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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by 이화보, 2023-04-12 21:03:12

이화 288호

이화 288호

Keywords: 전주이씨,이화

2021 / 7 · 8월 (권 288) 숭 조 돈 종 사진설명 : 종묘이안제 (사진 제공:국문재재단) 2. 승경원 건립을 기다리며 4. 종묘 이안제 봉 6. 2021년 종묘대제 봉 7. 본원 소식 14. 종친 동정 및 영광의 얼굴 16. 2021년도 2기 이장생 선발 안내 18. <지원방> 서울시지원 22. 제사는 무엇인가(8) ………………………………………………………… 본원 문이사/문박사 이범직(李範稷) 25. 조선왕릉실록(3) / 신의고 제릉 ……………………………………………………………… 李花보 주 · 시인 이규원(李揆元) 30. 조실록을 본 양 천도와 궁궐 조성 ………………………………………………………………………………………… 이선구(李善求) 33. 순리를 버린 선 …………………………………………………………………… 본원 부이사장 이승창(李承昌) 37. 만로 보는 역사이야기 102 ………………………………………………………………………………………… 이전경(李田景) 39. 어머니 봉양일기(5) ………………………………………………………………… 본원 문부 차장 이병준(李炳俊) 45. 숭릉 정자각 보수공사 준공 고유제를 마치고 ………………………………………………………………… 본원 전례부 차장 이상(李商訓) 48. 영· 영릉(英․ 寧陵) 유적 종 정비사업 완공 …………………………………………………………… 경기도지원 문이사 이보(李輔澤) 52. 조선시대 여름철 서속 고찰 …………………………………………………………………… 산군종장 이근(李根煥) 54. 종부 수님을 기리며 ………………………………………………………… 완대군종 명예장 이동재(李東宰) 56. 진경 박사의 생 치아 건강 …………………………………………………………………………… 서울뉴욕치과 원장 진경 58. 부모님이 그리운 날에는 …………………………………………………………… 월산대군종 부장 이재기(李在璣) 59. 오월의 청춘 …………………………………………………………………………………………… 白思 이진우 60. <放下着(방착)> 마음을 내려놓고 63. 승경원 건립기금 모금 성자 명단 66. 별원원 가입을 영니다 66. 종묘제례보존 가입을 영니다 68. 자동출금(CMS) 등록자 명단 70. 종묘대제 봉위원 및 제관 명단 발인/이귀남 집인/이범직 주 /이규원 발처/사단법인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주 소/서울 종로구 돈문로 89 우번/03131 전 /(02)765-2124 스/(02)742-1676 인쇄인/이재복 인쇄처/(주)경인인쇄 전 /(02)2272-8063 발 /2021년 7월 1일 등 록/1973년 12월 31일 이지(http://rfo.co.kr) 이메일([email protected]) 값 2,000원 (1년 6, 정기구독 10,000원)


2 李花 288 승경원 건립을 기다리며 이사장 이귀남(李貴男) 안녕십니까? 그동안 승경원 건립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건립기금 모금에 동참 주신 종친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승경원(舊 조경재)의 건립은 ‘궐사중인 2세부 16세까지의 선조 사당을 짓고 위를 봉안여 매년 제을 봉고자 는 우리 전주이씨 종친의 막중 사업’입니다. 종약원은 2013년 상임이사와 이사의 논의를 거쳐 승경원을 건립기로 고 그 11월부 건립기금을 모금 온 결과 2020년 12월 31일 재, 개인 참여자 2100여 명과 종 ․ 봉 ․ 지원 ․ 분원 ․ 기 단체 등 354개 의 단체에서 이자를 금액으로 16억 1800여 만원이 모금되었습 니다. 이중 지매입, 설계비 등의 비용을 지불고 10억 3000여 만원이 남아있었습니다.


李花 288 3 종약원은 그동안 승경원 건립 부지 선정과 일부 부지 매입, 설계와 설계 변경, 관계 기관의 가 등 진과정에서 절차적인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종친들의 적극적인 모금동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응도가 떨어져 갔습니다. 더구나 설계대로 진시 30여 억원이 소요되는 상에서 20여 억원의 적자를 안고 건축 줄 기부를 건설사가 나나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상이 되었습니다. 이러 이유 등으로 승경원 건립은 답보 상에 있었습니다. 승경원 건립이 원 진되지 못 상에서, 건축법에 따라 건축가 상 금년 9월 19일 이내에 착공을 야 는 가운데 최근 DL그룹(옛 대림그룹) 이준용 명예장님이 승경원 건립기금으로 사재 5억원을 기부 주셨습니다. 종약원은 이에 을 받아 본격적으로 공사 착수를 려고 면서, 종친 여러분의 양와 조를 구려고 니다. 재 남은 15억 여 원의 금액으로는 당초 설계고자 던 지층과 기념관을 지을 수 없는 상이므로 사당과 수각, 관리동 등으로 축소여 건립 수밖에 없다고 생각고 있습니다. 이 경우에도 상당 금액의 추가 모금이 요 것으로 생각되고 종친 여러분의 조가 요 상입니다. 최근 종약원은 이사의 의결(서면결의)로 승경원의 설계변경, 시공업자 선정 등 중요사을 의 소집이 가능 상임이사의 결의에 위임기로 였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승경원 건립의 중요사을 상임이사 결정에 따라 건축사업을 수고자 니다. 앞으로 승경원은 거대거나 롭지는 않지만 위엄을 잃지 않고 내실 있게 건설되도록 겠습니다. 승경원 건립이 늦어진 점 대단 송구게 생각며, 위 사에 대여 종친 여러분의 이와 조를 당부드립니다. 감사니다.


4 李花 288 종묘 이안제 봉 -151년 만에 종묘 정전 신주, 창덕궁 구선원전에 임시 봉안종묘 정전의 수리를 위 각 실에 봉안된 49위의 신주를 옮기는 종묘 이안제가 6월 5 일 진됐다. 문재청 궁능유적본부(본부장 나명)는 국보인 종묘 정전의 수리를 위 조선시대 의례 기록인 조선왕조실록 등을 참고여 이안제를 준비, 종묘제례보존 (장 이귀남)에서 고유제봉과 이안렬을 맡았고 국문재재단에서 진다. 이안제는 1870년(고종 7) 종묘 정전과 영녕전의 건물 수리로 인 대규모 이안 이 151년만의 일이다. 이날 사는 오전 10시 종묘제례보존에서 제관 및 이안 인원이 참여 가운데 신 주의 이안을 알리는 이안고유제를 시작으로 진됐다. 고유제 봉 신주를 모신 제 관들이 종묘에서 출발 종묘 외대문에 설치된 임시 이안소까지 도보 이동 신주는 종 묘 외대문에서 무진동 차량을 이용 창덕궁 돈문까지 모셨다. 이어 창덕궁 돈문 앞 에서 창덕궁 구선원전(이안소)까지 다시 도보로 이동 신주를 봉안는 순서로 진됐다. 이안제에는 종묘제례보존에서 19명의 관과 49명의 집사, 집례와 실외제관, 각 부 위원 등을 사관계자 98명의 인원이 참여으며, 민속주왕주에서 왕주 4말을


李花 288 5 기증다. 신주 이안 때는 가마인 여(輿)에 예를 갖추어 모셔야 다. 그러나 코로나19 산 려 등 수상을 감안여 약식으로 모셨다. (제관명단 73면 참조) , 이안된 신주는 종묘 정전의 수리가 마무리되는 2022년에 종묘 정전으로 안 (還安)이 될 예정이다. 이번 이안제는 일반에게는 장을 공개지 않는 대신 사를 영상으로 촬영여 문 재청 유브를 공개다. * 문재청 유브: http://www.youtube.com/user/chluvu


6 李花 288 2021년 종묘대제 봉 - 5월 2일 일요일, 무관중 비공개로 진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종묘대제가 지난 5월 2일 일요일, 종묘 일원에서 문재청 국립무유산원 주최, 종묘대제봉위원(종묘제례보 존, 종묘제례악보존, 아악일무보존)와 국문재재단이 주관 가운데 봉됐다. 종묘대제는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와 정신을 상징고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규모가 제례의식으로서 엄격고 장엄게 거되는 왕실의례이다. 매년 5월 첫째 주 일요일에 봉되는 종묘대제는 2020년도에는 코로나19의 산으로 봉지 못고 고유제로 대신고, 금년에는 정부의 사적 거리두기 방역지침에 따 라 종묘 입장을 100명 이내로 정여 무관중 비공개로 진다. 따라서 금년 제 은 어가렬도 재지 못고 제관과 일무원도 최소인원이 참여다. 이날 오전 10시부 12시에는 영녕전 16실 34위에 대 제이 봉됐고, 오 3시 부 5시까지는 정전 19실 49위와 칠사당 제이 봉됐다. 공신당 제은 봉지 않았다. 이번 제에는 재(在煥) 이사가 생(犧牲)의 [모(毛)]과 [(血)] 기증 고, 민속주왕주에서 왕주 2말과, 국순당에서는 차례주 384병(1.8리)를 기증다. <봉위원 및 제관명단 70면 참조>


李花 288 7 제698 상임이사(2021. 4. 13.) ◎ 참석 : 상임이사 14명중 14명 참석 ◎ 의안 심의 결과 ․ 2021년도 종묘대제 봉의 건 - 코로나19 방역수칙 이에 따라 참여 인원은 대제 봉시 장소와 동시간대에 100명 이내로 고, 소요예산 국고 1억4,500만원을 승인며, 야간봉은 코로나19 종식 일자를 정여 시고, 1차 부장의(4.23.), 2차 부장의(5.1.), 가의 (5.7. 부장/차장 참석) 진기로 . ․ 승경원 건립에 관 건 - 기금 모금, 건설업체 등에 대 경과 보고는 것으로 고, 모금 잔액을 고려여 종약원 위에 어긋나지 않는 수준에서 건립을 검기로 . ◎ 보고 사 ․ 종14기 전수교육은 시는 게 원칙이며, 강사에 대여 외부에서 이견이 많으니 문제가 야기되지 않도록 강사를 재배정여 이사장님께 보고 시도록 지시. . 외부사 일정을 상임이사 단체 대방에 게재기로 . . 상임이사 개최 일자를 매월 둘째 주 요일 오 3시에 개최기로 . . 조선왕릉제 무문재 신청 관련여 ‘배법’에 대 이견이 있음으로 5월 상임이사 에서 논의기로 . 본원 소식


8 李花 288 제699 상임이사(2021. 5. 11.) ◎ 참석 : 상임이사 14명중 13명 참석 ◎ 의안 심의 결과 ․ 2021년도 건원릉친례 봉의 건 - 코로나19 방역수칙을 감안여 동시간대 참석인원은 제관, 산릉렬, 참반원 등 100명 이내로 고, 소요예산 1,800만원을 원안대로 승인 . ․ 제 배례법에 관 건 - 2020년 10월 15일 제출 ‘조선왕릉 제 국가무문재 신청’ 자체는 그대로 . ◎ 기사 ․ 승경원 건립에 관 건 - 승경원 건립 추진위원를 구성되, 전권(全權)을 주지 말고 최종 결정은 상임이사 에서 며, 설계 변경여 진고, 인선은 이사장님께 위임기로 . ․ 2021.5.2. 종묘대제시 일무 절차에 대 종묘제례보존 측 의견과 일무보존 측의 답 설명. . 종묘 제기 중 목두 발주 과정 설명 . 영녕전 초관 선정 과정 설명 . 드라마 ‘철인왕’ 방영 관련여 방송신심의위원 측에 의 강남구 지역 某단체의 동 설명. 제700 상임이사(2021. 6. 8.) ◎ 참석 : 상임이사 14명중 12명 참석 ◎ 의안 심의 결과 ․ 승경원 건립에 관 건 - 사당의 규모 축소와 9월 19일 이전에 착공을 여야 으로 입찰공고→장설명→ 입찰제안서 접수/마감→우선 입찰대상자 선정→시공업체 선정→계약 등 추진 일정 을 부이사장, 총무이사, 전례이사와 논의여 보고기로 . ◎ 기사 ․ 장‧사릉봉 주관단체 선정은 의 결정기로 . . 종약원 50년사 이 백서 발은 50년사 발간 이부 연보 식으로 정리되 인 원 구성 등은 문이사 중심으로 진기로 . . 종약원 간물 중 도서류 잔여물량 처리는 일부 목에 대여 무가로 배급되 발송 비는 자부담으로 는 내용 등을 보(이지 )여 처리기로 . . 인원 석물 변경 신청은 6월 17일 전례자문의 개최여 논의기로 .


李花 288 9 본원, 전수교육 종14기 개강 본원은 5월 8일 요일 오 1시, 본원 강당에서 2021년 전수교육 종14기 개강식 을 가졌다. 이 교육은 종약원이 문재청으로부 국가무문재 종묘제례와 사직대제 의 보유단체로 선정되어 국가무문재의 전수 및 보존을 위 문재보법 제41조 제2의 규정에 의여 2000년도부 전수교육을 실시 오고 있다. 이번 종 14기 교육은 코로나19의 영으로 실내 인원을 축소 조정여 지원, 종 , 봉의 추천을 받은 교육생 46명이 오 시간에만 교육을 받게 되며 11월 20일 까지 27에 걸쳐 진될 예정이다. 본원 미술위원, 제4 이미술 개최 본원 미술위원(장 男兒)는 6월 7일부 14일까지 제주 도 디오리오르 아갤러리에서 제4 이미술 전시를 개 최다. 이번 전시는 새로 구성된 이미술 10명이 남아 장을 중심으로 서예, 동양, 서양, 조소 등의 작을 전 시는 시간을 가졌다. 본원 미술위원의 미술전시는 제1 이종미전 (1983.4.세종문관), 제2 이관 준공기념 원로작가 초대전(1985.11. 이관), 제3 이미술전(2005.4.세종문 관)을 실시 바 있다.


10 李花 288 덕양군종, 정장금 수여식 거 경북 봉군분원, 정기총 개최 장 ‧ 사릉봉, 승경원 건립기금 기 지원 ‧ 분원 ‧ 종 ‧ 봉 소식 경북 봉군분원은 지난 4월 15일 분원 의실에서 정기총를 개최고 2020년 결 산 ‧ 2021년 예산을 승인다. 또 분원장 승(온녕군 19대), 부분원장 병준(본원 문 부 수석차장) ‧ 옥(봉성병원 원장부인)을 추대고 사무국장 종성 종친을 임명 다. 승 신임 분원장은 봉조경 대이며, 온녕군 산군종 대의원을 역임 병 종친의 조카이다. 덕양군종(이사 장 有燮)는 지난 5 월 15일 요일 11 시에 성남시 궁내동 에 위치 정사 사당 앞에서 정장 생 20명 및 부 등 60여 명이 참석 가운데 정장금 수여식을 축소여 진다. 코로나로 인여 사에 참석 지 못 일반 장생 232명은 각자 생 계좌로 장금을 입금였다. <덕양군종중> 장 ‧ 사릉봉(장 載天) 재천 장(사진 가운데)과 기용 총무이사(사 진 오른쪽)는 지난 5월 12일 종약원 을 방문, 승경원 건립기금 1천만원을 기다. 장 ‧ 사릉봉는 승경원 건립기금으로 2014년 4월 21일 2백 만원을 성여 총1200만원을 기 다.


李花 288 11 지원․ 분원명 (지원․ 분원장) 수 일시 장소 참석 인원 중요의제 사진 서울시지원(泰鎬) 64 21.5.21(금) 11:00 본원 강당 123 △예산 결산 승인 ① 강북구(光宰) 24 21.2.7(일) 18:00 와룡선갈비 17 △예산 결산 승인 ② 종로구(昌秀) 64 21.6.3(목) 17:00 본원 강당 35 △예산 결산 승인 △임원 개선: 鍾權 신임 분원장 ③ 금천구(在福) 25 21.6.7(월) 18:00 분원 사무실 앞 32 △예산 결산 승인 ④ 부산 부산진구(尙龍) 47 21.4.15(목) 17:00 아이온 12 △예산 결산 승인 대구시지원(成求) 36 21.5.28(금) 11:00 지원 의실 23 △예산 결산 승인 △임원 개선 : 敦模 신임 지원장 충북 증군(商旭) 29 21.5.10(월) 서면 결의 192 △예산 결산 승인 △임원 개선 : 文宰 신임 분원장 제천시(炳觀) 65 21.5.29() 11:00 서면 결의 150 △예산 결산 승인 경북 봉군(起洛) 2021 21.4.15(목) 11:00 분원 의실 21 △예산 결산 승인 △임원 개선 : 승 신임 분원장 경남 고성군(判權) 41 21.4.19(월) 11:00 분원 사무실 30 △예산 결산 승인 △임원 개선 : 康允 신임 분원장 ⑤ 제주별자치도(哲憲) 2021 21.5.1() 10:30 제주계성관 61 △예산 결산 승인 ⑥ ①서울시지원 ②서울 강북구분원 정기총 결과보고 ■ 지원·분원


12 李花 288 ③서울 종로구분원 ④서울 금천구분원 ⑤경남 고성군분원 ⑥제주별자치도지원 종명 (종장) 수 일시 장소 참석 인원 중요의제 사진 선성군(致中) 61 21.5.22() 10:30 선덕재 62 △2월 정기총 서면결의 △임시총 ① 진남군(秀憲) 53 21.5.12(수) 10:30 종 사무실 서면결의 54 △예산 결산 승인 △임원 개선: 栢圭 신임 장 녕군(政秀) 67 21.3.28(일) 11:00 영민사 10 △예산 결산 승인 령군(相學) 2021 21.5.15() 12:00 숭도사 22 △예산 결산 승인 △임원 개선: 栢圭 신임 장 임영대군(鐘南) 55 20.12.30 11:00 종 사무실 서면 결의 176 △예산 결산 승인 ② 수춘군(千柱) 41 21.3.26(금) 11:00 숭조각 35 △예산 결산 승인 영산군(武珩) 60 21.4.3() 1:00 일장 22 △예산 결산 승인 안군(泰斗) 21 21.4.4(일) 10:00 안군 묘정 내 21 △예산 결산 승인 △임원 개선: 義基 신임 장 영양군(海吉) 15 21.4.25(일) 11:00 영산정 13 △예산 결산 승인 ③ ■ 종


李花 288 13 廟壇陵 園號墓 尊 號 日 時 場 所 在位者 主 管 祭 官 名 初獻官 監 察 亞獻官 贊 者 終獻官 大 祝 典祀官 陵 司 祝 史 齋 郞 執尊者 執事者 謁者 解說 裕陵 純宗孝皇帝 順明孝皇后 閔氏 純貞孝皇后 尹氏 4.25 11:30 경기도 남양주시 유릉로 29 유릉봉 (장 完洙) 完洙 泰喜 起鎭 亨洙 泰成 殷鎔 淳天 鍾國 道宰 起和 康日 康孝 會洙 鐘祐 順陵 恭惠王后 韓氏 (成宗大王妃) 5.9 12:00 경기도 주시 삼릉로 30 선순릉봉 (장 錫雨) 壽薰 俊雨 韓到榮 陵雨 世珩 錫雨 根洙 根俊 明承 光薰 承雨 起錫 漢圭 東成 泰陵 文定王后 尹氏 (中宗大王 繼妃) 5.16 11:30 서울시 노원구 랑로 18 릉봉 (장 富鎔) 석영 윤영달 은용 범재 강근 석 규 경 재철 우천 수 의기 宣陵 成宗大王 5.17 12:00 서울시 강남구 선릉로 30 선순릉봉 (장 錫雨) 潤圭 龍雨 壽薰 錫雨 有燮 亨雨 琯雨 道珩 明承 起錫 大薰 晩九 漢圭 東成 顯陵 文宗大王 顯德王后 權氏 6.10 11:30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로 30 릉봉 (장 範洙) 光宰 浩燦 權容柱 明承 運相 承允 春默 秀奉 富烈 浩根 正九 起秀 建宰 範玟 長陵 仁祖大王 仁烈王后 韓氏 6.17 11:30 경기도 주시 장릉로 50 장릉봉 (장 演柱) 禹寬濟 振勳 韓基章 正九 趙容彦 範春 範玟 道宰 起鍾 根洙 成柄 明承 南政 泰喜 ①선성군종 ②임영대군종 ◇ 정기총 개최 및 결과보고에 대 안내 ◇ 정기총 개최보고는 총개최 7일전, 정기총결과보고는 총개최 15일 이내 에 의록, 의서류, 임원명단, 총사진을 첨부여 본원 조직부에 제출 주시기 바랍니다. ③영양군종 ■ 제봉


14 李花 288 ● 종친 동정 및 영광의 얼굴 ● 商訓 종친, 제30대 문재전문위원 위촉 상(商訓, 정종/선성군 18대) 종친은 최근 문재청 제30대 문 재위원 문재전문위원으로 위촉됐다. 문재위원는 총 9개 분과(건축문재 ‧ 동산문재 ‧ 사적 ‧ 천연기념물 ‧ 매장문재 ‧ 근대문 재 ‧ 민속문재 ‧ 세계유산 ‧ 궁능문재분과)로 구성되어 있으며 문 재 보존·관리·용에 관 사을 조사고 심의다. 상 종친은 본원 전례부 차장으로 종사에 참여고 있으며, 금년 신설된 궁능문 재분과에서 5월 1일부 2년간 동 예정이다. <선성군종> 炳俊 종친, 대민국 예술인 미술대전 수상 병준(炳俊, 종/온녕군 17대) 본원 문부 수석차장은 국청소년 신문사가 주최 제20 대민국 예술인 미술대전에 서예작(부 채) 3점을 출 전부 수상게 되었으며, 그 중 점은 신문사 대상을 수상고 두 점은 우수상, 선으로 입상다. 렬 자문위원, 종약원에 500만원 기 열(亨烈, 종/녕군 20대) 본원 자문위원은 지난 3월 30일 종 약원 발전기금으로 500만원을 성다. 열 종친은 1937년 생으 로 본원 이사 겸 종묘제례 제수와 제기부문의 예능보유자로서 종 사에 참여 왔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2018년 9월에 명예보유자로 인정받았다. 그 3월에는 이장에 기금 500만원을 성, 2014년과 2018년에는 승경원 건립기금을 2에 걸쳐 500만원 을 기다. 재덕 고군 분원장, 승경원 건립기금 1천만원 기 재덕(在德, 종/령대군 18대) 종친은 지난 6월 7일, 승경원 건 립기금 9백만원을 성다. 이에 앞서 2017년 11월에도 1 백만원을 성여 총 1천만원을 성다. 재덕 종친은 광주전남 지원 자문위원장 겸 고군분원장으로 종사에 참여고 있으며, 축산기업중앙 전남부지장 겸 고군지부장, 대양돈 고 군지부장, 고군정생연장을 맡고 있다.


李花 288 15 廷壹 종친, 정치박사 위 취득 정일(廷壹, 종/령대군 20대) 종친은 1968년 생으로 단국대 교 정치외교과와 동대원을 졸업고 지난 2월 18일 정치박 사 위를 받았다. 정일 종친은 (사)충남시민재단 상임이사로 재직 중이며 (재)충남연구원 이사를 역임다. 부친은 만선(萬先) 종친 으로 안군분원장을 다년간 역임다. <충남 안군분원> 鍾炁 종친, 부이사관 승진 종기(鍾炁, 덕양군 16대) 종친은 천안시청 문복지국장으로 재직 중이면서 4월 19일자로 부이사관으로 승진였으며, 덕양군 봉 창수종중 대의원으로도 종사에 참여고 있다. 장남인 승 (海丞) 종친은 아주대 4년에 재중이던 2010년에 공인계사 시에 격여 재 ‘계법인 우리’에 근무중이어서 부자가 께 영광을 안게 되었다. <덕양군종중> 健秀 종친, 삼산업 상무 승진 건수(健秀, 종/양녕대군 17대) 종친은 (주)삼산업에 20년간 봉 직, 능력이 인정되어 몰영업담당 상무로 승진됐다. 건수 종친은 본원 승창(承昌) 부이사장의 장남이다. 무중이며, 부친 명섭 종친은 덕양군 봉산군종중 대의원을 거쳐 재는 기로원으 로 종사에 많은 도움을 주고있다. <덕양군종중> 민아(珉妸, 덕양군 15대) 종친은 지난 2월 26일 서울대교에서 “고종대 궁궐 의례공간 정비의 지”이란 주제로 문박사 위 를 받았다. 민아 종친은 서울대교 국사과에 진여 조선의 궁궐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 왔고 정장생으로서 덕양군종중 의 원과 가족의 격려로 대원 과정을 수료 서울대교에 출강며 박사위를 취득였다. 재 서울 대교 규장각에 근 珉妸 종친, 문박사 위 취득 ● 종친 동정 및 영광의 얼굴 ●


①지원장 추천서 (재단 소정양식) ②가족관계증명서 1 ③재증명서 (교양식) ④2021년 1기 성적증명서 1 ⑤성금 납부 영수증 (당자에 ) ⑥종사 동 자료 (당자에 ) ⑦기초생 수급 증명자료 (당자에 ) ⑧경제사정이 어려움을 입증 지원장 인서 (당자에 ) ⑨예체능 우승 자료 (당자에 ) ⑩종사 관련 술 자료 (당자에 ) 16 李花 288 2021년도 2기 이장생 선발 안내 재단법인 이장에서 2021년도 2기 이장생 선발을 다음과 같이 안내오니 지원요강을 참고시어 신청 주시기 바랍니다. 1. 접수마감일 : 2021.07.30.(금) 도착분 2. 장금 지급액 : 장생 개인별 이백만원 상당 3. 장금 지급대상자 장금의 지급대상자는 4년제 대 재생으로 정신과 숭조돈종의 사상이 철며, 업성적이 우수고 사상이 건전며 이 단정여 인 에게 모범이 되고, 장래 국가와 사에 게 공 것으로 기대 되나 자금의 조달이 어려운 생과 종사 관련 술연구에 공 자 중 본 이사의 심사에 격 자를 대상으로 다. 4. 장생 추천범위 및 인원 : 지원별 1인 이상 ㉮대 재생으로 업성적 A점 + 부모가 종사에 기여 자 (최근 3년간 300만 원 이상 성금 납부자 또는 종사에 별 기여를 자) ㉯대 재생으로 업성적 B점 + 부모가 기초생 수급자이거나 경제사정이 어려운 자 ㉰중· 고· 대생으로 예체능 분야 우수자(시· 도 대 우승자 이상 또는 이에 준는 자) ㉱생이 아니더라도 종사 관련 술연구에 공 자( 성씨 ) 5. 장생이 되고자 는 생은 재단에서 지정 다음의 서류를 구비여 지원(支院) 또는 재단 사무국에 제출여야 다. 우선 ‘장금 신청서(재단 소정양식)’를 제출여 본 이사의 심사에서 장생으로 선발 된 위(4.장생 추천범위) 당사에 대 증빙서류를 제출여야 다. ※장생 선발된 구비서류 6. 장금 지급 중지 장생으로서 다음 각 에 당는 자에 대여 장금 지급을 중지다. ㉮제출된 서류의 내용이 사실과 다른 자 ㉯재적 교에서 징계처벌을 받았거나 이나, 질병, 입영 또는 기의 사유로 인여 장기간 업을 계속 수 없는 자 ㉰업성적이나 기의 자격이 선발기준에 미달 또는 위배되는 자 7. 장생 신청 관련 연락처 ◦재단사무국(02-765-2124, 이범성 총무부장) ◦서울시지원(02-765-2298) ◦부산시지원(051-632-6637) ◦대구시지원(053-627-2667) ◦인천시지원(032-544-9497) ◦대전시지원(042-252-2587) ◦경기도지원(031-295-1188) ◦강원도지원(033-642-3222) ◦충북도지원(043-223-7069) ◦세종 · 충남지원(010-8801-4347) ◦전북도지원(063-284-5526) ◦광주 · 전남지원(062-225-5631) ◦경북도지원(054-241-9766) ◦경남도지원(055-758-7702) ◦제주도지원(064-724-0102)


李花 288 17 제1 서식 장 금 신 청 서 1. 성 명 (자 : ) 2. 씨 족 本貫 : 氏 派 代孫 3. 생년월일 4. 성 별 남 , 여 5. 소 속 대교 대 과 년 6. 주 소 7. 연 락 처 8. 부(父) 또는 모(母) 성 명 : 생년월일 : 직 업 : 연 락 처 : 9. 장생 신청 유 : 당란에 ○ ㉮부모가 종사에 기여 w최근 3년간 300만원 이상 성금 납부 ( ), 종사에 별 기여 ( ) ㉯부모가 기초생 수급 ( ), 경제 사정이 어려움 ( ) ㉰예체능 분야 우수자 ( ) ㉱종사 관련 술연구에 공 ( ) ※당자는 추 증빙자료를 제출여야 위 본인은 귀 재단의 장생이 되고자 소정의 서류를 갖추어 신청서 를 제출니다. 서기 20 년 월 일 신청인 서명 또는 날인 재단법인 이장 귀중


18 李花 288 서울시지원 - 60여 년의 역사, 본원의 역사와 같이 - <집자 주 : 본보 집부는 이번부 ‘지원 방’ 코너를 마련여 국내 시 ‧ 도의 14개 지원을 돌아보고자 니다. 그 첫 번째로 1958년도 3월에 설립되어 종약원의 역사와 같이고 있는 서울 시지원을 방여 이 지원장님으로부 지원의 역사와 운영에 대여 들어보는 시간을 마련 였습니다. 서울시지원은 숭릉제 주관단체로서 제을 봉고 있으며, 지원 산 11개 분원에서 봉를 맡아 숭조돈종에 앞장서고 있으며 종약원의 원무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대담 : 이범직 문이사 Q. 서울시지원은 지난 5월 21일 본원 강당 에서 정기총를 였습니다. 6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서울시지원인데, 지원 장님께서는 언제 취임셨는지요? 그리고 역대 지원장님은 어떤 분들이셨습니까? A. 저는 2019년 3월 6일 정기총에서 제26대 서울시지원장으로 추대되어 취 임습니다. 서울시지원은 1958년 3월 에 종약원 이사장을 겸고 계신 세정 (世楨) 지원장님이 1대~3대 지원장을 시작으로 건웅(建雄, 4대), 억영(億永, 5대), 승민(承敏, 6~7대), 양수(暘秀, 8~9대), 정익(鼎翊, 10~11대), 건 (建鎬, 12대), 의(桓儀, 13~16대), 지원방 서울시지원장(왼쪽)과 범직 문이사


李花 288 19 선재(善宰, 17~20대), 은영(殷榮, 21 대), 목춘(木春, 22대), 재천(載天, 23 대), 명준(明俊, 24~25대) 지원장께서 지원을 이끌어 오셨습니다. 저는 두 분의 지원장을 모셨는데, 재 천 지원장님은 엄격시면서도 임원들 의 의견을 경청 주셨고 열악 지원 살림을 물심양면으로 지원여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각종 지원 사에 사모님께서도 봉사에 참여 주셨습니다. 다음으로 모신 명준 지원 장님은 종친 간의 단과 돈종을 중요 게 생각셔서 4박 5일의 외여 이나 짧은 국내 여을 임원 간 단을 도모기도 였습니다. 또 분원장 단 돈종대와 체육대를 개최여 서울시지원 원원의 사기를 북돋고 친목도모에 앞장선 분입니다. Q. 서울시지원의 창립연도는 언제이며 조직 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습니까? A. 서울시지원 창립 연도는 1958년 3월 20일이며, 종약원 내에 사무실을 마련 고 종사를 운영기 시작습니다. 서울시지원의 조직은 25개의 분원으 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종로구분원 (1958년)을 시작으로 마구분원 (1959년), 성북구분원(1960년), 영등 구분원(1967년) 등이 생겨났습니다. 이 정구역이 분구(分區)되면서 분 원수가 늘어났고, 광진구분원(2002년) 이 마지막으로 창립되어 재에 이르 고 있습니다. 물론, 25개의 분원 중에 는 창립 당시부 지속적 운영이 되지 못 분원도 있지만 지역 종친들의 열 의와 조로 분원이 복원되어 운영되 고 있습니다. Q. 서울시지원 산 기구와 임원 구성 , 가입 원원수를 알고 싶습니다. A. 서울시지원은 25개의 분원 이외에 분 원장의, 총무단, 원정, 총목 등 기구가 있습니다. 분원장의는 직 분원장 친목단체이고, 총무단은 25개 분원의 총무모임 단체입니다. 원 정는 전직 분원장 친목단체 이며, 총목는 전직 총무모임으로서 지원운 영에 직 ‧ 간접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 습니다. 서울시지원의 임원은 고문, 자문위원, 상임이사, 분원장, 이사, 감사로 구성 되어 있으며, 총무 ‧ 재정 ‧ 문 ‧ 전례 ‧ 조직 ‧ 청년 ‧ 여성부를 두고 시지원 운 영을 나가고 있습니다. 인원 구성 은 고문 ‧ 자문위원 약 80명, 상임이사 30명, 이사 50명, 대의원 130명, 각 분원의 원원 800명 등 1천여 명의 조 직력을 갖고 있습니다. Q. 재 25개의 분원을 운영려면 재정적인 측면도 게 작용 것이라 생각됩니다. 서울시지원의 연간 예산 총액과 재정 , 지원 운영을 위 자금조달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임원 분담금이 있 다면 금액은 얼마인가요? A. 지원과 분원의 재정 운영은 전액 종친 들께서 내 주시는 찬금으로 운영되 고 있습니다. 임원들께서 내주시는 분


20 李花 288 담금은 약 3500만원, 종친 비 약 3800만원, 사업수익금 약 600만원, 보 조금 470만원 정도 됩니다. 서울시지 원의 연예산은 약 8500만원이며 재정 기본금 3900만원, 사무실 임대보증금 6120만원을 사용고 있습니다. Q. 서울시지원 조직 운영상 애로사이 있 다면 어떤 것이 있나요? A. 종친의 참여도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 입니다. 인구가 줄어들고 고령 사 가 될수록 종사에 참여는 젊은 종친 들의 참여도가 낮아지고 있습니다. 재 종사에 참여는 종친들은 대부분 70~80대의 고령으로서 이들은 경제적 ‧ 건강상으로 종사에 소극적이기도 니다. 그 예로 서울시지원에서 여름방에 종친 자녀를 대상으로 교양 강좌를 열 었습니다. 성씨에 대 교육, 전주이 씨로서의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시간 을 마련었는데 인원이 줄어들면서 참석인원의 미달로 2016년부 중단 실정으로 안까운 실입니다. Q. 지원장으로 취임신 이 서울시지원의 중점 사업과 목는 무엇이었으며, 미진 부분에 대 사은 어떤 것이 있었 습니까? A. 서울시지원의 중점 사업과 목는 지 원의 재정 기본금 충과 종친들에 대 복지상입니다. 그러나 지난 초 부 발생 코로나19의 영으로 2 년 동안 분원 총는 물론 봉의 제 동 등이 정지되거나 축소 운영 되고 있어 예년과 같이 복될지 많은 염려가 됩니다. Q. 서울시지원의 앞으로의 계이나 목는 무엇인가요? A. 서울시지원의 숙원 사업은 지원 사무 실을 마련는 것입니다. 지원 사무실 마련을 위서 모금 방법을 모색거 나 연도별 임원 성금 계이 있습니다. Q. 다른 지원이나 단체에서 용 만 서 울시지원만의 사업내지는 사, 모범사례 가 있다면 무엇이 있나요? A. 서울시지원은 매년 수첩과 서울시지원 보를 발고 있습니다. 그리고 원원 들과 께 국내외 유적지를 방문는 문방의 시간을 자주 갖고, 종친간 담를 열어 일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정보를 교니다. 그리고 청년부와 여성부가 중심이 되어 25개 분원이 참여는 돈종체육대를 개최여 서 울시지원 산 종친들간의 친목을 도 모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돈종체 육대는 2019년 12를 끝으로 이 에는 코로나19의 영으로 개최지 못습니다. 금년에는 코로나19가 종 식되어 돈종체육대를 개최 수 있 기를 기대니다. Q. 지원장님은 부부가 종사에 깊이 참여 고 계신데요, 종사에 참여게 된 계기 는 무엇인가요? A. 아버님이신 중문(重字紋字, 세종/밀성


李花 288 21 군 15대)께서는 1956년도부 용산구 관내의 종친들이 1년에 4 정례의 를 개최여 분원 창립의 모를 만드 신 분이며, 서울시지원 부지원장을 역 임셨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종약원 조직이사와 부이사장을 역임셨고, 밀성군종장도 역임셨습니다. 아 버님께서 연로 지시면서 2자인 제 가 밀성군종 시제를 아버님 대신 참석다 보니 자연스럽게 종사에 참 여게 되었습니다. 집사람도 용산구 분원 여성부와 시지원 여성부 총무를 거쳐 서울시지원 여성장을 맡고, 지 금은 종약원 여성부 위원으로 참여 고 있습니다. Q. 종친들에게 전고 싶은 말씀과 종약원 의 성 방안에 대 의견을 주시면 감사겠습니다. A. 종사는 내 조상을 내가 모시고 내가 안며 다른 종친들에게 불을 주 지 않아야 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종약원 이사장님의 종약원 운영 방침 을 믿고 적극적으로 을 모아드리고 싶습니다. 최근 종약원에서는 자동이 체 시스(CMS)을 도입여 별원 원 연비는 물론 제 성금과 찬 금을 받기 시작였는데 보가 미 지 동참률이 저조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많은 종친들께서 동참 주 셨으면 좋겠습니다.


22 李花 288 제사는 무엇인가?(8) 이범직(李範稷) 본원 문이사 · 문박사 제법에서 살아있는 인간은 제신과의 소으로 삶의 시공을 장려다. 그리고 소 망을 달성고 이어가는 방식을 제사의 시간으로 정립고 있다. 천신지기 인귀로 설정 제신은 일정 시간으로는 일차로 매년 양의 일주기가 기준이 된다. 먼저 천신 제천의식에서 시간 설정이 어떻게 영되고 있었나를 보겠다. 우리의 고대 사 기록에서 보면 부여에서는 제천사를 영고(迎鼓)라 고 고구려에서는 동맹(東盟), 예에서는 무천(舞天), 마에서는 시월제(十月祭)라 다. 부여의 영고는 은정월(殷正 月)에 제천사를, 여 나라에서는 10월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추수를 끝내고 늘에 감사의 시로 제사를 올렸다고 겠다. 그리고 군사(軍事)가 있으면 또 늘에 제사를 지냈다. 즉 국가에 중대사가 있으면 제천을 다고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의 경우에 서도 12월(조제 납제)은 를 마치는 때로서 모든 신들에게 보답는 제사를 드리는 데 농경신(神農 后稷)에게 가장먼저 제사 드리는 것을 보면 10월과 12월의 제천은 농사에 요를 감사고 다음의 요를 기원는 농경사의 제의라고 것이다. 삼국시대의 제천의례의가 고려시대로 오면 유교의례의 정착과 더불어 변되어 고려 사 예지에 반영된 제천의례에는 고려성종에 원구에서 제천여 기곡을 빌었다. 제천의 시기는 정월 맹춘에 기곡는 것을 정기적으로 고 4, 5, 7월 경우는 기우 (祈雨)는 것은 부정기 제천의였다. 정월의 날자는 신일(辛日)을 쓰고 제주(祭主)는 왕 이 친사 다. 고려 건국시조가 천신의 배위로 정지고 있었다. 조선시대로 오면 제천의례는 조 세조연간 잠시 원구에서 거된 사실을 제외고 는 제천의례가 중단되었다. 조선은 중적 천관을 수용면서 제국으로 천자의 의 례인 원구의 제천의례를 는 것이 참람 위로 규정 양반들의 왕실을 견제는


李花 288 23 명분과 기곡기우를 위 원단의 제천의는 우리가 중국에 예속된 나라가 아니라는 자주 국으로 위상을 강조 세력이 대응는 것으로 역사는 보이고 있었다. 세조3년(1457) 제천이 원단에서 제천이 중단되었다가 440년이 지나서 고종34년 (1897) 대제국을 수립, 고종은 제로 즉위여 제의 권위를 상징는 의례로서 제 천의례를 다. 1897년 9월 21일(양력) 장례원경(掌禮院卿) 김규의 건의로 서울 소공동 남별궁 에 원구단을 쌓고 1897년 10월 12일(음력 9월 17일) 고종은 백관을 거느리고 원구단에서 친 늘에 고고 제로 즉위 였다는 역사 사실이 제천의가 주는 의미는 바로 천명 이라는 점을 주목려는 것이다. 조상제사는 또다른 의미를 갖고 처음의 시간이 아니라 나를 중심으로 4대 이내에 성된 시간에서 사자(死者)와 나의 기억에 의존여 이루어지는 시간에서 의식이다. 제 사의 시간은 주제자의 기억에만 의존지 않는다. 자연적인 시간과의 일을 신 적 요소를 만들어 낸다. 조상제사를 주자가례에 나온 제례의 종류를 보면 사시제(四時 祭) 시조제(始祖祭) 초조제(初祖祭) 니제(禰祭) 기일제(忌日祭) 묘제(墓祭) 6가지가 있 다. 제사의 시기 대상에 따른 구분이다. 제사시간은 이들 제사를 구분는 중요 기준 이 된다. 사시제는 자연의 운이라는 정기적인 변에 대응 제사이다. 시조제 초조 제 니제 또 사계절 변에 대응 것이다. 반면 묘제는 사시(四時)의 정례된 시간이 아니라 속절(俗節)의 시간에 맞 추고 있다. 정조(正朝) 식 추석 동지 등은 계절의 변와 연관된 것이지만 이것을 기억는 방식은 축제적인 성격 을 띤다. 반면 기일은 이러 자연의 운과 무관 사건의 기록이다. 조상 의 죽음을 생 기억며 그를 추모 는 의절이다. 여섯 가지 제사 중에서 중요 것은 사시제이다. 경전에 사시제는 사(祠) 약(禴) 상(嘗) 증(蒸)으로 사는 봄에 지내는 만물 이 생겨가는 시절을 맞아 부모를 생각며 지내는 제사이다. 여름 제사인 약은 약(礿) 과 동의어로 삶다는 의미를 지닌다. 보리가 비로소 익어 삶아 신께 바치는 제사이다. 가을의 제사인 상은 가을 곡식이 나가 아니지만 먼저 기장을 올리어 맛보게 다는 의미에서 나온 명칭이다. 증이란 많다는 뜻으로 제수가 성을 의미다. 농경을 기 본으로 사에서 이러 사시의 변는 만물의 생성과 인간의 삶의 여정과 연관 조 상신과 만나는 의식이 제사이다. 정이천(程伊川)이 제시 초조제(初祖祭)와 선조제(先祖祭) 그리고 니제(禰祭)는 동


24 李花 288 원원(원) 가입 안내 전주이씨 원원(일반 원)은 18세 이상의 남녀로 본원 등록을 자를 말며 비(매 월 2천원, 3천원원, 5천원, 1만원) 납부의 의무와 권리를 사 수 있습니다. 원원은 종약 원과 새로운 소로그램으로 연결되어 이보를 비롯 각종 동의 정보를 접도록 것입니다. 원원 가입 신청 및 문의 ☎ (02)765-2124 지(冬至), 입춘(立春), 계추(季秋)라는 정 시간 속에서 자연과 인간의 연속성을 보 이는 의식이다. 처음으로 백성을 낳은 시조를 동지에, 나의 양이 시작는 것으로 상고 고조 이상의 조상을 생물이 시작는 봄을 상징 고 아비를 사물이 익 는 가을을 상징 고 있다. 조상의 계보는 자연이 만물을 낳고 기르는 과정과 등치 됨으로써 손으로 여금 가족사에서 벗어나 우주적 시간과 치될 수 있는 계 기를 마련고 있다. 조상제사는 초월적인 신과의 만남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인간이 거 처야 단계로 인식여 단절이 아니라 연속성 속에서 유지되었다. 시동이 신주로 교 체되어 신과 인간의 거리로 두어 공경을 복시 것으로 석고 있다. 제사는 인간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을 조상으로서 손과 관계를 지속도록 고 있 다. 신주의 상징과 제사의 시간을 조상은 만물을 생장시는 자연과 일체를 이루 고 나아가 영원의 세계 속에 유의미 존재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조상제사로 대되 는 유교제사는 인간과 신,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 단절과 다름이 아니라 동일성과 상 감응의 존재를 인는 의례라고 것이다. 자연인으로 아버지 아버지 시조아버지의 위상을 죽음으로 단절는 것이 아니라 국가공동체가 아니라 연공동체의 존재를 바으로 또 나의 역사구성의 실체를 결속 는 계기가 연집단의 제사를 여 자연시간과 어울리고 있음을 보았다. 우리 인간 은 국가공동체는 천명의 치력을 제천의로서 매년 연초에 그라고 4시에 따라 천신 지 신에게 제사를 올리고 또다른 사 계층의 연공동체는 자신들의 시조신과 소의 의 식 제사를 여 선대의 시간과 당대의 역사를 계승 보존는 역사를 만들고 있었다 고 보려는 것이다. 고대로부 재 우리시대에 이르도록 제사의례를 지속여 는 것이 역사책을 읽는 것보다 의식을 여 마음과 영을 이어 보존는 위라고 볼 수 있다. <세종/광대군 17대 ‧ 始42세> [ 참고 논고 ] 이욱 - 제사의 종교적 의미에 대 고찰, 유교의 제례., 2001: 국유교 최근덕 - 민족의 천사상, 『제천사상과 의례』 금장 - 제천의례의 역사적 고찰, 『제천사상과 의례』


李花 288 25 신덕고 정릉 봉건 군주시대 명문 족벌 간 사는 신 국가 질서를 잉다. 조고제 이성계 (1335~1408 ‧ 이 조)와 신덕고 강씨(1356~1396 ‧ 이 강비)의 인은 고려 조 정을 긴장시켰다. 지방(경남도 )의 거대 군벌과 수도(도 개경)의 권문 세력 간 결이었기 때문이다. 14세기(1300~1399) 고려(918~1392)와 원(1271~1368) 나라 국경은 양 대동강 이 북과 경남도 원산 이북을 단는 산악지대였다. 원은 이민족 최초로 중원 대륙에 제국을 건설 몽골족이다. 원은 변경의 약소국들을 무차별 침공 민생을 시켰다. 동방의 소국 고려는 원의 속국으로 전락 주권을 상실다. 원은 고려 왕자를 원으로 소 볼모로 잡고 원나라 교육을 철저 주입시켰다. 고 려 자를 원의 왕녀와 결시켜 고려왕으로 책봉고 일일이 간섭다. 25대 충렬왕 (재위 1274~1308) 때부는 임금의 시조차 조(祖) ‧ 종(宗) 사용을 금고 원에 충성 다는 충(忠)자를 붙여 왕(王)으로 격시켰다. 왕은 제국이나 번방 왕을 지칭다. 원의 부마(사위)국인 고려는 이에 순종다. 제23대 고종(재위 1213~1259) 45년(1258). 원은 경남도 주(영)에 쌍성총관부 (이 쌍성)를 설치고 경남도 남부 12개 주를 치다. 쌍성은 고려 유이민(流移 民)과 만주 여진족 간 주도권 쟁로 국경이 자주 변다. 쌍성 지방은 일찍부 이곳 의 군벌인 이자춘(1315~1360 ‧ 추존 조대왕) ‧ 조 부자가 제권을 장악다. 고려 조정은 사실상 이 지역 치를 기다. 신천(또는 곡산) 강(康)씨 문중은 개경 중앙 정계의 막강 권문 세족으로 선대부 조정에 출사다. 이중 강윤성(?~1359 ‧ 강비 아버지) ‧ 강윤충(?~1359‧강비 숙부) ‧ 강윤 조선왕릉실록(4) 이규원(李揆元) 李花보 주 · 시인


26 李花 288 (생몰년 미상 ‧ 강비 숙부) 3제가 재상 자리에 올라 세도를 떨쳤다. 벼슬은 강윤성이 삼사사(상산부원군), 강윤충이 조적란(亂) 정 일등공신, 강윤는 도사서에 이 르렀다. 28대 충왕(재위 1330~1344)부 31대 공민왕(재위 1351~1374) 시기다. 조의 전주이씨와 강비의 신천강씨는 일찍부 사돈 간이었다. 쌍성 만(萬戶) 이 자(조 아버지)이 강우(강윤 아들 ‧ 상장군)를 사위로 맞아 조와 강우는 사촌 처남 사이였다. 공민왕 5년(1356) 원의 요청으로 고려군이 참전 장사성(城)을 벌 때는 이나(조 재종숙 ‧ 원의 이부낭중)와 강순룡(강비 오빠 ‧ 원의 숭문소감)이 동시 출병 공을 세우기도 다. 야심찬 강윤성이 에 처(본처)를 둔 조에게 강비를 가시켜 겹사돈이 되었다. 여기서 강비의 생몰 연대에 관 새롭게 밝 둘 내용이 있다. 이제까지 다수의 역사 기록에는 강비 출생 연도가 미상으로 알려져 왔다. 강비는 공민왕 5년(1356 ‧ 병신년) 6 월 14일 생이었다. 이 같은 사실은 조선왕조 왕실 계보를 기록 『선원보감』에 기록 돼 있다. 조와 강비의 만남에는 애 설가 전고 있다. 개경에 랑이 사냥을 나섰던 조가 심 갈증으로 우물을 찾았다. 마침 물을 길러 온 낭자가 있어 물 바가지 마 실 것을 청다. 낭자는 우물가 버들잎을 따 깨끗이 씻은 바가지에 띄웠다. 조가 불며 천천 마신 뒤 연유를 물었다. “갈증으로 급 달려오신 것 같사온데 물을 마시다 이 나실까 염려되어 그리 였 사옵니다.” 조가 낭자를 찬찬 살보았다. 갓 스물 쯤 되었을 아름다운 처녀였다. 그녀가 바 로 일의 강비다. 조의 강비에 대 사랑은 극진다. 21세나 연였던 강비를 애지중지며 끔찍이 도 아꼈다. 당시 개경에서 벼슬는 관리들이 고에 처(鄕妻)를 두고 개경에서 경처 (京妻)를 맞는 건 결이 아닌 사적 례였다. 고에서 시부모를 모시고 자식들을 양육는 온갖 신고(辛苦)는 처의 운명이었다. (이보 5 ‧ 6월 『신의고 제릉』 참조). 제32대 우왕 14년. 위도 군(1388) 당시 강비는 경기도 천 철(鐵峴) 전장(田 莊)에서 야전 막사 살림을 도맡아 병사들을 보살다. 강윤성의 권세 ‧ 재력과 강비의 내 조는 조의 중앙 정계 진출에 결정적 조력으로 작용다. 방번(1381~1398, 조 7남 ‧ 무안대군) ‧ 방석(1382~1398, 조 8남 ‧ 의안대군) ‧ 경순공주(?~1407, 조 3녀)의 2남 1녀가 전로 긴장된 조의 일상을 위무 주었다. 조가 만조백관의 추대를 받아 조선 왕조를 창업(1392년 7월 17일)고 보위에 등 극다. 강씨는 비(顯妃)로 책봉(1392년 8월)돼 왕 자리에 올랐다. 조의 처 안 변 씨도 절비(節妃)로 책봉됐으나 왕조 개국 열 달 전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李花 288 27 씨는 원비로 추존되고 생존 강씨는 계비가 되었다. 절비 소생 6남 2녀는 천지신명을 원망며 가슴을 쳤다. 조선 개국 초 조선 왕실의 권력 구조는 난마 같이 얽다. 계비 강씨는 추존 원비 씨의 장성 여섯 왕자를 제쳐두고 자신의 소생으로 대을 승계코자 다. 신권(臣權) 주의를 주창던 개국 공신 정도전(1337~1398) ‧ 남은(1354~1398)과 의안대군 장인 심 생(1349~1398) 등이 이에 동조다. 임금은 상징적 존재로 군림고 실질적 치는 소수의 조정 권신들에게 위임자는 권력 분산 구조였다. 의사 결정이 지연되고 계 갈등이 잦아 21세기(2000~재)에도 기고 있는 이른바 내각 책임제였다. 신권주의자들은 원비 씨 소생 왕자들을 개국 공신에서 제외다. 왕조 창업에 공이 지대 5남 이방원(1367~1422, 정안대군)이 격노다. 강비 ‧ 신권주의자들과 정안대군 (일 제3대 종대왕 ‧ 이 종)은 어느덧 불구대천의 정적이 되고 말았다. 개국 원년 (1392) 8월. 조가 11세의 어린 의안대군 방석을 자로 책봉다. 신권주의자들은 자의 대 승계에 장애 요소가 되는 여섯 왕자의 제거 음모를 책다. 강비와 종의 갈등은 극에 달다. 조 3년(1394) 겨울. 종이 송악산으로 노루 사냥에 나섰다. 조영규(?~1395) ‧ 조영무(?~1414) ‧ 이숙번(1373~1440) 등 날쌘 심복 무 사들이 수다. 조를 닮아 신궁(神弓)이었던 종이 송아지만 노루를 정조준 두 눈을 관시켰다. 종이 리는 노루를 메고 강비 침전 앞에 이르렀다. 기겁 궁녀들이 삭신을 오그리며 벌벌 떨었다. “무엇들 느냐? 정안대군이 어마마마께 도 좀 러 왔노라고 속 아뢰도록 라!” 종은 강비 침실에 살 박 노루를 내동댕이치고 나왔다. 강비는 기절다. 정도 전 등 신권주의자들이 종을 대역죄로 치리야 다고 조께 주청다. 조는 일언 지에 물리쳤다. 성정은 랑이 같지만 수 없는 외적과의 전쟁을 수 생사 고비를 께 넘긴 아들이자 동지이기도 다. 조의 시름은 갈수록 깊어지고 조정 신료들 간 대립은 점점 심됐다. 이 와중에 조 5년(1396) 8월 13일 강비가 급서다. 사곽란으로 미처 손 쓸 사 이도 없이 숨을 거뒀다. 41세였다. 노경에 든 조는 수라를 전고 깊은 실의에 빠 졌다. 능지를 궁궐 지근에 정 가까이 살고자 다. 국(國風)이 왕궁 서남쪽 두어 마장(1마장은 십리 미만 거리) 쯤 되는 곳에 지다. 산봉우리가 물길을 근 감싸 도는 명당 자리였다. 조는 자신도 승 곁에 묻려고 우측에 수릉(壽陵 ‧ 생전에 조영는 왕릉)을 마련 뒤 정릉(貞陵)이라 능를 내렸다. 중구 정동의 영국대사 관 자리다. 오늘날 정동(貞洞)의 유래가 여기서 비롯된다. 조 7년(1398) 8월 25일. 개국 초 조선 천지를 뒤든 제1차 왕자의 난이 발생다. 죽은 사람이 어찌 뒷일을 알겠는가. 이 강비 소생(방번 ‧ 방석)은 물론 강비를 지지


28 李花 288 서울시 성북구에 있는 신덕고 정릉. 유네스코 세계문유산이다. 던 신권주의자들도 모조리 참살 당다. 뒤늦게 안 조가 땅을 쳤지만 이미 대세는 기 운 뒤였다. 조는 2남 영안대군(방과 ‧ 1357~1419)에게 양위고 고 잠저로 떠 났다. 2대 정종대왕(재위 1398~1400)이 등극다. 서울시 성북구 정릉동 산87-16번지. 북악널을 지나 정릉 삼거리에서 우전 뒤 아리랑 고개로 진입면 ‘정릉 입구’라는 이정가 나온다. 좌우 상점들과 아 사이 좁은 길을 가다보면 막다른 길목에 당도다. 이곳이 바로 유네스코 세계문유산으로 등재된 정릉이다. 29만 9,574m²(90,621)의 사을(沙乙閑) 산록에 사적 제208로 지정된 단릉(單陵)이 자리고 있다. 조 계비 강씨가 영면 있는 정릉이다. 정릉은 수난이 겹쳤다. 종 9년(1409) 2월. 장안에 있던 정릉을 사을 산록으로 이 장다가 얼마 다시 강 남쪽 공(鞏縣)으로 천장다. 종 12년(1412) 왕비 전 례가 지되고 서모나 수 제례로 격돼 3관이 산제(山祭)를 대록 다. 수차 례의 천릉 과정에서 능침은 되고 정자각이 렸다. 광교 다리가 무너지자 정릉의 십이지신상 등 석물들을 옮겨 광교 돌다리로 놓았다. 그 정릉은 270여 년간 망각된 묘소가 되었다. 간적으로 강비 복위 안이 논의 됐으나 워낙 첨예 국가 대사여서 번번이 좌절됐다. 제18대 종 10년(1669) 2월 중추부사 송시열(1607~1689)의 차자(箚刺 ‧ 간단 서식의 상소문)가 가납돼 능역이 개 축되고 면모도 되찾았다. 강비의 신주가 종묘 조 묘정에 배됐다. 시는 순원경 신덕고(順元顯敬 神德高皇后)다. 정릉은 능을 감싸는 병석과 난간석이 없고 석물들도 단출다. 능상에 올라 나경으 로 좌을 관측니 서쪽에서 동쪽을 바라보는 경좌갑(庚坐甲向)이다. 물은 좌청룡 이 우백를 며 좌측에서 물이 내려와 우측으로 러가는 좌수우도(左水右倒)의 국세다. 산정기를 능침으로 밀어주는 능 뒤의 입수(入首) 용맥이 갈라져 능 앞의 안산 (案山)이 성되지 못다. 좌청룡이 작국(作局) 금대국세(錦帶局勢)이나 능 앞의 신


李花 288 29 정릉 앞 유석(좌)과 장명등(우). 전적인 고려시대 석물이다. 축 아와 고층 건물이 시야를 가로막고 있다. 수에서 좌청룡은 남자와 벼슬이고 우백는 여자와 재물을 상징다. 시대를 미 역사적 인물들의 묘 앞에 설 때마다 만감이 교차다. 무덤 속 주 인공과 묘의 도 다양다. 임금이 묻 왕릉에서부 정승 ‧ 서 등의 고관대작, 전등 같은 누란 위기에서 나라를 구 장군, 간교 세치 를 잘못 놀려 무고 인 명을 살상 대의 간신, 국권을 넘겨주고 당대의 일신 영달에 눈멀었던 매국노, 심지 어는 생을 종노릇며 섬기던 상전 앞에 묻 노비와 살아생전 고 다니던 말과 소 의 무덤도 있다. 이들 망자들에 대 공과는 역사에 기록된 사서들로 가된다. 국가와 민족을 위 의연 살다간 선인들 묘 앞에 서면 경건 마음으로 옷깃을 여미게 된다. 시류에 영 고 지조를 절며 살다 간 소인배들 묘 앞에서는 안까운 식이 절로 나온다. 손들에게 짐이 되지 않고 본이 되게 살아야겠다는 자기 성찰은 무덤이 주는 교이기 도 다. 강비가 신덕왕의 존(尊號)를 되찾아 종묘에 배되던 날 정릉 일대에는 많은 비 가 내렸다. 백성들은 강비의 원을 씻어주는 비라 여 세원지우(洗寃之雨)라고 불렀다. 신덕고는 25대 고종제(재위 1863~1907)가 칭제건원(稱帝建元)며 추존 올린 시다. 정릉 기신제(忌辰祭)는 양력 9월 23일 광대군(세종대왕 5남) 종(이사장 이원) 주관으로 매년 봉되고 있다. ☞ 다음에 계속 <세종/광대군 19대 ‧ 始44세> [찾아가는 길] 정릉은 서울별시 성북구 정릉동 산87-16번지(아리랑로 19길)에 위치 있다. 지철 이용 시는 4선 성신여대 입구에서 내려 162, 1212번 버스로 승 정릉 입구에 차면 이정가 보인 다. 버스를 이용 때는 1012, 1014, 1211, 1212번을 고 정릉 입구에서 내린다. 자가용은 북 악널을 지나 정릉 삼거리에서 우전 아리랑고개로 진입면 정릉 안내 지이 있다. 문 의:(02) 914-5133.


30 李花 288 조실록을 본 양 천도와 궁궐 조성 이선구(李善求) 시작며 왕이 처리는 집무는 만 가지나 될 정 도로 많다고 여 ‘만기(萬機)’라 불렀다. 왕의 루는 일출 전 대비와 대왕대비 등 웃어른에 대 문안 인사로 루 일과를 시작다. 가 뜰 무렵에는 신료들과 문론 겸 정치론인 경연(經筵)에 참석 고 경연이 끝나면 수라를 드시고 조 를 시작는데 왕의 공식 집무는 여기서 부다. 아침에는 신료들로부 정치를 보고받고, 낮에는 왕을 찾아오는 방문객 들을 만나며, 저녁에는 조정의 법령을 검 고, 밤에는 밀린 업무나 개인 공부를 였다. 왕의 루 일과는 승정원일기와 조선왕 조실록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조선왕조실 록이 사 정리된 것이라는 점에서 차이점 이 보인다.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조 선의 이야기를 알 수 있는 것은 정치 ‧ 경 제 ‧ 사 ‧ 문 ‧ 천재지변 등 다방면의 자 료를 수록 종사료서가 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과 대제국을 거 치는 519년 동안 조고제부 순종 제까지 27명의 왕이 만기를 소 내면 서 생겨난 일들을 고스란 적고 있다. 이러 조선왕조실록의 우수성은 세계적 으로 인정받아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등장는 각 왕대의 기 록된 날짜의 제목만 보아도 조선의 역사 를 가늠 볼 수 있을 정도다. 조실록의 시작은 등극된 날부 기록 ‘조가 백관의 추대를 받아 수창궁에 서 왕위에 오르다’. 조선왕조실록을 검색 보면 맨 처음 보이는 조실록 1권, 조 1년 7월 17일 1번째 기사에 나온다. 조는 1392년 음력 7월 17일, 개경의 수창궁(壽昌宮)에서 왕위에 올랐다. 우리


李花 288 31 조선왕조실록(조) 생산연도 : 조선시대 소 장 처 : 국가기록원 조부 철종까지 472년간의 역사를 기록 것으로 조선시대 정치·경제·문 등 다양 분야의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다. 1997년 실록 2,077책이 세계기 록유산으로 등재됐다. 가 알고 있는 제절이 7월 17일인 이유 도, 양력과 음력의 기는 달라도 조선왕 조 건국일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기에 지정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조는 즉위식 11일 뒤인 28일에, 4 대 조상의 존를 올렸다. 고조고(高祖 考)는 목왕(穆王)이라 고, 비(妣) 이씨 (李氏)는 비(孝妃)라 였으며, 증조고 (曾祖考)는 익왕(翼王)이라 고, 비(妣) 최씨(崔氏)는 정비(貞妃)라 였으며, 조 고(祖考)는 도왕(度王)이라 고, 비(妣) 박씨(朴氏)는 경비(敬妃)라 였으며, 고(皇考)는 왕(桓王)이라 고, 비(妣) 최씨(崔氏)는 의비(懿妃)라 였다. 이어 8월 8일에는 방원(종)을 동북면으로 보 내 4대 선조의 능실에 제사를 지내어 왕 위에 오른 일을 고고, 능를 올렸다. 고(皇考)는 정릉(定陵), 비(皇妣)는 릉(和陵), 조(皇祖)는 의릉(義陵), 조비(皇祖妣)는 순릉(純陵), 증조(皇曾 祖)는 지릉(智陵), 증조비(皇曾祖妣)는 숙릉(淑陵), 고조(皇高祖)는 덕릉(德陵), 고조비(皇高祖妣)는 안릉(安陵)이라 였다. 다음날 8월 9일에는 봉상시에 명 여 4대 선조의 신주를 만들게 였다. , 8월 7일에는 강씨(康氏)를 왕비 로 정고 비(顯妃)라 삼고, 여러 왕자 를 군(君)으로 봉 기록을 보인다. 방우 (芳雨)는 진안군(鎭安君), 방과(芳果, 정 종)는 영안군(永安君), 방의(芳毅)는 익안 군(益安君), 방간(芳幹)은 안군(懷安 君), 방원(芳遠, 종)은 정안군(靖安君), 서자인 방번(芳蕃)은 무안군(撫安君), 부 마(駙馬) 이제(李濟)는 안군(興安君), 서(庶兄) 원계(李元桂)의 아들 양우(良 祐)는 영안군(寧安君)이라 였다. 조는 4대 선조에 대여 존를 올리 고, 왕비와 왕자에 대여 봉군을 다. 이 국를 조선이라 고, 양 천도를 결심다. 양 천도와 궁궐 조성 조의 양 천도에 대 의지는 강 였다. 양 천도를 시작으로 유교적 치 이념을 구기 위 양 건설을 기 고 정도전을 총 책임자로 내세워 궁궐 과 도성 자리를 정고 양 건설을 기


32 李花 288 다. 조의 양 천도 계에 따라 수도로 서의 보지는 조 2년과 조 3년에 걸쳐 계룡 신도안과 서울 연동과 신촌 일대 등 여러 보지가 거론되었지만 조 3년, 8월 13일 왕사 자초(무대사)와 여러 신들의 의견을 들어 양을 도읍 으로 정고 그 10월 25일에 양으로 천도다. 양은 반도의 중간지역에 속고 강을 끼고 있어 육로와 수로를 골고루 갖 추었을 뿐 아니라 주변에 높은 산이 있어 천의 요새지로 여겨져 조선시대 이전부 명당으로 주목받았던 곳이기도 다. 이제는 양으로 천도으니 궁궐을 지 어야 다. 조는 양을 도읍지로 정 9월 1 일, 신도 궁궐 조성 도감을 설치고 담 당 관리를 임명다. 그 11월 3일 도 의사사에서는 “종묘는 조종(祖宗)을 봉안 여 성과 공경을 높이는 것이요, 궁궐 은 국가의 존엄성을 보이고 정령(政令)을 내는 것이며, 성곽은 안을 엄게 고 나라를 굳게 지려는 것으로, 이 세 가지 는 모두 나라를 가진 사람들이 제일 먼저 야 는 것입니다” 라며 종묘와 궁궐과 성곽 공사를 독촉 것을 장신였다. 이듬 조 4년 9월 29일, 종묘와 새 궁궐이 준공되었다. 이날의 기록을 조 실록에서는 규모와 구성 및 배치 상을 자세 설명고 있다. 이어 10월 7일에 는 정도전에게 새 궁궐 전각의 이름을 짓 게 니, 새 궁궐의 명칭은 경복궁(景福 宮)이라 고, 연침(燕寢)을 강녕전(康寧 殿)이라 고, 동쪽에 있는 소침(小寢)을 연생전(延生殿), 서쪽에 있는 소침(小寢) 을 경성전(慶成殿)이라 였다. 그리고 연침(燕寢)의 남쪽을 사정전(思政殿)이라 고, 또 그 남쪽을 근정전(勤政殿)이라 고, 동루(東樓)를 융문루(隆文樓)라 고, 서루(西樓)를 융무루(隆武樓)라 고, 전문(殿門)을 근정문(勤政門)이라 며, 남쪽에 있는 문[午門]을 정문(正門)이라 였다. 정도전은 도성을 드나드는 성문 의 명칭과 궁궐의 이름까지도 유교의 윤 리와 오 사상을 담았던 것이다. 조실록은 1392년 7월부 1398년 12월까지의 일을 기록고 있다. 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조가 1392년 7월 17 일에 등극서 1398년 9월 5일, 왕위를 세자에게 선양다는 것을 조선왕조실록 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만기를 수는 임금의 업무와 고뇌, 궁궐의 생, 정체세력, 사적 상, 자 연 경, 계절의 변 등 그날의 소소 자료들은 차곡차곡 기록으로 남겨져 600 년이 지난 지금, 기록의 소중을 느끼며 역사를 알아가고 있다. <조/안대군 18대 ‧ 始41세> 이보 정기구독 기간이 금번 (권 제288)로 만료되는 종친에게는, 별도 로 지로용지를 첨부여 보내드립니다. 지로용지에 정 주소와 성을 기재 시고, 1년 청독료 1만원을 가까운 은이나 우체국으로 납부여 주시기 바랍니다. 문의 (사)전주이씨대동종약원 문부 (02)765-2124


李花 288 33 순리를 버린 선 - 방석(芳碩)을 세자로 세운 결과는… - 이승창(李承昌) 본원 부이사장 조선왕조 조대왕께는 두 분의 왕비가 있었다. 즉 고에서 가정 살림을 맡아 던 신의왕(神懿王后) 안변씨와 서울 에서 조의 출처를 돕던 신덕왕(神德 王后) 곡산강씨이다. 신의왕 씨는 6 남을 두었다. 장자 진안대군(鎭安大君) 방 우(芳雨)는 고려의 중신(重臣)으로 조 2 년(1393)에 세상을 떴다. 둘째는 방과(芳 果 : 정종)이고 다섯째 방원(芳遠 : 이 종)인데 조선왕조 창업에 지대 공이 있 었다. 신덕왕 곡산강씨는 방번(芳蕃), 방 석(芳碩) 두 아들과 다섯 따님을 두었다. 전조(前朝) 고려를 청산고 새 왕조 조선을 창업 초기라서 고려를 생각는 유민들은 음으로 양으로 신생국 조선을 부인는 자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야 말로 백척간두의 위 세임을 느끼면 서 천년을 내다보는 왕업의 설계를 세워 야 다. 공신 백관들과 께 참신 정 책을 세워서 의심는 백성들이 안도고 살 수 있도록 망을 보여줘야 는 책임 을 가지고 새로운 제도를 세워 부 고 려의 구각(舊殼)을 벗겨내야 는 어려움 이 대두 되었던 시기였다. 나라를 세우면 천만년 유지 계을 세워야 은 물론이요 따라서 다음 대를 이어갈 국본인 왕세자를 세워야 는 것 이 백성들에게 믿음을 주는 망이기도 것이다. 조에게는 신의왕 씨의 소생인 여섯 왕자가 있어 덕(學德)과 지용(智勇)을 갖춘 그야말로 철옹성 같은 든든 왕자 들이었다. 조의 창업에 저 마다 공이 있는 믿음직 왕자들이었다. 장자 진안대군 방우는 고려를 중심 이 대단으며 또 조가 왕위 등극 2 년에 먼저 세상을 떴다. 둘째 방과와 다 섯째 방원은 출중 중에 교초(翹楚)로서 창업을 주도 심이기도 였다. 조대왕은 개국면서 유교입국을 선 , 와 충을 국시로 삼았다. 유교의 철


34 李花 288 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에 있으며 그 실천은 덕목은 제충신(孝悌忠信)에 있다. 가정에는 요, 국가에는 충이 나라 를 다스리는 근간이었다. 따라서 왕의 승계는 적자계승을 원칙으로 며 적자가 궐위되었을 때는 여러 아들 중에 어진사람 을 여 왕을 전는 것이 법도이다. 이는 유가(儒家)에서의 변치 않는 원리다. 나라에 세자를 세우는 것은 장래를 점 칠 수 있는 막중 사이다. 예로 중 국 서진(西秦)의 진시(秦始皇) 영정(贏 政)이 나이 사십에 천를 일고 시 이 되면서 맹세기를, 시(始皇)을 일세 (一世)로 여 ‘1세 2세 3세로 지어만세 (至於萬世) 전지무궁(傳之無窮)리라 라고 선언였다. 그러나 왕세자를 세움 에 있어 간신들의 농간에 의 진시은 단이 려져 장자(長子) 부소(扶蘇)를 멀리였고, 결국 진나라는 2세로 망고 말았다. 녹도서(籙圖書)에 “진나라를 망 게 자는 이다[亡秦者胡也]”라 것 을 자못 이여 그가 사랑던 어린 아 들 ‘(胡亥)’가 그 지적인 ‘(胡)’인 것을 모르고 어진 장자부소를 삭방(朔方) 에 보내어 삭방을 방어고 있는 몽염(冡 恬)을 감시라는 명목을 붙여 변방으로 쫓아내고 좌우에 간신 조고(趙高)와 이사 (李斯)를 두어 귀와 눈을 막고 있었으니 진나라가 망지 않고 되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가까운 사람에 정이 들 이게 마련이고, 부드러운 사람에 끌리게 마련이요, 강고 거센 자를 싫어고 꺼 리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조는 신덕왕 강씨와 동거며 그의 소생인 방번, 방석과 조석상대고 있었으니 조에게 는 어린 아들에 정이 갔을 것이다. 따라 서 다들 일가를 이루고 있는 성장 아들 에게는 마음이 덜 갔을 것이므로 쉽사리 정이 가지 않았을 것이다. 물며 께 조석상대 침식을 는 강씨의 소망은 자 기 몸 소생인 아들에게 왕권이 내려가기 를 소원이었을 것이다. 당시 개국공신인 배극렴 등은 조의 마음을 읽었을 것이나 나라개국을 도운 공신이라면 사정에 굴지 말고 직언(直 言)으로 조의 마음을 바로 잡아 주었어 의안대군 이방석 묘


李花 288 35 야 마땅다. 공맹지도(孔孟之道)인 유 (儒學)은 유사(有史) 이래 당우삼대(唐虞 三代 : 堯舜禺湯文武周公)를 거쳐 유을 집대성 공자와 맹자로 이어오는 도연 원(道統淵源)으로서 천지(天地)를 경위 (經緯)는 문이요 치국천에 목 를 둔 정치철이다. 따라서 왕을 잇는 계은 을 위주로 적적상승(嫡嫡相 承)의 원리에 있는 것으로 적을 숭상 고 있다. 그러나 조가 왕을 전 적 자인 진안대군 방우는 먼저 세상을 떴기 때문에 왕을 이을 왕세자를 세우는 것 은 공(功)의 유무로 정는 (擇賢)의 차례였던 것이다. 그때에 아들 여덟 중에 창업에 으뜸공 은 다섯째 종에 있었다. 그런데 그를 제치고 나이 어린 여덟째 방석을 왕세자 로 지명 봉다는 것은 조선개국 초엽 불 상사(不祥事)의 씨눈을 배극렴 등 개국원 들의 정직지 못 사심에서 이뤄진 것 이라고 감 말 수 있는 것이다. 조가 일찍이 배극렴, 조준을 내전에 인견여 세자를 세울 일에 대 논의 였다. 배극렴 등이 아뢰기를 “때가 로우면 적자를 세우고 세상이 어지러우면 공 있는 사람을 먼저 세우는 것입니다.” 였는데, 문밖에서 그 말을 들은 강비가 곡을 여 그 소리가 밖에까지 들렸다 고 다. 그날의 인견을 고 나왔다. 다른 날에 또 배극렴을 불러 세자 세우는 일을 논의자 그날은 다시 공(功)있는 이를 세운다거나 적자를 세운다거나 는 말을 자가 없었다. 배극렴, 정도전 등 이 물러나와 논의기를, “강씨가 반드시 자기가 낳은 아들을 세우려고 는데, 방 번은 광(狂悖)고 그 아우는 조금 괜찮 다 고 마침내 방석을 봉여 세자로 삼 기를 청였다.” 이렇게 조의 왕세자는 막내아들 방석으로 결정되었던 것이다. 이로 인여 조와 강비의 마음은 정을 찾았을지는 모르겠으나 이때부 왕 실의 비극은 시작된 것이다. 배극렴, 조 준, 정도전 등 개국공신들이 공심을 잃고 사정에 섰던 것이 엄청난 일의 를 불 러올 것을 몰랐다면 그것은 지롭지 못 것이었고, 알면서도 요을 바랐다면 왕을 속인 것이다. 그때 임금의 뜻에 반 는 직언으로 공(功)이 있는 아들을 봉 여 세자로 삼았던들 부모제의 윤강 (倫綱)이 단단여 조선왕조의 광명정대 국운이 천년을 빛을 더 발을 이다. 뿐만 아니라 정도전은 왕자들을 제 거 계를 세워 왕자들을 없애려다가 늘의 도움으로 왕자들은 를 면고 도전 의 무리는 궤멸을 당 바 되었으니 번 잃은 순리가 결국자신을 망고 잠시나마 왕실을 어지럽게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일시의 사심의 발로가 공명(公 明)을 잃어 그 는 왕조의 초문을 어두 운 비극으로 만들고 그 공신이란 명예를 무너뜨리고 멸의 길을 밟고 만 것이 정 도전 등의 부직(不直)의 소치였다. 배극렴 등이 공심을 잃지 않고 솔직게 정도를 밟아 세자를 세웠던들 그때 일시는 조 와 강비의 뜻을 거역은 되었을지언정 국가의 장래를 위서는 공무사의 정의 가 개국 초부 립되어 윤강과 도의가 바로서서 소위 정도전의 난이란 악명을


36 李花 288 청사에 남기지 않았을 것이요 반대로 날의 바른 귀감으로 자되었을 것이다. 안까운 일이다. 번 빗나간 단이 519년의 왕업초두에 정도전과 박(일반 인들은 이를 양대 왕자난이라고 잘 못 알 고 있다)로 인 두 번의 난이 있게 되어 아름답지 못 적을 만들어 놓았으니 정도를 잃고 사심을 발동 가 얼마나 가는 두고두고 위정자의 전감(前鑑)으 로 삼을 일이다. 결국 정의는 순리로 돌 아와 창업에 공을 세운 종이 정도의 궤도를 잡아 조는 드디어 둘째아들 방 과로 세자를 삼아 선위를 여 조선왕조 의 초석을 다시금 바로 잡았으며 정종대 왕의 지극 성덕(聖德)은 아우 종을 세자로 삼아 국새(國璽)를 전고 선위를 였다. 이로 인 위롭던 왕업이 다시 금 산반석으로 졌으니 천명(天 命)은 정도(正道)에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복심(腹心)인 공신들의 사심에 기운 결정 때문에 언설로는 다 수 없는 란에 싸여 결국 조대왕이 에 이어(移御)는 부자간의 갈등을 만 들었고 그로 인여 중신(重臣)들에게 차사(咸興差使)라는 어처구니없는 비극 을 불러왔던 것이다. 이는 모두가 배극렴, 정도전 등이 임금의 뜻에 아부고 순리 의 정도를 저버린데서 온 예정된 연적 인 (禍)였던 것이다. <종/양녕대군 16대 · 始4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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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花 288 39 어머니 봉양일기(5) 이병준(李炳俊) 본원 문부 수석 차장 2021.1.15. 제사 장보기 동 추억 옆 마을 <언고개>를 지나서 봉성 5일 장 보러 다니던 옛 소로는 사람 발길이 끊겨지니 인도가 자연스레 없어져 버린 상다. 내가 초등교를 입기 이전 에 다녔던 먼 기억 속의 길이니 없어진 게 당연 이치다. 그 당시는 집안 대소 가 자녀는 물론 시드물, 언고개, 명창골, 불미골 등 마을에서 봉 영주의 중 ‧ 고 등교를 열차로 근 때 가 뜨기 전 과 가 지고 난 뒤에 부지런게 근 던 추억의 옛길, 그때를 거슬러 돌아보니 60여 년 전 아득 추억 속의 옛길이다. 점심식사 에 2시경 집 뒷산을 기점으 로 산 능선 길로 가다보면 봉성 기차역 가기 전 고개로 이어지는 옛길과 연결이 되니 그 코스로 가 보기로 작정다. 집 옆 400여 년 된 노송 밑 언덕으로 올라 가 뒷산으로 소에 없어져 버린 옛길 대 신 내 로 서너 번 다니면서 꺾고 뽑으 며 다듬어 놓은 산길을 들어섰다. 그동안 귀서 자 다니며 내가 다듬어 놓은 적이 그대로 눈에 선게 들어온다. 나 무에겐 미안지만 도보에 걸림돌 될 만 나무는 모조리 꺾어버렸으니 산은 수월게 결지만 내 손으로 제거 잡목들의 영에게는 이 산길을 내가 살 아서 다니는 동안만은 생 사죄며 걸어야 것 같은 마음이다. 봉성재에 당도고 보니 옛길은 아스 길 도로로 장되었고 고개에서 봉성역 구간까지 옛날 밭과 계곡은 적도 없이 (주)대성산업개발 공장으로 바꿔져 버렸 다. 그 공장은 기된 아스 아스콘 덩어리를 쇄는 업종인데 공유발과 무관지 우려 되었다. 공장 부지 끝나는 부근 널 옆을 지나 봉성역에 도착보 니 옛날 목재와 석 운송의 중요 몫을 던 기차역의 기능은 적을 찾아볼 수 없고 무인 기차역으로 담장을 치고 자물


40 李花 288 쇠까지 잠겨놓았으니 참으로 격세지감이 들었다. 옛날 그 시절의 봉성 장까지 30분간 걸어서 도착보니 초등교 시절에 막내 삼촌 따라 제사 장보러 왔던 장는 물론 그때의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도 없 이 변버렸다. 이제는 그 5일장 장날마 저 없어져 버렸으니 추억이 단절된 느낌 이다. 옛 수 속에 잊질 추억일 뿐 그 정 취를 느낄 수조차 없게 되어 버렸다. 우 (牛)시장 , 노점상 도 적이 없다. 강냉이 기던 곳도, 대장간도 모두 적 이 없어지고 대식 건물의 면사무소, 보 건소와 식당, 주들로 바뀌었다. 아쉬움 속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 안까워 종종 걸음 치는 느낌이다. 그러나 기억으로 되 새김질 수 있는 신체의 기능이 아직은 살아있으니 지극 다으로 감사는 마 음이다. 막내 삼촌과 제사장보기 러 왔던 어 린 시절의 추억이 아련게 떠오른다. 제 사장 보기는 기본이 조(棗) ‧ 율(栗) ‧ 시 (枾) ‧ 이(梨)의 과일과 조기, 문어 등 어물 과 , 도라지, 고사리 등 심지어 두부, 무, 양념거리도 사와야 다. 십리 길을 걸어가서 시장 다 보고나면 삼촌께서는 점심을 먹어야 는데, 오늘은 중국집 자 장면이라도 맛볼 수 있으려나고 잔뜩 기대는데 잔치국수 집으로 들어가셔서 국수를 두 그릇 시켜 배부르게 먹었다. “아제요, 막걸리는 잔 드셔야지요?” “응, 그런데 오늘은 안 된다.” “왜요?” “유사가 제사장 보러 와서 술 마시고 가 면 장보기 돈으로 술 사먹은 것으로 오 받으니 절대 먹어선 안 된다.” 고 말씀시던 그 때의 기억이 아직도 그 말 소리가 또렷게 연상된다. 유사란 제사 장보기부 그날 제사를 위 봉적에서 부 제사를 모시고 끝날 때까지 소임을 맡은 당번인 것이다. 그러 니 유사가 오 받을 처신을 서는 안 되는 것은 생 속 제사 예절의 소임 맡 은 자로서 엄격 자기 동 수칙인 것이 다. 어릴 적의 기억인데도 아직까지 생생 다. 인간이 처신에 있어 공(公)과 사 (私)를 엄격 구분야 다는 소중 교을 얻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아버지 오제 분 중에 막내 삼촌으로 소에 참 다정다감신 분이셨는데 고인이 되셨으 니 되살아나는 옛날 그 시절 아련 추억 속 그리움에 목이 메인다. 2021.1.24. 금일봉을 보내주는 마음 새기며 가끔 지인들께서 전가 온다. 이런저 런 근을 묻고 루 삼시 세끼 부모님 식사 수발 그 자체가 결코 쉽지 않은 일 임을 경신 분들의 얘기는 참으로 진 지다.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고 어머 니 맛있는 것 좀 사드리라고 아주 작은 돈이지만 보내고 싶으니 계좌번를 올려 달라는 얘기다. 주로 친구, 고교 및 군대 배이며, 종친 중에서 여성 분은 젓 갈 다섯 가지와 반찬 다섯 가지를 주문 배로 보내 주신 분도 있다. 그 정성에 코끝이 시짐을 느낀다. 내가 여자(딸)로서 어머니를 봉양고 있다면 생각이 좀 다르겠지마는 남자(아


李花 288 41 들)로서 로 백수를 바라보는 어머니를 모시니 그 처지가 딱기도 고 그 수고 에 대 이심전심의 측은지심 사랑의 발 로이다. 이는 소 내가 사람을 대에 가식없는 순수 마음에 대 반응이라 생각다. 사람과의 교유에는 순수와 진 지, 겸손이 미덕이기 때문이다. 가끔 은 소 서예 부채 작 만들어 선물 결과에 대 소박 답례 성격의 감사 의 시인 경우도 더러는 있다. 어떻든 간에 지극 아주 순수 순정 인간 정 의(情誼)의 출이다. 내가 그분의 청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내가 베는 아주 작은 진지 그 마음이 자신을 기쁘게 고 상대에게 내 소의 마음 밭의 부 분을 보여주는 아주 소박 위라는 것 을 내가 체에 의 느꼈기 때문이다. 일전에 종친 분이 전가 와서 계좌 번를 올려달라기에 올렸으나 장을 인 천 집에 두고 귀서 인이 안 되니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서 집 도착 자마자 장 인 보니 5일전에 20 만원이 입금돼 있다. 즉시 전 고마 움을 전다. 내 입장에선 고마움의 답례 를 똑같은 방법으로 돈으로 수 없으니 졸이나 손수 쓴 서예 작이나 내 소장 중에서 그 금액에 버금가는 가치의 작 중에서 골라 보내 주는 것으로 답례를 다. 상대도 부담 없이 자기 집에 작으로 걸어두고 그 작과의 인연과 내용을 음미고 사람을 기억고 기쁨을 느끼는 아름다운 인연의 계기가 될 수 있 으리라 생각되어 좋게 느껴진다. 봄이 기다려지는 건 고집 사랑방은 재 난방시설이 안 돼 겨울에는 독서도, 원고 작업도, 부채 서예 작 작업도 그 방에서는 수가 없기 때문이다. 대상을 정서 서예 작을 쓸 경우엔 사전에 전 를 걸어서 정 종교가 있느냐고 물어 보고 작업을 다. 왜냐면 기독교인의 경우 불교적 내용의 글은 노골적으로 싫 어기 때문이다. 내용만 좋으면 불교인 의 경우는 성경말씀도 그렇게 노골적으로 내치지는 않는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여러 번 경에 이서 잘 알고 있기 때문이 다. 베을 받아들이는 것도 에서 아름다운 사람과의 인연을 중게 보듬어 가는 길이라 생각다. 내 자신을 되돌아 보며 겸손 심(下心)의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는 자성(自省)의 계기가 된 오늘, 별 기쁜 날이다. 2021.1.31. 섣달보름 달빛이/ 장마당 줏간 도마 위/ 칼날보다 매섭게/ 앞마당 가득 난도 질 놓고/ 선잠 깨운 새벽 두 시. 늘엔 윤슬처럼/ 르는 은수 별빛/ 내 옆엔 가쁜 숨 몰아쉬는/ 어머니 숨소리. 선잠 깬 야반삼경/ 모자지간 천륜의 정 (情)/ 가위눌림 잠자리/ 이승에서 잠 못 이루는 밤. 축복인 삶보다/ 쪼개진 날 운명의 들/ 인류 최대의 미스리/ 죽음에 대 영이/ 사람을 자지러지게 다. <오늘의 독서 비망록> 김난도 지음 『아니까 청춘이다』에서 “두 번의 작심삼일은 지극 당연다. 중요 것은 기지 않는 것이다. 더딘 것을 염려지 말고, 다만 멈출 것 을 염려라.”


42 李花 288 2021.2.1. 때 이른 봄 소식에 배 아우님이/ 갓 어난 매꽃/ 서 너 송이 사진 찍어/ 오는 봄 미리 맛보라 고/ 대으로 보내 왔다. 내음새 맡을 수 없어도/ 꽃 모습 볼 수 있어/ 봄 오는 발자국 소리/ 내 숨결 기 속에 빠진다. 봄을 기다리는/ 금란지교의 우정/ 이심 전심의 꽃기/ 백년 기쁨으로/ 우리 께 꽃 우리. <오늘의 독서 비망록> 김난도 지음 『아니까 청춘이다』에서 그대, 좌절 는가? 친구들은 승승장구 고 있는데, 그대만 잉여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가? 잊지 말라. 그대라는 꽃이 는 계절은 따로 있다. 아직 그 때가 되지 않았을 뿐이 다. 그대, 언젠가는 꽃을 울 것이다. 다소 늦더라도, 그대의 계절이 오면 여느 꽃 못지않은 려 기개를 뽐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고개를 들라. 그대의 계 절을 준비라. 2021.2.3. 노상에서 냉이를 내게 준 분을 만남 봉장을 보고 버스로 귀가 중 갈방역 에서 내려 집 방으로 막 꺾어서 나는 본래 빠른 걸음이라 날이 저물어 가는 시 간이니 더욱 바쁜 걸음으로 걷기 시작 는데 께 내린 여성분이 빠른 걸음으로 뒤쫓는 느낌이었다. 이내 내 뒤에 바짝 붙어 오더니 “저 일전에 뵈었던 분 같군 요” 뒤돌아 서보니 10여 일 전에 노상에 서 서로 인사면서 채취 냉이 움 을 내 손에 쥐어주며 “어머니 국 끓여 드 리라”고 전준 분이었다. 참으로 묘 인연이다. 받은 냉이를 맛 있게 조리 먹으며 봄의 기를 미리 맡 을 수 있어 너무나 좋았다. 내 명을 주 었지마는 상대 여인의 전번를 체 놓지 못으니 상대에서 전가 걸 려오기만을 기다릴 뿐 감사 인사를 드릴 대책이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막연 언젠가는 만나지겠지 소망는데 이렇게 빨리 조우게 되리라고는 예상을 못다. 자연스레 그 분이 살고 있는 사 마을로 발길을 옮기며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 분 집에 도착서 이름과 전 번를 대에 저장고 이름도 알게 되었다. 자연스레 비록 문간이지만 그 분 어머님께도 인사를 드렸다. 명창골 송월 재( ‧ 時善/자의 10대조임) 정자 바로 뒷집이 제 집이고 어머니 봉양려고 귀 있다고 말씀 드렸더니 어머니를 알 고 계신다고 다. 잠깐 기다리라고 더니 직접 농사지은 배추 두 기와 깨끗이 손질 냉이까지 비닐봉지에 싸서 주니 고맙고 죄송 마 음이 그지없다. 그의 어머니도 여든 살 고령의 연세인데 추운 겨울 어렵게 채 취 귀 봄나물 냉이를 어머니께 드리 려 준비 귀 반찬거리를 두 번째 받게 되니 그 작은 나눔의 정성에 감동다. 작별 인사를 나누고 돌아오며 나는 무얼 선물야 까 생각 보았다. 부채 작 을 선물 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눔의 인정은 농촌생에서는 자연스레 배어나 오는 인정의 기이다. , 콩, 배추, 무, 등 채소는 물론 심지어 어렵게 채취 산 나물도 나눠 먹던 인심이 옛날의 농촌의 순박 인정의 모습이었다. 요즘은 나눠


李花 288 43 줄 이웃도 없을 뿐 더러 예스러운 아름다 운 분위기는 번 경보고 싶어도 점 차 안깝게 사라져 가는 어쩔 수 없는 경이 너무나 가슴 아게 느껴진다. 집에 도착서 저녁 식사 설거지까 지 끝내고 감사 메시지를 드렸더니 자기 도 다덕초등교를 졸업으니 앞으로 선 배로 칭겠다고 서 아주 적절고 좋겠다고 내 의사 시로 답다. 오늘 은 고의 인정을 새삼스레 근게 느 끼고 초등교 배까지 알게 되었으니 고의 어머니 봉양도 선 이웃으로 인 다소 외로움을 소는 계기가 된 듯 서 기쁘다. “여우도 죽을 때는 수구초 심(首丘初心) 다는데 사람으로서 나이 가 들어 귀은 극 자연스런 상으 로 아름다운 모습 스스로 가꾸어 가며 건 강 삶은 영위 가자”는 말로 메시지를 보내고 잠을 청다. 오늘은 기쁨으로 단 잠을 이룰 수 있겠다. <오늘의 독서 비망록> 김난도 지음 『아니까 청춘이다』에서 사랑을 것이거든, 온몸을 던져 사랑라. 무엇이 두려워서 그 렇게도 이리저리 계산는가? 연애감정은 청춘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렬고 원초적이고 순수 감정이다. 그 감정을 경지 않고 어떻게 예술을 알고, 문을 알고, 인생을 알려고 는가? 젊은 그대가 야 는 수많은 경 중에서, 역시 으뜸은 사랑이다. 2021.2.7. 설 전 마지막 시장 본 날 오늘은 봉 장날이다. 설 전 마지막 장날이니 일찌감치 루 일정을 서둘러야 다. 삼시세끼 식사준비와 설거지에 시 간이 너무 많이 소요된다. 개인 시간 여 유가 거의 없다. 아침 식사 준비 전에 세 기 우선 돌려놓고 식사 설거지 마치 고 빨래를 널었다. 일요일이니 그동안 모은 쓰레기를 분리 정리서 삼거리 명동교 다리까지 가서 지정 장소에 버려야 다. 박스 종이류 묶음, 술병, 캔, 비닐, 유리제 등을 모아 별도로 박스에 넣어 비닐 끈으로 묶 어 장 박스 만들고, 스로 묶음서 모두 세 묶음이 되었다. 그 중 에 우선 양손에 두 박스는 들고 가서 봉 장 보러갈 적에 버릴 작정이었다. 점심 식사 봉장 보러 가면서 버릴 쓰레기 뭉치 두개는 양손에 들고 집 앞을 나서는데 앞집 아우가 목 작업 다가 내 꼴을 보더니 “님, 갈방 버스 는 데까지 차 워드릴게요.”다. 그러 면 나머지 버릴 쓰레기 캔, 유리병과 비 닐 재용 쓰레기까지 버려야겠다 생각 고 다시 집에 있는 쓰레기봉 두 묶음 박스 두개를 더 가져와 차에 얹었다. 어 차 신세는 번 져야 이 되 버 렸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 그렇게 수 밖에 도리가 없었다. 아우 차에 께 고 명동교 다리 건너서 쓰레기 집 장소에 쓰레기 네 묶 음을 버리고 갈방 버스 정류장까지 금방 도착다. 막상 차으로 일찍 도착으 니 버스가 오려면 25분 정도 시간 소요 가 될 것 같아 기다리기 보다는 차라리 다덕 약수까지 버스 정류장 두 구간 코 스는 걸어가서 거기서 버스 는 게 다리 운동에 도움이 되리란 생각이 들어 걸어 서 약수에 도착여 약수 바가지를 마시고 정류소로 나가니 5분 에 봉읍


44 李花 288 책소개 개 정 증 보 H o w t o N a m e 이 동 우 성 명 전 서 - 전국 유명서점과 인넷 절찬리 매중 초 절으로 개정증보 발 - s령대군 15대손 東宇 s사)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서울별시 지원 감사 *사)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서울시 서초구분원장 *인릉(순조숙제)봉 장 *성균관대교 총동창 부장 ◦수상:녹조근정장,청백봉사상등 다수 *서초구민신문,매일리스뉴스(논설위원) 이름설가, s서초구청 OK민원센장,종민원실장,서초2동장,적계장 *KBS TV등에 160 출연채널A.TV.명랑결단에 박근,노우,김대중 이승만대령과 이병철 이건 구본무 정몽구장 등 이름이 출연 *작명경력45년,서초구청에서 만 16년간 6,000여 명 작명 *서울시 작명의 달인 선발(2010년) *서초구 서운로13중앙로얄 빌딩 1404 양재역1번 출구 서초구청 외교센 건너 *명 신생아 작명, 개명, 아,상 문의 H.P 010-2804-6438, 02)565-6438 정가15,000원(우리은1002-115-265927이동우) 저자 이동우 낸곳: 솜미디어 내로 가는 버스를 승 수 있었다. 봉읍내에 도착서 사전에 메모 순 서대로 물을 구입다. 사과, 배, 밀감, 감 등은 단골 노점상에서 구입고, 잔, 부추, 꽈리고추, 찧어 놓은 마늘과 앞집 아우에게 줄 삼겹살 등은 봉식자 재 마에서 구입다. 물가가 비싼 것을 인식는 순간이다. 배 개 상은 6천 원, 사과 개에 6천원, 잔 묶음 1 만원, 감 다섯 개 1만원 등 대충 이 정도 수준이니 제수 준비 비용이 얼마나 소요 될까 생각니 끔찍다는 생각이 들었 다. 어머니 5만원 받아가지고 갔는데 장 보고 와서 가계부 정리보니 3만원이 나 초과됐다. 어머니께 말씀 드렸더니 빙 긋이 웃으시고 초과 금액은 더 주실 생각 이 전 없으신 모양이다. 집 도착니 저녁준비 시간이 바빠서 그저께 봉 성당에서 갖다 준 만두로 저녁을 결 야 다. 내가 귀서 처음 보는 만 둣국이다. 멸치 칼국수와 께 넣어 끓였 더니 먹을 만 다. 만둣국은 급 식사 대용 조리 방법으로 실습에 의 습득 게 된 날이다. 오늘 같은 날 가끔은 내가 딸(여자)로 어났으면 좋았을 걸 고 생각게 다. 생사(生死)라는 문제를 많이 사유게 된다. “생사(生死)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생사 사이를 삶이라 다. 삶이 무엇이냐 고 물어도 이와 같이 응면 된다.” (윤 재근의 철우에서) <종/온녕군 17대 ‧ 始41세>


李花 288 45 숭릉 정자각 보수공사 준공 고유제를 마치고 이상(李商訓) 본원 전례부 차장 숭릉(崇陵) 정자각(丁字閣) 보수공사 준공 고유제가 5월 28일 오 2시, 경기도 구리 시 동구릉에 위치 종대왕과 명성왕 김씨의 능인 숭릉에서 봉되었다. 김모 문 재청장이 참석 가운데 문재청 궁능유적본부가 주최고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의 고 유제 순으로 진되었다. 숭릉 정자각 보수공사는 2019년 10월 17일에 시작되었다. 우선 주요부재(기둥, 창방 등)이 개미 로 인 손상되어 건물이 지속적으로 기울어지고 처짐과 균열 등이 발생여 2019년 실시설계를 마치고 공사를 그 시작게 되었다. 2019년은 부식 부 재 교체 및 생물 예방을 위 방제 등 정자각 전면 보수를 위 체공사를 시


46 李花 288 였고 2020년, 2021 년에는 손부재의 교 체 및 보존처리 부 재 조립과정을 거쳐 전체 체공사를 마무 리 였다. 또 개 미의 추가 를 예 방기 위 개미 군체 제거 시스을 정자각 주변에 설치 였다. 숭릉 정자각은 보물 제1742로 지정된 조선 제18대 종과 비 명성왕의 능침인 숭릉에 건립 건축물 로, 1674년(숙종 즉위년)에 종의 능을 조성며 같이 건립였다. 건립 이 정자각 은 몇 차례 수리가 있었다. 1828년(순조 28)에는 정자각 월대를 개축였으며, 1879년(고종 16)에는 첨계석을 수리였다. 1899년(고종 36)에 배위청 기둥이 기울어 보수였다. 1997년에 체 보 수였으며, 2019년 개미 로 인 손상되어 건물이 지속적으로 기울어지고 처짐 과 균열 등이 발생여 2019년 실시설계를 마치고 공사를 그 시작게 되었고, 2021 년 보수 준공였다. 숭릉 정자각은 정전 5칸, 배위청 3칸으로 전체 8칸 규모이며, 조선왕릉 정자각 중 유 일게 작지붕을 고 있다. 정전은 5칸 중 가운데 3칸은 좌우에 전돌로 방벽을 쌓 고 양 끝 칸 즉 익각(翼閣)은 기둥만 세우고 개방였다. 그 전면 중앙에 정면 1칸, 측면 3칸의 배위청이 이어져 모두 8칸 정자각의 모습을 고 있다. 정자각은 정전 3칸, 배위청 2칸의 5칸 정자각이 일반적인 모습이었으나 숭릉 정자각은 규모가 대된 8칸 건물이다. 숭릉산릉도감의궤 계사, 9월 16일조에는 “총사가 아뢰기를, ‘각 능 정자각은 모두 정각(正閣) 3칸, 전면 2칸으로 조성되어 쳐서 5칸인데 유독 광릉 정자각은 정각 3칸 의 밖에 또 좌우 익각이 있고 전면에도 1칸을 추가여 쳐서 8칸으로 되어 있습니다. 상년에 영릉(寧陵) 정자각에 대 전교시기를 광릉의 제도를 모방여 8칸으로 조성 라고 시었습니다. 이제 이 정자각은 각 능의 제도를 따를 것인지 영릉의 제도를 따 를지 여부를 감 여 아룁니다’ 니 왕이 답여 ‘결같이 영릉의 제도를 따르도 록 라’고 였다”는 기사가 보인다.


李花 288 47 그러므로 지금의 숭릉 정자 각의 모습은 바로 광릉의 제 도를 따른 영릉을 본받은 결 과임을 알 수 있다. 지붕이 작지붕인 것도 영릉의 를 따른 것으로 보여지나 영 릉 정자각이 고종 연간에 일 반적인 모습의 5칸 정자각으 로 개조되었기 때문에 지금으 로써는 그 유래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숭릉산릉도감의궤에 기록된 소요자재를 보면 ‘선자연[扇椽] 156개’, ‘사래[舍羅]’ 등 작지붕과 관련된 부재들이 언급되어 있어 숭릉 정자각은 창건시부 작지붕이었음 을 인 수 있다. 공는 정전은 일출목 이익공, 배위청은 이익공의 구조이다. 정자 각은 규모가 8칸으로 대되었지만 전체적으로 균 잡 외관을 고 있다. 숭릉 정자각처럼 8칸의 정자각은 광릉 이에 기록상으로 선릉, 정릉, 릉, 강릉, 장 릉 등에서 꾸준 나나고 있으며 존는 것으로는 숭릉 외에도 익릉, 릉, 의릉의 정자각이 있다. 그러나 이들 정자각은 지붕이 모두 맞배지붕이며 숭릉 정자각만이 작 지붕을 고 있다. 정자각은 정전 3칸, 배위청 2칸의 5칸 정자각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숭릉 정 자각은 정전 5칸, 배위청 3칸의 8칸 정자각이며 유일게 지붕이 작지붕이다. 이와 같은 모습은 광릉의 제도를 따른 영릉을 본받은 결과이다. 1674년 창건시의 모습을 지 금도 그대로 유지고 있어 17세기 정자각의 다양 건물 유을 인 수 있는 건물 이다. 숭릉 정자각은 역사적, 술적,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 건원릉(보물 제1741)‧목릉(보 물 제1743) 정자각과 께 2011년 12월 26일 대민국의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날 사에는 김모 문재청장과 나명 궁능유적본부장, 박경립 문재청 문재 위원 궁능분과위원장 등이 참석다. 본원에서는 귀남 이사장을 대신여 승창 부이 사장, 주영 부이사장, 석우 부이사장, 숭릉봉장이 참석였다. 고유제는 은 전례이사의 의례자문으로 진되었으며, 제관으로는 문재청 궁능유적본부 조선왕릉 동부지구관리소 박상오 주무관이 관을 맡았고, 상 전례부차장(찬자), 용(대축), 남 정(감찰), 범춘(축사), 장길(재랑), 수봉(집준자), 진(집사자), 도재(알자), (설) 전례위원이 참여였다. <정종/선성군 18대 ‧ 始42세>


48 李花 288 영·영릉(英․寧陵) 유적 종 정비사업 완공 이보(李輔澤) 경기도지원 문이사 경기도 여주시에 위치 세종 ‧ 종대왕의 영·영릉(英․寧陵) 종정비 사업을 문재 청 영릉관리소(소장 김명준)가 2014년부 2020년 9월까지 7년여에 거쳐 유적 종정 비사업을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여 새 모습으로 공개됐다. 총사업비 3백14억원을 들여 1〜2단계로 나누어 세종대왕역사문관 건립을 비롯여 영릉(英陵) 주차장 조성 및 능제 복원정비를 고 주차장에서 정자각까지 도로를 장였다. 주변은 소나무들로 보기 좋게 조성였고, 옛 재실은 보전고 주차장 자리 에 재실 건립과 세종대왕 동상도 옮겨와 능이 게 장된 모습으로 단장되었다. 이외 도 능침 방계단이 철거되고 어로를 복원정비고 어구 및 수어구가 복원되고 영성림 구간을 조경 정비다. 그리고 시설물 세종전과 관리사무소를 철거고 광장쉼 와 위답을 조성다. 또 종대왕 영릉(寧陵)도 주차장 등 조성 및 능역을 복원 정비고 연지를 발굴조사 결과 및 문자료를 대로 면적 655,4㎡에 수심1.4〜1.7m 로 복원정비 다. 정비 사업에 맞추어 세종대왕 역사문관내 볼거리는 백성을 사랑 대왕의 글 창 제의 참뜻을 눈에 볼 수 있게 조성된 문관을 살보자. 제1실을 들어서면 세종대왕 용안이 게 반겨준다. 엄숙 마음으로 대왕의 일대기 를 영상물을 민족 8점을 관람며 대왕의 업적인 양부일구로 절기별 눈 금의 변원리를 살고 측우기 사용법도 볼 수 있다. 또 대왕은 어떤 분인가 코너에서 농부와 신들의 입을 인과 성정 업적을 들을 수 있고 벽제와 바닥을 보면 소 박면서 아름다운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의 대적 자로 구성되고 소왕 어보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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