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고 깊은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모든 일을 이기는
정복자들
평범한 사람들은 파도를 보면 기가
죽습니다. 그러나 파도타기를 하는 사
람에게 파도는 멋지게 타고 넘을 수
있는 즐거운 기회가 됩니다. 이것을
한번 적용해 보십시오. 환난, 절망, 핍
박은 우리에게 최상의 기쁨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 이것들은 사실 기를 쓰
며 싸울 상대가 아닙니다. 주님을 통
해서 우리는 이 모든 일을 능히 이길
수 있는 최고의 정복자들입니다.
어려움 가운데 실제로 처해 있으면
서 능히 이겨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은
고수(高手)의 정복이 아닐 수 없습니
다. 성도는 환난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기쁨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실은 환
난 때문에 주의 기쁨에 동참하게 됩니
다(고후 7:4). 찬란한 기쁨은 지나가
버리는 사물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무엇으로도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
랑 위에 굳게 세워져 있습니다. 순간
에 불과한 삶의 갖가지 고난과 쓰라린
경험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절대로 앗아가
지 못합니다.
묵상해설: “성도는 환난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기쁨을 아는 것이 아니다. 실
은 환난 때문에 주님의 기쁨에 동참하
게 된다”(고후 7:4)라는 진정한 의미
는 무엇입니까?
성도가 승리 얻는 곳 =갈보리 십자가
하나님이 성도들을 늘 기쁨으로 충
만하시도록 초대하는 한 장소가 있습
니다. 바로 “갈보리 십자가” 앞입니다.
성도들이 매일 주님의 힘을 얻는 곳이
바로 갈보리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을
매일 만나지 않고는 영적인 힘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갈보리 십자
가 앞에 매일 매 순간 나아가지 않고
얻었다고 하는 능력은 모두 인간적인
감동, 인간의지적인 동기일 뿐입니다.
그러한 인간적인 의지력은 모든 시간
이 지나면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경건과 거룩함을 추
구하는 신앙은 바리새인들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실상 메시아를 기다
리지 않았습니다. 유대교는 메시아를
통하여 구원받기를 바랐던 신앙이 아
닙니다. 유대교는 율법을 잘 준수하여
‘선한 행실’로 구원 얻어 천국에 간다
는 거짓 신념에 사로잡혔던 사람들의
종교였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바로 자신들의 ‘죄인 됨’에 대한 자각
이 없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즉 암환
자가 암을 자각하지 못한다고 해서 암
환자가 아닌 것이 아닌 것처럼, 그들
은 외면적으로는 거룩해 보였을지 모
르지만 내면적으로는 사실상 ‘죄’(sin)
로 가득한 영적인 암환자임을 자각하
지 못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치유자되신 예수님을
영적인 의사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
다. 예수님이 그들에 대하여 ‘영적 암
환자’라고 진단을 내릴 때, 오히려 예
수님을 죽일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한 사람
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상에서의 죄를 대속
한 사건이 위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지
식적으로는 알지만, 여전히 ‘선한 행
실’로 자기의 의롭다 함(self-right-
eousness)을 얻으려고 힘쓰는 것은
바리새인의 교훈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도가 외적으로 바리새인처
럼 선한 행실을 하려고 노력하는 마음
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갈보리 십
자가를 늘 바라보는 ‘가난한 심령’을
원하십니다.
성도가 승리하는 비결 =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이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신 것처럼, 성도의 고난
은 하나님 사랑의 확증인 십자가의 예
수님을 더 깊이 이해하고, 더 깊이 체
험하는 기쁨의 원동력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
하여 고난을 받는 것을 기쁘게 여기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분
의 몸 곧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워가고 있습니다.”(골1:24)라고 했습
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잃어버린 영혼
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지금 현재까
지도 고난을 당하고 계십니다. 그것을
아는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을 자기 몸으로 동참해서 일하는 사람
들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바로 모세가 왕궁의 부
요함을 포기한 이유가 바로 그리스도
의 고난에 동참하기 위해서였다고 말
합니다. 즉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모욕(disgrace)을 더 값지게 여겼다”
(히 11: 26)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모
세는 왕의 분노를 두려워하지 않고 왕
궁을 떠나 “고난”을 선택한 사람이 되
었습니다. 모세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고, 하나님의 뜻인 십자가
를 지고서 온유함이 넘치는 사람이 되
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
다. 이 고난에 동참하려고 하지 않기
에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요셉은 악
한 보디발의 아내 때문에 억울하게 감
옥에 갇혔지만 그때에도 하나님의 은
혜(Favor)가 같이 했다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강은 그
리스도의 고난에 몸으로 동참할 때에
더 크게 부어지며, 성령 충만도 그리
스도의 고난에 몸으로 동참해야만 충
만해집니다.
성령의 열매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
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몸으로 동
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부족
해서도 아니며, 예배를 많이 드리지
않아서도 아닙니다. 그 어떤 것을 할
지라도 그리스도의 고난에 몸으로 동
참하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
무리 믿음을 구해도 믿음이 자라가지
못합니다.
성도는 십자가의 길에서만 믿음이
생기고 성장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
가의 길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생명
을 준 길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
들이 하나님의 생명을 충만히 얻고자
한다면 십자가의 길에 서야만 합니다.
십자가의 길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
게 이해되고 경험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