦게까지 놀 다 가면 일찍 잠을 자는 나는 아랫집 도깨비가 “조용 라~ 뚝딱!”고 도깨비 방망이를 두를 때도 있지만, 서로 얼굴을 볼 때마다 반갑게 인사드리고 친구들과의 날갯짓을 사 과드리면 서로의 관계가 씬 부드러워진다. 지금도 윗집 천사들은 날지 못는 날갯짓 으로 닥거린다. 저 천사들이 오늘 루만 또 날개가 자랄 수 있기를. 오늘도 나는 잠자리 에서 기도 본다. <이 글은 유네스코국위원가 주최 국내 유네스 코교 동 60주년 기념 ‘ 열전 쓰기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작이다. 본원 연 여성이사 손녀임.>
48 李花 295 드라마「太宗 이방원」을 보고 이완재(李完宰) 양대 명예교수 문박사 대 사극(史劇) 「太宗 이방원」이 KBS1 TV에 의 영상 제작되어 지난 12월 11일 부 전부 32에 걸쳐 방영되었다. 국 역사상 제왕 중 ‘가장 주목받을만 리더십의 소유자’는 과연 누구인가 는 물음 에서 조선의 제3대 국왕 ‘종’이 선정되어 제작된 사극이라고 다. ‘권력의 신’이 아 니라 ‘월 리더’ 종 이방원에 대여 “리 더가 갖춰야 모든 자질과 권력자가 짊어져 야 모든 숙명을 보여주려는” 기과 의도 에 제작된 작으로 알고 있다. 대선에 즈음 정치의 계절에 시의 적절 게 방영되는 작일 것이라는 기심과 기대 감 속에 급부상 ‘종 리더십’의 실체는 과 연 무엇이었으며, 또 어떻게 이되었는가에 주목며 시청였다. 이에 자는 대강 다음 의 네 가지 문제점 검를 시청 소감을 말보고자 다. 첫째, 역사서술이나 영상을 역사드라 마는 그 전개에 있어 공되게 중요 것은 무엇보다 사실(史實 : Fact)에 입각야 다 는 것이다. 역사 서술을 “사료(史料)로 여금 말게 는 것”이라고 지만, 사극 드라마 역시 역사적 문 기록에 근거 영상 물을 ‘역사를 복원’ 내지 재구성는 작 업이기 때문이다. 다만, 역사적 사실의 근거로 삼을만 문 기록은 찾을 수가 없기 때문에 부득이 상상력 을 동원 사실을 복원는 부분에서 사실의 즐로는 맞춰지기 든 부분이 다수 눈에 띄 었다. 둘째, 역사적 문 기록에 근거여 제작된 사극이라고 도 당대 역사적 사실에 대 올바른 역사 인식과 이가 우선돼야 다. 이 부분은 부족지 않았는가 생각된다. 방석 왕자가 세자로 책봉된 것은 조 2년 이다. 의삼군부(義興三軍府) 설치를 계기 로 추진된 병권중앙집중정책을 시는 과정 이었다. 조의 측근 정도전이 ‘왕권과 신권 (臣權)의 균적 조’를 구 수 있는 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