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 위해 마음을 쏟고 있는지 스스로
질문해 보십시오. “너희가 내 안에 거
하고”(요 15:7). 이것이 당신 삶의 구
심점입니다. 모든 것을 이 축에서 출
발하여 생각하고 행하십시오. “무엇이
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
루리라”(요 15:7).
내 삶의 ‘구심력’이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주님 안에 거하고 있습니까?
힘써 주 안에 거하려고 합니까? 우리
삶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무엇입니
까? 사업입니까, 봉사입니까, 남을 위
한 희생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위해
힘써 일하는 것입니까? 내 삶을 움직
이는 원동력은 주님의 속죄여야 합니
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참 삶을
위한 것들과는 무관한 일들에 허비합
니다. 우리는 최대의 원동력을 일으키
는 우리 삶의 구심점에 몰입하기 위해
자신들을 잡다한 것들로부터 제한해야
합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예수님 안에 거하는 제
자가 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입니
다. 그런 제자가 자유로운 선택을 하
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실상은 하나
님의 예정된 섭리 가운데 있는 것들임
을 알아야 합니다. 이 얼마나 신비한
일입니까? 우리의 자유로운 선택이 하
나님의 예정된 섭리가운데 있다는 것
은 논리적으로 보면 모순돼 보이는 말
같지만, 실상 이것은 성도에게는 빛나
는 진리입니다.
묵상해설: 예수님이 내 삶의 구석구석
까지 밀려와 나를 지배하고 계신 증거
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이름 =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이 말씀(요 14:13)은 뒤집
어 읽어보면 예수님이 시행하시는 성
도의 기도와 간구는 무엇을 구하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예수님의
인격을 의미하고, 예수님의 임재하심
을 의미합니다. 즉 예수님이 늘 말씀
하신 것처럼,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관계에서 구하는 것
은 무엇이든지 다 예수님이 성취하신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내
삶의 중심, 내 삶의 구심점이 된 채로
구하는 것은 예수님 안에서 구하는 하
나님의 뜻을 담은 그릇이기 때문에 당
연히 예수님이 친히 시행하신다는 것
입니다.
그래서 자기중심적인 삶을 주장하는
자기 의지를 버리고 예수님 안에 거하
는 제자가 되면 그런 제자에게는 자유
롭게 선택하는 것들이 실제로 하나님
의 뜻을 담은 하나님의 섭리의 내용이
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생각,
모든 선택의 출발이 주님이시기 때문
입니다. 주님의 속죄가 삶의 구심점이
된 사람은 주님의 뜻을 담는 의지를
발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담는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기도
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아들을 좋
은 대학에 가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
가 아니라 “우리 아들의 마음에 예수
님의 생명을 충만하게 부어 주세요!”
라는 기도입니다. 현재 당신은 어떻게
기도하고 계십니까? 그리고 왜 그렇게
기도하십니까? 바로 당신의 마음이 그
것(일류대학, 돈, 출세, 명예, 사람의
칭찬 등)에 쏠려있기 때문입니다. 그
런데 바로 그것 때문에 예수님 안에서
진정으로 온전히 구하지 못하고, 온전
히 구하지 못하므로 받지도 못하고 있
는 것입니다.
사람의 관계 곧 가정관계, 직장관
계, 교회에서의 성도 간의 관계 가운
데 예수님의 이름이 없으면 참된 사랑
의 교제가 이루어질 수 없으며, 상호
진정한 유익을 주는 관계의 열매를 거
둘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앞에 놓
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 = 내 삶의 구심점
점검해야 합니다! 혹시 내 삶의 구
심점이 ‘내 비즈니스’ 또는 ‘내 가정’
또는 ‘남을 위한 희생적인 사역’ 등은
아닙니까? 이런 것이 내 삶의 원동력
이라면 헛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
다. 왜냐하면 예수님 안에 있지 않은
것들은 아무리 멋있고, 훌륭하고, 선
하게 보여도 성경에서 말한 썩어질
‘죽은 행실’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내 삶의 모든 구심점은 “예수님의
피 흘리신 구속”에서 출발해야 합니
다. 그래서 내 비즈니스를 잘 되게 해
주는 무당 같은 존재로 예수님을 취급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비즈니스의 진
짜 주인(owner)이 되게 해 드려서 하
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해야 합니
다. 가정에서도 부모와 자녀 사이에
예수님이 중심으로 서 계셔야 합니다.
성도는 자녀를 육신적 모성애, 부성애
로 키우는 부모가 아니라, 하나님의
교훈과 훈계로 키우는 부모여야 한다
는 말씀처럼, 육신적 사랑은 썩어질
열매밖에는 거둘 것이 없으므로 예수
님이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 중심이
되셔야 합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으면 그것이 외적
으로 아무리 선한 것처럼 보여도 육체
의 썩어질 것을 거둡니다. 자기 짐을
지고 성령을 위하여 심을 때에만 영적
인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갈 6:8).
육체를 위하여 심으면, 열심히 자녀를
모성애, 부성애로 양육했어도 은혜를
모르는 자녀로 성장하게 됩니다. 자녀
에게 사랑을 부은 만큼 자녀로부터 효
도를 받을 줄로 생각하지만, 자녀로부
터 감사를 모르는 모습으로 되돌아오
는 것을 보고 인생의 허무함을 경험하
게 됩니다. 잘 먹이고 잘 입혀준다고
자녀에게서 “고맙습니다!”라는 감사와
은혜의 고백을 듣게 되는 것이 아닙니
다.
자녀의 마음에 하나님의 생명의 씨
앗이 뿌려져 심기우지 않으면 자녀는
오히려 부모를 원망하고 불평하게 됩
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자녀들은
더 잘 먹이고, 더 잘 입혀주고, 더 많
은 돈으로 밀어주는 다른 부모들과 자
신의 부모를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바
로 이것이 육체로 심은 것의 결과입니
다.
물질이 부족하고, 환경이 좀 어려워
도, 예수님의 생명이 있는 자녀는 하
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나무로부터 영
적 열매인 ‘감사와 은혜’를 공급받습
니다. 그래서 육신의 부모님에게도 감
사와 은혜를 느낄 수 있습니다. 진정
으로 하나님 사랑을 아는 자녀가 육신
의 부모에게도 효도할 수 있습니다.
나의 삶의 구심점이 예수님이셔야 합
니다. 나의 자녀의 삶의 구심점도 예
수님이셔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님의 제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때
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
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하게 경
험한 사람은 부모의 은혜도 잊어버리
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