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13
브레멘 음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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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의 심리학 ⑬
브레멘 음악대
박경욱 - 본지 발행인, 제이미파커스(리커버리) 대표
독일 북부의 낭만적인 도시 브레멘(Bremen). 중세의 아름다운 건물들이 그림처
럼 늘어선 이 도시에는 그림(Grimm) 형제의 동화 ‘브레멘 음악대’가 있다. 괴팅
겐 대학 교수였던 야콥 그림(Jakob Grimm)과 빌헬름 그림(Wihlem Grimm)은
독일 북부의 여러 도시에 전해오는 동화들을 수집해 ‘그림 형제 동화집’을 만들
었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 ‘거위 치는 소녀’ ‘헨젤과 그레텔’ ‘황금거위’ 등 세계 소
년소녀들의 필독 동화들이 그림 형제가 수집한 것들이다. 그림 형제의 동화집은
성서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책이라고 한다. 이 동화들의 무대가 된 독일 북부 도
시들을 연결한 ‘하나우(Hannau)에서 ‘브레멘(Bremen)’까지를 ‘동화가도’라고 한
다. 브레멘이 동화버스의 종착역인 셈이다. 잠시 브레멘의 동화, ‘브레멘 음악대’
속으로 들어가 보자.
브레멘의 다운타운인 뵈트히 거리.
← 지난 8월 브레멘 시청사 앞에서 필자. ‘동화가도’의 종착지 브레멘(Bremen)의 마르크트 광장. 죄측에 보이는 건물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브레멘 시청사. 15~17세기의 건축물이다.
인근에 ‘브레멘 음악대’의 조형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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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는 패잔병으로 낙향하여 남
은 시간들을 소진하는 것이 아니
라 축제를 즐기는 것이라고 브레
멘 음악대는 말한다. 진짜 재미
있는 일, 하고 싶은 일들이 기다
리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선 친구들
늙어서 기운이 빠져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된 당나귀가 주
인에게 쫓겨났다. 당나귀는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당나귀의
꿈은 브레멘에 가서 뮤지션이 되는 것이었다. 이참에 브레멘
음악대에 들어가리라 마음먹고 브레멘을 향해 떠났다. 길을
가다가 울고 있는 늙은 개 한 마리를 만났다. 늙어서 더 이상
사냥을 할 수 없게 되어 주인에게 버림받은 친구였다. 색소폰
을 좋아했던 늙은 개는 당나귀의 제안을 받고 브레멘 가는 길
에 합류했다. 당나귀와 고양이는 역시 같은 처지의 고양이와
닭까지 끌어들여 브레멘으로 향했다. 한참 걸으니 배가 고파
불빛이 보이는 집을 찾아갔는데 도둑들이 잔치를 벌이고 있었
다. 네 친구는 작전을 짰다. 당나귀, 개, 고양이, 닭의 순으로
무동을 타고 창문을 열고 고함을 질렀다. 도둑들은 도깨비가
나타난 줄 알고 깜짝 놀라 도망쳤고 네 친구들은 도둑들이 가
져온 음식으로 배를 채웠다. 도둑들이 훔친 물건을 마을 사람
들에게 돌려준 뒤 아예 그 집에 눌러 붙어 음악을 하면서 살았
다. 얼마간 돈이 필요하면 브레멘 시장에 가서 연주를 하고 돈
을 벌어오곤 했다. 네 친구는 행복하게 오랫동안 살았다고 한
다. 여기까지가 브레멘 음악대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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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다. 그것이 낭만적인 꿈이라면 더욱 그렇다. 꿈을 선택
하면 생활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더러 성공했다는 사
람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곤
하는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행운아 아니면 위선자이
다. 하고 싶은 일을 너무 앞세우면 굶는 수가 많다. 혼자라
면 그렇게 살아도 되겠지만 딸린 식구가 있으면 당연히 무
거운 책임이 주어지고, 그걸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우
리에게는 적당한 타협이 필요하다. 꿈과 현실, 바람과 책
임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대부분 지혜롭기에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
은퇴는 인생의 향연(饗宴) 그렇게 살다가 어느 날 물러나야 할 때가 온다. 책임을 덜
고 현실에서 좀 비켜나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은퇴 아닌가.
브레멘 음악대의 단원들은 소년이나 청년이 아니라 본업 은퇴 이후야말로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일을 온전히 할 수
에서 물러난 이들이다. 그들은 은퇴가 인생의 무덤이 아니 있는 시간이다. 그 황홀한 시간을 왜 마다해야겠는가. 왜
라 향연(饗宴)이라고 말하고 있다. 직업의 은퇴를 인생무 은퇴를 인생의 무덤으로 여기는가. 이 시기가 아니라면 언
대의 은퇴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은퇴를 혐오 제 우리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을 마음껏 하고, 만나고 싶
한다. 그래서 물러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다가 마침내는 은 사람을 만나고 즐기고 싶은 것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단
떠밀려 그토록 싫어하는 시간을 맞이하게 된다. 은퇴는 패 말인가. 다만 준비가 필요하다. 현업에서의 은퇴가 가까워
잔병으로 낙향하여 남은 시간들을 소진하는 것이 아니라 진 사람이라면 지금 하고 있는 일 못지않게 은퇴 후의 황
축제를 즐기는 것이라고 브레멘 음악대는 말한다. 진짜 재 홀한 시간을 맞이하기 위한 설계가 필요할 것이다. 돈 때
미있는 일, 하고 싶은 일들이 기다리는 시간이라는 것. 문에, 책임 때문에, 정녕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것들
에 온전히 자신을 바칠 수 있는 시기. 그 가슴 두근거리는
누구나 어렸을 때 꿈을 꾸고 산다. 저마다의 흥미가 있고 날을 바라며 오늘도 전선에 나간다.
소질이 있다. 그런데 그걸 그대로 살리면서 살기가 쉽지
브레멘 시청사 일대. 좌측 맨 끝에 ‘브레멘 음악대’ 조형
물이 보인다. ‘현역’에서 물러나 음악대원가 되기 위해
길을 나선 친구들. 당나귀와 늙은 개, 고양이 그리고 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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