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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by 이화보, 2023-04-12 21:19:08

이화 282호

이화 282호

Keywords: 전주이씨,이화

李花 282 49 유엔장은 1945년 6월 25일 샌란시 스코 의에서 언어와 문가 다른 50개 국이 참가여 채되고 같은 10월 24 일 장이 발됨으로써 유엔은 세계 에 기여는 역사적인 기구가 되었다. 부산시 남구 유엔로 93에는 세계유일 의 성소(聖所)인 재유엔기념공원(United Nations Memorial Cemetery in Korea)이 있어 유엔문구로 지정되었고 세계 를 염원는 세계 최초의 유엔기념관 이 2014년 11월에 문을 연 의 중 요성을 일깨우는 국제적인 복 문센 로 국내외의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세계 지도상에도 찾아보기 든 나라, 알지도 듣지도 못 대민국에 국적도 다른 젊 은이들이 자유와 세계를 위여 1950 년 6 ‧ 25국전쟁에 참전여 속에 사라져 간 영웅들이 안장되어 있다. 북공산당의 침입으로 수도 서울이 3 일 만에 락되자 1950년 6월 27일 유엔 안보리는 총에서 세계와 자유 수 를 위여 유엔군 참전을 결의였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성공은 9월 28 일 수도 서울을 수복고 10월 두만강, 압 록강으로 진격였으나 10월 25일 중공군 의 인전술로 였고 3년 1개월의 참 전쟁은 1953년 7월 27일 전정 이 체결되여 잠시 정전이 되었다. 유엔군사령부, 부산에 유엔군 묘지 조성 대민국 임시수도 부산은 난민이 인 산인를 이루고 유엔군 군사지원사령부가 있어 부산만에는 많은 군수물자 집지 로 원조식량이 산더미처럼 쌓였고 미군병 사가 꺼번에 10만명이 수용되고 있었다. 세계 유일의 성소(聖所)인 유엔기념공원 이상용(李尙龍) 부산광역시 부지원장/명예기자


50 李花 282 유엔기념관 자료에 의면, 유엔군은 22 개국 175만5천명이 참전여 4만1천여 명 이 전사였다. 유엔군사령부는 전쟁 중 개성, 인천, 대 전 등 6개 지역에 유를 임시 안장였 고 1951년 1월 18일 유엔군 전사자 매장 을 위여 부산에 유엔군 묘지를 조성 고 묘지 단장 공사는 대건설이 였다. 금년은 6 ‧ 25국전쟁 70주년이며, 유엔 군 묘지 조성 69주년 되는 이다. 전쟁이 끝나자 1955년 11월 17일 대민국 이승 만 대령은 세계와 자유를 위여 생된 영웅들을 기리기 위여 부산 유 엔군 기념묘지 14.39ha(약45,000) 지 를 영구 유엔에 기증고 성지로 지정 것을 유엔에 건의였다. 1955년 12월 15일 대민국 정부는 부 산 유엔군 기념공원을 유엔이 영구적으로 관리기로 결의였다.(결의문 제977(×)) 1959년 11월 6일 유엔은 유엔군 기념묘 지 설치 및 관리유지를 위 대민국과 유엔간의 정을 체결였다. 이로써 세계 최초의 유일 유엔군기념묘지를 부산에 설치게 되었다. 6 ‧ 25국전쟁에 유엔군 전지원 국가 는 미국, 영국, 캐나다, , 주, 리 , 뉴질랜드, 에오아, 그리스, 국, 랑스, 콜롬비아, 벨기에, 남아공, 네덜란 드, 룩셈부르 등 16개국이며 의료지원국 은 6개국으로 스웨덴, 덴마, 인도, 노르 웨이, 이리아, 독일이다. 대민국 정부 는 2007년 10월 24일 근대문재 등록 제359로 지정였다. 기념묘지는 최초에는 11,000여 명의 전 사자로 안장되었고 유가족과 본국 정부의 요청으로 이장되어 재 11개국의 2,300 여 유가 안장되어 있다. 유엔기념공원에는 참배객이 추모는 ‘추모관’과 ‘기념관’은 국전쟁당시 최초 로 유엔기는 유엔과 유엔군을 상징는 것으로 유엔군 사령관인 맥아더장군에게 전진 것이다. 사진, 유 등이 있으며 유엔기념관(좌) 참전국가기(우)


李花 282 51 2019년 10월 23일 유엔기를 복원였다. ‘상징구역’은 , 그리스, 뉴질랜드, 노르 웨이, 국 5개국의 기념비와 21개국 참 전국 국기와 유엔기, 대민국 극기가 게양되어 있다. ‘주묘역’은 유엔군 참전 용 사들의 전몰장병 묘역으로 국적과 이름이 새겨진 묘석이 있고 수 백 그루의 나무 들이 심어져 있었다. ‘영연방 위령’은 9 만7천여 명이 참전여 2천100여명이 전 사였다. ‘녹지지역’은 유엔군참전용사로 귀국 전우들과 같이 묻고자 여 유언에 따라 안장되어 있다. ‘UN군 전몰 장병추모명비’는 전사 4만1천여 명의 이 름이 새겨져 있는 벽이 있으며, 유엔군 위 령이 세워져 있고 1958년 이승만 대 령이 방문였고 1961년 2월 그리스의 국전 참전기념비 제막식에 윤보선 대령 이 방문였으며 박정 대령은 3차례 방문였다. 묘지에는 각국 정부기관 개인 이 기증 초목이 심어져 있다. 유엔군 전몰장병 추모명비는 우주를 뜻 는 원수반에 늘과 전몰용사들의 이 름이 새겨진 명비, 그리고 보는 이들이 반 영되어 나됨을 의미는 디자인이다. 수 반 가운데 솟아있는 꺼지지 않는 불꽃은 영원 세계와 전몰장병들의 영에 대 추모를 의미며, 음양의 조로 원 수반의 물[음]과 꺼지지 않는 불꽃[양] 그리고 꽃이 있는 움 인 수반[음]과 불룩게 나온 철모[양]을 의미고 있다. 제2기념관 ‘도은 수로’와 ‘무명용사의 길’, 유엔군 위령 남쪽 방에 위치 11이라는 숫자의 많은 것을 공유고 11 개의 물계단, 수로위 11개의 분수대, 수로 가에 늘어선 11그루의 소나무를 심었고 이 11은 유엔기념공원의 안장된 11개국을 의미다. 마다 충일, 6‧25국전쟁일, 11월 11일 기념일 등 범시민 추모사가 열린다. 2007년 8월 1일부 53사단 군병력들이 유엔기념공원의 정문과 동문에 주간 경계 근무를 실시고 군병력들이 유엔기념공원 내 상징구역에서 유엔기 게양식 및 강 식을 거다. 유엔에서 지정 세계유일 의 성지인 유엔기념공원을 잘 관리는 것은 대민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일 뿐 아니라 관련국가의 외교관계에 초석이 됨 을 의미다고 였다. 유엔기념관 UN기념공원이 내려다 보이는 대연동 언덕에 위치 UN기념관은 연면적 7,999㎡ 지2층, 지상3층 규모로 3개의 상설전시관과 기전시관, 4D영상관, UN 센, 다목적 컨벤션, 전망대 등을 갖추고 있다. 상설전시관은 UN국전쟁관 을 비롯 UN참전기념관과 UN국제 관으로 나뉜다. UN국전쟁관은 국전쟁 의 참상을 인고 참전용사의 생과 신으로 이뤄진 의 가치를 되새길 수 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정까지


52 李花 282 3년 1개월이라는 긴박감을 주요유물과 영 상을 전달는 UN국전쟁관은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시작으로 대민 국의 정부수립영상이나, 국전쟁발발, 유 엔의 참전결의와 유엔군 결성, 스미스부대 의 대와 , 최의 사를 벌인 낙동 강 방어전선, 극적인 인천상륙작전 성공과 서울, 일을 북진, 중국군의 개 입으로 인 남철수와 1 ‧ 4, 서울재 , 정전정의 과정 속에 철의 삼각지 를 중심으로 고지를 쟁기 위 치열 던 국전쟁의 역사적 사실이 연대순으 로 전시되어 있다. 유엔군이 부산 에 첫발을 내딛었을 당시 1950년 부산 을 재 디오라마와 영세처럼 생생 게 꾸며놓은 전장면은 관람객들의 시 선을 사로잡는다. 참전국과 참전용사들의 생으로 이루어 진 의 의미를 생각고 전시를 감사를 전는 UN참전기념관은 국전쟁 당시 반도의 를 지기 위여 참전 22개 전 의료국의 동상과 국가별 유 물 및 기증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참전국들의 정보와 군가, 국가를 들을 수 있는 오스(치스린에 사진, 영 상 등을 띄워 정보를 제공는 무인정보 전달시스) 국전쟁 참전용사의 인뷰 영상, 전세계 참전용사들로부 기증받은 지와 사진 등 다양 전시물을 만날 수 있다. 부산 유일의 UN 관련전시공간으로 세 계를 위 노력는 UN의 동을 구며 의 참의미를 고찰으로써 전 쟁과 를 동시에 바라보고 더 나은 세 계를 위 능동적인 역을 구는 로그램으로 상시 운영된다. ‘스쿨 로그램’은 기념관 대 체 로그램으로 매년 차별된 로그램으 로 리뉴얼되어 진된다. 장소는 유엔 기념관 1층 교육실 또는 3층 컨벤션(문 의 051-901-1490, 1406)에서 상시 운영 된다. <종/경녕군16대손 ・ 始40세> < 참고자료 > ○ 유엔기념공원 제공 ○ 부산문관 발 2015. 4 ‘예술에의 초대’ 유엔기념관 ○ 유엔기념관 제공 ◇ 별원원 가입 안내 ◇  - 가입자격 : 종친 개인이나 종 단체 - 원전 : 종보인 ‘이보’를 생 구독 수 있고, 종약원에서 실시는 각종 제 안내를 우선 드립니다. - 가 입 비 : 200,000원 이상 - 연 비 : 연 30,000원 이상 (종 단체 : 100,000 이상 / 가입 당연도는 연비 면제) - 가입문의 : (02)765-2124 종약원 조직부


李花 282 53 여을 떠난다 신부부가 양식만 짊어지고 일기예보는 늘에 물어보고 아찔던 순간들 고무보 무인도에 도착을 때 라이도 성냥도 잊었음을 안다 낙엽 긁어 모으고 굳은 나무 부러뜨리고 마른 쑥을 뜯어와 그리고 적당 강석 찾아와 쑥은 부드럽게 돌은 정성껏 부딪쳐 볼 수밖에 거듭 부딪쳐 볼 수밖에 모닥불을 운다 며칠간은 잘 산다 도 뒹굴고 불씨마저 꺼져버린 날 서로를 원망다 격격다 다시 운다 모닥불을 운다 소용돌이도 모르는 어리석음은 죄(罪) 늘이 죄 사여주는 대열에서 이미 저들은 제외시켰을지도 모른다 <종 / 온녕군 18대 ‧ 始42세> 愚夫愚婦 이자(李賢子)


54 李花 282 세종대왕과 소왕의 안식처가 영릉 (英陵)이다.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영릉로 269-50에 위치다. 영릉은 당초 경기도 광주 대모산에 조영됐다. 정구역으로 는 서울시 서초구 내곡동이다. 종과 원 경왕가 모셔진 릉에 이웃 있었다. 그런데 세종의 손자인 예종이 천장(遷葬) 을 다. 예종 1년(1469) 3월 6일에 경기 도 여부 치소의 북성산(北城山) 남의 언덕에 모신 것이다. 천장은 예종 즉위 논의에서 새로운 능 조성까지 7개월 만에 일사천리로 진됐다. 영릉 천장은 세조의 유교(遺敎)로 볼 수 있다. 세조는 병상에 누운 뒤 아들 예종과 동생 밀성군을 자주 불렀다. 이 때 천장이 논의됐을 개연성이 높다. 서른아 살 장 년인 밀성군은 세조의 이복동생이다. 세종 의 18왕자 중 당시 생존자는 세조와 밀성 군, 영군 뿐이었다. 그나마 영군은 병중이었다. 승 직전의 세조가 가슴에 감 춘 고민, 왕실 망의 비밀을 나눌 수 있는 유이(唯二) 인물이 세자와 밀성군이었다. 영릉 천장은 세조의 숙원사업 영릉 천장은 세조의 숙원이었다. 세종의 둘째 아들인 세조의 가슴 속에는 아이 된 문구가 있었다. ‘곤수분자(坤水分觜), 절사손장자(絶嗣損長子)’다. 지관 최양선 이 말이다. 최양선은 소왕 능지가 릉 서쪽 자락으로 거론되자 아들이 죽는 비극의 자리라고 주장다. 소름 돋 는 발언을 그의 처벌을 청는 내용이 조선왕조실록에 실려 있다. “의정부와 예조에서 아뢰었다. 전일에 대군 및 수 제조가 께 수릉을 살습니다. 서운부정 최양선은 세종 영릉의 천장과 세 왕족의 비밀 대 이상주(李相周) 왕실문 작가 / 본원 문위원


李花 282 55 수릉의 자리가 임방(壬方) 자리인 것을 감방(坎方) 자리라 습니다. 또 ‘곤방 물이 새 입처럼 갈라졌다 (坤水分觜)’며 ‘손이 끊어지고 맏아들을 잃는다(絶嗣 損長子)’는 망 말을 습니다.” <세종 25년 (1443) 2월 2일> 영릉 보지에 대 길지와 지 논란의 종지부는 세종이 찍었다. 세종은 부모 곁 이 가장 좋은 곳이라는 입장이었다. 세종 은 “복된 자리를 구다 도 선영(先塋) 곁만 겠는가. 복(禍福)의 설(說)은 근 심 것이 아니다. 나도 나중에 마땅 같 이 장사되 무덤은 같이 고 실(室)은 다르게 만드는 것이 좋겠다”고 다. 세종 은 승 유교(遺敎)에 따라 릉 옆에 소왕와 께 장됐다. 세종, 부모 곁이 최고의 명당 우연의 일치일까. 영릉이 조영된 뒤 최 양선의 주장이 맞아떨어졌다. 세종의 장남 인 문종이 39세로 승고, 문종의 장남 인 단종이 17세에 사사되었다. 대은 둘 째 왕자인 세조가 이었다. 그런데 세조의 아들 의경세자도 20세에 요절다. 영릉 당을 굳게 믿은 세조는 부왕 능의 천장을 생각다. 지만 대신들이 반대다. 명분 은 최양선의 말이 무맹랑다는 것이었다. 이에 세조는 천천의 땅을 돋워서 지세 를 바꾸는 임시방을 마련다. 천천은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교의 요충지다. 왕릉의 수로는 종산에서 내려온 산줄기 에 당됐다. 따라서 을 금지려는 논의가 꾸준 제기되고 있었다. 세조 10 년 3월 11일, 은 충청도 서산에서 여생을 보내던 최양선이 상소를 다. 천 천고개[穿川嶺]를 두게 보(補土)고, 돌로 성(城)을 쌓아 길을 없애면 산천(山 川) 음양(陰陽)의 길(吉凶)이 바뀔 수 있다는 안을 냈다. 세조는 넓은 수 식으로 신들에 게 음양과 천지조, 조상과의 관계를 설 명 뒤 “최양선은 망령된 사람으로 술법 을 잘 안다고 수는 없다. 그러나 나 또 고개를 막으려고 생각다”고 보와 축성을 지시다. 장자의 거듭되는 비극과 신료들의 속내 이 몇 차례 영릉 천장 의사를 렸으 나 대신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다. 대신들의 생각은 영릉 덕분에 세조가 왕 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미 영광을 얻었는 데 옮길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세조는 13년(1467) 4월 5일에도 명 , 서거정, 구치관 등에게 영릉의 개장 (改葬)을 의논게 다. 신숙주에게는 경 기의 산을 살도록 다. 지관인 안례, 최원에게 영릉의 산도(山形圖)를 보여 주며 길을 물었다. 두 사람은 우물쭈물 고 길을 명게 말지 못다. 임 금은 이들을 옥 직시켰다. 임금의 마음을 읽지 못 죄였다.


56 李花 282 세조 14년(1468)에 임금은 다시 영릉 천장을 추진다. 그러나 서거정이 반대 다. 천장은 복을 얻으려는 위인데 왕이 된 것보다 더 복은 없다는 주장이었다. 강 반대에 직면 세조는 “경의 말이 옳다. 내가 다시 능을 옮길 뜻을 두지 않 겠다”고 물러섰다. 지만 영릉이 릉 경내 대모산에 있는 아들의 죽음과 절손의 아이 계속될 수 있음을 잊을 수는 없었다. 이에 죽음의 사자가 눈앞에 어른거리던 순간에 가장 믿을 수 있는 육인 세자와 밀성군에게 고명(顧命) 음을 짐작 수 있 다. 영릉 천장을 예종의 종손이 안정되게 나라를 운영게 려는 마지막 정치다. 이는 천장을 반대는 대신들과 상의 수 없는 내용이다. 세조 때의 대신들은 영 릉 덕분에 권세를 유지다는 석이 가 능다. 지관들의 처럼 아들이 꺾이 는 지세이기에 세조가 정권을 쥐었고, 신 들인 백관들도 복록을 얻고 있다. 만약 문 종이 승지 않았다면 세조 때의 권신 중 상당수는 복록을 누리지 못 게 뻔다. 이를 아는 세조가 비밀로 야 천장 고민을 나눌 대상은 극 정돼 있었다. 세조는 소에 밀성군에게 “나와 아우는 40년을 우애롭게 지냈구나”라는 을 다. 그런 영으로 세자인 예종은 밀성 군을 숙부로 불렀다. 예종은 즉위년 11월 12일 공신 교서를 발다. 이 때 종친인 덕원군 이서는 경으로 반면에 밀성군 이침은 숙부로 기다. 천장 반대는 신료들과 세조의 마지막 정치 예종은 즉위 첫 국가 조영사업으로 영릉 천장을 선언다. 밀성군은 영릉 천 장 총책임자인 도제조로서 전체 그림을 그렸다. 이는 세조와 밀성군, 세자의 비밀 대를 시사다. 부왕인 세조 못지않게 강 카리스마를 지닌 예종의 전격적인 천장 발에 신들은 고개를 숙였다. 오려 세조 때 천장에 반대던 구대 신들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는 두 가지 로 이 수 있다. 임금의 고명을 내세우 는 밀성군의 설득에 구대신이 자발적으 로 참여 것이다. 또 나는 세조의 종친 우대책으로 수세에 몰려 있던 구대신이 예종 시대에 정권 창출을 위 의도적으 로 적극 참여을 가능성이다. 천장 반대에 강 목소리를 내던 서거정 은 밀성군의 부관으로 참여다. 실제로 구대신은 세조가 왕족세력으로 정부에 들인 귀성군 이준과 종의 외손 남이를 제거고 다시 정권을 잡는데 성공다. 세조의 숙원으로 새로 조영된 영릉은 세인들에 의 명당으로 인정된다. 광군 때 자인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비기(秘 記)를 전다. ‘여주에는 마땅 성인(聖人)을 장사 곳이 있다. 이곳이 바로 영릉(英陵)이다.’ <세종 / 밀성군 19대 ‧ 始44세>


李花 282 57 조선국 왕손 원군 증 정간공 묘갈명. 서문을 아울러 쓰다. “수충 갈성 결기 분무 공신 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부 우의정 겸 영경연사 감춘추관사 릉 부원군 조문명 찬 록대부 서균 겸 오위도총부 도총관 이요 전액” 원군(檜原君)의 이름은 윤(倫)이고, 자 는 여명(汝明)이시다. 아버지는 선조대왕 제13왕자 영성군 계(㻑)이고 어머니는 찬 성 이중의 따님이시다. 숭정 병자년(1636년) 11월 임인에 어 나 5대왕(종, 종, 숙종, 경종, 영조)을 섬기시며 96세를 살았는데 지금의 임금 8 년 신년(1731년) 8월 초6일 도방 정 침에서 돌아가셨다. 임금께서 부고를 듣고 매우 슬시면 서 조를 철고 별 애사(哀詞)를 내리시며 말씀시기를 “목릉(穆陵, 선조 대왕)의 왕손으로는 원군(檜原君)만이 남아 있어서 조바심는 마음으로 종가의 집을 귀게 여기고 유가의 종장 영수로 또 공경 왔다. 그런데 돌아가시니 그 슬 마음을 어찌 말로 다 수 있으랴. 그리고는 능(陵) 묘(墓)를 맡은 관서 동 원(東園)에게 녹봉을 주면서 3년을 마치게 고 장례를 기다리지 아니고 시를 주어 상을 치르고 상방내사(尙方內司)에 서 장례 제수와 부의를 많이 주게 였으 니 별 은총이었다. 그 10월 17일 양주군 목암리 인방(寅 선조대왕 손자 원군 묘갈명 이창용(李昌鎔) 영성군종 명예장 집자주: 조문명이 원군 묘갈을 찬 내력과 묘갈의 전액은 이요가 쓰고 있음을 밝고 있다.


58 李花 282 方)을 등진 자리에 장사를 지냈다. 장사가 끝낸 뒤에 그 아들 군(咸平君) 이 (李泓)이 여러 차례 찾아와 비문을 지어달 라고 였다. 내가 진작부 륭신 공 을 사모던지라 감 비명을 짓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임금께서 올바른 동을 칭찬 셨으니 내가 글을 더 지을게 뭐가 있겠는 가마는 굳이 짓겠다면 삼가 임금의 가르 침을 따라서 처음부 끝까지 짓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공께서는 종 신묘년(1651년) 초에 승 (承憲)을 제수받고 원군으로 봉졌으 며, 갑오년에 전강(殿講)에서 계가 올라 갔으며, 기년 종께서 게 륭심을 칭찬시어 존관(尊官)을 대신다고 여 계가 올라갔으며, 을년 숙종때에는 대 원군 사당에 절을 게 는데 공에게 명 여 봉심에 참여게 여 계가 나 더 올라가게 되었다. 정축년에 대신들이 임금께 아뢰어 계 가 올라가게 되었고, 을유년에 공의 나이 70이 되자 경연관의 신들이 또 임금께 아뢰어 별 록대부에 오르게 되어 매우 높은 계였다. 일찍이 종친부 유사 당상 주원 제 도총부 도총관 주원 종부 를 겸였으니 그러 주관이 거의 15년 동안 계속되었다. 종 때 공이 병약을 걱정여 수릉관 으로 대체되고, 경종 때에 공을 검소다 고 창시며 음식물을 내려 주셨으니 이것은 역대 임금들에게 별 은를 입은 것으로서 우리 왕에게서도 입은 은 가 더욱 많은 것이었다. 갑진년에 임금 께서 명시기를 원군이 이미 계가 끝까지 올라갔으니 (漢)나라 동왕(東 平王)의 고사(故事)에 따라 그 자손 사 람에게 계를 더 올려주고, 병오년에 진 수당(進修堂)에서 공을 만나 보시고 아울 러 자손들에게 명여 대궐에 들어오라고 여, 임금께서 친 손을 잡고서 친 써 서 주기를 “경(卿)은 목릉의 왕손으로서 근년에 연세가 매우 높으신데도 지금에야 만나 보게 되었으니 으로는 종실을 돈돈(惇惇) 는 것이고 으로는 나 이 드신 분을 존경는 뜻이었다.” 그리고 범 가죽을 주시고 가마를 워서 나가 게 니 공께서 굳이 사양였다. 정미년 정오 보름날 임금께서 별 공 을 부르시자 공이 병든 몸으로 들어가니 임금께서 친 맞아들이며 안부를 묻고 술 몇 잔을 주시며 앞으로 나와 먼저 장 수를 축는 노래를 부르게 였다. 임 조선국왕손 원군 묘갈 사진


李花 282 59 금께서는 절구 수를 지어서 주시고 또 대궐에서 기르는 말을 주셨다. 기유년 9월에 공이 성절사에 참여여 문안을 올리니 임금께서 별 신들에 게 명여 부축여 오라 여 대궐에서 마련 과실과 반찬을 내리셨다. 공께서 임금의 잔치 자리인지라 오직 동을 조심였는데 그 당시 연세가 94세 였으나 예의범절을 잃지 않으셨으니 임금 께서 더욱더 이 법으로 어의(御衣) 두벌 을 내려 주시면서 또 글씨를 써 주셨는데, “내가 나이 드신 분을 존경고 노인을 공경는 뜻이다. 이 뒤로부는 자주 사 람을 보내 안부를 여쭈어라”고 보내주시 면서 대궐의 음식도 보냈다. 그가 병이 심지자 의(太醫)를 보내 병을 간게 고 내국(內局)에 명여 약 공급을 끊어지지 않게 였으니 온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이 은총이었다. 그리고 매일 근을 알리라고 였으니 임금의 애 정을 이루 다 말 수 없 었다. 공의 용모는 단정고 아름다운 채가 남들에게 영을 미쳤으며, 고난 자질이 륭고 총명이 매우 뛰어났으 며 성은 지극 성스러웠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애면서 스스로 를 죄인이라고 면서 종신록 거친 방 석을 깔고 지내면서 이를 드러내 웃지 않았다. 부모를 모시고 잘 사는 사람을 보면 반 드시 눈물을 렸으며, 어쩌다가 제수(祭 需)를 보면 반드시 잘 보관였다가 제사 준비를 였으며, 잔치를 즐겨지 아니 고 재갑(再甲) 같은 것들을 세상 사람들이 모두 소중게 여겼으나 그런 일 들을 지 않았다. 일찍이 사신을 모시고 북경에 다녀오는 데 돌아올 때의 보따리에 값비싼 물건이 나도 없었다. 그 뒤 9년 동안 정사(正 使)가 모두 부임지 못여 대간(臺諫)의 을 몇 달 동안 받는데 임금께서 의금 부에게 명기를 기다리면서 끝내 그 뜻 을 변지 않았으니 그것은 아마도 금전 을 위여 북경에 가는 사람들을 미워 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사는 집을 철 고 작게 짓고 싸리나무로 대문을 만들고 생 출입을 거의 안 였으며 으로 빚 은 로와 목침을 베고 자면서도 엄숙 게 앉아있으니 보는 자들이 그가 귀 신 분이라는 것을 알지 못였다. 마디라도 조정에 대 말은 지 않았 으나, 조정의 근본을 멋대로 드는 이야 기가 나오면, 공께서는 매우 위롭게 여 기면서 인사말만 뿐이고, 끝내 집안에 번도 가지 않았다. 그가 곁에 복종는 일에 대서도 모든 종친들이 감복였다. 공이 먼저 숙종 임금을 뵈었을 때, 임금 이 종친부에서 종친들에게 술을 준 적이 있었다. 그 때에 인왕(仁顯王后)께서 사제(私第)로 나가 살면서 박이 가까워 질 때이다. 공께서 매우 걱정시면서 임 금이 내린 술자리는 끝내고 사사로운 잔


60 李花 282 치 자리와 께 수 없다 고 먼저 일 어났으니, 또 義理에 대처는 공의 처 사를 볼 수 있다. 부인은 이씨 돈녕부 도정(都正)이 며 증서(贈判書) 이초로(李楚老)의 따 님, 관찰사 이춘원(李春元)의 손녀이다. 공(公)보다 22년 전에 돌아갔는데 지금에 와서 (合窆)였다. 공은 아들이 없어서 감역(監役) 이시 (李時煌)의 아들을 아들로 삼았는데 그가 바로 군(咸平君) (泓)이다. 전에 취 부인은 부사(府使) 시(洪 時亨)의 따님이고, 계취(繼娶)는 지사(知 事) 김상(金尙鉉)의 따님인데 6남 2녀를 낳았다. <선조/영성군 11대 ‧ 始42세> 아 ! 우 리 선 조 대 왕 . 거 룩 시 절 어 진 교 에 물 들 고 , 륭 신 도 많 았 다 많 은 경 사 스 런 씨 앗 으 로 , 우 리 부 친 을 낳 으 셨 고 공 께 서 는 귀 몸 으 로 , 선 비 의 가 있 으 셨 다 문 짝 을 달 때 에 사 립 짝 으 로 며 이 불 을 수 놓 은 일 도 부 들 처 럼 검 소 게 리 라 열 성 조 의 은 총 을 받 은 일 은 지 금 임 금 께 최 고 였 다 입 금 께 서 “아 아 , 저 우 리 선 조 대 왕 손 자 로 는 오 직 우 리 경 (卿 )만 이 지 금 까 지 살 아 있 구 나 ” 어 찌 공 경 치 않 으 랴 , 물 며 나 에 게 도 부 였 다 . 은 와 예 의 를 , 살 아 서 도 죽 어 서 도 다 리 전 서 (篆 書 )로 글 자 를 써 서 묘 소 에 우 뚝 세 우 니 이 에 임 금 께 서 양 이 나 별 과 같 다 고 글 씨 를 걸 으 셨 다 . 빛 나 고 도 밝 아 천 연 을 비 출 수 있 도 다 . 어 찌 여 기 까 지 이 르 렀 는 가 . 어 질 고 명 였 기 때 문 이 다 . 모 든 인 척 들 은 본 받 을 지 어 다 . 승 정 기 원 임 자 년 4월 일 불 초 자 泓 은 눈 물 을 뿌 리 며 쓴 다 . (出 處 -檜 原 君 墓 碑 文 )


李花 282 61 글을 열며 위기의 시대에 영웅이 등장다. 역사의 변기에서는 언제나 걸출 인물들이 나 나 자웅을 겨루고 란을 수습 최 의 승리자가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이다. 여말선초(麗末鮮初)의 격동기에도 예외 없 이 당대를 주름잡았던 많은 인물들이 역 사 름의 물꼬를 자신들의 의도대로 고자 경쟁적으로 대립과 충돌을 일으며 시대를 누볐다. 동아시아의 세력도가 게 들리면서 원(元)나라가 쇠고 명(明)나라가 발 여 고려(高麗)는 국제정세의 변에 민 감게 연계되는 국면에서 국가의 생존전 략을 짜야는 어려운 처지에 있게 된다. 오백년간 존속온 고려의 명맥이 내정의 문란과 국제정세의 도 변에 따라 국 가적 명운의 존망을 가르는 위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던 것이다. 사의 추이는 고려를 지려는 수구적 친원와 내정의 개을 주창는 친명 의 대결로 치닫고, 결국 위도군을 전 점으로 이성계 장군이 영도는 신진 사대부와 신 무장들이 결된 세력에게 정국의 주도권이 넘어갔다. 구세력의 몰락은 곧 옛 제도의 를 가 져왔으며, 이어 역성명으로 연결되면서 새 로운 나라 조선(朝鮮)이 개국된다. 왕조국가 에서 나라의 주인이 바뀌는 과정에서는 불 가게 정치적 입장의 차이로 갈등과 충 돌이 전개되었고, 이러 상에서 정권의 게모니를 둘러싼 의 잔치가 따른다. 광이 몰아치는 역사 전개의 오리 속 에 수많은 인물이 명멸는 예측불의 사가 연속되었다. 최영의 처과 21세기에서 바라본 종대왕 - 종대왕(릉) 598주년에 즈음여 - 이춘근(李春根) 본원 자문위원


62 李花 282 정몽주의 살은 고려의 운명을 마감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정도전과 방석의 죽음은 개국 초기의 정국 주도권 쟁전 을 종결짓고 조선왕조의 앞길을 여는 결 정적 점이 되었다. 질노도의 시대를 가로질러 최의 승 리를 거머쥔 인물이 누구인가? 조대왕 의 위로 과도기 정권을 맡았던 정종에 이어 왕위에 오른 종은 격동기 동안의 모든 역정을 결산고 새로운 세상을 정치적 승리를 선언다. 이것을 맹 문(會盟文)이라 부른다. 맹문의 선를 계기로 새로운 나라 조선은 국가의 기 을 고 였다. 맹문(會盟文) 維歲次甲申(1401)十一月己亥朔十六日甲寅 朝鮮國王 臣李謹率開國定社佐命功臣等 敢昭告于皇天上帝宗廟社 稷山川百神之靈 伏以國之有君 … … ○○○ ○○○ ○ ○○ / 國王臣李芳遠 가 종4년(1401, 갑신)에 머무른 11월 기 초루 16일 갑인일에 조선국왕 신 이방원은 삼가 개 국공신과 정사공신, 좌명공신을 거느리고 감 느님 과 조상 영 그리고 나라의 지신, 곡식신과 산천의 모든 신령님께 고니다. 엎드려 생각옵건대, 나라에 임금과 신, 친구들 이 있음은 가정에 부모, 자녀와 제가 있음과 같사오 니, 마땅 충성과 진실, 성실과 조심으로써 그 마음 을 굳게 맺어 길이 처음부 끝까지 보조야겠습니 다. 물며 신(神)에게 약속을 지는 정성된 마음으 로 를 마시고 께 맹세 자이겠습니까? 생각옵건대, 우리 상왕[조]께서 초인적인 무 덕(武德)을 바으로 늘과 사람의 도움을 얻으셨고, 제가 또 옆에서 모셔 업(業)을 도와 나라를 세 웠습니다. 우선 공신과 께 맹세여 충성과 믿음을 굳는데, 뜻밖에 권력을 가진 간신이 사심을 고 맹 세를 배신여 무리로 갈라지고 당를 만들어 어린이 를 옆에 끼고 적자(嫡子) 자리를 빼앗아 우리 제를 치려 였습니다. 나아가, 국가까지 위롭게 려 였는데, 다 천지, 종묘, 사직의 도움에 입고 충신과 명 선비가 정의에 분발여 음 무리는 저절로 무너지고, 적자요 맏이로써 상왕[정종]을 임금 으로 세워 천륜(天倫)이 바로 잡고 국가가 다시 안 정되었습니다. 또 공신들과 께 맹세를 맺었더니, 얼 마 못되어 모략는 간사 자가 또 그 맹세를 배반 고 새를 내어 집안싸움을 일으켜 군대를 동원여 난동을 부려서 친족, 공신의 장수와 정승이 기에 맞 추어 생각여 결정니, 그 죄로 처되었습니다. 이 는 맹세를 어기면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 재 징벌경 이 있으니 두려워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왕위를 이어받은 또 좌명공신과 께 를 마시며 맹세여 께 보전기를 약속 것이 지금 가 바뀌었습니다. 이로부는 세 번 맹세 신가 마음을 쳐 나를 도와 오늘에 이르도록 모든 경조사(慶弔事)가 있으면 서로 께 모여 니 아직도 전(前後)에 께 맹세지 않은 자는 그 마음이 굳지 못까 염려됩니 다. 따라서 길일을 골라 이에 세 번 맹세 신 들을 모아 상 모든 신께 밝 고며 다시 전번 맹 세를 찾아 그 뜻을 굳려니다. 이제부 맹세 뒤 에는 각자가 써, 서로 마음으로 충성고 성실 게 동여 서로 믿고, 사랑고 감싸주어, 친기는 친족과 같고 굳기가 쇠붙이와 돌같이 단단 것입니 다. 또 정성을 다고 충성을 다여 왕실을 돕고, 사사로운 욕심은 버리고 옳은 일을 따르며, 상 국가 를 안 고 국민을 이롭게 을 신념으로 삼을 것 입니다. 부지런 을 치고 처음부 끝까지 변이 없이 길이 복록을 누리고, 께 안정과 번영을 보 여 세세대대로 자손이 오늘을 잊지 말도록 겠습니다. 만약에 사심을 고 부정을 감추어 맹세를 깨고 을 등지며, 남몰래 두 마음을 어 모략을 꾸미고 집을 만들어 무리로 갈리고 당를 맺어 숨어서 뒤 집기를 계다면 천지(天地)를 속이고 신을 속이고 임금과 아비를 배반 것입니다. 그러니 저승에선 반 드시 신의 벌이 있을 것이고, 실에선 국가에 를 끼친 범법자로 벌을 받음은 그 자신에게만 그치지 않


李花 282 63 고, 가 자손에게 미칠 것이요, 당연 법으로써 논 이 역시 이미 맹세의 기록과 같은 것으로 이는 자기 가 취 것이니, 누구의 잘못이라 수 있겠습니까? 천지신명 앞에 제각기 엄숙 맹세여 길이 써 소이 없을 것입니다. 삼가 깨끗 술과 제물로써 이에 베어 밝 바 치오니 부디 받아 주시기 바라옵니다. / 국왕 신 이방원 위의 글은 종조 맹록이다. 1401년 2월 임금이 개국공신, 정사공신, 좌명공신 으로 책봉된 66명의 공신들과 모여서 맹 세고, 그 사실과 공신들의 성명 및 직위 를 작성 기록이다. 이 맹문은 종대왕이 개국 초의 정치 적 란을 극복고 왕위에 오른 , 신 들과 께 공동운명체적 결속을 위 단 의지를 내외에 명는 상징적 선문 의 의미가 있고, 아울러 충성 서약을 다짐 는 맹약서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이다. 바야로 정권 득과정의 시련과 갈등 을 봉고 본격적으로 국가의 발전방을 설정고 국가체제정비와 국리민복을 구 는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의미다. 왕권을 강면서 중앙과 지방의 정제도를 정 비고, 군사제도를 여 병권을 장악 는 동시에 국방을 강였으며 조세제 도와 노비제도를 정비는 등 내정을 개 여 국가기반의 을 고 잡아나갔다. 종대왕의 치적 ① 왕권강책 강력 왕권의 립을 위 공신과 외척 세력을 단 제거였다. ② 정제도의 정비 고려의 정부제도를 여 최고 국정 의체로 의정부를 만들고 6조(六曹) 직계제를 채여 정체계를 율적으로 관장으로 써 왕권과 중앙집권체제를 강였다. ③ 군사제도의 정비 사병을 여 정규군으로 입시켜 병권을 장악였으며, 병조가 군정(軍政) 을 맡고 삼군진무소가 군령(軍令)을 담당 도록 군사의 지체계를 정립였다. ④ 지 · 조세제도의 정비 양전(量田)사업을 실시고 경작지를 대 대여 식량증산을 기적으로 늘렸 다. 조세정책에서는 과전법(科田法)을 개 정여 세수를 증대시고 공신전의 세습 을 지시켰다. ⑤ 산업진정책 국농소(國農所)를 설치여 농업을 장려 고 김제 벽골제를 비롯여 수리시설을 정비였다. 서울과 각 도에 뽕나무를 심 어 잠실을 조성고, 양잠사업을 게 장 려였다. 또 시전을 개설여 상업을 진시켰으며 곡물과 우마의 교역소를 설 치고 저를 사용록 으로써 유경 제를 성였다. ⑥ 노비제도의 정리 법을 실시 구와 인구를 악 고, 고려 말 이래 빈발는 노비쟁송을 척 결고 국역 인구를 보였다.


64 李花 282 ⑦ 사정책의 실시 신문고(申聞鼓)를 설치 백성이 억울 일을 청원거나 상소 수 있게 였다. 그러나 서얼차대법(庶孼差待法)을 제정 여 신분제도를 고착시켜 서얼 차별이 영속되는 나쁜 사례를 남기기도 다. ⑧ 교육과 과거제도 권(勸學)을 위 사부당을 설치고 지방의 교를 증설였으며, 고려 이래로 관이 되었던 공거(貢擧) · 좌주문생제(座 主門生制)를 지였다. ⑨ 유교정책 국시(國是)인 유교의 산을 위 주자 가례(朱子家禮)를 보급고, 묘제(墓制), 례(婚禮), 장제례(葬祭禮)와 조관복제(朝 官服制)를 차례로 정였다. 그리고 불에 문묘를 재건였고 지방에 교와 당·서당을 설립였다. 억불정책으로 도첩제(度牒制) 실시와 전국적으로 12개 종 232개 사찰만 남기고 많은 승려를 속시켰다. ⑩ 문정책 「동국사략」 등 역사서적을 발간고 「조실록」을 찬였다. ⑪ 대외정책 조선의 대외관계는 명(明)과의 사대관계 와 여진(女眞) 및 왜(倭)와의 교린관계로 정리였다. ⑫ 왕위의 안정적 계승 왕조국가에서 왕위의 장자승계원칙은 가 장 바람직 정치덕목이다. 충녕대군에게 세자의 자리는 넘어갔고 곧바로 선위(禪 位)으로써 왕위의 안정적 계승절차를 매 듭지었다. 상왕(上王)인 종은 병권을 장 악고 세종의 국정운용이 안정궤도에 진 입도록 견여 융성 국가발전을 이 룰 수 있는 기을 마련 주었다. ⑬ 수도 성의 모습을 완성다 개국 초부 건설에 박차를 가던 성 의 도시건설을 마무리여 명실 공 왕 도(王都)로서의 격을 갖추었다. 창덕궁 을 짓고 경루를 완공여 궁궐의 배치 가 완벽게 이루어지고, 청계천 공사를 완료여 도시기반 시설이 정비되었다. 21세기에서 바라본 종대왕 우리나라의 역사는 근세에 들어 조선시 대로부 대민국시대로 연결되고 지금은 21세기이다. 다만, 조선시대에서 곧바로 나라 안의 역사적 변을 맞지 못고 일 제강점시대라는 치욕적 굴곡을 고스럽게 거치게 되었다는 점이 게 아쉽다. 광복 이 반도의 정치적 지은 민족의 망 대로 단일 국가를 수립는데 실고 두 개의 나라로 분단된 채 오늘에 이르렀다. ‘조가 조선을 건국듯이 ‘이승만’이 대민국을 건국다. 또 종이 조선의 기을 잡았듯이 ‘박정’가 경제적 기반 을 마련고, 조선은 세종시대의 문적 융성을 이루었으며 대민국은 올림 개 최로 상징되는 국가발전을 이루었다. 물론


李花 282 65 조선과 대민국은 역사적 경이 다르다. 그러나 이러 인물들을 위난을 극 복고 격동기를 정여 새로운 질서를 성는 지도자의 공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월 정세단과 결단의 의지, 나 아가 위민(爲民)의 집념과 멸사봉공(滅私 奉公)의 철 정신을 가지고 그 시대를 이끌었다는 점을 알 수 있는 것이다. 21세기의 대민국, 오늘날 반도의 정 치‧사적 상은 안으로 위롭다. 국내적으로는 지역감정과 이념 대립으로 나라가 좌우종 분열되어 있으며, 대외적 으로는 사방으로부 열강의 간섭과 견제 로 국가적 대응능력을 지속적으로 위받 고 있다. 자칫 잘못면 100년 전 나락으 로 떨어졌던 치욕의 역사를 반복지 않 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만 위중 시기 에 봉착고 있다고 보아야 다. 그러나 사 일반의 의식과 지도층의 인식은 매 우 이완되어 있고 위기 국면을 개려 는 강렬 유대감을 찾아볼 수 없다. 더군 다나 그릇된 역사인식과 잘못된 국가운영 으로 대민국의 명운을 으로 몰고 가는 상이 계속되고 있다. 이렇게 위중 때에 어진 민심을 수습고 위기의 식을 고취시켜 국민적 단결을 이끌어 내 야 다는 과제는 국민 모두의 비상 관 심사가 아닐 수 없다.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아 국력을 신장시 으로써 다시 국가를 반석 위에 올려놓 을 시대적 대안이 나나야만 대민국의 미래가 있다고 생각기 때문이다. 이러 관점에서 역사의 변곡점마다 위 기 개의 월 능력을 보여준 종대 왕을 다시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고려 유신(遺臣)의 상징인 정몽주를 역 사의 장에서 사라지게 으로써 아버지 조의 집권가도에 길을 열었으며 정도전 을 기습적으로 잘라내 신권(臣權)의 뿌리 를 뽑아냈고, 공신집단을 무력시는 외척의 개입을 발본여 왕권중심의 정치적 안정을 도모다. 발 더 나아가 세자를 과감게 바꾸어 명 왕자로 국 본(國本)을 삼아 순조로운 왕위승계를 이루 었다. 그래서 성대를 열 수 있었다. 이러 역사의 가르침에 따라 위기의 대 민국을 다시 부시기 위서는 종 대왕의 적을 습서 오늘의 실에 대 입여 결연 실천야 과제가 있다. 첫째, 전쟁을 일으켜 민족 역사에 죄 를 지은 공산집단을 대사의 공간에서 완벽 축출여 일의 길을 열어야다. 둘째, 반공국가 대민국의 정체성을 손 는 반체제 세력을 남김없이 발본색원 서 국민적 단을 도모야 다. 셋째, 자유민주주의 정치제도를 난언(亂言)으로 문란케 거나 건전 자본주의를 저 는 시대착오적 작(作態)를 철저 제압 서 번영을 추구야 다. 그래야만 세 계사적 진운(進運)에 발맞춰 국가의 융성 을 구가 수 있지 않겠는가! <종⁄령군 18대 ‧ 始42세>


66 李花 282 코로나19라는 오리가 우리들의 일 상을 이처럼 지속적으로 들 줄은 누구 도 예측 못다. 그동안 범던 일상이 복이었고 보 람이었다. 분주게 밖을 던 발걸음을 소중 가정으로 게 며 가족 사랑 의 깊이를 돈독게 만들기도 다. 그러 나 많은 시간 같이 있음으로 서 갈등으 로 인 다은 어떻게 어야 까? 노년기에는 몸이 아게 되고 정신력도 약되어 서럽고 슬지기가 쉽다. 이제는 체면이나 위선에서 벗어나 민낯으로 내면 을 드러내어 갈등을 어내야 가정이 목고 온기가 남을 것이다. 그러기 위 먼저 서로의 노고를 인정면서 감사, 칭찬, 배려, 존중, 사랑는 마음을 가져야 다. 내가 상대의 마음을 알아주면 상대도 내 마음을 알아주며, 내가 기 싸움을 벌이면 상대도 나를 기 싸움을 벌이게 된다. 사람이란 관심과 사랑이라는 먹이를 먹어 야 삶에 보람과 복을 느낀다. 부부간에 애착을 잘 성 사람은 주변 사람에게 도 균 있는 집중력을 보이지만 그렇지 못면 인에게 관심을 끌기 위 지나 치게 많은 을 쏟아 도여 고립된다. 따라서 부부 사랑을 충분 느낄 때 독립 적 삶도 가능며 우리가 즐기는 TV시청, 등산, 바둑, 골 등 여가도 재미가 있다. 갑자기 찾아온 소중 방문객에도 우선 적으로 눈을 맞추며 안아주는 여유로움이 보다 균 잡 생이 아닌가 싶다. 쓰레 기는 보기 싫은 자가 먼저 치우는 것 또 우리 일상의 진정 의미요, 사명이며 샘솟는 생명력이다. 더위에 열심 일는 산업체 일꾼들과 주부들에게도 감사의 박 수를 보낸다. <세종/광대군 20대 ‧ 始45세> 일상의 의미 이중(李重杓)


李花 282 67 승경원 건립기금 지원, 분원별 성금 집계 (2020.6.30.재) 시도별 지․분원별 성금액 시도별 지․분원별 성금액 시도별 지․분원별 성금액 시도별 지․분원별 성금액 서울 서울시 2,000,000 대전 서구 2,000,000 충북 영동군 2,000,000 소계 18,000,000 종로구 2,000,000 유성구 2,600,000 진천군 경북 경상북도 3,050,000 중구 대덕구 300,000 괴산군 1,000,000 시 2,000,000 용산구 2,000,000 소계 10,900,000 음성군 2,500,000 경주시 성동구 2,000,000 경기 경기도 3,000,000 단양군 김천시 광진구 2,000,000 달구 증군 2,000,000 안동시 동대문구 2,000,000 장안구 1,000,000 소계 25,700,000 구미시 중랑구 2,300,000 영구 1,100,000 세종충남 세종충남 2,300,000 영주시 2,680,000 성북구 1,000,000 권선구 500,000 세종시 2,000,000 영천시 1,000,000 도봉구 2,000,000 성남시 천안시 3,400,000 상주시 3,700,000 노원구 3,000,000 의정부시 공주시 2,000,000 문경시 2,000,000 은구 2,000,000 안양시 보령시 2,000,000 경산시 서대문구 2,000,000 부천시 2,000,000 아산시 2,300,000 군위군 마구 광명시 서산시 2,000,000 의성군 양천구 2,000,000 시 2,000,000 논산시 2,500,000 청송군 강서구 2,000,000 양주시 2,300,000 금산군 영양군 구로구 2,000,000 안산시 부여군 2,100,000 영덕군 2,000,000 금천구 2,000,000 고양시 2,000,000 서천군 청도군 영등구 2,000,000 과천시 청양군 3,000,000 고령군 동작구 1,500,000 남양주시 2,000,000 성군 2,600,000 성주군 2,000,000 관악구 2,000,000 구리시 예산군 2,000,000 칠곡군 2,000,000 서초구 2,200,000 성시 2,000,000 안군 2,000,000 예천군 1,000,000 강남구 2,000,000 시시 2,000,000 당진시 2,000,000 봉군 송구 2,000,000 군시 소계 32,200,000 울진군 1,300,000 강동구 2,000,000 남시 전북 전라북도 소계 22,730,000 강북구 2,180,000 용인시 완산구 1,800,000 경남 경상남도 100,000 소계 48,180,000 이천시 2,000,000 덕진구 4,000,000 창원시 1,800,000 부산 부산시 2,000,000 주시 2,300,000 군산시 울산시 중구 300,000 여주시 2,000,000 익산시 2,000,000 마산 1,000,000 서구 광주시 2,000,000 정읍시 진주시 1,300,000 동구 연천군 2,000,000 남원시 600,000 진 영도구 770,000 천시 2,300,000 김제시 영시 부산진구 2,000,000 가군 1,500,000 완주군 사천시 동래연제 2,000,000 양군 2,000,000 진안군 김시 1,000,000 남/수영구 1,000,000 안성시 2,000,000 무주군 밀양시 북구 김시 1,000,000 장수군 거제시 1,000,000 운대구 2,000,000 의왕시 임실군 양산시 사구 송 순창군 의령군 금정구 900,000 오산시 고창군 안군 강서구 1,200,000 소계 39,000,000 부안군 창녕군 사상구 강원 강원도 2,100,000 소계 8,400,000 고성군 기장군 춘천시 700,000 광주전남 광주전남 2,000,000 남군 소계 12,170,000 원주시 1,100,000 광주동구 동군 대구 대구시 6,000,000 강릉시 2,600,000 광주서구 산청군 1,000,000 중구 1,700,000 동시 광주남구 양군 1,500,000 동구 2,100,000 백시 3,200,000 광주북구 500,000 거창군 서구 2,100,000 속초시 광산구 천군 남구 700,000 삼척시 2,300,000 목신안 2,000,000 울주군 북구 2,550,000 천군 여수시 2,000,000 서마산 수성구 2,550,000 성군 300,000 순천시 소계 8,700,000 달서구 4,800,000 영월군 나주시 2,000,000 제주 제주도 900.000 달성군 창군 광양시 제주시 소계 22,500,000 정선군 담양군 서귀 인천 인천시 7,100,000 철원군 곡성군 북제주 중구 천군 1,000,000 구례군 1,800,000 소계 900,000 동구 양구군 고군 일본 일본지원 남구 500,000 인제군 보성군 관동 연수구 고성군 2,000,000 순군 관서 남동구 양양군 2,000,000 장군 2,400,000 소계 0 부구 1,500,000 소계 17,300,000 강진군 2,000,000 북미주 로스엔젤리스 계양구 충북 충청북도 4,300,000 남군 샌란시스코 2,096,192 서구 청주상당 2,000,000 영암군 2,000,000 시카고 1,310,000 강군 청주덕 2,600,000 무안군 300,000 워싱 510,000 옹진군 청주청원 2,000,000 군 뉴욕뉴저지 소계 9,100,000 충주시 2,000,000 영광군 스 대전 대전시 2,000,000 제천시 장성군 캐나다 동구 2,000,000 보은군 3,300,000 완도군 소계 3,916,192 중구 2,000,000 옥천군 2,000,000 진도군 총계 279,696,192


68 李花 282 승경원 건립기금 종, 봉, 기 단체별 성금 집계 (2020.6.30.재) 제왕별 종별 성금액 제왕별 종별 성금액 봉별 성금액 宮進 시중공 世宗 의군 3,000,000 준경묘영경묘 1,000,000 勇夫 장사공 2,000,000 계양군 제릉봉 2,000,000 陽茂 주부공 3,000,000 의창군 릉봉 10,800,000 穆祖 안천대군 3,000,000 남군 17,900,000 英陵봉 2,000,000 안원대군 3,000,000 밀성군 10,000,000 장사릉봉 2,000,000 안대군 4,300,000 수춘군 6,200,000 광릉봉 2,000,000 안창대군 2,400,000 익군 창릉봉 2,000,000 안대군 3,600,000 영군 공릉봉 3,000,000 翼祖 원대군 영군 4,880,000 靖陵봉 2,210,000 양대군 담양군 12,500,000 목릉봉 2,000,000 度祖 완창대군 9,300,000 世祖 덕원군 22,000,000 명릉봉 2,000,000 완원대군 3,000,000 창원군 10,000,000 의릉봉 2,000,000 완천대군 德宗 월산대군 14,600,000 景陵봉 2,000,000 桓祖 완대군 10,300,000 成宗 계성군 6,000,000 洪陵봉 2,000,000 의안대군 1,800,000 안양군 20,000,000 대빈묘봉 1,000,000 太祖 진안대군 2,000,000 완원군 14,160,000 선순릉봉 2,000,000 릉봉 10,000,000 산군 10,300,000 익안대군 5,300,000 광주숭모 2,000,000 봉안군 7,800,000 안대군 5,350,000 견성군 3,000,000 定宗 의군 7,000,000 기 단체 성금액 익양군 12,000,000 순군 3,000,000 서봉 5,000,000 이성군 2,000,000 선성군 53,230,000 정 2,000,000 경명군 10,800,000 종의군 3,000,000 의친왕가 1,000,000 전성군 9,700,000 진남군 원정 300,000 13,500,000 무산군 5,000,000 총무부위원 일동 1,200,000 수도군 3,000,000 영산군 8,500,000 재정부위원 일동 1,000,000 임언군 5,000,000 조직1부위원 일동 1,000,000 운천군 3,000,000 석보군 조직2부위원 일동 1,250,000 덕천군 29,300,000 양원군 24,800,000 제무부위원 일동 2,000,000 제복부위원 일동 500,000 中宗 임성군 안군 5,600,000 금원군 서울시지원 여성부 2,000,000 도군 7,000,000 3,000,000 영양군 종1기 300,000 장천군 3,000,000 5,200,000 종2기 300,000 정석군 4,200,000 덕양군 102,730,000 종3기 300,000 무림군 10,000,000 봉성군 3,000,000 종4기 300,000 太宗 양녕대군(재)지덕사 55,900,000 덕대원군 10,400,000 종6기 300,000 宣祖 령대군(사)청권사 51,000,000 신성군 3,000,000 종7기 300,000 성녕대군 20,000,000 순군 종8기 300,000 경녕군 13,900,000 인성군 30,000,000 종10기 1,000,000 녕군 5,300,000 경창군 2,500,000 종11기 300,000 온녕군 8,230,000 경군 3,300,000 전문과정2기 300,000 근녕군 10,000,000 인군 미술분과위원 1,000,000 령군 10,500,000 영성군 3,600,000 전주이씨수 1,000,000 령군 6,500,000 元宗 능원대군 30만원 이상 성자는 승경원 내에 영구 게시 되며, 30만원 이 모든 성자도 ‘성록’에 게재고 배부 예정입니다. 아울러 30만원 이상 성자에게는 『종약 원 50년사』(6만원 상당)를, 50만원 이상 성자에게는 『과거급제자총람』(15만원 상 당)을 기증 드립니다. 령군 仁祖 소세자 3,000,000 익녕군 11,500,000 인대군 3,000,000 世宗 임영대군 13,600,000 숭선군 800,000 광대군 53,500,000 낙선군 금성대군 누 계 911,040,000 영응대군 35,160,000 ※ 상기 금액은 종별(소 ) 집계금액으로, 세부 내용은 별도로 게재였음. ※ 양녕대군는 5자 장도정종 임. ※ 령대군는 낙주재종중 임.


李花 282 69 ■ 단체 (20. 5. 21~6. 30) <기간 내 성단체 없음> ■ 개인 (20. 5. 21~6. 30) 별원원 가입을 영니다 (2020.5.16 ~ 6.30) 별원원 연비 납부 종친(無順) (2020.5.16 ~ 6.30) 종묘제례보존 가입을 영니다 (2020.5.16 ~ 6.30) <기간 내 가입자 없음> 종묘제례보존 연비 납부 종친(無順) (2020.5.16 ~ 6.30) 300,000 영우(부산 운대구) 100,000 경군종 금원군종 수춘군종 완대군종 50,000 길(경남 진주시) 병대(서울 성동구) 연재(전남 순천시) 영수(충남 아산시) 30,000 정 고문 복례 이사 천주 이사 강서(서울 영등구) 찬(경기 안양시) 광용(서울 강서구) 성대(경기 고양시) 성(경남 거제시) 승백(경기 안산시) 용선(강원 삼척시) 용섭(서울 금천구) 우철(서울 노원구) 운(서울 노원구) 원주(서울 종로구) 원중(경기 안양시) 윤근(경남 창원시) 재춘(경기 구리시) 정득(경북 문경시) 종열(대전 중구) 창근(경기 부천시) 천석(전남 완도군) 신(전남 순천시) 규(강원 삼척시) 등록 번 명 대수 주소 직업(직책) 가입비 등록 일자 2232 東宰 령 19 서울 구로구 구로중앙로 32가길 70, 302 청권사 사무국장 200,000 5.21 2233 範洙 안창 22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로 50길 15 성동구 분원장 200,000 5.26 2234 學在 진안 21 서울 성동구 왕십리로 21나길 11-4 전 시지원 사무국장 200,000 6.18 2235 峻夏 광 16 서울 금천구 문성로5길 40, 3층 시지원 총무이사 200,000 6.24 30,000 정 고문 석무 재정이사 천주 이사 맹수(서울 은구) 무철(서울 은구) 성대(경기 고양시) 승중(경기 주시) 용선(서울 관악구) 종(경기 시) 찬(경기 안양시) 진(서울 중랑구) 승 경 원 건 립 기 금 모 금 성 자 명 단 전기(2013.11.5~2020.5.20) : 1,597,808,826원 총계 : 1,599,158,826원 당기(2020.5.21~2020.6.30) : 1,350,000원 번 명 별 금 액 주 소 직업(직책) 일 자 885 鎭三 영응15 50,000 충남 아산시 설산길 6 종묘제례보존 원 6.5 886 昌根 수도17 200,000 광주 북구 양산신촌길 24-2, 2층 6.12 887 俊九 견성15 300,000 경기 의정부시 범골로 23, 304동 803 종 자문위원 6.15 888 占石 익안17 300,000 대구 북구 연암로25길 11, 2동 206 6.15 889 埈 안20 500,000 서울 송구 거마로3길 12, 301 안대군 의령군종장 6.19 계 1,350,000 ※ 886번 昌根 종친은 19.10.30(30만원)을 내 주셨기에 총 50만원을 성.


70 李花 282 사직대제보존 가입을 영니다 (2020.5.16 ~ 6.30) 사직대제보존 연비 납부 종친(無順) (2020.5.16 ~ 6.30) 입금내역을 찾습니다 (2020.1.1 ~ 6.30) 임원 찬금 납부 (2020.5.16 ~ 6.30) 1,000,000 치중 제2조직이사 무 이사 병진 이사 복례 이사 승 이사 재 이사 종 이사 천주 이사 별 성금(無順) (2020.5.16 ~ 6.30) 왕릉제 성자 명단(無順) 입금일 은(예금주) 금액 장기장 내용 찾는 내용 3.15 국민(종약원) 1만원 이금란 입금내역 5.18 농(종약원) 20만원 이종주 입금내역 6.9 농(종약원) 3만원 전주이씨대동종약원부 입금내역 ※최근 스마, 레뱅, 인넷뱅을 이용 송금이 많아지면서 본원에 송금된 금액 중 일부가 미인 되는 경우가 발 생고 있습니다. 스마을 이용여 본원에 송금 경우에는 입금자를 찾기가 매우 어려운 상이므로, 송금 에 는 반드시 본원에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30,000 광주(경기 고양시) 성대(경기 고양시) 승백(경기 안산시) 500,000 진남군종 200,000 범직 제1문이사 150,000 용 자문위원 50,000 규 자문위원 봉기(서울 성북구) (본원 조직1부위원) 등록 번 명 대수 주소 직업(직책) 가입비 등록 일자 67 錫雨 익양 16 경기 안양시 동안구 동안로 101, 103동 1901 본원 부이사장 100,000 5.20 68 慶薰 봉안 14 경기 부천시 원미구 역곡로19번길 26, 101동 1704 본원 총무이사 100,000 5.21 69 承昌 양녕 16 서울 강북구 노로32길 22-14 본원 부이사장 100,000 5.21 70 在福 의 16 서울 금천구 독산로80가길 6, 4층 본원 청년이사 100,000 6.12 71 潤柱 밀성 18 경기 주시 광면 소령원길 48 본원 감사 100,000 6.12 72 柱英 월산 15 서울 동작구 사당로 164-1, B동 302 본원 부이사장 100,000 6.15 73 龍宰 성녕 19 경기 천시 군내면 국로 1536-10, 103동 701 본원 제무부 차장 100,000 6.15 사릉 제(20.5.20) 종근(3만원), 문철(5만원), 광주숭모(5만원), 복례(5만원), 엄중오(10만원), 대빈묘봉(5만원), 릉봉 (5만원), 춘용(10만원), 강릉봉(5만원), 원주(5만원), 여산송씨문중(10만원), 천재(5만원), 익선(5만 원), 동열(5만원), 의릉봉(5만원), 정수(5만원), 주정씨대종(20만원), 래길(5만원), 洪陵봉(5만 원), 敬陵봉(5만원), 복용(5만원), 원릉봉(10만원), 靖陵봉(5만원), 온릉봉(5만원), 순강원 봉(5만원), 영월군분원(10만원) 경원 제(20.5.24) 사단법인 청권사(10만원), 구로구분원(5만원), 은구분원(5만원), 구(3만원), 순(20만원), 인중(20만원), 강설(10만원), 재원(5만원), 준(5만원), 반남박씨대종중(30만원), 반남박씨 오창공종중(10만원), 박영순(5만 원), 장릉봉(10만원), 장사릉봉(5만원), 릉봉(5만원), 목릉봉(5만원), 온릉봉(5만 원), 靖陵봉(5만원), 洪陵봉(5만원), 숭릉봉(5만원), 순강원봉(5만원), 순창원봉(5만원), 인원봉(5만원), 대빈묘봉(5만원), 소경원숭모(5만원), 광주숭모(5만원)


李花 282 71 책소개 개 정 증 보 s령대군 15대손 東宇 s사)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서울별시 지원 감사 *사)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서울시 서초구분원장 *인릉(순조숙제)봉 장 *성균관대교 총동창 부장 ◦수상:녹조근정장,청백봉사상등 다수 *서초구민신문,매일리스뉴스(논설위원) 이름설가, s서초구청 OK민원센장,종민원실장,서초2동장,적계장 *KBS TV등에 160 출연채널A.TV.명랑결단에 박근,노우.김대중 이승만대령과 이병철 이건 구본무 정몽구장 등 이름이 출연 *작명경력45년,서초구청에서 만 16년간 6,000여 명 작명 *서울시 작명의 달인 선발(2010년) *서초구 서운로13중앙로얄 빌딩 1404 양재역1번 출구 서초구청 외교센 건너 *명 신생아 작명, 개명, 아,상 문의 H.P 010-2804-6438, 02)565-6438 정가15,000원(우리은1002-115-265927이동우) 저자 이동우 낸곳: 솜미디어


〈李花報〉에 게재 원고를 아래와 같이 모집오니, 종친 여러분의 많은 고를 바랍니다. 1. 내용 가)종사에 관 미담이나 중요 사 제언 나)종사와 관련 있는 수·콩·기문 다)종친 교양을 위 논술문 라)종친 동정 및 영광의 얼굴 소식 2. 기 간 : 연중 계속 접수 3. 분 량 : 200자 원고지 15장 이내 4. 첨부물 : 증명 사진 1매 및 관련자료(·대·이름·주소·연락처 및 직업) 5. 채된 원고는 소정의 원고료와 1년간 이보를 무료로 보내드립니다. 6. 제출처 : 서울시 종로구 돈문로 89(와룡동) 이관 4층 문부 사)전주이씨대동종약원 문부(이-메일 : [email protected]) 7. 이지에서도 원고를 접수 받습니다 ※ 이지 주소 http://www.rfo.co.kr 이보 원고 모집 연초 발생 코로나19가 종식이 되지 않은 채 금년 상반기를 마무리습니다. 몸도 마음도 어수선게 6개월이 지나고 반기를 맞이면서, 소소 일상생을 수 있는 게 얼마나 감사지 다시 번 느끼게 됩니다. 올 가을에는, 아니 올 겨울에는 반드시 안 일상을 보낼 수 있기를 기대며 여름을 맞이니다. 모두 건강 여 름 보내시길 기원니다. <문이사 범직 외 문위원 일동> 집 기 李花報 구독 倍加 운동을 시다 全州李氏의 宗報인 이보를 모르고 지내는 종친이 많습니다. 종사에 참여 수 있도록 상 정보를 교시어 이보를 알리고 보 주시기 바랍니다. 이보를 일가들의 동정을 알리고 상 정보를 교 수 있습니다. 참여의 문은 상 열려 있습니다. 동정란 에 게재 소식과 자랑스런 종친의 이야기와 시, 수, 교양, 논문 등 알리고 싶은 원고를 기다립니다. ※ 종친 기업의 찬 광고를 모집니다. 본 이보는 종친 여러분의 구독료와 광고수익금으로 운영, 간되고 있습니다. 게재소식 및 광고 문의 : 종약원 문부 전(02)765-2124 / 스(02)742-1676 이보 구독 계좌번 : 예금주 (사)전주이씨대동종약원 국민은 817-01-0031-375 농 053-01-162048 우 체 국 010579-01-000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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