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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by 제이미파커스, 2019-05-01 21:38:28

발행인칼럼_49

발행인칼럼_49

발행인 칼럼 49

조지아의 비 오는 밤

발행인 칼럼 49

조지아의 비 오는 밤

_박경욱(제이미파커스 대표)

폭우가 쏟아지는 조지아(Georgia)의 밤. 오갈 데 없 그런 이야기를 담은 노래가 있습니다. <Rainy night
는 한 남자가 달랑 가방 하나 들고 거리에 서 있습니다. in Georgia>. 소나기가 퍼붓는 조지아(Georgia)의 밤,
그는 일자리를 구하러 루이지애나에서 여기로 왔습니 쓸쓸하기 짝이 없는 처지를 견뎌낼 수밖에 없는 한 남
다. 차들이 밤의 불빛들을 스치며 쌩쌩 달리고 멀리서 자를 그린 노래입니다. 외로우면서도 따뜻한 분위기가
기차 소리가 들려옵니다. 비는 조지아에 내리는데, 온 가슴을 적시는 명작입니다. 비 오는 밤에 거리나 찻집
세상이 빗속에 잠긴 것만 같습니다. 날은 춥고 갈 곳은 에서 이 노래를 듣게 되면 어지간히 무감각한 사람이
없고, 심하게 외롭군요. 그녀의 사진을 가슴에 품고 있 아닌 한 자기도 모르게 빨려 들어가게 됩니다. 쏘울 가
으니 그나마 견딜 만합니다. 어떡하겠어요, 이겨내야 수 브룩 벤튼(Brook Benton)이 불러 널리 알려진 이 곡
지. 만약 당신도 외로운 처지라면 이렇게 퍼붓는 비가 의 원작자는 토니 조 화이트(Tony Joe White)라는 미국
예사롭지 않을 겁니다. 이 남자처럼 온 세상이 빗속에 의 싱어송라이터입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그 유명한
잠겨 있다고 느끼겠죠. <Polk Salad Annie>도 그의 작품입니다. 올해 나이가
74세(1943년 생). 1967년에 시작해 록, 컨트리 뮤직, 블
루스, 리듬앤블루스 등 장르를 넘나들며 숱한 명곡들을
탄생시킨 그는 지금도 여전히 무대에 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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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조용히 들어주세요. 정말 좋은 곡이니까요.” 꿋꿋하게 외로움을 삼키는 청년의 초상
토요일인 오늘(10월 14일), 일하러 회사로 가는 길에 성 루이지애나 출신인 토니 조 화이트는 고등학교를 졸업

북동의 <네이버후드>라는 카페에 들러 에스프레소를 한 하고 누나가 살고 있는 조지아의 매리에타(Marietta)라는
잔 시켜놓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바람의 소리를 들어 작은 도시로 갔습니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라>를 폈습니다. 그의 데뷔작이지요. 53페이지에 이런 대 그는 거기서 덤프 트럭을 몰았습니다. 잔뜩 화물을 싣고
목이 나오는 겁니다. “첫 곡입니다. 이 노래는 그냥 조용히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이 그의 일이었습니다. 이 지방에는
들어주세요. 정말로 좋은 곡이니까요. 무더위 따위는 까맣 큰비가 자주 내려 일을 못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럴 때
게 잊어버립시다. 브룩 벤튼의 <Rainy night in Georgia>.” 면 집에서 밤새 기타를 치면서 빈 시간들을 외롭게 지키곤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조지아의 비 내리는 밤들을 뚜렷하
그만 소설을 덮었습니다. 오랜 만에 그 노래가 듣고 싶 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뮤지션의 꿈을 이루지 못한
어진 것입니다. 얼른 가방에서 헤드폰을 꺼내 쓰고 휴대폰 채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에서 외로움과 맞서 싸우던
에 저장된 <Rainy night in Georgia>을 듣기 시작했습니 밤들입니다.
다. 브룩 벤튼이 아니라 토니 조 화이트의 것으로. 한 30분
쯤 계속 들었나요? 소나기 퍼붓는 조지아의 밤 풍경에 흠 그는 트럭운전을 그만 두고 텍사스로 가서 나이트클럽
뻑 젖었습니다. 그가 기타와 하모니카, 나지막한 목소리로 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생계를 이었습니다. 비
묘사하는 조지아의 밤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습니다. 오는 어느 날 밤에 라디오에서 비슷한 연배에 이미 성공한
바비 젠트리(Bobby Gentry)라는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부
오늘은 하늘이 높고 맑고 푸르고 바람이 이는 완연한 가 르는 <Ode To Billie Joe. 빌리 조에게 바치는 노래>가 흘
을 날씨인데도 주위가 비 내리는 조지아의 밤 풍경으로 가 러나왔습니다. 빌리 조라는 청년이 강에서 투신자살한 사
득합니다. 휴대폰을 보니 배터리가 5%밖에 남지 않았네 건을 그린 노래입니다. 순간 토니는 그런 노래를 만들고
요. 이대로라면 20분도 못 버틸 듯. 여기서 듣기를 멈춘다 싶은 열망에 빠졌습니다. 뜬구름 잡는 노래가 아니라 자기
면 토니 조 화이트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내 감정에 대한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노랫말과 멜로디로 깨알처럼
예의도 아닙니다. 부랴부랴 사무실로 달려가 그의 영상을 엮은 노래들을 말입니다.
반복재생 모드로 켜놓고 계속 커피를 들이켰습니다. 비 오
는 밤거리를 달리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지난여름 그렇게 그는 조지아의 매리에타에서 덤프 트럭을 몰던 시절을
자주 비가 내릴 때는 뭐하고 있었지? 밤비가 내리는데도 떠올렸습니다. 자주 비가 퍼부었고 혼자인데다 처지도 곤
사무실에 앉아 일이나 하고 있었으니 그게 미친 짓이지요. 궁해서 몹시 외로웠습니다.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면서
오늘 밤 일을 마치면 토니의 <Rainy night in Georgia>와 이겨온 날들을 노래로 엮어 갑니다. 마침내 소나기가 내리
함께 달릴 겁니다. 어디로든. 는 조지아의 밤, 갈 데 없이 우두커니 서 있는 한 남자의 이
야기가 완성됩니다. <Rainy night in Georgia>. 꿋꿋하게
외로움을 삼키는 청년의 초상입니다. 그것은 곧 자신의 이
야기를 담은 노래이지요.

토니 조 화이트(Tony Joe White) 74세(1943년 생). 미국 루이지애나 출신의 싱어송라이터이자 기 77
타리스트. 1967년에 데뷔해 컨트리 앤 웨스턴, 록, 블루스, 리듬앤블루스 등 장르를 넘나들며 숱
한 명곡을 만들어 직접 연주하고 노래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빅히트로 잘 알려진 <Polk Salad
Annie>의 작곡자이다. <Rainy Night in Georgia>를 만들어 음반을 냈지만 당시에는 성공하지 못했
고, 이 노래를 흑인 소울 가수 브룩 벤튼(Brook Benton)이 히트시키면서 이름이 알려졌다. 위키디
피아(사전)에 이런 설명이 나온다. “토니 조 화이트는 스웜프 뮤직의 진정한 제왕이다.” 스웜프는
백인이 연주하는 흑인음악으로, 소울(Soul)이나 블루스 등 흑인음악에 컨트리, 록, 포크 등의 백인
음악적 요소가 가미된 것을 말한다. 백인이 부르는 소울이라는 뜻의 ‘블루 아이드 소울(Blue Eyed
Soul)’도 스웜프 뮤직이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현역으로 활약하고 있다. 올해도 계속 공연 중.

토니 조 화이트가 덤프 트럭 운전사로 일했던 곳.
조지아 주 매리에타.

(노랫말) 조지아의 비 오는 밤
어디서 밤을 날 수 있을까? 한기 피할 곳을 찾아 수트케이스 옆에서 서성거렸지. 비
가 퍼붓고 있어. 빗소리는 당신이 “괜찮아”하고 말하는 것처럼 들려. 비가 조지아의
밤을 적시고 있어. 조지아의 비 오는 밤. 헌데 온 세상에 비가 내리는 것만 같아. 온
세상에 비가 내리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네온사인들이 반짝거리고, 택시들과 버스들
이 밤을 달리네. 멀리서 들리는 기차소리는 이 밤을 슬프게 노래하는 것 같아.
조지아의 밤에 비가 내리고 있어, 조지아의 비 오는 밤. 헌데 온 세상이 비에 젖는 것
만 겉아. 온 세상이 비에 젖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오래 생각해봤지만 달라진 건 아
무 것도 없어. 당신의 처지를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당신의 삶이야. 당신이 끌고 나
가야 해. 차가 보이기에, 거기에 내 기타를 올려두었지. 밤은 깊어가고 쉴 데는 보이
지 않지만 당신 사진을 가슴에 품고 있으니 견딜 만 해. 조지아의 밤에 비가 내려, 비
가 내린다고. 헌데 온 세상에 비가 내리는 것 같아. 온 세상에 비가 내리니 좀 외롭
네. 사람들이여, 외로운 적 있었나요? 그러면 아마 온 세상에 비가 내리는 것처럼 느
껴졌을 거요. 그리곤 비를 이야기했을 거요. 비가, 비가, 비가 내린다고……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로 꽉 채워진 노래들 그럼 넌 혼자가 되겠지.” 이런 식으로 그의 노래들은 한편 한
그가 만든 노래들은 대개 그런 스타일입니다. 사람들의 사 편이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로 꽉 채워져 있습니다.

는 이야기를 사진을 찍듯 선명하게 옮겨놓은 것들입니다. 가 홀로 있는 시간을 위해 <조지아의 비 오는 밤>을
령 <Billy>라는 지독히 매혹적인 노래가 있습니다. 가난한 두 다시 <Rainy night in Georgia>로 돌아갑니다. 혼자서
청년의 우정을 그린 노래입니다. 두 사람은 동고동락하면서
형제처럼 지냅니다. 일자리를 얻으려 여기저기 함께 돌아다 조용히 이 노래를 들으면 비 오는 밤거리를, 외롭게 보냈던
녔으나 실패하고 추운 바닥에서 함께 잠을 자곤 했습니다. 두 시간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실은 이 노래를 듣는 순
친구는 인생의 수렁에 빠져 헛발질을 계속했고, 사는 건 더욱 간도 외로움에 절어 있겠지요, 다들. 그의 노래들은 대개 우
고단해졌습니다. 추운 겨울을 걱정해야 하는 가을 어느 날, 수에 젖어 있습니다. 멜랑콜리한 분위기로 가득합니다. 이런
두 사람은 따뜻한 남쪽으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한 친 감정은 틀림없이 우울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극단적인 우울
구에게 사정이 생깁니다. 그녀가 생각이 바뀌었는지, 같이 살 함은 아니고 약간의 우울함입니다. 이런 기분에 빠지면 인생
자고 연락을 한 것입니다. 그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전체에서 볼 때 잡동사니에 불과한 세상일들을 잠시 떠나 삶
형제 같은 친구 빌리에게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고 혼자 머릿 의 ‘본질’이라고 할 만한 것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소란한 데
속으로 얘기합니다. “쉽진 않지만 네게 작별인사를 할 거야. 서 빠져나와 침묵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토니의 노래가 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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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중인 토니 조 화이트(2017년)

는 이에게 그 기회를 줍니다. 그의 노래와 함께 우수에 젖어 토니 조 화이트의 불멸의 명곡 추천 <Billy> <Rainy night
도, 멜랑콜리에 빠져도 좋습니다. 노래의 밑바닥에 외로움 in Georgia> <Mississippi River> <Willie and Laura Mae
을 이겨내기 충분할 정도로 온기가 돌고 있기 때문입니다. Jones> <Ain’t going down this time> <Good in blues>
<Polk salad annie> <Rainy day lover> ※블루스의 향기
밤에 비를 만나면 이 노래를 꺼내 들으면 좋겠습니다. 가 밴 보석 같은 곡들이다. 모두 ‘유튜브’에서 검색해서 들
좀 외로워지고 더 따뜻해질 겁니다. 이 노래에서, 비는 퍼 을 수 있다. 특히 ‘Tony Joe White, Live from Austin’으
붓고 갈 데는 없지만 당신 사진을 가슴에 품고 있으니 그 로 검색하면 그의 최고의 공연실황을 볼 수 있다.
래도 견딜 만 하다는 대목에 이르면 멀리 혹은 영원히 떨
어진 사람들 생각에 가슴이 그만 찡~합니다. 그의 노래를 79
들으면서 떠난 사람의 사진을 꺼내놓고 오랫동안 바라봅
니다. 노래와 떠난 사람들과 나 자신과 대화하면서 더 따
뜻해져 병적인 우울에 저항하는 힘도 더 커집니다. 독자들
의 홀로 있는 시간을 위해 <조지아의 비 오는 밤>을 드립
니다. 10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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