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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by 제이미파커스, 2021-05-02 21:19:51

발행인칼럼_75

발행인칼럼_75

발행인 칼럼 75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

생텍쥐페리의 고향, 손(Sa ne)강이 흐르는 프랑스
리옹(Lyon). 우측 다리는 리옹 법원 인도교

발행인 칼럼 75_ 박경욱(제이미파커스 대표)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

“누군가 ‘전투준비!’ 하고 소리치면 오직 단 한 사람, 자기 남편만 벌떡 일어나 달려 나갈 것 같았다. 왜 수백만
명의 남자 중 이 남자만이 얄궂은 희생을 치를 준비가 되어 있는지 서글펐다. 남편을 먹여주고 보살펴주고 보
듬어준 것은 결국 남편을 잡아가게 될 이 밤을 위한 것이란 말인가.” 조종사 파비앵의 부인 시몬은 그렇게 불
길한 예감 속에서 살았다. 영웅들의 이야기는 192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에어 프랑스의 남미 우편항공망
개척 시절에 활약했던 조종사들과 엔지니어들 그리고 그들의 지휘관이 엮어낸 드라마다. 그들은 민간 항공사
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었지만 그들이 일한 것은 비단 돈 때문만이 아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사명의 화
신’이었다. 생텍쥐페리(Saint-Exupery)는 소설 <야간비행 Vol De Nuit>에서 최고 지휘관인 리비에르의 독백
을 통해 그들을 이렇게 묘사했다. “무릇, 군중 속에는 놀라운 사명을 띤 사람들이 더러 있지. 그들 자신조차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지만…… 만약 그런 사람들이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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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한 지휘관 리비에르 50세의 백전노장 리비에르 사진 맨 오른쪽 인물이 소설 <야간비행>의 주인공 리비에르의 실제 모델인
는 에어 프랑스의 남미 우편항공망 책임자(항공부 디디에 도라(Didier Daurat). 에어 프랑스의 남미 우편항공부장이었다.
장). 본부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다. 작은 키에,
망토를 걸치고 모자를 눌러 쓴 그는 언제나 ‘영원한
여행자’의 모습이었다. 그는 엄격한 사람이었다. 한
번은 엔진을 분해하는 중에 전기회로에 문제가 있
었다는 보고를 받자 해당 엔지니어의 업무를 박탈
했다. 엔지니어는 사정했다. “한번만 봐주세요. 이
일은 제 인생의 전부입니다. 1910년에 부에노스아
이레스의 비행기를 최초로 조립한 사람이 바로 접
니다.” 엔지니어는 리비에르보다 연장자였고 남미
항공망을 개척한 공로자였다. 그런데도 엔지니어를
잡역부로 발령을 냈다. 엔지니어를 가혹하게 문책
한 날 저녁에 리비에르는 생각에 잠겼다. “내가 한
일이 과연 정당한지는 나도 몰라. 하지만 분명한 것
은 내가 엄하게 굴면 사고는 그만큼 줄어들지. 잘못
을 저지른 사람을 발견하고서도 눈감이 준다? 그건
범죄야!” 그는 일에 관한 한 냉혹하게 처신하면서
남미 우편 항공망을 지휘해왔다.

우편기 조종사 시절의 생텍쥐페리(좌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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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옹의 생 조르주 성당 인도교.
우측에 성당이 보인다.

부하 조종사를 기다리며 조종사들이 남미 각지에서 유럽으로 배달될 우편물들을 부에노스아이레스 공항으로 싣고 오면
그걸 수합해서 파리 행 우편기에 실어 보냈다. 운항부장 리비에르가 그 책임자였다. 새벽 2시 경 파리 행 비행기가 출발하
면 일과가 마무리되고 리비에르는 숙소로 돌아가지만, 그것은 불안한 휴식이다. 내일에는 내일의 비행기들이 들어오고 나
가기 때문이다. 그가 은퇴하지 않는 한 완전한 휴식은 없다. 그는 남미의 우편기들을 기다리며 생각에 빠진다. “이 항공망
은 참으로 아름답지만 너무나 가혹하다.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을 앗아갔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행기는 계속 띄워야
한다. 그것은 그가 짊어진 숙명이자 피할 수 없는 사명이다. 그리고 그 일은 그의 ‘전(全)존재’다. 새벽 1시 15분에 조종사 파
비앵이 모는 파타고니아 발(發) 우편기가 들어올 예정이다. 리비에르의 충직한 부하인 파비앵은 어제 저녁 7시30분 파타고
니아의 코모도로 비행장을 이륙했다. 6시간 뒤인 새벽 1시15분이면 부에노스아이레스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

리옹 대성당(노트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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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공군 전투기 조종사(소령) 시절의 생텍쥐페리. 파비앵의 야간비행, 폭풍에 휩싸이다 조종사 파
1944년 사망 직전 모습. 비앵의 야간비행은 순조로웠다. 그러나 첫 번째 기
착지인 산 훌리안 공항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수
리옹의 생텍쥐페리 공항 청사. 비행선을 형상화한 건축물이다. 족관처럼 고요했지만 무선사의 이어폰에서 잡음
이 심하게 잡혔다. 먼 곳에서 뇌우가 몰려오고 있
는 것이다. 무선사는 위험할 수 있으니 하룻밤 쉬
어 가자고 했다. 그러나 파비앵은 무뚝뚝하게 대답
한다. “그냥 갑시다. 우편기는 제 시간에 도착해야
하니까!” 다음 기착지를 향해 가던 중 무선사의 불
길한 예감이 현실이 되었다.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대기의 광란이 시작되었고,
그 소용돌이가 기체를 공격해 왔다. 기체는 폭풍
을 맞았고, 산봉우리들이 숙명처럼 기체를 향해 돌
진해오는 것 같았다. 착륙 가능한 모든 비행장들은
갑작스런 폭풍 속에 휩싸여 있다. 파비앵은 무선사
에게 부에노스아이레스 본부로 전보를 치라고 명
했다. “사방이 막혔음. 1,000km에 걸쳐 폭풍.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음.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들은
꼼짝없이 폭풍에 갇히고 말았다. 1시간 40분 뒤에
는 연료가 바닥나기에 새벽까지 버틸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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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옹 중심부의 벨쿠르(Bellecour) 광장. 광장 한쪽에 생텍쥐페리 기념상이 있다.

죽음을 향한 비행 운항부장 리비에르는 남쪽 비행장들에서 온 모든 전보들을 뒤적였다. 회신된 전보들은 마치 침략의 전
진을 알리듯 태풍의 전진을 알려왔다. 부하의 비행기가 이 밤의 심연 속 어디에선가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이다. 그
는 파비앵이 이륙했던 코모도로 공항에 전화를 걸어서 물었다. “파비앵의 연료로 얼마나 버틸 수 있나?” “30분” …… 결국
파비앵은 이 밤에 침몰하고 말 것이다. 파비앵의 우편기는 폭풍을 맞아 바다로 밀려났다. 파비앵과 무선사는 죽음을 피해
갈 수 없는 운명이 되어 방황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빠져나갈 수 없어…….” “그렇다면 …” 파비앵은 보석처럼 빽빽하
게 들어찬 별들을 향해 기체를 들어올렸다. 그 자신과 무선사 외에는 살아남은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는 세계에서 유유히
비행을 즐겼다. 파비앵은 찬란하게 빛나는 밤의 구름바다 위를 떠돌았다. 연료는 곧 바닥날 것이다. 저 영원 속으로 들어갈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며 죽음을 향한 비행마저 최선을 다했다! 새벽 2시. 결과는 자명해졌다.

벨쿠르 광장의 생텍쥐페리와 어린왕자 기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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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리비아 사막에 불시착한 생텍쥐페리 개인 전용기.
이 사건은 <어린왕자>의 모티브가 되었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곧 책임을 아는 것 피비앵의 비행기는 끝내 들어오지 못했다. “초상집에서도 질서는 유지되어야 한
다!” 리비에르는 전보들을 들춰보면서 항공기들을 다시 지휘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이 혼란의 와중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최
선이었다. 그는 조종사와 무선사를 가슴에 묻고, 다시 내일을 맞으러 돌아가면서 생각했다. “인생에는 해답이 없어. 앞으
로 나아가는 활력이 있을 뿐이지. 이 활력을 만들어내면 인생의 해답은 절로 따라오는 거야.” 놀라운 사명을 띠고, 기필코
그걸 완수해내고야 마는 영웅들의 이야기 <야간비행>에는 잡스러운 근심 걱정이 없고, 우울증이나 권태도 없다. 그들은
자신의 일에 헌신하면서 삶의 이런저런 문제들로부터 벗어나 있다. 조종사였던 생텍쥐페리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곧 책임을 아는 것이다. 돌을 갖다 놓으면 세상을 세우는 일에 이바지하겠다고 자각하는 것이다.” 우
편기를 깊은 밤 속으로 떠나보내는 고독한 지휘관 리비에르, 그가 사랑했던 동료들, 그들의 아름다운 이야기 <야간비행>.

1944년 7월 13일, 생텍쥐페리는 프랑스 공군
조종사로 정찰비행 중 독일군 전투기에 피격되어

사망했다. 사진은 1998년 마르세유 해저에서
발견된 생텍쥐페리의 정찰기 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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