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태극
주제공모전
103주년 삼일절 기념
작품모음(심사용)
■ 주최 : 전러시아동포연합 ■ 주관 : 모스크바 한인회
■ 후원 : 재외동포재단, 주러대한민국대사관, 주러한국문화원, 민주평통모스크바협의회,
삼일문화원, 재러한국경제인협회, 재러시아 한국중소기업협의회, 모스크바 선교사협의회,
모스크바한국학교, 모스크바1세종학당(원광학교), 전러시아고려인협의회, 사할린고려인협의회
■ 모스크바한인회 주관 103태극젖 출풙잓(디잒인) 1
1 한인 스키교실 태극마크 소잲
트로피와 등번호
작품설명 : 2021년 2월 27일에 메셰르스키 공원에서 개최한
스키대회에서 사용하기 위하여 태극을 소재로 트로피와
등번호를 디자인하였습니다.
트로피
등번호와 등번호 사용 모습
■ 모스크바한인회 주관 103태극젖 출풙잓(그림) 2
2 대한독립만세
■ 모스크바한인회 주관 103태극젖 출풙잓(스포츠_동영상) 3
3 태극선과 리듬체조
작품 설명 : BTS의 'I'm fine'의 국악 version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하였으며, 의상은 우리 한복 저고리를 착용하였다. 리듬체조의
종목 중에 농악의 상모를 연상시키는 리본을 선택하였다.
■ 모스크바한인회 주관 103태극젖 출품잓(그림) 4
4 사랑을 함축한 상징이 태극기
우리나라의 문화이며 역사와
작품 설명: 태극기는 단순한 국기의 의미를 넘어 우리나라의
문화이며 역사와 사랑을 함축한 상징이라는 것을 표현했습니다.
■ 모스크바한인회 주관 103태극젖 출품잓(PPT 영상물) 5
5 러시아 중남부지역 행사를 통해
알려진 잒랑스런 태극기
작품설명 : 러시아 중남부지역 행사를 통해 알려진 자랑스런
태극기의 모습들을 모아 PPT 영상으로 편집했습니다. (아래는
심사편의를 위해 영상 일부 화면 캡처)
▲ 러시아 월드컵 카잖 태극기
▲ 카잖 국젯기능올림픽대회 개막식
▲ 예까쪠린부르크 삼일젚 기념행사
■ 모스크바한인회 주관 103태극젖 출품잓(에세이) 6
6 ‘Я из Южной
Кореи.‘
이국땅에서 생활한 지 어느덧 두 달째. 모스크바에 와서 가장 많이 한 말은
‘Я из Южной Кореи.’이다. 대한민국에서 왔다고 자랑스럽게
자기소개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애국심을 느낀다.
낯선 러시아로 향할 때 분신처럼 지니고 다닌 여권에는 ‘대한민국 국민인 이
여권 소지인이 아무 지장 없이 통행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고 필요한 모든
편의 및 보호를 베풀어 주실 것을 관계자 여러분께 요청합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믿음을 느낄 수 있는 문구라고
생각한다.
정겨운 한국의 맛을 느끼고 싶어 한식당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삼일절 기념
공모전 포스터를 봤다. 태극기를 마주 보니 반가운 마음이다. 이러한 공모전
덕분에 외국에서도 우리나라 역사를 기념할 수 있음에 뜻깊다.
외국에서 맞이하는 3월 1일. 소중한 독립의 의미를 떠올리며 삼일절을
되새긴다. 떳떳이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로 한국의 자주적인 독립
의사를 알리는 날을 기억하고 기념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한 번은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러시아인 친구가 내게 학교에서 일본인과
사이가 어떠냐며 물었다. 내가 만난 친절한 일본인 친구와 사이좋게 잘
지낸다고 말했다. 더불어 일제 강점기 시절에 일본에 맞서 자주독립을 선언한
삼일절을 설명했다. 앞으로도 우리나라의 역사를 올바르게 알리겠다고
다짐했다.
학교에서 한국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러시아 친구들에게 어떻게 하면 한국
문화를 잘 알릴지, 어떤 내용을 담을지 준비하면서 나 또한 우리나라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알아가고 있다. 한국을 좋아해서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러시아인들 덕분에 애국심이 깊어진다.
독립과 안전의 중요성을 더욱 느끼게 되는 요즘, 대한민국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신 과거의 희생을 기억하고 감사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역사가
있기에 지금의 우리가 존재한다. 지금 이곳 모스크바에서 올바른 행동을 하고
안전 수칙을 지키면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위상을 높이겠다.
■ 모스크바한인회 주관 103태극젖 출품잓(시) 7
7 3.1 모스크바
녹는 눈이 짙어져
맑은 바람이 부네
빗소리 종과 같이
옛추억들 되살려
청공에 날아 가는
마천루 가까워져
향수로 상한 맘에
사랑하는 옛고국
우리 혈족 조상들
광복을 위해 목숨
바쳐 선열한 상처
영원히 잊지 못해
수백년이 지나도
태극기는 휘날려
아직도 눈물 흘려
외친 듯 "만세! 만세!"
■ 모스크바한인회 주관 103태극젖 출품잓(그림) 8
8 대한민국의 상징 태극기
■ 모스크바한인회 주관 103태극젖 출품잓(유튜브동영상) 9
9 누가 죄인인가
■ 모스크바한인회 주관 103태극젖 출풙잓(패션디잒인) 10
10 태극기 패션
작품 설명 : 해당 출품작은 본 행사를 위해 디자인된 것으로
지원시 동일한 옷으로 제작 가능.
■ 모스크바한인회 주관 103태극젖 출품잓(에세이) 11
11 태극기여 영원하라.
(해외에서 보는 태극기 시각)
지난1970년대 중반 캐나다로 이주한 해외동포로, 근 반세기동안 타국 땅에서 살았다. 대한민국에 거주할 때는 별로 우리
국기를 눈 여겨 보지 않았다. 국내에 있을 때 자주 태극기를 접하는 기회가 있었지만, 잊혀 진 국기나 다름없었다. 어쩌
다 태극기를 지나는 경우가 있어도 무심했다. 태극기 팔괘 순서도 몰랐고, 단순한 우리나라 국기에 불과했다.
해외로 나오니까 얘기가 달라졌다. 캐나다, 미국 국기 외는 보기 힘들었고, 어쩌다 깃대에 휘날리는 태극기를 마주하면
깊은 감동이 일었다. 외국에서 보는 우리 국기 시각과 느낌이 딴판이다. 절로 태극기 사랑으로 바뀐 것이다. 그래서 ‘한
국을 떠나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나오는 것 같다.
그것은 마치 산속에 들어갔을 때와 같다. ‘산속에 있으면 산이 안보이나, 산 밖으로 나오니 비로소 산이 보였다’는 얘
기와 다름없다.
이민자생활에서 태극기를 만나는 날이 따로 있다. 봄철시작인 삼일절행사가 대표적이다. 해외동포에게 삼일절의 의미는
무엇인가. 해외에선 국경일(공휴일)이 아니지만, 동포사회에선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한인회모임이 있는 해외지역은 해
마다 기념행사를 치른다. 한해도 빼놓지 않는다.
그날 일제강점기 순국선열의 희생정신을 기리고, 손에 쥔 소형태극기로 ‘만세삼창’을 부른다. 태극기 앞에서 새로운 각
오로 우리 민족단결과 조국발전을 다진다.
지난1919년 3.1운동은 한(조선)민족에겐 결코 잊을 수 없는 한 맺힌 시민혁명이었다. 처음부터 3.1운동이라고 부르지 않
았다. 기미년 ‘독립선언일’으로 불리었다. 일제강점기 식민통치에 항거해 온 백성이 거족적 만세운동을 벌인 ‘독립선
언일’이다. 우리네 백의민족의 비폭력, 무저항 평화시위였다.
당시 일제의 만행은 무자비했다. 총칼로 만세시위(태극기)백성을 학살했다. 조선전국에서 930여 명이 죽음을 당했다. 당
시 인구로는 엄청난 희생자였다. 오직 조선독립만을 염원하는 우리 태극기 만세시위는 국내도시에서 비롯돼, 농촌으로,
그리고 해외로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삼일절 태극기사건에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유관순열사다. 태극기와 유관순은 불가분관계다. 태극기와 유관순 관련
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 후세대는 태극기. 유관순 노래를 부르며 성장했다. 작사, 작곡가는 기억 못해도 노래곡조와
가사는 오늘까지 잊혀 지지 않는다. 뇌리 속에 그대로 생생하다.
(태극기 노래)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하늘높이 아름답게 펄럭입니다.--
(유관순 노래) 삼월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며 유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 옥 속에 갇혔어도 푸른 하늘 그리며 불러봅니다.
지난날 미주역사자료에서 3.1운동관련 내용을 발견했다. 민족적인 만세사건 다음해인 1920년대 초 일이다. 그때 미주지역
에서는 한인동포(여인들12명)들이 대형태극기를 마주 들고, LA다운타운을 행진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소중한 역사적 참고
자료가 아닐 수 없다.
또 당시 정요한(John Chung)이라는 한 소년이 나중 노인이 되어 쓴 회고록(영문)에도 삼일절 태극기내용이 나온다. 샌프
란시스코 출생으로 서너 살에 불과했던 요한(John)소년은 LA근교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당시 부친은 도산 안창호 재무
부장인 정봉규로서, 그의 외아들이다. 그 소년이 어릴 때 본 어머니의 삼일운동행진을 기억해, 훗날 쓴 그의 회고록 일부
(영문)를 소개한다. (한글번역 생략)
< ---I also recall the parade the Korean communty used to hold every year on March 1st, commemoration of the inde
pendent movement that took place in Korea on March 1st, 1919. The independence movement, known as "Mansei Inciden
t", took place throughout the entire country, and reportedly a total of 20 milliion participated in this uprising
and over one hundred thousand lost their lives. in commemoration of this movement overseas Koreans held parades a
nd rallies on the day. I remember mother dressed in white parading downtown Los Angeles carrying a huge Korean fl
ag together with about a dozen other ladies.---
독립기념관 자료에도 1920년 미 캘리포니아 다뉴바에서 거행된 삼일운동 1주년기념식 내용이 존재한다. 1919년 당시 미
다뉴바(Dinuba)지역에는 한인들이 약 3백 명이 거주했고, 삼일절기념행사에 12명 여성간호사들이 대형태극기를 펼쳐 들고
당시를 재현했다고 소개돼 있다. 이들 흰옷을 입은 여성들은 LA거리를 약 1마일 가량 시가행진했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다뉴바 지역은 미주삼일운동기념 발상지이다. 다뉴바(Dinuba/디누바 발음이 아님.)를 중심으로 캘리포니아 한
인역사가 이루어졌다. 삼일운동 애국선열기념비도 그곳에 세워졌다. 3.1운동이 일어난 그해 8월5일 다뉴바에서 ‘대한여
자 애국단’이 결성됐고, 다음해 1920년 삼일절행사를 다뉴바에서 본격적으로 진행해 시사행진이 이루어진 것이다. <1920.
3.1. California Dinuba에서>라는 근대역사자료 기록이다.
3.1운동은 우리 겨레의 위대한 민족정신이 깃든 태극기운동이다. 45년 해방 후 북한에서는 48년 7월 태극기를 바꿨지만,
그때까지 태극기는 남과 북이 똑 같은 국기였다. 청년 김일성은 태극기아래 북한정권을 잡았다.
태극기는 조선말기 고종황제나 신하 박영효 가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어쨌든 우리 민족이 만든 정통 태극기다. 북한(조
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경우는 당시 소련이 새 국기로 바꾸게 했다. 신탁통치(45-48년)기간 소련 레베데프 정치사령관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 교체됐다고 한다.
북에서는 당시 김일성 북조선위원장이 만들었다고 선전했다. 하지만 사실은 레베데프 소장 강요로 소련 모스크바 디자인
제작소에서 인공기도안을 제작해 보내온 것으로 드러나 있다. 그 도안을 당시 북조선 임시 인민위원회 김두봉 부위원장에
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이는 러시아에서 레베데프 장군 통역으로 함께 북에 파견됐던 고려인 박일 교수가 밝혔다. 또 새 국기(인공기)에 대한 사
실증언은, 소련군관으로 북한에 파견돼 한때 북조선 문화선전상 제1부상(치관)을 맡았던 정상진 고려인이 증인이 됐다.
태극기만이 우리 대한민국의 순수한 국기다. 우리 한민족 역사와 정통성이 살아 숨쉬는 유일한 국기로, 태극기는 국민들
가슴속에 영원할 것이다.
■ 모스크바한인회 주관 103태극젖 출품잓(직캠동영상) 12
12 태극의 힘, 한국응원단 카잖월드컵
독일과 거리응원젖 승리
작품설명 : 2018년 6월 26일 촬영한 한국 독일 카잔 월드컵
응원단 대회 전날 격돌 모습 동영상. 카잔 바우만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한국과 독일 응원단이 서로의 국기와 국가를
부르며 응원전을 펼쳤고 한국 애국가가 독일국가를 압도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찍여 있다. 한국은 그 다음날 대회에서
독일을 이기고 승리를 거두었다.
■ 모스크바한인회 주관 103태극젖 출품잓(디잒인) 13
13 비상하는 태극
작품설명 : 태극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항상 살아서
움직이는 힘이다. 한식은 그 힘을 내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물질적 원천이다. 그래서 한식당의 로고를 태극마크와
백학을 모티브로 디자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