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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8일~6월15일-주님은 나의 최고봉 묵상해설-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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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by Bridge Fellowship International, 2021-05-31 12:04:17

6월8일~6월15일-주님은 나의 최고봉 묵상해설-2021

6월8일~6월15일-주님은 나의 최고봉 묵상해설-2021

Keywords: 오스왈드 챔버스

환경에서 역사하지 못하시게 막고 있
지는 않습니까? 그것은 주제넘은 짓입
니다. 우리의 환경은 문제가 아닙니
다. 우리는 어떤 곳에서라도 기도실에
있는 것 못지않게 예수님 안에 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처
한 환경을 스스로 변경시키거나 조작
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우리 주 예수님은
하나님 안에 거하는 순결하고 순전한
삶을 사셨습니다. 주님은 어떤 입장에
놓이든지 하나님과 늘 함께 계셨습니
다. 주님은 스스로 환경을 택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 자신에게 마
련된 하나님 아버지의 섭리에 온유한
자세를 취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는 ‘상황’에서
할일

우리 주님의 생애에 나타난 놀라운
여유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놀라
운 일로 흥분된 상태에서만 하나님을
바라보며 붙잡으려 합니다. 그러나 거

기에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진 삶의 고요가 없습니다. 그리
스도 안에 거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 잠깐만요. 저
는 이 일을 꼭 해야 합니다. 이 일이
끝나면 반드시 주님 안에 거하겠습니
다. 이번 주일이 지나면 틀림없이 주
님 안에 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렇게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주 안
에 거하도록 하십시오.

처음에는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합
니다. 그러나 점차 주님 안에 거하는
생활이 삶의 원리로 자리 잡히면 무의
식중에도 주님 안에 거하게 됩니다.
당신은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 안에
거하기로 결단하십시오.

묵상해설: “내 환경을 스스로 변경시
키거나 조작해서는 안 됩니다”라는 말
은 무슨 의미입니까? 그리고 성도가
자기 환경을 컨트롤하려고 할 때의 결
과는 어떠할까요?

자기중심성의 표현 = 자기 환경을
컨트롤하려는 마음

많은 갈등과 원망이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내 주변 환경이 내가 원하
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데에 있습
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자녀가 공부
를 해 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을 때
몹시 마음이 상합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배우자가 움직여주면 가족들이
좀 더 윤택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
데 남편이나 아내가 협력해 주지 않습
니다. 그러면 마음은 원망으로 가득하
게 됩니다. 그런 갈등과 원망은 상대
방(나의 자녀, 나의 배우자, 나의 직장
상사나 직원 등) 때문에 발생하는 것
이 아닙니다. 나의 욕구(demanding)
와 환경이 일치되지 않을 때, 내 안에
있는 나의 욕구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
니다. 자기 소원과 불일치하는 환경에
대해서 자기 자신이 견디지 못하는 것
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나의 환경을
내 마음대로 컨트롤하고 싶어 하면 할

수록 더 많은 갈등과 원망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환경을 자기
마음대로 변경하거나 조작하려는 일을
포기해야 합니다. 내가 내 마음대로
환경을 컨트롤하려는 자기 권리 주장
을 포기해야 합니다. 내 마음처럼 자
녀가 움직여주지 않는다고 아무리 원
망해도 환경은 변하지 않습니다. 배우
자가 내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는다
고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환경은 변하
지 않습니다. 오히려 환경을 컨트롤하
고 싶은 우리의 권리를 포기하고, 처
해진 환경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주변 환경을 형성하는 모
든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권리 주장을
포기하고, 그 가운데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우리
의 자녀에 대해서도 더 이상 좋은 대
학, 좋은 직장에 가는 것에 대해 기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나
의 아들과 딸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

렇게 기도한다면 내 안에서 갈등과 원
망이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 환
경을 스스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은 성
도에게 여전히 자기중심성이 남아있다
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 환경과 어
떤 사람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십니
까? 그것이 인위적인 컨트롤은 아닐까
요? 그것이 왜곡된 사랑에서 나오는
컨트롤은 아닐까요?

하나님 중심성의 표현 = 예수님 안에
만 거하려는 고요한 마음

예수님은 모든 환경 가운데서 하나
님 아버지와 같이 일하시고 고요하게
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환경을 자기
마음대로 변화시키거나 컨트롤하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역하신 시간도 약 3년 정도였습니
다. 많은 위인들은 세상에 ‘이름’을 남
기기 위해 수십 년 동안 자기 업적을
쌓으려고 노력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처럼 3년 정도로 공적 사역을

마무리한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
나 예수님의 3년 공생애는 다른 사람
들의 수십 년의 업적과 비교될 수 없
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환경에서 허락하신 시간 동안에 모든
것을 다 성취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
서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
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우리도 하나
님이 허락하신 환경을 능동적으로 수
용해야 합니다. 요셉처럼 종살이를 하
는 환경에서도 “주님께 순종하듯이 상
전에게 순종하라”(엡 6:5)는 말씀대로
행해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려는
사람은 ‘말씀’ 안에 거합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은 예수님이 ‘말씀’이
신 것을 압니다. 성도가 예수님처럼
모든 환경 가운데 고요하게 예수님 안
에(In Christ) 거하고자 온 마음을 쏟
을 때, 믿음의 경주를 완주할수 있습
니다. 챔버스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려는 자세가 삶의 원리로 자리를
잡으면 무의식중에서도 자연스럽게 주
님 안에 거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합니

다. 무의식 가운데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고, ‘말씀’을 나의 삶에서 영
적 원리로 삼게 됩니다. 하나님 중심
된 삶은 말씀을 하나님으로 인정해 드
립니다. 생명을 주시는 ‘말씀 하나님’
이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하
나님의 때에 나타나셔서 듣고, 보고,
손으로 만져보았다고 사도 요한은 말
합니다(요일 1:1-2). 모든 성경은 예
수님에 대해서 증언합니다. 따라서 예
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말씀’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주
님은 말씀하셨습니다(요 14:21). 그래
서 말씀 없이 영적 현상을 추구하면
신비주의자가 됩니다. 말씀 없이 기도
하면 발람의 기도가 됩니다. 말씀 없
이 예배하면 가인의 예배가 됩니다.
말씀 없이 구제하면 바리새인의 구제
가 됩니다. 말씀으로 하는 것만이 ‘생
명’을 얻게 하는 통로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생명의 말씀 하나님이시
기 때문입니다.

6월15일: 성품의 잣대

너희가 더욱 힘써 믿음에 덕을…더하
라(벧후 1:5-7).

단조로운 일상사가 가지는 영적 의미
본문에서 베드로는 우리가 이제 하

나님의 성품을 물려받았으니, 정신을
모아 경건의 습관을 기르고 근면하라
고 촉구합니다(4절). ‘공급하라’ 혹은
‘더하라’는 말은 성품의 성격을 드러
내는 말입니다. 누구든지 성품은 천성
이나 초자연적으로 지니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성품은 본인이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습관을 지니고 출생
하지는 않습니다.

마차간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넣어
주신 새 생명의 기반 위에서 우리의
새로운 습관을 형성해 가야 합니다.
우리는 겉만 번지르르한 생활을 해서
는 안 됩니다. 일상의 생활 속에서 하
나님의 은혜의 경이로움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런데 단조로운 일상사들이

야말로 우리의 성품을 가늠하는 잣대
가 됩니다. 영적 생활의 가장 큰 장애
는 우리가 큰일을 하려고 바라는 것입
니다.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수건
을 가져다가…제자들의 발을 씻으시
고…”(요 13:4-5).

미미한 일상사가 가지는 영적 의미
사람들에게 받는 시선도 영적 스릴

도 없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나날이 계
속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판에
박힌 생활은 영감에 가득 찬 시간들
못지않게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방편이 됩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스
릴의 순간들을 늘 주실 것으로 기대하
지 마십시오. 오히려 단조로운 일상사
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것을 배
우십시오.

사도 베드로가 말한 “더하라”는 말
씀은 우리에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꽃밭 속에서
하늘까지 인도하시기를 기대하지 않는
다고 말로는 시인합니다. 그러나 실상

그렇게 바라는 양 행동하고 삽니다.
내가 순종하는 극히 작은 미미한 일의
후면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담긴 무한
하신 능력이 있습니다. 의무감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환경
을 지배하신다고 믿기 때문에 내가 나
의 할 바를 행하면,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가 내가 순종하는 바로 그 지점에
서 주님의 구속을 통하여 내 것이 됩
니다.

묵상해설: “판에 박힌 생활은 영감으
로 가득 찬 시간들 못지않게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방편이 됩니다.”라
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또 하나님의
성품을 배우려면 ‘무명한 자’처럼 된
환경이 필수적입니까?

하나님의 성품의 표현 = 무명한 자가
되기로 선택하는 마음

성도가 하나님의 성품을 배우기 위
해서 무명한 자가 되기를 선택하는 것

은 필수적입니다. 성품은 어느 날 갑
자기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품은
매일의 삶 속에서 습관이 형성되면서
성품도 같이 형성되어갑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성품이 훈련되는 일은 일상
의 생활 속에서 일어납니다.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변화되는 날을 기다리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다윗은 약 13여 년 동안 사울 왕에
게 쫓겨 다니는 일상을 살았습니다.
언제 왕이 될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고 난리를 치는
사울 왕에 대해서 ‘하나님이 기름 부
으신 자’이기에 목숨을 건드리지 말아
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사울 왕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들을 사용하지 않습
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기준에 합당하
게 서 있는 하나님의 성품을 배웠습니
다. 또한 다윗은 평소에 나발의 양을
지켜주면서 아무런 보답도 청하지 않
았습니다. 어느 날 나발에게 어느 정
도의 성의를 요구했다가 배은망덕하다

는 말과 함께 도둑떼 취급을 받습니
다. 그러나 지혜로운 여인인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의 이야기를 듣고 자비
를 훈련하게 됩니다. 부당하게 취급받
는 상황 가운데서도 다윗은 오히려 하
나님의 성품을 훈련받았습니다.

성도는 평상시의 생활에서 때로는
부당한 취급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다윗처럼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을 배울 수 있습니다. 성도는 자
기 마음대로 환경을 컨트롤하려는 사
람이 아니라 환경에 대한 권리를 포기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도가 포기한
환경은 이제 하나님이 컨트롤하시기에
좌절할 필요가 없음도 배웁니다.

하나님의 길 = 무명해지려는 겸손한
자에게 성령의 기름을 부으심

챔버스는 “성도가 영적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큰
일을 하려고 바라는 것이다”라고 말합
니다. 그래서 챔버스는 충고하기를,

“하나님이 드라마틱한, 스릴이 넘치는
순간들을 늘 주실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고 단조로운 일상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것을 배우라”고 합니
다. 우리는 죽지 않고 주님 곁으로 간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바로 에녹입니
다. 그런데 에녹에 대한 기록은 아주
간단명료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였
다”라는 것입니다. 어떤 큰일을 해냈
다는 성경 기록이 없습니다. 에녹은
일상사에서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입
니다.

왜 사람은 드라마틱하고 스릴 있는
상황을 기대합니까? 많은 사람에게
‘영웅’처럼 보이고자 하는 자아의식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가면 성
도들이 알지 못하는 수많은 유명하지
않은, 무명한 성도들을 만나게 될 것
입니다. 평소에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
게 전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성도가
예수님의 보좌 가까이에 있을지도 모
릅니다. 영적, 신앙적으로 영웅처럼
살다 가려고 하면 할수록 하나님과 친

밀해지는 길에서는 멀어집니다. 이 땅
에서 ‘무명한 자’로 살아가기를 바랄
때, 오히려 하늘에서는 ‘유명한 자’로
주님께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많이, 오랫동안 기억되기
를 바라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
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는 속담이 있습니다. 성도가 이 땅
에서 이름을 남기려고 하면 오히려 하
늘에서는 더 ‘무명한 자’가 될 수 있
습니다. 교회 안에서 점점 막중한 직
분을 받는다고 해서 하늘에서도 그 직
분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
님의 은혜 가운데,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가운데 있었는지를 평가받을 것
입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이 사도가 된 것
이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의 사도가 된 이유
는 사도 바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고, 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부르심이 은혜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되고 자
신의 이름을 남기려고 하면 할수록 이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지고 있음을
성도는 늘 인식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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