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21
부에나비스타소셜 클럽의
‘노익장(老益壯)’을 추억하며
회복의 심리학_21
Buena vista
Social Club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노익장(老益壯)’을
추억하며
박경욱 | 본지 발행인, 제이미파커스(리커버리) 대표
뉴욕 맨해튼에서 필자 이달치 본지 72~75쪽에 영화평론가 배장수 선생이
쓴 영화 ‘대부’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백년 영화사의 최
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그 영화의 제2편은 쿠바의 아바나
(Habana)를 무대로 전개된다.
아버지로부터 ‘대부(代父)’를 물려받은 마이클 꼴레오
네(알파치노 扮)는 새로운 사업을 찾아 아바나로 건너간
다. 그는 아바나에 거점을 둔 마피아 두목 하이만 로스의
저택을 찾아가던 중 혁명 게릴라가 쿠바 경찰에게 자폭
테러를 가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마피아의 뒤를 봐주는
쿠바 정부가 곧 망할 것이라 내다보고 쿠바 사업 철수를
결심한다. 그의 예상대로 얼마 안 가 아바나는 체 게바
라와 피델 카스트로가 이끄는 혁명군에 의해 함락되었
다.(1959년) 마약과 사탕수수를 사업거리로 삼았던 마피
아와 그 본거지들은 일거에 청소되었고, 아바나는 남미
의 사회주의 기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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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할리우드 볼(Hollywood Bowl)에서의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공연 장면
그 옛날의 명수(名手)들, 화려하게 부활하다 쿠바 혁명이 거의 40년 지난 뒤인 1997년, 사라졌던 최
고의 뮤지션들이 갑자기 나타났다. 쿠바의 아바나가 아
미대륙을 발견한 콜럼부스가 ‘지금까지 유럽인들이 보 닌 세계무대에 말이다. 그들이 예전에 섰던 무대 ‘부에나
지 못한, 경이로움으로 가득한 땅’이라고 했던 카리브해 비스타 소셜 클럽’과 같은 이름의 음반이 발매되어 누구
의 아름다운 해안도시 아바나. 가장 먼저 이 땅을 차지 도 예상치 못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시쳇말로 그들
한 스페인, 노예로 끌려와 정착한 아프리카 흑인 그리고 은 느닷없이 ‘떠’ 버렸다. 음반 성공 이후 유럽, 미국, 일
원주민이 뒤섞여 만들어 낸, 그 기후만큼이나 열정적인 본, 한국 등 여러 대형무대에서 초청이 잇따랐다. 대부분
문화로 후끈거리는 곳이다. 쿠바 혁명 이전에 아바나 동 70세 이상 노인이었던 그들은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부에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Buena Vista Social Club)’ 이라는 밴드가 되어 세계무대에 올랐다. 오랫동안 뮤지
이라는 고급 재즈 바(Bar)가 있었다. 우리말로 ‘환영받는 션이 아니라 막노동꾼이거나 공장 근로자로 살았던 노
사교클럽’이라는 뜻의 이 바에 쿠바의 당대 최고 뮤지션 인들의 실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세계 대중음악계를 발
들이 출연, 재즈를 연주했다. 그들은 혁명 이후 대부분 칵 뒤집어놓았다. 이쯤해서, 그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일선에서 물러났다. 혁명 이후 음악의 주류가 재즈에서
포크로 바뀌었고, 재즈가 연주되던 고급 바들이 사라졌
고, 그 무대에 섰던 연주자들도 뿔뿔이 흩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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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빠이 세군도(Compay Segundo. 1907~2003. 기타리스트·보컬) 오마라 포르투온도(Omara Portuondo. 1930~. 보컬)
“내 나이 아흔이지만 여섯째를 낳고 싶어” ‘쿠바의 에디트 피아프’ 할머니
낮에는 담배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클럽에 나가 노래를 부 노인 그룹의 홍일점 할머니이자 유일한 생존자. ‘쿠바의 국
르면서 알려지기 시작한 인물. 1950년대에 쿠바는 물론 세 보(國寶)’, ‘쿠바의 에디트 피아프’로 불렸다. 전성기 때 실제
계에서 명성을 떨쳤다. 쿠바 혁명 이후에는 다시 담배공장 로 에디트 피아프와 함께 공연을 했다. 10대 중반에 언니와
근로자, 이발사로 돌아갔다. 아흔 살이 넘어서도 시가를 문 함께 유명한 카바레에서 댄서로 데뷔한 뒤 가수가 되었고,
채 “여자와 함께 보내는 하룻밤이야말로 인생의 최고”라면 1950년대에 이름을 날렸다. 오래 전에 음악활동을 그만 두
서 “여섯 째 아들을 낳고 싶다”고 호기를 부렸다. 90이 다 었으나 우연히 스튜디오에 들렀다가 라이 쿠더의 즉석 제의
되어 다시 무대에 선 그는 2003년에 95세로 세상을 떠났다. 를 받고 음반 제작에 합류했다. 1997년에 그래미상을 받았
쿠바 재즈의 영웅이었던 그는 죽기 직전까지 무대에서 노래 고, 데뷔 60주년이었던 2008년에는 서울에서 공연을 가졌
를 불렀다. 다. 이 할머니를 다시 볼 날이 있을까?
이브라임 페레르(Ibrahim Ferrer. 1927~2005. 보컬) 루벤 곤살레스(Rub´en Gonz´alez. 1919~2003. 피아노)
구두닦이 할아버지 가수 “내가 본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다”
문제의 노인들을 발탁한 기타리스트 라이 쿠더는 이 사람을 의과대학생이었으나 음악에의 꿈을 버리지 못해 공부를 포
가리켜 ‘일생에 단 한 번 볼 수 있는 가수’라고 했다. 50년대 기하고 전업 연주가가 되었다. 어느 누구의 음악도 아닌 오
에 ‘쿠바의 냇 킹 콜’로 불리며 전성기를 보냈으나 오래 전에 로지 자신만의 음악을 창조하기 위해 살았다. 집에 피아노
음악에서 손을 떼고 구두닦이로 살다가 라이 쿠더를 만나 가 고장 나 더 이상 연주를 할 수 없게 되자 80년대 중반에
월드 스타가 되었다. 2004년에 <BBC 라디오>가 주관한 ‘월 은퇴했다가 라이 쿠더를 만나 재기했다. 라이 쿠더가 ‘내 생
드 뮤직 어워드’에서 미 대륙 최고 아티스트로 선정되었다. 애에 처음 보는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라고 했던 그는 부
2005년, 유럽 순회공연을 다녀온 뒤 아바나의 한 호텔에서 에나비스타 선율의 중핵이었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꿈길
78세로 세상을 떠났다. 을 걷는 듯한 환상을 자아내는 그의 피아노 터치를 잊지 못
할 것이다. 2003년에 84세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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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해의 진주들, 뭍 위로 떠오르다 간판 너머로 특유의 구릿빛 열정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영화의 주인공, 노인 뮤지션들은 눈에 익은 쇼 비지니
오랫동안 묻혀 있던 카리브해의 진주들을 캐낸 사람
은 라이 쿠더(Ry Cooder). 블루스 기타의 살아 있는 전설 스계의 거만한 스타가 아니라 반 속옷 차림으로 가난한
이다. 「롤링 스톤(잡지)」이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 골목길을 활보하는 아바나 평민이었다. 실제 전직(前職)
타리스트’ 100인 중 8위에 랭크될 정도의 명인이다. 그는 이 그렇거니와, 빗자루를 들거나 리어커를 끄는 모습이
30년 전에 아바나를 방문, 쿠바 뮤지션들의 연주에 흠뻑 딱 어울려 보이는 그들이, 일하던 손을 멈추고 어딘가에
취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1997년, 자신을 감동시켰 모여 제각기 악기를 꺼내 연주를 시작했다고 하자. 그것
던 뮤지션들을 찾아 나섰다. 그들을 한데 모아 음반을 만 은 완벽한 음의 앙상블, 미국 재즈도 아프리카 토속음악
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찾던 사람들은 더 이상 도 쿠바 전통음악도 아닌, 그 모든 것이 절묘하게 융화된
뮤지션이 아니었다. 대부분 노무자나 구두닦이로 전업 부에나비스타만의 독특한 스타일이다. 테크닉으로 말하
했거나 집에 피아노가 낡아 더 이상 연주를 하지 못한 채 자면, 기타를 등 뒤에 매고 장난감 만지듯 자유자재로 연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가고 있었다. 주할 정도. 그들에게 악기는 육체의 일부였다. 부에나비
스타의 노인들은 일상 속에서 늘 가지고 놀던 악기로, 생
우여곡절 끝에 모두 찾았다. 70이 넘은 그들을 불러 활의 즐거움과 고단함, 인생의 꿈과 사랑을 예부터 전해
50년대의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시작했다. 단 일주일 만 오던 리듬을 살려 들려주었다. 부에나비스타의 선율 속
에 녹음이 끝났고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이라는 음 에는 지나간 시절의 애수가 있는가 하면 불같은 열정이
반이 만들어졌다. 평론가들의 찬사가 쏟아졌고 그래미 도사리며, 그들의 인생사가 매만져질 듯했다.
상까지 받은 이 음반은 1년 만에 250만장, 지금까지 600
만장 이상 팔렸다. 음반 녹음에 참가한 노인들은 생전 처
음 비행기를 타고 유럽으로 일본으로 미국으로 공연을
나갔다. 암스테르담에서 대성공을 거두었고 뉴욕 카네
기홀에서도 공연을 가졌다.
‘졸지에’ 아바나의 평민에서 세계의 스타로 발돋움한
노인 뮤지션들의 황홀한 재결합 과정과 공연실황은 다
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어졌다. 영화 '파리, 텍사스' '베를
린 천사의 시'의 감독인 빔 벤더스가 친구인 라이 쿠더의
제의를 받고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이라는 영화를 만
든 것이다. 라이 쿠더는 빔 벤더스가 만든 영화 ‘파리, 텍
사스’의 음악을 작곡한 장본인이었다. 1999년에 만들어
진 노인들의 영화도 대성공, 이듬해에는 아카데미 상 후
보에 오르기도 했다.
지나간 시절의 애수, 불의 열정
낮에는 담배농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클럽에 나가 당대 오랫동안 묻혀 있던 카리브해의 진주들을 캐낸 사람은 라이 쿠더
의 뮤지션들과 기량을 겨뤘던 기타리스트이자 보컬리스 (Ry Cooder). 블루스 기타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그는 30년 전에
트 꼼빠이 세군도가 한때의 열정을 불살랐던 재즈 바 ‘부 아바나를 방문, 쿠바 뮤지션들의 연주에 흠뻑 취했다. 그로부터 20
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을 찾아 가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 년이 지난 1997년, 자신을 감동시켰던 뮤지션들을 찾아 나섰다. 그
된다. “21번가였던가, 31번가였던가” 달음질한 세월 탓 들을 한데 모아 음반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인지 노객은 흔적만이 남아있는 현장이 가물가물하기만
하다. 파도 일렁이는 해안을 따라 카메라에 잡힌 아바나
는 “우리에겐 꿈이 있다” “혁명은 영원하리” 등의 낡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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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나이는 없다
마침내, 노인들은 ‘적성 국가’의 심장인 뉴욕에 입성, 카
네기홀에서 역사적인 공연을 갖는다. 이 공연의 피날레
는 영화의 대미(大尾)로 장식되었다. 부에나비스타의 노
인들과 그밖에 뮤지션들이 총출동, 그들의 대표곡 ‘찬찬
(Chan, Chan)’을 연주했다. 애잔한 풍의 콩가 리듬을 타
고 통기타 반주가 흐르고 이어 트럼펫이 울려 퍼지면 노
인들의 합창이 시작되었다. 시종일관 ‘둥 둥’ 더블베이스
가 받쳐주고 그 위에 위대한 피아니스트 루벤 곤잘레스
의 절묘한 타건이 전개되면 청명한 트렘펫이 간주부를
연주하고 사이사이 주제 합창이 흘러나왔다.
공연하는 꼼빠이 세군도(Compay Segundo). 기타리스트이
자 보컬이었던 그는 쿠바 재즈의 영웅이었다. 낮에는 담배공
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클럽에 나가 노래를 부르면서 알려지
기 시작했다. 2003년에 95세로 세상을 떠났다.
다음은 영화의 한 장면. 생활복 차림의 할머니 오마라 열창하는 오마라 포르투온도(Omara Portuondo). 부에나비스타 소
포르투온도가 스튜디오를 찾아 갔다가 마침 녹음 중이던 셜 클럽 노인 멤버들 중 홍일점이자 유일한 생존자. ‘쿠바의 에디트
일행을 만난다. 그곳에는 일세를 풍미했던 남자 가수 이 피아프’로 불리는 절창의 주인공. 봄밤의 진한 꽃 향기같은 음색이
브라임 페레르가 있었다. 이들을 발탁한 라이 쿠더의 제 여간 매력적이지 않다. 데뷔 60주년이었던 2008년에 서울에서 공
안으로 할머니도 녹음에 참가한다. 이때 포르투온도는 연을 가졌다. 이 할머니를 다시 볼 날이 있을까?
67세, 페레르는 70세였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실렌시오
(Silencio)」라는 볼레로풍의 흘러간 노래를 녹음했다. 간 누군가 중간에 붉은 별이 선명한 쿠바 국기를 연주자
주부에서는 두 사람이 껴안고 느릿느릿 춤을 추었고, 뉴 들에게 건네주었고, 그들은 ‘찬찬’ 리듬에 맞춰 국기를 흔
욕 카네기홀 공연을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눈물을 훔쳤 들어댔다. 연주가 막바지에 이르러 갈채 속에 멤버들의
다. 영화에 등장한 음악 중에서 주제곡인 ‘찬찬’과 함께 최 소개가 끝나자 청중들은 일제히 일어서 환호했다. 객석
고로 손꼽히는 이 노래는 듣는 이의 혼을 쏙 빼간다. 그리 의 박수가 꺼질 줄 몰랐고, 모두 하나 되어 리듬에 맞춰
고 그 노랫말은 너무나 아름답다. 여기에 소개한다. 몸을 흐느적거렸다. 연주자들도, 청중들도, 그 영화를
보는 이들도 모두 감개무량. 웃는 얼굴들 위로 눈물이 돌
실렌시오(Silencio. 쉿! 조용히) 았다. 쿠바 노인들과 뉴욕 시민들의 조우, 이제껏 들어
백합, 퍼플 그리고 장미꽃들이 내 뜰에서 잠자고 있지 / 볼 수 없었던 쿠바 재즈의 깊은 맛, 기쁨으로 넘실거리는
깊은 슬픔에 잠긴 내 영혼 / 하지만 꽃들 앞에선 감추고 노인들의 구릿빛 얼굴. 그리고 무엇보다 인생의 꼭대기
싶어 / 꽃들이 내 아픔 알아차리는 걸 원치 않으니까 / 에서 활활 타오르는 마지막 불꽃, 여전히 기량을 잃지 않
꽃들이 알게 되면 아마 울고 말거야 / 쉿 조용히! / 꽃들 은 노인들의 인간승리에 누구나 뭉클해지는 것이다. 당
이 자고 있잖아 / 꽃들에게 내 슬픔 알리고 싶지 않아 /
내가 우는 걸 보면 꽃들이 죽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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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그 옛날의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같은 바의 문을 열고 들어가 한잔 걸치고 싶은 생
각이 절로 난다.
수십 년 동안 잊혔다가 세계무대에 등장, 만인 이브라임 페레르(Ibrahim Ferrer). 위대한 블루스 기타리스트 라이
의 갈채를 받았지만 그들은 쇼 비즈니스계의 쿠더가 ‘일생에 단 한 번 볼 수 있는 가수’라고 했던 그는 칠순 나이
거만한 스타가 아니라 반 속옷 차림으로 가난 에 세계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하기 직전까지는 구두닦이였다. 2005
한 골목길을 활보하는 아바나 평민의 모습의 년, 유럽 순회공연을 다녀온 뒤 아바나의 한 호텔에서 78세로 세상
모습이었다. 자신들의 재능으로, 거짓 없는 모 을 떠났다.
습으로 세계인에게 기쁨을 안겨주었던 노장들
은 홍일점 오마라 포르투온도를 제외하곤 모두 청춘(靑春)
세상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그들의 노래는 잊혀
지지 않는다. 오랫동안 친구들의 가슴 속에 남 _사무엘 울만(1840~1924)
아 있을 것이다. 삶에 대한 감사와 함께.
지금의 노인들과 미래의 노인들에게 헌사를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말
하는 것. 그것은 장미의 용모, 붉은 입술, 나긋나긋한 손
우리나라에서는 이 영화가 2001년에 개봉되었다. 개 발이 아니라 씩씩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오르는 정
봉시점이 아카데미 시즌이어서 <퀼트> <어둠 속의 댄서 열을 가리킨다. 그것은 인생이라는 깊은 샘의 청신(淸新)
> 등 후보작들과 겨뤄야 했다. 메가박스에서는 일치감치 함을 말한다.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
종영되었고 광화문 시네큐브에서만 힘겹게 상영을 이어 함을 선호하는 마음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갔다. 광화문에서 그나마 한 달 넘게 상영된 것은 순전
히 팬들 덕분이었다. 영화가 개봉되기 이전에 그들의 내 세상엔 20세 노인이 있는가 하면 60세 청년이 있다.
한공연을 본 팬들이 영화가 조기 종영되지 않도록 너 댓 단지 나이를 더해가는 것만으로 사람은 늙지 않는다. 이
번씩 봐주었던 것이다. 12년 전 봄에 봤던 영화가 아직도 상(理想)을 버릴 때 그는 비로소 늙는다. 세월은 피부에
기억에 생생하다. 나는 지금도 가끔 이 영화를 본다. 말 주름살을 늘려가지만 열정을 잃으면 영혼에 주름이 진
할 수 없는 재미와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저렇게 행복하 다. 번민과 공포, 실망에 의해 기력은 땅바닥을 기게 되
게 살 수 있을까, 부러움에 사로잡히면서 의욕이 슬며시 고 정신은 먼지가 된다.
고개를 들고 조용히 올라온다.
70세든 16세든 인간의 가슴에는 경이에 이끌리는 마
자신들의 재능으로, 거짓 없는 모습으로 세계인에게 음. 어린 아이와 같은 미지에 대한 탐구심. 인생에 대한
기쁨을 안겨주었던 노장들은 홍일점 오마라 포르투온도 흥미와 환희가 있다. 사람들과 신으로부터 아름다움, 희
를 제외하곤 모두 세상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그들의 노 망, 격려, 용기, 힘의 영감을 받는 한 그대는 젊다. 그러
래는 잊혀 지지 않는다. 오랫동안 친구들의 가슴 속에 남 나 영감이 끊기고, 영혼이 비난의 눈(雪)으로 덮이고 비
아 있을 것이다. 삶에 대한 감사와 함께. 탄의 얼음에 갇힐 때, 20세라도 그 사람은 늙는다. 하늘
을 향해 머리를 치켜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80
그들의 노익장을 추억하면서, 지금 노인이거나 앞으로 세일지라도 인간은 청춘으로 남는다.
노인이 될 독자들의 삶 위에 이제껏 알려진 것 중 최고의
헌사를 바친다. ※사무엘 울만은 이 시를 74세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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