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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by 과천고등학교 돋할신문, 2020-06-09 00:39:27

2019 서평쓰기대회 우수작

2019 서평쓰기 우수작

『카를 융-기억 꿈 사상(카를 융, 김영사)』

<최우수상> 우리의 기억, 꿈, 그리고 우리의 사상

성현규(2)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에 살고 있는가? 또 무엇을 알고 무
엇을 원하고 무엇을 믿는가?

우리는 살면서 시련이라는 벽에 마주했을 때 자신이 지나온
길에 회의감을 느낀다. 우리는 그 벽을 넘으려 하지 않는다. 오
히려 돌아가려 하지 않는가? 하지만 그 벽을 돌아가는 길엔 벽
보다 더 높은 산이, 더 깊은 바다가 우리를 가로 막고 있을 것
이다. 항상 돌아갈 수는 없다. 우리를 좌절시키는 시련이라는,
고통, 절망이라는 벽을 넘어가야만 한다. 그 길목에 서 있는 우리에게 융의 심리학은 험난한
여정에서의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융이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다(11p)” 라고 말한 것처럼 그의 자서전은 그
가 자신의 내면에서 울리는 무의식의 신호를 포착해나가는 과정이 중심을 이룬다. 꿈은 종종
그 도구가 되곤 하는데, 80세가 넘은 나이임에도 4세 때의 꿈까지 세세하게 묘사하는 대목에
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내면과의 대화를 통한 선과 악에 대한 융의 깊은 통찰은 우
리의 감정들을 전부 재정의했으며. 이를 통해 그는 수많은 정신과 환자들을 치료하였고, 나아
가 본인도 어릴 적 앓던 신경증에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이 책은 이러한 융의 인생을 통해
한 사람이 인간 사고범위의 한계를 뛰어넘는 과정을 인상 깊게, 감동적으로 보여 준다. 자, 이
제 우리도 융의 사상 속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자.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를 아는가? 교회를 다니지 않아도 이 이야기는 모두가 알고 있을 것
이다. 뱀에 꾐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은 우리 조상으로 인해, 현재 우리가 희망의 에덴동산이
아닌 각박한 현대 사회에 살고 있다는 바로 그 이야기 말이다. 모두가 우리의 인생을 아담과
이브의 탓으로 돌렸다. 하지만 융은 달랐다. 융은 “하나님이 그들보다 먼저 뱀을 창조하였
다.(77p)”라고 말한다. 듣고 보니 그렇다. 선함의 상징이며 모든 것을 알고 있는 하나님이 악
의 상징인 뱀을 먼저 창조하신 것이다. 놀랍게도 아담과 이브가 뱀에 유혹에 넘어간 것이 모
두 하나님의 계산 안에 있었던 것이다. 융의 이런 말이 선과 악의 기로에서 외줄을 타던 사람
들을 죄책감이란 줄 위에서 내려놓았다. 동시에 악을 우리와 동일한 하나님의 피조물로 봄으
로써 악이라는 존재를 우리의 세상 속으로 끌어들여 놓았다.

이어서 융은 “질투의 핵심은 사랑의 결여이다.(260p)”라고 한다. 질투는 본래 다른 사람이
우리의 사랑을 가로챘을 때 느끼는 분노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악이 우리 세상 속으로 들어온
후에는, 우리의 행동에 대한 목적이 우리의 무의식 속 욕망실현에 있게 되었다. 즉 질투를 하

는 이유는 사랑을 빼앗아간 사람을 악으로 보고 분노를 느끼는 것이 아닌, 우리 내면에 있는
무의식이 사랑의 결여로 인해 질투의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다. 융의 이런 생각으로 인해 나는
나의 사고를 확장할 수 있었다. 우리 사이의 다툼의 원인은 악을 처단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
리의 욕망만이 그 안에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평소의 방법대로는 다툼을 해결할 수
없다. 본디 사랑은 물과 같고 우리는 사랑을 담는 그릇과 같다. 사랑은 우리라는 그릇에 먼저
전부 채워진 후 다른 사람에게로 흘러갔을 때, 경쟁과 다툼이라는 불을 끌 수 있다. 이처럼
융이 제시한 다툼에 대한 문제의 해결책은 자신을 돌아보고 사랑해주는 데에 있었던 것이다.
우리 스스로를 사랑하자. 그리고 끊임없이 우리 행동의 목적을 성찰하고 되돌아보자. 지금 행
하는 일이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일리아스>에서 호메로스는 아킬레우스의 입을 빌려 “분노
는 똑똑 떨어지는 꿀과 같다.”라고 하며 우리 내면의 분노의 감정을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분
노가 우리가 일을 행함에 있어서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분노라는 뱀이 우리를 유
혹한다고 해도 말이다. 선악과를 따먹는 대신 우리를 사랑하자. 그리고 옆의 아담과 이브에게
사랑을 전해주는 파랑새가 되자. 융이 나에게 준 이런 통찰력은 나의 무의식의 자기실현을 넘
어서 세상을 다른 방법으로 보게 하였다. 그리고 나로 하여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질문
을 건넬 수 있게 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떠한가? 융이 살던 1900년대 초중반 보다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
로나 훨씬 나은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더 많은 정신적 풍요를 누리면서 살아
가고 있는가?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1900년대 초중반 1,2차 대전보다 더 치열하고 각박한
시대에 살고 있다. 대한민국의 학생, 청년들은 현재 입시, 취업의 경쟁 속에서 주변사람들의
시선과 눈초리라는 포화를 정통으로 맞으며, 우리 서로에게 시기의 총구를 겨눈 채로 살아간
다. 사실 그럴 만도 한 것이 현재 대한민국의 입시생은 50만 명에 달하는데 반해 소위 SKY라
고 불리는 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이중 2~3%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설령 대학교를 나온
다고 해도 취업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현재 우리나라의 청년실업률은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네이버 청년 실업률 통계에 따르면 청년 실업률은 현재 10.8%로 지난 2018년 11
월에 비하여 3%가량 증가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다. 미국의 문명비평가
라인홀트 니부어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사회제도나 구조가 개인행위의 도덕성
을 결정한다고 설명하였다. 즉 사회가 사람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사회에서의 경
쟁은 당연히 심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는 남과 비교하면서 우리 스스로의 가치를 깎아
내린다. 또 이와 같은 마음이 경쟁자에 대한 분
노로 전이 되어 남을 시기하고 질투한다. 그리
고 그 질투심은 갖가지 비리채용, 부정입학이라
는 부정의를 낳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
까? 우리나라 경제를 살리는 것은 우리가 주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이 상황을 어
떻게 헤쳐 나아가야 하는가.

나는 학생이다. 학생이기에, 위와 같은 문제들이 당장 내 앞에 놓인 시련의 벽이었다. 내가
더 나은 세계로 넘어가려면 이 벽을 넘어야만 한다. 그 와중에 융의 자서전을 읽었고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앞서 말했던 다툼의 원인에 대한 고찰은 나로 하여금 주변사람들의 시선으로
부터 벗어나게 해주었다. 성적 스트레스의 원인을 나에게로 돌리고 나에게서 문제점을 찾았
다. 그리고 유난히 다른 사람을 의식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옆 친구와 성적 경쟁을 하
는 것은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 대신 다른 사람들을 조력자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세
상이 달라보였다, 나를 겨누고 있는 줄 알았던 세상 사람들의 시선의 총구가 사실 나의 그릇
된 판단과 생각을 겨누고 있었다. 그렇다 내가 세상을 판단한다. 내가 슬프면 세상이 슬퍼 보
이고 내가 남을 질투하면 세상이 나를 질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반대로 내가 세상을 기
쁨으로써 바라보면 세상이 기쁨으로 가득차고 내가 세상을 조력자라고 생각하면 이 세상은 나
의 조력자가 되는 것이다. 나는 이 책에서 융과 대화하면서 내가 어디서 왔는지 어디에 살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믿는지에 대한 처음 질문의 답을 어느 정도 찾을 수 있었다. 결
국 모두가 한 방향으로 뛰는 레이스 에서 길을 막고 있던 시련, 고통, 절망의 벽을 넘고 마침
내 벽 너머의 길로 달리며 이 각박하고 치열한 사회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상처 입은 자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221p)” 상처 받았던 자가 다른 사람을 치
유한다. 융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이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우리의 무의식을 들여다
보고 우리안의 상처를 치유했을 때,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융이 그랬던 것처럼 아직 저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치유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역할을 하는 사람은 이 책
을 읽고 자신을 발견한 그 사람이 되어야한다. 분노와 같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나를 알고
우리를 알았을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서 꿈과 희망을 얻을 수 있고, 그런 개인들이 모이면 우
리사회는 희망 가득한 에덴동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그 개인이 되고자 여러분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카를 구스타프 융의 기억, 꿈, 사상은 여러분의 기억, 꿈, 사상이 되어 스스로를, 그리고 우
리 모두를, 머지않아 이 세상을 바꾸어놓을 것이다.

<네이버 블로그- 마리북스: 에덴동산>

『호모데우스 미래의 역사(유발 하라리, 김영사)』

<우수상>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진승우(2)

『호모 데우스』는 집단으로서의 인류가 어디에
서 왔고 어디로 갈 지에 대한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 인간에게 무슨 신비한 일이 일어나서 문
명이 발생하고 과학이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는
지를 알 수 있다. 그러면 이 책이 다른 역사책
에서 볼 수 있는 인류의 과거를 다루고 있을까?
이 책은 핵심주제로 역사나 정치 등에 관한 것
을 다루지는 않는다. 역사 이야기가 나온다고
해도 로마 제국 황제가 몇 년에 무슨 땅을 정복
해서 지금 세상이 이렇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무엇이 달라 문명과
거대한 공동체를 이루고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올라 지구를 지배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나온다. 그리고선 인류가 현재 직면한 문제는 무엇이며 이들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꿀지를 놀라운 사상으로 우리에게 말해준다. 인류의 기술 발전으로 우리는 옛날의
문제(기아, 전쟁, 역병 등)를 대부분 해결했지만 불멸, 행복 등에 관한 문제가 남아 있
다. 작가는 이러한 미래에 대해서 말하지만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측하기만 하지 단
언하지는 않는다. 그리고선 자신이 말했던 가능성이 실제 일어날 일과 다를 수 있음
을 직접 책에 언급한다. 나는 이 글을 읽고 이 책의 저자인 유발 하라리는 자신이 믿
는 신념이 부정당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에도 이 책을 쓴 저자의 책 중 하나인 『사피엔스』를 감명 깊게 읽
어 언젠가 『호모데우스』도 읽고 싶었는데 마침 국어 시간에 한 권 읽기가 있어 이 책
을 주저하지 않고 골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책을 고른 건 후회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다른 책을 골랐으면 후회할 뻔했다.

이 책은 문학이 아니어서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무서울 정도로 놀랍고 강력한
이유는 세상을 보는 시각이 완전히 바뀌기 때문이다. 나에게 세상을 보는 시각이 어
떻게 바뀌냐고 묻는다면 나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환상을 깨부수고 날카로
울 정도로 객관적인 시선으로 인간을 설명하기 때문이라고 답할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이 있었다. “유기체는 알고리즘이다.(437p)” 이 문장은 인간에겐 자유의지,
영혼 등 위대하고 신성한 것들은 실제 존재하지 않는 인간 논리의 오류였고 오히려
인간의 모든 활동과 선택은 유전자, 뉴런 등으로 이루어진 알고리즘에 의한 것이라는
뜻이다. 즉, 다시 말하면 이 알고리즘의 특정 부분을 변형한다면 인간은 햄버거보다
바퀴벌레에, 비디오게임을 하는 것보다 매일 공부만 하는 것에 더 쾌락과 가치를 느
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문장은 두 어절로 이루어진 짧고 간단한 문장이었지만 나의
세계, 정신적 가치는 고유하고 영원하다는 믿음이 나를 이끌어주던 세계는 무너졌다.
그러나 내가 더욱 충격을 받고 그곳에서 어떻게든 나만의 사고와 가치를 끌어냈던 내
용은 이 문장이 아니었다.

이 책에서는 인류 문명의 역사 전체에서 허구와 환상이 우리를 지배해왔다고 말한
다. 이게 무슨 뜬구름 잡는 이야기냐고 느낄 수 있지만 이것은 인류를 제일 정확하게
설명해주는 말일 것이다. 앞에서 말한 인간과 다른 동물의 차이가 여기에서 기인한다.
인간은 수십만 년 전부터 도구를 쓰고 불을 사용했지만 여전히 맹수에게 쫓기고 매일
죽지 않으려는 사투를 해야 했으며 먹이사슬에서의 신분 상승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
나 어느 날 인간에게는 인식의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것은 실재하지 않는 것을 실
재한다고 상상하는 능력이다. 이 능력을 얻게 된 호모 사피엔스는 종교를 만들고 국
가와 법, 돈, 문화 등을 만들며 역사를 전개했으며 과학혁명으로 인해 아무도 전에
상상해보지 못한 신세계를 향해 시속 100km이상의 속력으로 달리고 있다. 내가 이러
한 내용을 파악하면서 놀라웠던 점은 우리가 신성하다고 믿었던 것들 - 자유와 평등
은 보편적이다. 인권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다. 독재와 싸워 민주주의를 쟁취해
야한다. - 이 모두가 환상과 허구라는 것이다. 나는 결국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 개
인의 가치는 외부적 요인에 영향을 받는다고 해도 그 외부적 요인 또한 환상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깨달음을 피할 수 없었다. 즉 우리의 근원은 모두 안개같이 희미한 허
상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혼란스러웠다. 그렇다면 삶의 진실한 의미와 가치는 어디서 나오는 걸
까? 애초에 삶의 진실 또한 모두 허구 아닐까? 이런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
오고 나서 또 한 가지 결정적인 질문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환상을 제거해내야만 삶
의 진실을 얻을 수 있는 건가? 나의 답은 ‘아니’였다. 생각을 더 깊게 해보자. 인간
삶의 가치와 진실은 오로지 허구적 체계 안에서만 창조되고 발현된다는 사실을 깨달
았다.

예를 들어 내가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한 소녀와 사랑에 빠졌다고 가정
해보자. 나는 검사가 꿈이지만 시험공부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불안함을 느껴도 그
시절만의 낭만과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든다. 결국 시험을 망치지만 나는 삶의 아름
다움은 위태로움 속에 있다고 깨닫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던 걸까? 우
선 사회가 만들어놓은 학교라는 허구적 체계가 같은 시공간 좌표에 나와 그 소녀를
불러들였다. 교육법이라는 허구에 의해 지배받는 학생과 교사들이 아침에 억지로 눈

을 떠 학교로 나오고 수업을 하고 시험을 위해 일과표를 바꾼 곳에서 나는 그 소녀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검사라는 허구적 세계의 역할과 지위를 얻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다가 그녀를 만나자 공부를 소홀히 한 것이고, 여기서 삶의 진실을 얻
는데 이 또한 위험감수를 아름답게 인식하는 철학과 예술이라는 허구적 세계의 영향
때문이다.

그럼 허구적 세계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우선 문명의 성립은 불가능하다. 그러면
인간은 여전히 수렵 채집 생활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럴 때 인간은 같은 무리에서
사냥도 하고 물가에도 놀러 가고 밤에 은하수를 보면서 삶은 신비하다고 깨달을 수
있을까? 이것 또한 허구를 믿는 능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저 생존하기 위해 바쁜
삶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다고 믿어야 소용돌이치는 밤하늘을 보고 삶의 진실을 깨
닫는 것이다. 결국 모든 삶의 진실과 예술은 환상과 허구에서 나온다고 말할 수 있
다. 물론 이건 내가 이 책을 읽고 전개한 생각과 추론이며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고 이런 강렬한 사유의 경험을 할 수 있던 것이다.

나는 책을 읽기 전에는 이런 깊은 생각을 명료하게 떠올리고 글로 정리할 수 있을
지 정말 몰랐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옛날부터 이런 생각을 희미하게 해왔을지
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모든 생각들이 퍼즐조각처럼 맞춰졌던 것일 수도 있
다. 나는 중학교 때 가끔씩 화려한 저택과 빈민가가 나란히 있어 둘이 대비되는 사진
이나 국경 사이로 운명이 갈리는 아이들의 사진을 보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이상하게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때는 단지 빈민가나 못 사는 나라의 아이들이 불쌍해서 느껴진
감정이라 생각했지만 그보다는 더 큰 원인이 있었다. 그들은 같은 시간과 공간에 있
음에도 180도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상하게 그런 사진만 보면 두 사
람(혹은 두 집단 등)의 서로 다른 삶이 사진 안에 축약되어 있는 것 같아서 가슴이
무거워졌다. 이와 같이 대조되는 삶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자면 내가 나의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는 학교도 그렇다. 수십 년 전에 태어
나 어릴 때는 비석치기 같은 걸 하며 놀고 학생이 되어 공부하고 때론 독재에 맞서
호헌철폐를 외치며 시위하고 그리곤 임용고시를 통과해 교사가 된 선생님들과 우리같
이 21세기에 태어나 초등학생 때부터 비디오게임을 하고 어떨 땐 노래방을 가며 지금
입시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들의 삶은 매우 다를 것이다. 또한 학생들 사이에서도 공
부를 잘 하는 아이는 판검사가 되고 노래를 잘 하는 아이는 가수가 되고 운동을 잘
하는 아이는 운동선수가 될 것이다. 물론 미래가 공식처럼 맞아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예측할 수도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저마다 사회에서 특정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역할도 모두 허구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연극
같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적어도 내 세계관 안에서는 세상은 연극이다. 우리는 모두
태어나자마자 무대(허구적 세계)에 올라 희곡 안의 역할에 따라 우리 삶의 의미를 인
지하고 거기에 몰입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선생님 누군가는 학생, 혹은 누군가는 판검
사, 가수, 운동선수, 회사원, 대통령, 노숙자 등의 역할에 진지하게 몰입하고 그들의
배역이 그들의 전체 삶이 된다. 배역은 단순히 직업으로만 부여받지 않는다. 출생, 국

적, 환경, 빈부 등 또한 자신의 배역이 된다. 그리고선 연극이 진짜라고 평생 믿으며
살다가 커튼이 내려오면 우리는 평생이 연극이었는지도 모르고 죽는 것이다.

그러면 현대 사회는 지금 무슨 극에 참여하고 있는 걸까? 극은 사실 한 세대에 다
양할 수도 있다. 공산주의극, 민족주의극, 자유주의극 등. 그러나 이 책에서 나온 중
요한 개념 중 하나인 인본주의가 흥미로운데, 이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잘 설명해주
기 때문이다. 인본주의 세계에서는 모든 권위와 의미의 최고 원천은 자기 내면이고
존재의 목표는 “가능한 한 가장 폭넓은 인생 경험을 증류해 지혜로 만드는
것.(331p)”이다. 이때 나는 영화 <영원과 하루>의 대사 중 “모든 것은 진실을 위한
기다림이야.”가 떠올랐다. 삶의 진실을 얻기 위해 전신전령을 온 곳에 펼쳐 투쟁하고
예술을 향유하는 인생. 이것이 인본주의라는 허구적 세계의 교리일 것이다. 이러한 허
구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 영향을 미친 건 라디오를 틀면 나오는 노래 가사와 시, 소
설 등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밴드인 콜드플레이
(Coldplay)의 ‘Adventure Of A Lifetime'의 가사 중 “Only I own me(나만이 나를
소유할 수 있어).”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감성적이고 철학적인 가사로 들리지만 이
것도 인본주의라는 허구의 영향을 받아 창작된 예술이다. 또한 옛날에는 문학에서 영
웅과 용감한 기사의 외부적 경험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현재 우리는 인물의 내적 변화
에 초점을 맞춘다. 이것은 인본주의라는 허구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가 단순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모두 복잡한 배후가 있다. 인간 세계에는
다양한 허구들이, 예술에는 그 허구의 교리들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평소 밤에
공부를 끝마치고 혼자 집에 가면서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한다. 성적과 친구 생각도 하
지만 세계에 대한 철학적 고민과 예술에 대한 사유를 제일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리
고 『호모데우스』를 읽고 나서 이러한 느낌이 더욱 강해졌는데 한 가지 확실한 건 내
가 기존에 알고 있던 세상은 무너졌다는 것이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누군가가 기존의 세계를 완전히 새롭게 인식하고 싶거나 인간을 더 깊
이 이해하고 싶다면 나는 이 책을 무조건 읽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쓴 내용 말고도 다양한 내용이 이 책에 나오는데 이 책은 놀라운 사
상들이 한 땀 한 땀 소중히 담긴 보물상자와 같으니 인류의 비밀에 관심이 많은 사람
이라면 읽어보길 권한다. 만약 다 읽고 나와 같이 세상이 연극이라는 생각에 이르렀
다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공격적이고 자극적인 일들이 가볍고 심지어는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연극이니까. 나는 시험을 망쳐도, 누군가에게 뒷담화를 들
어도 그래서 결국 나의 배역이 망쳐진다 해도 나 자신이 이 세상에 열심히 몰입하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인생이 시궁창으로 흘러 가는듯한 느낌이 들어도 나 자신
의 근본은 전혀 위험하지 않고 그저 외부 상황의 ‘나’만 극 속의 비극에 휘말리는, 하
지만 그저 연극에 몰입한 것뿐인 듯한 감정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 책을 펼
치는 순간부터 덮은 순간까지 내가 생각한 모든 것들은 잊히지 않는 내 삶의 태도가
되었다.

『화폐전쟁(쑹훙빙, 랜덤하우스코리아)』

<우수상> 『화폐 전쟁』을 읽으며

고동현(2)

쑹훙빙의 『화폐전쟁』은 한국에서도 꽤나 유명
한 책이다. 화폐와 전쟁, 연관성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두 단어이지만 자본주의 세상에 살아가
는 우리에게는 그 잔혹한 의미가 조금은 유추가
된다. 지난 달 쯤, 한참 이 시대의 가장 큰 과제
라고 할 수 있는 부의 재분배 문제에 대해 고민
하며 서점을 돌다가, 이 책의 매력적인 제목을
보고 고민 없이 사버렸다. 이 책의 전반적인 내
용은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 중
상당수가 로스트차일드가(家) 같은 거대 금융세력들의 조작 아래 이루어진다는 것이
었다. 얼핏 들으면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 책의 2/3 가량이
증거가 되는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고 있으며, 제시하는 근거에는 분명 타당성이 있
다. 또한 이 책은 분명 지금까지 내가 생각했던 세상에 대한 인식 자체를 송두리째
뒤바꾸는, 한편으로 내가 생각하던 세상과 너무나도 달라서 두려움까지 생기게 하
는 그런 내용이었다.

책의 컨셉 상 읽는 도중 '이게 정말 사실일까?'하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링컨 대
통령 암살에 관련된 진범들은 아직도 법망에서 벗어난 상태다.(57쪽)”라는 부분에선
여러 미국 대통령들이 금융재벌을 견제하기 위한 ’화폐주조법‘을 통과시키려 했고,
이에 분노한 금융재벌들에 의해 암살당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부분을 읽는 동안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또한 나는 일개 소시민으로써 그 진실을 절대 알 수
없고, 만일 그것이 사실이더라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 다는 생각에 온몸에 소름이 돋
았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실일 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신과 가장 가까운 존
재는 바로 금융세력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하나님이나 부처님보단 그들이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더 클 것이다. 어쩌면 은연중에 "뭣 같은 자본주의!"라는 말을 뱉는
우리는 이미 자본주의에 굴복하여 그들을 신으로 인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 한 가지 놀라웠던 부분은 그들이 나치와도 연관됐었다는 점이다. “『시드니 와
버그』는 미국과 영국의 금융가들이 히틀러의 권력 장악을 위해 자금을 지원한 비사
를 폭로하고 있다.(208쪽)”라는 부분에선, 월가 은행들이 히틀러를 만나 특정요구(공
격적인 외교 정책으로 프랑스의 보복감정을 선동하라)를 했고 히틀러는 이 조건을
들어 주는 조건으로 1000만 달러를 받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당시 이러한 내용을
담은 책 『시드니 와버그』가 출판 되자마자 금서로 지정되어 폐기된 것을 보아 분명
이 사실적인 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한걸음 더 나가 “사실상 월가는 나치 독일
의 최대의 자금줄이었다.(210쪽)”라는 부분에서는 히틀러가 전쟁을 준비할 당시 필
요했던 막대한 자금의 출처가 미국 월가의 손에서 나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그 어떤 것도 정설로 인정된 사실은 아니지만 이 책의 내용을 보아 오히려 정식적
이지 않고 모두가 쉬쉬하는 내용이기에 역설적으로 위의 내용은 사실처럼 들렸다.

책을 중반 정도 읽었을 무렵 영화 ‘돈’을 보고 왔
다. 영화에서 주인공 ‘조일현‘은 여의도 대형 증권회
사에의 주식브로커로 등장한다. 그는 회사 동료를 통
해 알게 된 ‘번호표’라는 가명의 악역을 만나 순식간
에 부자가 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책이 떠올랐는
데 번호표가 이윤을 얻는 방식과 이 책에서 말하는
금융재벌들이 이윤을 얻는 방식이 매우 비슷했기 때
문이다. 영화 속에서 ‘번호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서 사람도 죽이는 매우 잔인한 모습으로 나온다. 결
국 주인공 조일현도 그의 체스 말에 불과했다. ‘번호
표’는 배후에서 모든 사건을 조종했고, 모든 일은 그가 계산한 대로 흘러갔다. 그리
고 그 모든 과정에서 그는 막대한 이윤을 남겼다. 물론 흥행을 위한 영화의 특성상
권선징악의 모티프로 번호표는 잡힌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 책은
이야기 하고 있다. 실제로도 많은 역사적 사실 중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또
금융재벌의 수작으로 밝혀졌지만 은폐되는 사건들이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그 은
폐의 주체로는 정부와 언론이 모두 포함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만 생각해 봐도 그 증거는 넘쳐난다. 특정 언론을 거론하진 않겠으
나 국내의 많은 언론사들은 기업에 빌붙어 밥줄을 구걸하고, 기업의 생각과 이익을
대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 기업이 아무개 전 대통령과 사적 이익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의혹이 들었지만 당시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아무개 전 대통령에게 몰리고
해당 기업의 기사는 정치적으로 반대성향인 언론사를 제외하면 찾아보기가 힘들었
던 사건이 있다. 이처럼 우리의 현실은 이 책 내용에 타당성을 실어주고 있다. 물론
앞서 말했듯 이 책의 내용은 완전한 팩트가 아니며 많은 이들은 유치한 음모론에

불과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나 역시 분명 과한 부분이 없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하
지만 나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 책은 충분히 읽어볼 가치가 있으
며 이 책의 진정한 의미는 우리가 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잠시 동안의 의심에 있다
고 생각한다. “정말로 막강한 부를 가진 금융재벌들이 모든 사건을 조작하는 것일
까?”란 그 의심은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다가 훗날 우리가 변화의 필요성을
느낄 때 다시금 떠올라 현실은 잘못되었다는 대답을 줄 것이다. 물론 이 모든 내용
이 허구였으면 좋겠다. 이 책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의
뜻을 넘어 설 수 없고, 내 미래의, 꿈의 정점에는 그들에게 빌붙어서, 그들의 ‘조일
현’이 되는 현실만이 있을 뿐이다.

책의 도입부에서 작가는 금융전쟁이 어떠한 신식무기를 사용한 전쟁보다 잔혹하
며 한 나라의 국력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음을 강조했다. 심지어 금융재벌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나라 하나를 만들고 없애는 수준까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 책을 완독한 후 나는 그 잔혹함과 강력함이 이해가 됐다. 그리고 금융관련 업종
에 종사하기를 희망하는 학생으로서 내 진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물론 평범한 금융업 종사자는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을 실감하기 어렵
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금융재벌들의 손에서 놀아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 책을 보면 금융재벌들이 이용하는 1순위 개체는 자신들의
하위 금융종사자이다. 그래서 나는 ‘어쩌면 미래의 내가 그들의 이익을 위해 소비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내 진로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의 후반부에 옮긴이 차혜정님의 말을 읽고 다시금 용기를 얻었
다. 그녀는 중국은 이미 금융세력과의 화폐전쟁을 시작했고 그 승기는 누가 들 것
인지 알 수 없다는 투로 이야기 하고 있었다. 그녀의 말처럼 역사에서 절대적 강자
의 집권기는 한 세기 이상을 넘어선 적이 없다. 물론 금융재벌들의 힘은 아직까지
도 막강하며, 이 쫀쫀히 짜인 문제를 풀어낼 실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시대
발전과 역사의 흐름에 따라, 그들도 영원히 강자의 위치에 있을 수는 없다는 사실
은 분명하다. 어쩌면 이 책의 존재 자체가 그들에게 승부를 신청하는 ‘선전포고‘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나는 훗날 있을 그들과의 전쟁에 참여하여 이상적이
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구축하는데 이바지 할 수 있다면 내 인생의 가치는 그것
으로 충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그러한 내가 되기 위해 더욱 열심히
이 분야에 대해 공부할 필요성을 느끼며 이 책을 마무리 지었다.

『엔트로피(제레미 리프킨, 세종연구연)』

<우수상> 사랑, 그리고 엔트로피

박형진(2)

우주 에너지 총량은 일정하고(제1법칙),
엔트로피 총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제2법칙).

우리는 일상생활을 살아가다가 ‘에너지 보존’이라
는 말을 쉽게 들어볼 수 있다. 그러나 ‘엔트로피’ 라
는 용어는 생소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제 1법칙보다 제 2법칙이 더욱 강한 지배자로서 존
재하고 있다. 이미 우리사회는 석유 등의 에너지 자
원은 고갈을 눈앞에 두었고, 환경오염으로 인한 지
구온난화나 미세먼지 등의 결과가 초래되고 있다. 책에서는 이러한 현상에 대한 날카
로운 지적을 하며 앞으로 우리가 지녀야 할 새로운 에너지 소비관을 제시한다.

엔트로피는 ‘유용한 에너지의 사용’과 함께 생성된다. 자동차를 생각해 보자. 자동
차에 연료를 공급해주면 연료의 일부는 엔진을 움직이기 위한 ‘유용한 에너지’로 쓰인
다. 그러나 나머지는 배기가스 등으로 배출되어 환경을 오염시킨다. 여기서 배기가스
의 배출이 엔트로피의 증가이다. 또 ‘엔트로피’는 ‘무질서도’이다. 물이 차 있는 비커
를 생각해 보자. 비커 안에 잉크를 한 방울 떨어뜨리면 확산되어 물이 검게 된다. 잉
크가 퍼져있는 무질서한 상태를 보고 엔트로피가 증가했다고 한다. 그런데 물을 아무
리 넣어도 확산이 더 일어날 뿐, 흩어진 잉크는 다시 한 점으로 모이지 않는다.. 이처
럼 엔트로피는 증가하는 방향성을 갖고 늘어만 간다.

이러한 방향성에 저항하려던 사람도 있다. “엔트로피 피해가기를 가장 적극적으로
한 과학자는 단연 루드비히 볼츠만이다.” 볼츠만은 확률 물리학을 설립한 사람이다.
그는 엔트로피 법칙을 인정한다면 당시 에너지 소비가 늘어만 가는 산업사회의 앞날
이 어둡다고 생각해서 엔트로피가 줄어들 수 있는, 잉크가 다시 한 점으로 모일 수
있는 ‘확률’을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뉴턴 법칙에 의해 지배받던 결과주의적이고 실
용주의적인 고전 물리학계에서는 이미 엔트로피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볼츠만의 이론
또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재 그의 이론은 그 유용성을 인정받고 기체 분자운동을

분석하는 데에 쓰이고 있지만 그 속에서는 엔트로피 법칙을 부정하려는 볼츠만의 간
절함이 느껴진다.

엔트로피와 마찬가지로 계속 늘어만 가는 자연물이 있다면 단연 ‘시간’이다. 하지만
작가는“시간은 일을 할 수 있는 유용한 에너지가 남아있을 때만 존재한다”라고 말한
다. 현대인들은 시간을 ‘에너지를 다시 재생산할 수 있는 기회’라고 인식한다. 또한
시간을 절약하여 절약한 짧은 시간 안에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려 애쓴다. 그런데
에너지는 재생산할 수 없을뿐더러 시간이 남더라도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다면 시간은
무의미하다. 작가는 현대인들의 무한한 에너지와 시간에 대한 시각을 위 구절을 통해
서 틀렸다고 말해준다.

그렇다면 작가가 제시하는 새로운 에너지 소비관의 특징은 무엇일까? 그것은“저(낮
은)엔트로피 세계관의 윤리적 기준은 에너지 흐름을 최소화하는 것이다”라는 작가의
말이 설명해준다. 이 구절은 지금까지 인류의 에너지 소비과정을 비판한다. 인류의 역
사에서 각각의 정부들은 “효율”을 에너지 소비의 기준으로 삼았다. 그리고 에너지를
과소비하는 대신 그 소비를 충당할 에너지원을 찾기만 하면 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
다. 그에 따라 에너지원을 찾기 위해 환경을 파괴하고 약소국을 침략해 식민지로 삼
는 등의 비윤리적 행위를 일삼아왔다. 작가는 이 구절을 통해서 에너지 소비에 있어
서 가장 중요하지만 중요시 여겨지지 않았던 기준을 제시하고, 에너지 저소비를 주장
한다.

우리가 저엔트로피 세계관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이 책에는 ‘실용주의자’라는 개념이 나온다. 그들은 엔트로피 법칙을 부분적으
로 이해하면서도 세상은 원래 그렇다며 사회 전체의 구조는 바꾸려하지 않는다. 그저
시스템의 효율을 조금 높이려 할 뿐이고, 엔트로피를 ‘비용 대 수익을 추정하는 수단’
으로 인식한다. 나는 책을 읽고 내가 실용주의자처럼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문제를 내가 뭔지 알아도 아예 고칠 생각하지 않고 시스템의 효율을 조금 높이면 된
다는 듯이 살아왔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기독교 신자인데, 이 책은 <신이 만든 피조
물을 모두 존중하라>는 현대 기독교 세계관을 지지할 뿐만 아니라 ‘사랑’의 의미에
관해서도 곱씹고 있다. 그것은 대상을 완벽한 상태로 인식하며 원래의 상태를 존중하
는 것이다. 이 책은 나와 인류의 실용주의자적 신앙심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나의 “어
느 정도까지만 죄를 지으면 천당에 갈 수 있는가?”라는 생각을 비판하며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숭고한 말씀을 나와 인류에게 전달하고 있다. 하나님의 손으로
만드신 피조물은 인간과 동물, 자연에 상관없이 모두 하나같이 완벽하다는 인식을 우
리 인류가 머릿속에 깊게 모셔왔다면 인류는 현대의 문제에 도달하지 않았다. 이 말
씀을 인류는 알면서도 주변의 이웃을 인간이 아니라며 간섭하고 시기하며 혐오해왔
다. “장미는 완전히 하나의 꽃으로 생성되는 것이지 먼 미래에 나옴직한 완벽한 꽃이

되기 이전의 불완전한 상태로 피어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장
미를 꽃이 되기 위한 방향성을 가진 식물로 인식하고 수단으로 이용해왔다. 책을 읽
은 후 나는 내가 해왔던 행위들을 자책했다. 내 주변의 친구들, 선생님, 부모님의 내
가 맘에 들지 않아하는 모습들이 이미 그 자체로 완벽한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간섭하려들면 오히려 더 큰 엔트로피가 생성될 수 있다. 이 깨달음을 얻은 후 나는
남을 완벽한 존재로서 존중하기 시작했고, 조금 더 덤덤해지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얼마 전 과학탐구 토론대회를 준비하면서 보았던 기사가 떠올랐다.
그 내용은 미세먼지를 해결하기 위해 띄운 인공강우가 미세먼지가 없었던 다른 지역
에 가뭄을 초래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기사에 나온 인류의 모습은 굉장히 실용주의
자적이다. 미세먼지는 인간의 에너지 과소비로 인해서 생성되었다. 이런 문제점은 미
세먼지에서 시작되므로 미세먼지 생성을 줄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아 하는데,
인공강우라는 수단을 통해 시스템의 효율만 높이고 있는 인류는 실용주의자와 정말
유사하다. 그리고 기후라는 자연을 완벽한 상태로 바라보고 존중하지 못하는 인류의
모습은 사랑하지 않는 실용주의자를 정확히 닮았다. 결국 이것은 타 지역의 가뭄이라

는 엔트로피 증가를 초래했다.
이 기사를 보고 떠오른 영화가 있는데, 바로

‘설국열차’이다. 이 영화에서는 자연에 간섭하려
했던 인류가 과도한 엔트로피를 생성해버렸고,
그 결과 지구에 빙하기가 모습이 나타난다. 또
한 열차 내부에 자연의 질서를 어떻게든 지키기
위해 마련해놓은 정원, 수족관 등에서 자연의
현재 모습 유지가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인공강우 기사와 설국열차에서는 실용주의자로
사는 현대인들의 모습과, 그 참혹한 결과가 차례대로 나타나 있다. 하지만 인류는 아
직 이런 것들을 인식하지 못했다. 에너지 절약은커녕 에너지 소비를 충당하기 위한
소모적인 자원만을 건설하고 있다. 허나 핵발전소를 생각해봐도 방사능이라는 엄청난
엔트로피가 형성되고 있듯이 실용주의자적 에너지 소비방식은 엔트로피의 거대한 증
가를 초래한다. 그러니 우리 인류는 앞으로 저엔트로피 에너지 소비방식을 택해야 한
다. 자연을 사랑해야하고 간섭하면 안 된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엔트
로피가 증가한다는 사실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엔트로피를 줄일 방법을 강구해서도
안 된다. 그저 늘어나는 엔트로피의 속도를 늦출 수 있는 최선의 해결책을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아마 그것은 자연을 사랑하고 모든 것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장하준, 부키)』

<우수상> 선진국으로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나쁜 사라미아인들

류준하(2)

‘신자유주의는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가?’
한 이론의 실패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책의 부제는 저자의 주
장을 강력히 피력하면서 독자들의 눈을 끈다. 부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책은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책이다. 현재 미국, 영
국과 같은 선진국들을 보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신자유주의적인,
개방적인 이미지이다. 하지만 이 국가들은 과거 18세기에서 20
세기까지 큰 발전을 이뤄왔을 시기에 보호무역을 함으로써 경제
발전을 해왔다. 따라서 책은 전반적으로 그러한 선진국들을 ‘나
쁜 사마리아인들’에 비유하며 현재 개발도상국들에게 자유무역을 강요하고 있는 모습을 비판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공기업의 민영화, 외국인 직접투자, IMF, 지적재산권 같은 분야에서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에 미친 영향들을 제시하고 개발도상국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
고 있다.
이 책은 10년 전의 책이다. 하지만 최근의 논란에서도 읽을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자유무역
의 대명사였던 미국에서의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 정책과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 정책은 무
역 정책에 대한 관심을 키우기에 충분했다. 그 상황에서 10년 전 정부에 의해 ‘불온도서’로
지정되었다가 최근 다시 출판된, 신자유주의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이 책은 내 눈길을 끌었
다.

저자는 여러 근거를 통해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고 그러한 근거들은
독자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오늘날 부자나라들이 취했던 보호무역 주의의 역사는 지극히 과소
평가되고 있고, 현재의 개방도상국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고도의 전지
구적인 통합이 제국주의적 근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은 거의 언
급되지 않는 식이다.( 66p.)” 이 구절에서는 선진국들이 정작 자신들
은 보호무역으로 발전했음에도 현재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역사를 왜
곡하고 다른 방식을 개발도상국에게 강요하고 있다는 게 전적으로 드
러난다. 선진국들이 보호무역으로 발전했고 그 사실을 의도적으로 숨
기고 있다는 것은 나에게 인상 깊게 다가왔다. 또한 선진국들이 하고
있는 행동이 정말 자신들이 올라온 사다리를 걷어찬다는 표현이 딱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제는 어떤 사실을 볼 때 그 사실이 왜곡된 부분은 없는지, 누군가의 이득을 위해 편향되게 쓰
인 것은 아닌지를 고려할 것이다. 추가로 책에 나오지 않은 다른 나라들이 크게 성장했을 때
에 펼쳤던 무역 정책에 대해 책에 나오지 않은 객관적 사례들을 스스로 찾아보고 싶어졌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필요하다.(345p.)” 저자의 전반적인 주장을 관통하는 구절이다. 보통 부
정적으로 쓰이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단어를 국제 무역이라는 부분에서는 긍정적이라고 바
라보고 있다. 그 이유는 개발도상국들에게는 선진국들과 같은 위치에서의 경쟁이 아닌 유리한
상황에서의 경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방법은 개발도상국들이 자유무역을 하는 것이 아닌
보호무역을 하는 것이다. 또한 개발도상국들이 외국인 투자를 규제하고 지원금을 강력하게 지
급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다. 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필요하다는 말이 모순 같으면서도 맞
기에 인상 깊었다. 국가 간의 경쟁이라는 같은 위치에서는 공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보호무역
이라는 보호막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준 구절이다.

이 책을 읽기 전 나는 원래 자유무역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학교에서 배
운 리카도의 비교우위 이론에 따르면 무역을 하면 생산성이 뛰어난 국가나 그러지 않은 국가
모두 이득을 보기 때문에 모든 나라가 자유무역을 통해 이득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
만 이 책을 읽음으로써 자유무역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유무역을 하면
단기적인 이득은 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가가 생산성이 좋지 않은 산업에 머물게 되어
고부가가치 산업은 이미 발전한 선진국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사회에서 기피
되는 대상인 계층의 고착화가 국가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이론상으로는 문제없는 비교
우위이론의 허점이다. 이런 부분을 통해 나는 어떤 원리를 배울 때 그것을 그 자체로 받아들
였던 내 과거의 사고방식을 반성하고 앞으로는 이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영향을
끼치는 다른 영향도 생각해봐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은 무역 이론에 대해 다루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생활과 관련이 깊다. 지난 3월 28일,
한국 경제신문에서 미국의 고관세 정책이 효과를 보고 있다는 기사를 발표했다. 미국은 고관
세 정책을 통해 무역 적자가 전달에 비해 14.6% 감소 해왔다고 발표했다. 위 트럼프의 정책
의 성공적 전략은 저자가 보호무역을 추구하는 이유를 보여준다. 이로써 미국은 보호무역 정
책으로 미국 내 산업들의 성장을 이룰 수 있고 국내의 자본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서 장기적
인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 본 영화인 ‘국가부도의 날’ 에서도 책과 관련된 내용을 찾을 수 있다. 영화에서는 우
리나라가 외환위기에 빠졌을 때 IMF가 우리나라에 지원 요건으로 여러 가지 요구를 하는데
그중 외국인 투자의 규제를 줄이고 관세를 낮추는 요건이 있다. 또한 IMF의 관계자가 미국
정부 관계인과 이야기를 하는 내용도 있다. 이처럼 선진국들은 IMF를 이용해서 개발도상국에
자신들이 원하는 정책을 강요한다. 구제를 받는 국가들이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피해를 받는
역설적인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영화에서나 현실에서 우리나라가 IMF의 요구를 들어주자
외국의 자본들이 우리나라에 빠르게 침투하여 산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결국 저자의 주장대로 선진국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IMF가 우리나라에 자유무역을 강요하
고 우리나라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부정적 영향을 입고 선진국들은 이득을 챙겨갔다.

나는 책을 읽고 우리나라가 선택해야 할 무역정책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나라
는 수출이 경제의 핵심인 나라로 주로 자유무역을 선호해왔다. 하지만 나는 우리나라도 보호
무역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은 아니지만 산업 기반이나 복지
등의 측면에서 선진국에 못 미치는 부분이 많다. 우리나라는 무역의존도가 과하게 높고 과거
IMF의 원조를 거치면서 외국자본의 국내 기여도가 높다. 또한 수출 주도 경제라고 불리고 있

는 경제도 몇몇의 대기업의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상
태이다. 따라서 보호무역의 시행으로 국내 중소기업과
저발전 산업의 발전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다. 보호무역의 시행과정은 천천히, 하지만 과감히 이
루어져야한다. 때마침 미국도 보호무역을 지향하고 있
기에 우리나라도 그런 국제정세에 편입되기 좋은 상태
이다. 먼저 미국, 중국과 같은 국가들과의 협상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발전이 필요한 산업들에는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그를 통해 우리나라의 발전 중인 기
업이 외국의 대기업에 인한 적대적 인수와 경쟁 중에
낙오되는 것을 막고 국내 기업들을 국내 자본이 소유하
는 비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 따른 우
리나라의 수출 감소도 감안해야 한다. 따라서 국내에서
는 무역 정책에 따른 피해를 보는 기업(주로 대기업)들
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즉 대외적으로는 중소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펼치고 국내에서는 대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펼치는 것이다. 그를 통해 우리
나라는 단기적으로는 경제가 침체될 수 있지만 그를 감수하면 미래에는 조금 더 다양하고 강
력한 산업기반을 가지고 부가 더욱 고르게 분배되는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리학은 처음인데요(마쓰하라 다카히코, 행성B)』

<우수상> 물리학이 처음이라고???

홍준혁(2)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 교육과정 중 ‘물리학’이라는 과

목을 배우게 되었다. 생명이나 화학은 평소에 관심이 많았
고 쉽게 접할 수 있어 무엇을 배우는지, 왜 배우는지 정도
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물리학은 공식으로 도배되어 있는
어려운 과목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물리학에 부정
적 편견을 가지게 되었고 물리 수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
다. 편견을 깨기 위해 ‘물리학은 처음인데요’라는 책을 고
르게 되었다.

이 책은 앞부분에서 물리가 존재하는 이유와 물리의 가
치를 쉽게 설명한다. 물리학은 복잡한 현상을 단순한 요소
로 분해하는 학문이라 소개하며, 고등학교 물리문제에서의
말도 안 되는 설정, 예를 들어 “마찰력을 무시한다.“ 등을 설명한다. 그리고 천상 세계 vs 지
상 세계, 물리에서의 원자 같이 단순히 물리라는 과목에만 국한되지 않고 화학, 지구과학 등
다양한 융합적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다.

책을 읽으며 특별히 인상 깊었던 구절은 “겉보기에는 아름답지만 잘못된 이론(p53)” 이라는
구절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겉보기에 아름답지만 잘못된 이론’은 ‘천동설’을 뜻한다. 천동설은
그 당시 완전함의 상징이었던 원을 사용하여 행성 궤도를 표현한다. 하지만 천동설이 유행하
던 때에 천동설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많이 발생했다. 이런 현상들은 원이 아닌 타원을
사용해서만 설명이 가능했었다. 그러나 천동설을 주장하던 사람들은 타원은 완벽하지 못하고
아름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타원에 의한 현상들을 무시했다. 한편으로는 천동설은 과학적 주장
이긴 하지만 종교적 느낌이 들만큼 억지라 생각한다. 겉보기가 아름답다고 해서 모두 잘못된
이론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뒤의 본질을 살펴볼 필요를 강조한 구절이라 생각된다.

“원자는 존재하더라도 볼 수 없다.(p81)”는 구절도 기억에 남았다. 고등학생인 나는 화학을
공부하고 있고, 더 자세하게는 원자에 대한 강의도 수차례 봤던 것 같다. 하지만 강의를 들으
며 열심히 내용을 필기하려고만 했지 내가 무엇을 공부하는 지조차, 심지어는 ‘내가 공부하는
원자를 볼 수는 없을까?’ 같은 기본적인 의문조차 품지 못한 것 같아서 원자는 존재하더라도
볼 수 없다는 구절을 보며 나의 학습 태도를 반성하게 됐다.

그리고 “무거운 것이 아래로 떨어지는 일이 당연한 일이라고?(p31)”라는 구절이 인상 깊었
다. 우리들은 매일매일 무거운 것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보며 당연한 일이라고 또는 관심조
차 가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당연한 현상을 관찰하고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뉴턴이 나
오게 되었고 물리학이 시작되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물리학뿐만 아니라
화학, 생명, 우리의 생활에서까지 발전이 없는 삶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평소에 나는 학교를 가고 학원을 다니고 친구들과 농구도 하며 바쁜 삶을 살며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은 후 나는 매일의 익숙함에 빠져있
던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익숙함에 빠져 궁금증을 갖지 못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지금까지
살았던 나를 되돌아보면 후회도 되고 바보 같기도 하다. 우린 잠을 잘 때 눈을 감고 아침이
되면 눈을 뜬다. 눈을 뜨고 자연스럽게 어젯밤 책상에 놓아두었던 안경을 찾는다. 여기서 우
린 익숙함에 빠져 큰 궁금증 하나를 놓치고 만다. ‘왜 눈을 뜨면 사물이 보일까?’ 처음 듣기
에는 허무맹랑한 소리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1년 365일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며 보이는
물체들이 왜 보이고 어떻게 매일같이 보일지 궁금해 보지도 관심을 가져보지도 않았다.

과거 TV 속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당연해진다.” 이처럼 우리는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에서 궁금증을 도출해야 하
고 그 궁금증을 해결해 가며 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아침에 보이는 안경을 보며 “왜 눈을 뜨
면 사물이 보일까?”라는 궁금증을 갖고 빛의 파장이 물체의 길이보다 짧을 때 물체가 눈에
보인다는 파장의 기본개념을 알아보고, 더 나아가
우리가 배우는 원자는 빛의 파장보다 짧기 때문에
안 보인다는 사실을 유추하여 최종적으로는 ‘광학
현미경의 배율을 높이면?’, ‘전자 현미경을 사용하
면?’, ‘원자들끼리 결합시켜 파장의 길이보다 길게
만든다면?’ 등 다양한 해결방안을 생각하며 익숙함
에서 탈출할 수 있다.

책에는 과학자들이 법칙을 세우고 실험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실험을 하고 결과가 나
오면 과학자들끼리 입장이 나뉘고 다수의 의견과 소수의 의견이 나온다. 이 상황에서 과거 천
동설과 지동설이 나뉘었을 때 소수의 의견이었던 지동설은 처참히 묵살되었고 천동설이 종교
적 성향을 띠며 집단을 형성해 지동설을 믿는 사람들을 제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천동설
의 집단적 성향과 소수의 의견을 무시하는 행위로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잘못된 천동설을 바
탕으로 다양한 과학적 오류가 발생했다.

현재도 과거와 별반 차이가 없다. 아직도 집단을 형성해 집단적 힘을 과시하고 집단을 이용
해 소수를 타도한다. 요즘 뉴스를 보면 정치인 김성태 딸의 KT 특혜 채용비리에 관한 뉴스가
많이 나온다. 이처럼 정치인 집단의 힘을 사용한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또한 현대에서도
소수의 의견은 완전히 무시된다. 즉 다름과 틀림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오히려 나경원의
5.18에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는 말을 듣고 있으면 틀린 것을 다양성으로 덮는 희한한 사회
가 되어가는 것 같다.

과거 천동설과 지동설 같이 현대에도 집단적 문제
점과 소수 의견 무시와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우
리들은 과거의 시행착오를 통해 지금의 문제들을 해
결해 나가야 한다. 예를 들어 법의 힘을 빌려 집단의
힘을 약화하거나, 소수의 의견을 들어주는 문화를 형
성하고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는 교육들이 이루어진다
면 과거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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