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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by 제이미파커스, 2019-05-01 22:15:08

발행인칼럼_45

발행인칼럼_45

발행인 칼럼 45_ 스페인 기행 ⑨

안테케라(Antequera)

포르투갈 스페인

세비야 코르도바
안테케라 그라나다
발행인 칼럼 45 _ 스페인 기행 ⑨
말라가
안테케라(Antequera)
모로코
박경욱(본지 발행인, 제이미파커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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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적인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곳, 신들의 정원…
2013년 12월 마지막 날, 나는 안달루시아 지방의 고도(古都) 안테케라(Antequera)에
있었다. 국영호텔(파라도르)에서 뜬눈으로 새해를 맞았다. 밤 8시 30분부터 저녁
만찬이 시작되었다. 날이 날인지라 로비에서 열린 리셉션부터 레스토랑의 디저트
가 나올 때까지 6번의 서비스를 받는 2시간짜리 코스였다. 도저히 뱃속에 넣을 수
없는 버거운 식사가 끝나자 송년파티가 기다렸다. 사람들은 10시 30분부터 춤을
추면서 새해 카운트다운을 기다렸다. TV로 중계된 마드리드 솔(Sol)광장의 카운트
다운에 맞춰 함께 외친 뒤 송년파티는 신년파티로 이어졌다. 새벽 두시까지 다섯
시간 반 동안 오도 가도 못하고 기분 좋게 붙잡혀 있었다. 그날 안테케라 주민들
이 이방인에게 베풀어준 환대를 잊을 수 없다. 그때 한 가지 실수가 있었으니, 아
래 사진의 풍광을 놓친 것이다. 엘 토르칼(El Torcal)이라는 곳이다. 인터넷을 뒤
져보면 국적 불문하고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하는 소리가 나온다. 초
현실적인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곳! 지난달에 다시 안테케라에 들어가 저 봉우리들
을 올랐다. 과연,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 중 하나였다.

안테케라의 엘 토르칼(El Torcal). 해발 1,366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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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토르칼로 올라가는 도로변에서.

수천, 수만의 기암괴석들이 눈 앞에
안테케라 뒤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저곳은 일종의 산맥이다. 이름
은 엘 토르칼(El Torcal). 시내에서 약 15km 떨어졌다. 고도가 높
긴 하지만 차로 달리면 30분 안에 도착한다. 첫날은 내비게이션이
헤매는 바람에 빙 둘러가느라 두 시간이나 걸렸다. 덕분에 이 거대
한 산을 한 바퀴 빙 도는 행운을 안았다. 오후 다섯 시 넘어서야 도
착했다. 정상부의 주차장에 들어서니 앞에 펼쳐진 갑작스런 광경
에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거였구나.” 맥박이 빨라졌다.
해는 져가고 맘은 급하고, 미친 듯이 한 시간 반 남짓 쏘다녔다. 겨
우 한 시간 반, 그것은 이 장엄한 광경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대
로 떠나면 죄를 짓는 것만 같았다. 다음날 예정된 계획을 취소하고
안테케라에서 하루 더 묵었다. 다음날 일찍 다시 엘 토르칼에 올라
거대한 정원에서 기암괴석들과 하루 종일 놀았다. 그래도 돌아가
는 걸음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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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개도 예외 없이 저마다 사람 얼굴
기묘한 형상으로 서 있다. 모습의 암석

멀리 안테케라 시가가 보인다.

고대 외계인들이 세운 돌의 제국인듯 한 뒤 솟아올라 이렇게 산맥으로 노출되었다고 한다. 계곡에
서 발견된 조개껍데기와 해양생물의 잔해를 조사해 밝혀낸
엘 토르칼(El Torcal). 이 고유명사는 움푹 함몰된 지형을 뜻 사실이다. 장구한 세월 동안 해저의 바닷물과 지상의 바람은
한다. 물론 그렇긴 하다. 하지만 보다 더 놀라운 것은 수천 거대한 석회암들을 깎아 사람 얼굴, 스핑크스, 주전자, 낙타,
개인지, 수만 개인지 모를 암석들이 마치 사람이 탑을 쌓아 파고다 등을 만들어냈다. 가서 보니 단 한 개도 예외가 없다.
놓은 듯, 혹은 조각해놓은 듯 저마다 기기묘묘한 형상으로 흔한 말 같지만 산속은 초현실적인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서 있다는 점이다. 다름 아닌 자연의 솜씨다. 수억 년 전에
여기는 바다 속이었고, 해저의 암석들이 바닷물에 침식을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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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0년 고도(古都) 곳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안테케라는 ‘안달루시아의 심
장’이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안달루시아의 4개 주도인
안테케라(Antequera)는 지명의 뜻 자체가 고도(古 말라가, 그라나다, 세비아, 코르도바의 정중앙에 자리
都)이다. 기원전 3세기에 이 땅에 들어간 로마인들이 잡고 있어서 그렇게 불린다. 옛 영화(榮華)로 말하자면
‘Ancient(고대)’의 라틴어인 ‘안티카리아(Antikaria)’라고 안테케라도 빠지지 않는다. 2,700년 전에 도시가 세워
부르면서 이름이 굳어졌다. 이 도시는 이미 2천7백년 전 진 뒤 2,300년 전에 로마 식민지가 되어 라틴어가 보급
에 세워졌다. 뉴욕타임스는 2017년에 꼭 가봐야 할 세 되고, 로마 건축물들이 들어섰다.
계 여행지의 하나로 ‘안테케라’를 선정했다. ‘엘 토르칼’
이라는 초현실적인 비경에, 3천년 간의 흔적이 도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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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30일 밤 안테케라 파라도르(국영호텔). 여기서 주민들과
함께 새해를 맞았다. 그들의 환대를 잊을 수 없다.

8세기에는 북아프리카의 무슬림(무어인)들이 들어
와 그라나다 왕국의 거점도시로 발전시켜 학문이
번성하고 화려한 건축물들이 들어섰다. 워낙 중요
한 도시였기에 가톨릭인들은 필사적으로 이곳을
탈환하려 했다. 이슬람의 그라나다 왕국을 탈환하
기 위해 맨 먼저 무너뜨린 곳이 바로 이 도시다. 결
국 본래의 주인이었던 가톨릭에 함락되었는데, 로
마-가톨릭-이슬람-가톨릭으로 이어지면서 이 작
은 도시에 주옥같은 건축물들이 세워졌다. 웅장하
고 화려한 성당만도 30채에 이른다.

여기도 하얀마을 안테케라 역시 전형적인 ‘하얀마을(푸에블로 블랑코)’이다.
구시가의 모든 집들은 벽이 하얗게 회칠되어 있다. 북아프리카 무어인들의
전통이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에 전해져 지금까지 내려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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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사바(요새)에서
바라본 안테케라의 산들.

요새의 종탑 높이가
아파트 15층은 족히 되는 것 같다.

알카사바(요새)에 올라가면 안테케라의 전모가 한눈에 데, 종탑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니 아파트 15층 높이는 족히 되
는 것 같다. 시내 전역과 인근의 산과 벌판이 완벽하게 잡힌
안테케라에 가면 ‘알카사바(Alcazaba)’를 들르지 않을 수 없 다. 가톨릭은 800년에 걸쳐 무슬림으로부터 ‘국토를 탈환하
다. 시내의 어떤 곳에서도 돌출되어 보이기에 방문자들이 반 는 전쟁(레콩키스타)’을 벌였는데, 그 마지막 회복지가 ‘그라
드시 찾게 되어 있다. 알카사바에 올라가면 안테케라의 전모 나다 왕국’이다. 안테케라에서 그라나다까지는 약 100km. 가
가 한눈에 들어온다. 스페인 전역에 수도 없이 널린 알카사바 톨릭은 그라나다로 들어가는 입구 격인 이곳 안테케라의 알
는 이슬람식 요새나 성채를 말한다. 스페인 땅에 들어와 주인 카사바를 먼저 함락시킨 다음 일대를 포위해 전국토를 탈환
으로 자리 잡은 무슬림 왕국들이 가톨릭의 공격을 방어하기 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전쟁 막바지의 격전지였다.
위해 쌓은 것이다. 안테케라의 알카사바는 비교적 면적이 넓
고 보존이 잘 된 편이다. 사진으로는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

대학이기도 했던
산타 마리아 대성당.
알카사바 바로 아래에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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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들이 세운 가장 중요한 장소에는 반드시 성당이 있게 마련이다. 그것
은 일종의 재정복(탈환)의 상징인 셈이다. 안테케라라는 작은 도시에 화려한
장식의 성당이 30여 채 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성당이 알카사바 바로 아
래에 있다. 산타 마리아 성당이다. 가톨릭이 안테케라를 탈환하고 짓기 시작
해 16세기에 완공되었다. 성당이자 대학인 이곳은 16세기 안달루시아 지방
인문주의 운동의 성지였다고 한다.

안테케라는 인구 4만5천명의 도시지만 알카사바, 산타 마리아 대성당, 엘 토
르칼 외에도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청동기 시대 고인돌 유적지, 30여 채의
성당과 수도원, 구시가에 가득 들어선 하얀집들 등 볼거리가 즐비하고 인문
주의 전통과 도시의 역사가 방문자들을 사로잡는다.

안테케라의 시에스타(Siesta) 평일 오후 2시경 안테케라의 번화가.
거리를 지나는 사람이 거의 없고 가게도 모두 문을 닫았다. 낮잠을
자거나 쉬는 시간, 즉 시에스타(Siesta)의 시간인 것이다.

안테케라 알카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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