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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by Bridge Fellowship International, 2021-02-01 10:51:24

2월21일~2월29일-주님은 나의 최고봉 묵상해설-저자 정지석목사

2월21일~2월29일-주님은 나의 최고봉

어 하나님의 능력과 계획을 판단하고
제한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이 전능자라는 사실을 잊어버리
는 순간, 우리는 주님의 손발을 묶어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님의 사역에 손과 발을 묶지 않으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몰입된 사람이 되
어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처럼 생각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주님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챔버스는 우리가 성도로 영적인 특징
이나 경험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
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몰입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어려운 상
황을 만나면 악한 영에 눌려 간질병
증세를 보인 아이를 가진 아버지가 말
한 것처럼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
도와주옵소서!”(막 9:22)라는 식으로
우리는 주님께 말합니다. 주님의 마음
은 구원, 치유, 능력을 주시기를 원하
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을 늘 알고자
하고, 하나님의 뜻을 늘 중심으로 따
르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무능함, 무지함, 무식함을 바
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
계획, 인도하심을 신뢰하며 하나님을
늘 바라보아야 합니다. 과거의 승리
경험도 당신을 이 순간 영적 승리로
이끌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 전투
에서 승리를 경험했다고 다음 단계인
‘아이 성’ 전투에서도 당연히 승리하
는 것이 아닙니다. 매순간 생수를 공
급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매 순간
새 마음을 주셔서 새로운 영적 분별력
을 더하시는 예수님 자신을 바라볼
때, 신선한 사역 가운데 늘 생기를 잃
지 않고 주님의 사역을 이루어 나갈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늘 신선한 기름
부으시기를 원하십니다. 늘 주님 안에
서 새로운 영적 지경을 경험해야 합니
다. 가장 불가능한 상황이 살아계신

예수께서 오히려 하나님으로 온전히
증거되시는 방법입니다.

성령의 사역자 = 주님의 역사를 제한
하지 않는 사역자

성령의 은사를 사용한다고 성령의
사역자가 아니요, 주님의 역사하심을
제한하지 않고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기꺼이 수용하고 그분을 따르는 것이
성령의 사역자입니다. 챔버스의 『주님
은 나의 최고봉』은 본인이 직접 쓴 글
이 아니고, 아내인 비디(Biddy) 사모
님이 챔버스가 돌아가신 후에 그의 가
르침들을 정리해서 발간한 것들입니
다. 어느 날부터인가 주님은 자꾸 전
쟁터에 가족들을 데려오라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챔버스는 기도하
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자꾸 성령님은
가족을 데려와야 한다는 감동을 더 주
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구하고자 할 때, 어느 날, 마가복음
9:8과 시편 37: 4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시리라”라는 말씀을 통해
서 확신을 얻고 믿음을 가지고 가족을
이집트로 데려왔다고 합니다. 바로 아
내인 비디 사모님은 죽음 앞에서 말씀
을 전하는 챔버스의 말씀을 다 받아쓰
게 된 것입니다.
챔버스는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인간
의 지혜가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그것
만으로는 감히 누구도 예수님을 위한
첫 걸음을 내딛지 못할 것입니다. 성
령님이 내게 직접 말씀하셨음을 알지
못하다면 말입니다.” 그는 실로 성령
의 인도에 민감한 신앙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을 가장 최우
선으로 생각한 성령의 사람이었습니
다. 결국, 챔버스는 이집트에서 죽었
지만, 아내인 비디 사모님은 전쟁터의
텐트에서 밤마다 남편 목사님이 장병
들에게 증거하던 복음의 말씀을 다 듣
고 모든 말씀을 기록해 놓을 수 있었
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은 목사님과

비디 사모님은 그렇게 오랫동안 수많
은 사람에게 복음의 정수를 경험하게
하는 말씀을 접하게 하는 성령님의 통
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제한하지
않는 사람이 성령의 사역자입니다. 성
령님께 민감하여 성령님이 원하시는
대로 우리 자신을 내어드릴 때 주님은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바로 단지 “주
여, 주여!” 하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
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성령의 사역자들입니다.

2월28일: 내가 만들어낸 사역

이로써…우리가 믿삽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요 16:30-31).

자기 판단에 따른 사역의 문제
우리는 이제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

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정말 믿느
냐?”라고 반문하십니다. 주님은 때가
오면 너희가 나를 혼자 두고 떠나리라
고 예고하셨습니다. 많은 사역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혼자 남겨 두고 사역
의 의무감이나 자기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서 그저 사역의 일터로 나아갑니
다. 그 이유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
명을 중심으로 삼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과의 밀접한 교
제에서 벗어나 자기 나름의 종교적인
이해에 따라 살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거기에 죄나 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내 영혼이 예
수 그리스도를 잘못 이해했기 때문에

슬픔과 고난과 당황스러운 일을 겪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깊은 슬픔
에 빠지게 됩니다.

자기 이해에 따른 사역의 문제
만사를 주님께 연결하십시오. 우리

는 예수님의 부활생명에 지금보다 훨
씬 깊이 의존해야 합니다. 그래서 만
사를 주님께 연결 짓는 좋은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만사를 자기 상식에 따라 결정
을 해놓고서는, 하나님께 그 위에 축
복해 달라고 간청하기만 합니다. 하지
만 하나님은 그런 일에 복을 내리시지
않습니다. 그런 일은 하나님의 통치하
심과 온전한 신앙에서 벗어나 있기 때
문입니다.

우리가 의무감에서 무슨 일을 하려
고 하는 것은 마치 예수 그리스도와
경쟁하겠다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우
리는 우쭐해져서 “이 일에 내가 꼭 이
렇게 저렇게 해야만 된다!”고 말합니
다. 그것은 곧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

생명 대신 의무감을 보좌에 앉히고 있
다는 증거일 따름입니다. 우리는 양심
의 빛이나 의무감으로 살라고 부름 받
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라
고 부름 받았습니다(요일 1:7). 우리가
무슨 일이든 의무감에서 사역을 하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하는 사역의
‘이유’를 쉽고 강하게 설명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한
순종으로 행하는 사역이라면 아무런
설명도 필요치 않습니다. 단지 순종일
뿐입니다. 설명 가능한 자기 이해에
따른 사역을 하는 것은 성도가 쉽게
조롱감이 되는 이유입니다.

묵상해설: “많은 사역자들이 예수 그
리스도를 혼자 남겨 두고 사역의 의무
감이나 자기 스스로의 판단에서 나온
사역의 필요성 때문에 일터로 나아간
다”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혼자 남겨 두는 사역 =

내가 만든 사역

많은 사역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혼자 남겨 두는 이유는 내가 만든 사
역 때문입니다. 이렇게 될 때, 부활하
신 예수님을 놓치는 것이고, 오히려
부활하신 예수님과 경쟁을 하는 식의
사역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활하
신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
시고, 주님의 양들에게 성령님을 통하
여 음성을 들려주시는 목자가 되시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사역을 하
면 때로는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이
게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습니다. ‘십
자가의 좁은 길’은 사람의 관점에서는
길이 협착하고 찾는 이가 적다는 예수
님의 말씀처럼 어리석게 보이거나, 꺼
려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는 수많은 의무감을 조장하
는 세대입니다. 하나님의 뜻보다는 하
나님을 위한 다는 명목으로 수많은 선
한 행위 자체- 구제, 선교, 전도, 봉

사 등에 매달려, 주님의 일을 하려고
합니다. 의무감으로 하는 사역 가운데
서는 주님의 십자가 복음이 온전히 증
거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온전한
십자가 복음의 증거보다는 ‘일’(work)
을 성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일
을 성취하고 나서 복음을 증거하려고
하지만 십자가 복음의 알맹이는 너무
나도 퇴색해 버리게 됩니다. 예수님의
참 제자를 만드는 일을 오히려 방해하
는 입장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명이라도 더 구원해야겠다는 마
음’으로 시작할지는 몰라도 예수님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참 제자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방해하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내 사
역은 무익합니다. 그래서 챔버스는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생명에 지금보
다 훨씬 깊이 의존해야 한다”고 충고
합니다. 모든 일을 주님과 연결짓는
습관을 길어야 한다고 충고합니다. 그
렇지 않으면 상식에 따른 결정을 내리
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상식

에 따라서 내가 만들어 놓은 사역에
대하여 하나님의 도우심과 축복을 간
청합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홀로 남겨놓고 시작한 사역이기 때문
입니다.

예수님과 같이 하는 사역 = 우리보다
먼저 일하시는 주님을 쫓아가는 사역

주님은 우리보다 먼저 일하시고, 어
디가 푸른 초장인지도 주님이 이미 다
알고 계시고, 성도를 이끌어 가시는
것도 다 계획하여 놓으신 분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목자 되신 예수님이 지
금 어디서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보고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기 스스
로 일하신 적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
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이고 알려주
시는 일만을 행하셨습니다. 즉 예수님
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자기 스
스로 알아서 일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성도는 예수님보다 더 나서
서 하려고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목자 삼아서 온전히 일하는 사람은 주
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고 따라가서 일
해야 합니다.

막연히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이 일은 주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라고
추측하여 주님의 일을 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히브리서에서 말하는 믿음
의 선배들은 모두 주님이 일하시는 것
을 보고 따라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께 “의로운 자”라는 평가와 인정을 받
은 것입니다. 열심히 일해서 의롭다고
인정받은 것이 아니라, 열심히 하는
것보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이 일
하시는 것을 보고 따라가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믿음의 선진들은 우
리들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자기
스스로 일하려고 합니까? 주님의 마음
에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
님을 위해서 열심으로 한다는 것 자체
에 관심을 두기 때문입니다.

챔버스의 충고대로 예수님의 부활생
명 대신 사역에 대한 의무감을 보좌에
앉히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됩니다.

성도들의 소명은 ‘하나님이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빛 가운데 행하는 것’(요
일 1:7)입니다. 성도가 빛 가운데 행
한다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
활생명을 따라 행한다는 것입니다.

빛 가운데 행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의무감에서 나오는 논쟁에 휩
싸이게 됩니다. 그래서 챔버스는 “우
리가 무슨 일이든 의무감에서 사역을
하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하는 사
역의 ‘이유’를 쉽고 강하게 설명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한 순종으로 행하는 사역이라면 아
무런 설명도 필요치 않습니다. 단지
순종일 뿐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챔버스는 순종이 아닌 의무감에서
나온 설명가능한 자기 이해에 따른 사
역들은 성도를 조롱거리로 만든다고
말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혼자
남겨 두고 사역의 의무감으로 행하는
일들은 결국 성도를 조롱받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주님과 같이 동행하는 것이 성도를 가
치 있게 만듭니다.

2월29일: 당신의 소원은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눅 18:41).

예수님을 제한해서 보지말라
주님의 얼굴을 대면하십시오. 당신

자신에게 꺼림이 될 뿐만 아니라 남에
게도 당신 자신이 꺼림이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당신이 스스로 해
결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앞서가는 자
들이 저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저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39절). 주님이
돌아보실 때까지 계속 부르짖으십시
오. 당신의 상식을 신처럼 모셔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놀랍게도 직접
대면하시고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시
면, 당신은 주님이 상식이 아닌 초자
연적인 방법으로 역사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과거에 주님을 제한하여 일을 못
하게 만든 당신의 경험에 비추어 주님
을 얼마나 제한하였는지를 살펴보십시
오. 우리는 이런 점에서 과거에도 실

패자였고 앞으로도 실패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 우리는 우리자신이 참
으로 원하는 일을 주님께 요구하지 않
게 됩니다. ‘하나님께 이런 일을 해
달라는 것은 말도 안 돼!’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 일이 불가
능한 일이라면, 그 일은 우리가 마땅
히 주님께만 청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 자신의 인격을 믿으라
하나님은 불가능한 일을 능히 하실

수 있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맹인은
시력을 회복했습니다. 당신에게 완전
히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지는 일이 실
상은 당신의 옛 사람의 모습을 남김없
이 지우고, 주님과 하나로 더 연합하
게 만드는 일이 될 것입니다. 당신이
주님께 그 일을 간청하면 주님이 이루
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주
님이 전능자시라는 사실을 믿는 지점
까지 나아가야만 합니다.

믿음은 단지 예수님이 하신 말씀만
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

신의 인격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단지 주님이 하신 말씀만 쳐다보고 있
으면 결코 제대로 믿지는 못할 것입니
다. 일단 우리가 예수님을 대면하면,
불가능한 일도 주님은 호흡처럼 자연
스럽게 해결해 주십니다. 우리는 한사
코 거역하는 마음 때문에 고통받습니
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믿기를 거부합
니다. 믿음의 바퀴를 묶어 놓고 계속
걱정만 하고 있습니다.

묵상해설: “믿음은 단지 예수님이 하
신 말씀만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의 인격을 믿는 것이다”라
고 말한 영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진짜 믿음 = 인격체이신 부활의 예수
님과의 만남

챔버스는 우리에게 불가능한 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맹인이 시력을
회복하는 것처럼, 우리가 주님과 합해
져서 옛사람의 모습이 전혀 남아있지

않게 되는 일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지만 이러한 우
리의 소원은 주님께 간청할 때 주님이
이루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
리는 그러기 위하여 주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온전히 믿게 되는
지점(point)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것
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지적으로 주님
의 말씀을 이해하고,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에 대
하여 인격적으로(personally) 믿는 것
이 ‘참된 믿음’입니다. 믿음은 ‘지
식’(knowledge)이 아니라 주님에 대
한 인격적인 교제(the intimate and
personal relationship with Jesus)
라는 것입니다.

에녹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에녹
은 하나님과 동행하였기 때문에 홍수
멸망 전에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않았다고 했습니다(창 5:24). 에녹은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
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은 사람이었다
고 말합니다(히 11:5). 즉 에녹을 통

해서 볼 때, 참된 믿음의 증거는 하나
님과 동행(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가운데 살고 있는 사람이 하나님을 기
쁘시게 하고, 참된 믿음의 소유자로서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당신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축복받기 위하여 더 큰
믿음을 가지려고 하고 있습니까? 더
큰 믿음은 더 깊이 하나님과 교제하여
더 깊이 주님과 연합하는 것입니다.

인격적으로 늘 예수님을 경험하는
것이 믿음의 본질입니다! 주님과의 인
격적인, 개인적인, 친밀한 교제가 목
적이 되지 않으면, 우리 주님과 늘 비
본질적이고 피상적인 관계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소원이
주님과의 친밀함이요, 더 깊은 사랑의
관계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어야 합니
다.

가짜 믿음=지식적으로만 예수님 만남

우리가 지식적으로는 예수님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삶 가운데 살
아 역사하시는 예수님이 전능자시요,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는 지점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지식적으로 여호와
라파(치료하시는 하나님)를 알 수 있
습니다. 지식적으로 여호와 이레(공급
하시는 하나님)를 성경을 읽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이 실
제 내 삶에서 역사하시는 전능자이심
을 경험한 인생이 복된 인생입니다.

우리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불가
능한 일들이 있습니다. 여러 번 우리
는 예수님이 하실 수 있는 것들을 제
한했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우리가 원
하지만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은 주님
께 아예 요청하려고 들지 않습니다.
챔버스는 “만약 그 일이 불가능한 일
이라면 그 일은 우리들이 마땅히 청해
야 할 일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 스
스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을 주님께 요
청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지나가신다
는 이야기를 듣고 소리소리 지르며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

기소서!”라고 한 맹인처럼 그렇게 주
님께 나아가야 합니다(눅 18:38). 주
변의 사람들이 그 맹인을 제지하며 조
용히 하라고 합니다. 그럴수록 그 맹
인은 더욱 심하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진정으로 주님께 이렇게 부르짖어 나
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맹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눅
18:42)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나
서 맹인의 눈이 열렸습니다.

살아계신 부활생명이신 예수님을 인
격적으로 만나는 것을 뒤로 미루지 마
십시요! 지식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자세하게 알고 있어도 소용없
습니다. 살아계신 전능자이신 주님을
개인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성도의 평
생소원이 주님을 깊이 알고 만나고 동
행하는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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