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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by 제이미파커스, 2019-04-16 01:42:45

발행인칼럼_61

발행인칼럼_61

발행인 칼럼 61

대부의 종언, 팔레르모

※이 칼럼은 3월호의
‘대부의 고향 사보카’에 이어집니다.
3월호 인터넷판은 제이미파커스
쇼핑몰에 게시.

발행인 칼럼 61_ 박경욱(제이미파커스 대표)

대부의 종언, 팔레르모

숨을 거두기 직전의 대부 마이클 콜레오네(알파치노)

시칠리아의 주도(主都) 팔레르모. 시내 중심인 마케다(Via Maqueda) 거리의 베르디
광장(Piazza Verdi) 안에 마시모 극장(Teatro Massimo : 위 사진)이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오페라와 발레 전용극장입니다. 60대에 접어든 대부(代父) 마이클 콜레오네가 이곳에 옵니다.
아들 앤소니, 딸 메리 그리고 이혼한 두 번째 부인 케이와 함께. 오늘 저녁에 아들이 이 영광스러운

무대에서 데뷔를 합니다. 작품은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영화 <대부> 3부의 주 무대인 마시모(Massimo) 극장. 계단에서 마이클 콜레오네의 딸이 암살당한다.

마시모 극장의 암살

어둠이 내려앉은 마시모 극장. 대부의 아들 앤소니가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무대에 올라 하프 반주에 맞
춰 세레나데를 부릅니다. 오랜만에 해후한 옛 부부가 로열박스에 앉아 노래하는 아들을 바라보며 상기된 채
미소를 짓습니다. 그들의 마지막 미소였습니다. 가톨릭 신부로 위장해 반대편 로열박스에 앉아 있던 암살
자가 총을 꺼내 마이클의 심장을 조준합니다. 그때 마침 부하가 마이클을 불러내는 바람에 암살을 모면하지
만……. 공연이 끝나고 마시모 극장 계단을 내려올 때 딸이 부르고, 암살자가 총을 쏘고, 총알은 마이클이 아
닌 딸의 가슴에 박힙니다. “Oh, No!” 비명을 지르며 오열합니다. 그는 과거에 기관총이 난사되어도 끄떡하
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시신 앞에서 울부짖는 사람들 사이로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간주곡, 그
유장한 선율이 느릿느릿 흘러갑니다. 어느덧 병색이 짙어진 대부는 늦가을 오후의 정원에 앉아 있습니다. 셔
츠에 카디건을 입고, 페도라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를 낀 채 우물가 의자에 앉은 마이클이 행복했던 순간들
을 회상합니다. 세 여인과 춤을 춥니다. 죽은 딸 메리, 죽은 첫 부인 아폴로니아, 그리고 살아남은 두번 째 부
인 케이와 함께. 간주곡은 문자 그대로 막간의 음악, 그리 길지 않습니다. 3분 50초 남짓한 간주곡에서 그것
도 마지막 1분 30초 동안 행복했던 순간들이 지나갑니다. 간주곡이 끝나갈 때 무게를 이기지 못해 고개가 기
울더니 바닥에 쓰러집니다. 마지막 순간에 그의 곁엔 서성거리는 개 한 마리뿐 아무도 없었습니다. 간주곡에
불과했던 그의 삶은 그렇게 끝나고 대부 3부작, 대단원의 막이 내립니다.

반(反) 마피아 전쟁의 두 영웅. 조반니 팔코네(왼쪽)와 파울로 보르셀리노.

1992년 다이너마이트 공격 현장

도로 위의 암살

1992년 5월 23일. 공항과 팔레르모 시를 잇는 도로의 한 나들목 부근에
서 다이너마이트 5천 kg이 터집니다. 그 지점을 지나던 승용차들이 파괴되고, 그중
한 대는 수십 미터를 날아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서집니다. 다이너마이트 공격의
표적은 방탄 승용차였고, 그 안에는 조반니 팔코네(Giovanni Falcone)라는 치안판사와 그의 부인 그리고 3
명의 경호원이 타고 있었습니다. 5명은 즉사했습니다. 57일 뒤에는 팔레르노의 한 아파트 앞에서 TNT 100kg
을 실은 피아트(승용차)가 역시 원격조종으로 폭파됩니다.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가던 파올로 보르셀리노
(Paolo Borsellino)라는 또다른 치안판사와 부인, 경호원이 폭사당합니다. 팔코네와 보르셀리노, 두 사람은 어
려서부터 한 동네에서 자란 친구였습니다. 둘 다 팔레르모 법대를 졸업하고 법관이 되어 1980년에 팔레르모
검찰청의 마피아 수사팀에 합류합니다. 마피아들은 판사, 검사, 경찰, 기자 가리지 않고 반(反)마피아 인사들
을 암살했지만, 두 사람은 굴하지 않고 마피아 소탕전의 선두에 섰습니다. 2년여 동안 마피아 조직원 342명
을 검거해 보스들에게는 종신형을, 일반 조직원들에게는 총 형량 2,665년을 선고했습니다. 그들에게는 방탄
차량이 지급되었고, 경호원이 30여 명씩이나 붙었지만 끝내 당하고 말았습니다. 수많은 애도 인파가 몰린 가
운데 장례식은 TV로 생중계되었습니다. 두 영웅을 기리는 학교와 거리가 생기고 동상이 세워집니다. 그리고
암살 1년 뒤 주 정부는 팔레르모 국제공항을 새롭게 명명합니다. 공항의 이름은 팔코네-보르셀리노.

팔레르모 대성당. 12세기에 건축을 시작, 완공까지 600년이 걸렸다. 지붕에 올라가면 팔레르모 시가 전체가 완전히 잡힌다.

‘야수’라 불린 시칠리아 마피아 두목

시칠리아 마피아는 영화보다 훨씬 잔혹했습니다. 체포된 조직원이 비밀을 지키면 감옥에 있는 동안 가족의

뒤를 봐주었지만 정보를 누설하면 가차 없이 보복했습니다. 가령 한 마피아는 검사에게 입을 열었다가 가족

과 친척 30여 명이 살해당하기도 했습니다. ‘야수’라는 별명이 붙은 마피아 두목이 있었습니다. 살바토레 토토

리이나. 공교롭게도 그는 영화에서 1대 대부인 비토의 고향 ‘콜레오네’ 출신입니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19세

때 첫 살인에 성공한 뒤 ‘코사 노스트라’라는 마피아 조직의 보스가 되어 상상할 수 없는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그가 지시한 살인만 150건입니다. 마피아 소탕전의 영웅인 두 절친 팔코네-보르셀리노의 폭사 배후도 바로

마피아 두목 리이나 그입니다. 그는 두 판사 암살 1년 뒤인 1993년에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고 파르마 교도소에 수감
되었습니다. 그가 최근에(2017년 11월) 감옥에서 죽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야수의 모습

을 잃지 않았습니다. 면회 온 아내에게 “누구도 나를 굴복시킬 수 없다. 3,000년이라도

감옥에서 살 것이다”고 공언했다고 합니다. 가족들도 만만치 않습니다. 아들은 페이스

북에 “당신은 악명 높은 마피아 두목이 아니라 단지 아버지일 뿐”이라고 썼고, 딸은 파리

개선문 부근에 아버지의 이름을 딴 식당을 개업했고, 사위는 장인의 이름으로 모금운동까

지 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도 시칠리아에 마피아가? 소탕전에서 살아남은 마피아들은 돈

벌이가 시원치 않은 시칠리아 섬을 떠난 지 오래고, 일부 B급들만 팔레르모 일대에서 업주들

을 갈취하는 정도입니다. 사실상 외지인들이 마피아와 마주칠 일은 없습니다.

마케다(Maqueda) 거리

도시 거리의 진수, 마케타(Maqueda)

시칠리아의 관문이자 주도인 팔레르모의 도시 역사는 기원전 8세기까지 올라갑니다. 12세기에 시칠리아 왕
국이 세워지기까지 페니키아, 로마, 비잔틴, 아랍 등의 지배 아래 있었으니 이 도시에 진기한 것들이 얼마나
많이 버티고 있을지 짐작이 갑니다. 대문호 괴테가 시칠리아를 방문해 역사와 풍습에 매료된 나머지 “세계에
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경탄했던 바로 그 도시입니다. 모든 방문자가 들르는 랜드마크, 압도적 규모의
팔레르모 대성당은 12세기에 건축을 시작해 완공까지 600년이나 걸렸습니다. 건축물은 다양한 양식들이 뒤
섞여 기기묘묘합니다. 좁은 계단을 걸어 지붕으로 올라가면 바람에 날아갈 것만 같아 진땀이 나고, 360도로
온전하게 잡히는 구시가와 지중해의 파노라마에 현기증이 납니다. 가리발디 극장, 노르만 궁전, 콰트로 칸
티, 재래시장, 항구와 해변, 대부의 주 무대인 마시모 극장 등이 저마다 매력을 토합니다. 제가 본 팔레르모의
절정은 마시모 극장에서 팔레르모 중앙역까지 1.5km를 쭉 뻗어 있는 ‘마케다 거리(Via Maqueda)’입니다. 거
리 곳곳에 유적들이 있지만 진정 놀라운 것은 거리의 사람들입니다. 사람만 다닐 수 있는 이 길에 팔레르모
의 모든 인구가 배열된 것 같은 진풍경이 펼쳐집니다. 사람들은 목적지 없이 그냥 걸으면서 거리에 이야기를
풀어놓다가 어느 곳에 들어가 밤늦도록 이야기하고 다시 걷습니다. 자정이 지나도 정겨운 소리들이 거리를
채웁니다. 사람들을 불러내고, 걷게 하고, 이야기하게 만드는 ‘거리의 진수’가 팔레르모에 있습니다. 다음 호
에는 ‘신전의 계곡’ 아그리젠토 아니면 ‘시칠리아의 꽃’ 타오르미나, 아니면 어디? 생각 좀 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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