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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by 제이미파커스, 2019-05-20 23:16:13

발행인칼럼_38

발행인칼럼_38

발행인 칼럼 38_ 스페인 기행② 쿠엔카(Cuenca)

내력 1300년,
마술에 걸린 요새도시

발행인 칼럼 38

스페인 기행 ② 쿠엔카(Cuenca)

내력 1300년, 마술에 걸린 요새도시

박경욱 : 본지 발행인, 제이미파커스 대표

2월 21일 저녁, 나는 마드리드의 ‘비센테 칼데론(Vicente 걸린 도시’라고 한다. 이 도시의 사연 속으로 들어가 보자.
Calderon)’ 스타디움에 있었다. 홈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스페인은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문화유산이 이탈리아 다
비아레알의 시합이 끝나고 경기장을 빠져나오니 11시. 차를
찾아 거의 12시가 되어서야 출발했다. 목적지는 마드리드 동 음으로 많은 나라다. 외국인 관광객이 연간 6천만 명 이상
쪽으로 170km 지점의 ‘쿠엔카(Cuenca)’다. 워낙 피곤해 운전 으로 프랑스에 이어 두 번째고, 관광수입은 미국 다음이다.
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졸리면 휴게소에서 쪽잠을 자고 다 이 나라 문화의 주특기는 ‘다양성’이다. 수많은 종족이 뒤섞
시 일어나 달리고 해서, 6시간 걸려서 도착했다. 아직 해 뜨 여 빚어내는 문화의 다채로움으로는 스페인을 따라갈 곳이
기 전이라 이 도시의 정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몇 시간 눈 없다. 스페인은 유럽이지만 ‘유럽적인 천편일률’과는 확연히
을 붙이고 일어나 호텔 객실 창문을 여니 머릿속에 그렸던 구분되는 곳으로, 온 국토가 역사유적이자 관광지며 그곳에
것보다 더한 진풍경이 파노라마로 쫙 펼쳐졌다. 사는 모든 민족이 저마다 다른 색깔의 문화를 지니고 있다.
아무 데나 가도, 보고 듣고 즐기고 배우고 먹을 것들이 널리
아래 사진, 바로 저기다! 협곡의 절벽 위에 세워진 요새도 고 널렸다. 다채롭기 짝이 없는 스페인에서도 빠지지 않는
시 ‘쿠엔카’. 그렇잖아도 장관인 호텔 건너편의 구시가는 오 곳, 쿠엔카에 가면 우리는 마술에 홀리게 된다. 돈과 시간이
전 햇살을 받아 더욱 눈이 부셨다. 1300년의 모진 풍파를 견 허락된다면 틀림없이 다시 찾게 될 것이다.
디고 살아남은 요새 쿠엔카를 가리켜 세계인들은 ‘마술에

요새도시 쿠엔카에서는 자연과 문명이 따로 놀지 않고 하나의 캔버스에 올라가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속에 옛날이 그대로 그려져 있다. 발 길 닿는 곳마다 5백 년 전, 1천 년 전이 화폭에서 툭툭 튀어나온다.

스페인에 성과 요새가 1만 개나 있었다. 지금 2천여 개 남아 있다. 그 대부분이 스페인 중앙부의 카스티야 지방에 있다. 그만큼 이쪽에서 가톨릭과
이슬람의 전쟁이 잦았다. 쿠엔카는 스페인 이슬람 세력의 센터였던 코르도바를 방어하기 위해 아랍인들이 지은 요새도시다.

난공불락 지형에 세운 아랍인 요새, 500년 만에 함락 쫓지 않고 유대인들까지 더불어 살면서 지금 우리가 ‘스페
인’이라고 부르는 한 모습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당대 최고
철제다리를 건너 구시가로 들어가 가파르게 경사진 중세 의 수학과 건축기술, 도시행정기법들을 가지고 들어와 새로
의 거리를 지나 산 끝자락까지 가서 내려다보니 과연 여기는 운 문명을 만들었고,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등 그리스 철
요새 중의 요새다. 하나의 거대한 산이 둘로 완전히 쪼개져, 학을 유럽에 전파했다. 그 총본산이었던 당시 유럽 최대도시
그 사이에 가파른 절벽의 산이 또 하나 생겼고 그 위에 도시 코르도바를 방어하기 위해 이 절벽 위에 요새를 세운 것이
가 서 있다. 두 개의 협곡 사이에 도시가 우뚝 솟아 있는 것 다. 도시 이름도 아랍어 쿤카(Qunka)에서 비롯되었다.
이다. 이 불편한 곳에, 누가 언제 왜 도시를 만들었는가?
아랍인들은 요새 성곽을 두르고 그 안에 이슬람 사원과 살
도시는 8세기부터 만들어졌고, 주인공은 ‘무어(Moor)’인이 림집들을 짓고 살기 시작했으니, 이것이 곧 쿠엔카의 시작이
다. 그들은 지금의 북아프리카 알제리, 모로코 등지에 살면 다. 쿠엔카는 난공불락 지형이다. 이곳을 점령하려면 두 협
서 이슬람을 믿던 사람들이다. 북아프리카 끝에서 스페인 남 곡의 강을 건너서 절벽을 타고 올라가야만 한다. 도시의 맨
쪽 끝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다. 무어인들은 711년부터 스 위에서 보니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답이 나온다. 그러나 아랍
페인 땅(이베리아 반도)에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해 가톨 인들의 이 요새는 500년간 버티다 마침내 가톨릭에 의해 재
릭을 믿던 유럽 사람들을 누르고, 북부 산간지대 일부를 뺀 정복되고 말았다. 스페인 중세 가톨릭 전사들의 국토회복 의
나머지를 모조리 수중에 넣었다. 하지만 이 침략자들은 관대 지와 전투 솜씨가 놀랍기만 하다.
했다. 그들은 이곳에 먼저 터를 잡고 살던 가톨릭인들을 내

•카테드랄(대성당) 파라도르(국영호텔)•

쿠엔카의 중심부. 절벽을 따라 양 옆으로 집들이 늘어서 있다. 도시 안의 땅이 좁아 절벽에 바싹 붙여 집을 지어야 했다.
광장 앞의 도드라진 건물은 카테드랄(주교좌성당)이다. 스페인 최초의 고딕양식 성당이다.

쿠엔카의 심장부, 대성당과 중세지구 심장부다. 대성당 옆으로 승용차 한 대 지나갈 정도의 좁은
골목길이 보인다. 그 길이 이 도시에선 대로이다. 길 양 옆
위 사진은 쿠엔카 구시가의 중심부다. 저기 보이는 가장 두 으로 절벽을 등지고 집들이 늘어서 있다. 대부분 중세 때 지
드러진 건축물은 카테드랄(대성당·주교좌성당)이다. 본래 어진 것들이다. 그러나 쿠엔카는 유령도시가 아니다. 지금도
이슬람 대사원(모스크)이 있던 자리에 지어졌다. 500년 만에 사람이 살고 있다. 호텔과 레스토랑, 바가 있고 여러 박물관
쿠엔카를 탈환한 가톨릭왕 알폰소 8세의 명으로 모스크를 과 종교시설이 있으며 그 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살림집이
허물고 백년 간 공사를 벌여 완성했다. 중세에는 무슬림도 있다. 도시에 천년 역사가 아직도 숨 쉬고 있는 것이다.
가톨릭인들도 새로운 땅을 얻으면 그곳에 성전부터 지었다.
그래야 비로소 도시가 성립되었다. 구시가 시작부터 끝까지 절벽 위에 절벽과 한몸으로 붙어 있는 집들
쉬지 않고 걸으면 30분도 안 걸리는 작은 지역인데 그 안에
대성당 1개, 성당 8개, 수녀원 6개, 수도원이 3개나 있다. 스 오른쪽 큰사진은 밤에 불을 밝힌 구시가의 입구다. 다리
페인이 얼마나 완고한 가톨릭 국가였는지 감이 온다. 건너편 절벽으로 늘어선 집들은 쿠엔카의 진면목이다. 오른
쪽 아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저렇게 집들이 공중에 매
대성당을 중심으로 한 저곳은 구시가에서도 윗마을이다. 달려 있다. 스페인어로 ‘카사스 콜카다스(cassas colgadas)’
그때는 힘을 가진 사람일수록 높은 곳에 살았다. 성직자와 라고 한다. ‘공중에 매달린 집들’이라는 뜻이다.
종교인들이 가장 높은 곳을 차지하고, 그 바로 아래 귀족과
부자가, 맨 아래쪽에 평민이 살았다. 이 윗마을이 쿠엔카의 다리 건너서 나무 발코니가 절벽 밖으로 튀어나온 집이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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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절벽 위에 세운 집들 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외관을 지닌 집. 목조 발코니가 절벽 밖으로 튀어나왔다.

고 명물이다. 저걸 보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 전히 농사를 짓거나 관광업을 하면서 도시를 지켜가고 있다.
온다. 오늘날의 초고층 건물과 비슷한 높이로, 사람이 그 아 의식적으로 지켜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곳에서 전과 다를
래로 뛰어내리면 확실하게 죽는다. 공중에 매달린 집들은 보 바 없이 살고 있다. 그렇게 인류의 문화유산이 지켜지고 있
통 4~5층 정도이고, 가장 높은 건물은 10층이다. 절벽의 굴 는 것이다. 죽은 박물관이 아니라 살아 있는 중세의 현장이
곡을 그대로 두고 그 위에 집을 얹혀 절벽과 한 몸이 되었 기에 그 먼데서들 비행기 타고 찾아오는 것 아니겠는가.
다. 요새도시 안의 땅이 너무 좁아 절벽에 바싹 붙여, 절벽
꼭대기를 지반으로 삼아 그 위로 빌딩을 올린 것이다. 93

절벽 위에 서 있는 집들의 테라스나 창을 통해서 바라본
일대의 자연풍광이 장엄한 것은 물론이다. 반대로 도시 바
깥쪽에서 절벽과 한 덩어리를 이룬 건물들을 바라보면 더욱
장엄하다. 기묘하면서도 대지와의 조화를 잃지 않은 이 놀라
운 작품을 만들어낸 선조들에게, 지금까지 훼손 없이 보존해
온 그 후손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유네스코는 쿠엔카의
구시가 전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1996년)했다. 지금도
쿠엔카에서는 새벽에 닭 우는 소리가 사람들을 깨우고, 밤낮
으로 개 짖는 소리가 협곡에 쩌렁쩌렁 울린다. 사람들은 여

공중에 매달린 집들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곳. 절벽 꼭대기에 세워진 강 양 옆으로 늘어선 아랫마을. 절벽 꼭대기의 윗마을에는 성직자와 귀
집의 나무 발코니가 절벽 밖으로 튀어나왔다. 지금 저 건물은 스페인의 족이, 아랫마을에는 평민이 살았다. 멀리 보이는 곳은 쿠엔카 신시가다.
대표적인 추상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절벽의 지형을 그대로 살려 건축했다. 집들이 절벽에 박혀 있는 것처럼 구도시 중앙의 마요르 광장. 중세에 짓고 이후 개축한 건물들이 늘어서
보인다. 대개 3~4층이지만 지면으로부터의 높이로는 초고층 건물인 있다. 바와 식당, 기념품 가게들이 이곳에 모여 있다. 정중앙의 건물은
셈이다. 현지 사람들은 이 집들을 마천루라고 부른다. 현재 시청사로 쓰이고 있다.

1,300년 전 아랍에서 온 사람들이 요새도시를 세웠고, 500년 뒤 가톨릭 대성당(카테드랄) 부근. 구도시의 중심이다. 유네스크 세계문화유산에
이 탈환한 뒤 그대로 이어받아 발전시켰다. 빛바랜 잿빛 건물들이 석양 등재된 매력적인 도시인데도 바(bar)가 많지 않다. 바의 천국 스페인에
에 장관을 이룬다. 서 매우 이례적인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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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절벽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쿠엔카 파라도르 라 도시에서는 중급호텔 정도의 가격이다. 만약 파리에서 저
눈앞에 절벽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쿠엔카 파라도르 런 라호텔도에시에묵서는는다면중급최호소텔한정10도0의만 가원격이이상다.지만불약해파야리한에다서. 저

아래 사진은 쿠엔카 ‘파라도르(Parador)’다. 협곡 건너편 런 호텔에 묵는다면 최소한 100만 원 이상 지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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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으로, 스페인 내에서는 매우 비싼 편이지만 유럽 다른 나 이 어모갈든 수시간있이고, 천지천금히도 건흐물른이다며… 도절로벽며도시사람쿠이엔며카할에서것. 없

이 모든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절벽도시 쿠엔카에서.

500년 전에 지어진 도미니카 수도회 소속 산 파블로 수도원 건물.
지금5은00년국영전호에텔지(파어라진도도르미)로니운카영수되도고회있소다속. 호산텔파객블실로과수마도당원에건서물.
절벽지도금시은쿠국엔영카호구텔시(파가라전도체르가)로한운눈영에되잡고힌있다다. .호호텔텔앞객철실제과다마리당를에서
건너절면벽구도시시가쿠가엔시카작구된시다가. 전체가 한눈에 잡힌다. 호텔 앞 철제다리를

건너면 구시가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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