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14
노인과 바다
회복의 심리학 ⑭
노인과 바다
박경욱 - 본지 발행인, 제이미파커스(리커버리) 대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The Old Man and the Sea」. 작은 조
각배를 타고 멕시코 만류에서 고기잡이하는 노인 산티아고의 이야기다. 부
인과 사별하고 판잣집에 홀로 사는 그는 벌써 은퇴했을 나이인데도 여전히
고기를 잡아 생계를 잇고 있다. 하지만 운이 다했는지 84일이 지나도록 고
기를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있다. 마을 어부들은 모두들 비웃었다. 좀
더 큰 어선에 들어가 젊은 어부들의 일이라도 거들어주면 적어도 굶을 일은
없으련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홀로 고기를 잡겠다고 나서는 그가 바보 같
아 보였나 보다. 단 한 사람, 산티아고의 조수인 소년 마놀린만이 그를 최
고의 어부로 인정하고 따랐다. 노인에게 고기잡이는 숭고한 업(業)이었다.
비록 최근에는 고기를 잡지 못했지만 자신의 일에 경외심을 갖고 늘 진지한
태도로 임했다. 맑은 소년의 눈에는 그런 게 다 보였다. 소년은 노인의 실력
을 믿었고 언젠가 노인이 고기를 제대로 잡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년은 더 이상 노인의 고깃배를 탈 수 없게 되었다. 노인이 허탕
을 친 지 40일이 지나자 부모들은 아들에게 다른 배를 탈 것을 명했다. 어
쩔 수 없이 돈벌이가 되는 배로 옮겨가긴 했지만 노인을 존경하는 소년은
매일 노인의 집을 찾아와 커피를 타고 잔일을 거들었다. “오늘은 자신감이
생기는구나” 노인은 확신이 섰다며 85일 째 되던 날도 바다로 나가겠다고
했다. 소년은 노인을 믿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 걱정스러워 정말 고기를 잡
을 수 있겠느냐고 묻고 노인은 감이 좋다고 말한다. 노인은 소년의 응원 속
에 85일 째 되던 날도 변함없이 배를 띄웠다.
“돛은 여기저기 밀가루 부대 조각으로 기워져 있어서 돛대에 높이 펼쳐
올리면 마치 영원한 패배를 상징하는 깃발처럼 보였다.” 헤밍웨이가 그린
노인의 조각배의 모습이다. 84일 동안 고기 한 마리 못 잡은 노인은 누가
봐도 패배자다. 더구나 그는 먼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기에는 너무 늙었다.
하지만 그의 두 눈만은 푸른 바다 색깔을 띠고 반짝였다. 여전히 의지가 번
득이는 그는 자신의 패배를 조금도 인정하지 않고 ‘영원한 패배의 깃발’ 같
은 돛을 올려 먼 바다로 나간다. 노인은 패배의 날들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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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사진의 거장 카쉬(Yousuf Karsh, 1908~2002)가
찍은 헤밍웨이(1957). 카쉬의 사진집
<영웅의 기록>에 수록된 것을 촬영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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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날 대어(大漁)가 걸려들었다. 노인의 조각배보 이때 노인은 남은 힘을 다해 청새치를 끌어당겨 작살
다 덩치가 큰 청새치가 노인이 쳐 놓은 그물 속으로 들어 로 찌른다. 사흘간의 싸움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다. 산티
온 것이다. 그는 청새치를 끌어올렸지만 역부족이었다. 아고는 거대한 청새치를 배에 매달고 시장에서 좋은 값
오히려 청새치가 고깃배를 끌고 앞으로 나아갔다. 노인 에 팔리리라 기대하며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작살에 찔
은 고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필사의 힘을 다해 자신의 몸 린 청새치에서 나온 피가 그만 상어 떼를 불러들였다. 산
으로 그물을 지탱하면서 이틀을 버텼다. 온몸이 땀으로 티아고는 작살로 상어를 다섯 마리나 죽이고 나머지들을
흠뻑 젖고 왼쪽 손에는 쥐가 났으며 피로가 뼛속까지 파 모두 쫓았다. 그러나 그날 밤 상어 떼는 다시 찾아와 청새
고들었다. 그래도 여전히 그물을 놓지 않고 네가 이기나 치를 물어뜯었다. 노인은 거의 초죽음 상태가 되었다.
내가 이기나 해보자는 식으로 사흘 동안이나 사투를 벌
였다. 먼동이 트기 전 마침내 산티아고가 마을에 도착했을
때 청새치는 상어들에 물어 뜯겨 앙상한 뼈만 남아 있었
거친 파도소리와 노 젓는 소리만이 들려올 뿐 아무도 다. 기진맥진한 산티아고는 영원한 패배의 깃발과 같은
없는 망망대해에서 노인은 청새치와 겨루고 고독과 싸운 돛대를 어깨에 메고 판잣집에 돌아와 깊은 잠에 빠졌다.
다. “난 녀석에게 인간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여 줘 소년은 매일 노인의 집에 찾아갔지만 노인이 사흘씩이나
야겠어.” 포기해버리면 일은 간단하게 끝나련만 노인은 돌아오지 않자 애가 타고 있었다. 나흘 째 되던 날 아침에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물을 놓지 않고 청새치와의 소년이 판잣집 문 안을 들여다보았을 때 노인은 잠을 자
싸움,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 최선을 다한다. 청새치는 고 고 있었다. 소년은 그물을 쥐느라 다 찢겨나간 노인의 두
기로 태어났고 자신은 어부로 태어난 만큼 각자의 운명 손을 보더니 울기 시작했고, 노인이 좋아하는 커피를 가
에 충실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자신과 겨루는 청새치에 져오려고 조용히 판잣집을 빠져 나와 길을 따라 내려가
게 형제애를 느끼면서도 노인은 이 순간 자신의 카르마 면서도 줄곧 엉엉 울었다. 노인은 잠에서 깨어 소년과 재
에 충실히 따른다. “누가 누구를 죽이든 그게 무슨 상관 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네가 보고 싶었단다.” 망망대해
이란 말이냐.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어떤 형태로든 다른 것 에서 고독에 지친 노인은 소년을 보니 살 것 같았다. 「노
들을 죽이고 있어.” 이제 그의 문제는 한 마리의 고기를 인과 바다」는 의지할 것 아무 것도 없는 망망대해에서 조
얻느냐 놓치느냐의 차원이 아니다. 생애를 모두 바친 업 금도 위축되지 않고 청새치와 싸우는 노인의 장엄한 모
의 위대한 자존심이 걸려 있다. 늙어서 더 이상 고기를 잡 습을 그리면서 그 노인을 존경하는 소년의 우정, 거친 삶
을 수 없는 퇴물로 전락하느냐, 보란 듯이 일어서는 위대
한 승리자가 되느냐. 노인은 전쟁을 지휘하는 장수만큼
이나 절박했다.
노인이 고기를 끌고 가는 것인지 고기가 노인을 끌고
가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가는 상황은 사흘 째 되는 날
정리된다. 청새치가 지쳐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
고 고깃배 주변을 맴돌기 시작한 것이다.
84일 동안이나 고기 한 마리 낚지 못한 주인공
산티아고처럼 10년 동안 제대로 된 작품을 내놓지 못하던
헤밍웨이가 절치부심 끝에 마침내 터뜨린 현대문학의 걸작이자
인생철학 교본 「노인과 바다」. 사진은 한국 외대 김욱동 교수가 번역한
‘민음사’판 번역본. 수많은 번역본 중 가장 우수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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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현장에서 곁에 정을 나눌 사람이 꼭 필요하다는 이야 수 없고 인생은 단 한번 뿐. 그리고 각자의 인생에는 배역
기도 곁들였다. 이 주어져 있다. 그 배역 속에는 생애를 걸고 풀어야 할 숙
제가 담겨 있다. 그러니 배역이 맘에 드니 안 드니 불평할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에게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일이 아니라 일단 주어진 배역에 최선을 다하라고 헤밍웨
안겨 주었고, 미국 현대문학사상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 이는 산티아고를 통해 말한다. 최선을 다해도 그 결과가
히지만 별 재미는 없는 소설이다. 등장인물이라야 노인 남들 보기에 보잘 것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사투 끝에 결국
산티아고와 소년 마놀린뿐이고, 사흘 동안 노인이 청새 뼈만 앙상하게 남은 청새치를 가지고 온 산티아고처럼.
치와 씨름하며 혼자 생각하고 말하는 게 이야기의 거의 그렇다고 자리나 깔고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는가? 산티
전부다. 더욱이 헤밍웨이는 문장에 일절 양념을 치지 않 아고는 말한다. “인간은 패배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인
고 친절한 해설도 곁들이지 않 간은 파멸당할 순 있어도 패
기에 짧은 소설인데도 마 배할 수는 없어.”
음이 동하지 않으면 읽
는데 상당한 인내를 요한 배역이 맘에 드니 안 드니 불평할 일이 아니라 살다보면 눈앞에 맞닥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주어진 배역에 최선을 다하라고 헤밍웨이 뜨린 일이 단지 이익의
「노인과 바다」는 지금도 는 산티아고를 통해 말한다. 최선을 다해도 그 차원을 넘어서 거대한
가장 많이 읽히는 소설의 결과가 남들 보기에 보잘 것 없는 것일 수도 있 자존심, 한 인간의 위엄
하나이다. 결과가 빤히 다. 사투 끝에 결국 뼈만 앙상하게 남은 청새치 이 걸린 문제로 다가올
보이는 상황에서도 물러 를 가지고 온 산티아고처럼. 그렇다고 자리나 때가 있다. 누가 쳐다보
서지 않고 끝까지 싸우는 깔고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는가? 산티아고는 는 것도 아니고 물러선
노인 산티아고의 위엄에 말한다. “인간은 패배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다고 해서 비난받을 일
찬 모습에 사람들은 숙연 인간은 파멸당할 순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어.” 도 아니지만 그 사람의
해지고 또 노인의 투쟁에 내면에서 “지금 이 상황
동의하는 것이다. 독자들이 에서 물러서지 말고 네 자
깊은 감동을 받는다는 이야기다. 신의 명예를 지켜라”고 하는 목소
리가 들려온다. 삶의 의미랄까, 존재 그 자체의 문제가 자
어부들은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는 주제에 여전히 그 기 앞에 내걸리는 것이다. 이때 후퇴하지 않고 자신과 싸
물을 놓지 않는 산티아고를 향해 손가락질하지만 그는 아 우면서 해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살아있다는 확연한 느
랑곳하지 않았다. 노인에게 고기잡이는 돈이 되면 하고 낌을 갖게 된다.
안 되면 안 하는 차원의 것이 아니다. 어쨌거나 바다는 삶
의 터전이고 거기서 잔뼈가 굵은 그에게 고기잡이는 인생 노인은 앙상한 뼈만 남은 청새치를 끌고 돌아와 누가
의 모든 것이다. 더 이상 고기잡이 같은 일 하지 말고 잔일 봐도 패배가 확실해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패배로
이나 하라는 것은 그에게 삶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 인정하지 않는다. 결과는 보잘 것 없고 물질적으로 건진
이나 다름없다. 누가 알아주거나 말거나 고 것이 없지만 적어도 자신의 내면에서는 위대한 승리를
기가 많이 잡히거나 적게 잡히거 거머쥔 것이다. 그래서 노인은 기가 죽기보다는 오히려
나 그는 삶의 바다로 나 더 큰 희망을 품는다. 노인은 판잣집에 돌아와 깊은 잠에
간다. 그걸 놓으 빠져 들었는데, 꿈속에서 아프리카 사자 떼가 나타났다.
면 그는 죽는 그걸 본 노인은 흐믓해지는 것이었다. 많이 가졌지만 무
다. 육체는 살 미건조하고 공허하기 짝이 없는 삶보다야 백번 낫지 않
아 있어도 혼은 은가. 우리의 노인 산티아고는 내일도 바다에 나갈 것이
죽는 것이다. 틀림없다. 우리도 산티아고처럼 또 희망을 품고 인생의
죽음 너머는 알 전장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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