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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by kimics74, 2021-05-28 15:06:36

월간기도 226 호 (2021. 6. 1.)

월간기도 226 호 (2021.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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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호 MONTHLY PRAYER JOURNAL 제226호
2021년 6월 1일
2002년 5월1일 주여, 나로 기도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요한복음 13장 14-15절)

베드로의 발을 씻기시는 예수님

시로 드리는 기도 당신의 품으로 돌아 왔습니다 김정복 2
사도신경 새 번역 사도신경 해설 이종윤 4
교리강좌 로이드존스 교리강좌 정은표 10
기도학교 시리즈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라 김정복 19
말씀묵상 육호기 22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라

WMC 국제기도학교 WMC School of Prayer Intʼl • www.wmcprayer.org

11521 Oakford Ln., Northridge, CA 91326 • Tel. 213-500-0962

시로 드리는 기도

당신의 품으로 돌아 왔습니다

김정복 목사

본지 발행인 겸 편집인

주님, 이 죄인 당신의 품으로 돌아 왔습니다
당신께 돌아온 이 죄인
당신만 사랑하게 하소서
당신 안에만 거(居)하게 하소서
당신만 믿고, 당신께만 순종하게 하소서
당신과는 이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이 세상 재물과도, 이 세상 권세와도, 이 세상 명예와도
이 세상 즐거움과 이 세상 어떤 것이 나를 유혹한다 해도
나에게는 주 예수님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사도 바울(Paul)의 신앙을 본받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므로
지난 날 나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들을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위하여
다 해(害)로 여길 뿐 아니라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排泄物)로 여기기로 했습니다 (빌3:7-8)

2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청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빌4:8)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께서 존귀히 되게 하소서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빌1:21)
우리 중에 누구도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습니다 (롬14:7)

주님, 이제는 당신을 알았고
당신의 품 안에서
참 사랑과 참 평안과 참 기쁨과 참된 생명을 맛 보았습니다
이제는 살아도 주(主)님, 당신만을 위하여 살고
이제는 죽어도 주(主)님, 당신만을 위하여 죽기를 원합니다
이제, 나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입니다 (롬14:8)
주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사6:8)

3

사도신경해설

새 번역 사도신경 해설(15)
(Lecture on the Apostles’ Creed)

The Rev. Lee Jong-Yun, Ph.D / 서울교회 원로목사

아래의 새 번역 사도신경1) 은 한국 기독교 교회협의회(KNCC)와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CCK) 두 연합기관이 사도신경 새 번역 특별위원회를 회원 교단 추천
인사로 각각 구성하여 2004년 12월 3일 공식 발표한 것이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 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XX.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이 고백은 몸이 부활하여 불로장생(不老長生)을 기원하는 말이 아니고 성
경 계시에 근거한 기독교 신앙고백이다. 영원히 사는 것은 개인적인 것 뿐
아니라 구원의 공동체인 교회와 하나님 백성으로서 경험되는 것이다.

1. 몸의 부활

i ) 하나님의 창조를 생각할 때 부활은 영과 육의 온전한 사람 즉 전인(全人)
의 부활이다.

사람을 창조하실 때부터 영육통일체(psycho-somatic unity)의 온전
한 인간을 창조하셨다. 그때의 영과 몸은 모두 선했다. 그들이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죄로 인해 영육의 분리인 물리적 죽음이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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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관점에서 보면 영과 몸 모두가 온전
한 것이 인간의 바른 모습이다. 우리의 부활도 영육통일체의 부활일
수밖에 없다.

ii ) 하나님이 이루신 구원을 생각할 때도 인간은 영육 단일 체의 온전한 사람
이 회복되어야 한다.

창조 본래의 상태로 되돌려 놓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순종을 통해서 마땅히 이르러야 하는 더 높은 상태(the higher state)
에로 인간을 올려놓으시는 것이다. 따라서 구원은 창조를 무시하고 이
루는 것이 아니라 창조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던 바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이다. 온전히 구원된 인간은 최초의 창조된 인간보다 더 높은 단계
에 이른 사람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온전한 구원은 몸의 부활을 포괄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창조가 파괴된 상처를 지닌 구원이 될 것이다. 하나님
은 파괴된 인간을 고치실 뿐 아니라 더 높은 상태로 옮기셔서 고치신
다. 더 높은 상태에로 옮기신다는 그 높은 상태의 극치인 부활체는 어
떤 특성을 가졌나?

iii ) 부활체의 특성들

① 부활의 몸은 썩지 않을 몸이다.(άφθαρσία) (고전15:42)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
니함을 입으리로다’(고전15:53)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신 몸은 썩
을 몸이 아니었다. 타락이 없었더라면 죽지 않도록 창조된 몸이었
다. 더구나 부활의 몸은 창조의 몸과 달리 타락하여 죽을 가능성조
차도 없는 몸이다.

② 영광스러운 몸이다.(δόξα) (고전15:43)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
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빌3:21) ‘우
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
에 나타나리라’(골3:4) 그 영광의 기준이 그리스도의 부활체의 영광
이다.(다메섹 도상에서 나타난 그리스도의 영광)

③ 부활의 몸은 강한 몸이다.(δύναμι ) (고전15:43)
이 세상 몸은 병들고 노쇠해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고전15:49) 입히실 때에는 그 몸이 강한 몸이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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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
이러라’(계21:4)

④ 신령한 몸이다.(σώμα πνευματικόν) (고전15:44)
육의 몸과 대조되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온전히 성령의 통제를
받고 성령에 의해서 변화된 몸이다. 신령한 몸이란 영으로 이루어
진 몸이 아니고 우리 몸과 연속성을 가진 몸이다. 살과 뼈가 있는 몸
(눅24:39)으로 생명나무 실과를 먹을 수 있는 몸이다.

iv )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부활체

①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구현하면서 사는 삶을 산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이루면서 산다.

② 진정한 복됨으로 ‘행복의 최고 상태를 낳는 질서’에서 진정한 기쁨을 누리
며 산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
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
나갔음이러라’(계21:4)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
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
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사65:18)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
들이여 다 그 성읍과 함께 기뻐하라 다 그 성읍과 함께 즐거워하라 그
성을 위하여 슬퍼하는 자들이여 다 그 성의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성과
함께 기뻐하라 너희가 젖을 빠는 것 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
고 젖을 넉넉히 빤 것 같이 그 영광의 풍성함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
라’(사66:10-11)

③ 새 하늘과 새 땅은 온전한 의로 가득 찬 상태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암5:24)

④ 평강으로 가득 찬 삶이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그에게 평강을 강 같이,
그에게 뭇 나라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 같이 주리니 너희가 그 성읍의 젖
을 빨 것이며 너희가 옆에 안기며 그 무릎에서 놀 것이라’(사66:12)

⑤ 영광으로 가득 찬 상태다.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계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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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영생

i ) 영생은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성도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 영생(ξώη 죠에-생명)에 참여케 된다. 영
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에 이미 시작되는 것이다. ‘오직 이것
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
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
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그러므로 지금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그것이 없이는 영생과는 전혀 관계없는 자가 된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
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6:40)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
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요6:47)

ii ) 죽음이후의 영생
우리가 죽으면 육은 흙(먼지)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즉시 하나님께로
간다. 그 상태는 기쁘고 즐거운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다. 죽음이후
온전한 영혼의 상태에 이르게 되어(성화의 완성) 영생에 들어간다.
온전케 된 의인들의 영이 있는 하늘(히12:23)과 온전하신 하나님 앞
에 들어가는 것이다.

iii ) 그리스도 재림 이후의 영생
하늘에 있는 온전케 된 영혼은 그 온전케 된 영혼에 걸 맞는 몸을 입
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이 땅에 있는 우리도 간절히 원
하고 간구하는 것이다.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
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
이 생명에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고후5:2-4)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
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
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고전15:51-52) 그 나팔소리는 주님의
재림 때 일어날 일을 묘사하는 것이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
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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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
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4:16-17)

당시 살아있던 성도들은 죽음을 거치지 않고 재림과 함께 그 영혼이
온전히 성화되고 몸은 부활하신 주님의 몸과 같은 몸으로 변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
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
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요일3:2) 이것
은 몸에 대한 성화의 완성이고 영화인 것이다. 이것이 성령의 능력
으로 이루어지고 모든 성도들과 함께 경험되어지는 것이다. 그 새 하
늘과 새 땅에 영육단일체로서의 온전한 성도들이 거하게 될 것이다.
비로소 온전한 생명의 의미로 가득찬 삶을 누리며 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몸의 부활로부터 시작된다. 영생은 끝없는(endless)시간 또
는 무 시간(timeless)이 아니고 생명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
는 시간이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
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생명과 영생은 같은 말이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
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요일
5:11) ‘이 생명이 나타내 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
내신바 된 이시니라’(요일1:2)

3. 번역상의 문제

‘나는 성령을 믿으며,’ 라틴어와 헬라어 사도신경의 구조는 삼위 하나님
중심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성령
하나님을 대문자로 쓰고 성부와 성자는 Et(καί)로 연결시키니 주동사
가 둘로 되어 있다. 그리고 진지하게 신앙을 고백할 경우 ‘내가’를 쓰
는 것보다 절대격(또는 배제격)인 「나는 ~ 믿으며」로 번역하여 더
강한 뜻을 나타낸다.

성령이 오셔서 거룩한 교회를 탄생시키시고 그 교회는 그 구성원인 성
도를 가르치고 지킨다. 따라서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
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
리스도를 믿습니다」 처럼 「나는 성령을 믿습니다」라고 번역하여,
삼위 하나님을 확실히 고백할 수 있으나 그 다음 문장에 Credo가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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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모두 콤마로 계속되다가 마지막에 Et가 나오므로 ‘나는 성령을 믿으
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사함 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
생을 믿습니다 아멘’으로 번역한다. 여기서 거룩한 공교회는 보편적 교
회(catholic church, universal church)를 말한다.

‘성도의 교제와’는 코이노니아(κοινωνία) 즉 교제, 사귐, 친교, 참여와
같은 여러 가지 뜻 중 ‘교제’라는 말이 고어인 ‘교통’보다는 이해가 쉬
울 것으로 판단하여 ‘교제와’로 번역한다.

죄를 용서 받는 것과는 성도에 관한 항목이다. 죄 사함에 대한 항목은
하나님께서 죄를 사해 주신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항목은
첫째 항목이다. 여기서는 성도가 하나님으로부터 죄 용서를 받는다는
뜻이므로 그 다음에 계속되는, 성도의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
는 것과 같이 성도에게 관련시켜야 한다. 따라서 이 부분은 (하나님이)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보다는 (우리가) 죄를 용서 받는 것을 믿는 것
으로 해야 한다.

몸의 부활과는 원문대로 ‘다시 사는 것’보다 ‘부활’로 번역한다.

영생을 믿습니다는 ‘영원히 사는 것을 믿습니다’를 번역한 것이다. ‘영
생’은 끝없는 시간(endless), 무 시간(timeless)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
라 생명 되신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원히 사는 것’
보다는 영생으로 한다.

◆◆◆◆◆◆

신/간/안/내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1)
How You should pray

2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2)
How You should pray

Professor of Prayerology

산에 오르사 기도를 가르치시는 예수님

저자 김정복 목사 9

교리강좌

로이드 존스 교리강좌(18)

정은표 목사 제공 / 개혁 신앙 발행인

사람 속에 있는 하나님 형상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the divine image in man)과 하나님의 모양대
로 창조되었다고 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1. 이 문제를 고찰해야 하는 이유

1) 성경이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 말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
든 것을 다르시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1:26,27) “이것은 아담
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
대로 지으시되.......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
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창5:1,3)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
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
셨음이니라”(창9:6)

마지막 구절은 성경이 살인을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행위로 규정
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사형제도에 관해 생각할 때 우리는 이
강력한 논증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 다른 중요한 참고 구절이 있다.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
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약
3:9) 여기서 ‘이것’이란 ‘작은 지체’라고 묘사된 사람의 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이 구절 역시 같은 개념을 이야기한다. 다음 중요한 두 구절을
살펴보자.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
을 입으라.”(엡4:24)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
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골3:10)
마지막 에베소서와 골로새 인용 부분은 모두 ‘새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
고 있으나 그 앞의 인용 구절은 사람의 중생 여부를 고려하지 않고 말
하고 있다. 이런 구분이 왜 중요한지는 차후에 자세히 이야기하도록 하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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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교리가 있어야만 설명이 가능한
다른 중요한 교리들이 있다.

(1) 인간론 (인간에 대한 교리)
사람에 대한 모든 교리를 이해하려면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교리를 알아야만 한다. “사람은 도대체 어떤 존재
인가? 사람의 문제는 도대체 무엇인가?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인
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하려면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교리를 알아야만 한다.

(2) 기독론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인격에 대한 교리도 사람 안에 있는 하
나님의 형상에 대한 교리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우리는
성자 하나님이 참 사람이었다고 단언하는데 이 말의 의미는 무
엇인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해 무엇을 믿고 무엇
을 주장하는가? 우리가 이 하나님의 형상의 교리를 모른다면 그
리스도 자신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지식이 명확해질 수 없다.

(3) 구원론
중생한 자와 중생을 경험하지 못한 자의 차이는 무엇인가? 중생
을 경험하면 그 사람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중생한
사람과 아담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 에 대한 교리를 알아야만 한다.

3) 사람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게 하는 접
촉점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하나님과 화목하고 하나님께로 회복시키기 위해 성경
을 통해 계시하였다는 사실은 사람이 원래 그와 같은 계시와 구속이 대
상이 될 수 있는 존재로 지음 받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일이 가능
하다면 우리 안에 이런 일이 가능하게끔 하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2.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일반적 원칙

종교개혁 때 정립 된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교리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하나님
의 형상에 대한 교리와 완전히 다르다. 우리는 천주교의 관습들뿐 아니라 그
들의 교리를 힘써 반대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교리를 다룰
때 차원이 높고 어려운 주제라는 것을 인정하고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것을
알아내고자 노력하되 확증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독단적인 태도를 취해
선 안 된다는 것을 미리 밝혀둔다.

11

1)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는 존재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 존귀한 존재다. ‘형상’과 ‘모양’의
두 단어는 실제적 의미에 있어 차이가 없다는 것을 미리 밝혀둔다. “우
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1:26) 여기
서 연관 구절들을 살펴보면 형상과 모양은 서로 교환해 사용할 수 있는
완전히 같은 의미의 단어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두 단어를 동시에
사용한 것은 분명히 이 주제의 위대함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이 교리를 공부하는 이유 중 하나는 분명히 이 주제의 위대함을
깨닫기 위해서 이다. 사람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
라고 존귀한 것인지 모르는 것이 현대 사회의 가장 비극중 하나이다. 예
로 진화론은 성경의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
간에 대한 철저한 모욕이다.

2) 사람은 하나님의 신적(神的) 영광의 일부를 반영한다.

‘형상’과 ‘모양’이라는 단어는 거울의 반사개념이다. 바울은 고린도후
서3:18에서 그런 개념으로 사용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을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
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광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바울은 그리
스도 안에서 모세의 얼굴을 가렸던 그 수건을 벗고 주님을 바라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다
는 말은 근본적으로 우리가 무엇인가 하나님을 반영하는 존재로 지
음 받았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본질적인 개
념이다.

3) 하나님의 형상은 타락 이후에도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용어가 타락 이전뿐 아니라 이후에도 사용된다
는 것은 이 같은 사실을 말한다. 인용한 성경구절 중 많은 부분이 타
락 이후에 나오는 것임을 알게 된다. 타락이후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
되었고 중생이후 그 형상이 다시 주어진다고 잘못 가르치는 학파들
도 있었다. 다시 말해 타락이후 하나님의 형상들 중 어떤 측면은 상
실되었지만 모든 형상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본질적인 무엇인
가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다. 이 말은 각 사람들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의 어떤 요소들을 발견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부분
의 설명이 ‘인간의 완전타락’을 부인하는 말이 아님을 명심하고 오해
하지 않도록 하자. 인간의 타락은 분명히 부분적 타락이 아닌 ‘완전
타락’이다.

12

4) 중생 (거듭남)은 타락 이전의 상태로의 회복이 아니다.

성경이 중생한 사람에 대한 설명을 통해 사람 안에 있는 원래의 하나님
의 형상을 정의하는 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크다. 뒤이어 나오
는 에베소 4장과 골로새 3장의 인용 구절은 우리가 중생할 때 어떤 존재
가 되는가를 설명한 구절이다. 이 구절이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
에 대해 무엇인가를 알려줄 수는 있으나 타락하기 전 최초의 형상에 대
한 개념에 대해 이 구절들을 통해 정의(定義)를 내리는 것은 잘못이다.

그 이유는 중생 경험 때 일어나는 일은 그저 아담의 타락 이전 상태로
회복되는 것이 아니고 그 이상임을 성경이 말씀하기 때문이다. “죄가 더
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5:20) 거듭나 그리스도 안에서 있는
새 사람은 첫 사람 아담이 잃어버렸던 것보다 더 많은 축복과 훨씬 더
높은 위치에 있게 만들어준다. 즉 죄인에게 일어나는 중생의 역사는 하
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초자연적인 역사인 동시에 태초의 천지창조 역
사와 비교할 수 없는 더 크고 더 위대한 역사이다.

5) 최초 사람의 하나님의 형상과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은 같지 않다.

그리스도는 히브리서 1장 서두의 말씀대로 ‘그 본체의 형상’이시다. 최
초의 사람에 대해서는 그렇게 말할 수 없다. 단지 창조된 복사본이며 그
러나 그리스도는 그 형상이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다룰 때 이
점을 기억해야 한다.

6) 하나님의 형상의 두 가지 요소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개념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1) 자연적 형상(natural image)
하나님이 창조 시 사람과 짐승을 구분되게 하신 수단 안에 내재됨,
사람이 도덕적 행위자로 활동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능과 자
연법칙 안에 내재되어 있다는 개념 즉 도덕적 본성을 말한다.

(2) 영적 형상(spiritual image)
도덕적 완전성을 말한다.

<참고> 칼빈은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본래의 완전성, 단일
성, 정직성, 올곧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의하였고 다른 동물들의 본성
을 능가하는 모든 지점까지 확장된다고 설명하였다. 결국 하나님의 형
상은 인간과 동물을 구별되게 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다.
조나단 에드워즈와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위와 같은 내용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견해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그러나 인간 속

13

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에는 그 이상의 것이 있다. 이 모든 것에 더하여
모든 사람은 원의(original righteousness)를 가지고 있다.

3. 사람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형상의 구체적 모습

1) 본질적 자아의 불가시성과 불멸성

불가시성(不可視性)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의 ‘영’ ‘혼’
즉 우리의 영적본성인 영성을 말한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마주볼 때
그들이 보는 것은 서로의 본질적 자아를 보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본
성과 인격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누군가를 볼 때 그것이 발현
된 모습을 보는 것이지 진정 그 사람의 본질적 자아를 보는 것은 아니
다. 이런 의미에서- 경외심 가운데 말하건 데 사람은 하나님을 닮았
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
이 없으되”(요1:18) 우리의 혼이나 영은 볼 수 없다.

불멸성(不滅性)은 우리의 본질적 영혼은 불멸의 존재라는 말이다. 처음
창조되었을 때 아담과 하와는 죽음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 하나님은 죽
지 않으신다. 영원하신 존재이시다. 역시 이 부분도 하나님을 닮았다.
비록 불신자가 죽어 그 영혼이 지옥에 갈지언정 그 영혼은 영원히 존재
하며 영원히 지옥에서 고통을 받는다. 구원받은 신자 역시 영원히 천국
에서 기쁨을 누릴 것이다.

2) 영혼의 활동들

‘심령의(psychic) 활동들’이라 하지 않고 ‘영혼의(psychical) 활동들’
이라고 말한 것을 주목하자. 우리는 심령현상에는 관심이 없다. 영혼의
활동은 하나님의 형상의 일부분이다. 즉 우리는 이성적이고 도덕적이
며 지성을 가지고 있어 사고할 수 있고 의지와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이
모두는 하나님을 닮은 것이다. 우리가 추론하고 생각하고 분석하고 계
획할 수 있는 능력은 하나님 안에서 영원히 존재하는 동일한 능력을 닮
은 것이다.

우리는 또한 자의식이 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성품이다. 우리를 스스
로 분석하고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도 이런 점에서 특별히
강조 할만하다. ‘자아부인’을 고민한 사람이라면 우리 스스로 이런 자
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즉 우리 자신에 대해 성찰하고 고민하는 일
을 멈출 수 없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이것은 분명 타락이 가져다 준
저주의 일부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우리의 능력을 볼 때 심지어 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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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상태에서도 우리가 원래 가지고 있었던 위대성을 스스로에게 확
증할 수 있다.

3) 지적, 도덕적 완전함

앞서 인용한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의 인용구절을 다시 살펴보자. 하나
님의 형상의 세 번째 특징은 ‘지식과 의와 거룩함’ 안에서 스스로를 드
러내는 지적 도덕적 온전함이다. 처음 창조될 때 사람은 지적 도덕적인
면에 불완전함이 없이 완전하게 만들어졌다. 사람에게는 고결함과 진
리가 있었다. 본성은 균형 잡혀 있었고 하나님이 의도대로 도덕적으로
지적으로 온전하였고 ‘의와 진리의 거룩함’(엡4:24)을 통해 자신을 드
러냈었다.

4) 몸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형상

이 부분은 신학자간에 의견일치가 안 되나 나는 사람 몸에도 하나님
의 형상이 있다고 믿는다. 즉 영혼에 적합하고 영혼과 인격이 표현되
는 통로로서의 몸, 열등한 피조물 특히 동물들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
하는 도구로서의 몸이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을
가르시고 재림하실 때 성도들의 형상이 ‘그와 같게 될 것’이라고 말하
고 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장에서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3장에
서 그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가 주님과 같아진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몸도 포함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육체에도 하나님의 형상이 부분적으
로 나타난다.

5) 피조물에 대한 지배권과 통치권

사람이 땅을 지배하는 일에도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나 있다. 하나님이
온 우주만물과 인간과 땅과 바다를 지배하시고 통치하시는 일이 하나
님의 형상 중 일부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지배를 통해 사람
은 부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반영한다. 피조물에 대한 이러
한 지배권과 통치권을 가진 것은 영광과 존귀의 일부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온 우주에 대하여 하고 계신 것과 같은 일을 사람
이 피조물에게 행하도록 만드셨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
과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
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시 8: )

6) 하나님 형상의 본질적 요소와 비본질적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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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질적 요소
이 요소들이 상실되면 사람으로 존재할 수 없게 되는 요소. 즉
언제나 남아있는 사람으로써의 특성이자 능력, 인성, 지성과 의
지, 피조물에 대한 지배권한 등을 말한다.

(2) 비본질적 요소
상실되어도 여전히 사람으로 남을 수 있는 요소 즉 하나님과 도
덕적 유사성을 말한다. 사람이 원죄를 짓고 타락했을 때 비본질
적 요소는 상실하고 하나님의 형상 중 본질적 요소는 그대로 남
아있다. 그러므로 하나님 형상을 인간이 처음 창조되었을 때 있
던 ‘거룩함과 의’에만 국한시켜서는 안 된다. 그렇게 국한시키면
다른 중요한 교리들이 훼손된다. 이 사실은 창세기 5, 9장, 야고
보서 3장에 나와 있다. 심지어 죄 가운데 있는 사람도 하나님 형
상의 본질적 요소는 그대로 있다. 이 내용은 타락의 교리에서 자
세히 고찰하겠다.

4. 사람의 원래 상태

1) 아담의 상태

(1) 아담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도덕적이고 영적인 존재였다.

• 이 질문에 답할 때 두 가지 조심할 것
첫째는 아담을 위대한 인물로 과장하는 것과 반대로 짐승 같은 존재
로 평가절하하는 잘못이다. 아담은 창조될 때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것을 명심하자.

• 하나님은 아담을 세상에서 하나님의 대리자로 삼으셨다.
• 아담은 분명 지성과 이해력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동물에게 이름을 지어준 것은 아담이었다.(창2:19,20) 그는 각
동물의 특성과 차이를 구별할 줄 알고 그것에 이름을 붙였다. 이름
만 보아도 그 동물의 특성을 알 수 있게끔 지었던 것이다. 그는 고
도의 지능을 가지고 동물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식물들로 생
계를 꾸려나갔다.
• 아담은 하나님을 아버지처럼 의존하였다.
그는 하나님께 무조건 순종 하였으며 하나님과 친교, 교제, 교통에
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 아담의 영적상태는 완전하였고 육체와 완전한 조화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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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사람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지으시고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1:31)라고 말씀하
고 있다.

전도서7:29에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다고 했다. 즉 최초 상
태의 아담은 그의 저급한 요소들과 고상한 요소들 즉 그의 육체와 영
혼 사이에 어떤 충돌도 없었다. 그러나 천주교는 처음부터 이런 충돌이
있었다고 말한다. 즉 처음부터 육체는 사람에게 위험한 것이었고 하나
님은 사람이 자신의 저급한 본성에 끌려가지 않도록 특별한 은사를 주
셔야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천주교의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교리 개
념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우리의 양심이 우리를 정죄하는
것이 그 증거다. 우리는 죄를 지었을 때 그 죄를 짓지 말았어야 했다는
느낌과 죄를 짓는 것은 잘못이라는 느낌을 갖는다. 이것은 죄 없던 상태
에 대한 기억과 그 상태에 대한 회상이다.

• 아담에게는 참된 의와 거룩함이 배아(胚兒)의 형태로 내재되어 있었다.

우리는 아담이 단지 백지와 같은 상태였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혹
자는 아담이 외모는 성인이었으나 아이 같은 사고와 지성이었다고 말
한다. 또는 그가 도덕적으로 중립 상태였었다고도 말한다. 성경은 그러
나 성경은 그가 거룩함과 참된 의의 상태에 있었다고 말한다. 아담 안
에는 참된 의와 거룩함이 배아상태로 있었다. 이것은 불완전하다는 의
미가 아니다.

쉽게 말하면 도토리가 있는 사람은 도토리나무를 얻을 수 있다. 서로 다
른 완전함이지만 그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완전한 도토리는 그 안에
완전한 도토리나무를 얻을 수 있는 모든 잠재력이 담겨있는 것이다.

이전에 인용한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의 인용구절은 중생을 경험하고
구원받은 신자의 최종적인 신분상태가 아담의 최초상태를 뛰어넘는
그 이상의 것 이라고 분명히 이야기 한다. 아담에게는 지식과 의와 거
룩함이 배아지만 완전한 형태로 존재하였다. 하지만 이것이 완전히
발달한 것은 아니었다. 즉 떡갈나무까지 자란 것은 아니었다는 말이
다. 다시 말해 아담은 시험대에 올려져 있었다. 즉 더 무한히 큰 존엄
과 영광의 자리에 오를 수도 있고 타락으로 끝나버릴 수도 있는 최초
의 상태였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시험이 타락으로 종결되었다는 것
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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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최초의 사람에게 주어진 두 가지 가능성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신 상태였다. 하나님은 이런 상태로
사람을 에덴동산에 두시고 언약을 맺으셨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하나
님의 율법에 순종하면 계속 성장하고 그 최종적인 완전함에 이를 것이
라고 약속하셨다. 반면에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고 금지하신 일을 한다
면 그는 타락하여 모든 축복을 잃어버릴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적, 도덕적, 이성적 능력들을 가지고 창
조되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에게 원의(原義)와
거룩함이 있었다는 것이다. 사람은 피조물의 주인으로써, 심지어는 자
신의 모습, 자신의 몸으로도 하나님을 반영하며 에덴동산에 거했다.
그에게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었다. 하나님과 교제 속에 하나님의 율
법에 순종한다면 완벽함에 이를 때까지 끝없이 발전할 것이며 하나님
께 반역한다면 타락하게 될 것이었다. 이것이 아담에게 주어진 하나
님의 언약이었고 그는 결국 타락하여 그 모든 축복을 잃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형상의 본질적인 부분은 우리 안에 그대
로 남아있다. 이것이 세상의 비극이다. 복음전도의 가장 큰 추진력이
자 동기는 바로 이것이 되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사람에게 주는 우
리의 첫째 전도 메시지는 아담과 하와가 누구였는지, 하나님이 그들
을 어떤 존재로 만드셨는지 그리고 그들이 자신에게 무슨 일을 행했으
며 자신을 어떤 상태로 만들었는지 깨닫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세기 1장 2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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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학교 시리즈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라

김정복 목사 / 기도학 교수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 (눅18:1-8, 마14:22-33)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
하여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
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
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
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
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
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눅18:1-8)

1)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치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하여 말씀하실 때에, 예수님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
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과 밤낮 부르짖는 과부의 간청을 비유로 하
여,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재판관은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므로 내
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고 하였는데, “하물며” 너희를 사랑하는 하
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기도를 들어주지 아니하시
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
겠느냐? 하시며, 낙심치 말고, 응답 받을 때까지 계속해서 믿음으로 기
도하라고 하나님의 말씀하신다.

2) 일반적으로 우리는 기도를 오래 하였는데도 응답이 없거나 내가 원
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대로 기도가 응답되지 않으면, 낙심하여 기
도를 그만두거나, 하나님을 원망할 때가 있다. 또한 하나님에 대한 나
의 믿음보다 현실적인 문제가 더 커 보이면 낙심하게 된다.

3) 그러나 기도는 내가 임의로 할 수 있지만,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께
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시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이다.

4) 아브라함은 언약(창12:1-3)을 받은 후, 25년 후에 이삭을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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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았고(창21:1-5), 이삭은 기도한 후 20년 만에 응답 받았다.(창
26:19-26)

5) 로마서 8장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자
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 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
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시지 아니하겠느
냐?(롬8:32),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롬8:35)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기도에 최선으로 응답하시기를 원하신
다. 하나님 아버지는 내가 원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내가 원하는
시간보다 더 좋은 시간에 응답하심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낙심할 수밖에 없는 현실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믿고 알아야
한다(요6:69).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뜻하심과 섭리하심을 믿
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시간까지 기다리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시간은 느린 것 같지만, 하나님은 나에게 가장
좋은 시간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응답해 주신다. 하나님의 맷돌(mill-
stone)은 느린 것 같지만 가장 곱게 갈아지는 것이다.

6) 예수님은 지금도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아직 응답이 없는 현실을
바라보고 낙심하지 말고,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가
응답될 때까지 끝까지 믿음으로 기도하라고 말씀하신다. “믿음의 주
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기도하여야 한
다.”(히12:2)

(1)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12:2,
미7:7, 호12:6)

(2) 베드로는 예수님을 믿고,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 갈
수 있었으나, 마음에 의심이 생겨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바람
을 내려다보았을 때에는 물에 빠졌다 (마14:22-33)

(3) 자기를 바라보고 기도하는 바리세인과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
드리는 세리의 기도 (눅18:9-14)

(4)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였을 때에는(왕상18:1) 엘리야가 능력있
는 기도(왕상18:36-38)를 드렸으나, 이세벨이 죽이겠다는 “이
형편을 그가 보고”(왕상19:1-3) 자기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로
뎀나무 아래에서는 연약한 기도(왕상19:4-5)를 드렸다.

7)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신 말씀은 무
슨 뜻인가? (눅18:8)

(1) 인자가 올 때에 곧 말세가 가까우면, 세상에서 하나님께 은혜로 받
은 믿음(엡2:8)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나는 믿음(롬10:17)

20

과 믿음으로 사는 사람(롬1:17)을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2)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으로 구

원받은 믿음을 기억하며, 사는 자를 찾기가 힘들고, 하나님의 말
씀을 읽고, 듣고 믿음을 지키는 자를 찾기가 힘들며, 믿음으로
사는 성도를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는 더욱
낙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기도하여야 한다.

하 – 나 님 – 아 – 버 지 – 사 랑 –– 해 – 요– – – –
예 – 수 님 – 예 – 수 님 – 사 랑 –– 해 – 요– – – –
성 – 령 님 – 성 – 령 님 – 사 랑 –– 해 – 요– – – –
할 – 렐 루 – 할 – 렐 루 – 할 렐 –– 루 – 야– – – –

하– 나 님– 아– 버– 지– 고 – 마 워 요–
예– 수 님– 예– 수– 님– 고 – 마 워 요–
성– 령 님– 성– 령– 님– 고 – 마 워 요–
할– 렐 루– 할– 렐– 루– 할 – 렐 루 야–

나– 를 위하여 독 생 자주– 신– –––
나– 를 위하여 십 자 가지– 신– –––
나– 를 위하여 기 도 하시– 는– –––
할– 렐 루– 야 할 레 ㄹ 루– 야 – –––

하– 나 님– 아– 버– 지– 감– 사해 요–
예– 수 님– 예– 수– 님– 감– 사해 요–
성– 령 님– 성– 령– 님– 감– 사해 요–
렐루
할– 렐 루– 할– 렐– 루– 할–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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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라

육호기 목사 / GMS 원로선교사, 교수 역임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
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시27:4)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
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
이다”(시65:4)

우리가 창세기 첫 장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
실 때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이 첫 사람을 만드시고 보실 때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1:31)하
셨습니다.

시편기자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하셨던 그 아름다움
이 있기를 앙망한다고 했습니다

여기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히브리어로 <토브-‫>בוט‬라고 합니다. “좋다,
아름답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의 본질이 <아름다움-토브-‫>בוט‬입니다.
불순물이 전혀 없는 순도 100%의 아름다움을 의미합니다. 외형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주로 내면의 아름다움을 나타날 때
사용합니다. 존재의 본질적인 가치와 아름다움을 의미합니다.

<아름다움>의 기준점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움을 <토브-‫>בו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천
지 창조를 하셨을 때, “보시기에 심히 좋으셨더라”고 하셨을 때 <토
브-‫> בוט‬를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천지창조를 통해서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지으
신 모든 것들이 다 아름답지만, 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창조물은 하
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사람>입니다.

22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가장 많이
나타날 때는 예배드릴 때입니다.

성경은 “존귀와 위엄이 그 앞에 있으며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 성소에 있
도다”(시96:6)라고 말씀합니다.

“아름다움이 그 성소에 있도다”의 말씀은 하나님의 전에서 온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찾을 때,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할 때, 예배드리는 시
간 때입니다,

예배하는 성도만이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하
나님의 성품과 은혜가 내면을 가득 채우는 시간일 것입니다. 죄로 인
해서 무너진 사람이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회복하는 곳이 하나님의 전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복될 것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아름
다움이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사람에
게 이루어지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꿈입니다. 하나님의 <아름다
움-토브-‫>בוט‬이 한 영혼, 한 영혼을 통해서 드러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갈 때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가장 많이 나타날 것입니다.

주님,
죄로 인해 그 아름다웠던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있나이다. 주님의
은혜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 주셔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우리 안에 충만하게 하시고, 우리들의 삶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
이 많이 나타나게 하소서.

Zoom 을 통한 성경 세미나와 성경적 기도 세미나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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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사35:3-5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하며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오사

보복하시며 갚아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 편집인 겸 발행인 월간기도와 김정복 순회선교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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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위원 미국 및 기타지역
김정복 이정남 최선호 WMC School of Pr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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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ridge, CA 91326
이달에 WMC 선교사역에 동참하신 분들
818-765-7517 (home)
213-500-0962 (cell) 미국 김경자(F) 김원석(김현경) 김정복(김순회)
[email protected] 박견(박영자) 오선규 옥윤범(옥미경) 이정남
[email protected] 무명
SD 베델교회(김희수 목사)
◆ Website Smyrna Com. Church VA
www.wmcprayer.org
한국 양봉석 이광순 허연회
자교교회(홍용표 목사)
일심비젼교회(이영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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