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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by 제이미파커스, 2019-09-16 00:10:06

발행인칼럼_17

발행인칼럼_17

발행인 칼럼 17

You Will Never Walk Alone

당신은 결코 혼자 걷는 게 아니랍니다

회복의 심리학 ⑰

You Will Never Walk
당신은 결코 혼자 걷는 게 아니랍니다

박경욱 본지 발행인, 제이미파커스 사람이 망할 때는 어느 한두 군데가 고장 나는 것이 아니다. 폭
(주)리커버리 대표 삭 주저앉는다. 믿었던 사람한테 뒤통수를 맞는가 하면 가진 돈
순식간에 날리고 빚더미에 앉는다. 뻔질나게 드나들던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고 친구들도 멀어져 간다. 더 이상 말이 먹히지 않
는 건 밖에서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마찬가지. 마침내 배우자조차
자기편에 서지 않을 때 그 사람은 절망한다. 이 넓은 지구에 자기
마음 하나 둘 데 없고 마음놓고 울 곳도 마땅치 않아 저녁에 텅 빈
사무실 바닥에 주저앉아 책상 다리를 붙잡고 흐느낀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인생은 그때부터가 시작이다. 지금까
지의 삶은 말이 좋아 평탄한 것이었지 실은 가볍고 지루하지 않았
던가. 그는 이제 진지해진다. 터키의 시인 나짐 히크메트(Nazim
Hikmet, 1902-1963)는 감옥에 갇힌 뒤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
을 문득 깨달아 한편의 시로 노래했다.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써지지 않았다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
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오. 어느 길로 가야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
한 여행은 시작된다네.”

84

Alone 빌리 비글로우(Billy Bigelow)와 눈이 맞아 사랑을 나
누게 된다. 빌리에게 욕심이 있었던 회전목마의 여
주인은 이 사실을 알고 질투심에 사로잡힌 나머지
그를 해고시켜버린다. 직장을 구하지 못한 빌리는
아무 대책도 없이 줄리와 결혼한다. 아직 제 앞가림
을 못하고 앞으로도 잘될 가망이 없어 보이는 남편
이었지만 줄리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그의 곁을 지킨
다. 줄리는 임신했고 빌리는 다급해졌다. 친구의 유
혹에 빠진 빌리는 한몫 잡을 요량으로 강도짓을 하
지만 붙잡히고, 그 자리에서 자살하고 만다.

졸지에 줄리는 뱃속에 아이를 둔 채 남편까지 잃
었다. 좌절하는 줄리의 곁으로 사촌 네티(Nettie)가
찾아와 노래를 불러준다. ‘당신은 결코 혼자 걷는
게 아니예요. You will never walk alone’ 꿈이 다 깨
져버렸지만 그래도 가슴에 희망을 품고 남은 길을
마저 걸어가라는 격려였다. 당신이 걷는 길에 누군
가 동행해줄 것이란 믿음을 가지라는 것이었다.

지난 삶은 예고편이었고 절망한 뒤부터 본게임 살길이 막막한 아내와 딸을 두고 홀로 세상에서
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다 떠났다고 해서 빠져나온 빌리는 마음 편히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남은 길을 진짜 홀로 갈 수는 없다. 누구도 그렇게 없었다. 빌리는 영혼의 세계에서 아내와 딸을 지켜
는 버거워서 못 간다. 그때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 보며 그들이 가는 길을 함께 한다. 가여운 엄마와
는 존재에 관심을 갖게 된다. 처음으로 진지하게 딸은 빌리의 보살핌을 받으며 힘든 세상을 잘도 헤
영혼의 문을 두드려보는 것이다. 드라마틱하게도, 쳐 나갔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딸 루이즈의 고등학
그때부터 알 수 없는 존재의 보살핌을 받아 궁지에 교 졸업식 날. 빌리는 지상으로 내려와 딸의 졸업식
서 벗어나고 인생의 새로운 국면이 펼쳐진다. 이 장에 나타난다. 지금까지 사랑했노라고, 아내와 딸
달의 주제는 “당신은 결코 혼자 걷는 게 아닙니다. 이 걸어온 길을 영혼으로 보살폈노라고 고백한다.
You will never walk alone.” 가여운 친구, 줄리의 딸은 세상의 바다로 나갈 학생들 앞에서 노래를 부
이야기로 시작한다. 른다. 자신이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절망에 빠진 엄
마를 위해 네티가 불러주었던 그 노래다.

뮤지컬 ‘회전목마’

1880년대 뉴잉글랜드. 스무 살 쯤 된 여공(女工)
줄리 조던(Julie Jordan)은 쉬는 날 친구와 함께 회전
목마를 타러 갔다가 회전목마를 끌던 청년 종업원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에 관심을 갖게 된다.
처음으로 진지하게 영혼의 문을 두드려보는 것이다. 드라마틱하게도,

그때부터 알 수 없는 존재의 보살핌을 받아 궁지에서
벗어나고 인생의 새로운 국면이 펼쳐진다.

85

“폭풍 속을 걸어갈 때 고개를 높이 들어요 / 어 국의 공감을 얻었다. 뮤지컬이 성공한 뒤 고등학
둠에 두려워 말아요 / 폭풍이 그치면 종달새의 은 교 졸업식장에서 이 노래가 불리어지기 시작해 어
빛노래 울려 퍼지는 황금빛 하늘이 있어요 / 바람 느덧 대표적 축가가 되었다. 어느 고등학교 할 것
을 헤치고 가요 / 빗속을 뚫고 가요 / 당신의 꿈이 없이 졸업식 날이면 이 노래가 흘러나온다.
날아가 버렸어도 멈추지 말고 계속 걸어가요 / 가
슴에 희망을 품고 걸어가요 / 당신은 결코 혼자 걷 뮤지컬 ‘회전목마’는 2차 대전이 거의 끝나갈 무
는 게 아니에요 렵부터 공연되기 시작했는데, 막이 내릴 때마다
객석은 눈물바다였다고 한다. 관객들은 전선에 나
When you walk through a storm / Hold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가족을 생각하며 이 노래에
your head up high / And don’t be afraid of 서 큰 위안을 얻었다고 한다. 20세기 고전 뮤지컬
the dark / At the end of the storm / Is a 들을 줄줄이 만들어 낸 세기의 콤비 리처드 로저
golden sky / And the sweet silver song of 스(작곡)와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작사/대본)의
a lark / Walk on through the wind / Walk 작품이다. 그 뒤 영화와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on through the rain / Though your dreams
be tossed and blown / Walk on, walk on / 남편 잃고 홀로 딸을 키워야했던 무일푼의 여
With hope in your heart / And you’ll never 주인공이 남편으로부터 영혼의 보살핌을 받아 험
walk alone / You’ll never walk alone” 한 세상 이겨낼 수 있었다는 이야기. 우리는 세상
의 끈이 다 떨어져 더 이상 기댈 언덕이 없을 때,
딸의 노래가 끝난 뒤 빌리는 다시 하늘로 올라 자신의 의지를 내려놓고 하늘의 보살핌을 받기를
가고 모녀는 새로운 희망을 꿈꾸면서 무대는 막을 청한다. 사람들이 종교에 진지하게 귀의하는 계
내린다. 기가 대개 그렇다. 종교에 적을 두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지만 영혼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어떤 존재가 자신을 지켜준다고 믿을 때 소수다. 믿음의 질이 같을 수가 없다. 죽음의 고
비를 만난 사람만이 진정으로 죽음 너머의 세계
지난 세기 최고 뮤지컬의 하나로 꼽히는 ‘회전 를 구하게 되고, 이 세상에서 추방되어본 사람만
목마(Carousel)’의 이야기다. 1945년 브로드웨이 이 진심으로 절대자에게 의탁하게 된다. 예수이
에서 처음 올려진 이 뮤지컬은 매번 공연될 때마 든 부처이든 그 어떤 이름으로 표현되든 아니면
다 관객들의 가슴에 찡한 무엇인가를 남기며 눈시 죽은 부모에 의지하든 해서 험한 세상 이겨낸 사
울을 적셨다. 특히 암담한 처지에서도 희망을 잃 람들이 있다. 그들은 절망의 후배들에게 하나의
지 않고 살아온 딸 루이즈가 졸업식 날 ‘나처럼 절 이정표가 된다. 그들을 보고서 후배들은 조금이
망뿐이었던 사람도 이렇게 거뜬히 살아왔는데…’, 나마 안심하게 된다. 어떤 존재가 자신을 지켜준
하면서 졸업생들을 노래로 격려하는 장면은 전 미 다고 믿는다면, 길은 비록 험해도 끝까지 걸을 수
있을 것이다.

뮤지컬 ‘회전목마’의 한 장면. 여주인공 줄리와 그의 ‘절망에 빠진 당신을 환영합니다’
남편이 될 빌리.
별 것도 아닌 일에 절망하여 자살하는 사람이 있
는가 하면 도저히 살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데도 거
뜬히 궁지에서 탈출하는 사람이 있다. 정신과 의사
로서 오랫동안 환자들을 관찰해오면서 ‘은총’이라는
특별한 힘에 주목하고 연구해 온 스캇 펙 박사는 이
렇게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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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FC)이 골을 넣으면 경기장은 온통 붉은 물결로 뒤덮이
면서 응원가 ‘You will never walk alone’이 장엄하게 울려 퍼
진다. 서포터스들이 들고 있는 스카프 하단에 그들의 응원 슬
로건 ‘You will never walk alone’이 프린트되어 있다. 사진은
지난 2월 21일 리버풀 구장 안필드에서 열린 러시아 제니트팀
과의 유로파 리그 홈경기 중 ‘더 콥(서포터스)’의 응원 장면 .

87

“우리는 어떤 사람이 자살을 결심한 이유는 정확 페리 코모(1956), 엘비스 프레슬리(1968), 톰 존스
히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와 똑같은 조건에 놓 (1969), 핑크 플로이드(1971), 올리비아 뉴튼존(1989), 3
인 사람이 자살하지 않는 이유는 잘 모릅니다. 여 테너(도밍고, 파바로티, 카레라스), 바브라 스트라이
기서 내가 확실하게 말해줄 수 있는 것은 어떤 보 샌드 등등.
이지 않는 힘이 있어, 그 힘이 최악의 환경에 처한
사람들을 지켜준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은총 금세기의 프리마돈나 르네 플레밍(Renee Fleming.
이라고 부릅니다. … 은총이 일어나는 메카니즘은 소프라노)은 2002년 911테러 2주기에 열린 ‘미국을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은총은 우리들 속에서 자주 위한 콘서트’에서 희생자와 가족들에게 이 노래를 바
일어나고 있습니다. … 은총으로 인해 우리는 흔들 쳤고, 2009년 1월 흑인 대통령 오바마의 취임식에 초
리지 않게 됩니다. 은총으로 인해 우리는 따뜻이 청되어 이 노래를 그가 가야할 길 앞에 놓아주었다.
맞아들여집니다. 우리가 더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You will never walk alone’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충
분히 짐작된다.
_스캇 펙, <아직도 가야할 길>의 ‘은총의 현존’ 중에서

어떤 사람이 절망하게 되면 어쩌면 그의 영혼의 느린 템포의 이 노래가 이색적이게도 축구 응원가
수호자는 이런 현수막을 내걸지 모른다. ‘절망에 로도 불리어지고 있다. 이 노래는 프로축구 서포터스
빠진 당신을 환영합니다.’ 잔머리가 통하지 않을 의 원조이자 세계에서 가장 열광적인 서포터들로 알
정도로 완전히 넘어져야만 그가 영혼의 도움을 청 려진 영국 ‘리버풀 FC’의 서포터스인 ‘더 콥(The Kop)’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불러도 오지 않던 그 의 공식 응원가이다. 또한 이것은 리버풀 FC의 슬로건
가 제 발로 걸어서 들어올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이기도 하다. 원래 더 콥은 비틀즈의 ‘She loves you’
는 끝까지 살아야 한다. 그래야 그 너머에 무엇이 를 응원가로 불렀는데, 리버풀 출신의 게리 앤 더 페
있는지도 볼 수 있다. 당신의 남은 길을 함께 할 수 이스메이커즈(Gerry & The Pacemakers)가 1963년에
호자는 누구인가? 우리가 진정 빈궁한 것은 그런 이 노래를 발표해 인기를 끈 뒤 가사의 의미를 캐치한
존재가 없기 때문 아니겠는가. 자기 계획대로만 풀 서포터들이 리버풀 구장 안필드에서 부르기 시작하
리지는 않는 삶. 보이지 않는 힘의 보살핌을 받아 면서 응원가로 자리 잡았다. 리버풀 팀이 골을 넣으면
잘 헤쳐나가길 빈다. 경기장은 온통 붉은 물결로 뒤덮이면서 이 응원가가
울려 퍼진다. 지난 04~05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AC
이 노래를 부른 사람들 밀란과 맞붙은 리버풀 FC는 전반에만 무려 3골을 내
줘 패색이 짙었는데, 후반 들어 연속 3골을 몰아넣고
‘You will never walk alone’은 1945년 뮤지컬 ‘회전 승부차기에서 이겨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스탄불의
목마’에서 처음 불리어진 뒤 그 해 프랭크 시나트라 기적’이라고 불린 이날 경기가 끝날 때 스타디움은 붉
를 필두로 수없이 많은 뮤지션들에 의해 리메이크되 은 깃발과 응원가 ‘You will never walk alone’으로 물
었다. 테너 마리오 란자(1952), 루이 암스트롱(1954), 들여지면서 전례가 없을 정도로 들썩였다. 유투브에
서 동영상으로 그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절망하면 그의 영혼의 수호자는
이런 현수막을 내걸지 모른다. ‘절망에 빠진 당신을 환영합니다.’
잔머리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넘어져야만 그가 영혼의 도움을
청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불러도 오지 않던 그가
제 발로 걸어서 들어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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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중인 엘비스

엘비스, You will never walk alone 달래기 딱 좋다. 듣고 나면 제대로 살아보고 싶은 생
각이 가슴 한켠에서 솟아오른다는 것을 기억해두자.
세상에서 홀로 고립된 듯한 감정에 사로잡힌 사람
들에게 엘비스 프레슬리가 부른 ‘You will never walk MP3 파일이나 CD로 엘비스의 노래를 준비해 아
alone’을 추천한다. 기라성 같은 뮤지션들이 불렀지 무도 없는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미리 반복재생
만 그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엘비스다. 원곡을 자신만 모드로 맞춰놓고, 불은 끄면 좋겠다. 눈을 감고 가슴을
의 색깔로 다시 물들여 그가 이 노래의 원주인으로 열어 엘비스의 노래를 20번 연속 듣는다. 엘비스의 이
느껴질 정도로 부른다. 기타와 피아노와 오르간의 반 노래는 2분 44초이다. 한 시간 투자하면 다음날 하루
주에 맞춰 묵직한 저음으로 시작, 갈수록 격렬해지는 버틸 힘을 얻을 수 있고 궁지에서 빠져나올 지혜를 건
피아노의 타건을 배경으로 5인조 코러스의 지원을 질 수도 있겠다.
받으며 옥타브를 한껏 끌어올려 마지막 구절에서 간
절하게 외치다 나지막이 마무리한다. 유난히 가스펠 ‘당신은 결코 혼자 걷는 게 아니랍니다. You will
을 좋아했던 엘비스는 뮤지컬의 원곡을 가스펠 풍으 never walk alone.’ 자기 혼자 주도하는 계획을 포기
로 바꿔 온몸으로 기도하듯 불렀다. 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에 의지해 길을 가
는 사람은 항공모함에 올라 대양을 항해하는 것과 같
엘비스가 부른 이 노래는 가스펠의 분위기와 팝적 다. 그 힘으로 모두들 잘 됐으면 좋겠다. 당신은 결코
인 감각이 많이 가미되어 다른 뮤지션들의 연주와는 혼자가 아니랍니다!
풍이 사뭇 다르다. 한 번 들으면 귀에 쏙쏙 들어오고
노랫말의 이미지가 풍부하게 전달되어 황량한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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