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 9 · 10월 (권 289) 숭 조 돈 종 사진설명 : 노오란 은나무잎으로 물든 경복궁 2. 승경원 착공에 즈음여 4. 2021년 健元陵親享禮 봉 5. 본원 소식 9. 종친 동정 및 영광의 얼굴 14. <지원방(2)> 부산시지원 18. 제사는 무엇인가(9) ………………………………………………………… 본원 문이사/문박사 이범직(李範稷) 25. 조선왕릉실록(5) / 정종대왕 릉 ……………………………………………………………… 李花보 주 · 시인 이규원(李揆元) 30. <문재 이모저모> 옛 양 중심부서 조선전기 금속자 발굴 32. 이지란(李之蘭)의 계군(誡君)과 성석린(成石璘)의 언참(言讖) …………………………………………………………………… 본원 부이사장 이승창(李承昌) 34. 만로 보는 역사이야기 103 ………………………………………………………………………………………… 이전경(李田景) 36. 어머니 봉양일기(6) ………………………………………………………………… 본원 문부 차장 이병준(李炳俊) 41. 왕실역사문 전문 세종대왕신문 창간 44. 세종 신빈 청주김씨(愼嬪 淸州金氏) ………………………………………………………………………………………………… 임옥 49. 집경전지 복원에 동참 요망 …………………………………………………………………… 前 경북지원 총무이사 이정록 51. 릉 참배를 마치고 …………………………………………………………………………………………………… 이병 53. 진경 박사의 생 치아 건강 …………………………………………………………………………… 서울뉴욕치과 원장 진경 55. <생습 마음공부(2)> 스스로 깨우쳐라 나는 누구인가 ………………………………………………………………… 본원 문부위원 이병(李丙赫) 57. 부모님 고록을 엮으면서 …………………………………………………………………………………………………… 이강숙 60. <蔘鷄湯記> 삼계 먹은 날의 소 ………………………………………………………………………… 중(中軒) 이관재(李觀宰) 62. 그리면 어떨까 …………………………………………………………………………………………… 白思 이진우 63. <放下着(방착)> 마음을 내려놓고 67. 승경원 건립기금 모금 성자 명단 71. 별원원 가입을 영니다 73. 자동출금(CMS) 등록자 명단 발인/이귀남 집인/이범직 주 /이규원 발처/사단법인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주 소/서울 종로구 돈문로 89 우번/03131 전 /(02)765-2124 스/(02)742-1676 인쇄인/이재복 인쇄처/(주)경인인쇄 전 /(02)2272-8063 발 /2021년 9월 1일 등 록/1973년 12월 31일 이지(http://rfo.co.kr) 이메일([email protected]) 값 2,000원 (1년 6, 정기구독 10,000원)
2 李花 289 승경원 착공에 즈음여 이사장 이귀남(李貴男) 안녕십니까? 그동안 승경원 건립에 성원여 주신 종친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코로나19로 인 어려움도 슬기롭게 극복시기를 기원니다. 종약원은 우리 전주이씨의 숙원사업인 승경원 건립을 위 지난 9월 2일 시공 업체를 선정고, 10월 14일(음력 9.9.), 조경묘 ‧ 경기전 제날을 기여 코로나 19 방역 지침에 따른 인원만 참석는 착공식을 거고, 2022년 12월 말경 까지 승경원을 완공 계입니다. 시공업체 선정을 위여 지난 8월 상임이사 심의에서 의결된 지명경쟁입찰 방식에 따라 공시지명원을 제출 9개 업체 중 8개 업체를 대상으로 8월 20일 장설명를 가졌고, 입찰에 참여 6개 업체를 대상으로 승경원건립추진위원 에서 정 심사기준에 따라 입찰가격과 시공경, 경영상 등 수능력을 종
李花 289 3 여 심사였습니다. 심사결과 최고 점수를 득 ‘삼부건(주)’을 시공업체로 선정여 종약원은 삼부건(주)과 9월 15일 17억 5천만 원에 계약였습니다. 또 감리자로 정건축을 선정고 2천 530만원에 계약였습니다. 그동안 건립부지 선정과 부지 일부 매입, 설계와 설계변경, 관계 기관의 가 등 어려움이 많았지만 종친들의 열정과 성원으로 승경원 완공에 걸음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승경원에 궐사된 선조의 위를 모시고 제을 올리게 됨으로써, 1300년 역사를 가진 우리 전주이씨는 선원선계, 선원세계 제을 궐사없이 진여 제 봉 의 완성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승경원 건립은 종친의 성원에 입어 2013년부 모금동을 쳐온 결과 2021년 8월 31일 재, 개인 참여자 2,190여 명과 종 ‧ 봉 ‧ 지원 ‧ 분원 등 358개 단체에서 이자를 전체 모금액이 21억5천1백여만 원이 모아졌 습니다. 이중 지 매입과 설계비 등 비용을 지불고 남은 15억5천여만 원의 금액으로 공사를 진 나가야 니다. 따라서 공사 완공 및 제봉 시설 등 까지는 기금이 더 요니다. 종약원에서는 위엄있고 내실있는 승경원 건립이 될 수 있도록 노력겠습니다. 종친 여러분께서는 승경원 건립 공사가 원 진될 수 있도록 다시 번 마음 뜻으로 숭조돈종의 마음으로 을 모아 주시고 지속적인 관심과 격려 부드립니다. 감사니다.
4 李花 289 제관명단 초관 皇嗣孫 아관 李柱英 종관 李廷日 집례 李殷弘 찬례 李天宰 감찰 李泰喜 대축 李範春 좌례 李根洙 우례 李振勳 근시 李揆敦 근시 李南政 축사 李明承 재랑 李長吉 집준자 李鎔太 집준자 李成柄 집사자 李秀奉 전사관 李春默 능사 李鍾國 찬자 李範玟 알자 李道宰 찬인 李建宰 설 李炳學 2021년 健元陵親享禮 봉 - 조고제 승 613주기 - 본원은 지난 6월 27일 수요일 오전 11시 30분,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소재 동구릉 내 건원릉 침전에서 건원릉 친례를 봉다. 금년 제은 코로나19의 영으로 어가렬이 재되지 않고 진됐다. 건원릉 정자 각에서 은(殷弘) 전례이사의 집례에 따라 초관 사손(皇嗣孫), 아관 주영(柱英) 부이사장, 종관 정일(廷日) 청권사 이사장이 각각 작다. 이날 제에는 예년 처럼 많은 참반객 없이 귀남 이사장을 비롯 본원 임원 일부만 참여 채 조용고 엄숙게 봉됐다.
李花 289 5 장생선발 소위원(2021. 8. 24) 장기금 기 종친 ◎ 참석 : 이사장·세림·도수·은갑·부용 이사 은갑 이사(21.8.24) 장금 기 종친 (2021.6.11.~8.25) 기일자 기자 금액 비고 6.25-8.25 진(和鎭, 령군 16대) 150,000 6.25. 7.26. 8.25. 3 7.31 종배(鍾培, 익녕군 18대) 50,000 본원 재정부위원 8.17 익근(益根, 익녕군 15대) 50,000 8.17 세림(世林, 덕양군 13대) 1,000,000 본원 이사 8.17 주섭(周燮, 덕양군 14대) 1,000,000 세림 이사 子 8.18 (덕원군 17대) 3,000,000 강남구청 복지생국장 8.24 은갑(殷甲, 덕천군 17대) 1,000,000 본원 이사 지역 성명 대수 교명 년 서울 이경윤(李暻玧) 밀성18 경대교 관광대 문관광콘츠과 4 부산 이도왕(李度旺) 령21 부경대교 자연과대 양스츠과 2 부산 이정(李廷玹) 령20 울산대교 경영대 경영부 1 인천 이주(李炫周) 령18 경인여자대교 간과 1 재단법인 이장 소식 ■ 2021년도 2기 이장생 명단
6 李花 289 본원 방문 ◇ 정기총 개최 및 결과보고에 대 안내 ◇ 정기총 개최보고는 총 개최 7일전, 정기총 결과보고는 총 개최 15일 이 내에 의록, 의서류, 임원명단, 총사진 을 첨부여 본원 조직부에 제출 주시 기 바랍니다. 천안시분원(이인) 승경원 성기금(8.18) 지역 성명 대수 교명 년 인천 이예나(李汭娜) 령18 전주대교 생체육과 2 대전 이용준(李鎔準) 덕천19 서대교 예체능대 애니메이션과 2 강원 이림(李效林) 안창22 강원대교 농업생명과대 원예과과 4 충북 이수(李華洙) 밀성17 청주교육대교 컴교육과 1 충북 이정재(李政財) 덕천21 충북대교 바이오시스공과 2 광주·전남 이강수(李康秀) 령18 국방송신대교 사과대 사복지과 4 광주·전남 이명건(李明建) 령20 동신대교 공과대 컴공과 1 광주·전남 이은진(李銀珍) 영19 조선대교 공과대 생명고분자공과 3 경북 이정(李柾縣) 의안22 위덕대교 인문사계열 경찰정보보안과 3 경남 이승우(李承祐) 익안21 부산대교 생명자연과대 식물생명과과 3 제주 이다(李多現) 계성20 국외국어대교 번역대 중국어번역과 1 제주 이동경(李東京) 덕18 제주국제대교 목공과 4 이사추천 이범열(李氾烈) 영응19 경대교 체육대 스츠지도과 2 덕양군 이규(李焄圭) 덕양15 경대교 문과대 철과 4 직원자녀 이남이(李男而) 벽진이씨 우송대교 보건복지대 사복지과 2 개인신청 이창엽(李昶曄) 임영19 서울시립대교 도시과대 교공과 3 개인신청 이승철(李承哲) 덕원18 단국대교 생명자원과대 녹지조경과 4
李花 289 7 지원․ 분원명 (지원․ 분원장) 수 일시 장소 참석 인원 중요의제 사진 서울 성북구(世雨) 47 21.6.25(금) 17:00 고산천 30 △예산 결산 승인 ① 구로구(東宰) 35 21.7.5() 18:00 가온대의실 31 △예산 결산 승인 ② 경기 구리시 1 21.6.22() 14:30 케이상생장 31 △임원 선출: 玗宰 신임 분원장 ③ 충청북도(承勳) 66 21.7.6() 11:30 지원 의실 76 △예산 결산 승인 ④ 보은군(鍾天) 53 21.3.23() 11:00 서면 결의 25 △예산 결산 승인 전남 장군(長守) 38 21.7.8(목) 11:00 운동장가든 40 △예산 결산 승인 ⑤ 경남 양산시(愚寬) 39 21.5.22() 춘추원식당 4 △예산 결산 승인 △서면 결의 마산(秀正) 47 21.6.26() 11:00 서면 결의 5 △예산 결산 승인 덕양군종, 시조고 440주기 기신제 봉 지원 ‧ 분원 ‧ 종 ‧ 봉 소식 덕양군종(이사장 有燮)은 지난 7월 31일 새벽 4시, 경기도 성남시 궁내동에 위치 정사에서 덕양군 시조고 440주기 기신제를 방역지침 을 준수며 엄숙 봉다. 초관 성근 종손, 아관 범재 정 릉봉장, 종관 원섭 부이사장, 집례 종림 전례이사, 대축 겸 좌집사 종, 우집사 찬 전례위원이 봉무 였다. <덕양군종> 정기총 결과보고 ■ 지원·분원
8 李花 289 종명 (종장) 수 일시 장소 참석 인원 중요의제 사진 진남군(秀憲) 53 21.5.12(수) 10:30 종 사무실 서면결의 54 △예산 결산 승인 △임원 개선: 起鍾 신임 장 진안대군(弘培) 2021 21.6.26() 11:00 청덕기념관 65 △예산 결산 승인 ⑥ ※ 본보 288 12면의 진남군종 신임 장의 기 오류로 이보에 다시 게재. ①서울 성북구분원 ②서울 구로구분원 ③경기 구리시분원 ④충청북도지원 ⑤전남 장군분원 ⑥진안대군종 ■ 종
李花 289 9 단체명 전임 신임 비고 완원군종 성기(成起) 서(西珩, 완원군 17대) 6.29. 임시대의원총 廟壇陵 園號墓 尊 號 日 時 場 所 在位者 主 管 祭 官 名 初獻官 監 察 亞獻官 贊 者 終獻官 大 祝 典祀官 陵 司 祝 史 齋 郞 執尊者 執事者 謁者 解說 恭陵 章順王后 韓氏 (睿宗大王妃) 3.23 정오 경기도 주시 삼릉로 무관중 공릉봉 (장 啓珩) 潤鎬 龍雨 韓到榮 根洙 壽薰 亨雨 永九 泳雨 明承 漢奎 桓九 愚珍 鍾祐 東成 禧陵 章敬王后 尹氏 (中宗大王繼妃) 3.26 11:30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길 〃 릉봉 (장 泰斗) 泰鎬 錫泳 尹泳瀕 漢奎 聖範 庚鎬 康根 浚圭 榮柱 璨海 永根 熙奭 道宰 義基 昌陵 睿宗大王 安順王后 韓氏 3.29 11:30 경기도 고양시 서오릉로 〃 창릉봉 (장 啓珩) 銀珩 明承 韓在潤 亨雨 泰鎬 根洙 根俊 龍雨 錫雨 愚珍 泳雨 桓九 東成 義基 英陵 世宗大王 4.8 11:00 경기도 여주시 영릉로 〃 영릉봉 (장 潤柱) 주 윤 준 범춘 철 찬 직 수 수 범민 부열 근 규돈 규석 英陵 昭憲王后 沈氏 (世宗大王妃) 4.28 11:00 경기도 여주시 영릉로 〃 영릉봉 (장 潤柱) 원 원선 심상찬 규상 규동 경용 직 윤 수 찬 수 우설 규돈 범민 獻陵 太宗大王 6.8 11:00 서울시 서초구 인릉길 30 릉봉 (장 鍾) 在煜 淳天 羲天 炳學 達相 道宰 鐘培 在春 載永 紀定 哲秀 起先 炅根 起秀 ■ 대자 변경 ■ 제봉 ● 종친 동정 및 영광의 얼굴 ● 경윤 종친, 청와대 대령비서실 문비서관(1급) 임명 경윤(보명 鉉京, 완대군 20대) 종친은 5월 청와대 대령비서실 문비서관(1급)으로 임명되었다. 경윤 종친은 1966년 전남 신안 군에서 신 종친의 3남으로 어나 전남대교 법과, 전남대 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였고, 아시아문개발원 사무국장, 국 사무처 보좌관, 문관광부장관 정책보좌관, 아시아문원 민주 교류센 센장 등을 역임다. <완대군종>
10 李花 289 辰海 종친, RETINA논문 심사위원 위촉 진(辰海, 덕양군 17대) 종친은 지난 6월, 세계 망막의사들의 진 료 참고 술지인 RETINA(망막)논문 심사위원에 위촉됐다. 진 종친은 가릭대교 의과대에서 녹내장으로 석사를, 망막으로 박사위를 취득고 강남성모병원 안과전문의와 대 안과전문병 원의 망막센원장 등을 역임면서 10여년의 검증된 임상 경력 을 가진 안과 망막 전문의이다. 부친은 덕양군종의 대의원 겸 전례위원 의전부장인 종(鍾和) 종친이다. <덕양군종> 京俄 종친, 법원정고시 수석 격 경아(京俄, 완대군 22대) 종친은 대법원에서 실시는 제38 법원정고시를 수석으로 격여 7월 1일자로 수원지방법원으로 발령받았다. 경아 종친은 1981년 전남 목에서 수옥 종친의 차녀 로 어나 고려대교 법과대을 졸업다. <완대군종> 殷起 종친, 법조윤리의 위원장 취임 은기(殷起, 덕천군 17대) 종친이 8월 3일, 법조윤리의 제9대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은기 종친은 서울고와 동국대 법대를 졸업 고 서울대 대원에서 박사위를 취득다. 서강대 법부와 서강대 로스쿨 교수로 재직며 양성에 썼고, 정법이론 실무와 국경법 장, 법조윤리의 2기 위원, 서울 서부지검 검찰시민위원 위원장 등을 역임다. 은구(殷九) 본원 미술위원 고문의 실제(實弟)이다. <덕천군종> 東煥 종친, 제천경찰서장 취임 동(東煥, 진안대군 19대) 종친이 7월 21일자로 제천경찰서장에 취임다. 동 종친은 충주에서 종(鍾浩) 종친의 장남으로 어 나 충주고등교와 경찰대을 졸업고, 경찰공무원 경위로 임용 되어 근무면서 경감, 경정으로 진급 , 2020년 1월 1일자로 총경에 승진여 서울별시 경찰청에 재직다가 이번에 제천경 찰서장으로 취임였다. <진안대군종> ● 종친 동정 및 영광의 얼굴 ●
李花 289 11 東胤 종친, 변사 시 격 동윤(東胤, 적명 起胤, 완원군 19대) 종친은 1984년 생으로 연 세대 법과를 졸업고, 4월 21일 제10 변사 시에 격 였다. 부친은 성 종친으로 완원군 인천동종 부장으로 종 사에 참여고 있다. <완원군 인천동종> 一周 종친, 공주문원장 취임 일주(一周, 덕천군 18대) 종친은 6월 29일 공주문원 강당에서 제18대 공주문원장으로 취임다. 일주 종친은 고(故) 은상(殷 祥) 종친의 장남으로 공주사대를 졸업, 동국대교 대원에서 교 육박사 위를 받고 공주대교에서 20년간 교수로 재직다. 조근정장을 받았으며 재 종 문유산자문위원 위원으 로 종사에 참여고 있다. 부친 故 은상 종친은 종약원 이사, 종 이사장, 릉봉 이사장을 역임다. <덕천군종> 달주(炟周, 덕천군 18대) 종친은 경기도 시 출신으로 지난 6 월 8일 시소재 광원 재단이사장에 취임다. 달주 종친은 서울시 수도사업소장, 용산구 건설국장, 강남구 시민국장, 은구 재무국장을 역임고 (사)국제문인 원으로서 수가로 동 며, 덕천군종 이사를 역임다. <덕천군종> 炟周 종친, 광원 재단이사장 취임 ● 종친 동정 및 영광의 얼굴 ● 준(俊和, 령대군 18대) 종친은 6월 24일 국자기공명 JEOL 술상을 받았다. 이 상은 사단법인 국자기공명에서 연구업적이 뛰어나고 국내 자기공명 분야 발전에 기여 중견 연구자에게 수여는 것으로, 준 종친은 국립경상대교 과 교수로서 비정 산구조 산단백질 상작용 연구분야의 전문 가이다. 경남 식 양군분원장의 조카이기도 다. <경상남도지원> 俊和 종친, 국자기공명 JEOL 술상 수상
12 李花 289 락(鎬洛, 덕원군 17대) 종친은 6월 1일 성궐리사 제45대 도 유사로 취임다. 우리나라 2대 궐리사 중 나인 성궐리사는 공자의 위와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유서 깊은 곳이다. 락 종 친은 아주대교 대원에서 정 석사위를 받았으며, 40년간 지방공무원으로 근무면서 모범공무원(국무총리), 우수공무원(대 령) 녹조근정장을 수상다. 재 덕원군종 이사, 경기도 鎬洛 종친, 성궐리사 도유사 취임 지원 총무이사, 성시분원장, 융릉 ‧ 건릉 봉장으로 종사에 참여고 있다. <경기도지원 명예기자 이장덕> 忠默 종친, 중소기업중앙 대전세종충남본부장 취임 충묵(忠默, 세종/광대군 21대) 종친은 고려대 졸업 중소기업 중앙에서 29년 근무, 최근 대전 ‧ 세종 ‧ 충남본부장에 취임여 중소기업과 기업인들이 당면 입장을 설명며 중소기업의 발전 방을 모색고 있다. 부친 인(仁杓) 종친은 충남 천안시분원 이사로 종사에 참여고 있으며, 최근 승경원 건립기금으로 1백만 원을 성기도 였다. <충남 천안시분원> 芳周 종친, 제40 국수문상 수상 ● 종친 동정 및 영광의 얼굴 ● 방주(芳周, 덕천군 18대) 종친은 6월 24일 제40 국수문 상을 수상다. 종묘제례 인간문재 고(故) 은(殷杓) 종친의 4 남인 방주 종친은 1998년 수가, 2014년에 문론가로 등단 여 수집 《들꽃 들에 길을 묻다》외 7권을 상재 중견 수 가이다. 방주 종친은 덕천군 오원군종 선무랑문중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재 서원대교 생교육원 수창작 지도교수로 진 양성에도 쓰고 있다. 厚宰 종친, 국PEN 보위원장 선임 재(厚宰, 령대군 19대) 종친은 7월 20일 국제PEN 국본부 보위원장으로 선 임됐다. 국제은 154개국이 가입된 세계적 문단체로서, UN 인권위원와 유네스코 자문기구로 문인, 번역가, 집인, 언론인들의 의 자유 옹와 인권 문제를 다 루고 있다. 재 원 약 3,900명인 국본부는 매년 국인의 우수 문작을 선정,
李花 289 13 웅구(雄九, 양원군 15대) 종친은 최근 성종과 빈 숙의씨의 7남 3녀 자녀들과 막내아들 양원군의 4세손들이 살면서 남긴 업적을 찾아 정리 『대왕의 손들』을 냈다. 이 책은 성종과 성종의 빈 숙의 씨의 7남 3녀 자녀들과 막내아 들 양원군의 4세손들이 살면서 남긴 업적을 찾아 정리 것이다. 김자점 모반 사건과 명옹주 등 내용을 담아 연산군, 왕자들의 雄九 종친, 『대왕의 예들』 내 삶, 광군 집권 정치적 소용돌이와 치적, 강성 락과조선 여인들의 수난 등을 다뤘다. 또 성종 이 종에 이르기까지 9명의 임금을 섬기면서 200여 년 동안 손들이 몸소 겪었던 고 작은 중요 역사적 사실을 첨부다. <양원군종> 번역 노벨문상 심사위원에 추천고 있다. 재 종친은 KBS 아나운서, PD를 거쳐 원주방송국장을 역임고, 국언론인 이 사로 동오고 있다. <뻐꾸기의 나들이>등 4권의 시집을 출 고 국의 이사로 동 중이며, 1990년대 대동종약원 보부 차 장으로 일 바 있다. 起彩 종친, 6자녀 자녀 창 수상 기채(起彩, 령대군 17대) 종친의 1남 5녀 여섯 자녀가 지난 3월 20일 성균관에서 창를 받았다. 이 상은 전 유과 충정신 을 계승고 널리 알리고자 매년 성균관에서 자 부를 발굴 여 시상는 상이다. 기채 종친은 논산시분원 고문 겸 성균관 고 문, 충남도 전교 의장을 맡고 있다. 漢寧 종친, 서예 삼체상 수상 영(漢寧, 견성군 17대) 종친은 6월 28일, 사단법인 국전문예술진에서 실시 대민국 부채예술대 전에서 서예 삼체상을 수상고 상장과 상를 받았다. 이 상은 전문예술을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고 참 신 신인을 발굴 육성기 위여 가 주는 상으로, 영 종친은 이 대에서 우 수 성적으로 입상다. ● 종친 동정 및 영광의 얼굴 ●
14 李花 289 부산시지원 - 매년 선조의 문유적지 방, 숭조돈종과 교양습 상 - ▲ 2010년 3월 21일, 용 지원장(원대군 20대)이 취임식에서 영우 지원장 대리(우측, 령대군 15대)로부 지원기를 받고 있다. Q. 부산시지원은 6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 는데, 지원장님께서는 언제 취임셨는지 요? 그리고 역대 지원장님은 어떤 분들 이셨습니까? A. 2010년 3월 21일 정기총에서 추대 로 지원장에 선출되어 취임습니다. 부산지원은 1957년 10월 20일 동광 국민교에서 창립총를 개최여 출 범으며, 당시 부산지방검창청 검사 강욱(康郁) 종친을 초대 지원장으로 선 출습니다. 1960년 4 · 19와 1961년 5 · 16 이에는 시국의 영으로 일시적 으로 조직 동이 정지 상였습니다. 1~4대 강욱 지원장은 부산에서 처 음 종친를 결성여 출범시고 지 원의 기반을 다진 공적을 남겼습니다. 뒤를 이은 5~6대 재우 지 원장은 당시 시급 최대의 숙원인 지원 사무실을 시내 중심지인 서면(부전동 490-8)에 마련기 위여 성금을 기부고 지원 발 전에 썼습니다. 7대 동 지원장은 청년 조직 강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청년 발전기금으 로 많은 성금을 기부으 며, 8대 명재 지원장은 내실 있는 지 원 운영과 조직대에 노력습니다. 또 9~10대 문석 지원장은 남구 용동에서 계수련대를 성대게 개최여 지원 조직을 성였는데, 이때 본원 의 이사장님과 상재 부이 사장님이 격려차 참석시기도 지요. 11대 영채 지원장은 장사업에 열성을 다여 이장에 거금(巨 金)을 기으로 부산지원에 장생 이 2명 배정되는 성과를 올리기도 습니다. Q. 부산시지원의 창립연도는 언제이며, 조직 도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습니까? 지원방(2)
李花 289 15 ▲ 부산시지원은 송년 이사에서 강을 개최, 부산에 거주 는 종친들의 숭조돈종 정신을 고취고 새로운 정신문 복 원을 위 노력고 있다. 사진은 2019년 12월 4일 부산 성웨딩뷔에서 개최된 송년강 기념사진. (좌에서 4번째가 용 지원장) A. 부산지원은 1957년 10월 20일 창립총를 개최고 종사업무를 시작였습니다. 재의 조직은 고문, 자문위원, 원외자문위원, 지원장, 부지원장, 총무이사, 재정이사, 문전례이 사, 제1조직이사, 제2조직이사, 청년이사, 여성이사, 이사, 감사, 14개 분원장과 총무이사로 구성 되어 있습니다. Q. 부산시지원 산 기구와 임원 구성 , 가입 원원수를 알고 싶습니다. A. 지원 산 기구와 임원의 은 자문 기구로 고문 3명, 자문위원 13명, 원 외자문위원 30명이 자문에 참여니 다. 집기구로는 지원장, 부지원장 4 명, 상임이사 7명, 이사 34명, 감사 2 명, 청년원 38명, 여성원 30명, 14개 분원의 원원 560명 등 전체 약 730명의 지원 구성원이 있습니다. Q. 재 14개의 분원을 운영려면 재정적 인 측면도 게 작용 것이라 생각됩니 다. 부산시지원의 연간 예산 총액과 재 정, 지원 운영을 위 자금 조달 방 법을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임원분담금 이 있다면 금액은 얼마인가요? A. 연간 예산 총액은 2,616만원으로 주요 목별로 보면 이월금 771만원, 총 성금 530만원, 이사비(임원분담금) 530만원, 임대수입(오션워) 500만원 과 그 외기 목으로 되어있고, 별 도로 정기예금 5,000만원이 있습니다. 그리고 주요 부동산(수익용 재산) 오 션워(매입금액 3억 2백만원)를 소유 고 있습니다. 대체적인 지원 운영 자금은 이사 비(임원분담금)와 총 성금으로 충당 고 있습니다. Q. 부산시지원 조직 운영상 애로사이 있 다면 어떤 것이 있나요? A. 조직 운영의 애로사은 시대 변에 따라 종친들의 종사에 대 무관심 상이 생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도시의 지 · 분원에는 더 심각 상입니다. 약 60년 전 지 · 분원이 처음 발족 여 조직을 정비고 장 나갈 때는 종친들의 종사에 대 관심이 아주 컸 습니다. 그러나 실은 정반대로 나 나고 있습니다. 지금의 종사 운영은 상 당 어려운 상에 봉착 있습니다. 극도의 개인주의와 물질문명의 발전 으로 아름다운 종친문와 문중문가
16 李花 289 사라져가는 안까운 실정입니다. 이런 문제의 결방안으로 새로운 일가를 찾아 영입고, 재미있는 종친를 만 들고 운영도록 노력야 겠습니다. Q. 지원장으로 취임신 이 부산시지원의 중점 사업과 목는 무엇이었으며, 미진 부분에 대 사은 어떤 것이 있었 습니까? A. 취임 중점 사업은 첫째는 매년 1 이상 제 참반과 선조문유적지 방, 그리고 별도의 계수련 사 를 계속 시여 숭조돈종정신 고취 와 교양습의 기를 마련다고 가 수 있겠습니다. 둘째는 무엇보다도 부산지원 이 관 마련이 가장 사업 목였습니 다. 그러나 관을 건립거나 마련 는 사업은 간단게 결 문제는 아 니였습니다. 그래서 종친들의 성금과 지원 기금을 여 운대 수욕장 앞에 있는 오션워(1407)를 수익용 재산으로 매입는데 앞으로 이관 마련의 초석이 될 것으로 생각니다. 셋째는 조직 대에 썼습니다. 물 론 지 · 분원 조직을 여 추진고 있습니다만, 사 교제와 사업상 명 을 주고받으며 서로 인사 때면 꼭 본관을 여쭈어보며 “일가 찾기”에 노 력습니다. 그 결과 많은 지도층 일 가를 찾아서 약 30명을 “원외자문위 원”으로 영입고 지원 운영의 자문에 참여 수 있도록 습니다. 넷째는 이때까지 지원 사무실을 임 차 사용여 왔는데 지원의 재정부담 을 줄이기 위여 2015년 4월 27일부 제가 경영는 “㈜일신설계”의 사 옥 “일신빌딩” 내에 지원 사무실을 무 료로 제공여 재정 운용에 다소나마 도움이 되었다고 말 수 있겠습니다. 다섯째는 지원 소식지인 <부산지원 월보(4면)>를 매월 발는 사업이었 습니다. 2012년 6월 25일 제1를 시 작으로 제13까지 매월 발간여 지 원소식과 교양습의 좋은 지면으로 용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원고 수집 등의 애로사으로 계속 발 지 못고 중단된 점이 조금 아쉬운 부분으로 남아있습니다. Q. 부산시지원의 앞으로의 계이나 목는 무엇인가요? A. 첫째는 전문 강사 초청여 인문 강 의를 주기적으로 실시는 것이 좋겠 습니다. 우리 종친들의 인문적 소양 을 워나가야 것입니다. 둘째는 종친 자녀를 대상으로 정기 적으로 교양습강좌를 개최여 숭조 돈종정신 양과 예절교육을 실고 륭 선조의 발자취를 돌아볼 수 있 는 교육의 장을 마련고 싶습니다. 셋째는 등록 종친 전원을 대상으로 단체 대 방이나 밴드에 가입게 여 이매체를 여 지원 소식과 교양 습 내용을 전달고 서로 소는 공간으로 용고자 니다. 비 대면 코로나19 시대에 꼭 요 방 안이라고 생각니다.
李花 289 17 Q. 다른 지원이나 단체에서 용 만 부 산시지원만의 사업내지는 사, 모범사례 가 있다면 무엇이 있나요? 부산시지원만 의 자랑거리, 알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 으면 말씀 주세요. A.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지속적인 제 참반과 선조문유적지 방을 매년 1 이상 실시 왔습니다. 아주 중요 사라고 생각니다. 이는 “백문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란 말과 같 이 직접 봄으로써 마음에 닿는 느낌은 더욱더 것입니다. 그래서 전국 지 · 분원에서 이런 사를 매년 실면 숭조돈종과 교양습의 과를 게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Q. 마지막으로 종친들에게 전고 싶은 말 씀과 종약원의 성 방안에 대 의견 을 주시면 감사겠습니다. A. 아무리 시대가 변여도 종친는 더 욱 발전시켜 나가야 것입니다. 그 방안을 살보면 첫째는 새로운 젊은 일가(종친)를 찾읍시다. 젊은 일가가 종친에 매력을 느끼 도록 분위기를 바꾸어 봅시다. 재 종사에 참여시는 분은 연세 가 고령 되었습니다. 젊은 일가를 찾아서 영입지 않으면 조직의 존립 이 어렵습니다. 젊은 일가를 찾아 성고 종친의 대를 잇도록 야 니다. 등록된 종친 각자의 소문 중에서 인 재를 찾아 지 · 분원에 영입는 방법도 있고, 사와 직장생을 여 새로 운 일가를 찾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둘째는 재미있고 유익 종친 운 영입니다. 지금까지 딱딱고 근엄 이미지에 서 벗어나서 새 시대, 새 세대에 부응 수 있는 재미있고 유익 종친를 만들어 가면서 실정에 맞는 자체적인 운영 로그램을 개발시다. 가지 예를 들면 우리 선조의 문유적지는 물론이고, 성씨의 유명 인물 유 적지와 일반 관광지도 방면서 식 견을 넓 나가도록 시다. 셋째는 습는 종친를 만듭시다. 전문 강사를 초청여 인문 강의 등을 개최여 인문 교양을 높여야 겠습니다. 인넷에 번역된 “조선왕 조실록” 등 주요고전을 독여 옛날 의 정치, 사, 문 등을 악고 사 실에 근거 역사적 안목을 높입시다. “습(學習)”이란 말은 동양 최고의 경전인 논어의 첫 구절 “이시습(學 而時習)”에서 따왔다고 니다. 종친 들은 우리의 성(姓)에 대 자긍심과 자존감도 당연 가져야 겠습니다. 그러나 이에 상응는 끝없는 인문 습과 온 성과 위 유지, 겸양 의 미덕을 가져야 것입니다. 그래서 박문약례(博文約禮 : 지식을 넓게 배우고 예로써 단속)와 극기복 례(克己復禮 : 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 아감)에 쓰며, 인격을 닦고 맑음의 미에 기초는 깨끗 선비종친이 되도록 노력 나갑시다. <정리 : 집부>
18 李花 289 제사는 무엇인가?(9) 이범직(李範稷) 본원 문이사 · 문박사 앞서 우리는 제사 식을 변별고 그 의미와 내용을 중심으로 설명였다. 이 번에서는 의식의 전개를 서 추구 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대여 말고자 다. 즉 국가제사와 사가제사 의식 진 과정과 진설을 중심으로 제사에서 추구 는 일차적 목적이 생자와 신과의 소이 며 대라고 밝다. 이제 우리는 소 즉 신과 살아 있는 국왕, 손들과 사이에서 는 제사의 식에서 중시 가치가 무엇인가를 <예기> 문과 실의 역사속에서 조상제사 사례 를 검증도록 것이다. 국가제사 는 제천의례, 사직의례, 종묘제례 그리고 사가의례는 사당 기제사 사례를 인용여 제사가 추구는 내면의 가치를 추적려 는 것이다. <예기>는 주지는바 중국 고대 나라 때 앞선 삼대 ‧ 은 ‧ 주 시대 던 의 례 복원을 위 문적 노력을 정리 문 이다. 즉 제사 의례를 비롯 각종 의 례를 설고 의례가 갖는 각 의례를 가 치를 존속야만 다고 주장고 있었 다. 제사에 관서는 제(祭統), 제 의(祭義), 제법(祭法), 교생(郊特牲), 예 운(禮運), 예기(禮器) 등에서 국가제사에 서 지켜져야 덕목이 무엇인가에 주목 고자 다. 공자의 말씀은 예라는 것은 선왕이 이 에 의 늘의 도를 깨달아 이를 사용 서 사람의 정( ‧ 노 ‧ 애 ‧ 락)을 다스린 것 이다 라고 다. 살아 숨 쉬는 인간과 인 간이 염원는 이상의 세계를 움직이는 신의 존재 위상과의 소을 제사라는 의 례세계를 연출고 있다고 <예기>는 곳곳 에서 설고 있었다. 공자는 이르기를 예란 것의 시초는 음 식에서 비롯되었다. -조잡 과정은 있었 지만 –존경는 마음을 귀신에게 바칠 수가 있었다고 였다. 영은 위에 있고
李花 289 19 체백은 아래 있는 것이다. -중략- 이러 예나 사상은 모두 고대에 생겨서 전오 는 것이다. 이리여 예라는 것은 군신의 도리를 밝고 부자의 정을 두게 며 제의 사이를 목게 며 상의 질 서를 정제며 부부사이를 구별다. 이 와 같이 서 로운 사가 실되는 것을 늘(천신)이 복을 내려 주었다고 말다. 예라는 것은 군주에게 있어서 치국의 중요 수단이 된다. 예는 정(正)과 부정 (不正)이 서로 돈되지 않도록 구별고 예에 의여 모든 일의 미묘 차이를 분 명 며 인간을 신에게 접근시고 은 제도나 규칙이 우러나게 며 인(仁) 의 도덕을 세우는 것인데 이들은 모두 나 라를 잘 다스리며 군주의 지위를 안정시 기 쉽게 는데 요 것이라고 석 고 신과의 소을 원는 것이다. 정치는 원래가 성인(聖人)의 사업이여 야 는데 성인이 늘과 땅의 중간에 서 서 여러 신령들과 어깨를 나란 고 인 류의 교도에 쓰는 것 그것이 바로 정치 다. 성인이 천지(天地) 귀신의 도를 득 여 그것을 기초로 여 예의 체계가 만 들어지는 것이며 성인이 만백성의 기쁨과 즐거움을 충분 고찰 다음에 는 것이 정치라고 였다. 바른 정치는 사람 들이 모두 임금을 위여 죽기를 원고 불의게 사는 것을 싫어게 는 것이 다. 사람의 위의 선악은 모두 그 심정에 서 일어나는 것이지만 즉시 외부로 나 나지 않으므로 무언가 가지 방법에 의 거 사람들의 심정을 알아내야 다면, 예 (禮)를 두고 또 무엇이 있겠는가라는 반 문으로 예의 중요성을 강조고 있었다. 사람이란 것은 천지(天地), 두 덕의 이고 음양의 변이며 귀신의 모임이고 오의 빼어난 기운이다. 까닭으로 선왕 (先王)은 역점이나 거북점에 의 제사의 일이나 생을 정고 제사를 지내어 생을 묻고 백을 바쳤으며 축사를 읽 었다. 이러 제사를 몇 번이고 보이 고서 제례의 의식을 설정다. 교(郊)의 제사가 예의 바르게 거되기 때문에 전제(天帝)는 백신(百神)에게 명 여 그 직분을 다게 고, 사직의 제 사가 예의 바르게 거되기 때문에 땅의 신은 산물을 부게 며, 조묘(祖廟)의 제사가 예의 바르게 거되기 때문에 선 조와 자손 간에 인자순(仁慈孝順)의 덕 이 교류고 오사(五祀)의 제사가 예의 바르게 거되기 때문에 속과 습관이 바르게 유지되고 있는 것이라고 믿음을 제사의식에 구고 있었다. <예기> 예운에서 선왕은 제사의식에 서 교(郊) ‧ 사(社) ‧ 조묘(祖廟) ‧ 산천(山川) ‧ 오사(五祀)의 제사를 서 도덕이나 예의 모범을 보였으며 그것이 바로 예의 본질이고 예의 질서의 가치임을 설명고 있었다. 국가제사를 거는 가운데 추구 예 의 본질인 도덕과 예의 질서가치를 께 얻으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예는 반드시 천도를 기본으로 발전여 땅의 도를 취였으며 백가지 사물의 본 질을 참조여 시기에 응 의식에 변
20 李花 289 를 준다. 또 예를 거는 사람의 신분 에 따라 의식의 차이를 두고 있으며 사람 들 각자가 그 차이를 지켜야만 의로운 것 으로 단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예를 으로써 서로 신 뢰와 친목을 두게 수가 있고 단결을 게 수가 있다. 또 예는 살아 있는 부모를 봉양서 만족케 고, 죽으 면 장사 지내어 복을 빌기 위 중요 수단이 되기도 며, 사람이 천도를 존중 고 인정을 중요시으로써 인간 생을 원이 보내기 위 중요 방법이기도 다는 제사의식 속에서 추구는 덕목이 었다. <예기> 예기(禮器)은 예란 규범이므 로 완전게 만들어져 있지 않으면 안된 다(禮器 是故 大備)고 였다. 제사의식 에서 찾아야 내용을 이렇게 말고 있 었다. 선왕은 예를 정에 있어서 여기에 근본(실질)과 식을 갖게 된 것이다. 즉 예를 는 사람의 성의(誠意)는 예의 근본이고 예의범절의 규정은 예의 식이 다. 근본 없이는 예가 존재지 못고 식 없이는 실이 불가능 다(先王之 立禮也에 有本有文 忠信은 禮之本也요 義理는 禮之文也라)는 설을 만들고 있 었다. 예제에는 물건의 수가 많을수록 상급의 예로 는 경우가 있고 물건의 수가 적은 것을 상급의 예로 는 경우도 있다. 물 건이 수록 상급의 예로 는 경우도 있 다. 물건이 작은 것을 상급의 예로 는 경우가 있다. 가장 경의(敬義)를 다는 늘의 제사에는 제단을 만들지 않고 땅 을 쓸기만 고 제사 지낸다. 늘과 땅이 덕을 가지고 만물을 낳 은 이치는 지극 정미(精微) 것이며 천의 물건을 다서 천지의 제사를 지 낸다 더라도 그 덕을 찬미고 보답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지 극 정성을 가지고 천지를 공경는 이 더 좋은 것이다. 이치가 이와 같으니 적은 것을 가지고 귀게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군자는 마음을 안에 써서 자기 몸 을 근신 는 것이다. 자기 몸을 근신 는 것이 지성을 보존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라는 믿음이 성인을 의지고, 성 인의 위를 인용고 있었다. 옛날의 성인은 마음을 안에 쓰는 성경 (誠敬)을 존중여 물건의 적은 것을 귀 게 여겼다. 또 마음을 외부에 쓰는 의 물(儀物)을 즐거워서 물건의 많은 것을 아름답게 여겼다. 이런 까닭으로 선왕이 예를 마련에 있어서 적어야 때에 많 게 수가 없게 고, 많아야 때에 적게 수 없게 였다. 오직 그 정도에 맞게 을 뿐이다. 군자가 예를 는 일은 삼가지 않을 수가 없다. 예는 여러 사람의 기강이다. 기강이 무너지면 세상 은 란 지는 것이다. 것을 덜어서 작게 서도 안 되며 작은 것을 보여 게 서도 안 된다. 두드러진 것을 덮어도 안 되며 미세 것 을 것으로 만들어도 안 된다. 그러므 로 경례(經禮), 300과 곡례(曲禮) 3천이 그 근본은 성경(誠敬) 가지 일 뿐이다. 방에 들어가는 데 문을 거쳐서 가는 것과
李花 289 21 같은 것이다. 종묘의 제사에는 경의를 다지 않으면 안 된다. 임금이 친 생을 몰고 들어 가면 대부가 찬좌(贊佐)여 백을 들고 뒤 따른다.-중략- 모두 경건고 충실 고 공손 마음으로 결같이 신령이 기를 기원는 것이다. 생을 문안 에 들이면 뜰에서 백을 갖고 신에게 고 유고, 생을 잡아 와 을 가져다가 실내에서 신에게 고유며 육즙(肉汁)과 숙육(熟肉)이 마련되면 먼저 조(俎)에 담 아 당(堂)에서 신에게 고유 다. -중략대(大饗)은 진정 제왕의 일다운 사이 다. 거기에 바쳐지는 삼생(소 ‧ 양 ‧ 돼지)과 물고기 및 짐승의 건육(乾肉) 등은 사 구주(四海九州)에서 모인 진미이고, 변두 에 담아 올리는 제물들은 사시(四時)의 기(和氣)가 생성 것들이다. 제의 나 라에서 바친 금을 받아들여 진열 것 은 제의 순을 보인 것이고, 제가 묘(廟)에 들어가 백에 옥을 첨가는 것은 신령의 덕을 존중기 때문이다. - 중략- 진설과 사가 이와 같이 성대 것은 대체로 천자가 상제(上帝)를 교(郊) 에서 제사 것은 간소나 오직 공경 뿐이다. 그것은 공경의 극치이다. 천자 제가 종묘에서 제사는 것은 죽은 조상을 섬기기를 산 조상 섬김과 같 이 므로 이는 어버이를 로써 섬기는 인(仁)의 실천이다. 그러므로 종묘의 제사 는 인의 극치라고 예기는 제사의 예를 설 고 있다. 그러므로 예를 는 데는 충신(忠信) 사람을 얻는 것이 소중다. <예기> 제법(祭法) 에는 천신, 지기, 인귀 등 모든 신에게 제사 지내는 일에 대서 제사 지내는 방법이나 마음가짐을 종묘대제 봉 모습
22 李花 289 기록고 있었다. 왕의 궁에는 묘 ‧ 조 ‧ 단 ‧ 선을 설치되어 귀신을 제사 지낸다. 왕은 칠묘(七廟)를 세우고 이밖에도 일단 (一壇) 일선(一墠)을 만든다. 칠묘 중 고 (考), 왕고(王考), 고(皇考), 고(顯考), 조고(祖考)의 오묘(五廟)는 모두 매월 제 사를 지내지만 원묘(遠廟)인 이조(二祧) 는 사시에 번 제사 지내는 데 그친다. 또 원묘인 조(祧)에 지내는 선조 보다 더 먼 선조를 지내는 데는 단(壇)을 사용 고 그것보다도 더욱더 먼 선조를 제사 지 내는 데는 선(墠)을 사용다. 왕은 백관이나 서민을 위서 칠사(七 祀)를 세우는 데 그것은 사명(司命), 중류 (中霤), 국문(國門), 국(國行), 려(泰 厲), (戶), 조(竈)이다. 예기 제의(祭義)은 제사와 제례의 의 의를 요약고 있다. 군자는 제사를 천체 의 법칙에 맞추어 봄에는 체(禘), 가을에 는 상(嘗)이란 제사를 지낸다. 가을 제사 때 이미 이슬이나 서리가 내리는 데 -중 략- 봄에는 즐겁게 선조의 영이 내려 오는 것을 맞이여 제사를 지내고 가을 에는 슬며 영이 돌아가는 제사를 지낸다. 따라서 봄의 제사인 체제에는 음 악은 사용지만 가을의 상제에는 사용 지 않는다. 제사에 앞서서 재계(齋戒)가 진다. 이것에는 마음속에서 는 치재(致齋)와 외물(外物)에 대 산재(散齋)가 있다. - 중략- 고대의 왕들의 심이란 것은 부모의 안색이 내 눈에서 잊어지는 일이 없고 부모의 음성은 내 귀에서 잊어지는 일이 없으며 부모의 마음이나 망 등을 상 내 마음에 간직고 있었으므로 재 계나 제사에 있어서 내 애(孝愛)의 마 음이 골몰면 부모의 영이 눈앞에 떠 오르고 경(孝敬)의 정성을 다며 영 이 그에 감다. 군자된 자는 부모의 생존 중에는 경중 (敬重)게 봉양고 사에는 공경여 제사 지낸다. 내 일생동안 부모의 이름을 욕되게 지 않도록 다. 기일 날에는 내 마음이 곳으로만 쏠리기 때문에 도 저 다른 사사로운 일에 마음을 기울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제사는 재계로부 기일의 제사는 부모에 대 공경의 마음 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을 보이는 것 이다. 주(周) 나라 문왕이 선조를 제사 지낼 때에는 죽은 자를 받드는 것이 산 사람에 게 듯, 죽은 자를 사모 나머지 자신 도 죽어버리고 싶다고 정도였다. 기일 에는 반드시 고인의 죽음을 슬고 제 례에 있어서는 고인의 이름을 입에 담을 때에는 마치 그 사람을 앞에 보는 듯 였다. 제삿날 밤에 부모를 생각 나머지 새벽까지 잠이 오질 않아서 부모의 영 께 제물을 바치고 또다시 부모를 사모 다는 것이다. 제사에는 즐거움과 슬이 반반이다. 제물을 바쳐 부모를 섬기는 것 은 즐거우나 신령이 강림며 곧 사라질 때가 가까워지기 때문에 슬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자가 부모의 제사를 올리려고 면 먼저 그 일에 대서 준비를 잘지 않으 면 안 된다. 자가 부조를 제사 때에 는 정성을 바쳐 이를 다고 믿음을 다
李花 289 23 며 공경을 바쳐 이를 다고 예를 바쳐 이를 다여 조금의 소이 없이 일진 일를 삼가고 그 도는 마치 직접 부모 의 말씀을 듣고 그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같이 는 것이다. 자식이 부모의 제사 를 지내는 것을 보면 그것이 자인지 아 닌지를 즉시 알 수 있다. 즉 위엄을 가지 고 엄격 도로 접는 것은 부모를 섬 겨 이를 제사지낼 때의 도리가 아니고 성 인을 상대로 때의 도리인 것이다. 시초를 되돌아본다면 사물의 기본이 존 중될 것이고 귀신에게 게 되면 그 마 음 은 모두 손위를 존경 것이며 친가 증대되어 재물의 이용이 촉진되면 시민의 생원칙이 립될 것이고 도의가 게 면 상의 충돌이 생기지 않으며 겸 양의 미이 왕성면 쟁은 사라질 것 이다. 임금이 이상의 다섯 가지의 일을 종 서 그 실을 목적으로 예를 고 정 치에 노력다면 천는 잘 다스려질 것 인즉 가령 다스리기 어려운 기사악(偏 奇邪惡) 백성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 은 근소 것이다 라는 예기의 내용에서 우리는 제사 의례가 갖는 예의 가치가 정 치적 의에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대 의 강령과 8조목이 추구는 철 지와 도 일치되는 것이다. 재 우리 시민들이 는 제사의례와 고대사에서 추구 제사의례에서 추구 덕목을 비교면 2001년에 ‘유교의 제 례’ 술세미나에서 최배영 교수가 발 국의 반가 제례 내용에서 강조 것 을 인용여 <예기>에서 추구 제사의 덕목과 동일을 보게 되는 것이다. 재 서울에 거주는 전주이씨 광대 군가는 세종대왕의 다섯째 아드님 광대 군(1425~1444)의 증손 정안부정공 이천 수(李千壽)가 경재(必敬齋)를 건립, 기 제사, 차례, 불천위제를 그리고 기제사는 고조부모로부 부모까지 4대봉사 고 있고 제사 을 간략 소개면 아래 와 같다. 입제일 밤 11시경 대청마루에서 제사 다. 제사를 앞두고는 술은 절도 있게 마 시고 문상도 가지 않으며 음악도 듣지 않 고 고 더러운 일에는 참례를 삼간다. 기제 준비로 제사 지내기 전날 주인과 주 부는 재계다. 제사 지낼 자리를 미리 설치고 제사지낼 때 입을 제복으로 남 성의 옥색 도, 여성의 첨담복을 정결 게 준비다. 여성의 제복은 속이 비치지 않고 치마는 발을 가릴 수 있는 길이로 되어있다. 제사에 써야 그릇 및 기구도 꺼내어 깨끗이 손질다. 제기는 대대로 전오는 것으로 6 ‧ 25 전쟁 때에도 이 제기를 갖고 난였다. 천장에는 색 의 양장을 치고 민돗자리를 다. 제상 위에는 좌면지를 고 제수를 진설다. 상 위에는 로와 을 놓으며, 상 옆의 중반에는 주병(색 지로 마개 를 ),제주병, 강신 잔반, 주전자 그리고 주그릇을 담아 놓는다. 모사기에는 모 래를 담고 붉은 실로 묶은 유아띠를 꽂아 상 앞에 놓는다. 경재에서는 가례요람(家禮要覽)의 기 제기(忌祭笏記)에 준서 제사를 지내 고 있다. 강신, 참신, 진찬 그리고 주인은
24 李花 289 전 사기매 방지를 위 안내 종친의 산기관(예 : 문중뿌리보존, 숭조연구원, 전주이씨유적연구, 이씨족보 찬 위원, 이씨가제작사 등) 또는 종친의 임직원인 것처럼 가장여, 전국의 종친들께 영 상물 및 책자(예 : 전주이씨 대관2, 전주이씨 보감, 전주이씨의 뿌리 등), 가 등을 매 는 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주로 전로 구입의사를 물어오거나 먼저 안내장과 책자를 보내고 추 일방적으 로 대금을 요청는 등 다양 수법으로 매위를 고 있습니다. 이러 위는 도시민 은 물론 농어촌의 종친들께 무작위로 지고 있으며, 농어촌의 종친들이 그 사 례를 소고 있으므로 지방에 거주고 계시는 종친들의 각별 주의가 요망됩니다. 본원에서는 모든 간물과 제작물은 반드시 이보에 공지고 있고, 각 지원과 분원, 종, 봉 등을 여 보고, 또 보급고 있으며, 절대로 전를 이용여 매 위를 지 않습니다. 영상물이나 책자 구입에 대여 전 안내를 받은 종친은 반드시 종약원에 인시기 바라며 시 그것들을 받으신 분은 발처나 발송처로 반송시어서 더 이상의 를 입 는 종친들이 없도록 당부드립니다. 문 의 : 전 주 이 씨 대 동 종 약 원 문 부 ☎ ( 0 2 ) 7 6 5 - 2 1 2 4 / F A X ( 0 2 ) 7 4 2 - 1 6 7 6 초, 축관독축, 주부 아, 종, 유식, 문, 개문, 진다, 사신, 철상, 음복의 절 차가 여진다. 간략 내용이지만 의식절차에 있어 정 중고 엄숙 것은 중요시며 무엇보다 성(誠)과 경(敬)의 마음을 다여 제사를 지내는 것이 기본이고 물질을 다는 것 을 제사의 말(末)이다라는 마음가짐과 성 ‧ 경의 마음가짐은 제수 준비에서 가장 잘 볼 수 있어서 고대사 제왕의 제사 수 과 일치을 보게 된다. 조선왕조에 이르러 유교의 제례는 사대 부 자들의 심된 연구로 인여 소위 예자들의 를 구성, 조선유 성리 으로 발전였다. 왕실만의 제례가 정 리되어 <경국대전>과 께 <국조오례의> 만이 아니라 사대부 양반들의 의례 사례 -관상제-는 물론, 이 속에는 가장 중시 되는 제례의 내용 절차에 대 심도 있는 질문과 대답이 경문과 실에 대 석 이 있게 된다. 국가치와 연계되는 제례 만이 아닌 사대부 신분층의 문중의 솔 조선 기층사 안정을 위 인륜의 주제 와 연계되는 덕목의 실천의례로 장 발 전는 역사를 보인다. 제사를 려는 욕구는 점차 양반 사대부층으로부 서민 신분층까지 산되고 제례에서 지켜지는 성 ‧ 경의 인륜 덕목이 실천되고 있었다. 이는 민주주의 정치사를 지는 대 역사단계에서 민주시민이 갖추어야 덕목의 내용을 제사 의례를 서 얻고 있다고 겠다. <세종/광대군 17대 ‧ 始42세>
李花 289 25 정종대왕 릉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권력을 내려놓고 천수를 얻다. 고금을 막론고 대사를 도모거나 창 업에는 란과 무질서가 수반되기 마련 이다. 부나 지략이 대등 책사들 끼리 결집 각지세를 겨뤘기 때문이다. 물며 나라를 개국에야 일러 무엇 겠는가. 조선왕조를 개창 초기 정국이 그러다. 분란의 단초는 초대 임금 조 이성계 (재위 1392 ~ 1398 ‧ 이 조)를 이어 대을 승계 차기 왕권의 계 구도였 다. 당시 조정 내 권력 구조는 난마같이 얽다. 나라를 새로 창업다 보니 개국 공신들이 너무 많았다. 공신들 모두에게 는 살아서의 일신영달과 대 가문의 영 고성쇠가 걸린 일생일대의 중대사였다. 조는 정비 신의고 안변씨 (1337 ~ 1391)와의 사이에 방우, 방과, 방 의, 방간, 방원, 방연의 여섯 왕자를 출 다. 이중 다섯째 왕자 정안대군 이방원 (이 정안)은 조준, 배극렴, 정도전, 남은 등 개 세력과 께 새 왕조 창업의 지대 공신이었다. 은 정몽주가 조 를 제거려자 정안이 먼저 감지다. 조영규, 조영무, 이숙번 등 정안의 수 무사들이 개경 선죽교에서 은을 격살 다. 이로 인 고려 말 정국 주도권이 개 세력에 의 장악됐다. 조는 랑 이보다 더 무서운 정안을 경계다. 조는 등극 전 도 곡산에서 만난 계비 신덕고 강씨(1356 ~ 1396 ‧ 이 강비)를 극진 아끼며 애지중지다. 강 비는 방번, 방석의 두 아들과 막내딸 경 순공주를 낳아 권세는 개국공신을 능가 다. 권력을 좇는 권신 무리들이 강비 슬 를 에워쌌다. 그들은 국왕과 신의 권 력 분배를 주창는 정도전, 남은, 심생 등 이른 바 신권(臣權派) 들이었다. 종묘사직의 백년대계를 위서는 세자 이규원(李揆元) 李花보 주 · 시인 조선왕릉실록(5)
26 李花 289 책봉이 중대사였다. 강비는 신권 개국 공신들과 친밀 관계를 유지며 세자 책봉에까지 영력을 미쳤다. 강비 요구 에 따라 조는 7남 무안대군(방번)을 세 자로 책봉고자 다. 원로 개국공신 배 극렴, 조준 등이 결사반대고 나섰다. “무안대군이 아직 어리고 자질이 미 니 왕조 개국에 공이 정안대군을 책봉 야 다.”고 아뢰었다. 조의 고뇌는 깊어갔다. 조 1년(1392) 8월. 용상에 앉은 조가 시립 대신들에게 옥음을 내렸다. “오늘은 세자를 책봉 조선의 장래를 결정짓는 중대 날이오. 경들의 의견을 기없이 주청 주기 바라오.” 조정은 단박에 두 으로 갈라졌다. 신 권 세력들은 조선 개국과정에 강비의 공이 니 7남 무안대군(방번)을 세자로 책봉야 다고 조아렸다. 이미 조의 속내를 간 진언이었다. 원로대신들은 중앙집권의 왕권강를 위서는 정안대 군이 당다고 물러서지 않았다. 순간 조의 뇌리에 무안대군 대신 의안대군 (방석)의 세자 책봉을 간청던 강비 얼 굴이 떠올랐다. 결국 세자 자리는 어린(11세) 방석에게 로 돌아갔다. 조는 정도전에게 세자의 왕도교육을 위임다. 정도전은 사병, 진법련 등을 정비 소생 여섯 왕자 들을 무장제 시려다. 개국 초 조정 의 권력구조에 변가 예고됐다. 이처 럼 정도전의 지위는 게 부상되고 여 신과 왕실세력들은 정치 일선에서 소외 됐다. 정비 소생 왕자는 강비와 정 도전 세력의 견제로 개국공신 책록에서 조차 제외되고 모든 실권을 상실다. 정도전은 ‘임금이 민심을 얻지 못면 물리력에 의 권력을 교체 수 있다.’는 맹자(? ~ ?)의 역성명론을 신봉다. 실 제로 그는 맹자의 명논리에 따라 고려 왕조를 전복고 새 왕조를 세우는데 일 조다. 그는 임금은 국가의 상징적 치 자로 군림고 국정은 조정 대신들이 수 야 다는 관료 지배체제를 주창 다. 왕권은 무력되고 소수 신들이 권 력을 독점는 권력의 분권제도였다. 정도전은 개국과정에서 스스로를 (漢)나라 장량(? ~ BC 168)에 비유다. “고조(유방)가 장량을 이용 게 아니 라 장량이 유방을 이용다.”며 조보다 자신이 더 조선개국의 주역임을 공공연 천명다. 왕족 중 최대 정적인 정안을 제거 조정을 장악려 다. 정도전의 가장 든든 견자는 강비와 세자 방석 이었다. 새 왕조 권력이 정도전에 기우는 듯 다. 조 7년(1398) 8월 25일. 마침내 정 안이 봉기다. 그날 저녁 정도전 ‧ 남은 ‧ 심생 등 신권 주도세력은 송정( 종로구 송동) 남은의 첩 집 별채에서 승리 자축연을 벌이고 있었다. 정안은 조 영무 ‧ 이숙번 등 날쌘 심복무사를 대동 고 송정을 기습, 이들 개 수뇌부를 일거에 도륙 버렸다. 자와 무안대군은 유배 도중 심복무사들에게 참를 당다. 이를 ‘제1차 왕자의 난’, ‘무인정사’, ‘정도 전의 난’이라 다. 이 당시 강비는 2년 전 세상을 떠나 자신의 두 왕자와 개
李花 289 27 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다. 급보를 접 조는 기가 막다. 세상 만사 모두가 망졌다. 조 7년(1398) 9월 5일. 둘째 왕자 방과(영안대군 ‧ 1357 ~ 1420)에게 선위고 고 으로 떠 날 채비를 서둘렀다. 장남 방우(진안대군 ‧ 1354 ~ 1393)는 일찍부 고려 왕실에 등과 예의서와 밀직부사를 역임으 나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영안대군 이 체루비읍(涕淚悲泣)며 조 앞에 부 복다. “아바마마, 소생은 조선 개국에 아무런 공이 없사옵니다. 부디 대공을 세운 정안 대군을 세자로 책봉시어 국본을 소서.” 조가 격노다. “무어라, 방원이 보위를 넘기라고? 천부당만부당 소리로다. 결단코 방원이 만은 안되니 그리 알아라.” 1398년 9월 5일. 조의 어명으로 영 안대군이 보좌에 오르니 제2대 정종대왕 (재위 1398 ~ 1400 ‧ 이 왕)이다. 보령 42세였다. 정종(定宗)은 천대세를 읽을 줄 알았다. 옛 왕조가 멸망고 새 왕조 가 들어서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수많 은 인명이 살상되는 참상을 지켜봤다. 부 귀영를 좇아 철새처럼 날아들었다가 스 러지는 권력의 부침 또 덧없는 것임을 체득 지 오래였다. 왕의 정비 정안(定安)왕 경주김씨 (1355 ~ 1412)도 명다. 고려 왕실의 예빈시사 김천서의 딸로 정종보다 2년 연상이었다. 정안왕(이 왕비)는 시동 생 정안의 담대 기질과 야망을 누구보 다 잘 알았다. 정종과의 사이에 친 소생 은 없었으나 금슬이 좋았다. 여섯 궁 (숙의 충주지씨, 숙의 주기씨, 숙의 남 문씨, 숙의 이씨, 숙의 윤씨, 성빈 지씨)에게서 어난 15군(君)왕자 8옹주 를 친자식처럼 대 내명부를 감동시켰 다. 왕비는 침소에 들 때마다 왕을 졸랐 다. “전, 루라도 빨리 보위를 내려놓으 소서. 그 길만이 우리 부부와 전의 소 생이 천수를 보전는 길이옵니다. 조정 에 들어찬 정안대군 수의 언과 무서 운 눈길을 보옵소서. 시가 급옵니 다.” 왕도 알았다. 정안의 뜻대로 조정을 개 고 사병을 몰수여 삼군부에 입시 다음 관제를 개다. 수도 양이 왕자의 난을 맞은 드센 라 여겨 개경으 로 다시 천도다. 서울 5부에 교를 설 립고 집전을 존치 장서관리와 경서 강론을 감당케 는 등 교육에도 썼다. 모든 정사는 정안에게 일임 채 격구와 오락으로 소일며 서류 의만 처결 다. 정종 3년(1400) 개경에서 또 난리가 났다. 조의 넷째 왕자 안대군(방간 ‧ ? ~ 1421)이 지중추부사 박의 충동으로 ‘제2차 왕자의 난’을 일으 것이다. ‘박 의 난’으로 불리는 이 정변은 정안에 의 곧바로 정되었으나 수많은 인명살 상과 생이 뒤따랐다. 안대군은 주 (충남 성)로 유배되고 박는 능치처참 을 당다. 정종은 모든 걸 직감다. ‘과연 용상은 아무나 앉는 자리가 아니 로구나. 과분 욕심과 미련으로 촌각을
28 李花 289 조고제와 께 왜구를 섬멸 예산 임존성. 백제시대 축조 산성이다. 지체다가는 남은 목숨마저 위로워 질 수 있다.’ 박의 난을 진압 정종 3년(1400) 2 월. 왕은 정안을 왕세자(王世子)로 책봉 다. 그 정사와는 더욱 무관게 사 냥, 온천, 연 등으로 유유자적 세월을 유다. 왕에게는 군왕자 15명이 있었으 나 모두 궁 소생이어서 왕위 승계와는 무관다. 위기일발의 박빙 정국도 오래가 지 못다. 조정 실세들이 정안의 등극을 서둘렀기 때문이다. 그(1400) 11월 13일. 정안의 책사 륜(1347 ~ 1416)이 왕의 선위(禪位)를 은유적으로 주청다. 왕은 이에 따랐다. 이날 정안이 조선 제3대 임금으로 즉위 니 종(재위 1400 ~ 1418) 대왕이다. 종은 상왕 정종(이 상왕)을 극진 예우다. 상왕과 금상의 제 간 우애는 돈독졌고 나라는 온을 되찾았다. 상왕은 개경의 인덕궁 안에서 일상을 보내며 옛 일을 상다. △부왕 조를 수 지리산 왜구 벌(1377)에 나서 무을 세웠던 일 △순군부만로 고려 말 간신 염방(? ~ 1388)을 문초 조정 기강을 바로 세운 일 △도 주까지 침입 왜구를 무찔러 수도를 방어(1389) 무공 △충청도 내(성 ‧ 예산일대) 지역에 발던 왜구를 섬멸 첩보를 올린 쾌거(1390) 등을 떠올리니 새삼스러 웠다. 종 12년(1412) 6월 25일(음력). 정안 왕가 58세로 예척(禮陟)다. 조정에서 는 도 개군 교면 교리( 북도 개군 영정리) 백마산록에 명당자 리를 지 정중 예장다. 능를 릉(厚陵)으로 지어 올렸다. 상왕은 만월대 에 올라 백마산을 바라보며 정비 잃은 슬 을 삭였다. 덧없는 세월 앞에야 왕장 상인들 별 도리 있겠는가. 종의 셋째 왕자 성군 세종이 등극 지 2년째 되던 인 1419년 9월 26일(음력). 기력이 쇠 진진 상왕이 승다. 보령 63세로 재 위 2년 67일(상왕 18년) 만이었다. 종은 땅을 치며 곡다. 성이 단 엄고 지략이 뛰어나 군신 간 존경과 백 성의 칭송을 몸에 받던 왕(兄王)이 었다. 왕실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늘 종 에 서서 이 돼주었던 둘째 님
李花 289 29 건원릉 정자각. 릉은 북에 있어 매년 건원릉에서 제을 봉다. 이 아니던가. 당시까지도 병권을 장악 고 있던 종은 금상 세종에게 명 최고 예우를 갖춰 왕릉을 조영록 분부다. 상왕 능은 왕비와 께 쌍릉으로 조영됐 고 능는 릉을 그대로 받들었다. 당시는 새 임금이 보위에 오르고 세자 를 책봉거나 국왕이 진명(盡命)면 명 나라 제에게 고 때였다. 상왕이 서 자 명에서는 공정(恭靖)이란 시를 내 렸다. 상왕은 261년 간 공정왕으로 불리 다가 숙종 7년(1681)에야 비로소 정종(定 宗)이란 묘를 추상 받았다. 조정에서는 정종대왕에게 ‘의문장무 온인순대왕(懿 文莊武 溫仁順孝大王)’을, 정순왕에게 는 ‘순덕 온명장의 정안왕(順德 溫明莊 懿 定安王后)’란 시와 존를 동시에 봉정다. 정종대왕과 정안왕의 신주는 종묘 영녕전 서(西夾) 제5실에 입묘(入 廟)돼 있다.『정종실록』도 원래는『공정 왕실록』이었으나 숙종 때 정종으로 추봉 (追封)되며 뒤늦게『정종실록』으로 개칭 되었다. 릉(북 보존급문재 제551)은 제 릉(조고제 원비 신의고 능)과 께 북녘 땅 개성에 있어 지금은 갈 수 없 는 조선왕릉이다. 정종대왕의 산릉제도 부왕인 조 건원릉 정자각에서 매년 10 월 24일 봉고 있다. 개성의 릉은 봉분 높이 3.45m, 지름 7.5m의 규모로 능침 병석에 12지신 상이 새겨져 있다. 당대 공조서 박자청(1357 ~ 1423) 감독 에 문 ‧ 무인석, 석마, 장명등, 상석, 유석 등을 부조(浮彫) 배치다. 문재청에서는 남북일이 되는 그날 릉이 유네스코 세계문유산 조선왕릉 40기에 추가 등재되기를 기대고 있다. <세종/광대군 19대 ‧ 始44세> ☞ 다음에 계속 이보 정기구독 기간이 금번 ( 권 제289)로 만료되는 종친에게는, 별도로 지로용지를 첨부여 보내드립 니다. 지로용지에 정 주소와 성을 기재시고, 1년 청독료 1만원을 가 까운 은이나 우체국으로 납부여 주시기 바랍니다. 문의 (사)전주이씨대동종약원 문부 (02)765-2124
30 李花 289 옛 양 중심부서 조선전기 금속자 발굴 - 세종시대 천문시계 등 다양 금속유물 동반 출 - 글 금속자 ⓒ 문재청 문재청(청장 김모)은 지난 6월 29 일 보도자료를 (재)수도문물연구원 (원장 오경)이 발굴조사 중인 ‘서울 공 구역 제15 ‧ 16지구 도시경정비사업부 지 내 유적’에서 아리에 담긴 조선 전 기에 제작된 금속자 1,600여 점과 세종 ~ 중종 때 제작된 물시계의 주전(籌箭)을 비롯 세종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천문시계인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1점, 중종 ~ 선조 때 만들어진 총(銃筒)류 8 점, 동종(銅鐘) 1점 등의 금속 유물이 꺼번에 같이 묻있는 로 발굴되었다 고 밝다. 이번에 공개되는 금속자 중 가장 눈 길을 끄는 것은 민정음 창제 당시의 기가 반영된 가장 이른 시기의 글 금속 자다. 일괄로 출된 금속자들은 조 선 전기 다종다양 자가 곳에서 출 문재 이모저모
李花 289 31 원원(원) 가입 안내 전주이씨 원원(일반 원)은 18세 이상의 남녀로 본원 등록을 자를 말며 비(매 월 2천원, 3천원원, 5천원, 1만원) 납부의 의무와 권리를 사 수 있습니다. 원원은 종약 원과 새로운 소로그램으로 연결되어 이보를 비롯 각종 동의 정보를 접도록 것입니다. 원원 가입 신청 및 문의 ☎ (02)765-2124 된 첫 발굴사례로 그 의미가 다. , 민정음 창제 시기인 15세기에 정 되어 사용되던 동국정운식 기법을 쓴 금속자가 실물로 인된 점, 글 금속 자를 구성던 다양 기의 자가 모두 출된 점 등은 최초의 사례이다. 그 외에도 전지는 예가 극 드문 두 글자를 나의 자에 기여 연결는 어조사의 역을 연주자(連鑄活字) 도 10여 점 출되었다. 재까지 전진 가장 이른 조선 금속자인 세조 ‘을자 (1455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보다 20 년 이른 세종 ‘갑인자(1434년)’로 추정되 는 자가 다량 인된 점은 유례없는 성 과다. 또, 재 금속자들의 종류가 다 양여 조선전기 인쇄본으로만 인 수 있었던 여러 자들의 실물이 추가로 인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글 창제의 실제 여와 더불어 발게 이루어진 당시의 인쇄동을 살볼 수 있는 중요 자료다. 도기아리에서는 금속자와 께 세 종~중종 때 제작된 자동 물시계의 주전 으로 보이는 동제들이 잘게 잘려진 상 로 출되었다. 주전은 1438년(세종 20)에 제작된 경각 옥루이거나 1536년 (중종 31) 창덕궁의 새로 설치 보루각 의 자격루로 추정되며, 기록으로만 전 져오던 조선 시대 자동 물시계의 주전 실 체가 처음 인된 것으로 의미가 다. 자가 담겼던 아리 옆에서는 주‧야간 의 천문시계인 일성정시의가 출되었다. 낮에는 시계로 사용되고 밤에는 를 이용 수 없는 단점을 보완 별자리를 이용여 시간을 가늠 용도이다. 이 외에도 소기인 총은 승자총 1점, 소승자총 7점으로 총 8점이 발굴 되었는데 총에 새겨진 명문을 , 계 미(癸未)년 승자총(1583년)과 만력(萬 曆) 무자(戊子)년 소승자총(1588년)으 로 추정되었다. 조사 지역은 재의 종로2가 사거리의 북서쪽으로, 조선 양도성의 중심부이다. 조선 전기까지는 성부 중부(中部) 견 방(궁궐 관련 시설과 상업시설 등이 복 적으로 있는 도성 내 경제문중심지)에 속며, 주변에 관청인 의금부와 전의감 을 비롯여 왕실의 궁가인 순궁(順和 宮:중종의 순공주를 위 지어졌다고 는 궁), 죽동궁(竹洞宮:순조의 명온공주 를 위 지어졌다고 는 궁) 등이 위치, 남쪽으로는 상업시설인 시전랑이 있었 던 운종가가 위치던 곳이다. <정리 : 집부>
32 李花 289 이지란(李之蘭)의 계군(誡君)과 성석린(成石璘)의 언참(言讖) 이승창(李承昌) 본원 부이사장 이지란(李之蘭 : 1331~1402)은 청(靑 海) 사람으로 자(字)는 식(式馨)인데 본 래의 성명은 두란(佟豆蘭)이다. 그는 용맹이 있고 이 장사였다. 게다가 을 잘 쏘고 말을 잘 몰았다. 대대로 여진부 락(女眞部落)에 살았다. 원(元) 나라 말엽 에 원의 국내가 게 란지자 지란이 그들이 떨치지 못 것을 알고 가속(家 屬)과 부중(部衆)을 거느리고 동쪽으로 두만강을 건너 와 마침내 북청(北靑)에 와서 자리 잡고 살았다. 조대왕이 잠저(潛邸)에 계실 적 찾아 가서 그를 만나보시고 마디 말을 건네 고 서로 계이 되어 상 그와 처소 에서 숙식을 였다. 우왕(禑王)의 조정에 서 일찍이 시사(試射)를 여 여러 장군 의 실력을 가렸는데 조가 세 차례 시사 에 연거 모두 으뜸을 차지였다. 그러 자 지란이 조에게 경계기를, “기이 재능을 남에게 많이 보여서는 안 됩니 다.” 니, 조가 고맙게 여겼다. 조대왕이 영(永興)으로 거둥을 여 양(豊壤)으로 돌아오자 상소로 중 [僧]이 될 것을 청고 머리를 깎고 중의 옷[緇]을 입고는 수염(鬚髥)을 남기면서, “장부(丈夫)임을 야 다.”였다. 그 뒤로는 두문(杜門)고 찾아오는 손님을 끊고 살다가 나이 72세에 목욕을 고서 조용 앉아서 운명을 였다. 여러 아들 들은 조정에서 돌아오지 못는데 종자 (從者)가 시신을 장 사리(舍利)를 취 부도(浮屠 : )에 숨겨놓고 의관(衣冠) 만을 장사지냈다. 선조 25년(임진, 1592년) 이전에는 길 가는 사람들이 소나 말을 고서 그의 묘 (墓) 앞을 감 지나가지 못였다고 다. 일설에는 이지란이 북청(北靑)의 고 으로 돌아가는 날에 상소를 는데 그 대 략에, “임금을 도와 나라를 정으니 군신의 의리가 정진 것이고, 머리를 깎
李花 289 33 ◇ 별원원 가입 안내 ◇ - 가입자격 : 종친 개인이나 종 단체 - 가 입 비 : 200,000원 이상 - 연 비 : 연 30,000원 이상 (종 단체:100,000 이상 / 가입 당 연도는 연비 면제) 고 중의 옷을 입었으니 군신의 의가 끊어 진 것입니다.” 고, 마침내 상를 잘라 상소 속에 넣어 올렸다고 다. 임금[上] 이 그를 만류지 못 것을 알고 락을 고 건주로(建州虜)를 정벌 공으로 청 백(靑海伯)에 봉 주었고, 치사(致仕) 때는 벼슬이 좌찬성에 이르렀다. 개국 일 등공신에 기록되고 시가 양렬(襄烈)이 며 조 묘(太祖廟)에 배되었다. 성석린(成石璘 : 1338 ~ 1423)은 창녕 (昌寧) 사람으로 자는 자수(自修), 는 독곡(獨谷)이다. 종은 조고제의 정 비 신의고 씨가 출생였고 조가 창업 때에 종의 공이 가장 많았다. 계비(繼妃) 신덕고 강씨 소생자인 방석(芳碩)을 세자로 봉니 정도전 등이 방석에 아부고 종을 모려고 였 다. 그를 알아차린 종이 군병(軍兵)으로 정도전을 주살고 방석을 출니 조 가 대노여 둘째아들 정종에게 선위고 야반에 의 옛 집으로 (行幸)였 다. 그 문안사(問安使)로 갔다가 죽은 자가 뒤를 이었는데 이를 두고 당시에 어 딜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것을 비유여 ‘차사(咸興差使)’란 고사성어가 생기 기도 였다. 성석린이 조고제의 옛 친구로서 조고제의 뜻을 돌리기를 약속고 가기 를 자청니, 종이 락 주었다. 성석 린이 베옷[布杉] 차림에 백마를 고 갔 다. 과객(過客)의 를 고 가 말에서 내려 밥을 지으려고 불을 때는 용을 니 조고제가 바라다보고 중관(中官) 을 시켜 가보게 였다. 성석린이 이에 “일로 인여 지나가다 가 마침 날이 저물어 말을 먹이고 머물러 자고가려 다.”고 말을 다. 중관이 그 의 말대로 아뢰니 조가 기뻐면서 즉 시 소견(召見)을 였다. 성석린이 조용 인륜과 처변(處變)에 대 도리를 차분 진달자 조가 안색을 변면서 이르기 를 “너는 바로 너 임금을 위여 나를 이르고 있는가?” 였다. 성석린이 아 뢰기를, “신이 만약 과연 그러다면 신 의 자손이 반드시 눈이 멀어 소경이 될 것입니다.”였다. 조가 그 말을 믿고 뜻을 곧 돌리니 조와 종이 이로 인 여 마침내 였다. 그런데 성석린의 장자 지도(至道)가 소 경[盲]이 되고 차자 발도(發道)는 아들이 없고 지도의 아들 창산군(昌山君) 구수 (龜壽)와 그 아들이 다 뱃속서부 소경 이 되어 출생였다고 다. <소대기년 (昭代紀年)> 성석린은 벼슬이 영상(領相) 에 이르렀고 시가 문경(文景)이다. <종/양녕대군 16대 · 始4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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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李花 289 어머니 봉양일기(6) 이병준(李炳俊) 본원 문부 수석 차장 2021.2.13. 생일날의 서글 斷想 음력 정월 초이날(양력 2월 13일)은 내 생일이다. 인천에는 나 외에 딸린 식구가 9 명이다. 아내, 아들 둘, 며느리 둘, 손자 명, 손녀 세 명 등 나 10명이다. 어머니 봉양에 골몰 에 내 생일 챙길 여유가 없다. 요양보사도 설 연 기간 4일은 쉬기 때문에 설 연 시작 전 에 준비돼 있는 소고기 국거리가 있으니 미역국을 끓여달라고 별 부서 내 생일 준비는 끝낸 셈이다. 생일날 아침 식사를 끝내고 수저를 놓 으시며 어머니께서 말씀 셨다. “둘 (손주며느리) 중에 나는 와서 설도 쉬 고 생일상도 차려주고 가면 안 되나?” 손 자가 둘이니 작년에 맏손자가 왔다 갔으 니 시는 말씀이다. 생 짧은 삶에 짜 리로 남겨진 날들을 아려보며 속 깊 은 애린 말 참고 참다가 겨우 마디 신 거다. 자식 생일상을 손수 차려 주지 는 못고 요양보사가 미리 3일 전에 끓여 놓은 미역국을 덥 제 손으로 서 소의 반찬 그대로의 생일상을 대고 보니 어머니 생에 처음 겪는 경우다. 속으로 무척 섭섭셨던 모양이다. “어머 니, 아이는 병원 당직 근무이고 둘째 는 공 비상 근무가 돼서 내 생일날도 주간 근무라서 못 와요. 근무도 근무지만 코로나로 인 5인 이상은 모이지 못게 서 더욱 못와요.” 라고 급게 변명으 로 얼버무리고 넘겼으나 내 속도 개운치 가 못다. 아내에 대 얘기는 입 밖에 내지도 못다. 생 삶이 유데 만물의 영장이라 는 인간으로 어났으면 사람다운 기본 도리는 스스로 자각고 인식서 실천 야 는데 요즘 세가 그렇지 못다. 잘못된 인성교육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겠 지만 가족 시대가 되어 극도의 개인주 의에 바을 둔 에고이즘이 만연 원인
李花 289 37 일 수도 있겠으나 근본적으로 내 나이 세 대와 그 아랫 세대는 도덕적 인식의 차이 가 고 경에 의 가치관이 극 비정 상적으로 전도된 것이 변명의 여지가 없 는 실 세다. 직장 임을 계기로 작정고 귀 어머니 모신지가 어느덧 1년이 다 되어 맞이는 첫 새이니 걱정이 되어서라도 안부가 궁금서라도 번쯤은 이미 와 봤어야 는 게 직계 가족으로서 도리인 데 아내도 아들도 고은 무관심이다. 설 득과 강요로 바뀌어 질 사고와 습성이 아 니기에 계를 느끼고 내 스스로 견디며 그냥 지나가려는 데 지켜보시는 어머니 마음은 말씀을 삼가고 있지만 애고 서 운 마음 이루 말 수 없을 것은 미루 어 짐작이 간다. 어머니 생신(음력 11월 27일) 때도 코 로나 계를 대고 딸도 안 오고 설날에도 초이날 아들 생일에도 붙이 가족이란 게 코빼기도 안 보이니 어머니 심경이 착 잡고 마음이 쓰라렸을 것은 불문가지 이다. 나 역시 마음 언짢기는 마찬가지이 나 체념이 약이 되는 이치를 아주 일찍 깨달아 가 달관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내 마음 스스로 상지 않게 잘 다스려 나간다. 이 소박 바램 자체도 만고에 나만의 욕심이라 생각고 ‘인간의 욕심 에는 입만 있지 문은 없다. 그래서 인 간의 욕심은 뱃속에다 넣을 줄은 알아도 배설 줄을 모른다. 이것이 인간의 욕심 이라는 어리석음이 짓는 이다.(윤재근의 장자 철우에서)’ 라는 이 말씀으로 자위를 삼는다. 물질에 대 궁극의 욕심 을 는 말씀이지만 실에서 이루어지 기 어려운 일을 막연 기대는 것 또 정신적인 욕심이 아니겠는가. 소에 어머니가 밥상을 차리는 경우에 는 상 내 밥과 국을 먼저 신다. 그게 소 자식에 대 원초적 사랑으로 몸에 자연스레 배인 모성애의 출이다. 내가 상을 차리는 요즘 내 또 어머니 밥과 국을 상 먼저 고 내 것은 당연 뒤 에 챙긴다. 사소 일이지만 이것이 천륜 에 의 도덕으로 별 교육 받지 않았 지만 자연스레 승계된 자성(自性)으로 은 를 아는 사람으로서 원초적인 아름다운 도덕적 습성이 아니겠는가. 이 착잡 날도 또 지나가리라. 세상 이치가 내 뜻대로만 돌아가길 바랄 수 없 는 일, 고쳐지지 않을 일, 개선되지 않을 일을 마냥 기다리는 어리석음 보다는 기와 체념도 약이 되는 이치를 일찍 깨닫 고 보니 나는 스스로 다이란 생각이 든 다. 애달 기 보다는 마음을 미리 예 견 비워 버리고나면 섭섭도 애달도 서서 사라진다. 그러나 어머니 맘에 멍 울지는 상처는 쉬 사그러질 수 없음을 나 는 미루어 짐작 알 수 있다. 아일곱 의 어머니 나이에 연유는 어찌 수 없는 애끓는 신산의 아, 서글 삶의 저녁 노을 위에 지는 그림자이다. 자식된 자로서 느껴야 는 아도 결코 쉽게 기와 체념으로 결 되는 것도 아닌 것을. 어떻게 드려야 어머니 가슴 속 숯 검댕이 먹구름을 거둬드릴 수 있을까 묘책 이 떠오르지 않아 속이 상니 만신창이가 된 아의 상처는 수습 수도 없구나.
38 李花 289 ‘뜻이 나이면 마음은 저절로 길을 가게 된다. 본래 뜻이란 마음의 발걸음이 다. 그 발걸음이 비거리지 않는데 어찌 곁길로 벗어날 것인가.(윤재근 님의 <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에서)’ 오늘은 이 마디의 글로 내 마음을 다스린다. 2021.2.23. 이보 집의 뒷이 날 오늘은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문부 李 花보 집 의가 오 2시 30분에 개최 되는 날이라서 시간에 맞게 참석야 다. 봉 버스미널에서 동서울 버스 운이 코로나로 인 루 왕복 12 운에서 6 운으로 줄여버렸다. 가는 건 3(7:50, 12:20, 16:40) 운 뿐이 다. 오전 7시50분 첫 버스로 출발면 서 울 도착 세시간 소요로 10시50분 경이면 동서울 도착다. 점심 식사고도 시간 여유가 있어 다다. 종로 3가 대종(전주이씨 온녕군)에 설 명절 인사도 겸 들렀더니 장님은 계시지 않고 사무장과 이실장이 있어 간 단 인사고 전임 사무장(기복)이 건물에 기거고 있으니 종사일 직 쉬고 있는 것 같아 식사 대접이라도 려 고 전더니 반갑게 전를 받았다. 나 오시라 서 낙원상가 백제삼계에서 식 사를 마치고 커는 자기가 사겠다고 서 께 고 오늘 목적지인 대동종약원 으로 발길을 옮기다. 범직 박사님과 규원 총장이 먼저 와서 원고 교정을 보고 있었다. 나는 산군종 사무장 재직시에는 상 지각을 는 데 임니 시간 여유가 있어 오늘은 예 정된 시간보다 1시간 일찍 도착다. 원 고 교정부 알뜰 챙기는 자세들은 모 두 진지다. 각 위원들은 저마다 전문 분야와 자기만의 독 문체가 있다. 가 장 중요시야 는 사은 역사 고증, 문물, 제도 등의 기술에 있어 역사적 사 실의 명징성과 객관성, 사건의 연대 등은 오류가 발생서는 결코 안 된다. 일개 문부 차원을 넘어 500만 전주이 씨 전체의 자존심과 명예, 격에 수치스 러움이 되고 누를 끼치게 되기 때문이다. 오늘은 별 승창 부이사장께서 자리 셔서 본인이 이사로서 관장던 제2문 부는 문1부로 조직을 치고, 1,2부 차장은 두 분 다 그대로 존속되 명칭을 수석차장과 제2차장으로 명칭을 변경음 을 말다. 별 것은 규원 언론인 사무총장을 우리 <李花>보 주로 추 대로 다는 그간의 변동된 내용의 전 언이 있었다. 어느 잡지(월간, 격월간, 계 간)던지 주은 당연 있는 게 내부 직 제 제와 대외 명분상도 당 조직 운 영이다. 늦었지만 아주 잘된 조치로서 기 뻤다. 왜냐면 사람의 역량에 걸맞게 모 실 줄도 알고 부릴 줄 아는 조직이라야 역동적 조직으로 생산성 상을 기대 수 있고 거시적 안목으로 발전을 지 갈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은 코로나 방역 지침에 따라 저녁 식사는 생략다는 전언이 있었기에 집 의 마치는 시간을 5시경으로 예정서 문세계 선배 문인으로 시인이신 추산 선배님과 종로 3가 1번 출구에서 만나 저녁식사를 기로 약속다. 바쁘게 그
李花 289 39 곳으로 가서 맛골 김치찌게 맛집에서 막 걸리 병에 소주 각 1병 곁들여 저녁식 사를 끝내고 문부 위원들 식사는 곳, 국일관 앞 차카로 류다. 별거 아닌 직제 개으로 자축 기분의 모임이었다. 병, 규원, 승종, 상, 나 이렇게 다섯 이서 오붓게 자리다. 다소의 주기(酒 氣)는 있었으나 조직의 성를 위 발 전적 얘기들이 진지게 오고 갔다. 얘기 중에 승종 위원이 대의 기법상 기본 예 법으로 정곡을 찌르는 말을 서 감동을 받았다. “다섯이 모인 자리라면 본인는 지분상 20%만 얘기고 80%는 인의 얘기를 들을 줄 알아야 다”는 멋진 얘 기였다. 공감이 가는 일갈이다. JH박사 얘기가 나왔다. 긴 얘기는 생략 고 그만 지식과 력을 갖춘 논객을 구기도 드는데 다소 본인의 격에 미 점이 있어도 같은 문부 울 리 원으로 보듬어 인재로 용야 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그러나 내 생 각이 전적으로 옳다는 전제에 말은 물론 아니다. 내 말에 반응고 수긍는 모습을 지켜보면 자연스레 알 수 있는 일 이다. 좌석을 주도는 말은 당위성과 상 대에 대 배려와 용심이 중요다. 오 늘은 동료에 대 대승적 시각에서 우리 끼리 잠시나마 진지게 우정어린 배려로 논의으로서 비록 본인은 동석지 못 지만 우리들 다섯 사람은 그에게 참으로 떳떳고 아름다운 금란지교의 우정을 나 눈 시간으로 추억 명 장면을 연출 각 자 주인공이 된 셈으로 기쁜 날이 되었다. 오늘 문부 집위원들과의 비공식 모임 에서 론 대의 의미들을 되새겨보며 이인 수녀님의 시 <밝은 마음 맑은 말씨> 의 구절을 암송며 오늘을 마감다. 자기 자신의 기분 보다/오려 상대방 의 기분을/먼저 아리고 배려는/사랑 의 마음이 느껴지는 말씨/이기심과 먼 인 정 가득 말씨는/언제나 우리에게 감동 을 줍니다. 2021.3.6. 어머니가 냄비를 워버린 날 인천 집 도림동에서 둘째 장가 보내고 며느리 맞이서 8년차(만7년) 께 살고 있다. 그 동안 출생 손녀 둘 중에 맏손 녀 도연이 그저께 초등교 입을 으 니 세월의 빠름을 느낀다. 나는 그간 불 도 안 들어 오는 냉방에 나 로 자면서 도 그렇게 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 다. 각자 방 칸씩 사용는데 신부 부인 아들 내외 방이 둘이서 거처 적 엔 잘 못 느꼈겠지마는 손녀가 둘 어난 뒤의 방 거처란 상상도 못 정도로 불을 것이다. 그래도 별 불 내색 지 않고 생준 둘째 내외가 고맙다는 느낌에 미안 감도 있다. 이사는 무사 잘 마치고 고집에 도 착서 부엌방에 들어가니 매캐 냄새가 느껴졌다. 이사 때문에 인천에 3일간 머 물다 돌아와 씽대 설거지가 깨끗게 되어있지 않아 살보니 손잡이가 긴 제 일 작은 냄비가 새카맣게 적이 분명 다. 냄비를 엄마에게 보이면서 “엄마, 냄비 우셨어요?” “그래, 깜빡어” 아 주 미안 시는 정이셨다. “엄마, 냄 비가 작아서 금방 끓기 때문에 국 끓일
40 李花 289 ■ 282 69면 성자 명단중 889번 埈 → 峻으로 ■ 288 1면 목차중 조선왕릉실록(3) → 조선왕릉 실록(4)로 12면 진남군종 정기총 결과중 신임 장의 이름을 栢圭 → 起鍾으로 67면 5줄 종묘제례보존 CMS자동이체 자 중 종달 자문위원이 낸 5만원은 종묘춘대제 성금으로 바로잡습니다. 때는 올려놓고 다른 일보면 절대 안되요. 장실 볼일 보거나 전가 와서 급게 받으러 갈 적에도 반드시 불을 끄고 가야 요. 우체부 아저씨가 왔을 적에도 그래 야만 요.” 라고 조곤조곤 말씀을 드렸 으나 초기 치매로 어머니가 무서운 정신 력으로 근근 이겨내고는 있으나 내가 개인적인 일로 잠시 봉 5일장에 반찬거 리 사러 갈 적이나 서울에 종친나 문 문인 모임에 잠시 2,3일 다녀올 적에 도 상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매 끼니 식사시간 지나서 식사를 제때 셨는지, 식에 먹는 약은 잊지 않고 드셨는지 꼬 박꼬박 전로 여쭈어봐야 다. 이사러 갔더니 아네스(아내)가 “이웃 집 사람들이 오랜만에 당신 보고 야위었 다고 요. 내가 봐도 좀 그런 것 같고요. 제천 여동생고 상의서 이젠 집도 분가 이사으니 달에 몇 일 동안만 이 라도 집에 와서 쉬다 가도록 야지요?” 아내의 딱 심정을 이 못 는 건 아 니나 아일곱의 어머니는 결국 제자식이 모셔야 어머니가 안게 느끼시기 때문 에 내가 모실 수밖에 없는 실이다. 내가 모신다고 들 몇 년, 며칠이나 될까. 가끔 친구들과 지인들이 전가 와서 위로의 말과 치의 말, 용기 잃지 말라 고 격려준다. 어머니를 일찍 여읜 분들, 90세를 넘기신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분들, 부모님을 여읜지 얼마 안 되 는 분들이 내가 카에 올린 <어머니 봉 양 일기>를 읽고 전와 메시지를 많이 보내준다. 너무나 고맙고 위로가 된다. 주 5일간 집에 와서 반찬 조리와 청소, 세, 치매 예방 즐놀이 등을 주는 재가 요양보사는 어떤 면에서는 가족보 다도 소중다. 그분들의 역이 가족이 못는 사각지대의 궂은 일들과 단독 거 주자 또는 지체부자유자 등의 위 취약 점을 봉사를 넘어 지극 선 마음으로 성실게 일주고 있기에 천주님의 사명 자로서 천사같은 마음을 지닌 분들이라 생각된다. 감사는 마음으로 그 은를 새기게 되고 은를 새겨보면서 사람으로 지음 받은 은총에 감사다. 범사에 참사 람으로서 내 좌우명인 <된사람, 든사람, 난사람>으로 더욱 철저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절실게 되고, 재 머물러 살면 서도 남은 날들의 삶을 지롭게 아려 더욱 진실게 깊이 사유며 살 수 밖에 없는 게 인생이란 생각을 깊게 본다. <오늘의 독서 비망록> 오늘날 가장 눈에 띄는 상은, 요 없는 지식을 산처럼 채워 넣고 자신을 자나 교 양인, 자라고 생각고 있는 사람들이, 자 기 인생의 의의도 모르면서 오려 그 모르 는 것을 자랑는, 깊은 미망의 구렁 속에 빠 져 있다는 것이다.ㅡ이인 지음 <인생이 묻 고 스이가 답다>에서ㅡ <종/온녕군 17대 ‧ 始41세> ☞ 다음에 계속 바로 잡습니다
李花 289 41 세종대왕신문 이지 왕실역사문 전문 세종대왕신문 창간 - 인넷으로 읽고, 유브로 시청는 신문 - 왕실역사문 전문 인넷신문인 세종대왕신문이 창간됐다. 세종대왕을 비롯 왕과 왕실, 우리나라 역사문를 깊이 있게 다루는 세종대왕신문이 지난 8월 2일 본격적인 서비스를 시작다. 다양 기사들은 인넷 게시와 께 동영상(유브)으로 제작돼 소개되고 있다. 세종대왕신문은 세종의 잘 알려지지 않은 스리, 왕의 비밀 이야기, 왕자들의 삶, 왕
42 李花 289 ▲ 세종대왕신문이 창간기념으로 실은 백두산은 세종대왕이 심을 기울여 보 영다. ▲ 경남 남군 금산(錦山)의 보리암(菩提庵)이다. 보리암은 ‘기도발’이 잘 받는다는 전국 제일의 기도도량으로, 조대왕이 백일기도를 올려 조선을 개국다는 이야기가 전지고 있다. 실의 문, 사대부와 민중의 삶을 다루는 수전문지다. 창간 기사 에는 전주이씨대동종약 원 이귀남 이사장과 대 제국 이원 사손의 별 축 메시지가 실 려 있다. 이귀남 이사장은 별기고문에서 “세종대 왕신문이 다루는 왕실 의 역사문는 전주이 씨대동종약원이 추구 는 숭조돈종(崇祖惇宗), 문 창달 및 시민의 도의 앙양과 맥락을 같 이 다”며 “문의 이 면, 역사의 뒤까지 살 는 총체적인 이와 보도, 창의적이고 독 시각의 기사로 삶을 더욱 성게 는 왕 실역사문 전문지를 기 대다”고 말다. 이 원 대제국 사손도 “세종이 위대 조선을 건설 수 있었던 은 글 창 제 국민 등의 소 기 마련과 소의 율적인 실천이었다”며 “세종대왕신문은 진정 소, 겨운 소으로 대민국이 결 밝아지는 데 이바지 것이라고 믿는 다”고 기대감을 보였다. 인넷으로 읽고, 유브로 시청는 신문 세종대왕신문은 창간 기사부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세종이 꿈에서 본 나 라, 세종을 성군으로 만든 3출(出)정치, 나라를 다스리는 지를 얻는 법, 천상에서 지 상을 잇는 생명의 로 (胎) 등 새로운 발굴 기사들이 을 받았다. 또 세종시대의 BTS, 세상이 궁금 왕비를 위 별 공간, 바람과 대는 민족의
李花 289 43 책소개 개 정 증 보 H o w t o N a m e 이 동 우 성 명 전 서 - 전국 유명서점과 인넷 절찬리 매중 초 절으로 개정증보 발 - s령대군 15대손 東宇 s사)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서울별시 지원 감사 *사)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서울시 서초구분원장 *인릉(순조숙제)봉 장 *성균관대교 총동창 부장 ◦수상:녹조근정장,청백봉사상등 다수 *서초구민신문,매일리스뉴스(논설위원) 이름설가, s서초구청 OK민원센장,종민원실장,서초2동장,적계장 *KBS TV등에 160 출연채널A.TV.명랑결단에 박근,노우,김대중 이승만대령과 이병철 이건 구본무 정몽구장 등 이름이 출연 *작명경력45년,서초구청에서 만 16년간 6,000여 명 작명 *서울시 작명의 달인 선발(2010년) *서초구 서운로13중앙로얄 빌딩 1404 양재역1번 출구 서초구청 외교센 건너 *명 신생아 작명, 개명, 아,상 문의 H.P 010-2804-6438, 02)565-6438 정가15,000원(우리은1002-115-265927이동우) 저자 이동우 낸곳: 솜미디어 영산 백두산, 마이산 금척 신, 임금님이 받은 성공 책, 이야기가 있는 경, 비욘드 연재물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밖에도 전염병과 국사, 별이 되어가는 어머니 등 다양 읽을거리가 넘친다. 104왕자를 연재 ‘왕자 종친를 찾아서’ 코너는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임 영대군종 게재로 시작된 이 코너에서는 시조인 왕자에 대 새로운 석의 글, 손의 삶, 재 진중인 종중의 역사와 주요 안이 소개된다. 또 9월부 게재되는 종친CEO 코너, 제의 종친과의 대 코너도 반이 예상 되고 있다. 세종대왕신문이 창간기념으로 실은 백두산은 세종대왕이 심을 기울여 보 영다. 이상주 세종대왕신문 발인은 “세종대왕의 비밀스런 이야기, 왕과 왕실과 수 문 , 각 종의 동, 역사 뒷면의 깊은 이야기를 발굴고 재석 글을 쓰는 고급 수 역사문 전문지를 추구다”고 말다. 세종대왕신문은 20년 이상 경력의 역사문 전문기자 4명, 계와 장 전문가로 구 성된 10명의 전문 진이 글을 쓰고 있다. 또 왕자 종 소식을 깊이 다루기 위 각 종중으로부 명예기자도 추천받고 있다. 세종대왕신문 기사는 네이버 등 에서 ‘세종대왕신문’을 검색면 볼 수 있다. 동영상은 유브에서 ‘세종대왕신문’을 치면 시 청 수 있다.
44 李花 289 세종 신빈 청주김씨(愼嬪 淸州金氏) 임옥 1464년(세조10, 갑신 년) 세상을 떠난 세종 궁 신빈 김씨는 경기도 남양부 은성리 비봉산 능 곡 인좌(寅坐) 신(申 向) 언덕에 예장되었다. 경기도 성시청의 좌측 바로 옆에 신빈 묘 가 있다. 신빈의 비문(碑 文)에서는 남양부 관아가 은성리에 있고 그 동쪽 5리에 신빈 묘가 있다고 고 신빈의 묘 지(墓誌)에서는 묘의 서북 사이 5리에 남 양부 관아가 있다고 니 성시청은 옛 남양부 관청 자리에서 동쪽으로 5리 옮겨 신빈 묘 우측으로 이전 것을 알 수 있다. 신빈 묘는 1994년 경기도 기념물 제 153로 지정되었다. 지에서 ‘애기능’, ‘밀릉’으로 불릴 정도였으나 신빈 손 육 군대종에서 성시청부지로 수만 을 기증였고 또 묘역 앞을 가로지르 는 지방 도로에 많이 입되고 그 도로 너머는 사유지로 변여 지금은 처음보다 많이 축소된 상라고 다. 묘역에 우뚝 솟은 살문을 거쳐 언덕에 오르면 분묘 가 있고 그 좌측 아래에 비각이 있고 그 안에 높이가 230m가 넘는 글자를 알아볼 수 없을 만 마모된 비가 들어있는데 이 는 조선 역대 궁 중 최초의 신도비이다. 신빈 김씨의 비문은 1465년(세조11, 을 유년) 괴애(乖崖) 김수온(金守溫, 1410~ 1481)이 지었다. 김수온의 문집 식우집 (拭疣集)에 신빈의 비문이 누락 되었으나 종반적(宗班行蹟)에 실려 전고 있다. 생졸, 봉작, 적이 뚜렷고 종반적에 실린 9인의 궁 중 맨 앞에 수록되었다. 종반적이란 1681년(숙종7, 신유년) 신빈 김씨 묘역
李花 289 45 숙종의 명으로 종친부에서 처음 간 왕실서적이다. 또 영조가 생모 숙빈최씨 등을 수록여 재간 바 있다. 충, 절의, 문장, 경 등 뚜렷 자취가 있는 다수의 역대 왕자와 소수의 왕손과 증손 과 손을 왕족 65인과 공주와 옹주 13인과 빈 8인과 숙의 1인의 비문 과 시상(諡狀) 은 전(傳), 간략 유사 (遺事) 등이 수록되었다. 또 종반적에 신빈 김씨의 장남 계양군(桂陽君) 증(璔), 3남 밀성군(密城君) 침(琛), 4남 익군 (翼峴君) 곤(璭)의 비문과 손자 강양군 (江陽君) 숙(潚)과 소위 영종(宗英)으로 불린 손 금천군(錦川君) 감(瑊)과 순천 군(順川君) 관(琯)의 적도 실려 전다. 신빈의 관은 청주김씨, 부친은 첨지 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 원(元)이고 모친은 삭녕고씨로 1406년(종6, 병술 년) 7월 12일에 어났으나 묘역의 안내 이나 일부 자손 세보(世譜)에는 관이 청김씨(淸風金氏)로 소개되어있다. 그 선대(先代)는 비문에 나나 있지 않으나 신빈의 셋째 아들 밀성군의 손 숙종 조 좌의정 이이명(李頤命, 1658~1722)의 문 집 소재집(疎齋集) 12권 잡저(雜著) 만록 (漫錄)에 보인다. “신빈 김씨가 사족(士族)의 여식으로 궁인으로 선입 되었다.…그(신빈과 밀성 군) 손이 번성였으나 아직 다 상고 지 못다.” 였다. 일국의 재상으로서 어찌 언 겠는가? 신빈에 대 잘 알려지지 않은 자료이다. 1439년(세종21, 기미년) 1월 27일 실록 에 20일 전 막내 담양군을 낳은 소의 김 씨를 세종이 당장 정1 빈(嬪)으로 봉 고 싶어서 도승지 김돈(金墩)과 의논며, “소의는 본래 내자시(內資寺, 간장 등 장류와 기름 술 등을 제조여 대궐에 공 급는 조의 부속기관)의 여종(婢)으로 무술년(戊戌年) 내가 처음 즉위 때 모 께서 뽑아 중궁에 보냈다. 나이 13세였다.” 라고 것은 1418년(무술년) 종이 세자(양녕대군)를 위시켜 궐 밖으로 내 치고 세자궁 젊은 궁인도 모두 궐 밖으로 방출고 새로 충원 때 원경왕 여 민씨가 신빈을 세자궁 궁인으로 선발였 다는 말이다. 신빈은 12세에 궐 밖 내자 시 공노비로 있다가 13세에 입궐 것이 다. 충녕대군이 세자가 되고 두 달 종의 양위로 보위에 오르자 신빈도 소 왕(昭憲王后) 처소로 옮겼다. 1439년(세종21, 기미년) 1월 27일 실록 에 세종이 도승지에게 말길, “소의는 6남 2녀를 낳았으나 딸 둘은 죽고 아들은 다 살았다.” 였다. 실제로 신빈은 6왕자 2옹주를 낳았다. 조선 역대 궁 중 7왕자 3옹주를 낳은 성종 숙의 남양씨 다음이다. 종반적에 신빈 김씨 묘비각
46 李花 289 는 신빈 다음으로 숙의 씨가 올라있다. 신빈은 병오년 21세에 장녀, 정미년에 장남 계양군, 무신년 둘째 왕자 의창군을 낳고 처음부 내명부 높은 작위 정3 소용(昭容)을 받았다. 기유년 차녀, 경술 년 셋째 밀성군, 신년 넷째 왕자 익 군을 낳아 21세부 26세까지 무려 6년 연속 자녀를 낳았다. 27세 임자년 종2 숙의(淑儀)에 봉지고 이듬 계축년 정 2 소의(昭儀)로 봉졌다. 29세에 영응 대군의 유모가 되고 이듬 을묘년 다섯 째 왕자 영군을 낳았다. 34세 기미년 막내 담양군을 낳고 종1 귀인(貴人)으 로 봉졌다. 7년 병인년 소왕가 (薨)고 이듬 정묘년 42세로 정1 빈(嬪)으로 봉졌다. 작는 신빈(愼嬪) 이다. 2년 기사년 세종은 안국동에 당시 동별궁(東別宮)으로 불릴 정도의 저을 지어 영응대군을 분가시면서 유모였던 신빈을 모시고 살 것을 명였다. 가 바뀌고 경오년 2월 세종은 영응대군 사저 로 접 나가서 열 정도 신빈의 간를 받다가 그 집에서 승였다. 신빈은 국상 당시 규정을 따라 자수 궁(慈壽宮)으로 들어가 머리카락 자르고 계(戒)를 받은 비구니가 되어 먼저 죽은 세종 일가의 명복을 빌었다. 자수궁은 대 궐 서문 밖 옥인동에 있었던 무안대군의 사저를 수리 별궁으로 여기서 세종의 궁들이 여생을 보냈다. 단종이 즉위 신빈의 속을 락 였으나 신빈은 받지 않았다. 세조는 즉위 별 신빈궁(愼嬪宮) 을 지어주었다. 왕비 처소 어린 궁인의 기본 소임 중 나가 대군과 공주 아기씨 돌보기였지만 무술년 자신의 가족과 처음 입궁 신빈이 자신을 두 살 때부 잘 돌본 것은 물론 세종과 소왕를 32년 간 결같이 섬겼고 세종의 각별 총애 를 받으며 자식을 많이 낳고도 생 변 없이 근신을 아름답게 여기고 종신록 우대였다. 실록에 자수궁과 신빈궁을 지는 인원이 각각 다른 것으로 나나 있으므로 실제 별도로 존재음을 알 수 있다. 신빈이 받지 않았다는 설이 있고 실록이나 비문에 신빈이 자수궁에서 나와 신빈궁으로 옮겼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 다. 다만 신빈의 비문에 “자수궁에 별거다 순천(天順) 8년 (1464년, 세조10, 갑신년) 가을 병들어 침상에 누우니 상(上, 세조)이 친 물 을 바르게 점검고 의녀와 약을 갖추어 보냈으나 9월 초4일 정실(正室, 거처던 실)에서 졸니 춘추 59이다.” 였으니 신빈은 자수궁 신빈 실에서 14년을 살았다는 말이다. 자수궁에 있을 때 아들들이 세조공신이 되었으나 속 지 않았다. 신빈의 6왕자 실은 경북 성주 선석산 세종왕자실에 봉(封) 되었다. 신빈과 6왕자는 어려서부 세조와 가 까웠다. 일찍 죽은 막내 담양군을 제외 다섯 왕자가 세조공신맹록 명단에 올라 있다. 장남 계양군 증을 세종이 끔찍게 여 겼다고 사관(史官)이 적었다. 직접 씻기고
李花 289 47 제일의 가문 규수를 찾아 장가보냈고 잘 살았기에 세종의 은를 입은 왕자라 였다. 세조의 잠저 서무를 출납였고 세 조가 단종으로부 양위 받아 내려고 자 처음에 얻어선 안 되는 자리라고 였 고 빈 양씨 소생 이복동생들까지 역모 로 엮는 기무(機務)에 놀랐지만 막지 못 였다. 결국 세조일등공신 중 1위로 책 되자 사은지 않고 동안 숨어서 세에 내려갈 것을 괴로워였다. 삼 년 뒤 갑자기 의경세자(懿敬世子)가 죽어서 세자빈(계양군의 처제, 일의 인수대비) 과 월산대군 명숙공주 성종이 궐 밖에서 12년 살 때 계양군 내외가 보살던 도 중 계양군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불경 간경도감 제조, 세자(睿宗) 가례도감 도제 조를 맡았다. 정조는 재전서에서 계양 군을 역대 종친 중 몇 명 안되는 종영으 로 꼽았는데 실제로 귀 를 내지 않고 어질어서 종영으로 칭송받았다고 다. 차남 의창군 공은 결백고 강개 왕 자로 단종 복위 운동에도 가담였다는 설이 있고 33세로 졸였다. 3남 밀성군 침은 세조의 잠저에서 서무 를 출납고 세조가 처음 신설 오위도 총부 초대 도총관을 지냈다. 사옹원 문소 전 종부시 도제조를 겸며 왕실 사찰과 불사를 다스렸다. 이시애 반란 사건에 의 금부 도위관을 지냈다. 어린 예종을 충심 으로 보며 남이의 옥사를 다스리고 다시 도총관을 지냈다. 예종이 세종 능을 천장 때 도제조를 맡았다. 당대 거부로 자식을 많이 낳았고 첩실이 없었고 소위 종영으로 칭송받고 손이 번성고 인물 도 많이 배출되어 조선 왕자 가문 중 손 꼽는 명문가를 이루었다. 년 50이다. 빈 소생 수춘군의 대가 끊겨 밀성군 아 들 수안군이 뒤를 이었다. 4남 익군 곤은 빈 소생 수춘군과 께 세종이 별 궐 안에서 우게 명 였고 세조일등공신 중 2위로 33세에 졸였다. 5남 영군 당은 초명이 장(璋)이다. 실이 뛰어난 왕자였으나 생 몸이 약 였다. 년 43이다. 막내 담양군 거는 약고 부왕이 위 중여 친영을 미룬 상에서 국상을 당 고 담양군 역시 병을 얻어 12세로 세 상을 떠났다. 10년 지나 경진년 신빈 김 씨 생전에 세조가 명으로 계양군의 차 남 강양군을 담양군의 계자를 세워주어 결국 신빈의 여섯 아들 모두 문를 이루 게 되었다. 지금 대구 계사에 전는 보물 제 992 건칠관음보살좌상은 삼베를 겹겹이 둘러 만든 것으로 그 속에 세종 29년 대 시주 영응대군, 신빈 김씨, 영군 등이 적 있다고 다. 1447년 세종 29년(정 묘년) 신빈은 정일 빈의 작를 받은 바 있고 신빈이 양육 영응대군은 역양 대군(歷陽大君)에서 영응대군으로 칭이 바뀌고 영군은 건강지 못였다. 양주 곡산에 강무장(講武場)이 있었 다. 왕실의 무예 연마 겸 사냥 장소였다. 어느 강무 도중 난 불로 산 아래 묘적 사 까지 다. 산은 여전 강무장으로 쓰이고 세종도 다녀갔으나 절은 수십 년 방치되었다. 신빈은 세조 갑신년 묘적사
48 李花 289 중수에 재산을 내놓았다. 세종의 명복을 빌기 위이고 계양군이 갑신년 정월부 위독였기 때문이다. 가을에 계양군이 세상을 떠난 뒤 20일이 못 되어 신빈도 떠났다. 시작 사업이 끝나지 않았어도 죽음 앞에 관대고 여유로웠다고 다. 밀성군이 모친의 유지를 받들어 공사를 진는 사이 뒤에서 돕던 세조와 예종 의 연이은 승로 중지되고 성종 임진년 8년 만에 완공였지만 무게도 재 그 당시 규모나 적은 남아 있지 않다. 밀성군의 요청으로 김수온이 먼저 신빈 의 비문을 짓고 묘적사 중창기도 지었다. 김수온은 당대 문장가로 집전 사 출 신이면서 불교를 신봉 인물이다. 그의 친이 간에 글 창제설이 있는 신미 대사(信眉大師, 金守省)이다. 글 창제 당시 광대군이 갑자기 20세로 졸고 달 남짓 지나 을축년 초 원대군이 19세로 졸고 이듬 병인년 봄 소왕 상을 당여 깊은 슬에 빠진 세종 일가를 위로고 불사 승려가 신미대사 이다. 신미대사를 초청 사람이 신빈이라는 설이 있다. 그 병인년 가을에 민정음이 반되고 그로부 4년 뒤 세종이 승 였다. 문종은 국상을 마무리고 신미대 사에게 격적인 승작(僧爵)을 내리고 깜 짝 놀란 신료들에게 세종이 신미대사를 처음 만난 것은 병인년이라고 설명였 다. <세종/담양군 19대 상철 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