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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by 이화보, 2023-04-12 22:01:20

이화 268호

이화 268호

Keywords: 전주이씨,이화

宗 訓 崇 祖 惇 宗 차 례 2. 권두언 4. 본원 소식 13. 지원 · 분원 · 종 · 봉 소식 15. 본원 제57 정기총 20. 종묘제례악에 대 상고(詳考) …………………………… 본원 문부 위원 이병준(李炳俊) 22. <사례람> 상복도의 나인 삼상강복도(三殤降服 圖)에 대 설 ……………………………… 본원 제2문이사 이승창(李承昌) 25. 오주연문장전산고를 읽고 … 본원 고문/前 서울문사장 성 이용규(星軒 李鎔奎) 28. 당신과 께라면 …………………………………………… 길병원 원무과 이진우 30. 창올림 세계 … 본원 제2문부 위원 이병(李丙赫) 31. 부산광역시 李龍欽 지원장 일신설계 40주년 출 기념식 거 ………… 부산광역시 부지원장 / 명예기자 이상용(李尙龍) 32. 우리의 삶과 문, 세시속 … 강원도지원 상임부지원장 / 명예기자 이종(李鍾泰) 39. 왕의 생애…세자책봉과 즉위, 그리고 죽음 …………………………………………………………………… 집실 43. 슬 역사의 장, 단종(端宗)의 유배지 영월 청령를 가다 ……………………………… 前 봉군 공무원 이문(李文學) 47. 이완 순례를 마치고 …………………………… 제주도 계성군 청년장 이철 49. 만로 보는 역사이야기 80 ………………………………………………………… 이전경(李田景) 51. 익안대군 불천위(不遷位) 제 참관기 … 전북대교 명예교수/공박사/연산교 전교 이덕래(李德來) 55. 문재 이모저모 58. 승경원 건립기금 모금 성자 명단 63. 별원원 가입을 영니다 ……………………………………………………………………………… 65. 익군종 족보찬공고 65. 경명군종 족보찬공고 ▲ 건원릉 앞에 산벚꽃 (사진 촬영 : 철수) 2018 / 3·4월 격월간 李花 (권 268) 발인/이섭 집인/이범직·이승창 발처/사단법인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주소/서울 종로구 돈문로 89 우번/03131 전/(02)765-2124 스/(02)742-1676 인쇄인/이관우 인쇄처/동아문사 전/(02)2267-2775 발/2018년 3월 1일 등록/1973년 12월 31일 이지(http://rfo.co.kr) 이메일([email protected]) 값 2,000원(1년 정기구독 10,000원)


2 李花 268 권두언 이종일(李鍾一) 본원 부이사장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듯이 입춘과 우수가 지난 지 오래되었건만 아직 도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니다. 지구촌을 뜨겁게 달구웠던 창 동계올림의 성도 이제 조용 그 막을 내리고, 이 땅에는 그 이에 닥쳐올 북 문제, 안보와 관련 미동맹의 결 속 내지는 주변국들과의 역 관계를 어떻게 어갈지를 생각니 역시 ‘춘래불 사춘, 봄이 왔어도 봄같지 않더라’ 라는 말을 되새겨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 난제는 정치권에 맡기고 우리는 숭조와 돈종의 종시아래 마음이 되어 주어 진 과제들을 나씩 어가야 겠습니다. 3월은 만물이 소생는 약동의 계절이며, 사업을 본격 시는 역동적 인 달이기도 니다. 따라서 지난에 미진던 사들을 재점검 보면서 이에 점시켜 오르는 등불이 되도록 간절 소망으로 담아봅니다.


李花 268 3 첫째, 단 분의 선조제도 궐사서는 안 된다는 종친들의 여망으로 실전된 선조 15분 양위(2세~16세)의 위와 17세 양무장군의 위를 모시고 제례를 봉기 위 승경원 건립이 얼마 있으면 관 시청으로부 건축가를 받아 연내 완공을 목로 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정성스러운 성금이 목액에 미치지 못고 있는바, 조기에 이 성스러운 사업이 성공리에 잘 마무리으로써 손된 도리를 다 야 된다고 생각 봅니다. 둘째, 우리 전주이씨 제 자손들이 사에 성공적으로 진출기 위 동량제 양성을 위여 그동안 여러 종친들의 참여와 관심 속에 장사업을 꾸준 시 오고 있는 바, 앞으로 이 사업이 계속 대 발전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을 모아야 다고 생각 봅니다. 셋째, 우리 모두는 만지동근(萬枝同根) 이라는 말과 같이 숭조 돈종의 기치아 래 똘똘 뭉쳐 대외적인 이미지 제고와 그 위상을 게 높여 자라나는 세대에게 높은 긍지를 심어주어야 다고 생각니다. 이상과 같이 새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3월을 맞이여 소의 소신을 밝 보면서 아울러 종친 여러분들의 건강과 복을 기원니다. <중종/덕양군 16대손 ‧ 始45세>


4 李花 268 임시 상임이사(2018. 2. 14) 제670 상임이사(2018. 2. 7) 제204 이사(2018. 2. 7) 본원 제57 정기총 개최 본원 소식 ◎ 의 안 ․ 2017년도 사업보고 및 결산 심의의 건 ․ 제57 정기총 개최의 건 ․ 정기총 상자 배정의 건 ◎ 기사 ․ 승경원 설계(안) 심의의 건 ◎ 의 안 ․ ‘조선왕릉 제’ 국가무문재 지정을 위 의례 조사보고(연구과제) 용역 계약 체결의 건 ․ ‘조선조 국가 제례 의식 보존 및 진에 관 법률’ 제정 제안의 건 ◎ 의 안 ․ 제57 정기총 개최의 건 ․ 2017년도 사업보고 및 결산 심의의 건 ․ 이익잉여금 처분(안) 심의의 건 ◎ 기사 ․ 제57 정기총 상(단체‧개인) 배정 계 ․ 승경원 설계(안) 심의의 건 본원(이사장 台燮) 제57 정기총가 지난 2월 27일() 오 1시 30분, 본원 강당에서 개 최됐다. 이날 총는 주(海周) 총무이사의 사로 재적대의원 289명 중 출석대의원 132명,


李花 268 5 위임대의원 142명, 출석 감사 2명을 여 176명이 참석 가운데 열렸다. 국민의례와 종묘배례에 이어 섭 이사장은 개사를 “바쁜 시간을 내어 참석 준 대 의원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총가 원만게 이루어 질 수 있도록 대의원 여러분의 좋은 의견을 제시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다. 이어 지난 본원 원무 수에 조를 준 지 원과 분원, 종 등 9개 단체에는 창와 원기를 수여고, 개인 수상자 9명에게는 각각 공로, 감사, 창와 상을 부상과 께 전달다. , 정기총에 앞서 지원과 종에서 선발된 16명의 장생에게는 장증서 및 100만원의 장금이, 4명의 고등생에게 는 장증서 및 50만원의 장금이 전달됐다. 그리고 이날 대의원에게 전진 정기총 기념 인 물병은 (주)다원F&D 장인 찬 종친이 찬다. 이날 총의 안건으로 상정, 의결된 사은 다음과 같다. 의안 제1: 2017년도 추가경정 예산(안) 승인/ 의안 제2: 2017년도 수입․ 지출 결산서 및 이익잉여금 처분(안) 승인 의안 제3 : 2018년도 사업계(안) 승인 / 의안 제4 : 2018년도 수입 ․ 지출 예산(안) 승인 의안 제5 : 임원(감사) 선출 본원 임원 변동 사 ◆ 부이사장 보직변경 명 을 으로 변경일자 卿 東 문 ‧ 문사업 총무 ‧ 재정 2018.02.28 允 中 총무 ‧ 재정 문 ‧ 문사업 2018.02.28 ◆ 감사 선출 (2018.02.27) ◆ 이사 및 상임이사 보선 (2018.03.28) 명 대수 경력 명 대수 경력 潤 柱 밀성군 18대손 (始43세) 전 본원 이사 밀성군종장 이 사 炳 辰 운천군 10대손 (始38세) 前 본원 감사 국교원대 명예교수 鍾 連 창원군 16대손 (始42세) 전 본원 이사 창원군종장 재정이사 慶 浩 덕천군 15대손 (始39세) 前 본원 이사 ‧ 감사 세무사


6 李花 268 대구광역시지원, 신년교례 개최 본원 제5기 왕릉제 전문과정 교육 개강 본원 감사 실시 장서각(藏書閣)에서 조선왕실 족보 열람 가능 인넷 사이 ‘장서각’에서 조선왕실 족보를 비롯 고문서를 검색 및 열람 수 있게 됐다. 국중앙연구원 고문서연구실은 2013년부 2017년 말까지 작업 장서각기록유산을 데이베이스여 일반에 공개다. 장서각기록유산DB에는 선원록, 선원계보기략, 돈녕보첩, 선원속보를 비롯 왕실족보와 민간족보로서 족보, 족도, 고조도, 종보, 족보에 대 설명이 있다. 또 왕대별 목록과 별 목록, 다운로드 서비스가 있어 리게 사용 수 있다. 문의 국중앙연구원 고문서연구실 ☎ 031-730-8840 본원은 2월 14일 수요일 오 1시, 본원 강당에 서 제5기 왕릉제 전문과정 교육 개강을 였다. 이 교육은 그동안 본원에서 배출 전수교육 수료 자를 대상으로, 연 60여 에 걸쳐 봉는 왕릉 제의 주요 제관교육으로써 왕릉제 창과 독 축, 제 의주 분석에 관 내용이다. 전문과정 교 육은 4월 27일까지 12에 걸쳐 매주 수요일마다 진되며 이론과 실습교육, 장교육이 께 이루 어진다. 본원은 1월 30일부 31일까지 2017년도 사업 및 결산 감사를 실시다. 병진‧경 감사는 종약 원, 종묘제례보존, 사직대제보존의 사업 및 결 산서, 명구 감사는 이장의 사업 및 결산서 를 감사다. 대구시지원(지원장 鍾達)은 1월 13일 지원 의 실에서 신년교례 및 이사를 개최다. 이날 지원 고문 및 각구 분원장과 종친 등 70여 명이 참석 가운데 숭조돈종 정신으로 는 루 를 보냈다. <대구광역시지원>


李花 268 7 경기도지원, 제40 정기총 개최 경기 고양시분원, 2017년 송년 개최 익안대군 경남지, 정기총 개최 경기도지원(지원장 琓善)은 지난 2월 8일 오전 11시 수원시에 소재 J.마리스 웨딩에서 대의원 145명이 참석 가운데 2018년도 제40 정기총 를 개최다. 이날 총에서는 그 동안 분원동 에 공이 많은 수원달구, 양주시, 이천시 전분원 장에게 대동종약원 이사장의 창가 수여되었으 며, 2017년 경기도지원 체육대 개최에 공이 많 은 여주시분원 청년장과 여성장에게는 경기도 지원장의 창장이 수여되었다. , 임기가 만료(2018.2.28)되는 제15대 지원장에는 완선 지원장이 재선임되었다. 재선임 된 완선 지원장은 2000년부 경기도지원장으로 재임는 동안 전주이씨경기대관 발간, 지원 사무실 구입, 시.도지원장의를 창립는 등 종사발전에 많은 기여를 왔다. <경기도지원 명예기자 이장덕> 경기 고양시분원(분원장 忠九)은 2017년 12월 21일 목요일 오전 11시, 170명이 참석 가운데 송년를 개최다. <경기 고양시분원> 익안대군 경남지(장 原純)는 2017년 12월 23일 오전 11시, 경남지원 사무실에서 20명이 참 석 가운데 제35 정기총를 개최다.


8 李花 268 장금 기 종친(2017. 12. 11 ~ 18. 2. 10) 제102 이사(2018. 2. 7) 1.24 도군종 2.7 선성군종 2.7 양녕대군종중.지덕사 기일자 기자 금액 비고 17. 12. 22 (鎬鉉, 덕원 17) 500,000 종 이사 17. 12. 23 진(和鎭, 령 16) 20,000 18. 01. 13 종배(鍾培, 익녕 18) 50,000 본원 재정부위원 18. 01. 27 진(和鎭, 령 16) 20,000 18. 02. 07 종(鍾憲, 임영 16) 1,000,000 장 이사 재단법인 이장 ◎ 의 안 ․ 2017년도 사업보고 및 결산 승인 ․ 2018년도 1기 장생 선발 ․ 임원 개선 본원 방문 (승경원 성금 기)


李花 268 9 和植 종친, 병대 전우에서 봉사 海雲 종친, 경부장관 창 수상 龍煥 종친, 육군 대령 진급 正雄 익산시분원장, 시고충처리위원장 선임 영광의 얼굴 정웅(正雄, 세종/의군 14대손) 종친은 구 이리분원 총무, 의군 종 감사 등 15년 종사에 봉사다가 2017년 5월에 구 이리분원(이리 시)와 구 익산분원(익산군)이 된 익산시분원장을 맡고 있다. 법무 부 법사랑위원, 법원 조정위원, 익산시 시민고충처리위원 위원장을 맡 는 등 사봉사 동에도 발 참여고 있다. <익산시분원> 식(和植, 종/령대군 20대손) 종친은 대민국병대 강남전우 장으로서 1월 12일 병대 제1상륙사단 부대방문 읍 지 진 장에서 봉사동을 쳤다. 식 장을 비롯 강남전우 원 15인은 배 역들의 노고를 격려고 위문으로 돼지 11마리 (약550만원상당)를 전달다. 식 종친은 본원 총무위원 겸 강남구분원 청년이사로 종사에 참여고 있다. 운(海雲, 선조/영성군 12대손) 종친은 2017년 11월 16일 건축산업대 전에서 건축사 유공자로 경부장관 창을 수상다. 운 종친은 1995 년 건축사 시에 격여 건축사사무소를 개설 , 고양시건축사 장, 경기도건축사 이사 등을 역임고 대건축사 위원으로 동 중이며 그동안 시장·도지사 창 등을 다수 수상다. 종사에는 종 총무·전례이사로 목릉봉, 장사릉봉, 광주숭모 이사로 숭 조돈종사업에 참여고 있다. <영성군종> 용(龍煥, 정종/덕천군 19대손) 종친은 1969년 생으로 육군수도사령부 100 11연대장, 72사단 전임참모장을 마치고 2월 1일 육군본부 인사사령부 복지운영과장으로 근무고 있다. 부친 철주(喆周) 종친은 충북 옥천군 덕 천군종 장 겸 옥천군 안남면분장을 맡고 있다. 용 종친은 부친과 께 2017년도 종묘대제 제관으로 봉무기도 다.


10 李花 268 喜燦 종친, 공군 소장 진급 仁哲 종친, 대자동차 부사장 취임 仁善 종친 부부, 공군 최초 비대장 생 會善 종친, 기술경영 박사 위 취득 찬(喜燦, 조/익안대군 20대손) 종친은 전조종사 소위로 임관, 비 4천시간을 돌고 작사 작전처장에서 준장 진급, 공전략작전본부 장, 제11전비단장을 역임고 1월 1일부로 소장으로 진급여 작전 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취임다. 부친 경구(敬九) 종친은 경기도 부천시분 원 고문으로 분원 발전에 봉사고 있다. <익안대군종> 인철(仁哲, 세종/수춘군 15대손) 종친은 1961년 생으로 성균관대교를 졸업고 대자동차 외감사장 부장, 주법인장 이사, 외매사업 부장 상무, 상용수출사업부장 전무를 역임고 상용사업본부장 부사장에 취임다. 인선(仁善, 종/령대군 21대손) 종친은 2017년 12월 비대장이 되며, 남인 김동우 소령과 께 공군 최초 부부 비대장이 됐다. 제5공중기동비단 258대대 이인선 소령과 제19전비단 155대대 김 동우 소령은 공사 51기로 께 격 동갑내기 부부 로 두 사람 쳐 총 3,790시간 비을 으며 2005 년 결여 슬에 1남을 두고 있다. 부친 정배(廷 培) 종친은 령빌딩 관리부장을 역임고 청권사 대의원으로 종사에 참여고 있으며 인선 소령은 정배 종친의 장녀이다. 선(會善, 세종/임영대군 21대손) 종친은 1982년 생으로 2017년 12월 성균관대교 대원에서 기술경영 박사 위를 받았다. 선 종친은 재 국리대 신기술연구원 교수로 재직중이며, 부친 성 종친은 충남 성군 광천읍분 총무이사로 종사에 참여고 있다.


李花 268 11 盾姈 종친, 공박사 위 취득 恩雨 종친, 정고시 격 廷玗 종친, 미국 육군사관교 격 在鎬 종친, 익산문원장 취임 순령(盾姈, 종/성녕대군 17대손) 종친은 1987년 생으로 2017년 12 월 11일 성균관 대교 일반대원에서 공박사(다양 스위칭 을 이용여 넓은 출력 범위를 갖는 이중 결 구조의 브릿지 LLC 공진 컨버에 관 연구) 위를 취득다. 부친도 성대에서 공박사위 를 취득였고, 성명은 상석(相錫)이고, 벤처기업인 (주) 대이사 로 재직고 있다. 은우(恩雨, 정종/선성군 19대손) 종친은 1990년생으로 서울대교 계과를 졸업고 2017년 5급정고시 재경직에 격다. 부친은 상구 (商九) 종친이다. <선성군 지방공문중> 정우(廷玗, 종/령대군 20대손) 종친은 1월 29일자로 미국 육군사 관교에 격, 입였다. 국계는 매년 20명 정도만 선발다. 봉 ‧ 영천 ‧ 의성군수를 역임고 청권사 대의원과 본원 별원원인 강웅 종 친의 손자이며, 미국 사스주 주립대 교수로 재직 중인 원재 종친의 아 들이다. <령대군 낙안군종> 재(在鎬, 조/안대군 22대손) 종친은 2017년 11월, 제7대 익산문 원 원장에 선임됐다. 재 종친은 이일여자중‧고등교 교장을 역임 고 재 대민국각자 전북지부장, 마서각 장을 맡고 있다.


12 李花 268 幸求 종친, 완주문원장 취임 惠恩 종친, 제54 세무사 시 격 東宰 洪陵봉장 동정 < 2017 종묘추대제 영녕전 1실 초관 봉무 > 구(幸求, 조/안대군 18대손) 종친은 1947년 생으로 봉동농조 장, 전국생강의 감사 및 부장, 완주군분원장을 역임고 2016년 제6대 완주문원 원장에 취임다. 은(惠恩, 종/양녕대군 17대손) 종친은 1985년 생으로 단국대교 경제과를 졸업고 제54 세무사 시에 격다. 재 세종시 세무 서에 근무고 있다. 승 종친의 따님이며 승창 본원 제2문이사의 재 당질녀이다. 洪陵봉(장 東宰, 령대군 19대손)는 대내외에 근대적 자주국가인 제국을 선언 며 대제국을 수립신 고종제와 명성 의 기신제를 봉는 단체이다. 초대 장인 종근(鍾根, 종근당 창업자, 양녕대군 20대 손) 장으로부 재 동재 장까지 신적 임원들의 조로 제을 경건 모실 수 있게 됐다. 릉봉 이동재 장은 봉장으로 봉 직면서 월 식견으로 명성 살사건 을 알리기 위 일본을 2009년부 수차례 방문여 구마모 주민들이 스스로 ‘명성 를 생각는 모임’을 결성록 여 그들이 사죄는 뜻에서 10여 년째 꾸준 기신제에 참반 도록 고 있다. 나아가 2015년에는 ‘일본직교직원’ 니시자와 기요시장 외 80여 명 이 참반여 역시 일본인으로서 사죄의 마음을 전달받아 냄으로써, 비운으로 붕어신 명성 의 을 조금이라도 위로 드리고 있다. 2017년 6월 2일부 5일까지 쿠오카, 구마모지역을 방문여 역사심지움을 개최고 국인 강제노동 생자를 위 매년 공양재를 올리고 있는 정법사(正法寺)와 명성의


李花 268 13 지원·분원 소식 지원․분원명 (지원․분원장) 수 일시 장소 참석 인원 중요의제 사 진 경기도(琓善) 40 18.2.8(목) 11:00 J.마리스웨딩 145 △예산 결산 사업계 승인 ① 경기 안양시(相鎬) 25 18.1.18(목) 18:00 시즌코리아 56 △예산 결산 사업계 승인 ② 종·봉 소식 종․봉명 (종․봉장) 수 일시 장소 참석 인원 중요의제 사 진 온녕군종(紀台) 31 18.1.31(수) 11:00 본원 강당 90 △2017년 결산 △신임장(紀赫) 취임 ③ 경명군종(榮九) 2018 18.2.25(일) 11:00 국일관 112 △예산 결산 사업계 승인 ④ 洪陵봉(東宰) 2017 17.12.28(목) 11:00 시 과림동 28 △예산 결산 사업계 승인 ⑤ 제봉 廟壇陵 園號墓 尊 號 日 時 場 所 在位者 主 管 祭 官 名 사진 자료 初獻官 監 察 亞獻官 贊 者 終獻官 大 祝 典祀官 陵 司 祝 史 齋 郞 執尊者 執事者 謁者 解說 洪陵 高宗太皇帝 1.21 정오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350 릉봉 (장 東宰) 皇嗣孫 富烈 閔永基 景用 羲天 福用 鎬稷 起先 根洙 杓儀 讚浩 起勳 道宰 光杓 ⑥ 溫陵 端敬王后 慎氏 (中宗大王妃) 1.23 정오 경기도 양주시 일영리 216 온릉봉 (장 有燮) 李成浩 政柱 慎鏞成 富鎔 雲圭 鍾品 錫泳 熙奭 昌圭 鍾德 益柱 光泳 道宰 義基 ⑦ 宣陵 成宗大王 2.9 정오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361 선순릉봉 (장 錫雨) 근우 달 윤용 명승 준구 우 수 수 승구 진우 도 용우 동성 ⑧ 릉제 : 집례 鎔太 , 찬례 商訓, 집준 廷傑, 근시 揆敦‧ 龍宰 이보 정기구독 기간이 금번 (권 제268)로 만료되는 종친에게는, 별도로 지로용지를 첨부여 보내드립니 다. 지로용지에 정 주소와 성을 기재시고, 1년 청독료 1만원을 가까운 은이나 우체국으로 납부여 주시기 바랍니다. 문의 (사)전주이씨대동종약원 문부 (02)765-2124 관음보살을 세워 지고 있는 절신원(節信院)을 사손 외 15명의 방문단을 이끌고 장을 답 사으로써 ‧일 양국 우교류를 돈독 는 등 봉에 공는 업적을 높이 가 수 있다. 또 2017년 종묘추대제 영녕전 제1실 초관에 봉무을써 면류관을 쓰는 영애를 안아 릉봉를 더욱 빛내주었다. <릉봉 제공>


14 李花 268 ①경기도지원 ②경기 안양시분원 ③온녕군종 ④경명군종 ⑤릉봉 ⑥릉제 ⑦온릉제 ⑧선릉제


李花 268 15 본 원 제 57 정 기 총 지원별 성명(직위) 서울 在福(부지원장), 殷達(지원 감사), 成洙(지원 조직이사) 부산 尙玟(지원 조직이사), 永植(동래‧연제구분원장) 대구 在煥(부지원장) 인천 永九(지원 조직이사) 대전 수상자 없음 경기도 永孝(前달구분원장), 德耆(前양주시분원장), 鍾龍(前이천시분원장), 永鎭(前가군분원장) 강원도 南淵(前동시분원장), 起宰(지원 청년이사) 충청북도 揆三(前영동군분원장), 娍憲(지원 부녀이사) 세종충남 亨周(前지원 감사), 萬善(前안군분원장) 전라북도 虎淵(지원 총무이사), 正雄(익산시분원장) <수상자 명단> ■ 단체상 수상자 구 분 단 체 명 대자 창(원기) 경상북도지원 李碩泰 '' 서울별시 동작구분원 李錫奉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분원 李尙龍 '' 대전광역시 동구분원 李文濟 '' 도군종 李春成 '' 이성군종 李銀珩 '' 무산군종 李健雨 '' 영성군종 李昌鎔 '' 소세자종 李寬基 ■ 개인 수상자 구 분 소속 및 직위 수상자 공로 경남지원 前 지원장 李秀煥 감사 남양주시문원 원장 이보긍 〃 세종대왕유적관리소 소장 류근식 〃 압구정동장 李鎬鉉 〃 조선왕릉 융릉관리소 소장 고재술 〃 종묘관리소 주무관 이준 창 서울시지원 제1문이사 李昌榮 〃 수원시청년연 장 李鍾泰 상 서울 강북구분원 분원장 李光宰 ■ 지원 ․ 봉 ․ 각부별 개인 수상자 지원별 성명(직위) 광주전남 應萬(나주시분원장), 斗宰(이 자문위원), 春根(순천분원 원원) 경상북도 수상자 없음 경상남도 基炫(부지원장), 福貴(지원 이사), 重鐵(양산시분원장) 제주도 相喆(지원 재무이사) 봉 斗衍(선·순릉 부장), 元周(永陵 前장), 永杓(융릉 총무이사), 秀昌(소령원·수길원 前장), 文源(수경원 총무이사) 각부 위원 厚俊(총무위원), 德榮(재정위원), 文燮(문 1위원), 寬周(전례위원), 根洙(전례위원), 承允(전례위원), 龍宰(제무위원), 宰丞(제무 위원), 忠根(제복위원), 哲順(제복위원), 鎬 洛 ( 조 직 1 위 원 ) , 康 夫 (조 직 2 위 원 ) , 鍾大(청년위원), 海昌(청년위원), 長德(여성 위원), 京彔(종묘제례이수자), 珖周(사직대 제이수자) ※ 지원별 개인수상자는 지원 정기총 시 수여 . <2018년도 1기 장생 명단> ■ 대생 : 16명 지 역 성 명 교 ․ 과 서 울 李有美(령20) 건국대교 국어국문과 부 산 李柔林(령18) 부경대교 인쇄정보공과 부 산 李綵潾(성녕21) 동영대교 경영과 대 구 李誠陳(령19) 명지대교 미술사과 인 천 李廷胤(령20) 세대교 공연예술과 대 전 李銀兮(익녕19) 우송대교 스마IT보안전공 경 기 李賢智(령23) 연세대교 과 강 원 李亨殷(덕천17) 경대교 조소과 충 북 李侑珍(령21) 건국대교 컴공과 충 남 李炳旻(양녕18) 뉴욕대교 부동산과 전 북 李受貞(익안21) 전주비전대교 권도체육과 광 주 전 남 李民宙(수춘17) 세종대교 에너지자원공과 경 북 李東訓(온녕20) 울산대교 산업경영공과 경 남 李弘揆(령21) 경상대교 약과 종 李鍾旭(덕양16) 연세대교 기계공과 본 원 李正浩 광운대교 법부


16 李花 268 2018년도 사업계 ■ 고등생 : 4명 성 명 교 비고 任裕眞 서울여자상업고등교 종묘대제 취대 참여 李枝姸 서울여자상업고등교 ″ 黃시온 서울여자상업고등교 ″ 李佑之 덕성여자고등교 본원 1. 총무부 가. 각종 의 개최 1) 정기총(연 1) 2) 이사(연 2~3) 3) 상임이사(연 11) 4) 지원 총무이사․사무국장 의(연 1) 5) 기 위원 의(연 1~2) 나. 재산관리(이관 등) 유지보수에 관 사 다. 인준장 및 상 발급에 관 사 라. 사손에 관 사 마. 이장 운영에 관 사 바. 원(기업인돈종)에 관 사 사. 승경원 건립에 관 사 2. 재정부 가. 예산에 관 사 나. 수입 증대 방안 모색 다. 정부 및 지방 자치단체 보조금 계속지 원 추진 3. 제1문부 가. 문위원 집의(연 6) 나. 이보 및 각종 간물의 찬 발간 1) 이보 찬 발 가의 개최 2) 조선의 정치․외교․국방․사․교육․ 술 및 문․예술 자료 게재 3) 기 간물 발간 다. 술위원 총 개최 및 운영 1) 총개최 2) 교양강좌 3) 술위원 원등록 및 수첩 발간 4) 조선왕조 역사관 정립 라. 예체능위원 운영 1) 미술위원 정기총 및 이미술 전시 개최 ◦정기총 개최 ◦이미술전시 개최 2) 연예계 종친 발굴, 조직 마. 조선왕조 체교 개설 운영 ※ 간물 발간 계 간물명 발간 예정일 부 수 배부 단가 비 고 이 보 연 6 매 7,000부 2,000원 (1년 10,000원) 신년 10,000부 수 첩 2018년 1월 5,000부 2,000원 4. 제2문부 가. 문사업 1) 각종 간물 보급 대 2) 이보 보급 대 3) 이보에 사업광고 게재 권장 4) 종묘제례 보첩, 전주이씨과거급제 자총람, 전주이씨대동종약원 50년 사, 금석록, 조선사전별의궤, 선원 계보기략 보급 대 5) 인넷 이지 관리 ◦이지 업데이 및 유지보수 -스마 용자를 위 보강 작업 등 ◦온라인 원의 성를 위 정


李花 268 17 기적인 정보제공 - 월 1 메일링서비스 시 ◦이지 배너광고 이용 장려 ◦지원, 분원, 종 이지 제작 및 관리 ◦원관리로그램 제작 및 관리 나. 보동 ◦종약원에서 추진는 사업의 대외 보 등 5. 전례부(종묘제례 및 사직대제보존) 가. 각종 의 개최 1) 보존 전승자(보유자, 조교, 이수 자, 전수자) 의(연 3~4) 2) 봉장 의 개최(연 2) 나. 세계문유산(중요무문재 제56 및 제1) “종묘대제 봉” 1) 종묘 춘대제 봉 : 매년 5월 첫 째 일요일(2018. 5. 6) ◦2018. 5. 5() 09:00~16:00 습의(정전, 영녕전) ◦2018. 5. 6(일) 10:00~12:00 영녕전 제(150명) ◦2018. 5. 6(일) 11:00~12:00 어가렬(900명, 서울시 원) - 구 간 : 광문 → 세종로 4거 리 → 종로 1․2․3가 → 종묘 ◦2018. 5. 6(일) 14:00~16:30 정전 제(180명) - 신관례 → 전례 → 진 찬 → 초례 → 아례 → 종례 → 음복례 → 철변두 → 송 신 → 망 료 ※ 문재청(국문재재단) 원 제 2) 종묘 추대제 봉 : 매년 11월 첫째 요일(2018. 11. 3) ◦2018. 11. 2(금) 09:00~16:00 습의(정전, 영녕전) ◦2018. 11. 3() 10:00~12:00 영녕전 제(150명) ◦2018. 11. 3() 13:30~16:00 정전 제(180명) - 신관례 → 전례 → 진 찬 → 초례 → 아례 → 종례 → 음복례 → 철변두 → 송 신 → 망 료 ※문재청 원 본원 제 다. 구대제 봉 : 매년 10월 둘째 요일 (2018. 10. 13) 1) 출연인원 : 제관 61명, 봉위원 250명 등 2) 제순서 ◦신관례 → 전 → 진 찬 → 초 례 → 아례 → 종례 → 음 복례 → 철변두 → 송 신 → 망 료 라. 단․능․원․묘 제 봉 (66) 1) 시조 제 “조경단대제” : 4. 10() 2) 조고제 제 “건원릉 친례” : 6. 27(수) ◦출연인원 : 어가렬 120명, 제관 20명, 봉위원 250명 등 ◦제순서 : 어가렬 → 초례 → 아례 → 종례 → 망 료 ◦원 : 문재청 3) 능(46곳), 원(10곳), 묘(5곳), 조경묘․ 경기전(2곳), 선은전(1곳) 등 제 : 64


18 李花 268 ◦각 봉에서 주관 봉 ◦원 : 문재청 ※ 2018년도 묘․단․능․궁․전․원․묘 제 일 일람 : 본보 267 참조 마. 중요무문제 제111 “사직대제 봉 및 어가렬” 거 : 매년 9월 셋째 요일 (2018. 9. 15, 금년에 ) 1) 2018. 9. 14(금) 09:00~16:00 습의(사직단) 2) 2018. 9. 15() 11:00~11:50 어가렬(500명) ◦구 간 : 덕수궁 → 광문 4거리 → 사직로 → 사직단 3) 2018. 9. 15() 12:00~13:30 사직대제(국고 증액시 야간봉) - 영신례 → 전례 → 천조례 → 초례 → 아례 → 종례 → 음복례 → 철변두 → 송 신 → 망료례 ※원 : 문재청, 서울별시, 종로구청 바. 제왕의 사친을 모신 사당 “칠궁제” : 10월 넷째 월요일 (10. 22) ◦출연인원 : 제관 61명, 봉위원 250명 등 ◦제순서 : 신관례 → 전 → 진 찬 → 초례 → 아례 → 종례 → 음복례 → 철변두 → 송 신 → 망 료 사. 전수교육 및 전승장비 제작 1) 전수교육(종 11기) 실시 교육기간 대상자 인원 교육 내용 2018년 4~11월 추천 종친 60 ∘종묘대제 ∘사직대제 ∘구대제 ∘왕릉 제 2) 종묘 전수교육(이수자, 전수교육생) 실시 교육기간 대상자 인원 교육 내용 2018년 2~12월 이수자 전수교육생 115 ∘전수 교육 및 실무 교육 ∘위원 단대 3) 사직 전수교육(이수자, 전수교육생) 실시 교육기간 대상자 인원 교육 내용 2018년 2~12월 이수자 전수교육생 48 ∘전수 교육 및 실무 교육 ∘위원 단대 4) 왕릉제 전문과정(제5기) 교육기간 대상자 인원 교육 내용 2018년 1~4월 전수교육 수료생 30 ∘집례 및 대축 실무 -창 및 독축 -예의사, 찬자 5) 전승장비 제작․관리 ◦종묘대제 구 분 전승 장비 수 량 제기, 복식, 기물 수선 및 정리 395개 종묘대제 영상 자료 및 CD 1조 어가렬 복식(291) 및 대도구(4조) 외 수선 333개 교재 종묘대제 500부 ◦사직대제 구 분 전승장비 수 량 제상 제상(대) 16조 교재 사직대제 500부


李花 268 19 아. 보사 상담(예능보유자 및 전례담당 이사) 자. 세계유산 종묘 내 제기, 어보, 어책 등의 복제을 연차적으로 제작․비치 촉구(문재청) 차. 정부 및 지방 자치단체 등 외부사 지원 추진 카. 조선왕조 관련 의궤 및 각 능지 등 고문서 복제 비치 . 왕릉 내 수라간 ․ 수복방 복원 촉구 (문재청) 7. 제1조직부 가. 지원장 및 지원 조직이사 의(연 1~2) 나. 지원, 분원 정기총 개최 ◦지원, 분원 정기총는 연 1 상반 기에 개최고, 예정보고는 1주일 전에, 결과 보고는 2주일 이내에 지원을 경유 본원에 보 고(보고기일 엄수) 다. 각 지원, 분원은 본원 정관 및 각종 규 정을 준수록 계도 라. 지원, 분원 성 추진 마. 지원, 분원 원원등록 악 및 명 부 비치 8. 제2조직부 가. 종장 의(연 1~2) 나. 종 정기총 개최 ◦종 정기총는 연 1 개최고, 예정보고는 1주일 전에, 결과보고는 2주일 이내에 본원에 보고 다. 별원원 등록 권장 1) 자격 및 전 : 별원원은 20만원 이상 비를 납부 원(만19세 이상의 남․ 여)으로, 본원 각종 사의 안내와 원보의 무 료배부, 그리고 본원 대의원 자격을 추천 받 을 수 있다. 2) 목인원 : 50명 3) 연비 : 3만원 이상(연비는 가입 익년부 납부다.) 별원원 연비 납부 인원을 배가 다. 4) 본원 임원을 비롯여 고문, 자문위 원, 각 부 위원과 지원장, 분원장, 종장, 봉장 전원을 별원 원에 가입록 권장 라. 원원등록 악 마. 본원 정관 및 각종 규정을 준수록 계도 9. 청년부 가. 지원, 분원 청년이사 의 개최(연 1) 나. 청년부 미조직 지원, 분원 조직 강 다. 지원, 분원 청년부 연수 및 교양강좌 라. 본원 주관 제 및 각종 사 참석 지원 : 경 업무 10. 여성부 가. 지원, 분원 여성이사 의 개최(연 1) 나. 지원, 분원별 여성부 조직 강 다. 지원, 분원 여성부 연수 및 교양강좌 라. 본원 주관 제 및 각종 사 참석 지원 : 봉사 업무


20 李花 268 종묘제례악에 대 상고(詳考) 이병준(李炳俊) 본원 문부 위원 국립국악원이 지난 2월 2~3일 창동계올 림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며 역대 최대 규모의 종묘제례악(祭禮樂) 공연을 쳤다. 종묘제례악이란 국가무문재 제1이자 유네스코에도 등재된 세계인류무문유산 이다. 조선왕조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神 主‧죽은 사람의 위)를 모신 사당인 ‘종묘’에 서 그들을 기리는 제사인 종묘제례 를 지 낼 때 연주 음악과 춤을 가리다. 이런 문예술이 지금까지 전지는 데는 세종대 왕과 박연이 역을 다. “임금이 음률에 밝아 새로운 음악은 모두 임금이 만든 것인데, 막대기로 땅을 치면서 룻저녁에 음악을 만들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31년(1449년) 12월에 나오는 기록이다. 세종은 음악에 조예가 깊 었는데, 왕자시설부 비와 거문고를 잘 다뤄 인 양녕대군을 가르쳐줄 정도였다. 세종은 여민락(與民樂)‧정대업(定大業)‧보 (保太平) 등을 작곡는데, 모두 악을 변 만들었다. 백성이 께 즐기자는 뜻의 여민락은 ‘용비어천가’ 일부 대목을 가사로 삼은 곡으로 임금이 나들이 때 사용다. 보과 정대업은 종묘제례악으로 채됐 다. 또 음의 높이와 길이를 나낸 악보인 ‘정간보’도 만들었는데 이는 동양 최초라고 다. ◇ 박연의 재능 알아본 임금 조선 제3대 임금 종 때인 1418년, 당시 왕세자 교육을 담당던 관청으로 세자 시강 원(侍講院)이 있었다. 왕세자에게 유(유교) 과 역사를 가르치는 임무를 담당는데, 그 중 박연이란 인물도 있었다. 박연은 1411년 문과(文科)에 격 집전(문연구기관)과 사간원(언론기관)‧사부(감찰기관) 등을 거쳐 세자시강원에 근무고 있었다. 박연은 문이 뛰어나 세자에게 글을 가르 치는 스승이 되었지만 어려서부 음악적 재


李花 268 21 능도 매우 뛰어났다. 가야금, 거문고, 장구, 북, 아쟁 등 여러 악기를 다룰 수 있었고, 리를 손에서 놓지 않을 정도로 잘 불었 다. 지만 당시 음악적 재능은 관료로서 성 공는데 도움이 되는 기는 아니었다. 박연의 재능을 알아본 세자가 그 8월에 왕위에 올랐는데, 바로 세종대왕이다. 세종은 박연을 국가의 제사와 시(왕‧왕비나 식 높은 선비가 죽은 뒤 받는 이름)에 관 일 을 맡아보던 관청인 봉사시의 관에 임명 면서, 음악에 관 일을 처리는 관청인 악 의 악별좌에 임명다. 박연의 음악적 능력을 그대로 두기 아깝다고 생각 거다. 당시 세종은 새 나라 조선을 예절과 음악이 조를 이루는 유교적 이상 국가로 만들려는 뜻을 고 있었다. ◇ 악 대신 아악으로 일다 세종은 박연에게 궁중 내 사나 국가의 중요 사에 공식적으로 쓸 악기와 음악을 정리라고 지시다. 당시 궁중음악은 신라 시대부 전 내려오던 우리 전 음악인 악(鄕樂)과 당나라의 당악(唐樂), 송나라 때 전진 아악(雅樂) 등이 섞여 있었고, 요에 따라 그때그때 다른 음악을 연주고 있었 다. 박연은 세종의 명을 받들어 악 등 기존 음악을 악보로 정리‧찬고 이를 제대로 연 주 수 있는 악기를 만들고 개조다. 음의 높이를 정게 정 12개 율관(律管)을 만 들고, 그 율관을 궁중악기의 꽃이라 불 리는 악기인 ‘경(編磬)’도 만들어 냈다. 또 각 악기의 음을 모두 정게 조율 궁중음악을 연주 수 있도록 뒤, 악 중심이었던 궁중음악을 아악 중심으로 정리 서 연주고자 다. 공자의 위를 모신 사당에서 제사를 지낼 때 쓰는 음악인 ‘문묘 제례악’은 아악을 중심으로 정리고, 종묘제 례악에도 아악을 연주도록 다. 어느 날 종묘제례를 마치고 돌아온 세종이 이조서 조에게 물었다. “우리나라는 본디 악에 익숙데, 종묘의 제사에서 아악을 먼저 연주고 마지막 부분 에 이르러서야 겨우 악을 연주고 있다. 조상 어른들이 상시 들으시던 악을 연주 는 것이 어떠가?” 이처럼 세종은 궁중음악에 악을 쓰는 것 이 좋겠다는 생각을 다. 지만 박연은 ‘궁 중음악으로는 악보다 아악이 좋다’는 상소 를 올렸고, 세종은 이 같은 의견을 받아들여 궁중음악을 아악으로 일고 개도록 다. 박연은 궁중음악을 아악으로 정리는 과 정에서 너무 마음을 많이 쓰다 병까지 얻었 다고 다. 그러나 치밀 고증을 거쳐 궁중 음악을 체계적으로 정리 본격적으로 아악 을 연주 수 있도록 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고유의 악곡 40여곡을 수집 이 를 악보로 정리기도 다. 이처럼 신의 천부적 재능을 알아본 임금 과,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최대 발 박 연의 노력에 입어 오늘날 종묘제례악이 세 계에서 인정받는 문유산으로 남게 된 것이 다. <종/온녕군 17대손 ‧ 始41세>


22 李花 268 <사례람> 상복도의 나인 삼상강복도(三殤降服圖)에 대 설 이승창(李承昌) 본원 제2문이사 본보 265(2017.9.10.월)에서 본종오복 도(本宗五服圖)와 삼부모복도(三父八母圖) 를 설다. 이번에서는 사례람 상복도 (喪服圖)를 설명다. 일찍 세상을 뜬[殤] 족(血族)에 대 장상(長殤) 16~19세 대공복 9월, 중상(中殤) 12~15세 소공복5월, 상 (下殤) 8~11세 시마복(緦麻服) 3월복을 입었 는데 이 세 단계를 삼상(三殤)이라 였다. 상은 20세가 안되어 죽은 자를 이른다. 자가 상복도에 관심을 두고 본종오복도· 삼부모도에 이어 이 삼상강복도(三殤降服 圖)를 국역여 설을 는 이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대사가 가른 산업사로 급 변면서 족인 씨족 관계마저도 망각되어 가는 실에서 인간의 가치와 존엄이 물질의 요속에서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인의예지 (仁義禮智)를 천성(天性)으로 규정고 제 충신(孝悌忠信)을 실천철의 덕목으로 삼아 인간의 위계질서를 세워, 그 고귀 존엄과 가치를 유지으로써 공맹(孔孟)의 유교철 이 주창 인본사상(人本思想)에서 을 위 주로 는 존엄과 가치를 살보려는 데에 있다. 인간은 만물 중에 최령(最靈) 존재이다. 그것은 공자와 맹자가 인간이 서로 배려는 예(禮)를 인간최상의 질서덕목으로 삼고 그 실을 사랑으로 감싸는 인(仁)과 일에 있어 양심을 지는 의(義)를 실천의 덕목으로 삼 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실천에 있어서는 그 친소(親疎)와 원근(遠近)의 기준이 먼저 서야 실천에 옮겨질 수가 있다. 그러므로 나 를 기준으로 가장 가까운 직계로부 소원 방계로 발전되 가깝다고 넘치고, 멀다고 못 미치는 섭섭이 없이 차서를 둔 것이 족과 인척간의 상복제도였던 것이다. 또 족인 일가간의 상복제도는 노 · 소 · 장 · 유 없이 인정과 예절에 치도 벗어나 지 않도록 차를 두어 정였다. 지금 설명 려는 이 삼상강복도는 세상에 어난 족인 사람이, 철이 들어 선악과 시비를 막 식별


李花 268 23 수 있는 나이인 8세를 최의 기준으로 여 관례의 나이에 이르지 못고 일찍 세 상을 뜬 19세까지를 세단계로 나누어 장상 (長殤) · 중상(中殤) · 상(下殤)이라 명명(命名) 서 죽은 자에 애도는 기간을 엄격게 정놓되 가능성이 있는 계를 지어놓은 것 이 놀랄 만다. 또 나도 빠뜨리지 않고 세밀게 격차를 두어 자기의 심경을 최대 기우려 수 있게 의미는 바로 친 족으로 어났던 자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 여 그와의 친소원근에 맞게 생자가 사자에 대 마지막 작별의 정례를 게 려는 것이었다. 이 얼마나 눈물겹고 진지고 아 름다운 인륜강상의 존엄 가치를 엄숙게 마무리 것인가? 아래는 족의 친소원근에 따라 어떻게 복제가 줄어지는 가를 살 볼 수 있는 삼상강복도의 석이다. 나[己]의 종조조부(從祖祖父) · 종조조고(從祖祖姑)부 차례로 석는 방식으로 였다. 1. 나[己]를 위주로 여, 위 방계(傍系)로 종조조부(從祖祖父)1) 장상(長殤)은 3월복을 입으나, 중상(中殤)은 상(下殤)을 따라 복이 없다. 종조조고(從祖祖姑 :조부의 여동생)는 장상(長殤)은 3월복을 입고 중상은 상을 따라 복이 없다.[己 : 從祖祖父 長三月 中從 下無服, 從祖祖姑 長三月 中從下無服] 1) 종조조부(從祖祖父) : 조부의 제. 옛날에는 생 산을 많이 였기 때문에 아버지의 제중에 도 맨 끝은 동생이 손자인 나보다 연령이 늦게 어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증조부가 늦 게 상처를 고 증조모를 재취였을 경우 생 리상 자녀를 얼마든지 생산 수 있으므로 장 손자인 나와 연령이 비슷 수가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삼상조(三殤條)에 만약을 위여 가능 성을 상상여 넣었을 것으로 이된다. 2. 백숙부(伯叔父)2) 장상(長殤)은 9월복을 입고 중상(中殤)은 7월간 복을 입고 상(下 殤)은 5월간 복을 입는다. 고모[姑 ; 아버지의 여동생] 장상은 9월간 복을 입고 중상 7월간 복을 입고 상은 5월동안 복을 입는다.[己 : 伯叔父 長九月 中七月 下三月, 姑 長九月 中 七月 下三月] 3. 종조부(從祖父 : 아버지의 종제, 나의 당숙) 장상 3월 중상은 상을 따라 복이 없 다. 종조고모[從祖姑:아버지의 종자매, 나의 당고모] 장상은 3월복이고 중상은 상을 따 라 복이 없다.[己 : 從祖父 長三月 中從下無 服, 從祖姑 長三月 中從下無服] 4. 제(兄弟) 장상(長殤)은 9월 중상(中殤) 은 7월 상(下殤)은 5월복이다. 자매(姉妹) 장상(長殤)은 9월 중상(中殤)은 7월 상(下 殤)은 5월복이다.[己 :兄弟 長九月 中七月 下 五月, 姉妹 長九月 中七月 下五月] 5. 종제(從父兄弟 :사촌제) 장상(長殤) 은 5월 중상(中殤)은 5월 상(下殤)은 3월복 이다. 종부자매(從父姉妹 : 사촌자매) 장상(長 殤)은 5월 중상(中殤)은 5월 상(下殤)은 3 월복이다.[己 :從父兄弟 長五月 中從上 下三 月, 從父姉妹 長五月 中從上 下三月] 6. 종조제(從祖兄弟 : 재종제) 장상(長 殤)은 3월 중상(中殤)은 상(下殤)을 따라 2) 백숙부(伯叔父) : 아버지의 제, 나의 작은 아 버지. 이도 아버지가 조을 여 18~19세에 아들을 생산고 40세에 아들을 장가들였을 경 우 아버지도 자녀를 생산고 아버지도 자녀 를 생산여 삼촌과 조카가 께 자라는 일은 얼마든지 있으므로 이상 것이 없다.


24 李花 268 복이 없다. 종조자매(從祖姉妹: 재종자매) 장 상(長殤)은 3월 중상(中殤)은 상(下殤)을 따 라 복이 없다.[己 : 從祖兄弟 長三月 中從下無 服, 從祖姉妹 長三月 中從下無服] 7. 자녀(子女) 장상(長殤)은 9월 중상(中殤) 은 7월 상(下殤)은 5월복이다.[己 : 子女 長 九月 中七月 下五月] 8. 제지자(兄弟之子 : 조카) 장상(長殤)은 9월 중상(中殤)은 7월 상(下殤)은 5월복이 다. 제지녀(兄弟之女 : 조카딸) 장상(長殤)은 9월 중상(中殤)은 7월 상(下殤)은 5월복이 다.[己 : 兄弟之子 長九月 中七月 下五月, 兄 弟之女 長九月 中七月 下五月] 9. 종부제지자(從父兄弟之子 : 당질) 장상 (長殤) 3월 중상(中殤)은 상(下殤)을 따라 복이 없다. 종부제지녀(從父兄弟之女 : 당질 녀) 장상(長殤)은 3월 중상(中殤)은 상(下 殤)을 따라 복이 없다.[己 : 從父兄弟之子 長 三月 中從下無服, 從父兄弟之女 長三月 中從 下無服] 10. 손자[孫] 적손(嫡孫) 장상(長殤)은 9월 중상(中殤)은 7월 상(下殤)은 5월복이며, 중손(衆孫) 장상(長殤)은 5월 중상(中殤) 5월 상(下殤)은 3월복이다.<손녀는 아마도 중손 을 따를 것이다.>[己 : 孫 嫡孫 長九月 中七 月 下五月, 衆孫 長五月 中從上 下三月,孫女 恐從衆孫] 11. 제지손(兄弟之孫 : 종손자) 장상(長殤) 은 3월 중상(中殤)은 상(下殤)을 따라 복이 없다. 제지손녀(兄弟之孫女 : 종손녀) 장상 (長殤)은 3월 중상(中殤)은 상(下殤)을 따라 복이 없다.[己 : 兄弟之孫 長三月 中從下無服, 兄弟之孫女 長三月 中從下無服] 12. 적증손과 손(嫡曾孫 · 玄孫) 장상(長 殤)은 9월 중상(中殤)은 5월 상(下殤)은 5 월복이다.<증 · 손녀는 장상(長殤)은 삼월, 중상(中殤)은 상(下殤)을 따라 무복(無服)일 듯다.>[己 : 嫡曾玄孫 長九月 中七月 下五 月,<曾玄孫女 恐長三月 中從下無服矣>] 대공친(大功親)3)의 상(殤)은 중상(中殤)이 위의 장상(長殤)을 따라 5월복을 입고 자최 (齊衰)의 상(殤)도 중상(中殤)이 장상의 복을 따르며, 소공친(小功親)의 상(殤)은 중상(中 殤)이 상(下殤)을 따른다. 이는 남자[丈夫] 가 일찍 죽은 자[殤者]를 위여 입는 복이 다. 자최(齊衰 : 거친 삼베로 지은 아랫단을 상복)의 상(殤)은 중상(中殤)이 장상(長殤)을 따르고 대공(大功)의 상(殤)은 중상(中殤)이 상(下殤)을 따른다. 소공의 상(殤)도 중상은 상을 따른다. 이는 아내[妻]가 남집안 [夫黨]의 일찍 죽은 자[殤者]를 위여 입는 복이다. <종/양녕대군 16대손 ‧ 始40세> 3) 대공(大功)은 9개월간 입는 복제(服制)이고, 대 공친(大功親)은 종제·자매·중자부·중손·중질녀· 질부와 남의 조부모, 남의 백숙부모, 질부 들의 겨레붙이의 총칭이며, 소공(小功)은 5개월 간 입는 복제로 종조부모(종조부모 : 당숙) 등 소공친(小功親)의 상사(喪事)에 입는 복제(服制) 이며, 세마(細麻)는 3개월간 입는 복제로 종증 조(從曾祖) 등 세마복친에 입는 복을 말다. 자최(齊衰)는 주로 방계(傍系)의 복을 말고, 참최(斬衰)는 주로 직계(直系)의 복을 말다.


李花 268 25 오주연문장전산고를 읽고 이경규 선생의 실과 개사상을 생각다 성 이용규(星軒 李鎔奎) 본원 고문/前 서울문사장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19세기 우리의 역사는 세도정치와 외척세 력의 권력 독점으로 인여 생 삼정의 문란(三政紊亂) 등으로 백성들의 생은 곤궁 져서 이로 인 민란이 자주 일어나는 시 기였다. 그러나 정치, 사적으로는 이러 상이 일어났지만 18세기 이 미던 실 과 북의 름이 완전 사라진 것은 아 니었다. 19세기 조선사는 내부적으로 축적된 문적 성과와 청나라 고증(考證學)의 영과 사경제적 모순에 대응고자 새로운 사상 적 의 문과 사상적 측면에는 저 성과를 보인 시기였다. 양란 이 주자 성리(朱子性理學)만을 고집지 않고 국가 의 치나 민생에 요 모든 문 분야를 괄는 박(博學)의 조가 사상계의 일단 을 성고 이러 름들이 지속되면서 다 양 이 일어났다. 최기(崔漢綺)의 <명 남루총서(明南樓叢書)>, 이유원(李裕元)의 <임기(林下筆記)>등과 께 <오주연문장 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는 19세기를 대 는 실 백과사전적 저술이었다. 이규경(李圭景) 선생은 정종대왕의 15남인 무림군(茂林君)의 손으로, 는 ‘오주(五洲)’ 이다. 즉 ‘五大洋 六大洲’에서 따온 것으로 세기 앞서간 이규경의 열린 사고를 깊이 이게 된다. 그의 조부는 정조대 규장각 검서관(檢書官)


26 李花 268 으로 문명을 떨친 청관장 이덕무(李德懋) 선 생이었고, 아버지 이광규(李光葵) 역시 규장 각 검서관이었다. 따라서 이규경 선생은 어 려서부 문에 눈을 뜰 수 있었지만, 서얼 이라는 신분적 굴레 때문에 중앙의 정계에서 는 약지 못고 재야에 은거면서 자신 의 문을 정리였다. 그러나 재야의 은둔 자가 아니라 신문(新學問)의 수용에 언제나 민감였고, 동시대를 살면서 같은 처지에 있었던 중인 자인 최기(崔漢綺), 최성 (崔星煥), 김정(金正浩)와의 교류를 문의 지을 넓 나갔다. 최기는 <국도지(海國圖志)>, <영지 략> 등 당시 서양에 대 정보를 제공 주 던 최신 서적을 이규경에게 보여 주었으며, 최성은 지리에 박여 <여도비지(輿圖 備志)>를 찬였다. 이규경은 <대동여지 도>의 제작자 김정의 뛰어난 능력을 칭송 여 그의 <여지도>와 <방여고> 2책은 꼭 전만 것으로 가 만 친분이 두 운 사이였다. 이규경의 문 성에는 신문인 청나라 고증의 수용과 최기, 최성, 김정와 같은 자와의 교류를 얻은 지리과 지도 지식 이외에 조선사 내부에서 꾸준 계승되어온 백과사전적 이 몫을 였 다. 이수광(李睟光)의 <지봉유설(芝峯類說)>, 이익(李瀷)의 <성사설(星湖僿說)>, 이덕무 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등은 이규경 선생의 <오주연문장전산고>의 저술에 게 참고가 되었다. <오주연문장전산고>는 총 60권 60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책 이름 중에 ‘五洲’라는 자산의 에, ‘연문(衍文)’은 겸손을 뜻여 거친 문장, 그리고 문장를 ‘장전(長箋)’으 로, 그리고 어진 원고라는 ‘산고(散稿)’를 쳐진 말이라고 석면 된다고 본다. 그 리고 목마다 변증설로 처리여 자세 문 제까지 고증적으로 설명 것이 징이다. 고증을 원칙으로 되 저자의 주관적 견가 력된 변증설의 식을 취였다. 이규경 선생은 서문(序文)에서 “명물도수 (名物度數)의 문이 성명의리지(性命義理 之學)에는 미치지 못나 가 수 없다” 고 면서 병법·광물·초목·어충·의·농업· 등 그야말로 만물에 이르는 다양 문 의 중요성을 강조였는데, 그는 서양 세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용기변증성(用氣 辨證說)’을 위시여 ‘백인(白人)’, ‘지구(地 球)’, ‘척사교(斥邪敎)’ 등 각 분야의 변증설저 술에서 구체적으로 지적였다. 그가 지적 변증설 중 약 80목에 걸쳐 서(西學:천주교)을 직·간접적으로 논였다. 그가 변증 서관련 목은 천문, 역산, 수 , 의약, 종교 등 다방면에 관 것으로 서 관련 서적들은 마오 리치(Ricci,M.)의 <천주실의(天主實義)>, 알레니(G. Aleni)의 <직방외기(職方外紀)>를 위시여 근 20종에 달였다. 이규경 선생은 서양과 중국의 문명을 비교 여 중국의 문은 이상(形而上學)의 도 (道)로, 서양의 문은 이(形而下學)의 기(器)로 대비시고 기(器)를 잘 이용 서 양기술의 우수성을 인정였으며, 서양과 기술이 중국의 과기술보다 우위에 있음을 인정면서도 동양사의 과적 전을 중 시였다. 그 이유는 전사상의 바 위에 서 부강 국가를 위서는 요 모든 것


李花 268 27 본원에서는 문재청과 의여 각 능을 참배고자 는 종친들께 무료입장(종묘 및 왕릉)의 의를 제공(무일 제외)고 있으니 참반을 원는 단체는 반드시 7일 전에 본 원 전례부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4대궁의 무료 단체 참반은 실시지 않습니다. 〓 종묘 및 각 능의 무일과 입장 시간 〓 ▣ 월요일 무는 곳 각 능 06:00 ~ 16:30 ▣ 요일 무는 곳 종 묘 09:00 ~ 16:30 참반일자 단체명(인솔자) 인원 장소 2.24() 충북 음성군 대소면분(건용) 30 융건릉 을 수용려는 그의 사상적 개방성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는 이러 동도서기(東道西器) 사상의 바에서 개국상을 주장였다. 이규경 선생은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생 을 농촌에 은거였는데, (學統)상으로는 북와 연결되고 있었으나 자신이 농촌에 기반을 둔 지식인이었기에 농민의 생안정 과 농촌문제의 결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선비라도 먹지 않고는 살 수가 없음을 들 어 무엇보다 농업이 생명의 근본임을 강조 였다. 농가월령(農家月令)에 대 변증설과 구식물로서 고구마의 중요성을 언급 ‘북 저변증설(北藷辨證說)’을 비롯여, 농구(農 具)와 직조(織造), 어구(漁具) 등 농어민의 실 생과 관련된 사실들을 고증기도 였지 만 이규경의 사상적 지점은 무엇보다 부국 과 상에 있었다. 우리 국에 소장되어 있는 자원을 최대 용고 잠재되어 있는 문적 역량을 최대 용여 잘 살고 선진적 국가지을 고자 는 것이 이규경의 사상이었다. 이러 입장은 도량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의 유용성을 진는 것으로 나나기 도 고, 시장의 유래와 기능을 소개 것에 서 출발여 개국상론(開國通商論) 주장으 로 이어지기도 다. ‘장시(場市)변증설’에서는 전국의 장날을 일 것을 주장고 기와 고리대금의 단 이 없는 상업의 발달을 추구였으며, 서양 과 중국과 교를 야 다는 주장, 서양의 선박들과 무역을 야 다는 주장 등을 서 서양과의 적극적인 개국상론을 주장 였다. 18세기 반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 등 북 자들 의 주장에서 일부 전개되었던 서수용과 대 외개방의 전진적인 역사 인식이 19세기 중엽 이규경, 최기에 의 이어지고 있었던 것 이다. 그리고 이들의 사상은 19세기 중, 반 역 매(亦梅) 오경석(吳慶錫), 대치(大癡) 유기 (劉鴻基), 재(瓛齋) 박규수(朴珪壽)로 이어 지면서 초기 개사상의 대가 되었다. 이 러 측면에서 본다면 이규경 선생은 18세기 북와 19세기 반 개사상을 연결시켜 주는 지점에 있었던 자로 가 수가 있 는 위대 자였다. <정종/덕천군 19대손 ‧ 始43세>


28 李花 268 당신과 께라면 이진우 길병원 원무과 그대와 마주는 내가 싫다면 내 그대의 뒤에 소리 없이 서리다. 당신이 그것마저 락치 않는다면 내 그대의 금빛 그림자 속으로 뛰어들겠 소. 그 속에서 어나지 못고 숨이 막다 도 우적대지 않으리오. 그대 곁에 영원 남을 수 있도록 그대의 그림자 속으로 침몰리니. 그대, 가라앉는 내게 손 내밀지 않아도 좋으 니 나는 그저 줌 부처럼 그대의 그림자 속 을 떠도는 류자라도 좋겠소. 그대 내 마음이 짐이 된다면 내 그대 마음의 짐으로 예수보다 더 십자가를 매고 기꺼운 마음으로 골고다 언덕을 오르리다. 그대는 그저 는 목줄기 씻어줄 청량 물 그릇만 내어주면 된다오. 그리여 그대 천상에서 게 웃음 지을 수 있다면 그대 내 신앙의 으로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린들 웃지 않을 수 있 겠소. 그대 내 사랑이 죄가 된다면 내 그대 내 사랑으로 빼곡 창살을 세우고 기쁜 마음으로 른 죄수복을 입으리다. 그대는 그저 지울 수 없는 사랑의 죄인에게


李花 268 29 작은 독방 나만 내어주면 된다오. 그리여 당신이란 감옥에 사랑이란 독방만 이 존재다면 나는 다시 어나 수감된다도 무기수가 될 거요. 내…. 그대를 위 가른 산도 오를 수 없고 가시덤불 속을 집고 나아갈 자신도 없소. 도도 뚫을 수 없고 아득 사막도 건널 수가 없소. 나 자서는 아무 것도 수 없소. 그대와 께라면, 그대를 업고서라도 나는 칼날 같은 산도 넘을 수 있고 바늘 길도 맨발로 걸을 수 있소. 성난 도도 거침없이 뚫을 수 있고 끝없는 사막은 차라리 복거요. 나…. 모든 걸 수 있으리니. 오직, 당신과 께라면 말이오. <종/온녕군 18대손· 始42세> ◇ 전 사기매 방지를 위 안내 ◇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을 사칭거나 종친의 산기관 또는 종친의 임직원인 것처럼 가장 여, 전국의 종친들께 영상물 및 책자, 가 등을 매는 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 다. 본원에서는 모든 간물과 제작물은 반드시 이보에 공지고 있고, 각 지원과 분원, 종, 봉 등을 여 보고, 또 보급고 있으며, 절대로 전를 이용여 매 위를 지 않습니다. 영상물이나 책자 구입에 대여 전 안내를 받은 종친은 반드시 종약원에 인시기 바 라며 시 그것들을 받으신 분은 발처나 발송처로 반송시어서 더 이상의 를 입는 종 친들이 없도록 당부드립니다. 전주이씨대동종약원 ☎ 02-765-2124


30 李花 268 창올림 세계 -2018 창올림 식에서이병(李丙赫) 본원 제2문부 위원 백두의 천지‧라의 백록담 나 되어 동물‧서물 얼싸안고 춤출 때 白頭大幹 오대산 두산 능선 대관령 분지 창에 세계축제 올림 쳐지도다! 17일간 양의 神 성가 冬天울 오르고 지구별 꽃 사내 으뜸 꽃 대 선수들! 수랑 ‧ 다곰 되어 빙상 빙 눈발 속 구슬 땀 리며 최선 다 작약 소과 어울림 대운동이었다. 宇宙 은수 양계 지구촌 심국 코리아 대민국 中心 창 울 상 반달은 관음미소로 식 스디움 비추이네! 2018년 2월 25일 20시 카운다운전 수만 관중 설레이는 마음으로 도레미 셋 둘 나! ‘기원의 ’ 달나라에서 강 빛을 밝는 찰나! 온 세계 인류 모두가 창 의 등불되었다. 고요 성 소 눈물이 빙 돌고 눈꽃 눈발 속 수많은 별들 눈 반짝인다. 자유‧정의‧‧창조 올림 정신으로 각국 선수들 관객 모두 世界一花 우주는 꽃! 영원 사랑 부른다. <종/양녕대군 18대손 ‧ 始42세>


李花 268 31 부산광역시 李龍欽 지원장 일신설계 40주년 출 기념식 거 이상용(李尙龍) 부산광역시 부지원장 / 명예기자 용(龍欽) 부산지원장 겸 일신설계 장은 2017년 12월 7일 오 5시 :『일신설계 40 주년』출기념식에 부산 · 경남의 유명설계 사와 건축관련 인사 등 500여명을 부산 운대 벡스코 컨벤션 201에서 초청 기념 식을 였다. 경성대교수 강 박사가 지은 <일신의 건 축을 말다>에서 눈에 알 수 있게끔 일신 설계 ‘40년 기념 건축 비’에 이용 장의 부산건축계에 끼친 업적 등을 미롭게 소개 였다. 설계사무소의 경우 40년이나 긴 시간 생존여 일신설계가 부산건축계의 인재의 산실로 일 이백명이 넘는 설계인력을 거느렸고 ‘일신사관교’라는 별칭으로 설계 인력을 배출다고 였다. “노를 계속 젓지 않으면 강물을 거슬러 올 라 갈 수가 없다. 비상 노력으로 새로워지 기를 그치지 않을 때 일신의 미래는 보장될 것이다.” 라는 미래 지적인 덕담이 있었다. <일신설계40년, 40개의 대작>에는 부산 시청, 누리마루, BEXCO, 부산시립미술관, 부산국제여객미널 등 부산의 랜드마가 된 건축물의 상세 설명과 사진을 올린 책 으로 부산유명건축물이 책속에 다 있었다. <종/경녕군 16대손 ‧ 始40세>


32 李花 268 우리의 삶과 문, 세시속 이종(李鍾泰) 강원도지원 상임부지원장 / 명예기자 우리는 농경문 속에서 우리의 아름다운 세시속 내용이 다양다. 그러나 오늘날 경제의 발전은 산업로 이어졌고, 우리의 아름다운 세시속이 자연스레 무너져가고 있다. 아름다운 세시속이 어떤 것들이 있 었는지 전래되는 세시속을 중심으로 고찰 보기로 다. 1월의 세시속 설날은 를 시작는 날로, 명절 중에 서도 으뜸으로 여긴다. 원일(元日), 원단(元 旦), 정초로 불리며 설빔을 차려입고 조상에 게 차례를 올리고 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린 다. (우리 씨족은 조고제의 자가 ‘旦’이 기 때문에 정초에 주고받는 연장에서 ‘元 旦’이라는 단어를 사용지 말고 ‘元朝’라고 고쳐 사용야 다) 설 차례는 의 첫 사로 아침 일찍 제 물을 차려놓고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 부모까지 4대조의 신주를 모셔놓고 차례를 지낸다. 설 차례는 떡국은 올린다. 차례를 지 낸 다음에는 식구들끼리 세배를 올리는데, 어른들은 각자의 상에 맞게 아이들에게 세 뱃돈을 주며 덕담을 건넨다. 명절음식을 먹 고 나면 이웃 어른들에게도 세배를 다닌다. 여성들은 설날에는 세배를 다니지 않으며 주 로 초삼일이 지나야 이웃들께 세배를 다닌 다. 여성이 정초에 남의 집을 방문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다고 생각기 때문이다. 예전 에는 세배를 다닐 때도 빈손으로 가기 보다 는 봉초담배를 선물기도 였다. 집집마다의 안고사(安宅告祀)는 주로 정 월 초순경 야간에 많이 지내는데 그 집주인 고 생기가 맞지 않으면 보름을 넘어서 지 내는 경우도 있다. 예전에는 청량비기 또는 정 이지의 정비결이라는 책을 서 의 신수를 보았으며, 수가 나쁜 사람들 은 정월 대보름날 물가나 달을 보고 빌면서 본인 스스로 액막이를 였다. 또 마을 점 쟁이나 무당에게 물어서 의 신수가 나


李花 268 33 쁜 사람들은 부적이나 2척 정도의 수아비 를 만들어서 예방을 느라고 루가 모자 랐다. 정초에 지신밟기와 같은 마을의 대동놀이 는 지 않았으며 초삼일이 지나면 주로 윷놀이로 여가를 즐긴다. 윷은 손가락마디만 기로 주로 대추나무로 만들며 작은 술 잔 기의 종지에 담아 던지므로 이를 종지 윷이라고도 다. 대의 장작윷도 있다. 윷 놀이에 별 규칙은 없으며 던진 윷이 윷 을 벗어나면 낙(落)으로 처리는 정도이 다. 여인들은 생율 놀이를 별도로 기도 다. 주로 ‘넉동’ 나기로 승를 가리며 마을 의 공식적인 사로 진될 때에는 비누나 수건과 같은 생을 경으로 걸기도 다. 예전 마을 어른들은 담배내기를 많이 였으며 주로 개 담배를 걸고 윷을 놀았으 나, 지금은 천원씩 걸고 윷을 논 다음 심 이 노리를 뜯어 그 돈으로 음료수나 과자를 사서 께 나누어 먹으며 정담과 우의를 다 진다. 상시 마을 경로당에서 , 장기, 윷놀 이를 며 소일을 고, 그러다가 정월 13일 에는 칼국수를 장만 먹고, 마당가에다가 곡식가리를 세우고 그 위에 긴 대에 짚을 감 아 농을 기원는 뜻으로 장대를 세우기도 으며, 14일에는 까치보름이라고 여 오곡 잡곡밥을 먹었다. 오곡은 보 과 콩, 수수, 차좁쌀, 찹쌀, 멥쌀을 치지만, 그 외의 다른 곡식을 추가는 경우도 있다. 또 고 사리나 취나물 같은 산채를 채취여 말려두 었다가 보름날에 찰밥 또는 약밥과 시루에 께 쪄서 동리 사람들과 같이 나누어 먹는 관습이 있었다. 보름날 아침 일찍 주부들은 가장 손쉽게 구 수 있는 무나 두, 밤, 잣 등을 전날 준비다가 꽉 깨물면서 ‘부스럼을 깨자’라고 소리치며 부럼을 깼다. 이것은 온 식구들의 일 년 내내 몸에 나는 부스럼 등 종기를 막 는다고 예방는 차원의 부인들이 온 집안 식구들 건강을 살는 법방이었다고 다. 그리고 보름날 아침에 자기 눈앞에 제일 먼 저 보이는 사람을 불러서 쳐다보는 사람에게 ‘내 더위 사라’고 며 외상으로 자기의 여름 더위를 미리 는 습도 있었는데 이 또 뭇사람들에게 자기 동을 인에게 가벼이 지 말고 모든 일에는 신중을 기여 상 조심라는 연초의 경고성 인간미의 지가 배어 있었다고나 것이다. 보름날 저녁에 마구간에 있는 소에게 여물 로서 밥과 채소를 같이 갖다 준 다음 소가 밥을 먼저 먹으면 년이 들고, 채소를 먼저 먹으면 년이 든다고 는 이야기를 믿었 다. 그리고 보름 찰밥을 찔 때에 싸리나무로 불을 붙이는 이유는 력도 좋고 연기가 나 지 않는 장점도 있지만 곡식이 싸리나 무처럼 단단게 잘 여물기를 소망기 때문 이었다고도 다. 또 불이 붙은 싸리나무 숯을 월별로 정여 12개를 줄지어 내어 놓 으면 불이 사그라질 때쯤 얀 재가 앉는 달 은 다소 가물 것이고 까맣게 숯이 되어 버리 는 달에는 장마가 질 것으로 예측다. 그리고 보름날 저녁, 보름달이 뜨기 전에 높은 산에 동리 사람들이 모두 올라 달맞이 를 며 각자 의 소망을 빌었다. 농민 들은 치솟는 달을 보면서 농사를 예측기도 는데 달이 붉게 떠오르면 서‧숙과 같이 붉 은 곡식이 잘 될 것이고, 옇게 떠오르면


34 李花 268 벼농사가 잘 될 것이라고 믿었다. 보름에는 우물에서 물을 떠와서 비는 사람 들이 많았는데 이날은 부녀자들이 남보다 먼 저 물을 기르려고 애를 쓴다. 보름 새벽 12 시가 지나서 우물물을 먼저 떠오면 복을 가 져온다고 서 부녀자들은 서로 잠을 자지 않고 12시가 되기를 기다렸다가 자신이 사용 는 우물에 물이 부족 경우에는 보름날 아침에 물이 잘 나는 이웃 우물이나 냇가에 서 물 동이를 이고 조금씩 리면서 자신 의 우물에 쏟아 부으면 그 물이 당겨져 와서 자신의 우물이 족 질 것이라고 여겼다. 또 보름날 아침 일찍 조상님에게 차례를 드 리고 나서 청주 잔을 마시면 귀가 밝아진 다고 여 모두들 귀밝이술을 마시곤 다. 동네 아이들은 저녁에 달이 떠오르면 동리 뒷밭에서 구멍 뚫은 깡에 관솔불을 넣어 ‘망월이 망월이’라고 외치며 망우리 돌리기를 였다. 재는 아이들이 없어 오래전에 사 라진 속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정 월대보름날 전국의 정 시, 군에서는 각 읍, 면, 동 단위의 깃줄당기기 놀이 시을 악 놀이와 곁들여 성대게 치는 곳도 있다. 강원도지원과 강릉시분원에서도 관 에서 루 종일 경내기 윷놀이를 계승는 아름다운 세시속 보존의 모범을 보이고 있 다. 또 강릉 경 변과 정동진 변 일 대에서는 전국 단위의 달맞이 사를 여 인산인를 이루는 진경이 쳐지기도 다. 보름 다음날인 16일은 ‘귀신달래는 날’이라 고 으며 저녁 어두운 무렵에 수수비자루를 만들어서 방안에서 밖으로 쓸어내면 귀신을 쓸어 냈다고 생각으며 문고리에 얼개미채 를 걸어 놓으면 귀신이 얼개미채의 구멍을 세다가 날이 새어서 자연 돌아간다고 여겼 다. 이날 밤에 귀신이 사람의 신발을 신고 가면 죽는다는 속설이 있어 죽음을 면고자 각자 자기 신발을 귀신이 신고가지 못게 엎어 놓거나 방에 들여다 감추어 놓기도 였다. 정월 보름 첫 번째 시골 장마당에서 조 리와 성냥 및 실 래를 사서 복조리에 담아 자기 집 방 출입문 위에 매어 단다. 복 조리 안의 성냥은 살림이 불같이 일어나라는 뜻이고 실은 식구들의 장수는 수명을 상징 다. 이를 께 담은 조리야 말고 비로소 그 가정의 일년간 복조리가 되는 것이다. 아이들 놀이로는 널뛰기와 연날리기, 이 치기, 자치기, 제기차기, 말 기 등이 이 시 절의 주된 것이었다. 입춘은 24절기 중 첫 번째 절기이다. 자 집안에서는 ‘입춘대길, 건양다경’ 등 입춘축 을 자기집 대청기둥이나 대문에 써서 붙였으 나 일반 가정에서는 입춘축을 써 붙이는 경 우가 드물다. 여인네들은 생윷놀이와 정비결의 신수점 을 보러 다니느라 루가 모자라게 정신이 없다. 2월의 세시속 2월 초루는 여인들이 신(風神)인 영등 머니를 맞아 자기 집 부뚜막이나 장독대에 정수와 음식을 차려놓고 절을 며 가족 들의 소지(燒紙)를 올리며 소원을 빈다. 영등 머니는 2월 초루에 늘에서 내려와서 보름에 다시 늘로 올라간다고 믿고 있어 이 기간 동안 부뚜막이나 장독대에다가 정


李花 268 35 수를 매일 떠놓고 바람이 순조로워 농사가 잘 되고 가내의 안기를 빈다. 어민들은 바다에 배가 나가 랑에 의 각종 사고 발생의 예방적 차원에서 축원며 비는데 보름 기간 동안 영등매를 모시기에 수십배 씩이나 정성을 더 들여 모셨다. 16일 날이 되면 농민들은 늘의 좀생이 (레이아데스 성단)를 쳐다보고 의 농을 점치기도 는데, 이 좀생이는 눈에 띠 는 별 6개를 주축으로 는 무리로 떼 지 어 늘에서 움직이는 까닭으로 배가 부르면 앞서가고, 배가 고면 따라가는 아이들을 연상여 좀생이가 달의 뒤를 바짝 따라가면 년이고, 나란 가면 작, 멀리 떨어져 가 면 년을 예상는 어리석은 짓들을 연례 사로 기도 다. 3월의 세시속 예전에는 3월 삼짇날에 온 동리 사람들이 집집마다 쌀을 모아 가지고 동리의 온을 위는 동리 서낭고사[城隍祭]를 지낸다. 제 관은 마을의 촌장과 총대의 집을 정여 제 물 차리는 집으로 고 생기가 맞지 않거나 부정 일이 생기면 제관을 다른 사람으로 참관시다. 제관은 3월 초루부 부정 짓을 삼가며 울리에 금줄을 치고 을 뿌리고 부정 집안의 출입을 막았고, 온 갖 정성을 다야 다. 제물은 메와 갱, 백 설기, 명, 돈육, 과일과 어물, 채소, 꼬치 전, , 제주는 정종으로 고 제물의 종류나 개수는 수로 야 며 의관정제고 제사를 동리 서낭[성사]에서 모신 마을 의 모든 가구에 대여 집집마다 소지를 올 려주었으며, 제물로 사용 백설기 떡을 골 고루 집집마다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청명 과 식에는 조상의 묘에 떼를 입고 성묘 를 였고 1년 농사의 모종을 위 볍씨를 담그고 장독대의 장을 담그는 날로서 부정 것을 고 산에서 눈 높은 물이 개울에 를 때에 즈음여 장독대의 장을 담근다. 장 의 종류는 간장, 된장, 고추장, 막장 등이 있 다. 그리고 청명과 식에는 집안의 이 없다 고 여겨 조상의 산소를 이장 또는 장도 간 거다. 식 성묘 때에는 많은 제물을 드리지 않고 간단게 주, 과, 와 단잔으로 서 분을 간단게 참가자가 절을 는 정도이다. 4월의 세시속 4월 8일은 욕불일(浴佛日) 즉 석가모니의 신일이다. 지금도 이날이 오면 많은 사람 들이 가까운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고 관등 놀이를 다. 자기 집에서 가까운 절이나 단 골로 다니는 절을 찾아 가게 되는데, 보 쌀 되, 초 갑과 시주 돈을 준비여 7일 저녁부 절에 가서 등을 달고 관등놀이 를 참석다가 절밥을 얻어먹고 밤새도록 불 공을 드린다. 5월의 세시속 5월 5일은 단오절이라고 며 연중 4대 명절의 나이지만 마을 서낭당 앞의 아름드 리 참나무에 그네를 맨 것이 단오 사의 전 부였다. 그것도 10여 일이 지나면 일을 계 로 그네의 밧줄을 끊는 것이 정되고 보니 농사일이 창일 때이고 춘궁기가 닥쳐서 농 촌에 일손이 모자랄 이고, 식구는 많은


36 李花 268 데 넉넉지 못던 살림살이에 춘궁기를 벗어 나려면 있는 집에 가서 백미 가마를 빌리 면 가을에 추수 즉시 가마 반씩을 되갚 아야 니 끼니 걱정을 게 되고 집집마다 일손이 딸리는 처지와 겨우 칡뿌리를 캐먹고 물고지 뿌리와 소나무 속껍질로 송구떡을 빚 어 먹으며 연명는 등의 정신없이 생고에 시달리며 살아가기 바쁜 임에 반 여인 네들은 창물에 머리를 감고 단오 의 그 네뛰기와 씨름 구경, 물놀이, 굿당의 무 녀들 바구니 속에 끼어 가족들의 무운을 축원는 것이 고작이고, 삼삼오오로 모여서 들의 쑥과 익모초를 뜯어다가 식솔들의 여 름철 사광란 배앓이 병에 약으로 사용 위 비상수단 강구의 노력이 전부였었다. 그러나 강릉 지역에서는 남대천변 10여만 의 넓은 전을 기반으로 고려시대부 전적으로 전승되는 신제(鄕土神祭)가 1969년 1월 16일 중요무문재 제13로 지정된 대관령 서낭을 제사는 강릉단오제 가 유구 성대게 존고 있다. 이는 2005년에 중국에서 단오제를 유네스코 세계 인류문유산 등재 신청을 었으나 이를 상 대 당당 경쟁으로 물리치고 강릉의 중요 무문재 제13로 지정됨의 광을 입은 대민국 강릉단오제가 유네스코 세계인류문 유산으로 등재 선정되었다. 강릉단오제는 산로(山路) 안정과 작, 어, 집안의 들을 기원는 제의(祭儀)이 자 축제라고 수 있다. 단오굿 또는 단양 제라고도 불리는데 단오제 사는 음력 3월 20일부는 제사에 사용될 신주(神酒)를 강 릉시민들이 쌀을 거두어서 빚는 것을 시작으 로 여 단오 다음날인 5월 6일의 소제(燒 祭)와 불꽃놀이까지의 50여 일이 걸리는 대 대적인 세계적 나밖에 없는 자랑거리 축제 이다. 3월 20일 제주를 담그고 4월 1일은 초 단오(初端午)라 여 주(獻酒)와 무악(巫樂) 이 있고 4월 14일에는 서낭신을 모시기 위 대관령 산 능선 송정(松亭)에서 야숙(夜 宿)을 다가 4월 15일 대관령 서낭과 산신 께 제사 신목(神木)과 서낭을 모시고 돌아 오는데 이때에 강릉사람들이 성산면 구산리 에 있는 암[女] 서낭당까지 마중 나와 불 을 게 밝며 께 여서낭 내에서 서낭 내 외(부부)를 사(合祀)시 단오장으로 옮 겨 모신 다음 4월 27일은 무당들에 의서 단오의 굿당에서 단오굿이 진다. 5월 1일에는 단오의 본제(本祭)가 시작되는 날로 서 개(華蓋)를 모시고 굿당으로 가서 굿 을 벌이고 관노가면극을 다. 5월 4일과 단오날인 5월 5일은 무굿과 가면극이 연이어 줄을 이으며, 5월 6일은 서낭신을 대관령 국 사서낭당으로 봉송는 소제를 끝으로 려 오색 불꽃놀이를 마감는 50일 동안의 단오제가 끝이 난다. 본격적인 제의 놀이는 5월 1일부 단오굿과 관노가면극을 중심으 로 그네, 씨름, 줄다리기, 윷놀이, 궁도, 노래장기대, 악놀이, 서커스관람 등의 민 속놀이와 도음식점, 온갖 상가 개점, 세계 의 문사 전개 등 각종 기념사가 단오 장 곳곳에서 벌어진다. 6월의 세시속 6월 15일은 유두일이다. 별 는 일이 없으나 삼복날이 있다. 복날은 10일 간격으 로 잡있고 이때는 동리사람들이 모여 개장 국이나 삼계을 끓여 먹고 술과 지지미를


李花 268 37 만들어 루 종일 보신을 며 일손을 놓고 즐겨 먹으며 쉰다. 뜨거운 복날이 모두 지나가면 선들바람이 불어오는 시원 가을 이 돌아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7월의 세시속 7월 7일은 칠석이라고 여 으레 비가 오 는 날로 전져 오며 늘에서 견우와 직녀 가 만난다고 전래되고 이날이 지나면 동리사 람들은 미씻기 전날로 좋은 날을 잡아 질 을 먹는다고 는데 질 먹는 날은 머슴꾼들 의 생일날이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서 머슴꾼을 옷도 벌 주고 용돈까지 준 비 주며 치격려를 주는 날이다. 술과 각종 음식으로 별 상에 독상으로 차 려서 별대우를 며 신주 위듯 사기를 돋우어 주었으며 악도 울리며 머슴꾼들에 대 그간 농사일의 노고에 치 주었고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온갖 음식대접 으로 잔치를 열고 루 종일 놀고 즐겁게 놀이를 즐겼다. 그 농부들은 미 씻기를 고 여름 일손을 놓게 되며, 또 철렵이라 여 온 동리 사람들이 모두 모여 시골 냇물 에서 미꾸리, 모래무치, 버들치, 은어, 메기 등 각종 민물고기를 단체로 여 국을 끓여서 설날과 같이 식을 기도 다. 8월의 세시속 8월 초부 조상님의 묘에 벌초를 고 주, 과, 와 단잔으로 분, 성묘를 다. 8 월 15일은 추석 또는 가위날, 가위날이라 고도 며 이날 아침 곡식으로 메와 송 을 여 주찬을 갖추어서 추석 차례를 성대 지내는데 이것을 천신(薦新)이라고 다. 천신 전에는 곡식을 손들이 입에 넣지를 못다. 예전에는 각 지역마다 추석을 전 여 교운동가 열리게 되는데, 이는 생들이 대우받는 날이 되는 것은 물로 어른 들까지도 덩달아 축제장이 되어 무척 즐 겁다. 9월의 세시속 9월 9일은 추수를 끝내고 바로 보리를 심 어야 는 바쁜 시절로 농촌의 일자리는 끝 이 없다. 9월 9일은 중추 또는 중양이라고도 다. 이것은 9가 양수이기에 양수가 겹친다 는 뜻이며 이날에 이르러 3월 3일에 왔던 제 비가 다시 강남으로 되돌아 간다고 나 게 관련된 사도 없고 게 중요 날로 여 기지도 않는다. 10월의 세시속 10월은 상달이라고도 며 마을에서는 각 종 가을 제례가 집중적으로 지는 달로서 집안마다 정진 날이 있지만 보 10월 15 일을 전여 시제(時祭) 또는 묘(墓)에 세 일사(歲一祀)가 있는데 집안에서는 재실에 가서 온 문중이 모여 시제를 올리기도 다. 그리고 농촌에서는 겨울 준비에 여전 바쁜 일과가 계속된다. 겨우살이 식량 챙기기와 월동용 땔감준비를 위 목 보가 그것이 라고 겠다. 11월의 세시속 11월은 동짓달이라고 여 이때부 가 가 시절이라고 생각다. 동짓날은 양력 12월 22일에 당는데 자로는 아 세(亞歲) 즉 작은 설이라고 부르기도 다.


38 李花 268 ◇ 장기금 모금 안내 ◇ 全州李氏를 대는 장재단인 이장는 정신과 숭조돈종 사상이 철 진양성을 위여 1987년 4월 1일자로 서울별시 교육감으로부 재단법인 이장 설립 가를 받았 습니다. 재까지 기본금 14억 여 원이 모금되었으며 연 인원 1,409명 생에게 장금을 지급 였습니다. 본원에서는 장의 성 방안으로 기본금 20억원을 모금여 진양성을 위 장 을 넓고자 노력고 있습니다. 이에 이장기금 모금에 동참실 개인이나 단체의 적극적 인 참여를 당부드립니다. 국민은 817-01-0254-362 (예금주 : 재단법인 이장) 동지는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다. 양 시발점이므로 이날 사는 정월과 상 는 것이 많다고 다. 동지에는 죽을 쑤어 먹는 것이 가장 일과 중 나이며 죽차 례를 간단 지낸다. 죽에는 찹쌀로 옹심 이를 빚어 넣으며 나이 숫자만 먹는 것은 아니다. 동지가 음력 초순경에 들면 소년동 지 또는 이른동지라고 고 그믐 경에 들면 노동지라고 다. 그리고 출입문이나 집안 구석구석에 죽을 조금씩 뿌려 집안의 액을 쫒는다. 12월의 세시속 12월 마지막 날은 섣달그믐이라고 고 그 믐날 밤을 제석(除夕) 또는 제야(除夜)라고 다. 이날 저녁에는 만둣국제사를 지낸다. 1 년을 잘 지내게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조 상님께 드리는 것이라고 여긴다. 섣달그믐에 는 수세(守歲)라 여 다락, 마루방, 부엌, 외 양간, 측간에 모두 불을 켜 놓고 밤새 남녀 노소가 잠을 자지 않는다. 이날 잠을 자면 두 눈썹이 모두 세어진다고 여 시 잠을 자는 아이가 있으면 눈썹에 분칠을 여 들어 깨워서 거울을 보게 면서 놀려주기도 다. 겨울철 놀이는 냇가에 가서 얼음조각을 깨 면서 썰매를 다. 철사로 스케이 날을 만 들어 앉아서 수 있도록 날이 두 개인 것 은 앉은뱅이스케이, 날이 나로 서서 면 스케이라고 불렀다. 이치기는 얼음이 있을 때 얼음에서 치고 소엔 마당에서 친 다. 윤달의 세시속 윤달은 뜻지 않게 더 주어지는 달로서 재액이 없는 달로 여긴다. 이 달은 남 의 달 이라고도 다. 수의는 윤달에 는 것인데 윤달에는 무슨 일을 여도 꺼리지 않는다. 연세가 많은 어른이 계시는 집에서 는 수의를 미리 장만기도 다. 수의는 죽 을 때 가져가는 옷을 윤달에 미리 놓은 사람이 있고, 윤달이 남의 달이라고 서 윤 달에 죽은 사람은 제사를 안 지낸다. 본 달 에 제사를 지내며 따라서 생일도 그러 것 이 맞다고 다. 마을 사람들은 윤달에는 무 엇을 만져도 이 없다는 말로 윤달을 다. 마을 어른들은 윤달에는 무엇을 만져도 아 무런 이 없다는 말로 까지 윤달을 무조건 믿어, 기 때문에 윤달에 조상님들의 산소 를 손보거나 이장 또는 장을 많이 며 집 수리 등도 많이 다. <세종/임영대군 16대손 ‧ 始41세>


李花 268 39 왕의 생애… 세자책봉과 즉위, 그리고 죽음 (집실) 1. 세자책봉 조선시대 왕위 계승의 원칙에는 두 가지 가 있었다. 우선 중전의 몸에서 어난 첫째 아들이 왕위를 계승야 는 것이고, 왕이 될 사람은 덕이 있어야 다는 원칙이 그 두 번째이다. 이 조건을 만족시는 왕손은 ‘대 를 이을 아들’이라는 의미의 세자(世子)로 책 봉되어, 계자로서의 준비에 만전을 기울여 야 다. 조선과 대제국의 국왕과 제 중에 위 의 적장자 원칙에 따라 세자 책봉을 받고 왕 위에 오른 임금은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종, 숙종, 순종 7명이다. 적장자는 아니지 만 그 덕을 인정받거나 중전에게 아들이 없 어 궁의 아들이나 왕족으로서 왕위에 오른 임금은 19명이다. 의경세자[덕종], 순세자, 소세자, 명세자[문조]가 세자의 신분으 로 세상을 떠났고, 양녕대군, 연산군의 아들, 광군의 아들은 세자가 되어 왕위에 오르 지 못다. 세자를 책봉는 임명서를 수여는 의식 을 ‘세자책봉례’라고 다. 세자책봉례는 궁 궐의 정전에서 거되었다.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는 세자책봉 례의 순서가 기록되어 있다. 첫번째 북이 울 리면, 의장을 갖추고 군사를 배치다. 두번 째 북이 울리면, 문무백관과 종친들은 근정 문 밖의 위(位)로 나아가고, 왕세자가 면복을 갖추고 등장다. 세번째 북이 울리면, 지위 에 따라 종친과 문무백관이 동서로 줄지어 서며, 종이 울리다가 그치면 악기 연주가 울 려 지는 가운데 왕이 가마를 고 나선다. 문무백관과 왕세자가 왕에게 차례로 사배(四 拜)를 며, 꿇어앉은 세자 앞에서 왕은 전책 관을 죽책문(竹冊文), 교명문(敎命文), 세자인(世子印)을 전 준다. 죽책문은 대나무로 만든 임명장, 교명문은 세자에게 당부는 계문, 세자인은 세자를 상징는 도장이다. 세자에 책봉된 이에는 중국 제의 고명을 받았다. 그리고 성균관 에 차여 제자로서 공자에게 인사를 드렸 다. 세자의 자리에 오르면, 궁궐의 동쪽에 거 처가 있다 여 동궁(東宮), 은 계절 중 봄 에 비유여 춘궁(春宮)이라 불렸다. 책봉 에는 세자익위사의 위를 받으며 조선의 내 로라는 실력자들로 구성된 세자시강원의 관료들로부 왕으로서 요구되는 식견과 능


40 李花 268 왕 출생연도 즉위연도 즉위시보령 즉위장소 재위기간 1대 조 1335 1392 57세 개성 수창궁 7년 2대 정종 1357 1398 42세 경복궁 근정전 2년 3대 종 1367 1400 34세 개성 수창궁 18년 4대 세종 1397 1418 22세 경복궁 근정전 32년 5대 문종 1414 1450 37세 동별궁 빈전 2년 6대 단종 1441 1452 12세 경복궁 근정문 3년 7대 세조 1417 1455 39세 경복궁 근정전 13년 8대 예종 1450 1468 19세 수강궁( 창경궁) 중문 1년 9대 성종 1457 1469 13세 경복궁 근정문 25년 10대 연산군 1476 1494 19세 창덕궁 인정전 11년 11대 중종 1488 1506 18세 경복궁 근정전 39년 12대 인종 1515 1544 30세 창경궁 명정전 8개월 13대 명종 1534 1545 12세 경복궁 근정문 22년 14대 선조 1552 1567 16세 경복궁 근정전 41년 15대 광군 1575 1608 34세 정릉동 궁( 덕수궁) 서청 15년 16대 인조 1595 1623 28세 경운궁( 덕수궁) 27년 17대 종 1619 1649 31세 창덕궁 인정문 10년 18대 종 1641 1659 19세 창덕궁 인정문 15년 19대 숙종 1661 1674 14세 창덕궁 인정문 46년 20대 경종 1688 1720 33세 경덕궁( 경궁) 숭정문 4년 21대 영조 1694 1724 31세 창덕궁 인정문 52년 22대 정조 1752 1776 25세 경궁 숭정문 24년 23대 순조 1790 1800 11세 창덕궁 인정전 35년 24대 종 1827 1834 7세 경궁 숭정문 15년 25대 철종 1831 1849 19세 창덕궁 인정문 14년 26대 고종 1852 1863 12세 창덕궁 인정문 34년 대제국 1대 고종 1852 1897 46세 구단 9년 대제국 2대 순종 1874 1907 34세 경운궁 돈덕전 3년 력을 기르는 교육을 받기 시작다. 아침에 일어나면 의관을 정제고 왕을 비롯 왕실의 어른들에게 문안 인사를 가는 것이 공식 일과의 시작이었다. 문안 인사 에는 조강, 주강, 석강으로 나뉘는 세자시강 원의 강의를 들으며 유교 공부에 전념였 다. 그리고 이 말 기, 쏘기, 붓글씨 등 이른바 육예(六藝)를 연마였다. 잠자리 에 들기 전에는 왕실 어른들에게 다시 인사 를 드림으로써 세자의 루는 마감된다. 세자는 원칙적으로 정치에 관여서는 안 되며, 위와 같은 일과를 보내며 계자로서 의 자질을 기르는 것을 본분으로 삼아야 으나, 부왕 대신 국사를 처리는 대리청정 을 기도 였다. 세종의 아들 문종,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장조], 순조의 아들 명세자 [문조]의 예가 그러다. 2. 왕의 즉위 선왕 장례의 가운데, 세자의 왕위 계승 왕실 계자로 정진 세자는 언제 왕위 를 물려받게 될까? 조선 왕조의 왕위 계승은 선왕이 세상을 떠나거나 왕의 자리에서 물러 났을 때 이루어졌다. 건강 악, 반정 등의 이유로 세상을 뜨기 이전에 왕의 자리에서 물러난 경우는 조, 정종, 종, 단종, 세조, 연산군, 광군, 고종 8명의 경우에 불과 며, 나머지 19명의 왕은 모두 승 다 음 왕에게 국새를 넘겨주었다. 따라서 조선 왕 대부분의 즉위식은 선왕의 장례 기간에 이루어졌다. 『국조오례의』에서는 이 의식


李花 268 41 을 국장절차 중 나의 과정으로 설명고 있는데, 사위(嗣位), 반교서(頒敎書)라고 다. 왕의 즉위식은 선왕이 승 지 6일이 지난 거된다. 선왕의 시신을 모신 빈전 의 동쪽에 왕세자가 머물 여막을 치고, 유언 장과 국새를 여러 가지 의장물과 께 설치 여 새 왕에게 국새를 건네 줄 준비를 다. 왕세자는 여막 안에서 입고 있던 상복을 벗은 다음 예복인 면복(冕服)을 갈아입고 빈 전의 뜰로 나아간다. 그리고 선왕의 유언장 과 국새를 받아 각각 영의정과 좌의정에게 전주고는 여막으로 돌아간다. 여막에서 다시 나온 왕세자는 붉은 양산 과 른 부채를 든 자들에게 둘러싸여 가마 를 고 어좌에 설치된 정전으로 다. 이 리여 왕세자가 오른쪽 계단을 어좌에 올라앉는 순간, 새로운 왕이 생게 된다. 즉위 교서가 반된 정전에서는 을 우고, 즉위 식장을 가득 매운 대소 신료들은 두 손을 마주잡아 이마에 얹으면서 “천천세 (千千歲)”라고 외친다. 이는 왕조의 운명이 오래도록 영원라는 뜻이다. 3. 왕의 죽음 519년의 긴 세월을 이어온 조선과 대제 국에는 모두 27명의 왕과 제가 존재였 다. 왕들은 장엄 궁궐에서 려 의복을 입고, 조선의 내로라는 명의들이 궁궐에서 늘 왕의 건강을 살다. 그러나 왕들은 로운 경에서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그다지 건강지 못였다. 조선 왕들의 균 수명은 44세로 주로 눈 병, 종기, 중 등의 병을 겪다가 세상을 떠 났다. 일단 왕위에 오르면 그 뒤로는 정신없이 바쁜 왕의 일과가 시작된다. 아침부 저녁 까지 루 종일 처리야 업무가 산처럼 많기 때문에 왕이 집무는 일들을 만 가지 일이라는 뜻의 ‘만기(萬機)’라고 였다. 게다 가 왕의 집무는 철저 정신노동이었다. 주 로 앉아서 신료들을 접견고 공문서를 읽었 으며, 자리를 이동 때에는 가마를 이용 였다. 격구나 쏘기 등의 간단 동을 제 외고는 운동 기가 거의 없었다. 따라 서 액 순이 원 되기가 어려웠고, 당 뇨와 고압에 쉽게 걸렸다. 눈병이나 종기 가 나면 쉽게 낫지 않았으며, 이는 결국 왕 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원인이 되었다. 실제 로 세종과 숙종이 당뇨병으로, 조, 정종, 종이 중으로 인 뇌출로, 문종, 성종, 종, 정조, 순조가 종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가 면 질병과는 상관없이 정치사의 생양으로 운명을 달리 왕도 있다. 우리 에게 잘 알려져 있듯이 6대 임금 단종은 삼 촌인 수양대군에게 정권을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당다.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어 감옥이나 다름없는 영월의 청령에서 유배 생을 다가, 결국 17세의 어린 나이에 사 약을 받고 승였다. 이로서 단종은 가장 어린 나이에 억울 게 세상을 떠났다. 단종과는 다른 경우이나 연산군과 광군도 반정에 의 위되고 유 배지에서 세상을 떠났다. 4. 왕의 이름 왕이란 군주제가 시되던 시기의 절대 권력자로서 동서를 막론고 매우 별 존 재로 인식되었다. 왕의 이름은 많게는 여섯


42 李花 268 경복궁 경루 별관람 시 문재청 경복궁관리소(소장 우경준)는 경복궁 ‘경루(국보 제224) 별관람’을 4월 1일부 10월 31일 까지 7개월간 시다. 경루는 연못 안에 조성된 대규모 2층 목조건물로 왕이 신들과 연를 베거나 사신을 접대고, 가 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내는 등 국가사에 사용던 건물이다. 경루 별관람은 전문 설사의 안내가 되며 무료(경복궁 관람료 별도)로 진된다. 관람 수는 주 중 3(10시, 14시, 16시), 주말 4(10시, 11시, 14시, 16시)이며 관람 소요시간은 30~40분이다. 1당 최 대 관람인원은 경루의 주요 부재와 관람객 안전을 고려 70명(내국인 60명, 외국인 10명)으로 제다.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며, 경복궁 누리집(www. royalpalace.go.kr, 1인당 최대 4명까지 예약 가능)에서 관 람 망일 6일 전부 1일 전까지 예약면 된다. <출처 : 문재청 보도자료> 개까지 있었다. 일반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왕도 어나면 서 이름이 붙여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방원(李芳遠), 이도(李祹), 이척(李坧) 등이 왕의 이름이다. 왕의 이름을 보면, 종, 단 종을 제외고는 모두 외자를 쓰고 있는데, 여기에는 별 이유가 있다. 임금의 이름 은 누구도 부로 부를 수 없으며, 다른 용 도라고 더라도 왕의 이름에 쓰인 문자를 문서에 쓸 수 없도록 정져 있었다. 따라서 왕이 될 가능성이 있는 왕자의 이름은 실생 에서 잘 쓰이지 않는 나의 자만을 써 서 만든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일반적으로 성인이 되어 관 례를 치르면 원래의 이름 외에 성인으로서의 이름을 다시 부여받게 된다. 이를 ‘자’라고 다. 이는 원래의 이름을 공경여 마구 부 르기 꺼려는데서 비롯된 복명속(復命俗 : 두 가지 이상의 이름을 갖는 속)을 따른 것이다. 자신이 스스로를 시기 위 붙이거나 스승 또는 친구들이 붙여주는 이름인 (號)가 있다. 조의 는 송(松 軒), 정조의 는 재(弘齋)이다. 왕이 세상을 떠나면 신들은 왕의 일생 과 업적을 가여 그에 알맞은 이름을 지 어 올린다. 이를 시라고 다. 이때 올리는 시의 글자수는 8글자가 된다. 그리고 세상 을 떠난 왕의 장을 적어 중국의 제에게 보내 중국조정에서 시를 정준다. 중국에 서 받은 시를 보면 세종의 시는 장(莊 憲)이고, 성종의 시는 강정(康靖)이다. 또 공덕을 기리기 위 따로 존를 지어 올리 는데, 시와 마찬가지로 8글자를 올린다. 존 는 왕이 살아있었을 때와 세상을 떠난 모두 올릴 수 있다. 왕이 세상을 떠난 지 27개월이 지나면, 왕의 신위를 종묘로 모셔오는데, 이 때 ‘종묘 에서 부르는 칭’이라는 의미의 묘가 정 진다. 종, 세종, 숙종, 영조 등 우리에게 가장 친숙 왕의 이름이 바로 묘이다. 묘 역시 시와 마찬가지로 왕의 일생을 가여 결정게 된다. 묘는 시와 다르게 조(祖) 은 종(宗) 을 붙여 짓는데, 보 조는 공이 월 왕 에게, 종은 덕이 출중 왕에게 붙이는 것이 관례이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새로운 종이 시작되었거나(조, 세조, 인조), 종(宗)에서 조(祖)로 추존(선조, 영조, 순조), 또는 제로 추존될 때(정조)는 조(祖)를 사용다. <출처 : 조선왕릉 누리집>


李花 268 43 슬 역사의 장, 단종(端宗)의 유배지 영월 청령를 가다 이문(李文學) 前 봉군 공무원 누군가 “여은 어디론가 가기 위서가 아니라 떠나기 위 여을 다. 그리고 여 의 목적을 위 여을 다.”라고 다. 자의 여목적은 역사의 진리를 깨닫 고 기를 머금고자 짬나는 대로 어딘가 의 미를 찾아 떠나곤 다. 이번에는 슬 역사가 강물을 따라 르는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에 위치 단종 임금의 유배지를 찾아 발길과 눈길을 돌렸 다. 지난 2월 초 자가 사는 곳이자 40년 직장생을 온 경북 봉에서 가족과 께 승용차에 올라 영주를 거쳐 중앙고속도로를 고 80km가량을 달린 제천의 나들목을 빠져나와 38번 국도를 고 영월방면으로 1 시간 남짓 달리면 서(西)영월 교차로가 나온 다. 이곳에서 서쪽 영월읍 방절리 방으로 약 2km 쯤에 청령가 있었다. 청령가 있는 이곳 영월은 예로부 민족 의 영산 백산 준령과 준 산간계곡이 조를 이룬 천의 비경을 간직 산자수명 천의 섬이자 유배지로 이름난 곳이다. 이 깊은 산골오지 마을은 과 슬이 서린 역사의 장으로 바뀌게 된 것은 조선의 제6 대 왕 단종(1441~1457)의 유배지가 되면서 부이다. 상왕의 위치에서 노산군(魯山君)으 로 강봉당 뒤 청령에 유배되었다가 관 (觀風軒)에서 사약을 받고 장릉(莊陵)에 묻 기까지 영월의 곳곳에 단종의 애이 서린 슬 적을 더듬어 접 수 있었다. 청령는 영월군 창강이 끝나고 남강 이 시작되는 지점에 조선조 임금 단종이 유 배되어 있던 장소이다. 이곳의 뒤쪽은 산이 연속으로 이어지고 앞쪽은 물살이 빠른 강물 로 막 있어 누구나 갇면 빠져 나가기 든 천연 유배의 장소였으리라. 북으로는 창으로 연결되고 남강으로도 연결된다. 청령 주차장에 들어서면 여러분이 목적 지에 도착다는 승선 안내 방송이 러나온 다. 청령로 들어가는 관광객들을 워 나


44 李花 268 르는 나룻배가 가로이 오간다. 예전 노를 젓던 뱃사공의 노랫소리는 간 곳 없고 고성 능의 엔진소리만 요란스레 울려 진다. 여 기가 바로 비운의 왕 단종이 귀양살이를 던 처절 절규의 이 서린 곳이다. 조선의 6대 왕이었지만 왕의 신분으로 결 코 어울리지 않는 비극적인 생애를 겪은 역 사의 장이다. 그의 비극적인 삶과 죽음을 께 아던 당대의 사람들이나 그 의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완전 인정 수 없 었으리라. 비록 육신은 사라졌지만 그의 억 울고 외로운 영은 그를 아는 사람들 에 의 되살려졌다고 수 있다. 그는 생 물적으로는 소멸되었지만 사적으로나 신 앙적으로 오늘날까지 살아있다. 단종의 비극적인 삶은 양위(讓位)로부 비 롯되었지만, 당시 백성들이 느끼는 단종의 비극적인 삶은 그들과 께 아 수 있는 유배를 서 마련되었던 것. 양으로부 영월에 이르는 유배 길에는 아직도 도처에 단종과 관련 전설과 유적이 남아있다. 역사 문에는 단종이 오늘날 서울의 광진구 양 동에 있는 양정(華陽亭)에서 관 안로(安 璐)의 전송을 받으며 유배지로 떠났다는 기 록만이 유일게 전다. 양정을 떠난 이 에 영월까지 어떻게 도착 였는지 문을 서는 잘 드 러나지 않는다. 단지 단종의 유배 과정은 지역민들에 의 전승되는 전설에 의서 추적 수 있을 뿐이었다. 전설에서도 사신들이 왕명을 집 수 없었던 사정을 잘 보여준다. 과장된 이기는 지만 수십 명의 사신이 단종 에게 사약을 드리느니, 오려 자진(自盡) 는 길을 여 왕명을 간접적으로 거부고 단종을 살리고자 였다. 이러 사신들의 생 속에 구차 목숨을 연명고 있는 단 종 또 자신 때문에 더 이상의 생이 있으 면 안 되겠다 여 스스로 죽음을 다. 또는 복득이라 는 공생에 의 죽임을 당 게 된다. 전설에서는 성군(聖君) 단종의 모 습은 강조된다. 앞의 전설에서 백성과 신 를 생각는 단종의 모습이, 뒤의 전설에서 는 끝까지 왕으로서의 위엄을 지려 던 모습이 나나 있다. 관에서 사약을 받고 죽은 단종의 시신 은 수습되지 않고 동강에 버려졌다. 아무도 시신을 거두고자 는 이가 없었다. 세조가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다.”라는 엄 명을 내렸기 때문이란다. 단종은 죽은 에 도 안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영 월 지방의 장이었던 엄도가 목숨을 걸고 동강에 나가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거두었 다. 엄도(嚴興道)는 지게에 단종의 시신을 지 고 동을지산(冬乙旨山 ; 장릉 북쪽 5리 위치, 영월엄씨 선산) 능선을 오르다 노루가 잠자


李花 268 45 던 자리에 눈이 쌓여 있지 않은 것을 보고 그 곳에 시신을 암매장다. 세월이 른 뒤 영월에 부임는 군수들이 줄줄이(세 명) 부 임 첫날 갑자기 죽는 괴이 일이 발생다. 그로 인 민심은 고 그 누구도 영월 군수로 오려고 지 않았는데, 박충원(朴忠 元)이 용기를 내 부임(1541년)을 다. 어느 날 박충원의 꿈에 단종의 령이 나나 산 속에 묻 사실을 알려주었고, 그 곳을 수색 결과 단종의 시신이 발견되어 봉분을 정 성스레 조성다. 그 로 영월군수가 변을 당는 일이 없어졌고 영월 땅도 안을 되 찾았다고 다. 중종 이 조정에서 단종의 제사와 무덤 조영에 대 의견이 나오면서 선조 때 김성 일, 정철 등의 장계(狀啓)로 영역을 수축고 상석, 석, 장명등, 망주석을 세웠다. 숙종 24년(1698)에는 단종을 복위시켜 그의 무덤 을 장릉이라 다. 죽어서도 을 지 못 던 단종이 숙종에 의 241년 만에 제자리 를 찾은 것이다. 높은 언덕위에 자리 장릉 은 울창 소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다. 장릉 으로 오르는 길에도 예외 없이 소나무들이 사열듯 늘어서 있다. 신기 것은 소나무 가 예를 갖춰 능을 절을 듯 굽어 있 는 모양이 많다는 사실이다. 우연이겠지만 비 죽음을 맞은 단종의 넋을 기리는 듯 다. 단종의 위와 같은 죽음 곧 자살이든 살 이든 단종과 세조가 대비되면서, 지역민들에 게 아과 분노를 일으기에는 충분였다. 단종의 강요된 죽음과 그의 시신이 암매장 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인 사실이었으 리라. 당시 백성들의 아과 분노는 신분의 고를 막론고 산되었다. 백성들이 보기 에 죽지 말아야 사람이 죽는 것이기 때문 에 단종은 영월 사람들에게 신이 되어서 살 아 있는 것이다. 단종의 비극적인 죽음은 그 를 신격는 중요 계기가 된다. 그리고 양위, 유배, 비극적인 죽음, 시신의 방치 등 은 단종의 죽음이 온당치 못을 보여주는 요인의 역을 다. 그런데 관의 마당 좌측에는 2층 누각 자규루(子規樓)가 있다. 세종 때 영월군수 신 원근(愼元近)이 세운 누각으로 원래 매죽루 (梅竹樓)였다 다. 밤이면 이 누각에 올라 를 듯 애처롭게 운다는 소쩍새(=두견 이․접동새․자규․촉백)의 을 담은 것으로 단 종이 관으로 옮기면서 매죽루에 올라 자 신을 며 ‘자규사(子規詞)’라는 시를 짓 고 나서 ‘자규루’로 불리게 되었다. 신에게 쫓겨난 촉나라 임금 두우가 슬 울며 죽어 새가 되었단다. ‘촉나라로 돌아가고 싶다’ 여 ‘귀촉도(歸蜀道)’라고도 다. 달 밝은 밤 귀촉도 슬 울 제 (月白夜蜀魂啾) 수심에 젖어 다락에 기대섰네 (含愁情依樓頭) 네가 슬 우니 듣는 내가 괴롭구나 (爾啼悲我聞苦) 네가 울지 않으면 내 시름도 없으련만 (無爾聲無我愁) 춘삼월에는 자규루에 부디 오르지 마소 (愼莫登春三月子規樓) 이러 역사를 세에 곧추 전승고 자 영월군에서는 단종문제를 연다. 매년 4 월 식을 중심으로 3일간 지며, 단종 유배지와 단종의 묘인 장릉이 있어 단종의 제과 께 문제전을 거다. 지난 1698년 이 제만 올리다가 지난 1967년 부 문사와 병여 제1 단종제를 개최였고, 지난 2007년부 단종 국장(國


46 李花 268 葬)재 사를 시작다. 그 뒤 명칭을 ‘단 종문제’로 개칭여 2017년 재 51에 이르고 있다. 자는 장릉 앞에서 이제는 이승에서의 모 든 원과 고단 죄다 내려놓으시고 안 쉬시라고 마음속으로 외면서 네 번을 거듭 여 머리를 조아려 배례를 올리고, 세 발짝 뒤로 물러나 발걸음을 돌렸다. 돌아오는 길 가에는 석양의 빛을 받아 밝게 빛나는 억새 는 옥녀(옥중의 가상인물)가 단아게 머리 를 빗어 내리고 늘늘 춤을 추는 모습같 이 단아고 가련게 느껴졌다. 예나 지금이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권 력의 속성은 대동소이 것 같다. 우리는 덧없는 권력을 쫓아 자신의 이름을 쉬이 더 럽는 사람들을 많이 봐 왔다. 그리고 재 도 진이다. 뜬 구름 같이 영을 따라 이 슬 부나비처럼 춤을 추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안깝다는 생각을 보면서 이번 여은 보람은 있었지만 쓰라린 역사의 장 청령구 앞 동강은 석양의 노 을로 인 붉은 빛으로 너울져 유유 르고 또 르고 있었다. <조/의안대군 21대손·始43세> <참고문> 영월문원장 유성목, 端宗硏究論叢(단종연 구논총), 영월:영월문원, 2003.12.31.


李花 268 47 이완 순례를 마치고 이철 제주도 계성군 청년장 1943년 11월 미국, 영국, 중국 대가 참 석던 카이로 선언에서 우리나라 독립을 주 장던 장제스(장개석) 총이 건립 중민 국(이완)을 지난 1월 답사데 이어 이번 에 2차 12일 동안의 답사를 대과없이 마 쳤다. 지난번의 답사는 수도 이이를 비롯 남부 까오슝(2대 도시)과 옛 수도 이난 등 대도시와 인구가 밀집 서부 야 지역 을 답사였다. 이번에는 중부산악 지방의 2~3천 고지에 이르는 웅장 아리산 국립공 원과 원시림 지역을 비롯여 대단위 수 공원과 고산족 등 9개 부족이 모여 사는 르 웨 지방(일월 담), 준 동서단의 끝자 락인 이루거(로각) 국립공원, 국 최남 단 컨 관광구, 그리고 이이-신성련-이동-까오슝을 잇는 동부안 일주 를 마지막으로 이완 관광의 대미를 장식(?) 게 되었다. 이완은 18세기 초부 1945년 제2차 세 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네덜란드를 비롯 청 나라, 일본 등의 침략과 지배를 받아왔으며, 일본으로부 51년간의 철권 치 에 서 엄청난 산림자원의 채벌과 무자비게 군 사기지 시설 등으로 국의 요소요소에 손 된 적들이 남아 있었다. 장제스가 1949년 7월 중국 공산당에게 쫓 겨 국민당원과 국부군 등 2백여 만명과 께 이완으로 건너와서, 1950년도부 우선, 대국민 과 당시 중국공산당 의 380 만 민병대 공격에 대비 군과 공군의 전 력을 증강고 36만 대군을 양성는 등 국가안보를 다지고, 청렴 국가 격을 드 높였다. 뿐만 아니라 60-70년대 아들 장 징궈(장경국) 정원장과 국가 10대 시책 사 업들을 역동적으로 추진여 국가기간산업과 경제기반의 기을 고 다짐으로써, 고속 성장과 국민 대을 이룩였다. 이른바 중정기념관, 고궁박물관, 경지정리 사업, 중 소기업 육성, 수출 진 전략, 고속도로 건설


48 李花 268 과 동서 단산악도로 시설들이다. 비록 국 제정치 여건상 UN에서는 되어 상임이사 국의 지위도 중공(재 중인민공국)에게 넘겨 주었지만, 중소기업을 중심의 수출 장려로 인 무역수지 자 등으로 외 보유고 비축(세계 5위 수준)과 인라 시 설 등 내실 있는 국가기반을 충 나갔다. 그러 장제스 총이 사에 의 의결로 아들 장징궈가 6-7대 총으로 10여 년간 집권 별세였다. 그런데 부자가 총 을 지낸 집안이 장례 치를 비용이 없다는 것 을 알게 된 정부에서 장례비와 가족생계비 일부를 지원주는 사실이 보도되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전두 군사정권에서 부정 축재가 난무고 민주 운동이 창일 때여 서 적지 않은 감명을 받게 되었다. 또 일 제 강점기 때 장제스 총이 이준 열사를 두로 안중근, 이봉창, 윤봉길 등 우리 열사님 들의 애국적인 동들을 극찬며 당시 어려 움을 겪고 있는 상 임시정부와 독립 사 들에게 용기를 잃지 않도록 격려다. 뿐만 아니라 위기시마다 신처를 제공주는 등 여러 차례의 어려움에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더욱 관심을 갖고서 이완 국를 순례를 강게 되었다. , 장징궈 총이 집권 당시에 군부의 신망을 얻고 있는 최고 실력자인 동생 장위 국 사령관이 있었음에도 다음 계자는 국민 70%이상 되는 대만인에게 기가 주어져야 다고 역설다. 이로써 마침내 대만인 이 등가 총을 이어 받아 대륙인과 대만인의 대과 민주를 이룩바 있다. 이러 이완도 2000년 이 계속된 국제사의 고립과 민주 욕구와 분배정책 등으로 국가 발전이 정체되어 최근 국민소득이 1인당 25 천 달러, 국가 총GNP 5,700억 달러로 우리 나라 1인 29천 달러(국가 총GNP 1조 5천억 달러) 보다 조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자들은 중국 대륙을 돌아보면 세계를 돌 아보는 것과 같다고들 말고 있다. 정말로 이완을 돌아보니 바로 중국 전체의 축소 이라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가 없을 정도로 다양고 진귀 고궁박물관과 위상 있는 중 정기념관, 웅장고 신비 대자연을 갖고 있었다. 비록 3만6천㎢의 작은 땅이지만 동 북아 최고봉 위산산을 비롯 3천m 이상 봉 우리가 4개, 2천m 이상이 26개나 솟아 있는 중부 산악지대와 고원 지대의 대단위 수분 지, 9개의 원시부족, 동서단 지구 등을 돌 아 보았을 때,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재 우리나라와의 관계 등으로 볼 때도 상 아 쉬운 마음과 기대감을 갖지 않을 수가 없으 며, 앞으로라도 국제정치무대에 너무 쓸리 지 말고 우리와의 관계가 과거와 같이 복원 되고 긴밀 유대를 바으로 영원 우 방국이 되기를 기대본다. <성종/계성군 17대손 ‧ 始4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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