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하나님이 수학도 가르치시네?
Newton's 1st Law 는 관성의 법칙이다.
'외부로 부터 아무런 힘도 주어지지 않으면 움직이고 있는 물체는 계속 그 운동을 유지하고, 정지해 있는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게 된다'는 것이 제1법칙인데, 사실 제2법칙에서부터 나온 법칙이다.
Newton's 2nd Law 는 가장 유명한 사과법칙(?)으로 뉴톤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며 발견한 법칙인데, F = ma 이다.
즉, '어떤 물체(m)에 힘(F)이 가해지면 운동(a)이 일어난다'는 것으로 이로부터 모든 물리학의 법칙들이 쏟아져 나오게 된다. 특히, 만약 외부에서 가해지는 힘(F)이 없으면 운동을 나타내는 a(acceleration)이 zero 이므로 그 물체는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거나 정지해 있는 운동을 하게 된다.
그리고 Newton's 3rd Law 는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으로, '어떤 물체에 힘(작용)이 가해지면 반드시 반작용이 생겨나고, 그 힘은 크기는 같고 방향은 정반대이다'를 설명한다. 가속도(acceleration)을 integration 하면 속도(velocity) 가 되고,
속도(velocity)를 integration 하면 위치(position)가 된다.
반대로, 위치(position)를 derivative 하면 속도(velocity)가 되고,
속도(velocity)를 derivative 하면 가속도(acceleration)가 된다.
뉴톤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면서 발견한 법칙은, 사과를 떨어뜨리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지구 중심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바로 중력이라고 부르고, 그것에 관련된 가속도를 중력가속도(g, gravitational acceleration)라고 한다. 이 중력가속도 g 가 지구 어디든 작용을 하고 있으며, 방향을 아래(지구 중심)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 물리학(Physics)의 기본이 된다.
예를 들어, 어떤 물체가 있는 위치를 구하는 공식은 모두 여기서 나온다.
즉, 물체에 작용하는 가속도는 중력가속도이고 방향은 아래를 향하므로 a g 이고, 옆으로는 가속도가 없으므로 a = 0 이다.
따라서 x-방향과 y-방향을 나누어 생각하면,
x-방향:
a=0
양쪽을 integrate 하면
v C vx0 = initial x-direction velocity 이다. 양쪽을 integrate 하면 이제 x position 이 나온다.
xvx0tCvx0tx0 (initialxposition) 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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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방향:
a g
양쪽을 integrate 하면
v gt C gt vy0 (initial y-direction velocity) 이다. 양쪽을 integrate 하면 이제 y position 이 나온다.
y1gt2 v ty (initial y position)
2
이 된다.
g 는 SI unit 으로는 9.8 m/sec2 이고 British unit 으로는 32.2 ft/sec2 이므로 SI unit 으로 위치를 구하면,
x vx0t x0 y4.9gt2 v ty
y0 0
y0 0
이며, British unit 으로 위치를 구하면,
x vx0t x0
y16.1gt2v ty가된다.
y0 0
이 위치공식을 써서 수많은 물리학 문제들을 규명하게 된다.
그런데 Newton's 2nd Law 인 F = ma 에서
만약 외부에서 가해지는 힘(F)이 없으면 운동을 나타내는 a(acceleration)이 zero 라는 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a = 0 라는 말은, v = Constant 라는 말이고, 이 Constant 라는 것은 관성의 법칙을 따르는 Constant Motion 을 의미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Constant Motion 은 어떤 숫자 혹은 zero 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즉, 어떤 일정한 숫자의 velocity 로 운동을 하거나 zero 라는 숫자의 velocity 로 운동을 한다는 것이다.
히브리어에는 정적인 동사는 없다.
모두가 동적인 동사이고, 그런 면에서 정지해 있다는 stop 이라는 동사도 정적이 아니라 동적인 동사이다. 다시 말하면, 계속 움직이고 있지만 velocity 가 zero 라는 것이다.
시편46편10절 말씀에서와 같이,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가만히 있는 것은 그저 가만히 멈춘 동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내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들을, 생각들을, 방법들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바라보고 알고자 하는 매우 동적인 멈춤 동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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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전에 묵상한, '잠잠' 과 '성령의 감동'을 통해 mph 는 'mile per hour' 가 아니라 'me per holy spirit' 이라는 마음이 들었던 것을 기억한다. 내가 얼마나 '성령의 감동' 보다 빨리 달리고 있느냐가 mph 라는 것이다. 내가 달리는 60 mph 는 '성령의 감동'과 비교해서 60배나 빠른 속도로 가고 있다는 것이고, 그렇기에 이사야와 같은 '성령의 감동'을 체험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속도는,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가 마치 예수님을 보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는 이 깨달음의 속도는 1 mph 라는 생각이 든다. 이 속도는 '성령의 감동'의 속도와 나(me)의 속도가 같을 때이다. 그래서 그저 성령이 말씀하시는 대로 듣고 보고 할 수 있는 속도임을 묵상한다.
어려운 문제나 고난 가운데 있으면 하나님은 때론 아무 것도 하시지 않는 듯 하다. 나는 잠잠히 그리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을 바라는 1 mph 의 속도로 있는 것 같은데 하나님은 마치 정지해 계신 것 같다. 정지는 0 이다.
그러나 1/0 mph 는 무한대의 속도이다. 내가 하나님 앞에 잠잠하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을 바라볼 때 내 눈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내 지각으로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무한대의 속도를 느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가만히 계심은 정지의 뜻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시며 가만히 계시는 동사라고 한다. 이사야53장7-12절 말씀에도 도무지 내가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이 구원을
계획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10 절)" 우리 모두를, 나를 존귀한 자로 강한 자로 삼고 하나님의 몫을 나누고 탈취한 것(구원과 영생)을 나누게 하시는 하나님의 속도임을 깨닫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속도는 세상의 분주함이라는 성공이라는 부유라는 100 mph 의 속도가 아니라 '기다림'의 속도 임을 깨닫는다.
기다림은 정지가 아니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 무엇보다도 가장 활발한 움직임이고, 기다린다는 것은 주님을 바라본다는 뜻임을 깨닫는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은 차가 오는 쪽을 뚫어져라 쳐다보게 마련인 것 처럼, 진심으로 하나님을 기다린다면 그 쪽을 바라보고 주님을 찾으며 그 분을 소망할 것임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언약은 그렇게 기다리는 이들을 통해 성취됨을 말씀하신다.
54. 뉴톤의 법칙 안에 내가 있는가? 밖에 내가 있는가?
뉴톤의 만유인력의 법칙은 지구에 있는 누구나 에게 적용되는 법이다. 그런데 성령장인 로마서8장1-2절에서 또 다른 법이 있는 것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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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뉴톤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면서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듯, 지구 위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아래로 떨어지게 되어 있다.
그런데 참새를 본 적이 있는가?
참새는 떨어지지 않고 잘 날라 다닌다. 그 참새를 잘 살펴보면 또 다른 법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느 날 떨어지지 않고 공중에 있는 참새를 유심히 살펴보니 참새가 날갯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얼굴을 보니 얼굴에 땀이 맺혔을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인지 가끔은 쉬러 전깃줄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너는 어떻게 떨어지지 않고 공중에 떠 있니?"라고 참새에게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그런 법도 있나요?"
참새는 그냥 떨어지지 않고 공중을 나는 것이다. 왜냐하면 참새는 만유인력이 작용하는 가운데 또 다른 법칙 안에 살기 때문이다.
로마서에서 말하는 죄와 사망의 법이 모두를 아래로 떨어뜨리는 만유인력의 법칙이라면,
생명의 성령의 법은 참새가 자신도 모르지만 만유인력이 작용하는 가운데 또 다른 법칙 안에 살고 있는 법 때문이다.
"저도 모르지만 저는 다른 법 안에 있어요. 생명의 성령의 법 안에 있어요."라고 고백할 수 있는 우리가 되자.
55. 전기는 (+) 에서 (-)로 흐르는가? (- ) 에서 (+)로 흐르는가?
건전지에 보면 (+) 와 (-) 표시가 되어 있는데, 전기는 전압(Voltage)이 높은 곳부터 전압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 에서 (-)로 전기가 흐르는 것으로 이를 전류(Current)라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 Electron 의 흐름을 보면 (-) 에서 (+)로 흐르고 있으며, 기존의 전기가 흐르는 방향이라고 생각한 것과 정 반대로 흐르고 있다.
그래서 건전지를 전자제품에 끼울 때에는 (+) 와 (-)를 잘 보고 제대로 끼워 넣어야 한다. 이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눈으로 보면 체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린 종종 신앙생활을 할 때 건전지를 바꿔 끼워놓고 소리가 안 들린다고, 영상이 안 보인다고, 움직이지 않는다고 할 때가 너무도 많다.
마가복음 11:24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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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에서 기도할 때의 원칙을 알 수 있다.
1) ‘무엇이든지’ 는 기도제목을 말한다.
2)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기도하는 것이다.
3) ‘받은 줄로 믿으라’는 믿음이다. 받을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받은 줄로 믿는 것이다. 4) ‘그대로 되리라’는 체험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순서이다. 이를 간단히 WART(Whatever, Ask, Response, There)로 기억하며 기도하면 좋다. 대부분은 체험이 안되면 아직 받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계속 구하는 기도를 한다.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중요한 순서는, 믿은 다음에 체험하는 것이다.
요한일서 5:14-15
14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15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의 뜻대로)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얻을 줄이 아니라)을 또한 아느니라
신앙 생활하면서 담대해지고자 한다면 기도하면 들으심을 믿고, 얻은 줄로 믿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그의 뜻대로’ 구하는 것이다. 기도가 응답되고 체험되려면 무엇이든
‘그의 뜻대로’ 구해야 하는 것이다. 이 점은 느낌의 문제가 아니라 냉정한 문제이고, ‘주의 뜻대로’ 묻는가에 응답이, 체험이 달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성령충만을 구하는 것은 주의 뜻이다. '성령충만을 받으라'는 주의 뜻이다. 이 말은 주의 뜻이기에 구하면 받은 줄로 믿고, 그대로 되리라는 체험을 하면 되는 것이다. 바로 얻은 줄로 아는 것이 담대함이다.
그래서 늘 ‘주시옵소서’ 하는 기도가 아니라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 건전지를 거꾸로 끼지 말자. 느낌대로 하는 게 아니라 원칙이다. 말씀하신 바를 믿고 응답하신 것을 믿고 확신하고 감사하는 것이다. 성령세례 이미 받은 줄로 믿고 감사하는 것이다.
56. 십일조란? 십일조란?
"하나님이 정하신 십일조 규례" 신명기 14:22-29
계속 반복되는 말 '여호와께서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 과 '십일조'를 통해 예배와 십일조가 연관이 많음을 말씀하신다. 또한 반복되는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통해 예배와 십일조는 마음을 드리는 것임을 본다.
그런데 십일조가 그저 십분의 일을 드려 복을 받겠다는 계산이 아니라 모여서 먹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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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를 가지고 성전으로 모이는 것이다. 하나님이 십일조를 먹는게 아니라 내가 예배보며 먹는 것이 십일조이다. 십일조를 드림으로 복을 받는 것이 십일조의 목적이자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항상 배우는 것이 십일조를 나누는 목적이자 결과이다.
십일조를 내가 먹는데 어떻게 하나님 경외하는 것을 배우는 것일까?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신 14:7)
하나님이 계신 성전에서 십일조(음식과 재물)를 먹는 것이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게 되는 것은 재물의 십분의 일에 대한 욕심을 제어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을 실천하는 것을 통해서이다.
십분의 일의 마음을 보면 나머지 십분의 구의 마음을 알 수 있음이 십일조의 원리이고, 십계명의 원리이다. 일계명이 지켜지면 나머지 아홉계명은 어찌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또한 십일조의 원리는 순종의 원리이기도 하다. 한꺼번에 전부를 드리는 순종을 하기까지 미루는 것이 아니라 오늘 시작하는 순종이 나머지를 결정하게 된다.
'한꺼번에'가 아니라 십분의 일 씩 순종하자. 사랑의 십일조.
희락의 십일조.
화평의 십일조.
오래참음의 십일조. 자비의 십일조. 양선의 십일조. 충성의 십일조. 온유의 십일조. 절제의 십일조.
내가 이런 십일조를 드리며 순종할 때 하나님은 범사에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얼마나? 11,000,000,000,000(11 조) 만큼이나...
WOW~
57. ‘신 678’의 삶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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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제년'은 자유가 선포되는 해로 7 년마다 돌아오는 제 7 년 안식년을 말한다(레 25:10). 안식년에는 꾸어주었던 것을 탕감해 주어야 하며, 종으로 살던 사람들이 해방된다. 이 해를 채무나 종의 관계에서 놓임받고 면제된다는 의미에서 면제년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방인에게는 독촉해도 되지만 형제에게 꾸어 준 것은 면제하라고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신 15:3)
'면제년'의 핵심은 '관계' 이다. 관계에서 놓임받고 면제된다는 의미에서 면제년이다. 그러나 이방인은 이런 관계가 없으므로 그야말로 면제년에서 면제가 되었다.
이 면제년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신원과 구원의 해가 되었고, 거저 죄의 빚을 면제해주신 은혜가 되었고, 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면제년'을 누리는 자가 그리스도인이다. 이방인은 이런 면제년에서 면제된 자들이다. 그래서 이방인은 고아같다고 했던가!?
신 15:9,10 에서 품지말아야 할 것들을 말씀해 주시는데, 마음에 악한 생각이고, 아끼는 마음이다. 형제를 사랑한다 하면서도 아끼는 마음을 품는 것이 바로 악한 생각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악한 생각이 결국 죄가 될 것임을 깨닫게 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면제년'의 은혜를 입은 그리스도인은 삶이 변화해야 한다. '손을 움켜지던 삶'(신 15:7)에서 '손을 펴는 삶'(신 15:8)으로 변화해야 한다. 그러면 신 15:8 에서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그럼 나도 내 손을 네게 펼께!"라고 하신다.
그런데 자꾸 눅 20:25 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가 생각이 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가르쳐 주시는 것은 하나이고, '이제 또 하나를 찾아봐'라고 하신다.
신명기 15:7-8 의 삶이 이제부터 내가 추구해야 할 삶임을 말씀하신다.
가이사의 것, 세상 것은, 마귀로부터 받았던 것은, 죄는, 자기 의는, 교만은, 정죄감은, 상처는, 쓴뿌리는, 낮은 자존감은 손을 움켜지지말고 펴는 삶을 살고,
하나님의 것,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던 것은, 은혜는, 사랑은, 믿음은, 소망은, 감사는 손을 펴지말고 움켜쥐며 꽉 잡는 삶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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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대의 삶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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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15:7-8 의 삶은 1+5 = 6 이므로 '신 678 삶'이다. 신 678 의 삶을 사실래요?
58. 10 : 2 의 Ratio
Ratio 는 같은 단위(unit)를 갖는 두 양의 비이다. 그에 반해 두 개의 다른 단위의 비를 rate 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1 gallon / 3 cups 는 rate 같지만 1 gallon = 4 quarts = 8 pints = 16
cups 이므로
1 gallon / 3 cups = 16 cups / 3 cups = 16/3 이므로 ratio 이다.
이 ratio 는 10 : 2 혹은 10 to 2 혹은 10/2 로 나타낸다. 그렇다면 10/2 = 5 일까?
이 10 : 2 는 가데스 바네아 앞에서 가나안 땅을 정탐한 이들의 엇갈린 평가의 비율이다. 만약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서
말씀하시지 않았다면 그들의 주장 중 누가 옳았을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 10대 2는 그만큼 압도적인 차이다.
지금도 그러하지 않는가? 정부 정책을 가지고 평이 갈리고, 신앙적인 생각을 가지고도 엇갈린다. 누가 옳은가? 이것을 알기가
어렵다. 그래서 징계받은 이스라엘 백성의 일이 남의 일 같지 않아 보인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큼은 이 10 : 2 는 5 가 아니다.
이 10 : 2 의 비율은 그들에겐 다시 되돌이고 싶은 하나님 앞에서의 불순종의 과거이고 2 명 만 남고 모두 죽는 저주와 같은
숫자이다. 그들에겐 10 : 2 하면 40 년의 광야와 죽음이 기억되지 않을까...
삶에서도 눈 앞의 상황을 보며 세상을 10 으로 하고 하나님을 2 로 여기며 우선순위를 잘못 설정하고 있지는 않은가?
세상에서는 10 : 2 = 10/2 = 5 라고 부추기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10 : 2 = 광야 40 년 = 삶의 후퇴 40 년 일지 모른다.
59. f(x) = 9/10 +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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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x) = 9/10 + x'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의 골짜기로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창 4:17)
아브람은 소돔 왕의 입장에서 그의 성읍 곧 그의 나라 사람들과 빼앗긴 재물들을 찾아준 은인이었다. 그렇기에 아브람이 돌아올 때 소돔 왕은 사웨 골짜기라고 부르는 왕의 골짜기에까지 나와 아브람을 영접하는 모습이다.
근데 소돔 왕은 동방 연합군에 쫒겨 싯딤 골짜기의 역청 구덩이에 빠진 왕이었는데... 그에게는 단 318 명의 용사로 동방 연합군을 무찌른... 자신의 사람과 재산을 찾아 준 아브람은 구원자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소돔 왕을 회복시켜 싯딤 골짜기에서 왕의 골짜기로 회복시킨 구원자로..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가 많은지라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이 달아날 때에 그들이 거기 빠지고 그 나머지는 산으로 도망하매'(창 14:10)
하지만 소돔 왕과 비교하면 직접 혜택을 입지도 못한 살렘 왕 멜기세덱은 소돔 왕에겐 구원자인 아브람을 축복하고 떡과 포도주로 감사의 대접을 하는 모습이다. 늘 그렇다. 정작 감사하고 대접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이미 은혜 가운데 있는 사람은 모든 게 다 감사하다. 날 구원한 것도 감사... 쟬 구원한 것도 감사... 걜 구원한 것도 감사...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창 14:18)
이 갑자기 등장한 멜기세덱은 누구일까...
살렘 왕 멜기세덱은 신비한 인물로 히 7:1-3 에서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히 7:1-3)
의의 왕...
살렘 왕...
평강의 왕...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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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는 자... 이 조건들을 갖추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글쎄... 내 머리 속엔 단 한사람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히브리서 7:1-3 은 멜기세덱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도 평화의 왕이시며 의의 왕이시다. 또 예수 그리스도는 실상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이시다. 근데 그가 떡과 포도주를 가져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전쟁으로 지친 아브람과 그의 동료들을 회복시키기 위해서이다. 그 평강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단 한분도 영적으로 지친 그리스도 인들에게... 공동체에게 떡과 포도주로 한솥밥을 해먹이시는... 자신의 살과 피로 성찬을 베푸시는 분이시다.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창 14:20)
아브람은 멜기세덱에게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주었다.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a tenth of everything)’라는 말은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이라는 말이다.
성경에서 최초로 십일조에 대한 언급하고 있다. 아브람이 드린 최초의 십일조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표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복 주심을 인정한 표, 즉 전쟁에서 이긴 것과 빼앗겼던 물건들을 다시 찾은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인정한 표이었다. 십일조는 하나님과 그의 복 주심을 인정하고 나의 소득이 그의 복이며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믿음의 표임을 말씀하신다.
이 'everything' 이란 말에 꼭 돈만 있을까...
돈으로만 오해하는 소돔 왕의 모습이 나온다.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창 14:21)
그러면... 십일조의 메세지는 무엇일까...
이 'everything'을 이해하지 못해... 아니 자기의 유익으로 삼고, 그저 돈에서만의 십일조의 메세지만 전해왔던 교회 비지니스를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잃은 채 진정한 십일조의 메세지를 외면한... 어떤 면에서는 불신앙자라는 생각이 든다.
십일조(a tenth of everything)의 메세지는 tenth 에 있는 게 아니라 'everything'에 있다. 1/10 을 바라보고, 기대하며, 드리는 것이 아니라 9/10 을 보라는 것이 메세지이다. 비록 내 눈 앞에는 1/10 만 보여도 9/10 을 채우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며 10/10 을 바라보는... 'everything' 을 바라보는 기대이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고 삶에서 경험하는 것임을 깨닫게 하신다.
그래서 'everything'은 맘몬으로 치부했던 돈에게서 1/10 만 내놓으라는 사정도 아니고... 자신의 유익을 쫒아 십일조의 메세지도 전하지 않고 그저 그 돈 1/10 만 내놓으라고 설교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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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앙자의 메세지가 아니다. 이 'everything' 은 내 삶이다. 내가 가진 재물이고, 시간이고, 사람이고, 관계이고, 문제이고, 고난이고, 상처이고... '모두 다' 이다.
이 '모두 다'에서 내게 보이는 것이 1/10 이라 할지라도... 재물이 1/10 도 보이지 않는 삶일지라도...
시간이 1/10 도 보이지 않는 삶일지라도...
사람이 1/10 도 없는 삶일지라도...
관계가 1/10 도 온전하지 않는 삶일지라도...
문제가 1/10 도 해결될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삶일지라도...
고난이 1/10 도 지나지 않은 것 같은 삶일지라도...
상처가 1/10 도 해결된 것같지 않은 삶일지라도...
이 '모두 다'에 9/10 은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을 믿는다는 결단과 고백이 십일조의 메세지임을 깨닫게 하신다.
이런 결단과 고백은 하나님을 만나고 움직이는, 하나님의 은혜로 가는 첫 도미노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움직이는 권능의 첫 도미노는 언제나 '나의 몫'이다. 하나님은 그 다음에 움직이신다. 일단 내가 내 몫을 해내면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주신다.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시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쉽기에 믿기지 않아 하기 어렵다.
"그저 믿기만 해. 그저 앉은 뱅이의 손을 잡고 일으켜...
그저 작은 물맷돌을 골라 늘 하던 것처럼 던져...
그저 네가 가진 지팡이로 내리치렴..."
그저 나는 하나님의 권능의 첫 도미노만 쓰러뜨리면 된다.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창 14:23)
치부...
내 삶의 치부는... 1/10 을 everything 으로 여기며 9/10 엔 관심을 두지도 않고, 하나님의 일하심도 기대하지 않고, 그저 내 배에 1/10 을 채움이 아닐까...
내 교회의 치부는... 1/10 을 everything 으로 여기며 9/10 엔 관심을 두지도 않고, 하나님의 일하심도 기대하지 않고, 그저 내 배에 1/10 을 채움이 아닐까...
치부엔... 또한 결단이 필요하다. 아브람처럼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하는 결단이...
두 주인에 꼭 하나님과 재물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재물은 참으로 하나님을 가리는 '천국 가리게' 이다. 재물 욕심을 버린 자가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자이다. 그에게는 재물이 보화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화이다. 하나님이 보화가 되지 않았다는 말은... 하나님을 모르고 돈이 인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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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하나님이 수학도 가르치시네?
전부인 줄 알고 사는 자란 말이고, 삶의 1/10 만 배에 채운채 삶을 마감하는... 'everything'의 1/10 인 'e'만 소유한...
f(x) = 9/10 + x
faith in Jesus Christ, f(x) equals...
10/10, everything, if my input is 1/10 (tithe)...
faith in Jesus Christ, f(x) equals... God's work (9/10) at the Cross (+) of Jesus Christ (x). 60. Rome 8:28... summation of vectors
'이르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이르되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창 16:8)
여호와의 사자가 예수 그리스도인 이유는 나중에 이 땅에 오셔서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를 늘 말씀하신... 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이 말씀은 세상에 왜 태어났는지... 그리고 이젠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하시는... 정체성과 신분을 자각하게 하시는 말씀이다. 하갈도 역시 자신의 정체성과 신분을 다시 깨닫고는 “나는 나의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라고 대답한다. 여주인을 모셨던 여종인 것과 지금은 도망하고 있는 정체성을 확인하게 한다.
지금도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는 청소년들을 향해...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사역자들을 향해...
그리고 나를 향해...
계속 던지시는 질문이다.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이 질문에 답을 다는 것이 신앙이고, 묵상이고, 설교이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신하는 길임을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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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예수님은 이 답을 주시기 위해 몸소 보여주시는 길이 되신 분이시다.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임을... 그래서 이 땅에서의 삶은 '어디서'부터 '어디로'까지의 삶 임을 깨닫게 하신다.
그래서 이 땅에서의 삶은 마치 Star Track 에서 본 모습과 흡사하다. 마치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고 우주의 미아가 되어 이 땅에 떨어졌던 하나님의 창조물이 다시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기위해 필요한 '생명의 GPS'을 얻어 장착하는 기간임을...
근데 왜 하갈에게도 '씨를 크게 번성'(창 16:10)하는 축복을 주시는 걸까...
분명히 하나님의 시간표를 무시하고 아브람과 사래가 불신앙으로 잉태케 한 하갈과 그의 낳을 아들 이스마엘인데...
이 질문을 하는데 로마서 말씀을 생각나게 하신다.
'우리가 알고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아브람과 사래가 하나님의 뜻을 완벽하게 순종하리라고 기대하셨을까... 아니라는 마음을 주신다.
그럼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은 아브람과 사래의 불순종 때문에 변할까...
아니라는 마음을 주신다.
이제 왜 하나님이 롬 8:28 을 생각나게 하셨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셀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마음은 '합력'(롬 8:28)에 있다.
합력은 여러가지 요인이 다 합해질 때...
여러가지 힘(력)이 합해질 때... 그 결과는 합한 것으로 된다는 의미이다.
근데 워낙 하나님이 정하시고 세워가시는 힘이 워낙 크다 보니까 자잘한 다른 순종의 힘과 불신앙의 힘이 합해지더라도 결국 모든 것을 합한 힘은 하나님이 처음에 세우신 방향과 그 크기와 비슷하다는 말이다. 마치 1 억원에 몇 십원을 더하든 빼든 별 상관이 없는 것처럼...
하갈에게도 자손의 축복을 주시는 모습은 아브람을 축복하시고자 결심한 하나님의 자신감과 신실함이 보인다. 비록 세상에서 보면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유익과 손실이 있겠지만 하나님이 세우시고 이뤄가시는 언약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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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관성의 법칙
새로운 마지의 땅을 향해 떠나려고 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나거나 가지고 가고 싶은 물건이 그 당시의 '신앙의 관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평소의 삶 가운데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과 유혹 사이에서 결정해야 할 일이 있을 때 그 전의 옛 습성 때문에 결정하는 모습이 '신앙의 관성'이고, 이 관성은 늘 옛 습성으로 향하는 관성이다.
세상을 움직여가는 '관성의 법칙'이라고 하는 게 있다.
(Newton's First Law of Motion)
이 세상의 관성의 법칙은...
외부로부터 Action 이 주어지지 않는 한 가지고 있는 본래의 motion 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지한 것은 계속 정지된 상태로...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던 것은 계속 그 속도를 유지하는...
근데 나는 이 법칙을 Physics 시간에 가르치지만 더 열을 내고 내 삶을 통해 얻은 간증으로 가르치고 싶은 것은... 사실 '하나님의 관성의 법칙'이다.
하나님의 관성의 법칙은 세상의... 외부로부터의 Action 에 관계없이 하나님과 관련이 있느냐 없느냐로 정해지는... 관성이다.
아무리 정지해 보이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가장 Active 한 움직임이다. 이때의 정지는 가장 소극적인 태도인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있는 한 가장 적극적인 깨어있음이다. 기도가 이같은 정지이다. 가장 의미없는 소비같이 보이지만 하나님께는 가장 의미있는 생산이다. 가장 미련해 보이지만 가장 지혜로운 외침이다. 누가 해결하는 지를 아는 사람이 눈 앞의 상황과 자극과 입력과 상관없이 향하는 것이 '하나님의 관성의 법칙'이다.
아무리 움직이고 있어도... 세상에서 잘 나간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고, 하나님이 관계가 없으면 하나님이 보시기엔 구원과... 영생과... 관련없는 '하나님의 무관성의 법칙'이다. 근데 '하나님의 관성'은 교만이 들어가면 바로 '하나님의 무관성의 법칙'으로 바뀐다. 그래서 늘 선 줄로 생각하면 넘어질까 조심해야 한다.
이 관성과 무관성의 사이의 거리는 아주 먼 거리가 아니라 아주 짧은 생각과 생각 사이의 거리인... '방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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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black hole
"고난 중에 구하는 소박한 은총" 욥기 7:1-10
오늘 말씀에서 욥의 하루 하루가 정말 감당하기 벅찬 하루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땅의 삶에서 허락된 수많은 하루들... 그 하루들은 날마다가 같은 것 같지만 하루도 똑같은 하루가 없는 법이다. 근데 욥처럼 그 수많은 하루들 중 지금의 하루가 너무도 견디기 힘들다면 어떻게 할까...
오늘 하루가 저문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다가올 내일이 두려운 삶이 일어난다면 욥과 같은 심정이 될 수 밖에 없다.
'종은 저녁 그늘을 몹시 바라고 품꾼은 그의 삯을 기다리나니'(욥 7:2)
종도 바라고 기다리는 그늘이 오고 품꾼도 기다리는 삯을 받을 때가 옴을 기억하며 환난을 이겨내야 한다.
환난 가운데 중요한 것은 환난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환난의 의미를 깨닫고 그 가운데서 인도하시는 손길을 잡느냐 못 잡느냐의 문제이다. 모두가 환난보다 편안함을 바라지만 하나님은 그 환난을 뚫고 나가길 원하신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고난을 받으라'(딤후 2:3)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고난을 통해 참 그리스도인으로 훈련되는 유익이 은총이기 때문이다.
욥은 하나님께 자신이 당면한 고난을 호소하지만 그의 시선은 친구들이 아닌 하나님을 향하고 있다.(욥 7:7-8) 마치 다니엘이 사자 굴에 갇혀 있을 때 다니엘의 시선이 사자가 아닌 하나님을 향해 있던 것처럼...
어젠 학생들과 Physics 시간에 Black Hole 과 Wormhole 에 대해 공부하면서 삶과 죽음... 그리고 세상과 하나님 나라에 대해 넌즈시 설명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Black Hole 은 이 땅에 태어난 모두를 짧게는 태어나자마자 길게는 8-90 년 동안 빨아들이는 죽음이 아닐까... 또 날마다 허락한 오늘도 계속 빨아들이고 있는 Black Hole 이 죽음이라는 Black Hole 이다.
그 죽음의 Black Hole 을 지나고 나면 다시 새로운 영적 세계가 펼쳐지는 Wormhole 은 바로 하나님 나라임을 깨닫게 하셨다. 그래서 이 땅에서는 여지껏 발견되지 않은 가상의 시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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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Black Hole 은 믿지만 복음의 Wormhole 은 믿지를 못한다. 그래서 오늘의 의미를... 고난의 의미를... 죽음의 의미를 모르고 산다.
이 사망의 Black hole 과 하나님 나라의 Wormhole 과정에 잔잔하게 펼쳐지는 고난은 삶을 주관하시고 이끄시는 하나님께 주목하기를 원하시는 인도하심이 아닐까...
근데여... 주님.
그저 죽음이라는 Black Hole 을 향해 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하나님 나라가 펼쳐지는 복음의 Wormhole 을 소개하게 해 주세요. 그래서 고난이 그저 삶을 고통스럽게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손을 찾도록 하시는 배려임을 고백하며 그 찾은 손 꼭 잡고 하나님 나라의 Wormhole 이 펼쳐질 때까지 다니엘처럼 시선이 늘 하나님을 바라보게 해 주세요..
63. Refraction 과 Reflection
"자연에서 친밀하게 만나는 하나님" 욥기 37:1-13
요즘은 수학(Pre Calculus 와 AP Calculus) 외에 물리학(Physics 와 AP Physics)도 가르치고 있는데 요즘 가르치는 것들이 소리(Sound), 진동(Vibrations), 빛(Light), 물 얼음 증기의 상태변화로... 마침 오늘 나오는 자연현상이 바로 그것들이다.
먼저 번개를 그리고 천둥을 발하시는 모습(욥 37:3-4)이 나오는데, 천둥은 그 당시 신의 소리로 이해했고 엘리후는 이를 ‘하나님의 음성’으로 표현하고 있다. 번개를 하나님의 일하시는 역사로, 천둥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보게 하시는 감동이 나에게 있다.
근데 번개는 빛의 속도 300 million m/s 로 먼저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고, 그 다음 오는 것이 천둥으로 소리의 속도 330 m/s 로 하나님의 음성이 임하는 현상을 자연현상에 빗대어 생각하게 하신다. 그래서 늘 하나님의 역사와 그의 음성에는 시간 차이가 난다. 아마도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아직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어도 그리스도인이 된 것을 보면 하나님의 역사가 늘 먼저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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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때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기도 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있다. 그렇담 소리가 빛보다 빠르다는 말일까... 그것은 자연 현상에 어긋나듯이, 하나님의 역사가 있기 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자연법칙을 어긋나게 해서라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일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하나님의 역사가 있기 전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이유는, 하나님의 역사가 이미 한참 전에 일어났음을 알려주신다. 왜냐하면 적어도 내게 느껴지는 빛의 속도와 소리의 속도가 같아지려면 빛의 속도로 표현되는 하나님의 역사가 이미 지구를 한바퀴 돌고 오면 비슷한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이미 하나님이 음성을 주실 때는 지구를 한 바퀴 돌고도 남는 하나님의 역사가 이미 일하셨음을... 그래서 그 음성에 순종할 때 이미 일하셔서 완성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임을 깨닫게 하신다.
'그가 모든 사람의 손에 표를 주시어 모든 사람이 그가 지으신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욥 37:7)
사람은 종종 바쁜 스케줄 속에 하나님을 잊고 자신의 계획과 일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때로 비와 눈을 내려 사람의 계획을 취소시키고 일손을 멈추게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관심을 기울이도록 인도하신다. 모든 사람이 알도록... 근데 꼭 자신의 생각과 아집 속에 들어가 이를 모르는 척 하는 사람들... 짐승과 같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짐승들은 땅 속에 들어가 그 처소에 머무느니라'(욥 37:8)
'하나님의 입김이 얼음을 얼게 하고 물의 너비를 줄어들게 하느니라'(욥 37:10)
하나님께서 온도를 조절해서 얼게 하고 부피를 조절하고 자연현상을 조절하시는 모습은 참으로 창조적임을 알게 된다. 이런 자연 현상으로 겨울에 호수에도 물고기가 살게 하신다.
왜냐하면 호수의 표면은 꽁꽁 얼어 온도가 0 도이기에 물고기가 살 수 없지만, 물이 그 전에 영상 4 도가 될 때 부피를 가장 작게 하여 상대적으로 무겁게 만드는 신기한 현상이 물에 있다. 그래서 영상 4 도의 물은 마치 돌덩어리처럼 가장 무겁게 되고 돌덩어리처럼 호수 바닥에 가라앉아 호수 아래를 영상 4 도로 유지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자연 현상을 생명의 보존에 맞춰 창조하셨다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이 세상 어디에도 늘 하나님의 음성으로 충만해 있는데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 따라 그 반응이 다름을 물리학으로도 설명이 되는데, 바로 Refraction 과 Reflection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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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하나님이 수학도 가르치시네?
소리가 낮에는 아무리 소리쳐도 먼 곳까지 잘 들리지 않지만 밤에는 잘 들리게 되는 것을 전문 용어로는 Refraction of Sound (소리의 굴절) 이라고 하는데... 지면과 공기의 온도차에 의해 생기는 현상으로, 낮에는 소리가 하늘을 향해 올라가지만 밤에는 소리가 포물선을 그리면서 아래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광야에서 깜깜한 밤에 서 있는 것 같은 고난 중에는 하나님의 미세한 음성도 잘 들리는 것은 바로 Refraction 이고, 하나님의 음성이 내 삶에서 굴절되어 통과함을 의미한다.
이에 반해 Reflection of Sound (소리의 반사)는 소리를 다 밖으로 밀어낸다. 아무리 구원의 선물과 동행의 은헤를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가득해도 다 반사시키는 모습이고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기는 힘이 드는 삶이다.
고난은 하나님의 음성을 반사하던 Reflection 의 삶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내 삶 안에서 굴절되고 통과되는 Refraction 의 삶으로 바꾸어 밤과 같은 광야 속에서 미세한 하나님의 음성도 들을 수 있게 해줌을 깨닫게 하신다.
'혹은 징계를 위하여 혹은 땅을 위하여 혹은 긍휼을 위하여 그가 이런 일을 생기게 하시느니라'(욥 37:13)
어떻게 하나님은 같은 것으로 징벌과 긍휼의 도구로 동시에 사용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물을 어떤 목적으로든 사용할 수 있다. 쉬운 예로, 많은 비를 내려 홍수를 일으켜 농작물을 집어 삼키게 하여 징벌의 도구로 비를 사용하기도 하고, 때로 같은 비를 적당하게 내리게 해서 농작물을 기르게 함으로 긍휼의 도구로 사용하신다. 이처럼 같은 것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징벌로도 긍휼로도 작용한다.
하나님의 음성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하나님의 음성을 내 삶에 Refraction (굴절)시켜 통과시킬 때 하나님께서 지구 한바퀴를 돌만큼 이미 일하신 역사를 체험할 수 있지만, 그 음성을 그저 내 삶에서 Reflection (반사)시켜 밀어낼 때 고난은 영원까지 계속되는 진짜 고난으로 이어지게 됨을...
근데여... 주님.
Refraction 과 Reflection 이 혼동되는 수많은 삶을 보며 제 삶도 '내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그랬던 것 같네요. 이젠 모든 죄의 유혹들은 Reflection 시키고 주님의 말씀은 제 삶 속에서 늘 Refraction 되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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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에게 그들이 너무도 잘 아는 판별식(Discriminant)과 근의 공식(Quadratic formula)를 이용하여 복음을... 예수를 전하려고 하다보니... 오히려 내가 깨닫게 된다^^
예수로 구원을 받았느냐의 판별은 판별식(Discriminant)인 sqrt(b^2 - 4ac)로 가능한데, 바로 나의 바닥(bottom)까지 비운 내 그릇(b, bowl)을 갑절로 채우시는(b^2)예수님을 경험하면서 일초에 60 번이나 흔들리는 교류전기(AC)처럼 흔들리는 내 마음이(for ac) 빼버려지는(-) 삶이 드러나는가로 결정된다.
그런 인생의 답은 바로 근의 공식(Quadratic formula)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답이다. X = [ -b +- sqrt(b^2 - 4ac)] / 2a
인생의 답되신 예수 그리스도(X)는 내 마음을 바닥(b, bottom)까지 비우고(-) 삶 속에서 흔들리고 방황할 때마다(+/-) 비운 내 그릇(b, bowl)을 갑절로 채우시는(b^2)예수님을 경험하면서 일초에 60 번이나 흔들리는 교류전기(AC)처럼 흔들리는 내 마음이(for ac) 빼버려지는(-) 삶이 뿌리내릴 때(root), 두 엄지 손가락을 세우고 too awesome 하시는(2a) 하나님에 의해 나눠지고 분해되는 삶에만 존재한다.
이젠 예수로 구원을 받았느냐를 판별할 수 있습니까?
이젠 인생의 답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삶에 존재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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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판별식(Discriminant) 와 근의 공식(Quadratic formula)
수학도 배우고, 은혜도 나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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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7X7=49
오순절은 출애굽하여 7X7=49 일이 지난 50 일 후에 시내산에서 말씀을 받던 축복의 날로, 칠칠절 혹은 밀 곡식수확이 끝나는 때이기에 맥추절이라고도 부른다.
승천하시고 10 일 후가,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유월절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7X7=49일 이 지난 50일 후가 오순절날이다. 그러니까 10일 동안 약속을 믿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집중해서 전심으로 합심해서 기도에 전무했다는 말이다. 기다리며 할 수 있는 최선은 기도였다.오순절의 성령 충만의 사건은 바로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성령님'이심을 성령님에 의해 깨닫게 하신 사건이다.
바로 '주인 교체'의 사건이다.
예수님의 어린 양 사건... 십자가 사건 후,
7X7
바로 온전한 하나님(7)과 예수님이(X) 온전한 성령님(7)을 초청하신 사건이 바로... 오순절 사건이다.
성령의 '주인 교체' 사건이다.
월요일부터 주일까지의 7 이 의미하는 내 삶의 시간...
근데 예수 그리스도 X 를 만나고 나서부터는,
성령 충만한 삶인 7 의 삶(롬 12:6-8)을 살도록 하신 주님께 감사드리는 성령 충만의.... 그런 삶이 바로 7X7=49 사.구.
사망에서 구원받은 삶이라는 거죠^^
그렇기에 사망에서 구원받은 후의 삶...
지금이 바로 오순절의 삶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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