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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by DBBOX, 2016-12-06 23:13:35

남원기네스

황영보 선생은 남원 최초로 1993년 7월 5일 중요무형문화재 제65호 백동연죽장 기능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59
황영보 선생은 1932년 11월 21일 왕정리에서 태어나 15세 때부터 부친의 손에 이끌려 최초 중요
도제생활을 시작 후 25살 무렵부터 고향을 떠나 전라도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각 지역의 무형문화재
백동연죽 제작기법을 익혔다. 제65호
선생이 주로 만드는 담뱃대는 민담뱃대 · 오동상감 · 송학죽이다. 송학죽은 소나무와 백동연죽장
학을 문양으로 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그 주요 기술이 바로 오동상감기법이다.
황영보
선생은 아들인 황기조 선생(현 전수교육조교)에게 기술전수 하여 4대째 가업을 잇는 한편,

1997년 남원시 관광단지 내에 전수회관을 마련하여 꾸준히 담뱃대 전승에 관한 노력을
남원기네스 문화역사
펼쳐 오고 있다.

60 4

최초 기독교회 남원읍교회


남원의 최초 기독교회는 1904년 조원집이 광한루에서 전도하기
39
시작하여 1905년 동충동에 초가 4칸을 매입하고 모임처를 설립한 후
1908년 동충동 254번지에 세워진 남원읍교회이다. (구)토지대장에는
‘윤성만, 박관보, 황인원’ 세 사람 소유로 교회 명칭은 조선야소교 남원
장로회(朝鮮耶蘇敎 南原長老會)로 되어있다. 남원읍교회 최초목사는
김종대 목사로 평양에 장로회신학교 졸업 후 1939년 6월 남원읍교회의
청빙으로 전북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남원의 최초 위임 목사가
되었다. 최초 기독교 장로는 남원기독교장로회에 최극재(1921.11.26
임직)와 남원예수교 장로회에 윤성만(1936.06.07 임직)이 있다.
해방 후 남원읍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남원동북교회와
기독교 장로회 소속 제일교회로 분리되었다.

지리산 천년송(천연기념물 제424호)은 나이가 약 500여 살로 추정되는 소나무로 산내면
61 부운리에 있으며 높이가 대략 20m, 가슴높이 둘레 6m, 사방으로 뻗은 가지의 폭은

가장 오래된 18m에 달한다.

소나무 와운(臥雲)마을 뒷산에서 임진왜란 전부터 자생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20m의 간격을 두고
지리산 한아시(할아버지)송과 할매(할머니)송이 자생하고 있는데, 이중 더 크고 오래된 할매송을
천년송 마을주민들은 「천년송」이라 불러오며 매년 정월 초사흘에 당산제를 지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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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도시 건강한 남원 제281호 진기리 느티나무
최초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보절면 진기리에 느티나무는 1982년 11월 4일 천연기념물


진기마을의 정자나무 구실을 하는 이 나무는 나이가 약 630살
40 제281호로 등록되었다.
정도 추정되며, 크기는 높이 23m, 가슴높이의 둘레 8.25m이다.
단양 우씨가 처음 이 마을에 들어올 때 심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조선 세조 때 힘이 장사인 우공(禹貢)이란 무관(武官)이 뒷산에서
나무를 뽑아 마을 앞에 심고 마을을 떠나며 나무를 잘 보호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는 세조 때 함경도에서 일어난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데 큰 공을 세워 적개공신 3등의 녹훈을 받았으며 그 후
경상좌도수군절도사를 지냈다고 한다. 진기리의 느티나무는
단양 우씨가 마을을 이룬 유래를 알 수 있는 자료로서 문화적
가치가 있고, 오래된 나무로서 생물학적 보존가치도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 · 보호 하고 있다.

● 춘향전

춘향전은 조선 후기에 남원을 배경으로 쓰여진 작자 미상의 판소리계 소설로 《춘향전》은 63
처음 판소리로 생성되어 나중에 소설로 정착되었고, 창극(唱劇), 희곡, 영화, 시나리오, 남원 고전문학
뮤지컬,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를 거쳐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고대소설의 대표작이다. 춘향전,
남원부사의 아들 이도령과 기생의 딸 춘향이 광한루에서 만나 정을 나누다가, 남원부사가 흥부전,

임기를 끝내고 서울로 돌아가자 두 사람은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이별한다. 새로 부임한 최척전,
남원부사 변학도가 춘향의 미모에 반하여 수청을 강요하나 춘향은 일부종사(一夫從事)를 만복사저포기
앞세워 거절하다 옥에 갇혀 죽을 지경에 이른다.
남원기네스 문화역사
한편, 이도령은 과거에 급제하여 어사가 되어 신관 부사를 탐관오리로 몰아 봉고파직

(封庫罷職)시키고 춘향을 구출한다. 이도령은 춘향을 정실부인으로 맞이하여 백년해로를
4
한다는 이야기이다.


● 흥부전
흥부전은 판소리로 불리다가 소설로 정착된 41

것으로 여겨지는 판소리계 소설이다. 대체로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한 윤리 소설로서 인과
응보적 권선징악의 주제와 사상을 갖고 있는
작품이다.

충청 · 전라 · 경상 삼도의 어름에 악하고
사나운 형 놀부와 순하고 착한 아우 흥부가
살았는데, 놀부는 부모의 유산을 독차지하고
흥부를 내쫓았다.

아내와 많은 자식과 함께 쫓겨난 흥부는 할 수 없이 언덕에 움집을 짓고 살지만 먹을 것이 없었다. 하루는
놀부의 집으로 쌀을 구하러 갔으나 매만 맞고 돌아왔다. 여러 가지 품팔이를 다해 보아도 먹고 살길이 없어

대신 매를 맞아 주는 매품팔이를 하나 그것도 안 되었다.
어느 해 봄 제비가 돌아와 집을 짓고 사는데 새끼 한 마리가 땅에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흥부가 불쌍히
여겨 다리를 매어 주니 고맙다고 날아가 그 이듬해 봄에 돌아올 때 박씨 하나를 물어다 주었다. 흥부는 그 박씨를
심어 가을에 큰 박을 많이 땄는데 그 속에서 금은보화가 나와 큰 부자가 되었다. 놀부가 이 소식을 듣고 제비

새끼의 다리를 일부러 부러뜨려 날려 보냈다. 이듬해 봄에 제비가 가져다 준 박씨를 심어 많은 박을 땄는데
그 속에서 온갖 몹쓸 것이 나와 집안이 망하게 되었다. 흥부는 이 소식을 듣고 놀부에게 재물을 주어 살게 하고,
그 뒤 놀부도 잘못을 뉘우치고 착한 사람이 되었으며 형제가 화목하게 살게 되었다.


● 최척전
최척전은 조선 중기의 문신 조위한(趙緯韓)이 한문으로 쓴 고대 소설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호족의 명나라 침입 등의 전쟁을 겪는 동안 주인공 최척

일가와 주변 사람들이 겪는 기구한 삶의 역정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포로가 된
주인공의 행적을 중심으로 피로 문학(被虜文學)이라는 새 장르의 가능성을 제기해
볼 수 있다.










● 만복사저포기
사랑의 도시 건강한 남원 만복사저포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전라도 남원에 사는 총각 양생(梁生)은
조선 전기 김시습(金時習)이 지은 한문소설 《금오신화 金鰲新話》에 실려 있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만복사의 구석방에서 외로이 지냈다. 배필 없음을
슬퍼하던 중에 부처와 저포놀이를 해 이긴 대가로 아름다운 처녀를 얻었다.
그 처녀는 왜구의 난 중에 부모와 이별하고 정절을 지키며 3년간 궁벽한
곳에 묻혀서 있다 배필을 구하던 터였다. 둘은 부부관계를 맺고 며칠간
42
열렬한 사랑을 나누었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양생은 약속한 장소에서 기다리다 딸의 대상을 치르러 가는 양반집 행차를
만났다. 여기서 양생은 자기와 사랑을 나눈 여자가 3년 전에 죽은 그 집
딸의 혼령임을 알았다. 여자는 양생과 더불어 부모가 베푼 음식을 먹고 나서
저승의 명을 거역할 수 없다며 사라졌다. 양생은 홀로 귀가했다.

어느 날 밤에 여자의 말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자신은 타국에 가서 남자로
태어났으니 당신도 불도를 닦아 윤회를 벗어나라고 했다. 양생은 여자를
그리워하며 다시 장가들지 않고 지리산으로 들어가 약초를 캐며 지냈다.
그 마친 바를 알 수 없었다.

남원을 배경으로 한 최초의 대하소설 혼불은 최명희 작가가 1980년부터 17년 동안

집필하였으며 사매면 노봉마을을 배경으로 일제강점기인 1932년부터 1938년까지의 64
매안이씨 양반가의 이야기를 서술한 대하소설이다. 남원 최초
「혼불」은 1930년대 후반을 전후로 무너져 가는 종가를 지키려는 종부의 삶과 천민들의 대하소설
생활상, 각종 민속놀이, 세시풍속, 관혼상제, 음식, 노래 및 이 지역의 역사, 설화, 무가, 혼불

두레 풍습은 물론 민간신앙을 자세히 묘사하여 민속백과사전격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작가가 직접 발로 뛰면서 몸으로 느끼고 호흡한 결과로 나타난,
철저한 고증의 결과이며 민속학의 보고, 모국어의 보고로 칭송받고 있으며, 특히 종부의
남원기네스 문화역사
이야기가 중심이 되고 자연 환경을 세밀히 묘사하여 생태 문학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4
2004. 10. 20일에는 소설 「혼불」의 배경인 노봉마을에
17,650㎡(5,340평)규모로 혼불문학관을 개관하였다.
혼불문학관 앞에는 청암저수지가 있고 문학관 내부의 43

전시 시설에는 디오라마 10점과 매직비전, 작가 최명희의
집필실 재현장과 인월댁 베짜기 체험시설과 혼례식 장면,
강모 강실 소꿉놀이, 효원의 흡월, 청암부인 장례식
장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혼불문학관을 중심으로

문학기행 코스를 개발하고 혼불 백일상을 개최하여
혼불 알리기에 노력하고 있다.

● 용마놀이
65 용마놀이는 남원지방에서 매년 정월대보름에 악귀를 쫓아 재앙을 막고, 그 해 풍년과

오래된 흉년을 점치기 위해 행해진 민속놀이이다.
민속놀이 ‘용마희(龍馬戱)’또는 ‘용말놀음’이라고도 하는데 옛 남원읍지인 『용성지(龍城誌)』에
용마놀이, 전한다. 남 · 북 두 편으로 나누어 각각 큰 용마를 만들어 모두 오체(五體)에 용의 무늬를
삼동굿놀이, 그린 뒤 외바퀴 수레에 실어 거리로 나오면서 대진하기 앞서 여러 가지 놀이를 행하고

줄싸움 승부를 겨룬다. 남쪽이 이기면 풍년이 들고, 북쪽이 이기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현재엔 1950년대에 들어 기록을 바탕으로 초등학교 운동회에 등장했고, 1985년 남원문화원
에서 복원하여 춘향제 행사로 선보였으며, 고증과정을 거쳐 2014년 춘향제 행사로 재현되었다.
사랑의 도시 건강한 남원 ● 삼동굿놀이



삼동굿놀이는 보절면 괴양리에서 매년 음력 7월 15일 백중날 행하는
민속놀이이다.

괴양리 동쪽엔 약산(지네)이, 서쪽엔 계룡산(닭)이 남북으로 뻗쳐 있어 지네가
44 닭을 해친다는 설화에서 유래한 놀이로 세 마을(양촌마을 · 음촌마을 · 개신마을)
에서 세 동자를 앞세우고 입신양명 및 마을의 무사 · 풍년을 기원하는 민속놀이
이다. 삼동마을 기세배, 당산제, 우물굿, 삼동서기, 지네밟기, 합굿(마당밟기)
등으로 진행된다. 1982년 전국민속놀이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 줄싸움
줄싸움은 운봉에서 정월 대보름날 지역에 따라 동무 · 서무로 편을 나누어 줄을 당겨 승부를 겨루는 민속놀이다.

줄다리기는 전국적으로 행해지던 놀이지만 운봉의 줄놀이는 규모가 매우 큰 것이 특징이다. 줄놀이에서 암줄이
이기면 그 해 농사가 풍년이 들고 수줄이 이기면 흉년이 든다고 인식되기도 한다. 줄놀이는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며 동시에 주민들의 협동심과 단결력을 기르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남원에서 규모가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물로 3곳을 뽑으라면 광한루, 관왕묘, 용성관을
들 수 있다. 이 건물은 남원 고대건물의 삼걸(三傑)로 불린다. 66
● 광한루 남원.
광한루는 조선조 초기 재상이었던 1419년 황희(黃喜)가 남원에 유배되었을 때 누각을 고대건물 3걸.
짓고 광통루(廣通樓)라 하였다. 그 후 1444년 전라관찰사 정인지가 광한루로 개칭하였다. 광한루,
그러나 이때 1597년 정유재란으로 인해 불타고 현재 건물은 1626년 당시 남원부사인
신감(申鑑)이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관왕묘,
광한루의 앞뒤엔 ‘호남제일루(湖南第一樓), 계관(桂觀),’ 광한루(廣寒樓)란 편액이 걸려있다. 용성관.
호남제일루는 호남에서 제일가는 누각이란 뜻이며, 광한과 청허부는 하늘나라 월궁의 옥경엔
‘광한 청허지부’가 있다는 신화적 전설을 상징하고, 계관은 달나라의 계수나무 신궁을 상징한다.
● 관왕묘
관왕묘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2호로 등록되어 있다. 4 남원기네스 문화역사
중국 삼국시대 명장인 관우(關羽)의 흙으로 빚은 소상(塑像)이 모셔진
곳이다. 원래 임진왜란 때 이곳에 주둔하였던 명나라 장군 유정(劉綎)이
자기들의 수호신으로 숭배하던 관운장을 모시기 위해 선조 32년(1599) 남원부
45
동문 밖에 세웠던 것이다. 그 후 영조 17년(1741)에 현 위치로 옮겨지었다.

● 용성관
용성관은 통일신라 신문왕 11년(691)에 처음 지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엔
다른 지역에서 출장온 관리의 숙소로 사용하였다. 조선 태조를 상징하는
나무패를 모셨으며, 백성을 돕는다는 뜻에서 휼민관(恤民館)이라고도
불렀다. 정유재란 때 불탔다가 광해군과 숙종 때 다시 지었으나, 한국전쟁을
맞아 또 다시 불탔다. 지금은 70m 가량의 옛 건물 받침부와 용성초등학교
본관 계단으로 쓰는 석물 1점이 남아있다. 용성관 석물(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104호)은 난간 양쪽에 반원을 그리듯 둥글게 처리하고 표면에
도깨비 상을 조각해 놓아 독특한 모습을 보인다.

남원에서 3.1만세 운동이 최초로 발생한 지역은 덕과면이다.
일제의 무단통치에 저항하여 민족의 자주독립을 이루고자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이 전국 방방곡곡으로 확산된 가운데 1919년
3월 2일 서울에서 전달된 독립선언문은 오수 이기동에 의하여
덕과면 사율리 이기원, 황석현, 황동주에게 전달되었으며, 이는
다시 천도교구장 유태홍에게 전달하여 유석, 김성재등 8명으로

독립선언서를 각 마을에 배포하도록 협조를 구하였다. 덕과면에서도
자주독립을 이루기 위해 1919년 4월 3일 식수기념일을 기하여
당시 덕과면장 이석기는 이성기, 조동선 등과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계획하고 ‘경고. 아. 동포제군이여!’라는 격문을

사율리에서 소리 높여 낭독하고 남원~전주간 큰길로 나서서
천여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일으켰다. 같은 시각
사매면민들도 도로보수를 구실삼아 계명당 고개로 모여 독립만세를 외치고 덕과면
67 군중과 함께했다.

최초 이 만세운동에 참여하여 희생당한 이석기 덕과면장 등 수많은 순국선열 영령을 추모
3.1만세운동 하고 남원지역에서 최초로 일어난 3.1만세운동을 기념하고자 당시의 현장인 덕과면
발생지역 사율리 동해골에 3.1만세 운동 발상지 기념탑을 1998년 10월에 건립하였다. 탑의

덕과면 높이는 12.3m이고 부지면적은 8,467㎡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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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도시 건강한 남원 사랑의 도시 건강한 남원 최초 남원에 설치된 남원역




남원역은 일제강점기였던 1931년 10월 15일에 개통되어 1933년 10월
15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하였다. 1950년 10월 15일에 미군의 폭격으로

남원 역사는 소실되었고, 1956년 7월 27일에 새 역사를 준공하였다. 1986년
46
12월 8일에 새 건물을 신축하였는데 그 건물이 동충동에 있는 구 남원역사
이다. 전라선 복선 전철화 사업이 시작되면서 2004년 8월 5일에 남원시
신정동으로 이전, 개통하였다.
기차가 개통되기 전에는 역참제를 운영하였는데 역부 · 역마를 이용하여

관물의 수송, 공문서의 전달, 관리의 숙소에 활용되었다. 고려 성종시대에
남원도(南原道)에 12개역을 설치 관리 하였으며, 조선후기에는 남원도에
속하는 오수 찰방역에서 관리하였다. 12개역에는 은영역(이백), 창활역

(금지), 통도역(도통), 인월역(인월), 오원역(관촌), 오수역(오수), 갈담역
(강진), 잔수역(구례),대부,지신역(곡성), 고양,낙수역(순천)이 있었다.
구역사

서도역은 최명희 소설 『혼불』의 중요한 문학적 공간이며 혼불문학마을의 도입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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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안마을 끝 아랫물에 이르러, 치마 쪽을 펼쳐놓은 것 같은 논을 가르며 구불구불 난
길을 따라, 밥 한상 천천히 다 먹을 시간이면 닿는 정거장 서도역은 효원이 대실에서 매안으로 가장 오래된
신행 올 때 기차에서 내리던 곳이며, 강모가 전주로 학교 다니며 이용하던 장소이기도 하다. 목조 기차역
서도역은 1934년 10월 1일 역원배치 간이역으로 운수영업을 시작하여 1937년 10월 1일에 서도역

보통역으로 승격되었다. 서도역은 2002년 전라선 철도 이설로 신역사를 준공, 이전하였으며
이곳은 1932년 준공 당시 모습을 재현하여 『구 서도역 영상촬영장』으로 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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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방송국 남원 KBS

4 남원기네스 문화역사
남원 최초의 방송국은 KBS남원 라디오 방송국으로 1952. 10. 25일 대통령령 제649호에 따라 남원군 남원읍
동충리 305번지에 최초로 개국했다. 한국전쟁 당시 지리산 일대에 주둔하는 공비 토벌작전의 선무공작에 크게

공헌했으며 초대 국장은 윤치호, 최초의 아나운서는 김경배였다.
47
개국 부터 KBS의 일반적 방송 목표에 따른 정규방송 프로그램 이외에 남원
지역 특성을 살리기 위해 독자적으로 개발한 국악문예방송에 주력하였고, 남원의
전통가락인 국악 · 판소리를 널리 알리며, 자국 프로그램을 위한 문예창작에

힘써 향토문화 발전에 관심 있는 애청자들을 많이 확보했다. 그러나 2004년
KBS가 전국적으로 지역방송국을 조정할 때 남원방송국이 KBS전주총국으로
완전 흡수되었고, 현재 남은 건물은 남원 방송문화센터로 활용하고 있다.
1992.11.18일 문화방송(MBC)에서 금지면에 남원TV중계소를 개설하고, 천거동에

남원간이연주소를 개국하였다. 남원MBC는 방송 송신과 라디오방송을 송출했다가
얼마 후 전북도내의 모든 MBC가 전주MBC로 통합됨에 따라 현재 남원MBC는 폐쇄되었다.

향교동 소재의 남원향교는 유교를 장려하고 지방민의 교육을 위하여 1410년(태종 10년)에
71 창건된 국립중등교육기관이다. 최초 향교는 성안 서쪽 골짜기에 처음 세웠다가 얼마 후

최초의 요천 건너편으로 옮겼는데 요천이 범람할 때마다 유생들이 향교에 다니기가 어려워

국립교육기관 세종 25년(1443) 지금의 자리로 옮기게 되었다.
남원향교 그 후 정유재란으로 향교 건물이 모두 불타버렸으나 지방유지 유인옥이 1599년(선조

32년)에 대성전을 다시 짓고 광해군 1년(1609)에 명륜당을 중건하였다. 1748년에
동재 · 서재를 중수하고, 1876년 명륜당과 서적이 소실되었으나 유림이 협력하여 명륜당을
중건하였다.
사랑의 도시 건강한 남원 좌우의 동재와 서재를 비롯하여 유교 성현을 모시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대성전
남원향교의 현존하는 건물로는 정문 시설인 진강루와 강당인 명륜당이 있고 그 뒤편에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8호)이 있다.
대성전은 높이 150cm인 화강암 석축위에 팔작지붕과 겹처마가 있는 건물의 형태를
띠고 있고 대성전 왼쪽에는 사매재, 고직사, 교육관 등 부속 시설이 배치되어 있다.
48
진강루는 일제의 철거방침에 의해 1935년 동헌의 문루로 쓰였던 환월루라는 건물을
이곳으로 옮겨 왔다.

남원에서 최초에 설립된 서원은 조선 태종 2년(1402년)에 세워진 주생면 소재의
용장서원이다. 이 서원은 고려시대의 충신 양능양과 양주운, 고려 말기의 성리학자 72
김구용, 그리고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의병장 양대박 등을 모시고 제사지내는 곳이다. 최초
고종 5년(186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헐렸다가 그 후 다시 세웠다. 이 서원은 서원

설립 때부터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 유교 교육의 산실로 자리하여 많은 인재를 용장서원
남원기네스 문화역사
배출하였다.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53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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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사학 용북중학교 49


남원 최초 사학은 사매면에 있는 용북중학교이다. 1949년 10월
4일 사매중학원을 개원하고 1950년 4월 19일 초대 이사장 류광현의

취임과 더불어 재단법인 춘강학원의 설립 인가를 받았다.
1950년 4월 28일 용북중학교 설립 인가를 받았으며, 6월 1일 초대
김태규 교장의 취임과 더불어 6월 10일 용북중학교가 개교하였다.
이 학교는 2006년 10월 17일 교육인적자원부로부터 자율 용북

중학교로 지정 받아, 교장 임용, 교육 과정 운영, 교과서 사용, 학생
선발 등에서 자율성을 갖게 되었다.

74 최초 유치원은 쌍교동 233-1번지에서 1938년 10월에 남원읍교회에서 개원한 남원
유치원이다.
최초의 남원유치원은 당시 어려운 여건에도 남원읍교회 장로였던 최극재, 김종대의 노력으로

유치원 설립되었고 사회 각계각층의 관심 속에 내실을 다져갔다. 1939년 3월에 제1회 보육식을
남원유치원 칠십 여명의 수여생으로 거행하였다.






사랑의 도시 건강한 남원 75

최초 목기생산학교 산내 전라공업기술학교



산내면에는 목기 생산인력을 양성하는 최초의 중등교육기관인 전라

공업기술학교가 있었다. 이 학교는 1952년 개교하여 중학교 교육과정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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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공과 교육을 병행하였다. 사회 여건의 변화로 1967년 산내중학교로
전라공업기술학교 제1회 졸업사진 전환되어 목공과가 사라질 때까지 많은 목공인력을 양성하였다.
남원은 전국적 목기생산지로 유명한 고장이다. 실상사 승려들의 바루 제작

과정에서 습득된 높은 기술이 인근 마을에 전수되어 현재까지 제기와 상
등 남원목기 생산 근간을 이루고 있다. 가내수공업 형태로 기술이 전수 되던
것을 1929년 산내초등학교에서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목공과를 병설하여
공교육기관에서 기술을 체계적으로 전수 · 교육하다 해방 후 산내초등학교

병설 목공과는 유명무실하게 되고 산내면과 주변 사람들의 요구로 전라
공업기술학교가 개교하여 남원목기 제작 기술의 핵심 역할을 담당하였다.
前 전라공업기술학교

76
● 용성초등학교
가장 오래된
남원용성초등학교는 1896년 9월 17일 남원군 공립 소학교로 설립인가를 받아
초 · 중 · 고등
남원 향교 건물을 임시로 사용해 오다 1906년 객사(용성관)로 이전하며 남원공립
학교
보통학교로 개칭하였다.
이후 1941년 남원용성국민학교로 개명하여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2013년 2월 103회 용성초,
졸업식과 함께 지금까지 23,200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다. 남원중,
용성고.


● 남원중학교
남원중학교는 쌍교리 가교사에서 1946년 11월 22일 설립하였다. 1957년
4월 10일 현 위치로 이전하였고,1976년 3월 23일 남원고등학교와 분리되어
현재에이르고 있다. 2013년 2월 제66회 졸업식과 함께 19,345명의
총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다.



● 남원용성고등학교
4 남원기네스 문화역사
남원용성고등학교는 1936년 4월 30일 남원농업전수학교로 설립
되었다. 1944년 남원공립농업학교로 개명하여 운영하다 1951년 남원
농업고등학교로 개편되었다.
2003년 3월 1일 남원용성고등학교로 재개명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51
2013년 2월 제74회 졸업식과 함께 총 10,837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다.

77

가장 학생 수가 많은 초 · 중학교 도통초, 남원중



남원에서 학생 수가 가장 많은 초등학교는 도통동에 있는 도통초등학교
이다. 2013년 기준 39개 학급에 1,036명이 다니고 있다.
학생 수가 가장 많은 중학교는 향교동에 있는 남원중학교이다. 2013년
기준 19학급에 668명이다.

78 주생초등학교에 소나무 숲은 학교 숲 중에 최대 크기를 자랑한다. 면적이 1980㎡

최대 학교 숲 이며 소나무 116그루가 식재되어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수령은 학교 설립연도 보다
주생초등학교 조금 앞선 것으로 추정되며 1929년 주생초등학교 설립 때 학교 부지를 희사했던 남강

소나무 숲 방해규님께서 심고 가꾸어왔던 것으로 전해오고 있다.


79

최초 노래탑 오늘이 오늘이소서


남원 최초 노래탑은 향교동 소재의 ‘오늘이 오늘이소서’ 노래탑이다.
사랑의 도시 건강한 남원 광한루원에서 귀향음악회를 열었고, 이 때 노래의 발상지인 남원에 돌려
정유재란 때 남원에서 일본으로 끌려간 사기장들의 후손들이 1988년



주는 전수식을 가졌다. 그리고 남원문화원에서는 이 노래의 역사적 의의를
되새기기 위해 1995년 만인의총 잔디광장에 노래탑을 세웠다.
이 노래가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정유재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사기장들이
52 이 노래를 부르며 망향의 한을 달래던 것이 후손들에게까지 이어져 400여
년이 지난 오늘에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조선 사기장의 후예들은 1673년 일본에 조선의 건축양식으로 단군을
모시는 옥산궁(玉山宮)이란 사당을 짓고 해마다 추석에 제례를 올리며 매일의 평안을 비는 뜻으로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노래말은 다음과 같다. 이 노래를 수록하고 있는 책 양금신보(梁琴新譜)는 정유재란(1610년)
때 남원에 피난 온 악사 양덕수(梁德壽)가 임실 현감 김두남(金斗南)으로부터 권유 받아 잊혀져간 가곡들을
채보하여 발간한 책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 100대 책 중 한권이다.

오ㄴ리 오ㄴ리쇼셔(오늘이 오늘이소서) / 미일에 오ㄴ리쇼셔(매일이 오늘이소서)
졈그디도 새디도 마ㄹ시고(저물지도 새지도 마시고) /
새라난 미양 당식에 오ㄴ리쇼셔 (새나마 주야장상 오늘이소서)

대강면 사석리에는 섬진강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쌓은 독살이 있다. 이 독살은 도깨비가
80
만든 살뿌리라는 뜻에서 ‘도깨비 살’이라 불린다. 살뿌리는 민물고기를 잡기 위해 돌로
둑을 쌓아 만든 보를 말한다. 이러한 살뿌리는 우리나라에서 섬진강에 유일하게 보존되어 물고기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잡기 위해
이 돌보로 고기를 잡는 방법은 이렇다. 강의 대각선 방향으로 쌓은 돌보는 강물을 설치한
한쪽으로 모아 흐르게 하여 물고기를 유도하고 대발을 물 흐름이 거세게 떨어지는 곳에 가장 오래된
설치하여 고기가 자연스럽게 대발로 들어가도록 하여 고기를 잡는다. 500여 년 이상 독살
긴 세월의 거센 장마에도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 볼때 도깨비들이 쌓은

돌보라 무너지지 않는다고 한다.

81
4 남원기네스 문화역사
거북바위에 새겨진 북두칠성



남원에는 여러 자연 바위에 다양한 모양의 홈들이 새겨져 있다. 이들 바위
53
구멍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거북바위에 새겨진 북두칠성 모양 별자리 홈이다.
덕음산 줄기에 위치한 이 바위는 거북모양을 닮아있고 크고 작은 홈들이
거북의 머리와 어깨 부분에 많이 분포하고 있다. 이중 일곱 개의 큰 홈은 거북의

목에서 어깨부분에 걸쳐 새겨져 있다. 특이한 점은 실제 하늘에서 보이는
북두칠성이 뒤집혀 새겨져 있다. 뒤집힌 북두칠성 모양은 우리나라 청동기
고인돌이나 고구려 무덤 별 그림에서 자주 나타난다. 거북바위의 홈이 언제
누구에 의해 새겨 졌는지 알 수 없지만 거북바위의 상면과 측면에 성혈의 흔적과

일부 문자의 흔적이 확인된 점으로 미루어 조선후기 부녀자들이 득남기원을
위하여 이곳에 찾아와 공을 드렸던 것으로 여겨진다.

남원시 대강면 사석리 섬진강변에 있는 가장 큰 괴석형 고인돌로서 지석은 대형으로
82 2기가 있으며 타 종족과의 경계를 나타내기 위한 묘 표석 역할을 하는 고인돌로 보인다.
가장 큰 고인돌(지석묘 支石墓)은 남-북 방향으로 서 있고 장축 : 550cm, 단축 : 450cm,

지석묘 두께 : 350cm 이다.
사석리
사랑의 도시 건강한 남원 지석묘









54
83

최초 나루터 순자진




고려시대에 수군을 중히 여겨 전국에 진(津)을 두고 나루터를 설치하였는데, 남원에 설치된 곳이 순자진
(鶉子津)이다. 현 금지면 귀석리 삼다리목에 있었던 이 나루터는 금지면 귀석리와 곡성군 신기를 연결하는
현 금곡교라고 할 수 있다. 섬진강이 남해와 연결되어 세곡을 운반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당시 남해바다에서

생산된 어패류와 소금 그리고 남원에서 생산된 곡물, 직물, 농기구 및 특산품 등의 상호교역이 이 나루터를
통해 이루어 졌다.

Namwon Guinness














Namwon Guinness


행 정







84 최초 군수 시장 / 85 최초 국회의원 이정기 / 86 최초 도의원 · 시의원 · 군의원
87 통합 남원시 최초 자치법규 남원시의회 회의규칙 및 위원회 조례

88 최초 군민의장 · 시민의장 수상자 / 89 최고령 시민의장 수상자 오재승
90 최고 춘향장학재단 현금 기탁자 심재명 / 91 최고 춘향장학재단 현물 기탁자 김성복

92 최다 도서 기증자 장영태 / 93 최고령 어르신, 이름이 긴 사람, 다산부부
94 최고령 통장 죽항동 유문옥 / 95 최연소 이장 아영면 일대마을 임한수

96 인구가 가장 많았던 해 1965년 / 97 인구 최대, 최소 읍면동 도통동, 덕과면
98 세대당 인구비율 최고, 최저 연도 1964년, 2013년
4 남원기네스 문화역사
99 관광객이 가장 많이 방문한 해 2005년 / 100 가장 비싼 건물 서남대학교
101 가장 오래된 아파트 한남아파트 / 102 가장 높은 건물 현대아파트

103 공시지가 최고가, 최저가 / 104 최초 국제 자매결연 도시 중국 염성시
67

정운홍 심성택 김완주 이정규

해방후 최초 남원군수 최초 남원시장 통합시 최초 남원시장 최초 민선 남원시장
취 임 1945. 08. 16 취 임 1981. 07. 01 취 임 1994. 05. 01 취 임 1995. 07. 01
이 임 1946. 07. 02 이 임 1984. 10. 23 이 임 1995. 06. 30 이 임 1998. 06. 30


남원 군수 명칭 최초사용은 고종 31년인 1894년부터이며 초임 군수는 신좌희(申佐熙)
84 군수이다.

최초
군수 시장


85
최초 국회의원 이정기


남원의 최초 국회의원은 이정기(李程器) 의원으로 1948년 5월

10일선거에 당선되어 1948년 5월 31일부터 1950년 5월 30일 까지
사랑의 도시 건강한 남원 최초 도의원 · 시의원 · 군의원
의원직을 유지하였다.

86





55 ● 최초 도의원(선거일 : 1953. 5. 30) : 박재윤, 이열, 윤정구
● 최초 시의원(선거일 : 1991. 3. 26.)
김 율(동충동), 공기현(죽항동), 조영연(쌍교동), 오대철(노암동),
김홍곤(금 동), 김종기(왕정동), 김성귀(향교동), 윤재엽(용정동),
최학국(도통동)
● 최초 군의원(선거일 : 1991. 3. 26.)

박용선(운봉읍), 정준식(주천면), 강석환(수지면), 이권기(송동면),
방규태(주생면), 황의현(금지면), 조동주(대강면), 하정섭(대산면),
형성만(사매면), 백종기(덕과면), 유광종(보절면), 조용정(산동면),
양준식(이백면), 김종진(인월면), 유양우(아영면), 김찬기(산내면)

통합남원시 최초의 자치법규는 1995년 1월 2일에 공포한 조례 제1호「남원시의회
위원회 조례」와 1995년 1월 7일에 공포한 규칙 제1호 「남원시의회 회의 규칙」이다. 87
통합 남원시
88 최초 자치법규

최초 군민의장 · 시민의장 수상자 남원시의회
회의규칙 및
● 통합전 시민의장(1982년)
위원회 조례
문화장(윤영근), 산업장(이문옥), 공익장(양창현),
체육장(백용주), 효열장(박아지)

● 통합전 군민의장(1985년)
문화장(이기승), 산업장(이정규), 근로장(배용춘), 공익장(소민석),
5
효열장(최강숙), 문화장(김정곤), 새마을장(김종인) 남원기네스 행정

● 통합 시민의장(1995년)
문화장(이상호), 새마을장(최효순), 산업장(김종옥),
공익장(서윤교), 애향장(이기건), 효열장(김오순) 56


89

최고령 시민의장 수상자 오재승



오재승(1922년생) 어르신은 교육자로서 교장 재임시절 국도변 코스모스 꽃길
가꾸기, 초등학교 학구단위 어머니회 조직, 노인학교 운영 등 남원교육 발전과

퇴임 후 남원유림과 향교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 남원시로부터
시민의장 문화체육장을 수여 받았다. 당시 만 90세로 최고령 시민의장 수상자이다.

춘향장학재단에 가장 많은 현금을 기탁한 사람은 심재명 씨이다.
90 심재명씨는 지역 인재육성을 위하여 춘향장학재단에 현금 1억을 기탁하였다.

최고

춘향장학재단
현금 기탁자
심재명



91
사랑의 도시 건강한 남원 춘향장학재단에 가장 많은 현물을 기탁한 사람은 김성복 씨이다.
최고 춘향장학재단 현물 기탁자 김성복









57 왕정동 42-5번지 대지 170㎡(보상가 1억 상당)를 지역 인재육성을 위하여 춘향장학재단에 기탁하였다.

92
최다 도서 기증자 장영태




장영태(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씨는 최다 도서 기증자
이다. 남원시립도서관에 7차에 걸쳐 5,673권을 기증하여
학생과 시민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93

최고령 어르신, 이름이 긴 사람, 다산부부




● 최고령 어르신
대강면 가덕마을에 살고계신 방진례 할머니는 1904년 10월 3일생으로 올해 만 110세이다. 하지만 실제

나이는 95세로 주민등록이 잘못 기록되었다고 한다. 실제 나이가 가장 많은 어르신은 금지면 입암리에 살고
계신 최순이 할머니로 1907년 7월 12일생으로 현재 만 107세이다.



● 가장 이름이 긴 사람

남원에서 이름이 가장 긴 사람은 이에스더현정(5), 이다니엘원재(3), 강호프가람솔(12)으로 이름이 여섯
글자이다.



● 생존 다산 부부

죽항동에 사는 김동운(49세), 김삼례(39세) 부부와 동충동에 사는 노재신(44세), 김영애(37세) 부부는 7명의
자녀를 둔 다산 부부이다.









94
최고령 통장 죽항동 유문옥 5 남원기네스 행정




유문옥(1914년생)씨는 죽항동 하정 1통장으로 1947년 1월 1일부터 1996년 1월 6일 까지 만 49년 동안
지역을 위해 봉사하였다. 1996년 재임 당시 만 82세였다.
58









95
최연소 이장 아영면 일대마을 임한수




임한수(1955년생)씨는 아영면 일대마을 이장으로 1977년 재임 당시 만 22세로 최연소 이장이다.

(인구, 명)
187,965
190,000
170,072 175,289
160,000
140,243
130,000
109,224
94,095 87,000
100,000


70,000

40,000
1960 1965 1975 1985 1995 2005 2012


우리시의 인구가 가장 많았던 해는 1965년으로 187,965명이었다.
96 남원시 인구 변동 추이를 살펴보면 1965년을 정점으로 70~80년대 산업화와 더불어

인구가 가장 농촌인구가 대거 대도시로 이동하면서 급격한 감소가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현재
많았던 해 2012. 12. 31일 기준 87,000명으로 1965년 대비 50년 동안 남원의 인구는 절반
1965년 이상 감소하였다.







사랑의 도시 건강한 남원





97

인구 최대, 최소 읍면동
59
도통동, 덕과면 덕과면(1,052명)


2012. 12. 31일 기준 인구가 가장 많은
읍면동은 도통동이다. 인구수 17,247명
도통동(17,247명)
으로 남원시 인구의 19.8% 가량이 도통동에

거주하고 있다. 반대로 인구가 가장 적은
읍면동은 덕과면이다. 인구수 1,052명으로 지리산국립공원

남원시 인구대비 1.2%만 덕과면에 거주
하고 있다.

(명)
7
6.1
5.6
6
5.6
5
4.5
4
3.3
2.7
3
2.36
2



1960 1965 1975 1985 1995 2005 2012


세대당 인구비율이 가장 높은 해는 1964년으로 세대당 6.1명이었다. 우리시 인구가
98
매년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세대당 인구비율이 가장 낮은 해는 2013년으로 인구수
86,460명(2013.12.31일 기준), 총세대수 36,946세대로 세대당 인구는 2.34명이다. 세대당
인구비율 최고,
이는 70~80년대 젊은 층의 대도시 이전에 따른 인구감소와 핵가족화가 본격적으로
최저 연도
이루어지고, 최근에는 혼자 사는 노인이나 노부부 단둘이 생활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1964년,
있는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2013년

99

관광객이 가장 많이 방문한 해 2005년
5 남원기네스 행정

남원을 찾는 관광객은 1981년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증가하여 2005년 4,821,761명으로 가장 많은 관광객이 다녀갔다.
광한루원, 교룡산성, 지리산국립공원, 만인의총, 실상사, 혼불문학관, 춘향테마파크, 국악의성지, 남원 자연

휴양림, 지리산둘레길 등 많은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는 남원은 해마다 4백만 명 이상 다녀가는 관광명소이다. 60

(만 명) 2005년 4,821,761명
500
400

300
200
100

0
1981 1985 1990 1995 2000 2005 2010 2012 (년 도)

서남대학교는 시가표준액 36,410,730,240원으로 남원에서 가장 비싼 건물이다.
100 1988년 12월 학교법인 서남학원에서 서남대학 설립인가를 받아 1991년 설립하였고

가장 이홍하가 초대 학장에 취임하였다. 교훈은 진리, 창조, 봉사이다. 1992년 종합대학으로

비싼 건물 승격하였고, 1995년 일반대학원 및 경영행정대학원, 교육대학원을 신설하였다. 2003년
서남대학교 충청남도 아산시에 제2 캠퍼스를 조성하여 5개 학부를 두었다.





101
사랑의 도시 건강한 남원 남원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는 1982년에 건축한 한남아파트
가장 오래된 아파트 한남아파트









61 이다. 아파트에는 4동 65세대가 살고 있다.



102

가장 높은 건물 현대아파트



남원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현대아파트이다. 18층으로 건물
높이가 48.30m이다. 1997년 4월에 입주하여 465세대가

살고 있다.

남원시 최고 공시지가는 금동 1-2번지 1001안경점이다. 2013년 산정기준 공시지가는
103
㎡당 2,230,000원으로 가장 비싼 곳이다. 공시지가 최저가는 산내면 덕동리 산 215-25
번지로 지리산 국립공원내 도로 부지이다. 공시지가는 ㎡당 69원으로 가장 싼 곳이다. 공시지가
최고가,
최저가






104

최초 국제 자매결연 도시 중국 염성시 5 남원기네스 행정



남원시와 염성시는 1996년 6월 13일 자매결연을 체결

하였다. 세계의 거대시장으로 경제의 무한한 발전 잠재
62
능력을 보유한 중국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 강소성
동부에 위치한 염성시와 자매결연을 하였다.
염성시는 면적 15,075㎢, 인구 790만 명으로 수호지의

작가 시내암의 고향이며 세계에서 하나뿐인 사향보호구역
이다. 경제사절단 교류, 공무원 파견 등 우호증진 및 교류
확대를 위한 상호 방문을 통해 문화, 예술, 체육 분야 등
일반교류를 확대하며 진출희망기업의 합작사업 유도,

관광산업합작개발, 공산품, 농산품 시장 판로개척 등
교류협력을 증진하고 있다.



Namwon Guinness














Namwon Guinness


산업경제







105 최초 특구 지리산 웰빙 허브산업특구 / 106 최초 관광지 남원관광지
107 최대 전통시장 공설시장 / 108 가장 오래된 은행 스탠다드차타드은행

109 가장 오래된 약국 위생약국 / 110 최초 제재소 선송제재소
111 최초 병원 남원의료원 / 112 가장 오래된 중화요리 음식점 경방루

113 가장 오래된 추어음식점 새집 / 114 가축을 가장 많이 사육하는 농가
115 원예작물을 가장 많이 재배하는 농가 / 116 최다 귀농귀촌 마을 백일전원마을

지리산 웰빙 허브산업특구는 2005년 9월 13일에 남원 최초 특구로 지정되었다. 규모는
105 701,144㎡로 운봉읍 용산리 431번지 일원에 조성되었다. 총사업비 252억 원으로
최초 특구 자생식물 환경공원, 허브테마파크, 허브가공단지, 허브경관농업지구, 아로마테라피관,

지리산 웰빙
사랑의 도시 건강한 남원 허브산업 남원은 지리산권 청정지역으로 1,300여 종의 자생허브 식물의 보고로 생태 · 문화 · 관광
허브복합토피아관 등이 조성되거나 조성중이다.
특구
자원과 허브테마를 연계한 생태 공간 조성의 최적지로 손꼽힌다. 사계절이 향기로운

허브힐링관광지로 이곳 지리산 웰빙허브산업특구를 집중 육성하여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리산 생태보존에 대한 관심을 증대시킬 수 있는 지역 명소로 자리 잡기를 기대해 본다.
63

남원시 어현동 일원에 위치한 남원관광지는 1984년 7월 28일 교통부로부터 관광지로
106
지정·승인 받아 춘향문화예술회관(1995), 국립민속국악원(1997) 춘향멀티미디어
프라자(2002), 춘향테마파크(2003) 남원 향토박물관(2003) 등 주요 시설들이 속속 최초
관광지
들어섰다.
남원관광지
이 외에도 동편제·판소리전시관, 음악분수대, 전망대, 조각공원, 놀이시설, 음식점
등이 있으며 매년 100만 명 이상 관광객이 찾는 남원의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남원기네스 산업경제



6





64

조선시대부터 1970년도까지 현재 광한루원인 천거동 187번지 부지에 5일장이 형성
107 되었고 모든 농수산물과 생활용품을 남원지역과 인근 7개 군까지 공급하였으며, 특히

최대 우시장은 당시 서부 천거리에 일명 곡마당이 형성되어 장날에는 수백 마리의 가축이

전통시장 매매되어 전국 3대 시장 중 하나였다.
공설시장 1970년 12월경 광한루원 확장에 따라 현 위치로 이전 남원공설시장을 건립하였다.

매장면적 5,342㎡, 건축면적 8,181㎡로 점포는 154개가 개설되었으며 전북에서 가장
큰 시장이었다.
현재 공설시장은 부지 16,623㎡, 건물면적 7,150㎡, 점포는 8동 376개가 개설되어
사랑의 도시 건강한 남원 건어물, 생선, 과일류, 제사용품 등 모든 생활필수품이 갖추어져 있고 먹거리로는 전통
5일장 또는 상설시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주요 품목으로는 의류를 비롯한 잡화류, 그릇,



순대국밥이 유명하며 인근에는 추어탕, 산채 한정식, 민물 매운탕 등이 있으며, 이 밖에도
남원 특산물로서 지리산 약초, 남원식도 등이 구비되어 있는 남원시의 대표시장으로
면모를 갖추고 있다.
65

하정동에 스탠다드차타드은행(舊제일은행)은 남원에서 가장 오래된 금융기관이다.
구 제일은행은 1952년 11월 26일에 한국식산은행 남원지점을 승계하여 남원읍 하정리 108
3번지에서 영업을 시작하였다. 가장
구 제일은행은 1929년 저축예금업무를 전담하는 조선저축은행이 모체가 된다. 광복 후 오래된 은행
1952년과 1954년의 두 차례에 걸쳐 식산은행 점포 21개를 승계하여 사세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남원지점도 구 제일은행으로 편입되었다. 스탠다드
1958년 조선저축은행은 제일은행으로 개칭되었고 2009년 스탠다드차타드금융지주 차타드은행
계열사로 편입되어 2012년 1월 스탠다드차타드은행으로 명칭을 바꾸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109

가장 오래된 약국 위생약국

6 남원기네스 산업경제
금동에 있는 위생약국(대표 노상준)은 남원에서 가장 오래된 약국으로 1961년
4월 25일 약국개설등록 제10호로 허가받은 후 52년간 현 위치에서 한결같이
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노상준 대표는 현재 만78세로 남원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약사 중 최고령이다. 2011년 기존 약국의 규모를 축소하였지만 여전히 66
약국을 찾는 환자에게 약을 조제하고 쾌유 당부를 잊지 않고 있다. 또한 남원학
연구소 소장으로 재임하면서 지역 발전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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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제재소 선송제재소


1935년 남원시 동충동 232-1번지에 선송제재소(대표 윤주병)라는 기업으로
제재업을 시작하였으며 6 · 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남원지역 목조 건축물의
자재를 생산하여 도시 발전에 앞장서 왔으며 1970년 새마을운동 사업으로
지붕개량 사업에 뛰어들어 농촌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남원 소재 최초병원은 고죽동에 있는 남원의료원이다.
111 남원의료원은 1921년 12월 관립 전주자혜의원 남원출장소로 설립되었다.1956년 1월

최초 병원 ‘전라북도립 남원병원’으로 전환되었고, 1983년 7월 다시 ‘지방공사 전라북도 남원의료원’으로

남원의료원 전환되었다.

1999년 9월 병원 현대화사업으로 건물을 현 위치로 신축 이전하였다. 부지면적 11만 899㎡,
건물 총면적 4만 921.65㎡이며, 지하3층, 지상8층 규모로 350병상을 갖추고 있다.
사랑의 도시 건강한 남원 7개 시군이며 해당 주민은 27만여 명이다. 내과 · 외과 · 소아청소년과 · 신경외과 · 정형외과
진료권역은 전라북도 남원, 순창, 임실, 장수와 전라남도 곡성, 구례 및 경상남도 함양 등


등 19개의 진료과가 개설되어 있으며, 건강증진센터 · 비만클리닉 · 치매 주간보호센터

등을 운영한다.
남원의료원은 최첨단 의료 장비를 갖춘 지리산권 일원의 유일한 종합 병원으로서 수익성보다는
67
환자 중심의 의료서비스 제공을 우선으로 하는 공공 병원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도립남원병원 개축 기공식 도립 남원병원 구 남원의료원
1979.10.19

남원에서 가장 오래된 중화요리 음식점은 죽항동에 있는 경방루(대표 진가의)이다.

경방루는 화교인 故 진경방(陳慶旁)께서 1900년경 중국에서 이주해 창업한 이후 현재까지 112
4대째 100여 년간 운영하고 있는 전통이 있는 중화요리집이다. 처음에는 금동에서 가장 오래된
시작하여 1995년 7월경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중화요리
경방루 출입문에는 ‘조상의 얼이 담긴 4대째, 장인의 혼이 살아 숨쉬는 100년 가업승계! 음식점

세상의 흐름을 거역하지 않는 순리(純理)와 정도(正道)의 여정길을 시작합니다.’라는 경방루
문구가 있다. 창업주의 증손자인 진가의 대표는 “문구처럼 가업에 대한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지고 정성을 다해 전통의 맛을 지켜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113
6 남원기네스 산업경제
가장 오래된 추어음식점 새집


남원에서 가장 오래된 추어탕 음식점은 1959년 7월 5일
서삼례 할머니가 창업한 새집이다. 68
새집은 억새풀집이란 뜻의 순 우리말인데, 1959년 당시
억새풀로 이어 지붕을 만들었기 때문에 새집이라고 이름
붙였다. 현재의 음식점 건물은 2004년에 기존의 낡은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 신축하여 과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지만,
맛은 예전 그대로 변함이 없다.

추어탕의 원조인 만큼 TV와 신문 등 언론매체에 여러 번
소개되고, 2008년에는 외식경영 평가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창업주 서삼례 할머니에서 조카인 서정심 사장까지 2대에 걸쳐 미꾸리(토종 미꾸라지 정식 명칭) 음식 한
가지로 54년째 전통을 이어온 남원의 대표적인 추어탕 전문음식점이다.

2011년 남원시 가축통계조사에 따르면 소를 가장 많이 사육하는 농가는 수지면에
114 사는 박경씨로 404두를 키우고 있고 돼지를 가장 많이 사육하는 농가는 운봉읍에 사는

가축을 박화춘씨로 11,000두를 키우고 있다. 또 닭을 가장 많이 사육하는 농가는 대강면에

가장 많이 사는 김재영씨로 200,000수를 키우고 있다.
사육하는
농가


115
사랑의 도시 건강한 남원 2011년 생산량 조사에 파프리카를 가장 많이 재배하는 농가는 운봉읍 천병원씨이다.
원예작물을 가장 많이 재배하는 농가





1.6ha 재배규모로 192톤, 재배품종은 엑스시글로리, 스피드1, 예로우글로리 등이다.
사과를 가장 많이 재배하는 농가는 인월면 최원근씨이다. 7.4ha 과원면적으로
69 155톤을 생산하며 품종은 홍로, 후지를 재배한다.
멜론을 가장 많이 재배하는 농가는 송동면 최재천씨이다. 1.33ha 재배규모로

40톤을 생산하며 재배품종은 그랑베르, 슈퍼르망, 엘리트, 탈렌트 등이다.


116

최다 귀농귀촌 마을 백일전원마을



산내면 백일리에는 귀농 · 귀촌인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다. 이 마을은
‘백일전원마을’로 2012년 6월말 기준으로 33가구 90명이 거주하고 있다.

Namwon Guinness














Namwon Guinness


기 타







117 최초 가설 교량 승사교 / 118 최초 비행장 주생비행장
119 최초 발행 신문 서남신보 / 120 최장 가족신문 우리둥지

승사교는 노암동과 수지면·송동면 방면에서 남원시가지로 연결되는 다리로 노암동과
117 금동 사이의 요천(蓼川)을 가로질러 놓여 있다. 최초 가설은 1469년 장의국 부사 때

최초 설치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가설 교량 1989년 건립되었던 옛 다리가 노후화되어 교통량을 처리하지 못할 상황에 이르자
승사교 2007년 4월 약 170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새로 건립하였다. 길이 190m, 폭 35m(보도

폭 4m) 규모로, 왕복 6차선 도로가 지나간다. 다리 기둥은 철근콘크리트 구조이며,
사랑의 도시 건강한 남원 경간수(徑間數; 다리를 받치는 기둥과 기둥 사이)는 4개이다.








118
70
최초 비행장 주생비행장



주생비행장은 남원지역 유일의 토제활주로
이며 지리산공비 토벌작전 목적으로 1953년

설치 되었다.
길이 1,370m 폭 40~140m, 총면적 993,630㎡
이다. 현재 국방부 소유로 35사단에서 관리
하고 있다.

119

최초 발행 신문 서남신보


남원에서 최초로 발행된 신문은 주간지 ‘서남신보’로
1960년 11월 23일 남원군 남원읍 동충리에서 김광식에

의해 창간되었다. 매주 2면을 발행한 이 신문은 순수
로컬지로서 1면에는 지방자치 문제를 심도 있게 취급
하였고, 2면은 사회 문화 교육 문제와 숨은 미담을
찾아 널리 알렸다. 이 신문은 매주 1천부씩 인쇄하였으며,

5.16 군사정변으로 폐간 당하였다.

120

최장 가족신문 우리둥지



남원에서 최장 가족신문은 우리둥지(발행인 박원조)이다. 1987년부터 26년째 격월간 매회 300부 이상 발간해
온 가족신문으로 인터넷이 생활 깊숙이 자리잡은 지금도 여전히 출력물을 접어 우편으로 발송하고 있다.
1987년부터 1998년까지는 현 발행인(박원조)이 편집까지 해 왔으나, 1998년 막내아들인 박제순이 편집인

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일보, SBS 창립기념 방송출연 등 수차례 신문, 방송매체에서 소개되었다.
신문 내용은 밀양박씨를 중심으로 한 가족의 대소사 소개, 남원지역 문화재 및 주요행사 소개 및 가족들의
수필, 여행기 등의 글을 싣고 있다.


남원기네스 기타
※ 인쇄본 가족신문 출력물 1회 ~ 148호(Jpg 및 PDF) 보관 중
7






71

선정위원 노상준, 배종선, 서정섭, 양경임

윤영근, 윤태중, 이병채, 하진상

발 행 인 남원시장

기획 · 편집 남원시청 기획실

발 행 일 201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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