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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by 제이미파커스, 2019-07-11 03:22:10

발행인칼럼_63

발행인칼럼_63

발행인 칼럼 63

부활의 기적, 드레스덴

발행인 칼럼 63_ 박경욱(제이미파커스 대표)

부활의 기적, 드레스덴

개신교 성모교회( )

드레스덴 예술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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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2일 저녁, 이 원고를 쓰고 나면 저는 독일 드레스덴으로 날아갑니다. 이번에 네 번째입니다. 해외의 수백 개 도시들을
가봤지만 드레스덴은 제게 가장 가슴 뛰는 도시 중 하나입니다. ‘엘베강의 진주’, ‘독일의 피렌체’ 등의 별명이 붙은 이 도시
는 바로크 시대 절정의 장면들로 가득합니다. “설마 저 고도(古都)에 폭탄이 떨어지진 않겠지” 그래서 2차 대전 끝 무렵에
많은 사람들이 피난을 왔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최악의 폭격이 자행되었습니다. 영국군은 이 작은 도시에 3일간 쉬지 않고
폭탄을 퍼부었고 도시는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도시의 40km²이상이 파괴되었고, 모든 고건축물들이 주저앉았
고, 3만5천 명 이상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저렇게 부활했습니다. 기적의 도시, 드레스덴으로 갑니다.

가톨릭 궁정교회

드레스덴 법원

엘베강변의 드레스덴 바로크 지구 일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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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덴 인근 바스타이 국립공원에서 바라본 엘베강

엘베강변에 펼쳐진 바로크의 진수 위 사진은 엘베(Elbe)강. 체코와 폴란드 국경에서 발원한 이 물길은 독일 동쪽으로 들
어와 북동쪽 함부르크를 거쳐 북해로 빠져나갑니다. 근세 이후부터 엘베강 서쪽은 신흥 상공업이, 동쪽은 농업이 주를 이
뤘는데, 주도권은 동쪽의 농업지주들이 쥐었습니다. 그 대가로 동쪽은 산업화에서 밀려나게 됩니다. 2차 대전 후 엘베강은
동독과 서독을 가르는 국경선이 되어 동과 서의 격차는 더 벌어집니다. 그래서 엘베강 동쪽에는 고전적 아름다움을 간직
한 도시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그중에서도 드레스덴(Dresden)이 단연 정점에 있습니다. 아래 사진, 휘황한 야경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엘베강변에 바로크(16~18세기)의 웅장한 건축물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문화가 풍요로운
지 동화작가 안데르센은 드레스덴을 가리켜 ‘독일의 피렌체’라고 했습니다. 유럽 최고로 꼽히는 마이센요(窯)에서 제작된
드레스덴 도자기, 상상을 초월하는 압도적 규모의 츠빙거 궁전과 그곳에 걸려 있는 루벤트·렘브란트·라파엘로의 그림
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오케스트라가 상주하는 젬퍼 오페라하우스 등 …… 드레스덴은 바로크의 향기로 가득합니다.

드레스덴 구도심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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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궁정교회( . 85m)

드레스덴, 잿더미가 되다 그런데! 드레스덴은 대재앙의 도시였습니다. 1945년 2월 13일, 영국 공군은 대보복을 감행했습
니다. ‘도살자(butcher)’라는 별명이 붙은 아서 해리스 사령관의 지휘로 사상 유례 없는 폭격이 가해집니다. 4,900대의 폭격
기가 3일 동안 쉬지 않고 65만 개의 소이탄과 3,900톤의 고폭탄을 드레스덴에 퍼부었습니다. 도시는 궤멸되었습니다. 바
로크 시대의 모든 건축물들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파괴되었고, 민간인 2만 5천 ~ 4만 5천 명이 즉사했습니다. 나찌 항
복 14주 전에 행해진 이 폭격은 2차 대전에서 가장 잔인한 복수였습니다. 군수공장이 아닌 바로크의 찬란한 문화유산들,
나찌 군대가 아닌 무고한 시민들이 수십만 개의 폭탄을 받아야 했습니다. 처칠 총리조차 ‘무분별한 파괴’라고 자인했고, 국
제기구들은 영국군의 드레스덴 맹폭을 전쟁범죄로 규정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가 보는 드레스덴의 현재 모습
이 폭격을 당하기 전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드레스덴을 방문하는 사람들조차 이 도시가 잿더미였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문자 그대로 부활의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로슈비츠 다리( . 18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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젬퍼 오페라하우스( )

드레스덴의 기적 잿더미 드레스덴을 바로크의 원형대로 되돌리는 사업은 옛 동독에서 시작해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공사기간은 무기한입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때까지 계속됩니다. 그래서 드레스덴은 ‘영원한 공사장’입니다. 폐
허 위에 새 건물을 짓지 않고 옛 건축물들을 재현시켰습니다. 경이로운 건축자재들이 동원되었습니다. 폭격을 맞아 부서
진 벽돌, 창틀, 돌조각과 나무들을 가져와 분류해서 원래 건물에 붙인 것입니다. 거의 원형대로 복원된 비밀이 여기에 있
습니다. 창단된 지 471년이나 되는 세계 최고령이자 최고 실력을 자랑하는 오케스트라가 드레스덴에 있습니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국립관현악단)’입니다. 비발디, 바그너, 슈만, 슈트라우스 등의 걸작들이 이 교향악단에 의해 초연되었고 칼
뵘, 루돌프 켐페, 쿠르트 잔데들링, 헤르베르트 볼륨슈테트 등 수많은 거장들이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위 사진이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가 상주하는 젬퍼 오페라하우스입니다. 이 극장도 폭격으로 붕괴되었다가 1985년에 전쟁 전의 상태로 돌아
왔습니다. 성모교회와 가톨릭 궁정성당, 레지덴츠 궁전 등 대표 건축물들 모두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존재들입니다.

드레스덴 츠빙거 궁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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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텔 몰브라륄에의서테바라라스본( 타오르미나(Taormi)na)

유럽의 발코니 위 사진에서 고건축물들 아래에 가로로 길게 조성된 테라스가 보입니다. 공식 명칭은 ‘브륄의 테라스’. 1740
년에 강변을 따라 건축된 성벽 위의 공간이 자연스럽게 테라스처럼 되었습니다. 대문호 괴테가 드레스덴을 방문해 성벽
위를 걷다가 엘베강과 고도(古都)의 풍광에 흠뻑 취해 “여기가 바로 유럽의 발코니구나.”하고 감탄했습니다. 그 뒤부터 ‘유
럽의 발코니’로 불립니다. 언제 가도 ‘유럽의 발코니’는 엘베강과 드레스덴 구시가를 보러 온 사람들로 붐빕니다. 시간마다
교회의 종소리가 울리고 마차와 기차 지나가는 소리, 유람선 고동소리 그리고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뮤지션들의 선율 등
테라스는 온통 아름다운 소리들의 향연입니다. 해가 저물 때 이 테라스에 가면 아우구스투스 다리 넘어 엘베강 아래로 떨
어지는 노을, 강물에 비친 드레스덴의 실루엣에 그만 넋이 나갈 지경입니다. 드레스덴에서 엘베강을 따라 40km를 가면 체
코 국경에서 ‘작센 스위스’라는 비경을 만나게 됩니다. 아래 사진이 그 현장으로, 거대한 바위와 바위를 연결한 ‘바스타이
다리( )’에서 바라보는 ‘작센 스위스’와 드레스덴은 스위스 알프스 못지 않습니다.

드레스덴 인근 ‘작센 스위스’의 바스타이( ) 다리(석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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