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56
니체, 철학의 길(1)
발행인 칼럼 56_ 박경욱(제이미파커스 대표)
니체, 철학의 길(1)
해안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리비에라(Riviera)’는 태양이 눈부시고 멋진 해변을 품고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을
말합니다. 지중해에 ‘이탈리아 리비에라’와 ‘프랑스 리비에라’가 있습니다. 이탈리아 리비에라는 토스카나 경계선의
라스페치아에서 프랑스 국경 근처 벤티미글리아까지 약 260km 구간입니다. 한국인이 많이 찾는 친퀘 테레(Cinque
Terre)도 이 해안선에 있습니다. 그밖에 키아바리, 제노아, 산레모 등 그림 같은 도시들이 이어집니다. 프랑스 리비에
라는 이탈리아 국경 근처의 망통(Menton)에서 마르세유 약간 못 미친 툴롱(Toulon)까지 약 220km 구간입니다. 프로
방스의 일부인 이 지역을 ‘코트다쥐르(Cote d'Azur)’라고도 합니다. 망통, 모나코, 니스, 앙티브, 칸느, 생 트로페 등
프리드리히 니체 세계적인 휴양지들이 즐비합니다. 밀라노 공항에서 내려 프랑스 리비에라 끝까지 약
(Friedrich Nietzsche, 500km를 지중해를 타고 달릴 수 있습니다. 이 길은 얼마나 태양이 쏟아지는지 선글라
스 없이는 운전을 할 수 없습니다. 가다가 유난히 아름다운 곳이 보인다면, 거기에는
1844~1900) 반드시 갑부들의 별장이 있습니다. 빌 게이츠, 호날두, 엘튼 존, 베컴 등의 1조원 넘는
집들이 프랑스 리비에라에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프랑스 리비에라의 중심도시 니스
(Nice)입니다. 긴 해변을 따라 조성된 ‘프롬나드 데 장글레(Promenade des Anglais)’라
는 ‘영국인 산책로(3.5km)’가 보입니다. 200년 전에 만들어진 이 길은 세계에서 가장 유
명한 산책로 중 하나이며 니체의 길이기도 합니다. 독일 철학자 니체는 스위스 실스마
리아 호수에서 20세기를 뒤흔든 사상을 잉태시켰고, 이곳 영국인 산책로와 인근의 에
즈 산길에서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제3부를 완성했습니다.
니스와 에즈 사이의 휴양지
빌프랑슈쉬르메르(Villefranche-sur-Mer)
사람들은 왜 니체를 찾는가 223년 전에 프랑스 사람들은 왕의 목을 쳤습니다. 초유의 일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약 100
년 뒤 한 독일 남자가 나타나 신의 목을 쳤습니다. 그 끔찍한 일을 저지른 자는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 당시에는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는 20세기의 문을 연 가장 중요한 사상가가 되었습니다. 지금 그
는 동서고금의 모든 철학자를 통틀어 가장 인기 있는 사람입니다. 철학 전공자조차도 어떤 철학서를 삶의 나침반으로 삼
는 것은 흔치 않지만, 니체는 그 예외, 거의 유일한 예외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니체를 찾아가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입
니다. 그는 돈이 많든 적든, 권력이 있든 없든 삶의 좌표를 잃고 헤매는 사람들에게 일절 속이는 것 없이 모든 것을 솔직하
게 털어놓고, 용기를 주고, 희망의 메시지를 안겨줍니다. 그는 모든 종류의 신, 국가, 이념들을 끌어내리고 ‘인간’을 주인으
로 올려놓았습니다. 그는 ‘실존인간’, 그러니까 세상 한복판에 던져진 개인들,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겪는 문제
를 함께 고민하면서 스스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어떤 철학자가 사회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아무리 말해봐야 다들 그런가보다 합니다. 하지만 삶이 버거운 어떤 사람이 “니체한테 가면 인생에 중요한 힌트가 있다”는
얘길 듣는다면 솔깃해지지 않겠습니까.
니스의 ‘영국인 산책로(Promenade des Anglais)’.
200년 전 겨울에 니스에 와서 휴양하던 영국
귀족들이 조성한 기금으로 만들었다.
“대지(현세)에 충실하라!” 니체를 니힐리스트(nihilist), 즉 ‘허무주의자’라고 하고 그의 사상을 ‘허무주의’라고 합니다. 물론
맞습니다. 하지만 이 낱말들은 니체의 생각을 이해하는데 좀 방해가 됩니다. “왜 니체가 허무주의?”하고 물었을 때 오히려
“니체는 허무주의를 쓰레기통에 버린 사람이다”고 답해야 더 사실에 가깝습니다. “산다는 게 가치가 없고 아무 의미도 없
다.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허무주의는 대체로 그런 뜻입니다. 니체는 정반대였습니다. “아니다. 오직 지금 여기에서
사는 것만이 가치가 있다. 당신은 삶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야만 한다.” 네이버나 다음에서 ‘니체’라는 두 글자를 치면 “신은
죽었다”가 연관 검색어로 뜹니다. 이 짧은 한 줄은 니체의 명찰입니다. 그는 산속에서 10년간 도를 닦고 하산한 ‘차라투스
투라’의 입을 빌려 “아니 저 늙은이는 신이 죽었다는 소문도 듣지 못했단 말인가!”하고 탄식합니다. 신의 죽음을 기정사실
화한 것이죠. 그가 이런 말을 100~200년 전에 했더라면 목이 잘렸겠지만, 이미 니체 시대에는 사람들이 신이 죽었다는 사
실을 대충 감을 잡고 있었습니다. 왜 그는 신에 대해 반기를 들었는가. 그때까지 신의 이름으로 행해진 가르침들이 지상의
삶을 하찮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는 신으로부터 생명을 얻어, 천국을 향한 삶을 살고, 죽어서 천국이나 지옥으로 들어가
는 삶의 태도, 말하자면 현세의 삶에 대한 허무주의를 걷어치웠습니다. 그는 ‘망치의 철학자’이자 ‘인간 다이나마이트’였습
니다. 누가 붙여준 이름이 아니고 스스로를 그렇게 불렀습니다. “세상에는 진짜보다 우상들이 더 많다. 나는 망치를 들고
의문을 던진다.” 인간 위에 서서 인간을 지배하는 신, 종교, 국가, 이념 같은 우상들에게 망치질을 했습니다. 신성한 것들을
향해 다이나마이트를 던졌습니다. 당신 삶의 주인은 당신 자신이니 더 이상 신성한 것들에게 속지 말고 당신의 삶을 살라
는 것이었습니다. <차라투스투라>의 초반부에 가슴을 울리는 그 웅변이 나옵니다. “형제들이여, 맹세코 대지(현세)에 충실
하라. 하늘나라의 희망을 설교하는 자들을 믿지 말라. 그들은 알게 모르게 독을 타는 자들이다.” 유일하게 가치가 있는 것
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삶(현세), 바로 당신의 오늘 하루이니, 당장 허무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삶의 의미를 찾아라!
니체의 테라스에서 바라본 니스 해변과 영국인 산책로 니체는 '영국인 산책로’의 저쪽 끝에서부터 사진 아래쪽의 샤토 공원까지
3.5km를 매일 걸으면서 <차라투스투라> 3부의 생각을 정리했다. 이곳은 지금 니체의 테라스로도 불린다.
에즈(E` ze) 니스에서 12km 떨어진 요새 마을. BC 2000년부터 사람이 살았다. 고대에 로마, 아프리카 무어인들의 지배를 받았고, 중세 때
요새가 지어졌다. ‘독수리 둥지’라는 별명을 지닌 이 마을 꼭대기에 있는 식물원에서 바라보는 지중해 파노라마는 단연 압권.
‘힘을 향한 의지’ 니체는 뼛속까지 솔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위선의 베일을 걷어내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봤습니다. 우
선 그가 본 인간은 ‘영혼’이 아닌 ‘몸’입니다. “나는 전적으로 몸일 뿐, 그밖에 아무 것도 아니다. 영혼은 몸속에 들어 있는 그
어떤 것일 뿐이다.” 그동안 인간을 설명하기 위해 고상한 정신을 내세웠지만 니체는 화려한 말장난 속에 숨어 있는 실체를
끄집어냈습니다. “훌륭한 인간이 되기 전에 먼저 훌륭한 짐승이 되라”는 말이 있습니다. 니체가 그런 발상의 선구자입니
다. 몸의 본능, 몸의 감각, 몸의 충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몸을 좋게 해야 본래의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
다. 니체는 몸 상태가 형편없었지만 대지의 리듬에 맞춰 움직이면서 늘 자신의 몸을 춤을 추는 상태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야생동물처럼 몸을 움직이고, 먹고 마시고, 햇빛을 쐬고, 꽃의 향기를 맡고, 기분 좋게 눈꺼풀을 닫는 것이 일하거나 공부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그렇게 해야 이상적인 인간(초인)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이제껏 아무
렇게나 내버려두고 있었던 내면의 야성을 들판에 놓아주자.”
몸의 존재인 인간을 움직이는 것, 즉 생명의 본질은 무엇인가? ‘힘을 향한 의지’라고 단언합니다. 그의 사상의 정수가 압축
되어 있는 ‘데어 빌레 주어 마흐트(Der Wille zur Macht)’는 보통 ‘힘(권력)에의 의지’로 번역됩니다. “모든 생명체의 내면을
들여다보라. 그곳에는 힘을 향한 의지가 있다.” 우리도 니체처럼 솔직하게 자신을 관찰하면 이것(힘)이 우리 삶을 움직이
고 있다는 것을 간파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무욕(無慾)’조차도 무욕을 이룰 힘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저는 17년간
강아지들과 함께 살면서 “아, 그렇구나”하고 니체의 ‘힘을 향한 의지’를 이해했습니다. 한없이 귀엽고 순종적인 그들을 움
직이는 것은 바로 ‘힘’이었습니다. 그들의 삶에는 더 높은 서열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투쟁이 있었습니다. 주인으로부터
더 많은 사랑을 받으려는, 주인을 자기에게 의존시키려는 몸부림이 있었습니다. 늙고 병들어 죽음이 가까워오자 비로소
멈추었습니다. 하물려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춤을 추듯 몸을 자유롭게 만들고, 우리 생명의 본질인 힘을 향한 의지를 살려
이 지상에서 천국을 맞으라. 니체가 그렇게 주문합니다.
길 위의 철학자 니체는 한 문장만으로도 우리를 전율케 하는 철인입니다. 방대한 저술에서 수없이 많은 잠언들을 쏟아냈
습니다. 그 잠언들은 이상적인 삶을 향한 ‘동경의 화살’이고, 그 화살은 100년이 더 지난 지금도 날아와 우리 가슴에 꽂힙
니다. 그토록 날카롭고 강렬한 것은 그의 모든 생각과 언어가 길 위에서 탄생했기 때문입니다. 니체의 전설이 있는 길들
은 그의 사상 전쟁터이자, 생명의 현장입니다. 니체는 워낙 특출나 25세 때 아무 학위도 없이 바젤대학의 교수가 됩니다.
10년간 대학에 있다가 병이 깊어 그만 두고 얼마 안 되는 연금으로 방랑길에 오릅니다. 스위스 엔가딘 협곡의 실스 마리아
(Sils Maria). 그는 이 마을을 ‘지구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곳’이라고 했습니다. 그곳에 머물던 37세 때 어느 날 실바플라나
(Silvaplana) 호수의 숲을 걷다가 피라미드처럼 우뚝 솟은 바위 옆에 멈춰 선 순간 불현 듯 영감이 떠올랐습니다. 그가 인류
에게 선물로 바친 <차라투스투라>의 근본사상이자 최종적으로 말하고자 했던 ‘영원회귀’의 아이디어입니다. 그해 겨울 이
탈리아 제노아 근처의 라팔로(Rapallo)에서 <차라투스투라> 제1부를 썼고, 한 해 뒤(1883년) 겨울에 프랑스 니스에 머물면
서 영원회귀의 사상이 담긴 제3부를 완성했습니다. 이때 그는 니스의 ‘영국인 산책로’를 매일 걸었고, 기차로 에즈(Eze)역
까지 와서 거기서부터 산을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가곤 했습니다. 왼쪽 사진이 ‘독수리 둥지’로 불리는 에즈 마을입니다. 겨
울에도 햇살이 눈부시고 성 위에서 바라보는 지중해 경관이 황홀해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이 찾아옵니다. 아래 사진에 보
이는 저 길이 니체가 걸었던 길입니다. 저는 니체의 숨결을 느끼기 위해 에즈에 세 번 가서 그의 길을 걸어봤습니다. 지중
해를 품은 다소 평탄한 길입니다. 병약한 니체는 무척 힘들게 올라갔다고 합니다. 그는 저 길을 걸으면서 서서히 몸을 도취
시켜 춤을 추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영원회귀’를 갈파한 제3부의 결정적인 장면들을 완성했습니다. 다음 호에 이 삶, 이 순
간은 무한히 반복된다는 ‘영원회귀’를, 그가 걸었던 길들과 함께 둘러보겠습니다. 미리 한 대목 음미해보시죠. “모든 것은
가고 모든 것은 되돌아온다. 존재의 수레바퀴는 영원히 돌고 돈다. 모든 것은 죽고, 모든 것은 새롭게 피어난다. 존재의 세
월은 영원히 흐른다.” - <차라투스투라> 제3부 중에서
니체의 길(Chemin de Nietzsche) 에즈 마을에서 지중해까지 이어진 약 1.5km의 산길. 니체는 아랫마을 기차역에서 산꼭대기까지
오르내리곤 했다. 하루에 7~8시간씩 산을 돌아다니면서 몸에 창조적인 에너지가 흐르게 해 위대한 생각들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